Diary/Walking2016. 7. 25. 16:44




2011년, 2012년, 2013년 4월 마지막 토요일.  그날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나는 기억한다.  일기나 지나간 블로그포스트를 찾아보지 않아도 나는 잘 안다.  



그 삼년간, 일년중 가장 날씨가 좋은, 부활의 계절 4월의 마지막 토요일마다 나는 포토맥 강변을 하루종일 걷고 있었다.  하루에 50킬로미터 걷기 행사.  2011, 2012년은 매클레인에 살때.  2013년은 메릴랜드 칼리지파크에 살때.  첫해 기록은 12시간쯤.  두번째 해 기록은 11시간쯤.  세번째 해 2013년에는 열시간 이내에 골인을 했다.  기록은 점점 좋아졌다. 이 행사를 성공 시키기 위해서 내가 한 사전 준비는, 20마일 (30킬로미터 안팎)거리를 사전에 두세번 걸어서 기초 근력을 확인하고, 확보하는 일이었다. 평소에 걷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고.  



2012년 11월에 나의 왕눈이가 죽었다.  나의 왕눈이가 죽은 후 -- 아, 왕눈이의 죽음과 함께 무언가 내 삶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 같은것이 빠져 나간걸까?  왕눈이가 죽은지 아직 만 4년도 안되었는데, 그 사이에 10년쯤 흐른것 같기도 하다. 왕눈아.  



2014년 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행사에 등록을 했지만, 나는 장거리 워킹용 하이킹화를 사 놓기까지 해 놓고도, 그 걷기 행사에 가지 못했다.  내게서 불꽃이 빠져 나갔기 때문일것이다. 2015년 봄, 나는 50견에서 회복중이었고 내 몸은 녹 슨 고철 인형처럼 삐걱댔다.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올 해 봄, 물리적으로 나는 미국 밖에 있었거니와 설령 내가 미국에 있었다해도 상황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기운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내 생애에서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걷는 일은 이제 요원하거나 불가능한 꿈이 된걸까?





하루 50킬로미터는 마일리지로는 31.1 마일쯤 된다.  31.1마일은, 내가 종종 나가서 걷는 버크 호수를 여섯바퀴 돌면 되는 거리이다. 2주쯤 전에 나는 왕복 16마일, 아코팅크 레이크 다녀오는 일을 별 일 없이 잘 해 냈다.  엊그제 버크 호수 세바퀴 도는 일을 잘 해 냈다.  과거에 비하면 걷는 속도는 현저히 떨어진 것 같은데, 느려진 속도 외에 다른 신체적 컨디션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대체적으로 신체가 노화 되었을 것이고, 그동안 운동도 부족해서 둔해진 측면도 있고, 이래저래 과거의 '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 몇년 사이에 평소 체중도 3킬로그램 정도 증가되었다. 나잇살일수도 있지만, 운동부족으로 인한 나잇살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음.  나이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평소 체중이 증가한것은 내가 그만큼 게을러졌다는 것일뿐. 



버크호수 세바퀴 돌은 기록으로, 그 두 배를 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자다 깨어 그 점을 곰곰 생각해본다. 



내가 조금 걱정이 드는 것은, '더위'가 한몫을 한다는 점이다.  며칠전 버크호수에 새벽에 나가 두바퀴를 걸은적이 있는데, 그날은 선선했다. 새벽날씨는 오슬오슬 서늘하기까지 했다. 약간 서늘한 날씨가 걷기에는 최고 좋다. 그래서 새벽에서 아침 나절까지 두바퀴 도는 일이 가뿐했다. 엊그제는 새벽에 나갔는데도 훅훅 더운 열기가 올라왔다. 찜통 더위였다. 새벽이슬조차 매달리지 않았고, 나무그늘에서도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바퀴 돌았을 때 무척 지쳤고, 세바퀴째 돌때는 있는대로 게으름을 피우기까지 했다.  날씨가 조금 서늘하다면...50킬로미터를 도전해 볼 만도 한데...



올림픽 경기중에서 가장 근사한 종목은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스포츠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을 나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한다. 달리라고 하면 달리기는 하겠지만, 그 흔한 '조깅'조차도 나는 힘들게 여겨진다. 나는 그냥 달리기를 하는게 힘들고, 전혀 즐겁지 않다.  어릴때는 바람개비를 들고 들판을 뛰어 다니기도 한 것 같은데, 동네에서 저기 떨어져있는 전봇대까지 누가 먼저 달려가나 경주를 하면 나도 지는편보다는 이기는 편이었는데, 달리기는 내게는 무거운 운동이다.  나는 인간이 혼자서 42.195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수 있다는것이 경이롭게 여겨진다.  마라톤 선수들은 달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무시무시한 고통'을 견디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하는 편이다.  숨이 차고, 가슴이 벅차고, 그냥 그대로 뛰던 다리를 멈추고, 팔을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걷고자 하는 '악마의 욕망'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운동선수는 '마라톤 선수'이다. 



하지만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한다. 달리기를 잘 하려는 욕구도 없다.  난 -- 걸으면 되니까.  난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나의 발과 나의 다리는 내가 아무리 멀리 걸어가도 내게 불평하지 않는다. 내 심장은 투덜대는 일 없이 평온하게 제 할일을 하며, 대체로 나는 평온하다.  조금씩 조금씩 지칠 뿐이지만, 지치면 지칠수록 내게 찾아오는 '평화'도 있다.  지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평화.  그것의 정체를 나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신체의 언어로만 설명할수 있을 것이다. 지쳐 쓰러질때까지 걷는자가 얻게되는 평화 -- 그것은 직접 지쳐 쓰러지도록 걸은 자만 느낄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마라톤 선수들도 그들만의 희열을 맛보고 싶어서 힘들어도 끝까지 달리는 것이겠지.  그들의 경지를 나는 절대 알수 없지만.  (그러니까...미루어 짐작컨대...인생이 캄캄한 어둠 속을 혼자 걷듯 외롭고 두렵고 힘들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면, 끝까지 견디고 살아낸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죽음이 비둘기의 깃털처럼 고요히 내 눈에 내리지 않을까?  두렵고 무서운 죽음이 아니라, 견딘것에 대한 보상같은 평화로운 죽음 같은것. 그런게 아닐까? 그러하다면, 나는 끝까지 견뎌내는 일에 좀더 성의를 다 해야 할 것이다. 마라톤 선수처럼.   )





나는 죽고 싶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상상이나 충동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상상한다.  내가 하루에 50킬로미터를 걸으면, 나는 어쩐지 한번 죽었다가 새로운 영혼으로 새 옷을 입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든 내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엊그제, 지친 걸음으로 기도조차 멈추고 늙은 개처럼 꾸역꾸역 걷다가 문득 발견한 고요한 평화 (그건 기적같았다. 고요한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으니까)를 상기하며,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50킬로미터를 참고 걸으면, 마지막엔 좀더 큰 평화가 내 가슴에 내릴지도 몰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수는 없겠지만, 50킬로미터를 걸어도 안되면, 더 멀리 더 멀리 멀리 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 보면 되겠지.  그렇겠지... 



준비물: 꽁꽁 얼린 물 두병.  소금 조금 (혹시 소금기 빠져서 기절할까봐), 주먹밥 한덩이. 냉장고에 사과가 없어...  신발은 하이킹화와 하이킹샌들 두가지를 준비해서, 상황에 따라서 갈아신고. 


불리한 상황: (1) 써포트 스테이션이 없다는 점.  (2) 여섯바퀴 도는 일이라 중도 포기가 용이하다는 점. 그냥 지치면 때려치고 차에 자빠져 잘게 뻔하다.  게다가 난 의지박약이야.  걷는내내 '하느님 제가 이걸 해내게 도와 주세요. 못하면 하느님 책임입니다 뭐 이렇게 협박을 해야 하려나. 그래봤자 '맹랑한 년' 이러고 못들은척 하실걸.  진짜 행사때는 단방향 50킬로미터 걷기라서 중도포기 자체가 불가능하지...난 여섯바퀴니까 세바퀴 이후부터 계속 유혹에 시달릴거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그만하자. 음 그걸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유리한 상황: 쓰러져 죽을 일은 없다. 힘들면 중도 포기하기가 용이하므로. 백팩을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차에 물건 다 놓아두고 돌다가, 필요하면 한바퀴 마쳤을때 차에 가서 꺼내 먹고, 꺼내 마시고 하면 되니까. 


월요일 새벽에 거사를 치르려고 했는데, 어쩐지 물건너 간것 같다.  잠을 못잤다.  (고질적인 수면 장애.) 어제 저녁에 수영을 다녀왔어야 했어. 


***


일요일 아침 예배 마치고나서, 쇼핑 몰에 갔다. 찬삐가 돈 벌었다고, 내게 뭔가 선물을 사 주고 싶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검정 가죽 누비 지갑 아주 세련된 것이 보여서 둘이 만져보고 눈독을 들였다. 정말 내 맘에 꼭 드는 물건이었다.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왜, 왜, 왜! 왜 그냥 돌아서는 것인가요?


내게 선물을 사주고 싶어하는 아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내게 화를 내듯 물었다.  "지갑이 있어..." 


내가 현재 사용하는 지갑은 선물 받은 것이다. 선물 받은 것인데, 선물 받을때부터 '이거 중국 갔다가, 머라머라 짝퉁, 머라머라 똑같아서 비싼 돈 주고 사온건데, 짝퉁이라 미안해. 그냥 쓸래?'  뭐 이런 사연으로 내가 선물 받아서 몇 해 들고 다니는거다.  그거 몇년 썼으니 정품 새거 사준다고 찬삐가 성화를 하길래, 나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옷장 서랍에 똑같은거 새거 또 있어... 나중에 또 하나 선물 받았어.. 쏘리, 쏘리." 


찬삐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잡아먹을듯이 으르렁댔다. "엄마는 왜 불법 짝퉁을 쓰시나요?"  아니, 내가 일부러 산게 아니고, 누군가가 선의로 그걸 선물했는데, 그럼 그걸 면전에서 쏘아 붙이고 버려? 좋은 마음으로 선물했으니 귀하게 써야지... 내가 불법으로 산건 절대 아니야...  


찬삐는 내가 아주 못마땅하다.  난, 뭐 내가 뭘 들고 다니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건, 나로서는 짝퉁이건 찢어진 것이건, 지갑 안에 돈이나 많았으면 좋겠다. 하하하.  내 인생이, 나라는 인간 자체가 짝퉁이 아닐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나 자체가 뭐랄까 짝퉁 같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성 자체가 가짜 같은 것이다. 가짜.  그걸 극복할수 있다면. 내가 짝퉁이 아닌 순정의 무엇일수 있다면.  


찬삐야, 엄마 선물 살 돈 나줘. 내가 짝퉁이 아닌 진짜 일에 쓰게. 응? 지갑 사주지 말고, 지갑에 돈이나 많이 채워줘. 난 지갑보다 돈이 더 좋아. 진심이야. 



사실 내가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친구는 따로 있다. 뉴요커들 사이에 알려져 있는 앰지월리스, 검정 가죽 누비 메트로 토트백.  475달러.  매트로 가방을 좋아하는데 검정 가죽으로 나왔대서 작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침흘리며 쳐다보던 것이다.  참 예쁠거야... 갖고 싶은 것을 그냥 상상만하면서 쳐다보는 일도 재미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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