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6. 15. 23:46

100년 전까지도 학교로 사용되었던 old school house.  오른쪽의 하얀 창고모양이 아마도 화장실 이었을 것이다.

 

카페 이름이 한국인에게는 유별나게 보일 수 있다.

 

1970년대 한국의 이발소를 회상하게 만드는 아주 오래된 이발소. 

요한 복음 3장 16절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 아들을 주셨으니, 주 예수를 믿는자는 누구든지 죽지 아니하며 영원한 삶을 누리리다.

집 주인이 신앙심이 강한 사람인듯. 

 

옛날 소방서 입구에 붙어있는 표시.

 

이 도시의 법원 건물. 티파니라는 스테인드 글래스 작품으로 유명한 루이스 티파니가 직접 디자인하여 제작했다는 스테인드 클래스가 이 건물의 자랑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omfort_Tiffany )

나도 미국 미술관에 다닐때, 주요 미술관에 반드시 소장하고 있던 티파니의 스테인드 글래스 작품들을 감상했었지만, 실제 어떤 건물의 창에 그대로 남아있는 그의 작품을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제대로 감상하기위해서는 실내로 가서 봐야하는데, 일요일 오후에 갔기 때문에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다음에 평일에 가서 다시 봐야지. 

 

 

아래: 내가 갖고 싶은 집.  나즈막하고 아담하고 소박한 이층집과 정원. 그것이 내가 갖고 싶은 집이다.  돌아다니다가 내가 갖고 싶은 집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 모아보려고 한다.  떠돌이로 사는것도 재미없어서 정착해 볼까 하고. 

 

 

코로나로 텅텅 빈 메인스트리트 오후

 

늑대 언덕 (Wolf Hill)이라는 이곳 이름을 기리기 위한 늑대 조형물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다. 

이 도시의 연방건물 길 모퉁이를 장식한 그림. 

 

 

 

다시 책상 앞.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6. 11. 00:34

 

미국집에 내 운동화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샌들을 신고 왔는데, 와 보니 없었다. 아, 아들이 짐정리 하면서 다 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근처 월마트에서 18달러짜리 운동화를 한켤레 사 신고 (9달러 짜리도 있었는데 믿음이 안가서 18달러짜리로 산 것인데) 10킬로미터를 걷고 오니 발목이 시큰거린다.  망했어...  이제 나도 젊은 청춘이 아니라서 이태전부터 발 쪽에 시큰시큰 '나이가 보내는 시그널'을 느끼던 중이라 걸을때조차 신중했어야 했는데,  곰이 돌아다닌다는 트레일에 넋이 나가서 신나게 걷다가 이 꼴이 되고 말았다. (나이 먹으면 내 육신이 내 욕망을 따르지 못하게 된다.) 하루 50킬로미터를 걸어도 발이 멀쩡했던 나의 청춘은 어디로 간 것인가?  

 

그래서 내가 내 일생에 처음으로 발목에 파스를 붙이고 이틀째 절름거리고 집안을 오르내리고 있다.  아, 파스를 이래서 붙이는구나. 아들은 왜 이런 파스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일까?  허리 아픈것을 운동으로 달랜다더니 파스가 많이 필요했던것이구나.  나는 건강한 몸을 타고나서 내 아들의 고통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던 듯 싶다.  

 

월마트에서 산 20달러 운동화는 실내화로나 신어야 하려나. 나는 검소하게 살던 습관이나 생각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20달러짜리 운동화나 100달러 짜리 운동화나 별 차이가 없을거라는 상상을 했었다.  "그게 다 브랜드 광고 값이지 운동화가 이만하면 되는거겠지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으려고..." 뭐 이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고 20달러쯤 하는 운동화에 몸을 맡겼던 것인데 결과는 혹독하다. (나는 지금 절름거리고 있다구!)

 

어쨌거나 아들이 이 꼴을 보고 15마일쯤 운전하여 나가서 운동화를 한켤레 사 주었다.  나이키를 고르다가 매장 점원에게 "Hey, I am an elderly woman. I have ankle problems and some other issues with my feet. What would you recommend for me?" 하고 물었다. 그는 나의 'I am an elderly woman'이라는 말에 마스크를 쓴채 벙글벙글 사람좋은 미소를 날렸다. 그러더니 그가 가리킨 것이 이 신발이었다. Brooks. 점원은 간호사 여성들이 이 신발을 많이 사 신고, 자기 엄마도 이 운동화를 신는다고 했다.  그래 맞어. 미국여자들이 이 신발 신고 뛰는거 많이 봤어. 하지만 나는 주로 나이키를 신었지.

 

벙글벙글 웃는 점원이 맘에 들어서 그가 권하는 운동화를 신어보았는데, 신발에 아픈 발을 넣는 순간 답이 나왔다.  "Yes! This is it! I don't feel any pain in my ankel and foot."   정말 그랬다. 샌들을 신고 나간 발이 그냥 있어도 얼얼했는데, 이 신발에 발을 넣는 순간 발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오호!!! 신발이 아픈 내 발을 단단히 안아주고 위로해준다는 느낌.  신발의 차이가 이런 것인가! 

 

그래서 110달러쯤에 이 신발을 한켤레 샀다. 아들이 사줬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님.)  이젠 발 편한게 최고야... 

 

아침에 일어나 작은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들아! 엄마 신발 사줘!

 

 

재택근무를 하고 있을 작은 아들에게서 즉시 답이 날아왔다. "예이! 엄마!"

 

아, 착한 아들들.  스폰서 아들을 둘이나 가진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가.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해. 클로그는 연구실에 놓고 학교에서 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닐때 신어야지. 편안할거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6. 10. 05:27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 (시민의 입장에서):

 

한국에서는 대체로 대부분의 비즈니스를 열어 놓은 상태에서 시민들에게 개인적인 방어조치를 취하도록 강력하게 유도하는 편이다.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기를 하고 있으며 - 길에서 마스크 안 쓴 사람을 보면 연쇄살인범을 만난듯 증오하며 피하는 분위기 이다. 사회적 압박이 무서워서라도 마스크를 착용할수 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유도하되 대부분의 사업장이 열려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 음주-가무 시설 제외). 그대신 출입국 장치가 삼엄하다.  아,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지없이 2주간 방구석에서 수도 생활을 해야 한다. 

 

미국은 대체로 대부분의 비즈니스를 닫아 걸고  유령도시를 만들어 놓았다. 스타벅스 열린곳을 찾기가 힘들다.  뭔가 사러 나가기 위해서는 그 상점이 현재 영업을 하는지 몇시까지 문을 여는지 전화로 확인하고 나가는 것이 안전하다.  매장마다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표시를 붙여 놓았고,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상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체로 마스크 따위를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짙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대도시와 인구 밀도가 떨어지는 시골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워싱턴 디씨를 비롯한 인근 도심에서는 사람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대체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분위기 이지만,  시골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나는 현재 버지니아의 시골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곳은 마치 '웰컴투 동막골'과 흡사하다. 도무지 코로나라는 난리가 쳐들어오지 않은 동화속의 마을 같다.  점원들은 마스크를 하지만 매장의 손님들은 마스크를 안하고 돌아다니므로 이따금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점원'으로 오인하고 와서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만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에 마스크 안쓴 사람이 널리고 깔려 있다. 출입국 장치도 널럴하다. 미국에 입국하는 내게 주어진 것은 미국방역관리 CDC 안내지 한장이었는데, 알아서 잘 조치하라는 내용이었다. (개인위생 철저, 마스크, 사회적거리두기, 2주간 처박혀있기등.) 개인의 자유를 더욱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긍정적으로 해석을 할 여지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대처방법은 정 반대이다.  

 

미국은 비즈니스를 닫아놓은 상태에서 개인이 알아서 마스크를 하던지 말던지 내버려 두는 편이고

 

한국은 비즈니스를 대체로 열어 놓은 상태에서 개인들이 철저하게 지켜야할 지침들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 미국에 와서는 - 돌아가는 상태를 보고 '이것이 정녕 미국이란 말인가? 너무나 미숙하고 미개한 대처방법이 아닌가?  놀라워했는데 (지금도 약간 이들을 얕잡아 보고 있기는 한데) -- 한편으로는, 뭐랄까, 이들의 '여유'가 어떤 면에서 맘에 든다고나 할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자가격리'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물론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그리고 마땅히 따라야 하는 사항이긴 하지만 -- 한국사람인 내가 한국에서 미국에 왔을 때 아무도 나를 이리가라 저리가라 제지하지 않고 '조심하라'는 종이 메시지 하나 받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그 한국인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핸드폰에 자가격리앱을 설치하고 2주간 격리되어 지내야 한다.  딱 이것만 보면 미국의 공기가 얼마나 자유로운지....이 순진무구한 (헛점 투성이이지만 그러나 매력적인)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어쨌거나 나는 한국 귀국후 자가격리 2주간 성경통독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두개의 다른 나라, 두개의 다른 국가 시스템을 오가면서 그동안 크게 차이를 못 느껴왔는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양국을 오가며 나는 이제서야 미국의 개인주의의 실체를 극명하게 체험한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미국땅에 어울려보인다.  땅덩어리가 하도 커서 국가가 개인을 일일이 통제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은 작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구조이므로  한국적인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5. 22. 16:31

 

우리 학교 건물 앞에는 학교 이름의 주인공인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의 동상이 있다. 본교에 서 있는 동상과 동일한 틀로 제작한 동상이라고 한다.  그 동상을 멀리서 보면 생뚱맞게도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가 생각나곤 한다. 아무래도 동상의 주인공이 서양사람이고 미국 식민지 시절의 신사복을 입고 있으니까 서양의 왕자가 연상이 되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그 동상앞을 지나며, 저 동상에 제비가 날아와 앉으면 좋겠다는 동화적 상상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도시에서 제비를 보기가 쉽지 않아 상상에 그치고 만다. 

 

 

학교에 행사가 있었는지 어제부터 그 동상의 손목에 풍선이 한무더기 매어 있었다. 그러니까 서른개쯤 되는 풍선이 그 동상의 손에 묶인채 그의 머리위에서 둥실둥실 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즐거운 행사가 있었나보다.  아침에 일부러 캠퍼스를 이리저리 돌아 '흰 눈처럼 피어난 이팝꽃'들을 감상하면서 느릿느릿 학교로 향했는데, 동상에 기어오르는 조그만 소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세살쯤 되었을까? 아주 작은 소년이 동상의 팔에 매달려 풍선을 따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광경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코비드 난리통에 아무데도 못가고 학교에서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외국인 교수의 아이들.  꼬마들 몇명이 매일 아침 엄마와 함께 동상 근처에서 노는 것이 보이곤 하는데, 이 꼬마가 풍선을 따려는 것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그 엄마가 어딘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겠지. 

 

 

나: Do you want to pick a balloon?

그: Yes, I need two of them. One for me and one for my baby sister!

나: (빙글빙글 웃으며) I can help you pick them. 

그: Yes! My daddy can pick them, too!

나: Yes, your daddy can pick them all!

그: Please pick them for me...

 

 

뭐 이렇게 노닥거리며 풍선 두개를 따 주었는데 하나를 놓쳤다. 풍선 하나가 둥실둥실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풍선 하나 남은 것을 그의 소매에 묶어 주고, 또 하나를 따서 그의 나머지 손에 묶어 주었다.  소년이 양손목에 풍선을 묶자 저만치서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의 손목의 풍선이 둥실둥실 천사의 날개처럼 그를 따랐다. 

 

그가 엄마에게 외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Mom! Look at this!  She picked these for me!

 

 

나는 학교 건물로 걸어들어가고,  엄마와 함께 선채로 꼬마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주 아주 꿀같이 달콤한 순간이었다.  아, 세살짜리 어린 아이가 뿜어내는 생명 에너지는 향기롭고 달콤하고 따뜻하기도 하여라. 그의 행복한 눈빛을 위해서라면 그의 부모들은 목숨이라도 바치려 할 것이다.  잠시 그 눈부신 생명에너지의 빛 앞에 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오늘 그 소년처럼 행복하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 구석에서는 많은 천사같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학대당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5. 19. 16:49

 

내 연구실 창가에도 이 자그마한 소녀상이 있다.  이젠 치우고 싶다. 내가 속았다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내가 이럴 때, 할머니들은 기분이 어떠실까?)

 

윤##씨는 수고도 많이 했을 것이다. 여러가지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열심히 일해 왔을 것이다.  그 공적을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 몇가지 실수가 발견되고,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의 불만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면 이제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맞다.  지긋지긋하다. 저 소녀를 앞세워서 대체 뭘 한건가?  그 노인들을 앞세워서 당신들 도대체 무슨짓을 한건가?  

 

이자들이 평생 '진보'쪽에 표를 던지던 나를 오갈데 없는 난민으로 만들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5. 14. 11:57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5141104051439

 

“아빠가 추행했다는 말 거짓이었어요”… 딸 번복에도 법원은 “유죄”

어머니ㆍ할머니가 회유한 정황 드러나.. 대법 ”번복된 경위까지 따져야”“재판서 번복된 진술보다 수사기관 원래 진술이 더 신뢰” 이례적 판단친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가

www.hankookilbo.com

어머니ㆍ할머니가 회유한 정황 드러나.. 대법 ”번복된 경위까지 따져야”

“재판서 번복된 진술보다 수사기관 원래 진술이 더 신뢰” 이례적 판단

 

나는 분노한다.  대체로 한국의 가정에서 '딸'에게 사고가 났고, 가해자가 그집 '남자 - 아들, 손자'인 경우, 엄마와 할머니들은 딸을 묻어버리러 든다.   '딸'은 알아서 혼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구조이다.  지긋지긋한 현상. 

 

위 기사의 경우,  그 딸을 보호하는 것은 그 집 엄마나 할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는 가해자였고), 사회이다. 경찰이, 법원이 딸의 권익에 손을 들어 줬다.  그러니까, 딸들에게는 '가족'보다 '사회'가 더 안전한 시스템 같기도 하다. 쓰다.  가족은 일단 가족 구성원중에서 '남자'의 편에 서고, 남자에게 아무런 손해가 안 갈 경우에만 딸의 편이 되어준다.  혹은 딸의 편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런 가족이 많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5. 6. 11:50

꼬리까지 달린 고양이 마스크

 

조물조물 만들어서 바로 사진을 찍은거라 실 보푸라기가 그대로 묻어있다.  이번에는 꼬리까지 연출을 해 보았다.  우리 '흑둥이 (검은 고양이 이름)'를 형상화 한 마스크이다.  우리 '미스터 토마스' 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놈은 예쁜 고양이라서 연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만들어 봐야지. (한놈은 '흑둥이'  한놈은 'Mr. Thomas'이다.) 우리 가족은 세상의 모든 귀여운 것에 대하여 '우리 흑둥이 같이 예쁘다'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든것은 '흑둥이'이다. 못생긴 놈. 

 

위의 것은 먼저 만들어서 세탁해 놓은것. 아래 것은 입술과 꼬리도 달린 흑둥이. 

 

 

여우. 

사실 이 여우 조각은 해진 양말 발목 부분에 있던것 - 여우만 오려 내어 꿰매 붙인것이다.  내 친구왈 -- 바닥에서만 살아야 했던 양말의 운명을 뒤바꿔주었구나.  (내 친구는 시인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5. 5. 07:46

 

코로나 발발 이래로, 마스크 전도사가 되어버린 마스크 귀신 할멈. 

심심파적으로 TV뉴스 볼때마다 바늘 붙잡고 한땀 한땀 - 천원차리 면마스크에 재주를 부려보다.

 

 

아, 수놓은거 보고 동료들이 부러워 하길래 하나 둘 만들어 주다가, 뭐 반응이 좋아서, 여기저기 선물 하려고 만들어 보았다. 한개 만드는데 대략 30분 정도.   Peace, Hope 이런거는 목사님이 보시고 무척 좋아하셔서, 몇개 만들어서 다음 주일에 갖다 드려볼까 생각중. 

 

 

 

특히, 굴러다니던 자투리 헝겊을 패치워크 (조각 모으기) 해가지고 붙여 본 것이 마음에 들어서, 우리 아들들 갖다 주려고 몇개 만들어 봄. (아들들이 이 꽃무늬를 과연 착용 할까?) 아마 해 줄거야. 늘 엄마가 만든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친구들이니까.

 

 

 

 

헌양말 고양이 마스크.

 

면마스크에 약간의 친축성이 있으므로, 아플리케 천도 신축성 있는 것이 좋다.  짝 안맞아서 굴러다니는데 아까와서 버리지도 못하던 검정 양말 잘라서 아플리케.  버지니아에 있는 우리 '흑둥이' 검은 고양이를 박아 넣었다. 

 

 

난 뭐든지 쉽게, 재미있게 가는 편이다. 마스크는 천원짜리 기성품을 사용하고, 집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활용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마스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미있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30. 10:26

학교 구석에 내가 심심파적으로 일구어 놓은 작은 정원에 학교 정 반대 구석의 연구실에서 서식하는 동료가 종종 산책을 나온다.  나는 연구실에 앉아서도 멀리서부터 느릿느릿 들려오는 그의 발소리를 구별해 낼 수 있다.  하루에 한번은 내 연구실을 지나쳐 나의 정원으로 오니까.   언젠가 그의 발소리가 끊겼길래, 복도에서 만났을 때 "내 정원에 왜 안와?"하고 물어보니, "너에게 방해가 되는것 같아서"라고 했다. 참 사려깊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안심 시켰다.  "나는 사람 지나치고 그러는거 별로 신경 안쓰여. 나 자체가 시끄러운 사람이고, 나는 길거리에서 공부를 해도 방해를 안 받아. 네가 안 오면 궁금해져. 어디가 아픈지."  그래서 그는 이제 안심하고 오고 싶을 때 오고 간다.  그렇게, 나의 정원을 보려고 산책을 나왔다가 내가 한가해보이면 열린 내 연구실 문앞 의자에 앉았다 가는 동료들이 하나, 둘, 조용히 늘고 있다.  나는 한가하지 않지만, 대체로 그들을 환대하는 편이다. (일은 늦어지지만,  죽고나면 다 소용 없는일. 사람이 올때 사람을 반기는게 남는 장사지.  그런 생각으로 조금씩 느릿느릿 해진다.  나이 먹어가는 자의 여유같은거다.) 

 

곧 미국집으로 갈거라는 얘기를 하니, '걱정 안되나?' 묻는다. 2월에 돌아올때 내 아들이 물었던 똑같은 질문이다. (한국 가는것) 걱정 안되나?  아들이 물었었다.  이제 미국으로 간다니까 미국인 동료가 내게 묻는다. 미국 가는것 걱정 안되나?  걱정을 한들, 안한들 무슨 소용인가. 뭐 가서 할 일이 있으므로 갈 뿐이지. 지금 상황이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도 미국에 갈 생각을 안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미국에 간다니 놀라운가보다. 

 

그 미국인 동료교수가 나의 정원에서 들려준 이야기.

 

버지니아의 친구들과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하던중, 그의 집 거실에 조롱조롱 빨아 널어 놓은 다섯장의 알록달록한 마스크를 발견한 버지니아 친구가 물었단다.

 

 

* 버지니아: 저기 뒤에 보이는것 저것이 다 마스크야? 

* 한국: 응, 우리 딸이 사용하는거야.

* 버지니아: 네 딸거라고? 저렇게나 많아? 네것도 있어?

* 한국: 음..내것도 있지. 

* 버지니아: 저걸 다 어디서 사지?

* 한국: ...음...아무데나 가면 있어.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바로 오기도 하고.

* 버지니아: 바로 온다고? 일주일?

* 한국: 아니...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당일에 오기도 하고. 일주일씩 기다리지는 않지...

* 버지니아: 뭐라구? 당일 온다구? 일주일씩 기다릴 필요가 없다구? 정말이야?

* 한국: 응...

* 버지니아: 거짓말. 말도 안되는 소리!  그게 가능해? 너 지금 농담하는거지?

* 한국: 아닌데, 그냥 여기는 마스크 필요하면 나가서 그냥 사면 돼. 

* 버지니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러니까, 이 대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미국인 내 동료가 내게 들려준 얘기 -- 이건뭐 SF소설의 평행이론 있쟎아. 어딘가에 동시에 존재하는 가상의 사회 같은거. 분명 동시에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지만 감지하지 못하는 가상의 공간 말야.  버지니아에 있는 내 친구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의 상황에 대해서 그런 '가상공간'처럼 인식을 하고 있어. 참 신기하지. 

 

내 동료의 설명으로는 그 뭐  **94 인증받은 마스크는 미국인들에게는 자동차의 '람보르기니' 같은 호화 사치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미국 갈때 그냥 보통 마스크 사갖고 가서 길거리에서 하나에 오달러에 팔면 될까?  그랬더니, "그러면 너는 돌아올 때 람보르기니를 한대 사갖고 올수도 있을거야" 한다.  (물론 농담이다. 나는 면마스크에 예쁜 실로 수를 놓아서 친구들에게 선물 할 생각을 하고 있다.) 

 

(ㅋㅋㅋ, 어릴때 미국은 내가 상상하기도 힘든 '천국' 같은 곳이었지. 가상의 세계.  지금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그런 상상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얼마나 굉장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 타인의 시선을 빌려야 알 수 있게 된다.

 

그나저나, 이런 가상의 선진국 같은 나라에서 '물류창고 화재'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것 -- 여기서 나는 슬픔을 느낀다.  한국은 아직도 '가상의' 어딘가 '석연치 않은' 선진국일것이다.  한국의 선진성에는 정말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석연치 않음' 같은것이 있다.  돌아가신 분들께 참 미안하다.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왜 그렇게 실없는 사고로 내 이웃이 희생을 당해야 했는지.  어딘가 석연치가 않아요. 

 

 

 

 

 

 

Posted by Lee Eunmee
Humor2020. 4. 29. 11:02

 

 

김정은의 행방불명에 국내외 언론이 연일 여러가지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이즈음. 작년에 봤던 영화를 상기하면서,  뭐냐 이거, 설마 파주에 있는건가?

 

말도 안되는 소리인건 아는데, 영화 같은 상황이 진행중인거라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아, 통일이 어서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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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28. 09:05

https://www.ajunews.com/view/20200426123058742

 

윤석열 검찰총장, 보수단체 시위 현장에서 목격...대검 병원갔다 오는 길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말  강남에서 열린 극우보수 단체의 집회장 부근에서 목격돼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26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5일 강남역 인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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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모르겠고, 한 시민으로서 산책하는것 가지고 왈가왈부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사진에 보면 다른 시민들 다 마스크 하고 돌아다니는것 안보이는가?

 

마스크를 하셔야지. 남들 다 하는 마스크, 쓰다가 답답해서 그냥 내리고 귀에 걸은것도 아니고 아예 그냥 안 하시면, 남들은 다 바보이고 겁쟁이라서.  검찰총장님은 겁나는게 없으셔서? 

 

마스크 하고 다니세요 검사님.  마스크.   세상에 마스크 하고 다니면 프라이버시도 보호되고 좀 좋아요. 미남이시지만 남들이 마스크 할 때는 그냥 하세요. 남들을 위해서요. 남들을 위해서.  제발.   (도대체 높은데 계신 분들은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잘 모르시는 듯. )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28. 08:54

https://news.joins.com/article/23764612

 

통합무슨당(당 이름 생각 안남)의 비대위원장이 될지 말지 모르겠는 김종인 할아버지의 '70년대생' 대망론은 극히 문제 있는 아이디어다.  이유는, '나이 제한'을 공공연하게 명백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롭게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배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한 사람이 백살이라고 해서, 오십살이라고 해서, 삽심살이라고 해서 지도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옛날에, '40대 기수론'으로 스타가 되신 정치인도 있었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40대라고 못 박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특별하게 문제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와 관련된 정치적 언행은 문제가 된다. 

 

 

40대라고 못 박지 말라.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30대 국가 지도자도 나와서 잘 하고 있고, 50대도, 60대도, 70대도, 110세대도 지도자 역할만 잘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김종인 할아버지부터 일단 집으로 돌아가 테레비나 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던가. 자기 자신은 테레비에 매일 노인의 얼굴을 비추며 노익장을 과시하시면서 - 차기 지도자는 40대라니.  당신부터 좀 뒤로 비키시던가요. 할아버님.  당신이 테레비에 얼굴 비출때, 다른 할아버지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라?  그건 무슨 경제학적 논리이신지요?

 

(나이제한: 그 무슨 썩어빠진 아이디어란 말인가...)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 이거 노인비하거든요. 대한노인회 어르신들 총궐기 하실 내용이에요.  가만히 있으시면 바보되는거거등요.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27. 11:48

둘 다 싫어요. 꺼져 주세요. 

 

아들딸 호위 무사 (엉터리 인턴십 하고, 온라인 숙제 도와준것 맞쟎아요. 네? 자식 앞에 안 부끄러우세요? 자식위해서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짓 하는거 정말 부끄러운거쟎아요. 이제 그만 조용히 사세요. 지겨워요. )

 

장모 호위 무사 (장모 감싼거 부끄럽지 않으세요? 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집안 단속부터 하세요 지겨워요.)

 

조씨 없어도 윤씨 없어도 우리나라 잘 굴러갈겁니다. 당신들이 코로나보다 더 무서워요.  바이러스는 백신 만들면 되지만 인간의 악덕은 백신을 못 만들어요. 그러니 둘다 꺼져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21. 11:46

결국,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를 기민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월호'의 트라우마 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판을 짠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를 대충대충 관리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이 나라 국민은 학습한 대로 다시 새 판을 짜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조심 조심 조심 최선을 다하고 있고,  문제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 국민의 경각심을 더욱 일깨우고 있을 것이다. 

 

결국,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이 현재의 우리 삶을 지탱시켜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월호의 기억이 없다면 -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도 영예롭게 퇴임하고, 그럭저럭 썩어 문드러진 일들이 계속되고 있었다면 코로나를 대하는 국가, 국민의 자세도 대충 이웃나라들과 닮아 있었을것이다.  세월호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영혼들이 지금 이나라를 지탱시켜주고 있는게 아닐까? 그들에 대한 기억이 말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21. 11:38

일본 수상의 미니멀리즘 마스크

 

일본 수상이 착용한 마스크가 기묘하게 작아 보여서, "뭐지? 왜 저렇게 작지?"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니까."

 

그렇구나, 이어령 선생은 다 알고 계셨구나.  

 

요즘 아베가 이끄는 엉망진창 일본의 코비드 상황을 보면서 슬그머니 드는 깨달음 -- 아...우리 조상들이 끊임없이 일본의 침략에 고통을 겪으면서도 일본을 만만히 보고 우습게 알던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근접한 이웃나라 한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져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저들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것이 과연 국가인것인가?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정부의 수장을 갈아치울 생각도 못한다는 말인가?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만만히 보던 이유가 있었던거야. 

 

한국에서 저지경이 됐으면, 벌써 탄핵하고 정부 갈아치웠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17. 09:44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서 지난 1월부터 4월에 걸쳐서 한국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벌어지는 코로나 상황을 관망하면서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영어 교육 분야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된다.

 

 

 

1월에 코로나 문제가 시끄러워질때, 내가 미국집에서 한국으로 떠나려하자 아들이 깊은 시름에 잠겼다. 중국과 가까운 한국이 위험해보이는데 이 안전한 '미국'에 그냥 있지 왜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근심이었다.  내 입장은 - 나는 여태 고맙게 한 인생 잘 살아왔고, 설령 오래지 않아 죽어도 하느님께 감사한 편이다. 아무 유감없다. 물론 한국에 대한 믿음이 그 바탕에 있기도 했다.  '설령 아파도 그걸로 죽게 내버려두겠어? 한국에서 병원이 얼마나 가까운데. 미국보다 낫지.'  그런 믿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2월말에 개학을 했는데, 마침 대구에서 상황이 발생하고, 미국에서 왔던 교수 한두명이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자기는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이곳이 위험해서 안되겠다고. 그런데 그리고 2-3주만에 교수회의에서 우리들은 킬킬댔다--"야 그 아무개 지금 후회 막급이겠다..."   남아있던 동료교수도 말했다, "뉴욕에 계신 아버지가 나보고 꼼짝말고 한국에 있으라고 당부를 하시더라"  그랬다, 한국의 상황 장악력이 미국보다 현실적으로 보였다.  지금 동료 미국인 교수들은 학기가 끝나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서 일 할 궁리들을 하고 있다.  한국의 안전망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말 안듣고 마스크도 안쓰고 돌아다니더니, 지금은 꼬박꼬박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고, 서로 마스크를 쓴채 안부를 묻는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총명하게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매일 아침 (미국의 저녁) 프레스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걸핏하면 '우리가 한국보다 더 잘한다'고 말을 하는데, 이는 열등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불안하다는 증거지. 그를 보면서 '한국 정말 잘 하고 있구나' 확인한다.  한국은 이제 열등감을 흐르는 강물에 흘려버리고 소신껏 잘 해 내면 될것도 같다.  우리 이제 더이상 가난뱅이, '한국전'의 아이들로만 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잘 살아내고 있다. 

 

 

 

최근에 교사들을 위한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컨설팅 제의가 들어왔다.  여름에 교원교육 목적의 프로그램을 진행해줄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전제'가 있었다.  강사진은 모두 '원어민'으로 해 달라고. 그래서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는데, 실무담당자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이 제일 잘 가르치실텐데 그 사람들이 원어민만 강의해야 한대요."  나는 픽 웃었다. 늘 당해오던 일 아니었나.  20년전에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영어'를 원어민만 잘 가르칠수 있다고 믿고 있다. 교사를 교육하는 상급 교육기관에서도 똑같은 시선이다.   사실 이러한 한국 내부에 스며있는 '비원어민' 혹은 '한국인 영어교육자'에 대한 싸늘한 시선에 넌더리가 나서 몇해전 이곳으로 자리를 옮길때도 나는 고민을 했었다.  미국에서는 내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데, 내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드러나게 차별하는 일은 없는데 -- 한국 가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나를 '원어민'이 아니라며 무시하러 들겠지.  그걸 참아내야 하겠지.  그래도 가야 하는걸까?   뭐 그런 고민을 좀 했었다.  그래도 내 나라니까 내가 온 거지. 뭐 특별한 애국심 그런것도 아니다. 떠날때가 되면 휙 갈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도 바쁘니까 내가 강의를 할 수 있을지 말지 모르니까 나는 상관없는데 한가지 생각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내 제안은 이런 것이다.

 

 

 

한국의 영어교사들에게는 집단 트라우마 같은 - 가슴에 가시 같은 것이 박힌 것 같은 아픔이 있다. 그들이 토플 만점을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아픔. 그것은 그들이 절대 절대 절대 원어민이 될 수 없으며 -- 원어민이 아닌이상 절대 좋은 영어선생이 될수 없다는 확신 - 그 확신의 내면화 - 그 확신이 가슴에 가시처럼 콱 박혀있다는 것이다. 

 

 

 

왜 그러면 그들에게 그런 확신의 가시가 박혔을까?  아마도 그들이 대학을 다닐때, 사범대 교육을 받을때, 미국에서 박사하고 왔다는 교수님들이 영어로 강의도 못하고, 안하고, 자신없어하고 뭐,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들 머릿속에 '한국인 교수는 할수 없어'라는 인상의 박혔을 것이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들의 자신없음을 제자들이 그대로 본받아 '우리는 안돼'가 내면화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큰 그림의 일부이다. 다른 문화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말을 안하겠다).  그래서 자신이 우수한 영어교사이면서도 선생님들 스스로 '나는 자신이 없어. 나는 안돼'라는 가시를 박은채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이분들이 방학기간중에 수십시간의 인텐시브 영어 프로그램에서 '원어민'강사에게서 영어 수업을 들으면 가슴의 가시가 빠질까? 천만에, 그들은 '원어민'에게서 영어를 배웠고, 여전히 '원어민'만이 최강의 영어선생이라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 허경영같은 사기꾼의 사기놀음에 왜 사람들이 넘어가는가? -- 허경영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가 확신을 가지고 눈을 빛내며 떠들면 순진한 사람들은 그의 확신에 감염된다.  교육자도 마찬가지이다. 사기를 치라는 것이 아니다. 교육자가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눈을 빛내며 학생들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들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자 스스로 자기확신이 없고 '원어민이 아니라서 나는 안돼. 나는 가짜야'라는 신념을 가지고 서 있는데 학생이 뭘 배우겠는가.  '나는 가짜야'를 배우는거지. 

 

 

그런 분들이 현장으로 돌아가 영어를 가르칠때 -- 눈치빠르고 영리하고, 영혼이 투명한 학생들은 교사의 가슴에 박힌 가시의 정체를 읽는다. 그리고 역시 동일한 내면화 작업에 들어간다 --"원어민도 아니니, 저 선생님한테 배워봤자..." 

 

 

선생님이 자신이 없으면 학생은 그것을 영특하게 읽는다. 우리 뇌의 '미러셀 - 거울 세포'가 기가막히게 읽어낸다.  학생이 악해서가 아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학생에게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만약에 발음이 좀 엉성해도 선생님이 자부심을 가지고 태평하게 영어를 가르치면 -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자부심과 태평함을 그의 영어수업에서 배울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영어수업에 긍정적으로 다가설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님 스스로가 '내 영어가 이만하면 쓸만해. 나는 잘 가르칠수 있어. 원어민이 별건가, 영어만 잘 하면 되지' 그런 자부심이 있으므로 학생들이 그 자부심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선생님들이 정말로 만나야 할 사람은 '원어민'이 아니고 '나'다.  원어민이 아니면서 원어민과 문제없이 함께 일을 하고, 원어민보다 더 이론에 밝으며, 원어민들을 진두지휘하는 '나'같은 교육자에게서 교육을 받야야, 그 선생님들께서 '아, 영어는 그냥 하나의 도구인것이고, 내 발음이 원어민이 아니어도, 내가 영어를 잘 가르치는데는 문제가 안되는거구나'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런 믿음으로 교단에 서야 학생들이 선생님의 그 자부심을 흡수하게 될 것이 아닌가?

 

 

왜 한국인 교수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단하게 강의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코로나를 장악하듯, 내가 영어교육을 장악한 현장을 그들이 본다면, 그들의 시각이 바뀌지 않을까?  뭐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면서 --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하품).  아, 그래서, 나도 강의를 하기로 했다, 이 늙수그레한 반백의 할머니/아주머니 교수도 수려한 영어로 강의를 하는데 젊고 지혜로운 한국의 교사들이 왜 영어를 못하겠느냐구. 할수 있어. 할 수 있다구.  과연 여름방학 즈음에 캠퍼스가 개방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음, 코로나가 이제 좀 지는 꽃잎과 함께 떠나주었으면.  코로나야 벚꽃이 지듯 너도 이제 꽃잎처럼 가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17. 09:17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 그것을 원컨 원치 않건간에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하면 여러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장점도 있다.  내가 예상치 않던 장점을 기록하겠다 (나중에 연구 보고서를 써야 할지도 모르므로).

 

 

일단 학교나 학생들에게 기술적 제약이 크게 없다는 전제에서 (모두들 데스크탑이나 랩탑등 적합한 도구를 갖고 있고, 인터넷에 문제가 없는 상황) ZOOM 이나 Collaborative Class, Webinar 등 화상회의 식으로 진행하는 수업의 장점은 상호작용 (interactive collaboration)이 어떤 면에서 교실 수업보다 효과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1. 수업중에 토론이나 질문을 던질때, 어떤 학생은 목소리가 크고 어떤 학생은 잘 안들리는 개미소리로 어물거릴때가 있다. 앞자리 학생이 하는 말을 교수는 알아 듣지만, 뒷자리에 앉은 학생에게는 들리지도 않는다.  친절한 교수는 앞자리에서 옹알거린 학생의 발표 내용을 뒷자리 학생에게 다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뒷자리에서는 듣지도 못한 채로 진행되기가 일쑤다.  그런데, 화상회의식 수업에서는 모두의 목소리가 일정하다. 어떤 학생이 말하는 것을 교수가 잘 못들으면 다른 학생들도 잘 못들고, 교수가 정확히 들은 내용은 다른 학생들도 정확히 들을수 있다 (모두다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므로). 그런 면에서 '음성의 평등성'이 주어진다 (이 음성의 평등성을 뭐라고 만들어낼까 연구중이다. Equality in voice 라는 표현을 쓸까 생각중이다. 온라인 교육 전문 학회에서 이미 이런 내용을 발표 했을지도 모른다.) 

 

 

2. 수업자료를 공유하며, "이 문장이 compound sentence 인지 complex sentence 인지 분석해보라"고 하면, 해당 학생은 공유되는 문장에 선을 긋고 표시를 하면서 분석을 해 낸다. 그의 분석이 맞건 틀리건 간에, 현장에서 동시에 동등하게 내용을 공유하고 서로 코멘트가 가능하다.  교실에서 진행한다면 누군가 칠판앞에 걸어나와 칠판에 표시를 하겠지만, 온라인에서는 오고갈 필요없이 그자리에서 쓱싹 이루어진다. 이것도 꽤 편리하다 (물론 이렇게 활발하게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교수가 꼼꼼하고 세세하게 미리미리 수업자료를 챙겨야 한다. 대충 준비는 대충 수업이 되고 만다.)

 

 

 

위의 두가지를 묶어서 말한다면, 온라인 화상회의식 실시간 수업에서, 교수가 독재를 하지 않고 시스템을 온전히 공유한다면, 그리고 학생들이 일정 교양과 품위를 유지한채 수업 활동만 한다면 - 온라인 수업도 아주 효과적인 교육방식이다.  (여기서 교수와 학생의 태도에 대한 전제를 붙인 것은, 교수가 학생들 마이크나 비디오 다 닫아버리고 혼자 떠들고 있다거나, 혹은 교수가 학생들에게도 동일한 권한을 줬는데 학생이 장난으로 이상한 것을 올리고 못된 짓을 하거나 이런 잘못된 행동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가 일방적인 강의만 하고 끝내는 거라면 사실 실시간 화상회의식 수업은 별로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일방적 강의는 차라리 녹화해서 올려 놓는것이 시간효율성이 좋다. 학생이 꼭 정해진 시간이 아닌 자유로운 시간에 녹화된 강의를 듣고 공부하면 그만이니까.  실시간 수업은 토론이나 상호작용이 활발한 수업에서 효과적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15. 16:51

이른 아침, 나는 손님을 태우고 해안을 달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다행히 내 차에는 나도 모르던 신묘한 스마트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전화기를 가방에서 꺼낼 필요도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이 내 차에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운전중에 전화기를 아예 가방에 넣어서 뒷자리에 던져 놓기 때문에 평소에도 전화 따위 받지도 않는데 이런 일이 있다니).  모르는 번호에서 온 전화를 내가 왜 받았을까?  (아는 번호도 안 받기 일쑤인데.)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영어로 다급하게 나를 찾고 있었다. 상대는 다급하게 나를 찾는데 - 거의 비명에 가까운데 - 바로 그것이 비명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고, 나를 찾는 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I guess I am NOT the right person to you. I guess you've got the wrong number..."하고 얼버무리고 있는 내게, "It's you! I am calling you!  I am Anabelle (가명)!  I am Anabelle!" 상대는 나를 안다고 우겨댔고,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누군가 한국인 남자가 전화를 바꾸더니 모 종합병원인데 빨리 내가 와 줘야 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갑자기 호출되는 것일까?  영문을 알수 없는 가운데,  뒷자리에서 가만히 전화 '방송'을 듣고 있던 동료가 말했다, "아무개 교수 부인 이름이 아나벨인데... 그 아나벨인것 같은데..." 

 

 

결국 뒷자리에 앉아있던 내 동료가 그 '아무개 교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상황이 그제서야 정리되었다.  아무개교수의 부인인 '아나벨'이 최근에 외국 모처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오자마자 곧바로 국가의 시책대로 격리되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뭔가 의심 증상이 있어서 두번이나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 판정이 나왔건만 -- 아나벨은 열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러니 병원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코로나 음성 판정 외국인과 뭔가 소통하려다 결국 내가 호출 된 것이다.  내가 와서 소통을 도와 달라는 것 같았다.  거기가 어딘데?  한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모 종합병원.  그런데 거기가 격리실이라며?  그런데 내가 거길 어떻게 들어가?  내가 반문하자, 그건 자기네도 모르겠고 아무튼 영어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내가 와 달라는 거다.  내가 가도 들어갈 수도 없다니깐... 게다가 지금 나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어디론가 가는 길인데, 지금 이 손님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한다면 이 손님은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이리저리 연락을 하여 양쪽간의 의견 전달하여 주고 상황은 이럭저럭 전화로 정리가 되었다.  코비드와 상관없이 아나벨은 뭔가 증상이 있었고, 아나벨은 어느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지역성 질환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 질환은 한국에서는 아주 낯선 것이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감기처럼 흔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간다고 상황에 어떤 변화도 없을것이므로 병원은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나는 아나벨에게 안심하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라고 말 해주었다.  좀더 알아보니 동료교수가 격리되어 있는 아내의 상황에 뭔가 문제가 발생하고, 격리실에서 아내와 소통할 수 있는 영어 가능자가 없다고 판단되자 내 번호를 주고 내게서 도움을 구하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인과 말을 잘 할 수있는 사람.

 

 

상황이 대충 정리되고, 나도 내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 아침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니 문득 위급한 상황에서 나를 떠올린 내 동료교수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비명을 지르듯 내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한 아나벨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감사하냐하면 - 적어도 그들은 나를 위급한 상황에서 도와줄 만한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내 전화번호를 간직하고 있었고, 정말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을 생각하니 -- '나 ...아주...나쁜...인간은 아니었다보다' 이런 가슴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힘들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구가 '나'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나, 아주 나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에 대해서 좀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악행, 거짓말, 비열한 행동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저지른 악행이야 나도 모르니 모른다고 쳐도, 내가 기억하는 악행도 산더머지처럼 쌓였으므로 나는 나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오늘 같은 날) - 나 좋은 면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 라는 생각이 살짝 들 때, 그 때 내 가슴이 조금 따뜻해지고, 체온이 조금 상승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인근 상가 빵집에 가서 내가 평소에 아주 좋아하는 질좋은 빵과 음료수등을 사서 가방에 담아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경내의 멀리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아이가 셋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므로 아이들이 넉넉히 먹을 만큼의 빵과 음료수.  (다른 먹을거리를 사기위해서는 차를 끌고 멀리 가야 했는데, 그러기엔 나도 피곤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안전하며 코비드가 아니므로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 좀더 있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하며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료교수에게서 병명이 확정되었으며 치료가 필요해서 어쩌면 병원을 옮길지도 모르는데, 마침 소속교회 목사님이 와서 병원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 나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 어떤 풍토병에 걸린 모양인데, 우리나라 의술이 좋으니 곧 치료가 될 것이고, 코비드가 아니니 다행이지 싶다.  코로나가 아니면 다행인거다. 

 

오늘부터 나는 내 동료교수와 '형제'가 된다.  그가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 주었는데, 내가 그보다 더 위로를 받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이런식으로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 나는 감지한다.  하느님이 부르시면 나는 달려갈 것이다.  나의 하느님에게로.  그가 나의 쉴 곳이므로.  하느님이 내게 뭘 하라고 하시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13. 15:47

어제 (부활절/일요일).

 

 

 

새벽부터 창밖에서 엔진소리가 나고 뭔가 뒤숭숭하여 내다보니 맞은편 건물 입구에 방역차를 비롯한 여러종류의 차들이 와 서있고 곧이어 관리실에서 '공지사항'이 흘러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경내에서 발생하였으니 경내 거주자들은 모두 문밖으로 나오지 말고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출입분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딱히 외출 할 생각도 없었으나, 외출이 불가능해지자 그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것이구나. 내 의사에 의해서 일주일 내내 방콕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나라도, 누군가가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지시하자 그 상황이 무척 고통스러워진다. 갇혀 지낸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 

 

학교에서도 공문이 날아온다. 상황에 대한 브리핑과 함께 출입 통제를 알리는 메시지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공문의 속도는 현장보다 느리다.)

 

 

두시간여가 지나자 건너편 건물 앞에 모여있던 여섯대의 차들이 (방역차, 구청차, 또 무슨 비상차. 등 등) 차례차례 경내에서 빠져나가고 다시 실내 방송이 들린다. 상황이 완료 되었으니 출입을 해도 좋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시름시름 했다.  몸보다는 심리적으로 아픈것 같았다. 웹 검색을 해보니 오늘 상황에 대한 신문기사가 보였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데 기자는 취재를 하여 이미 기사화 하였다.  이웃 대학의 학생이 미국 본교에 다녀왔는데 동반했던 보호자와 함께 귀국하자마자 경내의  맞은편 건물의 자가격리실로 직행했고, 그 보호자가 확진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랬었군. 이 와중에 미국에 다녀와할 할 중대한 일이 있었나보다.  쾌차하시길. 

 

 

오늘 (부활절 다음날/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니 밤사이에 학교에서 공문이 와 있었다.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통보가 갈 때까지 학교 건물에 들어갈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또 뭐지?  누군가가 확진 판결을 받았는데, 그와 접촉했던 어떤 사람이 지난 토요일에 학교 건물에 다녀갔기 때문에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어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출입이 통제가 되더니, 오늘은 내 연구실에 갈 수가 없구나.  학생이 집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 나는 학교에서 내 할일을 하고 나름 '정상정'이라는 것을 유지하려 했는데, 이제 그것도 허락이 안되는건가?  또다시 몸에서 모든 '생기'가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물론 랩탑으로 평소처럼 언라인 수업을 하면 그만이지만, 연구실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거, 정말 '전쟁' 같은거구나.  코비드라는 보이지 않는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그 폭격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갑자기 모든것이 정지되기도 하고 그런것이구나. 소리나지 않는 세계대전 같은거구나. 

 

 

집에서 학생들 과제 채점을 하고 있는데 오전 열시 쯤 다시 학교 이메일이 왔다. 다행히 그 접촉자가 음성판정이 났으므로 학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교수들은 희망하면 연구실에 가도 좋고, 직원들은 이미 '출근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나갔으므로 그냥 오늘 하루 재택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내 동료 교수 생각이 난다. 미국인인데 500미터도 안되는 숙소와 교수 연구실 사이를 오가며 여행가방을 끌고 다닌다.  그건 왜 매일 끌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수업에 사용하는 책이랑 자료들인데, 갑자기 연구실에 못 가는 일이 생길까봐, 갑자기 숙소가 닫히는 일이 생길까봐 그 자료들과 랩탑을 끌고 다닌다고 한다.  참 걱정도 팔자다 했는데 --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 그러면, 나도 그래야 하는건가보다. 외장 하드에 내가 요즘 만들어내는 수업자료들을 늘 새로 업데이트 하여서 그 외장하드를 늘 갖고 다녀야겠다. 클라우드도 있지만 나는 내가 직접 챙기는 편을 선호한다. 클라우드는 예비용이다.  내 랩탑과 연구실 컴퓨터 양쪽에 동일한 파일들을 저장해 놓아야 한다 (매일 업데이트 해야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 심지어 내가 자가격리를 당하게 되더라도, 골방에서 나는 계속 언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사람의 일을 알 수가 있나. 자가격리 대상이 될지, 입원을 하게 될지,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리 예비하면  내가 살아있는 한 내 학생들에게 수업은 계속 제공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 인터넷은 세계 최강이라 인터넷 끊길 걱정은 별로 안된다. 그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그립다.  얼굴도 잘 모르겠는 내 학생들이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7. 20:47

 

저녁 뉴스를 보니 대학생들이 '언라인 수업'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빼앗겼다며 시위를 하는 광경이 보인다.  답답한 대학생들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 할 만하지만 - 마치 교수들이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하는 원흉인 것 처럼 그려지는 뉴스에 화딱지가 난다.  뉴스에는 몇가지 문제 행동을 일으킨 교수들이 간단히 스케치 되기도 하고. 

 

 

내가 교수 입장에서 왜 화딱지가 나는지 간단히 술회 하겠다. 

 

나는 다른 보직도 있는 이른바 '보직교수'다.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서 수업도 약간 적다. 6학점 한과목 가르친다. 물론 다른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어쨌거나 6학점짜리 아주 중요한 과목을 가르치는데 3학점짜리 두과목과 비슷한 비중이다.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면, 이럭저럭 숨 좀 쉬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내 연구일로 지정해서 연구하고 글 쓰면서 보낼수 있었을 것이다.  봄학기 내내 나는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 자료를 만들고,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고, 끝없이 채점을 하고 피드백 주는 일을 한다. 공장에서 뭔가 계속 생산해 내듯이 끊이 없이 피드백을 주고 있다. 내 모습이 거미같이 보이기도 한다. 온종일 뭔가 실을 뽑아내고 있는 거미.  그렇게 열심히 해도 -- 그것이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것 만큼 생생활수 없다는 한계가 보여서 나로서도 무척 갑갑하다.  그러니까 칠판 앞에서 몇글자 끄적거리며 예를 보여주면 해결될 일을 위해서 수업자료를 만들고, 확인하기 위해 숙제를 내고, 개별적으로 검사를 하고,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끊임없는 일거리로 연결된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 함께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의료진이 아니니까, 내가 도울 방법은 그냥 가르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그 방법 외에는 없으니까. 

 

내가 자다가도 내 학생의 카톡이 울리면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일상을 살면서도 - 나는 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교수도 못만나고 동기생들도 못만나는 그 현실이 딱해서 미안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언라인 교육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미안하다. 늘 미안하다. 그래서 좀더 잘 가르치려고 궁리하고 궁리한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내 학생들중에도 '이따위 교육을 받으러 내가 비싼 대학 등록금 내고 이러고 있는건가?'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 내 학생이 직접 불만을 표한적은 없지만, 누군가 불평을 한대도 나로서도 어쩔수 없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는거지 어쩐단 말인가. 

 

학생들이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 피해자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교수들도 갑자기 언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교수들도 평상시보다 몇배의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수당을 올려 달라거나 그런식으로 시위를 할 생각도 없다. 모두가 어려운 강을 건너는 중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도리이기도 하고.  교수들도 힘들다.  교수들이 일부러 학생들을 온라인 교육의 물에 빠뜨린 것도 아니다, 교수들도 그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학교 당국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나는 보직이 있으므로 학교가 텅텅비어도 늘 내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학교의 행정을 담당한 분들도 평소보다 일하기가 더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캠퍼스에 학생이 안보이면 일이 없을것 같아도 각자 평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면서 학교를 지키고 있다.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욱 노력해도 -- 그것이 학생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함부로 떠들지는 말기를 바란다.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앞뒤 분간 제대로 하고 개선이 되는 방향으로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학생만 피해자라고 -- 나머지는 다 가해자인것처럼 몰아붙이면, 어쩌면 '가해자'로 찍힌 사람들도 김이 빠질수가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 교육은 상호 협동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의 장에서 '상생'을 배우고 연습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서 그 귀한 가치를 배우고 익힐 것인가? 초중고등학생들도 떼를 쓰지 않고 있다. 어린애들도 떼를 쓰지 않고 불평을 안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을 봐서라도 나도 그냥 여태까지처럼 하는 수밖에.  내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이 - 바로 그 상생과 협동이 아닌가...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수 밖에. 그래도 비를 원망하지는 말기로 하자.  

 

 

***

 

사람마다 인생의 영웅이 있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내 인생의 영웅은 (1) 우리 할머니, 그리고 (2) 윤봉길 의사이다.  우리 할머니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그냥 개인적인 일이므로 나중에 한가할때 심심풀이로 적어보자.  윤봉길의사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내가 그의 '친필 교과서'에 - '함정'에 털썩 빠지듯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윤봉길의사의 손녀딸이 tv에 나올때마다 있는대로 욕을 퍼붓고 있는데,  내 영웅을 그가 망쳐놓기 때문이다.)

 

충남, 덕산이라는 마을에 가면 거기 유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에 가면 윤봉길의사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나는 거기서 보았다. 윤봉길의사는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직접 당신손으로, 손글씨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 손글씨 교과서를 발견했을 때 내 심장은 '쿵' 했으며 -- 수천년간 수백번을 죽고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서 찾아헤메던, 그리워하나 기억하지도 못하던, 그래서 정체를 알수 없는 내  '연인'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그 손글씨로 쓴 교과서 때문에 나는 무작정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폭거는 홍구공원에서 비루한 일본인들 죽인것 -- 버러지만도 못한것들 죽인것 거기서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의 혁명은 그 교과서에서 완결된 것이고 나머지는 가벼운 변주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극히 개인적인 소회다. 

 

내 가슴속에 윤봉길 의사를 품고 - 나는 내 비루한 교육자료를 매일 만들고 다듬고, 교육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명이라고 믿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 난리통에 교육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만으로도 혁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수업형태가 조금 달라지고 힘들어지고 재미없어졌다고 피켓들고 시위하려는가?  시위하기엔 너무 가볍고 먼지같지 않은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