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4. 15. 16:51

이른 아침, 나는 손님을 태우고 해안을 달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다행히 내 차에는 나도 모르던 신묘한 스마트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전화기를 가방에서 꺼낼 필요도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이 내 차에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운전중에 전화기를 아예 가방에 넣어서 뒷자리에 던져 놓기 때문에 평소에도 전화 따위 받지도 않는데 이런 일이 있다니).  모르는 번호에서 온 전화를 내가 왜 받았을까?  (아는 번호도 안 받기 일쑤인데.)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영어로 다급하게 나를 찾고 있었다. 상대는 다급하게 나를 찾는데 - 거의 비명에 가까운데 - 바로 그것이 비명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고, 나를 찾는 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I guess I am NOT the right person to you. I guess you've got the wrong number..."하고 얼버무리고 있는 내게, "It's you! I am calling you!  I am Anabelle (가명)!  I am Anabelle!" 상대는 나를 안다고 우겨댔고,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누군가 한국인 남자가 전화를 바꾸더니 모 종합병원인데 빨리 내가 와 줘야 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갑자기 호출되는 것일까?  영문을 알수 없는 가운데,  뒷자리에서 가만히 전화 '방송'을 듣고 있던 동료가 말했다, "아무개 교수 부인 이름이 아나벨인데... 그 아나벨인것 같은데..." 

 

 

결국 뒷자리에 앉아있던 내 동료가 그 '아무개 교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상황이 그제서야 정리되었다.  아무개교수의 부인인 '아나벨'이 최근에 외국 모처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오자마자 곧바로 국가의 시책대로 격리되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뭔가 의심 증상이 있어서 두번이나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 판정이 나왔건만 -- 아나벨은 열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러니 병원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코로나 음성 판정 외국인과 뭔가 소통하려다 결국 내가 호출 된 것이다.  내가 와서 소통을 도와 달라는 것 같았다.  거기가 어딘데?  한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모 종합병원.  그런데 거기가 격리실이라며?  그런데 내가 거길 어떻게 들어가?  내가 반문하자, 그건 자기네도 모르겠고 아무튼 영어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내가 와 달라는 거다.  내가 가도 들어갈 수도 없다니깐... 게다가 지금 나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어디론가 가는 길인데, 지금 이 손님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한다면 이 손님은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이리저리 연락을 하여 양쪽간의 의견 전달하여 주고 상황은 이럭저럭 전화로 정리가 되었다.  코비드와 상관없이 아나벨은 뭔가 증상이 있었고, 아나벨은 어느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지역성 질환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 질환은 한국에서는 아주 낯선 것이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감기처럼 흔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간다고 상황에 어떤 변화도 없을것이므로 병원은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나는 아나벨에게 안심하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라고 말 해주었다.  좀더 알아보니 동료교수가 격리되어 있는 아내의 상황에 뭔가 문제가 발생하고, 격리실에서 아내와 소통할 수 있는 영어 가능자가 없다고 판단되자 내 번호를 주고 내게서 도움을 구하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인과 말을 잘 할 수있는 사람.

 

 

상황이 대충 정리되고, 나도 내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 아침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니 문득 위급한 상황에서 나를 떠올린 내 동료교수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비명을 지르듯 내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한 아나벨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감사하냐하면 - 적어도 그들은 나를 위급한 상황에서 도와줄 만한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내 전화번호를 간직하고 있었고, 정말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을 생각하니 -- '나 ...아주...나쁜...인간은 아니었다보다' 이런 가슴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힘들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구가 '나'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나, 아주 나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에 대해서 좀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악행, 거짓말, 비열한 행동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저지른 악행이야 나도 모르니 모른다고 쳐도, 내가 기억하는 악행도 산더머지처럼 쌓였으므로 나는 나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오늘 같은 날) - 나 좋은 면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 라는 생각이 살짝 들 때, 그 때 내 가슴이 조금 따뜻해지고, 체온이 조금 상승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인근 상가 빵집에 가서 내가 평소에 아주 좋아하는 질좋은 빵과 음료수등을 사서 가방에 담아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경내의 멀리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아이가 셋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므로 아이들이 넉넉히 먹을 만큼의 빵과 음료수.  (다른 먹을거리를 사기위해서는 차를 끌고 멀리 가야 했는데, 그러기엔 나도 피곤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안전하며 코비드가 아니므로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 좀더 있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하며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료교수에게서 병명이 확정되었으며 치료가 필요해서 어쩌면 병원을 옮길지도 모르는데, 마침 소속교회 목사님이 와서 병원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 나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 어떤 풍토병에 걸린 모양인데, 우리나라 의술이 좋으니 곧 치료가 될 것이고, 코비드가 아니니 다행이지 싶다.  코로나가 아니면 다행인거다. 

 

오늘부터 나는 내 동료교수와 '형제'가 된다.  그가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 주었는데, 내가 그보다 더 위로를 받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이런식으로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 나는 감지한다.  하느님이 부르시면 나는 달려갈 것이다.  나의 하느님에게로.  그가 나의 쉴 곳이므로.  하느님이 내게 뭘 하라고 하시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