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4. 7. 20:47

 

저녁 뉴스를 보니 대학생들이 '언라인 수업'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빼앗겼다며 시위를 하는 광경이 보인다.  답답한 대학생들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 할 만하지만 - 마치 교수들이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하는 원흉인 것 처럼 그려지는 뉴스에 화딱지가 난다.  뉴스에는 몇가지 문제 행동을 일으킨 교수들이 간단히 스케치 되기도 하고. 

 

 

내가 교수 입장에서 왜 화딱지가 나는지 간단히 술회 하겠다. 

 

나는 다른 보직도 있는 이른바 '보직교수'다.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서 수업도 약간 적다. 6학점 한과목 가르친다. 물론 다른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어쨌거나 6학점짜리 아주 중요한 과목을 가르치는데 3학점짜리 두과목과 비슷한 비중이다.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면, 이럭저럭 숨 좀 쉬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내 연구일로 지정해서 연구하고 글 쓰면서 보낼수 있었을 것이다.  봄학기 내내 나는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 자료를 만들고,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고, 끝없이 채점을 하고 피드백 주는 일을 한다. 공장에서 뭔가 계속 생산해 내듯이 끊이 없이 피드백을 주고 있다. 내 모습이 거미같이 보이기도 한다. 온종일 뭔가 실을 뽑아내고 있는 거미.  그렇게 열심히 해도 -- 그것이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것 만큼 생생활수 없다는 한계가 보여서 나로서도 무척 갑갑하다.  그러니까 칠판 앞에서 몇글자 끄적거리며 예를 보여주면 해결될 일을 위해서 수업자료를 만들고, 확인하기 위해 숙제를 내고, 개별적으로 검사를 하고,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끊임없는 일거리로 연결된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 함께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의료진이 아니니까, 내가 도울 방법은 그냥 가르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그 방법 외에는 없으니까. 

 

내가 자다가도 내 학생의 카톡이 울리면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일상을 살면서도 - 나는 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교수도 못만나고 동기생들도 못만나는 그 현실이 딱해서 미안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언라인 교육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미안하다. 늘 미안하다. 그래서 좀더 잘 가르치려고 궁리하고 궁리한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내 학생들중에도 '이따위 교육을 받으러 내가 비싼 대학 등록금 내고 이러고 있는건가?'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 내 학생이 직접 불만을 표한적은 없지만, 누군가 불평을 한대도 나로서도 어쩔수 없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는거지 어쩐단 말인가. 

 

학생들이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 피해자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교수들도 갑자기 언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교수들도 평상시보다 몇배의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수당을 올려 달라거나 그런식으로 시위를 할 생각도 없다. 모두가 어려운 강을 건너는 중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도리이기도 하고.  교수들도 힘들다.  교수들이 일부러 학생들을 온라인 교육의 물에 빠뜨린 것도 아니다, 교수들도 그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학교 당국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나는 보직이 있으므로 학교가 텅텅비어도 늘 내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학교의 행정을 담당한 분들도 평소보다 일하기가 더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캠퍼스에 학생이 안보이면 일이 없을것 같아도 각자 평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면서 학교를 지키고 있다.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욱 노력해도 -- 그것이 학생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함부로 떠들지는 말기를 바란다.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앞뒤 분간 제대로 하고 개선이 되는 방향으로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학생만 피해자라고 -- 나머지는 다 가해자인것처럼 몰아붙이면, 어쩌면 '가해자'로 찍힌 사람들도 김이 빠질수가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 교육은 상호 협동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의 장에서 '상생'을 배우고 연습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서 그 귀한 가치를 배우고 익힐 것인가? 초중고등학생들도 떼를 쓰지 않고 있다. 어린애들도 떼를 쓰지 않고 불평을 안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을 봐서라도 나도 그냥 여태까지처럼 하는 수밖에.  내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이 - 바로 그 상생과 협동이 아닌가...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수 밖에. 그래도 비를 원망하지는 말기로 하자.  

 

 

***

 

사람마다 인생의 영웅이 있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내 인생의 영웅은 (1) 우리 할머니, 그리고 (2) 윤봉길 의사이다.  우리 할머니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그냥 개인적인 일이므로 나중에 한가할때 심심풀이로 적어보자.  윤봉길의사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내가 그의 '친필 교과서'에 - '함정'에 털썩 빠지듯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윤봉길의사의 손녀딸이 tv에 나올때마다 있는대로 욕을 퍼붓고 있는데,  내 영웅을 그가 망쳐놓기 때문이다.)

 

충남, 덕산이라는 마을에 가면 거기 유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에 가면 윤봉길의사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나는 거기서 보았다. 윤봉길의사는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직접 당신손으로, 손글씨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 손글씨 교과서를 발견했을 때 내 심장은 '쿵' 했으며 -- 수천년간 수백번을 죽고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서 찾아헤메던, 그리워하나 기억하지도 못하던, 그래서 정체를 알수 없는 내  '연인'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그 손글씨로 쓴 교과서 때문에 나는 무작정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폭거는 홍구공원에서 비루한 일본인들 죽인것 -- 버러지만도 못한것들 죽인것 거기서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의 혁명은 그 교과서에서 완결된 것이고 나머지는 가벼운 변주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극히 개인적인 소회다. 

 

내 가슴속에 윤봉길 의사를 품고 - 나는 내 비루한 교육자료를 매일 만들고 다듬고, 교육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명이라고 믿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 난리통에 교육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만으로도 혁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수업형태가 조금 달라지고 힘들어지고 재미없어졌다고 피켓들고 시위하려는가?  시위하기엔 너무 가볍고 먼지같지 않은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