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9. 2. 15:43

 

얼마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검정 마스크를 착용한 어떤 사람의 마스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마스크가 과연 보통 마스크만큼 안전한가 아닌가 그런 점이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발견한 내 눈에 띈 것은 과연 이 그물망같이 생긴 마스크가 침방울이 튀어 나오거나 들어가거나 하는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 '그것 참, 마스크 착용한 그림 상태가 희안하게 야하고 흉하네...' 이런 괴상한 느낌이 앞섰다.  속 다 비치는 검은 망사그물 속옷 입은 그림이 그대로 노출된 듯한.  가끔 웹 서핑하다 보면 뭔가 예기치 않은 볼썽사납고 엽기적인 19금 이미지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람과 동시에 기분이 아주 망쳐질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엽기적인 이미지에 해당되는. 

 

 

음...나라면...누가 저거 공짜로 줘도 차마 저걸로 입을 가리고 돌아다닐 기분은 안들겠다 싶은 것이다.

 

 

건강 유지 차원에서 새벽 공원 산책을 시작한지 한달이 넘었다. 확실히 7월 말에 비해서 9월 초인 요즘, 공원에 산책나오는 분들중에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한 분들 숫자가 급격히 치솟은것은 사실이다.  나도 얼마전까지는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걷다가 저만치 사람이 보이면 코위로 끌어 올리곤 했는데 - 요즘 미친종교인들과 이상한 신념에 빠진 사람들의 합작으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서 나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주변이 어둑하고 사람이 안보여도 마스크를 내리지 않는다.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이제는 그것도 그대로 익숙하다. 심지어 요즘은 나혼자 문닫고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에도 마스크 벗는 것을 깜빡 잊곤 한다.  (나혼자 연구실에 있을때는 벗어도 되는데.) 지금도 마스크를 쓴채로 앉아서 이러고 있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이른 시간에 나가서 걷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올 시각이 되면 주변 산책객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 그러다보면 마스크를 턱에다만 걸치고 마주오는 사람이 보이면 슬그머니 내 쪽에서 모자챙을 최대한 내리고 얼굴을 돌리고 피하게 된다.  코와 입을 마스크로 가린 사람이 맞은편에서 오면 안심하고 적정 거리를 유지한채 통과하지만,  마스크를 반쯤 써서 코가 열려있거나, 마스크를 턱에 내리고 있거나, 손목에 매달고 돌아다니는 분들이 내 근처를 통과할 경우 나는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리고 빨리 통과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투덜댄다.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제 코와 입을 노출을 시킨채 돌아다니고 있다니... 흉측하다.' 

 

 

그냥 평소에 선량한 이웃 사람이었을 그 분들이 단지 코나 입을 내 앞에서 노출시켰다고 나는 그를 '흉측하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자신이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의기소침하고 기묘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이 마스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는데, 이 코로나의 끝이 어디인지, 이 후에 또 무엇이 다가올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혹시라도 '마스크 쓰기'가 삶의 일부로 정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걸까?  우리가 옷을 입어서 치부를 가리고 돌아다니는 이유가 뭔가? 개는 길 아무데서나 오줌을 싸도 되는데, 사람은 왜 화장실에 숨어서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기본적인 옷으로 몸의 이곳 저곳을 가리게 된 것일까? 우리가 평소에 입는 브레지어를 비롯한 속내의, 이런 것들도 처음에는 '마스크' 같은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서 입기 시작했는데 -- 그게 어쩌다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지탄받는' 무엇이 된 것이 아닐까?  이 마스크가 이대로 가다가 언젠가는 그냥 무조건 입어야 하는 속옷처럼 되는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길을 가다가 콧구멍을 노출 시킨 사람을 발견했을때 -- 바바리맨이라도 발견한 듯 충격을 받고 경찰에 신고를 하며  콧구멍과 입을 노출시킨 사진이나 동영상이 19금으로 비밀리에 거래가 되고, 콧구멍과 입을 노출시킨 미소년 미소녀 미 중년 미 노년들의 사진에 정부의 철퇴가 내려지는것은 아닐까?  (상상은 끝이 없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31. 12:41

전자체중계를 사서 매일 진행상황을 앱으로 확인하며  한달을 보냈다. 오늘이 8월의 마지막 날이니 한달간의 '기록'을 대충 남기기로 하자. 

 

 

 

1. 나는 한달간 3킬로그램을 (돼지비계같은 내 살코기 닷근을) 몸에서 불살라 없앴다. 하하하. 나의 한달간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다시 한달 - 다시 3킬로 도전 (자신은 없다. 갑자기 팍 퍼진것 빼기는 쉽지만, 오래 들러붙었던 것 빼기는 쉽지 않으니까. 과체중에서 정상으로 가긴 쉽지만, 정상에서 최적으로 가긴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경험상 처음에 몇 킬로는 금세 빼는데 나중에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잘 안빠진다. 최적의 상태가 되면 오히려 근육이 붙으니까 체중은 줄지 않는데 몸매는 탄력이 붙는다.)  신체나이도 한살 내려갔다.  한달동안 신체나이를 또 한살 젊게 만들도록 해 보자. 나의 성전을 잘 관리하자. 예수님의 세우신 내 작은 성전을 단정하게 관리하도록 하자. 

 

 

2. 이를 위해서는 지난 한달간처럼 매일 새벽에 일어나 90분가량 빠른 걷기및 운동틀 운동을 하여 기초 체력을 키우고, 주말에는 강도높은 장거리 산책이나 뭐 그런것을 하도록 하자. 

 

 

3.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내가 새벽마다 나가는 것을 보고 나의 배우자가 슬슬 나를 따라 나서더니 (나는 누구한테 함께 가자 이런 소리 안한다. 귀챦고 성가셔서 주로 홀로 하는 편이다), 요즘은 나보다 더 설쳐대고 - 내가 산 실내 운동기구 스테퍼를 "야, 그거 사서 사흘 하고 때려칠거면서 왜 돈 아깝게 그걸 돈주고 사냐..."이렇게 비아냥 거리더니 요즘 이 사람이 이걸로 온갖 운동을 다 해대고 있다. 뭐 상체 단련도 이것으로 하고, 아주 땀이 쏟아진다고 상체를 벗어 붙이고 운동을 해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스테퍼 돈 내고 해! 내꺼야!' 이러고 있다. 사용료를 받겠다.  결국, 나의 배우자가 가벼운 운동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다. 

 

 

4. 배우자의 변화는 이뿐이 아니다. 내가 운동과 함께 스스로 알아서하는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데 (과일 끊고, 저녁은 채소로 연명하고, 평소에도 과식 안하고, 굶지는 않지만 소식을 하는 쪽으로 진행), 대학생때와 동일한 체중과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날씬한 이 남자가 자기도 다이어트를 한다고 덤비고 있다.  나는 지방이 과다하니 지방 조절을 해야 하므로 저녁을 채소로 끼니를 때우는데 -- 아니 날씬한 사람이 왜 저녁을 채소로 때우러 드는가?  내가 안먹으니까 자기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나보다 더 극성스럽게 다이어트를 하러든다.  내가 미치겠다. 

 

그래서 우리들은 '바른생활' 책속의 착한 어린이들처럼 매일 착한 것만 먹고,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저녁이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음, 나의 운동이 가져온 다른 사람의 삶의 변화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24. 18:38

이럭저럭 내가 예수쟁이가 된 것도 십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정식으로 '좋아 평생 예수쟁이로 살겠어'하고 세례를 받은 것은 6년이 넘었다.  그러니까 교회 드나들며 간 본 세월이 한 오년쯤 되고 그 이후로 착실한 예수쟁이로 살고 있는 편이다. 

 

 

나는 지난 연말 이후로 한국에서 내가 소속한 교회에 가 본적이 없다.  연말에는 A형 독감 때문에 빌빌거리다 미국행 비행기를 탔으므로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로 교회를 못갔고, 연말에 미국으로 갔고, 미국에서 올때 쯤 코비드 난리가 터져서 나는 자진해서 교회에 안나가고 온라인 예배만 드렸다.  내가 교회 갔다가 코비드를 옮긴채 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학교가 문제에 빠질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내 행동을 극도로 조심했다.   그럭저럭 봄이 갔고, 미국에 다녀왔고, 자가격리 2주를 착실히 겪었고,  그 후에 현장 예배의 길이 열렸으나 그래도 나는 교회에 가는 대신에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만에하나 내가 감염되면 학교가 위험에 빠진다는 동일한 염려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 죄송하지 않다. 나는 분명 매주 착실히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내고 감사헌금을 내고 온라인으로 목사님이나 교회와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성경통독 운동이 벌어져서 나도 참여했고, 그래서 폭탄같은 은혜 속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나날들이 은혜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나는 하느님께서 나의 온라인 예배를 기쁘게 받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소속 교회에 온라인 예배 드리는 것 외에, 나는 학교에서 동료들, 학생들과 소그룹 기도회도 진행하고 있다. 봄학기 내내 Zoom으로 기도회를 진행했고, 여름 방학기간에도 - 내가 미국 집에 가서 생활 할 때도 변함없이, 쉼없이, 빠짐없이 기도회를 진행했다. 사실 작년까지는 여름, 겨울 방학 기간에는 기도회를 쉬었다. 방학이므로 기도회도 방학을 했다. 하지만 모든것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 어차피 언라인으로 하는거, 미국에 가건 캐나다에 가건 한국에 있건 아무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모두들 방학 동안에도 계속 기도회를 하는데 동의하고, 방학 내내 평소처럼 기도회를 가졌다 (일주일에 한번 한시간 모여서 기도를 나누는 것이다.)  온라인 시대가 가져온 예기치 못했던 기도의 확산이었다.  방학에도 쉼없는 기도회의 행진이 계속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이 이 일을 매우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대면이 코로나의 위험을 키울수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대면 예배를 '강행'하거나 '고집'을 부리는 것은 '몽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하느님이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온라인으로 기쁘게 예배드릴때 더욱 기뻐 하실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에 대하여 --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정의롭게 핍박 받고 있다는 식으로 꿈꾸지 말라.  그것은 정의로운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괴롭히는 일이며 다른 기독교인들을 똥통에 빠뜨리는 행동일 뿐이다. 

 

 

 

예수쟁이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평생 가는 그 길에 돌부리가 나오면 돌부리를 치우고 가고, 바위가 나오면 바위를 돌아가면 되고, 잠시 쉬었다도 가고 그러는 것이지, 평생 갈 그 길을 욕되게 만들지 말라.  챙피해서 어디가서 예수쟁이라는 말도 못하겠다.  그래도 나는 나 스스로 '예수쟁이'라고 일컫는데 - 예수님이 내 삶의 등불이고 그의 손에 이끌리어 나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시니 나는 예수쟁이이다.  예수쟁이 하루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야 조금 기다린들 어떤가.  온라인 예배도 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뭐가 문제인가.  당신의 예배의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이 세상에 세워진 예배당이 코로나 때문에 모두 망할리가 없지만, 그것들이 모두 망한다고 해도 -- 나는 여전히 예수쟁이로 살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속한 예배당에 계시는것이 아니라 내 가슴에서 나와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세상의 목사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예수쟁이로 살 것이다. 내게는 성경이 있어서 성경에 의지하여 하루 하루 살 것이고, 내 기도에 의지해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을 믿으며 내가 하루 하루 살아간다면 분명 하느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예수쟁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예수님을 제대로 경배하자.  교회가 없어도 목사가 없어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다.  교회나 목사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니 그러한 우상에 현혹되면 안된다. 제발 미친 목사따위로 시끄럽게 굴지 말라. 짜증난다.  정상적인 일상의 시간에 일상처럼 나는 교회에 갈것이고 일상처럼 목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것이다.  하루이틀 떨어져 있다고 멀어지면 그건 처음부터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거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19. 14:15

 

지난 7월 31일부터 전자저울로 몸무게 기록을 시작한 이래로 20일째이다. 처음 체중계에 올라섰을때와 오늘 체중의 차이는 2.6 킬로그램 (살고기 네근하고 200그램 --> 왠지 고기 얼마...이러면 좀더 실감이 난다.) 하루 평균 100그램 이상을 감량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전술한 바대로, 나는 매일 새벽 속보로 공원 다섯구역 한바퀴 (대략 1만보, 대략 80-90분, 중간에 운동틀에서 몸풀기 운동도 하니까.) 도는 것을 빼먹지 않고 했고, 비가 많이 와서 못 나가는 날에는 체육실에서 트레드밀로 채웠다.  아침은 오만가지가 들어간 홈메이드 요거트 스무디, 점심은 신나게 잘 먹고, 저녁은 굶거나 뭔가 채소를 먹거나 (저녁이 좀 울적하긴 하다...) 

 

    * 점심은, 고기, 달걀, 생선구이, 생선회 등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기름지고 든든한 음식을 일부러 골라서 먹었다. 

 

 

대체로 체중, BMI, Body Fat 과 같은 사항의 수치는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 하향하고 있고,  Body Water, Skeletal Muscle, BMR은 반대로 상향선을 긋고 있다. 아주 좋은 그림이다.  덕분에 신체나이도 내려갔다 (신체가 조금 젊어졌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나가서 점심으로 갈비를 배부르게 먹고 왔다. (아, 배부르고 기분좋다~) 

 

 

이 상태로라면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집으로 가서, 파피리카나 뜯어 먹다가 산책을 나갔다 와서 잠이 들 것이다. 하루 이만보를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도 안된다 싶으면 자기 전에 스테퍼에 올라가 계단오르기 운동도 하고, 요가매트 위에서 온갖 생각나는 자세의 운동을 한다. 

 

 

그러니까, 생짜로 막 굶어서 고통스럽게 하는 다이어트는 아니고, 몸을 쉼없이 움직거려줘서 몸을 되살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에서 생고기 열근 무게를 잘 정리하면  (지방질은 근육보다 부피가 크다고 하니까), 뭐 몸의 전체적인 형태가 재정비 될거라고 본다. 하루 백그램씩 정리하면서 6킬로그램을 제거하려면 두달 동안, 지금같은 생활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한다. 내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과일을 한 상자 사서 실컷 먹을것이다. (이렇게 나를 달래본다.) 

 

두달 이상 못보다 어제 회의에서 만난 동료가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있나요? 얼굴에서 빛이 나요" 할 때, '아 내 얼굴에서 빛이 나는게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매일 운동을 하고 땀을 펑펑 흘리는 요즈음, 분명히 얼굴 피부는 자외선에 그을리고 있는데 내 얼굴이 빛난다는 느낌이 종종 들었었다.  내 얼굴이 빛난다. 예전에는 화장을 해도 피로에 찌든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화장을 안해도 얼굴이 빛난다.  아마도 운동을 해서 몸의 활력이 되살아나서 그런게 아닌가 한다.  새벽 운동과 식이 조절이 내 몸을 되살리고 있나보다. (물론 이 모든것을 이끌고 계시는 이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매일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잘 하고 있어'라는 칭찬처럼 보인다. 

 

지난 여름을 돌아보며, 2020년 여름 한철, 나의 최고의 보람은

 

  1. 자가격리 기간의 성경통독
  2. 자가격리 해제 후 망가진 건강을 되찾기 위한 운동 시작과 건강의 복구
  3.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멈춤없이 진행한 언라인 기도모임

 

이렇게 정리 될 수 있겠다. 위의 세가지는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조화로운 그 무엇일것이다.  나는 우리의 기도모임이 우리들을 살리고, 우리 주위를 밝게 해 줬다고 믿는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10. 22:36

Covid-19과 갱년기가 겹치면서 내 몸이 빵처럼 부풀어가는 것이 현격하게 드러났다.  몸이 빵처럼 부푸는 것에 비례하여 움직임이 둔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두통이 잦고 -- 대체로 내가 나 같지가 않다는 낯선 느낌마저 지속되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자가격리'에서 벗어나 귀가한 후부터 -- 7월 말부터 정신을 차리고 내 몸을 관리하기로 했다. 

 

 

우선, 용기를 내어 1년 가까이 멀리하던 '체중계' -- 전자 체중계를 장만하여 피하고 싶었던 나의 현실에 직면했다. 예상대로 일생일대의 최고의 몸무게를 이룩하고 있었다.  (임신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인생 최고의 몸무게였다.)  BMI는 정상치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것은 서양인들의 기준이므로 한국인 기준으로는 필시 '비만'이다.  체지방 비율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신체 나이가 내 실제 나이보다 높아져 있었다.  수년전 까지만 해도 실제 나이보다 20세 이상 젊게 나오던 숫자가 이제 역전 되었다.  음...심각하다. 내 건강을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나는 비만, 고혈압, 당뇨등 성인병을 얻게 되리라. 

 

 

그래서 내가 7월 말부터 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고 있는 몇가지들:

 

 

  • 매일 전자저울로 신체 상황을 체크한다.  마침 저울의 앱이 여러가지 지수를 상세히 보여주는데 그 숫자들을 참고하면 동기화가 된다. 매일 평균 100 그램의 체중이 줄어들고 있다. 여태까지 보름간 대략 고기 두근반 (1,500 그램)을 제거했다.  
  • 실내운동용 스텝퍼를 장만하여 거실에 놓고 집에서 TV 보며 빈둥거릴때 그 위에 올라가서 운동을 한다. 
  • 매일 쉼없어 새벽 공원 산책 (7킬로미터 거리. 10,000 보 거리) 를 빠른 걸음으로 하고 있다. 시간이 점점 단축되어가고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다.
  • 비가 와서 공원에 나가기 어려울때는 체육관 트레드밀을 이용하여 동일한 거리를 걷는다. 체육관에서 하면 입고간 운동복 상의가 비에 맞은듯 온통 젖고, 머리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시속 6.4 킬로미터로 걷는다 (시속 4마일로 속보를 하라는 내용을 읽은적이 있어서.) 
  • 운동으로 만보 걷는것 이외에 생활속에서 만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도합 이만보.  채울때도 있고 못 채울때도 있다.
  • 과일을 끊었다.  사실 내 몸을 감싸는 지방질은 '과일'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을 먹는것 외에 참외를 한번에 서너알씩 먹는 것은 기본이고, 수박도 큰것 한통 사면 혼자서 사흘 (3일)이면 아작이 난다. 귤을 앉은 자리에서 열개도 거뜬히 먹고. 늘 이런식으로 과일을 달고 살았다. 내 식비의 절반 정도는 아마도 과일 값이었을것이다. 그 좋아하는 과일을 끊었다.  (매일 아침에 밥대신 갈아먹는 바나나와 견과류를 제외하고, 간식으로 먹어대던 과일을 일체 끊었다.)  말하자면 나는 '과일 중독자'인 셈인데, 내가 과일을 끊는 것은 애연가가 담배를 끊는것이나 애주가가 술을 끊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긴 하다.  나도 과일을 안 먹으면 '금단현상' 같은게 온다. 우울하고, 짜증나고, 불안하다.  그래도 '비만을 해결 한 후에 다시 과일을 먹자'고 다짐하고 과일을 딱 끊었다.  안먹겠다고 작정하니...뭐 견딜만 하다. 내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 "나중에 정상체중으로 돌아가면 그 때 과일 다시 먹을 수 있어."  그러나, 그 후에도 나는 여태까지 '소처럼 우적우적' 먹어 치우던 과일 먹는 양식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 아침 식사는 늘 하던대로 -- 집에서 만든 요거트에 호두, 생아몬드, 해바라기씨, 브라질 넛, 유산균, 새싹보리 분말, 바나나, 비트 (기타 그때 그때 냉장고에 있는 채소)등을 넣어 스무디를 만들어 한사발 숫가락으로 천천히 떠 먹는다. 죽 같다. 한끼 든든하다. 
  • 점심은 잘 먹으려고 노력한다. 생선구이나 계란 후라이, 뭐 속 든든한 반찬으로 든든하게 잡곡밥을 먹거나, 점심 약속을 잡고 나가서 든든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별로 구애받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알차게 먹는다. 
  • 저녁은 그냥 차를 마시고 통과하거나,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이런것 썰어서 샐러드를 맛있게 먹는다.  (오늘은 학교에서 밤 늦게까지 작업하고 있으므로 보리차를 따뜻하게 마시고 있는데, 집에 가서 아무것도 안먹고 그냥 잘 것이다. 레몬 물이나 만들어 먹던지.)
  • 레몬을 한박스 사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레몬수를 짜내어 물에 섞어 마시고 있다.  가끔 심심하면 레몬을 통째로 갈아서 먹기도 한다. (물론 레몬을 깨뜻이 씻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집에 들어가면 레몬 향기가 난다. 
  • 새싹보리 키우는 키트를 장만하여 벌써 두번째 농사를 지었다. 수경재배를 하고 있다. 뿌리 째 그냥도 씹어 먹고, 아침 스무디에 넣어 갈거나, 된장국에 넣기도 한다 (달래하고 비슷한데 달래에 비해 뿌리가 질기지만 먹을만하다.).

 

 

 

뭐 이렇게 살고 있다. 

 

 

보름간의 변화라면

 

 

  • 일단 체중보다는 발걸음이나 내 몸집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활발해졌다.  물론 체중도 내려가고 있다. 지방율이 감소하면서 다른 '긍정적'인 요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근육양도 증가하고, 수분량도 증가하고. 
  • 사진을 찍어보면 내 얼굴 표정이나 피부빛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피부 톤이 밝아진것 같다. 탄력이 늘어나 보인다. 
  • 나른하게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자꾸만 움직이게 된다 (스테퍼에 자꾸 올라가고, 뭔가 부스럭대며 움직인다.)
  • 뭘 먹을때 칼로리를 따져보는 습관이 들었다. 60 칼로리 짜리 음료수가 있다면 -- 이만큼 칼로리를 빼려면 내가 트레드밀에서 얼마를 걸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해보고 먹기를 포기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과자 한입도 먹을 생각이 사라진다.  그래도 그다지 우울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 점심 때 먹고 싶은것을 먹을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 한끼는 먹고싶은대로 먹으니까 (점심때 막 흐드러지게 먹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달랠수 있다는 것이다.) 
  • 매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 체중계에 올라간다 (그때가 하루중 가장 가벼운 때이니까). 그리고 건강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열어서 -- 나의 하루 성적을 조회한다. 내가 얼만큼 칼로리를 소모했으며, 오늘 아침 나의 체중 데이타는 얼만큼 향상 했는지. 그 수치들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매일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이 나를 더욱 분발하게 한다. 

 

 

나는 그다지 허기지지 않다.  아침 식사로 먹는 요거트 스무디도 아주 건강한 음식이며, 점심도 기름지게 잘 먹고 있다. 저녁을 생짜로 굶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고기를 (내 몸의 지방을) 대략 열근 정도 태워야, 평상시의 나로 돌아갈 것 같다.  가을내내 서서히 꾸준히 진행하여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3. 16:09

 

 

한국 외교관이 뉴질랜드에서 활동 할 때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그 나라 총리가 우리나라 대통령과 외교적 통화를 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 항의를 했다는 얼마 전 뉴스.  나도 관심 있어 뒤져보니 해당 외교관의 이름이며 그의 이목구비며 그가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모습 등 깨알같은 그의 삿적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리면 뭐하나, 다른 나라 언론 뒤져보면 다 거덜나는 피의자들의 '초상권.'

 

 

나는 성추행에 연루된 사람에 대해서 머리카락 만큼의 '동족의식'이나 '동정심'따위는 없다. 특히 나는 성추행 혐의를 뒤집어 쓴 사람에 대하여 굉장히 부정적인 편이다. 

 

 

그런데, 그렇지만,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시건방'을 떨은 뉴질랜드 총리에 대해서 아주 불쾌하다.  covid-19 상황에서 뉴질랜드에서 백돼지 같은 인종들이 아시아 출신 사람들 (중국, 한국 가릴 것 없이) 혹은 아시아인 용모의 이민자들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던가. 길에서 때렸고 모욕했다.  뉴질랜드 총리는 답하라.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피해자들에게 뉴질랜드 총리는 어떤 사과를 했는가?  당신의 상대국 국가 원수들이 전화 통화에서 그런 일에 대해서 '너처럼' 대놓고 따진적이 있는가 없는가?

 

 

너희들이 하는 행동은 별문제가 안되고, 한국의 외교관이 뉴질랜드인 직원 엉덩이 만진것만 큰일이라고 생각하나?  엉덩이를 쓰다듬건 - 아시안이라고 침을 뱉고 때리건 악행은 악행이다.  너는 그 피해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할건가?

 

 

 

너희들의 야만에 대해서 반성은 티끌만큼도 안하면서 한국의 외교관만 그렇게 중차대한 문제인건가?  뉴질랜드가 싫어지고 있다. 그러나 뉴질랜드가 싫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겠다.  나도 우리나라 남자들 손버릇 나쁜것 챙피스럽다.  그런데 너도 뉴질랜드 사람들 인종주의에 대해서 부끄러운줄 알고, 아무데서나 나대지좀 말라. 보기 엮겹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23. 18:29

 

 

극히 개인적인 의견인데, 한 체제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정말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족들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오는 분들에 대해서 나는 깊이 공감하고 한국 사회에서 그분들이 잘 살아줬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데, 한 체제에서 잘 교육받고, 고위직을 누리고, 잘 살다가 다른 체제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이 잘 안간다.  그것이 진정한 '전향'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런것을 우리가 전향이라고 하는지 전향의 개념이 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한 체제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를 기름지게 누리다가 그것이 식상해서 다른 체제로 이사 하는 것을 우리가 전향이라고 하는가?   무법자 저열한 깡패의 세계에도 '의리'라는게 있어서 함부로 쉽사리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하지 않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인데  생계 문제도 아니고. 이팝에 고깃국에 잘 먹고 살다가 ...전향?   헷갈린다.

 

 

나도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대답 - 전향은 이쪽 저쪽 이사다닌 당신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나는 그런적이 없어요 - 라는 요지의 대답은 그야말로 사이다 였다.  사실 요즘 대통령도, 그의 졸개들도 다 실망스럽고, 신경질나게 만들고, 이래저래 다 꼴보기 싫은 편이었는데 오늘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대답'은 명언중의 명언이었다. 박수를 보낸다.  내 비록 저 사람들에게 실망이 크긴 하지만  '태'씨 따위가 함부로 건드릴 인물은 아닌 것이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20. 10:31

서울시의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집을 짓네 마네 하는 문제에 법무장관까지 끼어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오늘날 한국의 부동산 경기. 

 

그러니까 집값이 너무 뛰어오르고, 덩달아서 전셋값도 더 무섭게 뛰어 오르고,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새로 연구하여 내 놓을때마다 집값은 상승한다는 것 같은데.  그런 뉴스들을 멀리서 관망하면서 문득 드는 의문.

 

1) 집값 상승이 전국에 고르게 일어나는가, 특정 지역에서만 난동을 부리고 있는건가?  (정답: 특정 지역에만) 

 

2) 집값 상승의 최대 수혜자는 현 정부 (현 대통령)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일까,  반대쪽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일까? ( 추측컨대 아마도 반대쪽에 표를 던진 한강 이남에 집가진 분들.)

 

아마도, 한강 이남 집값 상승의 최대 수혜자들은 (비율적으로 봤을때),  진보쪽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 아니라 보수 쪽에 표를 던진, 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일것 같다.  보수후보라면 그가 누구가 되었건 무조건 국회의원 뱃지를 단다는 그 지역 - 그 지역 사람들이 가진 집값은 오늘도 열심히 오르고 있겠지. 누구 덕분에? 그들이 싫어하는 진보진영의 대통령과 그의 졸개들 덕분에.  그렇지만 그들은 현직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뛰어오르는 집값 따위 보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적인 숭고한 이상이 있기 때문일것이다. 

 

이런것을 보면 -- 뭐랄까 아이러니 혹은 블랙코미디 같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도록 응원을 보냈던 미국의  경제적 중하위권 가난한 백인 서민층 -- 그 사람들, 트럼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그에게 표를 던졌지만 트럼프가 정말로 그들의 삶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래도 그들은 트럼프에 열광한다.  망해가면서도 트럼프를 찬양하고 그들의 망해가는 집 마당에 트럼프 지지 푯말을 세워 놓는다.  그들 역시 망해 죽을 망정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적인 숭고한 이상과 트럼프가 부합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기묘한 세상이다.  더욱 무서운 일은 -- 그 트럼프가 어쩌면 재선에 성공할수도 있다는 거다.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 트럼프가 망할것처럼 전하고 있지만, 내가 미국에서 피부로 감지한 것은 딱히 그런것만도 아니어서... 트럼프는 보이는데 트럼프의 적수는 도무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혼자 뛰는 경기에선 그 사람이 이기는거 아닌가?  알 수 없는 세상. 여기나 저기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6. 09:42

 

Born free as free as the wind blows~  as free as the grass grows born free to follow your heart~ 

 

아침 일찍 (7:50 am) 이러한 희소식을 받으니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제 이 코로나 감옥으로부터 나갈수 있게 되었다.  할레루야. 예수님 부활하신것처럼 기쁜 일이로다. 

 

 

아...돌아보니 꿈같은 시간이었다.  허둥지둥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 내가 도착하여 지나친 그 아틀란타 시내에서 내가 떠난지 몇 시간 후에 대대적인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시위'가 시작되었었고,  미국에서 지내는 한달 내내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시위와 코로나 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된 블랙 코메디'같은 행실들을 TV로 지켜봐야 했고, 허둥지둥 한국으로 와서 보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엉뚱한 사람의 엉뚱한 시간의 죽음과 요동치는 국내 정세와.  아아, 꿈이로세 꿈이로세. 그 어디쯤에 나의 진짜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나의 기나긴 봄은 이제 끝났다.  이제 여름이다. 사실  한국에서 7월 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굉장히 오랫만의 일이다. 한국에서 근무를 한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6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나는 항상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7월을 한국에서 보낸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 설렌다. 벌써 절반이 '감옥'에서 가고 말았지만 나머지 7월을, 그 7월의 초록색 공기를 깊이 들이마실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12시에 해제되므로 12 정각에 이 '감옥'을 나서서 일단 학교로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을 하고.  내일은 엄마를 뵈러 가야한다.  아직 엄마가 살아계셔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테레비를 보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오기를, 나를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엄마, 남편, 자식들. 그게 전부인것 같더라.  항상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미국에서 둘째를 못 보고 와서 가슴이 찌르르하고 아팠다.  그냥 무작정 보고 싶은 자식.  그래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나를 보고싶어 하겠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이제 코로나 격리 잡설을 마친다. 구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안녕히. 하하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6. 02:05

성추행, 성폭력 피해자가 오랜 세월이 지난후에 그 일을 공개하거나 문제화 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내가 아는 범위안에서' 설명을 해 주겠다.  (나는 이런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다 그냥 자연인에 불과한데 그래도 한정된 설명은 가능하다).

 

1. 그동안 숨죽이고 지내다가 주위에서 미투운동으로 뭔가 목소리가 나고, 김지은씨도 나오고, 오거돈씨 주변 피해자도 나오고 그러면서 - 어떤 사람들은 '이게 숨죽일 일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인가보다' 하고 깨닫고, 용기를 낼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용기를 낼 수도 있다.

 

2.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잘못인줄 알거나 아예 원인도 모르고 고통을 겪다가 정신과 상담 과정에서 혹은 다른 상담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을 자각한다.  그래서 상담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자각을 하고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낸다. 오랜 세월후. 

 

3. 나도 내 평생 침묵하는 나만의 문제가 있다.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를 용서한 것은 아니다. 용서도 무엇도 아니고 그냥 내가 흘러가주는거다. 입에 담기도 싫어서.  그러나 내가 이를 입 열고 문제화한다면 충분히 문제가 된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이러느냐"라고 누군가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면 일단 그 자부터 죽여버리겠다.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

 

4. 나만 그런게 아니다.  내 아주 가까운 사람도 내게 동일한 맥락을 말한 바 있다. 누군가가 죽었다. 그거 장례식장에 갈 의논을 하는데 그가 말했다. "그 새끼 뒈지길 여태 기다렸다. 곱게 가는걸 고마워해야 할거다. 내가 장례식장에 가면 그 새끼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까발려 버릴거다. 그러니 내가 안가고 말지."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장례식장에 안온것을 가지고 수근댔지만, 장례식장에 안 가주는것이 아주 큰 은혜였음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5. 어떤 사람이 가슴에 묻고, 상처를 묻고, 고통을 겪으며 보낸 시간에 대해서 '그동안 뭐 하다가 이제와서'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그동안 겪은 고통을 함께 슬퍼해야 그게 정상인거다. 

 

 

이 세상 여자들이 어릴때부터 나이 들도록 여기저기서 당한 성추행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럴때마다 가해자가 죽는다면 - 이 세상 남자들 씨가 마를까봐 나는 그걸 염려한다.  남자들 씨가 마를까봐 그냥 참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아주 많이 있다.  나는 정말로 '남성 보존 연구회'를 창설하여 남성들을 보호해야 하는게 아닐까 염려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를 추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성추행에 여자 남자가 어딨나. 여자도 힘을 가지면 충분히 남자를 추행할 것이다. 인간이 뭐 특히 다를게 없으니까.  성추행 성폭행자들은 죽지좀 말라. 이제와 생각하면 오거돈씨는 오히려 존경받을만하고 안희정씨도 살아줘서 고맙다.  살아서 스스로의 치욕을 버텨줘서 오히려 고마운 판이다. (사람 오래 살고 봐야해. 시간이 지나면 그림이 휙휙 달라지고, 심지어 살아있는 그들에게 감사하게 된단 말이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6. 01:39

어제 예약한대로, 오늘 오전 9:30 예약 시간에 맞추어 보건소에 갔다.  도착시각은 9:00.  (30분 일찍 가서 대기).  나는 원래 성격이 시간 약속을 안 지키면 숨이 그자리에서 넘어갈 정도로 히스테리컬하기 때문에 (하하하) 중요한 일정은 매우 서두르고 앞당겨서 한다. 특히 코로나 검사는 '내가 1번으로 검사하고 자리를 떠야지'라는 선명한 의도를 가지고 일찌감치 서둘렀던 것이다.

 

 

왜 1번으로 검사받고 자리를 뜨는가?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검사 받을 텐데, '오염이 되지 않은 자리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것이 나로서는 최선이므로 가장 일찍 가서 가장 일찍 현장을 빠져나오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자 아래 사진에서 저기 공중전화부쓰 만한 깡통같은 검사소가 세군데가 있다 (1번만 보이지만 1, 2, 3번 이 있다). 나는 저 1번에서 검사를 받고 나왔다.  줄 서서 기다릴때 2미터 간격을 두고 서서 기다리라고 바닥에 표시도 되어 있지만 -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간격같은거 무시하고 막 다가서고 그러니까 내게는 무척 위험해 보였다. 

 

검사소박스 안에 들어가면 뉴스에서 봤던대로 '비접촉' 검사를 받게 된다. 가운데 투명유리가 있고, 고무장갑같은 것이 삐죽 나와있고. 그러니까 투명 유리를 가운데 두고 중무장한 검사하시는 분이 고무장갑으로 손을 넣어 - 나와 접촉하지 않는 상태로 내 콧구멍에 그 긴 대롱을...으..으..읔...(그거 정말 오싹하고 무섭다.  그래도 2주전에 한번 경험한거라 이번엔 덜 무서웠다. 하하하.) 

 

 

내가 걱정스러웠던 점은, 그 검사소 깡통이 정말 작거등... 현금인출기 박스보다도 작은 공간인데 내가 거기서 검사를 받는동안 문이 닫혀있다. 나는 그게 무섭다.  열어서 환기가 잘 되도록 해야 하는데 왜 그걸 닫지?  그러면 그걸 그렇게 닫아 놓으면 거기 백명이 드나들다가 그중에 한명이 확진자가 되면 그 좁아터진 박스를 거쳐간 사람들은 그대로 그 확진자의 공기에 노출이 되는것 아닌가?  그거 열어 놔야 하는데, 여름이라 더워서 열어놓으면 좋고 환기도 잘 되는데, 그걸 왜 닫는지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다.  뭐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겠으나 나는 불안하다. 내가 이래서 이런 위험에 노출되기 싫어서 '1번'으로 검사받기를 생각한거다.

 

 

 



 

2주만에 열린 하늘아래.

검사받기 위해 담당공무원과 자가격리앱에 내가 외출한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마침내 2주만에 내가 지내던 오피스텔의 문을 나설때 -- 나는 외계의 알수 없는 구역으로 나간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이 내가 평소에 지내던 장소가 아니라 처음부터 낯선 장소였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오피스텔 건물을 나서서 마침내 신선한 아침 하늘 아래에 서게 되었을때, 사람들이 지나가는 풍경과 개를 끌고 산책을 하는 풍경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오호라!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돌아간다는 것의 경이로움!!!  내가 '사람'을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을 오십몇년 평생에 처음 깨닫게 되었다.  이 놀라움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기록을 남겨 둔다. 

 

물론 용무를 마친후 곧바로 '감옥'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온종일 잤다.  무기력감. 사람이 그립다. 사람이 되고 싶다 우하하하하.

 

지금은 온종일 잤으므로 한밤에 테레비 켜 놓고 이렇게 낙서를 하면서 혼자 놀고 있다.  시골에서 지낼때 할아버지가 쇠죽솥에 불 때면서 늘 틀어놓으시던 '노래는 세월따라' - 그 흘러간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는 성장했다. 그래서 가요무대를 틀어 놓으면 옛날에 할아버지와 살던 유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 가요무대는 소주에 오징어 뭐 이런거라도 있어야...  아...이제는 나도 쉬고 싶다. 쉬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5. 00:31

자가격리 열흘을 넘기니 햇볕을 쬐지 못해서 그런지 그냥 지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지친다.  밖에 있는 친구들은 '완전 혼자 지내니 밀린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지만 -- 아 그래서 나도 기세좋게 성경통독을 했는데 -- 그러고 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가 되고 만다.   공식적인 이메일에 답도 안하고, 해야 할 숙제도 미루고 안한다. 하기 싫다. 

 

해제 이틀전 (오늘 Day 13) 보건소에서 연락을 해 왔다.  해제를 위한 2차 검사 예약을 하라고. 

 

2차 검사는 이쪽 관할 보건소의 경우 (각 지자체별로 방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해제 1일전에 재검을 하여 해제 당일에 음성/양성을 통보해준다. 음성이면 문자로 알려줄 것이고, 양성이라면 양성이니까 뭔가 후속 조치가 취해지겠지. 그것은 양성 판정을 받는 사람들만 알게 될 내용이고, 나는 음성을 기대/기도 하는 중이다.  첫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고 여태까지 이곳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으니 여행중 감염되지 않았다면 음성이 나와 주겠지.  정말 문밖에 한 발자국도 안나가고 버티는 중이다.  답답하고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 뭔가 정치범으로 독방에서 수년간 생활하신 분들 ...대단하신 정신력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 확실히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나도 혼자 이렇게 열흘이상 갇혀 지내니 자꾸만 무기력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내일 오전에 보건소에 가서 재검을 받는다.  내 차로 운전해서 갈 것이므로 별도의 방역택시는 필요하지 않다.  내일은 보건소에 다녀와서 청소하고, 가방을 챙기고, 이곳을 내가 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말끔하게 해 놓아야지. 

 

 

*** ****

사자신중(獅子身中蟲)

나는 십수년간 해외에 있었으므로, 게다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경기도민이었으므로 박씨가 서울시장에 출마했을때 그에게 표를 던질 기회가 없었다.  그 전에는 서울시장 선거도 하고 했는데...  그렇지만 해외에서나마 박씨가 서울시장에 처음 출마하면서 안철수씨도 나오고 여러가지 아름답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써 나갈때 나도 감동 받고 그랬었다.   나경원씨와 결투를 벌이던 첫 선거가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처음에 나경원씨하고 붙었고 -- 그후에 누구하고 붙었었지?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울시장에 3선을 했다는데 내 기억에는 나경원씨만 떠오르고 나머지 경쟁에서 그의 맞수가 누구였는지 기억할수 없었다. 분명 열심히 기사 찾아보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그랬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언라인을 뒤져보니 2선에서 맞수가 정몽준씨였고 3선에서 맞수가 안철수씨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세번 모두 50%가 넘는 압승이었다고 한다.  아 하...그렇군 그랬었군.  참 쟁쟁한 인물들을 이기고 세번이나 서울 시장에 당선이 되었군!  이때 문득 생각이 났다.  나경원씨도, 정몽준씨도, 안철수씨도 대적하여 무너뜨릴수 없었던 이 사람을 , 무적의 이 사람을 무너뜨린 것은 자기 자신이었군.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것이군.  딱한 일이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일까?  나도 돌아보면 나 자신을 세운 것은 나 자신이다. 그리고 주위에서 많은 좋은 분들이 나를 도와 주신것이다.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데는 주위의 협조가 필요없다.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정리해보자, 나를 세우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를 무너뜨리는데는 나 하나의 힘으로도 충분하다.  무너지기가 더 쉬운 것이다. 

 

사자를 죽이는 것은 사자 몸안의 벌레라고 한다. 

 

 

그리고 '박씨'에게 '성추행 고소' 사실을 귀띔한 ' 그 사람 '  그 사람이 박씨를 죽게 만드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의도로 그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을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좋은 의도와는 달리 결국 그것이 박씨를 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해서 누군가가 와서 덜미를 잡는 순간에야 비로소 '앗! 뭐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해야 하는거다.  일단 그 순간이 지나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인데.   그러니까, 대개 우리는 '매뉴얼'대로 하는것이 안전하다.  매뉴얼대로 원칙대로 일을 처리했다면 그는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있을것이고, 한 사람이 사과하고 참회하는 스토리를 얻게 되었을수도 있다. 그것이 안타깝다.  우리가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아주 자명해진다.  원칙이 왜 있는가? 모두에게 안전한 것이 그 '원칙'이라는거다.  교통질서처럼.  원칙이 반듯이 서고 원칙대로 일이 진행되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함께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2. 23:14

 

입소 (?) 11일째이다.  참고로 '자가격리'는 '만 14일'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14박 15일이 답이다.  저지난주 목요일에 입소했으니 이번주 목요일에 퇴소한다, (2차 검사에서 역시 아무 문제가 없을 때 그렇다.)   그러니까 내일이나 모레쯤에 보건소나 담당 공무원이 내게 재검을 받으라는 연락을 할 거라고 본다. 

 

이곳에서 열흘을 지내다보니 슬슬 이곳이 내 집처럼 내 생활에 어떤 '집'같은 질서가 잡혀간다.  매일 샤워를 하고 매일 청소를 하고 매일 샤워할때 벗어놓은 속옷 양말을 빨래하여 널어놓고, 매일 뭔가 해 먹고, 매일 낮잠을 푹 자고, 매일 남편이 뭔가 '먹이'를 가져다주고 간다.  이 생활이 익숙해진 나머지 농담으로 남편에서 -- "우리 오피스텔을 이웃에 각자 구해놓고 살면서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챦겠다" 했다.  완전하게 혼자 살아보는게 코로나 자가격리가 가져다준 선물 같기도 하다.  돌아보니 내 평생에 나혼자 이렇게 '집'에서 완전히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이 수십년 살아오는 가운데 정말로 처음이다. 

 

2011년에 작은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 약 10개월간 혼자 살았던 적도 있지만 그 때는 우리 개 '왕눈이'가 있었으므로 완전히 혼자 산 것은 아니다.  아무튼 내 생애에 처음으로 '혼자' 살아보는 경험이다. 

 

일단 자가격리 기간동안 '성경통독'에 성공했으므로 토요일 일요일은 뒹굴뒹굴 아무것도 안하고 놀았다.  이제 내일 아침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가 나의 답신을 기다리는 이메일들을 처리하고 밀린 일들을 해야지. 

 

자가격리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인터넷과 TV일것이다.  나는 요즘 유튜브와 TV를 번갈아 보면서 '운동'을 찾아서 하고 있다.  TV에서 '운동'관련 프로그램을 발견하면 보고, 따라하고, 유튜브에서 내가 따라 할만한 운동을 한다.  갱년기 증상을 겪고 있는 내가 주의해야 할 사항을 요즘 알게 되었다.  내가 뭔가 재미있는 운동을 발견하여 그것을 신나게 따라하고나면 -- 그 다음날에는 열이나고 몸이 아프다.  체온은 '저온'일 정도로 변화가 없는데 나는 온몸이 열이나고 아픈 느낌이 든다.  두번이나 그런 경험을 했기때문에 이제는 운동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격렬한 운동보다는 주로 스트레칭 관련 -- 운동량이 심하지 않으면서 척추나 고관절을 건강하게 유지할만한 스트레칭 관련 운동을 주로 찾아서 한다.  그런 운동을 하면 몸이 크게 아프지 않다. 

 

그래도 '춤추는 운동'이 TV에서 나오면 그걸 '슬슬' 따라한다.  춤추는것은 재미가 있다.  그걸 구경하면서 그냥 건성건성 따라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 무기력감에서 헤어 나올수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트레일 워킹 (숲속 산책)인데, 6월에 트레일 워킹하다가 발에 부상이 와서 -- 그래서 내 신체가 급속히 노화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하루종일이라도 워킹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만 그렇고, 몇시간 걷고 집에 오니 발이 아파서 찔뚝거려야 했다.  발이 아픈것이다.  다리가 아픈것도 아니고, 발이 아프다니... 그러니까 너무 많이 걸어도 안되고, 너무 격한 운동도 안되고, 이러니까 갱년기 여성들이 그러한 체형이 되는 것이리라. 나도 거울속의 내 체형이 낯설다.  그렇다고 함부로 다이어트 한다고 끼니를 굶거나 그럴수도 없다. 그러다가 정말로 큰 병이 들 수도 있다. 이래저래 무엇한가지 쉽게 하기 힘들어졌다.  이제 슬슬 사람이 나이가 들고 신체가 노화되어 가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몸소 겪어서 알게 되는것이다. 

 

아무튼 살살 달래가면서 운동을 하여 체형을 정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 유튜브와 TV의 쓸만한 프로그램들을 수집하고 있다.  내 신체가 이대로 망가지도록 내버려둘수는 없고.  아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요가'보다는 '춤'을 추는 편이 그나마 할만하다.  춤은 흥이니까. 나는 흥이 나는 운동이 좋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1. 22:08

옛날에, 자식들이 아직 어릴 때, 고민도 많고 울통불퉁한 시기를 지날 때 내가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내용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네가 무슨 실수를 하고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혼자 해결하기 힘들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뭐든 도와줄게." 

 

자식들이 내게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극복해낸 일화들이 더 많겠지만 - 그래도 때때로 힘이 들 때 아이들은 내게 와서 문제를 토로하곤 했다. 나느 훌륭한 엄마도 아니고 아주 불량엄마도 아니고 그냥 보통의 엄마이고 (때로는 상대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안심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음을 인정한다. 아들은 패도 되는줄 알았다). 내가 철이 들어 "전에 내가 너희들 때린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성인이 된 아들들에게 사과를 하면 작은 아들은 정색을 하면서 "엄마가 잘 못하신거 맞아요." 나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고  군복무을 마친 큰 아들은 "됐어요 엄마. 다 맞을만해서 맞은거지.  임마 엄마가 때리신걸 갖고 뭘 따져"  이렇게 너그럽게 나의 과오를 용서해준다.  아무튼 내멋대로 내 기분 내키는대로 자식들을 키우고 가끔 패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철권 마징가제트' 처럼 '엄마에게 말하면 뭐든 해결된다'는 그런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작은 아들은 심지어 그의 '첫경험'까지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큰 아들은 내게 신세한탄을 많이했다.  적어도 그들은 내가 그들을 품어줄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니까. 엄마는 굉장한 존재이니까. 

 

남편에게도 나는 가끔 그런 얘기를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20년 전에도 나는 남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이 닥치고, 무슨 실수를 해도 너무 걱정하지마. 나는 괜챦아. 내가 다 막아줄게."  그래서인지 남편은 정말로 사고를 친 것까지 내가 묻기 전에 내게 와서 이실직고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실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심하게 태평하다. 

 

어느 도시의 시장님이 갑자기 증발되었는데, 그 증발의 사유가 '성추행 혐의' 와 연관이 된것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마도 소문에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소문을 사실이라고 치고.  나는 남편에게 당부했다 --"있쟎아, 당신이 똑같은 상황에 빠지면 증발하지 마, 왜? 당신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겁먹지 마. 내가 다 해결해줄게.  내가 당신하고 함께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빌거야. 혼자 빌면 무섭지? 나하고 함께 빌면 무서울거 없어.  그러니까 말야, 무슨 실수를 하고 어떤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이 생겨도 기죽지 마. 내가 있으니까.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싹싹빌고 다시는 그런 짓을 안하면 되는거야. 피해자들과 손 맞잡고 웃을수 있을때까지 싹싹 빌어야 하는거야. 그게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 그렇게 피해자들이 상처를 씻어내릴때까지 반성하고 싹싹 빌어야 하는거야. 그게 필요해. 피해자들에게는 바로 그런게 필요해.  그게 진정한 사죄인거지. 도망가는건 그냥 도망에 불과한거야. 죽어도 벗어나기 힘들어. 그러니까 나하고 같이 가서 싹싹 빌자.  도망가지 마. 알았지? 내가 다 해결해줄게." 

 

* 그게 큰 문제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 피해자의 기억속에 그것들이 모두 증발되어 '아무것도 아닌일'로 남을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의  말도 안되는 '만담'이 싫지 않은지 남편은 킥킥 웃고, 나를 위하여 설겆이를 해 주고 집으로 갔다. 

 

말못할 성추행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사는 입장에서  내가 '성추행'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다.  그냥 한편 생각하면 - 죽으면 태워 없어질 혹은 썩어 없어질 사람의 몸이 뭐 별거인건가? 성추행이건 성폭행이건 사실 기억에서 사라지면 별것도 아니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문제인거지.  두고두고, 죽을때까지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러니까 이 일은 문제일수도 문제가 아닐수도 있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이런 기억을 털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니다'에 집중하라는 말씀을 종종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거니까. 그게 쉽지 않다는거지.  나도 지금도 불쑥불쑥 분노가 치밀며 '저새끼 아직도 사과 안해..저 천벌을 받을 새끼....' 이런 생각을 하곤 하니까.  그런데 그 '저새끼'는 자신의 과오를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르지.  때로는 '그게 천벌 받을 짓이었을까?' 스스로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성추행이나 성폭행 당한 사람이 이것을 발설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이것을 공론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당해봐야 알겠지. 안당해보면 모르지.  차라리 남이 그러면 발설하기가 쉬울것이다. 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면 이건 출구가 없는거다. 직장도 마찬가지이고.  차라리 교통사고가 간단한거지. 

 

어쨌거나 피해자가 그 기억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약은 가해자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이다.  사과와 보상 없이 뺑소니를 치면 안되는거다.  그러니, 혹시 내 아들이, 내 남편이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그들의 손목을 이끌고 가서 싹싹 빌겠다는 것이다. 손이 닳도록 싹싹 빌어서 '원한'을 풀어 내야만 한다. 

 

인간이 신이 아니니,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건 얼마든지 실수하고 죄를 저지를수 있다.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지면 나는 그것을 감당해야만 하는거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거다. 나는 누군가 비를 맞으며 걸어 갈때 함께 비를 맞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1. 21:01

 

지난 밤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성경 통독을 모두 마쳤다. (낮에는 쿨쿨 자고 밤에 일어나 성경읽기를 하는 삶이었다).  성경은 처음에는 내가 읽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라지고 누군가가 읽는다.  나는 사라지고 성경의 숲을 관통하는 내 발길이 빨라진다.  

어느부분은 대충 눈을 거치는 식으로 넘어갔고 어느 부분은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울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마치 초저속 카메라로 하늘의 풍경을 찍은 것 처럼, 그것을 정속으로 풀었을때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고요해지고 파란 하늘, 다시 구름이 한꺼번에 미친듯이 돌아가듯이 성경을 읽는 나의 시간이 그러하였다. 

 

지금 돌아봤을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매번 통독 할 때마다 포인트가 조금씩 변하는데 올해 통독하였을때는) -- 욥기.  욥기가 너무나 아름답다.  요나에서는 깔깔 웃음이 나왔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 이전에 읽을 때 재미없이 통과했던 '성전 건축'의 부분이 이번에 눈에 확 들어왔다. 아 그 지난한 역사.  예수님이 '날아가는 새도 집이 있고 여우도 돌아갈 굴이 있는데 사람의 아들이 머리 둘 곳이 없구나' 하셨던 대목처럼 구약에서 '언약궤'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다.  심지어 모세는 하느님의 십계명 돌판을 홧김에 집어 던져 박살을 낸적도 있지 않은가.  참 더럽게 말 안듣는 '자식'들 덕분에 '여호와 하나님'도 뒷방 노인처럼 인간들의 배은망덕과 오만불손과 온갖 구박을 다 견디셔야 했다.  그걸 그분이 왜 그렇게 참으시고 견디셨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분이 '사랑'이라서 다른 방법이 없으신건가?  아무튼 그를 위한 성전은 쉽게 세워지지 않았고, 한번 세워진 후에도 편할 날이 별로 없었다.  구약-신약을 통틀어서 그 '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내 '집'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내 신세가 그 문제에 투사가 되어서일까?  나의 '정처없는 이 발길'의 삶을 성경속에서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내 가슴속에 솔로몬의 영광기에 세워진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성전과 같은 -- 아름다운 성전을 세워야 한다는 어떤 상념에 이르렀다.  그것이 무너지면 나는 또 세운다.  무너지지 않는 성전은 --- 내 가슴에 예수님을 온전히 간직하는 것이지.  (그건 내게 쉬운 일이 아니지...) 

 

예언자들의 예언서가 대개는 '재앙'이 닥쳐올것에 대한 경고, 그리고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언자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 모두들 울고 있지 않은가?' 문득 --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우울증'의 여러가지 증상들이 아닐까?  정신과 의사들은 성경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어떤 '진단'을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욥기'를 가장 아름답다고 봤던 이유도 '욥기'는  '우울증'의 여러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빠지면 그냥 우울감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정말로 몸도 고통스러워지고 정말로 사는게 힘들어지지 않던가?   인간이 당할수 있는 고통중의 고통을 모두 겪은 자가 욥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러하므로 그는 찬란한 하나님의 음성과 가르침을 듣는다.  그는 회복된다. 참 아름답다. 특히 하나님의 등장 부분은 풀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다. 

 

성경을 제한된 시간안에서 최대한 빨리 속독하여 통독 할 때 일어나는 일은 -- 구약에서 반복되었던 어떤 메시지들 혹은 '어휘들'이 신약에서도  반복되면서 그러한 것들이 한줄에 휘리릭 꿰어진다는 것이다.  성경이 방대하고 '하느님의 메시지'이므로 한자 한자 한구절 한구절 곱씹고 곱씹다 보면 정말 부분 부분만 사색하고 지나가게 되는데 -- 그런 성경 읽기를 하다가 일년에 한번쯤 번개치듯 통독을 하면 소나기를 맞은것처럼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큰 그림'을 다시 갖게 된다.  내비게이터의 메시지만 듣고 운전을 하다가 문득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대략 찬찬히 살필때의 느낌.  우리는 세세한 내비게이터도 커다란 지도도 모두 필요하다.  정독과 통독이 모두 필요하다. 

 

볼때마다 우는 대목은 --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시는 장면들  처음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때.  베드로가 강변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훈수를 두신 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자각하고 허둥지둥 외투를 걸치고 달려 갈때.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가 그려지는 장면에서 나는 늘 운다. 그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이 또 있을까?  일설에 예수님께서 '요한'을 애지중지 하셨다고 하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사랑의 요한'을 알겠더라. 요한 1-2-3서가 온통 사랑 타령이더라)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연애는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의 연애가 아닐까 한다.  다가옴 - 못 알아봄 - 알아봄 - 함께함 - 배신 - 도망 - 후회 - 연민 - 사랑 - 떠남 - 기다림  뭐 이런 '사랑 이야기'의 요소들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있다. (말귀 못알아듣는 어떤 미친 기독교인이 내 글을 우연히 읽고 이게 무슨 게이 스토리냐고 예수님 모독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댓글이 달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겹다, 말귀 못알아 듣는 가짜들.) 

 

아, 그런데, 성경통독은 아직도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프로젝트이다. 올해 겨울 방학때 다시 한번 할 수 있을까?  코비드가 진정되지 않아 겨울에도 다시한번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때 통독을 하게 될까?  아직 장담하거나 약속하지 않기로 하자. 나는 하나님께는 함부로 약속을 안드린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생각만 하고 있자.

 

이런 생각은 해 봤다.  누군가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일주일에 딱 한시간 만나서 다른 것은 안하고 인사도 무엇도 생략하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앉아서 성경을 소리내어 교독하는 것이다. 천천히 한구절 한구절 돌아가면서 읽다가 한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왜?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New International Version 으로. 

 

 

 

 

 

자가격리를 돕는 최고의 장치는 '온라인 쇼핑'이다. 자가격리의 숨은 영웅은 '택배 요원'이다.  서리태 (검정콩)을 온라인으로 주문한지 24시간도 안되어 문앞에 도착하였다.  오늘부터 서리태로 콩물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남편에게 매일 콩국수 사다 달라고 하다가 아예 매일 콩국물을 직접 만들어 먹기로 한거다. 

 

 

나도 어쩔수 없이 나이를 먹어 - 그 무서운 '갱년기' 증상이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고 있다. 문득문득 다가오는 '발열감'은 차라리 견딜만 하다. 안면홍조도 없고 선풍기 바람도 필요하지 않고, 그냥 발열감일 뿐이니까.  (전에는 열이 난줄 알고 타이레놀 먹고 그랬는데 체온계로 재보면 체온은 오히려 저온이란 말이지...). 한달 전부터 왼쪽 손이 그냥 얼얼하고 아프다. 손마디도 아프고 손끝도 맵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걸 '내가 잠을 잘 못자서, 몸으로 손을 덮치고 자서 그런가?' 그런 추측을 했는데 검색해보니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이란다.  생각해보니 우리 언니가 몇해전부터 손이 아프다고 파라핀 온열치료기도 쓰고 뭐 그랬다. 나는 우리 언니가 부지런한 살림꾼이라서 손을 하도 많이 써서 아픈가보다 했는데 - 요즘 나도 손이 아프다. 난 일 안하는 게으름뱅이이고 내가 손쓰는 일은 자판 두드리는 것 정도이다. 내가 손이 아플일이 없다. 그런데 손이 아프다.  갱년기 증상인 것이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식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 으뜸이 검은콩이더라 (하하하)  나는 콩국수도 좋아하므로 콩국물은 언제나 좋아한다. 잘 됐다. 내가 콩국물을 직접 만들어서 매일 먹으면 되겠구나. 이런 결론. 

 

 

 

콩 삶아서 (6-7시간 불리고 10분쯤 끓는 물에 삶는다, 너무 오래, 너무 짤게 삶지 않고 적당히. 그것이 10분쯤이란다) 물, 우유하고 함께 갈아서 소금 약간 뿌려서 먹는다.  매번 삶기 귀챦으니까 한꺼번에 삶아서 삶은 콩을 봉지봉지 담아 냉동실에 얼렸다가 한봉지씩 꺼내서 갈면 되지 않을까?  일단은 2회분만 삶아보았다.  몸이 삐걱삐걱 녹스는것 같다. 운동을 못하니 배도 나온다. 아 ... 나도 늙는구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1. 00:01

자정 넘어서 확인한 뉴스에서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만감 교차.  그를 지지하던 사람이나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나 비슷한 기분이었을것다. 모두다 어리둥절하고 '뭐지?' 싶은 그런 심경. '각자 다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만다. 이미 그는 이곳에 있지 않으므로 우리들의 영향을 전혀 안 받을것이므로. 

 

그런데 이제서야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미국에 있을 때 '성추행 관련'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소속한 곳에서는 이 문제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하여 극도의 '함구령'이 유지되었다.  그러니까 최초 신고자에서부터 상황에 연루된 모든 사람에게 '일체 다른 곳에 이 일을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경계가 내려졌다.  나도 그 상황 속에 연루된 사람이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무척 불안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뭔가 더 많은 협조를 받고 싶었지만 한정된 숫자의 사람 외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가 진행되었다.  

 

성추행 관련 사건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나는 피해자 측의 사람이었는데 이 조사를 얼마나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하던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자측 사람들은 (나를 포함) 숨이 막히는 심리적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러다가 흐지부지하게 묻히는게 아닐까? 이런 불안감.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안감.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일은 '공정하게' 마무리 되었다. '가해자'가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얼마나 철통같이 보안이 되었던지 이 사건에 대해서 '관련 된 사람들' 외에는 전혀 '아무도' 몰랐다. 물론 수근수근하면서 알음알음 뭔가 감을 잡은 사람들도 발생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아 이것이 미국에서 상황을 수습하는 방법이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지나갔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상황이 끝났을때.  아무도 모른다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오직 관련자들만 알 뿐이다. 심지어는 그래서 그 '가해자'가 소리소문도 없이 한마디 말도 없이 그곳에서 사라졌을때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영전되어 떠났다'고 까지 상상하였다. 그런 소문이 한참을 돌았다. 그가 더 큰 물로 가기 위해서 이곳을 떠났다고.  그가 '승자'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그가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었으므로 상상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은 아주 공개 망신을 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편으로 내가 그 시스템에 수긍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너무 챙피해서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근심에서 우리가 벗어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살하지 않았고, 다른 영역으로 가서 잘 살아내고 있다. 과오는 과오일 뿐이다.  그 당시에 나는 '미국 시스템이 참 맹숭맹숭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나는 분명히 안다. 그때 그것이 공개되었더라면 '피해자'들 중에 '자살'로 뛰어들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지. 어떤 사건이 공공연하게 알려질 때 '자살'가능성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찾아온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 처럼, 한 사람의 과오는 그 과오에 대하여 지적받고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과오가 죽을 정도의 과오가 아니라면 죽으면 안된다. 

 

그래서, 이제 내가 나이를 먹고 이 사회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내가 '판단'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섰을때 나는 제일먼저 '그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부터 생각해본다.  가령 어떤 학생이 부정행위로 걸렸다. 그래서 이를 심의해야 한다. 그럴때 내가 제일먼저 다른 동료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이건 단지 그냥 부정행위일 뿐이야. 교정이 가능해. 이 문제로 학생이 패닉에 빠지거나 이 일이 트라우마로 남게 되면 안돼. 학생이 개선하는 방향과 방법을 찾아야 해.' 

 

옛날에 메릴랜드에 살 때, 하이웨이에서 교통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붙었다.  뭔가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교통경찰이 따라오면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갑자기 가슴이 뛰고 두렵고 초조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가?  차를 길가에 대고 창문을 내리고 경찰을 기다리던 나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헉!헉!  놀란듯한 가쁜 숨을 쉬었다. 나로서는 겁났다는 싸인 랭기지 같은거였다.  눈 크게 뜨고 놀란 표정과 함께.  --->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본 경찰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Calm down, calm down....Can you breathe?  Alright?" 진정해 진정해. 숨 쉴수 있지? 괜찮아?  이러면서 나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는 괜챦았다. 그냥 놀란 리액션이 좀더 드라마틱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경찰 입장에서 볼 때는 앞에서 어떤 아시아 여자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겠지.   사실 내용은 별게 아니었다.  경찰차가 갓길에 있을때는 차선을 바꿔서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면 1차선으로 옮겨서) 경찰차와 거리를 두고 가야 했는데 나는 차선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규정이 있는줄도 몰랐다. 그날 처음 알았다.  사실은 티켓 (벌금)을 받아야 할 사항이지만 네가 너무 놀란것 같으니 앞으로 주의하라고.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내가 대개 무척 놀란 표정을 짓곤 하지 ㅎㅎㅎ 교통경찰에게 불쌍하게 보여서 상황 모면하기 성공.)   그런거다. 매 다섯대 맞을 일에 목숨을 끊으면 안되는거다.  그리고 사회는 매 몇대 맞을일에 사람이 죽게 해서도 안되는거다. 그 교통경찰은 간단한 주의를 받을 일에 내가 숨이 넘어갈까봐 걱정이 되었던거다. 

 

잠깐 살다가는 인생인데, 한번 눈감으면 그걸로 다 끝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쪼록 피해자 분들도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시길 빈다.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히길 원했던 것이지 그가 죽어서 사라지길 원했던 것은 아니니까. 불안하고 화가 나실 것이다.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살아서 잘 견디고 이겨내시길 응원한다. 죽지 마시길.   

 

***  ***

얼마전에 유학 동문들과 밥을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나의 평소의 궁금함 --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대단하신 '대가리'들이 어떤 문제에 연루되어서 (뇌물이나 부정 청탁이나 파렴치 범죄나...) 교도소에 1-2년 다녀 온 후에 그들은 어떤 식으로 사회의 정상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1) 경제사범들은 그들이 정말 '대가리'들이라서 황제처럼 들어갔다가 황제처럼 나오신다. 

 

2) 정치사범들 역시 그들이 정말 '대가리'일 경우 몇년후에 다시 중앙으로 복귀한다.

 

3) 사회적  '대가리'인데 '파렴치 범'인 경우가 참 애매하단 말이다.  특히 미투상황 속에서 연루되었던 사회적 '대가리'들은 어떻게 과거의 영광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 이것이 내가 던진 그날의 '화두'였다. 

 

 

경제, 정치 사범들은 제자리로 곧바로 돌아오는데 3)번 케이스에 이렇다할 모범 케이스가 안보인다. 누군가 어떤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뒤집어 보면 이 사회는 경제 사범들에 대하여 너무나 관용적인것 같기도 하고. 경제사범들도 파렴치범인데 성폭행범과 다를바가 없는데 그들은 영광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것처럼 내 눈에 비쳐진다. 이 사회는 경제사범을 황제처럼 떠받들고 있는게 아닐까?   왜 사람들은 파렴치범인 경제사범은 슈퍼스타 대하듯 떠받들고 찬양하면서 성추행범만 손가락질하고 침뱉고 밟는가?  경제사범 처벌을 강화하라!!!!  성추행범의 사회적 망신에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  처벌강화! 처벌강화! 처벌강화!   사회적 망신주기를 멈추고 처벌을 강화하라!!  그것이 법치사회 아닌가?

 

 

뜬금없이....  문득.... 노회찬씨가 그게 그가 목숨을 버려야 할 과실이었나?  매 몇대 맞을 일에 목숨을 버리신게 아닌가?  왜 갑자기 노회찬씨가 그리워지는가... 내가 기억하는 사회적 인물들의 죽음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노회찬'씨의 죽음이었다. 아직도 가끔 그가 그립다. 우리들의 낭만이었던 정치인.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0. 03:55

7월 2일에 입국하여 자가격리에 들어갔으므로 7월 2일이 자가격리 Day 1 이지만, 성경읽기는 7월 3일에 시작했으므로 성경읽기 Day 1 은 7월 3일이다. 자가격리 스케줄과 하루 차이가 난다. 

 

 

Day 8 (자가격리 Day 9) 금요일 새벽에 구약 읽기를 마쳤다. (헥헥헥 숨차게 달림)

 

 

구약은 하루에 170페이지 읽는 것으로 계산을 했고, 신약은 하루에 90페이지.  첫 며칠은 집중이 잘 안되어서 진도가 안나가서 끙끙 앓았고 어제, 그제부터 속도가 붙어서 씽씽 달렸다.  중도에 포기하면 '천벌'을 받을까봐 고민을 많이 했다. 성경에 그런 말씀이 나온다 -- 하느님께 함부로 저 이것 하겠습니다 뭐 이런 약속을 하지 말라.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것을 하느님이 싫어하신다. 아이구야.  그래서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열심히 달렸다.  아 다행이다.

 

 

구약을 전력질주하듯 달리면서 배운 것 몇가지

  1. 인간은 참으로 하느님 말씀을 지겹게도 안듣는다.  은혜를 쉽게 잊고 언제든지 샛길로 빠질 준비가 되어있으며, 불평도 쉽게하고 번번이 하느님을 실망시킨다. 아주 하느님을 실망시키는데 선수들이다.  마치 부모 속 썩이기 위해 태어난 자식처럼 속을 썩인다. 
  2. 하느님은 인간에게 참 인내심이 많으시다. 딱 착한 부모님 같으시다. 참고 참고 참고 용서하고 용서하고 용서하신다. 죽이겠다고 결정하신 후에도 반성하면 돌이키신다. 예언서의 주된 내용이 뭔가하면 예언자들 풀어서 '혼내주겠노라' 하시고 웬만하면 곧바로 (그냥 참회하는 시늉만 해도)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용서해주시고 복을 퍼 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요나가 하느님의 이러한 태도에 불만을 품고 불평을 해 대겠는가. 하지만 하느님은 불평하는 요나마저 살뜰히 돌봐주신다.  참 좋으신 하느님이시다. 
  3. 재난과 고난 가운데를 걸어갈지라도 -- 설령 그것이 나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형벌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있다. 하느님이 주시는 형벌이라면 그것조차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하여 우리는 안심해도 된다. 형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놀라운 메시지이다.  이것을 이번에 새로 깨달았다. 
  4. 예언서 (예언자들이 나열된 부분)는 시간순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었다.  시기가 오락가락 한다. 나는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예언자들이 시간순으로 정리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5. 그리고 또 알게 된 것!  예언서들이 구약의 마지막에 정리된 것과  신약의 요한계시록이라는 예언서가 신약의 끝부분에 배치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약과 신약을 공히 예언서로 마무리를 했구나...
  6. 그냥 잡념 -- 코로나 난국에 사람들 바글거리는 클럽이나 비치에서 마스크도 없이 향락을 즐기는 군중의 모습과 구약의 망해가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때 마을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었으며 소돔이 망하기 직전에 롯이 사위들에게 함께 떠나자고 할 때에도 사위들조차 롯을 비웃었다.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상황에서 눈을 감는 군중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있으며 인류가 망하는 그 날까지 되풀이 될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나도 매일매일 이렇게 넘어지며 살고 있으므로.  인간은 어리석다.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의지하여 하루하루 사는 수 밖에 없어보인다. 
  7. 이번에 구약을 통과하면서 가장 큰 '득템'은 우리 하느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 전에는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역시 성경 통독을 할 때마다 크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이제 신약을 달려보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9. 22:17

점심에 남편이 약속대로 콩국수를 사다 줘서 맛있게 먹었다.  내일도 그 콩국수를 사다 달라고 했다.  콩국수가 좋은 이유는 일단 부드럽고 고소하고 속이 편안한데다가 국물 자체가 '두유'이므로 국물도 음료수 마시듯 안심하고 먹을수 있기 때문이다. 

 

 

자가격리에서 무사히 해제되기 위해서는 다음주에 재검 받을 때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 첫 검사에서도 깔끔하게 음성이 나와주었으므로 재검에서 다시 깔끔하게 음성 판정을 받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내가 기대할수 있는 최선이다.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고, 갱년기 여성인 나로서는 내 건강도 장담을 못하므로 조심 또 조심이 상책이다.)   나는 정말로 그동안, 이 오피스텔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체온계라던가 필수 아이템 주문한 것이 문앞에 배달되었을때 문을 빼곰히 열고 그것을 집어 들이거나, 남편이  내 '먹이'를 갖고 올때 빼꼼이 문을 여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무사히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어 저 멀리 눈앞에 보이는 '나의 숙소'로 귀환해야 한다. 

 

어제 회의를 했다. 동료들은 회의실에 모여있었고, 나는 온라인으로. 이제 이런 온라인 회의가 일상이 되어 크게 불편함도 없다. 나는 평소대로 있다가 화면 앞에 앉을때 립스틱만 바른다. 립스틱이 에티켓이다.  내게 자가격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묻는다.  조만간 미국에 다녀와야 하는 동료들이 있으므로.  그래서 내가 일목요연하게 영문으로 정리하여 알려주기로 했다. 나는 마치 내 조직에서 '선발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동료들 중에서 '자가격리'를 경험한 최초의 구성원이고 '아무도' 이게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다. 뉴스나 언라인에서 정보를 구할 뿐.  그래서 자가격리중인 내가 회의에 참석하여 내가 살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니 -- 회의 주제보다는 '자가격리' 주제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어떤 면에서 늘 '선발대' 같았다.  늘 새로운 것을 먼저 경험하고 그것에 대하여 종알거리곤 했다.  우리집 아이들도 늘 그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늘 뉴에이지, 얼리 어댑터고 우리는 엄마를 따라 가느라 헉헉 댔어요'가 두 아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이제 그들이 나보다 앞선 테크놀로지의 일꾼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내 얘기를 경청하는 편이다.  내게는 그들 전문영역의 지식은 없어도  그 너머를 내다보고 있으니까. 어떻게?  책을 읽으니까...  내가 어떤 영역의 전문가들인 내 아들들을 아직도 선도할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책을 읽기 때문이다.  책속에 다 씌어 있는데 뭐.  그리고 나는 매일 하느님한테 길을 물으니까.  아 아무튼 내 경험에 미루어 내 동료들 그리고 가을학기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자가격리 정보를 정리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내 일상은 대개  낮에 종일 낮잠이나 뒹굴거리면서 보내다가 해가 지면 깨어나서 성경읽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난관을 거슬러 올라가 본래 하느님께 약속드린대로 성경 통독을 마칠것이다. 

 

****    ****

성경통독을 하면서 내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매번 성경 통독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조금 새로운 것과 만난다) -- 속독으로나마 성경을 통독한다는 일은 내 영혼에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내린 성전을 재 건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하느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강을 건널때 이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전쟁중에 적군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고 그 언약궤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다윗 시대에 다윗이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자 하나 여호와께서 이를 승인하지 않으신다.  네 아들 솔로몬이 짓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의 완성을 보게 되는데 그 성전을 짓는 동안에도 많은 방해와 난관이 이어진다.  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성전 건축의 역사를 재미없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읽다가 문득 이런 각성을 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구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이구나.  그래서 완성된 성전을 묘사할때 그 언어가 그렇게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것이구나.  화려한 치장에 재미없어 할 것이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왜 이렇게 기쁨에 들떠서 세밀한 묘사를 했던 것인지  생각을 해 볼 만 하구나.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자가격리 공간에서 한여름에 지루한 묘사로 이어지는 구약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내 영혼의 무너진 성터를 다시 건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쌓아 올리도록 하자.  코로나 핑계로 여러가지 핑계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삶에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 예배를 드리나 딴짓을 했고, 기도를 드리나 딴짓을 했고, 기도한다고 하나 정말로 기도했는가 돌아보면 나는 안이하고 나태하다.  하느님은 말없이 나를 지켜보신다. 그 지켜보시는 눈을 마주하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분명 내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이 아직 남아있을것이므로.  오늘 밤도 성경속에서 보내야겠다. 

 

명불허전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미국식으로 채워졌다.  Victoria's Secret 도 내 삶의 일부인데 20년 가까이 그 속옷을 입고 살았다. 대개 세장에 얼마씩 싸게 판매하는 것 위주로 여러장씩 사다가 입는 식이었다.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미국을 오갈때마다 꼭 들러서 실용적이고 편안한 속옷들을 사서 나도 입고 가끔은 언니나 조카에서 선물도 하고 르했는데,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쇼핑을 못했다.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나도 거의 '자가격리'와 같은 생활을 했으므로 살 기회도 없었다. 

 

 

티브이 홈쇼핑에 한국산 속옷을 예쁜것을 팔길래 '일명 엄마 속옷'이라는 -- 아가씨들은 입지도 않을 평범하고 펑퍼짐해보이는 속옷 세트를 샀다.  인견으로 만들었다는 알록달록하고 경쾌한 무늬의 속옷인데 '세상에 다시 없이 편한, 안 입은것 같은' 속옷이라는 칭찬이 자자했다.  언라인으로 리뷰를 봐도 나쁘지 않았고 엄마와 딸이 함께 입는다는 말도 있고. 그리고 원래 한국에서 이런 실용적인 속옷을 참 잘 만들지 않는가?  그래서 믿고 샀다.  왔다.  모두 빨아 널어 말려가지고 예쁘게 정리도 해 놓았다. (감옥살이니까 심심풀이로).  그런데 오늘 새거 한장 입어보고 실망했다.  불편하다.  내가 평소에 입는 Victoria's Secret 보다 크기도 크고 펑퍼짐한 디자인이고 신축성도 좋고 촉감도 좋고 색상도 좋고 다 좋아서 정말 눈으로보고 손으로 만질 때는 '우리 나라 속옷 정말 잘 만들어!!!' 감탄했는데 -- 막상 입으니 매우 불편하다. 

 

 

어떻게 불편한가 하면 그 Y zone 이라는 부분의 고무줄이 살을 파고든다. 내가 살이쪄서 고무줄이 살을 파고 든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Victoria's Secret 입을때는 불편하지 않은걸.  가위로 고무줄 부분을 잘랐다. (그러면 속옷은 망가지는거지. 그래도 잘랐다) 고무줄 자르면 옷은 망가지지만 편안 할 줄 알았다.  살을 파고드는 고무줄을 잘라서 숨통을 트여 놓아도 여전히 불편했다.  작은걸 샀냐고? 아니 넉넉하게 입으려고 아주 풍신하고 펑퍼짐한 사이즈로 샀다. 그런데 내 체형에 안맞는다. 그러니까 촉감도 좋고 펑퍼짐하고  다 좋은데 고무줄이 살을 파고든다.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새로 산 속옷들을 아마도 가위로 고무줄 부위를 잘라서 딱 한 번 입고 버리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Victoria's Secret 속옷하고 맞대어 놓고 비교를 해보니 VC의 편안함은 그 디자인에서 오는 것으로 보였다.  VC는 Y zone 에 편안함 을 주기 위하여 그 선을 피해서 재단을 하고 마감을 해 놓았다. 살이 겹치는 곳에는 살만 겹치게하여 속옷의 이물감을 제거했다.  여기서 산 속옷의 문제는 살이 겹치는 곳에 고무줄도 겹쳐서 내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그걸 들여다보면서 '명불허전'을 생각했다.  괜히 VC가 속옷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은것이 아니군. 속옷 디자인에도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한 것이군.  그래서 오늘 새삼스럽게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Victoria's Secret 의 탁월성을 깨닫게 되었다.  VC 팬티와 브라는 내 평생에 가장 즐겨입는 가장 내 몸에 편안한 속옷이다. (인정). 

 

* 나는 양말목도 조인다 싶으면 가위로 잘라서 신고, 뭐든 내 혈관을 누르거나 조이는 것은 가위로 잘라서 숨통을 트이게 하는 편이다. 아니면 그냥 버리거나. 혈관을 조이거나 숨통을 조이는 것을 참지 않는 편이다.  편한 빤쓰 찾아 입기도 쉬운 일이아니구나. 싸건 비싸건간에 빤쓰가 편해야 몸이 편하지... (결론).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8. 18:58

 

자가격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 이라면 나는 이것을 추천하고 싶다. 소형 믹서기.  이 소형 믹서기는 남편과 내가 세달 가까이 신나게 사용하다가, 둘이 먹고 살기에는 좀 더 큰것이 필요하다 싶어서 큰 믹서기를 산 이후에  주전에서 '후보 선수'가 된 것이다. 자가격리 들어올 때 남편에게 이것을 갖다 달라고 했다. 

 

소형 믹서기, 바나나 한송이, 우유 천밀리. 요거트. 매일 저녁에 요거트 한개, 바나나 한두개, 우유 이렇게 해서 믹서기에 씽씽 갈아 먹으면 한끼가 된다.  이렇게 한끼 먹으면 '건강식'이라는 느낌도 들고 밥걱정 따로 안해도 되고 속도 편안하다.  미국에 가서 아들과 지내는 동안에도 저녁은 대개 이렇게 먹었다. 아들도 내가 만들어 주면 잘 먹었다.  원래 집에서는 직접 집에서 만든 요거트에 여러가지 견과류, 건강에 좋은 채소등을 섞어서 스무디로 만들어 그것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그런 아침 식사가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하루에 먹는 식사 내용은:

 

1. 아침에는 햇반 한개 꺼내서 밑반찬 + 김 + 체다치즈 이런것으로 든든하게 먹는다.  햇반이 좋은 이유는 내가 딱 한개만 먹으므로 '과식'을 안하게 된다. 

 

2. 점심에는 대개 남편이 근처 식당에서 뭔가 식사를 사다 준다. 물냉면, 비빔냉면, 빵... 그런 식이다.  내일은 '콩국수'를 사다 달라고 신청해 놓았다. 

 

3. 저녁은 바나나 요거트 우유 스무디 이것을 먹는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참외를 먹는다. 

 

식사를 매우 조심하고 있는데 갇혀 지내므로 운동량이 적고, 군살이 붙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들러서 돌봐줄 가족이 없다면 자가격리 들어오기 전에 장을 봐야 하는데 장을 볼때

 

 

  1.  햅반 14일간 먹을 만큼
  2. 김구운것
  3. 체다치즈
  4. 좋아하는 밑반찬 (단무지, 김치, 뭐, 생각나는 것)
  5. 우유 1000미리 두팩
  6. 떠먹는 요거트 2주일분.
  7. 과일
  8. 과자 몇가지
  9. 라면을 좋아한다면 컵라면 몇개, 봉지라면 몇개.

 

이정도면 될 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8. 18:09

  1. 3분 쇠고기 카레 2
  2. 3분 쇠고기 짜장 2
  3. 신라면 5
  4. 참치캔 3
  5. 스팸 3
  6. 햇반 10 
  7. 도시락김 8
  8. 육개장 1
  9. 쇠고기국 1

 

 

자가격리 7일만에 드디어 구호식량이 도착했다. 감사하다. 여기서 실제로 내가 먹을수 있는 것은 햇반과 도시락 김.  나머지는 '편식이 아주 심한 불량시민'인 내가 안 먹는 식료품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이지 구호품 보내주신 분 잘못은 아니다. (남편이 내 대신 먹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스팸은 먹지 않는데... 내가 참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내 삶은 늘 그랬다.  밥상에서 내가 먹을수 있는 것만 말없이 골라 먹는 식으로 한평생 살아왔다. 나는 스팸도, 쇠고기 짜장도, 카레도, 육개장도, 소고기 국도, 아무튼 고기가 들어간 것은 안먹는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꽤 갑갑한 종자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나의 식성을 배려해주며 30년 넘게 살아준 남편에게 감사할 노릇이다. 선물 받은 기념으로 햅반을 찬물에 말아서 김과 함께 저녁 한끼를 먹어보자.  아무튼 구호식량을 받으니 이제야 내가 이나라에 세금을 내고 사는 시민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고가 많으시다. 

 

***  ***

 

아, 한달전에 대한항공으로 미국 갈 때,  대개 미국행에 주는 것이 (1) 비빔밥 (2) 삼각김밥이나 빵 같은 간식 (3) 서양식 한가지  이런 식인데,  그래서 (1) 비빔밥을 먹었고 (2) 삼각김밥 대신에 바나나를 줘서 그걸 먹었고 (3) 서양식 한가지로 닭고기나 돼지고기 두가지 중에서 한가지를 고르라고 한다.  나는 난감했다.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먹지 않는데... 평소에는 닭과 생선 둘중에 하나 고르라고 해서 나는 생선을 골랐는데, 그날은 닭과 돼지 중에 택일이다. 난 두가지 다 안먹는다.  그래서 "난 둘다 안먹는데 어떡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까 먹은 '비빔밥'이 남아 있는데 그걸 드시겠냐고 묻는다.  그래서 냉큼 "예!!! 비빔밥 주세요!!!" 했다.  사실 기내식으로 내가 선택할수 있는 최고가 '비빔밥'이다.  나머지는 그냥 피치 못해서 먹는거다.  그래서 그날은 운 좋게 비빔밥을 두번이나 먹었다는 말이지.  나는 평생 나의 '편식 취향'에 대해서 죄책감과 열등감 (남들이 다 먹는걸 나는 못먹는다는 열등감과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때 까탈을 부리지 않는 편이다. 늘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다. 나의 취향은 늘 꾸지람의 대상이었으므로 몸에 익은 눈치 살핌이다.  그래서 한번도 주어지는 음식에 대해서 내 목소리를 내 본적이 없었는데 -- 그날 '난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안먹는다'고 말했을때, 승무원이 '그러면 비빔밥 줄까?' 하고 물었을때 그 승무원이 '천사' 같이 보였다. 참 감사했다.  '왜 갑질이냐 주는대로 처먹지!' 뭐 이럴수도 있었을텐데.   (사실 나 어릴때 우리집에서는 내가 이것 저것 안먹으면 '주는대로 처먹지 왜 속을 썩이냐'는 피드백이 주로 날아다녔다.)  지금도 나는 주는대로 얌전하게 처먹는 편이다.  다 내탓이니까. 

 

 

결론은 -- 그날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못먹는 내게 비빔밥을 제공해준 그 승무원님 정말 고마우신 분이다.  내인생 최고의 승무원이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