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7. 8. 15:31

어제 실내운동이 내게 벅찼기 때문에 몸이 아팠다.  그래서 오래 오래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 내가 쓰던 빨간 가방을 보았다.  그것이 그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다니...

 

나는 국민학교 5학년 시절의 학교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계단을 다 올라섰을때 내 눈앞에 내가 들고 다니던 빨간 가방이 눈앞에 들어왔다. 가방 뚜껑에 매직으로 선명하게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내 가방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무서운 꿈이었다.  그 빨간 가방에 적힌 내 이름을 본 순간 나의 모든 '죄'가 그 가방안에 담겨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잠을 깼다.  아주 무서운 꿈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꾼 '죄의 꿈'이었다. 

 

'죄의 꿈'이란 -- 몇가지 반복되는 장면인데 대개는 내가 이불속에 혹은 벽장안에 무언가 내가 죽인 시체를 숨겨 놓고 있는 상황속에서 사람들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것이다. 곧 내가 숨긴 시체가 만천하에 드라나려는 찰나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지. 그러한 꿈을 꾸면 나는 몸이 아프고 그런다. 전에는 자주 이런 악몽에 시달렸는데, 요 몇년간은 통 이런 꿈을 꾸지 않았다. 내 영혼이 좀더 죄에서 가벼워진걸까 그런 상상을 했었다.  '죄의 꿈'이 다시 내게 몇 년만에 돌아왔다.  빨간 가방은 전혀 새로운 꿈의 패턴이다.  '무서운 죄의 꿈'이라는 내용은 동일한데 여태까지 반복되던 장면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장면이랄까.   내가 어릴때 갖고 다니던 빨간 가방이 왜 그렇게 무섭게 여겨지면서 그 안에 무시무시한 나의 죄가 들어있다고 상상하게 된걸까?  꿈은 엉뚱하다.  

초등학교에 다닐때, 6년간 나는 학교가방을 두번 새로 갖게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갈때 엄마가 사 주신 빨간 가방은 -- 지금 돌아보건대 그다지 품질이 좋았을리가 없는 가방이었을테니 -- 손잡이에 조금씩 금이가다가 끊어졌다.  가방은 멀쩡한데 가방 손잡이 끈이 끊어지니까 엄마는 가방 손잡이를 집안에 굴러다니던 헝겊으로 칭칭 감아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핸드메이드, 핸드 크래프트, 아주 특별한 가방 손잡이의 탄생이었지만 (요즘 멋쟁이들은 멀쩡한 가방의 손잡이도 일부러 멋을 부리느라 스카프로 칭칭 감아준다) 어린 나로서는 참 챙피스러운 노릇이었다.  그냥 남들하고 다르고 우중충한 나 자신이 싫었다.  그렇다고 그걸 엄마에게 투정부릴 처지도 못됐다.  나는 내가 부모에게 뭔가 불평하거나 요구하면 안되는 존재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 우리식구 소속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느낌으로 살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우중충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런 '챙피한' 가방을 일년도 넘게 갖고 다니다가 3학년 봄날, 할머니가 서울집에 오셔서 며칠을 지내다 가시게 되었는데, 할머니 주위에 온가족이 모여앉아 모처럼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때 -- 나도 용기를 내어 "할머니 나는 학교 가방이 너무 챙피해요"라고 말했다.  내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할머니, 이 가방 손잡이 끈이 끊어졌는데 엄마가 헝겊으로 이걸 감아줬어요. 나는 챙피해서 이 가방이 싫어요" 뭐 이런 얘기를 할머니께 제법 신나게 떠들어댔다.  할머니는 가방에 책만 잘 들어가면 되는거지 가방끈이 뭐가 어떠냐고, "너희 고모들은 이런 가방도 없어서 책보자기에 싸가지고 핵교를 다녔는데, 너는 팔자가 좋아서 불평이 많구나" 하며 나를 나무라셨다. 사실 맞는 말씀이다. 나도 나보더 열살쯤 많은 우리 막내고모가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학교로 가는걸 매일 보면서 컸으니까. 

 

그렇지만, 할머니는 나를 야단을 친 후에 언니와 나를 시장에 데리고 가셔서 새 가방과 새 신발을 한켤레씩 사 주셨다. 새 신발을 사 주신 이유는, 내가 해져서 엄지 발가락이 삐죽 나오는 헌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할머니가 보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우리 손자들이 한꺼번에 키가 쑥쑥 크느라 신발이 이렇게 구멍이 나는구나"하면서 흐뭇해 하셨다.  그렇다. 내가 엄지 발가락 부분이 구멍이 나서 엄지 발가락 일부가 훤히 보이는 신발을 신고 다닐때도 우리 부모님들은 '키가 갑자기 크고 발이 갑자기 커서 저렇게 신발에 구멍이 난다'고 했을 뿐이고, 그래서 나는 그것은 챙피할 줄 도 몰랐다. 신발 뚫어진것은 챙피한줄 몰랐고, 가방 끈만 챙피했다.  할머니는 그날 언니와 나에게 빨간 새 가방과 빨간 새 신발을 사 주시고,  봄바람에 옷고름을 날리시며 할아버지와 시골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1학년 입학 할때 엄마가 사준 가방, 그리고 3학년때 할머니가 사준 가방 그렇게 두개의 가방으로 국민학교를 보냈다.  

 

내 기억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 달콤하다. 호랑이 사자처럼 성정이 무서운 분들이셨는데 그래도 그분들의 기억은 늘 따뜻하다. 내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더 큰 은혜를 입었으련만 - 엄마 아빠의 사랑은 당연한것 같고, 어딘가 내가 차별받았다는 억울한 느낌이 더 많고 --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달콤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나도 잘 설명이 안된다.  내 빨간 가방속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죄많은 인생이란 것은 잘 안다마는 ... 나는 죽을때까지 나의 죄를 반복할 것이고, 가끔 악몽에 시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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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꿈은 오늘 오후에 있을 회의 때문인걸까?  내가 속한 위원회에서 어떤 '평결'을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류들을 꼼꼼히 살폈고, 내가 잘 모르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내가 추측한 것들에 대하여 전문가의 자문도 구해서 대강의 나의 입장을 정했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 이러한 문제를  '교육적인 측면'에서 '사람을 잘 키워내는 측면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평결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것이다.  상황은 파악이 되었는데 그러면 어떻게 수습 할 것인가?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나 깊은 상처로 남지 않게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문제를 고민했었다.  그 고민 때문이었을까?  그 꿈의 메시지는 -- '너는 너의 과거의 죄를 되짚어 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일을 판단하라'는 것일까?  정말 그걸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오히려 더욱 성장할수 있도록 돕는.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