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7. 11. 22:08

옛날에, 자식들이 아직 어릴 때, 고민도 많고 울통불퉁한 시기를 지날 때 내가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내용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네가 무슨 실수를 하고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혼자 해결하기 힘들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뭐든 도와줄게." 

 

자식들이 내게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극복해낸 일화들이 더 많겠지만 - 그래도 때때로 힘이 들 때 아이들은 내게 와서 문제를 토로하곤 했다. 나느 훌륭한 엄마도 아니고 아주 불량엄마도 아니고 그냥 보통의 엄마이고 (때로는 상대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안심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음을 인정한다. 아들은 패도 되는줄 알았다). 내가 철이 들어 "전에 내가 너희들 때린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성인이 된 아들들에게 사과를 하면 작은 아들은 정색을 하면서 "엄마가 잘 못하신거 맞아요." 나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고  군복무을 마친 큰 아들은 "됐어요 엄마. 다 맞을만해서 맞은거지.  임마 엄마가 때리신걸 갖고 뭘 따져"  이렇게 너그럽게 나의 과오를 용서해준다.  아무튼 내멋대로 내 기분 내키는대로 자식들을 키우고 가끔 패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철권 마징가제트' 처럼 '엄마에게 말하면 뭐든 해결된다'는 그런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작은 아들은 심지어 그의 '첫경험'까지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큰 아들은 내게 신세한탄을 많이했다.  적어도 그들은 내가 그들을 품어줄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니까. 엄마는 굉장한 존재이니까. 

 

남편에게도 나는 가끔 그런 얘기를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20년 전에도 나는 남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이 닥치고, 무슨 실수를 해도 너무 걱정하지마. 나는 괜챦아. 내가 다 막아줄게."  그래서인지 남편은 정말로 사고를 친 것까지 내가 묻기 전에 내게 와서 이실직고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실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심하게 태평하다. 

 

어느 도시의 시장님이 갑자기 증발되었는데, 그 증발의 사유가 '성추행 혐의' 와 연관이 된것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마도 소문에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소문을 사실이라고 치고.  나는 남편에게 당부했다 --"있쟎아, 당신이 똑같은 상황에 빠지면 증발하지 마, 왜? 당신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겁먹지 마. 내가 다 해결해줄게.  내가 당신하고 함께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빌거야. 혼자 빌면 무섭지? 나하고 함께 빌면 무서울거 없어.  그러니까 말야, 무슨 실수를 하고 어떤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이 생겨도 기죽지 마. 내가 있으니까.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싹싹빌고 다시는 그런 짓을 안하면 되는거야. 피해자들과 손 맞잡고 웃을수 있을때까지 싹싹 빌어야 하는거야. 그게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 그렇게 피해자들이 상처를 씻어내릴때까지 반성하고 싹싹 빌어야 하는거야. 그게 필요해. 피해자들에게는 바로 그런게 필요해.  그게 진정한 사죄인거지. 도망가는건 그냥 도망에 불과한거야. 죽어도 벗어나기 힘들어. 그러니까 나하고 같이 가서 싹싹 빌자.  도망가지 마. 알았지? 내가 다 해결해줄게." 

 

* 그게 큰 문제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 피해자의 기억속에 그것들이 모두 증발되어 '아무것도 아닌일'로 남을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참회와 '사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의  말도 안되는 '만담'이 싫지 않은지 남편은 킥킥 웃고, 나를 위하여 설겆이를 해 주고 집으로 갔다. 

 

말못할 성추행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사는 입장에서  내가 '성추행'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다.  그냥 한편 생각하면 - 죽으면 태워 없어질 혹은 썩어 없어질 사람의 몸이 뭐 별거인건가? 성추행이건 성폭행이건 사실 기억에서 사라지면 별것도 아니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문제인거지.  두고두고, 죽을때까지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  그러니까 이 일은 문제일수도 문제가 아닐수도 있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이런 기억을 털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니다'에 집중하라는 말씀을 종종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거니까. 그게 쉽지 않다는거지.  나도 지금도 불쑥불쑥 분노가 치밀며 '저새끼 아직도 사과 안해..저 천벌을 받을 새끼....' 이런 생각을 하곤 하니까.  그런데 그 '저새끼'는 자신의 과오를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르지.  때로는 '그게 천벌 받을 짓이었을까?' 스스로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성추행이나 성폭행 당한 사람이 이것을 발설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이것을 공론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당해봐야 알겠지. 안당해보면 모르지.  차라리 남이 그러면 발설하기가 쉬울것이다. 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면 이건 출구가 없는거다. 직장도 마찬가지이고.  차라리 교통사고가 간단한거지. 

 

어쨌거나 피해자가 그 기억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약은 가해자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이다.  사과와 보상 없이 뺑소니를 치면 안되는거다.  그러니, 혹시 내 아들이, 내 남편이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그들의 손목을 이끌고 가서 싹싹 빌겠다는 것이다. 손이 닳도록 싹싹 빌어서 '원한'을 풀어 내야만 한다. 

 

인간이 신이 아니니,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건 얼마든지 실수하고 죄를 저지를수 있다.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지면 나는 그것을 감당해야만 하는거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거다. 나는 누군가 비를 맞으며 걸어 갈때 함께 비를 맞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