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046건

  1. 2020.12.22 구세군 자선냄비: 두명의 일꾼
  2. 2020.11.20 좋은 약은 입에 쓰나
  3. 2020.11.12 창문을 달았습니다
  4. 2020.11.10 희망
  5. 2020.10.26 맨발로
  6. 2020.10.14 중독
  7. 2020.10.08 감사
  8. 2020.10.07 기도
  9. 2020.10.07
  10. 2020.10.05 낭만에 대하여
  11. 2020.09.30 날다람쥐족 발견
  12. 2020.09.23 맨발로 2
  13. 2020.09.22 공부하다 죽어라
  14. 2020.09.22 맨발로 뛰는 뇌
  15. 2020.09.22 맨발로
  16. 2020.09.17 나의 영웅 윤봉길 의사의 손녀가 할 소리는 아니지
  17. 2020.09.17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18. 2020.09.16 걷기 기록: 섬 한바퀴
  19. 2020.09.10 거머리, 국민돈에 맛들이면 안떨어져
  20. 2020.09.08 이기적인 사람들
Sketch2020. 12. 22. 12:55

 

미국집에 온지 열흘이 넘었다. 착실하게 콕박혀 지내다가 생필품을 사기위해 근처 월마트에 다녀왔다. 

 

월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서려는데 출구 앞의 자선냄비 앞에서 풍채좋은 털보 사나이가 요란하게 종을 울려댔다. 시절이 크레딧카드나 스마트페이로 가고 있으니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도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이럴때는 공연히 미안해진다.  이때 차의 캐비닛에 비상금을 숨겨 놓았던 것이 기억나서 50여미터 떨어진 내 차로 달려가서, 돈을 꺼내가지고 전속력으로 그 자선냄비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돈을 넣고 다시 차로 향하는 길. 털보 사나이는 종을 흔들어대며 내게 "Thank you very much! God bless you!" 를 외쳤고, 나도 마스크를 낀채로 "God bless you!!!"하고 기쁘게 외쳤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발견했다. 내가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미처 못보고 지나쳤을 또다른 자선냄비가 길의 중간쯤에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월마트에 입구가 두군데 있었는데 내 차와 가까운 입구에도 자선냄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이 가까운 자선냄비를 못 보고 지나쳐 훨씬 먼곳까지 달려가야 했을까?  그 자선냄비 앞에도 구세군이 있었는데, 그는 냄비와 일미터쯤 떨어진 의자에 구부리고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앞의 덩치 큰 털보 사나이에 비해서 젊고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이 젊은 남자는 스마트폰을 보다가 이따금 건성으로 종을 흔들었다.  아, 내가 그를 발견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저녁, 해도 지고 주위는 어둡고 사람도 별로 없는 코로나 난국의 월마트 앞.  두개의 자선 냄비가 서 있었는데 한 냄비를 담당한 남자는 연신 종을 울려대고 있었고, 다른 한 남자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의 파란 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듯 가까운 냄비를 못본채 지나쳐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먼 곳의 자선냄비까지 달려갔다. 

 

***

요즘 나는 성경통독을 하고 있다. 하루에 300 쪽씩 성경을 속독으로 읽어나가면 6일이면 구약, 신약을 마칠 수 있다. 오늘이 5일째이다. 구약을 마치고 신약으로 들어서서 사복음서를 마치는 것이 오늘이 숙제이다.  내일 끝낼수 있을까? 잘 모른다. 끝까지 가 봐야 안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는 끝낼수 있기를...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명의 일꾼의 일화를 떠올린다.  세명의 일꾼에게 주인이 먼길을 가기전에 동일한 액수의 돈을 주고 잘 경영하라 한다. 한사람은 그것을 곱절로 불려놓는다. 또 한사람도 제법 불려 놓는다. 마지막 한 사람은 받은 액수를 그대로 간직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일꾼의 문제를 지적하셨다. 

***

자선냄비를 지키던 두 사나이를 생각한다.  월마트에 두개의 입구가 있는데 한쪽 입구를 지키는 사람은 연신 종을 흔들어 자선냄비가 있다는 것을 알렸고, 다른 쪽 사람은 한눈을 팔며 자리를 지켰다.  나는 한눈파는 그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종을 흔들어대는 사나이에게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 생각했다. 나는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사람이 오건 안오건 상관없이 오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종을 흔들어대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스마트폰에 한눈을 팔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가?   나는 '한눈팔이'임이 자명하다. 

 

 

우리 하느님께서 내게 '한눈 팔지 말고 깨어서 종을 흔들라'고 내게 가르침을 주시다.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의 뇌는 썩을지 몰라도  (0) 2021.01.02
무료 독감백신 접종 (Free Flu Shot)이라니...  (0) 2020.12.27
좋은 약은 입에 쓰나  (0) 2020.11.20
창문을 달았습니다  (0) 2020.11.12
희망  (0) 2020.11.10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1. 20. 09:45

조태수 선생의 서예 작품을 웹에서 빌려옴. 

 

이따금 졸업생들이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 지도를 해 줄 때가 있다.  모 교수가 학생을 한 명 부탁한다고 보냈다.  대학원 진학 지도를 할 때는 일단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학업계획서 (Statement of Purpose)' 를 써 와야 나를 만날 수 있다.  본인이 모두 다 알아서 한 후에 내 도움을 받으라는 취지이다.  하룻강아지-애도 아니고 내가 제 에미 애비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서 밥상 차려주면 그 자식은 대학공부 뭣하러 했는가.  본인이 다 알아서 하고 주위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한 학생이 학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나를 만나기를 청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 짐작은 했지만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하는 과목중에 대학원 진학준비 과목은 없었으니까 서툰것은 당연하다.  나는 세상사람들이 모두 선호한다는 미국의 모 대학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누군가 쓴 박사학위 과정 SOP 샘플과 그 학생이 쓴 샘플을 나란히 놓고 첫 문장만 비교를 해 보라고 했다. 

 

최고대학의 박사과정을 신청한 사람의 첫 문장에는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 지원하며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가 짧고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우리 학생의 첫문장은 -- 말하자면 (그냥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 저는 전남 함안의 중농집안의 둘째 딸/아들로 태어나 모 대학을 마치는 동안 자상하신 부모님의 보살핌과 교수님들 품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던중 어느날 홀연히 공부를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비교를 시킨후 학생에게 물었다. 

 

"너, 내가 너와 대화를 하는데 두가지 방법이 있어.  첫번째 방법은 - 나는 영어로 너와 대화를 하면서 미국인들이 피드백 주듯이 너에게 피드백을 줄거야. 두번째 방법은 - 나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면서 한국인들이 피드백 주듯이 할거야. 너는 둘중에 무엇을 원하니?"

 

학생: "....모르겠는데요....그게 어떻게 다른데요?" (어리둥절)

 

네가 미국식을 선택하면 - 나는 굉장히 부드럽고 친절한 표현을 쓸 것이고, 너는 아주 편안할거야. 위로와 용기를 받겠지. 그리고 너는 확신에 찰거야. 나와의 시간이 행복할거야.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되겠지.  그리고 너의 지원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하기가 어렵겠지. 

 

네가 한국식을 선택하면 - 너는 갑자기 가슴에 막 화살이 날아와서 팍팍 박히는 듯한 고통을 느낄거야. 급작스러운 우울 모우드에 들어가거나 다시는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 질지도 모르지. 너는 아마 두번다시 나를 보고 싶지 않아질거야.  그래도 너는 뭔가 손에 쥐는것이 있게 될거야.  지원 결과에 대해서 너 스스로 예측이 가능해 질거야.

 

학생: "...한국식으로 살-살- 해주시면 안될까요? (빙긋)"

 

"글쎄...한국식으로 달콤하게 너를 기쁘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단다.  영어식으로 할때는 나는 미국인의 탈을 쓰고 달달한 사람이 되어 네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말거나 너를 위해 박수쳐주고 응원해주고 하겠지. 너는 내가 뭐라고 말한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거고, 나는 알바 아니라고 모든것을 하늘에 맡기고 말겠지.  나이쓰하고 쿨하게 말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바로 칼을 들고 환부를 쿡쿡 찔러서 잘나내고 썰어내고, 파내고, 아주 난장판이 될거야.  무척 아프지.  한국식으로 살-살-은 없어. 나하고는 그게 안돼. 왜냐하면 나는 살-살 하는 재주가 없거든."

 

 

 

그래서 결국 그와 나는 한국식으로 막 '칼바람'이 부는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한 40분쯤 면담을 마치고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떠났다.  나는 바쁘니까 그 일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한달여 만에 그에게서 다시 면담 요청이 왔다. 

 

SOP를 다 뜯어고쳐서 다시 쓰고 영어과 최고참 교수 (미국인)에게 부탁하여 그의 리뷰도 한번 거쳤다고 이실직고 했다. 마침 나와도 잘 통하는 교수라서 "오! 그 교수가 한번 리뷰한 글이라면 - 내 수고가 덜어지겠구나! 땡큐!" 외쳤다.  이제 나를 만날 준비가 된것 같아 면담을 신청한다는거다. 

 

줌으로 만났는데, 그의 일성은 이러했다:

 

"아이고, 지난번에 하도 두둘겨 맞아서 제가 많은 반성을 하고요, 다 뜯어 고쳤고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요즘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 공부하러 다니고 있어요. 필기시험은 통과했고요... 그런데 교수님 한국에서 받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이 미국에서도 통할까요?"

 

야, 야, 이눔아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만국 공용어일진대 (내가 프로그래밍을 안배웠어도 그정도는 안다), 네가 그걸 다룰수 있기만 하면 되는거지 자격증이 한국산인지 미국산인지가 뭐가 중요해!!! 너는 배운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미국인 고참 교수가 리뷰해주면 SOP가 완벽할줄 알았겠지? 천만에 말씀이다. 미국인 교수들은 그냥 쓰르륵 읽어보고 문맥이 이상한것만 슬쩍 코멘트를 할 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말이 되건 안되건 저자의 고유성을 최대한 지켜주려한다.  한국인 (나의) 스타일은 - 문제점들을 샅샅이 지적하여 학생이 말끔한 한채의 집을 짓도록 만들어낸다. 

 

내가 지금 어느 졸업을 앞둔 학생의 이야기를 늘어놓는/기록에 남기는 이유는 녀석이 나를 흐뭇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따끔한 지적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 정말로 내가 지적질을 한대로 처음부터 다시 '집을 지었다.'  게다가 기왕에 대학원 준비에 잔소리를 하는김에 "다가오는 시대는, 아니 이미 다가온 시대는 빅데이터의 시대이고 알로리듬의 시대라서 네가 어떤 전공을 하건간에 기본적인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코딩도 좀 배우고 너 스스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능력이 되면 대학원에서 너는 프로그램 전체를 회를 쳐서 날름날름 먹을수도 있게 되는거다.  입학허가가 문제가 아니라 너를 모셔가러 들거다"  뭐 이런 노랫가락을 읊었는데 이 친구가 그 문제를 심각하게 듣고 - 행동으로 옮기고 새로운 도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참, 이렇게 내 말을 곧이 곧대로 알아듣고/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내 자식도 내 말을 안듣는 이 판국에.)

 

그 친구는 몇달 후에 입학신청서를 제출하기 직전에 다시한번 나의 리뷰를 받기로 하고, 그 사이에 몇가지 자격증을 지원서에 추가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줌에서 떠났다.  미리미리 알아서 준비를 하고,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여 리뷰를 받고, 장차 도움이 될 기술을 미리 익혀놓는 성미이니 그 학생은 전투적으로 자기 삶을 잘 개척해 나갈 것이다.  흐뭇하다. 

 

추신: 그런데, 사실 막 칼춤을 추는 나도, 남의 비평이 무섭다. 나도 아주 나약하고 겁많고 소심한 사람이라 남의 평가를 회피한다. 그러니 나의 무지막지한 평가를 소나기 맞듯 다 맞아내는 그 선수가 대단한 선수이긴 하다. 대단한 젊은이이다.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료 독감백신 접종 (Free Flu Shot)이라니...  (0) 2020.12.27
구세군 자선냄비: 두명의 일꾼  (0) 2020.12.22
창문을 달았습니다  (0) 2020.11.12
희망  (0) 2020.11.10
Power of Kakao Talk Class Channel: Real Time Collaboration  (0) 2020.03.13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1. 12. 12:30

 

하느님, 수요일 아침에는 제가 기도회를 열고 친구들을 맞이해야 하지만, 어제는 기도회를 열어 놓은채 저는 새벽차를 타고 천안으로 갔습니다.  한국 해비타트가 천안의 시골 마을에 짓고 있는 집 공사장에 가서 돕기로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죄송하게도 수요 기도회에는 두명이 모여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느님, 늘 있던 자리에 제가 안보여서 서운하셨겠지만, 그 시간에 저는 창문 공사를 했습니다. 

 

하느님 창문은 아주 아주 무거웠고, 이 창문을 3층까지 둘이 서로 마주보며 들고 올라갈때는 손에서 힘이 빠져서 자꾸만 무거운 창틀이 제 손에서 흘러내리고, 계단 한개를 올때마다 허벅지까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그래도 혹시라고 내가 놓쳐서 창문이 깨질까봐 저는 그것을 몹시 걱정했습니다.  하느님, 저희 일행은 150여개의 창문을 새로 짓는 집에 끼웠습니다. 그 새 집들은 생계가 어려워 '집'다운 집에 살아보지 못하던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 집입니다. 

 

저희들은 그 집의 창문을 달았습니다. 이 집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때, 장밋빛 동이 틀때, 혹은 비오는 풍경을, 눈이 내리는날, 아름다운 황혼을 -- 저희가 옮겨다 심은 그 창문으로 내다보겠지요.  하느님 저희가 창문을 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하루치 - 한줌의 햇살같은 노동이, 뭐 그리 대단할게 있을까마는 저의 노동보다 저는 많은 선물을 받은것 같습니다. 

 

 

 

 

멀미가 날것 같은 - 노동의 피로감도 깊고 달콤한 잠으로 거뜬히 떨쳐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맞은 새날, 하느님 저는 아직 쓸만한거군요. 한참 젊은 남자 동료들과, 한참 덩치 큰 외국인 동료들과  똑같이 일을해도 하느님 제가 체력적으로 거뜬 한것은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저를 호위하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겠지요. 하느님 고맙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이끄시는대로 겁없이 나아가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가라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겠습니다. 하느님, 저를 하느님의 계획대로 쓰시다가 어제의 햇살처럼 맑고 따뜻한 날 저를 데려가소서.  하느님 참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www.habitat.or.kr/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세군 자선냄비: 두명의 일꾼  (0) 2020.12.22
좋은 약은 입에 쓰나  (0) 2020.11.20
희망  (0) 2020.11.10
Power of Kakao Talk Class Channel: Real Time Collaboration  (0) 2020.03.13
윤봉길 의사님...  (0) 2020.02.12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1. 10. 15:42

Hope by George Frederic Watts

 

 

어제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두시간 수업을 열정적으로 하고 나면 맥이 풀리고 무척 피로하다), 모르는 어떤 학생이 들이닥쳤다.  아, 며칠전에 학교의 상담선생님이 복도에서 스칠때 누군가를 보내겠다고 했었는데 그 학생이었다. 상담사 과정을 모두 마친, 그래서 국제 대학 기준에 부합하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 선생님이 내게 학생을 보낼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판단하기에 그 학생에게는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지 가늠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잘생기고 틀도 좋고, 유명브랜드의 옷으로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치장하고, 그리고 가방에서 꺼내는 컴퓨터며 갖고 다니는 도구들이 모두 명품들이었다. 내가 갖고싶어하던 태블릿도 꺼내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당연히 자신이 향유할수 있는 것들이란 자세로 그렇게 모든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졌건만.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통의 강을 혼자서 허우적대며 건너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 이제 열아홉 학생이 원형탈모로 머리 피부가 듬성듬성 비쳐졌다.  그는 근심이 많았다.  앞으로 장차 일어날 일에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근심을 했다. 나는 세상에 저렇게 근심이 많은 사람이 있을수 있을까? 경이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이 걱정쟁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제 뇌가 멍청해서 그런겁니다. 제 뇌가 멍청해요."

 

90분간 이 학생과 시간을 보내고 내가 그에게 내 준 숙제는 이것이다: "혹시 말야, 네가 또 나를 찾아올 마음이 들거든 다시 와도 좋아.  그런데 내게 다시 오게 된다면, 너에 대하여 열가지 '장점/좋은점/매력적인점/자랑하고 싶은점'  그러니까 네가 너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 점 열가지를 적어가지고 와서 내게 말을 해줘.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그 학생을 보내고 난 후, 나 역시 심히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열시간 가까이 죽은듯이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하고 우울한 기분. 그 친구에게 나의 기운을 다 빼앗긴것 같은 기묘한 공허감.  나는 속으로 혼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향해 욕을 해 댔다 --"어떤 배 쳐부른 집안이 애새끼를 쥐잡듯 잡아가지고 멀쩡한 애를 아주 못쓰게 만들어 놨구나."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은 왜 그 애를 저한테 보내신겁니까. 저는 능력이 없는데요. 그 녀석의 우울증이 저한테 전염된것 같아서 저도 기운이 없고 기분이 안좋습니다.  하느님, 아픈 애를 저한테 보내셨으면 저한테 아픈애를 돌 볼 기운도 주셔야지요.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약은 입에 쓰나  (0) 2020.11.20
창문을 달았습니다  (0) 2020.11.12
Power of Kakao Talk Class Channel: Real Time Collaboration  (0) 2020.03.13
윤봉길 의사님...  (0) 2020.02.12
'기생충' 쾌거의 아이러니  (0) 2020.02.12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10. 26. 19:19

2020년 10월, 한국

 

2008년 12월, 플로리다, 왕눈이와

 

 

나는 맨발로 달린다

 

나의 하느님에 대하여 내가 새로 발견한 것.

 

예수님이 맹인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하셨다는 일화에 대하여 나는 격하게 공감한다.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이것이다.

 

하느님은 플로리다를 거쳐서 버지니아를 거쳐서 나를 한국으로 다시 돌려 놓으셨을때, 이미 내게 필요한 것,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그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넘쳐흐르는 곳'에 나를 돌려보내셨는데, 내가 그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거나 깨닫는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수년이 흐른 후에야 어느날 눈을 떠보니, 그것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이런 것이다.  집에서 나가서 슬슬 산책하여 가다보면, 개울/강/호수/바다 같은 물가가 나오고, 숲이 이어지고, 동산이 펼쳐지고, 동물들이 뛰 놀고, 물고기들이 펄쩍펄쩍 뛰고 그런 정경이 펼쳐지는 곳.  그런 곳을 원없이 오래 오래 헤메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매일 관찰하기.  슬슬 산책하여 가다보면 가게들이 있고, 내과 치과 이런 것들이 있고, 내가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이 슬슬 산책하는 거리에 있기.  대학 도서관에 맘대로 드나들며 신간이나 고전을 맘대로 빼들고 읽기, 빌려다 쌓아 놓고 읽기.  카페. 음악. 걸어서 갈수 있는 음악당. 뭐 이런 것들. 이런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은 내 앞에 펼쳐놓고 "얘야, 너 여기서 편히 잘 놀아라" 하셨는데 -- 나는 몇년이 흐른 뒤에야 그것들이 내 앞에 펼쳐져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은 내게 모든 것을 주셨다.  (내 잔이 넘쳐흐르게 선물 폭탄을 투하하셨다.) 

 

하느님은 내게 왜 이렇게 잘 해주시는걸까... 그걸 요즘 궁금해 하는 중이다.  제가 이걸 다 받아도 되는지요. 하느님.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다람쥐족 발견  (0) 2020.09.30
맨발로 2  (0) 2020.09.23
맨발로  (0) 2020.09.22
걷기 기록: 섬 한바퀴  (0) 2020.09.16
Beautiful  (0) 2018.01.04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14. 13:40

 

 

걷기에는 중독성이 있는 듯 하다. 

 

지난 7월 20일부터 매일 나가서 걷는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아직 3개월이 채 못 되었는데, 그동안에 5 킬로그램이 감량되었고,  처음에 7 킬로미터쯤 걷기로 시작해서 요즘은 최소 10킬로미터는 걸어야 몸이 풀리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평일에는 10킬로미터 걷기로 만족하고, 주말이나 일정이 바쁘지 않은 날에는 15-20 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사는 낙이다.  건강 상태가 정말 안 좋았던 7월, 자가격리 마치고 몸이 띵띵 부어가지고 나왔을때,  처음에는 7킬로미터쯤 되는 동네 공원 산책로 다녀와서 몇시간동안 죽은듯이 자고 그랬다.  (여름방학이니까 가능했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운동이 되었다.  두달여가 지난 지금은 10킬로미터를 걷고 와도 몸이 가볍고, 하루를 시작할 기분이 든다. (좀 더 걷고 싶다는 아쉬운 달콤함 같은 것이 감돈다). 

 

며칠전에는 아침 여덟시에 미국의 동료들과 줌으로 화상회의를 좀 할 일이 생겼는데, 그 미팅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에, 나의 대답은 "아침 여덟시?  그러면 내 아침 운동에 지장있는데!! (투덜투덜)"  상대방은 투덜대는 나를 살살 달래야 했다.  내가 정말 어린애처럼 투덜댔으니까.  대체로 뭘 하든 군소리 없이 일을 해치우던 내가 '아침 운동'에 방해 된다고 공식회의에 대해서 투덜댈거라고는 내 동료도 짐작을 못 했으리라.  나도 내가 그러리라고는 짐작을 못 했었다.  돌아보니 내 모습이 참 어린애 같았다.

 

아침 운동을 제대로 못 한 날에는 일정을 마친 저녁 시간에 근처를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그런데 내가 내 몸상태를 살펴보면 - 아침 운동을 흡족하게 하지 못한 날에는 밤에 잠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잠을 자고 깬 후에도 어딘가 상쾌함이 덜하다.  운동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흡족한 만큼이 못 되면 - 잠의 달콤함이 줄어든다.  잠을 푹 잘 자기 위해서는 흡족한 만큼의 아침 운동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달콤하게 자기 위해서는 '맨발'로 걸어줘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어딘가 몸이 상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는데 - 신발을 벗고 몇킬로미터를 걸으니 그제서야 '시원하다'는 기분이 들고 머리도 맑아졌다. 다분히 심리적인 것이겠지만, 맨발로 걸어야 머리가 맑아진다.  안걷는 것보다는 걷는게 낫고 -- 기왕 걷는거라면 많이 걷는것이 더 낫고 - 기왕이면 맨발로 걷는 것이 더 좋다. 맨발로 걸으면 머리속이 맑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라면 먹을때, 우리가 꼭 '김치'를 찾지 않는가?  마지막에 김치 한 점이라도 먹어야 라면이 소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김치 없는 라면은 뭔가 영혼이 빠진 라면 같지 않은가?   맨발 걷기가 바로 그 라면의 김치 같다.  맨발로 걸어줘야, 모든게 정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나는 걸으러 나간다.  걷고, 돌아와서 씻고, 간단히 먹고 출근을 하여 온종일 일을 하고, 틈틈이 걷기에 대하여 생각하고, 틈틈이 걷기 관련 정보를 찾아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온갖 걷기 관련 책들을 읽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걷기를 잘 하기 위한 몇가지 실내 운동을 하고 그리고 일찍 잠이 든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걸어야 하니까. 

 

나는 요즘, 걷기라는 새로운 애인을 만나 온종일 그 애인 생각을 하며 보내는 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8. 17:47

 

 

어젯밤까지 머리가 쿡쿡 아팠는데, 아침에 깨었을때 머리가 가뿐했다.  일어나 앉아보니 멀쩡했다.  그래서, 아침 운동을 나갔다.  몸살 기운 때문에 사흘간 아침 운동을 못 나갔었다. 

 

 

아침마다 만나던 고양이를 오늘은 보지 못했다.  한국 너구리들을 이따금 봤었는데,  길가에 너구리 포획틀이 놓여 있었다.  관계 공무원들이 설치한 모양이다. 너구리를 잡으려 하니 건드리지 말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너구리 잡아다 어쩌려고 그러는걸까? 살기 좋은 곳에 풀어주기를 바란다.  고양이들도 다 잡아 간것은 아니겠지, 설마?

 

 

평소처럼 약 5킬로미터 흙길은 맨발로 걸었다.  가뿐했다.  며칠 아프다 나왔으니 짧은 코스를 택했다. 전체 10킬로미터를 걸었다. 남편은 발이 조금 아프다며 좀더 쉬겠다고 해서 나 혼자만 다녀온 운동길.  흙이 묻어 검붉은 내 발바닥을 보면서 "어딜 개 발로 돌아다니냐"고 놀린다.  나는 강아지처럼 흙발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남편은 따라다니면서 걸레질을 하며 깔깔댄다.  몸이 안아프니까 참 좋구나.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바로 그거다. 

 

 

몸이 가뿐하여 아침 운동을 나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극히 감사한다.  날씨는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는 남들이 다 가봤다는 '속리산 - 법주사'를 여태 못 가봤다. 남편은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 왔다고 한다. 우리 고모들도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법주사를 다녀온 사진이 있다.  지금은 70이 넘은 우리 고모가 '문장대에서' 라고 적힌 흑백 사진속의 중학생으로 사진속에 남아있다.  속리산에 문장대가 있고, 속리산에 법주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우리 고모의 흑백사진에서 보고 배웠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자꾸만 희게 변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올 가을엔 꼭 가봐야지, 하고 별렀지만, 어쩐지 이번 가을에도 속리산에 못 갈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7. 15:24

나는 기도를 잘 못한다.  미국에서 '나의 집'이라고 내가 이름 짓고 기쁘게 다니던 나의 감리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30분간의 짧은 기도 모임을 가질때, 7-8명이 둘러 앉아서 차례차례 소리내어 기도를 하곤 했다. 짧게 한 두 문장으로 감사나 고민을 하느님께 올렸다. 나는 주로 '감사'를 올렸는데 그것이 가장 쉬웠기 때문이다. 

 

 

교회에 새벽기도를 드리러 꾸준히 드나들때에도 나는 도무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한국 교회 스타일대로 어떤 분들은 울부짖으며, 소리지르며 기도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도통 소리내어 기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소리 안내고 차분히 기도하느냐 하면 사실 그것도 아니고, 대개는 눈을 꿈 감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아이고 하느님 저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하나 그것은 순간적인 일이 아닌가. 삼십분씩 한시간씩 그러고 앉아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내 기도는 영 하는둥 마는둥이나, 그래도 나는 기도를 한다고 앉아있곤 했다.  가끔은 기도 하다 졸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 숨 졸고 깨어나면 참 가뿐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이것 역시 기도의 축복인가 했다. 

 

 

나의 기도 실력은 이렇게 졸렬한 형편이라서 - 2년 가까이 학교에서 기도모임을 운영해 가면서도, 돌아가면서 대표기도를 드리는 방식이면서도, 내가 대표기도를 드린 것은 한번인가 두번인가 그렇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를 드릴 자신이 없다. 하도 졸렬해서. 뭐라고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글로 써서 표현하기가 말하기보다 쉽다. 

 

 

 

오늘도 기도회를 마치고 정리를 하려는데, 온라인 '줌'으로 기도회를 함께 했던 분이 내 연구실로 뛰어오셨다. 기도회 마지자 마자 그냥 내게로 오신듯 했다.  그래서 조용한 장소로 가서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대면을 피해야 하는 이 코로나 시대에 나를 보러 왔으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리라.  그래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역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기도 해 주셔요"하고 그분이 말했다.  아 그런거구나.  그래서 손소독제로 손을 싹싹 소독하고, 그이의 손을 꼭 잡고 소리내어 기도를 드렸다.  내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홍해를 건너던 모세의 용기를,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호수아의 용기와 지혜를 간구하긴 했는데 그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 손을 잡고 내 기도를 들은 그분은 그 속에서 새로운 용기와 알수 없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부분은 하느님의 몫이시리라. 그가 영적으로 감응한 대상은 내가 아니고 하느님이시겠지.  나는 그냥 도구로 거기 있었으리라. 

 

 

내 기도로 용기를 얻었다는 기도친구의 코멘트가 내게 용기를 준다. 내 기도가 말짱 황은 아닌가보다. 내 기도도 쓸모가 있나보다.  그러면 나는 더욱 좋은 기도자가 되기 위해서 나를 더욱 잘 다스려야 하리라.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나는 아닐것이다. 내 몸은 누가 다스리는가.  나를 만드신이가 다스릴 것이다. 나는 내 몸의 관리자이다. 내 몸을 잘 청소하고, 꽃밭을 가꾸고, 아름답게 관리하여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내 몸과 마음을 성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안에 깃드신 하느님이 기쁘시도록.  

 

 

나는 좋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 외에는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7. 12:20

머리가 아프고 몸살 기운이 있어서 타이레놀을 먹고 하루를 버티다가, 두통이 가시지 않아서 어제는 근처 내과에 갔다.  기침 콧물은 없고, 머리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 추운 증상. 체온은 정상.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두통약과 몸살약 처방을 해 주었다. 

약을 먹으니 (아무래도 수면 성분이 들어간듯) 잠이 쏟아져서 저녁 6시부터 오늘 아침 6시까지 내쳐 잔 듯 하다.  새벽 1시쯤 잠이 깨었으나 화장실에 갔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12시간 가까이 긴 잠을 잤으니 꿈도 많이 꿨으리라.  새벽녘의 두가지 꿈이 생생하다.

 

 

꿈 1

내 연구실은 6층의 왼쪽 끝에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왼쪽 복도 끝까지 가면 내 연구실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도 연구실들이 배치되어 있다.  중간에 화장실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오른쪽 복도로 가다 보니 그 쪽 연구실 한군데에 피가 흥건하다. 피가 넘실넘실 흥건하게 고여 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내 연구실로 급히 와서 동료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 법률관련 고문도 하는 교수인데, 그래서 그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6층 네 연구실 방향 어느 방에 지금 피가 잔뜩 고여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약간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이었다.

 

 

 

꿈 2

내 고향집과 내가 성장하면서 살았던 집들이 복합된 듯한 상황이다. 옛날집. 마루가 있고 댓돌이 있는 옛날집과 안 마당. 그리고 현관.  그러니까 현관, 앞뜰, 안마당 이런 곳들을 내가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다. 비질을 할 때마다 그 곳이 깨끗해졌다.  꿈속에서 비질을 하면서도 - '옛날에는 매일 일어나 마당을 쓸었는데 요즘은 마당이 없으니 마당도 쓸일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열심히 비질을 했는데 꿈속에서도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픈채로 끝없이 비질을 했다. 그러다 깨어나니 몸이 피곤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5. 11:32

 

"오늘 신교수랑 만나서 배나 한척 사가지고 멀리 떠나자는 모의를 하겠어."

"그러셔, 제발. 나도 그 배 좀 타보자. 마스크 단단히 쓰고. 손 세정제 챙기셨어?"

 

오늘 아침 모처럼 외출을 하는 남편과 (그는 재택근무 중이라 방콕 신세다) 나눈 대화. 현관문을 나서며 비장한 표정으로 그는 말했고, 나는 깔깔댔다. 

 

장관의 남편 노릇하기가 쉽지 않음을 요즘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것이 없구나. 내가 장관이라면 나는 기분이 어떨까? 상상해보니 - 집 나가는 남편의 다리 뭉둥이를 분질러 놓고라도 주저 앉히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장관이 못 되는거지. 하하하.)  어쨌거나 장관은 꽤나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은퇴한 할아버지가 여윳돈이 조금 있어서 그럭저럭 품위유지하며 은퇴 생활을 하다가, 뭐 배를 사가지고 바다를 떠돌겠다고 집을 나간들 그게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그 사람만큼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배가 아플 노릇이지만 뭐, 그 사람은 그렇게 살다가 죽겠다는데 남이 나서서 뭐라 할 상황은 아닌것도 같고.  아무튼 이 할아버지는 내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 마땅한가 아닌가. 내가 그 사람의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일인가 아닌가. 뭐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의식 사이에서 갈팡질팡.  그냥, 내가 장관 입장이 되면 "이 인간이 미쳤나? 너 죽고 나죽자!' 하고 한판 붙기 딱 좋은 그림이긴 한데...하하하. 

 

남편이 철 없이 배 산다고 돌아다니다 바가지나 쓸터이니, 내가 알아서 한 척 사주던가 해야 하리라.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30. 13:42

청량산의 꽃무릇

 

흥륜사에서 보이는 내가 사는 섬.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 9월은 내 인생에서 '맨발의 시대'를 열은 한달로 기억될 것이다.  섬의 가장자리 물가가 버지니아와 워싱턴 사이를 흐르는 포토맥 강을 닮았다 하여 나는 매일 아침 "포토맥에 간다"며 길을 나섰다.  그리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고 (산책로가 황토로 덮여 있었으므로 누구나 맨발로 걷고 싶어 질 것이다), 그리고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9월 한달동안, 이 섬을 세바퀴 돌았다 (한바퀴 21킬로미터).  아마, 이번주 토요일에도 나는 섬을 한바퀴 돌 것이다. 왜? 그냥 섬을 한바퀴 돌고 싶으니까.  

 

 

아무리 그 길이 좋아도,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 뭔가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 특히 연휴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진다. 휴가니까.  그래서, 아침 운동 나가는 시간에 차로 약 7킬로미터 거리의 다리건너 절에 갔다. 절은 청량산이라는 산 중턱에 있으므로 절 구경과 함께 산에도 오를수 있는 코스이다.  일곱 여덟살 어린이들도 군소리 않고 강아지 끌고 올라가는 나즈막한 산이다. 그래도 그 산 정상에 오르니 내가 살고 있는 섬 전체가 한눈에 조망이 되고, 내가 21킬로미터를 걷는 행로가 어떠한지 세밀하게 보인다. 아, 저 길을 개미만큼 작은 내가 네 다섯시간을 걸었던 거구나... 그런 것을 어림하며 작은 기쁨을 느낀다.  

 

 

평평한 평지를 걸을때, 나는 꽤 빠르다. 웬만한 남자들도 섣불리 나를 따라잡지 못 할 것이다. 나는 정말 걷기에 특화된 사람인것 같다.  그런데, 산에 오르는 일은 평지와는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스포츠 같다.  나는 얼마 못 올라가서 헥헥거리고 온몸이 땀에 젖고 현기증까지 나는데, 그런 내 옆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휙휙 날아가듯 지나간다.  하하하. 이거 뭐지?   평지를 걸을때, 나는 걷기계의 신 같다. 내가 작정하고 걸으면 날듯이 사람들을 휙휙 지나치는데, 산에 가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서 휙휙 날아 올라간다. 무서운 종족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새로운 종족을 발견했다.  그들은 '날다람쥐 족'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만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구나. 내가 바닥이구나...  

 

 

 

다시 연구실 책상앞에 앉아있다.  오늘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온라인으로 등산화를 한켤레 주문했다.  가끔은 날다람쥐님들을 구경하러 가까운 산으로 가기로 했다.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발로  (0) 2020.10.26
맨발로 2  (0) 2020.09.23
맨발로  (0) 2020.09.22
걷기 기록: 섬 한바퀴  (0) 2020.09.16
Beautiful  (0) 2018.01.04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23. 12:48

www.canceransw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0

 

[달리기와 진화 3] 두꺼운 운동화 탈출, 맨발로 달려볼까? - 캔서앤서(cancer answer)

맨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쿠션 좋은 운동화를 찾는 시대에 거꾸로 신발을 벗어던졌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맨발

www.canceranswer.co.kr

 

오늘은 1교-2교-3교로 이어지는 약 2.5 킬로미터 거리를 맨발로 왕복했다. 5킬로미터 거리를 맨발로 통과 한 것은 내 평생에 처음이다 (어릴때 시골에서 자랄때 맨발로 논둑 밭둑 돌아다닌 것은 기록에서 제외하고 문명인으로 사는 동안만 생각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다른 신기록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대학때 단축 마라톤 달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약 2킬로미터를 '달리기'로 통과했다.  그러니까, 맨발로 통과한 5킬로미터중 1-2-3교로 가는길의 대부분을 달리기로 해 냈다는 것이지.  처음에 그냥 맨발로 걷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 달려 볼까? 달리다 힘들면 걸으면 되니까 걱정이 없지 -- 이렇게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발과 몸이 가볍게 느껴져서 3교에 도착 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면서 나도 놀라웠다. '어, 이상하다? 왜 달리기가 힘이 안들지? 왜 이렇게 발이 가볍고 몸이 가볍지?'  이런 느낌으로 반환점까지 갔다.

 

 

3교 다리 밑 (나의 반환점)에서 스쿼팅도 하고, 갈대 숲에서 고요히 기도도 올리고 뭐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는데,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는 달리기 하기에는 발에 무리가 생길것 같아서 그냥 씩씩하게 걸어왔다.  그래도 이제는 맨발로 걷는것과 운동화 신고 성큼성큼 걷거나 걷는 속도는 거의 일치하는 편이다. 

 

 

오늘 내 기록의 특별한 점은

  1.  난생처음 5킬로미터 쯤을 맨발로 걷거나 달렸다.
  2.  대학 졸업후 쉬지 않고 2킬로미터 거리를 달려본 것이 오늘이 처음이다. 그것도 2킬로미터를 맨발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나의 달리기는 - 나의 빠른 걸음 속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는 원래 달리기를 싫어하고, 달리기 하면 어지럽고, 달리기하고는 담을 쌓고 산 사람이다. 그대신 걷기는 다른 남자들이 슬슬 달리기 할때 속도를 맞추거나 추월할 정도로 빠른 편이다. 나의 걸음은 달리기만큼 빠르지만,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달린다는 것은 나의 빠른 걸음 수준으로 '달리기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내가 달리기 자세를 유지하고 천천히 2킬로미터 정도를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다리에 대하여, 내 신체에 대하여 기쁨과 감사를 느낀다. 

 

 

내가 내가 하는 걷기에 대하여 이렇게 감격하고 감사한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걷기 광신도였던 나는 한국으로 온 후에 일도 바쁘고, 주변 환경도 마땅치 않고, 미세먼지도 걱정되고, 그리고 나이가 갱년기를 통과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서 이래저래 건강이 저하되었고, 야금야금 체중도 불었다.  그러면서 2년 전부터는 걷지도 않았는데 종아리에 통증이 오거나 쥐가 나거나, 머리가 자주 아프고, 늘 감기를 달고 사는 아주 허약 체질로 바뀌어갔다.  아마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갱년기 증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리불순을 겪지 않았으므로 갱년기하고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상상했고, 그냥 내 몸이 왜 이렇게 되는걸까 의아해 했다.  지난 6월에 버지니아 집에 있을때도 근처 아름다운 트레일로 나가곤 했는데 조금 신나게 걸으면 발목과 발바닥에 통증이 심하게 와서 생전 쓸줄도 모르던 '파쓰'라는 것을 발에 덕지 덕지 붙이곤 했다.  아들이 "우리 엄마도 이제 늙는구나..." 한숨을 쉬며 정성스럽게 내 발목을 파쓰로 감싸주곤 했다.  나는 쩔뚝거리며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한숨 지었다.  이제 청춘은 가는구나. 맘놓고 걷지도 못하는구나... 걷기 광신도가 걷지를 못하게 되다니.  이것도 집안 내력인지 이미 우리 언니나 오빠가 몇해전부터 족저근막염이라고 병원다니고 이상한 신발을 신고 나타나고 하는 것을 보면서 -- "저이들은 왜 팔자 좋게 골프나 치고 다니면서 발이 아프다고 하는걸까?" 의아해 했는데 아무래도 내게도 그런 증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아프면 아픈가보다 하고 지나가므로 병원을 안가니 병명을 몰랐을 뿐이리라.  (나는 병원을 잘 안간다. 그래도 여태까지 잘 살아있다.)

 

 

7월에 귀국하여 자가격리를 하고 나왔을때, 내 몸은 정말 엉망이었다.  손 마디마디도 쑤시고 아팠고, 정말로 사람들이 '여성 갱년기' 증상이라고 일컫는 모든 증상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듯 했다.  7월 말 쯤에 바람쐬러 대부도에 가서 구봉산 언덕길을 오를때 -- 나는 그야말로 10미터도 못 간채로 어지럽다거 멈춰서서 헉헉대고 있었다.  그랬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내가 남처럼 낯설게 여겨졌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어디 가고 나를 닮은 흉한 괴물이 하나 둔갑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그래도 대부도 구봉도 숲길이 좋아서, 비오는 날에도 숲길에 갔고,  자꾸만 운전하여 대부도로 가다가 이렇게 마냥 휘발류 들이고 시간 들이고 거기까지 갈 수가 없겠다 싶어서 찾아낸 것이 8월 내내 내가 시간을 보낸 시내 공원길이었다.  알고 보니 내게 아주 딱 알맞는 - 산책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8월 내내 나는 연꽃과 수련들을 보면서 걸었다.  그리고 9월, 시내 공원길이 지루하게 여겨져서 그냥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가 해안 산책로를 발견했고, 그 해안 산책로는 나를 이 섬의 모든 아름다운 산책로로 인도해 주었다. 그 사이에 종아리가 이유없이 아프거나, 밤에 죽일듯이 쥐가 나서 괴로워하거나 하는 일이 사라졌다.  족저근막염 같은 발바닥, 발목, 아킬레스건의 통증도 사라졌다.  그리고 내 발은 10년전에 내가 포토맥 강변을 걷던때보다 더 튼튼해졌다.  맨발로 걷고 달리는 요즘의 나의 발길은 10년전보다 더 가볍다.  놀라운 재생이다.  (체중은 10년전과 비교하면 5킬로그램 정도 차이가 난다. 그것도 1개월에 1킬로그램씩 정리하면 5개월 안에 최적 체중으로 돌아갈 것이다. )  거울속의 내 얼굴은 10년전보다 확실히 늙었다.  머리카락의 광채로 약해졌다.  그렇지만, 내 다리는 더 튼튼해지고, 나는 더욱 강인해 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매일 아침에 맨발 달리기를 실천 할 것이고 점점 더 거리와 속도를 키워 나갈것이다.  내 희망은 (하하하) 맨발로 천하를 주유하는 아줌마로 <세상에 이런일이>에 출연하는 것이다. 하하하.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발로  (0) 2020.10.26
날다람쥐족 발견  (0) 2020.09.30
맨발로  (0) 2020.09.22
걷기 기록: 섬 한바퀴  (0) 2020.09.16
Beautiful  (0) 2018.01.04
Posted by Lee Eunmee
Books2020. 9. 22. 19:00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삶과 말씀을 '정찬주' 작가가 엮다

 

요즘 혜암스님에 꽂혀서, 책을 좀 읽으려고 도서관을 뒤지다가 그냥 전자책을 돈주고 샀다. 어차피 반납하기 싫을테니 늘 곁에 두고 읽으려면 내 책으로 간직해야. (혜암스님 견해로는 - "쓸모없는 짓을 하는구나 아악!" 하시겠지만). 

 

이분 설법을 들어보면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는 바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다. 오히려 성경을 더욱 잘 이해 할 수 있게도 된다.  가령,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런 말씀은 곱씹고 되씹고 '대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지?'  생각 할 때마다 각기 다른 답을 찾곤 하는데 혜암스님의 행적을 보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짐작을 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짐작하기에, 예수님께 '이 곳 (세상)'이 당신이 사실 집이 아니고 잠깐 들르러 오셨다가 지나가시는 곳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집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 (피안)이니까.  혜암 스님도 스스로 몸을 움직여 암자를 짓거나 세우거나 하셨다는데, 그렇게 고생해서 지은 집에 며칠 머무르지 않고 떠나셨다고 한다. 그가 지었으되 그가 머물 곳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가르치고자 했을 것이다. (교회 일으켜서 아들 손자 녀석들에게  세습하는 가짜 목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머리 둘 곳을 정하지 않으셨으니, 나 또한 예수쟁이로서 이 세상에 머리 둘곳을 찾지 않겠다.  그것이 우리 예수님을 따라 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머리둘곳을 찾지 않으면 - 삶은 꽤 가벼워진다.  그러니 예수님의 멍에가 가장 가벼운 자유 인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나는 이 혜암스님이 좋다.  그러니 가을이 지나가는 동안 이분의 이야기와 말씀에 기대보고자 하는 것이다.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마귀책  (0) 2023.08.03
맨발로 뛰는 뇌  (0) 2020.09.22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0) 2020.09.17
눈 기다림  (2) 2019.12.24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전병근 옮김  (0) 2018.09.10
Posted by Lee Eunmee
Books2020. 9. 22. 18:17

 

 

 

 

 

 

 

 

도서관에 갔다가 '맨발' 타이틀이 보여서 집어 들은 책인데 - 맨발 달리기나 맨발 걷기 관련 책은 아니고, 자연 친화적 삶을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실용서이다.  읽다보면 -- 음,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저자가 역설하는 방식으로  요즘 내 삶의 패턴을 스스로 조율하면서 살았다는 자각. 식후에 습관처럼 먹던 '과자 한입'도 끊지 않았던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음식을 모두 포기하고, 날것을 먹거나 조리해서 먹고 있지 않은가.  탄수화물의 창고와 같은 '고구마'나 '감자'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 그래도 최소한의 탄수화물을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쥬스나 콜라 같은 음료수를 끊지 않았던가.  내가 잘 하고 있었던거야. 이 작가의 또다른 저서 '운동화 신은 뇌' (번역서)는 도서관에서 이미 대출중이고 그대신 원서는 원서 서고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일 도서관에 들러서 그 원서를 빌려다 읽어야지.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마귀책  (0) 2023.08.03
공부하다 죽어라  (0) 2020.09.22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0) 2020.09.17
눈 기다림  (2) 2019.12.24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전병근 옮김  (0) 2018.09.10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22. 15:22

사진은 웹에서 빌려옴. (내 발이 아님) 

 

 

내가 아침 산책에서 '맨발로' 걷기 시작한지 3주가 지났다. 9월 부터 근처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따금 지나치는 분들 중에서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분들을 보고 나도 따라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전에도 바닷가 모래사장이나 개펄을 발견하면 끝도없이 맨발로 걷곤 했으므로, 기본적으로 맨발로 걸을 때의 그 신선한 촉감을 익히 알던 터였다.

 

 

처음에 양말을 벗고 맨발 걷기를 시도한 구간은 약 1.2 킬로미터 정도이다. 1교와 2교 사이를 걸어서 통과하였다. 며칠 해 보니 자신이 생겨서 약 2.5 킬로미터 거리 1교-2교-3교 이렇게 두 구간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는 살살 달리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차츰 차츰 맨발로 걷는 거리가 길어지고, 걷기에서 시작하여 달리기까지 하게 되는 발전을 보였다고 할 만하다. 단 3주 사이에. 

 

 

처음엔, 발이 땅을 밟을때마다 나의 모든 감각이 바짝 긴장을 했다. 따끔, 따끔, 이러다가 뾰족한 것을 밟아서 찔리거나 피가 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불안감도 있었고, 정말 미세한 돌멩이가 발바닥에 닿아도 느낌이 예민해졌다. 나의 감각이 이렇게 섬세하고 예민했다는 말인가? 아주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맨발로 처음 걷는 느낌은 -- 낯선, 첫 키스의 느낌, 혹은 섹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가질만한 놀라움 - 전신의 감각이 살아나는 듯한 그런 것들로 채워진다.  처음에는 1킬로미터만 걸어도 피로를 느낀다, 왜냐하면 전신이 긴장을 하고 '사뿐 사뿐'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여 하늘을 날듯이 걸어야 하니까.  자신의 몸을 솜털처럼 가볍게 하려는 의지가 발동하는 것이다. 발이 아플까봐 자연히 사뿐 사뿐 사아뿐~ 

 

 

그런데 이렇게 열흘 쯤 지나면, 발 바닥에 변화가 온다.  놀랍게도 건조하던 발바닥에 '기름기'가 돌면서 발바닥이 '두둑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걸 '굳은살이 박힌다'고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애매하다. 딱딱한 굳은살이 아니라, 두둑한 살이라는 표현이 맞는것 같다.  발바닥이 두둑해진다.  그러면서 예민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점점 발걸음에 내 체중이 실리게 된다.  나는 쿵쿵 소리를 내며 걷는다.  처음엔 사뿐 사뿐 조심 조심 걷느라 걸음 속도가 느려졌지만, 지금은 평소 걸음 속도대로 씩씩하게 쿵 쿵 걷는다.  그러면서 발이 - 발에 연결된 내 온몸이 굉장히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 몸이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에 - 원래 '곰 족 (느리고 움직임이 무거운 족속)'으로 태어난 내가 '달리고 싶다'라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달려본다.  발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호흡도 훨씬 편안하다.  운동화 신고 달리는 것 보다 맨발로 달릴 때 몸이 더 가볍게 느껴진다. 오호!  

 

 

요즘 내 아침 운동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침 운동을 시작한지 60일 쯤 되었다.  그동안 4.2 킬로그램 (무려 고기 일곱근)이 빠졌다.  처음 한달동안은 하루에 100그램씩 쭉쭉 빠졌는데, 그 후로는 체중이 그리 쉽사리 빠지지는 않고 있다. 며칠에 100 그램 이렇게 빠지는 식이다.  아무래도 운동 시작 한 이후에 -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 몸에 좋은 것도 잘 챙겨 먹어서 그럴 것이다.  단백질가루도 챙기고, 닭고기, 생선, 쇠고기 구이등도 매일 밥상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평소에 별로 안먹던 '남의살'까지 추가로 먹으면서 살을 빼려니 -- 체중 감량에는 속도가 붙지 않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 나 스스로 내 몸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내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바디 체중계의 기록을 살펴보면 - 전체적인 건강지수가 높아졌다.  근육량도 많아지고, 수분도 높아지고, 지방은 감소하고 있고, 신체연령도 감소하고 있으며 - BMI도 내려가고 있고 전체적으로 아주 좋은 상승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된다. 내가 미스코리아에 나갈것도 아니고, 패션 모델이 될 것도 아니고, 뼈만 남은 멋쟁이가 될 생각도 없다.  나의 꿈은 뭐 이런 것이다 -- 맨발 달리기 대회, 맨발 걷기 대회 뭐 이런 것에 참가하거나 맨발로 등산도 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하하하.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 나는 가벼워지고 있다 -- 체중이 팍팍 줄어들지는 않지만, 체중과는 상관없이 내 몸놀림이 가볍고 활기가 차오른다. 참 신나는 9월이다. 

 

요즘은 2.5 킬로미터 구간을 맨발로 걸은후, 돌아 올때는 운동화를 다시 신는데 -- 이 맨발 구간을 5 킬로미터로 늘릴까 생각하고 있다. 갈때-올때 , 다리 두개 지나가는 구간을 맨발로 돌면 된다.  (요즘 아침에 내가 걷는 거리는 12킬로미터 이다. 시속 6킬로미터 속도가 기록된다.) 

 

아침 운동 시작 이후 달라진 점:

  1. 체중 감량
  2. 의식적으로 닭가슴살, 생선, 쇠고기 스테이크등을 먹음 
  3. 과일 끊음 (나는 과일을 소처럼 먹던 사람이라, 이것은 애주가가 술을 끊거나 골초가 담배를 끊는 것과 같은 결기과 결단이다.)
  4. 채소...값이...태풍때문에 너무 올라가서...채소가 귀해져서--대안으로 매일 미역국을 끓여 놓고 먹고 있다.  시장기를 느끼면 미역국에서 미역 (건더기)을 한 공기 꺼내 담아놓고 밥처럼 먹는다.  하루에 필요한 채소의 양은 뭘 먹건 반드시 채우는데 요즘은 미역이 효도를 하고 있다. 값도 싸고 건강에도 아주 좋다. 
  5. 불면증이 사라졌다. 전에는 자다가 깨면 새벽 2-3시에 깨면 그 후로 잠을 못 이루고 고통스러웠는데, 요즘은 밤 열시쯤에 누우면 곧바로 잠이 들고 아침 다섯시면 귀신같이 깨어난다. 그리고 몸도 아주 가볍다. 그러니까 발딱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하러 해변으로 나갈수 있다.  불면증이 사라지고 숙면을 하며 깨어난후 몸이 가벼운 것이 얼마나 하루를 복되게 하는지. 매일 감격스럽다. 
  6. 두통이 사라졌다. 이틀에 한번 꼴로 타이레놀을 먹어야 했던 만성 두통이 사라졌다. 머리가 가볍고 몸도 가볍다. 

 

 

그런데, 이런 모든 변화의 근원에는 - 내가 '성경 통독'을 마라톤 하듯 열흘만에 해 치운 것이 있지 않았나 짐작한다. 성경통독을 한 후에 - 나는 몸을 돌봐야겠다고 자각하게 되었고, 아침 운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고, 이를 매일 실천하는 힘이 생겼고 그렇다.  허물어져가던 내 몸을 살린것이 내 아침 운동이라면 -- 그 살리려는 의지를 일깨운 것은 내 하느님 이시다.  내 하느님께서 공원길에서, 해변길에서 나의 기도와 찬양이 울려퍼지길 기다리고 계셨다.  거기서 만자자고 매일 아침 나를 깨우셨다.  그것이 성경 통독을 한 내게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상상하는 편이다. 

 

2020년 9월 8일 (화) 아침.

멀리 자전거 바퀴 모양의 1교가 보이고, 왕관 모양의 2교가 보이고, 3교 아래 교각 그늘로 향하는 발길. 이 장면도 옛날처럼 여겨진다. 지금은 새처름 가볍게 걷거나 달린다.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다람쥐족 발견  (0) 2020.09.30
맨발로 2  (0) 2020.09.23
걷기 기록: 섬 한바퀴  (0) 2020.09.16
Beautiful  (0) 2018.01.04
하느님의 미술관  (0) 2017.02.06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9. 17. 17:55

www.yna.co.kr/view/AKR20200916175100001

 

윤봉길 손녀 윤주경 "독립운동가들이 이런 나라를 보려고…" | 연합뉴스

윤봉길 손녀 윤주경 "독립운동가들이 이런 나라를 보려고…", 한지훈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9-16 19:06)

www.yna.co.kr

글쎄, 할아버지 잘 만나서, 단지 할아버지가 윤봉길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어느나라의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지금 추장관 아들의 '특혜' 문제에 쌍지팡이 짚고 나설 일은 아니라고 본다.  추장관 아들 문제를 안중근 의사에 갖다 붙이는 자들도 정신상태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들의 정신이 제정신이 아닌것은 그 것대로 문제이고 -- 그런데, 할아버지 덕에 국회 의원하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라는 것이지. 도대체 할아버지가 윤봉길 의사라는 사실 외에 뭐..뭐..(한숨.)   독립유공자 후손이 받는 특혜는 뭐 괜챦은거고 유력자 아들이 군생활좀 쉽고 편하게 한것만 문제가 된다는 건가? 그것이 독립유공자의 명예에 부합하는 것인가? 나는 그걸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아, 우리 아들은 강원도 횡성에서 고생하다가 손가락 하나 삐뚤어져 제대 했지만 - 뭐 나라를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우리 아들 군대에 있을 때 '엄마 챤스'라는 것을 쓰긴 썼다.  내가 미국에 있어서 면회 한번 못 가봤지만 - 그래도 엄마의 강력한 빽이 있었으니 -- 부대 홈페이지에 부모님들이 글 올리고 그러는데다가 장교분들 보시면 기분 좋을 만한, 혹은 감동 받을 만한 재미있고 슬픈 이야기를 적당히 버무려 올려댔는데 - 어느날 대대장님이 우리 아들을 불러서 "얘, 너 엄마한테 전화 한번 할래? (굉장한 특혜 였다고 함)"  그런데 우리 아들 왈, "우리 엄마는 전화를 안받으십니다..."   하하하.    아무튼 엄마가 좋은 글 잘 올려주셔서 군 사기를 높여 준다고 우리 아들 '라면'도 먹게 해주고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엄마 챤스 다 썼다. 하하하.  그런데, 아들은 군대생활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심지어 장교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아예 군대에 말뚝을 박겠다고 하는걸, 내가, 간신히 뜯어 말리기까지 했다.  우리 아들이 군대를 좋아했던 오만가지 이유중에 넘버원: "군대에서는 삼시세끼 영양사가 계산한 밥을 공짜로 준다. 너무 맛있다. "   아들은 공부하고 노는 엄마를 만나 삼시세끼 원활한 밥상을 받아 보지 못하고 성장한 탓에 - 군대밥이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밥상이었다고, 지금도 군댓밥 얘기를 하며 군침을 흘리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자식을 군에 보내놓은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재벌이나, 일용직 노동자나, 무일푼 무직 부모나, 자식을 군에 보내놓은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어떻게든 자식이 무사히 좀더 편안하게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온갖 연줄과 빽을 동원하여 - 누군가에게라도 연락을 하여 좀더 편하고 안전한 보직으로 가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리저리 들어보면 - 아무튼 사람들은 그렇게 노력을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미 수십년전에 지나간 일이지만,  우리 오빠가 그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카투사에 들어갔는데 (나는 카투사라는 것을 오빠가 군대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평택인가 오산인가 어디로 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마침 우리 엄마 초등학교 동창 (고향의 코흘리개 시절 친구)이 별 하나짜리 장군이었다.  엄마는 새벽에 그 장군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하면서 '청탁'을 했을 것이다. 그 후에 우리 오빠는 용산으로 왔고, 주말이면 집에 치토스 이런 것을 사가지고 들르곤 했다.  수십년전 얘기다. 

 

또 그당시 우리 사촌 오빠는 '전투경찰'로 입대를 했는데,  어느 원자력 발전호 인근 부대로 가게 되었다.  서울 학생이 어쩌다 경상남도 어디로 배치가 된 것일까? 어쨌거나, 삼촌께서 장교를 하다가 퇴직을 하신 상태였는데 여기 저기 연락을 취해서 결국 그 사촌 오빠는 용산경찰서로 오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하필 10-26 사태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래서 김재규씨 재판 뭐 그런거 진행될때 전투경찰복입고 호위를 했다나 뭐라나. 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끔 수원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한강다리 건널때 버스를 세우고 한강다리 전투경찰이 버스에 와서 '검문'이란것을 하는데, 어쩌다 그 오빠가  버스에 오를때도 있었다. 되게 웃겼다. 

 

슬픈 일화도 생각난다.  우리 아버지와 사촌지간인 당숙 아저씨의 아들, 그러니까 나와는 6촌 지간인 오빠가 있었다. 아마 우리 오빠와 동갑이거나 그랬을거다. 서형이 오빠.  그 오빠는 사람이 참 좋았다. 원래 그 댁 할머니 (우리 아버지의 외숙모, 우리 할머니의 친정 올케)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언니 오빠들이 성품이 참 어질고 유순하고 좋으시다.  그 오빠도 그 집안의 장손으로 시골 중학교에서 남들만큼 공부하고, 남들만큼 산에 가서 나무도 해 오고 농사도 거들며 모범생으로 수원시내 최고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 오빠가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대학생 시절에 군대에 들어갔다.  어느날 그 댁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길래 -- 서형이 오빠는 군대가서 잘 있대요? 하고 여쭈었더니 속곳 주머니에 고이고이 간직한 사진 몇장을 내게 꺼내 보여줬다. 서형이 오빠가 군대에서 군복입고 찍은 사진 몇장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여주시며 아주머니도 흐뭇해 하셨다.  그런데, 얼마후 '제대한 서형이 오빠'가 그 집 사랑채 마루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알아 볼수도 없을 정도로 수척하고 어두워 보였다. 나는 실제로 그 사람이 서형이 오빠라는 것도 몰랐는데, 함께 있던 고모가 "서형이 이제 좀 괜챦니?" 하는 소리에 그이가 서형이 오빠라는 것을 알았다.  그 오빠는 얼마후 저 세상으로 갔다.  급성 백혈병이라고도 하고, 들리는 말로는 군대에서 하도 매를 맞고 고통을 겪어서 온몸이 다 망가져서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뼈만 남은 사람이 되어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쬐다가 우리곁을 금세 떠났다. 

 

시골 집에 있을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 혼자만 집에 놔두고 서울, 오빠 중학교 졸업식에 가신 그날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두고 가는것이 못미더웠던지 한동네인 할머니 친정에 들러서 서형이 오빠하고, 그 위에 언니하고 집에 와서 가축도 돌보고 나 밤도 해 먹이라고 부탁을 해 놓으셨다.  그래서 그날 서형이 오빠하고 그 위에 언니하고 따뜻하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  도무지 누구한테 험한 말이나 인상을 쓰는 일도 생전 안 할것 같이 선량하고 순한 사람들이었다.  아 또 생각난다. 그 며칠 후에 내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인형 안듯이 안고 길을 걸어가니까, 고양이가 낯선 영역이 되자 겁이 나던지 내 품에서 빠져 나와 근처 숲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그날밤 고양이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서형이 오빠가 그 고양이를 품에 안고 왔다. "내가 산에 가서 잡아 왔다" 며 그는 평화롭게 벙긋벙긋 웃었다.  우리 일가친척들은 모두들 '서형이가 군대가서 매를 맞아서 저렇게 되었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양순한 일가친척들은 누구를 원망할 줄 몰랐다.  

 

옛날에도 청탁이란게 있었고, 세상이 투명해진 지금도 그 잔재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힘있고 돈있고 빽있고 그런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뭔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지금도 힘없고 빽없고 돈없는 사라들은 여전히 조금 위축되어 누구를 원망할 줄도 모르고 한숨 지으며 그냥 묵묵히 살아 갈 것이다. 

 

 

남들 다하는 것을 가지고, '유독 왜 내 자식 문제만 물고 늘어지는가?'라고 장관이 말한다면 -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글쎄 그게 안걸리고 넘어갔으면 그냥 넘어가는거겠죠. 하지만, 그것이 드러나고 정황 증거들이 나오고 증인들이 나오면 이쯤에서 승복하셔야지요.  그래야 세상이 좀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좀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라면 -- 스스로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만으로도 세상은 좀더 정화가 될것이 아닙니까?   아들에게 편하고 좋은 보직이 가도록 애쓰는 엄마 마음이야 비난 받을 사항은 아닌데 - 그것이 '특혜'를 구한 것이었다면 승복하셔도 아름다울 것이오.   

 

남들 다 하는것 왜 나만 안되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게 지도자의 길이라는 겁니다.  법무장관 1에 이어서 법무장관 2 -- 이게 뭡니까 대체?  

 

 

Posted by Lee Eunmee
Books2020. 9. 17. 17:41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모토카와 다쓰오 지음. 이상대 옮김. 김영사 (2018)

 

이웃대학에 신청해 놓은 책을 가지러 갔다가, 서가에서 발견하여 빌려와 단숨에 읽었다.   서가에 스무권 남짓 줄서 있다는 것은, 이 책이 대학의 어느 과목의 읽기교재나 참고자료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검증 받은 좋은 책이겠다 - 이런 가늠을 하기도 였다.  역시 읽어볼 만한 생물학/혹은 자연대 기본 교양 도서 쯤 될것으로 보인다. 

 

제목은 '시간' 개념을 강조했지만,  각 챕터들은 '시간' 개념 외에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의 몸의 크기와 사는 방식의 차이와 전략에 대하여 그래프로 상관관계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동물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외에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섬에 사는 코끼리(커다란 동물)는 몸집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고, 섬에 사는 쥐는 몸집이 크게 진화한다는 '섬 이론'에 관한 것인데 --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체구가 작게 진화한건가? 그런 생각을 문득 해 봤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대략 이런 것이다.  포유류들은 사람이건 생쥐이건 뭐건 간에 평생의 호흡수과 맥박수가 비례하며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포유류들은 너구리나 생쥐나 사람이나 코끼리나 평생 거의 공통적으로 n번의 호흡을 하고 n 곱하기 4 정도의 맥박수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생쥐의 기대수명이 1년이라면 그 1년간 이 숫자를 다 소모하는 것이고, 코끼리의 기대수명이 100년이라면 그 100년간 이 숫자를 다 소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쥐는 코끼리보다 훨씬 빠르게 숨을 쉬고, 훨씬 빠르게 맥박이 뛰는 것이다.  생쥐는 명이 짧아 보이지만, 생쥐는 자기 천수를 누리는 것이다.  하루살이도 자기 천수를 다 누리는 것이다 (하루살이는 물론 포유류가 아니지만.)--저자가 한 말이 아니고 그냥 내가 덧붙임. 

 

그렇게 보면, 우리가 가족처럼 함께 지낸 개나 고양이가 천수를 다하고 우리 곁을 떠날 때, 우리는 크게 애통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거나 그 개와 고양이 역시 충분히 숨을 쉴만큼 쉬었고, 맥박이 뛸만큼 뛰었으니까.  우리의 시간 관념으로 그들이 짧게 살다 떠나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에게 10년은 백년처럼 길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해파리에 대한 설명도 - 내가 알아듣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해파리는 나무같은 성격을 띈 동물들의 군락체.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저희들끼리 '나무의 구조'식으로 서로 뭉쳐 지내는거다. 

 

여러 분야의 생물의 생존 전략이나 구조적 특징을 참 알아 듣기 쉽게 정리 해 준 좋은 책이다.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부하다 죽어라  (0) 2020.09.22
맨발로 뛰는 뇌  (0) 2020.09.22
눈 기다림  (2) 2019.12.24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전병근 옮김  (0) 2018.09.10
자본주의를 구하라 - 로버트 라이시  (0) 2018.08.24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16. 12:37

 

지난 일요일은 근래의 내 운동 기록중에서 가장 긴 거리를 걸었던 날이다.  매주 토요일엔 엄마댁에 가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그것이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내가 실천해야할 숙제 같은 것이다), 일요일엔 아침에 예배드리고 쉬거나 산책이 나의 일상인데, 지난 일요일엔 나갔다가 예배전에 와야지 하고 집을 나섰다가, 내가 살고 있는 국제도시-섬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덕분에 일요일 예배를 드리지 못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죄송한 중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내 발로 걸으며 찬송드렸으니 크게 노여워하지 않으실거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숙소에서 출발하여, 이 섬의 가장자리 (섬이니 결국 바다를 끼고 가장자리 길만 따라 도는 길)를 따라 한바퀴 돌아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대략 23 킬로미터 거리였다. 

 

 

일단 이 섬과 육지를 잇는 1교 2교 3교 4교가 있는데 4교에서 출발하여 4-1-2-3 순서로 일직선으로 해안선을 따라서 걷다가 - 길이 끊긴 지점에서 길을 찾아 내어 지난해에 롹 페스티벌이 열였다는 페스티벌 공원을 지나서, 섬의 저 반대쪽, 큰 바다를 마주하는 쪽으로 이동하여, 이 섬의 유일한 컨서트 홀의 뒷마당 해안 공원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다시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니 '솔찬공원'이라는 -- 큰다리를 지을때 그 다리 골조를 제작하던 장소라는 공원에 이르렀다. 이곳의 카페에서 간단히 커피와 크로아상으로 요기를 하고, 역시 해안선을 고집스럽게 따라 걸어 돌아왔다.  특히 1교에서 3교로 이어지는 약 2.5 킬로미터의 거리는 내가 맨발로 통과하는 붉은 흙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시멘트 콘크리트로 둑을 덮고, 그 위에 황토를 깔아 놓은 구조라서 완전히 황토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맨발로 걸을때 흙의 탄력을 느낄수 있어서 맨발로 통과할 만한 곳이다. 

 

 

일단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에서 (벼가 익기 좋은 투명하고 따가운 햇살이었다) 다섯시간 쯤 이 세상의 근심을 잊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걸었던 시간이 뿌듯하게 내 가슴에 남게 되었고 - 별 애정이 없던, 내가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이 섬에 대한 애정이 솟아 나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제 섬의 어디에 어떤 보물이 숨겨 있는지, 오직 발로 걷는 사람만이 찾아낼수 있는 장소들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내 머릿속에는 섬의 지도가 담겨 있어서 -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갔다 오면 좋겠다. 그 거리면 10킬로미터쯤 되겠구나 두시간이면 충분히 쉬엄쉬엄 다녀오겠구나, 이런 가늠을 하게 된다.  대개 내 걷는 속도는 한시간에 6킬로미터쯤 되고, 중간에 스쿼팅을 하거나, 새구경 꽃구경 지나가는 동물 구경하느라 멀거니 서 있을때도 있고, '기도 벤치'라고 내가 정해 놓은 벤치에서 약 5분간 고요히 기도도 하고 그런다.  섬의 가장자리로만 따라 걸으면 -- 별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 나는 마치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자기 보호를 하며 걷는 야생동물 (여우, 야생 고양이등)처럼 세상의 가장자리 숲아래를 느리게 느리게 걸어서 지나간다.  이번 일요일엔 또 다른 섬의 가장자리를 걸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 나는 유명 관광지는 가지 않는다.  사람 많은 곳은 코로나 시절 이전부터 늘 피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어딘가 변두리로만 돌고 있는 인생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 역시 수십년전에 '교과서'처럼 남들이 다 신혼여행을 가던 시절에 신혼여행으로 가 본것이 전부인데, 그 당시에도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고, 요즘은 사람들이 가볍게 아무때나 다녀오는 휴양지로 너무나 익숙하여, 그냥 가보기도 전에 싫증이 나고야 말았다.  나는 변두리로 다닌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심심하고 하품나게 지루한 길, 그래서 아무도 안다니는 길, 말 해 야 아무도 모르는 길 그런데로 간다.  그런 길을 걸을때 - 나는 낯선 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가 된듯한 느낌이 든다.  머리가 깨어나고 감각이 생생해지고, 모르는 길에서 아는 길을 발견할 때 희열을 느끼며, 그 아는 길이 낯설어 보이는 기묘한 체험이 재미있다.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발로 2  (0) 2020.09.23
맨발로  (0) 2020.09.22
Beautiful  (0) 2018.01.04
하느님의 미술관  (0) 2017.02.06
Fall 2016  (2) 2016.08.12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9. 10. 18:25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5&aid=0003034139

 

이낙연 만난 김종인 "국민, 정부 돈에 맛들이면 안 떨어져"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로) 다시 우여곡절을 반복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민은 한 번 정부의 돈에 맛을 들이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

news.naver.com

유리 지갑으로 사는 나는 내 월급에서 세금이 얼마가 나가는지조차 별로 헤아리지 않는다. 나갈데 나가겠지 한다.  그냥 내 통장에 들어온 - 이것 저것 다 떼고 나머지 가지고 먹고 살 궁리를 한다.  세금 나간것은 올바른데 잘 사용될거라는 믿음에서다. 

 

 

나는 경기도민인데, 지난 봄에 경기도에서 뿌려준 돈이며, 내가 속한 시에서 뿌려준 돈 (재난 지원금)에 손도 안 댔다.  너무 바빠서 그거 챙겨 먹을 시간도 없었고 -  그리고 내가 안쓰면 다른 좋은데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나는 대체로 그것이 보수이건 진보이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대통령이건 싫어하는 대통령이건 간에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 잘 해 주겠거니 하고 믿는 편이다. (그게 내가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내가 미국에서 가난뱅이 유학생으로 두아이를 키우면서 살 때에도, 신청만 하면 우리 애들 점심은 무료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내가 가난하게 살 지언정 애들 밥값을 미국 정부에 맡기고 싶지 않아서 가난한채로 나는 내 문제를 해결 했다.  그래서 내가 가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돈이 없지 '가오 (일본말이긴 하지만 이경우엔 뭐 잘 어올리는 표현이기도 하다)'가 없냐.  내 명예를 지키며 소심한 시민으로 살아왔다. 

 

 

김종인씨가 '국민, 정부 돈에 맛들이면...'  뭐라구?  국민이 누군지 아는가? 국민이 세금 내는 사람들이다.  많이 내건 조금 내건 형편이 안되어서 못내건, 국가를 돌아가게 하는 돈이 어디서 나오나?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게 다 국민 돈이라구.  그런데 이 인사가 국민을 무슨 깡통 찬 거지나 거머리 취급을 하러 드는가?  당신이 대표로 있는 정당, 그 지원금도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가는거고, 당신이 거기서 월급 받으면 그것도 국민이 낸 세금이 쏠쏠히 흘러들어가고 있는거다.  넌 국민이 거머리로 보이나? 난 네가 거머리로 보인다.  국민을 거머리 취급하는 너와 너의 일당이 사람이긴 한건가?

 

 

국민이 만만해? 누가 돈 달랬어?  왜 지랄들인데 대체?  돈 달랜 사람 아무도 없어. 너희들이 재난기금이네 뭐네 떠들고 북치고 장구친거지.  심지어 망해가는 자영업자들도 정부에게 돈 달라고 한적이 없어.  거지 취급 하지마. 이 나쁜 새끼들아.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9. 8. 16:56

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교육의 질을 지키겠다는 구실로' 파업을 하거나,
  • 병원에서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의사들이 '의료의 질을 사수하겠다는 구실로' 파업을 하거나, 
  • 병사들이 '국방의 질을 사수하기 위해서' 파업을 하고,
  • 소방관들이 '소방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불난데 가서 불구경을 하거나,
  • 교도소의 교도관들이 '교도행정의 정의를 위해서' 교도소 문을 잠근채 수감자들에게 밥도 안주고, 그냥 굶어 죽게 내버려 두거나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당신들의 구실이 뭐건간에

 

당신들 참 이기적이다.  당신들은 직업 윤리도, 소명의식 따위도 아무것도 없는 '돈벌레' '식충이' 정말 벌레들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건데, 나는 내 몸을 아주 건강하게 잘 보살펴서, 배부르고, 남이 죽게 내 팽개치고 행패를 부리는 버러지 같은 종자들이 내 인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엉뚱한 결의를 하게 된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 남아서 저들의 철밥통이 거지 깡통이 되도록 합시다, 뭐 이런 캠페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평소에 내가 가졌던 특정 직업군에 대한 존경심, 이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쓰레기통에.  당신 자식이나 손자들이 똑같이 당할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 끔찍 할걸 아마.  돈이나 더 쌓아두라, 겁이 나거든.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