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20. 9. 30. 13:42

청량산의 꽃무릇

 

흥륜사에서 보이는 내가 사는 섬.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 9월은 내 인생에서 '맨발의 시대'를 열은 한달로 기억될 것이다.  섬의 가장자리 물가가 버지니아와 워싱턴 사이를 흐르는 포토맥 강을 닮았다 하여 나는 매일 아침 "포토맥에 간다"며 길을 나섰다.  그리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고 (산책로가 황토로 덮여 있었으므로 누구나 맨발로 걷고 싶어 질 것이다), 그리고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9월 한달동안, 이 섬을 세바퀴 돌았다 (한바퀴 21킬로미터).  아마, 이번주 토요일에도 나는 섬을 한바퀴 돌 것이다. 왜? 그냥 섬을 한바퀴 돌고 싶으니까.  

 

 

아무리 그 길이 좋아도,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 뭔가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 특히 연휴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진다. 휴가니까.  그래서, 아침 운동 나가는 시간에 차로 약 7킬로미터 거리의 다리건너 절에 갔다. 절은 청량산이라는 산 중턱에 있으므로 절 구경과 함께 산에도 오를수 있는 코스이다.  일곱 여덟살 어린이들도 군소리 않고 강아지 끌고 올라가는 나즈막한 산이다. 그래도 그 산 정상에 오르니 내가 살고 있는 섬 전체가 한눈에 조망이 되고, 내가 21킬로미터를 걷는 행로가 어떠한지 세밀하게 보인다. 아, 저 길을 개미만큼 작은 내가 네 다섯시간을 걸었던 거구나... 그런 것을 어림하며 작은 기쁨을 느낀다.  

 

 

평평한 평지를 걸을때, 나는 꽤 빠르다. 웬만한 남자들도 섣불리 나를 따라잡지 못 할 것이다. 나는 정말 걷기에 특화된 사람인것 같다.  그런데, 산에 오르는 일은 평지와는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스포츠 같다.  나는 얼마 못 올라가서 헥헥거리고 온몸이 땀에 젖고 현기증까지 나는데, 그런 내 옆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휙휙 날아가듯 지나간다.  하하하. 이거 뭐지?   평지를 걸을때, 나는 걷기계의 신 같다. 내가 작정하고 걸으면 날듯이 사람들을 휙휙 지나치는데, 산에 가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서 휙휙 날아 올라간다. 무서운 종족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새로운 종족을 발견했다.  그들은 '날다람쥐 족'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만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구나. 내가 바닥이구나...  

 

 

 

다시 연구실 책상앞에 앉아있다.  오늘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온라인으로 등산화를 한켤레 주문했다.  가끔은 날다람쥐님들을 구경하러 가까운 산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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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23. 12:48

www.canceransw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0

 

[달리기와 진화 3] 두꺼운 운동화 탈출, 맨발로 달려볼까? - 캔서앤서(cancer answer)

맨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쿠션 좋은 운동화를 찾는 시대에 거꾸로 신발을 벗어던졌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맨발

www.canceranswer.co.kr

 

오늘은 1교-2교-3교로 이어지는 약 2.5 킬로미터 거리를 맨발로 왕복했다. 5킬로미터 거리를 맨발로 통과 한 것은 내 평생에 처음이다 (어릴때 시골에서 자랄때 맨발로 논둑 밭둑 돌아다닌 것은 기록에서 제외하고 문명인으로 사는 동안만 생각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다른 신기록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대학때 단축 마라톤 달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약 2킬로미터를 '달리기'로 통과했다.  그러니까, 맨발로 통과한 5킬로미터중 1-2-3교로 가는길의 대부분을 달리기로 해 냈다는 것이지.  처음에 그냥 맨발로 걷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 달려 볼까? 달리다 힘들면 걸으면 되니까 걱정이 없지 -- 이렇게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발과 몸이 가볍게 느껴져서 3교에 도착 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면서 나도 놀라웠다. '어, 이상하다? 왜 달리기가 힘이 안들지? 왜 이렇게 발이 가볍고 몸이 가볍지?'  이런 느낌으로 반환점까지 갔다.

 

 

3교 다리 밑 (나의 반환점)에서 스쿼팅도 하고, 갈대 숲에서 고요히 기도도 올리고 뭐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는데,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는 달리기 하기에는 발에 무리가 생길것 같아서 그냥 씩씩하게 걸어왔다.  그래도 이제는 맨발로 걷는것과 운동화 신고 성큼성큼 걷거나 걷는 속도는 거의 일치하는 편이다. 

 

 

오늘 내 기록의 특별한 점은

  1.  난생처음 5킬로미터 쯤을 맨발로 걷거나 달렸다.
  2.  대학 졸업후 쉬지 않고 2킬로미터 거리를 달려본 것이 오늘이 처음이다. 그것도 2킬로미터를 맨발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나의 달리기는 - 나의 빠른 걸음 속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는 원래 달리기를 싫어하고, 달리기 하면 어지럽고, 달리기하고는 담을 쌓고 산 사람이다. 그대신 걷기는 다른 남자들이 슬슬 달리기 할때 속도를 맞추거나 추월할 정도로 빠른 편이다. 나의 걸음은 달리기만큼 빠르지만,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달린다는 것은 나의 빠른 걸음 수준으로 '달리기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내가 달리기 자세를 유지하고 천천히 2킬로미터 정도를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다리에 대하여, 내 신체에 대하여 기쁨과 감사를 느낀다. 

 

 

내가 내가 하는 걷기에 대하여 이렇게 감격하고 감사한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걷기 광신도였던 나는 한국으로 온 후에 일도 바쁘고, 주변 환경도 마땅치 않고, 미세먼지도 걱정되고, 그리고 나이가 갱년기를 통과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서 이래저래 건강이 저하되었고, 야금야금 체중도 불었다.  그러면서 2년 전부터는 걷지도 않았는데 종아리에 통증이 오거나 쥐가 나거나, 머리가 자주 아프고, 늘 감기를 달고 사는 아주 허약 체질로 바뀌어갔다.  아마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갱년기 증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리불순을 겪지 않았으므로 갱년기하고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상상했고, 그냥 내 몸이 왜 이렇게 되는걸까 의아해 했다.  지난 6월에 버지니아 집에 있을때도 근처 아름다운 트레일로 나가곤 했는데 조금 신나게 걸으면 발목과 발바닥에 통증이 심하게 와서 생전 쓸줄도 모르던 '파쓰'라는 것을 발에 덕지 덕지 붙이곤 했다.  아들이 "우리 엄마도 이제 늙는구나..." 한숨을 쉬며 정성스럽게 내 발목을 파쓰로 감싸주곤 했다.  나는 쩔뚝거리며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한숨 지었다.  이제 청춘은 가는구나. 맘놓고 걷지도 못하는구나... 걷기 광신도가 걷지를 못하게 되다니.  이것도 집안 내력인지 이미 우리 언니나 오빠가 몇해전부터 족저근막염이라고 병원다니고 이상한 신발을 신고 나타나고 하는 것을 보면서 -- "저이들은 왜 팔자 좋게 골프나 치고 다니면서 발이 아프다고 하는걸까?" 의아해 했는데 아무래도 내게도 그런 증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아프면 아픈가보다 하고 지나가므로 병원을 안가니 병명을 몰랐을 뿐이리라.  (나는 병원을 잘 안간다. 그래도 여태까지 잘 살아있다.)

 

 

7월에 귀국하여 자가격리를 하고 나왔을때, 내 몸은 정말 엉망이었다.  손 마디마디도 쑤시고 아팠고, 정말로 사람들이 '여성 갱년기' 증상이라고 일컫는 모든 증상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듯 했다.  7월 말 쯤에 바람쐬러 대부도에 가서 구봉산 언덕길을 오를때 -- 나는 그야말로 10미터도 못 간채로 어지럽다거 멈춰서서 헉헉대고 있었다.  그랬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내가 남처럼 낯설게 여겨졌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어디 가고 나를 닮은 흉한 괴물이 하나 둔갑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그래도 대부도 구봉도 숲길이 좋아서, 비오는 날에도 숲길에 갔고,  자꾸만 운전하여 대부도로 가다가 이렇게 마냥 휘발류 들이고 시간 들이고 거기까지 갈 수가 없겠다 싶어서 찾아낸 것이 8월 내내 내가 시간을 보낸 시내 공원길이었다.  알고 보니 내게 아주 딱 알맞는 - 산책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8월 내내 나는 연꽃과 수련들을 보면서 걸었다.  그리고 9월, 시내 공원길이 지루하게 여겨져서 그냥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가 해안 산책로를 발견했고, 그 해안 산책로는 나를 이 섬의 모든 아름다운 산책로로 인도해 주었다. 그 사이에 종아리가 이유없이 아프거나, 밤에 죽일듯이 쥐가 나서 괴로워하거나 하는 일이 사라졌다.  족저근막염 같은 발바닥, 발목, 아킬레스건의 통증도 사라졌다.  그리고 내 발은 10년전에 내가 포토맥 강변을 걷던때보다 더 튼튼해졌다.  맨발로 걷고 달리는 요즘의 나의 발길은 10년전보다 더 가볍다.  놀라운 재생이다.  (체중은 10년전과 비교하면 5킬로그램 정도 차이가 난다. 그것도 1개월에 1킬로그램씩 정리하면 5개월 안에 최적 체중으로 돌아갈 것이다. )  거울속의 내 얼굴은 10년전보다 확실히 늙었다.  머리카락의 광채로 약해졌다.  그렇지만, 내 다리는 더 튼튼해지고, 나는 더욱 강인해 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매일 아침에 맨발 달리기를 실천 할 것이고 점점 더 거리와 속도를 키워 나갈것이다.  내 희망은 (하하하) 맨발로 천하를 주유하는 아줌마로 <세상에 이런일이>에 출연하는 것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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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Books2020. 9. 22. 19:00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삶과 말씀을 '정찬주' 작가가 엮다

 

요즘 혜암스님에 꽂혀서, 책을 좀 읽으려고 도서관을 뒤지다가 그냥 전자책을 돈주고 샀다. 어차피 반납하기 싫을테니 늘 곁에 두고 읽으려면 내 책으로 간직해야. (혜암스님 견해로는 - "쓸모없는 짓을 하는구나 아악!" 하시겠지만). 

 

이분 설법을 들어보면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는 바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다. 오히려 성경을 더욱 잘 이해 할 수 있게도 된다.  가령,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런 말씀은 곱씹고 되씹고 '대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지?'  생각 할 때마다 각기 다른 답을 찾곤 하는데 혜암스님의 행적을 보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짐작을 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짐작하기에, 예수님께 '이 곳 (세상)'이 당신이 사실 집이 아니고 잠깐 들르러 오셨다가 지나가시는 곳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집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 (피안)이니까.  혜암 스님도 스스로 몸을 움직여 암자를 짓거나 세우거나 하셨다는데, 그렇게 고생해서 지은 집에 며칠 머무르지 않고 떠나셨다고 한다. 그가 지었으되 그가 머물 곳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가르치고자 했을 것이다. (교회 일으켜서 아들 손자 녀석들에게  세습하는 가짜 목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머리 둘 곳을 정하지 않으셨으니, 나 또한 예수쟁이로서 이 세상에 머리 둘곳을 찾지 않겠다.  그것이 우리 예수님을 따라 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머리둘곳을 찾지 않으면 - 삶은 꽤 가벼워진다.  그러니 예수님의 멍에가 가장 가벼운 자유 인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나는 이 혜암스님이 좋다.  그러니 가을이 지나가는 동안 이분의 이야기와 말씀에 기대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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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Books2020. 9. 22. 18:17

 

 

 

 

 

 

 

 

도서관에 갔다가 '맨발' 타이틀이 보여서 집어 들은 책인데 - 맨발 달리기나 맨발 걷기 관련 책은 아니고, 자연 친화적 삶을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실용서이다.  읽다보면 -- 음,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저자가 역설하는 방식으로  요즘 내 삶의 패턴을 스스로 조율하면서 살았다는 자각. 식후에 습관처럼 먹던 '과자 한입'도 끊지 않았던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음식을 모두 포기하고, 날것을 먹거나 조리해서 먹고 있지 않은가.  탄수화물의 창고와 같은 '고구마'나 '감자'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 그래도 최소한의 탄수화물을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쥬스나 콜라 같은 음료수를 끊지 않았던가.  내가 잘 하고 있었던거야. 이 작가의 또다른 저서 '운동화 신은 뇌' (번역서)는 도서관에서 이미 대출중이고 그대신 원서는 원서 서고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일 도서관에 들러서 그 원서를 빌려다 읽어야지.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22. 15:22

사진은 웹에서 빌려옴. (내 발이 아님) 

 

 

내가 아침 산책에서 '맨발로' 걷기 시작한지 3주가 지났다. 9월 부터 근처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따금 지나치는 분들 중에서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분들을 보고 나도 따라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전에도 바닷가 모래사장이나 개펄을 발견하면 끝도없이 맨발로 걷곤 했으므로, 기본적으로 맨발로 걸을 때의 그 신선한 촉감을 익히 알던 터였다.

 

 

처음에 양말을 벗고 맨발 걷기를 시도한 구간은 약 1.2 킬로미터 정도이다. 1교와 2교 사이를 걸어서 통과하였다. 며칠 해 보니 자신이 생겨서 약 2.5 킬로미터 거리 1교-2교-3교 이렇게 두 구간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는 살살 달리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차츰 차츰 맨발로 걷는 거리가 길어지고, 걷기에서 시작하여 달리기까지 하게 되는 발전을 보였다고 할 만하다. 단 3주 사이에. 

 

 

처음엔, 발이 땅을 밟을때마다 나의 모든 감각이 바짝 긴장을 했다. 따끔, 따끔, 이러다가 뾰족한 것을 밟아서 찔리거나 피가 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불안감도 있었고, 정말 미세한 돌멩이가 발바닥에 닿아도 느낌이 예민해졌다. 나의 감각이 이렇게 섬세하고 예민했다는 말인가? 아주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맨발로 처음 걷는 느낌은 -- 낯선, 첫 키스의 느낌, 혹은 섹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가질만한 놀라움 - 전신의 감각이 살아나는 듯한 그런 것들로 채워진다.  처음에는 1킬로미터만 걸어도 피로를 느낀다, 왜냐하면 전신이 긴장을 하고 '사뿐 사뿐'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여 하늘을 날듯이 걸어야 하니까.  자신의 몸을 솜털처럼 가볍게 하려는 의지가 발동하는 것이다. 발이 아플까봐 자연히 사뿐 사뿐 사아뿐~ 

 

 

그런데 이렇게 열흘 쯤 지나면, 발 바닥에 변화가 온다.  놀랍게도 건조하던 발바닥에 '기름기'가 돌면서 발바닥이 '두둑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걸 '굳은살이 박힌다'고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애매하다. 딱딱한 굳은살이 아니라, 두둑한 살이라는 표현이 맞는것 같다.  발바닥이 두둑해진다.  그러면서 예민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점점 발걸음에 내 체중이 실리게 된다.  나는 쿵쿵 소리를 내며 걷는다.  처음엔 사뿐 사뿐 조심 조심 걷느라 걸음 속도가 느려졌지만, 지금은 평소 걸음 속도대로 씩씩하게 쿵 쿵 걷는다.  그러면서 발이 - 발에 연결된 내 온몸이 굉장히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 몸이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에 - 원래 '곰 족 (느리고 움직임이 무거운 족속)'으로 태어난 내가 '달리고 싶다'라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달려본다.  발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호흡도 훨씬 편안하다.  운동화 신고 달리는 것 보다 맨발로 달릴 때 몸이 더 가볍게 느껴진다. 오호!  

 

 

요즘 내 아침 운동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침 운동을 시작한지 60일 쯤 되었다.  그동안 4.2 킬로그램 (무려 고기 일곱근)이 빠졌다.  처음 한달동안은 하루에 100그램씩 쭉쭉 빠졌는데, 그 후로는 체중이 그리 쉽사리 빠지지는 않고 있다. 며칠에 100 그램 이렇게 빠지는 식이다.  아무래도 운동 시작 한 이후에 -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 몸에 좋은 것도 잘 챙겨 먹어서 그럴 것이다.  단백질가루도 챙기고, 닭고기, 생선, 쇠고기 구이등도 매일 밥상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평소에 별로 안먹던 '남의살'까지 추가로 먹으면서 살을 빼려니 -- 체중 감량에는 속도가 붙지 않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 나 스스로 내 몸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내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바디 체중계의 기록을 살펴보면 - 전체적인 건강지수가 높아졌다.  근육량도 많아지고, 수분도 높아지고, 지방은 감소하고 있고, 신체연령도 감소하고 있으며 - BMI도 내려가고 있고 전체적으로 아주 좋은 상승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된다. 내가 미스코리아에 나갈것도 아니고, 패션 모델이 될 것도 아니고, 뼈만 남은 멋쟁이가 될 생각도 없다.  나의 꿈은 뭐 이런 것이다 -- 맨발 달리기 대회, 맨발 걷기 대회 뭐 이런 것에 참가하거나 맨발로 등산도 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하하하.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 나는 가벼워지고 있다 -- 체중이 팍팍 줄어들지는 않지만, 체중과는 상관없이 내 몸놀림이 가볍고 활기가 차오른다. 참 신나는 9월이다. 

 

요즘은 2.5 킬로미터 구간을 맨발로 걸은후, 돌아 올때는 운동화를 다시 신는데 -- 이 맨발 구간을 5 킬로미터로 늘릴까 생각하고 있다. 갈때-올때 , 다리 두개 지나가는 구간을 맨발로 돌면 된다.  (요즘 아침에 내가 걷는 거리는 12킬로미터 이다. 시속 6킬로미터 속도가 기록된다.) 

 

아침 운동 시작 이후 달라진 점:

  1. 체중 감량
  2. 의식적으로 닭가슴살, 생선, 쇠고기 스테이크등을 먹음 
  3. 과일 끊음 (나는 과일을 소처럼 먹던 사람이라, 이것은 애주가가 술을 끊거나 골초가 담배를 끊는 것과 같은 결기과 결단이다.)
  4. 채소...값이...태풍때문에 너무 올라가서...채소가 귀해져서--대안으로 매일 미역국을 끓여 놓고 먹고 있다.  시장기를 느끼면 미역국에서 미역 (건더기)을 한 공기 꺼내 담아놓고 밥처럼 먹는다.  하루에 필요한 채소의 양은 뭘 먹건 반드시 채우는데 요즘은 미역이 효도를 하고 있다. 값도 싸고 건강에도 아주 좋다. 
  5. 불면증이 사라졌다. 전에는 자다가 깨면 새벽 2-3시에 깨면 그 후로 잠을 못 이루고 고통스러웠는데, 요즘은 밤 열시쯤에 누우면 곧바로 잠이 들고 아침 다섯시면 귀신같이 깨어난다. 그리고 몸도 아주 가볍다. 그러니까 발딱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하러 해변으로 나갈수 있다.  불면증이 사라지고 숙면을 하며 깨어난후 몸이 가벼운 것이 얼마나 하루를 복되게 하는지. 매일 감격스럽다. 
  6. 두통이 사라졌다. 이틀에 한번 꼴로 타이레놀을 먹어야 했던 만성 두통이 사라졌다. 머리가 가볍고 몸도 가볍다. 

 

 

그런데, 이런 모든 변화의 근원에는 - 내가 '성경 통독'을 마라톤 하듯 열흘만에 해 치운 것이 있지 않았나 짐작한다. 성경통독을 한 후에 - 나는 몸을 돌봐야겠다고 자각하게 되었고, 아침 운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고, 이를 매일 실천하는 힘이 생겼고 그렇다.  허물어져가던 내 몸을 살린것이 내 아침 운동이라면 -- 그 살리려는 의지를 일깨운 것은 내 하느님 이시다.  내 하느님께서 공원길에서, 해변길에서 나의 기도와 찬양이 울려퍼지길 기다리고 계셨다.  거기서 만자자고 매일 아침 나를 깨우셨다.  그것이 성경 통독을 한 내게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상상하는 편이다. 

 

2020년 9월 8일 (화) 아침.

멀리 자전거 바퀴 모양의 1교가 보이고, 왕관 모양의 2교가 보이고, 3교 아래 교각 그늘로 향하는 발길. 이 장면도 옛날처럼 여겨진다. 지금은 새처름 가볍게 걷거나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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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9. 17. 17:55

www.yna.co.kr/view/AKR20200916175100001

 

윤봉길 손녀 윤주경 "독립운동가들이 이런 나라를 보려고…" | 연합뉴스

윤봉길 손녀 윤주경 "독립운동가들이 이런 나라를 보려고…", 한지훈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9-16 19:06)

www.yna.co.kr

글쎄, 할아버지 잘 만나서, 단지 할아버지가 윤봉길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어느나라의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지금 추장관 아들의 '특혜' 문제에 쌍지팡이 짚고 나설 일은 아니라고 본다.  추장관 아들 문제를 안중근 의사에 갖다 붙이는 자들도 정신상태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들의 정신이 제정신이 아닌것은 그 것대로 문제이고 -- 그런데, 할아버지 덕에 국회 의원하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라는 것이지. 도대체 할아버지가 윤봉길 의사라는 사실 외에 뭐..뭐..(한숨.)   독립유공자 후손이 받는 특혜는 뭐 괜챦은거고 유력자 아들이 군생활좀 쉽고 편하게 한것만 문제가 된다는 건가? 그것이 독립유공자의 명예에 부합하는 것인가? 나는 그걸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아, 우리 아들은 강원도 횡성에서 고생하다가 손가락 하나 삐뚤어져 제대 했지만 - 뭐 나라를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우리 아들 군대에 있을 때 '엄마 챤스'라는 것을 쓰긴 썼다.  내가 미국에 있어서 면회 한번 못 가봤지만 - 그래도 엄마의 강력한 빽이 있었으니 -- 부대 홈페이지에 부모님들이 글 올리고 그러는데다가 장교분들 보시면 기분 좋을 만한, 혹은 감동 받을 만한 재미있고 슬픈 이야기를 적당히 버무려 올려댔는데 - 어느날 대대장님이 우리 아들을 불러서 "얘, 너 엄마한테 전화 한번 할래? (굉장한 특혜 였다고 함)"  그런데 우리 아들 왈, "우리 엄마는 전화를 안받으십니다..."   하하하.    아무튼 엄마가 좋은 글 잘 올려주셔서 군 사기를 높여 준다고 우리 아들 '라면'도 먹게 해주고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엄마 챤스 다 썼다. 하하하.  그런데, 아들은 군대생활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심지어 장교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아예 군대에 말뚝을 박겠다고 하는걸, 내가, 간신히 뜯어 말리기까지 했다.  우리 아들이 군대를 좋아했던 오만가지 이유중에 넘버원: "군대에서는 삼시세끼 영양사가 계산한 밥을 공짜로 준다. 너무 맛있다. "   아들은 공부하고 노는 엄마를 만나 삼시세끼 원활한 밥상을 받아 보지 못하고 성장한 탓에 - 군대밥이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밥상이었다고, 지금도 군댓밥 얘기를 하며 군침을 흘리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자식을 군에 보내놓은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재벌이나, 일용직 노동자나, 무일푼 무직 부모나, 자식을 군에 보내놓은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어떻게든 자식이 무사히 좀더 편안하게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온갖 연줄과 빽을 동원하여 - 누군가에게라도 연락을 하여 좀더 편하고 안전한 보직으로 가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리저리 들어보면 - 아무튼 사람들은 그렇게 노력을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미 수십년전에 지나간 일이지만,  우리 오빠가 그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카투사에 들어갔는데 (나는 카투사라는 것을 오빠가 군대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평택인가 오산인가 어디로 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마침 우리 엄마 초등학교 동창 (고향의 코흘리개 시절 친구)이 별 하나짜리 장군이었다.  엄마는 새벽에 그 장군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하면서 '청탁'을 했을 것이다. 그 후에 우리 오빠는 용산으로 왔고, 주말이면 집에 치토스 이런 것을 사가지고 들르곤 했다.  수십년전 얘기다. 

 

또 그당시 우리 사촌 오빠는 '전투경찰'로 입대를 했는데,  어느 원자력 발전호 인근 부대로 가게 되었다.  서울 학생이 어쩌다 경상남도 어디로 배치가 된 것일까? 어쨌거나, 삼촌께서 장교를 하다가 퇴직을 하신 상태였는데 여기 저기 연락을 취해서 결국 그 사촌 오빠는 용산경찰서로 오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하필 10-26 사태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래서 김재규씨 재판 뭐 그런거 진행될때 전투경찰복입고 호위를 했다나 뭐라나. 하도 오래된 일이라.  가끔 수원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한강다리 건널때 버스를 세우고 한강다리 전투경찰이 버스에 와서 '검문'이란것을 하는데, 어쩌다 그 오빠가  버스에 오를때도 있었다. 되게 웃겼다. 

 

슬픈 일화도 생각난다.  우리 아버지와 사촌지간인 당숙 아저씨의 아들, 그러니까 나와는 6촌 지간인 오빠가 있었다. 아마 우리 오빠와 동갑이거나 그랬을거다. 서형이 오빠.  그 오빠는 사람이 참 좋았다. 원래 그 댁 할머니 (우리 아버지의 외숙모, 우리 할머니의 친정 올케)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언니 오빠들이 성품이 참 어질고 유순하고 좋으시다.  그 오빠도 그 집안의 장손으로 시골 중학교에서 남들만큼 공부하고, 남들만큼 산에 가서 나무도 해 오고 농사도 거들며 모범생으로 수원시내 최고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 오빠가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대학생 시절에 군대에 들어갔다.  어느날 그 댁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길래 -- 서형이 오빠는 군대가서 잘 있대요? 하고 여쭈었더니 속곳 주머니에 고이고이 간직한 사진 몇장을 내게 꺼내 보여줬다. 서형이 오빠가 군대에서 군복입고 찍은 사진 몇장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여주시며 아주머니도 흐뭇해 하셨다.  그런데, 얼마후 '제대한 서형이 오빠'가 그 집 사랑채 마루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알아 볼수도 없을 정도로 수척하고 어두워 보였다. 나는 실제로 그 사람이 서형이 오빠라는 것도 몰랐는데, 함께 있던 고모가 "서형이 이제 좀 괜챦니?" 하는 소리에 그이가 서형이 오빠라는 것을 알았다.  그 오빠는 얼마후 저 세상으로 갔다.  급성 백혈병이라고도 하고, 들리는 말로는 군대에서 하도 매를 맞고 고통을 겪어서 온몸이 다 망가져서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뼈만 남은 사람이 되어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쬐다가 우리곁을 금세 떠났다. 

 

시골 집에 있을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 혼자만 집에 놔두고 서울, 오빠 중학교 졸업식에 가신 그날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두고 가는것이 못미더웠던지 한동네인 할머니 친정에 들러서 서형이 오빠하고, 그 위에 언니하고 집에 와서 가축도 돌보고 나 밤도 해 먹이라고 부탁을 해 놓으셨다.  그래서 그날 서형이 오빠하고 그 위에 언니하고 따뜻하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  도무지 누구한테 험한 말이나 인상을 쓰는 일도 생전 안 할것 같이 선량하고 순한 사람들이었다.  아 또 생각난다. 그 며칠 후에 내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인형 안듯이 안고 길을 걸어가니까, 고양이가 낯선 영역이 되자 겁이 나던지 내 품에서 빠져 나와 근처 숲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그날밤 고양이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서형이 오빠가 그 고양이를 품에 안고 왔다. "내가 산에 가서 잡아 왔다" 며 그는 평화롭게 벙긋벙긋 웃었다.  우리 일가친척들은 모두들 '서형이가 군대가서 매를 맞아서 저렇게 되었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양순한 일가친척들은 누구를 원망할 줄 몰랐다.  

 

옛날에도 청탁이란게 있었고, 세상이 투명해진 지금도 그 잔재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힘있고 돈있고 빽있고 그런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뭔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지금도 힘없고 빽없고 돈없는 사라들은 여전히 조금 위축되어 누구를 원망할 줄도 모르고 한숨 지으며 그냥 묵묵히 살아 갈 것이다. 

 

 

남들 다하는 것을 가지고, '유독 왜 내 자식 문제만 물고 늘어지는가?'라고 장관이 말한다면 -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글쎄 그게 안걸리고 넘어갔으면 그냥 넘어가는거겠죠. 하지만, 그것이 드러나고 정황 증거들이 나오고 증인들이 나오면 이쯤에서 승복하셔야지요.  그래야 세상이 좀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좀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라면 -- 스스로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만으로도 세상은 좀더 정화가 될것이 아닙니까?   아들에게 편하고 좋은 보직이 가도록 애쓰는 엄마 마음이야 비난 받을 사항은 아닌데 - 그것이 '특혜'를 구한 것이었다면 승복하셔도 아름다울 것이오.   

 

남들 다 하는것 왜 나만 안되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게 지도자의 길이라는 겁니다.  법무장관 1에 이어서 법무장관 2 -- 이게 뭡니까 대체?  

 

 

Posted by Lee Eunmee
Books2020. 9. 17. 17:41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모토카와 다쓰오 지음. 이상대 옮김. 김영사 (2018)

 

이웃대학에 신청해 놓은 책을 가지러 갔다가, 서가에서 발견하여 빌려와 단숨에 읽었다.   서가에 스무권 남짓 줄서 있다는 것은, 이 책이 대학의 어느 과목의 읽기교재나 참고자료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검증 받은 좋은 책이겠다 - 이런 가늠을 하기도 였다.  역시 읽어볼 만한 생물학/혹은 자연대 기본 교양 도서 쯤 될것으로 보인다. 

 

제목은 '시간' 개념을 강조했지만,  각 챕터들은 '시간' 개념 외에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의 몸의 크기와 사는 방식의 차이와 전략에 대하여 그래프로 상관관계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동물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외에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섬에 사는 코끼리(커다란 동물)는 몸집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고, 섬에 사는 쥐는 몸집이 크게 진화한다는 '섬 이론'에 관한 것인데 --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체구가 작게 진화한건가? 그런 생각을 문득 해 봤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대략 이런 것이다.  포유류들은 사람이건 생쥐이건 뭐건 간에 평생의 호흡수과 맥박수가 비례하며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포유류들은 너구리나 생쥐나 사람이나 코끼리나 평생 거의 공통적으로 n번의 호흡을 하고 n 곱하기 4 정도의 맥박수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생쥐의 기대수명이 1년이라면 그 1년간 이 숫자를 다 소모하는 것이고, 코끼리의 기대수명이 100년이라면 그 100년간 이 숫자를 다 소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쥐는 코끼리보다 훨씬 빠르게 숨을 쉬고, 훨씬 빠르게 맥박이 뛰는 것이다.  생쥐는 명이 짧아 보이지만, 생쥐는 자기 천수를 누리는 것이다.  하루살이도 자기 천수를 다 누리는 것이다 (하루살이는 물론 포유류가 아니지만.)--저자가 한 말이 아니고 그냥 내가 덧붙임. 

 

그렇게 보면, 우리가 가족처럼 함께 지낸 개나 고양이가 천수를 다하고 우리 곁을 떠날 때, 우리는 크게 애통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거나 그 개와 고양이 역시 충분히 숨을 쉴만큼 쉬었고, 맥박이 뛸만큼 뛰었으니까.  우리의 시간 관념으로 그들이 짧게 살다 떠나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에게 10년은 백년처럼 길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해파리에 대한 설명도 - 내가 알아듣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해파리는 나무같은 성격을 띈 동물들의 군락체.  그러니까 이 친구들은 저희들끼리 '나무의 구조'식으로 서로 뭉쳐 지내는거다. 

 

여러 분야의 생물의 생존 전략이나 구조적 특징을 참 알아 듣기 쉽게 정리 해 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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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16. 12:37

 

지난 일요일은 근래의 내 운동 기록중에서 가장 긴 거리를 걸었던 날이다.  매주 토요일엔 엄마댁에 가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그것이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내가 실천해야할 숙제 같은 것이다), 일요일엔 아침에 예배드리고 쉬거나 산책이 나의 일상인데, 지난 일요일엔 나갔다가 예배전에 와야지 하고 집을 나섰다가, 내가 살고 있는 국제도시-섬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덕분에 일요일 예배를 드리지 못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죄송한 중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내 발로 걸으며 찬송드렸으니 크게 노여워하지 않으실거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숙소에서 출발하여, 이 섬의 가장자리 (섬이니 결국 바다를 끼고 가장자리 길만 따라 도는 길)를 따라 한바퀴 돌아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대략 23 킬로미터 거리였다. 

 

 

일단 이 섬과 육지를 잇는 1교 2교 3교 4교가 있는데 4교에서 출발하여 4-1-2-3 순서로 일직선으로 해안선을 따라서 걷다가 - 길이 끊긴 지점에서 길을 찾아 내어 지난해에 롹 페스티벌이 열였다는 페스티벌 공원을 지나서, 섬의 저 반대쪽, 큰 바다를 마주하는 쪽으로 이동하여, 이 섬의 유일한 컨서트 홀의 뒷마당 해안 공원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다시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니 '솔찬공원'이라는 -- 큰다리를 지을때 그 다리 골조를 제작하던 장소라는 공원에 이르렀다. 이곳의 카페에서 간단히 커피와 크로아상으로 요기를 하고, 역시 해안선을 고집스럽게 따라 걸어 돌아왔다.  특히 1교에서 3교로 이어지는 약 2.5 킬로미터의 거리는 내가 맨발로 통과하는 붉은 흙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시멘트 콘크리트로 둑을 덮고, 그 위에 황토를 깔아 놓은 구조라서 완전히 황토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맨발로 걸을때 흙의 탄력을 느낄수 있어서 맨발로 통과할 만한 곳이다. 

 

 

일단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에서 (벼가 익기 좋은 투명하고 따가운 햇살이었다) 다섯시간 쯤 이 세상의 근심을 잊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걸었던 시간이 뿌듯하게 내 가슴에 남게 되었고 - 별 애정이 없던, 내가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이 섬에 대한 애정이 솟아 나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제 섬의 어디에 어떤 보물이 숨겨 있는지, 오직 발로 걷는 사람만이 찾아낼수 있는 장소들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내 머릿속에는 섬의 지도가 담겨 있어서 -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갔다 오면 좋겠다. 그 거리면 10킬로미터쯤 되겠구나 두시간이면 충분히 쉬엄쉬엄 다녀오겠구나, 이런 가늠을 하게 된다.  대개 내 걷는 속도는 한시간에 6킬로미터쯤 되고, 중간에 스쿼팅을 하거나, 새구경 꽃구경 지나가는 동물 구경하느라 멀거니 서 있을때도 있고, '기도 벤치'라고 내가 정해 놓은 벤치에서 약 5분간 고요히 기도도 하고 그런다.  섬의 가장자리로만 따라 걸으면 -- 별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 나는 마치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자기 보호를 하며 걷는 야생동물 (여우, 야생 고양이등)처럼 세상의 가장자리 숲아래를 느리게 느리게 걸어서 지나간다.  이번 일요일엔 또 다른 섬의 가장자리를 걸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 나는 유명 관광지는 가지 않는다.  사람 많은 곳은 코로나 시절 이전부터 늘 피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어딘가 변두리로만 돌고 있는 인생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 역시 수십년전에 '교과서'처럼 남들이 다 신혼여행을 가던 시절에 신혼여행으로 가 본것이 전부인데, 그 당시에도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고, 요즘은 사람들이 가볍게 아무때나 다녀오는 휴양지로 너무나 익숙하여, 그냥 가보기도 전에 싫증이 나고야 말았다.  나는 변두리로 다닌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심심하고 하품나게 지루한 길, 그래서 아무도 안다니는 길, 말 해 야 아무도 모르는 길 그런데로 간다.  그런 길을 걸을때 - 나는 낯선 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가 된듯한 느낌이 든다.  머리가 깨어나고 감각이 생생해지고, 모르는 길에서 아는 길을 발견할 때 희열을 느끼며, 그 아는 길이 낯설어 보이는 기묘한 체험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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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9. 10. 18:25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5&aid=0003034139

 

이낙연 만난 김종인 "국민, 정부 돈에 맛들이면 안 떨어져"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로) 다시 우여곡절을 반복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민은 한 번 정부의 돈에 맛을 들이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

news.naver.com

유리 지갑으로 사는 나는 내 월급에서 세금이 얼마가 나가는지조차 별로 헤아리지 않는다. 나갈데 나가겠지 한다.  그냥 내 통장에 들어온 - 이것 저것 다 떼고 나머지 가지고 먹고 살 궁리를 한다.  세금 나간것은 올바른데 잘 사용될거라는 믿음에서다. 

 

 

나는 경기도민인데, 지난 봄에 경기도에서 뿌려준 돈이며, 내가 속한 시에서 뿌려준 돈 (재난 지원금)에 손도 안 댔다.  너무 바빠서 그거 챙겨 먹을 시간도 없었고 -  그리고 내가 안쓰면 다른 좋은데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나는 대체로 그것이 보수이건 진보이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대통령이건 싫어하는 대통령이건 간에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 잘 해 주겠거니 하고 믿는 편이다. (그게 내가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내가 미국에서 가난뱅이 유학생으로 두아이를 키우면서 살 때에도, 신청만 하면 우리 애들 점심은 무료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내가 가난하게 살 지언정 애들 밥값을 미국 정부에 맡기고 싶지 않아서 가난한채로 나는 내 문제를 해결 했다.  그래서 내가 가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돈이 없지 '가오 (일본말이긴 하지만 이경우엔 뭐 잘 어올리는 표현이기도 하다)'가 없냐.  내 명예를 지키며 소심한 시민으로 살아왔다. 

 

 

김종인씨가 '국민, 정부 돈에 맛들이면...'  뭐라구?  국민이 누군지 아는가? 국민이 세금 내는 사람들이다.  많이 내건 조금 내건 형편이 안되어서 못내건, 국가를 돌아가게 하는 돈이 어디서 나오나?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게 다 국민 돈이라구.  그런데 이 인사가 국민을 무슨 깡통 찬 거지나 거머리 취급을 하러 드는가?  당신이 대표로 있는 정당, 그 지원금도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가는거고, 당신이 거기서 월급 받으면 그것도 국민이 낸 세금이 쏠쏠히 흘러들어가고 있는거다.  넌 국민이 거머리로 보이나? 난 네가 거머리로 보인다.  국민을 거머리 취급하는 너와 너의 일당이 사람이긴 한건가?

 

 

국민이 만만해? 누가 돈 달랬어?  왜 지랄들인데 대체?  돈 달랜 사람 아무도 없어. 너희들이 재난기금이네 뭐네 떠들고 북치고 장구친거지.  심지어 망해가는 자영업자들도 정부에게 돈 달라고 한적이 없어.  거지 취급 하지마. 이 나쁜 새끼들아.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9. 8. 16:56

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교육의 질을 지키겠다는 구실로' 파업을 하거나,
  • 병원에서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의사들이 '의료의 질을 사수하겠다는 구실로' 파업을 하거나, 
  • 병사들이 '국방의 질을 사수하기 위해서' 파업을 하고,
  • 소방관들이 '소방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불난데 가서 불구경을 하거나,
  • 교도소의 교도관들이 '교도행정의 정의를 위해서' 교도소 문을 잠근채 수감자들에게 밥도 안주고, 그냥 굶어 죽게 내버려 두거나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당신들의 구실이 뭐건간에

 

당신들 참 이기적이다.  당신들은 직업 윤리도, 소명의식 따위도 아무것도 없는 '돈벌레' '식충이' 정말 벌레들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건데, 나는 내 몸을 아주 건강하게 잘 보살펴서, 배부르고, 남이 죽게 내 팽개치고 행패를 부리는 버러지 같은 종자들이 내 인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엉뚱한 결의를 하게 된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 남아서 저들의 철밥통이 거지 깡통이 되도록 합시다, 뭐 이런 캠페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평소에 내가 가졌던 특정 직업군에 대한 존경심, 이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쓰레기통에.  당신 자식이나 손자들이 똑같이 당할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 끔찍 할걸 아마.  돈이나 더 쌓아두라, 겁이 나거든.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9. 2. 15:43

 

얼마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검정 마스크를 착용한 어떤 사람의 마스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마스크가 과연 보통 마스크만큼 안전한가 아닌가 그런 점이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발견한 내 눈에 띈 것은 과연 이 그물망같이 생긴 마스크가 침방울이 튀어 나오거나 들어가거나 하는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 '그것 참, 마스크 착용한 그림 상태가 희안하게 야하고 흉하네...' 이런 괴상한 느낌이 앞섰다.  속 다 비치는 검은 망사그물 속옷 입은 그림이 그대로 노출된 듯한.  가끔 웹 서핑하다 보면 뭔가 예기치 않은 볼썽사납고 엽기적인 19금 이미지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람과 동시에 기분이 아주 망쳐질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엽기적인 이미지에 해당되는. 

 

 

음...나라면...누가 저거 공짜로 줘도 차마 저걸로 입을 가리고 돌아다닐 기분은 안들겠다 싶은 것이다.

 

 

건강 유지 차원에서 새벽 공원 산책을 시작한지 한달이 넘었다. 확실히 7월 말에 비해서 9월 초인 요즘, 공원에 산책나오는 분들중에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한 분들 숫자가 급격히 치솟은것은 사실이다.  나도 얼마전까지는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걷다가 저만치 사람이 보이면 코위로 끌어 올리곤 했는데 - 요즘 미친종교인들과 이상한 신념에 빠진 사람들의 합작으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서 나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주변이 어둑하고 사람이 안보여도 마스크를 내리지 않는다.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이제는 그것도 그대로 익숙하다. 심지어 요즘은 나혼자 문닫고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에도 마스크 벗는 것을 깜빡 잊곤 한다.  (나혼자 연구실에 있을때는 벗어도 되는데.) 지금도 마스크를 쓴채로 앉아서 이러고 있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이른 시간에 나가서 걷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올 시각이 되면 주변 산책객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 그러다보면 마스크를 턱에다만 걸치고 마주오는 사람이 보이면 슬그머니 내 쪽에서 모자챙을 최대한 내리고 얼굴을 돌리고 피하게 된다.  코와 입을 마스크로 가린 사람이 맞은편에서 오면 안심하고 적정 거리를 유지한채 통과하지만,  마스크를 반쯤 써서 코가 열려있거나, 마스크를 턱에 내리고 있거나, 손목에 매달고 돌아다니는 분들이 내 근처를 통과할 경우 나는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리고 빨리 통과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투덜댄다.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제 코와 입을 노출을 시킨채 돌아다니고 있다니... 흉측하다.' 

 

 

그냥 평소에 선량한 이웃 사람이었을 그 분들이 단지 코나 입을 내 앞에서 노출시켰다고 나는 그를 '흉측하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자신이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의기소침하고 기묘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이 마스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는데, 이 코로나의 끝이 어디인지, 이 후에 또 무엇이 다가올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혹시라도 '마스크 쓰기'가 삶의 일부로 정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걸까?  우리가 옷을 입어서 치부를 가리고 돌아다니는 이유가 뭔가? 개는 길 아무데서나 오줌을 싸도 되는데, 사람은 왜 화장실에 숨어서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기본적인 옷으로 몸의 이곳 저곳을 가리게 된 것일까? 우리가 평소에 입는 브레지어를 비롯한 속내의, 이런 것들도 처음에는 '마스크' 같은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서 입기 시작했는데 -- 그게 어쩌다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지탄받는' 무엇이 된 것이 아닐까?  이 마스크가 이대로 가다가 언젠가는 그냥 무조건 입어야 하는 속옷처럼 되는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길을 가다가 콧구멍을 노출 시킨 사람을 발견했을때 -- 바바리맨이라도 발견한 듯 충격을 받고 경찰에 신고를 하며  콧구멍과 입을 노출시킨 사진이나 동영상이 19금으로 비밀리에 거래가 되고, 콧구멍과 입을 노출시킨 미소년 미소녀 미 중년 미 노년들의 사진에 정부의 철퇴가 내려지는것은 아닐까?  (상상은 끝이 없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31. 12:41

전자체중계를 사서 매일 진행상황을 앱으로 확인하며  한달을 보냈다. 오늘이 8월의 마지막 날이니 한달간의 '기록'을 대충 남기기로 하자. 

 

 

 

1. 나는 한달간 3킬로그램을 (돼지비계같은 내 살코기 닷근을) 몸에서 불살라 없앴다. 하하하. 나의 한달간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다시 한달 - 다시 3킬로 도전 (자신은 없다. 갑자기 팍 퍼진것 빼기는 쉽지만, 오래 들러붙었던 것 빼기는 쉽지 않으니까. 과체중에서 정상으로 가긴 쉽지만, 정상에서 최적으로 가긴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경험상 처음에 몇 킬로는 금세 빼는데 나중에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잘 안빠진다. 최적의 상태가 되면 오히려 근육이 붙으니까 체중은 줄지 않는데 몸매는 탄력이 붙는다.)  신체나이도 한살 내려갔다.  한달동안 신체나이를 또 한살 젊게 만들도록 해 보자. 나의 성전을 잘 관리하자. 예수님의 세우신 내 작은 성전을 단정하게 관리하도록 하자. 

 

 

2. 이를 위해서는 지난 한달간처럼 매일 새벽에 일어나 90분가량 빠른 걷기및 운동틀 운동을 하여 기초 체력을 키우고, 주말에는 강도높은 장거리 산책이나 뭐 그런것을 하도록 하자. 

 

 

3.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내가 새벽마다 나가는 것을 보고 나의 배우자가 슬슬 나를 따라 나서더니 (나는 누구한테 함께 가자 이런 소리 안한다. 귀챦고 성가셔서 주로 홀로 하는 편이다), 요즘은 나보다 더 설쳐대고 - 내가 산 실내 운동기구 스테퍼를 "야, 그거 사서 사흘 하고 때려칠거면서 왜 돈 아깝게 그걸 돈주고 사냐..."이렇게 비아냥 거리더니 요즘 이 사람이 이걸로 온갖 운동을 다 해대고 있다. 뭐 상체 단련도 이것으로 하고, 아주 땀이 쏟아진다고 상체를 벗어 붙이고 운동을 해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스테퍼 돈 내고 해! 내꺼야!' 이러고 있다. 사용료를 받겠다.  결국, 나의 배우자가 가벼운 운동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다. 

 

 

4. 배우자의 변화는 이뿐이 아니다. 내가 운동과 함께 스스로 알아서하는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데 (과일 끊고, 저녁은 채소로 연명하고, 평소에도 과식 안하고, 굶지는 않지만 소식을 하는 쪽으로 진행), 대학생때와 동일한 체중과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날씬한 이 남자가 자기도 다이어트를 한다고 덤비고 있다.  나는 지방이 과다하니 지방 조절을 해야 하므로 저녁을 채소로 끼니를 때우는데 -- 아니 날씬한 사람이 왜 저녁을 채소로 때우러 드는가?  내가 안먹으니까 자기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나보다 더 극성스럽게 다이어트를 하러든다.  내가 미치겠다. 

 

그래서 우리들은 '바른생활' 책속의 착한 어린이들처럼 매일 착한 것만 먹고,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저녁이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음, 나의 운동이 가져온 다른 사람의 삶의 변화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24. 18:38

이럭저럭 내가 예수쟁이가 된 것도 십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정식으로 '좋아 평생 예수쟁이로 살겠어'하고 세례를 받은 것은 6년이 넘었다.  그러니까 교회 드나들며 간 본 세월이 한 오년쯤 되고 그 이후로 착실한 예수쟁이로 살고 있는 편이다. 

 

 

나는 지난 연말 이후로 한국에서 내가 소속한 교회에 가 본적이 없다.  연말에는 A형 독감 때문에 빌빌거리다 미국행 비행기를 탔으므로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로 교회를 못갔고, 연말에 미국으로 갔고, 미국에서 올때 쯤 코비드 난리가 터져서 나는 자진해서 교회에 안나가고 온라인 예배만 드렸다.  내가 교회 갔다가 코비드를 옮긴채 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학교가 문제에 빠질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내 행동을 극도로 조심했다.   그럭저럭 봄이 갔고, 미국에 다녀왔고, 자가격리 2주를 착실히 겪었고,  그 후에 현장 예배의 길이 열렸으나 그래도 나는 교회에 가는 대신에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만에하나 내가 감염되면 학교가 위험에 빠진다는 동일한 염려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 죄송하지 않다. 나는 분명 매주 착실히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내고 감사헌금을 내고 온라인으로 목사님이나 교회와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성경통독 운동이 벌어져서 나도 참여했고, 그래서 폭탄같은 은혜 속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나날들이 은혜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나는 하느님께서 나의 온라인 예배를 기쁘게 받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소속 교회에 온라인 예배 드리는 것 외에, 나는 학교에서 동료들, 학생들과 소그룹 기도회도 진행하고 있다. 봄학기 내내 Zoom으로 기도회를 진행했고, 여름 방학기간에도 - 내가 미국 집에 가서 생활 할 때도 변함없이, 쉼없이, 빠짐없이 기도회를 진행했다. 사실 작년까지는 여름, 겨울 방학 기간에는 기도회를 쉬었다. 방학이므로 기도회도 방학을 했다. 하지만 모든것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 어차피 언라인으로 하는거, 미국에 가건 캐나다에 가건 한국에 있건 아무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모두들 방학 동안에도 계속 기도회를 하는데 동의하고, 방학 내내 평소처럼 기도회를 가졌다 (일주일에 한번 한시간 모여서 기도를 나누는 것이다.)  온라인 시대가 가져온 예기치 못했던 기도의 확산이었다.  방학에도 쉼없는 기도회의 행진이 계속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이 이 일을 매우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대면이 코로나의 위험을 키울수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대면 예배를 '강행'하거나 '고집'을 부리는 것은 '몽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하느님이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온라인으로 기쁘게 예배드릴때 더욱 기뻐 하실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에 대하여 --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정의롭게 핍박 받고 있다는 식으로 꿈꾸지 말라.  그것은 정의로운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괴롭히는 일이며 다른 기독교인들을 똥통에 빠뜨리는 행동일 뿐이다. 

 

 

 

예수쟁이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평생 가는 그 길에 돌부리가 나오면 돌부리를 치우고 가고, 바위가 나오면 바위를 돌아가면 되고, 잠시 쉬었다도 가고 그러는 것이지, 평생 갈 그 길을 욕되게 만들지 말라.  챙피해서 어디가서 예수쟁이라는 말도 못하겠다.  그래도 나는 나 스스로 '예수쟁이'라고 일컫는데 - 예수님이 내 삶의 등불이고 그의 손에 이끌리어 나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시니 나는 예수쟁이이다.  예수쟁이 하루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야 조금 기다린들 어떤가.  온라인 예배도 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뭐가 문제인가.  당신의 예배의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이 세상에 세워진 예배당이 코로나 때문에 모두 망할리가 없지만, 그것들이 모두 망한다고 해도 -- 나는 여전히 예수쟁이로 살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속한 예배당에 계시는것이 아니라 내 가슴에서 나와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세상의 목사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예수쟁이로 살 것이다. 내게는 성경이 있어서 성경에 의지하여 하루 하루 살 것이고, 내 기도에 의지해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을 믿으며 내가 하루 하루 살아간다면 분명 하느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예수쟁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예수님을 제대로 경배하자.  교회가 없어도 목사가 없어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다.  교회나 목사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니 그러한 우상에 현혹되면 안된다. 제발 미친 목사따위로 시끄럽게 굴지 말라. 짜증난다.  정상적인 일상의 시간에 일상처럼 나는 교회에 갈것이고 일상처럼 목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것이다.  하루이틀 떨어져 있다고 멀어지면 그건 처음부터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거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19. 14:15

 

지난 7월 31일부터 전자저울로 몸무게 기록을 시작한 이래로 20일째이다. 처음 체중계에 올라섰을때와 오늘 체중의 차이는 2.6 킬로그램 (살고기 네근하고 200그램 --> 왠지 고기 얼마...이러면 좀더 실감이 난다.) 하루 평균 100그램 이상을 감량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전술한 바대로, 나는 매일 새벽 속보로 공원 다섯구역 한바퀴 (대략 1만보, 대략 80-90분, 중간에 운동틀에서 몸풀기 운동도 하니까.) 도는 것을 빼먹지 않고 했고, 비가 많이 와서 못 나가는 날에는 체육실에서 트레드밀로 채웠다.  아침은 오만가지가 들어간 홈메이드 요거트 스무디, 점심은 신나게 잘 먹고, 저녁은 굶거나 뭔가 채소를 먹거나 (저녁이 좀 울적하긴 하다...) 

 

    * 점심은, 고기, 달걀, 생선구이, 생선회 등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기름지고 든든한 음식을 일부러 골라서 먹었다. 

 

 

대체로 체중, BMI, Body Fat 과 같은 사항의 수치는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 하향하고 있고,  Body Water, Skeletal Muscle, BMR은 반대로 상향선을 긋고 있다. 아주 좋은 그림이다.  덕분에 신체나이도 내려갔다 (신체가 조금 젊어졌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나가서 점심으로 갈비를 배부르게 먹고 왔다. (아, 배부르고 기분좋다~) 

 

 

이 상태로라면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집으로 가서, 파피리카나 뜯어 먹다가 산책을 나갔다 와서 잠이 들 것이다. 하루 이만보를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도 안된다 싶으면 자기 전에 스테퍼에 올라가 계단오르기 운동도 하고, 요가매트 위에서 온갖 생각나는 자세의 운동을 한다. 

 

 

그러니까, 생짜로 막 굶어서 고통스럽게 하는 다이어트는 아니고, 몸을 쉼없이 움직거려줘서 몸을 되살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에서 생고기 열근 무게를 잘 정리하면  (지방질은 근육보다 부피가 크다고 하니까), 뭐 몸의 전체적인 형태가 재정비 될거라고 본다. 하루 백그램씩 정리하면서 6킬로그램을 제거하려면 두달 동안, 지금같은 생활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한다. 내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과일을 한 상자 사서 실컷 먹을것이다. (이렇게 나를 달래본다.) 

 

두달 이상 못보다 어제 회의에서 만난 동료가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있나요? 얼굴에서 빛이 나요" 할 때, '아 내 얼굴에서 빛이 나는게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매일 운동을 하고 땀을 펑펑 흘리는 요즈음, 분명히 얼굴 피부는 자외선에 그을리고 있는데 내 얼굴이 빛난다는 느낌이 종종 들었었다.  내 얼굴이 빛난다. 예전에는 화장을 해도 피로에 찌든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화장을 안해도 얼굴이 빛난다.  아마도 운동을 해서 몸의 활력이 되살아나서 그런게 아닌가 한다.  새벽 운동과 식이 조절이 내 몸을 되살리고 있나보다. (물론 이 모든것을 이끌고 계시는 이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매일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잘 하고 있어'라는 칭찬처럼 보인다. 

 

지난 여름을 돌아보며, 2020년 여름 한철, 나의 최고의 보람은

 

  1. 자가격리 기간의 성경통독
  2. 자가격리 해제 후 망가진 건강을 되찾기 위한 운동 시작과 건강의 복구
  3.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멈춤없이 진행한 언라인 기도모임

 

이렇게 정리 될 수 있겠다. 위의 세가지는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조화로운 그 무엇일것이다.  나는 우리의 기도모임이 우리들을 살리고, 우리 주위를 밝게 해 줬다고 믿는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10. 22:36

Covid-19과 갱년기가 겹치면서 내 몸이 빵처럼 부풀어가는 것이 현격하게 드러났다.  몸이 빵처럼 부푸는 것에 비례하여 움직임이 둔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두통이 잦고 -- 대체로 내가 나 같지가 않다는 낯선 느낌마저 지속되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자가격리'에서 벗어나 귀가한 후부터 -- 7월 말부터 정신을 차리고 내 몸을 관리하기로 했다. 

 

 

우선, 용기를 내어 1년 가까이 멀리하던 '체중계' -- 전자 체중계를 장만하여 피하고 싶었던 나의 현실에 직면했다. 예상대로 일생일대의 최고의 몸무게를 이룩하고 있었다.  (임신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인생 최고의 몸무게였다.)  BMI는 정상치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것은 서양인들의 기준이므로 한국인 기준으로는 필시 '비만'이다.  체지방 비율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신체 나이가 내 실제 나이보다 높아져 있었다.  수년전 까지만 해도 실제 나이보다 20세 이상 젊게 나오던 숫자가 이제 역전 되었다.  음...심각하다. 내 건강을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나는 비만, 고혈압, 당뇨등 성인병을 얻게 되리라. 

 

 

그래서 내가 7월 말부터 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고 있는 몇가지들:

 

 

  • 매일 전자저울로 신체 상황을 체크한다.  마침 저울의 앱이 여러가지 지수를 상세히 보여주는데 그 숫자들을 참고하면 동기화가 된다. 매일 평균 100 그램의 체중이 줄어들고 있다. 여태까지 보름간 대략 고기 두근반 (1,500 그램)을 제거했다.  
  • 실내운동용 스텝퍼를 장만하여 거실에 놓고 집에서 TV 보며 빈둥거릴때 그 위에 올라가서 운동을 한다. 
  • 매일 쉼없어 새벽 공원 산책 (7킬로미터 거리. 10,000 보 거리) 를 빠른 걸음으로 하고 있다. 시간이 점점 단축되어가고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다.
  • 비가 와서 공원에 나가기 어려울때는 체육관 트레드밀을 이용하여 동일한 거리를 걷는다. 체육관에서 하면 입고간 운동복 상의가 비에 맞은듯 온통 젖고, 머리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시속 6.4 킬로미터로 걷는다 (시속 4마일로 속보를 하라는 내용을 읽은적이 있어서.) 
  • 운동으로 만보 걷는것 이외에 생활속에서 만보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도합 이만보.  채울때도 있고 못 채울때도 있다.
  • 과일을 끊었다.  사실 내 몸을 감싸는 지방질은 '과일'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을 먹는것 외에 참외를 한번에 서너알씩 먹는 것은 기본이고, 수박도 큰것 한통 사면 혼자서 사흘 (3일)이면 아작이 난다. 귤을 앉은 자리에서 열개도 거뜬히 먹고. 늘 이런식으로 과일을 달고 살았다. 내 식비의 절반 정도는 아마도 과일 값이었을것이다. 그 좋아하는 과일을 끊었다.  (매일 아침에 밥대신 갈아먹는 바나나와 견과류를 제외하고, 간식으로 먹어대던 과일을 일체 끊었다.)  말하자면 나는 '과일 중독자'인 셈인데, 내가 과일을 끊는 것은 애연가가 담배를 끊는것이나 애주가가 술을 끊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긴 하다.  나도 과일을 안 먹으면 '금단현상' 같은게 온다. 우울하고, 짜증나고, 불안하다.  그래도 '비만을 해결 한 후에 다시 과일을 먹자'고 다짐하고 과일을 딱 끊었다.  안먹겠다고 작정하니...뭐 견딜만 하다. 내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 "나중에 정상체중으로 돌아가면 그 때 과일 다시 먹을 수 있어."  그러나, 그 후에도 나는 여태까지 '소처럼 우적우적' 먹어 치우던 과일 먹는 양식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 아침 식사는 늘 하던대로 -- 집에서 만든 요거트에 호두, 생아몬드, 해바라기씨, 브라질 넛, 유산균, 새싹보리 분말, 바나나, 비트 (기타 그때 그때 냉장고에 있는 채소)등을 넣어 스무디를 만들어 한사발 숫가락으로 천천히 떠 먹는다. 죽 같다. 한끼 든든하다. 
  • 점심은 잘 먹으려고 노력한다. 생선구이나 계란 후라이, 뭐 속 든든한 반찬으로 든든하게 잡곡밥을 먹거나, 점심 약속을 잡고 나가서 든든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별로 구애받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알차게 먹는다. 
  • 저녁은 그냥 차를 마시고 통과하거나, 오이, 토마토, 파프리카 이런것 썰어서 샐러드를 맛있게 먹는다.  (오늘은 학교에서 밤 늦게까지 작업하고 있으므로 보리차를 따뜻하게 마시고 있는데, 집에 가서 아무것도 안먹고 그냥 잘 것이다. 레몬 물이나 만들어 먹던지.)
  • 레몬을 한박스 사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레몬수를 짜내어 물에 섞어 마시고 있다.  가끔 심심하면 레몬을 통째로 갈아서 먹기도 한다. (물론 레몬을 깨뜻이 씻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집에 들어가면 레몬 향기가 난다. 
  • 새싹보리 키우는 키트를 장만하여 벌써 두번째 농사를 지었다. 수경재배를 하고 있다. 뿌리 째 그냥도 씹어 먹고, 아침 스무디에 넣어 갈거나, 된장국에 넣기도 한다 (달래하고 비슷한데 달래에 비해 뿌리가 질기지만 먹을만하다.).

 

 

 

뭐 이렇게 살고 있다. 

 

 

보름간의 변화라면

 

 

  • 일단 체중보다는 발걸음이나 내 몸집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활발해졌다.  물론 체중도 내려가고 있다. 지방율이 감소하면서 다른 '긍정적'인 요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근육양도 증가하고, 수분량도 증가하고. 
  • 사진을 찍어보면 내 얼굴 표정이나 피부빛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피부 톤이 밝아진것 같다. 탄력이 늘어나 보인다. 
  • 나른하게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자꾸만 움직이게 된다 (스테퍼에 자꾸 올라가고, 뭔가 부스럭대며 움직인다.)
  • 뭘 먹을때 칼로리를 따져보는 습관이 들었다. 60 칼로리 짜리 음료수가 있다면 -- 이만큼 칼로리를 빼려면 내가 트레드밀에서 얼마를 걸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해보고 먹기를 포기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과자 한입도 먹을 생각이 사라진다.  그래도 그다지 우울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 점심 때 먹고 싶은것을 먹을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 한끼는 먹고싶은대로 먹으니까 (점심때 막 흐드러지게 먹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달랠수 있다는 것이다.) 
  • 매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 체중계에 올라간다 (그때가 하루중 가장 가벼운 때이니까). 그리고 건강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열어서 -- 나의 하루 성적을 조회한다. 내가 얼만큼 칼로리를 소모했으며, 오늘 아침 나의 체중 데이타는 얼만큼 향상 했는지. 그 수치들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매일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이 나를 더욱 분발하게 한다. 

 

 

나는 그다지 허기지지 않다.  아침 식사로 먹는 요거트 스무디도 아주 건강한 음식이며, 점심도 기름지게 잘 먹고 있다. 저녁을 생짜로 굶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고기를 (내 몸의 지방을) 대략 열근 정도 태워야, 평상시의 나로 돌아갈 것 같다.  가을내내 서서히 꾸준히 진행하여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8. 3. 16:09

 

 

한국 외교관이 뉴질랜드에서 활동 할 때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그 나라 총리가 우리나라 대통령과 외교적 통화를 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 항의를 했다는 얼마 전 뉴스.  나도 관심 있어 뒤져보니 해당 외교관의 이름이며 그의 이목구비며 그가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모습 등 깨알같은 그의 삿적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리면 뭐하나, 다른 나라 언론 뒤져보면 다 거덜나는 피의자들의 '초상권.'

 

 

나는 성추행에 연루된 사람에 대해서 머리카락 만큼의 '동족의식'이나 '동정심'따위는 없다. 특히 나는 성추행 혐의를 뒤집어 쓴 사람에 대하여 굉장히 부정적인 편이다. 

 

 

그런데, 그렇지만,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시건방'을 떨은 뉴질랜드 총리에 대해서 아주 불쾌하다.  covid-19 상황에서 뉴질랜드에서 백돼지 같은 인종들이 아시아 출신 사람들 (중국, 한국 가릴 것 없이) 혹은 아시아인 용모의 이민자들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던가. 길에서 때렸고 모욕했다.  뉴질랜드 총리는 답하라.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피해자들에게 뉴질랜드 총리는 어떤 사과를 했는가?  당신의 상대국 국가 원수들이 전화 통화에서 그런 일에 대해서 '너처럼' 대놓고 따진적이 있는가 없는가?

 

 

너희들이 하는 행동은 별문제가 안되고, 한국의 외교관이 뉴질랜드인 직원 엉덩이 만진것만 큰일이라고 생각하나?  엉덩이를 쓰다듬건 - 아시안이라고 침을 뱉고 때리건 악행은 악행이다.  너는 그 피해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할건가?

 

 

 

너희들의 야만에 대해서 반성은 티끌만큼도 안하면서 한국의 외교관만 그렇게 중차대한 문제인건가?  뉴질랜드가 싫어지고 있다. 그러나 뉴질랜드가 싫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겠다.  나도 우리나라 남자들 손버릇 나쁜것 챙피스럽다.  그런데 너도 뉴질랜드 사람들 인종주의에 대해서 부끄러운줄 알고, 아무데서나 나대지좀 말라. 보기 엮겹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23. 18:29

 

 

극히 개인적인 의견인데, 한 체제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정말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족들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오는 분들에 대해서 나는 깊이 공감하고 한국 사회에서 그분들이 잘 살아줬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데, 한 체제에서 잘 교육받고, 고위직을 누리고, 잘 살다가 다른 체제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이 잘 안간다.  그것이 진정한 '전향'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런것을 우리가 전향이라고 하는지 전향의 개념이 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한 체제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를 기름지게 누리다가 그것이 식상해서 다른 체제로 이사 하는 것을 우리가 전향이라고 하는가?   무법자 저열한 깡패의 세계에도 '의리'라는게 있어서 함부로 쉽사리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하지 않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인데  생계 문제도 아니고. 이팝에 고깃국에 잘 먹고 살다가 ...전향?   헷갈린다.

 

 

나도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대답 - 전향은 이쪽 저쪽 이사다닌 당신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나는 그런적이 없어요 - 라는 요지의 대답은 그야말로 사이다 였다.  사실 요즘 대통령도, 그의 졸개들도 다 실망스럽고, 신경질나게 만들고, 이래저래 다 꼴보기 싫은 편이었는데 오늘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대답'은 명언중의 명언이었다. 박수를 보낸다.  내 비록 저 사람들에게 실망이 크긴 하지만  '태'씨 따위가 함부로 건드릴 인물은 아닌 것이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20. 10:31

서울시의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집을 짓네 마네 하는 문제에 법무장관까지 끼어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오늘날 한국의 부동산 경기. 

 

그러니까 집값이 너무 뛰어오르고, 덩달아서 전셋값도 더 무섭게 뛰어 오르고,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새로 연구하여 내 놓을때마다 집값은 상승한다는 것 같은데.  그런 뉴스들을 멀리서 관망하면서 문득 드는 의문.

 

1) 집값 상승이 전국에 고르게 일어나는가, 특정 지역에서만 난동을 부리고 있는건가?  (정답: 특정 지역에만) 

 

2) 집값 상승의 최대 수혜자는 현 정부 (현 대통령)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일까,  반대쪽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일까? ( 추측컨대 아마도 반대쪽에 표를 던진 한강 이남에 집가진 분들.)

 

아마도, 한강 이남 집값 상승의 최대 수혜자들은 (비율적으로 봤을때),  진보쪽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 아니라 보수 쪽에 표를 던진, 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일것 같다.  보수후보라면 그가 누구가 되었건 무조건 국회의원 뱃지를 단다는 그 지역 - 그 지역 사람들이 가진 집값은 오늘도 열심히 오르고 있겠지. 누구 덕분에? 그들이 싫어하는 진보진영의 대통령과 그의 졸개들 덕분에.  그렇지만 그들은 현직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뛰어오르는 집값 따위 보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적인 숭고한 이상이 있기 때문일것이다. 

 

이런것을 보면 -- 뭐랄까 아이러니 혹은 블랙코미디 같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도록 응원을 보냈던 미국의  경제적 중하위권 가난한 백인 서민층 -- 그 사람들, 트럼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그에게 표를 던졌지만 트럼프가 정말로 그들의 삶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래도 그들은 트럼프에 열광한다.  망해가면서도 트럼프를 찬양하고 그들의 망해가는 집 마당에 트럼프 지지 푯말을 세워 놓는다.  그들 역시 망해 죽을 망정 그들이 추구하는 정신적인 숭고한 이상과 트럼프가 부합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기묘한 세상이다.  더욱 무서운 일은 -- 그 트럼프가 어쩌면 재선에 성공할수도 있다는 거다.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 트럼프가 망할것처럼 전하고 있지만, 내가 미국에서 피부로 감지한 것은 딱히 그런것만도 아니어서... 트럼프는 보이는데 트럼프의 적수는 도무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혼자 뛰는 경기에선 그 사람이 이기는거 아닌가?  알 수 없는 세상. 여기나 저기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6. 09:42

 

Born free as free as the wind blows~  as free as the grass grows born free to follow your heart~ 

 

아침 일찍 (7:50 am) 이러한 희소식을 받으니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제 이 코로나 감옥으로부터 나갈수 있게 되었다.  할레루야. 예수님 부활하신것처럼 기쁜 일이로다. 

 

 

아...돌아보니 꿈같은 시간이었다.  허둥지둥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 내가 도착하여 지나친 그 아틀란타 시내에서 내가 떠난지 몇 시간 후에 대대적인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시위'가 시작되었었고,  미국에서 지내는 한달 내내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시위와 코로나 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된 블랙 코메디'같은 행실들을 TV로 지켜봐야 했고, 허둥지둥 한국으로 와서 보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엉뚱한 사람의 엉뚱한 시간의 죽음과 요동치는 국내 정세와.  아아, 꿈이로세 꿈이로세. 그 어디쯤에 나의 진짜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나의 기나긴 봄은 이제 끝났다.  이제 여름이다. 사실  한국에서 7월 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굉장히 오랫만의 일이다. 한국에서 근무를 한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6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나는 항상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7월을 한국에서 보낸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 설렌다. 벌써 절반이 '감옥'에서 가고 말았지만 나머지 7월을, 그 7월의 초록색 공기를 깊이 들이마실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12시에 해제되므로 12 정각에 이 '감옥'을 나서서 일단 학교로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을 하고.  내일은 엄마를 뵈러 가야한다.  아직 엄마가 살아계셔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테레비를 보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오기를, 나를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엄마, 남편, 자식들. 그게 전부인것 같더라.  항상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미국에서 둘째를 못 보고 와서 가슴이 찌르르하고 아팠다.  그냥 무작정 보고 싶은 자식.  그래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나를 보고싶어 하겠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이제 코로나 격리 잡설을 마친다. 구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안녕히. 하하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7. 16. 02:05

성추행, 성폭력 피해자가 오랜 세월이 지난후에 그 일을 공개하거나 문제화 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내가 아는 범위안에서' 설명을 해 주겠다.  (나는 이런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다 그냥 자연인에 불과한데 그래도 한정된 설명은 가능하다).

 

1. 그동안 숨죽이고 지내다가 주위에서 미투운동으로 뭔가 목소리가 나고, 김지은씨도 나오고, 오거돈씨 주변 피해자도 나오고 그러면서 - 어떤 사람들은 '이게 숨죽일 일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인가보다' 하고 깨닫고, 용기를 낼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용기를 낼 수도 있다.

 

2.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잘못인줄 알거나 아예 원인도 모르고 고통을 겪다가 정신과 상담 과정에서 혹은 다른 상담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을 자각한다.  그래서 상담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자각을 하고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낸다. 오랜 세월후. 

 

3. 나도 내 평생 침묵하는 나만의 문제가 있다.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그를 용서한 것은 아니다. 용서도 무엇도 아니고 그냥 내가 흘러가주는거다. 입에 담기도 싫어서.  그러나 내가 이를 입 열고 문제화한다면 충분히 문제가 된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이러느냐"라고 누군가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면 일단 그 자부터 죽여버리겠다.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

 

4. 나만 그런게 아니다.  내 아주 가까운 사람도 내게 동일한 맥락을 말한 바 있다. 누군가가 죽었다. 그거 장례식장에 갈 의논을 하는데 그가 말했다. "그 새끼 뒈지길 여태 기다렸다. 곱게 가는걸 고마워해야 할거다. 내가 장례식장에 가면 그 새끼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까발려 버릴거다. 그러니 내가 안가고 말지."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장례식장에 안온것을 가지고 수근댔지만, 장례식장에 안 가주는것이 아주 큰 은혜였음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5. 어떤 사람이 가슴에 묻고, 상처를 묻고, 고통을 겪으며 보낸 시간에 대해서 '그동안 뭐 하다가 이제와서'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그동안 겪은 고통을 함께 슬퍼해야 그게 정상인거다. 

 

 

이 세상 여자들이 어릴때부터 나이 들도록 여기저기서 당한 성추행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럴때마다 가해자가 죽는다면 - 이 세상 남자들 씨가 마를까봐 나는 그걸 염려한다.  남자들 씨가 마를까봐 그냥 참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아주 많이 있다.  나는 정말로 '남성 보존 연구회'를 창설하여 남성들을 보호해야 하는게 아닐까 염려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를 추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성추행에 여자 남자가 어딨나. 여자도 힘을 가지면 충분히 남자를 추행할 것이다. 인간이 뭐 특히 다를게 없으니까.  성추행 성폭행자들은 죽지좀 말라. 이제와 생각하면 오거돈씨는 오히려 존경받을만하고 안희정씨도 살아줘서 고맙다.  살아서 스스로의 치욕을 버텨줘서 오히려 고마운 판이다. (사람 오래 살고 봐야해. 시간이 지나면 그림이 휙휙 달라지고, 심지어 살아있는 그들에게 감사하게 된단 말이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