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20. 9. 30. 13:42

청량산의 꽃무릇

 

흥륜사에서 보이는 내가 사는 섬.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 9월은 내 인생에서 '맨발의 시대'를 열은 한달로 기억될 것이다.  섬의 가장자리 물가가 버지니아와 워싱턴 사이를 흐르는 포토맥 강을 닮았다 하여 나는 매일 아침 "포토맥에 간다"며 길을 나섰다.  그리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고 (산책로가 황토로 덮여 있었으므로 누구나 맨발로 걷고 싶어 질 것이다), 그리고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9월 한달동안, 이 섬을 세바퀴 돌았다 (한바퀴 21킬로미터).  아마, 이번주 토요일에도 나는 섬을 한바퀴 돌 것이다. 왜? 그냥 섬을 한바퀴 돌고 싶으니까.  

 

 

아무리 그 길이 좋아도,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 뭔가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 특히 연휴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진다. 휴가니까.  그래서, 아침 운동 나가는 시간에 차로 약 7킬로미터 거리의 다리건너 절에 갔다. 절은 청량산이라는 산 중턱에 있으므로 절 구경과 함께 산에도 오를수 있는 코스이다.  일곱 여덟살 어린이들도 군소리 않고 강아지 끌고 올라가는 나즈막한 산이다. 그래도 그 산 정상에 오르니 내가 살고 있는 섬 전체가 한눈에 조망이 되고, 내가 21킬로미터를 걷는 행로가 어떠한지 세밀하게 보인다. 아, 저 길을 개미만큼 작은 내가 네 다섯시간을 걸었던 거구나... 그런 것을 어림하며 작은 기쁨을 느낀다.  

 

 

평평한 평지를 걸을때, 나는 꽤 빠르다. 웬만한 남자들도 섣불리 나를 따라잡지 못 할 것이다. 나는 정말 걷기에 특화된 사람인것 같다.  그런데, 산에 오르는 일은 평지와는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스포츠 같다.  나는 얼마 못 올라가서 헥헥거리고 온몸이 땀에 젖고 현기증까지 나는데, 그런 내 옆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휙휙 날아가듯 지나간다.  하하하. 이거 뭐지?   평지를 걸을때, 나는 걷기계의 신 같다. 내가 작정하고 걸으면 날듯이 사람들을 휙휙 지나치는데, 산에 가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서 휙휙 날아 올라간다. 무서운 종족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새로운 종족을 발견했다.  그들은 '날다람쥐 족'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만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구나. 내가 바닥이구나...  

 

 

 

다시 연구실 책상앞에 앉아있다.  오늘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온라인으로 등산화를 한켤레 주문했다.  가끔은 날다람쥐님들을 구경하러 가까운 산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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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