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내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비행기 탑승 수속 72시간 이내에 발급된 코로나 음성 확인서. 이것은 어디서 어떻게 얼마의 비용을 치르고 만들수 있는가?
네이버와 구글로 검색을 해보니 몇가지 방법이 나온다.
인천 공항에서 - 사전에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검사를 받는데 대략 PRC 검사 음성확인서류 한장 떼는 비용이 17만원-20만원 정도이다. 당일에 가서 검사받고 영문확인서 받을수 있다고 한다. (사실, 예약하려고 로그인해서 들어갔는데 - 이미 예약이 꽉 차서 예약할수가 없었다. 망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출국을 앞둔 동료들에게 예약할거면 빨리 하라고 알려주었다.)
대학병원급에서 미리 예약하고 검사받고 영문 서류를 받는다. 나는 인하대학병원에 예약을 했다가 나중에 더 가까이에 있는 더 저렴한 검사를 발견하고 취소했다. 오늘 검사받으면 내일 가서 확인서 받는 방식이었다. PCR음성 확인서 17만원 경비가 든다고 했다.
알음알음으로 인터넷에 잘 잡히지 않는 동네 개인 병원에서 미국행 음성 확인서를 받는다. 나는 송도 시내의 '이화 웰봄 소아 청소년과 의원' (웹에 검색하면 나옴)에서 Viral Antigen Test 라는 '항원검사'를 받고 1시간 후에 영문 음성 확인서를 받았으며 경비는 7만원 들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거리에서 검사받고 한시간만에 영문서류 받고 7만원 냈다. 이걸 모르고 차 끌고 인천공항까지 가서 비싼돈 들일뻔 했다. 이걸 모르고 차끌고 인하대병원가서 검사받고 이튿날 또 그 서류 찾으러 두번 걸음할뻔했다.
내가 선택한 3번 안티젠 항원 검사는 인천공항이나 대학병원급에서 시행하는 PCR검사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에게는 통용되는 검사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대체로 통과되는 검사로 알려져있었고 학교 담당 직원도 전에 여러사람이 안티젠 항원 검사증으로 미국 입국에 문제가 없었다고 알려 줬다. 그래도 주마다 상황마다 변수가 있을수 있어서 약간 고민하다가 - '남들이 됐다면 나도 되는거지, 겁먹지 말자' 각오하고 안티젠으로 갔다. 일단 값이 훨씬 싸고 시간도 절약되고.
영문 코로나 음성 확인서는 내가 보기에는 - 순전히 병원들 배불리는 요식행위처럼 보인다. 단순한 검사확인서인데 '영문'이라는 이유로 몇몇 지정된 병원에서만 이 확인서를 발급해주는데 - 내가 받아본 영문 확인서도 그냥 별것이 아니었다. 병원 영문 주소와 병원의사 싸인이 들어있는 정도. 아니 이 간단하고 별것 아닌 영문 확인서 때문에 우리가 돈 20만원 가까이 내야 하는가? 이건 그냥 병원들 배불려주는 장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종합병원들 배부르게 하는 행정절차에 대해서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이정도의 영문 서식은 그냥 국가에서 폼을 만들어서 코비드 관련 검사가 가능한 모든 곳에 비치하여 놓고 - 그자리에서 곧바로 약간의 비용 (만원정도)만 받고 발급해줘도 되는 것이다.
인천에서 비행기 타기 전에 샅샅이 검사하고 뭐 싸인하게 하지만 - 미국에 입국할때는 이런 서류 보자는 말도 안한다. 이미 비행기 타기전에 검사하고 확인했으니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 가지고 다시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태도이다. 미국의 이런 느슨하고 방만한 행정이 코로나 방지에 걸림돌이 될지는 모르지만 - 그렇지만 합리적으로 보인다. 서류 검사 하고 비행기 탔으니 내린후에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거다.
내 제안은 - 지역마다 텐트치고 작업하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코비드 검사소에 영문확인서 서식 준비해 두었다가, 이것 필요하다는 사람한테 만원정도 받고 영문 확인서 발급해주는거다. 이 간단한것을 뭣하러 종합병원들 배 불려가며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들게 한다는 말인가?
성추행에 저항하다 스스로 이 '더러운 수컷들의 세상'에서 떠난 공군 중사의 사건 관련 뉴스들이 연일 업데이트 되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문득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진다.
이쯤되면 - 저 돌아가신 '중사님' 이름 공개하고 사진도 공개하고 - 아예 '전태일 님'처럼 이분의 저항과 사망을 널리 알리고 기리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게 아닐까? 이분의 죽음은 사실은 크고 작은 성폭력과 성추행에 시달리며 살아온 '나를 포함한' 전 여성의 '죽음'이 아닐까? 우리들의 일부도 조금씩 죽어 왔던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내 또래 아줌마들만 그냥 무작위로 붙잡고 한 번 물어보라 - 여태 살아오시면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어떤 남자가 내 몸에 손을 댄 경험이 있으십니까? 불쾌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 이런 질문에 픽 웃으며 '그런 일이야 부지기수로 일어나지요마는 ...어느 정도 수위의 이야기를 원하십니까? 어디까지 얘기해드릴까요?' 라도 답하는 아줌마들이 꽤 많이 나올것이다. 물론 오십 육십줄의 아주머니 중에서도 절대 입을 열지 않는 분들도 계실것이다. 아직도 그 기억이 너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서 말이다. 물론 나도 정말로 기가막힌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입을 다문다. 가벼운 것들에대해서만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지. 그래서 -- 정말로, 돌아가신 공군 여중사님이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하여 깊이 깊이 공감하는 것이며 함께 고통스러운 것이며, 함께 분노하는 것이다.
우리는 '위안부를 기리는 소녀상'과 같은 '공군 여중사의 상'을 만들어 세워야하고, 그의 기념비를 대한민국 서울 중앙의 공원에 세워야 한다. 이한열처럼, 전태일처럼 그의 기념비를 세우고 -- 비슷한 이유로 죽거나 고통당한, 숨어서 한숨짓는 사람들을 위로해야 하며 그 악의 근원을 뿌리 뽑는데 애써야 한다.
군부 무장세력에 저항하듯, 부패한 정부에 저항하여 촛불을 들듯, 우리는 싸워야 한다. 하지만....한국 인구의 절반인 남성들 중 얼마나 이 저항에 동참해줄까? 촛불을 들때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지만 - 이중사를 위한 싸움에 남성들이 얼마나 동참해줄까?
그래서 나는 '비관적'이다. 공군중사님을 위해서 - 그 오천년 넘게 지속된 성추행/폭행의 역사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은 일어날 가능성이 커보이지 않기에 나는 비관적이다. 나는 비관적이다. 정말로 여성에겐 조국이랄것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여성에겐 조국도 조상도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는 안된다. 공존하지 못하면 공멸할것이기 때문이다. 공존 상생을 원한다면 말이다.
버지니아 집에 6월 8일 저녁에 도착하여 하루 쉬고, 6월 10일 정오에 집 근처 '월마트'에서 '모더나' 백신 1차 접종을 완료 하였다.
아들이 '엄마 오시면 모시고 가서 함께 맞아야지'하고 벼르고 있다가 --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엄마오시면 같이 가야지' 마인드인지 모르겠지만 - 아들의 이웃 친구들도 비슷한 양상이란다. 이웃집 털보 녀석도 엄마 모시고 나가서 함께 맞고 왔다고 하고. (그러니까, 레드넥 백인 이건 아시안 녀석이건 간에 사내놈들은 기본적으로 '엄마'에 대한 의존성에서 영 못벗어나는 모양이다. 하하하. 이 작은 동네에선 그냥 그 아시안 녀석의 엄마가 드디어 이 마을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 동네 뉴스가 된다. 내가 이 동네에서는 아시안을 대표하는 아줌마라서 집밖에 나갈때도 뭔가 옷을 차려 입어야 할 형편이다. 그냥 내가 아시아 대륙을 대표하는 중년여성인 것이라. 누군가는 새로 장만한 수천달러짜리 바베큐 그릴을 자랑하기 위해 바베큐 파티를 열 것이고 - 그러면 나는 아시아 대륙을 대표하여 잡채나 뭐 내가 만든 음식을 동내에 돌려야 하리라. 사람이 너무 없어 사람을 반기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그들은 '엄마'를 사랑하고, 주사도 엄마하고 함께 가서 맞는것이 일상처럼 보인다. )
1회에 끝낼수 있는 존슨 앤 존슨과 2회 접종의 모더나, 두가지 중에서 뭐 맞을 것인지 선택할수 있는데 - 아들과 나는 그냥 모더나 쪽으로 선택을 했다.
아들 설명으로는 미국에서 백신이 확 풀린것은 한달쯤 전 부터라고 한다. 그것도 지역에 따라서 어느 지역에서는 한국처럼 '신청'하고 기다렸다가 맞는 곳도 있었고, 어느 지역에서는 '가서 맞고 온다'는 지역도 있고 해서 - 성질 급한 사람은 '가서 맞는' 지역에 가기도 했다는데 그것이 요즘 들어서 확 풀리면서 아무때나 접종 장소에 가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접종 프로세스는 - 일단 월마트의 경우 매장 파머시 (약국)에 가서 '코비드 백신' 맞으러 왔다고 하면 줄서서 기다리라고 한다. (아들과 나외에 아무도 없어서 아들과 나만 줄을 섰다.) 서류를 작성하라고 한다. 대략 예방접종을 위한 문진표다 (알러지 반응 있냐, 약 먹는거 있냐 뭐 이런 일반적인 문진). 간호사가 직접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알러지, 열, 지병, 복용약 뭐 이런것들). 의료보험 관련 문건도 있다. '전국민 의료보험'인 한국과 달리 미국은 의료보험이 개인별로 다르고 나의 경우에는 미국에 의료보험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개별적으로 보험이 있는 사람은 일일이 소속 보험을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이 있고, 나처럼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은 보험이 없다는 서류에 싸인을 해야 한다 (보험 없는 사람은 주정부나 연방정부에서 비용을 내주는 시스템일 것이다).
그리고나서 백신 주사를 맞는다. 주사를 맞은 후에는 파머시 인근에 표시되어진 의자 (post-vaccination area)에 15분간 얌전히 앉아서 기다린다. 뭔가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지 관찰하는 시간일것이다. 15분이 지나면 '이제 완료되었으니 가도 좋다'고 알려준다. 그러면 자리를 뜬다. 한국에서 백신 주사를 맞았다면 전자식으로 등록이 될것이다. 미국에서도 접종 사실은 시스템에 등록이 될 것이고 - 접종을 한 사람에게는 아래와 같은 명함만한 접종 카드를 한장 준다.
Covid-19 Vaccination Record Card, CDC
이름
생년월일
1st dose Moderna 009D21A, 06/12/21 (2021년 6월 12일) Wclmc4#0154 (월마트 지역코드와 몇번째 접종인가 표시한듯)
아 카드의 뒷면에는 7월 8일 2차 접종을 한다는 표시가 들어있다. 이걸 갖고 가면 2차 접종 프로세스가 신속하게 진행될 듯.
대략 월마트 도착해서 접종후 15분 대기까지 30분도 안되어 1차 접종이 완료 되었다.
목요일 정오쯤에 접종 받고, 현재 일요일 새벽이니 만 2일이 지났다. 내가 겪은 증상은 - 전에 독감 백신 맞았을때도 경험했던 (1) 주사 맞은 부위 주변의 약간의 욱신욱신한 근육통 정도 (2) 약간의 열감 정도이다. 나는 일반 직장인처럼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고 학기 마치고 왔으므로 내가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만 처리하면 되므로 -- 그냥 만 이틀간 한국에서 가져온 '누룽지' 나 퍽퍽 끓여서 먹으면서 틈틈이 요거트와 과일 썰은거 먹으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두개를 밤 낮 틀어놓고 보는둥 마는둥 자는둥 마는둥 하면서 보냈다. 어차피 시차적응 기간이기도 하니까 빈둥빈둥 주로 누워서 뒹굴거리며 보냈으므로 딱히 이렇다할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타이레놀' 족이라서 머리 아프거나 미열감이 있으면 타이레놀을 먹는 편인데 - 이번에는 타이레놀 한알 먹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모더나백신이나 화이자 백신을 이미 해결한 동네 사람들 전언으로는 2차 접종 후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2차 접종이 약간 신경이 쓰이지만, 뭐 내 몸이 그럭저럭 견뎌주기를 기대한다.
* 스케치
큰 아들은 '엄마' 손 붙잡고 가서 백신을 맞고 - 작은 아들은 다른 주에 사는데 아직도 백신을 안 맞았단다. 그래서 '이놈아, 한국에서는 백신 차례가 안되어 젊은 사람들이 주사를 못맞는데 여태 뭘 꾸물거리고 속을 썩이고 나라에서 '어서 제발 맞아주십시오'하는데도 안맞고 게으름을 피우는 거냐. 당장 나가서 맞지 못할까!!!!!' 하고 야단을 쳤다. 백신 맞고나서 전화할것. 그 전에는 어미 목소리 들을 생각도 말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고얀놈 같으니. 바이든 정부에서 지금 국민들 모두 백신 완료 하도록 캠페인을 벌일 지경인데 꿈지럭거리고 있다니. 나라의 짐이 되려느냐? 딱 상황이 -- 없는집 애들은 밥때가 언제가 되나 눈이 벌개져서 밥때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고 있는데 -- 있는 집 애들은 배가 불러서 에미애비가 밥먹어라 밥먹어라 밥 그릇을 들고 따라다니며 애새끼들 밥먹이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한숨...) 지금 지구상 어느나라에서는 백신은 커녕 마스크도 귀한 판인데 - 이 부자나라 미국에서는 '와서 제발 백신좀 맞아주세요'하고 캠페인을 하고 있다. 월마트에서 백신을 맞는것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두부 콩나무 사러 일상적으로 들르는 동네 가겟방에까지 백신이 들어와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들녀석만 해도 - 엄마 오시면 백신 어디로 맞으러 가면 되나 -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평소처럼 월마트에 장보러 갔는데 매장에서 방송을 하더란다 "현재 매장 방문 손님중에서 아직도 백신을 맞지 않은 분은 지금 약국코너로 오면 백신을 맞을수 있으니 어서 와서 백신을 맞으세요." 그래서 장보던 아들이 - 아하! 엄마 오시면 그냥 여기 오면 되는거구나 했단다. 그리고는 저도 여태 안맞고 '엄마'가 오기만 기다렸단다. "먼저 맞고 기다리면 안된나?" 나의 송곳 같은 질문에 아들 왈 --"헤헤...그냥 귀챦아서...어차피 엄마 오시면 맞을거니까."
왜 모더나인가? 나는 한국에서 '화이자'가 '인기'라서 -- 미국가면 '화이자 맞아야지' 기대했는데, 월마트에서는 '모더나'라고 해서 약간 의아. 아마도 그냥 지역이나 장소에 따라서 임의로 화이자 혹은 모더나가 공급되는 모양이다. 한집에 사는 한 부부도 한쪽은 모더나 한쪽은 화이자가 걸리기도 하고 그런단다. 부부중에 한쪽은 직장에서 단체로 맞고, 한 쪽은 월마트 같은 곳에서 맞을경우 그때그때 모더나/화이자 사이를 오가는 모양이다. 존슨앤존슨은 선택사항이긴 한데 미국에서도 일반인들은 2회에 나눠서 접종하는 백신을 주로 맞는 모양이다.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무리 할 필요가 없어서 2회 접종으로 했는데 - 일정이 촉박한 사람들은 1회 완성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1회 접종으로 마무리하는 존슨앤존슨이 몸이 힘들수도 있겠지... 이쪽 지역 평범한 주민들은 대체로 2회 접종으로 가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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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나 일차 접종을 하고 나니 한국 정부에서 해외 접종 완료자에 대한 방침을 발표했다. '교도소 (자가격리)'를 면제받는 방법은, 접종을 모두 완료 한 2주후에 한국 영사관에 가서 뭐 자가격리 면제 신청을 한다는 것인데 - 그래도 뭔가 명확하지 않다. 면제 신청하면 그자리에서 승인을 해주는것인지 아니면 며칠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나의 경우에는 2차 접종 완료후 2주가 못되어 귀국하기로 되어 있는데 - 그러면 나는 2주 교도소생활을 해야 한다. 만약에 내가 귀국을 1주 연기하고 2주 채우고 곧바로 한국 영사관 가면 승인서를 받을수 있는걸까? 그게 가능하다면 귀국을 1주 연기하고 면제 승인 받고 귀국하고 싶다. (하지만 승인서 받기위해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면 골치아프니까 그냥 계획대로 귀국하여 2주 교도소 채우는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숨... 한방짜리 얀센을 맞을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든다. (뭐가 스케줄이 이렇게 꼬이나 싶다.)
어쨌거나, 백신 구하기 힘든 시절에 미국 나와서 미국 연방정부 비용으로 백신 받고 귀국하는 것도 - 먼지만큼은 한국의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거 아닌가? 내 몫만큼 다른 사람이 받을수 있는거니까 말이다. 아주 먼지만큼 한국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므로.
그러니까, 자가격리도 두차례나 해서 2주간 자가격리에 대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 막상 그것을 면제 받을 길이 열렸다니까 마음이 변한다. 나도 면제 받고 싶다. 2주간의 교도소 생활이 지긋지긋하게 여겨진다. 상황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변한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변하는것이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것이다. 자가격리도 나쁘지는 않다. 이미 격리장소 확정 되어 있고 전망좋은 곳에서 코로나 걱정 없이 (이미 백신 다 받고 나는 일상이 자가격리처럼 고립되어 있으므로 코로나 감염 위험도 별로 없다) 그냥 콕 박혀서 공부하고 성경읽고 기도드리는 '마음 수양'의 시간을 보내는거니까. 그러니까 14일간 자가격리를 하게 된대도 불평하지 말자. 모든 것은 순리대로 -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진행될것이라고 믿고 감사하면 된다.
그냥 집 근처의 풀숲에서 - 보이지도 않는 새들이 수선스럽게 지저귀는 소리를 듣다가 - 문득 생각해 본 것이라, '미친소리'처럼 느껴질수도 있겠다. 저 위에 열거된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 모두 남자들이다.
2. 지구상에 생존한 기록이 있거나 현재 생존하는 사람들이다.
이 외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일론 머스크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런 헛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에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이 가상화폐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 그의 그 '참을수 없는 존재의 지루함'을 털어내기 위한 장난질에 세계 시장이 요동질을 친다는 상황을 영문 모르고 관조하면서 나는 - 인류 역사상 이런 기묘한 캐랙터들이 늘 있어 왔다는 것에 눈 뜨게 되었다.
나는 일론 머스크를 싫어한다.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를때부터 - 단지 그의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동물적 감각'으로 그가 싫었다. 내가 이런 단순히 외모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싫어하는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이다. 나는 심지어 '일론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가 쌍둥이 형제처럼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도 한다. 내게 어떤 '외상'이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 나는 이런 '관상'을 가진 사람을 보면 '무조건 싫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사기꾼 같이 생겼어' - 단순히 이런 느낌이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사기를 치고 있다고 느낀다. 그의 모든 것이 사기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팝아트의 수퍼스타 앤디 워홀이 활발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을 때 - 어쩌면 앤디 워홀도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기존의 예술의 틀을 뒤흔들고 제멋대로 '장난질'을 해대던 그에 대하여 나같은 보통 대중은 '예술이 장난이야?' 하면서 사기꾼을 바라보듯 그를 바라본게 아니었을까?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나서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라는 청년이 이적을 일으키며 대중들의 수퍼스타로 떠오를때 - 유대인과 그 일파는 그를 수상쩍게 바라봤으며 급기야는 그를 처형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는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고 흔들어대는 위험분자였다. '안식일에 장난해?' 뭐 이런 심사였으리라.
'이*석'이라는 젊은이가 한국의 쓰러져가는 정당의 대표직에 출사표를 던지고 돌품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이*석 현상'이라고 불리울만 하다. 쓰러져가는 정당의 대표가 누가 되건 별 관심이 없지만 - 이*석 현상에 대해서는 눈길이 간다. 내가 의아해 하는 것은 - 명석한 두뇌로 미국의 유명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 외에 그가 생활인으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해서 밥벌이를 해 왔는지 도통 신통한 기록이 없는 가운데 정당의 대표가 될 수도 있다니 - 이건 뭐지? -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캐나다에서 유럽에서 오세아니아에서, 심지어 '북한'에서 '젊은' 지도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그 물결이 한반도에 거칠게 흘러오는 것인가? 이것은 막을수 없는 조류인것인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허ㄱ영이라는 인물이 있다. 나는 일년에 두차례 정도 경기도 장흥의 모 사찰에 들른다. 성묘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성묘길에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된다. 허 ㄱ영이라는 사람의 '궁전'이 몇 년사이에 자라나는 모습은 거의 인근의 '지도'를 다시 제작해야 할 정도로 활발하다. 경기도 장흥 일대가 이제 곧 그 허 아무개씨의 '영토'가 되는게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하게 될 정도로 그의 궁전이 자라고 있다. 역시 '뭐지?' 하며 이곳을 통과한다. 그런데 인근에 성묘를 하기 위해 그의 '영토'를 지나칠때마다 밀려오는 자괴감은 어쩔수가 없다. 이런 자괴감은 내가 일론 머스크를 볼때도 피어오르는 것인데, 뭔가 내가 '바보'구나 하는 느낌 - 혹은 내가 '바보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과 흡사한 것이다.
좋다. 나는 바보다. 그렇다고 치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사기꾼 옆에 세워서 죄송하지만 - 예수님이 처형당하실때도 역시 인근에 중죄인들이 매달려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나를 용서하시리라 믿고.
저 위에 뒤죽박죽 섞인 인물들의 공통점은 -
1. 저들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성을 가졌다는 것
2.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는 것
3. 시대를 앞서가거나 시대를 깨우는, 혹은 선동하는 존재들이라는 것.
저들 중에는 '사기꾼'도 있고 '사기꾼'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 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같은 보통 '바보같은' 사람들 눈에는 저들이 어떤 '현상'처럼 여겨질것이다.
그러면 이런 '현상'은 뭘 말해주는가? 예수님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 이천년이 흐른 후에도 그의 '보편적 사랑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앤디 워홀은 죽었고, 그는 팝 아트계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고 앞으로도 대충 그렇게 기억 될 것이다.
현재 살아있는 일론 머스크나 이*석이나 허*영은, 아직 살아있으니 뭐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사람은 살아 움직이고 변화해가며 어제의 그 사람으로 오늘의 그 사람을 규정 할 수는 없다. 이중에 어떤 사람은 '사기꾼'으로 기록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기록 될 수도 있을 것일지도 모를수도.... 나는 이 세사람에 대하여 사색중이다. 저런 '현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들은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고 - 훗날 이들의 사망기사에는 어떤 평이 달리게 될까? 나는 저들의 '기이한 장점'이 무얼까 생각해보며 -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재기발랄함과 '숭고함' 사이의 높은 벽을 감지한다. 새삼 '숭고함'의 가치에 매달려 - 미친듯이 돌아가는 세상일을 관찰하는 나는 천상 바보다. 분명 이렇게 바보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아침에 내 카톡에 '매튜 (마태)'라는 사람이 Hello 하고 인사를 보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더니 요즘 한 두번 낯선 사람에게서 뜬금없이 메시지가 오는데, 대체로 그냥 Block 처리를 하는 편이다. (내 카톡 대화 상대는 매우 한정적이다). 그런데 이 '마태' 에게 내가 "?" 물음표라도 대꾸를 한 이유는 - '혹시 이 사람이 내가 스친적이 있었던 학생 중에 한명이 아닐까?' 해서다.
나는 몇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프로그램을 도울 인턴들을 여러명 뽑아야 하는 상황인데 - 내가 학교에서 자주 스치는 '마태'라는 미국인 학생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차에 그 학생이 혹시 인턴에 자원하기 위하여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한건가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학생이 학교 이메일이 아닌 카톡으로 뜬금없이 접근할리가 없는데 - 알수가 없어서 그냥 물음표 (?) 만 날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Hello nice to meet you
How are you doing over there?
하고 메시지를 날릴때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알고 있는 매튜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사람이 왜 다짜고짜 말을 거는걸까?
How are you doing there? 에 대한 나의 대꾸 (댓구) 가,
(I am) phishing. -- (사기치는 중).
그리고 마태가 뭐라뭐라 하는데 나는 그냥 모든 내용을 신고하고 그를 차단했다. 내가 딱히 신고를 한 이유는 - 혹시 모르지 이런 식으로 그가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직업적으로 사기를 치는지도. 그러면 내가 신고한 기록도 조회가 되겠지. 아니면 다행인거고.
얼마전에는 정말 phishing 문자가 온적이 있다. '이베이에서 네가 940 달러를 쓴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면 소비자 보호원으로 연락해라. 전화번호 xxxxxx' 뭐 이런것이 왔었는데, 내가 깜빡 속았다. (전화번호가 070이 아닌 일반 전화 번호였다) 미국에서 지낼때 이베이에서 몇가지 구매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소지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의심'이 들어서 핸드폰 대신에 연구실 전화기로 전화해보니 -- 내가 뉴스에서 많이 보고 들었던 시나리오가 차근차근 나오더라. "고객님께서 이베이에서 물건을 사진적이 없다구요. 그러면 ...." 뻔한 소리. 그래서 듣고 있다가 "아, 너 이거 나한테 피싱?" 그랬더니 저쪽에서 '빙고~'대꾸하고 전화를 먼저 끊더라.
나는 무조건 '신고'하기로 했다. 내 근처에 오면 무조건 신고한다.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그 작은 움직임이 악의 확산을 조금이라도 막을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친정 집안은 종중 묘소가 있다. 그곳에 내가 기억하거나 내 고향 동네에서 나고 살았던 내가 알지 못하는 분들이 묻혀있다. 내 고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도 묻혀있다.
어느날인가 일없이 내 아버지를 비롯한 이웃 어른들의 묘지를 기웃거리며 묘비를 읽다가 한가지 발견한 '팩트'가 있다.
이 이 종중 사람들은 죄다 아들만 낳았구나. 딸이 없구나. 간혹 딸을 낳은 아저씨 (아저씨 항렬)의 묘비도 발견을 하긴 했다. 이 ** 바오로 뭐 이런 분은 묘비에 딸이름도 젹혀있었다. 아하! 천주교쟁이라고 하던 그 윗집 꼬짱네 (일제시대때 일본식 이름이 꼬짱이라서 꼬짱네라고 불렸다) 아저씨에게는 딸이 있었구나!
우리 고조 할아버지에게도 아들만 있었고,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우리 아버지에게는 아들 둘에 손자들이 몇명이 있다. 그러고보니 넷이나 되던 우리 고모들은 죄다 사생아였던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 묘비에 내이름이나 언니 이름도 안적혀 있다. 아 나도 사생아였구나. 아버지 자식이 아니거나 어디서 얻어온 자식들이었구나! 그 날 나는 깨달았다, 이 종중은 애를 낳으면 99프로 아들이며 딸이 아주 귀한 집안네였다는 것을. 나는 사생아이거나 업동이이거나 근본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집안네인데, 아버지 산소며 직계 조상 산소를 약간 보수 공사를 해야 할 형편인데 그걸 형제들이 공평하게 기금을 모아서 해결하자고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제안을 하길래 나는 갸우뚱 했다. 조상 땅 갈라먹을때는 나는 기억도 못하더니, 아버지 묘비 만들어 세울때 이름도 안올리더니 사초는 함께 하자고요? 그러면 '서자'이거나 '사생아'이거나 '얻어온 업동이' 신분의 나는 그것조차 영광으로 알고 굽신거리며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헛 웃음이 나와서 그만 '그냥 쿨하게 알아서들 하시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것이 5월 1일이다. 3주가 지났다. 농담처럼 하고 지나간 얘기인데 나는 가슴이 무겁다. 그래서 블로그에라도 스트레스 해소를 하기로 한다.
산소 보수공사 그거 한 천만원 들으려나? 그러면 내가 돈 천만원이 없나? 그거 오늘이라도 내가 그냥 사람 사서 돈 처들여서 하면 그만이다. 조상 산소에 천만원 붓는것은 나로서는 '일'도 아니다.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건 이런거다.
어쩌면 아버지 묘비에 아들 손자 이름 새길때 어떻게 똑같은 아버지의 자식인 내 이름이나 언니 이름은 새길 생각을 전혀 못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아예 인지를 못하고 있을까? 그게 뭐가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 아예 문제 의식이 전혀 없는 자들이 내 오래비라는 사람들인데 - 그들은 아예 문제 의식이 전혀 없으므로 '순수'하기까지 하다. 너무 투명하게 순수하다. 내가 왜, 무엇때문에 분노하는지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며 --- 그냥 나를 예민한 '미친년' 수준으로 이해 할 것이다. 너무 착하고 너무 순수한 기득권자들. 나는 이 착하고 무던하고 순수한 기득권자들 앞에서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사람들은 '여자'라는 짐승은 자신들이 나타나면 밥상을 차릴것, 과일을 준비하고, 설겆이하고, 하하호호 웃어주고, 분위기 맞춰주고, 위로해주고, 절대 기분나쁜 소리는 하면 안되는 것들인데 그것이 동기간이라도 마찬가지임.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거는 그것만 전문으로 하는 직업군이 별도로 있지 않나? 상차려 내 주고, 비위 맞춰주고 위로해주고 그 댓가로 서비스료를 받는 서비스 전문직종이 있단 말이지.) 이자들은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모두 서비스직 종사자라고 생각하는걸까? 물론 이런 상황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소봉대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그게 뭐 세상이 크게 다를까? 그 눔이 그눔이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 내가 기를쓰고 공부를 하여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최소한 나의 생활권 안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살수 있다는 것 정도.
나는 예수님께 이걸 여쭤보고 싶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그 고통을 저는 그냥 무한한 사랑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저는 저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겁니까?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당연한 것이며 그 기득권 언저리에 사는 '별개의 생명체'에 대하여 '동기간'이라고 애정을 표시하면서 조금도 먼지만큼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겁니까? 예수님, 그냥 그들앞에서 웃고, 상냥하게 대하고, 그냥 기분좋은 소리만 하고 그렇게 살면서 죽을때까지 내가 왜 무엇때문에 분노하고 답답해하는지 침묵해야 하는겁니까? 예수님, 저는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됩니다. 그들 앞에서 웃고 싶지 않고, 그들과 만났을때 일어나 상을 차리고 과일을 준비하는 그런 모든 것을 하기가 싫습니다. 지긋지긋합니다. 지긋지긋하다구요 예수님. 이제는 저도 그들을 외면하고 그냥 물이 흘러가듯 피해 지나가고 싶습니다. 예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시오. 무조건 '그래도 사랑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영원히 내가 왜 답답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죽을것이고, 저는 영원히 화해하지 못한채 죽을것입니다.
내가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미국 사회의 문화중에 한가지: 공공장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공공장소에서는 술을 마시면 안된다. 이것이 법에 정해진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그러한 편이다.
약간의 예외가 '맥주'나 '와인' 일 수 있다. 워싱턴 디씨의 국립미술관 조각 공원에서 여름이면 한밤의 가든파티라고 특별한 며칠을 지정하는데 그 때는 그 공원 식당에서 제공하는 와인을 별빛 아래 공원에서 마시도록 허용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그러하다. 대체로 보통 '국립공원'이라고 지정된 해변이나 강변, 공원에 가도 길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아마도 '금지'되어서 그럴 것이다.
차 안에서 술병이 발견되어도 불법이다. 술 뒷트렁크에 실어야 한다. 술병이나 맥주캔이 그대로 드러난채 차안에 있는 것이 발견되면 티켓을 끊을걸 아마. 맥주를 제외한 다른 독한 술은 종이로 감싸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술 마시다가 남으면 뚜껑 덮어서 갖고 나와도 되지만, 미국에서는 먹던 술 갖고 돌아다니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니까 술을 포장하지 않은채 들고 돌아다녀도 안되고, 뚜껑 열린 술을 갖고 다녀도 안된다. 술은 아무데서나 저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아니라, 허용된 술집이나 식당이나 실내에서만 먹는 것이다. 밤에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걸어도 경관이 다가온다. 그것이 대략적인 술에 대한 미국 문화이다. (주별로 디테일에서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그러하다.)
한국은 - 술에 참 관대하다. 길거리에서 병나발을 불어도 문제가 안된다. 강변이나 바닷가에 나가보면 함부로 버려진 소줏병, 맥주캔들.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로운 공기를 즐거워하면서도 못내 아쉬웠던 점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 이 술에 대한 관대함에 대해서 여전히 아쉬운 감이 있다. 근래에 촉망받는 대학생이 한강변에서 친구와 밤이 깊도록 음주를 하고 사망을 한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름에 잠겼다.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에 공감하고 - 아름다운 청년 한명을 잃었다는 사실이 슬프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학생이 그냥 술집에서 술을 마셨더라면. 공원에서는 그냥 바람을 쐬고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셨더라면. 그러면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날 그 시각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 학생은 아름다운 오월의 휴일을 보내고 있었을텐데...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하는 법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실내에서 담배를 금지하듯이, 실외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하면 안되는걸까?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고, 일부 눈을 피해 음주를 할 망정 대체로 그러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 우리가 음주에 대하여 좀더 엄격해야 하는 이유는 - 그래야 소중한 생명들을 지킬수 있기 때문이다. 귀한 생명들이 잘못된 음주 문화 때문에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을 더이상 좌시해서는 안된다.
스프링브레이크라서 학교가 고요하다. 쓰던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물속같이 고요한 학교, 연구실에 와 앉아서 노닥노닥. '국경없는의사회'에 '헌금'을 약속한다. 내가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이런 식으로 보내기로 한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정말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 도무지 가슴 뛰는 일이 없어' 라고 내가 하소연을 했을때, 내 친구 장혜숙이가 대꾸했다. "야, 야, 우리 나이에 가슴이 뛰면 부정맥이야."
그래서 알았다. 우리 나이에는 가슴이 뛰는게 '병'이라는 것을. 인정.
그런데, 약정을 하고 나니 가슴이 온천물에 들어가 앉아있는 것 같이 따스해진다. 이거다! 가슴뛰는 일보다 더 근사한것은 가슴이 따스해지는거다! 늙어도 사는 재미가 있는거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항상 옳으십니다. 당신에게 보내드리는 헌금은 항상 진리입니다. 아멘.
학생이 상담을 하러 왔다. 그 학생은 나를 자신의 멘터로 뽑아가지고 나를 괴롭힐 모양이다. 지난 주에 열려진 문 틈으로 머리를 디밀고 '시간이 있는가' 묻길래 - 지금 회의 자료 만드는 중이니 아무도 만날수 없다고 제법 냉정하게 밀쳐냈는데 '그럼 언제?'하고 끈질기게 미팅 요청을 하길래 아무렇게나 생각나는대로 시간을 말 해 줬더니 그 시간 5분전에 들이닥쳤다. 이쯤되면 귀챦아도 상담을 해 줘야 한다. (일단 공격적으로 약속을 정하고 정해진 시간보다 앞서서 들이닥친것에 좋은 점수를 준다. 될성부른 나무라는 뜻이다.)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진단'이 필요하니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내 질문은 - '너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냈냐' 하는 것이다. 학점 잘 따기 위해서 노력한 것 외에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가 묻는 것이다.
이 학생은 지난번에 나를 찾아왔을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대답의 양상을 이런 식이다.
나: So...what kind of extra-curricular activities did you or do you have? Anything special? (수업말고 뭐 했니, 뭐 하고 있니? 뭐 특별한것 있니?)
그: Uhm....nothing much... well...uhm....I am doing something but that is not something special. I just try to help some middle school students through mentoring them for....but..I am only supporting the....
대부분 '얌전이'들, 교양있는 부모님 슬하에서 모범생으로 선생님들의 신망속에서 잘 자란 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교수에게 설명할때 대체로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한다.
오늘은 그 학생을 앞에 앉혀 놓고 내가 연기를 해야 했다. "See how I am answering in two different ways."
1) I am working for a project which is a part of a corporate environmental responsibility project funded by an international corporation. I am one of the 30 university student mentors who will be actively working with middle school students across the nation. It is now in its initial stage and there will be more news coming. I am proud to be a part of this project.....
2) I am working for a project for some environmental issues. I am just a mentor. It is only helping middle school students to work on some projects about environmental problems. There is nothing much to talk to you now because I just recently joined it.
어느쪽 학생이 똑똑해보니지? 내가 눈앞에서 연기를 하니 답은 쉬웠다. 1)의 연기를 할 때 나는 상대방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자신있는 태도로 말을 했다. 2)의 연기를 할 때 나는 어깨를 움추리고, 잔뜩 움추린채로, 매우 겸손한 태도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2)로 연기를 할 때는 '얌전이' 내 학생의 제스처와 말투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나는 말을 해 줬다. "내가 학생 인턴들을 뽑을때 2)로 말하는 학생은 학점이 완벽하고 성품이 좋아보여도 절대 뽑지 않아. 나는 일꾼을 뽑는것이지 얌전한 모범생을 뽑는게 아니니까. 나에게는 일꾼이 필요하지. 사회는 일꾼을 원해. 모범생을 원하는게 아니야. 우리는 당당하게 예의바르고 겸손할수 있다. 사회는 그런 인재들을 원하지. 네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야. 단,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있다는 것이지."
예쁜 여자아이의 사진을 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그러면, 이렇게 예쁘지 않고 그냥 어린 시절의 나처럼 눈에 안띄고 그저그러하거나 밉상의 얼굴이라면 그래도 된다는거야 뭐야?' 그리고 깨닫는다 '예쁘다'라는 말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사망한 어린아이가 '예쁘니까' 우리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예쁘지 않았더라면'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되는걸까? 예쁘면 우리가 함께 슬퍼해야하고, 예쁘지 않으면 '그럴수도 있다'라고 넘어갈 것인가? 어린아이의 예쁨이 이 사건의 추악성의 본질이 아니지 않은가? 못생기고 어디가 찌그러졌으면 방치되어 죽어도 상관 없다는 말인가?
'이렇게 예쁜 아이를...' 이 말 뒤에 숨은 보통사람들의 무심함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언론'인들이나 공공목적의 글을 쓰는 사람들의 어휘 사용이 중요하다. 이 타이틀은 옳지 못하다. 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만약에 '좋은글'이라는 것이 정의될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온갖 인종의 학생과 교수가 뒤섞여 있는 국제 캠퍼스의 한 미국대학 교수로 일하다보니 '언어' 혹은 '영어'의 문제가 늘 삶의 중심에서 함께 흐르는 편이다. 나는 순간순간 한국어와 영어 사이를 오가면서 산다. 수업은 영어로, 수업 준비도 영어로, 여러가지 회의도 영어로, 학생 면담은 필요에 따라 영어와 한국어 사이를 오가고, 미국인 교수와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인이 지나가면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일하다가 막간에 한국뉴스를 보다가 영어뉴스를 확인하고, KBS 1FM을 늘상 틀어놓고, 집에가면 '전원일기'같은 옛날 드라마를 찾아서 보기도 한다. 그리고 블로그에는 한국어로 스트레스를 푼다.
최근에 교수회의를 하면서 어떤 직책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어떤 직책이 있는데 여태까지 'Coordinator'라는 이름으로 칭하였다. 그런데, 몇몇 해당 교수가 Coordinator 라는 직함이 맘에 안들었던 모양으로 그 직함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Director 라는 안이 나왔지만,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공식 직함이라 사용 불가하다는 본교의 입장을 들었다. 문제 제기를 한 교수 쪽에서는 Director 가 불가하다면 Unit Head 라는 직함은 어떤가 다시 제안했다. 학교의 책임있는 교수들이 모여서 하는 소회의였는데 그중에 '영어 원어민'이 아닌 '한국어가 모국어인' 교수는 나 혼자였다. 다른 교수들은 미국인들 캐나다인들 이었다. 나는 Unit Head 라는 말이 맘에 안들었다. 그래서 대체로 회의할때 잠자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주거나 수용하는 편이었던 내가 말했다. "I don't like somebody becoming my head. I have my head. Nobody can become my head." (나는 누가 내 머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내게도 내 머리가 있어. 아무도 내 머리가 될 수는 없어.) 라고 내 의견을 말했다.
그래도 다른 교수들은 Coordinator 라는 직함보다는 Unit Head 가 좋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중 한명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Mayby because you are not a native speaker of English you have different sense about 'unit head' it is a term commonly used" (네가 원어민이 아리라서 뭔가 다른 느낌을 받는 모양인데, 유닛헤드라는 말은 종종 사용되는 직함이라구.) 그러자 다른 '원어민' 교수들도 그를 거들었다.
일단 숫적으로 밀리니 나는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매우 나빴다 (속으로는 ㅂㅅ ㅅㄲ들 ㅈ~ 도 모르는게....). 사실 그들은 나의 사랑스러운 동료들이고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음날, 다시 소회의가 열리고, 그 직함 문제가 다시 논의 되었다. 다는 다시 얘기를 꺼냈다. I prefer the current term 'Coordinator' since it is neutral and somewhat friendly compared to 'unit head.' I still believe nobody can become someone's head, and I want a term which does not have hierarchical connocation within it. Whatever you pick, it should be neitural. That's what I want. (나는 현재의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을 선호한다구. 왜냐하면 '유닛 대가리'라는 말에 비해 중립적이고 우호적이기 때문이지. 나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머리가 될수 없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고, 어떤 직함이건 상하위계질서의 의미가 내포된 어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 위아래가 아닌 중립적인 것 - 내가 원하는건 그거야.)
니네가 미국 사람 맞니? 니네 조상이 독립전쟁으로 쟁취한게 뭔지는 아니? All men are created equal 의 기본 개념이 뭔지는 아니? 네가 네 대가리라는거 아니냐? 그러면 다른 사람도 대가리가 있다는걸 인정해야하는거지. (사실 나는 이런 말을 막 소리쳐 말하고 싶었다. 막 욕을 퍼부으면서. 하하하.)
그래서, 결론은 더이상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에 대하여 토론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사용하는 어휘가 가장 타당하다는 쪽으로 마무리가 된 것이다.
원어민 너희들이 간과하는게 있어. 나같은 이중언어자들은 언어 그자체를 깊이 들여다보는 편이지. 너희들은 일상화 된 말이라고 무개념으로 지나치는 것에 대하여 - 우리는 그것을 '새롭게' 본다구. 유닛헤드가 너희들에게는 한 단어로 보이지 - 내게는 그것이 아주 생생한 두개의 개념을 가진 단어로 보인다는거야.
이 원리는 내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한국어를 사용할 때 정말로 그 말의 깊은 결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사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대충? -- 그렇다 나역시 그냥 대충....이러고 산다. 그런데 '그냥 대충' 속에서 폭력이 자라나고, 압제가 일어난다. 그냥 대충, 별 뜻없이 우리들은 어마어마한 폭력의 주도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원죄를 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성서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예쁘지 않아도 모든 생명은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다음주 개강을 앞두고 3학년에 올라가는 학생이 찾아왔다. 학생들이 내게 올때는 단순히 인사만 하려고 오는 것은 아니다. 인사 나누고 가는게 아니라 머뭇거리고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은 '상담'을 원한다는 제스쳐다. 이 경우, 나는 대체로 바쁜 일을 놓아두고 학생을 만나 주는 편이다. (그래서 내 일은 자꾸만 뒤로 미뤄지고 나는 피곤해진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1학년 신입생 때 2학기간 가르쳐서 접촉이 빈번했는데, 그 학생이 2한년이던 지난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지속되었으므로 어디서도 그 학생을 볼 수 없었다. 이제 그 학생은 3학년이 되는데 역시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이어질 것이고,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할 기회는 - 이렇게 찾아오지 않는 이상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학생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상세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너 지난 1년간 뭘 하며 지냈니? 너 성적 좋은것은 물을 필요도 없고 - 내가 묻는 것은 공부 외에 뭘 했냐는거다."
우물우물, 뭔가를 하긴 한 것 같은데 구체적이고 명쾌한 답을 안하고 우물거리기만 한다. 봄학기에는 학교 공부 외에 뭘 할 생각이니? 이 질문에도 3학년에 올라가면 전공과목이 많아지니까 공부에만 전념하겠다고 한다. 참 모범생 다운 대답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공부에만 집중하겠다고? 그건 쉽지. 공부 열심히 해서 학점 잘 따는것 자체는 아주 좋은일이지만, 그것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네 학점을 위한 공부가 나중에 취직을 시켜줄것도 아니고, 네 밥벌이를 책임져 줄것도 아닌데. 공부는 다들 할만큼 하지. 그런데 '너의 경력'은? 대학생활에서 공부가 절반이면, 나머지 절반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너의 성장이란 말이지.
공부외의 경력을 어떻게 쌓느냐구? 뭐라도 해야지.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건, 배달을 뛰건, 아니면 무보수로 봉사활동을 하건간에 꿈지럭 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배워야지. 그래야 나중에 세상이 너를 업어갈텐데.
그학생은 꿈을 꾸는듯한 표정으로 "아...그래서...공기업이나 사기업에서...인턴십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고요..." 라고 얼버무렸다. 공기업/사기업 인턴은 공부만 잘하면 들어가는데가 아닌데 어쩌나. 그들은 너의 경력을 볼걸. 이력서에 학점 높은것 외에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다면 너는 인턴자리도 구하기 힘들지. 그런 자리는 이미 탄탄하게 경력을 쌓아올린 후보들이 가져가지. 왜냐하면 - 고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하고 공부만 한 사람은 쓸모가 없거든. 연탄이라도 나르고, 옆집 꼬마 공부라도 도와준 기록이라도 있어야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볼수 있는데. 편의점 알바 같은것도 얼마나 훌륭한 경력인데. 시간제 아르바이트가 훌륭한 경력이라는 내 말에 - 그 학생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얼마나 귀한 경력인데 - 편의점 알바에서 '경영'에 눈을 뜰수 있고 경영학이 가르치는 여러가지를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연탄 한장을 날라도 그것의 가치에 대하여 열페이지 쯤의 보고서를 쓸수 있어야 그게 똑똑한거지. 사회는 그런 인재들을 필요로 하지. 공부만 하고 학점만 잘 따고 - 세상 돌아가는것도 모르고, 연탄 한장 배달의 의미도 모르고 그런 사람들은 그저 답답할 뿐이지.
그 학생은 - 여태까지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음, 주위에 언니 오빠가 없거나, 사촌들이 없거나, 부모님께서 이런 돌아가는 얘기를 안해주시거나, 마땅한 선후배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음. 그러고보면 나는 주위에 언니 오빠, 고모들, 사촌들이 우글우글해서 일찌감치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눈을 떴을것이다. 그들이 말을 안해줘도 저절로 배우게 됐을 것이다.
"너 공부말고 또 뭐했어?" 누군가 물었을때 시원시원하게 대답할수 있는 인재들이 갈곳은 많이 있을것이다. 애매한 표정으로 애매하게 답하는 사람들은 아직 애매하다. 경력이 반드시 번듯한 대기업이나 연구소나 사회단체나 그러할 필요는 없다. 어느 구석에서 무엇을 하건 -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새로 깨닫고, 그 깨달음을 어떻게 다른 곳에 확장시킬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똥을 퍼도 전문가가 되면 그 사람은 환경단체 우두머리가 될 수도 있는거니까.
지난해 12월 2일 이후 처음으로 오늘 내 전자체중계 위에 올라서서 체중을 확인했다. 조마조마 조마 조마~ 미국으로 갈 준비에 마음이 분주하여 제대로 '매일 운동'을 하지 못했고, 미국에서 한달을 보냈고, 자가격리를 했고, 이럭저럭 2개월만에 오늘 아침에 '용기를 내어' 체중계 위에 올라선 것이다. 매일같이 나가서 최소 하루 10킬로미터씩 걷다가 그런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혹은 몰아서, 혹은 실내 운동으로 대체하여 간단히 운동을 하면서도 나는 '이러다 다시 살쪄도 할말이 없다...' 이런 기분이었다. 게다가 자가격리 기간에는 갇혀서 지냈으니 군살이 생겼어도 할말이 없다. 평소만큼 운동을 못하니 지방이 올라가고 근육이 줄어들을 것은 자명한 것 아닌가.
그런데, 다행히 인바디 체중은 2개월 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400g 증가가 있었는데, 그 정도는 오늘 오후에라도 나가서 10킬로미터 걷고 오면 해결 할 만한 정도라서, 체중계의 숫자를 확인하고는 "오 주여!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말았다.
운동량이 줄어드는 것을 의식해서 - 식사량에 신경을 쓰고, 간식이 먹고 싶어질때마다 노카페인 차를 수시로 마셨던 것이 몸의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아, 이제 다시 매일 인바디 체크를 하고 운동을 하는 모우드로 전환을 해야지. 나가서 걸어야지.
바로 며칠전에 신지예씨 사건관련 뉴스를 얼핏 보고 '그런 일도 있었구나...아니 이렇게 무시무시한 분을 넘 본 어리버리한 남자가 있었다니..미련하구나..' 생각을 하고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정의당 당대표가 소속 의원에게 사고를 쳤다고 해서 잠시 '기시감'이 들었었다. 내가 엊그제 봤던 그 뉴스하고 이것하고 같은 뉴스인가 다른 뉴스인가? 심히 헷갈렸던 것이다. 두 여성 모두 무시무시한 분들인데 감히 이런 분들에게 겁도 없이 사고를 치다니.
내 비록 정의당 당원은 아니나, 분명히 지난 선거에서 정의당에 표 던진 사람이므로 - 내 표도 먼지 만큼은 해당 의원께로 갔을것이니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다.
장의원이 페이스북에 이 사건에 대하여 공개하기 위하여 적으신 글은 읽고 또 읽어도 참 명문이었다. 참 훌륭하신 분이다. 존경한다.
자 그런데 어떤 단체에서 이 문제를 '고발' 했고, 이 문제는 이제 당사자들간에 조정하고 협의하는 것에서 벗어나 법원으로 가게 되었다. 장의원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언쨚아하고 있다는 글을 다시 올리셨다. 자, 나는 장의원 편이다. 그런데, 장의원과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성폭행이 친고죄가 아니고 제 3자도 고발이 가능하게 된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장의원께서 좀더 들여다 봐 주셨으면 한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거칠게 돌아가는 것을 본인은 희망하지 않을것이다. 이미 당사자간에 마땅한 협의가 이루어 졌을수도 있다. 그런데, 장의원은 상황을 사회에 알리셨다. 그래서 '사회'가 함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장의원 뿐아니라 이 케이스를 접한 이 사회가 함께 앓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물론 장의원은 이 사고로 인해서 그가 몸담고 있는 '정의당'이나 그 자신의 개인의 정서및 명예가 더이상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으며 - 장의원과 적대관계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회단체에서 이것을 이용하여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수 있다고 생각하실수도 있다. 충분히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다 예상하고 공개한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장의원의 입장이라해도, 나도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내가 사고를 공개하여 당을 곤경에 빠뜨리는게 아닌가? 내가 이것을 공개하여 가해자와 그 가족을 문제에 빠뜨리는게 아닐까? 그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로 인해 그가 받게 될 사회적 처벌은 너무나 가혹한것 아닐까? 뭐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쳤으리라. 그리고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장의원 -- 바로 이런 고민때문에 수천년간 여성들이 이렇게 당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요? 오빠에게 성추행 당한 여성들은 "집안 망신이니 네 년이 입을 다물라"는 어미의 핍박을 견뎌야 했고, 아비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 역시 같은 논리로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더 것이 이땅의 여성들의 잔혹사가 아니었습니까? 이런 일을 '집안일'로 수습하려고 했던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3자 고발'이 생긴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법대로 '3자 고발'상황속에서 장의원이 이 문제를 대면하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왜냐하면 당신은 일개 자연인이 아니고 '국회의원'이니까.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우리를 대표해서 이 문제를 대하시길 (용감하게!!!).
장의원은 내가 존경하는 이 사회의 젊은 여성 지도자이고, 이 상황을 씩씩한 문체로 공개한 것에 감사를 보낸다. 어떤 면에서 그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기왕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 김에 '고발' 상황에서도 역시 당당하게 마무리를 지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사건으로 정의당이 공중분해가 되더라도, 그것이 당신 잘못은 아니다. 잘못은 '그놈'이 저지른 것이다. '그놈'이 곤경에 처해도 -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그가 이 엄중한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것은 그의 책임이다. 그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고통을 겪어도 -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그놈'이 가족에게 사죄 해야할 사안이다.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응원한다.
당사자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진다해도 제 3자가 고발할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해야 - 정말 정신 안차리고 손을 함부로 놀리다가는 패가망신 한다는 사실을 이 사회가 정확히 학습할 것이 아니겠는가.
원래 코로나 자가격리는 한곳에서 15일간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차단하고 머무는 것이 원칙이다. 14일차에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재검을 받아서 '합격/음성확인'을 받아야 15일차 정오에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문밖으로 한걸음도 나가면 안된다.
그런데 사람마다 특수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갑자기 너무나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 응급상황이라던가, 지진이 일어나서 격리장소가 무너져서 도저히 있을수가 없다던가, 불이 났다던가, 뭔가 상황이 있을것 아닌가. 이 특수한 상황에서는 자가격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나의 특수한 상황은, 본래 내가 소속한 직장에서는 해외입국자들을 위하여 1월 23일부터 자가격리장소를 제공하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엄중하게 통제되는 그런 장소가 열리는 것이다. (대개 봄학기를 위해서 해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이 1월 23일 이후에 하나 둘 들어오므고 이때를 최적기라고 계산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나는 관래해야할 특별프로그램이 있어서 날짜를 앞당겨 들어올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개소 열흘전에 입국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열흘은 인근 적법한 장소에서 채우고 이제서야 이곳에 입소한 것이다.
자가격리 장소에서 임시로 병원등의 이유로 외부 출입을 해야 한다거나, 나처럼 장소를 옮겨야 할때는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 나를 관리하는 자가격리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가격리 시작할때 공무원이 전화를 걸어서 알려온다. 자가격리어플을 통해서도 통화가 가능하다) 나의 사정을 설명한다. 공무원은 이렇게 중간에 옮기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상세하게 묻는다. 옮기려하는 장소의 상세한 주소와 현지 상황에 대한 심문이 이어진다. 일단 담당공무원이 인지하는 범위안에서 '타당'하다는 판단이 들면 - 그는 내게 보건소의 담당자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자가격리자의 개인별 소원수리는 담당공무원이 일단 들어주지만 --> 자가격리장소 관련 사항은 해당보건소에서 관리한단다. 해당 보건소에 연락하여 다시 한번 나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한다. 마침 내가 새로 들어가는 자가격리소가 이미 보건소에 등록이 되어있고 이미 여러 사람들이 이곳에 입소하게 된다는 정보를 보건소에서 알고 있었기때문에 내 설명이 쉽게 수용이 되는 듯 했다. 보건소 직원은 내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상세히 얘기 좀 해달라'고 했고, 나도 내가 아는 범위안에서 설명을 했다. 그래서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허락 못 받으면 못 움직인다.)
이동하기 전날 우리는 다시한번 전화통화를 했고, 담당공무원과 보건소 측으로부터 이동시의 주의사항을 교육 받았다. 일단 내 차로 이동한다는 것에 그들은 안도했다. 현재 사용중인 시설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모두 담아서 밀폐시켜서 내 짐보따리에 챙기고, 실내를 보건소에서 나눠준 소독스프레이로 샅샅이 소독을 하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통해서 어느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어느 장소에도 별도로 들르지 않고, 곧바로 간다. 특히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이동하라고 해서 - 나는 이른 새벽을 선택했다. 새벽에 장소에서 떠나기전에 어플의 체온 신고하는 칸 아래에 '예정대로 지금부터 30분내에 새로운 곳으로 이동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적어보냈다.
새로운 장소는 사실 2Km 떨어진 곳에 있다. 걸어가도 잠깐인데 차로 옮기면 10분이면 충분하다. 원래 밤새워 앉아있는 사람이니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온 집안을 청소하고, 소독약을 살포하고 새벽에 '순간이동'으로 새 격리장소에 도착했다. 현관에 도착하니 이미 보안요원이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격리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보안요원의 호송/감시를 받으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격리자 앱을 열어보니 내가 이동한 10분여 사이에 '격리장소에서 이탈했습니다!!!'라는 자동생성 알람이 여러차례 와서 쌓여있었다. 물론 나는 사전에 신고했고, 승인 받았고, 담당자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앱을 열고 '무사히 도착했다. 이곳의 경계가 매우 삼엄하므로 안심하시라' 는 메시지를 띄워 보냈다.
새 격리장소는 20층에 배정받았고, 창밖에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온집안의 불을 환하게 켜놓고 속옷 바람으로 춤을 춘대도 누가 볼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하하. 내 평생에 이렇게 벽면 가득 바다를 내다보는 방에서 지내본 적이 몇번이나 될까? 메릴랜드 오션시티에서 2015년 추수감사절 휴가때 바로 바닷가 호텔에서 밤새도록 둥근 달이 차오르는것과 파도소리를 실컷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동향이라서 해가 떠오르는 것이 보이고 온종일 햇살이 스며든다. 바다는 멀리있다. 새들도 멀리 날아간다. 아 이곳에서 15일간 머물렀어도 참 좋았겠다. 단 며칠이지만 이 책상에 앉아 즐겁게 공부하고, 일하고, 글을 써야지. 하느님께서는 내 고난 중에도 깜짝 선물을 준비해 놓으시고,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신다.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시간을 보낸다. 하느님이 주신 시간 같다.
Day 12. 2021, 1,24 일요일 평화로다~
창밖에 펼쳐진 바다를 내다보면서 아침 운동을 하고,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고, 일을 좀 했다. 평화, 평화로다~
Day 13. 2021, 1, 25 월요일 연수 프로그램 시작!!!
그동안 준비해왔던 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이다. 말하자면 미니 '입학식' 같은 것을 줌으로 진행해야 했는데, 내가 사회, 안내,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진행해야 했으므로 바빡 긴장된 하루였다. 온라인으로 일을 진행해야하니 사전 사후로 자질구레한 것들을 처리 해야 해서 신경소모가 크다.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으니 무사히 마치기만 하면 된다. 일을 할때는, 밥솥이 끓듯이 머릿속에서 보글보글 뭔가가 자꾸 익어서 부풀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분출한다. 그러니 아이디어대로 구현하다보면 내가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온종일 바빴다.
오후에 격리자 담당 공무원이 전화를 하셨다. 내일이 14일차이니까 퇴소를 위한 코비드 검사를 하라고. 나도 기다리던 전화였다. 내일 아침 9시에 보건소에 가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갇혀 지내니 답답하시고 힘드시죠?" 저쪽에서 묻길래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안 답답해요. 완전 해외 휴양 온것 같아요!" (설마 내가 돌았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지...)
통화를 마치고 어디선가, '자가격리자를 위한 심리상담'을 해 주겠다는 문자가 왔다. 뭐 그런 공공복지 프로그램이 있나보다. 피싱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원치 않으면 거절하면 된다고 해서 '거절'을 보냈다. 지금 바쁜데 무슨 심리상담이란 말인가. 나는 우리 예수님께서 상담해주신다.
Day 14. 2021, 1, 26 출소를 위한 두번째 코비드 검사
오늘 검사에서 코비드 음성 결과가 나오면 내일 정오에 출소 할 수 있다. 제발 좋은 결과가 나오길....
오전 8:30 자가격리앱에 보건소행을 보고하고 외출
오전 9:00 보건소 도착. 검사
오전 9:30 다시 감옥으로 돌아옴.
오후 11:30: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을 알리는 문자 도착. (내일 오전 12시에 나갈수 있음)
Day 15, 2021, 1,27 (수) 출소
2차 자가격리 마지막날 아침이다. 여름에는 미국판 자가격리와 한국판 자가격리를 함께 경험하게 되는건가? 알 수 없는일....
12:00 정오에 이곳을 나가서 집으로 가면 된다. 한 오백미터 거리가 아닌가... 하하.
날이 밝았다. 지난 수요일에 입국하여 이 감옥에 들어왔으니 만 7일째이고, 날수로는 8일째이다. 벌써 절반이 지났다. 실감이 안 날정도로 시간이 휙휙 지나갔다.
내가 지루할 틈이 없는 이유는 매일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여름에 진행될 연수프로그램 프로포절까지 모두 마쳐서 보냈다. 틈틈이 개강 준비도 하고, 이메일로 날아오는 각종 도움의 요청을 해결해주고 있다. 요청이란, 대학원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추천서 쓰기를 비롯해 다양하다. 별로 놀 틈이 없는 가운데 놀멘놀멘 무리하지 않고 일하고 자고 한다. 나의 이러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우리 언니는 "너는 자가격리가 아니라 자택근무를 하는거구나" 한다. 그런건가? 나도 생각지 못한 것을 전업주부인 언니가 짚어내는 것을 보고 내가 깜짝 놀랐다. 우리언니는 집에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보는 통찰력의 소유자이다.
이제 나도 연수프로그램에서 내가 진행할 워크숍을 꼼꼼히 준비해야겠다. 이미 준비는 해 놨는데, 들여다보고 자료 보충하고 그러면 훨씬 알찬 워크숍이 될테니까.
Day 9, 2021/1/21 조 바이든 59대 미국 대통령 취임!!
미국시각으로는 1월 20일 정오. 한국 시각으로는 1월 21일 오전 2시. 미국의 59대 대통령 조 바이든의 취임식이 열렸다. 야호! 마침내 지긋지긋한 '그 자'를 뉴스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
취임식 생중계 보면서 '재택근무' 중. 구글닥을 이용한 프리-써베이를 하나 완성시켰다. 포스트-써베이도 이제부터 만들어야지. 시간은 잘 간다. 어떤 측면에서 이 '자가격리'가 내게는 일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는 아주 귀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만사는 보는 시각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한번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갖는 이런 시간을 갖고 싶어도 못 갖는 -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중계보면서 -- 취임식 직전에 화면이 두개로 갈라지고 한면에서는 워싱턴 의사당 장면이 보이고, 한면에서는 플로리다에서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리는 '그자' 부부와 그 딸* 가족들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저 자는 끝끝내 scene stealer 를 하는구나. 끝까지 후임자의 파티를 망치고 있구나. 정말 속속들이 사악하고 교활한 인간이군....이제 굿바이 굿바이 굿바이. 나와 우리 아이들의 제2의 고향인 플로리다를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오염시키지 말고 딴데로 가버려!!!!"
Day 10. 2021-1-22-금 아니 벌써!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밖이 훤하게 밝았네!
옛노래가 절로 나온다. 벌써 열흘째를 맞이했구나. 일을 한다면 하는거지만, 이럭저럭 꿈지럭거리고 지내다보니 하루하루가 휙휙 지나간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미국시간'으로 살고 있는듯 하다. 내 일상은 대략 이런식이다.
자정 쯤에 잠이 깬다. 아이패드로 뉴스 확인하고 그냥 쇼핑 놀이 (쿠팡 물건을 들여다보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비웠다 이러는거. 사지는 않고 채웠다 비웠다만 반복한다) 좀 하다가 벌떡 일어나 좌탁 앞에 앉는다. 일단 이 좌탁 앞에 앉아서 노닥거리다보면 날이 밝는다.
좌탁앞의 시간은 마법의 시간이랄까... 나는 매일 새롭고 창의로운 무엇인가를 해 내고 있다. 어제는 프리써베이를 하나 만들어서 다듬어 놓았고, 오늘은 내가 관리하는 프로그램의 써비스 향상을 위한 이용자 써베이를 또 하나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이걸 돌리면 - 이용자와 인턴들을 좀더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보살필수 있게 된다. 이제 포스트-써베이를 완성 시켜야지.
이렇게 좌탁앞에서 아침이 밝아올때까지 꿈지럭거리다가 열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샤워하고 실내 환기-청소를 하고 - 엄마TV 김선생의 운동을 30분간 따라한다. 그러면 점심시간. 남편이 근처식당에서 따끈따끈한 한끼를 사다가 문앞에 갖다 준다. (고등어구이 백반, 치즈 오므라이스, 불고기, 뭐 매일 깨끗이 비우고 있다.) 그것이 내가 먹는 하루 한끼 식사이다. 그 외에는 사과를 반쪽 먹거나, 냉장고에서 요플레를 꺼내서 먹는다. 요플레 용기 씻어서 말려 놓은것을 보니 하루 한개씩 먹고 있다. 그리고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잠이 든다. 밤에 잠이 깬다. 빈둥거리다가 좌탁앞에 앉는다 - 날이 샌다 - 일어나 씻고 청소하고 운동한다 - 점심을 먹는다 - 빈둥거리다 잔다 - 밤에 잠이 깬다 - 좌탁앞에 앉는다 - 일어나 씻고 청소하고 운동한다 - 점심을 먹는다 (아 그리고 서너시간 단위로 체온을 재서 자가격리 어플에 보고한다.)
슬기로운 자가격리 교도소 생활
새벽기도를 마치고 라디오를 틀으니 이정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창밖은 어둡고 흐리고 어쩌면 비가 올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상상속으로 눈을 보며 노래를 듣는다. 겨울엔 눈이지.
Day 11. 2021, 1월 23일 토요일 아이러니
벌써 11일째가 되었다. 매일 반복하는 말 -- "시간 참 빠르게 흐른다..."
오늘은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가벼운 푸념을 해보려고 한다 두가지 아이러니.
바이든 vs 트럼프
며칠전에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을 날밤을 새우며 보면서 기뻐하고 환영했건만, 어제 나는 "아, 트럼프 시절이 좋았어!!!!"를 외쳐야 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 몇년동안 트럼프라면 바퀴벌레처럼 싫어했는데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워지다니... 사람 참 간사해. 나를 보면 알 수 있어. 이유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내린 행정명령 때문이다. 향후 모든 미국 입국자들은 코로나 음성확인서를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그리고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자가격리를 의무화 하겠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웹에 안내된 바로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받는데 대략 20만원이 든다. 그리고 미국 입국이후에는 어떤 조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직 미국정부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곧 윤곽이 나오겠지). 미국의 코로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이다마는 나로서는 갑갑할 따름이다. 아 (긴 한숨) 미국 한번 다녀오는데 오고가는 자가격리만 한달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 막막한 피로감. 나는 여름에도 여지없이 가야만 하는데 말이지. 아, 주여, 도무지 제 인생은 어디로 흘러흘러 가려는지요.
조카의 이사
수재인 내 조카는 수재들이 다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수재들이 들어간다는 대기업에 들어가 성실하게 세금내고 사는 30세 청년이다. 결혼하여 아직 돐도 안지난 아이도 하나 있다. 평생 보수쪽에 표를 던지던 부모세대와 다르게 젊은이답게 진보쪽에 투표를 하면서 부모세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대체로 효자이고 모범시민이다. 내 조카는 최근에 신혼살림을 위해 마련한 전셋집에서 쫒겨나다시피 이사를 나와야 했다. 뻔한 스토리다. 집주인왈 "우리 부모님께서 들어와 사실것이니 계약갱신 안한다. 나가라" 는 것이었다는데, 뻔한거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성공'으로 전세난이 터지니까 그 유탄을 착한 내 조카가 맞은거지. 그래서 내 조카는 전셋집이 구해질때까지 임시로 이산가족 생활을 하고 있다. 아기 엄마와 아기는 친정에, 조카는 친가에 각자 찢어져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현 정부의 대단한 부동산 정책이 만들어낸 신종 가족도이다. 내 조카는 자신이 찍은 정당의 부동산 정책의 피해자가 된거지. 조카와 내가 한패거리가 되어 던진 표에 조카가 유탄을 맞은거다. 아...인생은 알수가 없어.
Day 1 (2021/1/13/수)은 공항에 도착하여 즉시 보건소에 가서 코비드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 장소에 도착하여 짐을 푸는 것으로 보냈다.
Day 2 (2021/1/14/목) 는 온종일 비몽사몽하다가 초저녁부터 잠이 푹 잠이 드는 것으로 지나갔다. 검사받은지 12시간도 안되어 '음성' 판정 메시지를 받아서 기뻤다는 것이 이날의 하일라이트. 온라인 교회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Day 3: (2021/1/14) 금
어제 초저녁부터 푹 잤기 때문에 새벽에 잠이 깨었을때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드리고, 일을 시작했다. 앞으로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연말정산을 위한 준비도 하고. 할일이 줄을 지어 서 있으니 그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자가격리가 끝날 것이다. 지루하지 않다. 오전에 담당공무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가격리자를 위한 비품 (양식)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 그것도 세금인데 보내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세금 절약이니까. 뭐 어차피 내가 먹지도 않을 인스탄트 카레나 스팸 이런거 - 내가 안먹는것을 받는것은 낭비일뿐이다. 나는 그래도 가능한 모범시민으로 행동하려 한다.
올해들어서 우리학교에서는 내가 자가격리 1호가 된다.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에, 코로나 관련 담당 교직원 선생님이 나의 입국과 자가격리 절차를 상세히 알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내가 경험한 것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세계' 같은것이다. 이제 봄학기 개학을 앞두고 미국교수들이 줄줄이 입국을 하게 되므로 담당 선생님으로서는 최대한 상세한 정보를 취합하여 그들에게 미리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세히 내가 겪은것 미리 준비하고 챙겨야 하는 사항들에 대하여 적어보내 주었다.
* 자가격리자의 실내 행동 요령에 대해서 새로 자각하게 된 점: 자가격리를 겪은 동료교수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자가격리는 '쓰레기와의 전쟁'이기도 하다. 넓은 자택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것이 아닌, 나와 내 동료들은 15일간 작은 오피스텔이나 그 비슷한 작은 유닛에 갇혀 지내게 되는데 - 갇혀 지내면서 운동하기도 힘든 난관 외에도 '쓰레기'처리가 큰 문제이다. 내 동료교수는 여름에 자가격리 할 때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이 운동부족이나 고립감 보다도 '쓰레기'가 썩지 않게 봉지에 담아서 냉동실에 얼려서 - 그야말로 냉동실을 쓰레기로 가득채웠다는 경험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생각해봤다. 음식물 쓰레기를 왜 냉동실에 얼리지? 그럴필요가 전혀 없는데. 일단 한끼 먹을 음식을 정량을 먹고 (스님들이 먹듯이 음식을 먹을 만큼을 정확히 덜어서 깨끗이 먹고) - 남은 음식은 냉장보관해서 다음에 먹고 - 일회용기 (요거트용기, 햅반 용기) 이런것들은 먹고나서 깨끗이 씻어서 말린다. 그러니까 음식은 남김없이 싹 먹어치우고, 음식 묻은 일회용기는 깨끗이 씻어서 말리고. 그러면 냉동실에 들어갈 쓰레기는 없다. 속옷과 양말은 매일 빨아 널고. 먹을것은 먹어 치우고. 쓰레기 나올것이 없다. 먹기 위해 발생하는 일회용기 버릴것들 조차도 깨끗이 씻어서 말려서 차곡차곡 보관하면 오히려 재활용도 되고 좋다. 그리고 우리 자가격리자들은 격리기간동안 쓰레기 배출이 금지된다. 그러니 뭐든 깨끗이 씻어서 말려서 보관하면, 기분도 좋고, 실내에서 뭐 상하는 이상한 냄새도 안나고 아주 좋다.
Day 4 2021/1/16/토
어제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자정이 지난 후에 잠에서 깨었다. 뭔가 매뉴얼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 작업을 하다보니 날이 밝았다. 결국 주물럭거리고 있던 27페이지 매뉴얼 하나를 만들었다. 숙제 끝!
점심으로 치즈오므라이스를 먹었는데, 밥의 양이 많아서 밥을 조금 남겼다. 그리고 졸려서 자기로 했다. 종일 먹은 것이 점심으로 먹은 치즈오므라이스. 숙제를 마쳤다는 안도감에 잠이나 푹 잤다.
Day 5 2021/1/17/일 맑음
오전 아홉시에 시작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책상 앞에 앉아있다. 벌써 5일차이군. 여름 첫 자가격리때에는 뭔가 뒤숭숭하고 지루했는데 - 평온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학교에서 구해준 복층형 오피스텔에서 지냈었다. 복층이라서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들었지만 - 복층을 평면으로 펼쳐 놓는것이 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복층이라는 이유로 1층 평면이 어딘가 기차같이 비좁았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벽이 보였다. 답답했다.
이번 자가격리 장소는 내가 구했다. 우선 그냥 지난 여름 학교에서 정해줬던 곳에서 그냥 하려고 연락을 취했는데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불렀다. 그돈을 내고 그 유치장같이 답답한 복층형에서 보름을 보내야한다구? 돈이 아깝지. 그래서 내가 직접 뒤져서 절반 값의 이곳을 구했다. 그냥 평범한 오피스텔이다. 스탠다드한. 면적은 지난번 복층형 오피스텔의 단층 면전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 의외로 편안하다. (구조는, 뭐 퀸사이즈 침대 있고, 소파하나 있고 뭐 벽 한면을 이용한 수납벽장 부엌시설, 욕실과 세탁기.)
이 곳이 편안한데는 두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1) 한쪽벽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는데 - 전망이 좋다. 뭐 커튼 열면 옆쪽 건물의 집들이 보여서 내가 실내에 전등을 켜고 커튼을 열어 놓으면 내가 다 전시되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면으로 - 중간에 아파트 건물이 약간 가로막는 부분도 있지만 - 내가 평소에 다니던 해안 산책로가 보인다. 해안 산챌로 너머로 다리건너 이 도시의 구도심도 그대로 드러나고 멀리 멀리 펼쳐져있는 산도 보인다. 산책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내가 모르고 있던 - 고층에서 내려다보니 보이는 또다른 습지대도 보인다. '아! 다음에 산책 나가면 저기를 가봐야지!' 혼자서 밖을 내다보며 습지대를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다. 이곳에 대한 리뷰를 보니 "교통이나 시설이 편리하지만 전망은 볼거 없다"는 평이 보여서 '전망'을 아예 포기하고 들어왔는데 -- 내게는 이 전망이 참 좋은 것이다. 이정도 전망이면 참 좋은데. 아파트 정원에서 산책하거나 놀러가는 아이들도 보이고, 아파트 밖의 해안 산책로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해안의 물의 반쯤 얼은것 같은 것도 보이고. 이런 풍경을 내다 볼 수 있어서 전혀 답답하지 않다. 답답하지 않으니 지루하지 않고 갇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런 곳이라면 1년을 갇혀 지내도 뭔가 영감의 시간을 보낼수 있을것 같다. (2) 이곳에는 TV가 없다. TV가 없으니 내 일상이 고요하다. 남편이 라디오를 갖다 주었다. 소니 옛날식 소형 라디오인데 2016년에 산 것인데 여전히 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KBS FM을 틀어놓고 김미숙의 프로도 듣고...고요하고 평온한 음악 속에서 시간이 흘러간다.
그래서, 요점은 - 자가격리 장소가 어떤 곳인가가 자가격리 생활자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주 좋은 곳에서 자가격리를 하게 되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Day 6 2021/1/18/월
밤사이에 눈이 내려 쌓였다. 창밖이 눈 풍경이 아름답다.
오전에 프로그램 매뉴얼을 전송했고, 몇가지 점검사항을 챙겼다. 오후에는 유튜브로 80년대 드라마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참 심플한 인생이다. 어떤 측면에서 자가격리 상황의 이 고요함을 즐기는 기분이 든다.
연말정산 관련 사항을 알아보았다. 학교에 금주말까지 모든 서류를 프린트하여 제출해야 하는데, 내가 갇혀있어서 그 일이 불가하다. 5월에 그냥 세무서에 가서 신고하기로 했다. 뭐 심각한 것 아니니까 딱히 날짜 맞춰서 이번주에 반드시 하려며는 못할 일은 아니지만 서두르기가 싫다. (이것이 갇혀진자의 불편함이다.) * 그래도, 그냥 다 언라인으로 해 볼까...생각을 해보자. 학교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내가 갇혀있는걸 어쩌란 말이냐고 하면 방법을 알려줄것이다. 온라인 세상에 온라인으로 안될리가 없다.
특기할 사항은 -- 미국에서 출국 전날부터 갑자기 아프던 허리가 다 나았다. (99프로 나았다) 아직 약간 부자유스럽지만 그래도 거의 다 나았다. 그래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내가 아무런 도구가 없는 실내에서 - 그리고 감옥에 갇혀있어서 나가서 걸을수 없을때 하는 운동은 이것이다.
가장 기본이 집에서 3키로미터 걷기. 그 외에도 난이도가 다양한,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목적의 운동 비디오를 김선생님이 재미있게 올려주셨다. 작년 여름에 자가격리 할 때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 -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집에서만 지냈으므로 매일 이것을 틀어놓고 대형TV 스크린 앞에서 운동을 따라했다. 내가 집에서 이걸 하는 것을 '체육관중독자'인 아들이 보고 재미있다며 옆에서 킬킬대며 따라하곤 했는데 - 엄마가 떠난 후에도 아들이 혼자 가끔 이 동영상을 열어놓고 심심파적으로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내게 깔깔대며 운동하는 동영상을 보내오곤 한다. 우리 아들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해준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아들은 내가 미국집에 도착하자마자 실내운동용 스텝퍼를 주문하여,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집안에서 스텝퍼와 체조 운동을 했다. ) 아들은 '체육관'에서 주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승부를 보는 편이고, 나는 '걷기 대마왕'인데 내가 '걷기'의 효능에 대하여 귀가 따갑게 설복을 하여 이제는 일주일에 최소한 10마일 (16킬로미터)은 걸어주는 것을 그의 일상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격일로 체육관 다니고 격일로 워킹 나가고 그럴 모양이다.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나와 함께 걷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내가 없으니 혼자 밤길을 걷다가 동영상을 찍어 보내기도 한다.
이건 쉬운데 10킬로미터짜리는 어렵다. 아무튼 김선생님 운동동영상이 내게는 즐거움과 위로와 건강을 준다. 김선생님 좋은 운동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한번 하고 나니 온몸에서 땀이 배어나와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이제 허리가 멀쩡하니 난이도를 높이기보다는 이것을 하루에 두세번 (아침-점심-저녁) 이렇게 해주려고 한다. 가볍게 - 무리하지 않고 - 땀을 내는 정도로만.
Day 7 2021/1/19 /화
벌써 자가격리감옥 입소 7일차가 된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다니!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간다! 아쉽다. 내가 여길 나가면 여기가 그리워질것 같다. 전혀 지루하거나 답답한 느낌이 없다. 주님의 은혜다...
이 자가격리장소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겠다. 여름엔 학교에서 장소며 경비를 모두 책임져 주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겨울부터는 각자 알아서 책임지는 쪽으로 바뀌었다. '자가격리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라는 암묵적 메시지였다. 나도 물론 이런 상황을 원한 것이 아니다. 나는 반드시 미국에 가서 해결해야할 일들이 있었다. 내가 여행이 좋아서 이 난리통에 전쟁하듯 비행기를 타는 것은 아니다. '울며겨자먹기'인 것이다. 어쨌거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원칙에 대하여 나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자가격리 장소를 알아보았다. 물론 학교에서 거래했던 자가격리 장소에 먼저 연락을 취했다. 학교가 단골이니 뭔가 혜택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대충 온라인으로 검색해 본 것보다 가격이 훨씬 높았다. (이건 순 바가지네... 아, 학교에서 나를 위해서 많은 경비를 썼던 거구나.)
그래서 그냥 에어비앤비에 등록하고 학교 근처를 물색했다. 전망좋고 위치좋고 좋은 가격의 후보가 몇가지 나왔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후보들 중에서 가장 값이 저렴하며 내가 약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곳이다. "아니 저긴 왜 저렇게 싸지?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이곳을 간단히 제끼고 제법 폼나는 곳에 예약 신청을 했는데 내가 자가격리 할거라니까 바로 거절을 했다. 그렇게 세군데서 '자가격리'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애초에 학교에서 거래하던 장소에서 왜 그렇게 높은 가격을 불렀던 것인지. 자가격리라서 비싸게 받았던 것이구나. 아하! 자가격리도 서러운데 아주 '죄인' 취급을 하는구나.
세군데서 거절을 당하고, 그 가장 싼 곳에 예약신청을 하니 곧바로 승인이 되었다. (오호!??!) 그곳이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이다. 나는 이곳이 왜 그렇게 다른 곳에 비해서 가격이 절반쯤 되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단지 TV가 없을 뿐이다. TV가 없어서 나는 더 고요하고 여유있고 사색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좋은데 말이다. (TV가 있었다면 나는 종일 누워서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고 홈쇼핑이 보이면 홀린듯 물건을 사들였겠지. 심심하니까 더 사들였겠지.). 그래서 현재로서는 여기저기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얻게 된 가장 싼 이곳이 - 아주 복이 있는 장소라고 믿고 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나의 임시 거처임이 분명해!' 하며 감사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동부 현지시각 1월 12일 (화) 오전 10:35에 아틀란타를 출발한 델타 항공기는 대략 15시간을 허공을 날아 한국 시각 1월 13일 오후 3:30분경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델타
내가 탄 비행기는 델타 아틀란타-인천 직항이었다. 승객 인원은 기내의 모든 좌석의 사람들이 발뻗고 누워도 될 정도로 한산했다. 비행기에는 3가지 등급의 좌석이 있었는데 (1) 누워 갈수 있는 (2) 넓직하여 조금 편히 앉을수 있는 (3) 그냥 나같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가는 이런 등급의 좌석들이 있었는데 결과적은 (2)번 비행기표 산 사람이 억울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1) 번 선수들 누워가고 (3) 번 선수들이 3인분 좌석을 1인이 차지하여 누워가는데 (2) 번 선수들은 2인이 나란히 앉는 배치에다가 2인 사이의 담이 고정이 되어있어 절대 옆자리 담 트고 누울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하하. (내가 왜 웃지?)
한달 전 미국에 갈 때보다 돌아오는 길의 좌석이 더 한산해보였다. 코로나의 심각성이 점점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입국절차
입국하기 위해서 사전에 스튜어디스가 나눠주는 양식이 세가지 정도 있었다. 두가지는 코비드 관련, 하나는 세관신고서. 비행기에서 미리 작성하면 편리하다. 그런데 코비드 관련 입국 양식 쓸때 - 한국 주소를 쓰는 칸이 있는데 - 이때 주민등록지에 적힌 주소가 아니라 -- 내가 자가격리를 어디서 하는지 그 주소를 써야 한다.나는 그냥 생각없이, 살고 있는 사택 주소를 썼다가, "아 자가격리는 별도로 다른 곳에서 하는데요" 했더니 그 주소를 적으라고 잔소리를 해서 그렇게 했다.
쓰라는 서류 몇장 쓰고
기다리는 동안 체온 검사를 받는데 - 여기서 체온에 이상이 보이면 '증상자' 캠프로 이동한다. 줄 서 있다보면 별도 공간이 보인다. 그리 가면 상황이 복잡해질것이다.
자가격리용 앱을 깔아서 - 공무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행을 해야하고, 전화번호가 정말 본인 것인지 그자리에서 확인 전화까지 한다.
모두 마친후에 - 다시한번 자가격리 관련 간단한 서류에 뭐 쓰고 싸인해야 한다.
자 이 모든 과정이 지나야 비로소 평소와 같은 입국심사대로 가서 여권 보여주고 간단히 통과한다.
짐을 찾고 이제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 여기도 경계가 삼엄하다. 그냥 맘대로 나가는것이 아니다. 공무원이 삼엄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어디로 갈건가?' '어떻게 갈건가?' '가족이 와서 내차로 갈거다' '차는 어디있나?' '가족이 어디있나?' 꼬치꼬치 묻는다. 가족이 차로 데려간다고 하면 - 그 가족과 삼자대면을 해야 나를 내보내 준다. 가족이 안오고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 그 사람을 어디론가 안전한 차에 탈때까지 에스코트 할걸 아마... 거의 '중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사람'을 관리하듯 하더라. 뭐 불쾌하지는 않았고, 코로나의 위중성을 실감할 뿐이다. 그 공무원은 나와 내 남편과 이렇게 삼자대면을 한 후에 나를 풀어주었다.
코로나 검사
안내지에는 입국후 3일 이내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나와 있었지만 - 나도 한 성깔 하는 사람이다. 그게 사흘 기다릴 일인가? 공항에서 바로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서 '입국자인데요. 지금 인천 공항에 도착했어요. 지금 가려고 하는데 코로나 검사 받으려고요' 하니 직원이 시원시원하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 예약을 해 준다.
질문 내용은, 이름, 주민등록 번호, 직장, 어디서왔나, 자가격리 주소지, 전화번호, 가족 전화번호 (비상연락망) 이런것을 꼬치꼬치 물은 후에 오후 7시까지 오면 오늘 중 아무때나 검사가 가능하다고 안내를 해 준다.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차를 몰아 보건소에 가니, 보건소 바깥 마당에 담당 요원들이 앉아 있다가 곧바로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검사를 해준다. 추운데 이분들이 한데서 수고를 하시는구나. 진행은 신속했고, 검사는 여름에 했을때보다 덜 고통스러웠다. 그동안 검사 기술이 더 좋아진 것인지. 그것이 오후 다섯시 쯤.
자고 일어나니 익일 새벽 3시 45분에 보건소에서 텍스트가 날아왔다. 검사결과 음성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다.
시작일로부터 시작하여 15일간 (만 14일간) 이제 문밖 출입을 못하고 가만히 실내에서 견뎌야 한다. 지난번에도 잘 해 냈으니, 이번에도 성실하게 잘 해내면 될 것이다. 올 여름에도 이걸 또 해야 하는걸까? 그때는 상황이 좀 달라지려나? ....음...흘러가는대로 흘러가는 거다.
도착 90분 전 중국 상공을 지날 때
창밖 중국의 산하.
남북 통일이 된다면 북한 하늘을 거쳐서 오겠지...
텅 빈 아틀란타 공항. 저 스타벅스는 작년 여름에도 닫혀 있었다. 그러니까 1년 가까이 저 모양일것이다. 미국의 국제공항은 한국의 인천공항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인천 공항은 그래도 면세점들이 열려있는데 - 미국의 공항들은 그냥 딱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도시의 모양이다. 여름에는 미국 공항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15일간의 의무적인 자가격리는 사람에 따라서 매우 고통스러울수도 있다. 오죽하면 어떤 사람들은 착실히 있다가 출소 만기 2-3일 앞두고 뛰쳐 나가서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되겠는가. 나도 그 심정 백분 이해한다. 아마 없던 병도 생길지도 모른다. 폐쇄공포증 같은 것이 생길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름에 자가격리를 끝내고 나가서 -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가격리 경험을 얘기 할 때, "한번은 하는데,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난 다음에는 두번다시 못 할 것 같다.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고 나는 이걸 두번째 하게 되었다. 피해 갈 방법이 없다. 비가 오면 맞는거지 뭐.
여름에는 보름동안 성경통독을 계획했는데 - 통독을 열흘에 끝내고 나니, 그 후에 '패닉'이 왔다. 나머지 5일이 괴로울정도로 지루했다. 먹고 - 티브이 보다가 자고 - 책 좀 보다가 (책도 잘 안 읽힌다) - 먹고 - 자고 - 홈쇼핑 채널 보면서 막 뭐 사고 싶어지고 - 또 자고 뭐 이런 '식충이' 같은 며칠을 보냈는데 -- 나중에는 강한 자기혐오 까지 오더라. (왜나햐면 체중이 불어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보름동안 뜨개질로 꽃 백송이가 들어간 블랭킷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원자재 (털실)까지 다 마련해 뒀었는데, 여러가지 할 일이 생겨서 털실은 그냥 집에 남아있다. 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해야 할 일들을처리하고 있다. 지루할 틈도 없고 게으름을 피울 시간도 별로 없다. 뭐 그렇다고 바쁜 것은 아니고, 매일 피곤하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가격리 하면서 두가지 좋은 습관을 만들게 되었다.
첫째: TV에서 해방 되었다.
나는 티브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주로 CNN 같은 뉴스채널을 틀어 놓는데 그러다보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멀거니 오락프로를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티브이는 달콤한 사탕같다. 시간이 잘 간다. 그런데 내가 정한 자가격리 오피스텔에는 TV가 없었다. 그래서 열흘간 TV없는 생활을 했는데 - 이게 처음에는 뭐랄까 '답답한 고요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음을 내는 것이 없으니까 갑자기 그 고요가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렇지만, TV 소리 대신에 KBS 1FM에서 내게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그 빈곳을 채우기 시작했고 서서히 나는 TV 없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새로 옮긴 장소에는 대형 TV가 벽에 걸려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켠 적이 없다. 나는 안다, 내가 TV를 켠 순간부터 나는 다시 TV의 노예가 되어 TV의 소음속에서 시간을 보내리라는 것을. 그래서 의도적으로 TV 리모컨을 내 손이 안 닿는 곳에 올려 놓았다. (퇴소할때 원위치 시키고 나가야지...) TV가 없으면 - 사방이 고요해진다. 상업광고 없는 FM에서 흘러나오는 고전음악들은 내 영혼에 안락감을 준다. 고요함에 달콤함을 더한다. 라디오마저 끄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일도 즐겁다 (창밖에 너른 바다와 섬들이 펼쳐져 있으니 더욱 즐겁다). 이것을 습관을 만들면 - 나는 TV에서 완전히 해방 될 것이다. 내 삶은 더욱더 바깥에서 운동을 하거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사색하고 연구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둘째: 커피를 끊고 차의 향을 만나다.
사실 나의 자가격리는 지난 12월 미국으로 향할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나는 거의 자가격리자로 살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커피를 끊었다. 그냥 끊기로 마음먹었다. 내 위장이 몇가지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보이는 징후들이 보인다고 해서, 잘 달래줘야 할것 같아서 커피부터 일단 끊은 것이다. 커피 안마시고 과식 안하고, 맵고 짠 음식 안먹으면 그런대로 괜챦을것이다. 술담배는 안하니까. 미국집에서도 내내 월마트에서 사온 (국내에서도 동일한 가격에 판매가 되더라) 오가닉 노카페인 티를 몇가지 구비해 놓고 커피 생각이 날때마다 티를 마셨다. 나머지는 가방에 싸들고 한국으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하는 중에도 그것들을 마셨다. 그것들이 다 떨어져서 - 남편에게 동네 편의점에서 카페인 없는 평범한 차를 사다 달라고 했다. 그는 고심끝에 둥글레차와 보이차 (그냥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싼거)를 사다 주었다. 아침 공복에는 둥글레차를 마시고, 식사후 낮에는 보이차를 마신다. 보이차에 미량의 카페인이 있다고 해서 식전에는 안마신다.
그런데, 보이차 티백 하나를 몇차례씩 뜨거운물로 우려 먹고 있는데 (여러번 우려도 차향은 남아있고 - 연하게 먹어도 좋으니까) 문득,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차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보이차에서 '장미향기' 혹은 '꽃향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그 '꽃향기'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종일 차를 마시다가 빈 찻잔을 닦지 않고 머리맡에 놓은채 잠이 들었는데 - 깨어서 빈 컵에 남아있는 '꽃향기'를 발견했다. 차가 남은줄 알고 마시려고 했는데 -- 찻물은 없고 향기만 남아있더라. 찻물은 없고 향기만 남아있더라..... 이 때 '차'의 묘미를 발견한 것 같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내가 여름에 그리고 최근에 자가격리한 곳은 시내 오피스텔인데 - 이런 곳들은 기본적으로 부엌 시설 및 집기가 갖춰진 곳이라서 '도구' 걱정은 안해도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한 것은 아니고 주로 전기포트로 물끓여 차마시고, 전자렌지로 햅반 데워 먹는 정도였는데, 그래도 막상 '부엌'시설이 없는 새로운 자가격리 장소로 이동 할 생각을 하니, '난 뭘 어떻게 해 먹고 사나?' 근심이 되었다. 오피스텔에 있을때는 남편이 매일 나 먹을것을 문앞에 갖다 줬으므로 매일 신선하게 조리된 좋은 음식을 먹었는데 새로운 곳은 경계가 삼엄하고, 아예 외부인이 차단된 곳이다.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 "있다! 버려진 라면포트가 있다!!"
내가 사는 사택에는 공용 주방시설이 있는데, 가끔 그 앞을 지나치다보면 (내 집에는 주방이 있으니 공용주방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한 구석에 기숙사 사용자들이 버리고 간 멀쩡한 물건들이 놓여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버려진 비품들 중에서 쓸만한 것을 그곳에 진열해 놓으면 -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나는 그곳에서 양은냄비며 소형 빨래걸이, 플라스틱 세숫대야등 다양한 비품들을 조달받고 살아왔다. (거기는 나의 보물창고다). 그곳에 일년가까이 앉아있던 라면포트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 '그 라면포트 갖다 씻어서, 작동 하는지 보셔. 작동되면 내가 갖다 쓰게.' 남편이 라면포트가 작동이 잘 된다며 내게 갖다 주었다.
이것으로 내가 어제 오후에는 '누룽지'를 끓여서 먹었고, 오늘 새벽에는 물을 끓여서 레토르백에 담겨있는 '호박죽'을 끓여 먹었고, 그리고 어제 입소 할 때 남편이 타파통에 담아온 굴미역국을 데워 놓았다. 국 남은것은 팔팔 끓여 데워 놓으면 상하지 않는다. (실내 냉장고가 작아서 국이 못들어간다). 저 국도 얼른 먹어치워야지. 굴도 많이 넣고 미역귀까지 넣어서 남편이 정성껏 끓인것인데.
이 라면포트 - 정말 대단하다. 검색해보니 35,000-40,000원 정도 되는것인데, 이런 귀한것을 버리고 가신 분께 감사.
벌써 두번째 자가격리를 성공적으로 정직하게 잘 해내고 있는 체험자로서 내가 생활하면서 '이것이 좋겠다'고 깨달은 것 위주로 정리를 해 보겠다.
필요 도구/비품.(부엌시설이 없을때)
전자체온계
전자렌지: 뭔가 데우거나 조리에 필요 (라면도 전자렌지로 끓일수 있으니까) 대개 자가격리용 장소에 비치되는 편이다. 없어도 사실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전기포트나 라면포트만 있다면 말이다.
전기포트: 온종일 차를 마시며 수양을 하기위해서는 전기주전자가 필요하다.
라면포트: 밥사발만한 작은 전기냄비가 있다. 남편이 '버려진 물건들' 속에서 하나 주워다 놓았다. 나 쓰라고. 여기다 햅반이나 누릉지, 라면등을 끓여먹어도 되고, 계란을 삶아 먹어도 되고. 이것 자체자 조그만 부엌이나 마찬가지이다.
차 마실 머그컵 하나, 접시 하나, 과도 하나.
행주
비누+수건+치약+치솔+샴푸
노트북/아이패드 등 외부와의 통신수단 (TV가 없을 경우 특히 도움이 많이 된다.)
사치품이긴 하지만 - 작은 라디오로 온종일 KBS 1FM 틀어 놓으면 좋다.
소형 냉장고가 필요하다. 대개 비치되어 있다.
식사 (먹고 마시는 문제)
숟가락으로 떠먹는 요플레 10개 팩짜리 두개 (20개 정도). 매일 한두개 먹는다.
햅반 15개 (하루에 하나씩 먹을수 있도록 한다)
끓여먹을수있는 누릉지 한봉지
사과 (홈플러스에서 한봉지씩 파는것) 열다섯개들은것 사서 하루에 하나씩 먹는다.
귤이나 포도 같은 것 미리 챙기면 좋을것이다. 하루에 하나정도 먹을수 있게.
호두나 견과류 한봉지 (보름간 먹을수 있는 양)
생수 큰거 한 열병쯤 (보름간 차 끓여 먹는다)
노카페인 오가닉 차 티백20개들이 차를 두개쯤 마련하여 하루에 한두개 차를 우려 온종일 먹고 먹고 먹고먹는다.
계란 열개 한줄 (삶아 먹는다) - 사실 열흘간 딱 세개 먹었다. 나머지는 닷새동안 다 먹어치워야지.
호박죽이나 뭐 그런 레토르트팩에 들어있는 죽 몇봉지 데워먹어도 좋다.
밑반찬: 콩자반, 멸치볶음, 김구이 뭐 그런거 보관이 용이한것.
간식 좋아하는 사람은 과자도 마련하면 좋겠으나, 나는 과자는 입에 대지 않는다. 움직임이 적으므로 밥은 하루 한끼 먹어도 별로 시장하지 않다. 요플레에 호두 몇알 넣어서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든든한 한끼가 된다. 밥을 하루 한끼로 제한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살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여름 자가격리 이후에 내 체력이 매우 불량해졌음을 자각하였다. 뭐 계속 체력이 저하되다가 자가격리때 갇혀 지내면서 더욱 나빠졌을것이다.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꾸준히,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여 정상 체중과 건강을 회복했는데 또다시 자가격리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것이다. 하루 한끼 먹는다해도, 중간에 호두를 곁들인 요거트를 먹어주고, 사과도 먹으므로 시장할 틈도 없다. 자가격리에서 건강을 해치지 않으려면 음식섭취와 운동에 신경을 써야 한다.
엄마tv 의 김선생이 제공하는 실내 운동이 나같은 늙다리 중년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청년들은 더 좋은 것을 찾아서 매일 규칙적으로 실내운동을 실시한다. 이 운동은 운동광, 스쿼트를 한번에 수십개씩 한다는 우리언니에게 링크를 보내줬더니 - 그 운동 참 어렵지도 않은데 숨차고 땀 난다며 아들 퇴근해 오면 함께 해야겠다고. 심심파적으로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듯 하는 운동이라 참 쉽다. 그런데 30분 마치면 정확히 3 킬로미터, 5,000보가 기록된다. 두번하면 하루 만보는 해결된다. 한시간에 만보면 내가 공원산책할때의 1시간보다 운동량이 많은것이다. 내가 공원산책하면 75분 걸어야 만보가 나온다.
이 프로그램을 홍보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나도 회원가입도 안하고 그냥 틀어서 보기만 한다), 자신에게 잘 맞는 실내운동을 정해놓고 매일 꾸준히 하여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땀이 나도록 운동하면 기분이 가뿐해지고, 갇혀있는 답답증을 잊게 된다.
시간보내기
뭔가 자신만의 화두를 찾으면 된다. 지난 여름에는 열흘간 성경통독을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이미 성경통독을 했고, 현재는 외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학교의 명예가 걸린 중요한 프로젝트라서 주로 그 일을 관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므로 지루할 틈도 없이 시간이 가고 있다.
사실은 자가격리중에 뜨개질을 하려고 털실세트도 사 놓은것이 있는데 - 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집에 있다. 그 대신 미국에 콕박혀 있는동안 아들이 사용할 커다란 손뜨개 담요 하나를 완성 시키고 왔다. 아들이 너무너무 좋아한다. 순모털실을 일부러 사갖고 가서 '엄마의 크리스마스 선물' 작업을 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뭔가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 한가지를 정해서 그것에 몰두하면 - 시간은 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