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5. 21. 07:00

 

내 친정 집안은 종중 묘소가 있다.  그곳에 내가 기억하거나 내 고향 동네에서 나고 살았던 내가 알지 못하는 분들이 묻혀있다. 내 고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도 묻혀있다. 

어느날인가 일없이 내 아버지를 비롯한 이웃 어른들의 묘지를 기웃거리며 묘비를 읽다가 한가지 발견한 '팩트'가 있다.

 

 

이 이 종중 사람들은 죄다 아들만 낳았구나. 딸이 없구나.  간혹 딸을 낳은 아저씨 (아저씨 항렬)의 묘비도 발견을 하긴 했다.  이 ** 바오로 뭐 이런 분은 묘비에 딸이름도 젹혀있었다. 아하! 천주교쟁이라고 하던 그 윗집 꼬짱네 (일제시대때 일본식 이름이 꼬짱이라서 꼬짱네라고 불렸다) 아저씨에게는 딸이 있었구나! 

 

 

우리 고조 할아버지에게도 아들만 있었고,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우리 아버지에게는 아들 둘에 손자들이 몇명이 있다.  그러고보니 넷이나 되던 우리 고모들은 죄다 사생아였던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 묘비에 내이름이나 언니 이름도 안적혀 있다. 아 나도 사생아였구나. 아버지 자식이 아니거나 어디서 얻어온 자식들이었구나!  그 날 나는 깨달았다, 이 종중은 애를 낳으면 99프로 아들이며 딸이 아주 귀한 집안네였다는 것을.  나는 사생아이거나 업동이이거나 근본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집안네인데,  아버지 산소며 직계 조상 산소를 약간 보수 공사를 해야 할 형편인데 그걸 형제들이 공평하게 기금을 모아서 해결하자고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제안을 하길래 나는 갸우뚱 했다.  조상 땅 갈라먹을때는 나는 기억도 못하더니, 아버지 묘비 만들어 세울때 이름도 안올리더니 사초는 함께 하자고요?  그러면 '서자'이거나 '사생아'이거나 '얻어온 업동이' 신분의 나는 그것조차 영광으로 알고 굽신거리며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헛 웃음이 나와서 그만 '그냥 쿨하게 알아서들 하시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것이 5월 1일이다. 3주가 지났다. 농담처럼 하고 지나간 얘기인데 나는 가슴이 무겁다.  그래서 블로그에라도 스트레스 해소를 하기로 한다.

 

 

산소 보수공사 그거 한 천만원 들으려나?  그러면 내가 돈 천만원이 없나? 그거 오늘이라도 내가 그냥 사람 사서 돈 처들여서 하면 그만이다. 조상 산소에 천만원 붓는것은 나로서는 '일'도 아니다.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건 이런거다.

 

 

어쩌면 아버지 묘비에 아들 손자 이름 새길때 어떻게 똑같은 아버지의 자식인 내 이름이나 언니 이름은 새길 생각을 전혀 못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아예 인지를 못하고 있을까? 그게 뭐가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 아예 문제 의식이 전혀 없는 자들이 내 오래비라는 사람들인데 - 그들은 아예 문제 의식이 전혀 없으므로 '순수'하기까지 하다.  너무 투명하게 순수하다.  내가 왜, 무엇때문에 분노하는지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며 --- 그냥 나를 예민한 '미친년' 수준으로 이해 할 것이다.  너무 착하고 너무 순수한 기득권자들.  나는 이 착하고 무던하고 순수한 기득권자들 앞에서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사람들은 '여자'라는 짐승은 자신들이 나타나면 밥상을 차릴것, 과일을 준비하고, 설겆이하고, 하하호호 웃어주고, 분위기 맞춰주고, 위로해주고, 절대 기분나쁜 소리는 하면 안되는 것들인데 그것이 동기간이라도 마찬가지임.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거는 그것만 전문으로 하는 직업군이 별도로 있지 않나?  상차려 내 주고, 비위 맞춰주고 위로해주고 그 댓가로 서비스료를 받는 서비스 전문직종이 있단 말이지.) 이자들은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모두 서비스직 종사자라고 생각하는걸까?  물론 이런 상황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소봉대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그게 뭐 세상이 크게 다를까? 그 눔이 그눔이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 내가 기를쓰고 공부를 하여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최소한 나의 생활권 안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살수 있다는 것 정도. 

 

 

나는 예수님께 이걸 여쭤보고 싶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그 고통을 저는 그냥 무한한 사랑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저는 저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겁니까?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당연한 것이며 그 기득권 언저리에 사는 '별개의 생명체'에 대하여 '동기간'이라고 애정을 표시하면서 조금도 먼지만큼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겁니까?  예수님, 그냥 그들앞에서 웃고, 상냥하게 대하고, 그냥 기분좋은 소리만 하고 그렇게 살면서 죽을때까지 내가 왜 무엇때문에 분노하고 답답해하는지 침묵해야 하는겁니까?  예수님, 저는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됩니다. 그들 앞에서 웃고 싶지 않고, 그들과 만났을때 일어나 상을 차리고 과일을 준비하는 그런 모든 것을 하기가 싫습니다. 지긋지긋합니다.  지긋지긋하다구요 예수님.  이제는 저도 그들을 외면하고 그냥 물이 흘러가듯 피해 지나가고 싶습니다. 예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시오. 무조건 '그래도 사랑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영원히 내가 왜 답답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죽을것이고, 저는 영원히 화해하지 못한채 죽을것입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