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4. 13. 15:47

어제 (부활절/일요일).

 

 

 

새벽부터 창밖에서 엔진소리가 나고 뭔가 뒤숭숭하여 내다보니 맞은편 건물 입구에 방역차를 비롯한 여러종류의 차들이 와 서있고 곧이어 관리실에서 '공지사항'이 흘러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경내에서 발생하였으니 경내 거주자들은 모두 문밖으로 나오지 말고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출입분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딱히 외출 할 생각도 없었으나, 외출이 불가능해지자 그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것이구나. 내 의사에 의해서 일주일 내내 방콕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나라도, 누군가가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지시하자 그 상황이 무척 고통스러워진다. 갇혀 지낸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 

 

학교에서도 공문이 날아온다. 상황에 대한 브리핑과 함께 출입 통제를 알리는 메시지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공문의 속도는 현장보다 느리다.)

 

 

두시간여가 지나자 건너편 건물 앞에 모여있던 여섯대의 차들이 (방역차, 구청차, 또 무슨 비상차. 등 등) 차례차례 경내에서 빠져나가고 다시 실내 방송이 들린다. 상황이 완료 되었으니 출입을 해도 좋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시름시름 했다.  몸보다는 심리적으로 아픈것 같았다. 웹 검색을 해보니 오늘 상황에 대한 신문기사가 보였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데 기자는 취재를 하여 이미 기사화 하였다.  이웃 대학의 학생이 미국 본교에 다녀왔는데 동반했던 보호자와 함께 귀국하자마자 경내의  맞은편 건물의 자가격리실로 직행했고, 그 보호자가 확진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랬었군. 이 와중에 미국에 다녀와할 할 중대한 일이 있었나보다.  쾌차하시길. 

 

 

오늘 (부활절 다음날/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니 밤사이에 학교에서 공문이 와 있었다.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통보가 갈 때까지 학교 건물에 들어갈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또 뭐지?  누군가가 확진 판결을 받았는데, 그와 접촉했던 어떤 사람이 지난 토요일에 학교 건물에 다녀갔기 때문에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어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출입이 통제가 되더니, 오늘은 내 연구실에 갈 수가 없구나.  학생이 집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 나는 학교에서 내 할일을 하고 나름 '정상정'이라는 것을 유지하려 했는데, 이제 그것도 허락이 안되는건가?  또다시 몸에서 모든 '생기'가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물론 랩탑으로 평소처럼 언라인 수업을 하면 그만이지만, 연구실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거, 정말 '전쟁' 같은거구나.  코비드라는 보이지 않는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그 폭격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갑자기 모든것이 정지되기도 하고 그런것이구나. 소리나지 않는 세계대전 같은거구나. 

 

 

집에서 학생들 과제 채점을 하고 있는데 오전 열시 쯤 다시 학교 이메일이 왔다. 다행히 그 접촉자가 음성판정이 났으므로 학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교수들은 희망하면 연구실에 가도 좋고, 직원들은 이미 '출근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나갔으므로 그냥 오늘 하루 재택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내 동료 교수 생각이 난다. 미국인인데 500미터도 안되는 숙소와 교수 연구실 사이를 오가며 여행가방을 끌고 다닌다.  그건 왜 매일 끌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수업에 사용하는 책이랑 자료들인데, 갑자기 연구실에 못 가는 일이 생길까봐, 갑자기 숙소가 닫히는 일이 생길까봐 그 자료들과 랩탑을 끌고 다닌다고 한다.  참 걱정도 팔자다 했는데 --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 그러면, 나도 그래야 하는건가보다. 외장 하드에 내가 요즘 만들어내는 수업자료들을 늘 새로 업데이트 하여서 그 외장하드를 늘 갖고 다녀야겠다. 클라우드도 있지만 나는 내가 직접 챙기는 편을 선호한다. 클라우드는 예비용이다.  내 랩탑과 연구실 컴퓨터 양쪽에 동일한 파일들을 저장해 놓아야 한다 (매일 업데이트 해야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 심지어 내가 자가격리를 당하게 되더라도, 골방에서 나는 계속 언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사람의 일을 알 수가 있나. 자가격리 대상이 될지, 입원을 하게 될지,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리 예비하면  내가 살아있는 한 내 학생들에게 수업은 계속 제공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 인터넷은 세계 최강이라 인터넷 끊길 걱정은 별로 안된다. 그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그립다.  얼굴도 잘 모르겠는 내 학생들이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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