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3. 13. 04:07

http://www.sprinkles.com/cupcake-bakery-locations/washington-dc-georgetown/


아침에, 찬홍이하고 포토맥 강을 지나 조지타운까지 산책을 나갔다.

찬홍이가 모처럼 장거리 산책을 나온것을 '격려해주기 위하여' 조지타운 Le Pain Quotidien 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미리 찬홍이가 점을 찍어 둔 컵케이크 가게에 들렀다.  그러니까 이 컵케이크 가게는 Le Pain Quotidien 과 약 50미터쯤 떨어진 동일한 거리에 있는데, 최근에 문을 열은것 같았다.  3월에 개업을 했을 것이다.  그 위로 올라가면 Goergetown Cupcake 이라는 꽤나 잘 나가는 컵케이크점이 있는데,
http://americanart.tistory.com/788  <-- 이 페이지에 그 가게에 대한 글이 있다.

어제 나갔을때도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약 10미터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늘 찬홍이하고 모처럼 나갔으니까 '가는 길에 조지타운 컵케이크 사줄게' 하고 내가 선심을 썼는데, 찬홍이는 줄 서서 사먹어야 하는 컵케이크에 반감을 갖고 있던터라, 인근에 새로운 컵케이크 가게가 생긴것에 무척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가게는 한산해보였다. (아직 입소문이 많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찬홍이와 내가 들어서자 점원들이 무척 반갑게 맞아 주었다.

포장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상자에 담아주길래, 아까워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아서 컵케이크를 먹으려고 하자 점원이 눈치 빠르게 접시와 포크, 냅킨을 가져다 주었다.  접시는 종이 접시. 포크는 나무 재질이었다. 고급스러워보이긴 했는데, 일회용 나무 포크를 한번 사용하고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사실 컵케이크는 포크 없이 먹어도 되는데...)





나는 딸기 크림 케이크, 찬홍이는 바닐라 초콜렛 케이크.  가격은 조지타운 컵케이크와 비슷. 한개에 3.5 달러. (이거 하나를 그 돈을 주고 사먹은줄 우리 엄니가 아시면, 기절을 하시겠다...)   그냥, 찬홍이하고 장거리 산책을 한 기념으로 정말 달콤한 것을 먹고 싶었다.  우리의 시간이 달콤함으로 기억될수 있도록.








창가에 두개의 테이블이 있는데, 그중 하나에 우리가 앉았다.  그런데 썰렁하던 매장에 찬홍이와 내가 앉아서 컵케이크를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가족 단위도 여럿이었고, 한상자 포장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여럿이고.  그러니까, 창가에 사람이 앉아서 먹는 것을 보면, 길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안심하고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찬홍이는 점원들의 환대와 싹싹함, 그리고 가게가 조용한 것에 대해서 매우 맘에 들어했다. (조지타운 컵케이크의 그 고압적 태도가 꽤나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좀 아니꼬워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줄 서는 풍경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아마 이 가게도 곧 매우 바빠질걸...우리들은 또 줄을 서야 할걸...




이 사진의 포인트는,  창밖 조지타운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분. 초록 바구니 파란 잠바가 참 예쁘다.



케이크 부분은 단맛이 없이 순해서 참 맛있는데, 딸기크림 부분이 좀 달아서, 크림은 다 못먹었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예쁘고...비싼... 컵케이크로 시간에 '달콤함'이라는 도장을 찍어보고 싶다.






그 앙증맞고 예쁜 나무포크는 '기념'으로 가져왔다. 버리기가 너무 아깝고 귀여워서.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3. 12. 06:44






지난 이틀 사이에 이 지역에 폭우가 내렸다.  아침에 비가 그쳤길래, 물구경 하러 포토맥 강에 나갔다.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서 천명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는데, 나는 물구경을 나갔으니 미안하다.  삼가 명복을 빈다.)  비에 흠뻑 젖은 세상이 촉촉하였다. 바람이 불었으나 부드러운 물기를 품고 있었다.




키브리지 아래, 여전한 낙서.  새로 생기고 지워지고 다시 생기는 낙서. 들풀 같구나.



포토맥 강변에서 조지타운으로 이어지는 철교.  사실은 저 물속에 반사되는 건물이 신비로워 보여서 사진을 찍은 것인데, 축소시키니 내 눈으로 본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산수유, 혹은 산동백이라고 부를 것이다.  영어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개나리보다도 먼저 피어나는 봄꽃. 아 이 둑길의 개나리들도 봉우리를 품고 있었다. 내일 모레쯤 확 피겠지.




조지타운 나가면 '내집'처럼 들르는 곳. 반즈앤노블.  오랫만에 '종이책' 가게에 들러서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The Tell-tale Brain 은 라마찬드란이라는 뇌과학자가 저술한 책인데, 전에 이 분의 책을 흥미있게 있었던터라서 책이 어떤가 보려고 한 챕터 정도 읽었다.  전에 내가 읽은 내용도 다시 논의가 되고... 어쩐지 좀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책 사기를 일단 보류.





미술책도 실컷 보고, 철학책도 뭐가 있는지 살피고, 결국 'connected' 라는 제목의 책을 일부 읽어보고 ...(집에 와서 아마존에서 킨들로 구입했다.).






조지타운의 Old Stoe House 뒷마당.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봄비처럼 흘러내린 것이 하도 예뻐서 카메라에 담았는데, 내 예상보다 더 좋은 그림이 나온것 같다.






이 가구점의 '인형가족'이 이 사진의 포인트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에도 이 인형들을 사진 찍은적이 있었다.  그때는 다른 의자에 앉아있었지... 전에 찍은 사진들을 찾아서, 다른 의자에 있던 동일한 가족을 찾아봐야지. 펠트로 만든 인형인데, 나도 갖고 싶다. 인형...



키브리지 아래의 보트 하우스. 사진에는 이 보트하우스의 초록색이 제대로 안 찍히는것 같다. 초록색인데...





이 길을 3마일쯤 걷는거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왼편에 강. 오른편에 수로)







황톳물이 거칠게 흘렀다.  나무들이 물에 잠기고. 평소에 '사슴의 언덕' 같던 습지가 물에 잠겼다.





그리고,
나의 비밀의 화원.  야생 수선화 밭.
수선화들은 씩씩하게 잘 크고 있었다. 







이 수선화는 아마도 '겹수선화'일것이다.  며칠후에 오면 많이 피어있을것이다.




이 나무 뒤로 보이는 것은 습지의 물웅덩이. 그리고 저기 나무 너머로 포토맥강. 
온통 물과 이끼의 나라.  요정들이 사는 물의 나라.
오랫만에 물냄새, 이끼냄새, 흙냄새를 맡았다.
이끼가 그리웠어.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9. 20:5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65796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1932~2006) 기획전이 국립 미술관의 동관에서 오는 13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다.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은 서관(West Building)과 동관(East Building)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관에는 세계 고전 미술이 망라되어 있고, 동관에는 현대미술이 주로 전시되고 있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2009년부터 In the Tower(탑에서)라는 타이틀로 타워 전시장에서 장기 기획전을 시작했다. 첫해인 2009년에는 미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인 필립 거스톤 (Philip Guston)을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기획전이 있었다. 이들에 이어 올 봄에 세 번째 기획전으로 백남준씨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6개월 이상 관객들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전에 소개된 필립 거스톤이나 마크 로스코는 특유의 자신만의 화법으로 미국 미술을 세계 미술계에서 한 단계 도약시킨 유태계 거장들이고, 한국계 백남준은 시청각 예술과 테크놀로지와 세계의 신화를 융합시킨, 미국이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거스톤과 로스코가 전시되는 중에도 나는 이 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었는데, 그 자리에서 백남준씨의 기획전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2월 국립미술관에 갔던 나는 백남준씨의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는 안내 포스터 앞에서 한국에 두고 온 친정 오라비를 만난 듯한 각별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는 달력의 3월 13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개관하는 날 가서 그의 작품들을 보려고. 그리고 학생들과 필드트립을 갈 계획도 세워두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백남준의 입체적 비디오 아트 작품들 이외에 그의 회화나 스케치 작품도 별도로 공개가 될 것이고, 그의 삶과 예술과 관련된 영화도 한편 틀어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설령, 백남준에 대하여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고 해도 관객이 현장에서 그를 만나고 그를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1월 5일자 칼럼에서 국립미술관에 있는 그의 ‘엄마’라는 작품과, 2월 2일자에서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소장품인 Megatron/Matrix라는 작품을 소개한바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 국립미술관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거나 임대해온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는 백남준을 위시한 현대 비디오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한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 미술관(Virginia Museum of Fine Arts)에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부처(Buddha, Watching TV)’를 만나 볼 수 있고, 버지니아 남부 해안도시 노폭(Norfolk)에 있는 크라이슬러 미술관(Chrysler Museum of Art)에서는 햄릿 로보트 (Hamlet Robot)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라는 기획전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도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비디오 아티스트’ 정도로 알았지만, 그 당시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회화 작품들이 내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1970년대 초반에 그가 스케치하듯 그려낸 작품들 속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스마트 폰’의 화면 같은 장면들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 때 백남준씨가 내 뒤통수를 한대 가격한 듯 한 충격을 받았다. 백씨는 오십 년 혹은 백년 후의 세계를 앞서 간 예술가처럼 보였던 것이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공부를 멈춘 적이 없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번개 같은 아이디어를 말로 천천히 표현하지 못해서 말이 종횡무진 건너뛰었다는 백남준. 그가 3월 13일, 우리 곁에 온다. 미국이 자랑하는 국립 미술관의 타워에 부처처럼, 선지자처럼, 그의 작품들이 온다. 전시회는 10월 2일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의 예술은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국립미술관의 백남준 특별전 관련 공식 페이지: http://www.nga.gov/press/exh/3376/index.shtm
Posted by Lee Eunmee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현재 전시중인 위의 작품 Merahi Metua no Tehamana (The Anscestors of Tehamana, 1893) 를 발견했을때, 나는 Mary Cassatt 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메리 커셋의 화집에서 익히 보던 줄무늬 옷 때문이었다.

위의 고갱의 작품속의 줄무늬와 아래의 메리 커셋 작품속의 줄무늬가 색상에서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내게는 동일한 패턴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Mary Cassatt (1844-1926) 과 Paul Gauguin (1848-1903)이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나 유럽에서 이런 패턴의 직물이 많이 사용된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게 된다.  위에 커셋과 고갱의 생몰 년대를 표시해 놓았다. 
 

  1. 메리가 4년 먼저 태어났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고
  2. 이 두사람들이 '인상파'라는 화가들의 리그에 공히 소속해 있었고,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메리 커셋이 미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작업을 했으니 간접적으로라도 교류가 있을 법도 하거니와
  3. 당시의 유행처럼 이들 모두 일본 판화에 관심이 많아 판화를 직접 제작하거나 일본 판화의 구도를 자신들의 작품에 구현하기도 했다는

여러가지 공통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두 화가가 '줄무늬' 옷을 통해서 얻으려 한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일본판화가 보이는  단순성 -- 그 단순성이 주는 힘, 그것을 의도했을까?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3. 02:26




http://search.koreadaily.com/search/search_result_news.asp?sch_col=news&query=%C0%CC%C0%BA%B9%CC%B1%B3%BC%F6&revjamo

지난 8월부터 매주 수요일에 나오는 내 칼럼 스크랩을 오늘 모두 정리 하였다.  매주 신문이 배달되면 내 칼럼이 실린 면을 잘라내어 별도의 플라스틱 봉투에 차곡차곡 쌓아 왔다.  그냥 그렇게 쌓아 놓은 것을 지난 겨울에 박선생이 와서 살펴보고 읽어보고 하더니 귀한 것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다  버리면 안된다고 스크랩북을 만들라고 당부를 했다.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은 했는데, 지난 가을 학기에 나는 도무지 아무런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내가 지난 가을을 어떻게 살아서 버텨냈는지 돌아보면 용하다... 무사히 그 지옥같은 터널을 지난것을 두고두고 감사한다.)

오늘은 좀 여유가 나길래, 작정을 하고 그 스크랩더미를 가지고 학교에 출근을 했다. 그래가지고, 차례차례, 잃어버린것 하나도 없이 순서대로 엮고, 마지막으로 '차례' 표와 커버까지 만들어서 완성시켰다. (뭐 대충 했지만.)

다 모아 놓고 보니, 나는 지난 2010년 8월 18일부터 매주 수요일에 맞춰서 원고를 썼다. 대개는 월요일 오후에 송고를 했고, 편집팀에서 원고를 받았다는 확인을 해 주었다. 당시에 허태준기자가 편집국장을 하고 계셨고, 유승림 기자와 함께 내 학생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허선생으로부터 칼럼 제안을 받았다. 매주 새로운 글을 써 보내는 일은 한편으로는 약간 긴장이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즐거운 일이다. 때로는 '뭘 쓰지?'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뭔가 새로운 글을 써 보내야 한다는 긴장감은 나를 '깨어있게'만들기도 했다. 나는 이런 긴장감을 좋아한다.





다 모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보니, 그동안 29 편의 글을 써 보냈다. 내 글이 정리된 신문조각을 정리하면서,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을 뽑아보았는데, 내가 가장 유쾌하게 적은 글은 9월 29일 '보노보는 왜 오렌지 주스를 사양했는가' 이다. 글쎄...내가 왜 이 글을 좋아하는지 나도 알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영장류의 이야기 (동물 행동학)를 좋아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의 행동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 (아니,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동물 -- 인간을 포함한 모든 '타인'들에 대해서 늘 궁금한 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는 궁금한게 많다.)

내가 가장 아끼는 글은 12월 8일에 실린 '사시사철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이 제목은 편집자가 만든 것이고, 내가 원래 송고할때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나는 내가 쓴 이 글을 읽을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이 글은 십여년전 인터넷의 어느 매체에 썼던 글을 다듬은 것인데, 그러니까 10년가까이 내가 무척 아끼던 나의 글이었다. 이 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눈물이 난다. 나는 내 글을 읽으면서도 '감동'을 받고 울곤 한다. 나르시시즘의 극단적인 현상일것이다. 내 글이 맘에 들었던지 LA 지역에서도 게재를 한것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얘기니까... 하하하.)  LA 에서는 '이 아침에'라는 코너에 가끔 내 글을 옮겨다 싣는듯 하다.




원래 뭔가 스크랩 하는 것이 나의 취미이기도 했다.  컴퓨터 사용이 일상이 되면서, 이제는 정보나 글을 컴퓨터에 담는 문화가 되면서, 심지어 사진마저 디지탈 사진으로 쌓으면서, 손에 잡히는 스크랩을 잘 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손으로 만들어 놓고 보니 이 역시 '데이타' 구실을 하게 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고, 정리된 자료는 우리에게 '지도'와 같은 구실을 제공한다. 정리해놓고 기분이 좋아서 기록을 남긴다. 내 글이 '평화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2. 20:38
워싱턴 디씨 내셔널 몰에 위치한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2월 27일부터 6월 5일까지 ‘신화의 창조자, 고갱(Gauguin: Maker of Myth)’이라는 주제로 고갱 특별전을 열고 있다. 지난 개관 일에 고교생 아들 녀석과 함께 이 행사에 참석하였다. 전시회의 개장과 관련하여 큐레이터의 특강도 있었는데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터이며 에딘버러 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벨린다 톰슨 (Belinda Thomson)이 본래 고갱 전시회를 기획한 의도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Why are you angry?

이 전시회는 고갱이 전 생애를 거쳐서 회화, 조각, 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궈낸 예술세계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고갱은 스스로를 ‘이야기꾼(teller of tale)’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작품들 속에는 신화적인 모티브가 풍성하다. 이 기획전은 고갱 개인의 신화, 프랑스 브리타니 지방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신화적 작품들, 남태평양 타히티 섬 지역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신화적 풍경들, 그리고 남태평양의 원시 신앙적 모티브 이렇게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고갱은 십자가의 예수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을 집어넣음으로써 가난 속에서 고통 받으며 예술작업을 하는 자기 자신을 순교자처럼 묘사를 한다거나, 구약에 등장하는, 야곱이 밤새도록 대천사와 씨름하는 상징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원시림 속에서 살아가는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낙원의 이브처럼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원시종교적인 소재와 기독교적인 요소들을 회화나 조각에서 접목시키기도 하였다.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은, 고갱이 자화상을 꽤 많이 그렸고, 혹은 그림 속의 등장인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많이 끼워 넣은 것으로 보아 꽤나 자기 현시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다는 평을 하기도 했고, 고갱의 그림에는 여자들이 주로 그려져 있고, 어쩌다 남자가 나오면 그것은 고갱 얼굴 같다는 독특한 평을 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의 작품들의 제목을 읽어보는 일도 유쾌한 놀이가 될 듯 하다. 가령 시무룩한 표정의 처자 곁에 마을 여인들이 다가오는 그림에 ‘너 왜 골났니?(Why are you angry?)’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가 하면, 두 처녀가 앉아있는 그림의 제목은 ‘너 언제 시집 갈거니?(When will you marry?)’다.

원시림 속에서 태평하게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풍경을 보면서, 그들의 말소리가 들릴 것 같은 제목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천국과 같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고갱은 먼 남태평양 원시림 속의 주민들을 그렸지만, 내게는 그이들이 앞개울에서 빨래를 하며 깔깔대던 처녀시절의 내 고모들 같기도 하고, 내 이웃 아주머니 같기도 하다. 고갱이 타히티의 삶을 그릴 때, 이미 그곳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고, 고갱은 그리운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주민들을 그렸다. 나 역시 이제는 ‘신도시’가 되어 아파트 단지로 뒤덮인 내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채 잊혀진 전설 같은 고향을 그리워할 뿐이다.

먼 남태평양의 주민들의 풍경을 보면서, 내가 고향을 떠올리거나 그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작품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정서에 있다. 단순화된 선, 면, 구도로 이루어진 고갱의 작품들 속에는 그 단순성을 뛰어넘는,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그리움이 있다. 그것을 이 전시회의 기획자는 ‘신화’라는 표현으로 풀어낸 듯 하다.

우리는 가끔 여행지의 미술관에서 띄엄띄엄 고갱을 만난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 덕분에 워싱턴에서 고갱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다. 미술책을 통해서 한 작가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살필 수는 있지만, 실제로 전시장에서 한 작가의 전 생애를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아무쪼록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어느 봄날 소풍 삼아 국립 미술관에 들러서 잃어버린 전설 같은, 혹은 깊은 우물 속의 신화 같은, 옛 동무들의 말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고갱의 그림들을 만나보시길. 입장료는 무료이나 우리가 얻는 감동은 값을 헤아리기 어렵다.

**

관련페이지: 스미소니안 잡지 3월 호에 고갱 특집이 실렸다.  해당 웹페이지에서 전시회 작품의 일부를 감상할수 있다.
http://www.smithsonianmag.com/arts-culture/Gauguins-Bid-for-Glory.html



 
Posted by Lee Eunmee
Scrap Book2011. 3. 1. 14:09




Gauguin: Maker of Myth (고갱: 신화를 만든 화가) 2011년 2월 27일 - 6월 5일

오늘 (2011년 2월 27일) 국립 미술관에서 고갱 기획전이 열렸다. 오는 6월 5일까지 동관 (East Building)에서 진행된다. 실내 사진 촬영은 금지. 전시회에는 내가 모마나 메트로 폴리탄, 그리고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도 와 있었다. 특히나 크라이슬러 소장품은 어찌나 반갑던지.


http://americanart.tistory.com/192
바로 이 그림이 크라이슬러에서 출장 나온 작품.


아래 작품은 2009년 9월 27일 뉴욕 현대미술관 (MOMA) 에서 찍은 작품 사진. 역시 이번 전시회에 이 세마리의 강아지가 출장을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내가 이 작품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모마에서 이 그림을 보면서 집에 있는 우리 왕눈이 생각을 하고, 강아지를 유심히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이 강아지 그림의 디테일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폴 고갱의 따뜻한 심성이 느껴진다. 영국 큐레이터 벨린다 톰슨은 이 작품에 대하여, 고갱이 왜 이 그림속의 강아지나 다른 사물들을 세개씩 매치를 시켰는지가 미스테리라고 말했다.




모마 사진들을 들여다보던중 발견한 것, 우연히 이 강아지 그림을 모마에서 보던 그날도 그리고 워싱턴에서 이 강아지들과 다시 상견례를 하던 이날도  나는 이 올리브색 면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강아지들은 아마도 내가 입은 셔츠를 보고 나를 기억해 냈을지도 모른다. 이 셔츠는 순면이고, 그리고 아주 크고 부드러워서 외출 할때도 많이 입고, 여차하면 3박4일 씻지도 않고 집에서 뒹굴때도 잠옷, 실내복,, 내복 으로도 잘 입는다. 만능 셔츠인 것이지.




개관 하는 날이고, 일요일이라 전시장에 관객이 많이 붐볐다. 평일 오전에 다시 와서 봐야지. 한가하게 찬찬히 볼수 있도록.  전시회를 둘러보고 기념 특강전에 시간이 좀 있어서, 미술관 책방에서 판매하는 고갱관련 책을 한권 샀다. 고갱 책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제일 싼 (세일중인) 이 책을 약 6달러 주고 샀다.  간단하고 내용은 알차서 좋았다. 딱 스페셜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 값이 아닌가. 특강을 기다리는 '줄'이 있어서 나도 제법 앞줄 바닥에 앉아서 강당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막간을 이용한 독서.








나는 거의 맨 앞에서 들어가서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서 잡았는데, 나중에 둘러보니 수백명 자리가 꽉 차고, 임시 의자까지 동원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특강에 왔다. 영국의 Tate Museum의 수석 큐레이터이며 에딘버러 대학 교수인 연사가 직접 나와서 영국에서 이 기획전을 열었을때의 상황과 워싱턴 기획전을 비교해가면서 이 전시회의 의도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단순한 작품 해석보다는 기획전의 숨은 의도, 그리고 미술사학자나 큐레이터의 시각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내 수요 칼럼은 이 전시회 소개를 써야겠다.... 잘 써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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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9465


“우리가 생존을 위하여 육류를 먹는 일은 도의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가축들에게 마땅한 삶을 제공해야 하며, 고통 없이 목숨을 끊어야 한다. 우리는 가축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원문: "I think using animals for food is an ethical thing to do, but we've got to do it right. We've got to give those animals a decent life and we've got to give them a painless death. We owe the animal respect."” )

가축 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템플 그랜딘 (Temple Grandin)박사는 201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그는 두 가지 이유로 유명하다. 첫째는 그가 ‘자폐증’을 딛고 최고의 학문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둘째는, 남성 중심의 미국의 축산계에 여성의 몸으로 뛰어든 그가, 고기로 넘겨지는 동물들을 위해 고통 없는 죽음, 평화로운 죽음을 돕는 시스템을 개발해 냈다는 것이다. 템플 그랜딘 박사는 심신 장애인에게 역할 모델이 될만한 횃불 같은 존재로 존경을 받고 있다. 말 못하고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죽어가는 동물들에게도 그이는 영웅일 것이다. 그는 짐승의 고기를 먹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들을 무참하게, 고통스럽게 도살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지난 해 가을부터 한국에 구제역이 번지면서 해를 넘긴 2월 말 현재도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이제는 매몰된 가축의 처리마저 큰 근심이 되고 있다. 봄기운이 도는 우리나라의 여기저기서 산채로 매장된 돼지의 시체가 땅 위로 솟아오르거나 그 잔해가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또 다른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는 국내 기사가 암울하다.

구제역 발생 초기에 축산 농가에서 정성 들여 키운 소와 송아지들을 죽여야 했던 축산 농가 사람들과 도살을 담당한 공무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질 때, 나 역시 이 상황이 너무나 슬퍼서 기사를 제대로 읽을 엄두를 못 냈었다. 그런데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돼지 떼를 일일이 해결하지 못하고 한군데에 몰아넣고 생매장을 시켰다는 대목에서는, 멀리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나의 존재 자체가 죄스럽고 참혹했다. 이 문명시대에 아무 죄도 없는 돼지들을 속수무책으로 생매장해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했을 것이며, 영문도 모르고 발버둥치며 죽어간 돼지들은 또 어떠했을 것인가?

나는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할머니는 정성 들여 키우던 우리 개 ‘누렁이’도 한여름 때가 되면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장수’에게 팔아 넘겼는데, 떠나가는 개를 자식처럼 쓰다듬으며 “좋은 세상으로 가라”고 몇 번이고 축수해 줬다. 닭장의 닭들도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시면 살집 좋은 놈으로 잡아다 그 자리에서 백숙을 만들었지만, 닭들을 돌보는 할머니의 손길은 손자인 우리들을 돌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정성 들여 키운 소 역시, 집안에 큰 돈이 필요할 때 수원장에 끌고 나갔다. 소를 우시장에 끌고 나가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었는데,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저녁나절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텅 빈 외양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다가 키웠는데, 그 중에 네 마리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었다. 나는 날이 궂고 추워지면 그 닭들을 커다란 새장에 모두 담아가지고 내 방에 들여놓기도 했다. 내 닭들은 나의 ‘친구’였으며, 그 닭들은 나를 어미처럼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닭이 머리가 나쁘다고 하지만, 내가 키운 닭들은 사람만큼이나 영리해 보였다. 한여름이 되자 이들은 단체로 삼계탕으로 변신하여 밥상에 올랐다. 나는 내 친구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을 슬퍼하며 며칠을 울었는데, 삼계탕으로 영양을 보충한 식구들의 표정은 기름지고 즐거워 보였다. 그것이 인생이었고, 나도 하는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가축과 우리는 가족으로 공존을 했다.

그래서 ‘먹을 때 먹더라도 잔인하게 죽이지는 말자’는 그랜딘 박사의 주장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죄 없는 가축들이 생매장 당하는 상황도 딱하고, 이를 눈뜨고 바라 봐야 하는 축산농의 상황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로 인해 오염되는 우리의 산하도 슬프다. 한국 정부에서 이 가축 생지옥 같은 구제역 사태를 현명하게 수습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1. 2. 20. 12:32




찬홍이와 함께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http://www.vmfa.state.va.us/Default.aspx ) 에 소풍을 다녀왔다.  내가 아직 감기에서 회복이 다 안된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그냥 갔다. 즐거웠다.

VMFA 는 버지니아의 수도 Richmond 에 있고, 우리집에서는 106마일 거리. 대략 두시간 쯤 달려갈만한 거리이다. (한시간 45분 걸렸다).  주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므로 입장료 무료.  피카소 특별전이 진행중이라서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는 따로 입장표를 사야했는데, 나는 여기저기서 피카소 특별전을 많이 관람했고, 나의 주요 관심사가 따로 있으므로 이번에는 특별전 관람을 안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랐다.)

이곳은 지난해에, 대폭적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재개장을 하던날 박선생과 방문한 적이 있다. 오늘이 두번째 방문이다. 그래서 찾아가는 길이 낯설지 않았다. 

두시간  달리는 동안 찬홍이와 클래식 음악 시디를 틀어놓고, 음악의 작곡자와 제목을 하나 하나 맞추기 놀이를 했는데 유쾌했다. 나는 음악을 들을때 작곡자와 제목을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이 있고, 그래서 머릿속에 작곡자와 제목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으면 무척 답답해 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습관을 우리 식구들은 불편해 한다. (너무 히스테리컬하다는 것이지... 음악을 그냥 즐기면 되지, 꼭 족보 따져 들어야 하는가? 하는것이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 식구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습관에 아이들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요즘은 식구들이 내가 묻기도 전에 음악들의 제목을 찾거나 확인하거나 그러는 편이다. 특히 찬홍이의 경우에는 내게 무척 협조적이다. 오늘은 둘이서 신나게 '족보' 맞추기 놀이를 하느라 두시간이 지루한줄 모르게 흘러갔다. (돌아올때도 역시 이 놀이를 하고 왔다. 운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도착하니 정원에 일본 작가 Jun Kaneko 의 세라믹 공예 작품들이 서 있었다. 우리들이 궁금했던 점은, 이 대형 작품을 어떻게 구웠을까? 이렇게 큰 것을 구울만한 가마를 어떻게 구했을까?  뭐 이런 식이었다.


작년에는 박선생과, 이 물이 찰랑이는 테라스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은 바람이 몹시 불어서 얼른 뛰어서 실내로 들어갔다.  오늘 바람이 어찌나 무섭게 불던지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 밀렸다. 내 작은차가 막 옆으로 밀리는거다. 조심조심 운전을 하였다.



실내, 유리창 안에서 바깥의 작품들을 내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미술관 주변은 리치몬드 역사보존 지역이라서 옛 건물들이 많이 서 있다.



바깥 왼쪽으로 보이는 언덕, 그 아래가 미술관 주차장이다. 주차시설이 아주 넉넉한데, 이곳에 주차하면 하루에 3달러이다. 주차료도 참 착하다. 주차료 3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좋은 미술관을 공짜로 들어가니까.





나는 미국미술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후에 다른 유럽이나 국제 미술을 살피는 편이다. 에드워드 호퍼가 나오면 반드시 기념 촬영을 하고. (상세한 사진도 찍어서 아주 기분이 좋은 중이다. 호퍼 페이지에서 소개하겠다)



미술관 3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중앙홀.
홀 가운데 Jun Kaneko 의 세라믹 작품이 서 있는것이 보인다.



오늘 내가 이 미술관에 가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는, 피카소 특별전이 아니고, 바로 이 작품 때문이다. Kawase Hasui 라는 일본 근대 판화가가 있다. (이전 페이지에 한번 소개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Hasui는 한국(식민지 시절의 조선)에서도 작업을 했던 일본 근대 화가이다. 그가 그린 조선 여인도 참 아름다웠다. 하수이의 판화 특별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그의 판화를 보러 달려온 것이다.  총 열다섯점이 걸려있었는데, 내가 도착했을때는 열두점만 전시가 되고 있었다. 세점은 사진 촬영한다고 떼어가 버렸다.  떼어간 자리에 조그만 사진만 남겨져 있어서 무척 약이 올랐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 세점을 떼어간것이니까...

열두점의 작품을 상세하게 찍어왔으므로 조만간 카와세 하수이 특별전을 내 블로그에서 선보일 것이다. (아..꿈결처럼 아름답더라...)





찬홍이는 이 거대한 Sol LeWitt 의 벽화 작품에 놀라워했다. (이 미술관에서는 황홀한 솔레윗의 작품을 세가지를 전시장에서 만날수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는 부처를 형상화 한 백남준씨의 작품도 있는데, 물론 비디오 촬영도 해 왔다. (별도의 페이지에서 상세히 정리를 하겠다).  작년에도 여기서 이 작품을 봤었는데, 그 때 박선생과 내가 놓친것이 있었다. 그것을 찬홍이가 찾아 냈다.  해당 페이지에서 소개를 해야지.





Donal Sultan 의 Lemons (1984).
lemon 은 이따금 내가 서명할때 사용하는 내 별명 같은 것이고(내 이니셜이 lem 이라서), 그리고 내가 즐겨 사용하는 향수가 레몬향이고, 이래저래 레몬을 좋아하는데, 레몬 그림이 하도 근사해서.




나는 토요일에 외출하면 반드시 집에 여섯시까지 돌아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더 머무르고 싶어도 시간이 되면 반드시 떠나야 한다. 아쉽지만 세시반에는 미술관을 떠났다. 열두시부터 세시반까지 쉬지 않고 미술관 안을 돌아다녔다. (점심도 안먹고). 나는 차에서 인절미와 생강차를 먹었는데 찬홍이는 점심도 굶은 놈이 인절미도 차도 안먹겠다고 해서, 녀석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기로 했다.

그래서, 귀가하던 도중 Cracker Barrel (http://www.crackerbarrel.com/ )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미국의 대중적인 프렌차이즈 식당인데 음식값이 저렴한 편이고 평이 나쁘지 않다.  실내 인테리어가 미국 시골 밥집 분위기가 나고, 또한 기념품점이 넓직해서 여행객들이 간단히 들러서 식사하고 기념품을 간단히 사기에도 좋다.



찬홍이 말로는, 내가 입은 가죽 자켓이나, 그 안에 성조기가 그려진 셔츠나 스카프까지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카우보이 복장인고로 이 미국식당에 스며드는 완벽한 '위장복'이라고.  내가 이 집 인테리어와 너무나 조화로와서 내가 사람으로 안보이고 인테리어의 일부로 보일거라는 해석이다. (아무튼 애들은 상상력도 풍부하다)






우리가 먹은것.
찬홍이는 닭고기 음식을 주문했고, (닭고기 튀김,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이탤리 만두 이렇게 세가지가 나왔다)
나는 그냥 네가지 야채요리를 주문했다.(옥수수, 콩, 사과튀김, 그리고 무슨 나물)
콘브레드와 비스킷은 그냥 서비스.
여기에 음료수와 커피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21달러가 청구되었다.
미국에서 이정도 먹으면서 21달러면 비싸지 않은 편이다. (정말 싸게 먹으려면 맥도널드에 가야 하고...)



오늘 찬홍이와의 미술관 소풍은 정말 즐거웠는데, 찬홍이도 버지니아 미술관이 마음에 든다며 또 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찬홍이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함께 지내는 동안, 주말에 찬홍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이 보여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돈은 좀 아껴쓰고 그대신 많이 보여주고 싶다. (소풍 갈때 점심을 챙기면 돈도 별로 안 드니까, 최대한 많이 다니면서 보여주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싶다.)  그런데 찬홍이도 나하고 돌아다니는 일이 즐거운 모양이다.  지홍이도 있다면 더 좋을텐데...박선생은 나하고 많이 다녔으니까, 내가 돌아갈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는 평생 신나게 구경 다니며 살 것이다. (세상 구경을 하기 위해서 꼭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미술관의 작품 감상은 차근차근 해당 페이지를 열고~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2. 17. 01:0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6217

일전에 모처럼 친구와 극장에서 조조할인으로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Biutiful’. ‘No Country for Old Men’에서 소름 끼치는 악당 역할로 2008년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았던 하비에르 바뎀 (Javier Bardem)이 주연으로 나왔다. 제목 ‘Biutiful’은 ‘beautiful(아름다운)’이라는 단어를 어린아이가 잘못 표기한 것이다. 2011년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후보에 올라 있다.

영화는 주인공 남자를 중심으로 스페인의 대도시, 바르셀로나의 변두리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거칠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권이 무시된 불법이민자들의 시궁쥐 같은 삶, 마약, 매음, 자행되는 불법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드리워진 파란 하늘과 죽음. 오직 ‘죽음’ 만이 유일한 출구처럼 보이는 지옥 같은 삶.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가슴에 무거운 바위가 얹혀진 것 같은 고통을 느꼈고, 자반 뒤집기 하듯 몇 번이고 몸을 뒤척여야 했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비참하고, 희망이 없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격한 우울감에 신경이 소모되는 듯 했다. 마침내 생지옥을 견디는 듯한 사람들이 죽었을 때, 주인공 남자가 육신을 벗고 유령이 되었을 때야 나는 안도했다. ‘끝났구나. 다행이다.’ 죽음이 위안이며 ‘구원’이라는 사실을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준 영화가 또 있었던가?

지난 보름간, 한국에서 전해지는 뉴스들이 내 가슴을 여전히 무겁게 했다. 세 살짜리 어린 아이가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부모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되고 동네 쓰레기장에 유기되었다는 뉴스는 나의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한편, 나이 서른도 한참 넘긴 한 ‘시의원’이 지역 자치 센터의 임시직원에게 행패를 부리고 고소를 당하는 일이 생기자, 문제 일으킨 시의원의 어머니가 백배 사죄하는 것으로 문제를 마무리 했다는 뉴스 앞에서, 나는 나이 세 살에 부모한테 살해당한 그 어린 아이를 생각했다. 어떤 아동보육 전문가라는 시의원은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어머니가 앞장서서 세상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는데,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구박만 당하다가 쓰레기봉지에 싸여 저 세상으로 가버렸구나.

삼십 대 초반의 영화인이 지병과 생계 곤란 속에서 고통을 겪다가 요절했다는 뉴스기사 바로 옆에서는, 어느 영화배우가 신혼집을 30억 원짜리를 얻었다는 행복한 기사가 노래처럼 울려 퍼졌다. 세상의 한구석에서 젊은 예술인이 가난에 시달리다 요절한 것을 애도하는 동일한 페이지에서,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는 수십억짜리 신혼 집 뉴스는 이세상의 비정함과 부조리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는 것은 참 부조리하며 출구 없는 방처럼 보인다. 그러면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을 다시 영화 ‘Biutiful’에서 찾는다. 주인공 남자는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다. 어린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가 아이들을 위해서 모은 돈은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아이들은 천애고아로 남겨지게 된다.

이 즈음에야 관객은 영화에 등장한 늙은 무녀의 말을 상기하게 된다. “네 아이들은 네가 돌보는 것이 아니야. 네 아이들을 돌보는 손은 따로 있다.” 그리고 졸지에 부모를 잃고 남겨진 아이, 그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햇살 가득한 세상, 그 세상에 삐뚤삐뚤 적어 놓은 ‘Biutiful’이 생생하게 빛난다.

비참 속에서도 태양은 빛나고, 아이들은 그 태양을 보며 자란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세상의 비참함을 돌아보고, 그곳에 한줌의 빛이라도 뿌리는 일이 될 것이다. 어둡고 비참한 뉴스가 반복될 때마다 우리들은 잠시라도 우리 이웃을 돌아보고 내가 나눠줄 것이 없는지 생각하고 실천하면 된다. 큰 일은 하기 어렵지만, 작은 일은 실천 할 수 있는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주 작은 일들이다. 아름다운 (biutiful) 세상을 위하여.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2. 12. 03:32

어제는,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려는데, 몇명의 한국인 신사분들이 맞은편에서 차쪽으로 이동해 오다가 길 가운데서 마주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이경우 대개 시선을 내리 깔아서 외면하고 (한국식으로) 지나친다. 평소처럼 그렇게 시선을 피한채 지나치려는데 그중의 한분이 내 앞에 정지하여 서서는,  "아이구 이선생이시죠!" 이러시는거다.  (나 이선생 맞지...)

그래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제서야 상대방을 쳐다봤는데, 물론 나는 모르는 분이다. 내가 이바닥에...아는 분이 어딨나..나는 학교에서 마주치는 사람 외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이선생 글을 매일 읽는데, 글을 참 잘쓰셔."  (이제는 주위의 일행을 둘러보며) "이선생이 신문에 글을 쓰시는데, 정말 잘 쓰셔..."  

우와, 길에서 이런 인사 받으니까, 이거 참 면구스럽고, 난감하고, 이럴때 '몸둘바를 모른다'는 말을 하는 모양이다. (아 근데, 지나가는 사람하고 신문에 손톱만하게 실린 사진하고 그걸 어떻게 연결시켜서 사람을 알아봤을까?  아 거기가 우리학교 건물주차장이라서 바로 연결시킨건가?)

아무튼 그 난처하고 벌쭘한 상황속에서, 그냥 할말이 없어가지고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보잘것 없는 사람을 칭찬해주셔셔..." 이러고 우물거리며 자리를 떴다.  

그러고나서 내가 나를 한번 돌아봤다.  내 꼴이 어땠지? 화장은 좀 신경쓰고 나왔으니까 꼴이 흉하지는 않았겠지.  옷도, 신경써서 입고 나왔으니까 된것 같고...내 태도는 어땠지?  겸손하게 지나치고 있었지? 그것도 합격. 전체적으로 내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겠구나. 다행이다...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 어떤분이 매주 내 글을 읽고, 내 이름을 기억하고,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해서 호감을 품었다고 치자. 그분은 나를 모르지만 내 글이 좋았을것이다.  그런데 눈이 밝은 그 분이 길거리에서 나라는 실재하는 사람을 발견했을때, 그때 내가 오만불손해보이고, 용모며 태도가 엉망이었다면, 그분은 여태까지 읽었던 내 글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낄것이다.  형편없는 인간이 글만 반지르르하게 썼군...하고 스스로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을 때는, 그가 평소에 만났던 내 글과, 눈앞에 지나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인상이 아마도 일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반가워 했을 것이다.  (내가 선의의 어떤 모르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게 행동한 것에 대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따금 "글 잘 읽고 있어요" 하는 인사를 학교에서 모르는 학생으로부터 받는다거나, 그럴때가 있다.  그런데 길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속에서, 아무하고도 연결되지 않은,  완전히 타인인 누구로부터 인사를 받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그분이 반갑게 던진 인삿말을 곰곰 생각하다가,  나의 행동거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의 눈에 띄거나 안띄거나, 내가 내글을 정성껏 쓰듯, 내 행동을 정성껏 하고, 그렇게 살면, 그것이 내게도 좋을뿐아니라,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기쁜 일이 될 것이다.  타인의 시선은 나의 지옥이 아니고, 나를 지켜보는 수호천사들의 시선이라고 할수 있다. 거기에 의지해서 내가 나를 더욱 반듯하게 세워야 하는 것이다. 나도 기쁘고, 내 이웃도 기쁘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하느님의 눈에도 기쁘게.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2. 9. 21:1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2931

‘Clean up after your dog.’ 미국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러한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개를 끌고 나온 개 주인들에게 개똥을 치우고 가라는 메시지이다.

나는 7년 전에 플로리다의 어느 동물 보호소 (Animal Shelter)에서 개를 한 마리 데려왔는데 지금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버려진 개 한 마리를 입양하여 사는 동안 우리 가족들은 그 개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다. 남의 나라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와 아이들이나 버려진 개나 서로에게 의지처가 필요했으리라. 엄마가 집을 비운 동안 텅 빈 집에 돌아온 아이들을 미칠 듯이 반겨주는 우리 개는 하늘이 보내준 천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개를 키울 때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 및 예방접종도 실시해야 하고, 목욕도 자주 시켜야 한다. 개를 데리고 여행을 할 때는 호텔에서 개의 입실을 허용하는지 ‘Pet Allowed’ 표시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부가적인 요금을 요구하는 호텔도 많다. 셋집을 얻을 때도 역시 개를 데리고 입주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재 세들어 사는 아파트에서도 개가 있다는 이유로 렌트비를 50달러씩 매달 꼬박꼬박 더 내고 있다.

이런 금전적인 것 외에도 매일 거르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서 용변을 밖에서 해결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 개인주택에 살 때에는 뒷마당이 넓어서 개가 알아서 해결했는데, 지금은 3층 아파트에 살고 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박이 쏟아지거나 개를 끌고 나가야만 한다.

개를 끌고 산책하다가 난감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가령 내가 깜박 잊고 개똥 치울 비닐봉지를 안 들고 나갔는데 개가 실례를 할 때, 또는 봉지를 하나만 갖고 나갔는데 그날따라 개가 두 번씩이나 일을 볼 때 여분의 봉지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 개 주인들은 어떻게 할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주위를 살피고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없음을 확인하고, 마음 속으로 ‘저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외친 후, 36계 줄행랑을 치는 수밖에.

우리 아파트 단지 몇 군데에 개똥처리용 쓰레기통과 봉지가 준비되어 있다. 그러니까 설령 봉지를 깜박 잊고 산책을 나갔어도, 근처에 있는 개똥처리 시설로 달려가 문제 해결을 하면 된다. 그럴 때는 여분의 봉지도 한두 장 뽑아가지고 개 줄에 묶어 만약의 사태에 미리 대비를 한다.

개똥 쓰레기통과 봉지는 개를 키우는 아파트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개똥 치우는 일이 번거롭지 않고 가뿐한 일이 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개똥을 치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간단한 편의시설을 볼 때면 나는 사회적인 장치들이 사람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 와 처음 놀란 것이, 미국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일에 매우 익숙하다는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어디에 가나 줄을 잘 서게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낮은 울타리나 줄을 쳐서 줄을 서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이런 장치에 익숙해지고 줄서기에 익숙해지면, 사람은 그 장치가 없어도 습관대로 줄을 서게 된다. 이는 어찌 보면 미국 사람들이 유독 공중 도덕의식이 높은 선진 문명권의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줄을 잘 서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장치들 속에서 습관 형성이 된 것 뿐이다.

그래서, 어떤 개인이나 사람들의 행동을 평가할 때, 사람만 평가하면 우리는 큰 그림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사회가 사람에게 제대로 된 장치를 제공했는가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입춘도 지났고, 이제 꽃피는 봄이 멀지 않다. 날이 풀리면 사람들과 애완동물들의 산책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개를 끌고 나가실 땐 비닐봉지를 두 장쯤 개 끈에 묶어가지고 나가시는 것을 잊지 마시길. 일단 습관 형성이 되면 이런 일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상쾌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은미

추가: 왕눈이가 배변 포즈를 취할때 비닐 봉지를 엉덩이 부분에 갖다 놓으면, 똥이 봉지로 투하되기 때문에 똥을 주울필요도 없이 그냥 봉지만 오무리면 작업은 끝난다. 옛날에 아이들 키울때도, 아이들이 배변 신호를 보낼때 배를 쓸어주면서 휴지를 기저귀 위치에 깔아 주면 휴지위에 배변이 되었으므로 똥기저귀를 빨 일이 줄어들었다. 배변 훈련이 이미 유아기부터 진행된 것이다.  그러니까, 개똥도 사실 주인과 박자가 정확히 맞으면 아주 간단한 일인데...이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애정과 관찰이 필요하다.  만사는 애정과 관찰이라...껄껄~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2. 2. 22:23


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보시지요. :)  백남준씨 자료는 차근차근 정리하여 제대로 엮어보려고 계획만 열심히..촬영 이은미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0196


내일은 설날이다. 나는 워싱턴의 하늘 아래서 떡국을 끓여 조상께 드리는 차례를 지낸다. 세상 어디에 가서 산다고 해도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례이기도 하다. 명절 아침엔 한국의 가족이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

           워싱턴에 살다 보면, 이곳을 찾는 지인들에게 관광 안내를 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챙겨 줄 때가 있다. 워싱턴 디씨에서 한국인이 찾아 볼만한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가봐야 해. 거기 3층에 가면 미국의 국보급 미술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거든. 링컨 갤러리 중심 부분에 미국 지도를 표방한 백남준의 일렉트로닉 하이웨이 (Electronic Highway) 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 정도는 웬만한 미국인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이지. 그런데, 사실 더 놀라운 작품이 거기 숨어있어. 바로 그것을 가서 봐야만 하는 것이지.”

           나는 일단 그 숨어있는 작품 생각을 하면 심장이 쿵 뛰고 코끝이 찡해진다.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3층 북쪽 회랑의 오른쪽 구석방에 백남준의 진짜 보물이 숨겨져 있는데 제목은 메가트론/매트릭스 (Megatron/Matrix). 전체 215개의 화면에 두 가지 각기 다른 주제가 서로 연결되어 돌아간다. 메가트론 쪽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참가국 관련 화면들이, 매트릭스 에서는 나선형 속의 개인이 비쳐지면서 개인과 세계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도록 이끈다.

           나는 미술에 관심 없고, 비디오 아트가 뭔지도 몰라. 그러므로 나하고는 상관 없어라고 내 친구가 말한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이건 미술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상관없고, 시각장애인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그냥 거기 가서 그 작품 앞에 5분쯤 서있거나 앉아있기만 하면 돼. 백남준이 이 작품에 숨겨놓은 것이 따로 있어.”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 디씨, 미국이 자랑하는 국보급 미국미술품을 소장하는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3. 거기 빙글빙글 돌아가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가수 조용필의 노래이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소리쳐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 코드 속에 반복적으로 끝없이 심어놓은 한국의 이미지들, 그 이미지들이 모니터를 수놓으며 변화해 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트의 음악들이 그 흘러가는 화면들과 맞물리는데, 그 속에서 홀연히 흘러 나오는 조용필이라니.  내가 한번이라도 국립 미국미술관에서 한국인 조용필의 노래를 들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백남준씨는 물론 한국이 낳은 한국의 아들이고, 미국 국적의 아티스트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은 그를 한국 출생 미국 미술가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국적이 무슨 상관이란 말 인가, 그는 한국의 아들인데. 

           조용필은 한국의 국민가수로 알려져 있고, 그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불세출의 히트곡이라고 한다.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여 미국을 자주 오가던 국민가수 조용필은 간단히 취득 할 수 있는 미국 영주권조차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의 국민가수로 생을 마칠 작정인 모양이다.

           미국 미술관에서 백남준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맞닥뜨린 이후 내가 이 미술관을 찾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메가트론/매트릭스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구석에 가서 밥 한끼를 먹을 시간만큼 앉아있다가 나온다. 허기진 가슴이 밥 한끼만큼 차오른다. 이국 땅, 워싱턴 디씨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지는 한국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애국가보다도 그 어떤 명곡보다도 더 거친 함성으로 대한민국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미국의 심장부에 한국을 심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고국을 떠나 세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던 백남준의 그리운 노래이리라. 그리고 나의 그리운 함성이기도 하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은 매트로 레드라인 (Red Line) Gallery Pl Chinatown 역 앞에 있으며 오전 11 30분 개장 오후 7시에 닫는다. 입장료는 물론 무료이다.



이은미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1. 26. 22:2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47007


요즘 한국사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냈다는 기사도 나왔다. 나는 한국사 교육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눈물을 쏟곤 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가족 찾기를 진행했는데, 미아가 되었거나 사고로 가족과 헤어졌던 사람들이 출연해 자신을 소개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대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언니, 나는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해 매일 엄마, 아버지, 언니, 동생, 내 이름, 그리고 우리 마을 이름을 외웠어. 잊어버릴까 봐 매일 외웠어!”

고아원으로 혹은 남의 집으로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살아온 그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주문을 외듯 끝없이 이름들을 외웠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나중에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증명할 길도 없어져 버리니까 말이다. 이는 눈물겨운,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나는 ‘한국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편이다. 한국사는 바로 내 핏줄에 흐르는 내 삶의 이야기이다. 내 삶의 이야기를 모르면 나의 정체성이 애매해진다.

혹자는 미국 역사는 기껏 300년도 안 되는데 한국사는 반만년이라서 한국사 공부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따분하고, 외울 것만 많아서, 교육이 힘들다고도 설명한다. 그런데, 이런 논의에 반대 의견을 말한 고등학생이 있다. 우리 집 작은 놈은 현재 12학년인데 열 살까지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린 녀석이 한글을 깨치면서 한국사 관련 만화를 비롯해 온갖 책을 들여다보더니 어른들도 모르는 시시콜콜한 한국사 이야기를 천자문 외듯이 혼자 종알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와서 적응하기가 힘이 들었던 듯, 좋아하던 역사책들도 손에서 놓고 말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가끔 집에 굴러다니는 한국사책도 읽고, 학교에서 배우는 미국사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런다.

녀석의 설명으로는, 한국사는 반만년이나 되니까, 큰 줄기를 중심으로 배우거나 외우게 되고, 미국사는 300년 안팎이니까 시시콜콜한 것까지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아주 복잡하다고 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공부하기에는 한국에서 한국사 배우기나 미국에서 미국사 배우기나 그 난이도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반문도 가능하다. 한국사 배우기가 어렵다면 땅덩어리 크고 역사도 다채로운 중국의 학생들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역사 공부를 포기할 것인가?

미국의 역사책은 백과사전처럼 두껍고 내용이 알차고, 한국의 역사책은 암기용으로 외울 것 많고 내용이 충실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반드시 백과사전같이 두꺼운 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학교나 집에서, 길에서조차 쉽게 인터넷을 활용 할 수 있는 정보 사회에서 책이 반드시 두꺼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관심 있으면 인터넷, 도서관에서 믿을만한 정보를 취하면 된다. 나 역시 책 보다가 뭔가 궁금하면 인터넷에서 곧바로 믿을만한 자료를 찾아 살핀다. 교육 방법과 자료 탐구의 문제이지 교과서의 두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적인 내용이 정리된 얇고 작은 책이 공부하기에 부담이 적을 수도 있다. 공부할 자료는 얼마든지 널린 세상이므로.

대학 입학을 위해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거나 각급 공무원 시험에서 국사과목을 중요 과목으로 다시 끌어올리자는 논의를 환영한다.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 즐겁고 의미 있는 한국사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국사를 아는 것은 나의 근본을 아는 것이고, 나의 정체성을 형성시켜주며,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우리가 근본을 아는 일에 힘썼기에 약소국이면서도 오늘날의 도약을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은 미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1. 19. 21:0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43890


워싱턴DC 한국 영사관에서 열리고 있는‘워싱턴 한미 미술가 협회’ 회원들의 전시회를 관람했다. 작가들은 재미 한국계 미술가들로 한국과 미국의 미술대에서 실력을 닦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다.‘ Nouvelles Nuances’라는 기획전의 제목이 시사하듯 여러 가지 소재로 새로운 의미나 뉘앙스를 전달하려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워싱턴의 한국 영사관에서 미술 전시회를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그 동안 재미 한국계 미술가들의 전시회가 활발하게 진행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내가 미술전을 보기 위해서 영사관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워싱턴 지역에서 살아온 지난 4년간, 시간 날 때마다 워싱턴과 동부의 미술 전시장을 찾는 삶을 살아왔다. 워싱턴의 전시장은 수시로 전시 상황을 확인하고 아무 때나 뛰어가서 보곤 했다. 영사관 이웃에 필립스 컬렉션 (Phillips Collection)이라는 미술관도 있던 터라서 이곳을 지나친 적도 많았지만 영사관의 문지방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면 나는 왜 번번이 영사관 문 앞을 지키는 서재필 선생께 인사만 꾸벅 하고 그 앞을 지나쳤을까? 영사관은‘관공서’이고, 나는‘관공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기도 용인의 농가에서 나고 자랐으며 나의 삶의 뿌리는 농경사회에 내려져있는데, 우리들은 파출소나 경찰서, 면사무소나 기타 관공서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고 자라났다. 어른들은 애가 울면 '순경이 잡아간다'고 협박했고, 순경은 국가기관의 상징이었으며, 따라서 국가기관과 관련된 곳은 모두 무서운 곳이었다.

상경하여 학교에 다닐 때, 우리 식구들은 무허가 단칸방에서 지냈는데, 그 시절, 가난한 우리 엄마가 ‘동사무소’에 가는 날 엄마는 아주 골치가 아픈 표정이었다. 엄마가 동사무소에 무슨 서류를 떼러 간다고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나 지친 표정으로 돌아왔는데, 나중에 엄마는 약아져서 동사무소 직원에게 담배를 두 갑 정도 사다 주면 서류를 조금 빨리 해 준다는 이치를 배웠다. 이는 모든 민원서류를 손으로 직접 써서 주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화이다. 엄마에게도 관공서가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성인이 돼 동사무소에서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치느라 이곳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도 있었건만,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요즘 대민 공무원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신속한지 체험으로 알고 있건만, 그래도 여전히 내게 '관공서'는 무서운 곳이고, 될 수 있는 대로 안 가는 것이 상책인 곳이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인상은 얼마나 질긴가!

이번에 용기를 내어 영사관 문을 열어젖히니, 1층 대민 업무를 하는 공간의 벽에 미술품들이 배치가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조심조심 눈치를 보면서 작품들을 관람했다. 사진기를 꺼내면서도 다시 한번 주위의 눈치를 살폈는데, 혹시나 누군가가 “이봐요, 지금 거기서 뭣 하는 거요?”하고 호통을 칠까 봐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락의자까지 마련된 그 영사관 1층 민원실에서 구경을 실컷 하고, 소파에 편히 앉아 쉬다가, 사진기를 꺼내어 작품 사진을 찍는 동안, 이런 나를 신경 써서 쳐다보거나 혹은 내 신분을 확인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민원실이면서 전시장이기도 한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복사기 한대를 발견했는데, 그 위에 ‘복사무료’라는 표시가 보였다. 민원인이 급히 복사해야 할 서류가 있을 때, 이곳에서 해결하라는 취지 같았다. 이런 친절한 배려까지 해 주다니! 나는 왜 이 좋은 곳을 그 동안 겁을 내고 안 들어오고 지나치기만 했을까? 길가다가 다리 쉼 하러 들어온대도 아무도 제지를 안 할 터인데.

워싱턴 한미 미술가 협회의 Nouvelles Nuances(새로운 뉘앙스) 전시회에 갔던 나는, 한국의 관공서에 대한 ‘새로운 뉘앙스’를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초대작가인 최아영 화백의 ‘Spring is Coming(봄이 오시네)’처럼 관공서에 대한 내 인상도 얼음이 풀리고 봄이 오는 것 같다. 이 전시회는 2월 23일까지 계속된다.


Choi, Ah-young, Spring is Coming




이 은 미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1. 1. 17. 03:43


http://www.corcoran.org/
코코란에서 요즘 미국 작가들의 현대화,  미니멀리즘, 칼라 필드 페인팅 주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아침에 후다닥 다녀왔다.  코코란은 지난 몇해동안 보수 공사를 진행중이었고, 보수 공사 이후에는 전에 전시되던 작품들을 복귀시키지 않았다는 인상을 줬었다.  이번에 가서 보니 내가  보고싶어 하던 작품들이 모두 많이 나와 있었다. 게다가 워싱턴 디씨 출신의 대표적 작가라 할 수 있는 Gene Davis 의 대작들이 홀 하나에 전시가 되어 있어서 평소에 여기저기서 그의 작품들을 하나 혹은 둘 찔끔찔끔 보면서 느끼던 갈증을 일거에 해소 할 수 있었다.

오전 열시에 맞춰서 도착하여 두시간쯤 둘러보고, 근처의 Renwick Gallery 들어서 건성으로 살피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할 일이 많아서.  하지만, 앞으로 당분간 오늘 본 작품들을 떠올리며 기분좋은 시간을 보낼수 있을것 같다.  Color Field Painting 작품들을 아주 '원 없이' 실컷 봤으니까, 당분간 허기를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오전 열시 개장 직전에 도착하여, 문일 열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내가 오늘의 1번 손님). 문앞을 지키는 사자와 셀카놀이.









며칠전에 Gillaiam 의 작품 사진을 블로그에 한장 올린 적이 있었는데, 길리암은 워싱턴 디씨가 배출한 흑인 현대 화가이다. 나는 길리암이 흑인 일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어쩐지 창백한 유럽계 작가의 작품같아 보였는데...) 추후에 길리암에 대한 제대로 된 페이지들을 엮기로 한다. (캔바스를 너울거리는 커튼처럼 만들어버린 작가)


코코란에서 현재 진행중인 기획전들



스펜서 핀치의 Now 라는 전시회는 '놀라웠다'  구름이라는 소재를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서 형상화 하였는데
 
  1. 셀로판지로 공중에 띄운 구름
  2. 타일조각 같은것을 잇대어, 도로의 보도블럭같이 만든 작품 두점
  3. 흰 도화지를 오려서 포개는 식으로 구름을 형상화
  4. 수채화
  5. 형광등에 여러가지 채색을 하여 빛의 색깔을 다채롭게 하고 그 형광등들을 입체 도형으로 제작
  6.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것) 물웅덩이에 비친 구름 사진 연작.

대략 기억에 의거 이러한 작품들이 전시가 되었다. (이 전시장이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소장품이 아니고 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눈과 오감을 흡족하게 해준 코코란의 전시회를 살피고, 백악관 건너편 Smithsonian Renwich Craft Gallery 에 들러 둘러봤다. (이미 코코란에서 아주 제대로 맞은 터라서, 여기서는 뭘 특히 찾아볼 기분이 안들었다.)  코코란은, 전시회 끝나기 전에 찬홍이 데리고 다시 가보고 싶다. 놀라운 작품들을 혼자 보기가 아까우니까.




백악관 앞을 지나며 "오바마 대통령한테서 언제 저녁 초대가 올까?" 혼자 중얼 중얼.  백악관에 가서 밥 한끼는 먹어야 하는것 아닌가?




일요일 정오쯤. 날이 추워서인지 백악관 앞마당이 한산하다. 봄, 여름, 가을에는 이 앞이 항상 바글바글 하는데 추운 겨울이라 사람이 없다.  그래서 오늘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람 없는 겨울 주말에 디씨에 자주 차를 끌고 나와야겠다는 것이다. 차 세울데가 많아서 좋다.



백악관 건너편에 있는 아주 오래된 호텔들. 앞에 보이는 갈색 건물이 워싱턴 호텔, 그 옆의 프랑스식 지붕의 건물이 윌라드 호텔.  몇해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오셨을때 이 윌라드 호텔에 묵으셨었다.  각국의 정상들이 워싱턴 방문할때 주로 이 호텔을 점거한다.





차를 세워놓은 워싱턴 마뉴먼트 앞 도로 - 컨스티튜션 애비뉴로 터벅터벅 이동.





언제나 믿음직한 워싱턴 마뉴먼트. 이 하얀 탑이 보이면 기분이 좋아서 혼자 웃는다.



근사한 예술품을 보면, 마음이 그득차는 것 같고, 이유없이 행복해진다. 특히, 칼라 필드 페인팅 작품들 속에 있다 나오면, 내 온몸에 물감이 드는 것 같다.

이제 주제별로, 내가 사냥해 온 작품 사진들을 풀어놓고 야금야금 이 즐거운 기분을 되새길수 있겠다. (아 배고파. 라면 먹어야지.--결론)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1. 1. 16. 07:11
미술관에서 작품 감상하다 보면 작품 소개하는 태그 (tag)에 제목이며 작가, 제작 년도, 사용한 소재 뭐 이런것들이 간단히 명시가 되어 있는데, 숫자로 이루어진 기호들도 있다.  바로 그 기호가 Accession Number 이다. 소장품에 붙여진 고유 기호이다 (우리식으로 주민등록 번호 인 셈이다.)


Smiethonian American Art Museum 의 Luce Center 에서 위의 안내표지를 발견하였다.

  1. 2001은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거나 기증받은 년도를 가리킨다.
  2. 71은 미술관이 일년에 몇차례에 걸쳐서 일단의 작품을 들여 놓았을것인데 그 해에 몇번째로 들여 놓은 그룹에 속하는가 명시를 한 것이다. 2001년에 71번째로 들어온 그룹에 속한다는 뜻이다.
  3. 14는 그 그룹중에서 몇번째 인가 명시한 것이다. 가령 2001년에 여러차례에 걸쳐서 작품들 무리가 들어왔는데, 이 작품은 71번째 그룹에 속하고 그 그룹에 14점이나 그 이상의 작품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14번으로 번호가 매겨졌다는 말이다.
  4. a-b 는 이 작품이 뭔가 한쌍으로 이루어진 경우를 가리킨다. 찻주전자의 경우 주전자 몸체와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체와 뚜껑이 온전히 짝이 채워져서 들어왔으면 a-b 이렇게 표기가 되는 것이다.
  5. 이제 예를 들어보자, 내가 그림 한장을 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그 그림에 대해서 미술관이 2011.11.11 이라고 표기했다면, 이 그림은 2011년에 미술관에 소장 되었으며, 열한번째로 들어온 일단의 작품들중 하나이고, 그 작품들중에서 11번에 해당 된다는 것이다.

 
자 실전 연습:

이것은 내가 찍은 작품 설명문의 일부. 대충 보니 작가 자신이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그 뒤에 기호가 있다. 퀴즈.  2006.14는 무슨 설명을 하는 것일까요?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1. 1. 16. 06:42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의 3층에 미술품 보관 및 전시를 하는 Luce Center 라는 곳이 있다. (이름을 잘 몰라도 3층 한바퀴 돌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이곳 홀에서 수요일--일요일, 오후 1시 30분 - 3시 30분 사이에 커피나 차를 무료로 마실수 있다.

사진에 보이듯 컵이 쌓여있고 커피와 뜨거운 물 통이 나란히 있어서, 원두 커피를 딸아 마셔도 되고, 아니면 뜨거운 물에, 옆에 준비된 티백을 넣거나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실수도 있다.



찻잔을 들고 이렇게 홀에 있는 테이블을 아무거나 차지하고 앉아서 쉬면 된다.  노트북을 충전시키면서 웹서핑을 즐길수도 있고,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이 곳에 온종일 진치고 앉아서 공부를 한대도 좋겠다 (어차피 미술관 입장료는 무료이므로.)



차를 다 마시고는 계단을 이용해 이곳 2층 3층에 있는 소장품 보물창고 탐색 놀이를 하다보면 세월 가는줄 모른다.  무료 입장인것만도 고마운데, 커피까지 제공해주시니 감사할 따름~  (공짜는 일단 접수하고 보는거다 헤헤.)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1. 1. 16. 01:28

Train in Coal Mine (1968) Oil on Fiberboard 광산의 기차
Jack Savitsky (1910-1991)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층 Folk Art 갤러리
사진 이은미, 2011, 01,14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은, 미국 미술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에는 Folk Art 라고 불리우는, 전시장도 있어서 주로 무명의  일반 사람들이 그리거나 만든 작품들이 전시가 되고 있다. Grandma Moses 의 작품도 한점 걸려있고. 간혹 작가의 이름이 알려진 작품들도 보이는데, 이 기차그림도 작가가 알려진 경우에 속한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나는 새로운 그림을 발견 할 때가 있는데, 정말 새로운 그림이 거기 걸려있다기보다는, 늘 무심코 지나쳤던 것인데 문득 내 눈에 다가올때, 그 때 새로 만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전시 기획자가 계절에 따라서 작품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그 기차 그림은 내가 이곳에 올때마다 늘 그자리에 걸려있던 것이었는데, 이 작품이 문득 내 마음에 노크를 했다.  왜 하필 이것이 유독 눈에 띄었을까?  밖은 차가운 겨울 날씨인데, 그림이 환하고 따뜻하고 힘차보여서 그랬을까?

아니, 무심코 지나치다가 작품 제목에 덧붙여져있던 설명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일까?
스미소니안이 붙여 놓은 태크 (이름표)에 적혀 있던 구절을 기억에 의거 풀어 놓자면 -- 대다수의 민간 예술가들 (folk artists)은 그림 공부를 따로 하지도 않고 평생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여 살다가 노년에 일자리에서 물러난 후에, 취미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생애의 생생한 경험과 기억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기억들을 그림으로 옮긴다. 잭 새빗스키 역시 탄광촌에서 나고 자라서 광부로 35년 가까이 일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959년 탄광일을 그만두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Gransma Moses나 Horace Pippin 이 바로 그렇게 그림을 시작한 분들이 아닌가.

우리 엄마는 회갑을 며칠 앞두고 중풍으로 쓰러진후, 중풍을 이겨내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여 칠순때 개인전시회를 열었던 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미국의 풍속화가들에 대한 몇줄짜리 설명을 읽다가, 나는 내 엄마의 이야기를 그 속에서 발견해 낸 것이리라.  내 엄마. 위대한 내 엄마.  나는 이 그림앞에 서서, 워싱턴에 우리 엄마가 오면, 엄마 손을 끌고 이리 와서. 이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 낸것인지 설명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골똘히 골똘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의 작가는 탄광노동자들이 많이 걸리는 그 진폐증과 같은 질환으로 고통을 겪었고, 후기에는 유화의 그 강한 휘발유 냄새도 그의 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즐기던 유화도 포기하고 색연필과 같은 무해한 도구를 이용했어야만 했다고 혼다. 그는 다행히도 풍속화가 발굴에 노력한 어느 평론가의 지원을 얻어서, 살아서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지금도 웹을 찾아보면 그의 작품이 판매가 되고 있기도 하다.  탄광노동자 아무개씨는 은퇴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그의 작품이 미국의 국립 미국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는 영예를 누린 것이다.  폐는 먼지로 썩어들어갈 망정, 그가 그린 세상은 밝고 힘차다. 저 열차를 타고 탄광 노동자들은 광산과 집을 왕래하며 평생을 살아갔으리라.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1. 1. 14. 20:33

The College Application Essay, Revised Edition

http://www.amazon.com/College-Application-Essay-Revised/dp/0874477115/


찬홍이 대학 입학 신청 작업을 위해서 내가 참고 했던 책.  몇해전에 지홍이한테 사줬던 책이다. 이것 보고 참고해서 대학 가라고.  (지홍이를 내가 제대로 잡고 도와주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미안하다.)  지홍이는 혼자서 고생을 좀 했다. 찬홍이는 일단 내가 이것을 훑고, 자신감을 갖고 챙겨 줄 수 있었다.

컬리지보드에서 발행한 것이다. 제목은 [대학 입학 신청 에세이]이지만 미국의 대학 입학 준비를 위한 대략적인 안내가 내용의  1/3 쯤 차지한다. 이 책 한권 있으면 대략적인 스케줄까지 짤수 있다는 뜻이다. 3학년때 뭘 하고,4학년 올라가서 뭘 어떻게, 언제 준비하면 될지.

에세이에 대한 부분은 상식적인 미국식 글쓰기 형식을 정리 해 놓은 수준이다. 마지막 파트에 실제 대학 입학 신청 에세이 예제가 소개 되고 첨삭이나 평가를 통해서 실질적인 안내도 곁들이고 있다. 미국식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토플 영작]으로 알려진 형식을 따른다.

미국의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박사과정에 이를때까지 결국 원칙적으로 동일한 '규범'을 따르는 작문 교육을 받는다.  다섯개의 문단을 기본으로 하고, 1문단에 모든 것(2-3-4-5문단의 내용)을 때려 넣고 - 2,3,4,문단에 예시와 토론을 하고, 5문단에 다시한번 1문단을 다른 말로 정리하면서 한가지 아이디어를 덧붙여주면 거의 완벽한 모델이 된다. 결국 1문단의 첫문장에 글 전체의 '핵심'을 어떻게 넣는가로 승패가 판가름이 난다고도 볼수 있다. 단순무식의 표상이라 할 정도로 정형화된 형식이라서 유럽 지성들, 혹은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하는 사람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규범을 따라서 손해볼 것이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안내도 결국 이런 식이라서, 한번 정독하고, 대체로 자신감을 얻었다. SAT 작문도 이와 같은 규범을 따른다.

에세이 쓰기 작업을 마칠즈음에야 찬홍이의 '눈'이 떠진듯.  "그래서 엄마가 맨날 밥상머리에서 -- 그래서 뭐라는거야?  하고 물으셨군요..." 한다. 중언부언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구들이나 학생들에게, 들어주는 나는 머리가 복잡하고 다른 일로 너무 피곤하니까, "그래서 뭐? 용건이 뭐야?" 하고 대뜸 물을때가 종종 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다).  이럴때 내게 이야기하던 가족이나 학생은 상처입은 얼굴로, 뭔가 핵심을 전달하려고 애쓰는데...가족간의 대화가 이러면 안된다.  대화는 비즈니스가 아니니까.   하지만, 남에게 평가받기위한 글은 '비즈니스'처럼 작성하는 것이 좋다.  먼저 용건부터 말하고, 용건에 필요한 부가적인 설명 곁들이고, 그 용건이 자기에게 왜 중요한지 덧붙여주면 듣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앞뒤 판단하고 알아들을수가 있는 것이지.  미국식 글쓰기가 말하자면 그런 전형을 따른다.

내가 글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치자. 나는 하루에 수백편을 읽고 점수를 매겨야 한다고 치자. 남의 글이 재미있겠는가? 처음부터 핵심 정확히 전달해주고 부가 설명을 해줘야 내가 끝까지 읽거나 할 것이다. 끝도없이 이상한 소리만 나열하고, 핵심이 뭔지 모르겠는 글은 읽다가 던질것이다.  바로 그거다. 읽는 사람을 배려해주면, 평균 이상의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미국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그 학생을 돌보고 싶은 보호자가 한번쯤 정독하고 자기 점검을 할 만한 책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