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4. 8. 23:35

5301 Potomac Ave. NW
Washington D.C., DC 20016

내비게이터에 이 주소를 찍고 운전하여 가면, 잘 정돈된 중산층의 주택가가 한쪽에 있고, 맞은편은 수로와 포토맥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나온다.



구글맵에서 제공한 작은 이미지인데, 이 집앞에 늘 차를 대 놓고 산책을 시작한다.  하도 이 동네를 다녀서 어느집에 어떤 개가 사는지, 어느집 벚꽃은 언제 피는지, 뭐 그런 것까지 대충 파악하고 있다.  중산층 사람들의 지역이라 주민들도 친절한 편이다.

이 길이 Potomac Avenue 이다. 왼편엔 주택들. 오른편은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차를 이쯤에 세워놓고, (안전하다. 아무도 견인해가지 않는다. 차례대로 줄 지어 서면 되는데 늘 여유롭다...) 저기 오른쪽 구석의 숲길로 진입한다.

숲길을 내려 가면 아스팔트 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4마일쯤 가면 Bethesda 가 나온다. (Capital Crescent Trail 의 구간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아리조나 철교가 보인다. 검정색 다리. 그 검정색 다리의 야간 조명등이 낮에 켜지고 밤에는 꺼지고 그래서, 내가 여기저기 이메일질 해가지고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찬홍이는 이 다리를 '엄마의 다리'라고 부른다. (잠시 묵념 ㅎㅎㅎ) 그 다리를 건너서 0.5마일쯤 가면 Fletcher's Cove 가 나온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수로변을 걸어도 역시 Fletcher's Cove 가 나온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반대방향으로 가면 약, 10마일쯤 가면 Great Falls 가 나온다, 그 전에 Billy Goat Trail 입구를 지나치게 된다.



그 Fletcher's Cove 에서 2.5 마일 걸으면 (강변으로 걸어도 되고, 수로변으로 걸어도 된다. 두 길이 병행한다.) 조지타운 입구가 나온다.

조지타운 시내로 올라갈수도 있고, 아니면 내쳐서 하버로 향할수도 있다. 마음내키면 노선을 바꿀수도 있다.




참고로, 정확한 Fletcher's Cove 입구는 이곳의 Boathouse 주소인
4940 Canal Rd NW, Washington D.C., DC 20007

이곳이 되는데, 이 입구의 문제가 뭔가하면, 오전 오후 교통 통제가 이루어지므로 아예 이 방향으로 진입이 불가능한 시간대도 있고, 마찬가지로, 나왔을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시간대별로 차량 진행방향 통제를 하므로.  

설령 입구를 찾았다고 해도 진입 하기가 어렵거나, 위험하다. 차를 유턴하듯이 돌려서 좁다란 입구로 들어가야 하기도 하고, 나올때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서로간에 진퇴양난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을 어쩌다 방문하는 경우에는 어떻게든 이 입구로 들어와 보트하우스 주차장에 차를 대는 편이고.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은, 위에 소개된 입구쪽을 이용하는 편이다. (게다가 요즘 보트 하우스 입구쪽에 건설공사가 진행중이라 차 갖고 집입하기가 더욱 어수선하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4. 8. 18:09
체사피크&오하이오(C&O) 트레일의 일부 구간. 오른쪽에 수로가, 왼편에 포토맥강이 펼쳐진 길이다.
체사피크&오하이오(C&O) 트레일의 일부 구간. 오른쪽에 수로가, 왼편에 포토맥강이 펼쳐진 길이다.
1. 조지타운 수로변 사진.
1. 조지타운 수로변 사진.
2. 봄 한철 내내 똑같은 길에 나가 걸으면서 거위들이 부화하여 자라나는 것을 관찰한 적도 있다. 포토맥 강변 거위가족 사진.
2. 봄 한철 내내 똑같은 길에 나가 걸으면서 거위들이 부화하여 자라나는 것을 관찰한 적도 있다. 포토맥 강변 거위가족 사진.
3. Chesapeake & Ohio National Park 조지타운 입구.
3. Chesapeake & Ohio National Park 조지타운 입구.


[길따리 사색하는 이은미의 자연여행] 꽃피는 봄, 온 가족 함께 걸어요
북VA·워싱턴 DC 산책코스 5곳 어때요
기사 링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9797

꽃피는 계절, ‘걷기족’들의 계절이 돌아왔다. 인류가 두발로 서서, 손을 사용하여 ‘도구’를 만들게 된 이후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다고 문화인류학자들이나 진화론자들은 풀이한다. 수렵 채취 시절의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하루 평균 12마일을 걸어야 했다고 한다. 두 다리를 이용해 걸으면서 인간의 두뇌가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에, 우리의 두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열심히 걸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인지과학자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 버지니아, 워싱턴DC의 주위에는 포토맥강을 중심으로 수려한 풍광이 펼쳐져 있다. 도시 생활을 하는 걷기족들에게 이곳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라고도 할만하다. 짧게는 한두 시간, 넉넉하게는 서너 시간, 혹은 한나절 마음 편하게 걷기에 좋은 장소를 몇 군데 소개하고자 한다.

◇추천할만한 트레일 5 가지

▷내가 가장 자주 나가서 걷는 곳은 워싱턴DC의 플레처스 커브(Fletcher’s Cove)에서 조지타운 하버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대략 왕복 7마일쯤 되는 이곳을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다. 사실 이 구간은 체사피크&오하이오 내셔널 히스토릭 파크(Chesapeake & Ohio National Historic Park)의 일부인데, 멀리 오하이오까지 연결된 흙 길로 전체길이 184.5마일에 달하며 전 구간을 자전거나 도보로 통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조지타운 하버까지의 구간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조지타운 도심의 책방에 들러 잠시 쉬면서 독서를 하다가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곳의 왕복 20마일 구간을 온 가족이 함께 걸은 적도 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이어서, 괴롭고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곳의 빌리 고우트 트레일(Billy Goat Trail)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이다. 일부 바위 구간이 나오지만 위험하지 않아 어린이들도 좋아하는 트레일이다.

▷리버벤드 파크(Riverbend Park)에서 크레이트 폴스 파크(Great Falls Park)로 이어지는 강변 숲길은 왕복 4마일쯤 된다. 이 트레일의 특징은 폭포의 상류에 있어서인지 강이 호수처럼 고요하며, 강을 바로 발치에 두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고요한 정원 같아 사색하기에 좋다. 버지니아에서 그레이트 폴스 공원에 입장하려면 주차비를 내야 하지만, 리버벤드 파크는 입장료, 주차비가 무료다. 따라서 리버벤드 파크 트레일을 통해 그레이트 폴스로 진입할 경우 주차비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가볍게 한두 시간, 강변의 말랑말랑한 흙 길을 산책하기에는 이곳이 참 좋다.

▷워싱턴DC에서 메릴랜드의 베데스다를 통과하는 캐피털 크레센트 트레일(Capital Crescent Trail)도 추천 할만하다. DC의 조지타운 하버를 기점으로 한 이 초승달 모양의 트레일의 총 길이는 11마일. 이 트레일을 왕복하면 22마일을 걷는 셈이다. 나는 어느 날 여섯 시간쯤 걸려서 혼자 22마일을 걸은 적이 있다. 이곳의 특징은, 번화가인 조지타운 하버에서 시작해, 역시 아름다운 도시 베데스다를 통과한다는 것. 특히나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베데스다의 벚꽃 군락지를 통과하게 된다. 트레일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벚꽃의 감동은 평생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숲과 도시가 어우러진 트레일이라서 중간에 카페에 들러서 음료수 한잔으로 피로를 달래고 마저 걷기에도 좋다.

▷페어팩스의 버크 레이크(Burke Lake) 트레일은 인근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장소다. 트레일 전체 길이는 4.7마일. 걸음이 느린 사람이라도 호수를 끼고 한 시간 반 정도 쉬엄쉬엄 산책을 할 수 있다.

▷터키 런 파크(Turkey Run Park)는 왕복 4마일 거리의 ‘비밀의 화원’ 같은 곳이다. 발이 빠른 사람이라면 한 시간에도 왕복이 가능하고, 쉬엄쉬엄 사색하며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한데, 숲이 너무나 우거져서 여성 혼자 가기에는 어쩐지 불안할 수도 있겠다. 가족들이나 친구들 두 세 명이 함께 가실 것을 권한다.

▷워싱턴DC 인근의 포토맥강은 양안 모두 자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족이나 걷기족이 걸어서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포토맥 강변 어디에서 출발해도 우리는 온종일 강바람을 쐬면서 실컷 걸을 수도 있고 혹은 일부 구간만 산책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트레일 산책을 나갈 때의 주의사항과 요령

▷강변이나 호숫가의 숲길로 산책을 나갈 때는 편안한 운동화에, 간편한 운동 복장, 그리고 썬블락 크림을 바르고 모자, 장갑 등을 착용하면 좋다. 휴대전화도 챙기고 가족에게 어디에 가는지 정확히 고지하면 비상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동차에는 여분의 물을 항상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자그마한 배낭에 물, 간식을 챙겨서, 걷다가 목마르거나 허기 질 때 요기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배낭이 귀찮다면 지퍼가 달린 옷의 주머니에 별도로 귀중품을 보관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은행카드를 재킷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숲에서 잃어버린 적도 있다.

▷산책을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트레일 산책 일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나는 산책 할 때마다 트레일 구간을 적고, 소요시간, 거리를 간략하게 메모하는 편이다. 그러면 한 달 단위로 내가 얼마나 걸었나 통계도 낼 수 있고, 걷기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카메라로 풍경 사진을 찍고, 가끔 만나는 신기한 새들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블로그에 소개하기도 한다.

◇걷기 관련 서적

걷기와 관련된 책으로 60 Hikes within 60 miles (2nd Ed.) Washington DC including suburban and outlying areas of Maryland and Virginia 을 추천할 만하다. 한 때 이 책을 친구 삼아서 열심히 찾아 다녔었다. 한국어 번역서도 나온 빌 브라이슨의 A Walk in the Woods (나를 부르는 숲)’ 역시 걷기족들을 유쾌하게 해주는 필독서라고 할만하다.

◇관련 웹사이트 링크

이 글에 소개된 트레일들을 살펴볼 수 있는 웹 페이지들

http://www.nps.gov/choh/index.htm

http://www.fletcherscove.com/

http://www.midatlantichikes.com/id163.html

http://www.fairfaxcounty.gov/parks/burkelake/burketrails.htm

http://www.cctrail.org/

http://www.fairfaxcounty.gov/parks/riverbend/trails.htm

http://www.nps.gov/gwmp/turkey-run-park.htm



나는 위크엔드 한면을 상상하면서 글을 써서 송고를 했는데, 신문을 받아 보니 두면에 걸쳐서 큼지막하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사진이 뭐가 적당할지 몰라서 -- 골라서 쓰시라고 여러장 보냈는데, 그것들을 대부분 면에 수용을 하면서 면을 두배로 늘려 놓았다.  (놀라워라)

자전거가 들어간 표지 사진. 내가 꽤 좋아하는 사진인데, 그거 보내면서 '걷기 기사'에 자전거가 좀 안맞지...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것이 이렇게 크게 편집이 될 줄은 몰랐다.  조지타운 사진과 국립공원 안내판 사진은 며칠전에 찍은 것이고, 강변의 봄 사진들은 전에 (동일한 계절에) 찍었던 것들이다.

내가 아끼는, 내가 찍은 사진들과 내 글이 신문에 함께 실리니 기분이 좋다. 난 뭐든지 내손으로 뚝딱거리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내가 너무 좋아 탄성을 지르며 사랑하는 것들을 이렇게 신문 매체에 실어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마치 연인을 친구들에게 공개하는 듯한 기분.  헤헤. 나의 이 헛되게 걸어 돌아다니는 취향은 우리 할아버지의 유전자일 것이다.  면 편집을 내가 상상한 것 보다 더 잘 해주셔서 편집자께도 감사한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8. 08:07





수업 마치고 일찌감치 퇴근하여, 옷을 갈아 입고 Riverbend Park 로 향했다. 도착하니 4시 30분.  Great Falls 전망대까지 가서 폭포 소리 들으면서 앉아서 쉬다가 쉬엄쉬엄 슬슬 걸어서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니 오후 6시. 가뿐한 소풍이다.

약 2마일이 채 못되는 리버밴드 트레일 (리버밴드 파트에서 그레이트 폴스까지 이어지는 길) 길 양편에 이 푸른 꽃들이 정원에 심어놓은 꽃처럼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이 인근 지역은 부자동네이다. 말을 키우는 대 저택도 많이 보인다. 그래서 가끔 말을 타고 산책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저기 말타고 가는 아줌니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줌니가 말을 세우고 말을 걸길래, 말을 칭찬해주고 그리고 조랑조랑 이야기를 했다), 아줌니가 이 파란꽃이 Bluebell 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자기는 꿈꾸는것 같다고.  뭐, 아줌니는 말타고 산책하시는 폼이 동화책속에 나오는 요정 여왕 같아 보였다.  아줌니는 아마도, 너무너무 아름다운 풍경속에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말을 걸고 싶었을 것이다. 그 느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혼자 터벅터벅 걸어 갔지만, 이렇게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던가, 말을 붙이면 말을 하면서, 심심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천지에 피어나는 새싹들과 꽃들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으니까.








이 흰꽃은 내가 아직 이름을 못 찾아 냈다. 사진만 보면 크기가 짐작이 안되므로 내 손을 출연시켰다. 참 깨알만하게 작은 꽃들인데, 눈물겹게 예쁘더라.





Great Falls 는 가서 보면 그 위용이 느껴지지만, 사진을 찍으면 참 초라하다. 폭포가 넓게 퍼져있고, 우리가 보는 위치가 폭포보다 높은 곳이라서 그러할 것이다. 폭포 아래에서 본다면 달라 보일것이다.






봄바람이 따뜻하고 평온했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4. 6. 18:57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9343

천재지변을 겪는 와중에 일본이 보인 ‘독도’ 관련 망발에 대해 한국정부나 한국인들의 감정은 매우 복잡해 보인다. 나 역시 매우 착잡한 심정이다. 그 착잡한 심정으로 미국에서 발견되는 지도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얼마 전, 스미소니언 아시아 미술 박물관인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와 자연사 박물관(Smithsonian Natural History Museum)을 둘러보았다. 이 두 스미소니언 계열 박물관에서 동일한 지도에 각기 지명을 다르게 표기한 것을 확인했다.

현재 한국의 동해바다는 ‘동해(East Sea)’라고 한국 측의 지도에 표기가 되거나, 혹은 ‘일본해(Sea of Japan)’로 일본 측의 지도에 표기가 되고 있다. ‘동해인가? 일본해인가?’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적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이번에 문제가 된 ‘독도’ 역시 이 동해바다 문제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은 이런 외교적 분쟁이 될 만한 지역의 표기를 어떤 식으로 하고 있을까? 나는 세 가지 각기 다른 표기 방법을 확인했다.

첫째, ‘일본해(Sea of Japan)’. 프리어 갤러리의 아시아 불교 관련 전시장에서는 불교의 전파 내용을 소개하는 안내판에서 Sea of Japan이라고 표기했다. 이런 표기는 역시 이곳의 일본 병풍 전시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둘째, ‘동해(East Sea)’. 프리어 갤러리의 한국 도자기 전시장의 안내판에는 동일한 바다에 대하여 East Sea라고 표기했다. 한국 관련 전시장이라서 표기에 신경을 쓴 것일까?

셋째, 표기 생략.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한국관에도 안내판이 있고,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 지도에는 바다에 대한 표기를 아예 생략했다.

정리해보면, 프리어 갤러리에서는 아시아 관련 안내판이나 일본 관련 안내판에는 ‘일본해’로 표기하고, 오직 한국 전시장에서만 ‘동해’로 표기했는데, 결국 이 박물관에서는 일본해라고 두 번 표기하고, 동해라고는 한 번 표기했다. 자연사박물관의 한국관은, 그곳이 한국관 임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바다 이름 표기를 생략하고 지나갔다.

프리어 갤러리는 일견 공평한 듯 해 보이지만, 그들이 한국관이 아닌 곳에서는 일괄적으로 ‘일본해’로 표기를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자연사 박물관의 한국관에서는 아예 ‘동해(East Sea)’라고도 표기도 안 한 것 역시 마음에 걸린다. 지도를 제작할 때 정보나 자료를 제공한 한국 측의 관련 단체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인가? 여러 가지 의문점과 생각들이 교차했다.

미국 내에서 동해를 Sea of Japan이라고 표기한 지도는 이곳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일대 출판부 같은 유수의 대학 출판사가 제작한 책에도 Sea of Japan이라는 표기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현재 미국에 사는 나는 이런 문제들을 내가 개인 자격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일단은 자료 수집을 위하여 이러한 지도가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어 모아두고 있다. 그런데, 어떤 방법이 체계적인 문제 해결 방법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 개인자격으로 사진파일들을 모두 모아서 박물관 책임자들에게 메일이나 서신을 띄우면 어떨까? 이런 고민도 해보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미국에서 살다가 혹시 어딘가에서 이런 지도가 발견되면 상세하게 사진을 찍고 알려달라는 부탁도 한다.

한일간의 동해를 둘러싼 영토 관련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고, 정부가 뚜렷한 원칙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민간차원의 노력도 애매해지기 십상이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내가 우리의 바다 ‘동해’와 ‘독도’를 위해 개인 차원에서 무엇을 실천할 수 있는지 많은 전문가에게 질문을 하고 조언을 듣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는 우리 개개인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체계적인 대응 방법을 의논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차분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3. 12:11



제퍼슨 기념관  정면, 계단 앞에서 어느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은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추운 날씨 때문에 온몸을 모포로 감싸고 계셨다.
누군가가 노인의 휠체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엉거주춤 서서 노인의 귀에 뭐라고 속삭이더니 곧바로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노인은 휠체어에 앉은채로 손을 약간 움직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으셨다. 노인의 시선을 따라 나도 눈길을 돌리니, 계단 위로 노인의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까,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계시고, 그를 모시고 온 가족들은 모처럼 소풍 나온 길에 제퍼슨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벚꽃보다 환하게 웃으시면서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괜챦으니 안심하고 구경하고 오너라) 이런 메시지처럼 보였다.

가족에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할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연신 뒤를 돌아보는 댓명의 사람들도 선량해 보였고, 쾌활해 보였다. 

인생은 짧다. 그리고 모든 것은 허망하게 끝 날 것이다.  하지만, 봄 날 꽃이 피어나고, 우리가 이따금 꽃밭에서 노는 일은 허망한 삶속에서 전광석화같은 기쁨으로 각인 될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3. 11:44




벚꽃 인파를 뒤로하고, 내셔널 몰에 도착.
(전에 스포츠 오쏘리티에서 겨울상품 떨이 판매 할때 두켤레에 2달러 주고 산 등산용 장갑을 요즘 아주 요긴하게 잘 써먹고 있다. 손바닥에 고무 무늬도 있어서 물건 잡을때 미끄럽지도 않고, 따뜻하고, 편안하고 아주 좋다.)


내가 아이들 데리고 어디든지 다닌다고 하면, 내 학생들이나 주위 친구들은 놀라는 편이다. "애들이 머리 크면 엄마랑 절대 안돌아 다니려고 그러는데 어떻게 그렇게 항상 함께 다니는건가?" 이런 질문들이다.

내가 원래 독재자 엄마라서 말 안들으면 '죽음'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고 있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다닐때의 나의 전략은, 밖에 나갔을때, 아이들을 기쁘게 해줄만한 '먹을것'을 틈틈이 사 먹인다는 것이다.  우리집 애들은 내가 사주는 주전부리 얻어먹는 맛에 나를 따라다니다가, 마침내는 외출 그 자체에 대해서 기쁘게 받아들이는 행동 패턴을 갖게 되었다.  (애들이 순진한거지.).  간단하다, "찬홍아, 어디가서 뭐 사줄게 가자" 이러면 핫도그 하나 얻어먹으려고 천리길도 마다않고 가는것이다. 하하하

나는, 가방에 가지고 간 바나나와 두유를 먹었다. 난 핫도그 먹을줄 모른다. 핫도그는 내게 길거리에 떨어진 막대기와 같다. 내게는 음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욕망도 못 느낀다. 참 희안하다.) 나는 내가 왜 그것을 못먹는지 모르는채로, 그러나 절대 입에 넣지 않는다.



핫도그와 레모네이드 한잔에 입이 찢어진 찬홍이.
뒤에 자동차 타이어 모양의 건물이 Hirshhorn Museum of Modern Art 이다.


마침 소나기가 쏟아지길래, 잽싸게 허시혼 뮤지엄으로 뛰어 들어가서 미술관 구경을 했다.  이것은 Minimalist 작가 Sandback 의 작품  http://americanart.tistory.com/870  페이지에 지난해 12월에 적은 작품 소개가 들어있다. 그때는 박선생이 찬조 출연을 했는데, 오늘은 그자리에 찬삐가 서있다.



아침부터 목이 아프다던 찬홍이는 갑작스럽게 열이 올라서, 미술관 3층 소파에서 30분 가량 잠을 잤다. 나는 혼자서 미술관 작품 구경을 했다. 사진도 찍고, 새로 발견한 것들도 많이 있다. 밖에 소나기가 그치고 햇살이 쨍하게 나길래 잠 든 찬홍이를 깨워가지고 나왔다.



소나기가 내린 후 오후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각. 다시 Tidal Basin 의 벚꽃동산
역시 쨍한 햇살 속이라 꽃이 더욱 눈이 부시다.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도 보기 좋았다. 천국 같았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 (우리 엄니도 모시고 오면 참 좋을텐데...)



이제 벚꽃 지대를 빠져나와 강변을 지나 집으로 가야 하는 지점.
바람이 거칠게 불어 머리가 미친듯이 날리고, 벚꽃들도 흩날렸다.


그리고,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머리위로 돌맹이같은 것들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빗방울인줄 알았는데, 그것들이 얼굴에 스칠때는 얼굴이 얼얼하게 아팠다.  왕소금 알갱이 같은 것들이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리고 바닥에도 흩어졌다. 아이구야, 내 평생에 우박을 제대로 맞아보긴 처음이었다. 우리들은 우산도 모자도 없었다. 미친듯이 달려가지고 다리 밑에서 우박을 피했다.

우박이 멈추는듯 하여 다시 다리를 빠져나와 조지타운으로 향하는데, 그 바람 쌩쌩부는 케네디센터앞에서부터는 막 장대비같은 소나기가 쏟아지는거다.  나는 비 맞아도 그만인데, 감기 때문에 열이 오르는 찬삐를 비를 마냥 맞힐수가 없어서 주변을 살피다가 워터게이트 빌딩에 불이 켜진 곳을 발견했다. 마침 1층 가로변 카페였다.  그래서 거기서 몸을 녹히고 뜨거운 차를 마시며 해가 다시 나기를 기다렸다.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길건너 케네디센터가 내다보인다.




따뜻한 카페 실내. 카페 이름은 Cup'a Cup'a 라는 곳이다. 하도 고마워서 이름을 밝혀둔다.
찬홍이와 내가 쏟아지는 비를 피해서 몸을 말리고 뜨거운 차를 마실수 있었던 곳.
찬홍이는 아주 괴로운 표정이었지만, 나는 찬홍이를 달래주었다,
"찬홍아, 소풍을 나가서 비도 맞고, 우박도 맞고, 이렇게 달달 떨고 다니다가 찻집도 발견하고, 이런 일도 나중에 돌아보면 무척 재밌고 웃기고 그렇다.  우리가 이 비가 아니면 이 유명한 워터게이트 빌딩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 오겠니.  두고두고 오늘을 잊지 못할거다." 

사진속에, 저쪽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람들도 나처럼 비를 피해서 뛰어 들어온 분들이다.


집에도 무사히 도착했고, 찬홍이는 타이레놀을 먹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갔다 와서, 뜨거운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였다.  물론, 내게는 여러가지 근심거리들이 널려있다.  그래서, 요즘 근심거리에 치어 지내다가 내가 생각해낸것이 뭔가하면, 순간순간 아름다운 시간들을 만들어가면서 이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 나간다는 것이다.  비도, 우박도, 나의 추억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장치일 뿐이다.  오늘 벚꽃 구경은 날이 흐려서, 소나기가 내려서, 우박이 쏟아져서, 내가 비에 생쥐처럼 젖어서, 그래서 더욱 근사했다. 내 삶 역시, 벚꽃구경처럼 살아내고 싶은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3. 11:10


조지타운에서 강변을 끼고 케네디 센터를 지나 가다보면, 링컨 메모리얼 직전에 나타나는 벚꽃 동산.



포토맥 강변의 벚꽃 군락지.
내가 이 장면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벚꽃과 수양버드나무가 함께 어루러져 있어서이다.
수양버드나무 역시 연두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비록 고운 꽃처럼 보이지 않아서 꽃을 알아보는 이도 많지 않지만.
수채화같은 수양버들이 맘메 들었다.




빗물에 쓸려 내려온 쓰러진 나무들이 강변에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아무리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꽃은 때가 되면 피어난다.
고마운 일이다.




활짝핀 벚꽃동산에 검은 잠바를 입은 찬홍이의 표정이, 참 기묘하게 잘 어울린다. 제목은 '에뜨랑제' 정도가 되면 좋겠다.





FDR (프레데릭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에 설치된 Georg Segal 의 조각작품, 제목은 Breadline. 미국 경제 암흑기에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 서있는 서민들의 모습이다.  그 뒤에서 새로운 풍경을 연출하는 미국인들.

뒤에 모자를 쓴 남자는 스마트폰을 갖고 작동하는 시늉을 했다. 그의 친구가 "야, 포즈 좀 잘 잡아봐라"하고 핀잔을 주자, "나도 의도를 갖고 이 자세를 취한거라구. 오늘날의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으려고 한거라구!" 하고 응수를 했다. 모자쓴 남자에게 한표.



우리 할아버지 같은 농부 아저씨의 손을 잡고 나도 기념 사진.




물에 비치는 워싱턴 마뉴먼트. 이 흰 기념탑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제퍼슨 기념관
건물 안에 서있는 제퍼슨의 검은 실루엣이 정확히 잡혔다.



제퍼슨 기념관 앞, 벚꽃축제 행사장 앞에서 '비버' 차림의 사람이 사람들을 안아주거나 기념사진을 찍도록 해 주었다. 이 비버를 안아보니 무척 포근하고 정감이 갔다.




자, 내셔널 몰에 도착.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3. 10:53


날씨가 을씨년 스럽고 추웠다.  하지만 어제 찬홍이와 '워킹'을 나가기로 굳은 약속을 했으므로, 옷을 단단히 입고 집을 나섰다.  (찬홍이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군살을 쏙 빼고, 전의 날씬한 몸매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서, 내가 워킹 나가자고 하면 군소리 없이 따라 나선다. 

Fletcher's Cove 로 가는 숲길에서 우리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보고, 달리기 하던 어떤 아시안 신사가 "내가 사진 찍어줄까?"  자원 봉사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자기가 찍은 사진이 맘에 안든다며 여러장을 찍어주고는 또다시 달려서 가버렸다.  얼핏 영어 액센트가 일본계같았는데, 어쩌면 한국계일지도 모른다.  고마운 신사분이다.

조지타운 입구의 상징.  성벽 낭떠러지 앞에서 기념사진.




조지타운 입구, 찬홍이가 좋아하는 풍경속에서 기념사진.  수로에 물이 가득. 물빛이 참 예뻤다. 하늘은 흐리고 물빛은 짙은 초록빛이었다. 바다 같았다.



조지타운 하버.   사실, 조지타운의 스타벅스에서 각자 베이글과 뜨거운 차를 마신 후라서 날씨는 추웠지만 몸은 후끈했다.  찬홍이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표정이 벌써 피곤해보인다.  저기 보이는 둥근 워터게이트 건물을 지나, 케네디 센터를 지나 계속하면 링컨 메모리얼이 나오고, 우리는 내셔널 몰 지역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 벚꽃축제의 메카, Tidal Basin 이 있다.




Thomson's Boathouse 앞.
뒤에 보이는 건물이 스웨덴 대사관 건물. 다리 뒤로 보이는 것이 수로.
바로 이 지점이 포토맥강에서 수로가 나눠지는 분기점이다. 여기서부터 강과 수로가 각자 제 갈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로 시작 포인트. 0(zero) 마일 지점.



차를 세워두는 포토맥 애비뉴에서 이곳까지 한시간.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3. 06:51

벚나무 군락지역, 포토맥강변.
휘늘어진 벚꽃나무를 이곳에서는 Weeping Cherry 라고 부른다.
수양버드나무에 벚꽃핀것처럼 휘늘어진다.



  1. 아침 아홉시에 포토맥 애비뉴에서 출발 --> 9시 45분, 조지타운 하버 스타벅스에서 베이글과 차를 마시면서 쉬고
  2. 케네디 센터를 지나, 링컨 메모리얼 앞을 지나 강변의 벚꽃 숲을 걷다가,  Tidal Basin, FDR Memorial 도착 12시
  3. Tidal Basin 한바퀴 돌고, National Mall 로 직행, Hirshhorn Museum 앞에서 찬홍이에게 핫도그를 하나 사 먹임.
  4. Hirshhorm Museum에서 미술 감상을 하고 두시에 출발
  5. 곧바로 조지타운으로 이동하던중 중간에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를 길에서 뒤집어 쓰고
  6. 워터게이트 건물 커피숍에서 비를 피하면서 뜨거운 커피 한잔.
  7. 해가 쨍 나길래 조지타운을 지나 포토맥 애비뉴에 도착. 오후 5시
  8. 집에 5시 20분 도착.

전체적으로 걸은  거리 대략 14마일.

날씨는 전체적으로 흐렸다 개었다, 바람불고, 비가 후두둑 내리고, 결국 우박도 쏟아지고, 다시 반짝개이는. 그래서 하루에 4계절을 모두 경험한 듯한.  그래서 온몸이 나른하고 개운한.


(씻고, 나갔다 와서, 나중에 ~~  )

Posted by Lee Eunmee

Swing, 1969, Acrylic and aluminium on canvas

Photo by Lee, Eunmee, 3rd Floor,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January 14, 2011


스미소니안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3층에 걸려있는 쌤 길리엄의 '그네 (Swing, 1969).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은 여러점의 길리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되고 있는 것은 이 작품 하나, 그리고 Luce Foundation Center (그림창고같은 전시장) 구석에 평면적인 액자 작품이 하나 걸려있다.

Corcoran 미술관에서도 그러하고, 요즘 진행되는 필립스 콜렉션의 전시회에서도 그렇고, 미술관들은 길리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커튼 널어놓은 것 같은 작품 한점과 이런 작품들의 평면 모습을 보여주는 액자 작품을 형제처럼 걸어놓는 편이다.  그리고 그 외의 평면적인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 이다.  그는 60년대외 70년대에 이렇게 '걸어 놓는 캔바스' 작업에 열중하고, 그 이후에는 꼴라쥬를 위시한 다양한 작업을 했는데, 미술관에서는 그의 '널어 놓는 설치 미술' 쪽에 애정을 보내고 있는듯 하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이 '널어 놓는 캔바스'가 그의 독특하고, 새시대를 여는 발상이었고, 나머지는 남들도 다 하는 것들이니까 그럴 것이다.

아래는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의 쌤길리엄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 풍경이다.

사실 이 사진을 찍었던 날은, 나의 관심이 백남준의 작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백남준 보러 갔다가, 간김에 또 한바퀴 둘러보던 식이었다. (그래서 결국 온종일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왼쪽 구석에 쌤길리엄의 '그네'가 매달려 있다. 전시실 중앙에 백남준의 'Zen' 이라는 텔레비전 작품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 백남준씨 작품을 보고 지나치면서, "테레비가 고장이 났나?" 뭐 이러고 말았었다.  그런데 바로 이 '한줄 그은듯한 선' 그것이 백남준씨가 의도한 'zen'이었다.
창문이 있고, 하얀 석고상같은 여자가 창밖을 내다보는 작품이 Georg Segal의 조각 작품이고, 오른편에 Rauchenberg 의 콜라쥬 작품이 두점 보인다.






 




3층 전시실 복도. 내가 사진을 찍는 위치가 백남준의 Megatron/Matrix 전시실 입구 쯤이 될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왼편 전시장에 백남준의 방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20세기 비디오아트 기획전이 진행중이다. (현재에도 진행중).  쌤길리엄 작품 외에 전시장 전체를 담아보는 이유는, 이것이 그가 속한 미술의 어떤 시대이고, 그리고 그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예술가들의 일생을 단 몇줄로 요약해보면, 대개는 그의 '대표작'이 한두가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 대표작이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지. 삶의 어떤 시간속에 그 어떤 순간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그것만을 기억할 뿐이지.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잊혀지고 말아.  쌤 길리엄은 현재 노인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할수 있지.  그런데, 아직 그의 삶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획기적인 어떤 변화가 없는한, 결국 그는 벽에 걸어놓은 커튼같은 캔바스작품,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같은 설치미술작품 이 두가지로 기억되고 말것이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삶을 기억할때는, 그의 '종말'이 아니라, 그가 가장 빛나던 순간을 기억해주는 것이 좋을것 같다.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어 시체되고 벌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가장 빛나던 장면 그런 것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술가를 기억할때는 그의 마스터피스를 기억해주니까.

종말이 아닌, 삶의 장면들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삶은 다른 각도에서 무척 신기로와 보일것이다. The best is yet to come. 내 인생에 최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이런 백치같은 optimism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Chrysler Museum, VA, November 29, 2009


버지니아 남단 Norfolk 라는 해안 도시에 Chrysler Museum이 있다. 이 박물관 중앙 천장을 장식한 쌤 길리엄의 작품. Norfolk Keels (1998).  크라이슬러 뮤지엄 앞에는 호수가 있어서, 석양에 호수가 반짝거리면 미술관 벽과 천장에 물결 그림자가 일렁인다. 환상적인 장면이다. 

그 천장을 장식한 쌤길리엄의 작품.  (관객중에 안경끼고 삐딱하게 서 있는 우리 박선생.) 


그 당시에도 이 작품이 참 인상적이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내가 쌤 길리엄을 직접 만나서 악수를 하게 되리라고는 그때는 상상도 못했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2. 03:41




해마다 봄에, 대지에 초록 물이 들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광경. 해마다 동일한 사진을 찍고 좋아한다.


 



지난 며칠 비가 내려서 강에 물이 잔뜩 불었다. 수로에도 물이 가득.  Fletcher's Cove 의 벚꽃이 흐린날 더욱 희게 빛났다. 수로 둑에서 Fletcher's Cove 의 배 빌려주는 간이 매점을 내려다볼때, 고향집을 멀리서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정겹다.





수로에 가득찬 물




조지타운 입구. 찬홍이는 이 포인트를 참 좋아한다.


 

조지타운에서 수로가 시작되는 점. 그러니까 포토맥강에서 수로가 가지쳐서 갈라지는 분기점에 스웨덴 대사관 건물이 있다. 대사관 건물 앞에는 커다란 해시계가 있다.

스웨덴 대사관은 일반인에게 매일 전시장을 개장한다. 토, 일요일까지.  내일 특별전시를 여는 까닭에 오늘 주 전시장은 닫혀있었지만, 일반 전시장을 그대로 열려있어서, 스웨덴 홍보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스웨덴의 학교 풍경
 



우리들이 어릴때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도 스웨덴 작가의 것이다.





대사관 전시장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포토맥강





전시장 내부, 아랫층에 식당도 있다.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다.







흐리고 바람이 불고 가끔 빗방울도 후두둑 떨어졌다. 강물이 일렁였다. 쌀쌀하지만 그래도 걷기에 좋은 4월의 첫날이었다.






이제 4월이니까, 본격적으로 워킹을 해야...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1. 4. 1. 18:48



2011년 3월 31일 오후

벚꽃축제 기간인데 날이 쌀쌀하고 비가 와서 워싱턴 벚꽃 축제 행사도 썰렁할것 같다.  학교에서 일찌감치 퇴근을 하여 차를 West Falls Church 메트로역에 세워놓고, 메트로를 타고 필립스 콜렉션에 갔다.  메트로센터에서 레드라인으로 갈아타고 두정거장 가면 듀폰 써클.  역에서 나와서 Q Street 쪽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필립스 콜렉션이 나온다.

자목련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비가 와서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쌤 길리엄씨는 큐레이터가 1962년에 필립스 콜렉션에 처음 왔을때 뭐가 인상적이었는가 물으니까, "Magnolia...outside..."라고 대답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온것도 봄날이었나보다. 목련이 피어나던 봄날, 딸아이와 이곳에 왔었다고.





필립스 콜렉션은 올해 개과 90주년을 맞아서 실내를 새로 정리한듯 하다. 바닥이나 벽 보수 공사도 한 듯, 실내에서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나서 나로서는 괴로웠다. 실내는 산뜻해져서 좋았는데, 나는 그 미세한 냄새때문에 멀미가 나서, 한시간 가까이 카페의 소파에 죽은듯이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필립스 콜렉션에 도착했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늘 놀러오고 싶은 곳이니까.



요즘은 Philip Guston 특별전, 그리고 영국의 표현주의 작가 Hodkin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 물론, Sam Gilliam 의 Flour Mill 2011 도 선보이고 있고.

그리고 전체적으로 전시물들을 대폭적으로 바꾸고 옮기고 그랬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창고로 옮긴듯하고 그대신에 새로운 작가의 작품들이 나와 있다. 나로서는 특히나 Twatchman 의 작품들을 여러점 새로 볼수 있어서 기뻤다.  필립스 콜렉션도 계절이 바뀔때마다 한번씩 가 주어야 한다.







필립스 콜렉션은 매주 목요일 저녁 늦게까지 (8:30 p.m.) 개장을 한다. 나는 여덟시쯤 전시장을 빠져나와 메트로 역으로 향했다. 듀폰 써클 메트로 역 입구에서 그냥 사진을 몇장 찍었다.  나는 밤에 돌아다니는 일이 별로 없다. 밤에 나가는 예로는, 오후에 조지타운에 산책 나갔다가 황혼이 지는 것을 보고 돌아올때, 그때가 밤이다.  혹은 어쩌다 타이슨스몰에 나갈때, 그때가 밤인 경우가 있다. 그 외에는 밤에 나갈 일도 없고, 나가지도 않는다. 집구석에서도 얼마든지 재미나게 혼자서 놀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어쩌다 밤에 시내 구경을 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도시의 야경이 내게는 아주 낯선 전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흰꽃은 밤에 봐야 더 이쁘지...  체리 축제 끝나기 전에 야간 축제 행사에 한번 가보고 싶다. 밤에 피는 흰꽃을 보고 싶어서.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Phillips Collection (1st Floor), Washington D.C. March 31, 2011


아주 작은 소품이다. 대략 가로 25 센티 세로 12 센치쯤 되려나? 실물 크기의 죽은 새 그림이다.  나뭇잎에 둘러싸인 죽은 새 한마리가 전부인 그림이다. 서리가 내린 듯 해 보이는 화면. 황금 새.  알버트 핑크햄 라이더의 그림이 터치가 거칠고 전체적이로 투박한 편인데, 이 그림속의 새 그림은 단순한 터치 속에서도 세밀한 묘사가 되었다.  그 점이 좀 특이했다. (평소에 내가 익히 보아오던 그의 그림 스타일과 차이가 났다.)


이 죽은새 그림을 본 순간 D.H. Lawrence 의 Self-pity 라는 시가 떠올랐다.

Self-Pity

  H.D.Lawrence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
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자기 연민

나는 들짐승이 자기 연민에 빠진것을 본적이 없다
작은새가 얼어죽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질때
그 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슬퍼해본적도 없었으리라

(몇해전에 번역 해 봤던 시)

동일한 어떤 정서를 작가는 글을 통해, 화가는 그림을 통해 전달하는 것 같다. 이 그림과 이 시는 쌍둥이처럼, 똑같다 (내게는.)  그래서, 이런 그림을 보거나, 시를 대하게 되면 "우리가 저 작은 새와 다를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내가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잡다한 것들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뭐 그다지 서러울것이 있단 말인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번 눈감고 이 세상 떠나면, 내 육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말보로 사나이처럼 쿨~ 하게 아쉽고 서러운 것들을 짐짓 외면하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2011년 3월 31일 (목) 오루 6시 30분.  필립스 콜렉션 2층 계단 앞에서 Sam Gilliam 과 큐레이터의 대담이 있었다.  관객들은 그들 앞에 둘러서서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질문 답변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작가가 정면으로 보이는 맨 앞의 마룻바닥에 편히 (퍼질러) 앉아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사진 촬영을 금지 시켰기 때문에 아무도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도, 사진을 찍지 못했으므로, 하는수 없이 갖고 있던 공책에 메모를 해 가면서 간단히 그 장면을 스케치를 하였다.  내가 스케치한 뒷 배경에 색칠한 것이 Flour Mill 이라는 그의 설치 작품이다.


아래에 내가 어렵사리 사진 한장을 찍을수 있었다.  Sam Gilliam 과 그의 뒷편의 계단과 계단 너머의 설치 작품.  쌤 길리엄의 설명으로는 계단 역시 작품에 포함되는 구도라고 했다. 계단이 장애물이 아니고, 계단과 설치 작품이 어우러지는 것이 최종적인 이 작품의 목표인듯 했다. (방앗간에서 밀가루를 빻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아이들이 방바닥에 앉거나 누운채로 어른의 이야기를 듣듯) 편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펜으로 메모를 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했는데, 그의 양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가로줄무늬 그의 양말은 그와 동시대에 워싱턴에서 함께 활약했던 (그들은 모두 Washington Color Painting School 멤버들이다) Gene Davis 의 작품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나는 Gene Davis Socks 라고 메모를 해 두었다.

Phillips Collection 에서 인상적인 작품이 뭐냐고 큐레이터가 물었을때, 1962년에 전시장에서 본 Braque (브라크)의 'Shower (소나기)'라고 답했다.  브라크의 소나기는, 내가 브라크 작품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인데!  그래서 나도 얼른 "It's my favorite, too!" 라고 메모 해 두었다.

필립스 콜렉션에 걸려있던 브라크 작품중에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사진기에 담아놓은 것이 바로 그 '소나기'라는 작품인데... 대개 브라크는 피카소와 쌍벽을 이루는 큐비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브라크의 작품중에 가장 정감이 가는 것은 큐비즘에서 약간 비껴있는 그 '소나기'라는 작품이다. 쌤 길리엄과 나의 정서가 어디쯤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듯 하다.  (그래서 내가 그를 찾아 간 것이겠지만...)




그래서, 갤러리 토크가 끝나고 작가가 의자에 앉아있을때, 사람들이 다가가서 인사를 하기도 했는데, 나도 그에게 다가가서 내가 메모하고 스케치 한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1933년에 태어났고, 한국에 있는 내 엄마는 당신보다 몇년 늦게 태어났다. 우리 엄마는 아마츄어 화가이다. 나는 당신의 작품들을 유수의 미술관에서 모두 살펴 보았으며, 그래서 오늘도 당신을 보기위해서 찾아 왔다. 내게는 아주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당신의 입에서 쟁쟁한 화가들에 대한 회상이 나올때, 나는 감동받았다. 내가 미술책에서 본 사람들을 당신은 생생하게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는 내 공책에 싸인을 해주면서, "엄마가 한국의 어디에 계시는가?" 물었다.  나는 '서울'이라고 말했다 (일산이지만). 쌤 길리엄의 이력중에는 고교 졸업후에 군복무를 한 경력이 있다. 아마도 군복무 경력으로 대학때 학비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혹시 한국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아무튼 쌤 길리엄은 엄마가 한국의 어디에 계시는지 재차 물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쌤 길리엄의 싸인을 내가 스케치 한 것 위에 받았다. "우리 엄마에게 이것을 보여드리겠다"고 그에게 말해줬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당신 사진 한장 찍으면 안될까? Would you mind if I take a picture of you?"

"Oh, sure!  Go ahead!"

그는 사람좋게 허허 웃어주었다. 아, 참 마음좋은 신사 할아버지셨다. 1933년생이니까 만 78세이시다.  그래갖고 내가,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화가 선생님의 승락을 받고 그분의 사진을 찍어 올수 있었다는 것이지 헤헤헤. (내가 너무 흥분해갖고 카메라 조작을 실수를 해서, 동영상을 일부 찍었다. 그래서 그의 웃는 목소리까지 담아왔다.)




아, 나는 쌤 길리엄의 친필 서명이 들어있는 이 메모장을, 액자를 해 놓을 생각이다. 헤헤헤.  다음부터 미술관에 갈때는 줄쳐진 공책 말고, 작은 스케치북 (몰스킨 같은것)을 갖고 가야겠다.



갤러리토크의 내용은 추후에 정리하여 올리겠다.

아래 사진은 필립스 콜렉션이 소장하는 The Shower. Braque 의 1952년 작품이고 1953년 필립스 콜렉션이 구매했다. 1962년에 워싱턴 디씨로 이사온 쌤 길리엄이 미술관 구경을 왔을때 브라크의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나가는 소나기를 브라크가 잘 그려냈으며  이를 가로지르는 '자전거'가 참 예뻐 보였다고 한다.  나도 그 자전거가 이뻐서 이 그림이 맘에 들었는데... 기본 색조는 전형적인 브라크의 색조이지만, 그의 유명한 큐비즘 추상작품과는 약간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좋아했다.

오늘 심지어 쌤 길리엄과 나의 복장도 비슷했다. 우리 둘다 감색 더블 버튼, 금단추 상의를 입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양말과, 슬리퍼 신발. (하하하)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National Gallery of Art, September 5, 2010


 













Posted by Lee Eunmee
사진 촬영: Corcoran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January 16, 2011 by Lee Eunmee


샘 길리암 (Sam Gillaim 1933 -  2011년 현재 생존)은  현재 생존하는 미국 현대 화가 이다.  그는 Washington Color School 의 일원으로 1962년에 결혼과 함께 워싱턴 디씨로 이주한 후 평생 워싱턴을 떠나지 않은 흑인 예술가이다.

본래 미시시피주에서  8형제중에 일곱번째로 태어난 그는 켄터키주의 루이스빌 대학에서 미술 학사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워싱턴으로 이주한 후에는 워싱턴 디씨 일원의 고등학교와 Corcoran Art School, MICA, Univ. of Maryland, Carnegie Mellon 등에서도 활발하게 미술 강의를 하였다.

Sam Gilliam 은 현재 생존하는 작가이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예술 세계를 '이렇다'라고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쌤 길리엄을 널리 알려지게 만든 작품은, 아마도 캔버스에 물감 작업을 하여 빨래 널듯 널어놓은, 혹은 커튼을 매달아 놓은 듯한 바로 이런 풍의 작품들 일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둘러본 큼직큼직한 미술관의 어느 코너에 대개 쌤 길리엄의 '늘어진 커튼'같은 작품이 한 점쯤 걸려있었다. (이제부터 사진 파일들을 뒤져서 그것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볼 생각이다.)


잭슨 폴락이 캔버스 위에 물감 흩뿌리기로 그의 세계를 완성시켰다거나, Morris Louis 가 캔버스위에 물감 흘러내리기로 그의 개성을 결판지었다 한들, 그렇다한들, 그들의 작품은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국 액자에 반듯하게 '박제'되어 벽에 걸리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쌤 길리엄이 '무슨 짓을 했는가'하면, 그는 캔버스를 염색공장의 물감먹인 헝겊처럼 벽에, 허공에 치렁치렁 거는 시도를 한 것이고, 그의 '발상'이 현대미술에 한 획은 긋게 되었는데 (쌤 길리엄이 이런 시도를 했을때, 그가 그로인해 '미술사'책에 오를줄을 그가 예상이나 했을까?)... 난 항상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1960년대, 그가 워싱턴 디씨의 작업실 창가에 앉아있을때, 창밖 거리에 빨래 널린 것을 내다보다가, 빨래 널린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는 60년대와 70년대에 주로 이런 작업을 하다가 후에 다른 시도를 하게 되는데, 아직까지 쌤 길리엄의 'hall mark'라면 단연 이 늘어진 캔바스라고 할 만하다. 미술사에게, 쌤 길리엄에 이르러, 캔바스는 더이상 박제되어 벽에 걸리기를 거부했다. 캔바스가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억하시면, 쌤 길리엄의 미술사적 가치를 잊지 않게 될 것도 같다.

(내가 나 혼자 미술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떤 작가를 기억하는 방법은 -- 그의 대표적인 작품 한두점을 머릿속에 각인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대개의 경우 그의 작품이 수십, 수백점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의 '개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낯선곳에서 내가 모르는 그의 작품과 마주 설 때에도, 결국 그의 숨결을 찾아내게 되더라. 사람은 쉽게 못 변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숨지 못한다...)  샘 길리엄은, 그냥 '헝겊에 물들여서 주렁주렁 걸어놓은 화가' 라고 설명하면 대개 회상을 하게 된다.






















 





 










3월 31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필립스 콜렉션에서 쌤 길리엄의 갤러리 토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 퇴근을 해요....  지금부터 가서 놀다가 갤러리 토크 보고 가능하면 작가 사진도 찍고, 집으로~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30. 19:0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5860

여러 형제 중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에 부모를 모두 잃고, 큰형의 집에서 더부살이로 자랐다. 가난한 형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열 살부터 일을 하여 스스로 밥벌이를 해결하고 공부를 했다. 그는 대학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천부적인 재능과 열정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에게 좋은 직장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고용한 사람들은 이런 저런 구실로 그에게 약속한 보수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그는 정해진 일 외에도 여러 가지 잡무를 해야만 했다. 보수는 형편없었고,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언젠가 공개 채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그가 보여준 실력은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취직을 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재단 측에서 ‘실력보다는 기부금을 많이 내는 후보를 뽑겠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빈자리는 실력은 형편없었으나 많은 기부금을 낸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가 실력이 있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개리에 멸시를 당한 적도 있다.

그는 빠듯한 수입으로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사색하고, 연구했다. 운이 좋았던 세월도 있었지만, 생활고는 평생 그를 따라 다녔다. 나이가 들자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에게는 백내장이 찾아왔다. 그는 ‘돌팔이’ 의사에게 두 번의 수술을 받고 완전히 실명하게 되어 마침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그가 죽어갈 때 아무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고, 그의 고용주는 그가 죽기 전 이미 후임자까지 뽑아놓고 그를 멸시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미망인에게 지급되기로 했던 연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독일의 문호로 알려진 괴테는, 그가 지은 음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천지창조 이전에 하느님이 자신과 나눈 대화.”


(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한 분은 아래 -- 더 보기)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26. 01:23




영화보다 생생했던 케네디센터 공연 끝났지만
버지니아 오페라단, 내달 3일 GMU에서 공연


나비부인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3849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19일 케네디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54)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으로 테너 가수로 유명한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감독, 무대 디자인과 의상 및 분장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이 맡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미국인 J. L. Long이 1898년 센츄리라는 잡지에 발표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1903년 이 작품을 무대 연극으로 관람한 푸치니가 영감을 얻어서 곧바로 작곡에 착수하여 1904년 초연을 하였다.

줄거리는 미군 중위 핑커톤이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키에서 15세의 일본처녀 치오치오상(나비)을 아내로 맞이한다. 3년 후 나비부인은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떠난 핑커톤을 여전히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소원대로 항구에 남편이 탄 배가 도착한다. 그러나 정작 나타난 것은 핑커톤이 미국에 가서 결혼한 아내. 나비부인은 혼자 낳아서 키운 아이를 아버지인 핑커톤의 품에 보내기로 약속하고 자결하고 만다.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나비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One Fine Day)’라는 곡은 친근한 편이다. 이 노래는 나비부인이 3년 내내 소식 한 번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르는 것이다.

‘어느 개인 날 그이가 탄 배가 나타날 거야. 나는 언덕위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겠어.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의 가슴이 터져버릴 테니까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을래….’

내가 어릴 때 구경했던 오페라는 외국어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답답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무대 위에 흐르는 자막 덕분에 가수들이 하는 노래 대사들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함께 가수들의 애절한 노래 가사에 마음을 실어 공연을 보니 오페라가 영화보다도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입장표 25달러


케네디 센터 오페라하우스의 입장표는 적게는 55달러에서 300달러까지 여러 계층의 가격이 존재한다. 무대나 오케스트라 가까운 자리에서부터 멀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이다. 나는 지난 3월 15일 공연을 보았는데 내가 아들과 함께 산 입장표는 1인당 25달러였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운 좋게 25달러짜리 저렴한 티켓을 살 수 있었을까? 나비부인 공연 소식을 듣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공연티켓이 이미 거의 예매가 끝난 상황이었고, 15일자 공연 티켓이 몇 장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젊은 예술가(Young Artist)’들이 공연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값도 일괄적으로 25달러였다.

케네디 센터 오페라하우스면 세계적인 무대이고, 무대장치나 오케스트라 모두 뛰어난데, 오직 출연진에서 약간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 같은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출연 가수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무대와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싼 표를 사놓고, 동행하는 아들에게도 ‘무대는 대단한데 출연진은 기대하지는 말아라’ 하고 설명을 해줬다.

고등학생 아들 역시, 오페라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대가 된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공연을 보니, 출연자들은 이 오페라에서 조연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요 무대에서 조연으로 연기하는 출연자들에게 딱 하루 주연으로 연기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서 표 값이 저렴했지만, 그들이 역량이 부족한 가수들은 아니다. 그날은 특히나 플라시도 도밍고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지휘를 하여,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는 아주 싼 값에 고급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조지 메이슨에 오는 나비부인

케네디 센터의 ‘나비부인’ 공연은 이미 끝났지만, 오는 4월 3일(일) 오후 2시 버지니아 오페라단의 ‘나비부인’공연이 조지 메이슨대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관련 웹페이지: http://cfa.gmu.edu/calendar/474/ ) 무대나 오페라단의 규모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벚꽃이 피어나는 봄날, 나비부인의 슬픈 사랑의 노래에 우리의 슬픔을 실어 보내는 것도 위안이 되리라.

Bravo, Brava, Bravi!


참고로, 무대 공연장에서 관객이 박수를 칠 때 Bravo!(브라보) 하고 외치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본래 세 종류의 감탄사가 있다. “Bravo!(브라보)”는 남성 공연자에게, “Brava!(브라바)”는 여성 공연자에게 그리고 “Bravi!(브라비)”는 다수의 공연자에게 찬사를 보낼 때 외친다.

DC 일대 공연장

워싱턴 DC 일대에는 케네디 센터를 위시한 큼직한 공연장이 많이 있다. 그래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세계적인 공연들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다. 그런데 대중성이 있는 공연은 예매 시작되자마자 가장 가격이 저렴한 가격대의 표가 금세 매진되어 버린다. 이런 저렴한 표를 사는 방법은 평소에 해당 웹사이트에서 공연소식을 체크하다가 맘에 드는 공연 소식을 발견하면 즉시 표를 예매하는 것이다. 이미 입소문 다 난 후에 표를 사려고 하면 웬만한 표는 매진되고 비싼 표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나는 7월 2일 울프트랩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맘마미아’ 표를 온라인으로 예매해 놓은 상태이다.

또한 표는 가능하면 해당 공연장의 홈페이지에서 혹은 직접 방문하여 예매하는 것이 좋다. 공연 표 판매 대행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표를 살 경우 본래 가격보다 차이가 많이 나게 비싼 가격으로 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표라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서비스료를 내야 하는데 직접 티켓 창구에 가서 사면 서비스료를 절약할 수 있다.

다음은 DC 인근 공연장들의 홈페이지이다.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하면 중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 볼 수도 있고, 공연소식을 좀더 일찍 들을 수 있다.

케네디 센터 http://www.kennedy-center.org/

울프트랩 공연장 http://www.wolftrap.org/

스트라스모어 홀 http://www.strathmore.org/

조지메이슨대학 아트 센터 http://cfa.gmu.edu

워너 극장 http://www.warnertheatre.com/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26. 01:0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2494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20여 년 전 한국에서 어느 가족을 도와줬던 일이다.

동네 이웃이었던 그분은 내가 ‘영어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주 어렵게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동생이 미국 사람하고 결혼해서 미국에 갔는데 요새 전화도 안 오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생네 집에 전화를 걸면 미국인 신랑이 전화를 받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결국 내가 그 미국인과 통화해 이웃과 미국에 살고 있던 동생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전화 통화를 하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고맙다고 치하를 했다. 내게는 영어가 별것이 아니었지만 어느 가족에게 영어는 담벼락같이 아득한 장애물이었으리라.

대학원 재학 중에 부속학교의 ESOL 교사로 일을 했다. ESOL 교사의 역할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학교에서 영어 때문에 장애를 겪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고 영어도 가르쳐주는 것이다. 학생 중에는 미국 학교에 다닌 지 4년이 넘는 중국인 남매들도 있었다. 오누이가 하이스쿨 10학년들이었는데 오빠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힘들었고 누이동생은 그럭저럭 기초 의사소통이 되어서 둘이 힘겹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미국 공립학교 학생으로 여러 해를 보내면서도 기초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안 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지각 결석을 하지 않고 자리만 꼬박꼬박 지켜도 이를 존중해주는 편이다. 이렇게 그림자처럼 세월을 보내다 보면 학년은 올라가고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다.
한국계 이민자 가족 중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이 있다. 나는 종종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자녀의 학교와 관련된 도움을 요청받는 편이다. 가족 중에 영어 소통이 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해서 학교에서 급한 일이 있을 때 내게로 연락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집은 이민온 지 수 십 년이 되었고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초적인 영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은행카드와 자동차만 있으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은행카드로 물건 사고 차 끌고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살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이민 와서 고생해 식품점이나 식당, 세탁소 그 밖의 자기 사업을 일구고 자녀 교육도 성공적으로 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중·장년층 이민자중에서 ‘영어’를 아예 손에서 놓아 버리는 사례도 많이 보인다. 영어는 해도 늘지 않고 이제는 먹고 살 만하니까, 자식들도 다 잘 컸으니까, 더 이상 영어 신경 안 쓰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땅에 살고 있는 한 영어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닥칠 수 있다. 영어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취직을 위해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 그럴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자유롭게 이웃과 친구 되기 위해서도 영어는 필요하다. 아주 사소한 전화 통화라도, 성장한 자식이나 혹은 영어 잘하는 이웃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기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영어 고민에서 해방되는 길은 영어책을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니고 영어를 익혀서 ‘정복’하는 것이리라.

봄이 왔다. 가을 추수를 위하여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으로 이제 다시 영어책을 찾아 들고 지역에서 운영하는 무료 영어 교실을 노크해 보심은 어떠하신지.

2011, 3,23 중앙일보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