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11. 6. 22:50

이제 20마일 더 걸으면 올가을 백마일 프로젝트가 완성 될 것이다.  오늘 문득, '여우에게 굴이 있고, 새들에게 둥지가 있지만 '인자'에게는 머리를 쉴 곳이 없구나'라고 말씀하신 나의 사부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다. 나의 사부께서는 지상의 어느곳에서도 자신의 집으로 머무르지 않으셨다.  이는 Miles to go before I sleep, miles to go before I sleep 이라고 중얼거린 프로스트의 사색과도 맞 닿아있다.  우리는 죽을때까지 진정 쉴 수 없다. 이따금의 휴식과 잔치가 있을 뿐 진정한 휴식은 없다. 혹은, 내가 쉴 곳은 여기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가 아니다. 차안이 아니다. 피안이다.

내일은 내가 아직 밟아보지 않은 땅.  하퍼스 페리 이후의 땅에 가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로 한시간 넘게 달려가야 한다는 부담이 좀 있지만, 조금 부지런을 떨면 또 별것 아닌 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일 할 일들을 오늘 서둘러서 모두 해 놓았다.  오늘 준비를 다 해놓고 일찍 자고, 내일 새벽에 길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해 지기전에 집에 돌아 올수 있을것이다.

나는 언젠가, 사람들이 약 50일씩 걷는다는 그 스페인의 싼티아고 트레킹을 하고 싶다. 그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미지의 길을 많이 걸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길을 실컷 걸을 것이다.

내일 일어나서 걷는다면 60-70 마일 포스트를 왕복하게 되겠지...  나는 한곳에 머무르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닐것이다. 가을엔 떠나지 말라고 최백호가 노래했지만, 사실, 가을이야말로 떠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닌가.  떨어지기 전의 나뭇닢은 빛나는 황금색으로 손짓을 하며 작별 인사를 보낸다. 아름답지 않은가?

내일 가방에 챙겨 갈 것은:

  1. 보온 텀블러에 뜨거운 커피 (반환점에서 기념식한다)
  2. 삶은계란 세개.
  3. 사과 한개, 찐고구마 한개 깍뚝썰기 해서 샌드위치 봉지에 담아간다, 먹기 좋게.
  4. 피칸을 후라이판에 살짝 볶아서 샌드위치 봉지에 담아간다 (볶아 가야 고소하다)
  5. 물 한병
  6. 현미밥으로 주먹밥 세덩어리 만들어서 오마일 지점마다 한덩어리씩 먹어준다.
  7. 킨들. 카메라. 전화. 지갑
  8. 바람불면 머리가 아프므로, 모자를 챙긴다.

 내일 날씨, 좋을 것이다... 



*** 

아아,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을 먹고 잤는데, 밤새 자반뒤집기를 하느라고 제대로 못잤다. 머리가 아프다.  날씨는 기가막히게 좋은데, 장거리 걷기는 힘들겠다.  다음으로 연기~ 

오전에 일을 좀 하고, 오후에 머리가 안아프면 산책이나...

2011, 11, 6 써머타임 해제. 한국과의 시간차는 14시간.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11. 6. 03:38







헤론은 어쩐지 마음씨 착한 아저씨나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다. 대개 말이 없고, 움직임도 느리다.  가만히 서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그냥 멀거니 서 있을 때가 많다. 애가 바지런하지가 않다.   어쩌다 사람이 가까이 지나치면, 그냥 좀 비키거나 혹은 아주 싹 무시를 하고 신경도 안쓴다.  (사람이 해코지를 하지 않을거라고 판단이 되면 안 움직이는것 같다.)

이 헤론님의 경우, 조지타운 입구에서 만난 분이신데, 아주 "날 잡아 잡수"하고 서 계셨다. 날 무시하는거냐 뭐냐, 응?

난 이 새가 날 피하지도 않고, 모른척 하고 있어서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소리내어 불러보기까지 했다.  가까이 가서 괴롭히니까, 마지못해서 날개를 펴고 저 만치 날아가더니 다시 길가에 그린듯이 서 있고 만다.  게으르지만 날씬한 새다. 운동을 그렇게 안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날씬한거냐 너? 응?  아마, 먹기도 조금밖에 안 먹는 모양이다.


헤론이나 딱따구리, 와블러, 이런 각종 새들을 강변길에서 자주 만난다. 나는 주로 혼자 걸으니까, 가끔은 '미친년'처럼 길에서 만나는 새들한테 말도 걸고 그런다.  뭐 어차피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까, 신경 쓸 것도 없고.  나는 사람 아닌 존재와 말하는데 익숙하니까.

어제는 길에서 자주색 뱀을 만났다.  가끔 가느다란 실뱀이 수풀 길을 건너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가끔은 자전거에 깔려 죽은 실뱀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어제 그 뱀은 진짜 큰 뱀이었다. 길이는 1미터가 넘었고, 굵기는  직경 3센티쯤 되려나?  몸길이 중간 부분은 다른곳보다 더 굵어보였다.  머리를 세웠을때는 세모 모양이 되었다. 와인빛이 도는 뱀이었다. 그 뱀이 길 가운데 W 자로 누워 있었다.  그대로 계속 누워 있으면,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한테 밟혀 죽을걸~ 

그 뱀은 길에서 술에 취해 자는 것인지 길에 그러고 누워 있었다.  가운데가 불룩한 것이 배가 불러서 식곤증을 느낀 것일까?  아무튼, 그런데 그녀석이 머리를 들고 혀를 낼름낼름하는데 머리가 세모 모양이었다.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뱀 대가리가 세모인 것은 독뱀이고, 뱀 대가리가 둥글면 그건 순한 뱀이라고 가르쳐 주신것이 생각이 났다. 이 뱀은 대가리가 세모였다.  그래서 나는 그 뱀이 어서 길에서 비켜주기를 바랬다.  서서히 사람들이 왔고, 길 이편과 저편에서 사람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뱀만 쳐다봤다.  뱀은 주위가 시끄러운것이 짜증이 났는지, 슬슬 기어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뱀이 수풀로 사라졌으므로 길을 가던 사람들도 다시 이쪽으로 저쪽으로 지나쳐갔다.

저런 뱀이 수풀속에 있을테니, 수풀에 함부로 들어가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특히 신발.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신어주는 것이 혹시나 길에서 뱀을 만나도 안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11. 5. 08:32

수로 마일 포스트 4번에서 14번까지, 왕복하여 20마일을 채웠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011, 11, 4).

포토맥에 나가면 늘 걷기 시작점이 되는 아리조나 철교.  이곳이 사실은 약 3.5 마일 정도 되는 거리이다. 여기서 반마일 걸어서 4마일 포스트를 기점으로 십마일을 걷기로 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21마일을 걸을 셈이다.)



4마일 스톤과 포스트.  그런데 누군가가 마일스톤에다 스프레이로 표시를 해 놨다. 보기 흉했다. 이 마일 스톤이 그래도 제법 역사성이 있는 것인데.



11월이지만 제법 포근한 날씨였다. 지난 주에는 눈과 우박이 떨어질정도로 추웠지만, 그 후로 날이 온화해서 수로에 개구리밥같은 식물들이 덮여 있었다.


약 6마일 지점쯤 되려나, 여기 전망이 탁 트인 것이 참 좋다.



해오라기같이 생긴 이 새는 Blue Heron 이라고 한다. 고요하고 의젓한 새 이다. 순하게 앉아 있다가 한번 날개를 펼치고 너울너울 날면 참 근사해보인다.





여기는 12마일과 13마일 사이 지점인데, 이곳 풍경이 특히 환상적이다.  메릴랜드 그레이트폴스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거의 9마일을 걸은 상태라서 지쳐 있을 무렵이다.



이곳 단풍은 아마도 다음주가 절정일것 같다. 



14마일 지점에 도착하여 간식 꺼내놓고 기념 촬영.

오늘 챙겨나간 간식은 사과 두알, 고구마 찐것 반개, 찐호박, 피칸 한봉지, 물. 
10마일까지 가는 도중에 찐고구마와 사과 한알을 먹어 치웠고, 이것은 그 나머지이다.
찐고구마는 결국 다 못먹었다. 피칸도 한줌 먹고 말았다.
사과는 다 먹어치웠다.  사과 두알을 먹으면 물을 안먹어도 목 마른줄 모른다. 날이 선선하니까 땀이 안나서 그럴것이다. 물은 예비로 갖고 다녔지만 한모금도 안 마셨다.




14마일 포스트에서 기념 사진 찍고, 반환.



깍아지른듯한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인데, 사진속의 풍경은 밋밋하기만 하다. 여기가 참 절경인데, 사진이 엉망이라 송구스럽다.



사과 먹다가 조각을 내서 이 거위들에게 던져 줬는데 잘들 받아 먹더라. 재미 있어서 자꾸만 던져 줬다. 사과를 좋아하는 캐나다 거위들.


마지막 3마일은, 지쳐가지고, 악에 받쳐서 걸었다. 하하하.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집에 가서 멸치 국물 내 가지고, 뜨거운 잔치국수 만들어 먹고 퍼 잔다. 뜨거운 국수를 먹으러 가자. 뭐 이런 생각을 간절하게 한다. 이런 간절함으로 기도를 한다면 아마 태산도 움직이련만, 나의 간절함이란것이 마지막 3마일 남겨놓고 뜨거운 국수타령에서 정지된다는 것이다.

지금 몰골이, 기진맥진해서 마귀할멈같은 표정이다. 하하하

(이제 20마일 행사 한번만 더 하면 백마일 채우는거다.... 뜨거운 국수 한사발....)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11. 2. 14:0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91368
1960년대 영국.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야 할 영국의 방송에서 ‘저질’ 락앤롤 (Rock and Roll) 음악이 흐르면서 청소년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위대한 영국 정부는 이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영국 영토에서의 락앤롤 방송을 금지시켜버렸다. 그러자 이 라디오 팀은 배를 타고 북해로 나갔다. 영국 영토가 아닌 바다에서 방송을 해대기 시작했다.
 
2009년 출시된 영화 ‘해적 라디오(Pirate Radio)’의 기본 플롯이다. 실화를 근거로 한 코미디 영화라고 하는데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나도 확인을 안 해 봐서 잘 모른다. 다만 이 해적 라디오 방송의 배를 침몰 시키기 위해서 정부가 공격을 감행하자 라디오를 듣던 수많은 애청자들이 작은 배들을 끌고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어쩐지 눈물이 나왔다.
 
나는 용인의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집 안팎에서 일을 할 때면 늘 라디오를 곁에 두셨다. 가는귀를 먹은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틀면 대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아주 소리가 컸다.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나는 그래서 할아버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학습했다.

매시마다 꼬박꼬박 흘러나오는 뉴스 덕분에 뜻도 모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하여 아는 척을 하거나, 누군지도 모르는 세계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의 이름에 밝았다. 돌아보건대 가족과 떨어져서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던 꼬마에게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라디오는 햇살 같은 위안이었다.


 
최근에 나는 이상한 라디오를 가끔 듣는다. 디지털 미디어 파일로 올라오는 프로그램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팟캐스트 (podcast)’라고 부른다. 내가 가끔 심심풀이로 듣는 것은 ‘나는 꼼수다,' 줄여서 ‘나꼼수’라고 하는 이상한 라디오다.
 
‘나꼼수’에는 네 명의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을 ‘총수’라고 소개하는 사람, ‘목사아들 돼지’라는 시사 평론가, 전직 국회의원이며 치명적 매력남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인물도 있고, 시사 잡지의 기자도 있다. 이들과 함께 초대손님들이 나와서 뭔가 심각한 얘기를 농담처럼 떠들어댄다.
 
얼마 전에는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의원이 이 프로그램에 등장을 했다. 그는 자신이 ‘나꼼수’에 출연할 테니 황금 시간대에 인터뷰를 잡아달라고 청해서 사람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이 프로그램의 생리를 잘 이해 못하고 이 방송의 정체에 대하여 재차 물었다. 그러자 고정 출연자들이 설명을 해준다, “의원님, 이것은 방송이 아닙니다. 팟캐스트이지요. 현재 방송법의 범주 바깥에 존재합니다.” 팟캐스트를 하는데 황금 시간대라는 것은 존재 하지 않으며 아무나, 아무 때나, 어디서나 올려진 파일을 클릭하거나 다운받아서 들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그 의원님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또한 현행법이 정한 방송이나 미디어 법의 규제 범위 밖에 있어서 현행법으로는 통제가 불가능 하다는 것도 출연자들의 설명으로 알게 된다.
 
며칠 전에는 어느 철학자가 출연하여 교육방송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이 중단되게 생겼다고 호소를 한다. 그의 소망은 그냥 본래 계획대로 철학강의를 마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해적같은 네 명의 고정 출연자들은 열심히 응원해드리겠다며 허풍을 친다. 나도 한가롭게 집안 청소를 하며 이 프로그램을 듣다가 이들과 함께 깔깔대고 만다. 그리고 파일의 정지 버튼을 누른다. 다른 할 일이 있으니 나머지는 나중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이 바뀌고 매체도 바뀌지만 우리의 삶의 양태와 고민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라디오에서 듣던 것을 이제 나는 아이팟이나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듣는다. 영국에서 법으로 라디오 방송을 규제하려고 했을 때 이들이 배를 타고 나가 해적 방송을 띄웠듯, 소통에 답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안 매체로 이동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어릴 때 시간을 놓쳐버리면 방송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아무 때나 내가 편할 때 파일을 꺼내서 필요한 만큼 들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2011, 11, 2 수. 이은미


추신: 원고를 보내고 난 후, 간밤에 김용옥 교수가 교육방송에서 중용 강의를 완주하게 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음, 아, 이거슨 나꼼수 헌정 칼럼 되시겠다 ㅋㅋㅋ.


아래는 뉴욕 타임스 11월 1일자 언라인 기사 카피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10. 29. 06:15




대학원 학생과 함께, Billy Goat Trail 일대와 Great Falls 인근 수로를 다섯시간 걸었다.  학생이 오전 일곱시 반에 내 아파트 마당에 도착해 "저 왔어요" 하고 전화를 걸길래 쏜살같이 뛰어나가, 함께 Angler's Inn 앞으로 가서 차를 세우고 거기서부터 Billy Goat 트레일을 돌았다. 완전 네발로 걷기 프로젝트.  빌리고트 코스가 평지 걷기가 아니라 좀 난이도가 있다. 네발로 기어야 하는 난코스가  두군데쯤 나온다.  빌리코트를 돌 때는 네발로 기느라 사진이고 뭐고... 여력이 없었고, 다 빠져나와서 폭포 구경할때쯤 카메라를 꺼내서 몇장 기념사진.

이른아침에 날이 꽤 추워서 나는 안 나갈 생각도 조금 했었다.  그런데,  학생한테 약속 해놓고 취소하기가 낯이 안서서 그냥 겨울 두꺼운 패딩 자켓을 입고 나갔는데, 나가니 몸도 따뜻해지고, 날씨도 쾌청하고 좋았다. 

(아래)그레이트 폴스, 메릴랜드 전망대. 물 건너는 버지니아 전망대. 저 멀리 보이는 숲은 내가 리버밴드 파트에서 그레이트 폴스까지 걷는 숲길이다.


그레이트폴스를 지나 17 마일 포스트까지 갔다가 반환.  풍광에 정신이 팔려서 Angler's 출구를 그냥 지나치고 11마일 포스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다.  풍광에 넋이 나가서 나가야 할 출구를  뻔히 보면서 지나치고 말다니... 내가 아주 혼이 나가 있었나보다.






아래 다리는, 3년전에, 온가족이 20마일 걷기 행사 할 때, 그날 저녁에 비가 쏟아졌는데, 그 비를 피하기 위해서 박선생하고 나하고 숨어 있던 다리이다.  저 다리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었다.  그 때도 이맘때였을 것이다. (일기를 찾아보면 날짜가 나오겠지만...음, 찾았다. 2008년 10월 25일에 행군을 했었다.)






 


 2008년 10월 25일자  내 일기 (20마일 대 장정 사건) 사진 일부를 가져왔다.  저 위의 다리 3년전 모습. 12 마일 포스트 인근에 있는 다리.


이날 비 쫄딱 맞고 마침내는 다리 밑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했는데, 비에 푹 젖은 패딩 자켓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다. 사람 인체에서 발산되는 열기가 안개처럼 솟았다.   신기하게도, 그날 그 비를 맞고 20마일을 걷고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홍이 백팩에 먹을것을 담아 갔는데, 이놈이 그 백팩을 지고 그냥 마라톤하듯 달려가 버려서, 물한방울 못먹고 그 먼길을 지홍이 자식 잡으로 허겁지겁 가야했다. 비참한 날이었다.  나중에는 배고프고 지치고 비맞아서 춥고  화딱지 나고 그래서 이자식을 잡아 먹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저 다리를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저날 저 다리밑에서 김선배에게 전화를 했었다. "여차저차해서 지금 제가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는데, 이 순진한 양반이 내가 비를 맞고 다리 밑에 있다는 메시지만을 접수하고는 매우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거기 위치를 정확히 말해봐요. 내가 지금 차로 데릴러 갈테니까."

지금 마님께서 저 라이드 해주실 군번이십니까. 깔깔깔.  그날 빗속에서 20마일 행군을 마쳤는데, 나 데릴러 와 주겠다는 김선배 말씀은 내가 죽을 때 까지도 아마 못 잊을 것이다.  나라면, "아 그래요? 그럼 조심해서 걷기를 마치기 바래요" 뭐 이렇게 한마디 하고 말았을 것인데.   나하고는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것으로 보였다. 





 





네발로 기어다니는 난 코스를 거쳐 쉼없이 다섯시간을 헤메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차 앞으로 왔을때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Angler's Inn 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2층 홀. 다락방 같은 곳에 테이블이 설치 되어 있었는데, 내가 마치 다락방의 주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유쾌했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식전에 제공된 빵을 두조각이나 먹었고, 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싸그리 먹어 치웠다.

내 학생은 이곳을 처음 와 보는 입장이라 다니는 곳 마다 탄성이 이어졌다.  내가 이 트레일을 0마일 지점부터 60마일 지점까지 두발로 걸어본 결과, 한 사람이 한 10마일 정도 거리를 걸을때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딘가 하면 바로 이 지점이다. 마일 포스트로 10마일 지점에서 20마일 지점 사이가 가장 수려한 경관이다. 오늘 내 제자에게 내가 걸었던 수로중에서 가장 환상적인 코스를 보여준 셈이다. 내 학생은 아마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이곳을 또 찾아 올 것이다.

혼자 걷는것도 좋지만, 생각이 통하는 학생과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얘기하면서 걷는 것도 좋았다.


사실, 어제까지도 몸살 기운이 있어서, 며칠간 밤이면 독한 타이레놀 수면성분이 있는 것을 먹고 잠이 들고, 낮에는 아스피린을 먹고 버티고 그랬다.  어젯밤에 약을 먹고 자면서 제발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가뿐해져라 가뿐해져라 하고 최면을 걸었다. 만약에 내 학생과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나는 모두 다 취소 했을 것인데, 그 약속을 나는 잘 못 깬다. 나는 참 우둔하게도  남과의 약속은 숙제처럼 꾸역꾸역 지키는 편이다.  그래서 옷 껴입고 약 두 알 먹고 나갔는데, 오히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주 진을 빼고 돌아오니, 오히려 몸이 가뿐하다. 자연의 치유력인가.  자연이 주는 상인가?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다.




2011년 10월 28일. 금. 학생 H 와 함께.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