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10. 29. 06:15




대학원 학생과 함께, Billy Goat Trail 일대와 Great Falls 인근 수로를 다섯시간 걸었다.  학생이 오전 일곱시 반에 내 아파트 마당에 도착해 "저 왔어요" 하고 전화를 걸길래 쏜살같이 뛰어나가, 함께 Angler's Inn 앞으로 가서 차를 세우고 거기서부터 Billy Goat 트레일을 돌았다. 완전 네발로 걷기 프로젝트.  빌리고트 코스가 평지 걷기가 아니라 좀 난이도가 있다. 네발로 기어야 하는 난코스가  두군데쯤 나온다.  빌리코트를 돌 때는 네발로 기느라 사진이고 뭐고... 여력이 없었고, 다 빠져나와서 폭포 구경할때쯤 카메라를 꺼내서 몇장 기념사진.

이른아침에 날이 꽤 추워서 나는 안 나갈 생각도 조금 했었다.  그런데,  학생한테 약속 해놓고 취소하기가 낯이 안서서 그냥 겨울 두꺼운 패딩 자켓을 입고 나갔는데, 나가니 몸도 따뜻해지고, 날씨도 쾌청하고 좋았다. 

(아래)그레이트 폴스, 메릴랜드 전망대. 물 건너는 버지니아 전망대. 저 멀리 보이는 숲은 내가 리버밴드 파트에서 그레이트 폴스까지 걷는 숲길이다.


그레이트폴스를 지나 17 마일 포스트까지 갔다가 반환.  풍광에 정신이 팔려서 Angler's 출구를 그냥 지나치고 11마일 포스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다.  풍광에 넋이 나가서 나가야 할 출구를  뻔히 보면서 지나치고 말다니... 내가 아주 혼이 나가 있었나보다.






아래 다리는, 3년전에, 온가족이 20마일 걷기 행사 할 때, 그날 저녁에 비가 쏟아졌는데, 그 비를 피하기 위해서 박선생하고 나하고 숨어 있던 다리이다.  저 다리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었다.  그 때도 이맘때였을 것이다. (일기를 찾아보면 날짜가 나오겠지만...음, 찾았다. 2008년 10월 25일에 행군을 했었다.)






 


 2008년 10월 25일자  내 일기 (20마일 대 장정 사건) 사진 일부를 가져왔다.  저 위의 다리 3년전 모습. 12 마일 포스트 인근에 있는 다리.


이날 비 쫄딱 맞고 마침내는 다리 밑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했는데, 비에 푹 젖은 패딩 자켓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다. 사람 인체에서 발산되는 열기가 안개처럼 솟았다.   신기하게도, 그날 그 비를 맞고 20마일을 걷고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홍이 백팩에 먹을것을 담아 갔는데, 이놈이 그 백팩을 지고 그냥 마라톤하듯 달려가 버려서, 물한방울 못먹고 그 먼길을 지홍이 자식 잡으로 허겁지겁 가야했다. 비참한 날이었다.  나중에는 배고프고 지치고 비맞아서 춥고  화딱지 나고 그래서 이자식을 잡아 먹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저 다리를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저날 저 다리밑에서 김선배에게 전화를 했었다. "여차저차해서 지금 제가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는데, 이 순진한 양반이 내가 비를 맞고 다리 밑에 있다는 메시지만을 접수하고는 매우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거기 위치를 정확히 말해봐요. 내가 지금 차로 데릴러 갈테니까."

지금 마님께서 저 라이드 해주실 군번이십니까. 깔깔깔.  그날 빗속에서 20마일 행군을 마쳤는데, 나 데릴러 와 주겠다는 김선배 말씀은 내가 죽을 때 까지도 아마 못 잊을 것이다.  나라면, "아 그래요? 그럼 조심해서 걷기를 마치기 바래요" 뭐 이렇게 한마디 하고 말았을 것인데.   나하고는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것으로 보였다. 





 





네발로 기어다니는 난 코스를 거쳐 쉼없이 다섯시간을 헤메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차 앞으로 왔을때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Angler's Inn 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2층 홀. 다락방 같은 곳에 테이블이 설치 되어 있었는데, 내가 마치 다락방의 주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유쾌했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식전에 제공된 빵을 두조각이나 먹었고, 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싸그리 먹어 치웠다.

내 학생은 이곳을 처음 와 보는 입장이라 다니는 곳 마다 탄성이 이어졌다.  내가 이 트레일을 0마일 지점부터 60마일 지점까지 두발로 걸어본 결과, 한 사람이 한 10마일 정도 거리를 걸을때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딘가 하면 바로 이 지점이다. 마일 포스트로 10마일 지점에서 20마일 지점 사이가 가장 수려한 경관이다. 오늘 내 제자에게 내가 걸었던 수로중에서 가장 환상적인 코스를 보여준 셈이다. 내 학생은 아마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이곳을 또 찾아 올 것이다.

혼자 걷는것도 좋지만, 생각이 통하는 학생과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얘기하면서 걷는 것도 좋았다.


사실, 어제까지도 몸살 기운이 있어서, 며칠간 밤이면 독한 타이레놀 수면성분이 있는 것을 먹고 잠이 들고, 낮에는 아스피린을 먹고 버티고 그랬다.  어젯밤에 약을 먹고 자면서 제발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가뿐해져라 가뿐해져라 하고 최면을 걸었다. 만약에 내 학생과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나는 모두 다 취소 했을 것인데, 그 약속을 나는 잘 못 깬다. 나는 참 우둔하게도  남과의 약속은 숙제처럼 꾸역꾸역 지키는 편이다.  그래서 옷 껴입고 약 두 알 먹고 나갔는데, 오히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주 진을 빼고 돌아오니, 오히려 몸이 가뿐하다. 자연의 치유력인가.  자연이 주는 상인가?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다.




2011년 10월 28일. 금. 학생 H 와 함께.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