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성인의 가르침은 질문 답변이 중심이었다.
보통 인류의 4대 성인(4 great thinkers)을 꼽을때, 석가모니(기원전 624-544 추정), 공자(기원전 551-479),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 예수(기원전 4년 – 기원후 약 30년 추정)를 꼽는다. 석가모니는 ‘불교’의 교조이며, 공자(기원전 551-479)는 ‘유교’를 낳았고, 소크라테스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으며 예수는 기독교의 탄생을 가져왔다.
이 위대한 분들이 종교나 사상, 철학의 모태가 된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으니 이들 모두 ‘선생님’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불교의 경전인 불경은 부처의 설법을 제자와 후세들이 최선을 다해서 꼼꼼히 감수하여 남긴 기록이다. 대개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로 시작되는데 제자들이 와서 질문을 한 것에 대하여 석가모니가 논리와 논리를 뛰어 넘는 설법을 한 것을 정리하여 후세에 남긴 것이다. 문답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역시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들과 공자가 주고 받은 ‘문답 (Question and Answer)’이 중심축으로 대개 “자왈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로 시작된다.
서양철학의 토대가 되는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 문답법,’ ‘산파법’등이 알려져 있는데 그가 질문을 통하여 한계단 한계단 논리를 구축해 나가는 방법이 서양의 과학적 사고체계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탄생을 불러온 예수 역시 제자들 사이에서 ‘스승’으로 통했으며 4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된 그의 생애를 보면 그 역시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제자들과 세상과 소통을 계속해 나갔다.
여기서‘문답법’ 혹은 ‘Socratic question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실제 질문 예를 국가론 (The Republic, 플라톤이 기록함)에서 발췌하여 살펴보자. (국가론 1권 3장, 정의 Justice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쿠스의 대화의 일부를 영문 대화형식으로 일부 편집하였다. 조금 간략한 예를 제시하기 위하여 필자가 일부 생략한 부분도 있다.)
아래 발췌부분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는 ‘정의’란 무엇이고 ‘정의로운 통치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문답과 예를 통해 이끌어낸다. 소크라테스의 상대자는 ‘어-어-‘하다가 상대의 논리에 말려들어갔음을 깨닫게 되는데, 깨달음이 거기서 중단되면 안타까운 일이다.자신의 논리의 오류나 새로운 논점을 발견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계단을 오르듯 한걸음 한걸음, 목표지점을 향하여 가는 소크라테스식 질문법
Socrates: It will be better that I should ask you a question: Is the physician, taken in that strict sense of which you are speaking, a healer of the sick or a maker of money?
Simple question: Is the physician a healer of the sick or a maker of money?
소크라테스: 내가 자네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낫겠네. 의사는, 자네가 말하는 식으로 엄정하게 보자면,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사람인가 돈 버는 사람인가?
Thrasymachus: A healer of the sick.
트라시마쿠스: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사람이지.
Socrates: And the pilot, is he a captain of sailors or a mere sailor?
Simple question: Is he a captain or sailors or a mere sailor?
소크라테스: 그러면,배의 조종사는 선원들의 대장인가 아니면 그냥 선원인가?
Thrasymachus: A captain of sailors.
트라시마쿠스: 선원들의 대장이지.
Socrates: The circumstance that he sails in the ship is not to be taken into account; neither is he to be called a sailor; the name pilot by which he is distinguished has nothing to do with sailing, but is significant of his skill and of his authority over the sailors.
배의 조종사가 배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가 없으며 그를 선원이라고 부르지도 않지. ‘조종사’라는 특정의 이름은 배에서 일한다는 것보다는 그의 전문적인 기술과 다른 선원들에 대한 통솔권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Thrasymachus: Very true.
트라시마쿠스: 당연하지.
Socrates: Now, every art has an interest?
소크라테스: 자, 모든 ‘기술(art)’은 부합하는 ‘목표’가 있지.
Thrasymachus: Certainly.
트라시마쿠스: 그렇지.
Socrates: For which the art has to consider and provide?
소크라테스: 그 목표에 대하여 그 기술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
Thrasymachus: Yes, that is the aim of art.
트라시마쿠스: 그래,그것이 기술의 목표지.
Socrates: And the interest of any art is the perfection of it --this and nothing else?
소크라테스: 그리고 어떤 기술이건 기술은 ‘완성’을, 다른 무엇이 아닌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Thrasymachus: What do you mean?
트라시마쿠스: 무슨 뜻인가?
Socrates: The body may be ill and require to be cured, and has therefore interests to which the art of medicine ministers; and this is the origin and intention of medicine, as you will acknowledge. Am I not right?
소크라테스: 사람의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할 수가 있고, 이런 상황이야말로 자네도 알다시피 의료기술의 근본적인 목표가 실현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내 말이 맞나?
Thrasymachus: Quite right.
트라시마쿠스: 물론 그렇지.
Socrates: Then medicine does not consider the interest of medicine, but the interest of the body?
소크라테스: 그러면,의술은 의술 자체가 그 목표는 아니고, 인체가 그 목표가 되겠지?
Thrasymachus: True.
트라시마쿠스: 사실이네.
Socrates: Nor does the art of horsemanship consider the interests of the art of horsemanship, but the interests of the horse; neither do any other arts care for themselves, for they have no needs; they care only for that which is the subject of their art?
소크라테스: 마찬가지로,승마기술 역시 승마기술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어떤 기술도 기술 그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지. 왜냐하면 기술 그 자체가 뭔가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않으니까. 어떤 기술은 그 기술이 사용되는 대상을 중요시 하는 것이지.
Thrasymachus: True.
트라시마쿠스: 사실이네.
Socrates: But surely, Thrasymachus, the arts are the superiors and rulers of their own subjects?
소크라테스: 그런데,여보게, 확실히 기술이야말로 그들이 대상으로 하는 것에 대하여 우월자이며 지배자가 아닌가?
Thrasymachus: (To this he assented with a good deal of reluctance.)
트라시마쿠스: (어딘가 내키지 않지만 어정쩡하게 동의함)
Socrates: Then no science or art considers or enjoins the interest of the stronger or superior, but only the interest of the subject and weaker?
소크라테스: 그러면,과학이나 기술은 힘있는 자나 높은 직위에 있는 자의 이익을 고려하거나 요구하기보다는 오직 기술의 혜택을 받는 자나 혹은 약자를 목표 한다는 말인가?
Thrasymachus: (He made an attempt to contest this proposition also, but finally acquiesced.)
트라시마쿠스: (이런 전제에 반대하려 시도했으나, 결국 수긍한다)
Socrates: Then, no physician, in so far as he is a physician, considers his own good in what he prescribes, but the good of his patient; for the true physician is also a ruler having the human body as a subject, and is not a mere money-maker; that has been admitted?
소크라테스: 그렇다면,어떤 의사라도, 그가 의사인 한은,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가 아니라 환자의 이익을 위해서 처치하는 것이지. 참된 의사는 사람의 몸에 관한 한 그가 지배자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단순한 돈 버는 사람이 아닌 것이지. 동의하나?
Thrasymachus: Yes.
트라시마쿠스: 그렇네.
Socrates: And the pilot likewise, in the strict sense of the term, is a ruler of sailors and not a mere sailor?
소크라테스: 그리고 배의 조종사도 마찬가지로, 그 말을 엄밀하게 적용하면 단순한 선원이 아니라 선원들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지?
Thrasymachus: That has been admitted.
트라시마쿠스: 동의하네.
Socrates: And such a pilot and ruler will provide and prescribe for the interest of the sailor who is under him, and not for his own or the ruler's interest?
소크라테스: 그러면 그러한 지도자는 자기 자신이나 지배자의 이익보다는 자신이 통솔하는 선원들의 이익에 맞게 처방해주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겠지?
Thrasymachus: ( reluctant ) Yes.
트라시마쿠스: (마지못해)그렇네
Socrates: Then there is no one in any rule who, in so far as he is a ruler, considers or enjoins what is for his own interest, but always what is for the interest of his subject or suitable to his art.
소크라테스: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그가 지배자라면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명령하지는 않을 것이며, 늘 그가 가진 기술의 수혜자들, 그가 지배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신경 쓰고 명령하겠지.
소크라테스의 질문중
1) 직접질문형 문장은 빨간색으로
2) 평서문에 의문부호를 달아, 말끝을 올려서 질문형식을 취한 것은 밑줄을 그어 표시하였다.
짧고 소박한 구원자 예수의 질문법
예수 역시 제자들과 문답을 통해 천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의 질문들을 몇가지 추려 보았다. 그런데, 사복음서를 통틀어서 예수께서 던졌던 질문중에 가장 강력한 질문은 그가 부활하여 베드로 곁에 나타났을때 던졌던 세번의 질문이었다고 본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번 연거푸 물었다.
“Do you love me?”
“Do you love me?”
“Do you love me?”
질문의 맥락은 이러하다. 이미 널리 알려진바 대로, 예수가 체포되기 직전 최후의 만찬에서 앞으로 닥칠 고난에 대하여 예수가 이야기 할 때 그의 수제자인 베드로 (Peter)가 자기는 절대 스승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을 한다. 그렇지만 예수가 끌려가 고통을 겪는 현장에서 그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정했고, 예수가 이를 물끄러미 지켜봤다는 설도 있다.예수와 베드로가 그 때 눈이 마주쳤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배신을 했는데 처형당하여 매장까지 마친 스승이 부활하여 돌아오셨다니 베드로는 한편으로는 뛸듯이 기뻤겠지만,한편으로는 너무나 자신이 부끄러워 감히 스승 앞에 머리를 들고 서 있을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의 상처난 마음을 스승은 달래주고 싶었을 것이다.그리하여 베드로가 스승을 ‘난 모르오, 난 모르오, 나는 모르는 사람이오’하고 세번 부정했던 것을 씻어주기 위해“Do you love me?” “Do you love me?” “Do you love me?” 묻고 그의 죄를 씻어주고, 그에게 더 큰 사명을 맡긴 것이다.
예수의 “Do you love me? (나를 사랑해?)”하는 질문은 자기 중심적인 질문이 아니었다.이타적인 질문이었으며 상대방을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간단하고 쉬우며 명료하고 위대한 질문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래의 질문 문형 들은 특별히 해석을 붙이지 않아도 영어 그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이 평이하다. 맥락을 찾아 읽어보면 이렇게 소박하고 평이한 질문에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1. Why are you anxious about clothes? (Matt 6:28)
ü 왜 옷에 신경을 쓰느냐?
2. Why are you so afraid? (Matt 8:26)
ü 왜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뭐가 그리 무섭냐?)
- Why do you harbor evil thoughts? (Matt 9:4)
ü 왜 나쁜 생각을 품느냐?
- Do you believe I can do this? (Matt 9:28)
ü 넌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 What did you go out to the desert to see? (Matt 11:8)
ü 넌 사막에 나가서 무엇을 보려고 한것이냐?
- To what shall I compare this generation? (Matt 11:6)
ü 이 세대(사람들을) 무엇과 비교하랴?
- Who is my mother? Who are my brothers? (Matt 12:48)
ü 내 어머니가 누구냐? 내 형제들이 누구더란 말이냐?
- Why did you doubt? (Matt 14:31)
ü 왜 의심했느냐? (왜 믿지 않았느냐?)
- And why do you break the commandments of God for the sake of your tradition? (Matt 15:3)
ü 그리고 왜 너(너희)는 전통을 빌미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 How many loaves do you have? (Matt 15:34)
ü 빵을 몇개를 갖고 있느냐?
- Do you not yet understand? (Matt 16:8)
ü 아직도 이해를 못하느냐? (Don’t you understand, yet?)
-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Matt 16:15)
ü 그렇지만 너는 나를 누구라고 말 하려느냐?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 Why do you ask me about what is good? (Matt 19:16)
ü 왜 내게 무엇이 좋은지 묻는거냐?
- Can you drink the cup that I am going to drink? (Matt 20:22)
ü 내가 장차 마실 그 잔을 네가 마실 수 있느냐?
-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Matt 20:32)
ü 너를 위하여 내가 뭘 해주길 바라느냐?
- Why are you testing me? (Matt 22:18)
ü 왜 나를 시험하고 있느냐?
- Could you not watch for me one brief hour? (Matt 26:40)
ü 단 한시간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단 말이냐?
-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Matt 27:46)
ü 나의 신이시여, 나의 신이시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 Why are you thinking such things in your heart? (Mark 2:8)
ü 왜 마음속에서 그런 일을 생각하고 있느냐?
- Who has touched my clothes? (Mark 5:30)
ü 누가 내 옷을 건드렸느냐?
- Why this commotion and weeping? (Mark 5:39)
ü 왜 이렇게 소동을 피우며 우는거냐?
- Why does this generation seek a sign? (Mark 8:12)
ü 이 세대는 왜 ‘싸인 (표시)’을 구하는가?
- [To the Blind man] Do you see anything? (Mark 8:23)
ü 시각장애인을 향하여 – 뭔가 보이는가?
- Salt is good, but what if salt becomes flat? (Mark 9:50)
ü 소금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 What did Moses command you? (Mark 10:3)
ü 모세가 너(너희들)에게 무엇을 명했는가?
- Do you see these great buildings? They will all be thrown down. (Mark 13:2)
ü 너는 이 큰 건물들이 보이는가? 이 건물들은 무너질 것이다.
- Simon, are you asleep? (Mark 14:37)
ü 시몬아, 잠들었느냐?
- Why were you looking for me? (Luke 2:49)
ü 너는 왜 나를 찾고 있었느냐?
- Where is your faith? (Luke 8:25)
ü 네 믿음이 어딨는거냐?
- Who touched me? (Luke 8:45)
ü 누가 나를 건드렸느냐?
- Why do you not judge for yourself what is right? (Luke 12:57)
ü 너는 왜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않는 것이냐?
- For who is greater, the one seated a table or the one who serves? (Luke 22:27)
ü 식탁에 앉은 이와 음식 수발을 드는 이중에서 누가 더 훌륭하냐?
- Why are you sleeping? (Luke 22:46)
ü 왜 자고있느냐?
- Have you anything here to eat? (Luke 24:41)
ü 여기 아무거라도 먹을만한 것이 있느냐?
- What are you looking for? (John 1:38)
ü 뭘 찾고 있느냐?
- Do you want to be well? (John 5:6)
ü 네가 낫고자 하는가?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가?)
- If you do not believe Moses’ writings how will you believe me? (John 5:47)
ü 네가 모세가 적은 것도 믿지 않는다면 나를 어떻게 믿겠는가?
- Where can we buy enough food for them to eat? (John 6:5)
ü 어디서 저들을 먹일 충분한 음식을 살 수 있겠는가?
- Does this (teaching of the Eucharist) shock you? (John 6:61)
ü (성찬의 가르침) 이것이 놀라운가?
- Do you also want to leave me? (John 6:67)
ü 너 또한 나를 떠나고 싶은가?
- Why are you trying to kill me? (John 7:19)
ü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는가?
- Woman where are they, has no one condemned you? (John 8:10)
ü 여인아, 그들은 어디 있는가?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은 것이냐?
- Do you believe this? (John 11:26)
ü 네가 이것을 믿느냐?
- Do you realize what I have done for you? (John 13:12)
ü 내가 네게 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겠느냐? (발 씻긴 의미를 물음)
- Whom are you looking for? (John 18:4)
ü 너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
첨언, 4대 성인의 '문답식교육'을 소개하면서 실제 모델 사례를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말씀에서만 취하고 석가모니와 공자의 예를 영문으로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말씀이 영어권에서 영어 사용자들의 사고체계와 언어에 영향을 크게 미친데 비해서 석가모니와 공자의 말씀을 영역하거나 영어식 문화로 설명하는것에 제약을 느끼기 때문이다. (후에 시간 여유가 된다면, 논어와 불경 영문본을 구하여 살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