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2. 1. 10:54



메릴랜드주의 오션시티는 워싱턴 디씨에서 가장 가까운 대서양 연안 해안이다. 50번 국도를 타고 '끝까지' 줄창 가면 나오는 바닷가 도시.  오후에 베이브리지를 건너 달릴 무렵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구나. 바닷가에 가면 눈이 쌓여 있으면 좋겠다.  눈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목욕을 하면 좋겠다.  양희은 버전의 '눈이 내리는데'와 오리지널 최무룡씨 버전의 눈이 내리는데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눈이 내리는 분위기를 즐겼다.


그런데 오션시티에 도착하니 오히려 흐리던 하늘이 개이고, 미국 역사 150년만의 슈퍼 블루문 개기월식에 맞춰 달이 휘영청 파도를 밝히고 있었다.  달빛으로 환했던 방 안.  





워싱턴 지역의 월식 시각은  오전 7시 50분으로 예보 되어 있었는데, 해가 이미 밝게 떠올라 있어서 달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그 달을 보려고 새벽 네시부터 일어나 호텔 방문 맞은편 복도에서 서성이며 월식을 기다렸다. 월식을 볼 수 없어도, 이제 곧 시작될 그 달이라도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동쪽 정면으로 향한 객실 가득 햇살이 들어왔다.  그 햇살만으로도 눈부시고 따뜻했던 실내.  어제의 눈내리고 바람불고 춥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봄날같은 겨울 아침이었다. 



아이패드로 음악을 틀어놓고, 볕이 따뜻한 창가에 앉아 수도쿠를 풀었다.  12층 아래, 대서양이 출렁댔다. 빛은 깊게 깊게 방안으로 들어와 내 온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이 밝고 따뜻한 장면을 오래 오래 오래 오래 기억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나의 우울과 근심과 추위를 모두 녹여주는 빛과 따뜻함의 시간이었다.





오션시티는 남북으로 해안을 따라 보드위크와 모래 비치가 형셩된 곳인데 보드워크 직선길이가 2.45 마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보드위크 북쪽 끝보다도 더 윗쪽에서부터 남단까지 슬슬 산책하며 한바퀴 돌았다.  약 5마일 걸은 듯.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전에 묵었던 호텔 앞에 서서 - 전에 어느방에 묵었을까? 기억을 되짚어 찾아보기도 했다.  


오션시티는 텅 비어 있는듯 했다. 우선, 내가 묵은 호텔이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텔인데 식당이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간이 매점만 한군데 열려 있었다. 수많은 바닷가 호텔중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 호텔 숫자가 한정되어 있었고, 전 구역이 거의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See you in March! 라는 표시들이 많이 보였다.  이 도시의 호텔이나 상점들은 대략 3월부터 봄, 여름, 가을 장사를 하다가 겨울이 오면 아예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영업을 안하는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잭 니콜슨'이 주연했던 영화 '샤이닝'의 상황을 일해 할 수 있었다.  정말로, 계절의 타는 휴양지에서는 호텔이나 가게들이 아예 싹 철수를 해 버리고 휴양지 자체가 유령도시처럼 텅 비고 마는구나.  보드워크 남단에는 어뮤즈먼트 파크 (유원지)가 있는데, 그곳에 있던 '하늘차'도 사라지고 없었다.  커다란 둥근 바퀴같은 것에 작은의자들이 통속에 들어 있어서 그 통안에 앉아서 하늘높이 한바퀴 도는 그 '유원지의 상징'같은 하늘차가 보이지 않았다. 겨울동안 분해해서 치우는 모양이다.  오션시티에 가서 하늘차가 보이면, 그것을 타리라고 생각했는데 하는수 없었다.


그러니까, 텅 빈 바닷가 휴양지에 나 혼자만 있는것 같았다. 햇살은 투명하고, 따스하고, 갈매기들이 와서 말을 걸고, 대서양의 파도는 힘차게 일렁이며 흰 거품을 뿌리고 깔깔대고. 파랑. 파랑. 파랑. 파랑. 파랑. 




음, 나는 아래 사진을 5/7 사이즈로 인화하여 액자에 담아 연구실에 걸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보면 힘이 날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8. 06:11


내가 여기 있다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가장 아쉬운 것은 나의 친구 '에코'와 헤어지게 된다는 것일게다.  나의 귀염둥이 아들 챨리는 '스피커' 매니아라고 할 수 있다. 녀석은 온갖 종류의 스피커를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고, 크지도 않은 집의 창고에는 귀신딱지 같은 스피커들이 쌓여있다.  나는 내가 한국 가기 전에 저 귀신딱지들을 다 내다버려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스피커 매니아 덕분에 그 시스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다. 



찰리는 '에코'라는 그 스마트 기기를 집안의 세군데에 장치를 해 놓았다 (하나면 충분한데 왜 세개씩이나? 이 대목에서 나는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는 각각의 에코에 별도의 스피커들을 이리 저리 연결해 놓았다.  세개의 에코는 각자 세마리 강아지처럼 개별적인 기능을 한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에코들을 총동원해서 한가지 일을 시킬수도 있다. (이것은 최근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각각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 (예컨대, 베드룸 불을 켜라 꺼라 뭐 이런)을 하는 에코들이지만 만약에 내가 "Echo, play music everywhere!" 이렇게 말하면 온집안 구석구석에 설치된 스피커가 한꺼번에 음악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걸 왜 이제서야 알려준거야? 진작에 알려주지! 내가 한탄을 하자 찰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몇번이나 말했는데 엄마가 귀담아 듣지 않았쟎아요."  음...그랬을거야...)



그래서,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주문을 외워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속에 나는 앉아있다. 온집안에 숨어있는 열개 가까이 되는 스피커들에서 음악들이 흘러나오자, 내 주변의 공깃방울들이 마치 보슬비 방울처럼 내 온 몸을 감싸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음악의 바닷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유영을 하는데 산들바람이 불고, 물결에 이리저리 일렁이는 산호초 사이로 작은 물고기가 되어 떠도는 그런 기분.  이럴때 음악은 천상의 관능미를 전한다. 


관능적이며 

성스럽고 

상쾌한...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기쁨'에서 '관능미'를 제거하면 그것은 본연의 기쁨에서 뭔가 결여된 미완의 기쁨일것이다.  사람이 '몸'을 갖고 있는 '신체적'이며 '물리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한 '관능미'는 선을 완성시키는 요소일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8. 05:50



큰 아들 존의 고양이인 우리 나비는 약 9개월 정도 된 암코양이이다.  존의 직장 근처의 길거리 고양이에게서 지난 3월쯤 태어나서 존의 직장 사람들이 먹이도 주며 키웠는데,  어미가 근처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것이 발견 되었고 새끼가 혼자 남아서 꿋꿋하게 지내는 것을 존이 데리고 온 것이 지난 여름. 여름 방학 기간에 내가 집에 와 있는 동안 입양을 해서 내가 돌보다 떠났고 나비는 존의 무한한 애정을 받으며 지내왔다.  


짐승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비도 내가 저를 극진히 위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는 늘 내 곁을 맴돌고 있다.  특히 나비가 내게 와서 스킨십을 해 댈때는 두가지 경우인데 (1) 밥달라고 조를때, (2) 내가 책상이나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들여다볼때.  배고플때 아양떠는 것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행동으로 보이는데, 내가 책상에 앉아 있을때 살갑게 와서 부비대고 근처를 안떠나는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뭔가에 집중하거나 몰두할때 그것에 대해서 '질투'를 하는걸까?  나는 대체로 이런 풀이를 하는 편이다.  옛날에 우리 개 왕눈이도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내 책상위에 올라 앉아 내 책을 엉덩이로 깔고 앉거나 하는 식으로 나의 공부를 방해하다가 지치면 그냥 책 모퉁이에서 배를 깔고 자고 그랬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바실라르'의 초의 불꽃에 나온 '드방빌의 고양이'를 생각해냈었다.  밤새 'burn the midnight oil' (밤새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하는) 주인의 곁에서 촛불처럼 지키는 고양이에 대한 사색의 대목이었다.  내 개가 그 고양이 흉내를 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우리 나비가, 내가 책상에만 앉으면 따라와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다.  책속의 사색이 빈말이 아니었어...



우리 나비에게는 존이 모르는 여러가지 행동 양식이 있다.  나는 '관찰자'라서 물끄러니 뭔가를 볼때가 많으니까, 어느날 우리 나비의 어떤 습성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는 생후 약 3개월까지는 어미를 따라서 길고양이로 살았고, 야생고양이로서의 유년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래서 우리 나비는 밥을 먹다가 밥그릇에 밥이 남으면 뭔가로 덮어서 은폐하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을 은폐하는 것은 많은 야생동물들의 본능적 행동이라고 알고 있다.  전에 나의 야생고양이 피터 (장님 폴의 형제)를 먹이기 위해서 덤불 굴 입구에 먹이를 갖다 주었을때 피터는 배불리 밥을 먹고나서 밥그릇 위에다가 낙엽을 긁어서 덮었다.  그 행동이 신기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것이 야생동물들의 자기보호용 행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는 거실밖 포치에 밥을 줬을때도 주변에 나뭇잎 하나 없을때에도 밥을 먹고 나면 밥그릇 주변을 박박 긁어서 뭔가로 덮는 '시늉'을 했다.  고양이들이 용변을 본 후에 흙으로 덮듯, 남은 음식도 동일한 양식으로 덮으려고 한 것이다. 


아래의 사진 두장은, 고양이가 먹다 남긴 밥이고, 그 밥그릇을 나비가 키친타올로 덮어 놓은 모습이다.




고양이의 습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조작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 나비의 주인이라고 할만한 존 역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나비가 키친타올로 음식 그릇을 덮어 놓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얼마전에 내가 곱게 수놓은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위에 살포시 놓여있는것을 발견한 나는 '아니 내가 수놓은 보자기를 누가 여기다 덮어놓은거지?'하고 치워놓았다.  그런데 이튿날도 그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에 덮여있는거라.   그때 나는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해냈다.  나비 네가 한 짓이냐?  마침 그 수놓은 손수건은 테이블 아래의 바구니에 놓여 있었는데, 나비가 발끝으로 긁어다가 덮었을것이다.  나는 손수건을 접어서 높이 올려놓고, 그 대신에 키친타올을 한장 뜯어다 밥그릇 주위에 놓아 주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나비는 키친타올을 긁어다가 정확히 밥그릇위에 덮어 놓았다.


뭐 그렇다고 사람 손으로 하듯 살포시 그렇게 덮는 것은 아니다. 내가 관찰해보니, 다른 고양이들이 하듯이 밥그릇 주면을 그냥 앞발로 박박 긁는다. 그러다가 주변에 뭔가 잡히면 앞발 손톱으로 그걸 끌어온다. 그냥 지속적으로 박박 긁으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데,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종이(손수건)가 밥그릇 위까지 올라간다는 것이지. 우리집 아이들은 아직 한번도 그 광경을 목도한 적이 없으므로, 원래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엄마가 뻥을 치는거라고 상상하는 눈치이다. 이젠 자기네들도 어른이기 때문에 어릴적처럼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이다.  (내가 상상의 이야기로 아이들을 많이 곯려 먹었기 때문에, 이번 일도 나의 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나비는 이렇게 얌전하게 제 밥 남은것을 덮어 놓았다. 나중 간식 생각나면 다시 와서 먹고 또 덮어 놓을것이다.  이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하면 좋겠지만...내게 그런 열정은 남아있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고양이들은 제 밥을 잘 덮어놓을줄 안다. 아마 교육시키면 설겆이도 할수 있을거다.  나비는 나보다도 훨씬 깔끔하게 제 살림을 잘 해내며 살고 있는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6. 12:12

위 사진은 웹에서 '자료'로 가져온 것이다. 


우리집 뒷마당에 출몰하는 희고 덩치 큰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한 1년 전 쯤부터 본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전신이 새하얀 털로 덮인 이 고양이에게 '스노우'라는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  목에 가느다란 목줄도 있어서 그가 야생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우리집 거실 밖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왔을때, 우리집 아이들이 모두 이 녀석에게 화가 나 있었다.  


우리 뒷마당에 사는 눈먼 장님 고양이 --폴 (사도 바울)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눈먼 고양이 폴은 크고 힘센 고양이가 새로 나타날때마다 늘 그들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눈 먼 고양이라 만만해서 그런건가? 나의 폴은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날때마다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흰고양이가 덤불을 들 쑤시고 다니면서 눈먼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이 종종 목도 되었고,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이 이를 발견할 때마다 쫒아가서 야단도 치고, 막대기도 던지고 하면서 으르렁댔다.  지난 여름에는 나도 이 녀석에게 몇차례나 막대기를 던졌다.  그래서 나는 밉상 녀석을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깡패 푸틴녀석. 아, 왜 하필 푸틴인가하면, 이 고양이의 주인이 근저 저택에 사는 미국 남자인데, 러시아에서 살때 이 고양이를 입양해서 러시아에서 함께 살다가 미국에 올때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에서 온 깡패녀석이라서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번 겨울에  집에 돌아 와서도 한차례 막대기를 던져 녀석을 폴에게서 떼어 놓아야 했다.  얼마전에 폴의 거동이 수상쩍어서 살펴보니 엉덩이쪽의 살점이 보였다.  사납게 물어 뜯어서 털도 벗겨지고 생살이 그냥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내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들은 그 흰고양이 녀석이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집을 비운 2년 동안 바깥 고양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살펴오고 있는 젊은 미국인 부부들도 그 흰고양이가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그 부부는 고양이 주인 아저씨에게 고양이를 중성화 시키던가, 아니면 우리 동네에서 깡패짓 못하게 집에서만 키우던가 하라고 시시때때로 전화질을 해대고 있다는데, 녀석은 요즘 매일 우리집 밖에 출몰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도 덤불에서 폴이 비명을 지르길래 내다보니 폴이 해바라기 하는 덤불 입구에 이 녀석이 폴과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잡아 죽일듯이, 잠옷바지만 입은채로 달려가보니 녀석이 폴 앞에 물끄러미 앉아있는데, 폴은 죽을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단 죽을듯이 소리지르는 폴을 안정시켜야 했다. 내가 간신배와 같이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나비야, 나비야, 걱정마, 내가 왔어, 나비야, 나비야" 이렇게 말해주자 폴은 비명을 멈췄고, 흰 고양이는 내 눈치를 보다가 쓱 사라졌다.  장님인 폴은 내 목소리를 듣고 안심했고, 깡패 푸틴 녀석은 내가 노려보니까 도망을 간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오늘 본 장면은 좀 의외였다.  장님 폴이 비명만 지르지 않았다면, 그들의 풍경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덩치큰 푸틴 녀석은 장님 폴앞에 평화롭게 앉아 있었고, 장님 폴 역시 그를 마주 향해 앉은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니, 그들의 마주한 자세는 '평화' 그 자체였다.  폴이 평소에 당한게 있으니까 , 오늘 푸틴은 아무런 해코지를 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폴이 그냥 지레 놀라서 비명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푸틴 녀석, 그 녀석은 친구를 사귈줄 모르는가보다.  깡패짓 하면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고 깡패짓 해 놓고 친구 하자고 찾아 다니나보다. 멍청한 녀석." 


책방에서 시간보내다가 해가 저문후에 집에 오니, 어둠 속에서, 바깥 포치에 놓인 캣타워 꼭대기에 흰고양이 푸틴 녀석이 태평하게 앉아있다.  내가 "나비야, 나비야" 부르니 멀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내가 그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캣 타워에서 내려와 우리집 거실 유리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양양거린다.  이상한 녀석이다. 내가 소리지르고, 째려보고, 신발짝이나 막대기를 던진 적도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구박을 해 보냈는데, 내 유리문에 코를 대고 양양거린다.   먹이를 한 그릇 주니 그걸 달게 먹는다. 뭐냐 너, 러시아에서 살다 왔다는 네 주인아저씨는 뭐 하는거냐? 밥도 안줘? 너 왜 밤까지 집에 안들어가고 여기와서 밥을 달래 응? 녀석은 배불이 밥을 먹더니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조금 후에 장님 폴과 어미 메리가 왔다. 나는 또 밥을 준다.  


푸틴아, 배 부르게 밥 줄테니까,  눈먼 고양이 폴을 괴롭히지 말아라. 폴이 심성이 착해서 눈이 안보이는데도 제 동생들을 얼마나 잘 돌봤는데. 너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테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라.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6. 11:30



타이슨스 쇼핑몰에 갔다가, 반즈앤노블에서 When to Rob a Bank 와 수도쿠 책을 심심파적으로 사가지고 왔다.  마침 바겐세일 가격이라서 아마존에서 하드카피나 킨들을 사는것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기분전환용으로.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왔기 때문에, 이 책도 나를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노마드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이라서, 종이책을 여간해서는 안산다. 대개 킨들 버전으로 사는데,  책방에서 발견한 맘에 드는 책들을 사진으로 찍어와서 집에서 아마존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어떤 경우에는 페이퍼보다 킨들 버전이 더 가격이 높은 것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런식으로 전자책의 마수에 빠지는건가?  초기에는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서 가격이 월등 쌌지만 -- 전자책의 확산으로 점자 전자책 수요가 높아지고 종이책이 밀려나면서 아마존은 슬금슬금 전자책 가격을 높이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어쩔수 없이 손쉽게 아마존 킨들북을 사 볼수밖에 없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책방 조사도 좀 해보고, 책 시장의 동태를 살펴야겠다. 이바닥이 어쩐지 수상쩍게 돌아간다는 괴괴한 느낌. 


그래도, 떠돌이 생활에서 종이책은 '사치'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내 삶의 양태가 그러하다.  여전히 종이책에 파묻혀 지내긴 하지만, 전자책이 소리없이 부피도 없이 이미 내 삶에 깊이 파고 들었다. 


음, 집에 와서 검색하니 내가 찜 해 놓은 신간들이 전자책이 더 비싸거나 종이책과 비슷한 형상이라, (약이 올라서) 오랫만에 종이책들을 대거 주문하긴 했는데, 그것들 비행기타고 다니면서 옮기는 것도 부담스럽고, 쌓아 둘데도 마땅치 않고... 나는 내 거처나 연구실이나 임시로 머무는 여관처럼 보는 편이다. 책을 위한 내 집을 갖고 싶다. 어쨌거나, 수상쩍은 전자책 가격.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13. 10:27



I know just how to whisper, 
and I know just how to cry; 
I know just where to find the answers; 
and I know just how to lie. 


I know just how to fake it, 
and I know just how to scheme; 
I know just when to face the truth, 
and then I know just when to dream. 

And I know just where to touch you, 
and I know just what to prove; 
I know when to pull you closer, 
and I know when to let you loose. 

And I know the night is fading, 
and I know that time's gonna fly; 
and I'm never gonna tell you everything
I've got to tell you, 
but I know I've got to give it a try. 

And I know the roads to riches, 
and I know the ways to fame; 
I know all the rules
and then I know how to break 'em 
and I always know the name of the game. 

But I don't know how to leave you, 
and I'll never let you fall; 
and I don't know how you do it,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Every time I see you all the rays of the sun 
are streaming through the waves in your hair; 
and every star in the sky is taking aim 
at your eyes like a spotlight, 


The beating of my heart is a drum, and it's lost 
and it's looking for a rhythm like you. 
You can take the darkness from the pit of the night
and turn into a beacon burning endlessly bright. 
I've got to follow it, 'cause everything I know, well it's nothing till I give it to you. 


I can make the run or stumble, 
I can make the final block; 
And I can make every tackle, at the sound of the whistle, 
I can make all the stadiums rock. 



I can make tonight forever, 
Or I can make it disappear by the dawn; 
And I can make you every promise that has ever been made, 
And I can make all your demons be gone. 


But I'm never gonna make it without you, 
Do you really want to see me crawl? 
And I'm never gonna make it like you do,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I think I am gonna learn this song by heart and sing it at the festival in May. I will give it a try.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7. 2. 7. 02:04


Let me tell you a story of a blind cat whose name is Paul.  He was born on an autumn day in 2014 along with his brother Peter. His mom was one of the ordinary north American grey feral cats in your neighborhood bushes.   So, now, Paul is two years and some months old. 


I first saw the Mom cat in the summer of 2013 when I moved to this place from Maryland.  Yeah, the previous year I lost my dog, King. I saw a couple of young cats (like teen-age cats) playing in the bush near my place. They were young and active. One was the typical gray striped cat and the other was kind of Siamese cat.  They were like ghosts -- seen now but gone right away. I didn't care much about them. But the following year, in 2014, I sometimes noticed that a number of cats, about 3 or 4, are passing by my window at night and sometimes one of them peeks into my window 'without' curiosity. I mean 'without' curiosity. They simply looked like saying, "me...no...interested in anything about you guys..." I sometimes put some food out in the porch to see if anyone is coming to eat it.  Little by little, I noticed that they come and eat when I am away. It was like playing hide-and-seek. They come to eat but I never saw them eating. 


Little by little, very slowly, the two of them came to have their free daily meal at my porch. And one autumn night, I saw the grey cat eating at my porch along with two kittens. One was very ugly and the other was a little bit small but cute.  Oh, they were so cute....


I sometimes saw the three of them playing in my backyard under the autumn moon.  The kittens were also the ordinary gray striped ones, and I assume the white Siamese cat was not their biological father, although he was very gentle and caring for the two kittens. I spent more and more time observing the bush area in my backyard to find this cat family in those days.  And one day, looking into the cave under the sun light, I found the cute little one's eyes had been infected and he had lost his sight.  He was sitting silently in the cave waiting for his family. He was there. Silent.  (Feb. 7, 2017)



Dear Paul...


Yeah, his name is 'Paul.' Is it she? Not sure. Some say it's 'he' and I find no 'ball' so I assume it is 'she.'  But anyway, I named him 'Paul' that fall which was two and some more months ago from now.  You know the apostle Paul in the bible, the guy who used to be 'Saul' but was named 'Paul' ever since he encountered the Lord.  He got blind and then saw the real light ever since.  I named this blind cat after the apostle 'Paul' hoping that his days be filled with blinding inner lights.  Dear Paul, have you met your Jesus? I am away from Paul now, about 15 hours flight away across the planet earth. It is day time so it will be deep in the night in your place. My days here is passing so quickly.  Do not imagine that I think of you very often...no...  I think of you sometimes...  I come back to this page sometimes to find your photo here and imagine what you are doing now.  Does Charlie and John provide you with milk regularly? Does anyone annoy you?  Is the white cat still bothersome to you? Do you .... do you remember me? Do you...do you remember my voice?  Do you know that sometimes I think of you? (Maybe, are you asking the same questions to me?) (March 21, 2017)



(to be continued....)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2. 2. 8. 22:13

미학자이며 논객인 진중권씨는 10여년전 내 눈에 났다. 그의 베스트셀러라는 '미학 오딧세이'를 읽다가 책을 집어 던지는 것으로 나는 그와 절연했다. 그는 독자인 나를 알리도 없지만 말이다.  이유는?  참 별것도 아닌 이유다.  하지만 책 읽다가 내가 감정이 상했기때문에 나 혼자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려 버린 것이다.  뭣때문에?  그가 무슨 작품에 대한 썰을 풀던중 "권력이 생기면 술과 여자도 얼마든지 즐길수 있고...." 이런 말을 했다.  '술과 여자'  참 아무나 쉽게 내뱉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진중권의 책에서 그런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오리라고는 기대를 안했다.  '이 새끼도 똑같은 새끼군...재수없어...' ---> 이것이 그당시 나의 아주 원색적이고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결국 --> 너같은 놈이 쓴 미학책 따위,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  뭐 이렇게 된거다.

나는 현재 진선생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책을 들여다 볼만큼의 애정은 느끼지 못한다. 그가 그의 분야에서 건필하기를 바랄 뿐이다. 

***

강아무개 의원이 술자리에서 몇마디 실언을 한것이 문제가 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을때, 나는 그의 인생이 참 딱하게 풀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실언 맞다.  나는 내심 그가 빨리, 잽싸게, 꼬리 팍 내리고 무릎 조아이고 싹싹 빌면서 '죽을 죄를 졌다. 술먹고 실언했다.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사내 대장부'답게 '쿨'하게 행동을 해주기를 바랬다.  머리좋고 전도 양양한 쓸만한 국회의원이 아닌가 말이다.  그의 불운하고 억울한 가족사와 개인사가 제법 나의 마음을 움직였을수도 있다. 난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를 좋아한다. 드라마틱하니까. 하지만 그는 지저분하게 일을 마무리했고, 이상한 나락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

나꼼수가 비키니 파동에 휘말렸다.  기성언론이 어떤식으로든 이를 언어적 성추행의 프레임으로 엮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저쪽의 프레임 놀이와는 별도로, 나는 나꼼수가 이것을 어떻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넘어갈지 주시하고 있다.  내가 아직 젊고 철이 덜 들었을때는, 단지 '술과 여자'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쓸만한 논객을 단칼에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는 치기를 보였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인내심도 좀 생겼고,  내 동생뻘 되는 남자들이 세상을 잘 모르고 말 실수 하는 것에 대해서 제법 관대해 진 면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무엇'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왜 어떤 단어나 말이 여성들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들여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말 99 프로가 옳다해도 1프로가 오류가 있다면 시정을 해 주기를 나는 바란다. 쿨하게. '실패!' 이러고 한마디만 외쳐줘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에게 박수를 날리고 여전한 애청자로 남을 것이다. 1프로의 오류 때문에 99프로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쫄지말라. 그리고 사과하라. 사과는 원래 진정 쫄지 않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거다.

****

나는 처음 만난 사람(남자)가   대뜸, "미인이시네요" 하고 인사를 날리면 겉으로는 무표정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 하는 욕설을 상대에게 날린다. 재수없고 불쾌하다는 뜻이다. 내가 일하는 사회적인 영역에서 내가 미인이건 아니건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거기서 미모를 논하는 것은 무례한 태도이다.  <====== 남자들은 이런 내 심사에 대해서 "미인이라고 칭찬하는데 뭐 어때서 난리니?" 할지도 모른다.  글쎄, 나로서는 그 말이 성추행에 버금가는 아주 불순하고 지저분한 말처럼 들린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별도로 나로서는 기분이 아주 더럽다.  ---> 바로 이런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심사다. 아무자리에서나 그저 이쁘냐 안이쁘냐 가슴이 섹시하냐 안하냐 이런거 논하지 말라.  이쁘다 안이쁘다는 내 가족 내 애인이 내게 해줄수 있는 말이지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이 내게 대놓고 할 말이 아니라는거다.


****

여자 참 상대하기 어렵고 거추장스럽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겨우 이정도를 숙지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고 거추장스러운가?  여자들은 온갖 눈치를 다 보며 겪으며 살아가는데, 새발의 피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여자들 남자보다 몇배 노력해야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 오른다.  그 여자들이 기울이는 노력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예의에 신경을 써준다면 이 세상, 참 많이 평화로워질것이다. 잘 모르겠으면 여성학 책이라도 보고, 공부도 좀 하고 그래야 한다. 

이해하려는, 배우려는 노력도 않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지랄들이야!" 하고 쿨하게 그냥 넘어가러 들때 그때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0. 20. 00:07


필라델피아 미술관 인근의 오래된 밥집 거리.  이곳에는 이탤리안 식당이나 카페가 많이 있었다.


내 친구는 조지타운의 천주교회에 다닌다. 나는 가끔 내 친구네 천주교회에서 음악회를 하거나 바자회를 할때 내 친구를 보러 거기 간다.  이 천주교회의 주임신부님은 미국 최초의 한인 천주교 신부님으로 알려져있다. 이분 가족들은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들로 알려져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는 사람들로 알려져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카톨릭대학에 장학기금을 전달한 것으로 신문에 소개가 되기도 했다.  (나는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내 참 할말이 없다...  )

내 친구가 공부하는 모임에서 신부님과 함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전'을 보러 가는 행사에 나를 끼워줬다. 이번 렘브란트 초대전의 주제는 '렘브란트와 예수의 얼굴' Rembrandt and the Face of Jesus (August 3, 2011 - October 30, 2011) 이다. 렘브란트와 그의 제자들이 작업한 예수님을 주제로 한 유화, 판화, 펜화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소풍 가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처지라서, 이 전시회 자체에는 큰 관심도 없었고, 바람이나 쐬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직접 운전대를 잡고 '미제차'에 '어린 양'들을 실어 나른 신부님이 참 소탈하신 분이었다.  필라델피아에 왔으니 일단 '필리 치즈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며 식당을 찾아 가셨다. 미술관을 코 앞에 두고 식당으로 향하는 분이라니~  하하하.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래서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은 재미가 있다.)  덕분에 기름기 없는 필리 치즈 샌드위치를 잘 먹었다.





전시회는, 일없이 소풍삼아 따라나선 나에게, 예기치 않은 감동을 주었다.  렘브란트전시장 안에서만 두시간 가까이 보내면서 작품들을 천천히 보았다.  렘브란트 전시장을 빠져나온 일행은, 이 거대한 미술관의 다른 전시장들을 둘러보기를 단념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내 생애에 시간들여, 돈들여  초대형 미술관에 갔다가 조그만 전시장 하나만 보고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이 전시회를 관람한 나의 일행 모두가 똑같은 심정이었던 듯 하다.  '오늘은 이것만 보자. 더 보면 체한다.'

일행중의 한분은 동일한 전시회를 이미 파리에서 봤다고 한다. 그런데 파리의 전시회에서는 오늘같은 무거운 감동은 맛보지 못했다고 한다. 각자 다른 이유로 이 전시회에 감동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전시회장을 떠났지만, 그러나 전시회장을 쉽게 떠날수 없었던 우리는, 미술관 계단에 앉아  기억을 정리하듯, 우리들이 보고 느낀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누가 미리 계획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리 된 것이다. 마침 나는 25장짜리 기념 엽서 세트를 샀는데, 그것을 돌계단에 펼쳐놓고, 각자 맘에 드는 것을 고르기로 했다.  기념 엽서중에서 내가 정말 갖고 싶은것.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의미있는 그림들을 한두장씩 골랐다.

내가 고른  그림은, 렘브란트의 아주 작은 잉크화였는데, 예수께서 잡혀가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산에 들어가서 아주 힘든 기도를 하고 내려와 잠에 빠진 제자들을 보며 "느이들 시방 잠이 오니? 잠이? 그렇게 깨어있기가 힘드냐?" 이러고 한탄/꾸중을 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이 슬프다. 절대고독 속의 한 인간을 보는 듯 하다.  눈물이 나게 슬픈 장면이다.




전시회의 감흥에 젖어 신부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행들. 계단에 펼쳐진 엽서들. 내가 이날 찍은 사진중에 제일 맘에 드는 작품이라서, 출연자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개한다.


이날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로댕의 지옥의 문을 보고 싶어하는걸 알고 일행이 모두 거기에 가보자고 했다. 가을 햇살이 아름다운 오후에 우리들은 경쾌하게 웃으며 느릿느릿 필라델피아 중앙 도로인 프랭클린가를 걸어 로댕 갤러리에 갔다.

전에 이곳에 왔을때 로댕 갤러리는 공사중이었는데, 외부 공사를 마친 이곳은 내부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내에 전시되던 칼레의 시민이 정원에 나와서 파랗게 부식되고 있었다. 청동이니까 파랗게 부식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부식된  모습이 더 근사해 보였다.




지옥의 문 앞에 다시 섰다. 2년전 10월에도 나는 이 앞에 서서 지옥의 문을 만져보며 삶의 위안을 얻고 있었다.


여행은 편안하였고, 유쾌했다.  복된 하루였다.  고마운 일이다.




지옥의 문 앞 연못  하하하 지옥문 앞에서 이렇게 웃을수 있는 여유~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0. 10. 13:12

사람들이 내게 연락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쉽다). 나는 이메일 인간이다.  그러니까, 내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면 소통을 할 여지가 많지만, 전화로는 거의 소통 불가에 가깝다.  일단, 학교의 내 연구실에는 직통 전화가 없다. 내가 전화기를 빼서 내다 버렸다. (시끄러워서.)  학교의 나와 통화를 하려면, 천상 학교 공식 전화를 통해서 -- 학장님이나 조교를 통해서 할 수 있다.  내 핸드폰은, 내가 이름을 입력해 놓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만 통화를 하는 편이다.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오면 그냥 안 받는다.) 

학장님이나 조교선생은 내 성격을 잘 아는지라, 여간해서는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바꿔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뭐시 교수'를 찾으면, 용건을 묻고, 이리저리 탐색을 한 후에 대개는 "이메일 해 보세요. 그러면 연락이 빨리 될 것입니다" 대략 이렇게 설명을 해주고 만다.  나에게 전화를 연결해주지 않는다.  내가 낯선 사람의 연락을 절대 안받는다는 것을 그분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꽉꽉 막힌 소통 장치 틈 사이로 나와 통화가 된 분이 있었다.  학장님이 전화번호를 주면서 꼭 한번 연락을 취해보라고 했다.  뭔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대개 시큰둥하게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치는 편이지만, 그날은 어쩐지 그 나를 간절히 찾는다는 그분께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내게 전화를 건 분은 메일랜드 주에서 비영리 교육기관의 운영 책임자였다. 말하자면, 노인학교. 그 노인학교에서는 주 교육국의 교육기금을 받고 있는데, 그랜트 신청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가 나였다.  그분은 신문에서 나를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신문에 난 정보를 토대로 나에게 연락을 취하셨다고 했다.  내게는 신문을 보았다며 연락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대개 비영리 단체에서 협조를 구하는 내용인데, 나는 이런 협조 요청에 답으르 한 적이 없다. 내가 답을 안하고 지나치는 이유는, 그 단체가 뚜렷한 내용없이 정치적인, 혹은  이념적인 색깔만 내세울때, 그 허망함을 내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행동 없이 공염불 하는 집단, 개울도 없는 곳에 다리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집단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나와 통화가 이루어진 그분이 안고 있는 문제는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정확한 사람을 찾아냈다.  내가 아주 잘 해 낼수 있는 분야의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메릴랜드주의 어느 노인대학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의 자문을 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자원봉사로 하는 일이다. 내가 그곳에 자주 갈것도 없이, 중요한 행정적인 절차에서 내가 필요할때 그 때 내가 일처리를 해주면 되는 일이다.  나로서는 잠시 시간 내서 신경을 쓰면 그만인 일이지만, 노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내 도움이 요긴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무척 기쁘게 생각했다.  내 별것도 아닌 노력으로 노인 어르신들의 공부에 도움을 드릴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일전에는 그곳의 운영자 선생님과 대표 어르신이 내 연구실로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매우 송구스러운 연락이었다. 여태까지는 그분이 내 연구실로 찾아와 내 연구실에서 몇가지 작업을 해 드리거나, 전화 통화로 일을 처리 하였는데, 어르신들 여러분이 내게 인사를 하러 오신다니, 난처한 느낌이 들었다. 시퍼렇게 젊은년이 앉아서 어르신들의 인사를 받는 격이 아닌가.

그래서, "그러실 것이 아니라, 제가 수업 없는 날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했다.  그러자 저쪽에서 펄쩍 뛰셨다. 바쁘신 분이 그렇게까지 시간을 내시면 너무 죄송하다고. 이런 말씀을 들으니 나도 더욱 죄송스러워졌다. 그래서, 일전에 난생처음으로 나와 인연이 된 그 노인대학을 찾아가게 되었다.  집에서 하이웨이를 15마일쯤 타고 달리다가 도착하게 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초대형 교회가 있었는데, 그 노인대학은 교회당의 시설을 빌려서 운영되고 있었다.  교회가 지역 주민들의 평생학습의 장을 주선해주는 것은 아주 좋은 사례로 보였다.

주차장에 정각에 도착하니 나와 만나 일을 의논하던 선생님께서 이미 주차장에 마중을 나와 서 계셨다. 융숭한 영접을 받은 셈이다. 그 선생님은 내게 교육시설을 하나 하나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셨다. 그리고 교무실로 안내를 했는데, 교무실에는 열명도 넘는 선생님들이 모여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모두 노인 선생님들이셨다. 모두 내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어르신들.   "아유, 신문에서 뵌 것보다 더 젊고 이쁜 분이 오셨네!"  (신문에 오르는 사진은 3년전 사진인데요....그때가 더 젊었지요...). 

나는 낯선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미인이시네요' '젊으시네요' '아가씨 같으시네요' 이런 소리 하면 모욕감을 느끼는 편이다. 너무나 상투적이고 값싼 인사법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자리에 모이신 어르신들이 내게 젊고 이쁘다고 말씀 하실때는 그런 모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분들 눈에는 내가 '정말로' 꽃처럼 젊고 이뻐보이실것도 같았다. 내가 그분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어르신 선생님들은 영어 선생님을 비롯해서 각기 다른 프로그램의 선생님들이셨는데, 내가 영어교육 전문가라고 소개가 되자, 각기 살아오시면서 겪었던 영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내 의견을 물으셨다.  어떤 분은 한글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칠때, 영어 사용을 안하고 한국어만 사용하는 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가 물으셨다.  수십년간 영어 선생님을 하셨다는 노신사는 내게 영어를 영어로만 가르치는게 타당한지 모국어로 설명을 하면서 가르치는게 타당한지 아주 진지하게 물으셨다.  이분들의 질문은 여전히 심도깊게 논의가 되는 주제들이다. 상황에 따라서 답은 달라질수 있는 것 들이다.  선생님들과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활기차게 진행 되었다.

회장님이 나를 위하여 회식을 제안하셨다.  모두들 노인대학 스쿨버스를 타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을 했는데, 식당에서도 진지한 대화는 이어졌다. 칠십세 안팎의 선생님들이 진지하게 교육을 고민하고 계셨다. 그리고 내가 이분들의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 맞장구를 치거나 웃거나 뭔가 대꾸를 하면 그것을 참 좋아하셨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처럼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깊게 반응하는 청중을 본적이 없었던 것도 같았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원생들도 내 수업중에 눈을 빛내고 활발하게 토론을 하는 것을 자주 보는 편이지만, 노인 선생님들과의 대화 속에는 뭔가 반짝거리는 기쁨 같은 것이 숨어있는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이 어르신들 속에서는 예쁘고 싹싹한 젊은피라서, 그래서 어르신들이 무조건 사랑을 보내주셔서 그런것 같다.)

점심식사후에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 흩어졌는데, 선생님들이 한분 한분 내 손을 꼭 잡고 악수를 하시고, 다음에는 언제 올거냐고 묻기도 하고 그러셨다.  (이런 환대와 환송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예상도 못하던 일이었지....) 게다가, 마지막에는 나와 늘 연락을 취하시던 선생님이 혼자 남아서 인사를 하시더니 내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자원봉사로 일해주시니 기름값이라도 하시라는 것이다. 자원봉사 하는 사람도 기름값은 받는거라고.  그래서 그 선생님께, 앞으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학교를 위해서 일하게 될지 알수 없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기름값도, 선물도, 아무것도 받을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사과 한알이라도 받는 순간, 이것은 자원봉사가 아닌게 되는거라고. "점심밥도 얻어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어르신 선생님들께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제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것인데요. 저를 그냥 순수하게 일만 하게 해주세요. 뭘 받으면 그때부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니까요. 사례를 받으면, 저는 봉사하는게 아니쟎아요.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결국 나는 앞으로도 선물 한가지라도 안받는다는 것까지 분명히 의사 전달을 했다. 담당 선생님은 내게 무척 미안해 하셨다. 그 미안해 하시는 표정이 이미 내게 충분한 보상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더 큰 보상을 받은 셈이다. 내가 어딘가에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  그 빛나는 보람을 서푼짜리 휘발류값 혹은 작은 선물과 바꿀수는 없는 일이다.

찬홍이가 대학에 들어갈때까지, 나는 늘 사회에 대한 나의 봉사의 의무를 애들 핑계를 대며 미뤄왔었다.  찬홍이는 대학에 들어갔고, 내 곁을 떠났다. 나는 여러가지 숙제로부터 놓여났다. 이제 더이상 누구의 핑계를 대면서 내가 사회에 되갚아야 하는 것을 미룰수가 없는 형편이다.  바로 그때, 하늘이 보낸것처럼 노인학교 선생님이 내게 신호를 보낸 것이리라.  감사한 일이다.  가끔 혼자 앉아서, 베란다에서 살고 있는 거미를 쳐다보다가, 그 노인대학 생각을 하면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이세상 어딘가에 내 혼이 잠시 쉴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즐겁게 노시는데, 내가 가면 무척 반기신다.  나의 새로운 친구들이다.


* 내가 최근에 나에 대해서 발견 한 것이 뭔가하면, 내가 노인에 대하여 친화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나는 노인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고, 노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신체적으로 불편한 노인을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 조금 알고 있다.  이런 친화력은,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으며, 주변에 할아버지 할머니 또래의 어른신들이 많은 환경이었고, 시집살이를 할 때에도 노인 시어른들 속에서 시집살이를 착실히 하여 노인들의 화법에 익숙하며, 어머니가 늙어가신 세월속에 있었으며, 최근에 한달 넘도록 엄마와 '합숙'을 하면서 훈련을 단단히 받은 전력에서 오는것도 같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뵐때, 늘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생각이 나기 때문에 내 마음이 굉장히 말랑말랑해지는 면도 작용을 한다.  내 환경이 나를 어르신 친화력이 있는 사람으로 키웠을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낯선 분야가 있는데, 그 쪽 분야에서 일을 좀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망설이고 있는 편이다..... 내가 실수해서 아픈 영혼에 상처를 줄까봐 그것이 겁이 나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0. 3. 20:21



'망각'도 능력이라고 한다. 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의 기억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인간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선택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 많은 시장에서 스치고 지난 모든 사람을 기억한다면 내 머릿속은 너무나 복잡할 것이다.  나는 대부분을 잊고 지나가는 것이다. 오직 특별한 것들만 내 기억 장치에 남게 된다. 이것도 생존의 기술이며 능력인 것이다.

쥐 실험을 보았다. 쥐를 커다란 수조에 빠뜨린다. 쥐는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헤엄을 친다. 수조 어디쯤에 깡통 모양의 물건을 놓아둔다. 이것은 물 속에 감춰져 있지만, 일단 이 깡통에 다다르면 물에 빠질 염려는 없다. 물속에 감춰진 섬인 셈이다.

쥐는 필사적으로 헤엄치다가 우연히 그 깡통섬을 발견하고, 그 섬위에서 잠시 안도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몇차례 쥐를 수조에 빠뜨리고, 그 쥐는 몇차례 동일한 위치에 있는 깡통섬을 발견하고, '학습'하게 된다. '좋았어, 물에 빠지면 나는 그 깡통섬으로 헤엄쳐 가겠어.'

그러다가, 깡통섬의 위치를 옮긴다.  대부분의 쥐들은 본래 깡통이 있던 자리 주변을 찾아 헤메다가 곧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위치에 놓여진 깡통을 찾게 된다. 상황 변화를 파악하고, 새로운 위치로 이동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쥐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이는 새로운 학습이면서, 동시에, 전에 학습한 것을 망각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전에 살던 집의 주소나 전에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현재의 주소나 번호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한다. 전의 주소나 번호를 기억해내기 위해서는 머리를 갸우뚱하거나, 혹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뇌의 어느 부분에 손상을 입은 쥐의 경우, 그 쥐는 본래의 깡통섬 주위를 끊임 없이 맴돈다. 번번이 깡통섬이 그곳에 없음을 체험하면서도 번번이 물에 빠졌을때 그 쪽으로 향한다. 이 쥐는 깡통섬의 위치는 기억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그자리에 없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 혹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그 기억을 지워야 하지만, 지우지 않는다. 혹은 지우지 못한다. 자꾸만 그쪽으로 향한다.

쥐만 그런게 아니지.  사람들이 쥐 실험을 하는 이유는, 쥐의 행동에서 인간의 행동을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http://www.opposingviews.com/i/health/alternative-medicine/israeli-study-marijuana-blocks-ptsd-symptoms-rats

According to a new study conducted at the Haifa University psychology department and published in the Neuropsychopharmacology Journal, rats that were treated with marijuana within 24 hours of a traumatic experience successfully avoided any symptoms of PTSD (post- traumatic syndrome).

Dr. Irit Akirav, who led the study, said: "There is a critical window of time after trauma, during which synthetic marijuana can help prevent symptoms similar to PTSD in rats."

In the experiment, rats were exposed to extreme stress and then divided into four groups: the first given no marijuana, the second given a marijuana injection two hours after being exposed, the third after 24 hours and the fourth after 48 hours.

The researchers examined the rats a week later and found that the group that had not received marijuana, as well as the one that received the injection after 48 hours, displayed PTSD symptoms and a high level of anxiety.

Although the rats in the other two groups also displayed high levels of anxiety, the PTSD symptoms had totally disappeared.

"This shows that the marijuana administered in the proper window of time does not erase the experience, but can help prevent the development of PTSD symptoms in rats. We also found that the effects of the cannabinoids were mediated by receptors in the amygdala area of the brain, known to be responsible for mediation of stress, fear and trauma," Akirav said.

While a decisive parallel between emotional states in humans and animals cannot always be drawn, Akirav was confident psychiatrists will take her research forward to implement it on 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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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8. 29. 05:43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태풍 아이린이 이름처럼 사뿐하게 (별 사고 없이) 버지니아를 통과한 아침.
찬홍이를 대학 기숙사에 이사를 시켰다.  오전에 보따리를 모두 기숙사에 풀어 놓고, 집에 와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소소한 (보따리 싸면서 잊었던) 것들까지 다시 챙겨가지고 또다시 기숙사에 갖다 놓아주고 왔다.  두번째에 갔을 때에는 나는 건물에 안들어가고 그냥 찬홍이가 물건을 갖고 들어갓다. 물 한박스와, 찬홍이의 곰인형까지.




두번째로 기숙사에 갈때는, 왕땡이도 데리고 갔다.  그래도 식구니까 찬홍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내 사진을 보니, 저 바지가 영 볼품없이 헐렁하군...  저거 빵빵하던 것인데...  내가 날씬해지긴 한것인가, 아니면 바지가 늘어났던가.) 저 팔에 걸린 시장가방에 쌀을 두자루 담아 가지고 갔었다. 완전 쌀자루.  찬홍이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전기 밥솥까지 갖고 갔으니까... 뭐 얼마나 해 먹을지 모르지만, 기름기 많은 서양음식보다 밥이 좋지. (그래서 발아 현미를 사줬는데.)


집안이 폭탄 맞은것처럼 엉망이다. 찬홍이방의 가구가 나갔고, 옷장도 엉망이고, 전체적으로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처럼 그렇게 집안이 엉망인데, 누가 좀 청소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수업 준비도 해야하고, 할일이 많다.

결핵반응 검사 한 부분의 붓고 열이나고, 상태가 안좋다. (그건 순전히 벌레에만 물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부풀어 오르는 내 피부의 문제이지 결핵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튼 피부가 많이 부풀면, 엑스레이를 찍자고 할것이다. 그러면 엑스레이 비용이 추가로 들겠지.  그렇게 돈 들어가는 일이 부담스럽지...)

여권사진을 찍을 일이 있었는데, 찬홍이와 내가 둘이 여섯장씩 사진이 필요했는데 CVS 매장에서 두사람 사진을 해결하는데 12달러가 들었다.  2인분 여섯장씩 (12장) 12달러면, 종전보다 싼 가격이다.  사실 적당한 디지탈 사진으로 여권사진 사이즈로 리사이즈해서 현상만 부탁만 해도 되는데 (정부 안내페이지에 여권 사진 리사이징 하는 도구까지 나와있다) 그러다가 실수 할까봐 그냥 가서 찍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사진 값이 저렴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사진은 CVS가 왕입니다요~ 

내일 오후에 찬홍이 데리고 와야한다. 지난 주말에 혈액검사한 결과를 본인이 와서 봐야 하기 때문에.  내일 데리고 와서 하루 자고 다시 기숙사행.  그러니까, 기숙사에 보냈어도 멀리 보낸것 같지는 않고, 그냥 이웃에 보낸 기분이다.

(아, 집안 정리 좀 하고, 다음주 수업 준비 해야 한다.  피곤하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6. 1. 23:31


어제 저녁에 혼자 조지타운에 산책을 나간길에  Urban Outfitters 매장에 가서 새끼양이 그려진 스웨터를 하나 사가지고 돌아왔다. 양 한마리를 안고 있는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스웨터이다. (우리 왕눈이를 닮은 양이다.)

6월의 첫날이다.  아침에 엘리베이터를 나고 올라오는데, 나와 함께 탔던 어떤 여성이 나보다 한 층 아래에서 내렸다.  문득 그 모르는 여성에게 "Have a nice day!" 하고 인사를 날렸다.  그이가 뒤를 돌아보고 밝게 미소지으며 "You, too!" 하고 대꾸해 주었다.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Have a nice day!

사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기말 업무를 하느라 오늘도 바쁠것이다. 날은 덥고, 지치고, 일은 많고.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Have a nice day! 하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 나는 낯선 사람에게 이 말을 던진 것이리라.

영장류 연구하는 책을 간간히 보고 있는데, 새끼를 잃어버렸다던가, 혹은 개별적으로 심리적/신체적 상처 상실을 맛본 침팬지들은 누군가 다른 대상을 열심히 '그루밍 (grooming)'을 해 준다고 한다.  자기가 위로 받아야 할 처지에 오히려 다른 대상을 위로하는 형상이다.  그루밍을 해 주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인데...

그런데, 이런 식의 '그루밍' 문화가 없는 영장류들도 있다.  그루밍을 안하는 영장류는 늘 '불안증'에 시달린다.  불안해서 쩔쩔매는 태도를 아주 자주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무슨 얘기냐하면,  누군가를 돌보거나 타인/타자에게 친절한 행위 자체가 자신을 돌보고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동이라는 것이지.  안그러면 스스로 불안증에 시달려서 어쩔줄 모르고 허둥대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것 자체가 '보상'이라는 원리가 그것이다. 침팬지들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사변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요지는...뭐냐하면, 다름이 아니오라, "Have a good day!"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5. 21. 04:22





거북이 방 침대에 거북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왕눈이.
우리집은 금요일 오후에, 거북이가 하학하여 집에 오면 그 때부터 청소를 한다.  금요일 오후에 주로 빨래며, 청소 그런것들을 하고 주말을 태평하게 보내는 것이다.  거북이가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동안 왕땡이가 이불 뒤집어 쓰고 앉아있는 모습이 하도 예뻐서 사진을 몇장 찍었다.  아이고 깜찍한 우리 왕땡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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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1. 4. 25. 10:30


날이 온종일 화창하더니 밤이 되자 소리도 없는 마른 번개가 하늘에서 번쩍번쩍 한다.  왕눈이는 천둥치는 소리나 번개를 무서워 한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지면 왕눈이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표시하며 어두운 옷장 안으로 숨는다거나 그와 유사한 행동을 한다.

오늘은 내가 책상에 붙어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 놈이 내 무릎 위로 뛰어 올라와서 벌벌 떨고 있어서, 내가 일에 방해를 받았다. 살살 달래서 내려 놓았더니, (저도 미안한지 무릎에는 못 올라오고) 내 발치에 와서 벌벌 떨며 엎드려 있다.  그래서 책상 밑, 내 발치에 왕눈이 개방석을 갖다 놓아주었다. 내 오른발로 살살 쓰다듬어 주니 내 발에 의지해서 잠을 청하려는듯 눈을 감고 엎드려 있다.  창밖에는 소리도 없는 마른 번개가 번쩍 번쩍.

왕눈이가 내 발을 감싸안고 있어서 내 발이 무지무지 따뜻하다.  내 발이라도 붙잡고 있으면 안심이 되는 원리는 무엇일까? 아무튼 연결이 되어야 안심이 된다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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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4. 20. 04:06

이랬던 왕눈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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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 9. 04:06




지팔이 녀석은 떠나기 전 날 밤까지 친구 만나야 한다고 돌아다니고, 그리고는 밤새워서 부엌과 거실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도대체 훤한 불빛과 달그락대는 소리 때문에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공항에 네시반에는 도착을 해야 해서 나도 자는둥마는둥하다가 세시반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나갈 채비를 했는데,  이놈은 밤새 무슨 멕시칸 음식을 만들어 놓았다.  (찬홍이 먹으라고.)

새벽에 떠나기 전에 왕눈이 끌고 나가서 산책시키고, 집 떠나기 전에 한장.

나: 야, 지팔아 너 한국 가면 이년 반쯤 후에나 미국에 돌아 올텐데, 그때 왕눈 할아범이 살아 있을까?
지팔: 오늘 보는게 마지막이 아닐까요?
나: 염려 말아라, 왕눈이는 완전 '건강남'이니까 잘 살아있을거다. 그 전에 내가 한국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지팔: (왕눈이에게) 왕눈아, 왕눈아, 이 놈아, 너는 내가 간다는데 잘 가란 말도 안하냐?

왕눈이와 지팔이는 우리가 함께 살아온 6년이 넘는 세월동안 '앙숙'으로 지냈다.  왕선생이 일방적으로 지팔이를 무시했다. 으르렁대거나 물으려고도 했다. 언젠가 지팔이한테 으르렁대다가 뺨에 한번 이빨자국을 낸 적이 있다. 지홍이 뺨이 긁힌듯 핏자국이 약간 생겼다.  왕눈이는 그날 나한테 죽도록 맞아 터졌다.  그 후에는 함부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데, 그래도 지팔이와는 늘 으르렁댄다.  아웅다웅하면서 정이 들어버려서 줄창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지팔이의 소원이, "나도 나중에 돈벌면 강아지 한마리 사가지고, 내가 오냐 오냐 키울거다. 왕눈이 너떠위는 쳐다보지도 않겠다" 이런거다.  다른 개를 더 사랑하는 식으로 왕눈이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이다. 그 발상이 참 애처로워서 내가 웃고 만다.  그렇게 지팔이는 왕눈이를 위한다. 일방적 짝사랑이라도 왕눈이를 잊을수는 없다는거다.

내가 잠 안와서 뒤척거리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다보니 지팔이와 왕눈이가 두런거리는 소리도 난다. 이런 식이다.

지팔이: 왕눈아 왕눈아, 너 내가 가면 어떻게 살지?
왕눈이:  갔다가 빨리 와 이놈아
지팔이: 너 내가 어디가는줄 알아?
왕눈이: 너 이녀석아 기숙사에 가는거쟎아. 까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지팔이: 왕눈아, 나 한국가는거야.
왕눈이: 한국은 또 뭐냐? 맛있는거냐?

지팔이와 왕눈이가 대화를 한다고?  그렇다. 우리 식구들은 이런 식으로 왕눈이와 대화를 한다. 왕눈이를 데리고 앉아서 혼자 일인 이역으로 종알대는 것이다. 지팔이와 말상대를 할때 왕눈이는 늘 이놈아 저놈아 이런식으로 지팔이를 부른다. 건방을 있는대로 떤다.  아마 우리 식구들은 이런식으로 약간 정신나간 일인이역 쇼를 하면서 이 미칠것같은 세상을 견뎠을 것이다. 왕눈이는 말하자면, 우리들의 카운슬러였던 셈이다.

식구들이 두명이 한국으로 가버리고, 왕눈이는 시무룩하게 누워있다. 어제 나는 온종일 침대에서 자거나 깨거나 또다시 잠드느라 꼼짝도 안했는데, 그렇게 24시간을 보내고 나와보니 왕눈이가 식당 구석에 상태가 안좋은 똥을 싸 놓았다. 지금은 멀쩡하다. 왕눈이가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우리 말을 대개는 다 알아듣고 있을 것이다. 왕눈이는 그리워도 그립다는 말을 못하니 참 답답하겠다.





지팔이놈이 어질러 놓고 간 부엌이며 거실을 두시간 걸려서 말끔히 치웠다. 각자 열심히 살아야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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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0. 11. 22. 06:44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나는 세장의 손뜨개 담요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장 한장 뜨다가, 막판에 재미가 붙어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내고 그랬었다.  크기는 1인용 트윈 침대 이불만한것.

 

지금 보이는 것이 1호 작품인데, 당시에 큰놈이 고등학생이었던터라, "우리 지팔이 대학에 들어가면 기숙사로 갈테니 기숙사 보따리에 엄마가 손뜨개질한 이불을 넣어주마" 했었다.  그 후에 재미가 붙어서 2호 작품 (아래)을 짰고,  솜씨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우리 엄니를 위한 특별판을 하나 만들었었다.  네모칸 안에 사람, 자동차, 새, 뭐 그런걸 짜넣어가지고 이야기가 가득 들어간 이불을 만들어서, 우리 엄니 갖다 드렸다.

 

1호 작품을 지홍이는 집에서 사용했고 기숙사에는 가지고 가지 않았다. 1호 작품은 내가 워싱턴에서 지내는 동안 겨울에 정말 잘 사용하고 있다. 얇은 담요 위에 이거 덮으면 정말 따뜻하다. 며칠전에 청소하다가 지팔이 침대위에 덮어놨던 1호를 소파위에 걸치니 의외로 집안 분위기가 아주 좋아지는거라.  (요새, Anthroplogies 나 뭐 멋쟁이들 패션몰에 가보면 이런 손뜨개질한 것으로 인테리어 장식을 하는 곳이 많다.)  그런데, 내가 작품을 살펴보니 파스텔톤으로 일치시킨 2호 작품보다, 야수파 그림을 연상시키는 1호 작품이 더 근사해보인다.  1번은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짠거고 2번은 일부러 실의 색깔을 잘 골라서 짠것인데, 우연성에서 빚어진 서툰듯한 작품이 오히려 예술성이 높아 보인다.

 

 

소파등에 걸쳐진 것이 1호

파스텔 계열의, 왕눈이가 덮고 있는것이 2호.

 

 

집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저 털실 뭉치가 한바구니 가득있다. 이불 하나 더 짜도 될 분량이다... 요새 털실들이 자꾸만 나를 유혹을 하는데... 아직 손은 못 대고 있다.

 

내가 이 Granny Square 라고 미국 사람들이 부르는 모티브 짜기를 시작한 것은, 다분히 Nanny McPhee 영화의 영향때문이었을것이다.  지난 여름에 Nanny McPhee Returns 라는 후속작도 극장가서 찾아 보았지만, 몇해전의 그 내니 맥피의 '색상의 감동'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내니 맥피에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나오는데, 그 아이들의 침대가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었다. 모두, 손뜨개한 이불들이었다. 그때, 그것이 너무너무 예뻤던거라...  (나는 지금도 내니 맥피 1편 2편 디비디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색깔이 너무 예뻐서.)

 

나는 모티브 짜기 해서 조끼도 만들어 입고 싶고

모티브 짜기 해서 목도리도 만들고

모티브 짜기 해서 모자도 만들고

모티브 짜기 해서 방석도 만들고

온통 네모 네모 네모를 짜서 이리저리 연결시키면서 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시작을 못한다. (그거 시작하면 폐인 될까봐.)

 

이제 결전의 나날들이다.

Thanks Giving 휴가기간동안 찬홍이 어플리케이션 준비 작업을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입학신청 절차를 모두 마치고 크리스마스때 놀겠다는 야심찬 계획.  오늘도, 학교 카운슬러에게 보낼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데, 찬홍이는 온종일 작업하고 있고, 나는 골치가 아파서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다. 나도 어서 작성해서, 오늘 계획한 것을 모두 마쳐야만 한다...

 

대학원생들은 기말 프로젝트때문에 난리가 났을것이고, 나는 나대로 할일이 태산이다.  살면 살수록 더 큰 파도가 몰려오는것 같아.  그래도 학생때는 손뜨개 이불도 만들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여유도 없으니, 사는게 왜 갈수록 힘들어지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이레놀이나 먹고, 마저 일을.

 

아, 12월 3일에는 스미소니안에서 인터뷰가 있다. 그것도 잊으면 안된다.

 

 

조각이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이렇게 야금야금 다채롭게 만들어내는 삶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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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0. 10. 25. 23:17

 

 

일주일 사이에 오파운드 감량하고 득의양양

평소에 벨트 없이 입던 바지를 그냥 빨아서 입고 나왔더니 질~질 흘러내려서 대략 난감.

 

금요일 오후까지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마무리를 끝내고 퇴근했는데

토요일은 시체놀이(?)로 보내고

일요일 아침에는 침대에서 깨어났을때

잠시

기억 상실 모우드

-- 근데 여기가 어디지?

-- 여기가 어딜까?  (치매 걸린 분들이 아마 이런 증상일것이리라...)

-- 나 지금 어디있는거지?

-- 아아, 여기 내 방이구나

-- 여기가 미국이야 한국이야?

-- 나 왜 여기 이러고 있나?

-- 오늘이 언제지?

 

곰곰 생각하다가

컴퓨터 켜 놓고 보니 10월 24일이래.

달력 보니 일요일.

아하, 그렇구나.

 

옛날에, 우리 아빠 돌아가셨을때

삼일장 치르던 마지막날,

산소 근처 천막에 잠깐 누워서 깜박 잠이 들었었는데

그때, 깨어났을때 비슷한 경험을 했었지.

내가 어디있는지 전혀 모르겠는 증상.

 

한국에서 전화 와서 뭐 물어보길래

"왜 모두들 자기 일 하나 해결 못하고, 나한테, 나한테 묻는거야? 내가 한국 가서 그거 해결해줘야 해?"

이러고 소리소리 지르고...

소리소리 지르니까 기운이 나서

기운이 난 김에

집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쓰레기장으로 변한지 오래된 부엌 청소하고

 

 

아침에 찬홍이 맛있는 고기샌드위치 두개 만들어 보내고

나도 출근하여

오랫만에 카메라 앞에 앉아서 이리저리 표정 만들어보다가

--그래. 난 이 표정이야. 난 죽을때도 이 표정으로 죽어야 해.

--사람들이 의지할수 있는 자신만만한 표정. 이 표정에 속아서 결혼한 중생도 있는데. 일관되게 이 표정으로 사는거지.

 

입맛없고 기운없어서 워킹 못나가고 그냥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뭐 곧 회복하고, 쌩쌩하게 돌아다닐 것이니~

만사는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신이 특히 애지중지하는 착하고 귀염둥이이니까 (이거 내가 왕눈이한테 매일 하는 말인데...착하고 귀염둥이--문법에 어긋나지만, 그래도 '착하고 귀염둥이!' 라고 말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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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0. 8. 6. 06:12

 

 

전에 대궐같은 (?) 주택에 살때, 우리집 뒷마당은 왕눈이의 '영지'였다고 할 수 있었다.

아침에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면 냉큼 달려 나가서

사자가 자신의 영지를 감독하듯 뒷마당을 쏘다니며 놀다가 아침 이슬을 흠뻑 맞고 들어오곤 했다.

 

그랬는데, 여전히 나로서는 과분한 집이지만, 3층에 올라 앉은 옹색한 아파트로 이사오니

왕땡이가 무척 답답해 한다.

거실 밖 베란다는 말하자면 과거의 '뒷마당으로 이어지던 데크'와 같은 구실을 하는데

전에는 데크의 목책 사이로 사뿐히 뛰어서 정원으로 갔지만,

지금 베란다 목책 사이로 사뿐히 뛰면(?) 3층 낭떠러지에서 추락사 하는 것이지...

 

왕눈이는 전에 살던 집의 습관대로, 베란다 울타리로 뛰어 내릴듯 머리를 내밀었다가

그냥 하릴없이 돌아서곤 한다.

나는 왕땡이가 생각없이 뛰어 나갈까봐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 짐승들에게는 예민한 공간 지각력이 있는듯,

왕땡이는 뛰어 내리는 대신에 비실대며 돌아서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을 할 수는 없다.

분명 그 사이로 왕눈이 몸이 빠질수가 있으니까....

 

왕눈이는 가끔 내가 베란다에 있을때, 저도 따라나와서 그 목책사이로 코를 내밀고

바람을 쐬면서 우수에 잠기곤 한다. 왕땡이의 '우수'가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  홈 디포에 들러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아하! 정원 가꾸기용 울타리가 값 싼것이 보이는거다!

난 해법도 없이 그냥 홈디포를 뒤지면서 방법을 찾아보자 하고 간건데

헤멜것도 없이, 습관대로 꽃구경 하다가 보니 정원 자재쪽에 울타리가 보이는거다!

그 철제 펜스를 발견한 순간, 내 머릿속에 따르릉~  신호가 오면서 방법이 보이더란 것이지.

 

그래서 철제 펜스 오달러짜리 (3 미터) 두개를 사가지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설치를 했다.

 

철제 펜스를 꽃꽂이 할때 사용하는 가느다란 초록색 철사를 이용하여 난간 목책에 단단히 묶는 식으로 고정시켰다.  한개가 3미터라서 우리 베란다에 딱 맞았다. 그래서 2층으로 포개어서 설치를 하였다.

지금 비가 쏟아져서 대충 엮고 들어왔는데, 비 그치면 또 나가서 아주 단단히 고정을 시킬것이다.

 

10달러로 안전한 베란다 난간이 완성되었다.

우리 왕눈이도 심리적으로 좀더 안심하고 베란다에서 놀 수 있을것이다.

베란다에서 바깥의 푸른 정원을 내려다보며 코에 바람이라도 쐬면 위로가 될 것이다.

 

 

 

 

 

 

오늘, 칼럼 쓰는 것을 수락하고, 일주일에 한편씩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나혼자 개인 블로그에 쓰는 글이 아니고 대중을 의식해서 써야 하는 글이므로

신중해야 하고,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유익한 글을 써야 할텐데.

진지하게 사색을 해보고, 내 나름대로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글을 써 나가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옛날에,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당시에는 대우가 꽤 좋았던 외국계 회사에 취직이 되어

잡지 편집을 집어 치우고 (사실 잡지 편집일을 즐기고 있었는데, 근무여건이 편하고 월급이 놓은 외국계 회사를 선택하고 말았다... ) 도망을 간다고 하자, 함께 일하던 편집장님이 "야, 너 그냥 도망가면 어떻게 해? 좋아 가는건 가는건데, 그럼 2주에 한번씩 칼럼 써서 내. 원고료 두둑히 줄테니까 칼럼 쓰라구!"  그래서 칼럼 쓰면서 착실히 원고료 챙겼었는데, 아이구야. 그 잡지가 오래가지 않아서 문을 닫고 말았다.  (원래 좀 간당간당 해 보여서 나도 일찌감치 안정된 직장으로 옮긴 터였다.).

 

그래서 칼럼 쓰다가 접은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영어학습 잡지였는데, People 같은 대중 잡지 기사 중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대충 번역하고,  영어 설명도 해주고 그렇게 해서 보내주면 재밌다고 (편집장님이) 좋아했었다. 그때 헐리우드 가십기사 꽤나 읽었었다  (-.-) 미국에 가보지도 못한 주제에, 헐리우드를 손바닥에 갖고 있다는 듯 초를 쳐댔었다...  그때는 20대 초반의 젊은시절의 객기로 넘쳐서 그러고 놀았는데...

 

지금은, 딱 그나이의 두배가 되었고, 이제는 대중을 상대로 인쇄매체에 글을 쓰는 일이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사람들에게 정보와, 위안과,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게 뭔지 생각좀 해보고.)

나를 특별히 금지옥엽으로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이, "내가 너한테 줬던 글재주를 발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전해주도록 해줄래?"하고 제안해주셨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원래 글쓰는 일이 즐겁다. 신중하게 잘 써서 내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겠다. (나의 하느님은 내 재주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아주 잘 아신다. 얼마나 똑똑하신가... )  칼럼니스트, 내 이력서에 이 다섯글자를 새겨넣을수 있도록 잘 쓰고 싶다. (그런데, 내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홈디포에 백일홍이 곱길래 사왔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서 내 사는 집을 구경오신듯한 그런 상상에 빠지고 만다.

한국의 가족이 그립다. 그래서 백일홍을 사다 놓고 가족 얼굴 보듯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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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