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에 해당되는 글 89건

  1. 2010.08.04 친구 2
  2. 2010.07.23 빨래 바구니의 왕눈이 1
  3. 2009.12.21 눈에 갖히다 (3) 2
  4. 2009.10.31 Slrf 2009, Michigan State University 가을 2
  5. 2009.10.25 Shanandoah National Park, Skyline Drive 단풍구경
  6. 2009.10.18 [Book] How Starbucks Saved My Life 1
  7. 2009.10.18 [Book] Letters to Sam
  8. 2009.10.14 왕눈이
  9. 2009.10.12 사과도둑 2
Diary/Life2010. 8. 4. 06:44

아침에 찬홍이네 학교에까지 가서 트랙을 세바퀴 돌고 오는데,

내가 트랙을 도는 동안, 왕눈이는 트랙 입구 울타리에 묶여 있다.

미국은 규정상 '애완동물'을 학교에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왕눈이는 학교 울타리 바깥쪽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왕눈이를 울타리에 묶어 놓고 트랙을 돌면,

왕눈이는 내가 세바퀴 도는 동안 거의 내내 짖어댄다. (지난 이틀간 그러하였다.)

왕눈이는 평소에도 산책하다가 주유소 가게에라도 들르기 위해 입구에 묶어 놓고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동안, 내내 목청껏 짖어대는 편이다.

그 짖는 소리가 평소보다 하이톤인데, 어서 빨리 오라고 생떼를 쓰는 듯한 표정이다.

 

내가 한바퀴쯤 돌아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지점에서 왕눈이는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꼬리를 흔든다. 나는 '왕눈아!'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흔들어 준 후에

내쳐서 두바퀴를 향해 달려간다.

두바퀴 도는 내내 멀리서 왕눈이가 짖어대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빨리 오라고)

역시 왕눈이와 가까워질때 왕눈아! 하고 부르고 나는 또 한바퀴를 돌기 위해

멀어진다.

 

그렇게 목표한 세바퀴를 마치고 원점의 왕눈이에게 돌아가면

왕눈이는 마치 저승에 갔다 돌아온 친구를 반기듯 나를 반기는 것이다.

 

왕눈이는 늘, 내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때도

미칠듯이 방방뛰며 환영을 해 준다.

그래서 학교에 출근을 하거나, 다른 볼일을 보기위해 종일 집을 비웠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 머릿속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왕눈이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왕눈이가 하루종일 빈 집에서 잘 지냈을지.

--아까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졌는데, 왕눈이가 혼자서 벌벌 떨었겠다

--왕눈이가 식당 구석 카페트에 오줌을 싸 놓지는 않았겠지?

 

왕눈이는 내가 아파트 마당에 차를 세우고 차를 잠글때 나는 소리 "뚜!"

소리를 감지한다.  그리고 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미 3층의

내 아파트 안에서 왕눈이가 문을 벅벅 긁으며 역시 하이톤으로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왕눈이가 하루종일 짖어 댄 것은 아니고

집에 혼자 있다가, 차 문 잠기는 소리가 나면

그때부터 귀를 쫑긋거리다가 1층의 건물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식구들의 소리를

알아채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어서 빨리 오라고 짖어대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왕눈이를 관찰해보니, 지홍이나 찬홍이가 밖에 나갔다 돌아올때도

이런 식으로 귀를 쫑긋거리고, 그리고 아이들을 반겼다.)

 

오늘 아침, 트랙을 돌면서, 멀리서 짖어대는 왕눈이를 보면서

왕눈이가 저렇게 울어대고 있으니 빨리 속도를 내어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문득 왕눈이의 묵직한 존재감을 느꼈다.

 

왕눈이가 멀리서 짖어댄다. 하얀 점처럼 작게 보이는 왕눈이가 내게 어서 오라고 짖어댄다.

그래서 나는 기운을 내어서 달리기에 속력을 낸다.

왕눈이가 불러대니까 나는 빨리 가야만 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 왕눈이가 저기서 저렇게 울어대지 않으면, 나의 달리기가 재미 있을까?

내가 서툰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헥헥대며 하는 이유는, 한바퀴 돌때마다 왕눈이를 볼수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이렇게 달려가는 이유는 왕눈이가 저기서 기다리기 때문이 아닌가?

왕눈이가 없다면, 이 산책이 얼마나 멋대가리 없고 심심할 것인가.

쳐다봐 주는 왕눈이가 없다면 이 트랙 뺑뺑이 도는 달리기가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것인가.

 

집에서 한없이 간절하게 기다려주는 왕눈이가 없다면

이 타국의 아파트가 내 집 처럼 여겨지기나 할까?

왕눈이가 애타게 기다려주기에 이곳이 내 집인 것이지.

나의 왕눈이가 내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려 주기에, 그래서 여기가 내 집이 되는 것이지.

 

아이들이 나가 놀다가도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안심할수 있듯

나에게도 '집'으로 돌아올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내 집을 집으로 만드는 존재가 바로 왕눈이 같다는 것이다.

집이 집일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서 어떤 생명이 간절히 간절히 나의 안녕과 귀가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왕눈이가 있어줘서,

나는 매일 길을 잃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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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0. 7. 23. 13:32

 

 

 

집안을 싹 정리하고 나니까, 빨래 바구니용 플라스틱 바구니가 여분이 생기길래,

방석을 깔고 왕눈이를 넣어보았다.

왕눈이가 그 자리가 맘에 드는지 가만 있다.

 

왕눈이는 내가 책상에 붙어 있으면

내 의자 발치에 누워있다가 가끔 내 발에 차이거나 밟히기도 하는데

이 바구니를 내 책상 앞에 놓아두면

왕눈이가 나한테 밟히는 일은 없을것이다.

 

나의 왕눈이.

오늘 내 차에 타고 버지니아텍까지 다녀왔다.  우리 왕눈이, 세상구경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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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2. 21. 21:52

 

2009년 12월 19일 (일) 자정부터 자정까지 온종일 내린 눈의 총량

 

 

 

 

 

 

 

 

 

 

 

 

 

2009년 12월 20일

 

아침에 깨어났을때, 창밖은 파란 하늘과, 파랗게 반사되는 쌓인 눈으로 눈이 부셨다.  뒷마당에 쌓인 눈은 식탁의자의 허리 부분을 이미 지나 있었고, 성인 남자의 무릎 높이보다 높았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쌓인 눈을 평생 몇번이나 보았는가?' 물었는데,  내 희미한 기억으로, 어릴때,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시골집 마당에 이렇게 눈이 쌓인적이 있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눈에 갖힌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 후에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인 것을 본 적이 없는듯 했다.

 

우리집 왕눈이는 눈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눈이 가볍게 쌓였을때는 나가서 겅중거리고 뛰어 놀줄도 아는 개 이지만, 눈이 제 키를 넘게 쌓이자 눈을 무서워했다. 

 

옛날에 시골에서 살때, 눈이 많이 쌓이면, 할아버지는 우리집과 이웃집 사이에 이렇게 길을 내 놓으셨었다. 날이 개이면 눈길은 사라지고 말지만,  이렇게 실핏줄같은 눈길이 마을의 집과 집을 이어주곤 했었다.

 

워싱턴의 모든 관공서는 월요일 (21일) 임시 휴무일로 정했고, 금주 수요일에 방학을 시작하려던 공립학교들은 일제히 방학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방학이 일찍 시작되었다고 환호하고...쌓인 눈은 하도 높이 쌓여 하루이틀에 녹을것 같지는 않고...

 

눈길을 걸어 동네 스타벅스에 나가서

뜨거운 라테랑, 아주 달아 미치겠는 케이크 한조각 주문해가지고 난롯가에 앉아 그것을 먹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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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31. 06:22

 

 

어제 새벽에 출발하여 12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오하이오주를 거쳐 미시간주의 주도인 이스트 랜싱에 무사히 도착.  미시간 주립대에서 개최된 slrf 오프닝 참석.  오늘은 오전에 주제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다른 발표를 둘러보고 숙소로 일찌감치 돌아왔다.  어제는 천국의 가을 날씨. 오늘은 비. 따뜻한 비. 북부라서 단풍 색이 선명하고 짙다.

 

(잠을 못자서 조금 피곤한것 외에는 ...대체적으로 평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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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25. 06:55

 

Shanandoah National Park, Skyline Drive 홈페이지

http://www.nps.gov/shen/planyourvisit/driving-skyline-drive.htm

 

한반도의 척추가 태백산맥이라면, 북미 미국의 척추는 애팔라치아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애팔라치아 산맥의 정점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있다. Skyline Drive 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마일 정도 달리면 Front Royal 이라는 소읍이 나오고 이곳에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의 입구 (셰난도 국립공원 입구)가 있다.  이 산맥의 등줄기에 올라 서쪽을 보면 굽이 굽이 이어진 산들이 보이는데 그렇게 한없이 가면 서부가 나온다. 이 산맥의 등줄기에서 동쪽을 보면 푸른 산자락 너머 너머에 대서양이 펼쳐진 형상이다. 수도 워싱턴에서 한시간 거리이므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골치가 아프면 이 산맥의 등줄기에 올라 넓게 펼쳐진 국토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고 한다.

 

버지니아로 온지도 2년이 넘었지만, 나는 가을 단풍 구경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었다.  오늘 하필 절정이라는 가을단풍 구경을 나섰는데,  날이 변화무쌍하여 흐리고, 비가 쏟아지다가, 개다가 다시 비가왔다.  난 비오거나 흐린 날도 분위기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므로...특히 요즘은 심적으로 우울한 관계로 맑은 날은 더 괴롭더라. 맑은날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는것 같고, 나만 혼자 왕따된 기분이 들기도 하므로...  왜 나갔냐하면, 집에 있으면 우울해서 잠이나 잘까봐.  :-]  (난 나름대로 우울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 비오고 안개끼고 온갖 날씨의 쇼를 하는 가운데 단풍구경을 했는데,  하하하, 안개가 자욱하니까 단풍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일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왜 사람들이 '단풍구경'을 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 여태 살면서 단풍구경을 해 본적이 없었다...)  단지 자연이 선사한 알록달록한 풍광속에 내가 흐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색깔치료' 와 같은 위안을 받았다.  미국 미술사에서 21세기에 '추상표현'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Rothko 를 위시한 작가들이 '어마어마한' 캔바스에 색칠을 해 놓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워싱턴의 미술관에 가면 21세기 추상표현주의 관련 작품들이 전시된 곳은 홀이 넓고 그리고 벽을 '압도'하는 대형 작품들이 걸려있다.  나는 이 전시장들을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그 어마어마한 작품 앞의, 어마어마한 색상 앞에서 앉아 쉬거나 서있을때, 색이 내게 스며드는 듯한 유쾌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색이 되고 색이 내가 되는듯한 느낌.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그런데, 단풍 구경을 갔을때, 알록달록하게 물든 자연이, 혹은 뿌연 안개가,  흐려서 수묵화처럼 보이는 무채색의 풍경이 내 몸에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자연과 동화가 된다는 느낌이 들면서,  '괜챦아, 괜챦아' 라는 기분이 들었다. 뭐가 괜챦은가하면...그냥... 견디기 힘든 시간이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이 시간을 용서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막막하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사람들은 색깔을 몸에 담기위해 단풍구경을 가나봐...했다.

 

 

 

 

이곳이 바로 애팔래치아 산맥 등줄기에서 내려다본 셰난도 골짜기. Grandma Moses 모세 할머니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던 곳. 모세 할머니가 즐겨그리는 풍경화의 구도와도 흡사하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randma%20Moses

 

 

 

 

 

 

 

 

 

 

 

 

 

 

 

 

 

 

 

 

 

 

 

 

 

 

 

어느 모르는 인도계 가족 일동이 하필 내 차 밖에 모여서서 사진을 찍길래 나도 차 안에서 이들을 찍어봤다.  비와 빨간우산과 가무잡잡한 피부와 그리고 선량한 가족이 그려낸 예쁜 그림.  이들이 행복해보여서 나도 좋았다.  모두 행복하시길.

 

 

 

 

 

돌아오는길 Apple House 라는 식당에서.  이들이 만들어 판다는 잼과 소스병을 찍어보았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동안.  이 식당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3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Front Royal 에서는 명소인것으로 보인다.  하이웨이와 지방도로가 만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나같은 소풍객들이나 이지역 주민들 모두가 편안하게 드나들수 있는 곳.  다양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었는데, 음식이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갔다.  난 3달러짜리 계란 샌드위치 (버터로 구운 식빵 사이에 얇은 계란부침 끼운것)를 먹었는데,  내가 내 식성에 맞춰서 집에서 만든것보다 더 바삭하고 기름기없는 맛이었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이 식당에서 계란샌드위치를 먹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곳으로 달려갈지도 모르겠다.

 

 

 

 

 

 

Applie House 의 위치는 워싱턴에서 갈경우 하이웨이 66 서쪽방향으로 50마일쯤 달리다가 Exit 13 에서 나간다. 나가면서 셰난도 국립공원 안내판을 따라서 달리다보면 국도 55번상에서 주유소가 나타나고 주유소 옆에 빨간 건물이 나타날것이다.  이곳이다. Exit 13으로 정확히 나가면 쉽게 찾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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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데 별로 의욕이 없고, 공부도 하기 싫을때, 전공책도 보기 싫을때, 그럴때가 있는데, 사람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제각각일 것이다.  전에 나는 답답하면 몇시간씩 산책을 다녔다. 현재 나는 상태가 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산책을 나가는 대신에 주로 잠을 자거나, 평소에 안읽던 '진부해 보이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인다.'  요즘 나는 시간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고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견디기 위해서 그냥 뭔가 하는데, 몸을 움직이기 싫으니까 '눈운동'만 열심히 하는 상황. 책보다 잠이 오면 자고, 잠이 깨면 다시 책을 보고. 

 

찬홍이가 책을 사다달라길래 서점에 가서 The Crucible 이라는, 아서 밀러의 드라마를, 내가 대학교때 읽었던 책을 찾아 들고 그냥 책방에 온김에 어정거리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서 집어 들었다.  이거 스타벅스에 가면 매장에 보이던 책인데. 그래서 스타벅스 홍보용 책인가보다고 늘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내가 왜 이 책을 집어든 것일까?  쉽게 읽힐것 같아서, 머리 식히기 좋아보여서, 혹은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이 뭔가 궁금해서...

 

막상 읽어보니 내 예상과 다른 엉뚱한 책이었는데...

 

온종일 읽는 내내, 내 삶과 연결지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수 있었다. 우선, '바닥'으로 수직하강한 한 사나이가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그리고 곁두리로, 스타벅스의 지침도 내게는 의미있었다.  내가 요즘 내 우울감때문에 학교에서 좀 침울하게 행동했고, 내 학생들에게 충분한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령 '내 학생이 나로부터 -  학생으로서 받아야 할 애정이나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부족했던 것 같고.  내가 좀 신경을 쓰고 내가 능동적으로 나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개인적인 실패는 개인의 문제이고, 그것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내가 나 자신을 컨트롤을 잘 해야 하는 것이지.

 

스타벅스의 장점들이 많이 열거되어, 결국 스타벅스 홍보에도 한 몫 했겠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이 책에 그려진 스타벅스 매장의 아름다운 면을 나는 내 직장에 도입해야 하고, 내 가정에 도입하면 좋을 것이다. 내 삶은...이 책의 저자처럼, 나의 상실감이나 실패감 같은 것 역시 내가 치유하는 수 밖에.

 

이제, 나도 '앞으로' 나아가야 (move on) 하는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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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s to Sam: A Grandfather's Lessons on Love, Loss, and the Gifts of Life

 

집의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심심풀이로 집어들었다가, 설득력이 있어서 끝까지 본 책.  목소리는 잔잔하나 울림은 깊다.  이 책이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저자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어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소스를 주므로 힘이 있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고통에도 페이소스란 것이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은 위로를 받았다.  그가 제안한대로, 때로 사람은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며 흘러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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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14. 01:49

 

느지막하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책가방을  차에 싣고, 차를 출발하려다 생각하니 문간까지 나를 따라와 '잘 다녀와라'하고 말해줄 왕눈이가 안보이는거다.  아침에 시무룩하게 내 침대 발치에 있던 것 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후로 왕눈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 옷장까지 뒤져봤으나 왕눈이는 없었다.

 

뒷문을 통해서 나간 모양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하나 하나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서 멀어져 사라져간다. 세상의 모든 별들이 급속한 속도로 하나하나 꺼져가는 듯한 환각.

 

왕눈이는 동네 어떤 집 마당에 묶여 있었다.  한시간도 넘게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길래, 차에 치일까봐 묶어 놨다고.

 

왕눈이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내 방으로 뛰어온후에 기쁜 표정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사실 세달 가까이 나는 왕눈이를 산책도 시키지 않고,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다. 산책도, 목욕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왕눈이를 돌보는 것은 다른 식구들 차지가 되어 버렸고,  그래도 왕눈이는 내 발치에 와서 내게 붙어서 잠이 들곤 했었다.

 

감기가 다 낳으면, 제일 먼저 할일은, 왕눈이를 동네 지정병원에 가서 종합적으로 체크업을 해주고, 밀린 예방접종도 다 맞춰주고, 그리고, 털을 예쁘게 깍아주는 일이다. 그것부터 해주자.  나는 왕눈이에게 너무 무책임했다.  무책임하면 안된다. 개 한마리라도, 무책임하면 안된다.

 

왕눈이가 돌아와서 다행이다.

왕눈이가 다칠까봐 묶어놓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 착한 이웃이 있어서 다행이다.  (친절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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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12. 03:36

 

 

 

 

해마다 가을이면 버지니아에서는 인근 과수원으로 소풍을 간다. 사과밭을 찾아가 실컷 사과를 따가지고 값을 치르고 오면 되는 것이다.  과수원도 제각각이라 '기업형'으로 크게 과수원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있고, 그냥 시골 과수원에서 광고도 없이, 동네 사람이 오면 사과를 파는 곳도 있고 그렇다.  전에 플로리다에서 살때는, 초가을에 포도를 따러 다녔고, 가을이 오면 시월이 되면 단감을 따러 가서 배가 터지도록 단감을 따 먹고 들통 가득 사가지고 오곤 했었다.  돈없는 유학생들에게도 그 단감이 가격이 매우 싸서, 주말에 감밭에 가면 인근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그자리에서 단합대회를 할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플로리다에 가면 학생들이 단감을 따며 깔깔 댈 것이다. 그 감밭이 그립지만, 버지니아에서는 감밭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남겨두고...우리는 흘러간다.

 

지난 두해 가을동안 나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큼직한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따 왔었다. 사과알이 크고 탐스러웠고, 하루 소풍장소로 좋을 만큼 다른 오락시설을 갖춘 곳이기도 했다.  올해에는 학교에서 학생이 새로운 장소를 알려준다. 시골 할아버지네 과수원인데, 약도 안치고 비료도 안주고 그냥 자연상태에서 사과가 열리는 곳이라 알이 작지만 단단하고 그리고 아주 달다고 가르쳐준다.  사과 값도 한참 싸다고,  학생이 맛보라고 갖다준 사과가 하도 싱싱하고 달길래, 주소를 받아놨다가 오늘 가 보았다.  집에서 65마일 거리. 천천히 운전해도 한시간 반이면 되겠다.

 

 

주소지를 찾아가보니 별유천지 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이었다. 한마디로, 사람이 없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주인은 예배당에 갔는지 농장이 텅 비어있는채로 안채의 문이 잠겨있고, 창고문은 그대로 열려있다. 창고문에 사과따는 도구가 나란히 세워져있고, 볕이 가득한 창고 안에는 사과상자도 놓여있고.  내학생이 내게 이르기를 사과는 배가 터지게 먹어도 되고, 사과를 상자에 담아가면 되는데, 많건 적건 한상자에 14달러라고 했었다. 기웃거리며 주인을 기다리다가 도통 인적이 없길래, 차를 마당에 세운채로 작대기와 들통을 들고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땄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대답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흐르는 물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임자는 어디가고 창고 문만 환하게 열려있는 사과농장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내집처럼 창고에서 들통 하나를 꺼내 들고, 사과 작대기 세워 놓은 것 하나 들고, 사과를 따러가세 사과를 따러 가세, 태초의 아담처럼 사과를 따러가세, 태초의 이브처럼 사과를 따러가세

 

 

 

 

사과나무들이 줄지어 선 언덕

 

 

뜰앞에는 코스모스도 피어있고요~

 

 

 

무농약, 무공해, 버지니아 사과를 팔아요, 사과를 팔아요~

An apple a day keeps a doctor away~

하루에 사과 한알을 먹으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버지니아 사과를 사세요~

 

 

 

 

시월의 햇살아래 익다 지친 사과는 툭~ 툭~  떨어져 쌓이고

 

사과밭 할아버지는 언제쯤 돌아오시려는지

 

 

정원에 굴러다니는 바구니를 문간에 갖다 놓고, 거기에 10달러 지폐를 하나 눌러놓고 사과밭을 떠나다.  한상자 다 안채웠으니까, 10달러만 놓고 갈래요~

 

 

 

 

피천득 선생의 시에 '꽃씨와 도둑'이 있다.

 

꽃씨와 도둑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 가야지

 

아무도 없는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 먹고, 사과를 따 모으고 놀다가 역시 빈 사과밭을 떠나며 피천득 선생의 시를 혼자 중얼거렸다. 가을에 와서 사과나 가져가야지...

 

집에 도착하여 메모지에 적힌 사과밭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할머니가 받으신다.  "내가 사과밭에 갔더니 아무도 없길래 잘 놀고, 사과 따가지고 오면서 10달러를 놓고 왔는데 보셨나요?"  전화가 너머에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나고, 뭐라뭐라 묻는다.  버지니아 농민들의 사투리가 들린다. 아, 이분들 평생 이곳에서 사셨구나.  할아버지가 "Ten dollar?"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 "Yes! I found it!" 그가 저만치서 외치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는 내 예상대로 아침에 예배당에 갔다가 조금 전에 왔다고 집이 빈 사정을 설명하고, 나는 덕분에 잘 놀았다고 인사를 한다.  시월 어느 일요일, 버지니아 셰난도 골짜기의 그 사과밭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열어놓은 에덴동산이었다.

 

p.s. 셰난도 골짜기는 모세 할머니가 18년간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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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