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찬홍이네 학교에까지 가서 트랙을 세바퀴 돌고 오는데,
내가 트랙을 도는 동안, 왕눈이는 트랙 입구 울타리에 묶여 있다.
미국은 규정상 '애완동물'을 학교에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왕눈이는 학교 울타리 바깥쪽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왕눈이를 울타리에 묶어 놓고 트랙을 돌면,
왕눈이는 내가 세바퀴 도는 동안 거의 내내 짖어댄다. (지난 이틀간 그러하였다.)
왕눈이는 평소에도 산책하다가 주유소 가게에라도 들르기 위해 입구에 묶어 놓고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동안, 내내 목청껏 짖어대는 편이다.
그 짖는 소리가 평소보다 하이톤인데, 어서 빨리 오라고 생떼를 쓰는 듯한 표정이다.
내가 한바퀴쯤 돌아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지점에서 왕눈이는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꼬리를 흔든다. 나는 '왕눈아!'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흔들어 준 후에
내쳐서 두바퀴를 향해 달려간다.
두바퀴 도는 내내 멀리서 왕눈이가 짖어대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빨리 오라고)
역시 왕눈이와 가까워질때 왕눈아! 하고 부르고 나는 또 한바퀴를 돌기 위해
멀어진다.
그렇게 목표한 세바퀴를 마치고 원점의 왕눈이에게 돌아가면
왕눈이는 마치 저승에 갔다 돌아온 친구를 반기듯 나를 반기는 것이다.
왕눈이는 늘, 내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때도
미칠듯이 방방뛰며 환영을 해 준다.
그래서 학교에 출근을 하거나, 다른 볼일을 보기위해 종일 집을 비웠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 머릿속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왕눈이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왕눈이가 하루종일 빈 집에서 잘 지냈을지.
--아까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졌는데, 왕눈이가 혼자서 벌벌 떨었겠다
--왕눈이가 식당 구석 카페트에 오줌을 싸 놓지는 않았겠지?
왕눈이는 내가 아파트 마당에 차를 세우고 차를 잠글때 나는 소리 "뚜!"
소리를 감지한다. 그리고 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미 3층의
내 아파트 안에서 왕눈이가 문을 벅벅 긁으며 역시 하이톤으로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왕눈이가 하루종일 짖어 댄 것은 아니고
집에 혼자 있다가, 차 문 잠기는 소리가 나면
그때부터 귀를 쫑긋거리다가 1층의 건물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식구들의 소리를
알아채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어서 빨리 오라고 짖어대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왕눈이를 관찰해보니, 지홍이나 찬홍이가 밖에 나갔다 돌아올때도
이런 식으로 귀를 쫑긋거리고, 그리고 아이들을 반겼다.)
오늘 아침, 트랙을 돌면서, 멀리서 짖어대는 왕눈이를 보면서
왕눈이가 저렇게 울어대고 있으니 빨리 속도를 내어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문득 왕눈이의 묵직한 존재감을 느꼈다.
왕눈이가 멀리서 짖어댄다. 하얀 점처럼 작게 보이는 왕눈이가 내게 어서 오라고 짖어댄다.
그래서 나는 기운을 내어서 달리기에 속력을 낸다.
왕눈이가 불러대니까 나는 빨리 가야만 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 왕눈이가 저기서 저렇게 울어대지 않으면, 나의 달리기가 재미 있을까?
내가 서툰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헥헥대며 하는 이유는, 한바퀴 돌때마다 왕눈이를 볼수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이렇게 달려가는 이유는 왕눈이가 저기서 기다리기 때문이 아닌가?
왕눈이가 없다면, 이 산책이 얼마나 멋대가리 없고 심심할 것인가.
쳐다봐 주는 왕눈이가 없다면 이 트랙 뺑뺑이 도는 달리기가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것인가.
집에서 한없이 간절하게 기다려주는 왕눈이가 없다면
이 타국의 아파트가 내 집 처럼 여겨지기나 할까?
왕눈이가 애타게 기다려주기에 이곳이 내 집인 것이지.
나의 왕눈이가 내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려 주기에, 그래서 여기가 내 집이 되는 것이지.
아이들이 나가 놀다가도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안심할수 있듯
나에게도 '집'으로 돌아올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내 집을 집으로 만드는 존재가 바로 왕눈이 같다는 것이다.
집이 집일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서 어떤 생명이 간절히 간절히 나의 안녕과 귀가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왕눈이가 있어줘서,
나는 매일 길을 잃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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