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2. 1. 25. 19:29

 

 

우크라이나의 댄스 밴드로 생각되는데 "밴드 오데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우연히 이 '백만송이 장미' 곡에 춤을 추는 장면에 매료되어 - 요즘 저녁 식사 후에 '밴드 오데사' 댄스 비디오를 2-3편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있다. 

 

이 밴드의 매력은 - 도무지 이들이 얼마나 유명한, 대단한 사람들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 나로서는 '눈부신' 춤꾼들이다. 

 

그 이유는 - (죄송스럽지만) 요즘 대세인 한국의 아이돌그룹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칼군무 -- 너무 정교해서 식상하는 칼군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얼핏보면 동네 잔치 마당에서 동네 선남선녀들이 선보이는 서툴지만 근사한 '막춤' 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선수들'이 모여서 '그냥 한판 놀자' 정도로 즐기고 있는 듯한. 음...춤 그 자체를 즐기는 듯한.

 

기가막히게 춤을 잘 추는 여자 댄서들을 보면 이쑤시게 같이 가느다란 몸매도 아니고 - 말하자면 그냥 '막생긴' 몸 (종아리도 굵고, 한국 기준 과체중도 있고, 뭐 신체 비례도 제멋대로이고) 뭐 이런 분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데 나도 그냥 소파에서 일어나 그들의 춤판에 끼어들고 싶어지는 것이다.   뭐랄까, '레트로하고 촌스러운 것이 이들의 의도돤 컨셉인가?' 싶기도 한데. 어쨌거나 칼군무를 보면 나는 '귀챦아서 채널 돌린다'는 입장인데 이들의 춤판은 나를 일어나서 춤추게 한다. 

 

그래서 심지어, 아들과 둘이 이들의 흉내를 내다가 "얘야, 너하고 나하고 패러디로 [Odessa Mom and Son] 하나 찍어서 올리면 늙은 엄마하고 아들하고 춤추는거 너무 웃겨서 밈으로 흘러나가지 않을까?" 이런 농담도 한다.  아들과 하나 찍어볼까 진지하게 사색 중이다. 나의 컨셉은 - 오데사 밴드처럼 막춤을 추는데 나는 이제 무릎도 신통치 않아서 춤추다가 절름거리고 나가 떨어질 것이고 아들이 부축해주며 느리게 뒤뚱뒤뚱 웃으며 춤을 춘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Posted by Lee Eunmee
Drawing2022. 1. 25. 05:08

 

우리 동네에 말 농장이 있는데, 목책 근처에서 "말아! 말아!" 하고 부르니 그 중에 한 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내게 다가왔다. 심심했나보다.  그리고는 내가 뺨을 만져주는 것이 좋은지 곁에 순하게 서서 저를 쓰다듬게 내버려둔다. 참 순하고 착한 말이다. 크기가 망아지와 말의 중간쯤. 틴에이저 말 쯤 되는것 같다.

 

 

내 평생에 말은 처음 그려본다.  즐거운 동네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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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rawing2022. 1. 24. 23:17

 

겨울에 나무에 뺨을 대 보면 나무의 '온기'를 느낄수 있다.  나무는 따뜻하다. 

 

아래 사진을 기본 컨셉으로, 위와 같은 그림을 다양하게 그려보고 싶다.  잔설이 남아 있는 숲길을 걷는 일이 즐겁다. 아직 버석버석 눈이 밟히기도 하고, 눈이 녹아 길이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하늘은 파랗고 미세먼지 걱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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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2. 1. 24. 23:07

 

 

버지니아와 테네시주를 잇는 구비구비 눈쌓인 고갯길. 수묵화처럼 죽죽 치솟은 겨울 나무들과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길.  수직선과 곡선 사이를 내 파란색 자동차는 달렸다.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이라서 그날 밤에 집에 돌아와서 아이패드에 그렸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2. 1. 22. 19:25

경기도 모 이씨 문중의 사남매중 그중에 둘째딸로 살아온 세월이 오십년이 한참 지났고 ( = 한국 국민으로 살아온 세월), 그리고 그 세월에서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을 오간 세월도 어언 이십여년. 투표는  평생 진보방향으로 했고 (정말 그들이 진보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최소한 보수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고) 뭐 그렇게 살아온 골수 왼손잡이 여성 입장에서

 

나는 작금의 한국의 소위 이대남들이 주장할지도 모르는 '여성 징병제'에 격렬한 찬성표를 던진다.  뭐 이스라엘 노르웨이 기타 나라들도 하는 여성 징병제를 한국에서 못하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여성 징병제 하자. 여성 징병제하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향해서 비난하거나 툴툴댈 소지가 없어지는거지?  하자.  제발 하자. 

 

혹시 이상한 생각을 가진 가짜 페미니스트들이 '그게 무슨 소리냐 미쳤냐? 니가 오십이 넘어서 징병 대상이 아니니까 그딴 소리 하면서 여자가 여자를 팔아먹으려 하는것 아니냐?' 하고 비난한다면 나는 답해주겠다.  그래 내 비록 나이 오십넘어 몸이 삭을대로 삭았지만 지금의 내 몸도 징병대상으로 받아주면 내 기꺼이 가마, 군대. 내가 못 갈것 같냐?  내가 20대때도 군대 갈 고민 한참 했었거등. 왜냐, 이땅에서 '여자'로 사는 일이 너무 더럽고 치사해서 군대 다녀오는 것으로 여자 허울에서 벗어날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럼 군대 가지 왜 못갔냐고?  진실은 이러하다. 그당시 우리 아버지가 제왕이었고, "기지배가 곱게 시집이나 가지 군대는 무슨 군대냐" 한마디로 나의 꿈과 희망과 열망은 그냥 휴지조각이 되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의 말 따위 무시하고 내 멋대로 했겠지만.

 

여자 군대 징집 가지고 시비거는 못난 사내녀석들의 입을 막아버리기 위해서라도 여성 징병제 찬성.

 

여성 징병제 하면 국제 기준에 맞춰서 하면 되는거다. 어떤 못난놈이 여자도 징집해서 머리 밀고 어쩌고 하던데, 어느 나라는 여성들의 자기 존재감을 위해서 희망자에 한해서 유방 확대 시술까지  해준다는 설도 있던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은 안해봤지만 사실 평생 풍만하지 못한 가슴에 대하여 열등감을 가지며 꿋꿋이 버텨온 나에게는 참 재미있는 소식이기도 했었다.  그래도 뭐 그런걸 하고 싶지는 않다. 다 매력이 있으면 가슴이 크거나 작거나간에 매력이 있는거니까.  여자 징집해서 머리밀어야 한다는 못난 놈들의 생각은 그냥 개짖는 소리로 넘어가기로 하고. 

 

국제 기준대로 여성징집하고 여성 밀리터리 싸비쓰 시키는것 찬성. 

 

자, 그리고, 남자는 할수 없는 임신, 출산에 대한 '가산점'을 임신, 출산하는 여성에게 부여하라. 직장에서건 사회 보장 영역이건간에 애를 낳아 키우는 여자들에게 애를 낳아 키우는 숫자만큼의 가산점도 인정하고, 회사 조직에서 승진 점수 부여하고 각종 가산제 도입하라. 애 낳은것은 남자가 할수 없는것이니까.  여태까지 여자들이 애 낳는 가산점 청구한적 없었지, 그냥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똑같이 해결하면 -- 애 낳는 것에 대한 가산점은 오롯이 그 여자에게 가야한다. 애를 하나 낳은 여자보다는 셋, 넷, 다섯 이렇게 많이 임신하여 낳은 여성이 더 많은 가산점을 받아야하고 더 높은 승진 기회를 누려야 한다. 애를 서넛 낳은 여자는 남자들이 무슨 '특공대' 다녀온것 자랑하듯이 자랑할수 있어야 한다. 왜? 남자는 절대 못하는 것을 여자가 하는 것이니까. 

 

임신은 여자혼자 하나? 남자 정자 없이 그게 되냐?  ---> 이런 못난소리 하지 말라. 남자에게는 자궁이 없고, 정자 배출 외에는 딱히 신체적으로 하는 것이 없으니까. 인정? 쿨하게 인정하시고. 

 

그래서 나는 대통령선거에서 한표 달라구 구걸하는 여야 후보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맘대로들 해. 여자 징병제 회피하지 말라. 받으라. 여자 징병제 받고, 임신, 출산, 출산 육아 횟수에 근거하는 가산점 제도 시행 가자. (신체적인 상황으로 인해 임신하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우기지 말라. 남자들도 신체적인 상황으로 군면제 받고 그런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냥 남이 기여한 것에 대해서 인정하면 그만이다.) 콜!  여성징병 받자! 나머지도 받아라!

 

(나는 평생 노력해도 못벗어나는 집안에서의 남존여비에 아직도 피를 흘리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지긋지긋하다. 징병제로 그런 차별에서 벗어날수만 있다면 평생 군에 짱박고 싶다.)

 

우리가 싸우지 않는데, 저 새끼들이 저희끼리 노나 먹던 떡을 우리에게 던져 줄것 같은가?  언감생심?  우리 언니들이 싸웠고, 지금 내가 싸우고, 장차 동생들이 싸워야 하는 이 기울어진 땅. 군대 가지 뭐. 그것만 해주면 니네들 이제 군말 말고 떡이나 나눠먹자 공평하게. 더도 말고 그냥 공평하게. 콜?

 

 

한 오십년 기울어진 땅에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살아보라, 군대 20개월? 그거 껌이지. 징글징글하다 이 세상 남녀차별. 징병 20개월로 평평한 땅에서 살아볼수만 있다면 -- 그걸 왜 거부하는가? 얼른 받아야지.  

 

 

근데 그래, 그래서 국제 기준에 입각한 여성 징병제 실시한다고 하면 - 저 못난놈들 또 무슨 딴 소리를 할지. 못난 놈은 못바꿔. 세상은 그렇게 쉽게 안변해. 여성징병제를 한다해도 산넘어 산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늙고 지친 사이비 야메 짝퉁 페미. 까불지들 말라. 나 아들 둘 낳았거든. 그 중하나는 시래기 산지로 유명한 강원도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내 품으로 돌아왔지. 그 녀석이 군에 짱박힌다고 하길래 놀라서 그냥 나라에 폐끼치지 말고 곱게 돌아오라고 일렀지. 조국이 부르면 간다. 불러줄 조국이 있음에 감사하며. 그게 언제부터 유세꺼리였는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2. 1. 20. 22:36

https://www.canadagoose.com/

 

100만원 안팎을 오가는 겨울 패딩 잠바를 많이 만드는 '캐나다구스' 브랜드의 2021년 겨울제품 디자인에서 '천연모피'가 사라졌다.  미국 집에 앉아 유튜브로 한국과 미국의 뉴스 채널을 오가며 보다보면 - 길거리에서 뉴스를 전하는 기자들의 '옷'이 눈에 들어오는데 한국의 기자들이 추운 길거리에 서서 마이크를 잡을땐 목 주위에 천연 짐승털이 둘러싼 겨울 패딩을 입고 섰는데, 미국 기자들 목엔 천연짐승털이 안보인다.  거리에 나가봐도 '인조털' 은 보여도 '천연털'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내 눈에 확실히 보이는 한국과 미국의 2021년 겨울 -- 2022년 패션의 차이는 '천연모피'가 있냐 없냐로 결정된다. 

 

한국의 겨울 코트나 잠바에는 '폭스, 라쿤, 토끼털, 밍크' 이런 부자재가 많이 들어가고, 미국의 겨울옷에는 기껏해야 인조털이 보인다.  급기야 캐나다산 비싼 옷 '캐나다구스'의 2021년 겨울에 공개된 옷들을 보면 '털'이 사라지고 없다.  패션에서 '모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이제 가시적으로 다가온다. 

 

캐나다구스 제품을 산다면 -- 털 있는것은 구식이다. 털이 없는 것이 새 모델이다. 하하하.

 

내가 왜 '모피'에 눈길이 가는지는 나의 극히 '비극적인 개인사' 때문이다.  '비극적인 개인사'가 뭔가하면 내가 20대 중반이던 시절 -- 내가 쓸데없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내게 한 '약속'이다. "지금은 가난한 20대 월급쟁이이므로 꿈도 못 꾸는 '밍크코트'라서 살 수도 살 생각도 못하므로 밍크와 거리가 먼 것이 가능하지만 -- 내가 장차 재벌이 되거나 부짓집 사모님이 된다해도 내 평생에 밍크 코트는 걸치지 않겠다. 왜냐하면 '밍크'가 불쌍하니까. 여우도 귀여우니까. 족제비도 예쁘니까 -- "  이런 약속을 한 것이다. 내가 어리던날 왜 그런 쓸데없는 약속을 했단 말인가.  어쨌거나 나는 철부지 시절에 약속을 했고 - 그 약속을 아직도 지키는 중이다.  지금 내 통장에 임의로 쓸수 있는 용돈이 수천만원이 쌓여 있어서 뭐 한 천만원 하는 모피를 당장에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었음에도 나는  (한숨) 모피를 사지 못한다. 살수 없다. 그냥 잠바 모자에 털 달린것도 사지 못한다. 살수 없다. 나는 모피를 사면 안된다. (한숨).  그런데 나이들고 삭신이 쑤시고 몸이 노인네가 되니까 그 따스한 짐승털이 정말 그리운거다. 자꾸만 눈이 가는거다.  그러나 나는 사면 안된다. (한숨)

 

그러던차에, 세계적인 유명한 패션 브랜드들이 제품 디자인에서 짐승털을 지워나가는 것을 보니 - 나도 흐뭇해진다. ㅋㅋㅋ. 에헤라디야~  모피 입으면 촌스럽다네~ 에헤라디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2. 1. 16. 21:08

 

미국집에 오면 일상에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이 식품점이다. 먹고 살아야하니까.  식품점에서 내가 자주 기웃거리는 곳은 주로 채소, 과일 코너. 주로 그것을 먹고 사니까. 채소과일 코너 모퉁이에는 반드시 신선한 음료수 (주로 과일이나 채소로 만든 쥬스)를 진열대가 있는데 - 나는 진열되어 있는 쥬스 중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사 먹곤 한다. 가령 패션 후르츠 쥬스 이런거.  채소나 과일 관련해서는 나도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서 골고루 맛을 보는 편인데 지난 여름과 이번 겨울 사이에 식품점 코너에 어떤 큰 변화의 물결이 느껴진다.  바로 점령군과 같은 '콤부차'의 위용이다.

 

분명 콤부차가 식품점 신선쥬스 코너에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작년 겨울에도, 지난 여름에도 이것을 사 먹어본 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올 겨울에 왔을때  이지역의 대형 식품매장 (Walmart, Krogger, Food City, Food Country)의 신선쥬스 코너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신선쥬스 매장의 90%이상을 이 콤부차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그냥 여러가지 과일 쥬스들이 사이좋게 진열되곤 했는데 - 이제는 콤부차가 대세이고 나머지는 아예 사라지고 없거나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정도.  가령, 내가 좋아하던 패션후르츠 쥬스는 이제 어느 매장에서도 살 수가 없다. 그 밍글밍글한 과육이 씹히는 쥬스를 한국에서는 찾아볼수가 없어서 미국에서만 맛보던 것이었는데. 

 

이 콤부차는 내게는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40년도 더 오래전에 내가 초등학생이었을때 우리집에서 키우던 홍차 버섯 음료이니까.  옛날에 우리집에서는 커다란 유리어항에 홍차 버섯을 키웠다.  그것을 키워서 뭘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시큼한 냄새가 나던 그 홍차 항아리. 그 수면에 해파리같이 생긴것이 자라났는데 그것이 버섯이라고 했다. 엄마는 그것을 키웠고 아버지는 그것을 드셨다. 나는 그것을 맛 본 기억도 없다. 이웃집에서도 그 홍차 버섯을 얻어가기도 했다. 패션만 돌고 도는것이 아닌 모양. 먹을거리 유행도 돌고 도는 모양. 그 홍차버섯물이 미국 신선 쥬스 매장을 싹쓸이를 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백신 부스터샷을 월마트에서 맞고 나서, 콤부차 대짜 (아주 큰 병에 든것 약 8달러)를 한병 사가지고 와서 다 마시고 나니 몸살기도 가고 없다. 좋긴 좋은가보다. 하하하.

 

 

그래서 나도 이것을 다시 키워볼까 하는데 - 주의 사항 읽어보니 잘 못 키우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안에나 실컷 먹고 가려고.  한국 가면 또 몸에 좋은 것들이 널려있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2. 1. 16. 06:55

 

미국 현지시각 1월 14일 (금) 오후 세시에 코로나 백신 부스터샷을 맞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월마트에서는 '모더나'를 접종했기 때문에 여름에 1차 2차 모더나로 맞았고, 역시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모더나 3차 접종을 하였다.

 

간호사 설명으로는 3차 부스터샷은 1차나 2차때 맞았던 양의 절반 (half dose moderna booster) 이라고 한다.  

 

 

접종하러 가면 

  1. CDC 접종카드를 간호사에게 준다. 그러면 간호사는 접종카드에 기록된 언제 1-2차를 맞았는지 날짜를 확인하고 6개월이 지났는지 확인한다. 
  2. 1-2차와 마찬가지로 문진표를 작성한다. 
  3. 간호사가 지난번 모더나 맞았을때 특이 증상은 없었는지 물었다. 약간의 특이 증상은 있었지만 딱히 치명적인 것도 아니었고 경미한 증상이어서 별 증상이 없었다고 말해줬다. 
  4. 간호사가 "이번엔 지난번의 절반 (half dose)" 이라고 설명을 해 준다.
  5. 별 통증도 없이 깃털같이 가벼운 느낌으로 접종이 끝났다.
  6. CDC 카드 외에 코비드 백신 접종 증명서류가 없는가 하고 묻자 (한국에서 신고할때 확실하게 챙길 서류가 별도로 없을지) 월마트 앱을 다운받고 내 정보를 넣으면 백신 완료 정보가 뜰거라고 가르쳐주다. 버지니아주 정부 웹사이트에 가서도 관련 증명서를 받을수 있을거라고 알려준다.  월마트 앱은 - 내 전화기 세팅을 모두 미국으로 전환해야 앱 다운로드가 가능한것 같고, 버지니아 증명서는 웹에 가보니 잘 안된다. 월요일에 직접 전화 걸어서 작업을 해 봐야지.

 

접종한지 26시간이 지났다. 원래 감기기운이 약간 있던 상태에서 (감기라기보다는 - 그 전에 이틀간 온종일 수업듣고 숙제를 해야하는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 결과 몸살이 난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룻동안 쉬고 몸이 추스려졌다고 생각되어 경미한 몸살기가 있지만 그냥 맞은 것이다) 그냥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이다.  백신 맞고 와서 아이스티와 과일 같은것 의도적으로 많이 먹고, 빈둥거리고,  오늘은 오전에 타이레놀 두알, 오후에 다시 두알 이렇게 먹었다.  뭐 이러고 지나갈 모양이다. 감사한 일이다.

 

한국 정부가 해외입국자에게 만 48시간 이내의 PCR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다. 며칠전에 72시간에서 48시간으로 바뀌었다. 지난 여름 자가격리가 마지막 자가격리일거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상황은 자꾸만 더 나빠지고 있다.  이 상황은 도대체 언제 끝나려는지 모르겠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모두 안녕하시기를 매일 기도해야 한다. 

 

---

접종후 40시간 (2 nights)이 지났다. 푹 자고 일어나니 어제보다 몸이 가뿐해진것 같다.  창밖에 잔설이 쌓였다. 눈구경을 나가야지. 이제 부스터샷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큰 후유증 없이 지나가는 것에 대하여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고, 또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전도서에 씌어진대로 그저 오늘 하루의 희락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으로.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2. 25. 10:45

 

미국 모 대학 '망해가는' 영문과 교수들에 관한 코믹하면서도 사실감 넘치는 드라마. 30분짜리 여섯 꼭지. 세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 (한꺼번에 다 봤다). 

 

'산드라 오'가 한국계 이민자 출신으로 (김지윤 교수) - 미국 제법하는 대학의 영문과 학과장에 취임해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보는 내내 그것이 남의일 같지가 않아서 정말로 생생하게, 실감하며 몰입할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1. 현재 미국(한국) 대학 교수들이 공히 느낄만한 -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교수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2. 아시안 교수들의 모습 ...남의 일 같지 않다.
  3. 유색인종 (흑인, 아시안)의 모습 역시 남의일 같지 않다.
  4. 교수건 혹은 다른 전문직종이건 간에 '여성'으로서 겪는 미묘한 차별도 잘 그려져 있다. 
  5. 한국인 이민자들도 잘 묘사가 되어있다.
  6. 한국인 이민자이면서 남미계 아이를 입약하여 키우는 다문화적인 상황도 잘 묘사가 되어있다.

 

 

배우 '산드라오' 그리고 그가 연기한 '김지윤 교수' 모두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2. 25. 10:32

크리스마스 이브 (한국은 크리스마스).  가족들과 읍내 산책을 나갔다가 - 읍내 털실가게 울타리에 '손뜨개 모자'들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털실가게 단골 손님들이 '연습용'으로 뜨개질 한 모자들을  울타리에 매달아 놓은 듯.  아무나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라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빨간 털실모자가 갖고 싶었지만, 내 머리통이 좀 커서 - '큰모자'가 아니면 힘들다.  다행히 머리에 맞는 모자가 하나 있어서 쓰고 왔다.  지금도 쓰고 앉아있다. 따뜻하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2. 25. 10:23

 

Fail Forward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존 맥스웰). 이 책은 1년전 리더십 코칭 전문가인 동료교수가 소개해서 잠시 훑어봤던 책이다.  동료교수와 나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을 함께 짜서  매주 토요일, 5주간 진행한 적이 있는데 - 동료 '타샤'의 주제가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라는 것이었고, 저자인 존 맥스웰의 리더십 프로그램을 한국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였다. 나역시 청소년이나 성인, 공무원, 교사 리더십 특강을 진행하곤 하는데 내 주제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관한 것이다.  내  주제와 타샤의 주제를 조화롭게 녹이기위하여 당시 이 책을 대충 훑었었는데 - 방학을 맞이하여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즈음 빈둥빈둥 누워서 읽기에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미국 집에 도착하여 열흘쯤 되었고, 그 동안 킨들에 쌓여있던 책들을 하나 하나 읽는다.  할일은 하기 싫고...)

 

이 책을 읽는 도중 - 내 마음에 다가오는 내용이 있었다.  메모를 해 두었으니 킨들을 뒤지면 나오겠지만, 기억에 의거하여 적어보자면:

  1.  인생은 어차피 공정하지 않다.  공평하거나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수긍하라/받아들여라.
  2.  내가 있어서/내 덕분에/나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이 덕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남이 나를 이용하도록 내버려 두라. 어쨌거나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누군가에게 덕이 되고 이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3.  리더의 말을 따르라. (냉소적이거나 반대하는 것은 득이 안된다.) 

 

위의 내용들이 내 마음에 다가온 이유는 - 내가 위의 문제들로 골치를 앓고 있거나, 그러한 것들이 내 삶을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일것이다.  내게 누군가의 이러한 조언이 필요한 싯점이었으리라. 

 

그렇다. 나는 이 세상이 공정하거나 공평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것때문에 괴로워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 그러한 상황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곧 내가 느끼는 불공정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그렇다. 누군가 내곁에 다가올때 대개는 내 도움이 필요해서다. 때로는 누군가가 나를 이용해 먹거나,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그래서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하여 화를 내지 말기로 하자. 내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직 나는 누군가에게 '이득'이 될수 있다는 뜻이니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내가 송장이 아니며 쓸모가 있다는 것이니.  화를 내지 말기로 하자. 그리고 나의 시체를 그들이 더 뜯어먹도록 내버려두자. 

 

 

그렇다. 순종하자. 내 주변에서 나를 이끄는 리더들을 위하여 내가 조력자가 되어주자. 비평하기보다는 칭찬해주고, 도와주고, 그리고 웃어주자. 생각해보니 '순종'은 내가 '나에게'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순종이건 그것은 본질적으로 '나'를 향한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고나서 넷플릭스를 틀었는데, 마침 화면에 한국영화 '아라한'이 뜨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도 식힐겸 그 '아라한'이라는 영화를 무심코 열었는데 -- 영화가 의외로 재미있었다.  '마루치'가 수련을 받는데 '안성기' 사부의 가르침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상대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 내가 상대를 돕도록 하라 (상대에게 이득이 되게 하라) -- 나의 모든것을 다 주라 - 그러면 너는 모든 것 (기)와 함께 하게 된다." 

 

---> 뭐 대충 이런 가르침이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 저것은 예수님에 관한 것이구나, 저것은 내가 읽었던 책에 나온 그 가르침이구나...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다 잃은 사람이 다 갖게 되는것이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시 먼지가 뒤덮이겠지만, 어쨌거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 주변 상황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났는 것들에 대하여 내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그것들이 먼지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2022년에 내가 수업외에 별도로 외부 초청으로 진행하게 될 특별 프로그램 중에서 이 책을 응용한 새로운 세션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2022년의 특강들은 뭔가 더 신선하고 재미있게 하고 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2. 25. 09:49

 

지난 가을 그리고 겨울 - 공황 상태에 빠질 정도로 내 우울증이 극심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것과 상관이 있는 것 같다.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정당하는.  공기속에 늘 떠도는 것이라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야 하는.  한가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여자'로 태어나서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죽어도 겪지 않을 상황속에서 여자는 평생을 허우적거려야 하는건데 한편 생각해보면 그걸 '당신들은' 절대 모른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가/내가 무엇을 고통스러워하고 역겨워하는지 도무지 짐작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이 고통에 대하여 나는 한편 감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소희 칼럼니스트는 이것을 단 한줄로 명쾌히 말해준다. '....피땀 흘려 쟁취한 것이다.'  

 

 

죽을때까지 치러야 하는 전쟁.  하는수없다 숨이 끊어질때까지 하는수 밖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2. 15. 17:25

갈수록 태산이라, 지난번 3차 '자가격리'가 마지막일거라는 기대를 품고 살아왔건만 아무래도 2022년 2월 한국으로 돌아갈때 다시 자가격리에 처해질 가능성이 작지 않은 가운데 다시 미국집으로 향해야 했다. 

 

미국행 준비:

 

 *지난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코로나 항원 검사 결과 24시간내에 통보된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오후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출발 당일 오전에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검사 1시간후에 결과가 나와주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송도 이화웰봄소아과). 

 

* 미국 질병관리청에서 요구하는 - 백신 접종 완료했다는 확인서에 싸인을 하고 지참해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고 그냥 온라인으로 하고 종이에 프린트도 하고 골고루 다 챙겼다. 

 

위의 두 서류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티켓 받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일일이 검사하고 체크하고 그런다. 미국에 도착하여 이민국 통과할때는 내밀어줘도 묻지도 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준비는 해 가지고 가는 것이 타당하다, 혹시 이민국 직원이 보자고 하는데 내밀지 않으면 낭패일테니). 

 

미국에 도착하면 - '여기가 하루에 수만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땅인가?' 싶게 '자유천지'에 나온 느낌이 든다. 이렇게들 태평하니까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여전히 잡히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닐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인생이 피곤한 가운데 - 그러나 희망을 꼭 붙잡고...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1. 25. 16:07

 

11월의 마지막 목요일.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학교에서는 캠퍼스에서  추수감사절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피곤해서 그냥 쉬기로 했다. 책이나 보다가 퇴근해야지. (코비드가 무서워, 사람 모이는데 가는 것은 피하고 본다.) 

 

문득 5년 넘게 내 오피스에 걸려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2015년 추수감사절, 메릴랜드 오션시티 해변.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날의 너무나 따스했던 햇살과, 텅빈 해변과 파도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 삶의 한 순간이 영원처럼 박제된것 같은데 - 박제된 시간속에서 파도는 여전히 철썩철썩 소리를 내는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시간에서 6년 멀어졌고, 그만큼 나이 들었고, 느려졌고, 거울속의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만큼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 한장의 사진이 있어서 아직도 그날의 햇살과 파도소리를 간직할 수 있으니.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1. 16. 14:01

눈맞춤

 

팬데믹의 여파로 Zoom 을 이용한 대화가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버린듯하다.  특히 줌 수업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향한 시선처리가 중요하다. 가능하면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대화를 해야 저쪽에서는 나와 눈맞춤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사실 깨알만한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 어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가르쳐 준 꿀팁. 노트북이나 컴퓨터 모니터나 하여튼 줌으로 대화를 하는 도구의 카메라 바로 뒤에 커다한 두개의 눈동자를 그려 붙이면 - 우리의 시선이 저절로 그 두개의 눈동자로 가게 되고 - 그러면 우리가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킨듯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들어보니 그럴듯 해서, 잘생긴 남자 배우 얼굴 사진을 한장 큼지막하게 프린트하여 모니터 뒤의 벽에 붙여 놓았다.  줌 수업할 때 카메라 대신에 이 미남자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한다.  어차피 카메라도 켜지 않는 '검은 그림자' 같은 학생들. 그 검은 그림자들을 보면서 우울증에 걸리느니 잘생긴 미남 배우의 사진에 의지하여 수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 보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카메라를 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 학생들을 나무랄수도 없고, 강제할 수도 없다. 얼굴 사진 하나 가지고 온갖 범죄를 생산해내는 기묘한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어쨌거나 잘생긴 이 @@ 씨가 우리를 돕고 계시다. 

 

눈이 사슴 눈이라서. 하하하. (원래 내 취향은 아닌데. 요즘은 딱히 취향이란것이 없다.세상이 시들하고, 미남자들도 시들하고. 심심하다.) 일단 잘생기면 좋은거지 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1. 14. 12:59

 

'연탄은행'이라는 기관과 연계하여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우리 학교 학생, 교직원, 학장님까지 20여명이 1,600장의 연탄을 여덟 가구에 200장씩 배달하는 행사였다. 

 

연탄은행에서 활동하시는 봉사자들이 우리 일행에게 팀을 짜서 일거리를 분담을 시켜주셨는데, 나는 연탄의 최종 배달지 창고에서 연탄을 받아 쌓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쌓여있는 연탄더미에서 연탄을 '지게'에 실어주는 팀 - 지게로 운반하는 팀 - 운반된 연탄을 창고 입구에서 받아서 쌓는 팀 - 대략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을 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른 팀과 함께 창고 구석에서 연탄을 죽어라 쌓는 일을 한 것인데 그러니까 내 손으로 쌓은 연탄만 정확히 800장이다. (네 가구의 연탄광을 내가 채웠고, 다른 팀이 나머지 네가구를 채웠고.)  이 일을 딱 두시간에 끝내고 오후 한시쯤에는 학교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하루 반나절을 끙끙 앓았다. 하하하.  연탄 쌓는 일은- 그게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연탄을 사용해 본 나같은 사람이 연탄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쓰러지지 않게, 좁은 연탄광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을수 있는 것이다.  우리팀은 내가 쌓았고, 다른 팀은 '하필 연탄을 생전 구경도 못해본 우리 미국인 학장님'이 쌓아야 했는데 - 처음에는 이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말귀'도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내가 가서 설명을 해주고 와야했다. 우리 학장님이 나이가 내또래인데, 몸도 펼수 없는 낮고 좁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 연탄을 쌓아야 했으니 나보다도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 연탄창고는 임시로 이리저리 막아놓은 뚜껑있는 상자 모양이어서 - 사람이 허리를 펼수도 없는 공간이었고, 연탄을 받아서 몸을 오그리고 그것을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일은 그냥 체육관에서 웨이트트레이닝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힘쓰기'와 '근육'을 요하는 일이었다.  지금 목부터 온 몸이 쑤시고 있다. 그래도 몸살이 나지않고 허리 어디가 삐끗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기저기 쑤시는 부위에는 새로운 '근육'이 붙고 있을 것이니.

 

 

처음 연탄을 배달하러 간 집에서는 노신사가 살고 계셨는데, 우리가 열심히 연탄을 쌓는 동안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 햇살 가득한 산기슭 그의 한뼘만한 마당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저기 저 학생은 아주 먼데서 온 모양이야" 할아버지가 가리킨 학생은 미국에서 온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므로 노신사께 자기 이름도 말하고 인사도 하고 하였다. 노 신사는 우리가 작업을 다 마치고 다른 집으로 이동할 때까지 한뼘짜리 마당가에 서서 우리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여기가 그린벨트야. 그래서 개발이 안돼.  기름보일라가 따뜻하지가 않아. 기름만 잡아먹지. 그래서 연탄으로 바꿨어. 아껴써서 하루에 여섯장이 들어가. 아주 아껴써서. 고맙지 이렇게 학생들하고 교수님하고 연탄을 쌓아주니." 

 

 

아주 아껴써서 하루 여섯장이 든다면 연탄 이백장은 기껏 한달 쓸 분량이다. 난방을 해야 하는 기간은 12-1-2-3 이렇게 네달은 잡아야 하는데 그러면 720장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아주 작은 연탄보일러에 연탄을 최소한으로 아껴서 쓸때 이런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쌓은 것은 딱 200장이었는데.  그것도  - "마침 연탄이 똑 떨어졌는데 오늘 쌓아주니 참 고마워" 뭐 이렇다.  맞다. 그의 연탄창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두번째 집은 젊은 신사분이 사시는 집이었다. 집 입구에 장애인용 전동의자차가 있었다. 내가 그 전동의자차를 발견하고 든 생각은 - '이 비좁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 전동의자차가 제대로 오르내릴수 있을까? 이 의자의 주인은 정말로 이걸 타고 이 골목길을 내려갈수 있을까?'   우리가 창고에 연탄을 쌓는 동안 딱 한번, 미닫이 문이 열리고, 젊은 신사분이 얼굴만 내밀고 우리에게 인사를 보내셨고 - 학생들도 씩씩하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보냈다. 

 

 

아무도 없었던 세번째 집의 아주 작은 꽃밭에는 붉은 맨드라미가 있었다. 화분만한 아주 작은 꽃밭이었지만 '루비'처럼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네번째 집의 창고에는 자전거도 한대 세워져있었다. 

 

 

집에 와서 - 도대체 내가 나른 연탄은 요새 한장에 얼마나 하는건가? 궁금한 생각이 들어 검색해보았다. 대략 650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차가 닿지 않는, 리어카(손수레)도 다닐수가 없이 비좁고 꼬불꼬불한 언덕길 위에 연탄을 배달할때도 그가격일까? 배달료를 더 받는게 아닐까? 

 

 

모르겠다. 일단 계산좀 해보자. 650x180=117,000x4=468000  한 사람의 최소한의 겨울 난방비가 이쯤 되려나보다.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에, 내가 신혼일때 우리 시아버지도 연탄을 때셨는데, 연탄을 무지무지 아끼셨다. '불구멍을 막아 놓는다'고 - '죽은 놈 콧김 만큼도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온기 없이 지내시다가, 내가 나타나면 불문을 열어 놓으셨다. 그러면 정말로 그 손바닥만한 방이 금세 따끈따끈해졌다.  내가 어쩌다 '시댁에서 자는 날'에는 냉골로 놓아두던 작은 방에 급히 연탄을 옮기고 불을 붙이셨다.  나는 그걸 보면서 '안때던 방에 연탄 불 때면 가스가 나올텐데, 내가 오늘밤에 연탄 가스로 저승으로 가는게 아닐까?' 그런 문제의식을 갖기도 했었다.  나는 그래도 신혼 생활을 기름보일러집에서 시작했는데, 나도 돈 아끼느라 그 기름보일러를 안쓰고 그냥 셋집 마루에 연탄난로를 들이고 연탄을 때면서 그 온기로 삼동을 보냈다.  그 이후로 연탄은 내 일상에서 사라진듯 하다. 그래도 겨울이면 한 트럭씩 연탄을 주문하여 연탄광을 꽉꽉 채우고 살던 어린시절, 겨울에 골목에서 놀다가 '연탄 왔다!' 엄마가 부르시면 모두들 달려가 연탄을 연탄광까지 옮기던 시절을 보냈으므로 연탄을 나르고 쌓는 일이 내게는 친근한 과거로의 회귀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연탄을 때시는 우리 이웃의 아주 작은 꽃밭에도 햇살은 가득했고, 맨드라미는 빛났으며, 문을 열고 내다보는 젊은 신사도, 마당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신 노신사도 모두 반짝반짝 빛나셨다. 

 

***   ***

 

<봉사 활동에 대하여>

봉사활동은 내돈 내고 하는게 맞다. 

 

 

대학 다닐때, 내 가까운 친구들이 여름이면 '대학생 농촌봉사활동'을 갈 때,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기만 하였다. 내게는 '농촌봉사활동'의 명분이 없었다. 왜냐하면, 여름이면 시골집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농사일을 거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집 식구나 돕지 무슨 봉사냐' 뭐 이런 분위기를 거역하기 힘들었다. 집 안팎에 널린게 일거리인데 그것 놔두고 무슨 중뿔나게 남 돕는다고 돌아다니냐 이거다.  내가 대학생이던 당시에, 우리 외사촌오빠도 대학생이었는데, 어느해 여름에 물난리가 나서 경기도 일대의 논밭이 떠내려가고 쌀이 썩고 아주 난리가 났었다. 우리 외삼촌댁도 그 경기도 일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집이 난리가 났는데 - 우리 사촌오빠는 글쎄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수재복구 봉사'를 하러 어디로 갔다는 것이다.  지네집에 난리가 났는데 무슨 남을 구제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킬킬거리며 그 오빠 흉을 봤다. 

 

 

지금도 - 예컨대 어느 주부가 어디로 봉사활동 간다고 하면 - '제 집 꼴도 엉망인게 무슨 봉사라고 나돌아다니냐, 네 앞가림이나 똑바로 하라'는 냉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뭔가 '봉사'라면 팔자 좋은 사람들이 '취미' 정도로 해야 타당하다는 분위기이다. 혹은 위선적으로 살면서 무슨 봉사냐며 한 사람의 전인생을 평가하고 '봉사'를 할만한 사람과 봉사는 택도 안되는 사람으로 분류를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봉사'에 대해서 마냥 따뜻한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봉사'라는 것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평생 살면서 '봉사'는 다섯손가락도 채우기 힘들 정도로 봉사를 안하고 살았다. 나는 '봉사'는 성인군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남의집 봉사 다니느니 내집부터 돕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고, 돈 안되는 봉사보다는 돈 버는 일에 열중했다.  돈을 벌어야지 무슨 봉사냐구. 

 

그런데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한 번 하면 - 깨달아지는 것이 많다. 봉사의 장점을 말하자면 -- (1) 내 평소 생활권이 아닌 다른 곳, 낯선 곳에 가서 내가 평소에 만나지 않는 새로운, 낯선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마치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2) 여행과 같은데 경비는 별로 많이 안 든다. (3) 몸이 고단해지는데 마음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4) 무조건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5) 내가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진다, (6) 잠을 푹 잔다. '내 애플워치의 기록에 의하면 간밤에 나는 잠에서 깨지않고 8시간을 잤는데 올해들어서 그렇게 잠을 잔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자 봉사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혜택을 얻게 된다. 그러니 봉사는 내 돈을 내고서라도 하는 것이 맞다. 봉사는 누군가 남을 도우려고 하는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거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웃이 약간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0. 21. 17:30

 

 

이쁘장하게 생긴 남자 배우의 몰락이 요즘 화제다.  그 배우는 내가 방학때 미국집에 있는 동안 넷플릭스를 통해서 봤던 '백일의 낭군님'인가 하는 드라마에 나왔던 '착한 남자'다.  나는 거기 나오는 주인공이 잘생겨서 그걸 열심히 보았다. 이 사람은 주인공은 아니고 조역이었는데, 만화책에서 방금 튀어나온듯한 미소년이어서 인상적이었다. 그 배우의 전 애인이 뭔가 '보복성'글을 언라인에 올렸고 뭐 그 때부터 상황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그 사람이 요즘 뜨는 대세배우였대서 놀랐고, 그가 별로 착한 남자가 아니었대서 조금 놀랐고, 뭐 그가 폭망하게 되었다고 해서 한숨이 나왔다. 일부함원이면 오월비상인데 그걸 몰랐구나 그 만화책 미소년이. 

 

연구실 바닥에 먼지가 굴러다니길래 걸레질을 하면서 - 유튜브로 김광진의 '편지'를 틀어놓고 걸레질을 하고 하고 하고 또 하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모두들 '한때는 사랑했는데...'라고 한다.  한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으니까 지금 그 사람이 망하는 꼴을 봐야 하는걸까? 나는 이 부분이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내가 사랑했고, 둘이 서로 사랑했고, 내가 버림받으면 (혹은 상대가 내게 싫증을 느끼고 도망을 가버리면) 그것으로 그 상황이 끝난다고 해도, 그래도 사랑은 거기 있으면 안되는가?  사랑은 거기 그냥 있으면 안되나?

 

어느 여배우도 한때 둘이 어울려 연애했던(연애했다고 어느 한쪽이 주장하는) 정치인을 향해서 여러가지 '저주'를 공개적으로 퍼붓는다.  나는 어느쪽 편도 들 생각이 없지만, 여전히 생각한다, 둘이 서로 좋아서 교제하던 시절 그 시절은 그대로 폐기되어야 하는가 (만약에 둘이 연애했다면 말이다)?

 

나는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면서 사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외사랑(짝사랑)일때도 있었고, 서로 사랑을 했을때도 있었다. 주로 내가 훨씬 더 많이 사랑을 했다. 주로 내가 더 많이, 더 오래 오래 사랑했다.  사랑을 퍼붓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  그 사랑이 잘 못 되었건 어쨌건, 나의 죄는 하나님께서 판단 하실 일이고, 나는 사랑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산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내게 아주 소중하다. 그들 하나 하나가 아주 소중하며, 그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넘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발끈하고, 보복하고, 망하기를 바라면서 한때라도 사랑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면 그렇게 못하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을 가지고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이 슬프다. 

 

김광진의 '편지'를 듣고 있으니 그 '편지'가 생각난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330706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YES24

`-저를 전혀 알지 못하시는 당신에게-이따금 눈앞이 캄캄해지곤 합니다.어쩌면 이 편지를 끝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제게 남은 힘을 다해서 일생에 단 한번 당신에게 보내는 이 편지

www.yes24.com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이 어느날 한문 수업은 안하시고 - 우리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르니까, 아마도 오늘같이 깊어가는 가을 오후였으리라,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저자가 스테판 쯔바이크였다는 것은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그 책을 찾아 읽었을때 알게된 것이었고 - 한문 선생님은 참 청승맞게 그 이야기를 해 주셨다. 평소에도 말씀을 단정하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시던 차분한 분이셨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문 선생님이 바로 그 여주인공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저를 알지 못하시는 당신에게...  이 짧은 소설의 끝은, 그런데 편지를 받은 그 남자는 도무지 이 여자가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것이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인터넷 시대에, 알고 싶지 않아도, 십년전에 헤어진 웬수도 검색 몇번만 하면 지금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애는 몇이고, 몇번 이혼했는지 소상히 알수 있는 시대에, 고전적인 사랑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헤어져도 헤어질수가 없어 - 티브이 틀면 나오고, 카카오톡 열면 나오고, 어디서든 유령같은 그들이 살아서 돌아다니니까 잊고 싶어도 잊을수가 없어.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가버린 사랑'을 잊을수도, 용서할수도 없는건가?  인터넷 시대에는 새로운 사랑의 방법 혹은 패러다임이 필요한걸지도 모른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0. 19. 13:16

 

남루하게 입었더도 거지같이 입은 그것이 모두 명품 수백만원어치라고 해서 유명해진 어느 법조인의 모습이 테레비에 나왔을때, 나는 - 아 저 역은 '김수로'씨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0. 17. 08:26

근래에 아주 '좋은 책'을 만났다.  그 책은 지난 5년간 분명히 늘 내 '코 앞'에 있었다.  온집안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 더미 속에 그 책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증정본'이었다.  내가 관심이 있어서 내 돈 내고 사 온 책이었다면 내가 그 책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 책은 그냥 우연히 흘러들어와 비좁은 우리집 방구석에서 얌전히 오년을 기다리고 있었던거다. 

 

그런데 일단 무심코 '심심파적'으로 그 책을 집어든 나는 그자리에서 책을 읽다가 그 날 하루를 다 보냈다.  동시대의 '고민하는' 어떤 대학교수가 일반인이 읽기에도 무난하게 쓴 '사회 교양'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이 하도 맘에 들어서, 며칠 후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만약에 어느 대학 교수가 저자라면 - 대학에서 프로필을 찾으면 이메일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이 책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몇가지 적고, 좋은 책을 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 저자에 대한 인사였다.  (저자가 기뻐할 것 같았다.  저자들도 응원이 필요하다. )

 

그런데, 그냥 내가 내 흥에 취해서 보낸 이메일에 저자가 답을 보내셨다.  역시 나의 인사가 그를 기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답신에 약간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었다.  사실 그는 그의 교수와 학자로서 그의 전공 분야 관련 연구 업적이 활발하고, 전공 관련 책도 여러권 출판을 하였다. 그런데 내가 읽고 반한 책은 그의 전공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반 교양 수준의 책이었다. 그가 이런 '일탈 (전공과 관련 없는 글을 쓴 것)'을 하게된 계기가 놀라웠다.  그가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다가 연구년을 맞아 외국으로 나가려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암' 선고를 받았을때 - 내가 암에 걸리는게 당연하지 - 라는 생각이 스쳤다는 것이다.  그의 활발한 '업적'이 공짜로 얻어졌을리는 만무하고, 그의 삶이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깨달음이 그를 내리쳤을것이다.  그 때 그는 '정말로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써보고 싶어'라는 자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읽고 반한 책은 - 한 학자가 생존을 위해서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성곡적으로' '생존'하다가 암 선고를 받고 - '아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온거지?  회의를 품은 후 -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속시원히 해보자는 심정으로 쓴 책이리라.  

 

그분은 그 후에도 소속한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책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암을 잘 극복하신 듯 하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읽고 반한 그 책이 그 사람을 '되살린' 책인지도 모른다.  그런 책이기에, 내가 읽고 반한 것이겠지.  아마도 그런 책이 5년이 넘도록 내 근처를 맴돌면서 이제야 나와 만난 것을 보면 - 이제 나도 다시 날개를 펼쳐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르지... 아, 내게도 마무리 해야 할 '숙제'가 있는 것이니.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0. 11. 18:26
  1. 목적: 도대체 내가 왜 대학원 진학을 하려는 것인지 명확히 한다. 잘 모르겠다구? 가지 마시라. 당신에겐 너무 비싼 놀이터가 아닐까?
  2. 학업성취도: 학점 관리를 제대로 한다. 학점은 평생 당신을 따라다니며 당신을 빛나게 하거나 괴롭힐것이다. 학점이 엉망이라구? 그런데 대학원은 뭣하러 가시나?
  3. 인간관계: 나를 위해서 추천서를 써줄 관계자 (교수, 직장 상사등) 두세명을 단단히 확보해 놓는다. 없다구? 대학다니며 뭐하셨는가?
  4. 경력관리: 학점은 만점에 가까운데 학점 잘 받은것 외에 딱히 쓸말이 없다구? 학점 높은것은 자랑이 아니다. 어차피 대학원 진학하는 학생들 학점은 대체로 높다. 학점 말고 내세울것이 뭐가 있는가? 없는가? 집어치우라. 

 

 

 

한국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을 뽑는 계절이 돌아왔다.  한국의 유명 대학 대학원들은 대체로 10월 11월 사이에 원서를 받는다.  나는 수년간 미국과 한국의 대학원에 지원하는 졸업생들의 자문을 하고 있다. 이제는 지원자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희망하는 대학원에서 입학허가를 받을수 있을지 없을지 윤곽이 잡힌다.  (내가 관상가도 아닌데...). 

 

대학원 진학을 하고자 하나 진학 목적 자체가 애매해 보이는 졸업생의 경우 - 나는 진심으로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 대학원에 반드시 가야할 이유를 잘 모르겠으면, 대학원 입학 신청 이런것으로 시간 낭비, 돈 낭비 하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말고 , 뭘 해야 할지 고민을 더 하시라.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서 밥벌이를 해도 좋고, 그냥 무위도식하면서 온종일 걸어 돌아다녀도 좋고. 집에서 눈칫밥 먹기 싫으면 나가서 뭐라도 시간제 일을 하면서 용돈벌이라도 하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봐도 좋을것이다.  대학원이 당신을 구원하지는 않을테니까.  이세상에 구원은 없다. 

 

***   ***

 

추천서를 써오라고 하는 추천인

 

 

가끔 한국 학생들에게서 듣는 전설 같은 이야기.  모 교수에게 추천서 부탁을 드리니 "네가 써오면 내가 싸인해주겠다. 잘 써오라"고 했다는.  이런 얘기는 뭐 수십년간 '추천서'관련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얘기이다.   내가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 추천서가 필요 했을 때, 나는 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추천서를 받았다. 교수님들께 부탁드리고 그분들이 열심히 써주셨으며, 결과가 모두 좋았다. 석사 입학, 박사입학 모두.  내 석사때 지도교수님이었던 플라트 박사는 내게 박사 과정에 진학하라고 권하면서, "네 추천서 걱정은 하지 마라, 내가 써줄것이고 또 한 부는 *** 에게 내가 부탁해서 쓰라고 할게." 이정도로 열정적으로 나를 후원하셨다. 

 

내가 은사님들의 하늘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 나는 그것이 정석인줄로만 알고 내 학생들이 추천서를 부탁해올때 성심성의껏 추천서를 작성한다.  (그러길래 사람은 제가 보고 배운대로 남들에게도 하는 것이고,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베푸는 방법도 아는 것이다.).  그러데 몇해전에 대학원 입학 지도를 하는 가운데 어느 학생에게서 그 전설같은 사례를 들었다.  스위스의 모 대학원에 입학신청을 위하여 지도 교수께 추천서를 부탁드리니 "네가 써오면 내가 싸인해주마"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지나갔다.  그 교수는 '미국인'이었다. 

 

얼마전에도 대학원 지원하는 학생을 상담해주는데 '추천서'얘기를 꺼낸다.  전공교수나 전공 관련 과목 교수나 혹은 인턴으로 일했던 부서의 디렉터나 뭐 그런 '학업이나 직무관련' 인사의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고 코치를 해 줬는데 - 그래서 그 학생이 접촉한 인사가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영문 추천서가 필요하면 네가 영문으로 작성하고, 한국어 추천서가 필요하면 네가 한국어로 작성해서 가져오면 내가 싸인해 주겠다."   그 학생이 내게 의논을 한 것은 '그러니 영문 추천서가 유리할까 한국어 추천서가 유리할까' 내가 판단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답을 해 줬다. '영문이건 한국어이건 아무쪽을 써도 상관없다면 그것은 영문이건 한국문이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다. 내용을 보겠다는거다. 추천서에 쓸만한 내용이 있는지 그걸 보겠다는거다.  그 쓸만한 내용을 '추천인'이 잘 모를수 있으니 오히려 추천서가 필요한 본인이 알아서 잘 쓰는것이 아무래도 좀더 생생하겠지. 그래서 그 추천인은 아마도 그러 선의를 가지고 써오라고 했겠지.'   나를 위한 추천서를 진심으로 작성할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다면 - 이제 앞으로는 주위에 내 편이 되어줄 성실한 조력자를 세울 궁리를 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조력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1년 혹은 2년간 공을 들여야 하는거다.  그러한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 어디에 가서도 '일꾼'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를 돕고 내가 도울 나의 네트워크를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