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1. 17. 10:32

서민 "조민, 환자보는 것 막을 방법 없어져…많은 이가 생사의 기로에"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9&aid=0004734364

 

서민 "조민, 환자보는 것 막을 방법 없어져…많은 이가 생사의 기로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민이 2021년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서민 단국대 교수가 "이제 조민이 환자 보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어졌다"며 "우리나라의 의사고시 합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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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이렇다.  나 역시 조아무개씨나 그 부인이 자녀들을 위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 혐오의 마음이 강하고, 그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부인이 그 문제로 유죄평결을 받고 감옥으로 들어갔는데도, 그 부정의 결과가 전혀 현실에서 반영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심히 피로감을 느낀다.  최순실씨 딸에 대해서 진행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씨도 형평성 있게 일 처리가 되는 쪽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 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것은 그것이고, 조모씨가 의전원을 어떻게 들어갔는지 그것이 수상쩍은것까지는 나도 동의하고 정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하는데 - 그냥 의사국가시험에 대해서만 얘기를 해보자.  그 사람이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장차 환자를 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거다.  그냥 그렇다는거다. 자격이 있어서 환자를 보게 되면 보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서민씨가 조민씨를 부정하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시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본다. 시험에 붙었다는거다.  그 시험에 붙은것은 그 사람이 붙을만하니까 붙은거고 다른 사람만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격이 되면 환자를 볼 수 있는거다.  시험 결과 자체를 부정한다면 우리는 모두 국가시험을 부정하게 되는거다.  위험한 생각이다.

 

글쎄, 조아무개씨의 입학이 취소되는순간 이 모든것이 취소되는 것이니 그것이 합당한것 아니겠는가. 그 순간에도 국가시험자체를 부정하는 언사는 자제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 8. 01:33

본래 오프라인으로 구상되었던 프로젝트인데 코비드팬데믹의 장기화로 연기되었다가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외부에서 신청한 프로젝트인데 집행예산도 크고, 내가 속한 곳의 명예도 달려있는 일이고, 여러명의 동료 교수님들을 섭외하고 인턴 학생들을 고용하여 진행하는데 나도 외국에 나와있고  (언라인이라 국내인가 외국인가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어딘가 불안감이 있고), 모든 것이 언라인으로 소통되고 기획되고 실행되는 일이다보니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묘한 불안감이 든다. 

 

온라인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역시 다수의 인재들에게 영감을 줄만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일은 오프라인으로 동일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것과 비교하면 스트레스가 몇 배 심하다. 현장에서 곧바로 처리되고 소통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미리 예측하고 세세하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해 본적은 없지만 - 그것과 흡사할 것이다. 유저의 필요와 소용되는 것들을 미리 예측하여 뭔가 만들어내는 것. 

 

교수님들을 섭외했고 (그중에 한 분은 이미 준비 다 마친 상태에서 갑자기 아프리카로 날아간다는 폭탄선언을 하여 내가 부랴부랴 동일한 주제로 강의해 줄 다른 교수를 섭외해야 했고),  인재 학생들을 발탁하여 인턴방을 하나 만들어 놓았고, 이제 참가자들이 아무 문제없이 온라인으로 수업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이제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도 저쪽에 요구해야 하고 참가자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반을 배정할지도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음... 갈길이 멀다. 

 

여태까지 나의 연구가 주로 나 혼자서 연구대상을 섭외하여 혼자 데이타 구하고 혼자서 연구하여 논문을 쓰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글을 쓰건 논문을 쓰건 책을 쓰건 나는 혼자서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총체적으로 기획을 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시작과 마침표를 찍어야 하고, 동시에 일부 수업도 진행해야 한다.  지휘자...연주 도중에 직접 악기도 연주하는 지휘자. 뭐 그런 입장이다.  영화감독인데 일부는 직접 출연도 하는. 뭐 그런것.  내가 스트레스 받는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지휘를 해야 한다는 것.   지난 가을학기에도 외부 프로그램을 굴리는 것을 한적이 있다. 그 때는 운 좋게도 코비드 상황이 나쁘지 않아서 오프라인으로 사흘간 진행했다.  그때는 아무런 스트레스를 못 느꼈다.  직접 현장에서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참석자들의 반응도 살피고 인간적으로 서로 다가갈수 있었다.  이번 경우에는 2주간 프로그램 진행을 살펴야 한다. 반응도 체크해야 하고. 강사들이나 인턴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시켜야 한다. 성공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 뭐 기왕에 하는거 잘하고 싶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1. 1. 7. 09:54

2021년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 건물을 트럼프계 폭도들이 점거하고 시위하는 '폭동' 상황을 온종일 TV 뉴스를 씁쓸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들.

 

 

  1. 미국의 대통령제는 트럼프가 똥칠을 하는 통에 이제 망하는건가?
  2. 트럼프에 비하면 W 부시 대통령은 '성군'이었던 것이다. 
  3. 촛불 민심에 순순히 물러난 박근혜씨는 참 순한 양이었던거다. (나 역시 박씨의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일개 시민으로서, 요즘 돌아보면 새삼 그가 측은하다.)
  4. 한가지 더: 트럼프의 위대성 및 트럼프의 교육자적 공헌 -- 트럼프는 역대로 대통령 선거가 끝나는 날 밤 혹은 이튿날 쯤 윤곽이 판가름되어 승자가 누구인지 가늠하고 대대적인 '승리' 축하행사를 하던 전통을 시원하게 박살내고 - 대통령을 확정짓는 - 미국법에 명시된 모든 디테일들에 사람들이 시선을 보내게 하였으며 - 결국 1월 6일 의회 승인 절차에 이르기까지 심야까지 계속된 반론 토론등의 모든 절차에 대하여 그 의미를 공부하고 확인하게 해 주었다.  트럼프 이전에 누가 이런 뉴스거리도 안되는 절차까지 TV로 생중계를 봐야 했던가?  참 대단한 악당이다.  우리가 도대체 왜 그런 모든 절차들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는 우리를 공부하게 만들었다.  타고난 슈퍼스타이다. 그는 아마도 백악관에서 나가는 그날까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바이든 당선인을 조연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내가 '미국문화'에 대한 특강을 교외에서 진행할 때 '미국은 대통령제를 창안해 낸 나라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대통령제가 수천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미국이 만들어 낸 개념이다. 그래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선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에게 미국은 애증의 상대이다. 반미를 외치다가도 미국 유학을 간다거나 뭐 복잡한 심경이 된다. 어쨌거나 아무튼 미국은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이는 대통령제를 탄생시킨 나라다.  그런데, 그 미국의 위대한 역사/미덕에 트럼프라는 괴상한 대통령이 나타나 똥칠을 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미국은 이대로 망하는건가? 로마가 망했듯 미국도 언젠가 기울겠지만 - 트럼프가 이를 앞당기는 악마같이 여겨진다.  어쩌다 이꼴이 된 것인지.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21. 1. 2. 11:47

나는 2021년에 두가지를 실천하고자 한다.

 

1. 커피를 끊는다.

 

2. 매일 아침 눈을 떴을때, 제일 먼저 머리맡의 아이패드로 성경책을 약 10분간 읽는다. 

 

 

커피를 끊기로 한 것은,  지난 해 11월에 건강검진에서 위장을 잘 보호하지 않으면 문제에 빠질수 있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비롯한 자극적인 음식이나 과식등이 내게 치명적일수 있다는 판단에 - 일단 커피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  하여 이미 지난 12월 한 달 간 커피 없이 살았고, 뭐 그럭저럭 커피를 안마셔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다.  요즘 내가 집에 칩거하며 커피대신 마시는 것은 월마트 식품 매장에서 심심풀이로 몇가지 고른 (1) 민들레 뿌리 차 (2) 카모마일 차 (3) 민트 차 (4) 잠이 잘 오는 차 등으로 모두 카페인이 없는 순한 것들이다.  심심하면 종류별로 한가지씩 찻잔에 담아 먹다보면 하루가 간다. 

 

뭐, 커피 끊는것과는 관계가 없지만, 나의 소화기관의 건강을 위해서 내가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또 한가지는 - 식후 한시간이내에는 절대 눕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나쁜 버릇중에 한가지는 저녁에 밥 먹자마자 소파로 가서 모로 누워서 TV 를보면서 조는 것이다. '위장'을 배려한다는 의미로 반드시 왼쪽으로 눕곤 했다.  내 이런 나쁜 버릇을 조장한 환경적 요인으로는 - 저녁 식사를 남편이 주로 차려주고 식후의 과일 준비며 뒷설거지등을 그가 자원봉사 차원에서 모두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설겆이나 청소 걱정 없이 배불리 먹고 소파에 비스듬이 누워 과일이나 몇조각 먹다가 졸다가 자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왈, 식후에 바로 누우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수 있는데 내게도 그런 증상이 보인다고 한 것이다. (한숨).  그래서, 요즘은 밥 먹고 난 후에 소파로 가는 대신에 설겆이를 하거나 스텝퍼에 올라가서 가볍게 살살 몸을 움직여 준다거나 뭔가 자질구레한 집안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매일 아침 성경책을 보기로 정한 계기는 -- 지난 수요일 기도모임에서 한 참석자가  - 매일 아침 아내와 아이에게 성경책을 읽어 주며 가족의 신앙을 다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내 하루를 성경으로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쳤기 때문에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며칠 안 되었지만 실천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머리맡의 아이패드에서 킨들에 담긴 NKJV 성경을 펼쳐서 '시편'을 읽어나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교회도 언라인으로 참석하고 기도회도 언라인으로 하고, 모든것이 언라인이다보니 나의 기도도 나태해지고 있다. 요즘 제대로 기도를 안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미국은 아직도 1월 1일이다)  최소한 하루 10분간 고요히 앉아 기도가 안되면 명상이라도 하면서 나를 버리고 나를 지우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1. 1. 2. 10:57

 

냉소와 해학을 곁들인 표현인지 몰라도  --- (이자들이 뭐 하는 자들인지 앞뒤 배경을 모르니 따지고 싶지도 않다) 서모씨가 '육십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을 하면 - 혹시 그의 추종자들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지 모르니  아마도 해학이었으리라 추측하며 --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60넘어 뇌가 썩는다면 60이상 인구들은 죄다 신경외과에 장기입원해야 하는게 아닙니까?  반문하고 싶어진다.

 

농담이라도 이런 농담은 안하는것이 마땅하다.  

 

Netflix 에 있길래 보았다. 100 Humans: Life's quesitons, answered.  백명의 인간: 인생의 의문점에 답을 하다 뭐 이런 타이틀의 시리즈물인데 몇꼭지 보다가 한가지는 나로서도 놀라운 실험/발견이라서 화면을 캡쳐해 두었다. 

 

이 실험에서는 백명의 실험 참가자들 중에서 동일한 숫자의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60세이상세대 이렇게 다섯개 팀으로 나누어 각종 게임을 하도록 했다.  기억력을 알아보기 위한 기억 게임, 체력게임, 문제풀이 게임, 소통게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종합하여 팀 전원이 협력해야 해결되는 방탈출 게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여러가지 게임을 시키고 등수를 매겨봤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20대가 건강하고 영리하게 잘 해 낼것을 짐작할 수 있고, 60세 이상이 가장 임무 수행에서 뒤처질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가장 선두그룹은 예상대로 20대였다. 20대 팔팔한 청춘들이 주어진 임무 수행에서 월등했다.  그리고 그 다음이 60대 이상 노인 그룹이었다.  아래의 그래프가 종합 평가 점수를 그래프로 표시해 준다. 

등수별로 보자면 1등 20대 -- 2등  60세이상 노인 -- 3등  삼십대  -- 4등 사십대 --5등 오십대.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인가?30대가 60대 노인보다도 못하다는 말인가?  이런 현상에 대해서 Daniel Pink (When 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다. 그의 When 은 나도 한번 읽어보고 맘에 들어서 자식들에게도 읽어보라고 책을 사 준적이 있다) 의 해석은 이러하다.  20대가 체력적으로나 문제풀이 능력에서 뛰어나고 가장 활발한 시기이다.  30대 이후에 40대 50대에서 이들의 기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 이들에게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의 각 방면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고 한군데 집중하기가 어려워 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인생에서 30대 부터 50대까지는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한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그만큼 오히려 문제해결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미국인 기준) 60대 이후에는 직장에서 은퇴하고 한가로운 삶의 체제가 되면서 골치 아픈 일도 별로 없고, 잠도 충분히 잘 수 있고, 시간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신체 기능은 떨어질지 몰라도 인지 기능이나 문제풀이 능력 소통력등은 이전보다 더 향상된다고 한다.  나이 먹는것이 그다지 비참한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독설섞인 유머라고 하더라도, 나이 육십에 뇌가 썩는다는 말이 대학교수 입에서 막 튀어나오면 - 그 학생들은 그에게서 뭘 배울것인가?  자극적인 말 막 던지고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의사전달을 할 수 있다.  당신의 뇌는 썩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슬픈일이다. 얼른 치료받기를 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말을 좀 가려서 하고, 해학이나 유머에도 절도가 있으면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도 의사전달은 충분히 된다.  아무리 기생충같이 사는 인생이라도...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20. 12. 27. 12:40

americanart.tistory.com/202

 

The Eight / Ashcan school (3) William Glackens

William Glackens (1870-1938) 는 The Eight 의 멤버인 John French Sloan 과 고등학교 동창이고,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서도 함께 미술을 공부했으며, 슬로언의 소개로 로버트 헨라이와 만나게 되어 절친한 관

americanart.tistory.com

 

내가 머무는 이곳은 버지니아의 구릉지대로 '목장'이 사방에 있고 목장이 아닌 언덕도 많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한 눈은 크리스마스 당일까지도 내려서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튿날, 토요일.  눈 쌓인 언덕에 몇몇 가족이 아이들을 데리고나와 눈썰매 놀이를 하고 노는 모습이 보였다.  꼬마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기위해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을 기를 쓰고 올라갔다. 가다가 미끄러져 자빠져도 울지도 않고 깔깔대며 올라갔다. 

 

 

이 광경을 어딘가 그림에서 봤던 것 같아서 블로그를 뒤져보니 십년도 더 된 옛날에, 조 바이든 대통령을 탄생시킨 지역의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직접 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2. 27. 12:24

'쩌는' 미국의 위용.

동네 식품점에 나갔더니 벽에 Free Flu Shot!  광고가 크게 붙어있다.  "여기는 독감 백신이 무료야? 진짜로?" 내가 놀라 물으니 함께 간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한다. 

 

아이구 맙소사. 나는 시월말에 독감백신 맞으러 동네 의원에 갔더니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 알아보세요' 하길래 몇군데 연락해봤더니 백신이 없다고 해서 독감백신을 돈주고 맞으려해도 실패했는데, 미국에서는 공짜로 백신 맞으라고 광고까지 하고 있었군. 

 

 

코로나백신 확보에서 '열등생'이 된 이나라는 이미 독감백신 때부터 예고편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군. 도대체 잘하는게 뭐지 이정부는? 강남에 집 가진사람 부동산 값 올려주는거?  (잘하는게 있긴 하구나... 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적인 면이 있다. (1) 구제가 안되는 악질 <----> (2) 위대한 미국의 영도자.  이 둘중에 하나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요즘 미국사람들이 맞고 있는 코로나 예방 백신을 '트럼프 백신'이라고 부른다.  뭐 그자가 잘했던 못했건 내가 따질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자는 최소한 백신은 확보해가면서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음.  퇴임앞두고도 백신가지고 공치사 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기는 꼴사납지만...꼴사나운 그도 할 일은 하고 있더라. (한숨) .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2. 25. 18:01

 

"크리스마스에 일가친척들 보였을때 삼촌, 고모, 이모들이 둘러 앉아 보던 영화인데, 이제는 내가 크리스마스때마다 보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들의 명절 영화라며 아들이 찾아서 틀어 주길래 함께 봤다.  나는 처음부터 1946년의 미국 풍경에 빠져들었고, 아들은 조금 지루해했다.  미국의 앤티크샵 (고물상)에 가면 볼 수 있는 소품들이 가득했던 영화이니 액틱샵 나들이를 좋아하는 내게는 더욱 매력적이었으리라. 

 

영화는 내가 즐겨보던 시리즈 Twilight Zone 이 즐겨다루는 환상을 재현하고 있다.  한 사나이가 일평생 곧고 바르게, 이웃들을 위하여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다가 중년에 이르러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에 직면한다.  그 상황에서 '수호천사'의 도움으로 그가 경험하는 것은 "내가 만약에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의 환상이다.  그가 없는 세상은 현재보다 훨씬 불행하다. 그가 없을 때 그의 주변 사람들은 훨씬 불행하다.  그래서, 그가 환상의 세계에서 현재로 돌아왔을때 그는 기뻐서 어쩔줄 모른다.  현재 상황은 아무것도 바뀐것이 없이 암울하지만 그의 관점이 바뀌었을때 그 암울한 요인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그가 현재에 속한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기쁜 것이다.   그리고 그의 관점이 바뀌었을때 - (우리가 예상한대로, 영화적으로, 환상적으로) -- 그를 괴롭히던 문제가 주변 사람들의 기꺼운 도움으로 해결 국면에 접어든다. 

 

이 영화는 내가 성경통독을 하면서 하도 인상적이라서 적어놓았던 성경 구절과 정확히 부합한다.

Habakkuk 3:17-19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비록 내게 재앙이 닥칠때라도 나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기뻐할수 있다는 이 말씀을 적어놓고 사색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사람이 관점이 변하자 재앙스런 상황 자체도 기뻐 춤을 출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뻐 춤을 출때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말고 기도해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이 영화가 내게 정확한 답을 주었다. 미국 최고의 영화 100가지 중에서 10위 안에 드는 영화이다.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2. 22. 12:55

 

미국집에 온지 열흘이 넘었다. 착실하게 콕박혀 지내다가 생필품을 사기위해 근처 월마트에 다녀왔다. 

 

월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서려는데 출구 앞의 자선냄비 앞에서 풍채좋은 털보 사나이가 요란하게 종을 울려댔다. 시절이 크레딧카드나 스마트페이로 가고 있으니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도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이럴때는 공연히 미안해진다.  이때 차의 캐비닛에 비상금을 숨겨 놓았던 것이 기억나서 50여미터 떨어진 내 차로 달려가서, 돈을 꺼내가지고 전속력으로 그 자선냄비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돈을 넣고 다시 차로 향하는 길. 털보 사나이는 종을 흔들어대며 내게 "Thank you very much! God bless you!" 를 외쳤고, 나도 마스크를 낀채로 "God bless you!!!"하고 기쁘게 외쳤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발견했다. 내가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미처 못보고 지나쳤을 또다른 자선냄비가 길의 중간쯤에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월마트에 입구가 두군데 있었는데 내 차와 가까운 입구에도 자선냄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이 가까운 자선냄비를 못 보고 지나쳐 훨씬 먼곳까지 달려가야 했을까?  그 자선냄비 앞에도 구세군이 있었는데, 그는 냄비와 일미터쯤 떨어진 의자에 구부리고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앞의 덩치 큰 털보 사나이에 비해서 젊고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이 젊은 남자는 스마트폰을 보다가 이따금 건성으로 종을 흔들었다.  아, 내가 그를 발견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 저녁, 해도 지고 주위는 어둡고 사람도 별로 없는 코로나 난국의 월마트 앞.  두개의 자선 냄비가 서 있었는데 한 냄비를 담당한 남자는 연신 종을 울려대고 있었고, 다른 한 남자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의 파란 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듯 가까운 냄비를 못본채 지나쳐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먼 곳의 자선냄비까지 달려갔다. 

 

***

요즘 나는 성경통독을 하고 있다. 하루에 300 쪽씩 성경을 속독으로 읽어나가면 6일이면 구약, 신약을 마칠 수 있다. 오늘이 5일째이다. 구약을 마치고 신약으로 들어서서 사복음서를 마치는 것이 오늘이 숙제이다.  내일 끝낼수 있을까? 잘 모른다. 끝까지 가 봐야 안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는 끝낼수 있기를...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명의 일꾼의 일화를 떠올린다.  세명의 일꾼에게 주인이 먼길을 가기전에 동일한 액수의 돈을 주고 잘 경영하라 한다. 한사람은 그것을 곱절로 불려놓는다. 또 한사람도 제법 불려 놓는다. 마지막 한 사람은 받은 액수를 그대로 간직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일꾼의 문제를 지적하셨다. 

***

자선냄비를 지키던 두 사나이를 생각한다.  월마트에 두개의 입구가 있는데 한쪽 입구를 지키는 사람은 연신 종을 흔들어 자선냄비가 있다는 것을 알렸고, 다른 쪽 사람은 한눈을 팔며 자리를 지켰다.  나는 한눈파는 그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종을 흔들어대는 사나이에게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오며 곰곰 생각했다. 나는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사람이 오건 안오건 상관없이 오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종을 흔들어대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스마트폰에 한눈을 팔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가?   나는 '한눈팔이'임이 자명하다. 

 

 

우리 하느님께서 내게 '한눈 팔지 말고 깨어서 종을 흔들라'고 내게 가르침을 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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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1. 20. 09:45

조태수 선생의 서예 작품을 웹에서 빌려옴. 

 

이따금 졸업생들이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 지도를 해 줄 때가 있다.  모 교수가 학생을 한 명 부탁한다고 보냈다.  대학원 진학 지도를 할 때는 일단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학업계획서 (Statement of Purpose)' 를 써 와야 나를 만날 수 있다.  본인이 모두 다 알아서 한 후에 내 도움을 받으라는 취지이다.  하룻강아지-애도 아니고 내가 제 에미 애비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서 밥상 차려주면 그 자식은 대학공부 뭣하러 했는가.  본인이 다 알아서 하고 주위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한 학생이 학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나를 만나기를 청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 짐작은 했지만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하는 과목중에 대학원 진학준비 과목은 없었으니까 서툰것은 당연하다.  나는 세상사람들이 모두 선호한다는 미국의 모 대학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누군가 쓴 박사학위 과정 SOP 샘플과 그 학생이 쓴 샘플을 나란히 놓고 첫 문장만 비교를 해 보라고 했다. 

 

최고대학의 박사과정을 신청한 사람의 첫 문장에는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 지원하며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가 짧고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우리 학생의 첫문장은 -- 말하자면 (그냥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 저는 전남 함안의 중농집안의 둘째 딸/아들로 태어나 모 대학을 마치는 동안 자상하신 부모님의 보살핌과 교수님들 품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던중 어느날 홀연히 공부를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비교를 시킨후 학생에게 물었다. 

 

"너, 내가 너와 대화를 하는데 두가지 방법이 있어.  첫번째 방법은 - 나는 영어로 너와 대화를 하면서 미국인들이 피드백 주듯이 너에게 피드백을 줄거야. 두번째 방법은 - 나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면서 한국인들이 피드백 주듯이 할거야. 너는 둘중에 무엇을 원하니?"

 

학생: "....모르겠는데요....그게 어떻게 다른데요?" (어리둥절)

 

네가 미국식을 선택하면 - 나는 굉장히 부드럽고 친절한 표현을 쓸 것이고, 너는 아주 편안할거야. 위로와 용기를 받겠지. 그리고 너는 확신에 찰거야. 나와의 시간이 행복할거야.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되겠지.  그리고 너의 지원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하기가 어렵겠지. 

 

네가 한국식을 선택하면 - 너는 갑자기 가슴에 막 화살이 날아와서 팍팍 박히는 듯한 고통을 느낄거야. 급작스러운 우울 모우드에 들어가거나 다시는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 질지도 모르지. 너는 아마 두번다시 나를 보고 싶지 않아질거야.  그래도 너는 뭔가 손에 쥐는것이 있게 될거야.  지원 결과에 대해서 너 스스로 예측이 가능해 질거야.

 

학생: "...한국식으로 살-살- 해주시면 안될까요? (빙긋)"

 

"글쎄...한국식으로 달콤하게 너를 기쁘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단다.  영어식으로 할때는 나는 미국인의 탈을 쓰고 달달한 사람이 되어 네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말거나 너를 위해 박수쳐주고 응원해주고 하겠지. 너는 내가 뭐라고 말한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거고, 나는 알바 아니라고 모든것을 하늘에 맡기고 말겠지.  나이쓰하고 쿨하게 말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바로 칼을 들고 환부를 쿡쿡 찔러서 잘나내고 썰어내고, 파내고, 아주 난장판이 될거야.  무척 아프지.  한국식으로 살-살-은 없어. 나하고는 그게 안돼. 왜냐하면 나는 살-살 하는 재주가 없거든."

 

 

 

그래서 결국 그와 나는 한국식으로 막 '칼바람'이 부는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한 40분쯤 면담을 마치고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떠났다.  나는 바쁘니까 그 일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한달여 만에 그에게서 다시 면담 요청이 왔다. 

 

SOP를 다 뜯어고쳐서 다시 쓰고 영어과 최고참 교수 (미국인)에게 부탁하여 그의 리뷰도 한번 거쳤다고 이실직고 했다. 마침 나와도 잘 통하는 교수라서 "오! 그 교수가 한번 리뷰한 글이라면 - 내 수고가 덜어지겠구나! 땡큐!" 외쳤다.  이제 나를 만날 준비가 된것 같아 면담을 신청한다는거다. 

 

줌으로 만났는데, 그의 일성은 이러했다:

 

"아이고, 지난번에 하도 두둘겨 맞아서 제가 많은 반성을 하고요, 다 뜯어 고쳤고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요즘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 공부하러 다니고 있어요. 필기시험은 통과했고요... 그런데 교수님 한국에서 받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이 미국에서도 통할까요?"

 

야, 야, 이눔아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만국 공용어일진대 (내가 프로그래밍을 안배웠어도 그정도는 안다), 네가 그걸 다룰수 있기만 하면 되는거지 자격증이 한국산인지 미국산인지가 뭐가 중요해!!! 너는 배운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미국인 고참 교수가 리뷰해주면 SOP가 완벽할줄 알았겠지? 천만에 말씀이다. 미국인 교수들은 그냥 쓰르륵 읽어보고 문맥이 이상한것만 슬쩍 코멘트를 할 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말이 되건 안되건 저자의 고유성을 최대한 지켜주려한다.  한국인 (나의) 스타일은 - 문제점들을 샅샅이 지적하여 학생이 말끔한 한채의 집을 짓도록 만들어낸다. 

 

내가 지금 어느 졸업을 앞둔 학생의 이야기를 늘어놓는/기록에 남기는 이유는 녀석이 나를 흐뭇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따끔한 지적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 정말로 내가 지적질을 한대로 처음부터 다시 '집을 지었다.'  게다가 기왕에 대학원 준비에 잔소리를 하는김에 "다가오는 시대는, 아니 이미 다가온 시대는 빅데이터의 시대이고 알로리듬의 시대라서 네가 어떤 전공을 하건간에 기본적인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코딩도 좀 배우고 너 스스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능력이 되면 대학원에서 너는 프로그램 전체를 회를 쳐서 날름날름 먹을수도 있게 되는거다.  입학허가가 문제가 아니라 너를 모셔가러 들거다"  뭐 이런 노랫가락을 읊었는데 이 친구가 그 문제를 심각하게 듣고 - 행동으로 옮기고 새로운 도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참, 이렇게 내 말을 곧이 곧대로 알아듣고/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내 자식도 내 말을 안듣는 이 판국에.)

 

그 친구는 몇달 후에 입학신청서를 제출하기 직전에 다시한번 나의 리뷰를 받기로 하고, 그 사이에 몇가지 자격증을 지원서에 추가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줌에서 떠났다.  미리미리 알아서 준비를 하고,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여 리뷰를 받고, 장차 도움이 될 기술을 미리 익혀놓는 성미이니 그 학생은 전투적으로 자기 삶을 잘 개척해 나갈 것이다.  흐뭇하다. 

 

추신: 그런데, 사실 막 칼춤을 추는 나도, 남의 비평이 무섭다. 나도 아주 나약하고 겁많고 소심한 사람이라 남의 평가를 회피한다. 그러니 나의 무지막지한 평가를 소나기 맞듯 다 맞아내는 그 선수가 대단한 선수이긴 하다. 대단한 젊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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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1. 12. 12:30

 

하느님, 수요일 아침에는 제가 기도회를 열고 친구들을 맞이해야 하지만, 어제는 기도회를 열어 놓은채 저는 새벽차를 타고 천안으로 갔습니다.  한국 해비타트가 천안의 시골 마을에 짓고 있는 집 공사장에 가서 돕기로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죄송하게도 수요 기도회에는 두명이 모여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느님, 늘 있던 자리에 제가 안보여서 서운하셨겠지만, 그 시간에 저는 창문 공사를 했습니다. 

 

하느님 창문은 아주 아주 무거웠고, 이 창문을 3층까지 둘이 서로 마주보며 들고 올라갈때는 손에서 힘이 빠져서 자꾸만 무거운 창틀이 제 손에서 흘러내리고, 계단 한개를 올때마다 허벅지까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그래도 혹시라고 내가 놓쳐서 창문이 깨질까봐 저는 그것을 몹시 걱정했습니다.  하느님, 저희 일행은 150여개의 창문을 새로 짓는 집에 끼웠습니다. 그 새 집들은 생계가 어려워 '집'다운 집에 살아보지 못하던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 집입니다. 

 

저희들은 그 집의 창문을 달았습니다. 이 집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때, 장밋빛 동이 틀때, 혹은 비오는 풍경을, 눈이 내리는날, 아름다운 황혼을 -- 저희가 옮겨다 심은 그 창문으로 내다보겠지요.  하느님 저희가 창문을 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하루치 - 한줌의 햇살같은 노동이, 뭐 그리 대단할게 있을까마는 저의 노동보다 저는 많은 선물을 받은것 같습니다. 

 

 

 

 

멀미가 날것 같은 - 노동의 피로감도 깊고 달콤한 잠으로 거뜬히 떨쳐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맞은 새날, 하느님 저는 아직 쓸만한거군요. 한참 젊은 남자 동료들과, 한참 덩치 큰 외국인 동료들과  똑같이 일을해도 하느님 제가 체력적으로 거뜬 한것은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저를 호위하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겠지요. 하느님 고맙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이끄시는대로 겁없이 나아가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가라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겠습니다. 하느님, 저를 하느님의 계획대로 쓰시다가 어제의 햇살처럼 맑고 따뜻한 날 저를 데려가소서.  하느님 참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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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0. 11. 10. 15:42

Hope by George Frederic Watts

 

 

어제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두시간 수업을 열정적으로 하고 나면 맥이 풀리고 무척 피로하다), 모르는 어떤 학생이 들이닥쳤다.  아, 며칠전에 학교의 상담선생님이 복도에서 스칠때 누군가를 보내겠다고 했었는데 그 학생이었다. 상담사 과정을 모두 마친, 그래서 국제 대학 기준에 부합하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 선생님이 내게 학생을 보낼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판단하기에 그 학생에게는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상담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지 가늠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잘생기고 틀도 좋고, 유명브랜드의 옷으로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치장하고, 그리고 가방에서 꺼내는 컴퓨터며 갖고 다니는 도구들이 모두 명품들이었다. 내가 갖고싶어하던 태블릿도 꺼내어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당연히 자신이 향유할수 있는 것들이란 자세로 그렇게 모든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졌건만.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통의 강을 혼자서 허우적대며 건너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머리. 이제 열아홉 학생이 원형탈모로 머리 피부가 듬성듬성 비쳐졌다.  그는 근심이 많았다.  앞으로 장차 일어날 일에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근심을 했다. 나는 세상에 저렇게 근심이 많은 사람이 있을수 있을까? 경이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이 걱정쟁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제 뇌가 멍청해서 그런겁니다. 제 뇌가 멍청해요."

 

90분간 이 학생과 시간을 보내고 내가 그에게 내 준 숙제는 이것이다: "혹시 말야, 네가 또 나를 찾아올 마음이 들거든 다시 와도 좋아.  그런데 내게 다시 오게 된다면, 너에 대하여 열가지 '장점/좋은점/매력적인점/자랑하고 싶은점'  그러니까 네가 너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 점 열가지를 적어가지고 와서 내게 말을 해줘.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그 학생을 보내고 난 후, 나 역시 심히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열시간 가까이 죽은듯이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하고 우울한 기분. 그 친구에게 나의 기운을 다 빼앗긴것 같은 기묘한 공허감.  나는 속으로 혼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향해 욕을 해 댔다 --"어떤 배 쳐부른 집안이 애새끼를 쥐잡듯 잡아가지고 멀쩡한 애를 아주 못쓰게 만들어 놨구나."

 

하느님, 하느님, 하느님은 왜 그 애를 저한테 보내신겁니까. 저는 능력이 없는데요. 그 녀석의 우울증이 저한테 전염된것 같아서 저도 기운이 없고 기분이 안좋습니다.  하느님, 아픈 애를 저한테 보내셨으면 저한테 아픈애를 돌 볼 기운도 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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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10. 26. 19:19

2020년 10월, 한국

 

2008년 12월, 플로리다, 왕눈이와

 

 

나는 맨발로 달린다

 

나의 하느님에 대하여 내가 새로 발견한 것.

 

예수님이 맹인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하셨다는 일화에 대하여 나는 격하게 공감한다.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이것이다.

 

하느님은 플로리다를 거쳐서 버지니아를 거쳐서 나를 한국으로 다시 돌려 놓으셨을때, 이미 내게 필요한 것,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그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넘쳐흐르는 곳'에 나를 돌려보내셨는데, 내가 그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거나 깨닫는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수년이 흐른 후에야 어느날 눈을 떠보니, 그것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이런 것이다.  집에서 나가서 슬슬 산책하여 가다보면, 개울/강/호수/바다 같은 물가가 나오고, 숲이 이어지고, 동산이 펼쳐지고, 동물들이 뛰 놀고, 물고기들이 펄쩍펄쩍 뛰고 그런 정경이 펼쳐지는 곳.  그런 곳을 원없이 오래 오래 헤메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매일 관찰하기.  슬슬 산책하여 가다보면 가게들이 있고, 내과 치과 이런 것들이 있고, 내가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이 슬슬 산책하는 거리에 있기.  대학 도서관에 맘대로 드나들며 신간이나 고전을 맘대로 빼들고 읽기, 빌려다 쌓아 놓고 읽기.  카페. 음악. 걸어서 갈수 있는 음악당. 뭐 이런 것들. 이런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은 내 앞에 펼쳐놓고 "얘야, 너 여기서 편히 잘 놀아라" 하셨는데 -- 나는 몇년이 흐른 뒤에야 그것들이 내 앞에 펼쳐져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은 내게 모든 것을 주셨다.  (내 잔이 넘쳐흐르게 선물 폭탄을 투하하셨다.) 

 

하느님은 내게 왜 이렇게 잘 해주시는걸까... 그걸 요즘 궁금해 하는 중이다.  제가 이걸 다 받아도 되는지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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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14. 13:40

 

 

걷기에는 중독성이 있는 듯 하다. 

 

지난 7월 20일부터 매일 나가서 걷는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아직 3개월이 채 못 되었는데, 그동안에 5 킬로그램이 감량되었고,  처음에 7 킬로미터쯤 걷기로 시작해서 요즘은 최소 10킬로미터는 걸어야 몸이 풀리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평일에는 10킬로미터 걷기로 만족하고, 주말이나 일정이 바쁘지 않은 날에는 15-20 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사는 낙이다.  건강 상태가 정말 안 좋았던 7월, 자가격리 마치고 몸이 띵띵 부어가지고 나왔을때,  처음에는 7킬로미터쯤 되는 동네 공원 산책로 다녀와서 몇시간동안 죽은듯이 자고 그랬다.  (여름방학이니까 가능했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운동이 되었다.  두달여가 지난 지금은 10킬로미터를 걷고 와도 몸이 가볍고, 하루를 시작할 기분이 든다. (좀 더 걷고 싶다는 아쉬운 달콤함 같은 것이 감돈다). 

 

며칠전에는 아침 여덟시에 미국의 동료들과 줌으로 화상회의를 좀 할 일이 생겼는데, 그 미팅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에, 나의 대답은 "아침 여덟시?  그러면 내 아침 운동에 지장있는데!! (투덜투덜)"  상대방은 투덜대는 나를 살살 달래야 했다.  내가 정말 어린애처럼 투덜댔으니까.  대체로 뭘 하든 군소리 없이 일을 해치우던 내가 '아침 운동'에 방해 된다고 공식회의에 대해서 투덜댈거라고는 내 동료도 짐작을 못 했으리라.  나도 내가 그러리라고는 짐작을 못 했었다.  돌아보니 내 모습이 참 어린애 같았다.

 

아침 운동을 제대로 못 한 날에는 일정을 마친 저녁 시간에 근처를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그런데 내가 내 몸상태를 살펴보면 - 아침 운동을 흡족하게 하지 못한 날에는 밤에 잠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잠을 자고 깬 후에도 어딘가 상쾌함이 덜하다.  운동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흡족한 만큼이 못 되면 - 잠의 달콤함이 줄어든다.  잠을 푹 잘 자기 위해서는 흡족한 만큼의 아침 운동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달콤하게 자기 위해서는 '맨발'로 걸어줘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어딘가 몸이 상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는데 - 신발을 벗고 몇킬로미터를 걸으니 그제서야 '시원하다'는 기분이 들고 머리도 맑아졌다. 다분히 심리적인 것이겠지만, 맨발로 걸어야 머리가 맑아진다.  안걷는 것보다는 걷는게 낫고 -- 기왕 걷는거라면 많이 걷는것이 더 낫고 - 기왕이면 맨발로 걷는 것이 더 좋다. 맨발로 걸으면 머리속이 맑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라면 먹을때, 우리가 꼭 '김치'를 찾지 않는가?  마지막에 김치 한 점이라도 먹어야 라면이 소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김치 없는 라면은 뭔가 영혼이 빠진 라면 같지 않은가?   맨발 걷기가 바로 그 라면의 김치 같다.  맨발로 걸어줘야, 모든게 정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나는 걸으러 나간다.  걷고, 돌아와서 씻고, 간단히 먹고 출근을 하여 온종일 일을 하고, 틈틈이 걷기에 대하여 생각하고, 틈틈이 걷기 관련 정보를 찾아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온갖 걷기 관련 책들을 읽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걷기를 잘 하기 위한 몇가지 실내 운동을 하고 그리고 일찍 잠이 든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걸어야 하니까. 

 

나는 요즘, 걷기라는 새로운 애인을 만나 온종일 그 애인 생각을 하며 보내는 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8. 17:47

 

 

어젯밤까지 머리가 쿡쿡 아팠는데, 아침에 깨었을때 머리가 가뿐했다.  일어나 앉아보니 멀쩡했다.  그래서, 아침 운동을 나갔다.  몸살 기운 때문에 사흘간 아침 운동을 못 나갔었다. 

 

 

아침마다 만나던 고양이를 오늘은 보지 못했다.  한국 너구리들을 이따금 봤었는데,  길가에 너구리 포획틀이 놓여 있었다.  관계 공무원들이 설치한 모양이다. 너구리를 잡으려 하니 건드리지 말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너구리 잡아다 어쩌려고 그러는걸까? 살기 좋은 곳에 풀어주기를 바란다.  고양이들도 다 잡아 간것은 아니겠지, 설마?

 

 

평소처럼 약 5킬로미터 흙길은 맨발로 걸었다.  가뿐했다.  며칠 아프다 나왔으니 짧은 코스를 택했다. 전체 10킬로미터를 걸었다. 남편은 발이 조금 아프다며 좀더 쉬겠다고 해서 나 혼자만 다녀온 운동길.  흙이 묻어 검붉은 내 발바닥을 보면서 "어딜 개 발로 돌아다니냐"고 놀린다.  나는 강아지처럼 흙발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남편은 따라다니면서 걸레질을 하며 깔깔댄다.  몸이 안아프니까 참 좋구나.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바로 그거다. 

 

 

몸이 가뿐하여 아침 운동을 나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극히 감사한다.  날씨는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는 남들이 다 가봤다는 '속리산 - 법주사'를 여태 못 가봤다. 남편은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 왔다고 한다. 우리 고모들도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법주사를 다녀온 사진이 있다.  지금은 70이 넘은 우리 고모가 '문장대에서' 라고 적힌 흑백 사진속의 중학생으로 사진속에 남아있다.  속리산에 문장대가 있고, 속리산에 법주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우리 고모의 흑백사진에서 보고 배웠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자꾸만 희게 변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올 가을엔 꼭 가봐야지, 하고 별렀지만, 어쩐지 이번 가을에도 속리산에 못 갈것 같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7. 15:24

나는 기도를 잘 못한다.  미국에서 '나의 집'이라고 내가 이름 짓고 기쁘게 다니던 나의 감리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30분간의 짧은 기도 모임을 가질때, 7-8명이 둘러 앉아서 차례차례 소리내어 기도를 하곤 했다. 짧게 한 두 문장으로 감사나 고민을 하느님께 올렸다. 나는 주로 '감사'를 올렸는데 그것이 가장 쉬웠기 때문이다. 

 

 

교회에 새벽기도를 드리러 꾸준히 드나들때에도 나는 도무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한국 교회 스타일대로 어떤 분들은 울부짖으며, 소리지르며 기도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도통 소리내어 기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소리 안내고 차분히 기도하느냐 하면 사실 그것도 아니고, 대개는 눈을 꿈 감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아이고 하느님 저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하나 그것은 순간적인 일이 아닌가. 삼십분씩 한시간씩 그러고 앉아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내 기도는 영 하는둥 마는둥이나, 그래도 나는 기도를 한다고 앉아있곤 했다.  가끔은 기도 하다 졸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 숨 졸고 깨어나면 참 가뿐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이것 역시 기도의 축복인가 했다. 

 

 

나의 기도 실력은 이렇게 졸렬한 형편이라서 - 2년 가까이 학교에서 기도모임을 운영해 가면서도, 돌아가면서 대표기도를 드리는 방식이면서도, 내가 대표기도를 드린 것은 한번인가 두번인가 그렇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를 드릴 자신이 없다. 하도 졸렬해서. 뭐라고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글로 써서 표현하기가 말하기보다 쉽다. 

 

 

 

오늘도 기도회를 마치고 정리를 하려는데, 온라인 '줌'으로 기도회를 함께 했던 분이 내 연구실로 뛰어오셨다. 기도회 마지자 마자 그냥 내게로 오신듯 했다.  그래서 조용한 장소로 가서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대면을 피해야 하는 이 코로나 시대에 나를 보러 왔으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리라.  그래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역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기도 해 주셔요"하고 그분이 말했다.  아 그런거구나.  그래서 손소독제로 손을 싹싹 소독하고, 그이의 손을 꼭 잡고 소리내어 기도를 드렸다.  내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홍해를 건너던 모세의 용기를,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호수아의 용기와 지혜를 간구하긴 했는데 그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 손을 잡고 내 기도를 들은 그분은 그 속에서 새로운 용기와 알수 없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부분은 하느님의 몫이시리라. 그가 영적으로 감응한 대상은 내가 아니고 하느님이시겠지.  나는 그냥 도구로 거기 있었으리라. 

 

 

내 기도로 용기를 얻었다는 기도친구의 코멘트가 내게 용기를 준다. 내 기도가 말짱 황은 아닌가보다. 내 기도도 쓸모가 있나보다.  그러면 나는 더욱 좋은 기도자가 되기 위해서 나를 더욱 잘 다스려야 하리라.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나는 아닐것이다. 내 몸은 누가 다스리는가.  나를 만드신이가 다스릴 것이다. 나는 내 몸의 관리자이다. 내 몸을 잘 청소하고, 꽃밭을 가꾸고, 아름답게 관리하여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내 몸과 마음을 성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안에 깃드신 하느님이 기쁘시도록.  

 

 

나는 좋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 외에는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7. 12:20

머리가 아프고 몸살 기운이 있어서 타이레놀을 먹고 하루를 버티다가, 두통이 가시지 않아서 어제는 근처 내과에 갔다.  기침 콧물은 없고, 머리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 추운 증상. 체온은 정상.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두통약과 몸살약 처방을 해 주었다. 

약을 먹으니 (아무래도 수면 성분이 들어간듯) 잠이 쏟아져서 저녁 6시부터 오늘 아침 6시까지 내쳐 잔 듯 하다.  새벽 1시쯤 잠이 깨었으나 화장실에 갔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12시간 가까이 긴 잠을 잤으니 꿈도 많이 꿨으리라.  새벽녘의 두가지 꿈이 생생하다.

 

 

꿈 1

내 연구실은 6층의 왼쪽 끝에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왼쪽 복도 끝까지 가면 내 연구실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도 연구실들이 배치되어 있다.  중간에 화장실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오른쪽 복도로 가다 보니 그 쪽 연구실 한군데에 피가 흥건하다. 피가 넘실넘실 흥건하게 고여 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내 연구실로 급히 와서 동료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 법률관련 고문도 하는 교수인데, 그래서 그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6층 네 연구실 방향 어느 방에 지금 피가 잔뜩 고여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약간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이었다.

 

 

 

꿈 2

내 고향집과 내가 성장하면서 살았던 집들이 복합된 듯한 상황이다. 옛날집. 마루가 있고 댓돌이 있는 옛날집과 안 마당. 그리고 현관.  그러니까 현관, 앞뜰, 안마당 이런 곳들을 내가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다. 비질을 할 때마다 그 곳이 깨끗해졌다.  꿈속에서 비질을 하면서도 - '옛날에는 매일 일어나 마당을 쓸었는데 요즘은 마당이 없으니 마당도 쓸일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열심히 비질을 했는데 꿈속에서도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픈채로 끝없이 비질을 했다. 그러다 깨어나니 몸이 피곤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10. 5. 11:32

 

"오늘 신교수랑 만나서 배나 한척 사가지고 멀리 떠나자는 모의를 하겠어."

"그러셔, 제발. 나도 그 배 좀 타보자. 마스크 단단히 쓰고. 손 세정제 챙기셨어?"

 

오늘 아침 모처럼 외출을 하는 남편과 (그는 재택근무 중이라 방콕 신세다) 나눈 대화. 현관문을 나서며 비장한 표정으로 그는 말했고, 나는 깔깔댔다. 

 

장관의 남편 노릇하기가 쉽지 않음을 요즘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것이 없구나. 내가 장관이라면 나는 기분이 어떨까? 상상해보니 - 집 나가는 남편의 다리 뭉둥이를 분질러 놓고라도 주저 앉히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장관이 못 되는거지. 하하하.)  어쨌거나 장관은 꽤나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은퇴한 할아버지가 여윳돈이 조금 있어서 그럭저럭 품위유지하며 은퇴 생활을 하다가, 뭐 배를 사가지고 바다를 떠돌겠다고 집을 나간들 그게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그 사람만큼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배가 아플 노릇이지만 뭐, 그 사람은 그렇게 살다가 죽겠다는데 남이 나서서 뭐라 할 상황은 아닌것도 같고.  아무튼 이 할아버지는 내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 마땅한가 아닌가. 내가 그 사람의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일인가 아닌가. 뭐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의식 사이에서 갈팡질팡.  그냥, 내가 장관 입장이 되면 "이 인간이 미쳤나? 너 죽고 나죽자!' 하고 한판 붙기 딱 좋은 그림이긴 한데...하하하. 

 

남편이 철 없이 배 산다고 돌아다니다 바가지나 쓸터이니, 내가 알아서 한 척 사주던가 해야 하리라.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30. 13:42

청량산의 꽃무릇

 

흥륜사에서 보이는 내가 사는 섬.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 9월은 내 인생에서 '맨발의 시대'를 열은 한달로 기억될 것이다.  섬의 가장자리 물가가 버지니아와 워싱턴 사이를 흐르는 포토맥 강을 닮았다 하여 나는 매일 아침 "포토맥에 간다"며 길을 나섰다.  그리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고 (산책로가 황토로 덮여 있었으므로 누구나 맨발로 걷고 싶어 질 것이다), 그리고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9월 한달동안, 이 섬을 세바퀴 돌았다 (한바퀴 21킬로미터).  아마, 이번주 토요일에도 나는 섬을 한바퀴 돌 것이다. 왜? 그냥 섬을 한바퀴 돌고 싶으니까.  

 

 

아무리 그 길이 좋아도,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 뭔가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 특히 연휴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진다. 휴가니까.  그래서, 아침 운동 나가는 시간에 차로 약 7킬로미터 거리의 다리건너 절에 갔다. 절은 청량산이라는 산 중턱에 있으므로 절 구경과 함께 산에도 오를수 있는 코스이다.  일곱 여덟살 어린이들도 군소리 않고 강아지 끌고 올라가는 나즈막한 산이다. 그래도 그 산 정상에 오르니 내가 살고 있는 섬 전체가 한눈에 조망이 되고, 내가 21킬로미터를 걷는 행로가 어떠한지 세밀하게 보인다. 아, 저 길을 개미만큼 작은 내가 네 다섯시간을 걸었던 거구나... 그런 것을 어림하며 작은 기쁨을 느낀다.  

 

 

평평한 평지를 걸을때, 나는 꽤 빠르다. 웬만한 남자들도 섣불리 나를 따라잡지 못 할 것이다. 나는 정말 걷기에 특화된 사람인것 같다.  그런데, 산에 오르는 일은 평지와는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스포츠 같다.  나는 얼마 못 올라가서 헥헥거리고 온몸이 땀에 젖고 현기증까지 나는데, 그런 내 옆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휙휙 날아가듯 지나간다.  하하하. 이거 뭐지?   평지를 걸을때, 나는 걷기계의 신 같다. 내가 작정하고 걸으면 날듯이 사람들을 휙휙 지나치는데, 산에 가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서 휙휙 날아 올라간다. 무서운 종족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새로운 종족을 발견했다.  그들은 '날다람쥐 족'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만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구나. 내가 바닥이구나...  

 

 

 

다시 연구실 책상앞에 앉아있다.  오늘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온라인으로 등산화를 한켤레 주문했다.  가끔은 날다람쥐님들을 구경하러 가까운 산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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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20. 9. 23. 12:48

www.canceransw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0

 

[달리기와 진화 3] 두꺼운 운동화 탈출, 맨발로 달려볼까? - 캔서앤서(cancer answer)

맨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쿠션 좋은 운동화를 찾는 시대에 거꾸로 신발을 벗어던졌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맨발

www.canceranswer.co.kr

 

오늘은 1교-2교-3교로 이어지는 약 2.5 킬로미터 거리를 맨발로 왕복했다. 5킬로미터 거리를 맨발로 통과 한 것은 내 평생에 처음이다 (어릴때 시골에서 자랄때 맨발로 논둑 밭둑 돌아다닌 것은 기록에서 제외하고 문명인으로 사는 동안만 생각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다른 신기록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대학때 단축 마라톤 달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약 2킬로미터를 '달리기'로 통과했다.  그러니까, 맨발로 통과한 5킬로미터중 1-2-3교로 가는길의 대부분을 달리기로 해 냈다는 것이지.  처음에 그냥 맨발로 걷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 달려 볼까? 달리다 힘들면 걸으면 되니까 걱정이 없지 -- 이렇게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발과 몸이 가볍게 느껴져서 3교에 도착 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면서 나도 놀라웠다. '어, 이상하다? 왜 달리기가 힘이 안들지? 왜 이렇게 발이 가볍고 몸이 가볍지?'  이런 느낌으로 반환점까지 갔다.

 

 

3교 다리 밑 (나의 반환점)에서 스쿼팅도 하고, 갈대 숲에서 고요히 기도도 올리고 뭐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는데,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는 달리기 하기에는 발에 무리가 생길것 같아서 그냥 씩씩하게 걸어왔다.  그래도 이제는 맨발로 걷는것과 운동화 신고 성큼성큼 걷거나 걷는 속도는 거의 일치하는 편이다. 

 

 

오늘 내 기록의 특별한 점은

  1.  난생처음 5킬로미터 쯤을 맨발로 걷거나 달렸다.
  2.  대학 졸업후 쉬지 않고 2킬로미터 거리를 달려본 것이 오늘이 처음이다. 그것도 2킬로미터를 맨발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나의 달리기는 - 나의 빠른 걸음 속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는 원래 달리기를 싫어하고, 달리기 하면 어지럽고, 달리기하고는 담을 쌓고 산 사람이다. 그대신 걷기는 다른 남자들이 슬슬 달리기 할때 속도를 맞추거나 추월할 정도로 빠른 편이다. 나의 걸음은 달리기만큼 빠르지만,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달린다는 것은 나의 빠른 걸음 수준으로 '달리기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내가 달리기 자세를 유지하고 천천히 2킬로미터 정도를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다리에 대하여, 내 신체에 대하여 기쁨과 감사를 느낀다. 

 

 

내가 내가 하는 걷기에 대하여 이렇게 감격하고 감사한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걷기 광신도였던 나는 한국으로 온 후에 일도 바쁘고, 주변 환경도 마땅치 않고, 미세먼지도 걱정되고, 그리고 나이가 갱년기를 통과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서 이래저래 건강이 저하되었고, 야금야금 체중도 불었다.  그러면서 2년 전부터는 걷지도 않았는데 종아리에 통증이 오거나 쥐가 나거나, 머리가 자주 아프고, 늘 감기를 달고 사는 아주 허약 체질로 바뀌어갔다.  아마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갱년기 증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리불순을 겪지 않았으므로 갱년기하고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상상했고, 그냥 내 몸이 왜 이렇게 되는걸까 의아해 했다.  지난 6월에 버지니아 집에 있을때도 근처 아름다운 트레일로 나가곤 했는데 조금 신나게 걸으면 발목과 발바닥에 통증이 심하게 와서 생전 쓸줄도 모르던 '파쓰'라는 것을 발에 덕지 덕지 붙이곤 했다.  아들이 "우리 엄마도 이제 늙는구나..." 한숨을 쉬며 정성스럽게 내 발목을 파쓰로 감싸주곤 했다.  나는 쩔뚝거리며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한숨 지었다.  이제 청춘은 가는구나. 맘놓고 걷지도 못하는구나... 걷기 광신도가 걷지를 못하게 되다니.  이것도 집안 내력인지 이미 우리 언니나 오빠가 몇해전부터 족저근막염이라고 병원다니고 이상한 신발을 신고 나타나고 하는 것을 보면서 -- "저이들은 왜 팔자 좋게 골프나 치고 다니면서 발이 아프다고 하는걸까?" 의아해 했는데 아무래도 내게도 그런 증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아프면 아픈가보다 하고 지나가므로 병원을 안가니 병명을 몰랐을 뿐이리라.  (나는 병원을 잘 안간다. 그래도 여태까지 잘 살아있다.)

 

 

7월에 귀국하여 자가격리를 하고 나왔을때, 내 몸은 정말 엉망이었다.  손 마디마디도 쑤시고 아팠고, 정말로 사람들이 '여성 갱년기' 증상이라고 일컫는 모든 증상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듯 했다.  7월 말 쯤에 바람쐬러 대부도에 가서 구봉산 언덕길을 오를때 -- 나는 그야말로 10미터도 못 간채로 어지럽다거 멈춰서서 헉헉대고 있었다.  그랬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내가 남처럼 낯설게 여겨졌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어디 가고 나를 닮은 흉한 괴물이 하나 둔갑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그래도 대부도 구봉도 숲길이 좋아서, 비오는 날에도 숲길에 갔고,  자꾸만 운전하여 대부도로 가다가 이렇게 마냥 휘발류 들이고 시간 들이고 거기까지 갈 수가 없겠다 싶어서 찾아낸 것이 8월 내내 내가 시간을 보낸 시내 공원길이었다.  알고 보니 내게 아주 딱 알맞는 - 산책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8월 내내 나는 연꽃과 수련들을 보면서 걸었다.  그리고 9월, 시내 공원길이 지루하게 여겨져서 그냥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가 해안 산책로를 발견했고, 그 해안 산책로는 나를 이 섬의 모든 아름다운 산책로로 인도해 주었다. 그 사이에 종아리가 이유없이 아프거나, 밤에 죽일듯이 쥐가 나서 괴로워하거나 하는 일이 사라졌다.  족저근막염 같은 발바닥, 발목, 아킬레스건의 통증도 사라졌다.  그리고 내 발은 10년전에 내가 포토맥 강변을 걷던때보다 더 튼튼해졌다.  맨발로 걷고 달리는 요즘의 나의 발길은 10년전보다 더 가볍다.  놀라운 재생이다.  (체중은 10년전과 비교하면 5킬로그램 정도 차이가 난다. 그것도 1개월에 1킬로그램씩 정리하면 5개월 안에 최적 체중으로 돌아갈 것이다. )  거울속의 내 얼굴은 10년전보다 확실히 늙었다.  머리카락의 광채로 약해졌다.  그렇지만, 내 다리는 더 튼튼해지고, 나는 더욱 강인해 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매일 아침에 맨발 달리기를 실천 할 것이고 점점 더 거리와 속도를 키워 나갈것이다.  내 희망은 (하하하) 맨발로 천하를 주유하는 아줌마로 <세상에 이런일이>에 출연하는 것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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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