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4. 28. 06:20

"너 하고싶은것 다 해봐.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는 가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게 윙크를 보내고 계셨다는 것을 문득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나는 이따금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아이디어들을 구현해내곤 한다.  그것을 내가 진정 원해서 했던 것인지, 의무라서 해야만 했던 것인지 분간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낸 것인데 결과적으로 꽤 유쾌한, 내가 평소에 저질러 보고 싶었던 이벤트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게 취미생활은 아니고 내가 해야 할 일인데 - 꽤 재미있는.  

 

 

 

그러니까, 이 일을 나는 해야만 했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에도 내가 성공적으로 해 내야 하는 '시민 평생교육 프로젝트'의 '물주' 그러니까 '스폰서' -- 교육 프로젝트 경비를 모두 제공하는 '스폰서'기관에서 요청한 몇가지 사항이 있었는데 정규 학사 프로그램과 별도로 등록이나 수료 같은 것 신경쓰지 않고 시민 '아무나' '아무때나' 참가할만한 지역시민을 위한 이벤트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다. 음대를 갖고 있는 모대학은 대학 오케스트라의 협조를 얻어서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한다거나, 명사초청 특강 이벤트를 연다거나 이런식이다. 물론 나도 구색 갖추기 위한 공개이벤트를 이것저것 기획하여 수행중인데 그 중에 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영어카페' 프로젝트이다.

 

 

이십여년전에 '소크라테스 카페'라는 책이 소개되면서 알려졌던 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카페를 저녁시간에 몇시간 빌려서 번개모임 갖듯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운동이 진행된 적이 있다. 마침 내가 살던 버지니아의 지역 도서관에도 그 '소크라테스 카페' 운동원이 와서 모임을 한차례 개최한 적이 있어서 - 책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적도 있었는데 - 뭐 그냥 아무것도 아닌, 잊혀져도 그만인 경험이었는데 나는 그 모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여성과 교제를 이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 모임은 그냥 그저그랬다. 심각한 철학 얘기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다반사를 조금 사색적으로 바라보는 정도의 일회성 이야기모임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내또래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 그이와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몇차례 더 만나게 되었다. 그 여성은 돈많은 중동계 이민자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워싱턴디씨 인근의 부호들이 산다는 대저택 구역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던 그 여성은 중동계 사모님이었고, 이민자이지만 영어도 소통에 불편함없이 하고 있었고 교육도 잘 받았는데 손발이 묶인것처럼 스스로 느끼기에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그 여자와 몇차례 만나면서 주로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길래 나는 너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이러저러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얘기도 하고 - 그러면 너는 어떻게 자유를 찾을수 있을까?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제안했던 것은 -- 그래 이렇게 도서관에서 여는 이런저런 모임에도 자주 나와서 사람들과 만나라. 아이들 학교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지역민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에도 나가봐라. 그래서 자꾸만 현지의 이웃을 알아나가고 - 친구를 만들고 ...   그러다가, 아마도 그 여자가 영특해서 점점 더 자신의 숨쉴만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와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을것이다. 말하자면 작은 새장에 갖혀있던 새가 스스로 새장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소크라테스 카페' 모델을 내식으로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영어카페'를 열어서 시민대 학생들 뿐아니라 지역민들에게도 홍보를 하였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고정멤버도 있고,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만큼, 지난주에 봤던 얼굴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런다. 정말 동네 카페 같은 상황이다. 장사가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럭저럭인 날도 있고. 

 

 

카페지기인 나는 수업준비 하듯이 그날의 몇가지 소통 주제를 정하여 준비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영어를 떠듬떠듬 대충 혹은 잘 할줄 아는 사람들이 와서 그걸 활용하여 대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그러니 미국에서 살다 온 교포출신 시민들도 있는가하면 진짜 영어 왕초보 시민도 있고 그렇다. 초급부터 선수까지 뒤섞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다. 

 

 

 

며칠전에는 내가 재미있는 게임을 한가지 갖고 갔는데 작은 팀을 이뤄서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는거였다. 그러니까 팀원들이 열심히 단어 설명을 하면 그중 한명이 맞추는 게임이었는데 - 한 팀의 경우 살펴보니 두사람이 번갈아 단어 설명을 했어야했는데 유독 한명이 앞서서 단어 설명을 하고 옆에 있던 이는 정말 '어-버-버-' 뭔가 말을 하려다 못하고, 하려다 못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하려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내 짝이 앞서서 그걸 모두 설명해버리는 식이었다. 나도 조금만 시간을 주면 말할수 있는데 말이다. 그 딱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나는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나의 실책이다. 번갈아 설명하라고 먼저 지시를 했어야했는데....).

 

 

게임이 끝나고, 다른 주제 토론을 하는 시간이 되었을때 나는 아까 '어버버' 하면서 가슴만 치고 있던 그 분에게 '토론 주제가 되는 이야기'를 마이크를 잡고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분은 기꺼이 마이크 앞에서 또박또박 영문을 읽어나갔고, 주제 토론이 이어졌다. 

 

 

카페 문을 닫을 시간 -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고, 마지막으로 그분이 남아있었다. 오늘 활동이 재미있었다고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까 단어게임 하실때 힘드셨죠? 잘 하려는데 입에서 그놈의 영어가 잘 안나오죠?  그래도 잘 하셨어요. 친구나 집의 아이들이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하고 평소에도 그런 게임을 해보세요. 영어가 쉬워질거에요." 그러자 이분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제가 집에서 아이들과 영어 연습을 하려고 하면 애들이 엄마는 영어 못하니까 하지 말래요..." 젊은 엄마였다. 아이들이 고작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일 것이다. 쪼끄만 놈들이 엄마의 영어를 놀린다. 그 아이들은 유아원부터 아마도 영어 사교육을 받아서 영어 발음이 제 엄마보다 좋을지도 모른다. "아이고, 아이들힌테 기죽지 마셔요. 걔네들 영어, 그거 다 엄마가 돈대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만들어 놓은건데 기죽을거 하나 없어요. 오늘 하신것처럼 그냥 자꾸 자꾸 하시면 엄마가 영어를 더 잘하시게 될겁니다." 

 

 

그 젊은 엄마가 나가면서 말했다, "아까, 저에게 읽기 시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너무 속상했거든요."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의 '눈'을 잠시 빌려주셔서 - 누가 속상한지 알게하시고 - 어떻게 위로할지 알게해주셨다. 그 젊은 엄마가 위로받은것보다, 내가 더 많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4. 22. 02:02

나의 한쪽 발은 부스러지는 낭떠러지 끝을 간신히 딛고 있다. 나의 나머지 한쪽 발 끝에서는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영글고, 나무 줄기들이 뻗어나가고 있다.  나의 절반은 근심과 두려움에 떨고, 나의 절반은 재크와 콩나무 이야기의 콩나무처럼 쑥쑥 영광을 향해 나아간다. 

 

 

성경에 나오는 욥(Job)의 서사는 풍요에서 - 나락과 암흑과 고통으로 - 다시 풍요로 항하는 일직선의 시간을 보여준다.  나의 일상은 풍요와 고통이 뒤범벅이 되어 회오리바람처럼 나의 주위를 맴돈다. 나는 한편 빛나는 승리자이고 한편으로는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다. 

 

 

내 삶을 관조하며 문득 생각했다 - 참 신비한 시간이다.  욥의 이야기에서 일직선으로 흐르던 시간이 - 나의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입체적으로 흐른다. 하나님의 회오리바람 같은 시간속에 내가 갇혀있는것 같다. 내가 하나님의 시간에 갖혀 있다면 - 그것은 - 지금은 도무지 앞이 안보이는 혼돈의 상태처럼 지각되겠지만 - 내가 하나님의 시간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의 안전한 품속에 있다는 것이리라. 

 

하나님, 제가 이 시간을 잘 견디게 지켜주소서. 

 

Posted by Lee Eunmee
Sketch2023. 4. 17. 17:32

지난 주말 모 종편 방송에  '단군이래 최악의 다단계 사기꾼' 관련 이야기가 상세히 소개 된 바 있다. 주** 라는 사람이 주인공이고, 이 사람의 사기 행각으로 수많은 사람이 자살을 하거나 가족이 풍비박산이 났으며 아직도 그 고통속에 살아가는 사기 피해자들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 사기범은 현재 감옥에 있는데, 감옥안에서도 여전히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해당 사기범의 변호인이었던 사람와 결혼 신고까지 했다고 한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 쇼킹 시사 프로그램 생각이 문득 나서 일요일에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 다단계 사기범 말이야..."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남편이 '주*도? 그 사람?'하고 곧바로 말을 받았다.  그 대규모 다단계 사기범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던 그 즈음에 (약 20여전의 일이다) 나는 국내에 있지 않아서, 이 내용을 처음 접하는 것이었는데, 당시에 남편은 사고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 나하고도 밥을 한 번 먹은적이 있지" 남편은 기억의 창고를 뒤져내어 먼지를 털어내듯 뿌연 기억을 털어 놓았다. "밥을 먹었다고? 그 희대의 사기꾼하고?" 

 

 

남편은 당시 활발하게 현직에서 일하고 있던 중이었고, 어느날 후배 직원이 '아무개'가 점심 초대를 했는데 함께 가자며 동행할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의 일이 경제인, 정치인, 서민 등 이런 저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 취재하는 일이었고 그래서 '사람'을 한명 만나는 차원에서 그 점심자리에 나갔고, 그래서 그 사람과 한번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기꾼을 만나니 어땠어? 어딘가 남달랐어? 언변이 기름지고 사람을 혹하게 할 만했어? 투자를 권유하지는 않았어?" 내가 호기심이 가득하여 그에게 묻는데, 남편은 별로 기억나는게 없다고 했다.  "돈봉투나 혹은 거액 상당의 선물을 주지는 않았어?" 내가 '취조'하듯 물어도 그의 대답은 애매하면서도 선명했다, "내가 원래 돈 봉투 안받고 선물도 거절하쟎아. 그러니 그 사람이 뭘 줘도 안받았겠지. 나는 그 사람하고 점심 먹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기억나는게 없어."

 

 

그래도 내가 다그치니가 그가 마지못해 기억의 창고를 뒤져내어 생각해 낸것으로는 - 그가 뭔가 자기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을 했는데, 그게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아서 대충 흘려듣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의 취조가 끝날것 같지 않자 남편이 말했다, "나 원래 사람한테 관심 없는거 알쟎아. 난 그 사람한테 전혀 관심이 없었다니까." 

 

 

그래서 나는 취조를 중단했다. 맞다. 남편은 평생 '기자'를 했고 여러가지 '특종상'도 많이 받았지만 - 근본적으로 그는 '사람의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 조금 비약시켜서 말하지면 '자폐' 증상이 있는 기자였을 것이다. 늘 '철학책'이나 들여다보는 그 사람은 '호구지책'으로 '밥벌이'를 위해서 '기자'가 되었고, 그 기자일을 아주 잘 해낸 사람이긴 하지만 - 그의 천부의 취향이나 재능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사람의 일'을 취재하기 보다는 어떤 '사실'에 집중하고 그 '사실'의 논리적인 전개를 들여다보거나 분석하는 데에 있었다. 내가 사람을 들여다보고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재능이 있다면 - 남편은 '컨셉'이나 '원리'를 들여다보고 그것의 진위나 논리성을 탐색하는 재능이 있다고 할 만하다. 

 

 

내가 그 사기꾼 주*도를 밥상머리에 만났다면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가 전하는 '이야기'와 그가 사용하는 '언어/단어/몸짓/표정'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를 통해 그의 '사람됨'을 들여다보고 내가 그를 '좋아할 것인지,' '싫어할 것인지,' '무관심 할 것인지'를 판단하려고 했을 것이다. 

 

 

남편은 사람을 만나면 그의 '논리'만 분석하고 앉아있다. 그는 이야기의 흐름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그는 소위 말하는 '벽창호'이다.  여러사람이 모이는 사교의 자리 (동창회나 가족모임)에서 그는 '기인'이다. 그는 즐거운 이야기의 흐름에 들어오지 않고 자기만의 흐름속을 거닐다가 문득 '아까 이야기하고 지나간 화제'에 대하여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엉뚱한 소리를 한다.  이런사람을 '벽창호'라고 부르는것이 맞는지도 나는 자신이 없다. 아무튼 그는 조금 이상하다. 사교적인 대화의 자리에서 그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간다.  그래서 나는 그와 '사교적인 자리'에 동행하는 것이 편치 않다. 그가 뜬금없이, 눈치없는 이야기를 불쑥 던질까봐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를 봐도 줄거리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설명을 해 줘야 할 때도 있다. 그는 '사람'이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 벽창호 같은 사람이 희대의 사기꾼을 만났을때, 그 사기꾼은 좌절 했을 것이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천치'같은 사람이 '유력인사'로 초대되어 그의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내가 그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미안하지만, 주*도는 나를 현혹시키는데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물론 사람과 눈을 맞추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드는등 '공감'능력이 뛰어나긴 한데 - 나는 태생이 '언어'학자이다. 나는 '언어'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그의 용모의 수려함이나 그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나 '동작,' '눈알의 움직임,' '얼굴 표정의 미세한 변화' 등을 관찰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요소중에서 내 맘에 안드는 요소가 발견되는 순간 '마음의 문'을 탁 닫아버린다. 금세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시사프로에서 흘러나오던 주*도의 특강이나 언행은 '언어'를 분석하는 내 눈으로 보기에는 '사기꾼'처럼 보였다.  원래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뺀지르르한 사기꾼 스타일. 전형적인. 내가 보자마자 피하는 종류의 외모. 

 

 

사기꾼 주*도의 이야기를 하던중 "나는 원래 사람한테 관심없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듣지도 않았어."라고 남편이 말할때, 나는 물었다, "사람한테 관심 없는거 알아.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에 끼어드는것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는 것도 알아.  그런데 옛날에 어떻게 나라는 사람한테 관심이 생겼어? 그때는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처럼 나하고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었어?"   "몰라, 그때는 내가 뭐에 홀렸던 모양이야. 나도 장가를 가야 했으니까 노력을 했던 거겠지."  이에 대하여 나는 대꾸했다, "아이고, 내가 사기를 당한거지. 인간과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을 정상인줄 알고 내가 ...사기를 당한거지." 

 

 

나는 요즘 한가지 주제에 관심이 생겼다.  희대의 사기꾼 주*도나 혹은 장흥지역에서 하늘궁을 차리고 장사를 잘하고 있는 허*영이라는 인물이나, 사이비교주 정*석이라는 인물이나 하여간 이런 '혹세무민'하는 사람들 -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사기를 치는 것일까?   아무튼 이런 자들은 멀리하는게 정답이다. (가까이 오면 위험하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29. 18:22

 

 

미국에서 오던 해 봄에 나는 캠퍼스 어딘가에서 스킨답서스 줄기를 약 20센티미터쯤 끊어서 물병에 담아 놓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어딘가에서 끊어온 스킨답서스는 묵묵히 자라났다. 자라고, 자라고, 또 자랐다. 그 사이에 새끼를 친 화분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동료교수들에게 선물한 화분들은 말라죽은 시체가 되어서 버려지곤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것을 탐내는 친구들에게 선뜻 주지 않는다. 말라 죽일거면서 왜 욕심을 내는거지? 응?)  나는 버려진 화분들을 가져다가 다시 생생한 어린 아이들을 키워냈다.  그리고, 어제 모처럼 시간을 내어 그동안 '길게 길게 길게 자라나서 뻗어갈데가 없던 이 친구들을 잘 정리하여 초록색 아치로 만들어주었다.   학생들이 와서 '이거 가짜지?' 하는 소리가 열린 문으로 들려온다. 내 정원에 플라스틱 식물은 없다.  진짜로 살아있는 식물을 보면서도 학생들은 당연히 그것이 플라스틱이라고 생각한다. 

 

흐뭇하다. 나는 시시때때로 문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이 초록색 문을 쳐다본다. 

 

시간과, 햇살과, 물과, 공기와 바람과 하나님의 사랑이 만들어낸 초록색 문.  

 

나는 늘 '초록색 나무문'을 통하면 나오는 '나의 정원'을 갖고 싶다는마음을 품고 살아왔다.  아직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지만, 바로 내 곁에 있는 초록색 아치가 내 마음과 영혼을 천상으로 이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소망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거다.  이거면 족하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27. 11:30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 (피아니스트 윤아인)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을 연주한다길래 R석 티켓을 구해서 1층에서 관람했다. 

 

 

라흐마니토프의 피콘2번은 몇해전에 케네디센터에서 연주하는 것을 생애 최초로 감상했고, 이번이 두번째인데 - 라피콘 2번은 아마도 내가 죽을때 떠올리게 된다면 케네디센터를 떠올리게 될것 같다. 윤아인씨의 피아노 연주는 피아노를 잘 모르는 '막귀'인 내가 듣기에도 힘이 넘쳤고 근사했다.  문제는 -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와의 조화가 어딘가 답답하게 여겨졌다.  문제의 원인이 뭘까 고민고민하면서 '막귀'가 생각한 것은 - 일단 무대가 너무 작았다.  뭐랄까, 음, 고래를 작은 욕조에 잡아 놓은 듯한 느낌. 딱 그런 느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어우러졌어야 했는데, 이건 뭐 제삿상에 뭐 잔뜩 때려 넣어서 막 상다리가 휘어지고 정성껏 차린 음식이 막 포인트 없이 여기저기 겹쳐져 있는것 같은. -- 부조화.  안타까웠다.  무대가 더 컸어야했고,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채 어우러졌어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 내가 다니는 음악당은 - 내가 경험한 바로는 3층 중앙이 1층 중앙보다 소리가 훨씬 입체적이다.  비싼 티켓값 내고 1층에 앉아있는것 보다 싼값이 3층 중앙에 앉는 것이 훨씬 '소리'가 좋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고, 부분부분 참 익숙하게 들었던 곡이므로 내게도 친숙했는데 - 생각해보니 내 평생에 이것을 음악당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것은 처음 이었다. 그리고 - 참 즐겁고 신나게 감상을 했다. 특히 1악장과 2악장을 수놓았던 '드럼' -- 아 그 '먼 천둥소리' 같았던 드럼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온 후에 - 나는 내내 드럼만 쳐다보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평소라면 나는 첼로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을 것이다.  '비창'을 들을때는 내 온신경이 드럼 연주자에게 쏠려있었다.  어느순간 '드럼'이 내 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 나는 '드럼 연주자'와 사랑에 빠져서 비창이 모두 끝났때까지 오로지 '드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 나만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연주회가 모두 끝나고 소나기같은 박수가 이어지자 지휘자가 각 파트별로 인사를 시켰는데 - 드럼주자가 인사하기 위해 일어났을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와!' 함성을 울리며 박수를 보냈다.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막 가슴이 뛰고 기뻐서 웃음이 나온다).

 

 

요즘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왜 행복한 기분이 들까?' 문득문득 궁금해했는데 - 마침내 어제 구글링을 해봤다.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그 음악이 나올것을 기대할때 (생각할때)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사람들이 '마약'에 빠지는것도 바로 그 '도파민'의 소나기를 맞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러니까 음악이 일시적으로나마 '도파민'이 온몸에 강물처럼 흐르게 해주나보다.   그래도 나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 왜 어떤 선율은 나를 행복하게 하고 어떤 선율은 나를 불편하게 할까?  예를 들어서 나는 '프로코피에프' 음악을 FM에서 들을때 (내가 일부러 찾는 경우는 없다) 갑자기 '두통'을 느낀다. 이마를 송곳으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아주 불쾌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라디오를 꺼버리거나 한다. 나는 왜 그 음악에 두통을 느끼는걸까? 나는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가 '예각 삼각형'같은 뾰족뽀족한 음악처럼 여겨진다.  왜 어떤 음악은 '도파민'의 강물이 흐르게 하고 어떤 음악은 '두통 유발자'가 되는가? 그것은 왜 그런가?  나는 여전히 이러저러한 것들이 궁금하다.

 

 

비창은 - 마지막 악장의 마지막 - 곡이 끝나는 부분 -- 그것은 연주회장에서 들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수 있을것 같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게 아름답고 힘이있다. 힘이 없어서 힘이있다. 고요한 죽음의 아름다움 같은것.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지금 내가 버지니아, 워싱턴에 있다면 - 나는 아마도 어딘가에서 공연될 '나비부인' 오페라를 찾아가 볼것이다. 워싱턴에서는 해마다 벚꽃 계절이 되면 어디선가에서 '나비부인' 공연을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하고 있을것이다.  나비부인을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24. 11:26

로제타스톤 중국어 18주 분량의  공부를 7주만에 '오늘' 대강 휘리릭 마쳤다.  '대강 휘리릭' 마쳤다는 말은 - 제대로 외우지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처음부터 끝까지 해 냈다는 것이다 (매 단원 평가는 100% 완성될때까지 여러차례라도 거쳐서 아무튼 100점 받고 통과하는 식으로 대충 했다). 

 

 

7주간 순전히 혼자서 로제타스톤을 컴퓨터로 열고 - 컴퓨터를 '선생님' 삼아서 공부한 것을 자체평가 하자면

 

 

  • 중국어란 이러저러한 것이구나 하고 대강의 윤곽을 파악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될지 감이 잡혔다)
  • 이제는 '구몬중국어'나 뭔가 조금더 구체적인 공부를 해도 되겠다 싶다 (1주 1회 선생님이 방문하는 교재를 생각중이다)
  • 심심할때는 유튜브에서 '기초중국어 회화' 같은 것들을 틀어서 즐겨 본다. 좋은 선생님과 자료가 많다. 감사하다. 외우는 것은 없어도 친숙해지고 있다.
  • 4성조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대충 파악하게 되었다. (뭔가 감으로 잘 때려 맞춘다. 하하하.)
  • 내가 중국 TV 채널 틀어놓고 '홍루몽'이나 뭐 이런 중국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 남편이 지나가다 내가 테베비 보는 꼴을 보면서 "마치 다 알아 듣는듯한 표정이군~" 하고 비웃는다. 나도 하하하 하고 웃는다. 알아 듣는 말은 별로 없다. 그냥 그 언어에 내 귀를 노출시키는 것 뿐. 
  • 내가 이렇게 하루에 30분-1시간씩 한 3년쯤 중국어 공부를 하면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이걸 잘 할수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이들면서 내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었는데 - 과연 내가 총기있게 잘 배울수 있을까?  문법 같은것 눈치로 배우는것은 어렵지 않는데, 기본적으로 어휘를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질것 아닌가?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계속 해 보기로 한다. 
  • 위와 관련해서 - 그냥 시험삼아 - 무슨 HSK 시험에 맞추어 해볼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뭔가 시험을 목표로 하면 내 공부가 좀더 뭔가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아무 목적없이 널널하게 심심파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어딘가 맥이 안잡힌다는 느낌이다.) 좀더 생각해봐야지.
  • 가끔 아무 맥락없이 내 입에서 배우지도 않은 중국어 어휘나 문장이 튀어나오는데 - 내가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교재에 없고, 나도 배운적이 없는 문장이 입에서 갑자기 휙 튀어나와서 혼자서 종알종알 '이게 뭐지?' 종알거리면서 생각하다가 문득 그 뜻이 떠오른다. 문득 이해가 되는 것이다.   (예: 옛날에 미국에서 가르칠때 한국인 학생들이 중국학생들을 놀려먹으려고 '너 밥먹었니?를 영어로 뭐라고 하니?  하면 중국인 학생이 - 이씨팔놈아 뭐 이렇게 말을 하고, 그러면 한국 학생들이 킥킥대곤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고 지나치곤 했는데 문득 - 니 씨 팔 로 마 -- 니 치 판 로 마 - 니 취 판 러 마 -- 아...너 밥 먹었니?  이런 뜻이었구나!  이러는거다. )  배우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듣거나 읽었던 것이 머리 구석에 숨어 있다가 갑툭튀! 쑝쑝!  (사람의 머리 컴퓨터 기능에 대하여 나는 새록새록 놀라워하고 있다) 
  • 로제타스톤 무한구독권 얼마주고 샀더라?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그 돈 아깝지 않다.  사람이 공부할때 투자하는 돈은 돈 값을 한다. (나도 남 가르치는 것으로 월급 받고 살지 않는가? 그러니 나 역시 뭘 배우려면 투자를 해야지.)
  • 아무튼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뭔가 성취감이 든다. 
  • 내가 이끌고 있는 기도회에 중국인 교수가 왔길래 - 그날의 성경구절을 중국인 교수에게 중국어로 낭독을 해달라고 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 구절이었는데 중국인 교수가 낭독하는 그 성경구절이 '찬송가'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중국어가 그렇게 아름답게 들리다니!  모두들 깜짝 놀랐다. 중국인 교수 자신도 놀랐다 (그 분은 크리스챤이 아니고 그냥 기도회 모임에 좋아서 오시는 분이다.)  그래서 내게 어떤 꿈이 생겼다. 내가 영문 성경을 아름답게 읽듯이, 언젠가 중국어 성경도 노래하듯 아름답게 읽을수 있기를.  이건 참 담대한 꿈이긴 하다. 뭐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리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21. 11:27

 

 

내게는 '작은 정원'이 있다. 연구실 밖에 이웃건물로 통하는  통로가 있는데 실제로 통과하는 문이 폐쇄되어 있으므로 양면이 유리로 만들어진 '유리 온실' 같은 장소가 되어 버렸고 내 연구실 문 바로 옆에 이런 '유리 온실'이 있으므로 내게는 전용 유리 온실이 주어진 셈이다.  심심파적으로 수년간 차근차근 화초들을 분갈이를 하면서 삽목을 하여 '식구'들을 늘려 나갔는데, 유리 온실 속의 화초들이 사시사철 잘 자라주어서 '밀림'처럼 되어갔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내가 요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화분들을 골고루 배치할수 있도록 화분대까지 설치를 해 주어서 이럭저럭 작은 정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2016년에 처음 왔을때, 어느 화분에서 20센티쯤 잘라서 키우기 시작한 스킨답서스는 어마어마하게 새끼를 치고 길이를 늘여가서 최근에는 '처치곤란'한 상황에 이르러 저 많은 스킨답서스 화분들을 어떻게 잘 살려나갈것인가 고민중이다.  제라늄 화분 하나로 시작한 것도 새끼치기를 거듭하면서 여러개의 화분에서 사시사철 빨간 꽃을 피우고 있다. 선인장들도, 허브들도, 뭐든 새끼치기를 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작은 하나가 '군락'을 이루는 과정을 나는 지난 수년간 이 작은 정원에서 목도를 하고 있다. '하나'의 힘이 참 무서운거다.

 

 

오늘은 내 창가의 작은 선인장화분에 꽃이 만발한 것을 발견했다.  바삐 지나다니며 꽃이 피는지 열매가 맺는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문득 발견했다. 아하! 저렇게 예쁜 꽃이 피어나고 있었는데 내가 봐주지도 못했다니. 참 미안하다.

 

그래서 문득 깨달았다.

 

2016년부터 오늘까지 내가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 나는 끊임없이 불평했고, 화를 냈고, 험담을 했고, 나쁜 생각들을 했고, 좌절했고, 죽고 싶었고, 떠나고 싶었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신경질쟁이이며 언제든지 폭발할것 같은 고약한 활화산, 독기어린 마그마를 마구마구 분출할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저 화초들도 나에 대하여 짐작을 했을 것이다. 

 

저 화초들에게 나는 - 일주일에 한번씩 물을 주는 아줌마.  가끔 영양제를 꽂아 주거나 비료를 주는 아줌마. 가끔 와서 들여다보고 뭐라고 말을 걸기도 하는 아줌마. 이제 할머니가 되어가려는 아줌마. 방학때 사라질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꼭 물을 주라고 부탁을 하는. 아주 좋은 정원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라 죽게 내버려두지도 않는 그저그런 사람. 

 

나는 깨달았다. 

  • 화초들은 한번도 내게 짜증을 낸 적이 없다.
  • 목이 말라 말라죽어갈때도 나를 원망하거나 저주한것 같지도 않다.
  • 화초들은 물과 햇살만 있으면 군소리 않고 무럭무럭 자라며 자기 할 바를 다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몸집을 키운다. 
  • 화초들이 말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나는 가끔 화초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화초들이 내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뭔가 불평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화초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

  • 가능한 말을 줄이자. 특히 불평하는 말, 누군가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은 절대 입 밖에 내지 말자. 
  • 말없이 내 할일이나 잘 하자. 어떻게든 살아내고 몸집을 키우는 스킨답서스처럼. 
  • 남이 보건 안보건 꽃을 피우는 화초처럼, 나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자. 하나님께 보여드리기 위하여. 
  • 어떤 상황속에서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불평하지 말자. 말라죽을때조차 불평하지 않는 화초들처럼.  하나님께서 다 계획이 있으실거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20. 18:25

아래 글에 이어서...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1. 토요일 오전, 중국어 공부 두어시간쯤 신나게 하다가 (매일 최소 30분씩은 하는데 주말이라 여유를 부린다고 좀 많이 했다)
  2. 날씨가 환해지길래 '포토맥 (우리가 포토맥 강변이라고 이름 붙인 수변 산책로)' 산책을 나가서 약 10킬로미터쯤 산책을 하고 돌아와
  3. 냉장고에서 딸기, 단감, 방울토마토, 사과등 과일을 있는대로 꺼내놓고 신나게 먹고 
  4. 저녁 5시에 맞춰 음악당에 가서  '드보르작' 피아노 콘체르토와 교향악 7번을 감상했다. 역시 오케스트라 연주가 아주 좋았고, 피아니스트도 (나는 잘 모르는데) 남편 설명으로는 '천재'라고 한다. 나는 첼로 연주자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연주자는 잘 기억을 못한다. 
  5. 일요일 오전 9시 예배를 착하게 드리고 집에 와서 중국어 공부도 하고, 성경책도 보고, 저녁에는 산책도 했다. 

 

 

자, 여기서

 

 

  1.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2.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3. 과일을 실컷 먹고
  4. 예배를 드리고
  5. 봄꽃을 보면서 산책을 하고

 

 

이 모든 것을 다 충족시킨 주말 - 이 정도면 나는 이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 내 잔이 그득차 넘치는 축복가득한 시간속을 유유자적 유영한 것이다. (유유자적 논 결과, 월요일, 학교에 오니 해 치워야 할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아이구야...주여...제가 이것들을 착실히 잘 해낼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와 능력을 주시옵소서)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11. 07:45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어떤 이미지들을 갖고 있다. 조기 축구회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기적으로 축구장에 나가서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물고기가 잡히거나 말거나 낚시를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평생 낚시를 하러 간 적이 없고 내게 낚시는 그냥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삶의 낙이고 활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내게 바로 그러한 - 다른 사람 삶에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내게는 의미있는 삶의 구성요소가 몇가지 있다. 내 머릿속 이미지에서 - 내 삶이 거의 완벽해 보여서 더이상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는 - (1) 내가 원할때 별 장애없이 음악회에 다녀올수 있다  (2) 이따금 몇시간 산책을 할 수 있다 (3) 일요일마다 예배에 다녀온다 (4) 돈걱정 안하고 먹고 싶은 과일을 마음가는대로 먹을수 있는 정도의 재력이 있다 -- 이 정도이다.  이정도가 충족되면 나는 누구도 부럽지 않다. 재벌도 대통령도 으리으리한 집이나 뭐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나로서는 '완벽에 가까운' 상태다. 

 

작년에 내가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질수 있었을때,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 물론 교회에 가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신도들을 위하여 교회에 떡을 돌리고 난 후에 --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온라인으로 음악회 티켓을 사고, 날짜를 기다려 음악회를 다녀 온 일이었다. 음악회에 가기 위하여 갖고 있던 옷중에서 그래도 음악당에 어울릴 옷을 골라 입고, 휘청거리며 음악회를 향할때 그 때 나는 내 삶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이것이야 말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삶의 요소라는 것을 자각할수 있었다.  사람이 죽음의 강을 건너서 잠시 안도할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일'이 각자 있을텐데 - 나는 그 때 '음악회'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 내가 이런것을 정말 좋아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한 100명 가까운 연주자들이 모인 - 정말 꽉 찬 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귀와, 마음과, 영혼과, 정말 온몸으로 들으면서 음악의 바다속을 편안하게 유영하면서 생각했다 -- 내 삶을 천국으로 만드는 외적 요인들 - 음악회, 예배, 산책, 과일.  이런 것들만 누릴수 있다면 나는 지상의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음악회, 예배, 산책, 과일 이 모든 요소들이 충족된 일상을 살고 있다. 오, 기적적인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재지변과 전쟁과, 질병과, 경제적인 고통과, 인간관계의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그에 비하면 나는 미안할 정도로 풍족하고 안전하며 쾌적하기까지 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오 하나님.

 

그러니, 오늘 하루 고된 일과가 기다린대도 기뻐하자. 내 삶은 이미 넘치는 축복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으니.  오늘은 엄마의 보청기를 맞추러 가보기로 하자. 하나님께서 아주 좋은 보청기를 준비해놓으시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실것이다. 가고 오는 길이 힘들어도 -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6. 19:33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중요한' 회의이므로 회의 자료를 이미 일주일전에 만들어 놓았고, 팀원들에게 리뷰 할것을 청했고, 피드백을 받았고, '주일' 예배 마치고 오피스에 와서 이미 일주일전에 만들어 놓은 자료를 싹 다 갈아 엎고 (피드백 받은것을 모두 반영하고) 회의 자료 준비를 마치고 아예 프린트까지 다 해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결전의 날. 그 '중요한 회의'는 회의자료를 본  누군가는 '아예 유언장을 쓰셨군,' '이건 뭐 사직서네. 최후 통첩이군'  이런 평가도  했다. 

 

그렇지, 저들은 평범한 회의라고 오겠지만, 뚜껑이 열리는 순간 - 정말 뚜껑이 열리는 것이지. 나는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지. 슥삭슥삭슥삭, 생각을 정리하고 또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다시 글을 쓰고, 그러면서 생각이 더 차가워지고, 글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 건조해지고 -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채로 - 사실만 남은 - 그러나 '비수'처럼 번득이는 회의 자료를 만들었던 것이지. 

 

 

만족한다.  비수를 심장에 제대로 꽂았다.  게다가 오늘 회의 안건을 다시한번 분명히 하기 위하여 회의 마치지마자 파일로 다시 참석자들에게 보냈다. 회의에 참석하여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회의중에 내가 예견했던 언짢은 (기분 나쁜, 화가 치미는) 소리도 들었다. 전체적으로 승리한 전쟁이지만, 그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이걸 어떻게 갚아주나' 하는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때 내 책상위의 '오늘 내가 할일' 리스트 정리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30분간 기도'  -- 그렇다, 오늘 내가 할 일 리스트에 '30분간 기도'가 들어있었다. 아직 못했다.  그래서 조용히 앉아 - 파도소리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30분간 눈을 감은채 기도를 했다. (30분 타이머를 켜놓고).  30분이 지났다. 그 30분간 잔잔히 파도가 치듯 온갖 생각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30분이 다 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기도 시간이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가벼워졌다.  기분 나쁜 생각도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우리는 끝없이 말 실수를 한다. 나도 그렇고 남도 그렇다. 그러므로 자질구레한 말의 찌꺼기를 내 가슴에 담아 둘 필요가 없다. 그냥 그것은 찌꺼기 일 뿐이다. 파도가 그것을 씻어 갔다. 홀가분해졌다. 

 

 

30분 기도로 나는 아주 홀가분해졌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불평이 생기거나 할때 - 나는 기도로 들어가기로 하자. 찌꺼기들은 파도가 씻어가 줄 것이다. )

 

 

기도를 마쳤을때 팀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회의에서 자신의 문제를 논의하고 개선 방향을 역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바로 그 일을 제대로 해 내기 위하여 내가 고민하고, 칼을 슥삭갈고, 주일 예배 마치고 오피스에 와서 곧바로 '성령 가득한 시간에' 원고를 수정하고 했던 것이니, 목표하던 것을 성취할수 있었겠지. 기도하면 - 길이 열리고 - 기도하면 - 만사형통.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3. 1. 12:36

황정민

 

내가 좋아하는 한국 남자배우를 꼽는다면 1번으로 '안성기'  그리고 2번으로 '황정민'을 꼽는다. 그 외에는 다 그냥 '저 사람 좋은 배우지'하는 정도이다. 황정민은 특별하게 생각한다. (일단 내가 그 사람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 요즘은 알던 이름도 자꾸 생각이 안나서, 확실히 내 기억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황정민보다 더 대단하고 훌륭한 배우들도 있겠지만, 그냥 황정민을 보면 '반갑다.' 내 취향이다.  여기서 내 취향이란 - '자연스러운 얼굴에 서민적인 행동거지가 몸에 붙은 평범해 보이는 남자'이다. 나는 세련되고, 잘생긴 스타일의 사람에 대하여 크게 호감을 갖지 못한다. 꽃미남 계열에는 눈이 잘 안간다.  

 

미스터트롯으로 유명해진 '장민호'라는 가수가 있다. 잘생긴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는 모델도 했단다. 이목구비가 조각한것처럼 반듯반듯하고 잘 생긴 사람이다. (인정).  그런데 나는 처음에 TV에서 트롯 경연대회에 그 사람이 보일때 그에 대하여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냥 막연한 나의 느낌인데 '저 사람은 잘생겼지만 어딘가 야비해보여. 저런 사람은 가까이 하면 안돼' 뭐 이런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그의 노래, 그의 태도, 무대에서의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나쁜 남자'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 TV에 나오면서 - 점점 유명해지면서 - 주위의 후배 가수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이 참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무명가수라서 자신의 형편이 별로 부유하지 않아도 주변의 어려운 후배들에게 자기가 가진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평판을 들으니까, '사기꾼'같이 보이던 그의 미소가 '푸근'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 잘생긴 그의 용모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잘생기고 마음씨도 착한 좋은사람'으로 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 요즘 이따금 TV에서 그를 보면 반갑다.  그 착한 사람이 잘 풀려서 저렇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니 돈도 많이 벌 것이고 이제는 사는 걱정 안해도 되겠다 생각하며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남의 일인데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무어람?  어쨌거나, 그래서 '장민호'씨 때문에 나는 나의 잘못된 '편견'에 대하여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눈에 사기꾼 같아 보여도 - 어쩌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일수 있는 것이니.  그리고 일단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보니까,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던지... 내가 내 눈을 달고 살고 있지만, 나는 이제 내 눈이나 판단력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세상에 확실한게 뭐가 있단 말인가. 

 

좌우간, 자연스러운 이웃  사람같은 용모와 행동의 배우 '황정민'을 내가 좋아하는데 - 어제 저녁 클래스에 '황정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수업중에 10분 휴식을 주면 남학생들은 저희들끼리 우르르 몰려나가는데 - 나갔다 온 학생들에게서 '담배'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으로 보아 휴식 시간에 그들은 '담배'를 태우러 뛰어 나갔다 오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무리의 남학생들이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황정민'을 대동하고 왔다. 

 

'황정민'은 벙글벙글 웃으며 교실 뒷문으로 들어와 곧장 내게로 일직선으로 다가와 해바라기처럼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아! 자네! 아무개! 잘있었어?" 그는 지난학기에 내 수업을 들은 학생이었다.  그에게서 진한 담배냄새가 났다. 아마도 '담배태우는 곳'에서 우리반 남학생들과 스치면서 지금 내 수업이 진행중이란 소리를 듣고 - 그 남학생들을 따라 온 모양이었다. 내게 인사를 하러. 지난학기 내내 그는 수업에 열중한 아주 고마운 학생이었지만 - 그놈의 코비드 마스크 때문에 -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적이 없다. 미지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마스크가 사라진 훤한 얼굴을 드러내고 나타났으므로 나는 그를 자주 만났으면서도 - 마치 처음으로 만난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온 그 얼굴에서 나는 '황정민'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내 눈이 이상한걸까? 자네가 배우 황정민 같아" 내가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벙긋벙긋 웃었다. 주위의 친구들도 모두 자기를 '황정민'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저 스스로 자기가 황정민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정민씨의 스무살 무렵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 이 친구의 얼굴을 보면 된다. 혹은 황정민씨의 대학시절 대역배우가 필요하면 이친구가 하면 되겠다.  그래서 그 친구는 다음주에 내 연구실로 다시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리고 하고 교실을 나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밥먹다 말고 - 문득 - 그 황정민 생각이 났다. '아! 나는 황정민을 만났다!'  이런 생각이 들며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황정민 때문일까, 아니면 황정민을 닮은 그 학생의 해바라기 같이 밝은 미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 담배피다가 내 소식을 듣고 일부러 뛰어 올라와 인사를 해준 그 인정 때문이었을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27. 15:27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박인환 시작(詩作) 7, 1955. 10.)

 

위의 시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시 전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학교에서 해마다 '가을 축제'를 개최했고, 각종 전시회가 열렸는데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나는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를 시화전에 제출하였다.

 

내 인생 처음이지 마지막인 '시화전 작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도화지 전지에 위의 시를 검정색 포스터칼라 물감으로 띄어쓰기도 없이 그냥 글자만 빽빽하게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집에서 밀가루 거를때 사용하는 '체'를 이용하여 물감을 뿌리는 작업을 하였다. 여러가지 물감을 브러쉬과 체를 이용하여 뿌리기 (스프레이) 작업을 하면 물감이 안개처럼 내려 앉는다.  다양한 색감의 물감을 이런 방식으로 자꾸 자꾸 덧 입혀주다보면 뭔가 안개속에 새겨진 시 같은 느낌이 난다.  내가 이것을 어디서 배운것은 아니고, 혼자 앉아서 이런 저런 장난을 하다가 문득 '영감'이 발동하여 예술적인 작업을 했던 것인데 - 이 작품을 미술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좋은데...여기에 물감을 좀 더 뿌려서 완성시키면 좋겠다."  그래서 선생님의 조언대로 그날 저녁에 또 몇시간 물감 뿌리기를 덧 입혀서 액자를 해서 제출했다.  

 

 

 

가을축제를 마치고 전시했던 작품을 집으로 갖고 와서 아무데나 처박아 뒀는데 우리집에는 진짜 유명한 화가 선생님의 그림이나, 뭐 진짜 그림 (돈이 되는 작품) 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따위 나의 습작 '따위'는 변소에도 걸릴 자격이 없는 하잘것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집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 내 '변소에도 걸릴 자격이 없어 보이던' 내 시화 작품이 우리집 현관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나로서는 놀랄만한 '사건'이었는데 - 왜냐하면 이'따위' 것을 우리 식구중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을거라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내 시화 작품을 현관에 걸은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엄마에게 내 시화 작품이 특별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우리집의 '분위기'가 그 시화작품에 대해서 뭐라고 평을 하는 그런 집구석은 아니었다. 그게 거기 걸려있으면 그냥 걸려있는거다. 아무도 그것이 좋네 마네 평을 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그게 거기 걸려서 뜨아하고 놀라웠다는 것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 아무도 그것을 떼어버리지 않아서, 우리집이 이사를 할 때까지 그 시화는 영원처럼 거기 걸려있었다는 것이다.

 

수십년이 지나서 (40년도 넘게 지나서) - 라디오의 음악방송에서 박인희 (가수, DJ, 박인환씨의 누이동생)씨가 낭송하는 '목마와 숙녀'를 들으며 고교시절 내가 만들었던 시화 작품을 떠올리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시는 고등학교 시화전에 걸면 안되는 것어다!'  내가 가만히 듣다 보니까, '한잔의 술을 마시고'  '술병이 쓰러지는..' '한잔의 술을...' '내 쓰러진 술병' 이런 '술타령'이 들어간 시를 고등학교 시화전에 내가 낼 생각을 했다니!  그것을 미술 선생님이 보시고 추천을 하셨다니!  그것을 우리집 현관에 걸었다니! (하하하하하하하 깔깔깔)   

 

 

우리집은 사실 '술'에 대하여 꽤나 관대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의 '반주'를 누가 딸아 드리는가로 형제들끼리 서로 경쟁을 할 정도로 술과 가까웠고,  할아버지는 초등생 어린 손자손녀들에게도 집에서 빚은 포도주+소주를 "너도 한번 먹어봐라"하고 권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시시철철이 생신 잔치며 여러가지 잔치마다 각종 술이 흘러넘쳤고, 여름에 막걸리 사오라는 심부름을 우리는 좋아했는데, 막걸리 사오는 길에 그걸 조금씩 맛볼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술의 제국에서 태어났으며 바쿠스의 후예로 성장했다고 해야 하려나. 그런고로 고등학교 때 '한잔의 술을 마시고'의 문제성을 자각할 수 없었던 것인데 - 그런데 미술선생님 역시 - 시화전을 준비하던 국어 선생님 역시 - 모두가 그런 것에서 문제성 따위를 인지 하지 못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 였던 모양이다.  지금 제법 철이 들어, 교육자의 입장에서 이 일을 돌아보니 그 당시의 이 사회가 술에 대하여 꽤나 관대했던 모양이다.  지금 그것을 '문제'로 보는 나는 술에 대하여 마냥 관대할수가 없어진 모양이다.

 

지금도 나는 생선회나 생선 매우탕 이런 것들 앞에서는 '아 소주 한잔이 있어야 하는데....'하고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술의 효용에 대하여 무조건 배타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술'에 대하여 나는 과거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고등학생들의 시화전에 '술'이 자유롭게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는 회의적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선생님이 술에 취한채 복도에서 쓰레빠로 여학생의 얼굴이며 아무데나 갈겨서 얼굴에 쓰레빠 자국이 벌겆게 부풀어 올라도, 원래 그래도 되는줄 알았었다.   영어 선생님이 영어 70점 이하 학생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손으로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내 손이 아프게 너희를 때린다. 이것은 사랑의 싸다구다'라 말씀하시면 그게 그런것인줄 알았었다.  선생님이 책상에 앉아서 자습시켜놓고 담배를 피워도 그래도 되는 것인줄 알았다.  선생님이 여름 체육복 (반바지 체육복)을 입고 앉아있는 내 허벅지를 만지거나 꼬집어도 으례 그래도 되는 것인줄 알았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안되는 일들이다. 그때는 그것이 잘 못 된 일인줄 몰랐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척 잘못된 일임을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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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 (1946, 상아탑)도 유려한 시이긴 하지만 과연 그것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었어야 했는가?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아무튼 우리들은 '술'에 대하여 꽤나 관대하거나 술의 위험성에 대하여 '둔감'하거나 했던것 같다. 나는 이 시를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것을 외워야 했던 세대이다. 현재 (2023) 기준으로 우리는 '술'에 대해서 좀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22. 20:21

 

오늘은 일찍 퇴근하는 것을 포기하고, 반드시 해 치워야 하는 일에 몰두하기로 결심하고 [KBS 세상의 모든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조직에서 나만이 할 수있는, 내가 안하면 안 굴러가는 시스템이 있는데, 오늘 그것을 완성해놓고 퇴근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제때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까.

 

무슨 '미생' 드라마에 나오는 상사 말단 직원처럼 책상앞에 앉아서 머리를 쓰고 있다. 내 싸인으로 인턴을 열명이상  채용을 하는 판인데 나는 늘 내가 말단직원 신세다. 내가 일찌기 Servant Leadership 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뭐 한국어로 의역하자면 '엄마 리더십' 혹은 '며느리 리더십'이라고나 할까. 그냥 내가 다 책임지는 판이다. (내 리더십에 문제가 있어...)

 

그렇게 일에 파묻혀 있는데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을 한 청년 한명이 들어온다. 내 학생이다. 아니 몇년전에 내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대학 신입생때 내 수업을 들었고, (몇년전에 블로그 어딘가에도 썼던 것 같은데) 그는 심심하면 내 연구실 문에 머리를 디밀고 인사를 하거나 그냥 일없이 들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넉살좋게 하다 가곤 했다. 뭐 무슨 학교 써클을 만든다길래 내가 지도교수 노릇도 일년넘게 해준것 같다. 몇년간의 코로나 시절은 거의 모든 인간적 유대를 망가뜨린 것 같다. 3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학생들 이름을 잊었고, 학생들 얼굴을 몰랐다.  오히려 코로나 이전에 가르쳤던 학생들 이름이나 얼굴은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있고, 코로나 시절의 학생들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줌'으로 만난 얼굴들은 휘발성이 강하다. 학기가 끝나자 마자 휘발되듯 기억에서 사라지고, 이름도 사라진다. 

 

어느날 이 친구가 내 연구실에 머리를 디밀었을때 - 나는 놀랍게도 이 친구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아! 너! 너! 아직 살아있었어? 졸업 안했어?"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군대'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복학생'이 되어 많이 초췌해진 표정으로 내 앞에 다시 섰다. 고민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그렇지 대학 신입생 시절에야 만사가 신이 났었지. 인생 즐거웠지.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고 보니 이제 슬슬 졸업이후의 생이 걱정이 되고 - 한마디로 철이 드셨군.  그의 고민 많은 표정이 오히려 듬직해보였다. 자네가 이제 인생에 대해서 들여다보기 시작하셨군. 

 

겨울방학 이전에 심각하게 상담을 좀 하고 싶다고 찾아 왔길래 두시간 넘게 그와 차를 내려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물론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었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얘기 할때는 그 얘기에 집중해서 정말 온힘을 다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그와 헤어져 돌아서면 아무 기억도 안한다. 그와 만났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에 없다. 나는 그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별로 기억나는게 없다. 이것이 나의 사람 만나는 패턴이다. 나는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그 사람과 나눈 대화 내용도 기억하지 못한다. 글 읽은것은 기억을 잘 하지만 - 이야기 나눈 것에 대해서는 뭐랄까 휘발성이 강하다고나 할까. 늙어간다는 증거다. 기억이 약해지는 것 같다. 옛날일이 더 선명하다니깐.) 그런데 그가 오늘 저녁에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을 다시 들이 밀었다. 정말로 그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환하게 여겨졌다.

 

"어! 어! 너 *** 아무개지?" 하고 내가 자신없게 물으니 그렇단다. 다행이다 그의 이름을 제대로 맞췄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개강을 했고, 친구들과 저녁먹으러 나가다가 내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어서 그냥 들러봤다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내가 노예처럼 일하는 중인데... 겨울 방학동안 자기가 뭘 했는지 '보고'를 드리러 왔다고 한다. "왜? 뭐 했는데?"  지난번에 나와 상담할때, 내가 그에게 '방학 끝나고 나한테 와서 뭐 했는지 보고해'라고 했단다. 그래서 보고하러 왔단다.  방학동안에 이것저것 해서 무슨 자격증도 땄고, 또 다른 - 미국가서 써먹을 자격증 시험을 지금 공부하는 중인데 곧 딸거란다. 장하네!  그런데 그걸 내가 따라고 코치를 했단다. 정말? 내가?  뭐 아버지도 기뻐하시고, 자기 자신도 뭔가 희망이 보인다고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들렀단다.  지금은 내가 너무 바쁘고 피곤하니까, 다음주에 오라고 했다. 다음주면 내가 좀 여유가 생길테니까 그 때 차도 마시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자고. 

 

친구들과 저녁먹으러 나가는 길이었고, 친구들이 복도 끝에서 기다리니 자기도 오늘은 그만 갈건데, 다음주에 꼭 다시 오겠단다.  그는 달처럼 환한 표정이었다. 더이상 초췌하거나 의기소침 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 꿈과 기대가 가득차 올라서 그의 얼굴을 환하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한 말을 기억도 못하는데, 저 친구는 내가 했던 말에 의지하여 스스로 뭔가 탐색하고, 행동하고, 성취하고, 그리고 내게 돌아왔구나, 나의 확인을 받고 또 방향을 잡기 위해서.  나는 언덕위의 '나무' 같은 거구나. 나무는 아무 말도 안해도 - 누군가는 그 나무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가끔 그 언덕위의 나무를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멀어지는 나무를 이따금 돌아보며. 

 

그래서 그 달처럼 환한 얼굴의 청년 덕분에 - 나도 내 존재의 어떤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앞으로도 주욱 이자리를 지키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고향 언덕의 나무 한그루'로 당분간 여기 더 있어도 되겠구나.  아무런 영예나 보상이 따르지 않아도 - 저 달처럼 환한 얼굴이 나의 영예이고 보상일지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21. 12:42

옛날에, 나 때문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신 적이 있다.  집안의 황제, 그의 말 한마디면 그것이 '헌법'보다 상위 개념의 법이었던 시절이었는데 - 그런 아버지가 나 때문에 가출을 감행하셨다.

 

사연은 이렇다. 사람들 말로는 '사주'가 안맞으면 그럴수 있다고 하는데 -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컸다. 4남매중에서 나는 어딘가 늘 개밥의 도토리였다. 어머니는 원만한 분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 이상하게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가능한 그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으며, 동시에 그의 아주 착한 딸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분명 아버지의 자식이었는데 - 그렇지만 나는 어딘가 남의자식처럼 여겨졌다.  나의 거의 모든 행동은 아버지의 '지적질'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나는 아버지의 눈앞에 안나타나는게 상책이었고, 그래도 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어서 새벽에 골목에 뛰어가서 '아버지 전용 우유' 한병 사오기, 아버지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 놓기 등을 스스로 찾아서 했지만 -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이나 칭찬 한마디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냥 나는 아버지의 지적질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관심밖의 인생이었다.  주위 친척들은 이런 현상에 대하여 '사주가 안맞어서 그래' 정도로 해석하려 했다.

 

어쨌거나 나는 스스로 '아버지에게 더부살이 하는 인생. 어서 이곳을 벗어나서 내 인생 내가 개척해야 하는 인생' 정도로 나를 규정하고 가능한 그의 눈에 안띄며 나의 독립을 나날만을 기다리며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돈 벌 궁리를 하며 살았다. (대학때 과외 아르바이트로 월급쟁이들보다 돈을 더 잘 벌었다). 

 

늘 이런식이었는데, 대학교 3학년때  -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버지가 갑자기 내게 폭발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었겠지.  내가 아버지 눈길을 슬슬 피하며 살아온것처럼 아버지도 나에 대하여 스스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겠지.  서로 설명을 안하고 못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갔겠지. 어쨌거나 기억도 안나는 별것도 아닌 일로 폭발을 하신 아버지는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빗자루로 패셨다.  (아버지가 뭐 폭력적인 분은 아니셨다. 자식들 중 아무도 때리신 적이 없다. ) 그런데 그날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드셨던 듯, 방을 쓰는 빗자루를 가져다가 '눈부신 여대생이었을 나'를 개패듯 패셨다. 나를 개패듯 패다니.  어디에 나가서도 남한테 험담 한번 들을일 없이 차돌같이 살아온 나를 개패듯 패다니.  나는 너무나 놀라서 정말 오줌까지 줄줄 쌌다. 정말 나도 놀랐다. 그 참담함 이라니...

 

그리고는 아버지가 그 길로 집을 나가셨다. (하하하). 

 

엄마가 뭐라고 하셨더라 - 그 착한 아버지가 그렇게 패면 '아버지 잘못했어요' 해야 하는데 내가 입다물고 맞고만 있었으니 내가 '나쁜 년'이었다는거다.  그렇게 패는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지금이라면 내가 논리적으로 따져보겠지만 - 어쨌거나 그 상황속에서 나는 '그 착한 아버지를 그렇게까지 만든 아주 나쁜년'의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이다.  어떤 착하다고 알려진 이웃 남자가 나를 죽이면 나는 '그 착한 이웃남자로 하여금 살인을 하게 만든 나쁜년'이 되는걸까? 하하하.  쳐 맞은 나는 집을 안 나가고 때린 그는 집을 나가서 - 결국 나만 더 나쁜년이 되고만 이상한 상황이었는데...

 

아버지는 그 길로 남해인가 거제도인가 어디 멀리 '내고향 남쪽바다' 같이 먼 파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 친구가 교장선생님을 한다는 어느 바닷가 학교의 교장사택으로 가셔서 며칠을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파란 바다가 내다 보이는 창가, 연구실의 내 책상에 앉아서 심심파적으로 옛날 일을 생각하며 킥킥대고 있다. 인생은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데, 나는 가능한 코메디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웃자는거다. 뭐든 웃고 넘어가는거다.)  

 

나는 나를 때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가 돌아올때까지 '아버지를 궁지에 몰은 나쁜년'의 죄목을 이마에 붙이고 죄인처럼 고개숙이고 숨도 못쉬고 지냈다.  아버지의 귀가는 내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

 

확실히 나는 이제 '낡은 시대의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요즘 20대 30대 사람들의 행태를 잘 이해를 못하겠다.  내가 그래도 20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 내가 너무 낡아서, 내가 과연 그들을 가르칠 자격이 되는건지 가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나는 요즘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교도소에 있다. 아버지도 어쩌면 나때문에 교도소로 갈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이마에 나의 슬픔을 써 붙이고 엎드려 있을것 같다. 뭔가 근신을 할 것 같다. 물론 나는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고 세상이 이상해서 그런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가 우리 집안을 망신주기 위하여 일을 벌인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걸까?  누군가가 혹은 어떤 거대조직이 의도를 가지고 우리가족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각도로, 여러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언젠가 각분야의 교수들과 식사자리에서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진적이 있었다 : "그 왜, 정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쟎아요. 예컨대 미국의 저명한 목사가 성매매를 상습적으로 하다가 걸렸다거나, 혹은 모범 예술가나 시인으로 존경받던 인사가 증거가 확실한 '미투'의 본보기가 되어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거나 - 이렇게 상상만해도 살 방도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나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이니까 계속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이런 분들은 어떻게 문제 상황을 견디고, 통과하고, 재기 할수 있는걸까요? 저는 그게 정말 궁금해요." 

 

그런데 나의 이 심각한 질문에 대하여 나와는 다른 분야에서 교수를 하는 분들의 대답이 - 나로서는 뜻 밖이었다.  그분들에게는 내 질문이 그다지 어렵거나 심각하지 않은것 같았다. "아이고, 그런 사람들 많아요..."로 시작해서 - 대체로 나오는 답은 '아무개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아무개는 뭐하고..' 뭐 한때 망신살을 겪고 지금은 더욱 잘 나간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도 깨닫게 되었다 - 설령 어떤 부끄럽거나 억울하거나, 혹은 억울하고도 부끄러운 복잡한 상황이 닥쳐도, 그 시간을 슬기롭게 견디면 살아갈 방도는 다 있는거구나! 

 

그분들은 너무나 슬기롭고 지혜롭고 전문가적인 분들이라서 내게는 '너라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갈래?'하고 묻지 않았다. 역시 나는 좀 아둔해서 슬기로운 분들께 별로 도움이 안된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숨거나 사라지거나 할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신분세탁' (부끄러운 일로 폭망한 후에 다시 재기하는) 방법이라면 -- 만약에 사회적으로 부활하고 영예로운 길로 다시 들어서기를 갈망한다면 -- 최소한의 선행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아둔한 머리로 생각하는 방법이라면 - 의사라면 의사가 귀한 곳에 자원해 가서 2-3년 의료 봉사에만 몰두한다. 본심이 아니라해도 그런 행동을 보여준다.  행동하다보면 본심이 되기도 할것이다. 행동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마음을 마음이 행동을 낳으므로.  의사도 아무것도 아니어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아주 많을 것이다. 그런데 가서 2-3년 그냥 고개 숙이고 봉사활동만 하는거다. 그러다보면 세상의 눈길이 순해지고 - 너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하며 그를 다시 품으로 받게 될 것이다.  뭐 이런 '몸'으로 자신의 과오를 어떻게든 씻으려는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은 아주 아둔한 방법일것이다. 요즘은 이보다 훨씬 화려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어려움에 대처할 것이다. 나는 아주 낡아빠진 사람인것이다.

 

내가 '예수쟁이'가 된 것에 대하여 '안도'할때가 종종 있다.  내가 크리스챤이 된것에 대하여 안도하는 순간은 - 예수님 덕분에 근원적으로 구원받았다는 그런 면 보다는, 최소한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시시각각 자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예수쟁이라면 - 우덜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우덜이 '죄많은 인생'이란 것에 동의한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떳떳할 수 없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다른 사람을 멋대로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 내가 죄인인 마당에, 뭘 어쩐다는 말인가.  불의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고 행동 할 때에도 우덜은 기억해야 한다 '나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악과 싸우는 순간에도 내가 죄인임을 잊지 않고, 몸을 낮추어 더욱 열심히 악과 싸워야 하는 것인데.  어쨌거나 나는 한평생 아둔하게 살았으며 이제 완전 한물 간 아둔패기이다. 도대체 세상 돌아가는 것이 기묘해 보인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20. 22:22

2월 6일에 로제타스톤 중국어 기초를 시작해서 6주분량의 생기초과정을 2주에 마쳤다. 대략 한 과정을 마치면 나머지 단계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가늠이나 예측이 가능하다. 대략 로제타스톤의 중국어 프로그램 1/3을 마쳤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평가를 하자면 - 로제타스톤 중국어 프로그램 18주 과정을 모두 마쳐도 뭐 중국어를 유창하게 한다거나 그런것은 추호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로제타스톤의 다른 언어 프로그램도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나는 뭘 배웠는가? 사실 나는 니하오, 니하오마의 차이, 짜이지엔, 4성조를 어떻게 차이나게 발음할것인가 정도를 희미하게 파악하는 수준이다.  듣고 - 문제에 대한 답은 눈치껏 잘 때려잡지만 말을 수월하게 하지는 못한다. 당연한거지.  눈치는 꽤 발달해서 답 맞추는 것은 귀신같이 잘 골라낸다.  듣고 눈치로 때려잡기는 귀신이고, 읽기는 원래 한문을 잘 하는 편이라 겁날게 없고, 입에서 말이 잘 안나오는게 문제인데, 원래 입 떼기가 어려운거다. 

 

그러면 나는 만족하나? 이만큼도 만족한다. 그래도 로제타스톤 중국어 전코스의 1/3을 마친 결과 '어렴풋이 어휘 공부를 좀더 해야하고, 기초회화는 그냥 외워버려야겠다는 것과, 중국드라마 채널로 중국 드라마를 볼때 제법 내 귀에 잡히는 어휘들이 많아져서 나 스스로 흥분을 하고 있으며 그러니까 대충 중국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될지 가늠이 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나머지 2/3도 공부를 마친 후에 개인교습을 받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최소한 가갸거겨 정도는 공부를 하고나서 개인지도를 받건 학원 수업을 듣건 해야 하는게 아닌가. 

 

기초 한자실력이 내가 좀 되니까 - 중국어 어휘 배우기는 수월하다. 예컨대 춘-하-추-동 과 같은 사계절도 발음이 무척 비슷하다. 모친 부친도 무친 푸친 뭐 이런식이고.  뭐 이런 대강의 틀에 대해서 눈을 떴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머지도 마저하고, 또 방법을 찾아봐야지.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15. 13:49

 

 

일전에 소래 어시장에 들렀다. '열기구이백반' 생각이 나서, '여수오동도'라는 생선구이집에 가서 열기구이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어릴때 시장에서 그 빨간 물고기를 '겐따로'라는 일본말로 불렀던 것 같은데 동일한 어종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행복한 식사를 하고, 생선이나 몇가지 사가자고 생선전을 돌다가 '자반고등어' 한 손하고 뭐 이럭저럭 고르는데, 내 눈에 뻗뻗하게 얼어 자빠져있는 동태더미가 눈에 띄었다. 앗! 잊고 있었는데, 저것이 동태이지!   어릴때부터 엄마가 시장에 심부름을 보낼때 대체적으로 꼭 사오라고 주문하던 것이 그 '동태'가 아니었던가.  콩나물, 두부, 동태는 늘 시장가서 사오는 것들이었다. 

 

그 동태를 정말 오랫만에 어시장에서 발견한 것인데 - 갑자기 엄마 심부름으로 동네 골목 시장으로 향하던 그 장면과, 시장 상인들 모습, 뭐 그 속에 존재감없이 있는 내 모습까지 한꺼번에 기억이 몰려오면서 - 마치 초등학교 골목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달콤하고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약간 몽환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저 동태는 얼마에요?' 물었더니 '만원'이란다.  동태가 귀하다더니 정말 비싸구나 만원이나 하는구나 하면서도 나는 귀하신 동태를 - 그 어린시절의 추억의 값으로 사기로 했다.  그래서 달라고 했더니 어물전 사장님이 동태 한무더기 (세마리)를 모두 가져다가 턱턱 잘라 손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세마리 모두 합쳐서 만원이라는 거였다. "이 세마리를 다 주신다고요? 이거 전부에 만원이라고요?" 내가 놀라서 물으니 그렇단다. 

 

결국 동태 한무더기를 사다가 우리 두 식구가 동태탕 한끼 끓여먹을 양으로 봉지봉지 담아서 냉동실에 담아놓고, 쏠쏠이 꺼내먹는 중이다. 동태가 귀해졌다지만, 그래도 동태가 다른 것에 비해서 싸네 - 역시 좋은 친구네 하면서.

 

동태한테 "야, 너 오랜만이다 반갑다!"라고 말을 거는 나는 정말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꼭 서러운 것만은 아니다. 추억이 아주 많아지고, 옛추억이 금빛으로 빛나니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13. 12:12

 

지난해 12월 8일 1차 헌혈에 이어 2개월이 지나고 - 미국에 다녀온지도 1개월이 지났으므로 헌혈 가능한 날짜가 되었기 때문에 [레드커넥트] 앱으로 예약을 하고 오전에 송도 메가박스 윗층에 있는 헌혈센터에 가서 헌혈을 하고 왔다.

 

 

헌혈을 하러 가면 일단 개별적으로 문진을 하는데 피를 뽑아서 간단히 뭔가 점검을 하고 (나는 뭐 무슨 수치가 높아서 건강하고 좋단다) 혈압을 재고, 혈액형을 묻고 뭐 대충 그런것을 한다.  지난번에 '전혈 (그냥 피)'을 기증했는데 - 이번에는 '혈장혈소판 수혈'을 선택했었다.  예약할때는 '혈장혈소판 수혈'로 선택을 하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상담하시는 분이 "일단 아이를 낳으신 여성분은 혈소판 기증은 안되고요 -- 혈장 기증을 하시는것인데요 -- 시간이 많이 걸리고요, 힘드실것이고요 --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희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전혈 (그냥 피)'이에요. 그게 많이 부족해요."  뭐 전혈 기증을 해주면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러죠 뭐. 전혈로 갑시다' 했다. 

 

 

 

사실 내가 '혈장혈소판 기증'을 선택했던 것은 - 대체로 단골 헌혈기증자 님들 리뷰나 기타 정보를 보면 '혈장혈소판 헌혈'이 '전혈' 헌혈에 비해서 비교적 몸에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피에서 필요한 요소만 걸러내고 나머지는 다시 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스템을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고 (그것도 공부이니까) - 그리고 내가 지난번에 '노구'를 이끌고 생피를 뽑고 나서 며칠후에 끙끙 앓았었다. 몸살도 겹치고 해서 십만원짜리 수액을 맞아가면서 일을 했었다.  그래서 그 때 내가 너무 무리했나 싶어서 부분수혈(혈장혈소판)쪽으로 가려고 했던 것인데 - 생피가 모자란다니 내 피를 주기로 했다.  나는 또 기운없고 뭐 몸살기 있으면 가서 영양수액 꽂고, 스테이크 큰거 하나 썰어먹고 말지 뭐. 하하.

 

 

전혈 320밀리 정도는 한 15분이면 뽑는것 같았다. 금세 끝난다. 피 뽑는동안 '헌혈자들에게 주는 선물' 목록을 보여주며 뭘 갖고 싶은지 선택하라고 한다. 제빵점 선물권이나 문화상품권이나 대체로 '만원' 상당의 기념품들이 주어지는 것 같고, 또 다른 선택으로는 그냥 '지역 고교생 장학금'을 선택하면 일정금액이 장학금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선택했다. 기왕에 내 피를 누군가에게 줄때는 뭐든지 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는게 더 기분이 좋으니까.

 

헌혈을 하면 좋은 점:

1. 피가 급히 필요한 어떤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나는 내 가족이 수혈받고 살아나는 것을 목도 했기 때문에, 이 의미가 아주 생생하다)

 

2. 내가 그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거의 '마약'수준으로 좋아진다. 매우 행복하다. ㅎㅎㅎ (사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하는게 아닐까 추측한다)

 

3. 평소에 내가 먹는 음식이나 내 건강상태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편이다. 다음에 건강하고 신선한 피를 주고 싶은 욕심에.  결국 내 건강을 더욱 잘 돌보게 된다. 

 

 

헌혈을 하고 싶어도 지병이나 유전적 요인이나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아주 많이 있다. (나도 내가 헌혈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포자기하고 오랫동안 지내왔었으므로 그분들의 애환을 잘 안다). 헌혈을 할 수 있는 몸이라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일이다. 헌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나 감사한지.

 

 

이제 내 몸상태를 예의주시하다가 여차하면 갈빗집이나 스테이크집으로 곧바로 가는거다. 그래도 기운이 없으면 내과에 가서 칠만원짜리 영양수액이나 하나 맞는거지. 그래도 헌혈은 즐겁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10. 10:32

로제타스톤에서 '전과목 평생 수강권'을 판매하길래 - 국내에서 가장 싸게 살수 있는 곳을 검색하여 대략 18만원정도에 수강권을 샀다. (다나와 이런데 검색하면 되는것 같다).  

 

 

등급은 기초-중급-고급으로 편성되어 있고, 각단계별로 6주 (1주 5일) 분량이니까, 초-중-고 과정 수업자료를 모두 거치는데 18주가 걸린다고 보면 되는데 - 보시다시피 5일만에 한 3주 분량을 하면, 뭐 종일 앉아서 이것만 파고 있으면 뭐 금세 마칠수도 있겠다. (여기서 마친다는 것은 자료를 그냥 다 거친다는 것이지 정말로 중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뜻은 아닐것이다.)

 

 

(언어교육 전문가로서 살펴볼때) 이 교재의 내용 구성은 다분히 '어린 아이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정'과 비슷하게 설계해 놓았다. 일체 설명도 무엇도 없이, 주어지는 수업자료를 따라가다보면 '감'이 잡히고 '추측'을 통해서 '문법'을 파악해 가게 된다.  우리가 '한문교육'을 받은 세대라서 '문자 읽고 쓰기'는 거저 먹는 수준이고, 대략 문자를 알기 때문에 '어휘'도 '가늠'이 가능하다. 뭐 설명이 없다보니, 추측하고 그러느라 에너지를 써야 해서 가끔은 '교과서 봐 가면서 설명 들어가면서 휙휙 진도 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내 계획은 - 일단 이 프로그램 안에 설계된 학습 진도를 끝까지 다 해 보고 - 그러면 뭔가 중국어에 대한 감이 잡히겠지 - 그 후에 다른 학습지나 학습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지금 현재로는 '심심풀이'로 '게임하듯' 하는 수준인데 그냥 게임한다고 생각하면 재미있다. 진도 빼는 재미도 있고.  (중국어 교재를 다 마친후에는 일본어, 스페인어도 동일한 방법으로 게임하듯 대략 맛보기를 해 볼까 생각하게 된다.)

 

 

'열쇠'를 중국어로는 '요시'라고 한다.  '요시'라는 중국어가 우리말에 '열쇠'로 자리잡은게 아닐까? (우리말 열쇠의 어원이 중국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봤다.  어쨌거나 - 스트레스 없이 - 의무감 없이 - 게임하듯 즐기는 중국어 공부가 재미있다. (얼마나 학습 효과가 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심심파적이니까).

 

 

 

그래도 '월량다이삐야오 워더신' (달이 내 마음을 비추네) 이 노래도 막힘없이 쓰고 노래부를수 있게 달달 외웠기 때문에 - 그 노래에 나왔던 어휘나 표현이 나오면 무척 반갑다. 뭐 외국어는 결국 내가 그 언어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 - 그게 문제다. (나의 학습 스타일은 결국 내가 그 외국어와 얼마나 시간을 많이 보냈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 '월량' 노래에서 '니치칸이칸 니치샹이샹' (니가 봐 봐, 내가 생각을 좀 해 봐봐) 뭐 이런 가사가 있는데, 워싱턴에서 중국인에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 내 눈을 가리키고 그의 눈의 가리키며 '니치칸 이칸' 이라고 했더니 막 웃더라. 그리고나서 그 내 말이 그 중국인들 사이에서 아주 재미있는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하하하. (중국어도 못하는 내가 그 말을 너무 유창하게 했던거다.하하하. 음, 나는 노래나 시를 외우는걸 좋아해서 - 외국어도 노래로 배우는게 재미있다.) 

 

 

* https://www.lingohut.com/ko/l61/%EC%A4%91%EA%B5%AD%EC%96%B4-%EB%B0%B0%EC%9A%B0%EA%B8%B0

 

무료 중국어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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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공부를 보강하기위해서 검색하다가 이곳의 자료로 보충수업을 하기로 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2. 12:01

 

지난해에 내가 기획하고 이끌었던 '성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성공적이었던 관계로 올해에는 작년보다 프로그램 예산이 두배로 늘어날 것 같다 (방금 프로포절 작성을 마쳤다). 

프로포절 쓰기는 간단치 않다. 내가 2주가량 명절도, 주말도 없이 이 일에만 매달려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 제안서를 마치는 날, 우리 팀원이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에 우리대학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파견되어서 수업 보조 역할을 했던 분들이 여러분 계시는데, 그 분들중에서 특히 열심히 활동 하셨던 분이 한 명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내 입장에서 한두번 스친 사람은 전혀 기억을 못하는 편인데 -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지냈으므로 사람을 구별하고 기억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  그 한 사람 만큼은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늘 부지런히 움직이고, 내가 나타날때마다 '일사후퇴때 사고로 헤어졌던 형제를 다시 상봉한 듯 반갑게 다가와 환대를 하던 분이었으며, 행사때 초청하지 않아도 가족까지 대동하고 나타나서 열렬히 행사를 지원하던 분이었다. 이 분들은 우리 학교 예산이 아니라, 본부에서 별도 예산으로 파견하여 관리하던 수업 보조 인력에 해당되는 분들이었다. 

 

올해 사업제안서를 꾸리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예산 절감 차원에서 본부에서 파견하는 수업 보조 인력 프로그램이 취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수업보조로 일하시던 다수의 시민들이 극히 제한적이나마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분들은 수고비는 얼마 받지 않았지만, 시민의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자신들도 어떤 기여를 한다는 사명감과 보람감으로 이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있는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제안서 작성하는 마지막 날, 그 열심히 활동하던 분이 우리 팀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우리 팀원과 수업관련 소소한 통화를 하셨으리라 그래서 그쪽으로 연락을 취하셨으리라. (나는 전화를 아예 꺼놓고 사는 사람이라, 학교 교직원 외에는 아무도 나와 통화 할 수 없다.) 일상적인 안부와 덕담이 이어지고, 그분이 '일거리를 잃었다'는 소식을 전하시며 - 대학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참 좋았는데 그 일을 잃었다. 무급이라도 좋으니 자원봉사로라도 계속해서 일하고 싶은데 그런 일자리가 없을까? 이런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고 한다.  '저희가 그분을 파트타이머로, 시간제 알바로 채용해도 될까요?' 팀원은 내게 물었고, 나는 답했다 'Why not? Go ahead!' (물론 되죠. 합시다!)   우리도 예산을 짜는 가운데 보조 인력이 여기저기 필요하고, 대체로 학생들에게 이런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학생들이 일하는 경험을 쌓을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일부를 그 시민에게 제공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난해에 그분이 수업에서 하던 일들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 보았다. 

 

 

그 분이 우리의 계획을 듣고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우리도 기쁘다. 

 

내가 이분의 사례에서 배운것이 뭔가하면 :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기쁘게 열심히 해도, 그 일자리가 사라지는 불운이 닥칠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해 해도 상황이 참 불친절하게 돌아갈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불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연락을 취하거나 문을 두드리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기회가 만들어지거나, 예기치 않았던 응원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분은 평소에 열심히 활동하셨기 때문에 사람 분별 못하고 기억력도 안좋은 나도 기억할 정도였고 - 그런 열성이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2. 2. 11:30

     입춘立春이면  

 

 

     박노해

 

 

     입춘이면 몸을 앓는다

     잔설 깔린 산처럼 모로 누워

     은미한 떨림을 듣는다

 

     먼 데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눈발이 눈물로 녹아내리고

     언 겨울 품에서 무언가 나오고

 

     산 것과 죽은 것이

     창호지처럼 얇구나

 

     떨어져 자리를 지키는 씨앗처럼

     아픈 몸 웅크려 햇빛 쪼이며

     오늘은 가만히 숨만 쉬어도 좋았다

 

     언 발로 걸어오는 봄 기척

     은미한 발자국 소리 들으며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입춘立春이면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詩 49p

 

 

 

별로 특징도 없고 구태의연하기까지하다고 평생 생각했던 내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지 박노해 시인이 내게 알려주었다. 내 이름이 너무나도 신비로운 의미로 이 시에 반복되는 것이다!  내 이름 정말 근사하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