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6. 24. 08:02

엄마의 워싱턴에서의 첫 일정은, 일단 워싱턴이 얼마만큼 큰 도시인지, 겉에서 살펴보기.
한강 유람선을 타고 서울의 크기를 가늠하듯, 워싱턴 포토맥강 유람선을 타고 워싱턴을 바깥에서 조망하는 것입니다.

오전에 밥을 먹고, 30분쯤 차를 달려 Old Town Alexandria 에 도착. 이곳에는 Torpedo Art Center 라는 명소가 있는데, 포토맥 강변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아트 스튜디오 건물입니다. 1층부터 3층까지 빼곡한 스튜디오에 입주한 아티스트들이 스튜디오를 개방하고 현장에서 작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엄마가 거동이 불편하신 관계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유적지를 살피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최소화 하면서 유쾌하게 구경할 곳을 집중적으로 다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엄마가 구경하신 곳은
 
1. 알렉산드리아 토피도 아트 센터 : 11시 반부터 오후 세시 반까지. 아트 센터 구경하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점심.

2. 오후 세시반부터 다섯시 반까지 알렉산드리아 -- 조지타운을 왕복하는 유람선: 여기서 조지타운까지 배를 타고 가면서 워싱턴 디씨 시내를 선상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엄마는 이제 워싱턴 도시 이름이 미국의 초대대통령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배웠으며, 미국에서는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의를 표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3. 유람선에서 내려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임세팔군이 다니던 St. John's School 에 들러서 손녀딸이 다니던 학교를 구경하였습니다. (전에 박선생이 살던 2층집도 구경하였습니다.)


대략 이와 같습니다.

아래는 사진들입니다.

이곳이 포토맥강변에 있는 아트 센터 건물 내부입니다. 얼핏 평화시장 옷가게들처럼 보이는 내부 구조. 미로처럼 이어진 통로에 화가들의 개인 스튜디오들이 있습니다.



엄마 목에 새로운 목도리가 둘러져 있습니다. 1층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실크 스카프를 엄마가 직접 골라서 사신것입니다. 언니가 사드린 옷과 한세트를 만들겠다는 야심과 집념의 결과 입니다. 이곳은 피곤하면 쉴수있는 의자들이 많이 있어 노인을 모시고 오기에 참 좋습니다.




창밖에 포토맥강을 내려다보는 화가의 스튜디오입니다.  이 스튜디오의 화가와 인사도 나누고, 엄마도 이제 미국 사람과 인사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만났을땐 '헬로' 하면 되고, 헤어질땐 '굿바이' 하면 됩니다. 누군가 웃으면서 친절을 베풀면 '땡큐' 하면 됩니다.  엄마는 이 세가지를 익혀서 사람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아트센터 바로 앞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습니다.
재승엄마가 사드린 파란 모자를 쓰고 있는대로 폼을 잡고 서 계십니다.



엄마의 센스가 드러나는 대목. 엄마에게는 언니가 사드린 명품 가방도 많지만, 워싱턴에 오실땐, 내가 사서 부친 알록달록 나이롱 가방을 갖고 오셨습니다. 사보낸 사람을 기쁘게 해주겠다는 '저의'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파란 모자는 막내 며느리, 드레스는 큰딸, 가방은 작은딸. 특등석 비행기는 큰아들,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는 유여사로 보입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찍으며 놉니다. 우리 셋이 모두 들어있는 사진입니다. 찬홍이와 나도 들어있습니다.




날이 더우니까, 다시 아트 센터 현관에 들어가서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쐬며 놉니다.



낙서판에서 낙서도 하고 놉니다. 파란 모자를 쓴 엄마는 얼핏 소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허리가 구부정한것이 난관이로군요. 그래도 스타벅스 아이스커피를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미국 오더니 세련되어 지셨습니다.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드디어 배를 타고 강바람을 쐬며 조지타운쪽으로 향합니다.



날이 더우니 시원한 1층 실내로 들어옵니다. 멀리 케네디센터와 워터게이트 건물이 보입니다.



유람을 마치고 조지워싱턴 하이웨이를 달려 집으로 오는길, 하이웨이 중간에 전망대에 멈췄습니다. 저기 맞은편 내려다보이는 강 기슭이 내가 자주 산책하러 나가는 Fletcher's Cove 입니다. 엄마에게 '저기도 데려다 줄게'라고 설명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전에 살던 2층집 앞을 거쳐서, 임세팔이 다니던 학교에 차를 세웁니다. 엄마는 외손녀딸이 다니던 학교를 둘러보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서 구경도 합니다. 임세팔이가 이 사진을 본다면 아주 기뻐하겠지요.


성당 가운데 꽃이 가득한 정원입니다. 임세팔이가 매일 이곳에서 뛰놀았겠지요. 그자리에 외할머니도 서 봅니다.  엄마는 오늘 아주 많은 일을 했다고 의기양양하십니다.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서 목욕을 하시게 하고, 잠자리에 들게 하면, 오늘 나의 임무는 성공리에 완수되는 것입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즐겁게 워싱턴에서 시간을 보내시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오빠, 언니, 동생이 이렇게 우리 엄니를 사랑하고 보살펴서 여기까지 보내드리니 참 고맙고, 또 고맙고 그렇습니다. 이렇게 사진이나 찍어 올리면서 나는 폼만 열심히 잡는 날건달입니다만. 그래도 이런 자식도 하나 있으니 우리 엄니는 이래저래 신나는 인생입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23. 03:32






우리 유여사. 
환영의 꽃다발을 받고 활짝 미소.




오빠가 특등석 비행기표를 구해줘서, "비행기에서 드러누워서 자도 되고, 먹을것도 많이 주고, 아주 좋더라" 하고 어린애처럼 자랑을 하시다.

또래의 노마님이 옆자리에 앉으셔서 열시간 넘는 비행시간이 지루한줄 모르고 살아온 얘기를 하셨다고

찬홍이 아이포드에 실수로 찍힌 사진이, 오히려 예술이라 올려본다.




오늘 우리 엄니,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한가지 '사고'를 치셨다. 하하하. 박선생 알면 기절을 하겄네~

지홍이 소속 부대에서 훈련병 수료식한다고 안내장과 임시 출입증 이런것을 보내왔는데, 편지 겉봉은 지홍이가 직접 쓴 것이다.  그러니까 할무니 생각에, 지홍이 편지를 지홍이 아부지가 뜯어 봤으니깐, 미국 제 에미한테 편지 갖다 보여줘야지. 이러고는 할무니가 편지는 열어보지도 않고 편지 봉투째 갖고 오신거다. 하하하.

"엄마, 이것은 거시기 편지가 아니고, 부대에서 날아온 공문이여... 이걸 왜 갖고 오셨슈?"

"난, 지홍이가 애비한테 보낸거니깐, 남의 편지 보는게 실례라서 안봤지. 정미도 편지 갖고 가서 은미하고 열어보라고 그냥 안보고 주던데..."

"큰일났네 이거. 지홍이 면회도 못가게 생겨부렀소. 워쩌유?"

하하하. 내가 학교에 가서 팩스 이메일  처리하면 박선생 이메일에 카피가 도착할 것이다. 그거 프린트 해 가면 되겄지.


꽃매장에 '작약 (peony)'이 있길래 한단 (세송이) 샀다. 노란장미하고 섞어가지고 공항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꽃다발을 만들었다.  지금 꽃다발은 다시 해체되어 세개의 꽃병에 꽂혀있다. 엄마는 작약꽃을 담아 놓은 꽃병 아래, 침대에서 달게 낮잠을 주무신다. 작약 향이 좋다고 아주 좋아하시더니 금세 잠이 드신다.

조금 이른 저녁을 지어서 먹고, 저녁 산책을 가까운데로 나갔다가 밤에 다시 주무시게 해야지. 그래야 시차에 적응하시기 수월하실 것이다.

엄마가 아주아주 흡족해 하신다. 마음에 무엇 하나 걸리는 것이 없이 가볍고 좋다고 하신다. 뭔가 미진한 숙제가 없이 아주 좋은 상태로 오신 모양이다.  여기 계시는 동안 매일 웃게 해드리겠다.

(엄마가 얇은 자외선 차단 장갑과 자외선 차단 팔 토시 이런것을, 아주 가게를 차려도 좋을만큼 많이 갖고 오셨다. 언니는 자외선 차단 크림이며 화장품을 많이 사서 보냈다.  장갑이며 차단제등이 많이 생겨서 내가 정말 좋다. 내게는 아주아주 귀한 선물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발아현미로 지은 콩밥하고, 배추 우거지 된장찌개, 병어 조림, 쇠고기 구이, 장아찌, 생두부에 간장 양념, 김치. 대략 이렇게 하려고.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22. 17:3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15197

[살며 생각하며]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기사입력: 06.21.11 18:06
 “당신이 처음 내 이름을 묻던 날이 생각나네. 당신은 오래된 신작로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 있네. 자갈밭 속의 자갈처럼, 흙 속의 흙처럼, 먼지 속의 먼지처럼, 거미줄 속의 거미줄처럼.”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 소개가 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서 나도 이 책을 구해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의 문체가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신경숙씨의 문체는 우리 가슴에 그대로 스며든다. ‘먼지 속의 먼지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서울역에서 길을 잃고 사라진 엄마를 찾아 헤매는 큰 딸, 큰 아들, 영감님, 그리고 친구에 대한 사라진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어쩌면 망자가 저승으로 아주 가버리기 전의 넋두리와도 비슷하다.

내 주변에 이 책을 읽었다는 친구들이 여럿이라서 이 소설의 인기를 실감했는데, 대개는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파서 또 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신원 미상의 무연고 처리되는 시신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혹은 범죄의 희생자로, 여러 가지 경로로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들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 같은 현상을 시인 정호승은 그의 ‘세한도’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영등포역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고 하고 / 청량리역 어느 무료급식소에서 봤다고 하는 / 아버지를 찾아 한겨울 내내 /서울을 떠돌다가 /동부시립병원 행려병동으로 실려가 /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행려병자들을 보고 돌아와…”
 
그렇게 신원미상의 시신으로 남겨진 그분들에게도 한 때 눈부시게 빛나는 삶이 흘렀다. 그 눈부신 삶의 기억을 우리들이 읽어내지 못 할 뿐이다. 문학의 위대성은 이런 데 있다. 우리들이 잊어버리거나 읽어내지 못하는 것을 소박한 언어로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에게 가갈 수 있는 근거는 ‘엄마’라는 것이 갖고 있는 인류 보편의 정서에 닿았다는 것이리라. 그뿐이라면 그야말로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김치 냄새’ 풍기는 삼류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틀에 박힌 ‘엄마’ 모습 외에 고유의 독자적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모습이 들어있다. 엄마에게는 평생 손 한번 잡아 보지 않은, 가족 중 아무도 모르는 이성친구도 있었다.

의사가 이름을 물을 때 자기 이름도 잊어버리고 ‘박 소녀’를 외치는 친구, 그런 친구가 평생 그의 곁에 있었다. 엄마의 비밀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있다. 그 비밀들이 엄마를 독자적인 한 ‘사람’으로 세워 놓는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나 역시 할머니, 엄마, 엄마만큼 나이를 먹은 고모님들을 떠올렸다. 각기 다른 얼굴들이지만 비슷비슷한 삶이다.
 
내 엄마는 회갑쯤에 미망인이 되었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생했다. 그래서 거동이 서투르고 언어가 어눌해지셨다. 칠순에는 개인 아마추어 회화 전시회를 열면서 평생 가슴에 담고 있었던 비밀을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엄마가 ‘소학교’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라는 것. 엄마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학력’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칠순 할머니가 개인전을 연다고 언론사에서 집에 인터뷰하러 찾아왔을 때, 엄마는 기자들 앞에서 털어 놓으셨다, “내가 국민학교밖에 안 나와서, 평생 졸이고 살았는데, 이렇게 털어 놓으니까 후련합니다.”
 
그 후에 엄마는 몇 년 사이에 두 가지 암 수술을 받고 극복해 내셨다. 그 사이에 엄마의 허리가 휘어지고, 달팽이처럼 한없이 느리게 걷는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아마추어 화가, 우리 엄마의 꿈 “우리 딸네 동네에 커다란 미술관이 많은데, 거기 유명한 사람들 그림이 다 붙어있대. 그걸 보고 와야지!” 오늘은 엄마가 워싱턴에 오는 날.

나는 아침을 먹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나가겠다. 공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엄마의 기억 속에 눈부신 워싱턴의 나날들을 스며들게 해야지.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June 22, 2011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19. 23:45




날이 잔뜩 흐려서 배낭에 우산 하나를 찔러 넣고 이른 아침에 포토맥에 나갔다.  일곱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조지타운에 이르러 스타벅스에서 아이스티를 한잔 사 마시고 조지타운 하버에서 산책을 하다가 반환하려 시계를 보니 여덟시였다.

돌아오는길에 '나의 오디나무' 아래서 아직 작은 병아리인 거위 새끼 두마리를 거느린 거위부부를 만났다.  처음에 이들은 나를 경계하고 부리로 쪼려는듯 색색 외치며 나를 몰아내려 했다.  나는 나무 그늘에서 오디를 따서 먹다가 잘 익은 오디를 이 거위들에게 던져 줘 보았다.  거위가 냉큼 받아먹었다. 아하!  그래서 그때부터 검게 익은 오디를 따서 이 부부에게 던져주었다. 새끼들도 내가 던져주는 오디를 쪼아 먹었다.  내가 계속해서 검은 오디를 따서 던져주자, 이 부부는 나에대한 경계를 풀고, 이제부터는 "빨리 오디를 달란말야!" 하면서 꽉꽉대고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기들이 내 발치에 다가와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부부는 내 왼쪽에 있고, 아기들은 내 오른쪽에, 그러니까 인간인 내가 이들 가운데에 뻗치고 서 있어도 상관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기들을 발로 밟을수도 있는데?!

이들은 달콤한 오디를 따서 던져주는 내가 아주 맘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거위는 사람이 지나칠땐 약간 경계하지만 멀리 도망가지는 않는데, 개가 나타나면 냉큼 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내 눈에 개가 보이지 않아도, 이들이 물속으로 가버리면, 조금후에 영락없이 개가 나타나는 일이 반복된다.  거위는 사람에 대해서는 안심하는 눈치이지만 개는 경계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거위를 해코지 하는 일은 드물지만, 개는 예측불허라서 그러할 것이다.) 어떤 사냥개가 있었는데, 그 개는 거위가 물에 들어간 후에도 물에 따라가 잡으려는듯 물가에서 으르렁댔다.  그래서 거위가 개를 싫어하는가보다.




이 거위 가족이 물속으로 피신을 한 후에도 내가 물가에서 오디를 따서 물에 던져주자 거위 가족은 나무 밑을 떠나지 않고 내가 주는 오디를 받아 먹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다른 거위 가족이 나타났다. 저쪽 구석쪽에 몸이 많이 자란 두마리 새끼를 거느린 부부.  거위들은 순해보이지만, 일단 '먹이'에 대해서 경쟁할때는 사나워진다.




아래 사진을 보면 왼쪽의 큰 거위가 목을 길게 빼고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위협하는 자세이다. 이렇게 위협을 하면서 다른 거위들을 몰아내려 한다. 이 거위가족은 부모와 새끼들이 합심하여 오른쪽의 아기거위 가족을 몰아댔다. 열세에 있는 작은 거위 가족이 저쪽으로 밀려갔다.  이놈들이 왜 한쪽을 몰아대는가하면,  오디 따서 던져주는 인간의 앞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바삐 오디를 따서 이가족, 저가족 골고루 주느라 아주 바빴다.  그런데 요 거위놈들이 덜 익은것을 따서 주면 안먹고, 잘 익은것을 따서 줘야 받아 먹는다. 나처럼 잘 익은것만 먹는 놈들이다.





내가 나무 밑에서 거위가족들에 둘러싸여 오디를 따 먹이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었던듯, 산책하는 사람들도 미소를 짓거나 사진을 찍어가지고 가곤 했는데, 어떤이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내게 조언을 했다, "그러다가 거위 부모한테 물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이 사람은 동물에 대해서 겁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나도 사나운 거위의 행동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을때 사납게구는 거위는 본적이 없다.  게다가, 지금 거위들은 내 발치에서 오디를 달라고 꽉꽉대고 있는 것이므로, 이들이 나를 쫄리는 없는 것이지. 쫀들, 그걸로 사람이 죽는것도 아니고~   난 거위가 공격적으로 쌕쌕거릴때와, 뭘 달라고 꽉꽉거릴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와 대화 하기 위해서 다가갔다가, 설령 대화가 안통하고, 내가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  하지만, 미리 겁먹고 대화를 포기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상대가 동물일때, 나는 서슴없이 다가가는 편이다.  난 사람보다 동물과 대화하는 편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뇌진탕 걸려서 깜박깜박하는 내 카메라가 빗방울 떨어지는 장면을 잘 잡아냈다. 고맙다 카메라.


















일전에, 다 자라버린 다섯남매 거위 가족 사진을 올린적이 있다. 오늘, 그 거위가족을 다시 발견했다. 멀리서보면 그냥 어른 거위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중 두마리가 좀더 크고, 아직도 부모가 가장자리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다섯마리가 모두 성년이 된 것이 마냥 고맙다. 마치 내 새끼들을 보고 있는듯 흐뭇했다.






꽃술에 벌이 매달린것을 볼때면, 묘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뭔가 관능적이면서도 포근하다.



새벽에, 한국에서 지홍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CPR 훈련받을때 1등을 해서 포상으로 '가족에게 전화 5분' 를 걸수 있게되었다고, 그래서 내게 하는거라고. 5분 되면 전화가 그냥 꺼지니까, 갑자기 전화 끊겨도 그런줄 알라고.

지홍이는 "엄마엄마!" 이렇게 꼭 두번을 부른다. 지홍이는 늘 그런다. 한번 "엄마" 하고 부르는게 아니라 "엄마엄마" 이렇게 두번을 연달아서 부른다.  한번 부르는 것으로는 성에 안찬다는듯 "엄마엄마", "아빠아빠" 이렇게 부른다. 아기때부터 그러더니 여태 그런다.

며칠전에 둘이 총들고 나란히 선 사진이 카페 게시판에 커버처럼 걸려있다는 얘기를 해 줬더니 (훈련병은 인터넷 못 보니까), 자기는 소대장이고 그 친구는 부소대장이라고 한다. 


"너, 힘들어하는 소대원을 잘 도와주고 돌봐줘야 한다!" 했더니, 자기도 열심히 도와주려고 하는데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도와주기가 어렵다고 한다.

내가 지홍이에게 동료 훈련병들을 돌봐주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1) 남을 돕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이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남을 도울수가 있는거니까. 따라서, 나 자신의 몸관리를 잘 하라는 뜻이다.
2) 혼자만 잘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변에 힘든 사람을 도울 만큼의 역량을 키우라는 뜻이다.
3) 결국,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운명이다. 그러니 평소에 인정을 베풀라는 뜻이다.
4) 서로 돕지 않는 삭막한 사회는 나에게 해롭다. 결국 내가 잘 살기 위해서 남을 도와야 하는 것이다.

돕는것이,  도움을 받는 것이다.

***

포토맥 강변에서 벌써 1년도 넘게 아침에 나갈때마다 마주치는 두 신사가 있다.  한분은 80쯤 되어보이는 노신사이고 한분은 60안팎으로 보이는 신사이다. 내가 이분들을 신사라고 하는 이유는 이분들이 미국 고전 영화에 나올법한 키가 큰 전형적인 서양 남자들인데 인상도 좋고 늘 일정한 속도로 걷거나 달리거나 한다.  나는 이분들이 '아버지와 아들' 혹은 '장인과 사위' 뭐 그런 관계가 아닐까 상상을 하며 지나치곤 했다. 

내가 체인브리지 방향에서 조지타운까지 갔다가 반환한다면, 이 두 신사들은 조지타운 집에서 체인브리지까지 갔다가 반환하는, 그러니까 나하고 정반대의 산책을 하시는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조지타운의 딘앤델루카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다가 이분들이 조지타운 주택가로 향하는 것을 본적도 있다.

오늘은 한가로운 이른 아침이었고, 포토맥 너른 강이 발치에 보이는 한적한 길에서 이 두분을 마주쳤다. 그래서 "Good morning, gentlemen!" 하고 먼저 인사를 날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보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강변에 서서 가벼운 인사를 하고, 서로 뭐하는 사람인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Lin Yutang 을 아느냐고 물었는데, 가만 듣다 보니까 '임어당' 얘기를 하는것 같아서, 나중에 그를 안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게 '중국인'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다른 신사가 얘기에 합세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한국에 American Idol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22세 청년의 감동적인 얘기가 소개가 됐다" 며 내게 아느냐고 물었다.  이 신사는 한국의 쇼프로그램 얘기를 내게 해주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는거다.   아 이 신사들은 조지타운에 사는 이웃 친구들이었다. 할아버지와 그 신사는 변호사라고 했고, 한국 쇼프로 얘기를 내게 들려준 신사는 조지타운 대학 교수였다가 퇴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강바람을 쐬면서 이런 얘기들을 웅성웅성 하다가 다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길을 갔다.  다음에 또 마주치면 우리들은 또다른 화제로 웅성웅성 하게 되겠지.

(남자들도 '수다'를 좋아해...흠흠...)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걷기에 좋았는데, 혼자 유쾌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오른 손을 싹싹 핥고 지나가는거다. 어떤 커다란 개가 줄이 풀린채로 내 곁을 뛰어 지나가며 내 손을 핥은 것이다. (가끔, 개끌고 달리기 하는 사람중에 개를 풀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안되지만.  이 경우 개가 순해서 안심하고 풀어놓은 것이기때문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뒤에 달려온 개 주인은 내게 무척 미안해 했지만, 나는 깔깔 웃고 말았다.  내 오른손은 거위에게 오디를 따 주느라 검붉게 물이 들어있었고, 그리고 달콤하였다. 그러니까 그 개가 핧았던 것이겠지.

나는 낯선 개가 내 손을 핥고 지나간것에 감동을 받았다. :-) (변태에요. 별 이상한데서 감동을 받아요.) 

나는 대개 혼자서 장거리 산책을 나가지만, 심심한 경우는 별로 없다. 나는 눈에 보이는 나무나 들풀, 지나가는 새들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고, 흘러가는 강물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가끔은 지나치는 사람과도 길에 서서 '수다'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을 한바퀴 돌고 오면, 몸도 마음도 나른해지고 평화로워진다. 나는 이보다 더 좋은 오락을 찾을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고요하고도 은밀하며 유쾌한 산책을 위해서는, 나 혼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산책을 하지 않게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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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6. 16. 20:52


어제 (6월 15일) 밤 아홉시 쯤에 포토맥 강 위에 걸린 달 (알렉산드리아의 호텔 건물이 보인다).  처음에는 쟁반같이 커다란 달이 술에 취한 농부처럼 붉그레 했다.  찬홍이 설명으로는 개기월식이 지나가면서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어서 붉게 보인다고 했다.

붉던 달은 점점 밝아졌다.  조지타운 하버에 다다를 즈음 달은 밝고 투명해졌다. 강물에 비친 달 그림자도 투명하였다. 달의 왼편 아래로, 하얗게 뾰죽 솟은것은 워싱턴 마뉴먼트.

 








 



우리는 밤 열시까지 조지타운에서 강바람을 쐬다가 조지타운의 시계가 딩딩 울리며 열시를 알릴때 집으로 향했다.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달이 이렇게 밝으니, 불빛이 없는 숲속에서는 어떠하겠는가?  나뭇잎 사이로 달이 보일때, 태양처럼 눈이 부실 정도였다. 달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반딧불이들이 일제히 날아 올랐다. 반디들이 내 눈앞에서 깜박일때 나는 그 메시지를 읽어보기도 하였다.  (내 맘대로 생각나는대로 좋은 생각만 하면 된다).

여름 밤
강물
하늘에 달
숲길
그리고 날아 오르는 반딧불이들.

이곳 반딧불이는 어찌나 순한지, 날아 다니는 것을 내가 슬그머니 두손으로 공처럼 만들어 잡아도, 겁을 내지 않고 깜빡인다. 혹은 날아다니다가 내 셔츠에 앉기도 한다. 꽁지에 등을 달고 날아오르는 곤충들.  반디가 숨을 쉬듯 깜박일때마다 나는 희망적인 생각들을 해 내려고 애쓴다.

옛날에 윤동주 시인은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새겼다. 사람들은 그렇게 했다. 나는 날아오르는 반디불이들의 등불에 내 사랑과 쓸쓸함을 날려 보냈다.  반딧불이들은 하느님이 지상에 내려보낸 별 들이다.

등뒤에 달이 따라왔다. 나는 달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앞세워 걸었다. 이렇게 달이 질 때까지, 아침이 올때까지 계속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찬홍이 데리고 밤새 걷기에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다. 밤에 출발하는거야. 그래서 한 네시간쯤 서쪽으로 걷는거야. 그리고 네시간쯤 후에 동쪽으로 돌아오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걷게 되겠지...(그거 해보고 싶다. 밤새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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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