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7. 4. 00:03


새벽에 세상이 깜깜해지고,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한시간쯤 미친듯이 쏟아지다 그쳤다.  비가 오면 포토맥강이 생기를 띄게된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비 온 후의 포토맥을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오랫만에 Great Falls Park 로 향했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나가면 된다. 비 쏟아진 후의 일요일 아침은 상쾌하고 한적하였다.




검은 물수리들이 폭포 주변 바위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날개를 말리고 있었고, 폭포에서는 물안개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찬홍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달팽이처럼 느리게 폭포에 도착하는 엄마.



엄마는 폭포가 좋다며 여기서 한참 동안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폭포 전망대 앞에 서있는 기둥에는 큰 홍수가 났을때 물이 어디까지 찼었는지 가리키는 표시판이 붙어있다. 엄마가 아기였을때, 이 곳은 저 꼭대기만큼 물이 찼던적도 있다. 


덤불에서 산딸기를 발견한 엄마가 그것을 따 먹으며 기뻐하고 있다.




폭포의 상류, 리버밴드 파크.
물은 '그림'처럼 고요하였고, 아침 안개로 뿌옇게 누워 있었다.



엄마가 내다보는 강 풍경이 마치 액자속 그림 처럼 보인다. 엄마가 미술관의 커다란 풍경화 앞에 서 있는것처럼 보인다. 강에 떠있는 하늘의 구름.




낭만적으로 세상을 사는 방법중의 한가지: 가끔은 나무를 안아주라~ 




관점의 문제:

엄마가 이 바위를 가리키며 "저기 저 바위는 부처님이 드러누운것 같다"고 했을때... 너무나 속된 찬홍이와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킬킬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변강쇠 같은데...쩌~그, 쩌~ 그, 긍께 뭐시냐, 저기 서있는 나무가 말씀시, 아무래도 변강쇠 거시기 아닌감?"

긍께 저 변강쇠 거시기를 확 거시기해버리면... (이거 무슨말인지 각자 해석의 문제...)  잘 나가다 삼천포~  웃기는 인생~  아무튼 엄니는 저것을 부처님이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명상하는 것으로 보았고, 찬홍이와 나는 관점이 달랐다고 하는, 참 거시기한 거시기였던 거시기였다.




아홉시에 집에 돌아와 옥수수 쪄고, 불고기 해서 아침을 아주 거시기하게 자알~ 거시기 혔음.


엄마에게는 특히 이 고요한 호수같은 리버밴드 파크가 매력적이었던 듯 하다. 아무래도 고요하고, 안정적이고, 나무 그늘에 앉아서 맘껏 쉴수 있고 그런 분위기가 엄마에게 아주 편안했던 모양이다. 집에 가지 말고 더 있다 가자고 하시는데, 시장하실까봐 아침 지어 드리려고 서둘러 왔다. 내일 아침에 먹을것까지 챙겨가지고 또 오면 되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2. 13:25



우리 집에서 약 15분 거리에 아주 커다란 야외 음악당 Wolf Trap 공연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4년 가까이 살면서 실제로 이 야외 음악당에 가 본 것은 오늘이 처음 입니다.  뮤지컬 '맘마 미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고보면 박선생이 워싱턴 지역에서 3년을 살면서도 여기를 못가보고 귀국을 했군요.)

가본 사람의 말로만 어떻다고 들었는데, 가본적이 없어서 가늠이 잘 안되었는데, 마침내 오늘 현장을 가 본 것입니다.  전에 찬홍이와 내가 보려도 표 두장을 미리 사 놓은 것이 있는데, 엄마가 오기로 결정이 된 후에 부랴부랴 표 하나를 더 샀습니다. 그래도 처음 가보는 곳이고 현장 사정을 잘 알수 없어서, 제일 좋은 좌석 표를 사 놓았었지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언덕 위에 목조 건축물이 보입니다. 중앙에 공연 무대 시설과 높다란 지붕. 그리고 지붕을 받치고 서 있는 목조 기둥들.  그런데 벽은 없으므로 야외 음악당이긴 합니다.  올라가는 중간 숲속에는 피크닉 시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음악당 입구에 세워진 행사 안내판 앞에서 엄마의 '인증샷. '  엄마가 맘마 미아 안내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공연장을 대략 이런 모양입니다.



나무 기둥들 사이로 숲과 하늘이 그대로 보입니다. 실제로 공연 도중에 바람도 불고, 새들도 날아 다니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나는 마치 에덴 동산에서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마와 나의 셀카 놀이.



공연중에는 사진 촬영을 못하지만, 공연 마치고 앵콜 공연 할때는 사진을 찍어도 됩니다.  앵콜 공연때 찍은 사진 입니다. 아바의 히트곡을 조합하여 만든 뮤지컬 맘마 미아는 사실 몇해전에 나온 영화가 매우 성공적이었고, 나도 그것을 극장에서, 그리고 디비디로 여러차례 보기까지 하였습니다.  영화가 너무나 성공적이었던 것이 뮤지컬에는 오히려 손해를 끼칠수도 있습니다. 어쩐지 오늘 본 뮤지컬이 내가 극장에서 봤던 영화보다 생동감이 덜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야외음악당에서 공연을 보는 즐거움은 컸습니다.  아마 별이 빛나는 밤에 야외 음악당 공연을 보게 된다면 느낌이 색다를 것입니다. 여름이 가기전에 밤 공연을 한번 보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에게는 뮤지컬 맘마 미아가 지루했을 것입니다. 잘 모르는 줄거리. 영어 대사. 잘 모르는 노래들. 엄마에게는 이 낯선 뮤지컬을 두시간 넘게 봐야 한다는 것이 아주 지겨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곁에서 엄마를 지켜보기가 안쓰러워서 "엄마, 힘들지? 그냥 나갈까?" 하고 물으면 "아니야. 조금 졸았다. 끝까지 보고 가야지" 하면서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잘 몰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고 싶어 합니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아주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모르고 지루하고 답답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그 태도. 그러한 인내심은 나도 따라 하기 힘든 미덕입니다.

엄마는 오늘도 달게 곯아 떨어지셨습니다. 내일은 집에서 푹 쉬시게 하겠습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 11:16



어젯밤에 지팔이 훈련병 수료식 중계방송을 듣느라 (지팔이 부친이 전화질을 했다는 뜻) 잠을 설친 관계로,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게으르게 아침을 지어 먹고, 행장을 차려 베이 브리지 너머에 있는 퀸스타운 아웃렛에 갔습니다. 대략 정오쯤 되는 시각.

오늘 엄마의 직계 자식들 및 손녀딸들에게 줄 선물을 모두 샀습니다. 서울의 가족들은 군침을 삼키며 기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엄마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작품들입니다.  (엄마와는 별도로, 나는 지팔이 작은 엄니들과 작은 아빠들 선물도 챙겼습니다. 지팔이 부친이 특명을 내린 관계로, 고민해서 좋은 것으로 골랐습니다.)




성지순례하듯 제일 먼저 간곳은 코치 매장인데, 이곳에서는 재은이와 세팔이, 윤지를 위한 소품들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주변 친지에게 선물할 작은 스카프들도 골랐습니다.   그러다가, 모자를 발견했는데, 엄마가 척 써보더니 "이거 좋다" 이러고 안벗어...그래서 나도 써봤는데, 엄마가 "너도 좋다" 그래서 나도 안벗고, 모녀가 둘이 똑같은 모자를 하나씩 사서 썼습니다. (사실 내가 입고 있는 원피스하고는 색깔이 안 어울리지만, 얌전한 것이 맘에 들었습니다.)
세시간쯤 선물을 산다고 돌아다니고...  엄마는 내가 선물 고르는 동안 소파에서 쉬시거나 찬홍이와 노닥노닥, 아무래도 힘에 부치시는 듯, 내가 골라가지고 "엄마 이거 좋아?" 그러면 "응" "아니" 이런 식으로 코치만 했습니다. 엄마의 직계 자손들을 위한 선물 쇼핑을 모두 마치고, 아웃렛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 (써브웨이)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조그만 피크닉 아이스박스에 인절미, 현미떡, 수박, 체리 이런것들을 싸 갖고 가서, 엄마와 나는 그것을 먹고, 찬홍이는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엄마 앞에 수박, 체리, 그리고 인절미 봉지가 보입니다.) 미국은 여름에 실내 냉방이 잘 되어 썰렁할 정도 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생활이 익숙하지만, 엄마에게는 춥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디건을 갖고 다니다가 엄마의 어깨나 목에 걸쳐드립니다.


난, 아웃렛가서 정작 내가 사고 싶은 것은 구경도 못하고 순전히 선물 쇼핑만 하고 말았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엄니하고 다니니 몇집만 돌아도 피곤합니다. (나 비치용 썬드레스 하나 사고 싶었는데, 구경도 못했네...)  깔깔대면서 늦은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10분쯤 차를 달려 해변으로 갔습니다.

엄마가 바닷바람을 쐬면 기침이 나올수 있으므로 역시 내 카디건으로 꽁꽁 싸 매줍니다.  엄마가 입고 있는 분홍색 블라우스는 '치코' 매장에서 새로 산 것입니다.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큰 우산을 꺼내서 파라솔로 쓰고 있습니다.



찬홍이는 박씨문중 사람답게, 바다를 봐도 들어갈 생각을 전혀, 전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우리집 쓰리박은 물가에 가도 물에 첨벙첨벙 들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석달열흘 고사를 지내야 한번 발을 담글까말까 입니다. 참 대단한 쓰리박입니다.  역시 오늘도 물한방울 만질 생각도 없어 보이는 박찬홍 선수.




파란 모자, 분홍 블라우스, 그리고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얼핏 '소녀'같습니다. 파란 모자가 바닷가에서 아주 시원해보입니다.








사람좋게 벙글벙글 웃기만 하는 거북이.






"엄마, 바다에 왔는데, 바닷물도 안건드리고 그냥 가면, 바다에 좀 미안하지 않어? 응?" 내가 뭐라고 하니까, 엄마가 용기를 내어 바닷물에 손을 담급니다.  엄마는 바닷물이 찬줄알고 몸을 사리고 있다가, 바닷물이 따뜻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빛냅니다. 엄마 몸이 가뿐하면 물놀이를 하고 싶겠지요.  그러나 엄마의 몸은 마음같이 가볍지가 않습니다.






어린애처럼 물에 손을 담가보고 아주 좋아하는 엄마.



엄마는 바닷바람에 감기에 걸릴까봐 옷을 여러겹 껴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록달록하고 예쁩니다.




 





엄마 어릴때 사진이 몇장 있는데, 이 사진속의 엄마와 비슷합니다.

 

우리 찬홍이와 엄마 얼굴이 환하게 빛납니다.


신나는 쇼핑, 즐거운 바닷가의 시간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다시마 멸치로 국물을 내어 우동을 끓였습니다. 엄마는 우동 한대접을 국물까지 싸그리 달게 잡수셨습니다. 내가 목이 말라서 맥주를 갖고 오자 엄마가 먹고 싶다는 듯 맥주를 쳐다봤습니다. "엄마, 맥주 할껴?" 내가 묻자 "응!"  엄마가 맥주가 먹고 싶대요.  그래서 내 맥주를 조금 따라드렸습니다. 맥주가 달다며 그것을 마십니다. 뜨거운 우동과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오늘의 피로를 날려보냈습니다.

엄마는 새로 사온 옷을 입고 지금 축구장같이 넓은 침대위에서 크르렁 크르렁 코를 골며 단잠에 빠졌습니다.  원래, 해변에 가서 놀다 오면 그날 잠은 아주 달콤합니다. 밤새 꿈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붑니다.

오늘도 신나는 하루를 살았습니다. 내일은 울프트랩에 뮤지컬 '맘마 미아'를 보러 갑니다. 자알~ 놀고 있군요~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6. 30. 10:15


오늘은 내가 학교에 출근을 했다.  아침 지어서 함께 먹고, 부엌 치우고 학교로 향하면서 "찬홍아 새우젖 찌개 데워서 할머니 점심 차려 드려라" 하고 나갔다. 

오후에 학교 근처 떡집에 들러서 떡 몇가지 사고 (인절미 같은것을 작은 팩에 나눠 담아서 냉동 보관하면 소풍갈때 갖고 나가기 좋다) 반찬거리 사가지고 집으로 향하는데, 집에서 엄마와 찬홍이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곳이 묵직해 오고, 뭔가 내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다. (가장들이 저녁에 집으로 향할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오직 나 하나를 믿고 기다리는 가족에게 향하는 그 사명감과 뿌듯함 같은것)

네시쯤 집에 왔는데, 모두들 낮잠을 자다 깬 분위기.  찬홍이와 엄마가 점심도 건너뛰고 낮잠을 퍼 자고 있었다고 한다. (할무니를 점심을 안드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일단 찬홍이한테 잔소리를 끓여붓고)  떡을 꺼내 접시에 담아 내 놓으니 찬홍이도 엄마도 그 떡을 아주 달게 드신다.  (나는 떡을 봉지봉지 담아서 냉동실에 넣고.)

나는 드러누워서 책 보다가, 한국의 언니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가 사용하는 내 방에서 지속적으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가 소녀처럼 하이톤으로 뭔가 신나게 설명을 하고 있고, 찬홍이가 가끔 킬킬대며 추임새를 넣는 모양이다.  찬홍이는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잘 한다.

내가 가만 관찰해보면, 찬홍이는 할머니가 알아 듣건 말건 뭔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찬홍이가 말을 하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다. 찬홍이의 늘어지는 수다를 다 들어준다. 

또한, 할머니가 이야기를 할 때는 찬홍이가 추임새를 넣으며 웃어가며 그 얘기를 다 듣는다. 

찬홍이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찬홍이가 '너무나 지나치게 잘난척에 빠진 엄마'와 사는동안, 엄마가 중간에 말을 툭툭 끊어버리거나, 요점을 정확히 말하라는 잔소리질을 해 대는 통에 맘껏 자기 얘기를 못했던거다. 그런데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해 주니까 마음이 기뻐지는 모양이다.

엄마 입장에서 봐도, 역시, 잘나 자빠진 딸년은 무슨 말을 하려해도 다 들어주지를 않고 똑똑 끊어버리거나 혹은 무시하는 태도를 슬쩍슬쩍 비치는데, 손자놈은 할머니 얘기를 재미있다고 들으며 웃고 깔깔대고 박수를 쳐 주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도 찬홍이하고 얘기하는 것이 편안하고 즐거우신 모양이다.


찬홍이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출세를 할지 나는 가늠할수 없다.  하지만, 이놈이 사람이 아주 진국인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애가 참 어질어보인다. (내가 멍청하다고 놀리기는 하는데), 따지고 보면 어질고 멍청한것이, 약고 사악한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찬홍이가 어진 놈이라서 참 고맙다. 어떻게 나한테서 저런 순둥이가 나왔으까?  (아무래도 그건, 엄마를 안 닮고, 아빠를 닮았나부다...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엄니는 오늘 집에서 푹 쉬시면서, 나 없는 사이에 그림 작업을 조금 해 놓으셨다. 
금요일에는 뮤지컬 공연 보러 갈 것이고, 일요일에는 필라델피아에 모시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외출 일정이 없는 날에는 내가 내 일을 하거나 찬홍이 라이드를 해주거나 그러고 보낸다.  그러면 엄마도 집에서 낮잠도 자고 쉬고 그러실수 있다.


엄마는 내 침실, 내 침대를 사용하신다. 내 침대가 크니까, 거기에 엄마의 귀중품을 모두 정리해 놓으셨다. 내 침대를 자신의 방처럼 정리해 놓고 쓰신다. (뭐 침대가 웬만한 조그만 방 한칸 크기이니까 ㅋㅋㅋ).  나는 거실, 지홍이가 쓰던 침대나 소파나 혹은 바닥에서 뒹굴며 잔다.  전에 플로리다에서 살때, 세팔이하고 함께 살때, 그때도 나는 거실 소파에서 주로 잤다. 거실 바닥이나 소파에서 자는 생활에 익숙한 편이다.  거실의 절반은, 우리집 화실이다. 거기에 화구를 온통 늘어놓고 엄마와 내가 각자 작업을 한다. 나도 내 작품을 가끔가다 조금씩 만져주고 있다.  지금 '사랑이 나를 교활케하여' 라는 허영자 시인의 싯귀를 주제로 연작을 만드는 중이다. 

나는 학교에 연구실이 있으니까, 거기가 완벽한 내 공간이니까, 집에서 이렇게 내방도 없이 사는것도 불편하지 않다.  마치 룸메이트들이 자유롭게 사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엄마하고 이러고 사는것도 재미있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6. 30. 05:56



[살며 생각하며] 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

이은미  
기사입력: 06.28.11 18:1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NEWS&source=&category=opinion&art_id=1218601

일전에 한국의 병무청에서 최근 4년간의 병역 회피자들의 신분을 분석한 자료가 나왔다. 체육인, 유학생, 연예인, 의사가 회피자의 49.9%를 차지 한다고 한다. 신체적으로나 경제 사회적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경우가 다른 회피의 경우보다 수치가 높아서 문제가 된 듯 하다. 물론 이런 통계자료로 체육인이나 유학생, 의사들을 모두 군기피자로 색안경을 쓰고 봐서도 곤란하다.
 
내 큰 아들 얘기를 이 칼럼에서 몇 차례 적은 적이 있다. 주립 대학에 다니다가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간 녀석이다. 결국 이 녀석이 훈련소에 입소 했고, 현재 유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아들을 훈련소에 데려다 준 날, 남편은 한숨이 가득한 국제전화를 걸어와서 수심을 털어 놓았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그 청년들이 입고 갔던 옷가지를 부대에서 집으로 부쳐준다고 하는데, 그 소포가 집에 도착한 날에도 남편은 울음 섞인 채 전화통을 붙잡고 늘어졌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알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아들의 옷가지를 보면서 중년의 가장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전화통 너머로 울먹이던 남편이 며칠 후에는 밝은 목소리로 승전보를 전하듯 알린다. “이봐요, 지금 웹 카페에 들어가봐요! 거기 우리 아들 사진이 올라 왔어!”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훈련병들의 단체사진이며 소그룹 사진, 일상생활을 하고 훈련 받는 스냅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여기 있는 이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모두 내 자식처럼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오호라! 여기 정말 내가 낳은 내 자식이 있구나. 늠름하게 얼룩 무늬 군복을 입고 햇살 아래 눈이 부신 듯 약간 찡그린 채로 씩 웃고 서 있구나!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껴안을 듯이 다가간다. 가능하다면 모니터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 사진 속의 아들에게 가고 싶구나.
 
아들이 태평양 건너 강원도의 어느 훈련소로 들어간 이래로, 나는 이따금 이유도 없이 긴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훈련병, 현역병 관련 사고 소식은 나를 혼비 백산하게 만든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전방의 소식에도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나는 가끔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쩌다 훈련소에서 공개하는 훈련병들의 사진이 새로 웹 카페에 올라왔을 때, 그 속에서 다행히 내 아들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 나는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홍아!”하고 외치고 만다. 빈집에 앉아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정신이상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돌아본다.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을 때, 나는 초등생의 엄마가 되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아들이 입학 했을 때 아들을 따라 나도 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군인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의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아들이 만들어 준 자리 중에 대한민국 육군의 엄마 자리가 가장 자랑스럽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이 뿌듯함.
 
내일은 아들이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훈련병 수료식을 하는 날. 수료식 후에는 가족 면회도 있다고 하는데, 미국에 있는 나는 훈련병 아들의 수료식도 볼 수가 없다. 남들이 엄마 품에 안길 때, 내가 가서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다.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 육군 장병의 엄마답게 하늘을 보고 웃을 것이다.
 
장하디 장한 대한의 아들. 나는 너를 잘 교육시켜 대한민국으로 보냈다. 너는 대한민국을 지킬 것이고, 대한민국은 너를 품에 안아 지켜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너의 엄마인 것이 참 자랑스럽구나.


***

웹카페에서 지팔이네 직속 조교로부터 채팅하듯 실시간 댓글을 받았다.  지팔이가 훈련소에서 훈련 받으면서 틈틈이 조교들에게 부과되는 잔무를 많이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후임 조교로 콕 찍어놓고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게 되어서 아쉽다고. 다른 사병을 통해서도 (면회 나간 가족에게, 혹은 전화로 부대 얘기하면서 전하는 얘기) 훈련병 지홍이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활달하게, 봉사정신을 발휘 하는듯한 인상이었다.  몇몇 부모님들이 지홍이 소식을 쪽지로 보내주셨다.

지홍아, 요놈아, 엄마는 만리 밖에서도 네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열심히 나라를 지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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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