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4. 3. 06:51

벚나무 군락지역, 포토맥강변.
휘늘어진 벚꽃나무를 이곳에서는 Weeping Cherry 라고 부른다.
수양버드나무에 벚꽃핀것처럼 휘늘어진다.



  1. 아침 아홉시에 포토맥 애비뉴에서 출발 --> 9시 45분, 조지타운 하버 스타벅스에서 베이글과 차를 마시면서 쉬고
  2. 케네디 센터를 지나, 링컨 메모리얼 앞을 지나 강변의 벚꽃 숲을 걷다가,  Tidal Basin, FDR Memorial 도착 12시
  3. Tidal Basin 한바퀴 돌고, National Mall 로 직행, Hirshhorn Museum 앞에서 찬홍이에게 핫도그를 하나 사 먹임.
  4. Hirshhorm Museum에서 미술 감상을 하고 두시에 출발
  5. 곧바로 조지타운으로 이동하던중 중간에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를 길에서 뒤집어 쓰고
  6. 워터게이트 건물 커피숍에서 비를 피하면서 뜨거운 커피 한잔.
  7. 해가 쨍 나길래 조지타운을 지나 포토맥 애비뉴에 도착. 오후 5시
  8. 집에 5시 20분 도착.

전체적으로 걸은  거리 대략 14마일.

날씨는 전체적으로 흐렸다 개었다, 바람불고, 비가 후두둑 내리고, 결국 우박도 쏟아지고, 다시 반짝개이는. 그래서 하루에 4계절을 모두 경험한 듯한.  그래서 온몸이 나른하고 개운한.


(씻고, 나갔다 와서, 나중에 ~~  )

Posted by Lee Eunmee

Swing, 1969, Acrylic and aluminium on canvas

Photo by Lee, Eunmee, 3rd Floor,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January 14, 2011


스미소니안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3층에 걸려있는 쌤 길리엄의 '그네 (Swing, 1969).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은 여러점의 길리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되고 있는 것은 이 작품 하나, 그리고 Luce Foundation Center (그림창고같은 전시장) 구석에 평면적인 액자 작품이 하나 걸려있다.

Corcoran 미술관에서도 그러하고, 요즘 진행되는 필립스 콜렉션의 전시회에서도 그렇고, 미술관들은 길리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커튼 널어놓은 것 같은 작품 한점과 이런 작품들의 평면 모습을 보여주는 액자 작품을 형제처럼 걸어놓는 편이다.  그리고 그 외의 평면적인 다른 작품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 이다.  그는 60년대외 70년대에 이렇게 '걸어 놓는 캔바스' 작업에 열중하고, 그 이후에는 꼴라쥬를 위시한 다양한 작업을 했는데, 미술관에서는 그의 '널어 놓는 설치 미술' 쪽에 애정을 보내고 있는듯 하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이 '널어 놓는 캔바스'가 그의 독특하고, 새시대를 여는 발상이었고, 나머지는 남들도 다 하는 것들이니까 그럴 것이다.

아래는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의 쌤길리엄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 풍경이다.

사실 이 사진을 찍었던 날은, 나의 관심이 백남준의 작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백남준 보러 갔다가, 간김에 또 한바퀴 둘러보던 식이었다. (그래서 결국 온종일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왼쪽 구석에 쌤길리엄의 '그네'가 매달려 있다. 전시실 중앙에 백남준의 'Zen' 이라는 텔레비전 작품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 백남준씨 작품을 보고 지나치면서, "테레비가 고장이 났나?" 뭐 이러고 말았었다.  그런데 바로 이 '한줄 그은듯한 선' 그것이 백남준씨가 의도한 'zen'이었다.
창문이 있고, 하얀 석고상같은 여자가 창밖을 내다보는 작품이 Georg Segal의 조각 작품이고, 오른편에 Rauchenberg 의 콜라쥬 작품이 두점 보인다.






 




3층 전시실 복도. 내가 사진을 찍는 위치가 백남준의 Megatron/Matrix 전시실 입구 쯤이 될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왼편 전시장에 백남준의 방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20세기 비디오아트 기획전이 진행중이다. (현재에도 진행중).  쌤길리엄 작품 외에 전시장 전체를 담아보는 이유는, 이것이 그가 속한 미술의 어떤 시대이고, 그리고 그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예술가들의 일생을 단 몇줄로 요약해보면, 대개는 그의 '대표작'이 한두가지 들어가게 되는데, 그 대표작이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지. 삶의 어떤 시간속에 그 어떤 순간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그것만을 기억할 뿐이지.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잊혀지고 말아.  쌤 길리엄은 현재 노인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할수 있지.  그런데, 아직 그의 삶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획기적인 어떤 변화가 없는한, 결국 그는 벽에 걸어놓은 커튼같은 캔바스작품,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같은 설치미술작품 이 두가지로 기억되고 말것이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삶을 기억할때는, 그의 '종말'이 아니라, 그가 가장 빛나던 순간을 기억해주는 것이 좋을것 같다.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어 시체되고 벌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가장 빛나던 장면 그런 것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술가를 기억할때는 그의 마스터피스를 기억해주니까.

종말이 아닌, 삶의 장면들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삶은 다른 각도에서 무척 신기로와 보일것이다. The best is yet to come. 내 인생에 최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이런 백치같은 optimism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Chrysler Museum, VA, November 29, 2009


버지니아 남단 Norfolk 라는 해안 도시에 Chrysler Museum이 있다. 이 박물관 중앙 천장을 장식한 쌤 길리엄의 작품. Norfolk Keels (1998).  크라이슬러 뮤지엄 앞에는 호수가 있어서, 석양에 호수가 반짝거리면 미술관 벽과 천장에 물결 그림자가 일렁인다. 환상적인 장면이다. 

그 천장을 장식한 쌤길리엄의 작품.  (관객중에 안경끼고 삐딱하게 서 있는 우리 박선생.) 


그 당시에도 이 작품이 참 인상적이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내가 쌤 길리엄을 직접 만나서 악수를 하게 되리라고는 그때는 상상도 못했었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4. 2. 03:41




해마다 봄에, 대지에 초록 물이 들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광경. 해마다 동일한 사진을 찍고 좋아한다.


 



지난 며칠 비가 내려서 강에 물이 잔뜩 불었다. 수로에도 물이 가득.  Fletcher's Cove 의 벚꽃이 흐린날 더욱 희게 빛났다. 수로 둑에서 Fletcher's Cove 의 배 빌려주는 간이 매점을 내려다볼때, 고향집을 멀리서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정겹다.





수로에 가득찬 물




조지타운 입구. 찬홍이는 이 포인트를 참 좋아한다.


 

조지타운에서 수로가 시작되는 점. 그러니까 포토맥강에서 수로가 가지쳐서 갈라지는 분기점에 스웨덴 대사관 건물이 있다. 대사관 건물 앞에는 커다란 해시계가 있다.

스웨덴 대사관은 일반인에게 매일 전시장을 개장한다. 토, 일요일까지.  내일 특별전시를 여는 까닭에 오늘 주 전시장은 닫혀있었지만, 일반 전시장을 그대로 열려있어서, 스웨덴 홍보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스웨덴의 학교 풍경
 



우리들이 어릴때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도 스웨덴 작가의 것이다.





대사관 전시장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포토맥강





전시장 내부, 아랫층에 식당도 있다.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다.







흐리고 바람이 불고 가끔 빗방울도 후두둑 떨어졌다. 강물이 일렁였다. 쌀쌀하지만 그래도 걷기에 좋은 4월의 첫날이었다.






이제 4월이니까, 본격적으로 워킹을 해야...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1. 4. 1. 18:48



2011년 3월 31일 오후

벚꽃축제 기간인데 날이 쌀쌀하고 비가 와서 워싱턴 벚꽃 축제 행사도 썰렁할것 같다.  학교에서 일찌감치 퇴근을 하여 차를 West Falls Church 메트로역에 세워놓고, 메트로를 타고 필립스 콜렉션에 갔다.  메트로센터에서 레드라인으로 갈아타고 두정거장 가면 듀폰 써클.  역에서 나와서 Q Street 쪽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필립스 콜렉션이 나온다.

자목련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비가 와서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쌤 길리엄씨는 큐레이터가 1962년에 필립스 콜렉션에 처음 왔을때 뭐가 인상적이었는가 물으니까, "Magnolia...outside..."라고 대답했다. 그가 처음 이곳에 온것도 봄날이었나보다. 목련이 피어나던 봄날, 딸아이와 이곳에 왔었다고.





필립스 콜렉션은 올해 개과 90주년을 맞아서 실내를 새로 정리한듯 하다. 바닥이나 벽 보수 공사도 한 듯, 실내에서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나서 나로서는 괴로웠다. 실내는 산뜻해져서 좋았는데, 나는 그 미세한 냄새때문에 멀미가 나서, 한시간 가까이 카페의 소파에 죽은듯이 앉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필립스 콜렉션에 도착했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늘 놀러오고 싶은 곳이니까.



요즘은 Philip Guston 특별전, 그리고 영국의 표현주의 작가 Hodkin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 물론, Sam Gilliam 의 Flour Mill 2011 도 선보이고 있고.

그리고 전체적으로 전시물들을 대폭적으로 바꾸고 옮기고 그랬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창고로 옮긴듯하고 그대신에 새로운 작가의 작품들이 나와 있다. 나로서는 특히나 Twatchman 의 작품들을 여러점 새로 볼수 있어서 기뻤다.  필립스 콜렉션도 계절이 바뀔때마다 한번씩 가 주어야 한다.







필립스 콜렉션은 매주 목요일 저녁 늦게까지 (8:30 p.m.) 개장을 한다. 나는 여덟시쯤 전시장을 빠져나와 메트로 역으로 향했다. 듀폰 써클 메트로 역 입구에서 그냥 사진을 몇장 찍었다.  나는 밤에 돌아다니는 일이 별로 없다. 밤에 나가는 예로는, 오후에 조지타운에 산책 나갔다가 황혼이 지는 것을 보고 돌아올때, 그때가 밤이다.  혹은 어쩌다 타이슨스몰에 나갈때, 그때가 밤인 경우가 있다. 그 외에는 밤에 나갈 일도 없고, 나가지도 않는다. 집구석에서도 얼마든지 재미나게 혼자서 놀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어쩌다 밤에 시내 구경을 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도시의 야경이 내게는 아주 낯선 전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흰꽃은 밤에 봐야 더 이쁘지...  체리 축제 끝나기 전에 야간 축제 행사에 한번 가보고 싶다. 밤에 피는 흰꽃을 보고 싶어서.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Phillips Collection (1st Floor), Washington D.C. March 31, 2011


아주 작은 소품이다. 대략 가로 25 센티 세로 12 센치쯤 되려나? 실물 크기의 죽은 새 그림이다.  나뭇잎에 둘러싸인 죽은 새 한마리가 전부인 그림이다. 서리가 내린 듯 해 보이는 화면. 황금 새.  알버트 핑크햄 라이더의 그림이 터치가 거칠고 전체적이로 투박한 편인데, 이 그림속의 새 그림은 단순한 터치 속에서도 세밀한 묘사가 되었다.  그 점이 좀 특이했다. (평소에 내가 익히 보아오던 그의 그림 스타일과 차이가 났다.)


이 죽은새 그림을 본 순간 D.H. Lawrence 의 Self-pity 라는 시가 떠올랐다.

Self-Pity

  H.D.Lawrence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
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자기 연민

나는 들짐승이 자기 연민에 빠진것을 본적이 없다
작은새가 얼어죽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질때
그 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슬퍼해본적도 없었으리라

(몇해전에 번역 해 봤던 시)

동일한 어떤 정서를 작가는 글을 통해, 화가는 그림을 통해 전달하는 것 같다. 이 그림과 이 시는 쌍둥이처럼, 똑같다 (내게는.)  그래서, 이런 그림을 보거나, 시를 대하게 되면 "우리가 저 작은 새와 다를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내가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잡다한 것들이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뭐 그다지 서러울것이 있단 말인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번 눈감고 이 세상 떠나면, 내 육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말보로 사나이처럼 쿨~ 하게 아쉽고 서러운 것들을 짐짓 외면하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2011년 3월 31일 (목) 오루 6시 30분.  필립스 콜렉션 2층 계단 앞에서 Sam Gilliam 과 큐레이터의 대담이 있었다.  관객들은 그들 앞에 둘러서서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질문 답변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작가가 정면으로 보이는 맨 앞의 마룻바닥에 편히 (퍼질러) 앉아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사진 촬영을 금지 시켰기 때문에 아무도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도, 사진을 찍지 못했으므로, 하는수 없이 갖고 있던 공책에 메모를 해 가면서 간단히 그 장면을 스케치를 하였다.  내가 스케치한 뒷 배경에 색칠한 것이 Flour Mill 이라는 그의 설치 작품이다.


아래에 내가 어렵사리 사진 한장을 찍을수 있었다.  Sam Gilliam 과 그의 뒷편의 계단과 계단 너머의 설치 작품.  쌤 길리엄의 설명으로는 계단 역시 작품에 포함되는 구도라고 했다. 계단이 장애물이 아니고, 계단과 설치 작품이 어우러지는 것이 최종적인 이 작품의 목표인듯 했다. (방앗간에서 밀가루를 빻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아이들이 방바닥에 앉거나 누운채로 어른의 이야기를 듣듯) 편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펜으로 메모를 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했는데, 그의 양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가로줄무늬 그의 양말은 그와 동시대에 워싱턴에서 함께 활약했던 (그들은 모두 Washington Color Painting School 멤버들이다) Gene Davis 의 작품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나는 Gene Davis Socks 라고 메모를 해 두었다.

Phillips Collection 에서 인상적인 작품이 뭐냐고 큐레이터가 물었을때, 1962년에 전시장에서 본 Braque (브라크)의 'Shower (소나기)'라고 답했다.  브라크의 소나기는, 내가 브라크 작품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인데!  그래서 나도 얼른 "It's my favorite, too!" 라고 메모 해 두었다.

필립스 콜렉션에 걸려있던 브라크 작품중에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사진기에 담아놓은 것이 바로 그 '소나기'라는 작품인데... 대개 브라크는 피카소와 쌍벽을 이루는 큐비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브라크의 작품중에 가장 정감이 가는 것은 큐비즘에서 약간 비껴있는 그 '소나기'라는 작품이다. 쌤 길리엄과 나의 정서가 어디쯤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듯 하다.  (그래서 내가 그를 찾아 간 것이겠지만...)




그래서, 갤러리 토크가 끝나고 작가가 의자에 앉아있을때, 사람들이 다가가서 인사를 하기도 했는데, 나도 그에게 다가가서 내가 메모하고 스케치 한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1933년에 태어났고, 한국에 있는 내 엄마는 당신보다 몇년 늦게 태어났다. 우리 엄마는 아마츄어 화가이다. 나는 당신의 작품들을 유수의 미술관에서 모두 살펴 보았으며, 그래서 오늘도 당신을 보기위해서 찾아 왔다. 내게는 아주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당신의 입에서 쟁쟁한 화가들에 대한 회상이 나올때, 나는 감동받았다. 내가 미술책에서 본 사람들을 당신은 생생하게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는 내 공책에 싸인을 해주면서, "엄마가 한국의 어디에 계시는가?" 물었다.  나는 '서울'이라고 말했다 (일산이지만). 쌤 길리엄의 이력중에는 고교 졸업후에 군복무를 한 경력이 있다. 아마도 군복무 경력으로 대학때 학비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혹시 한국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아무튼 쌤 길리엄은 엄마가 한국의 어디에 계시는지 재차 물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쌤 길리엄의 싸인을 내가 스케치 한 것 위에 받았다. "우리 엄마에게 이것을 보여드리겠다"고 그에게 말해줬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당신 사진 한장 찍으면 안될까? Would you mind if I take a picture of you?"

"Oh, sure!  Go ahead!"

그는 사람좋게 허허 웃어주었다. 아, 참 마음좋은 신사 할아버지셨다. 1933년생이니까 만 78세이시다.  그래갖고 내가,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화가 선생님의 승락을 받고 그분의 사진을 찍어 올수 있었다는 것이지 헤헤헤. (내가 너무 흥분해갖고 카메라 조작을 실수를 해서, 동영상을 일부 찍었다. 그래서 그의 웃는 목소리까지 담아왔다.)




아, 나는 쌤 길리엄의 친필 서명이 들어있는 이 메모장을, 액자를 해 놓을 생각이다. 헤헤헤.  다음부터 미술관에 갈때는 줄쳐진 공책 말고, 작은 스케치북 (몰스킨 같은것)을 갖고 가야겠다.



갤러리토크의 내용은 추후에 정리하여 올리겠다.

아래 사진은 필립스 콜렉션이 소장하는 The Shower. Braque 의 1952년 작품이고 1953년 필립스 콜렉션이 구매했다. 1962년에 워싱턴 디씨로 이사온 쌤 길리엄이 미술관 구경을 왔을때 브라크의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나가는 소나기를 브라크가 잘 그려냈으며  이를 가로지르는 '자전거'가 참 예뻐 보였다고 한다.  나도 그 자전거가 이뻐서 이 그림이 맘에 들었는데... 기본 색조는 전형적인 브라크의 색조이지만, 그의 유명한 큐비즘 추상작품과는 약간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좋아했다.

오늘 심지어 쌤 길리엄과 나의 복장도 비슷했다. 우리 둘다 감색 더블 버튼, 금단추 상의를 입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양말과, 슬리퍼 신발. (하하하)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National Gallery of Art, September 5, 2010


 













Posted by Lee Eunmee
사진 촬영: Corcoran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January 16, 2011 by Lee Eunmee


샘 길리암 (Sam Gillaim 1933 -  2011년 현재 생존)은  현재 생존하는 미국 현대 화가 이다.  그는 Washington Color School 의 일원으로 1962년에 결혼과 함께 워싱턴 디씨로 이주한 후 평생 워싱턴을 떠나지 않은 흑인 예술가이다.

본래 미시시피주에서  8형제중에 일곱번째로 태어난 그는 켄터키주의 루이스빌 대학에서 미술 학사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워싱턴으로 이주한 후에는 워싱턴 디씨 일원의 고등학교와 Corcoran Art School, MICA, Univ. of Maryland, Carnegie Mellon 등에서도 활발하게 미술 강의를 하였다.

Sam Gilliam 은 현재 생존하는 작가이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예술 세계를 '이렇다'라고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쌤 길리엄을 널리 알려지게 만든 작품은, 아마도 캔버스에 물감 작업을 하여 빨래 널듯 널어놓은, 혹은 커튼을 매달아 놓은 듯한 바로 이런 풍의 작품들 일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둘러본 큼직큼직한 미술관의 어느 코너에 대개 쌤 길리엄의 '늘어진 커튼'같은 작품이 한 점쯤 걸려있었다. (이제부터 사진 파일들을 뒤져서 그것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볼 생각이다.)


잭슨 폴락이 캔버스 위에 물감 흩뿌리기로 그의 세계를 완성시켰다거나, Morris Louis 가 캔버스위에 물감 흘러내리기로 그의 개성을 결판지었다 한들, 그렇다한들, 그들의 작품은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국 액자에 반듯하게 '박제'되어 벽에 걸리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쌤 길리엄이 '무슨 짓을 했는가'하면, 그는 캔버스를 염색공장의 물감먹인 헝겊처럼 벽에, 허공에 치렁치렁 거는 시도를 한 것이고, 그의 '발상'이 현대미술에 한 획은 긋게 되었는데 (쌤 길리엄이 이런 시도를 했을때, 그가 그로인해 '미술사'책에 오를줄을 그가 예상이나 했을까?)... 난 항상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1960년대, 그가 워싱턴 디씨의 작업실 창가에 앉아있을때, 창밖 거리에 빨래 널린 것을 내다보다가, 빨래 널린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는 60년대와 70년대에 주로 이런 작업을 하다가 후에 다른 시도를 하게 되는데, 아직까지 쌤 길리엄의 'hall mark'라면 단연 이 늘어진 캔바스라고 할 만하다. 미술사에게, 쌤 길리엄에 이르러, 캔바스는 더이상 박제되어 벽에 걸리기를 거부했다. 캔바스가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억하시면, 쌤 길리엄의 미술사적 가치를 잊지 않게 될 것도 같다.

(내가 나 혼자 미술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떤 작가를 기억하는 방법은 -- 그의 대표적인 작품 한두점을 머릿속에 각인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대개의 경우 그의 작품이 수십, 수백점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의 '개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낯선곳에서 내가 모르는 그의 작품과 마주 설 때에도, 결국 그의 숨결을 찾아내게 되더라. 사람은 쉽게 못 변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숨지 못한다...)  샘 길리엄은, 그냥 '헝겊에 물들여서 주렁주렁 걸어놓은 화가' 라고 설명하면 대개 회상을 하게 된다.






















 





 










3월 31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필립스 콜렉션에서 쌤 길리엄의 갤러리 토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 퇴근을 해요....  지금부터 가서 놀다가 갤러리 토크 보고 가능하면 작가 사진도 찍고, 집으로~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30. 19:0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5860

여러 형제 중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에 부모를 모두 잃고, 큰형의 집에서 더부살이로 자랐다. 가난한 형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열 살부터 일을 하여 스스로 밥벌이를 해결하고 공부를 했다. 그는 대학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천부적인 재능과 열정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에게 좋은 직장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고용한 사람들은 이런 저런 구실로 그에게 약속한 보수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그는 정해진 일 외에도 여러 가지 잡무를 해야만 했다. 보수는 형편없었고,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언젠가 공개 채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그가 보여준 실력은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취직을 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재단 측에서 ‘실력보다는 기부금을 많이 내는 후보를 뽑겠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빈자리는 실력은 형편없었으나 많은 기부금을 낸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가 실력이 있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개리에 멸시를 당한 적도 있다.

그는 빠듯한 수입으로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사색하고, 연구했다. 운이 좋았던 세월도 있었지만, 생활고는 평생 그를 따라 다녔다. 나이가 들자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에게는 백내장이 찾아왔다. 그는 ‘돌팔이’ 의사에게 두 번의 수술을 받고 완전히 실명하게 되어 마침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그가 죽어갈 때 아무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고, 그의 고용주는 그가 죽기 전 이미 후임자까지 뽑아놓고 그를 멸시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미망인에게 지급되기로 했던 연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독일의 문호로 알려진 괴테는, 그가 지은 음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천지창조 이전에 하느님이 자신과 나눈 대화.”


(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한 분은 아래 -- 더 보기)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26. 01:23




영화보다 생생했던 케네디센터 공연 끝났지만
버지니아 오페라단, 내달 3일 GMU에서 공연


나비부인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3849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19일 케네디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54)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으로 테너 가수로 유명한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감독, 무대 디자인과 의상 및 분장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이 맡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미국인 J. L. Long이 1898년 센츄리라는 잡지에 발표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1903년 이 작품을 무대 연극으로 관람한 푸치니가 영감을 얻어서 곧바로 작곡에 착수하여 1904년 초연을 하였다.

줄거리는 미군 중위 핑커톤이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키에서 15세의 일본처녀 치오치오상(나비)을 아내로 맞이한다. 3년 후 나비부인은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떠난 핑커톤을 여전히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소원대로 항구에 남편이 탄 배가 도착한다. 그러나 정작 나타난 것은 핑커톤이 미국에 가서 결혼한 아내. 나비부인은 혼자 낳아서 키운 아이를 아버지인 핑커톤의 품에 보내기로 약속하고 자결하고 만다.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나비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One Fine Day)’라는 곡은 친근한 편이다. 이 노래는 나비부인이 3년 내내 소식 한 번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르는 것이다.

‘어느 개인 날 그이가 탄 배가 나타날 거야. 나는 언덕위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겠어.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의 가슴이 터져버릴 테니까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을래….’

내가 어릴 때 구경했던 오페라는 외국어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답답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무대 위에 흐르는 자막 덕분에 가수들이 하는 노래 대사들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함께 가수들의 애절한 노래 가사에 마음을 실어 공연을 보니 오페라가 영화보다도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입장표 25달러


케네디 센터 오페라하우스의 입장표는 적게는 55달러에서 300달러까지 여러 계층의 가격이 존재한다. 무대나 오케스트라 가까운 자리에서부터 멀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이다. 나는 지난 3월 15일 공연을 보았는데 내가 아들과 함께 산 입장표는 1인당 25달러였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운 좋게 25달러짜리 저렴한 티켓을 살 수 있었을까? 나비부인 공연 소식을 듣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공연티켓이 이미 거의 예매가 끝난 상황이었고, 15일자 공연 티켓이 몇 장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젊은 예술가(Young Artist)’들이 공연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값도 일괄적으로 25달러였다.

케네디 센터 오페라하우스면 세계적인 무대이고, 무대장치나 오케스트라 모두 뛰어난데, 오직 출연진에서 약간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 같은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출연 가수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무대와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싼 표를 사놓고, 동행하는 아들에게도 ‘무대는 대단한데 출연진은 기대하지는 말아라’ 하고 설명을 해줬다.

고등학생 아들 역시, 오페라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대가 된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공연을 보니, 출연자들은 이 오페라에서 조연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이었다. 주요 무대에서 조연으로 연기하는 출연자들에게 딱 하루 주연으로 연기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서 표 값이 저렴했지만, 그들이 역량이 부족한 가수들은 아니다. 그날은 특히나 플라시도 도밍고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지휘를 하여,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는 아주 싼 값에 고급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조지 메이슨에 오는 나비부인

케네디 센터의 ‘나비부인’ 공연은 이미 끝났지만, 오는 4월 3일(일) 오후 2시 버지니아 오페라단의 ‘나비부인’공연이 조지 메이슨대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관련 웹페이지: http://cfa.gmu.edu/calendar/474/ ) 무대나 오페라단의 규모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벚꽃이 피어나는 봄날, 나비부인의 슬픈 사랑의 노래에 우리의 슬픔을 실어 보내는 것도 위안이 되리라.

Bravo, Brava, Bravi!


참고로, 무대 공연장에서 관객이 박수를 칠 때 Bravo!(브라보) 하고 외치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본래 세 종류의 감탄사가 있다. “Bravo!(브라보)”는 남성 공연자에게, “Brava!(브라바)”는 여성 공연자에게 그리고 “Bravi!(브라비)”는 다수의 공연자에게 찬사를 보낼 때 외친다.

DC 일대 공연장

워싱턴 DC 일대에는 케네디 센터를 위시한 큼직한 공연장이 많이 있다. 그래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세계적인 공연들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다. 그런데 대중성이 있는 공연은 예매 시작되자마자 가장 가격이 저렴한 가격대의 표가 금세 매진되어 버린다. 이런 저렴한 표를 사는 방법은 평소에 해당 웹사이트에서 공연소식을 체크하다가 맘에 드는 공연 소식을 발견하면 즉시 표를 예매하는 것이다. 이미 입소문 다 난 후에 표를 사려고 하면 웬만한 표는 매진되고 비싼 표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나는 7월 2일 울프트랩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맘마미아’ 표를 온라인으로 예매해 놓은 상태이다.

또한 표는 가능하면 해당 공연장의 홈페이지에서 혹은 직접 방문하여 예매하는 것이 좋다. 공연 표 판매 대행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표를 살 경우 본래 가격보다 차이가 많이 나게 비싼 가격으로 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표라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서비스료를 내야 하는데 직접 티켓 창구에 가서 사면 서비스료를 절약할 수 있다.

다음은 DC 인근 공연장들의 홈페이지이다.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하면 중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 볼 수도 있고, 공연소식을 좀더 일찍 들을 수 있다.

케네디 센터 http://www.kennedy-center.org/

울프트랩 공연장 http://www.wolftrap.org/

스트라스모어 홀 http://www.strathmore.org/

조지메이슨대학 아트 센터 http://cfa.gmu.edu

워너 극장 http://www.warnertheatre.com/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26. 01:04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2494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20여 년 전 한국에서 어느 가족을 도와줬던 일이다.

동네 이웃이었던 그분은 내가 ‘영어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주 어렵게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동생이 미국 사람하고 결혼해서 미국에 갔는데 요새 전화도 안 오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생네 집에 전화를 걸면 미국인 신랑이 전화를 받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결국 내가 그 미국인과 통화해 이웃과 미국에 살고 있던 동생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전화 통화를 하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고맙다고 치하를 했다. 내게는 영어가 별것이 아니었지만 어느 가족에게 영어는 담벼락같이 아득한 장애물이었으리라.

대학원 재학 중에 부속학교의 ESOL 교사로 일을 했다. ESOL 교사의 역할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학교에서 영어 때문에 장애를 겪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고 영어도 가르쳐주는 것이다. 학생 중에는 미국 학교에 다닌 지 4년이 넘는 중국인 남매들도 있었다. 오누이가 하이스쿨 10학년들이었는데 오빠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힘들었고 누이동생은 그럭저럭 기초 의사소통이 되어서 둘이 힘겹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미국 공립학교 학생으로 여러 해를 보내면서도 기초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안 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지각 결석을 하지 않고 자리만 꼬박꼬박 지켜도 이를 존중해주는 편이다. 이렇게 그림자처럼 세월을 보내다 보면 학년은 올라가고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다.
한국계 이민자 가족 중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이 있다. 나는 종종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자녀의 학교와 관련된 도움을 요청받는 편이다. 가족 중에 영어 소통이 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해서 학교에서 급한 일이 있을 때 내게로 연락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집은 이민온 지 수 십 년이 되었고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초적인 영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은행카드와 자동차만 있으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은행카드로 물건 사고 차 끌고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살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이민 와서 고생해 식품점이나 식당, 세탁소 그 밖의 자기 사업을 일구고 자녀 교육도 성공적으로 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중·장년층 이민자중에서 ‘영어’를 아예 손에서 놓아 버리는 사례도 많이 보인다. 영어는 해도 늘지 않고 이제는 먹고 살 만하니까, 자식들도 다 잘 컸으니까, 더 이상 영어 신경 안 쓰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땅에 살고 있는 한 영어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닥칠 수 있다. 영어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취직을 위해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 그럴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자유롭게 이웃과 친구 되기 위해서도 영어는 필요하다. 아주 사소한 전화 통화라도, 성장한 자식이나 혹은 영어 잘하는 이웃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기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영어 고민에서 해방되는 길은 영어책을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니고 영어를 익혀서 ‘정복’하는 것이리라.

봄이 왔다. 가을 추수를 위하여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으로 이제 다시 영어책을 찾아 들고 지역에서 운영하는 무료 영어 교실을 노크해 보심은 어떠하신지.

2011, 3,23 중앙일보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3. 21. 04:13





아침에 찬홍이와 포토맥강변을 걸어 조지타운에 갔다. 뺑 드 꼬띠디엥에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반숙 두개를 주문하여 찬홍이에게 서양식당에서 반숙을 '우아하게' 먹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역시나, 돌아오는 길에는 반즈앤노블에 들러서 책을 좀 봤다.






길거리 낙서중에 이렇게 귀여운 것이 보이길래 찍어왔다.  "Hilarity ensues..." 라고 하면, 옛날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신문에서 간단히 소개할때, "서울로 간 짱구.  짱구는 웃기는 일을 겪게 되는데...  바로 이렇게 밑줄 그은 부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즘은, 멍청하고 답답한 소리 해 놓고, 그거 수습할때 Hilarity ensues 라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물론 분위기는 이미 썰렁).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3. 19. 21:54


아침에, 내 친구 클레어를 성당에서 만나가지고 둘이 포토맥 강변 산책을 나갔다.  조지타운에서 함께 브런치를 먹고, 다시 강변을 산책하며 돌아왔다.  세인트 존 천주교당 뜰에 피어난 크로커스.  우리 가족은 이 예배당을 '세팔이네 예배당'이라고 부르는데, 내 조카 세팔이 (세연이)가 우리 집에서 지낼때 이 천주교 운영의 사립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오전 열시 40분쯤 조지타운 도착.



느긋하게 오후에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찬홍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여기저기 연락하더니 오늘 집에서 친구들과 모이기로 한것을 취소를 했다고, 어디 놀러가자고 한다.  그래서, "엄마하고 산책이나 갈까?" 했더니 조지타운에 가자고 한다.  다른, 인적없는 숲길에 가는 것은 싫고, 조지타운으로 가는 포토맥 강변 산책을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걸었던 그 길을 또 다시 걸어서 조지타운에 갔다.  책방에서 책좀 보다가, 조지타운 하버 쪽으로 해서 돌아왔다.

아침에 내친구하고는 이 하버쪽에 안 왔는데, 이곳에는 벌써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이른 벚꽃이다. 이제 1주일쯤 후에는 디씨 시내의 왕벚꽃이 피어날것이다.



날씨가 5월의 봄날 같이 후텁지근 하여 사람들이 소매없는 드레스나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축복같은 봄날이었다.





 







책방에서 한시간쯤 책 보다가 나오니 황혼.












Super Moon 이라는 아주 큰 달이 돌아오는 내내 내 등뒤에서 기웃거렸다.  정겨웠다. [봐라 달이 뒤따라온다] 라는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이 생각났다.  마루야마 겐지는 아직도 그렇게 신비로운 소설을 쓰고 있을까?  겨우내내 별로 운동을 못하다가, 몰아서 조지타운 두바퀴를 때리니 피곤하기도 하고 몸이 가뿐하기도 하고.  봄은 온 것이다. 해마다 내 육신은 낡아가지만, 그래도 봄은 여전히 축복처럼 내 무릎위에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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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3. 13. 04:37




밤사이에 비가 또 내렸던 것일까?  어제 나가서 강이 거칠게 흐르는 것을 보고 왔는데, 오늘 아침에 찬홍이와 나가보니 강이 더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배를 빌려 타는 Fletcher's Cove 의 포토맥강변 선착장도 물에 떠내려가 버렸고, 사람들이 모여서 고기를 먹고 놀던 피크닉 테이블도 모두 물에 잠겼다.

베가 떠있는 곳이 배가 오기 전만해도, 사나흘 전에도 푸른 잔디 공원이었는데, 워싱턴에서 네번째 봄을 맞으면서 이곳이 이렇게 잠긴 것을 처음 본다. 정말 지난 며칠간 내린 비가 엄청난 폭우였던 모양이다.









나름, 이제 살을 정리해보겠다고, 순순히 엄마를 따라 나선 찬홍군.  엄마처럼 먹고, 엄마처럼 운동하면, 뭐, 대충 적당한 체중을 유지할수 있겠지...




저 강이 '파도 소리'같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벌컥벌컥 흘러 내려간다.  거친 물살을 보니 속이 다 후련...



개나리는 어제보다 많이 피어 있었다.
봄날에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제 곧 워싱턴의 벚꽃들도 미친듯이 피어날것이다.





아침 아홉시 반쯤을 가리키는 조지타운 시계탑. 내일 부터는 한시간 앞당겨진다. Daylight Saving 이 내일부터 시작된다.
개나리가 이렇게 피어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 아 제삿날이 다가온다. 봄날은 훌쩍 가버릴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3. 13. 04:07

http://www.sprinkles.com/cupcake-bakery-locations/washington-dc-georgetown/


아침에, 찬홍이하고 포토맥 강을 지나 조지타운까지 산책을 나갔다.

찬홍이가 모처럼 장거리 산책을 나온것을 '격려해주기 위하여' 조지타운 Le Pain Quotidien 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미리 찬홍이가 점을 찍어 둔 컵케이크 가게에 들렀다.  그러니까 이 컵케이크 가게는 Le Pain Quotidien 과 약 50미터쯤 떨어진 동일한 거리에 있는데, 최근에 문을 열은것 같았다.  3월에 개업을 했을 것이다.  그 위로 올라가면 Goergetown Cupcake 이라는 꽤나 잘 나가는 컵케이크점이 있는데,
http://americanart.tistory.com/788  <-- 이 페이지에 그 가게에 대한 글이 있다.

어제 나갔을때도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약 10미터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늘 찬홍이하고 모처럼 나갔으니까 '가는 길에 조지타운 컵케이크 사줄게' 하고 내가 선심을 썼는데, 찬홍이는 줄 서서 사먹어야 하는 컵케이크에 반감을 갖고 있던터라, 인근에 새로운 컵케이크 가게가 생긴것에 무척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가게는 한산해보였다. (아직 입소문이 많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찬홍이와 내가 들어서자 점원들이 무척 반갑게 맞아 주었다.

포장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상자에 담아주길래, 아까워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아서 컵케이크를 먹으려고 하자 점원이 눈치 빠르게 접시와 포크, 냅킨을 가져다 주었다.  접시는 종이 접시. 포크는 나무 재질이었다. 고급스러워보이긴 했는데, 일회용 나무 포크를 한번 사용하고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사실 컵케이크는 포크 없이 먹어도 되는데...)





나는 딸기 크림 케이크, 찬홍이는 바닐라 초콜렛 케이크.  가격은 조지타운 컵케이크와 비슷. 한개에 3.5 달러. (이거 하나를 그 돈을 주고 사먹은줄 우리 엄니가 아시면, 기절을 하시겠다...)   그냥, 찬홍이하고 장거리 산책을 한 기념으로 정말 달콤한 것을 먹고 싶었다.  우리의 시간이 달콤함으로 기억될수 있도록.








창가에 두개의 테이블이 있는데, 그중 하나에 우리가 앉았다.  그런데 썰렁하던 매장에 찬홍이와 내가 앉아서 컵케이크를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가족 단위도 여럿이었고, 한상자 포장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여럿이고.  그러니까, 창가에 사람이 앉아서 먹는 것을 보면, 길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안심하고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찬홍이는 점원들의 환대와 싹싹함, 그리고 가게가 조용한 것에 대해서 매우 맘에 들어했다. (조지타운 컵케이크의 그 고압적 태도가 꽤나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좀 아니꼬워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줄 서는 풍경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아마 이 가게도 곧 매우 바빠질걸...우리들은 또 줄을 서야 할걸...




이 사진의 포인트는,  창밖 조지타운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분. 초록 바구니 파란 잠바가 참 예쁘다.



케이크 부분은 단맛이 없이 순해서 참 맛있는데, 딸기크림 부분이 좀 달아서, 크림은 다 못먹었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예쁘고...비싼... 컵케이크로 시간에 '달콤함'이라는 도장을 찍어보고 싶다.






그 앙증맞고 예쁜 나무포크는 '기념'으로 가져왔다. 버리기가 너무 아깝고 귀여워서.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3. 12. 06:44






지난 이틀 사이에 이 지역에 폭우가 내렸다.  아침에 비가 그쳤길래, 물구경 하러 포토맥 강에 나갔다.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서 천명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는데, 나는 물구경을 나갔으니 미안하다.  삼가 명복을 빈다.)  비에 흠뻑 젖은 세상이 촉촉하였다. 바람이 불었으나 부드러운 물기를 품고 있었다.




키브리지 아래, 여전한 낙서.  새로 생기고 지워지고 다시 생기는 낙서. 들풀 같구나.



포토맥 강변에서 조지타운으로 이어지는 철교.  사실은 저 물속에 반사되는 건물이 신비로워 보여서 사진을 찍은 것인데, 축소시키니 내 눈으로 본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산수유, 혹은 산동백이라고 부를 것이다.  영어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개나리보다도 먼저 피어나는 봄꽃. 아 이 둑길의 개나리들도 봉우리를 품고 있었다. 내일 모레쯤 확 피겠지.




조지타운 나가면 '내집'처럼 들르는 곳. 반즈앤노블.  오랫만에 '종이책' 가게에 들러서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The Tell-tale Brain 은 라마찬드란이라는 뇌과학자가 저술한 책인데, 전에 이 분의 책을 흥미있게 있었던터라서 책이 어떤가 보려고 한 챕터 정도 읽었다.  전에 내가 읽은 내용도 다시 논의가 되고... 어쩐지 좀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책 사기를 일단 보류.





미술책도 실컷 보고, 철학책도 뭐가 있는지 살피고, 결국 'connected' 라는 제목의 책을 일부 읽어보고 ...(집에 와서 아마존에서 킨들로 구입했다.).






조지타운의 Old Stoe House 뒷마당.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봄비처럼 흘러내린 것이 하도 예뻐서 카메라에 담았는데, 내 예상보다 더 좋은 그림이 나온것 같다.






이 가구점의 '인형가족'이 이 사진의 포인트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에도 이 인형들을 사진 찍은적이 있었다.  그때는 다른 의자에 앉아있었지... 전에 찍은 사진들을 찾아서, 다른 의자에 있던 동일한 가족을 찾아봐야지. 펠트로 만든 인형인데, 나도 갖고 싶다. 인형...



키브리지 아래의 보트 하우스. 사진에는 이 보트하우스의 초록색이 제대로 안 찍히는것 같다. 초록색인데...





이 길을 3마일쯤 걷는거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왼편에 강. 오른편에 수로)







황톳물이 거칠게 흘렀다.  나무들이 물에 잠기고. 평소에 '사슴의 언덕' 같던 습지가 물에 잠겼다.





그리고,
나의 비밀의 화원.  야생 수선화 밭.
수선화들은 씩씩하게 잘 크고 있었다. 







이 수선화는 아마도 '겹수선화'일것이다.  며칠후에 오면 많이 피어있을것이다.




이 나무 뒤로 보이는 것은 습지의 물웅덩이. 그리고 저기 나무 너머로 포토맥강. 
온통 물과 이끼의 나라.  요정들이 사는 물의 나라.
오랫만에 물냄새, 이끼냄새, 흙냄새를 맡았다.
이끼가 그리웠어.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9. 20:5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65796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1932~2006) 기획전이 국립 미술관의 동관에서 오는 13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다.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은 서관(West Building)과 동관(East Building)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관에는 세계 고전 미술이 망라되어 있고, 동관에는 현대미술이 주로 전시되고 있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2009년부터 In the Tower(탑에서)라는 타이틀로 타워 전시장에서 장기 기획전을 시작했다. 첫해인 2009년에는 미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인 필립 거스톤 (Philip Guston)을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기획전이 있었다. 이들에 이어 올 봄에 세 번째 기획전으로 백남준씨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6개월 이상 관객들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전에 소개된 필립 거스톤이나 마크 로스코는 특유의 자신만의 화법으로 미국 미술을 세계 미술계에서 한 단계 도약시킨 유태계 거장들이고, 한국계 백남준은 시청각 예술과 테크놀로지와 세계의 신화를 융합시킨, 미국이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거스톤과 로스코가 전시되는 중에도 나는 이 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었는데, 그 자리에서 백남준씨의 기획전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2월 국립미술관에 갔던 나는 백남준씨의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는 안내 포스터 앞에서 한국에 두고 온 친정 오라비를 만난 듯한 각별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는 달력의 3월 13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개관하는 날 가서 그의 작품들을 보려고. 그리고 학생들과 필드트립을 갈 계획도 세워두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백남준의 입체적 비디오 아트 작품들 이외에 그의 회화나 스케치 작품도 별도로 공개가 될 것이고, 그의 삶과 예술과 관련된 영화도 한편 틀어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설령, 백남준에 대하여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고 해도 관객이 현장에서 그를 만나고 그를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1월 5일자 칼럼에서 국립미술관에 있는 그의 ‘엄마’라는 작품과, 2월 2일자에서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소장품인 Megatron/Matrix라는 작품을 소개한바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 국립미술관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거나 임대해온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는 백남준을 위시한 현대 비디오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한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 미술관(Virginia Museum of Fine Arts)에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부처(Buddha, Watching TV)’를 만나 볼 수 있고, 버지니아 남부 해안도시 노폭(Norfolk)에 있는 크라이슬러 미술관(Chrysler Museum of Art)에서는 햄릿 로보트 (Hamlet Robot)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라는 기획전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도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비디오 아티스트’ 정도로 알았지만, 그 당시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회화 작품들이 내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1970년대 초반에 그가 스케치하듯 그려낸 작품들 속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스마트 폰’의 화면 같은 장면들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 때 백남준씨가 내 뒤통수를 한대 가격한 듯 한 충격을 받았다. 백씨는 오십 년 혹은 백년 후의 세계를 앞서 간 예술가처럼 보였던 것이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공부를 멈춘 적이 없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번개 같은 아이디어를 말로 천천히 표현하지 못해서 말이 종횡무진 건너뛰었다는 백남준. 그가 3월 13일, 우리 곁에 온다. 미국이 자랑하는 국립 미술관의 타워에 부처처럼, 선지자처럼, 그의 작품들이 온다. 전시회는 10월 2일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의 예술은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국립미술관의 백남준 특별전 관련 공식 페이지: http://www.nga.gov/press/exh/3376/index.shtm
Posted by Lee Eunmee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현재 전시중인 위의 작품 Merahi Metua no Tehamana (The Anscestors of Tehamana, 1893) 를 발견했을때, 나는 Mary Cassatt 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메리 커셋의 화집에서 익히 보던 줄무늬 옷 때문이었다.

위의 고갱의 작품속의 줄무늬와 아래의 메리 커셋 작품속의 줄무늬가 색상에서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내게는 동일한 패턴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Mary Cassatt (1844-1926) 과 Paul Gauguin (1848-1903)이 활동하던 당시 프랑스나 유럽에서 이런 패턴의 직물이 많이 사용된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게 된다.  위에 커셋과 고갱의 생몰 년대를 표시해 놓았다. 
 

  1. 메리가 4년 먼저 태어났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고
  2. 이 두사람들이 '인상파'라는 화가들의 리그에 공히 소속해 있었고,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메리 커셋이 미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작업을 했으니 간접적으로라도 교류가 있을 법도 하거니와
  3. 당시의 유행처럼 이들 모두 일본 판화에 관심이 많아 판화를 직접 제작하거나 일본 판화의 구도를 자신들의 작품에 구현하기도 했다는

여러가지 공통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두 화가가 '줄무늬' 옷을 통해서 얻으려 한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일본판화가 보이는  단순성 -- 그 단순성이 주는 힘, 그것을 의도했을까?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3. 02:26




http://search.koreadaily.com/search/search_result_news.asp?sch_col=news&query=%C0%CC%C0%BA%B9%CC%B1%B3%BC%F6&revjamo

지난 8월부터 매주 수요일에 나오는 내 칼럼 스크랩을 오늘 모두 정리 하였다.  매주 신문이 배달되면 내 칼럼이 실린 면을 잘라내어 별도의 플라스틱 봉투에 차곡차곡 쌓아 왔다.  그냥 그렇게 쌓아 놓은 것을 지난 겨울에 박선생이 와서 살펴보고 읽어보고 하더니 귀한 것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다  버리면 안된다고 스크랩북을 만들라고 당부를 했다.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은 했는데, 지난 가을 학기에 나는 도무지 아무런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내가 지난 가을을 어떻게 살아서 버텨냈는지 돌아보면 용하다... 무사히 그 지옥같은 터널을 지난것을 두고두고 감사한다.)

오늘은 좀 여유가 나길래, 작정을 하고 그 스크랩더미를 가지고 학교에 출근을 했다. 그래가지고, 차례차례, 잃어버린것 하나도 없이 순서대로 엮고, 마지막으로 '차례' 표와 커버까지 만들어서 완성시켰다. (뭐 대충 했지만.)

다 모아 놓고 보니, 나는 지난 2010년 8월 18일부터 매주 수요일에 맞춰서 원고를 썼다. 대개는 월요일 오후에 송고를 했고, 편집팀에서 원고를 받았다는 확인을 해 주었다. 당시에 허태준기자가 편집국장을 하고 계셨고, 유승림 기자와 함께 내 학생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허선생으로부터 칼럼 제안을 받았다. 매주 새로운 글을 써 보내는 일은 한편으로는 약간 긴장이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즐거운 일이다. 때로는 '뭘 쓰지?'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뭔가 새로운 글을 써 보내야 한다는 긴장감은 나를 '깨어있게'만들기도 했다. 나는 이런 긴장감을 좋아한다.





다 모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보니, 그동안 29 편의 글을 써 보냈다. 내 글이 정리된 신문조각을 정리하면서,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을 뽑아보았는데, 내가 가장 유쾌하게 적은 글은 9월 29일 '보노보는 왜 오렌지 주스를 사양했는가' 이다. 글쎄...내가 왜 이 글을 좋아하는지 나도 알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영장류의 이야기 (동물 행동학)를 좋아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의 행동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 (아니,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동물 -- 인간을 포함한 모든 '타인'들에 대해서 늘 궁금한 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는 궁금한게 많다.)

내가 가장 아끼는 글은 12월 8일에 실린 '사시사철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이 제목은 편집자가 만든 것이고, 내가 원래 송고할때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나는 내가 쓴 이 글을 읽을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이 글은 십여년전 인터넷의 어느 매체에 썼던 글을 다듬은 것인데, 그러니까 10년가까이 내가 무척 아끼던 나의 글이었다. 이 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눈물이 난다. 나는 내 글을 읽으면서도 '감동'을 받고 울곤 한다. 나르시시즘의 극단적인 현상일것이다. 내 글이 맘에 들었던지 LA 지역에서도 게재를 한것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얘기니까... 하하하.)  LA 에서는 '이 아침에'라는 코너에 가끔 내 글을 옮겨다 싣는듯 하다.




원래 뭔가 스크랩 하는 것이 나의 취미이기도 했다.  컴퓨터 사용이 일상이 되면서, 이제는 정보나 글을 컴퓨터에 담는 문화가 되면서, 심지어 사진마저 디지탈 사진으로 쌓으면서, 손에 잡히는 스크랩을 잘 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손으로 만들어 놓고 보니 이 역시 '데이타' 구실을 하게 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고, 정리된 자료는 우리에게 '지도'와 같은 구실을 제공한다. 정리해놓고 기분이 좋아서 기록을 남긴다. 내 글이 '평화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