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4. 30. 10:26

학교 구석에 내가 심심파적으로 일구어 놓은 작은 정원에 학교 정 반대 구석의 연구실에서 서식하는 동료가 종종 산책을 나온다.  나는 연구실에 앉아서도 멀리서부터 느릿느릿 들려오는 그의 발소리를 구별해 낼 수 있다.  하루에 한번은 내 연구실을 지나쳐 나의 정원으로 오니까.   언젠가 그의 발소리가 끊겼길래, 복도에서 만났을 때 "내 정원에 왜 안와?"하고 물어보니, "너에게 방해가 되는것 같아서"라고 했다. 참 사려깊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안심 시켰다.  "나는 사람 지나치고 그러는거 별로 신경 안쓰여. 나 자체가 시끄러운 사람이고, 나는 길거리에서 공부를 해도 방해를 안 받아. 네가 안 오면 궁금해져. 어디가 아픈지."  그래서 그는 이제 안심하고 오고 싶을 때 오고 간다.  그렇게, 나의 정원을 보려고 산책을 나왔다가 내가 한가해보이면 열린 내 연구실 문앞 의자에 앉았다 가는 동료들이 하나, 둘, 조용히 늘고 있다.  나는 한가하지 않지만, 대체로 그들을 환대하는 편이다. (일은 늦어지지만,  죽고나면 다 소용 없는일. 사람이 올때 사람을 반기는게 남는 장사지.  그런 생각으로 조금씩 느릿느릿 해진다.  나이 먹어가는 자의 여유같은거다.) 

 

곧 미국집으로 갈거라는 얘기를 하니, '걱정 안되나?' 묻는다. 2월에 돌아올때 내 아들이 물었던 똑같은 질문이다. (한국 가는것) 걱정 안되나?  아들이 물었었다.  이제 미국으로 간다니까 미국인 동료가 내게 묻는다. 미국 가는것 걱정 안되나?  걱정을 한들, 안한들 무슨 소용인가. 뭐 가서 할 일이 있으므로 갈 뿐이지. 지금 상황이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도 미국에 갈 생각을 안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미국에 간다니 놀라운가보다. 

 

그 미국인 동료교수가 나의 정원에서 들려준 이야기.

 

버지니아의 친구들과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하던중, 그의 집 거실에 조롱조롱 빨아 널어 놓은 다섯장의 알록달록한 마스크를 발견한 버지니아 친구가 물었단다.

 

 

* 버지니아: 저기 뒤에 보이는것 저것이 다 마스크야? 

* 한국: 응, 우리 딸이 사용하는거야.

* 버지니아: 네 딸거라고? 저렇게나 많아? 네것도 있어?

* 한국: 음..내것도 있지. 

* 버지니아: 저걸 다 어디서 사지?

* 한국: ...음...아무데나 가면 있어.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바로 오기도 하고.

* 버지니아: 바로 온다고? 일주일?

* 한국: 아니...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당일에 오기도 하고. 일주일씩 기다리지는 않지...

* 버지니아: 뭐라구? 당일 온다구? 일주일씩 기다릴 필요가 없다구? 정말이야?

* 한국: 응...

* 버지니아: 거짓말. 말도 안되는 소리!  그게 가능해? 너 지금 농담하는거지?

* 한국: 아닌데, 그냥 여기는 마스크 필요하면 나가서 그냥 사면 돼. 

* 버지니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러니까, 이 대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미국인 내 동료가 내게 들려준 얘기 -- 이건뭐 SF소설의 평행이론 있쟎아. 어딘가에 동시에 존재하는 가상의 사회 같은거. 분명 동시에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지만 감지하지 못하는 가상의 공간 말야.  버지니아에 있는 내 친구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의 상황에 대해서 그런 '가상공간'처럼 인식을 하고 있어. 참 신기하지. 

 

내 동료의 설명으로는 그 뭐  **94 인증받은 마스크는 미국인들에게는 자동차의 '람보르기니' 같은 호화 사치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미국 갈때 그냥 보통 마스크 사갖고 가서 길거리에서 하나에 오달러에 팔면 될까?  그랬더니, "그러면 너는 돌아올 때 람보르기니를 한대 사갖고 올수도 있을거야" 한다.  (물론 농담이다. 나는 면마스크에 예쁜 실로 수를 놓아서 친구들에게 선물 할 생각을 하고 있다.) 

 

(ㅋㅋㅋ, 어릴때 미국은 내가 상상하기도 힘든 '천국' 같은 곳이었지. 가상의 세계.  지금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그런 상상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얼마나 굉장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 타인의 시선을 빌려야 알 수 있게 된다.

 

그나저나, 이런 가상의 선진국 같은 나라에서 '물류창고 화재'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것 -- 여기서 나는 슬픔을 느낀다.  한국은 아직도 '가상의' 어딘가 '석연치 않은' 선진국일것이다.  한국의 선진성에는 정말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석연치 않음' 같은것이 있다.  돌아가신 분들께 참 미안하다.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왜 그렇게 실없는 사고로 내 이웃이 희생을 당해야 했는지.  어딘가 석연치가 않아요.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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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or2020. 4. 29. 11:02

 

 

김정은의 행방불명에 국내외 언론이 연일 여러가지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이즈음. 작년에 봤던 영화를 상기하면서,  뭐냐 이거, 설마 파주에 있는건가?

 

말도 안되는 소리인건 아는데, 영화 같은 상황이 진행중인거라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아, 통일이 어서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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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28. 09:05

https://www.ajunews.com/view/20200426123058742

 

윤석열 검찰총장, 보수단체 시위 현장에서 목격...대검 병원갔다 오는 길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말  강남에서 열린 극우보수 단체의 집회장 부근에서 목격돼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26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5일 강남역 인근에서...

www.ajunews.com

다른 것은 모르겠고, 한 시민으로서 산책하는것 가지고 왈가왈부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사진에 보면 다른 시민들 다 마스크 하고 돌아다니는것 안보이는가?

 

마스크를 하셔야지. 남들 다 하는 마스크, 쓰다가 답답해서 그냥 내리고 귀에 걸은것도 아니고 아예 그냥 안 하시면, 남들은 다 바보이고 겁쟁이라서.  검찰총장님은 겁나는게 없으셔서? 

 

마스크 하고 다니세요 검사님.  마스크.   세상에 마스크 하고 다니면 프라이버시도 보호되고 좀 좋아요. 미남이시지만 남들이 마스크 할 때는 그냥 하세요. 남들을 위해서요. 남들을 위해서.  제발.   (도대체 높은데 계신 분들은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잘 모르시는 듯. )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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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28. 08:54

https://news.joins.com/article/23764612

 

통합무슨당(당 이름 생각 안남)의 비대위원장이 될지 말지 모르겠는 김종인 할아버지의 '70년대생' 대망론은 극히 문제 있는 아이디어다.  이유는, '나이 제한'을 공공연하게 명백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롭게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배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한 사람이 백살이라고 해서, 오십살이라고 해서, 삽심살이라고 해서 지도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옛날에, '40대 기수론'으로 스타가 되신 정치인도 있었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40대라고 못 박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특별하게 문제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와 관련된 정치적 언행은 문제가 된다. 

 

 

40대라고 못 박지 말라.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30대 국가 지도자도 나와서 잘 하고 있고, 50대도, 60대도, 70대도, 110세대도 지도자 역할만 잘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김종인 할아버지부터 일단 집으로 돌아가 테레비나 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던가. 자기 자신은 테레비에 매일 노인의 얼굴을 비추며 노익장을 과시하시면서 - 차기 지도자는 40대라니.  당신부터 좀 뒤로 비키시던가요. 할아버님.  당신이 테레비에 얼굴 비출때, 다른 할아버지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라?  그건 무슨 경제학적 논리이신지요?

 

(나이제한: 그 무슨 썩어빠진 아이디어란 말인가...)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 이거 노인비하거든요. 대한노인회 어르신들 총궐기 하실 내용이에요.  가만히 있으시면 바보되는거거등요.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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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27. 11:48

둘 다 싫어요. 꺼져 주세요. 

 

아들딸 호위 무사 (엉터리 인턴십 하고, 온라인 숙제 도와준것 맞쟎아요. 네? 자식 앞에 안 부끄러우세요? 자식위해서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짓 하는거 정말 부끄러운거쟎아요. 이제 그만 조용히 사세요. 지겨워요. )

 

장모 호위 무사 (장모 감싼거 부끄럽지 않으세요? 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집안 단속부터 하세요 지겨워요.)

 

조씨 없어도 윤씨 없어도 우리나라 잘 굴러갈겁니다. 당신들이 코로나보다 더 무서워요.  바이러스는 백신 만들면 되지만 인간의 악덕은 백신을 못 만들어요. 그러니 둘다 꺼져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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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21. 11:46

결국,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를 기민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월호'의 트라우마 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판을 짠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를 대충대충 관리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이 나라 국민은 학습한 대로 다시 새 판을 짜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조심 조심 조심 최선을 다하고 있고,  문제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 국민의 경각심을 더욱 일깨우고 있을 것이다. 

 

결국,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이 현재의 우리 삶을 지탱시켜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월호의 기억이 없다면 -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도 영예롭게 퇴임하고, 그럭저럭 썩어 문드러진 일들이 계속되고 있었다면 코로나를 대하는 국가, 국민의 자세도 대충 이웃나라들과 닮아 있었을것이다.  세월호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영혼들이 지금 이나라를 지탱시켜주고 있는게 아닐까? 그들에 대한 기억이 말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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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21. 11:38

일본 수상의 미니멀리즘 마스크

 

일본 수상이 착용한 마스크가 기묘하게 작아 보여서, "뭐지? 왜 저렇게 작지?"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니까."

 

그렇구나, 이어령 선생은 다 알고 계셨구나.  

 

요즘 아베가 이끄는 엉망진창 일본의 코비드 상황을 보면서 슬그머니 드는 깨달음 -- 아...우리 조상들이 끊임없이 일본의 침략에 고통을 겪으면서도 일본을 만만히 보고 우습게 알던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근접한 이웃나라 한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져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저들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것이 과연 국가인것인가?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정부의 수장을 갈아치울 생각도 못한다는 말인가?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만만히 보던 이유가 있었던거야. 

 

한국에서 저지경이 됐으면, 벌써 탄핵하고 정부 갈아치웠지.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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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하하하하하 너무 적합한 표현이에요!!!

    2020.05.19 03: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20. 4. 17. 09:44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서 지난 1월부터 4월에 걸쳐서 한국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벌어지는 코로나 상황을 관망하면서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영어 교육 분야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된다.

 

 

 

1월에 코로나 문제가 시끄러워질때, 내가 미국집에서 한국으로 떠나려하자 아들이 깊은 시름에 잠겼다. 중국과 가까운 한국이 위험해보이는데 이 안전한 '미국'에 그냥 있지 왜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근심이었다.  내 입장은 - 나는 여태 고맙게 한 인생 잘 살아왔고, 설령 오래지 않아 죽어도 하느님께 감사한 편이다. 아무 유감없다. 물론 한국에 대한 믿음이 그 바탕에 있기도 했다.  '설령 아파도 그걸로 죽게 내버려두겠어? 한국에서 병원이 얼마나 가까운데. 미국보다 낫지.'  그런 믿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2월말에 개학을 했는데, 마침 대구에서 상황이 발생하고, 미국에서 왔던 교수 한두명이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자기는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이곳이 위험해서 안되겠다고. 그런데 그리고 2-3주만에 교수회의에서 우리들은 킬킬댔다--"야 그 아무개 지금 후회 막급이겠다..."   남아있던 동료교수도 말했다, "뉴욕에 계신 아버지가 나보고 꼼짝말고 한국에 있으라고 당부를 하시더라"  그랬다, 한국의 상황 장악력이 미국보다 현실적으로 보였다.  지금 동료 미국인 교수들은 학기가 끝나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서 일 할 궁리들을 하고 있다.  한국의 안전망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말 안듣고 마스크도 안쓰고 돌아다니더니, 지금은 꼬박꼬박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고, 서로 마스크를 쓴채 안부를 묻는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총명하게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매일 아침 (미국의 저녁) 프레스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걸핏하면 '우리가 한국보다 더 잘한다'고 말을 하는데, 이는 열등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불안하다는 증거지. 그를 보면서 '한국 정말 잘 하고 있구나' 확인한다.  한국은 이제 열등감을 흐르는 강물에 흘려버리고 소신껏 잘 해 내면 될것도 같다.  우리 이제 더이상 가난뱅이, '한국전'의 아이들로만 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잘 살아내고 있다. 

 

 

 

최근에 교사들을 위한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컨설팅 제의가 들어왔다.  여름에 교원교육 목적의 프로그램을 진행해줄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전제'가 있었다.  강사진은 모두 '원어민'으로 해 달라고. 그래서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는데, 실무담당자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이 제일 잘 가르치실텐데 그 사람들이 원어민만 강의해야 한대요."  나는 픽 웃었다. 늘 당해오던 일 아니었나.  20년전에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영어'를 원어민만 잘 가르칠수 있다고 믿고 있다. 교사를 교육하는 상급 교육기관에서도 똑같은 시선이다.   사실 이러한 한국 내부에 스며있는 '비원어민' 혹은 '한국인 영어교육자'에 대한 싸늘한 시선에 넌더리가 나서 몇해전 이곳으로 자리를 옮길때도 나는 고민을 했었다.  미국에서는 내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데, 내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드러나게 차별하는 일은 없는데 -- 한국 가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나를 '원어민'이 아니라며 무시하러 들겠지.  그걸 참아내야 하겠지.  그래도 가야 하는걸까?   뭐 그런 고민을 좀 했었다.  그래도 내 나라니까 내가 온 거지. 뭐 특별한 애국심 그런것도 아니다. 떠날때가 되면 휙 갈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도 바쁘니까 내가 강의를 할 수 있을지 말지 모르니까 나는 상관없는데 한가지 생각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내 제안은 이런 것이다.

 

 

 

한국의 영어교사들에게는 집단 트라우마 같은 - 가슴에 가시 같은 것이 박힌 것 같은 아픔이 있다. 그들이 토플 만점을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아픔. 그것은 그들이 절대 절대 절대 원어민이 될 수 없으며 -- 원어민이 아닌이상 절대 좋은 영어선생이 될수 없다는 확신 - 그 확신의 내면화 - 그 확신이 가슴에 가시처럼 콱 박혀있다는 것이다. 

 

 

 

왜 그러면 그들에게 그런 확신의 가시가 박혔을까?  아마도 그들이 대학을 다닐때, 사범대 교육을 받을때, 미국에서 박사하고 왔다는 교수님들이 영어로 강의도 못하고, 안하고, 자신없어하고 뭐,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들 머릿속에 '한국인 교수는 할수 없어'라는 인상의 박혔을 것이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들의 자신없음을 제자들이 그대로 본받아 '우리는 안돼'가 내면화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큰 그림의 일부이다. 다른 문화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말을 안하겠다).  그래서 자신이 우수한 영어교사이면서도 선생님들 스스로 '나는 자신이 없어. 나는 안돼'라는 가시를 박은채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이분들이 방학기간중에 수십시간의 인텐시브 영어 프로그램에서 '원어민'강사에게서 영어 수업을 들으면 가슴의 가시가 빠질까? 천만에, 그들은 '원어민'에게서 영어를 배웠고, 여전히 '원어민'만이 최강의 영어선생이라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 허경영같은 사기꾼의 사기놀음에 왜 사람들이 넘어가는가? -- 허경영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가 확신을 가지고 눈을 빛내며 떠들면 순진한 사람들은 그의 확신에 감염된다.  교육자도 마찬가지이다. 사기를 치라는 것이 아니다. 교육자가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눈을 빛내며 학생들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들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자 스스로 자기확신이 없고 '원어민이 아니라서 나는 안돼. 나는 가짜야'라는 신념을 가지고 서 있는데 학생이 뭘 배우겠는가.  '나는 가짜야'를 배우는거지. 

 

 

그런 분들이 현장으로 돌아가 영어를 가르칠때 -- 눈치빠르고 영리하고, 영혼이 투명한 학생들은 교사의 가슴에 박힌 가시의 정체를 읽는다. 그리고 역시 동일한 내면화 작업에 들어간다 --"원어민도 아니니, 저 선생님한테 배워봤자..." 

 

 

선생님이 자신이 없으면 학생은 그것을 영특하게 읽는다. 우리 뇌의 '미러셀 - 거울 세포'가 기가막히게 읽어낸다.  학생이 악해서가 아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학생에게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만약에 발음이 좀 엉성해도 선생님이 자부심을 가지고 태평하게 영어를 가르치면 -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자부심과 태평함을 그의 영어수업에서 배울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영어수업에 긍정적으로 다가설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님 스스로가 '내 영어가 이만하면 쓸만해. 나는 잘 가르칠수 있어. 원어민이 별건가, 영어만 잘 하면 되지' 그런 자부심이 있으므로 학생들이 그 자부심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선생님들이 정말로 만나야 할 사람은 '원어민'이 아니고 '나'다.  원어민이 아니면서 원어민과 문제없이 함께 일을 하고, 원어민보다 더 이론에 밝으며, 원어민들을 진두지휘하는 '나'같은 교육자에게서 교육을 받야야, 그 선생님들께서 '아, 영어는 그냥 하나의 도구인것이고, 내 발음이 원어민이 아니어도, 내가 영어를 잘 가르치는데는 문제가 안되는거구나'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런 믿음으로 교단에 서야 학생들이 선생님의 그 자부심을 흡수하게 될 것이 아닌가?

 

 

왜 한국인 교수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단하게 강의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코로나를 장악하듯, 내가 영어교육을 장악한 현장을 그들이 본다면, 그들의 시각이 바뀌지 않을까?  뭐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면서 --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하품).  아, 그래서, 나도 강의를 하기로 했다, 이 늙수그레한 반백의 할머니/아주머니 교수도 수려한 영어로 강의를 하는데 젊고 지혜로운 한국의 교사들이 왜 영어를 못하겠느냐구. 할수 있어. 할 수 있다구.  과연 여름방학 즈음에 캠퍼스가 개방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음, 코로나가 이제 좀 지는 꽃잎과 함께 떠나주었으면.  코로나야 벚꽃이 지듯 너도 이제 꽃잎처럼 가라.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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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17. 09:17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 그것을 원컨 원치 않건간에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하면 여러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장점도 있다.  내가 예상치 않던 장점을 기록하겠다 (나중에 연구 보고서를 써야 할지도 모르므로).

 

 

일단 학교나 학생들에게 기술적 제약이 크게 없다는 전제에서 (모두들 데스크탑이나 랩탑등 적합한 도구를 갖고 있고, 인터넷에 문제가 없는 상황) ZOOM 이나 Collaborative Class, Webinar 등 화상회의 식으로 진행하는 수업의 장점은 상호작용 (interactive collaboration)이 어떤 면에서 교실 수업보다 효과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1. 수업중에 토론이나 질문을 던질때, 어떤 학생은 목소리가 크고 어떤 학생은 잘 안들리는 개미소리로 어물거릴때가 있다. 앞자리 학생이 하는 말을 교수는 알아 듣지만, 뒷자리에 앉은 학생에게는 들리지도 않는다.  친절한 교수는 앞자리에서 옹알거린 학생의 발표 내용을 뒷자리 학생에게 다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뒷자리에서는 듣지도 못한 채로 진행되기가 일쑤다.  그런데, 화상회의식 수업에서는 모두의 목소리가 일정하다. 어떤 학생이 말하는 것을 교수가 잘 못들으면 다른 학생들도 잘 못들고, 교수가 정확히 들은 내용은 다른 학생들도 정확히 들을수 있다 (모두다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므로). 그런 면에서 '음성의 평등성'이 주어진다 (이 음성의 평등성을 뭐라고 만들어낼까 연구중이다. Equality in voice 라는 표현을 쓸까 생각중이다. 온라인 교육 전문 학회에서 이미 이런 내용을 발표 했을지도 모른다.) 

 

 

2. 수업자료를 공유하며, "이 문장이 compound sentence 인지 complex sentence 인지 분석해보라"고 하면, 해당 학생은 공유되는 문장에 선을 긋고 표시를 하면서 분석을 해 낸다. 그의 분석이 맞건 틀리건 간에, 현장에서 동시에 동등하게 내용을 공유하고 서로 코멘트가 가능하다.  교실에서 진행한다면 누군가 칠판앞에 걸어나와 칠판에 표시를 하겠지만, 온라인에서는 오고갈 필요없이 그자리에서 쓱싹 이루어진다. 이것도 꽤 편리하다 (물론 이렇게 활발하게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교수가 꼼꼼하고 세세하게 미리미리 수업자료를 챙겨야 한다. 대충 준비는 대충 수업이 되고 만다.)

 

 

 

위의 두가지를 묶어서 말한다면, 온라인 화상회의식 실시간 수업에서, 교수가 독재를 하지 않고 시스템을 온전히 공유한다면, 그리고 학생들이 일정 교양과 품위를 유지한채 수업 활동만 한다면 - 온라인 수업도 아주 효과적인 교육방식이다.  (여기서 교수와 학생의 태도에 대한 전제를 붙인 것은, 교수가 학생들 마이크나 비디오 다 닫아버리고 혼자 떠들고 있다거나, 혹은 교수가 학생들에게도 동일한 권한을 줬는데 학생이 장난으로 이상한 것을 올리고 못된 짓을 하거나 이런 잘못된 행동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가 일방적인 강의만 하고 끝내는 거라면 사실 실시간 화상회의식 수업은 별로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일방적 강의는 차라리 녹화해서 올려 놓는것이 시간효율성이 좋다. 학생이 꼭 정해진 시간이 아닌 자유로운 시간에 녹화된 강의를 듣고 공부하면 그만이니까.  실시간 수업은 토론이나 상호작용이 활발한 수업에서 효과적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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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지난 학기에 Linear algebra 들었는데 중간에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었거든요. 거기서 얻은 이득은... 1) 줌미팅이 항상 녹화되어서 이해 안되면 다시 볼 수 있다.(저는 숙제하기 전에 꼭 한번씩 더 봤어요).2)매주 15-20분짜리 퀴즈가 있는데, 바로 뒤에 다른 수업이 있어서 항상 쫓기듯이 나가야해서 불안했는데 집에서 느긋하게 하니까(그래도 시험만 보면 왠지 불안불안) 훨씬 좋더라구요. 덕분에 성적도 낫고요... 이 사태 벌어지고 나니까 장소에 상관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대학 강의 뿐 아니라 악기나 요가, 발레 같은 체육활동까지요. 레드팍스님의 수업도 듣고 싶어요~~~ 참, '음성의 평등성'은 생각못해봤는데 중요해보여요!

    2020.05.19 04: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20. 4. 15. 16:51

이른 아침, 나는 손님을 태우고 해안을 달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다행히 내 차에는 나도 모르던 신묘한 스마트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전화기를 가방에서 꺼낼 필요도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이 내 차에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운전중에 전화기를 아예 가방에 넣어서 뒷자리에 던져 놓기 때문에 평소에도 전화 따위 받지도 않는데 이런 일이 있다니).  모르는 번호에서 온 전화를 내가 왜 받았을까?  (아는 번호도 안 받기 일쑤인데.)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영어로 다급하게 나를 찾고 있었다. 상대는 다급하게 나를 찾는데 - 거의 비명에 가까운데 - 바로 그것이 비명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고, 나를 찾는 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I guess I am NOT the right person to you. I guess you've got the wrong number..."하고 얼버무리고 있는 내게, "It's you! I am calling you!  I am Anabelle (가명)!  I am Anabelle!" 상대는 나를 안다고 우겨댔고,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누군가 한국인 남자가 전화를 바꾸더니 모 종합병원인데 빨리 내가 와 줘야 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갑자기 호출되는 것일까?  영문을 알수 없는 가운데,  뒷자리에서 가만히 전화 '방송'을 듣고 있던 동료가 말했다, "아무개 교수 부인 이름이 아나벨인데... 그 아나벨인것 같은데..." 

 

 

결국 뒷자리에 앉아있던 내 동료가 그 '아무개 교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상황이 그제서야 정리되었다.  아무개교수의 부인인 '아나벨'이 최근에 외국 모처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오자마자 곧바로 국가의 시책대로 격리되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뭔가 의심 증상이 있어서 두번이나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 판정이 나왔건만 -- 아나벨은 열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러니 병원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코로나 음성 판정 외국인과 뭔가 소통하려다 결국 내가 호출 된 것이다.  내가 와서 소통을 도와 달라는 것 같았다.  거기가 어딘데?  한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모 종합병원.  그런데 거기가 격리실이라며?  그런데 내가 거길 어떻게 들어가?  내가 반문하자, 그건 자기네도 모르겠고 아무튼 영어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내가 와 달라는 거다.  내가 가도 들어갈 수도 없다니깐... 게다가 지금 나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어디론가 가는 길인데, 지금 이 손님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한다면 이 손님은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이리저리 연락을 하여 양쪽간의 의견 전달하여 주고 상황은 이럭저럭 전화로 정리가 되었다.  코비드와 상관없이 아나벨은 뭔가 증상이 있었고, 아나벨은 어느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지역성 질환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 질환은 한국에서는 아주 낯선 것이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감기처럼 흔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간다고 상황에 어떤 변화도 없을것이므로 병원은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나는 아나벨에게 안심하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라고 말 해주었다.  좀더 알아보니 동료교수가 격리되어 있는 아내의 상황에 뭔가 문제가 발생하고, 격리실에서 아내와 소통할 수 있는 영어 가능자가 없다고 판단되자 내 번호를 주고 내게서 도움을 구하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인과 말을 잘 할 수있는 사람.

 

 

상황이 대충 정리되고, 나도 내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 아침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니 문득 위급한 상황에서 나를 떠올린 내 동료교수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비명을 지르듯 내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한 아나벨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감사하냐하면 - 적어도 그들은 나를 위급한 상황에서 도와줄 만한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내 전화번호를 간직하고 있었고, 정말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을 생각하니 -- '나 ...아주...나쁜...인간은 아니었다보다' 이런 가슴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힘들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구가 '나'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나, 아주 나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에 대해서 좀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악행, 거짓말, 비열한 행동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저지른 악행이야 나도 모르니 모른다고 쳐도, 내가 기억하는 악행도 산더머지처럼 쌓였으므로 나는 나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오늘 같은 날) - 나 좋은 면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 라는 생각이 살짝 들 때, 그 때 내 가슴이 조금 따뜻해지고, 체온이 조금 상승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인근 상가 빵집에 가서 내가 평소에 아주 좋아하는 질좋은 빵과 음료수등을 사서 가방에 담아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경내의 멀리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아이가 셋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므로 아이들이 넉넉히 먹을 만큼의 빵과 음료수.  (다른 먹을거리를 사기위해서는 차를 끌고 멀리 가야 했는데, 그러기엔 나도 피곤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안전하며 코비드가 아니므로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 좀더 있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하며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료교수에게서 병명이 확정되었으며 치료가 필요해서 어쩌면 병원을 옮길지도 모르는데, 마침 소속교회 목사님이 와서 병원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 나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 어떤 풍토병에 걸린 모양인데, 우리나라 의술이 좋으니 곧 치료가 될 것이고, 코비드가 아니니 다행이지 싶다.  코로나가 아니면 다행인거다. 

 

오늘부터 나는 내 동료교수와 '형제'가 된다.  그가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 주었는데, 내가 그보다 더 위로를 받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이런식으로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 나는 감지한다.  하느님이 부르시면 나는 달려갈 것이다.  나의 하느님에게로.  그가 나의 쉴 곳이므로.  하느님이 내게 뭘 하라고 하시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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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13. 15:47

어제 (부활절/일요일).

 

 

 

새벽부터 창밖에서 엔진소리가 나고 뭔가 뒤숭숭하여 내다보니 맞은편 건물 입구에 방역차를 비롯한 여러종류의 차들이 와 서있고 곧이어 관리실에서 '공지사항'이 흘러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경내에서 발생하였으니 경내 거주자들은 모두 문밖으로 나오지 말고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출입분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딱히 외출 할 생각도 없었으나, 외출이 불가능해지자 그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것이구나. 내 의사에 의해서 일주일 내내 방콕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나라도, 누군가가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지시하자 그 상황이 무척 고통스러워진다. 갇혀 지낸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 

 

학교에서도 공문이 날아온다. 상황에 대한 브리핑과 함께 출입 통제를 알리는 메시지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공문의 속도는 현장보다 느리다.)

 

 

두시간여가 지나자 건너편 건물 앞에 모여있던 여섯대의 차들이 (방역차, 구청차, 또 무슨 비상차. 등 등) 차례차례 경내에서 빠져나가고 다시 실내 방송이 들린다. 상황이 완료 되었으니 출입을 해도 좋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시름시름 했다.  몸보다는 심리적으로 아픈것 같았다. 웹 검색을 해보니 오늘 상황에 대한 신문기사가 보였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데 기자는 취재를 하여 이미 기사화 하였다.  이웃 대학의 학생이 미국 본교에 다녀왔는데 동반했던 보호자와 함께 귀국하자마자 경내의  맞은편 건물의 자가격리실로 직행했고, 그 보호자가 확진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랬었군. 이 와중에 미국에 다녀와할 할 중대한 일이 있었나보다.  쾌차하시길. 

 

 

오늘 (부활절 다음날/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니 밤사이에 학교에서 공문이 와 있었다.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통보가 갈 때까지 학교 건물에 들어갈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또 뭐지?  누군가가 확진 판결을 받았는데, 그와 접촉했던 어떤 사람이 지난 토요일에 학교 건물에 다녀갔기 때문에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어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출입이 통제가 되더니, 오늘은 내 연구실에 갈 수가 없구나.  학생이 집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 나는 학교에서 내 할일을 하고 나름 '정상정'이라는 것을 유지하려 했는데, 이제 그것도 허락이 안되는건가?  또다시 몸에서 모든 '생기'가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물론 랩탑으로 평소처럼 언라인 수업을 하면 그만이지만, 연구실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거, 정말 '전쟁' 같은거구나.  코비드라는 보이지 않는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그 폭격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갑자기 모든것이 정지되기도 하고 그런것이구나. 소리나지 않는 세계대전 같은거구나. 

 

 

집에서 학생들 과제 채점을 하고 있는데 오전 열시 쯤 다시 학교 이메일이 왔다. 다행히 그 접촉자가 음성판정이 났으므로 학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교수들은 희망하면 연구실에 가도 좋고, 직원들은 이미 '출근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나갔으므로 그냥 오늘 하루 재택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내 동료 교수 생각이 난다. 미국인인데 500미터도 안되는 숙소와 교수 연구실 사이를 오가며 여행가방을 끌고 다닌다.  그건 왜 매일 끌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수업에 사용하는 책이랑 자료들인데, 갑자기 연구실에 못 가는 일이 생길까봐, 갑자기 숙소가 닫히는 일이 생길까봐 그 자료들과 랩탑을 끌고 다닌다고 한다.  참 걱정도 팔자다 했는데 --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 그러면, 나도 그래야 하는건가보다. 외장 하드에 내가 요즘 만들어내는 수업자료들을 늘 새로 업데이트 하여서 그 외장하드를 늘 갖고 다녀야겠다. 클라우드도 있지만 나는 내가 직접 챙기는 편을 선호한다. 클라우드는 예비용이다.  내 랩탑과 연구실 컴퓨터 양쪽에 동일한 파일들을 저장해 놓아야 한다 (매일 업데이트 해야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 심지어 내가 자가격리를 당하게 되더라도, 골방에서 나는 계속 언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사람의 일을 알 수가 있나. 자가격리 대상이 될지, 입원을 하게 될지,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리 예비하면  내가 살아있는 한 내 학생들에게 수업은 계속 제공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 인터넷은 세계 최강이라 인터넷 끊길 걱정은 별로 안된다. 그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그립다.  얼굴도 잘 모르겠는 내 학생들이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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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7. 20:47

 

저녁 뉴스를 보니 대학생들이 '언라인 수업'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빼앗겼다며 시위를 하는 광경이 보인다.  답답한 대학생들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 할 만하지만 - 마치 교수들이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하는 원흉인 것 처럼 그려지는 뉴스에 화딱지가 난다.  뉴스에는 몇가지 문제 행동을 일으킨 교수들이 간단히 스케치 되기도 하고. 

 

 

내가 교수 입장에서 왜 화딱지가 나는지 간단히 술회 하겠다. 

 

나는 다른 보직도 있는 이른바 '보직교수'다.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서 수업도 약간 적다. 6학점 한과목 가르친다. 물론 다른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어쨌거나 6학점짜리 아주 중요한 과목을 가르치는데 3학점짜리 두과목과 비슷한 비중이다.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면, 이럭저럭 숨 좀 쉬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내 연구일로 지정해서 연구하고 글 쓰면서 보낼수 있었을 것이다.  봄학기 내내 나는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 자료를 만들고,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고, 끝없이 채점을 하고 피드백 주는 일을 한다. 공장에서 뭔가 계속 생산해 내듯이 끊이 없이 피드백을 주고 있다. 내 모습이 거미같이 보이기도 한다. 온종일 뭔가 실을 뽑아내고 있는 거미.  그렇게 열심히 해도 -- 그것이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것 만큼 생생활수 없다는 한계가 보여서 나로서도 무척 갑갑하다.  그러니까 칠판 앞에서 몇글자 끄적거리며 예를 보여주면 해결될 일을 위해서 수업자료를 만들고, 확인하기 위해 숙제를 내고, 개별적으로 검사를 하고,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끊임없는 일거리로 연결된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 함께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의료진이 아니니까, 내가 도울 방법은 그냥 가르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그 방법 외에는 없으니까. 

 

내가 자다가도 내 학생의 카톡이 울리면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일상을 살면서도 - 나는 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교수도 못만나고 동기생들도 못만나는 그 현실이 딱해서 미안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언라인 교육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미안하다. 늘 미안하다. 그래서 좀더 잘 가르치려고 궁리하고 궁리한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내 학생들중에도 '이따위 교육을 받으러 내가 비싼 대학 등록금 내고 이러고 있는건가?'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 내 학생이 직접 불만을 표한적은 없지만, 누군가 불평을 한대도 나로서도 어쩔수 없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는거지 어쩐단 말인가. 

 

학생들이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 피해자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교수들도 갑자기 언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교수들도 평상시보다 몇배의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수당을 올려 달라거나 그런식으로 시위를 할 생각도 없다. 모두가 어려운 강을 건너는 중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도리이기도 하고.  교수들도 힘들다.  교수들이 일부러 학생들을 온라인 교육의 물에 빠뜨린 것도 아니다, 교수들도 그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학교 당국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나는 보직이 있으므로 학교가 텅텅비어도 늘 내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학교의 행정을 담당한 분들도 평소보다 일하기가 더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캠퍼스에 학생이 안보이면 일이 없을것 같아도 각자 평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면서 학교를 지키고 있다.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욱 노력해도 -- 그것이 학생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함부로 떠들지는 말기를 바란다.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앞뒤 분간 제대로 하고 개선이 되는 방향으로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학생만 피해자라고 -- 나머지는 다 가해자인것처럼 몰아붙이면, 어쩌면 '가해자'로 찍힌 사람들도 김이 빠질수가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 교육은 상호 협동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의 장에서 '상생'을 배우고 연습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서 그 귀한 가치를 배우고 익힐 것인가? 초중고등학생들도 떼를 쓰지 않고 있다. 어린애들도 떼를 쓰지 않고 불평을 안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을 봐서라도 나도 그냥 여태까지처럼 하는 수밖에.  내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이 - 바로 그 상생과 협동이 아닌가...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수 밖에. 그래도 비를 원망하지는 말기로 하자.  

 

 

***

 

사람마다 인생의 영웅이 있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내 인생의 영웅은 (1) 우리 할머니, 그리고 (2) 윤봉길 의사이다.  우리 할머니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그냥 개인적인 일이므로 나중에 한가할때 심심풀이로 적어보자.  윤봉길의사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내가 그의 '친필 교과서'에 - '함정'에 털썩 빠지듯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윤봉길의사의 손녀딸이 tv에 나올때마다 있는대로 욕을 퍼붓고 있는데,  내 영웅을 그가 망쳐놓기 때문이다.)

 

충남, 덕산이라는 마을에 가면 거기 유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에 가면 윤봉길의사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나는 거기서 보았다. 윤봉길의사는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직접 당신손으로, 손글씨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 손글씨 교과서를 발견했을 때 내 심장은 '쿵' 했으며 -- 수천년간 수백번을 죽고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서 찾아헤메던, 그리워하나 기억하지도 못하던, 그래서 정체를 알수 없는 내  '연인'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그 손글씨로 쓴 교과서 때문에 나는 무작정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폭거는 홍구공원에서 비루한 일본인들 죽인것 -- 버러지만도 못한것들 죽인것 거기서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의 혁명은 그 교과서에서 완결된 것이고 나머지는 가벼운 변주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극히 개인적인 소회다. 

 

내 가슴속에 윤봉길 의사를 품고 - 나는 내 비루한 교육자료를 매일 만들고 다듬고, 교육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명이라고 믿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 난리통에 교육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만으로도 혁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수업형태가 조금 달라지고 힘들어지고 재미없어졌다고 피켓들고 시위하려는가?  시위하기엔 너무 가볍고 먼지같지 않은가?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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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4. 12:48

매일 아침 씨앤앤을 본다. 여기 아침은 저쪽의 저녁. 매일 저녁 트럼프 아저씨는 코로나의 하루 보고를 하면서 씨앤앤 기자에게 면전에서 윽박지르고 심술을 떨고 나몰라라 한다.  오늘 아침에는 그이 말에 곧잘 쌍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아저씨가 안나왔다.  한 기자가 그 쌍지팡이가 왜 오늘 안나왔느냐고 물으려고 하자, "나에게 쌍지팡이가 왜 오늘 안보이냐고 묻지 말라.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며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대통령인 자신의 권위에 누군가가 먼지를 날리면 그 꼴을 못본다. 만약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저런 행동을 했다면 -- 아마 벌써 태극기와 성조기와 일장기및 각종 나라 깃발로 무장한 세력에 의해서 일찌감치 교도소로 보내졌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참 당당하시다.  

 

 

어쨌거나 오늘은 화제는 '마스크'였다.  기자들이 '마스크 쓸 필요 없다더니 왜 마스크 쓰기를 슬그머니 권장하는건가?' 이런 류의 질문을 던지자 트럼프 아저씨는 -- 나는 개인적으로 아직 마스크 안써도 된다고 생각해. 지금은 그래. 나중에 내가 변할수도 있겠지 이런 식으로 얼버무렸고 곧바로 Center for Disease Control 에서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와서 설명을 했다. 

 

 

그는 말을 참 정확히 잘 했다. 그래서 나도 '저 사람 참 또박또박 말을 잘한다 생각하고 호감을 갖고 그의 발표를 보았다.  

 

 

그의 설명인즉슨,  --- 그래 인정한다. 우리가 과거에 질환도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분명히 말한바 있다.  그런데, 우리는 '데이타 (과학적 근거 자료)'에 입각해서만 일을 한다. 과거에는 마스크 미착용에 대한 어떠한 데이타도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의료용 마스크는 병원으로 보내고 일반인들은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와 상대를 보호가기 위한 차원에서 헝겊 마스크를 쓸 것을 권유한다. 왜냐하면 감염자 중에 무증상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증상이 없으니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남에게 전파를 하므로 -- 대략 이런 말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실소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좀 해보셔. 마스크 써서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상식적으로 종이로라도 내 입 가리고 남의 입 가리면 위험이 줄어들을수는 있지 않은가. 그걸 꼭 시체가 쌓여서 냉동고도 부족하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 그제서야 데이터가 충분히 쌓였으니 "그럼 이제부터" 라고 한다는 말인가? 당신들은 예측은 못하나? 오직 시체가 쌓여야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스크 얘기를 하는가?

 

 

순진하고 맹목적이고 단순한 Dataism 의 문제는 그들이 눈에 보이는 데이타만 들여다보다가 더 큰 데이타, 보통 사람들이 감지하는 데이타 -- 인류가 진화하면서 쌓아온 본능적인 데이타에는 눈이 멀어버린다는 것이다.  미신적인 상상도 문제지만 과학에 기대어 과학이 답을 주지 않으면 절대 생각 안하고 판단 안하고 시체가 쌓이기를 기다리는 데이타 맹신도 문제다.  미국 씨디씨는 바로 그 -- 바보짓을 여태 하고 있었지 싶다. 그런데 그 판단착오로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지, 감염되고 있는지, 국가의 격이 떨어지고 있는지, 좀 깨달았으면.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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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4. 10:00

내가 관리하는 팀에서 평소에 나를 많이 도와주는 젊은 미국인 교수가 창가에서 화분을 다듬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넓직한 학교 복도에서도 우리들은 서로 없는 사람처럼 멀찍이서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편인데 그가 내게 다가왔다. 

 

 

"나 내일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해서 인사하러 왔어." 

 

 

학교측에서는 봄학기말까지 온라인 수업이므로 미국집으로 가서 수업을 진행할 사람들은 '수업에 차질이 없는한' 자유롭게 돌아가도 좋다는 안내를 이미 한 바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돌아가겠다고 짐을 싼 미국인 교수들은 많지 않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안전하니까. 하하하).  

 

 

그 친구에게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는데, 두 분 다 병약하시다. 평소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응급실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  그런데 하필 뉴욕이 코로나의 지뢰밭처럼 되어버린 상황이 되니 '효녀심청'같은 이 친구가 부모님을 돌봐드리러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미국행 비행기 델타는 텅텅비어 운항하는데 값은 전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가자마자 2주간 격리도 해야 한단다. 그래야하겠지. 

 

 

"너 마스크는 좀 챙겼어?"  내가 묻자, 애매한 표정으로 몇개 정도는 있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안할까? 우리학교 학장님은 나를 '마스크 귀신 할멈'으로 생각을 하는 눈치다. 사사건건 마스크 안하고 막 남의 연구실 드나들고 그러는거 못하게 공지해달라고 그러고, 늘 마스크를 하고 돌아다니며 신경질적으로 구니까 -- 내가 뭔가 상의하기 위해서 저만치서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면 부랴부랴 자기  책상에서 마스크부터 꺼내 쓴다. 심지어 농담으로 이메일 끝에 인사 대신에 I will wear the facemask!  이런 말을 붙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복도에서 서로 발견했을 때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고, 그는 안쓰고 있다. 습관이 무섭지.)  

 

 

그래서 일하다 말고 학교 앞 상가로 뛰어가서 빨아 쓸수 있는 헝겊 마스크 네장 (한군데서 두장씩만 판다고 해서 두군데 들러서 네장 사고), 열장 들어있는 일회용 종이마스크 한봉지, 손 소독제, 소독용 물티슈 뭘 골고루 '구호물자'를 한보따리 사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가져다 주었다.  "미국가면 손세정제 구하기도 힘들고, 마스크는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고 하니까, 가능한 헝겊 마스크를 매일 빨아쓰도록 하고..."  내가 주섬주섬 '안전수칙'을 설명해주는데, 그 젊은 교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너무 고맙단다. 그래서 말해줬다, "내가 너하고 같은 상황이 되었다면 - 너도 나에게 이렇게 했을거쟎아.  가을학기에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라. 혹시 뭔가 급히 필요하면 연락해, 여기서 구할수 있는것은 바로 부쳐줄게." 

 

 

 

내가 어릴때는 '미국' 사람은 천국에서 온 사람들인줄 알았다. '미국'은 이세상 어딘가에 있는 '천국'같은 나라인줄 알았다. 동화책 속의 궁궐같은 나라가 미국인줄 알았다.  나는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익혔다. 영어를 하면 천국에서 온 미국 사람과 대화를 할 수도 있고, 그런 나라에 가 볼수도 있을것 같았다.  영어 속에는 그런 요소들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달콤한 상상이었다. 내 또래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비슷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미국은 그대로 거기 있는데, 한국이 부쩍부쩍 자란 것이다. 한국 사람들, 정말 잘 살아낸것 같다.  나는 여전히 미국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땅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살고. 미국이 아프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여름방학때 미국 입국이 가능할까 모르겠다.  (그런데 트럼프 아저씨가 풀어주는 긴급 생활지원비 뭐 그런거, 그거 내 계좌에도 들어올거라고 찰리가 알려주었다. ㅋㅋㅋ)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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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희도 받았어요. 다섯명이라 솔찬혔어요 ㅎㅎ

    2020.05.19 04: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아, 미국에서는 어린이들 몫도 세뱃돈 주듯 다 챙겨주었군요. 저도 담주에 미국집에 가면 통장에 얼마나 들어왔나 검사좀 해봐야지요. 트럼프 맘에 안들지만 -- 그냥 통장에 현금 쏘아 주는거 보면 시원시원한 맛은 있어요.

    2020.05.21 13: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20. 4. 4. 09:37

코로나가 우리 삶의 양상을 바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쟁상황이 우리 삶을 바꾸듯 전지구적 유행병이 우리 삶의 여러가지 장면에 영향을 끼친다. 

 

 

매 학기초에 맞추어 주요 수학, 과학 관련 교양/전공 과목에 필요한 '조교' 적정 인원을 선발하고 그들의 활동을 관리하는 것이 수업외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보직인데, 이번 학기는 온라인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조교'가 활동할 영역이 없어졌다.  교실 개강을 할 때까지 조교는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필요 인원을 이미 선발해 놓았지만 필요가 없어졌으니, 조교들은 교실 개강까지 한없이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덕분에) 내가 관리해야 할 한가지 일이 없어진 것이기도 해서 - 잘 만하면 나는 오히려 편해지는것이 아닐까?  이런 악마의 속삭임이 나를 잠시 미소짓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교로 선발된 학생 한명이 내게 진지한 이메일을 날렸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더욱 필요해졌다.  수업중에 직접 교수에게 질문하거나 조교를 찾아와 묻거나 배우거나하는 그런 생생한 학습보조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그 조교는 '월급 안받아도 좋으니, 대면하면 안된다고 하니, 온라인으로라도 자원봉사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자기에게 온라인 조교 시스템을 구축할 아이디어가 있으니 무보수라도 (허락만 해 주신다면) 시스템을 구축하여 봉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일로 복잡한 상황이었던 나는 그 순간, 잠시 '지금 나 골치 아픈데, 이 친구는 왜 없는 일을 저지르려고 하지?' 이런 생각을 했다. 만사가 성가시고 피곤하구만... 하지만 새벽 기도중에, 온세상이 잠들어있고 내가 혼자 깨어 하느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졸고 있던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메시지가 왔으니 따르는 수 밖에.  그래서 기도를 마치고 즉시 답을 했다.  조교가 일을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아야지 왜 무보수인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보수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 내가 움직여보겠노라. 

 

 

학교는 학생의 아이디어를 전폭 지지했고, 주말 (토/일)에까지 관계자가 출근하여 일을 삽시간에 처리했으며, 아이디어를 냈던 조교와 나는 갑작스럽게 매뉴얼을 만든다-동영상 안내 자료를 만든다-전체 회의에서 발표를 한다-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한다는 둥 번갯불에 빌딩한채 올리듯 분주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벌써 한달이 지나서, 온라인으로 도움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조교들은 내게 한달간의 활동 상황 보고서를 보내왔고, 한달치 봉급을 받게 되었다.  학교는 조교들의 활동에 매우 기뻐했다, 학생들이 반응이 좋았으므로.  아이디어를 내고 시스템을 만들어낸 조교 외에 다른 조교들은, 조교채용을 위한 인터뷰 때 얼굴 본 것외에 따로 볼 시간이 없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그들은 멀리 각자의 집에서 공부와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들은 긴밀히 대화하여 일을 진행하고 있다. 여러가지 언라인 도구들 덕분이다. 

 

 

지진도, 전쟁도, 유행병도, 그 무엇도 사회적동물인 인간의 진보를 막아 설 수는 없다. 설령 대 재앙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멸절되는 상황이 온대도, 그 순간까지도 인간은 사회적으로 움직이며 서로 도울것이다.  아이디어를 내는 자와, 귀담아 듣는 자와, 협조하고 후원하는 자와, 도움을 얻고 다시 도움을 되갚는 인간들이 지키는 사회는 하늘의 별보다 아름다워보이기도 한다.  우리들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다.  코로나가 그것을 일깨워준다.  코로나.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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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0. 4. 1. 09:53

지난 2월 마지막 주에 입학식도 생략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개강하여, 3월 9일에 오프라인 수업 시작한다는 전제로 '임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다가, 오프라인은 4월 6일로 미룬다고 할 때에도 '한 달 기다리면 정리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지내왔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 핵폭탄급 코로나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본교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던 수업을 온라인으로 모두 전환하면서 - 게다가 한국 정부에서도 국내 공립학교 수업 개강을 연기함에 따라 우리 학교에서도 아예 봄학기 전체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최종 결정이 나왔다.  

 

 

 

상황을 살펴보면 4월 6일에 교실 수업하는것이 위험하겠다 싶어서 연기 될것은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아예 봄학기 전체를 통째로 온라인 수업 진행한다고 하니 나 역시 망치로 가슴을 한대 얻어 맞은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물론, 해야지. 그런데, 그러면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봄학기 내내 새 친구들도 못 보고, 교수들도 못 보고, 그냥 방구석에서 온라인으로 수업듣고 과제 올리며 청춘을 보내는구나.  젊음의 한 때가 방구석에서 흘러가는구나. 이런 느낌이 들면서 온라인으로만 얼굴을 봐서 실제로 찾아와도 내가 알아보기도 힘든 내 학생들이 '무작정' 그리워진다.  나도 너희들이 보고싶구나.

 

 

 

벌써 6주가 끝나간다. 내일 수업 분량을 오늘 찍어 올리면 나의 온라인 수업 6주가 마무리된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10주를 더 하면 학기가 끝난다. 뭐, 여태까지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면 되겠지. 

 

 

 

내가 매일 (월-목) 하는 일:

 

1. 블랙보드에 '오늘 해야 할 일' 리스트 및 어디에 어떤 과제를 올려야 하는지 상세한 안내문을 올린다. 

 

 

 2. 데스크탑 내장형 카메라 오디오 앞에 앉아 오늘 핵심 내용 안내를 찍어 올린다. (학생들이 안듣고 그냥 지나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디오에 반드시 질문을 던지고 안내를 하여 비디오를 안보면 숙제를 못하게, 그래서 반드시 비디오를 보게 만든다.) 그대신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종종 장소를 옮기며 녹화를 한다. 이 경우 스마트 폰을 이용하여 그냥 바로 유튜브에 올려버리거나,  랩탑을 들고 나가 촬영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기기가 활용된다.  그래서 자그마한 '조명기'까지 장만했다.   학생들이 캠퍼스 이곳저곳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3. Zoom으로 45분간 수업을 진행한다. 출석을 체크하여 통보한다 (출석 안하면 감점 된다는 것을 알수 있도록).  학교 블랙보드에도 온라인 미팅 툴이 있긴 한데, 과부하가 걸리는지 가끔 잘 안된다. 그래서 줌을 사용하는데 줌이 더 빠르다. 

 

 

4. 학생들은 하루 평균 세가지 과제를 꼬박꼬박 올려야 한다.  --> 나는 그것을 모두 평가/채점하여 피드백을 줘야 한다. 숙제하는 학생들보다 그것 매일 채점하고 피드백주는 교수가 훨씬 더 고생이다.  오프라인으로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된다면 돌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잘하는지 못하는지' 확인 할 수 있는 간단한 것도, 온라인 상에서는 과제로 내고 평가를 해야 한다.  이것이 고된 일이다. 그래도 매일매일 채점하고 피드백을 준다. 왜냐하면, 피드백이 생생해야 학생들이 '교수가 어딘가에 살아있고, 내가 하는 것을 보두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이메일로 질문 오는것을 일일이 답하는것이 너무 힘이 들어서 -- 고민하다가 카카오톡 단톡을 열었다. 모든 질문은 그쪽으로 하도록 유도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질문 하는것을 꺼리더니 요즘은 자유롭게 질문을 한다.  열명의 학생이 각자 이메일로 똑같은 질문을 하면 나는 열번의 똑같은 답을 보내야 하지만, 이제는 그냥 누군가의 질문을 다른 학생들도 읽고, 그러므로 많은 질문들이 생략된다.  숙제 피드백 보내다가 좋은 샘플이 나오면 바로바로 사진 찍어서 카톡방에 올려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 수업중에 구현 할 수 있는 것을 카톡방으로 바로바로 할수 있다.  하루 24시간 아무때나 질문에 간단히 답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6. 별도로 개인적인 Zoom 미팅도 요청이 들어오면 열어서 상담을 해준다. 교실 수업이라면 수업 전/후에 남아서 개별적으로 간단히 묻거나 개인상담이 가능한데, 온라인으로는 그런 캐주얼한 상담이 불가하니 간단히 ZOOM으로 대체. (게다가 놀라운 일. 줌은 착한 회사구나... 무료 계정은 45분까지 사용하고 다시 열거나 해야 했는데, 오늘부터 공지가 떴다. 학교 사정을 생각해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는 학교와 선생님들을 위해서 시간 제한을 없앴다고.  이 기회에  잔 돈 뜯을 궁리를 하는게 아니라 더 큰 사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통크게 행동을 하는구나. 사업은 이렇게 해야.) 

 

 

 

하루 75분 수업을 월-목 4일간 진행하는데 (6학점짜리 과목), 내가 하루 75분의 수업을 위해 보내는 시간은 하루 온종일 10 시간 가까이 된다.  (내가 따로 개인 연구할 시간도, 책 볼 시간도 없이 매일 온라인 수업 자료 연구하여 만들어 올리는데 보낸다.)  내가 6학점만 해도 이런데, 다른 3학점 짜리 서너 과목 가르치는 분들은 이렇게 하시기 힘드실 것이다 아마. 기술이 안되는 분들도 괴로운 것이다. 나는,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기술은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조금 앞선 수준이다.  기술이 많으면 아이디어도 많아서, 그것을 다 구현하느라, 스스로 지치도록 일하는 편. 

 

 

코로나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직장을 잃고, 수입원이 끊기고, 그래도 희망을 갖고 열심히 마스크 끼고 협조하며 지내고 계시니, 나로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것이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매일 컴퓨터 화면에서만 작게 보이는 내 학생들을 나는 만나 볼 수 없다. 보고 싶다.  

 

 

 

다음학기에 그들중 몇명이 내 수업에 들어온대도, 나머지 학생은 알아보지도 못하고 흘러가겠지. 

 

오늘은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고 싶다: 상상해보라,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먼 우주를 항해하면서 수업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우리들은 우주복을 입고 화면을 통해 서로를 학인하며 지식을 쌓아가는거다.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지만 우주인인 우리들은 매일 서로를 확인하고 지식의 탑을 우주에 쌓는다.  우리 그런 믿음으로 오늘도 과제를 해 나가자.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학 교수님들은 온라인 수업이 난감하시면, 적극적으로 학교 IT 센터에 묻고, 관련 부서에 도움을 요청하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그냥 해보시길.  동료교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역시 두려워하지 마시길.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 뭘 해도 뭐가 망가지는 일은 없으니 그냥 해 보시길. 가장 무서운 적은 -- 나의 무능이 아니고, 나의 두려움.  두려워하지 않으면 상황은 장악이 되는 편이므로. )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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