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ism/EdwardHopper2009. 10. 9. 02:52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소장, 자화상




Edward Hopper 가 소년 시절에 습작으로 그린 바다 그림을 보면, 바다에 커다란 배가 한척 떠 있는데 그림 구석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Alone, alone, all, all alone,
Alone on a wide wide sea !

홀로, 홀로, 홀로 있다네
이 넓고 넓은 바다에 나 혼자 뿐이라네!

이것을 보고 그 부모님이 기겁을 했다고 하는데, 호퍼는 어릴때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리는 바람에 주위의 아이들과 동화를 못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혼자 그림이나 끄적이며 소일했다. 그가 어린 시절 그림 구석에 끄적여놓은 이 구절은 Samuel Taylor Coleridge 의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노 수부의 노래) 에 나오는 것이다. 대개 한국 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워즈워드와 쿠어리지의 '낭만주의'를 시작으로 영문학에 입문하게 될 것이다. Coleridge 는 워즈워드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문을 열어제낀 시인이었다.



어린시절 쿠어리지의 시를 베껴적던 소년 에드워드가 성인이 되어 즐겨읽던 작가들이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헨리 데이비드 써로우 (Henry David Thoreau)였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의 초절주의 (transcendentalism) 철학자, 문인들이었다. 미국의 초절주의는 영국의 낭만주의 (Romanticism)와 칸트 철학을 배경으로 탄생한 철학으로  에머슨의 자기독립 (Self Reliance) 정신으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에머슨의 Man is his own star (인간은 그 스스로 자신의 별이다) 라는 선언에서 보이는 '자아'를 주체로한 삶의 철학은 근대 미국의 정신적 근간이 되기도 한다.  그가 소년시절 쿠어리지의 시에서 성인이 되어 에머슨이나 써로우로 옮겨간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현상처럼 보인다. 그는 외톨이 소년이었고, 그러나 그는 혼자서 제발로 서기를 겁내지 않았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그것이 아무리 밝게 채색되어 있어도 어쩐지 스산하고 쓸쓸하다. 그런데 그 썰렁한 그림앞에 일단 서면 우리는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무언가 음산하고 스산한 바람이 우리 귓가와 뺨을 맴돌면서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잡는다.

에드워드 호퍼는 어린시절 습작에 써갈긴 싯귀처럼 평생, '외톨이'로 살아간 미국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에게는 절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결혼하여 평생 해로한 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외톨이'라 부른다. 그는 평생 넓고 넓은 바다를 홀로 떠돌듯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개척해나갔고, 그의 신념을 지키다 여행자처럼 지상에서 사라져버렸으므로.

그런데, 우리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스산함이나 썰렁함,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그림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공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이도 내가 느끼는 쓸쓸함을 느꼈구나. 나도 저이의 쓸쓸함을 느낀다. 우리는 공감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이런 '공감'. 누군가 슬퍼서 울고 있으면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이 위안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쿠어리지의 고립감에 공감했고, 호퍼의 그림을 읽는 사람들은 호퍼의 고립감에 공감한다. 그 순간 만큼은 'alone, alone, all, all alone 이 '무효'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마술적 힘 일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10. 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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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진은 2008년 5월에 찍었던 것이다. 현재 (2009년 10월)는 빌딩 외관 수리중이므로 철재 골조가 외관을 싸고 있어서 아름다운 건물의 자태를 보기가 힘들다.

 

 

코코란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http://www.corcoran.org/index.asp

 

워싱턴 디씨, 백악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웃에 미국 적십자 건물과, 헌법홀 (Constitution Hall)도 서 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닷새동안 개관한다. (월/화요일은 쉰다.)

입장료: 성인 10달러, 학생 8달러.

개관시간은 수, 금, 토, 일 (오전 10시 - 오후 5시)  목요일 (오전 10시 - 오후 9시)

2009년 10월 현재, 건물 지붕및 외관을 수리하고 있으므로 미술관 전관을 개방하지 못하고, 일부 닫힌 구역도 있다.  그러므로 코코란이 자랑하는 콜렉션을 맘껏 보기는 힘들다.

 

http://freefeel.org/wiki/CorcoranGalleryOfArt : 2008년 5월, 코코란이 수리를 시작하기 전에 관람하고 적었던 리뷰.

 

 

 

스미소니안 렌윅 갤러리 (http://americanart.textcube.com/96)에 소개한 바와 같이, 코코란 미술관 (Corcoran Gallery of Art)는 본래 현재의 렌윅 갤러리 건물에서 1874년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것이 워싱턴 최초의 미술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소장품이 늘어나면서 현재 렌윅 갤러리로 사용되는 본래의 코코란 갤러리에 수용하기가 힘들었고,  그리하여 인근에 프랑스식 네오 르네상스풍의 미술관 전용 빌딩을 짓고 소장품들을 모두 이동시키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찾는 코코란 미술관의 탄생이다. 렌윅 갤러리는 건물 디자인을 한 렌윅씨의 이름을 기념했고, 현재의 코코란 미술관은 설립자인 Corcoran씨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두 건물 입구의 머리 장식을 보면 모두 DEDICATED TO ART (예술에 바침)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방문하시면 찾아 보시길)

 

렌윅 갤러리 소개 페이지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이곳은 백악관에 인접한 미술관으로 유럽의 명품들, 유럽 대가들의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지만, 대개 미국미술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건물 디자인도 아름다워서 역대 미국 대통령 부인들이 귀빈들을 접대할때 이곳을 안내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건물 전체적인 내부 구조, 특히 입구에 들어섰을때 눈앞에 나타나는 넓직한 중앙 계단과 그 중앙계단을 중심에 두고 양옆으로 전시장이 배치된 풍경은 렌윅 갤러리의 구조와 흡사하다.  이 곳 역시 1층홀, 2층홀에 전시장들이 서 있고,  전시장에서 연결된 건물의 일부는 코코란 미술학교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코코란 미술관과 코코란 미술학교 두가지를 모두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이곳에서 코코란 미술학교 학생들의 졸업전시회가 열리는 것을 볼 수도 있는데, 역시 젊은 학생들다운 독창적이고 발랄한 전시물들을 보게 된다.

 

1층에는 중앙에 매표소,  오른쪽에 기념품 샵, 중앙 홀의 왼편에 카페테리아가 있다. 그리고 주변으로 갤러리들이 있다. 겉보기보다 내부 공간이 넓고 알차다.  중앙계단을 따라 2층홀로 올라가면 역시 넓직한 홀이 나타나고 홀 주위로 갤러리들이 있다. 국립미술관 규모로 크지는 않지만,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알찬 미술관이라고 할만하다. (2009년 10월 현재에는 지붕수리 공사중이라 미술관의 일부 공간이 폐쇄되어 있어 소장품들을 제대로 다 볼수는 없다. 그러나 이곳은 언제 들러도 아름다운 곳이긴 하다.)

 

 

1층 미국미술 전시장.  계단 몇개씩 올라가며 층층이 액자모양으로 전시실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현재는 근대 미국미술실, 그 다음에는 The Eight (8인회)라는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전시실,  그리고 가장 안쪽, 세번째 방에는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중앙에 서있는 남자가 가리고 있는 것이 메리 커셋 (Mary Cassatt)의 대형 자화상.  그리고 그 너머로 자주색 커튼이 드리워진 홀이 살짝 보이는데, 프랑스 귀족의 홀, 내부 실내장치를 모두 옮겨다가 만든 방이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집은 허물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건물 자재를 뜯어다가 옮겨서 새로 지었다고 하는데, 미국의 거부들이 귀족취미로 프랑스 귀족의 방을 그대로 뜯어다가 뉴욕이나 워싱턴의 저택 일부를 장식했다고 한다.)  오늘 나의 수확은, 화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비롯한 근대 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살피고, 특히 '팔인회' 멤버들의 작품들을 방 하나에서 모두 살펴볼수 있었다는 것. :-]

 

이 전시장의 작품들은 때가되면 교체되고 다른 소장품들이 걸리게 되므로 늘 항상 거기 있는것은 아니다. (그러니 가끔 가서 살펴봐줘야 ~ ) 갈때마다 새로운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기쁨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늘 거기 있을거라는 기대를 해서도 안된다. 전에는 이 전시실에서 로댕의 작품을 보았었다.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크고 선명한 사진을 원하시면 클릭하세요)

 

 

메리 커셋의 그림. (메리 커셋 역시 미국의 100대 미술가중의 한명으로 언젠가 그녀의 페이지가 씌어질 것이다.  사실 워싱턴을 드나들며 내가 모은 자료중에 메리 커셋 관련 자료가 가장 많다. 뉴욕이나 시카고까지 가서도 메리 커셋의 작품은 꼭 찾아 봤으니까.  처음에는 무작정 그이의 그림이 좋았었고, 그 후에는 좀 시들해졌고, 요즘은 새로운 각도에서 살피고 있다. 역시나, 사랑스런 화가라고 할 만하다.)

 

 

 

 

 

미국의 광대한 풍경을 담은 전시실.  사진에서 왼쪽 작품이 Frederick Church (프레데릭 처치)의 나이아가라,  난로 오른쪽이 Bierstadt (비어슈타트) 의 들소 그림.  코코란 미술학교 졸업생으로부터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여기 이 벤치가 단순하게 다리쉼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이아가라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 벤치에 앉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나이아가라 그림을 볼때, 마치 내방 창문 밖으로 나이아가라를 보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프레데릭 처치와 비어슈타트 (비어스타드)는 초대형 미국의 풍경 그림을 그려서 유럽 화단에 소개한 화가들인데, 아직 사진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에 신생국가 미국의 거대한 풍경화가 유럽사람들을 압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니까, 이런 배경지식을 갖고 그림들을 보면 '대단한것이었군'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이러한 배경지식 없이 내 눈에 처음 들어온 이런 대형 풍경화들은 별로 매력이 없었다.  나는 전자사진과 영상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당시에 굉장했다니까 굉장했나보다 하는 정도.  왜 처치나 비어슈타트의 작품들이 의미가 있는지는, 장차 이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좀더 상세히 이야기를 해 보겠다.  (<--- 너는 왜 허구헌날 나중에 이야기 하겠다고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냐...)

 

 

 

 

그리고 이곳이, 프랑스 귀족의 집 내부를 뜯어다 붙였다는 홀.  얼핏 이곳의 첫 인상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홀'을 지나칠때와 흡사 했다. 흰 바탕의 벽에 아름다운 꽃무늬 장식. 금박의 장식들, 그리고 대형 창문과 거울의 벽.  마침 토요일이라서 갤러리 측에서 관객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주자들이 모여서 슈베르트와 모짜르트의 실내악들을 한시간동안 연주해 주었다.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의 어떤 홀 같은 곳에 앉아서 모짜르트의 음악들을 '생'으로 듣자하니,  "야,귀족놀음도 재미있었겠다. 돈 있으면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일어 날 수 있겠다" 요런 생각도 사사삭 들고~  

 

 

 

 

프랑스식 방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전시장

 

 

그방에 (위 사진에서 왼편에) 놓여있던 시계. 아직도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 오후 두시 십분전.

 

 

 

 

이탈리아 작가의 Veiled Nun (베일속의 수녀). 대리석을 조각하여 베일을 뒤집어 쓴 여인의 얼굴을 형상화 한 것인데, 돌을 가지고 베일과 베일속에 비치는 얼굴을 만들어낸 것이 아무리 들여다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중앙 계단을 올라가 2층 홀에서 내려다 본 1층 중앙홀. 카페테리아.

 

 

중앙계단을 장식하는 대리석 상. 날개 달린 남자가 여자를 안고 있는데 꽤 매력적이다. (작가 신상 생략)

 

 

 

위의 날개달린 남자 아랫쪽으로 보이는 중앙계단.  1층 매표소, 그리고 계단을 더 내려가면 보이는 미술관 출입문. (저 문으로 들어오고 저 문으로 나간다)

 

 

 

미술관 건물을 지키는 두마리 사자중에서 왼쪽 사자 (철골로 감싸 놓은 건물 외관이 보인다)

 

 

오른쪽 사자 (아이 귀여워)

 

 

입구 안내판

 

 

입구에서 왼편으로 돌아보면, 사진 중앙에 보이는 역시 보수공사중인 건물이 백악관에서 사용하는 행정 건물, 그리고 멀리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이고 그 앞쪽에 작은 붉은벽돌 건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렌윅 갤러리 (http://americanart.textcube.com/96 ) . 중앙에 보이는 회색 건물 뒷편에 백악관 본관 및 정원이 있다).

 

 

 

 

 

백악관을 끼고, 렌윅 (코코란 미술관의 전신)과 현재의 코코란이 인접해 있으므로 이 두곳은 백악관 안주인들이 지척에 두고 드나들수 있는 보석과도 같은 곳이다.  외관 공사가 언제쯤 완결될지 모르겠다. (미국 사람들은 공사 시작하면 2-3년은 기본인것 같던데...)

 

 

*******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만났다.  어쩐 일인지, 이 그림은 호퍼의 '도시' 풍경보다 '환'하고 덜 쓸쓸해보인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는데, 어쩌면 호퍼는 '물'을 그릴때 '행복'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음, 호퍼는 하도 '거인'이라 내가 매일 그의 책을 들여다보면서도 작정하고 쓰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 거인을 넘어서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하도 유명한 사람이니 오히려 내가 본 작품들만 내가 아는 선에서 정리하고 지나가는 것이 정직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호퍼'를 다 쓰기전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겠다. 일단 호퍼를 넘어서자...

 

 

 

redfox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10. 4. 11:37

(사진 클릭하면 커집니다)

 

Smithsonian Renwick Gallery 공식 홈페이지: http://americanart.si.edu/renwick/

 

 

지도에서 왼쪽 윗편 구석쪽에 렌윅 갤러리가 보인다.

 

 

렌윅 갤러리는 Smir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관에 속하지만 따로 떨어져있는 갤러리이다.  국립 미국미술관은 차이나타운에 인접한 갤러리 플래이스 지역에 있고, 렌윅 갤러리는 백악관 정문 앞에 있다. 이곳은 특히나 '미국 공예품' 전문 전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장은 1층 2층, 두개층인데, 1층에서는 특별기획 전시가 연중무휴로 이루어지고 있고, 2층에서는 미국미술관이 소장하는 소장품 중심의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2층의 대형 중앙홀에서는 미국미술관이 자랑하는 회화 작품이 전시되는 편이다.  상설 전시장의 전시품들은 일년에 몇차례씩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가끔 가보면 새로운 전시작품들과 만나게 된다.

 

오늘날의 렌윅 갤러리는 1972년 1월에 공개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이곳은 코코란 (Corcoran)이 '워싱턴 디씨'에 최초로 열은 미술관으로 기록된다. 윌리엄 윌슨 코코란 (William Wilson Corcoran)은 1858년, 스미소니안 캐슬 (현재의 스미소니안 인포메이션 센터)을 설계한 건축가 렌윅 (Renwick)에게 미술관을 설계해 줄 것을 부탁했고, 1859년과 1861년 사이에 코코란 미술관(Corcoran Museum of Art)이라는 이름으로 건축이 된다. 그런데 마침 남북전쟁 (1861-1865)이 일어나면서 이곳은 전쟁 참모본부 건물로 이용되게 된다.  코코란은 1969년에야 건물을 돌려받고, 1874년에야 본래 목적인 미술관을 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코코란의 수집품이 너무나 방대하여 이 건물이 비좁다고 여긴 그는, 인근에 새로운 스타일의 미술관을 짓고 1897년에 오늘날의 코코란 미술관 (Corcoran Museum of Art)로 소장품들을 모두 이동시킨다.  텅비어버린 본래의 미술관 건물은 그후 정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이 건물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리자는 제안을 하고, 1965년 스미소니안 재단의 리플리 (Ripley) 원장이 당신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이 건물을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 접수하여 미국 미술품과 공예품을 소장할수 있도록 주선한다.  그 결과 1972년부터 건물 설계자 Renwick의 이름을 붙인 Renwick Gallery 로 우리 앞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스미소니안 박물관들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곳은 국적 불문하고 무료 입장이다. 백악관 정문앞에 위치하고 있고, 인근에 (바로 두 블럭 건너에) 코코란 미술관이 있기 때문에, 백악관에 국빈급 손님들이 방문할 경우 대통령 부인은 귀빈 부인들을 렌윅과 코코란으로 안내하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셔널 몰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수학여행'코스로 워싱턴 디씨 내셔널 몰 일대의 '스미소니안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의 시선에서 약간 비껴나 있어서 언제 가도 한가한 편이다. 물론 국립미술관이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의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한가롭게 나들이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렇게 2층 홀로 올라가는 중앙 계단이 보인다.  입구 오른편에는 안내 데스크가 있고,  1층 전시실 입구가 양쪽에 있는데, 1층은 늘 특별 기획전시가 열리는 곳이고,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기 때문에 1층 사진은 생략하게 된다. 이 중앙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갈때, 그야말로 레드 카펫(Red Carpet)을 밟게 되는데,  기분이 제법 근사해진다. 뭐 나같은 소시민도 무료로 드나들며 고급스런 카펫을 밟아볼 수 있으니. 잠시나마  이런것을 누려보는 것도 나쁜일은 아닐것이다.

(사진 클릭하면 커집니다)

 

 

마침 2층 중앙홀에서 미국 근대미술품 전시를 하고 있었다. (흐뭇). 왼쪽 구석의 그랜드 피아노와 비교하면 중앙의 둥근 소파의 크기나, 벽에 걸린 미술품들의 규모도 어림짐작이 가능해진다.

 

 

이 커다란 홀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증명사진.

 

 

 

미국미술사를 정리하면서 언젠가 정리하게될 여성화가, 그녀의 자화상 앞에서.  (퀴즈 이 여성화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렌윅 미술관의 '상징'처럼 소개되는 '유령시계 (Ghost Clock).' 이 작품을 왜 '유령시계'라고 부르는 것일까? (퀴즈 2: 이 작품의 특이점을 찾아보세요).

 

 

렌윅 미술관이 자랑하는 또하나의 대표선수: Game Fish

 

 

 

2층 중앙계단 주변 홀의 풍경.  바로 발아래에 1층으로 내려가는 중앙계단이 있다.

 

 

 

미굴관 입구를 나서서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맞은편으로 보이는 백악관 정문과 울타리.

 

 

 

 

 

음...1층에 기념품샵이 있는데, 이곳이 '공예품' 전문 미술관이니까, 특히나 공예 기념품이 개성있는 것들이 있었다.  브로치중에서 오른쪽에 있는 것, 달을 보는 고양이. 그것 '참 예쁘다!' 하고 들여다봤는데 가격을 보니까 백달러 ($100). 음, 역시, 난 눈이 높군. 맘에 들면 일단 100달러는 기본으로 넘어 주시는군. 흐헤헤. 내 맘에 드는 것이 비쌀땐, 그냥 '난 눈이 높군'하고 스스로 칭찬해주면서 패쓰.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을 나 스스로 발견했는데, 이런 기념품샵에서 뭔가 사고 싶은 것이 있을때, 가격이 비쌀때, 그걸 사진을 찍으면, 내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카메라에 담았으니깐.  그래서 대개 '책'종류를 제외하고 기념품을 사는 일이 별로 없다. 특히나 요즘은, 뭐랄까 인생무상을 느끼면서, 살면 살수록, 뭘 사서 쌓아놓는 일이 무겁게 느껴지고, 그냥 이렇게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자족하게 되는데... 이것도 건강한 패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욕망할줄 알고, 헛된것을 탐할줄도 알고 그런것이 삶이지. 난 어딘가가 고장이 난거야.  기계고장인거야. 기계고장. 난 너무 큰것을 탐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지상에서 불가능한 너무 큰것을 욕심냈던 것이겠지.

 

 

 

 

 

Posted by Lee Eunmee

 

Anna Mary Robertson, Moses 할머니의 일생

 

모세 할머니는 1860년에 태어나 1961년에 사망했다. 1세기 한 바퀴를 돌고도 일년을 더 살은 셈이다.  결혼하기 전 이름은 안나 마리 로버트슨 (Anna Mary Robertson)이었고, Moses와 결혼하였으므로 남편의 성을 따라서 Moses 할머니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안나 마리를 씨씨하는 애칭으로 불렀다. 씨씨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역, 뉴욕주의 시골마을, 평범하고 가난한 농부의 아이로 태어났다. 당시 농가의 아이들은 집안일을 거드느라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도 많지 않았다. , 가을에는 들판에 나가서 일을 거들어야 했고, 여름과 겨울에 3개월씩 학교를 다닐수 있었다.

 

어느 겨울날 아빠가 몸이 아파서 며칠간 일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게 된 적이 있었다.  아빠는 심심한 나머지 집안의 빈 벽에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는 거실벽에 페인트로 호수의 풍경화를 그려넣었는데, 온가족이 이 그림을 보고 기뻐하였다. 어린 씨씨 역시 아빠의 그림이 좋아보여서 판자에다 숲과 호수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한대로 이것을 ‘lamb scape’ 라고 불렀다. (영어로 풍경화는 랜스케이프, landscape 인데, 어린아이가 이 단어를 잘 모르니까 lamb scape 라고 말 한 것이다.) 식구들은 씨씨가 램스케이프라고 하는 것을 보고 깔깔 웃었다고 한다.

 

씨씨는 농가의 소녀들이 그러하듯 엄마가 단풍시럽을 만들거나, 우유로 버터를 만들 때 거들어야 했다. 씨씨는 양초를 만들고 비누를 만들기도 했다. 세탁이나 다림질, 바느질 등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을 부지런히 배웠다. 그리고 열두살이 되던 해에, 다른 농가의 소녀들처럼 씨씨도 남의집 살이를 하기 위해 떠났다. 60년대, 70년대 농가의 소녀들이 서울이나 대도시에 식모아이로 들어간것과 마찬가지 풍경이었으리라.  당시에는 이러한 풍경이 낯설지 않았으므로 씨씨역시 이런 상황을 특별히 슬퍼하지는 않았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명랑하게 성장했다.  씨씨는 일요일에 주인집 가족들과 다함께 교회당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오랜만에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를 사귈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씨씨가 두번째로 옮겨간 집에서는 씨씨가 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래서 집안 일을 모두 마치고나면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어느날 씨씨가 그린 마을 풍경화를 본 선생님이 그 솜씨에 감탄하여 그림을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씨씨에게는 잊을수 없는 기쁜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자신의 그림을 칭찬해주었으므로.

 

 

 

 

이렇게 남의집살이로 일을 하던 씨씨는 1986, 17세 되던 해에 토마스 솔로몬 모세 (Thomas Solomon Moses)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 역시 같은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둘은 결혼하여 버지니아의 섀난도 골짜기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이들은 열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중에 다섯명의 아이를 골짜기에 묻어야 했다. (그림: 섀난도 골짜기 Shanandoh Vallery, 1938)

 

 

 

 

 

 

 

 

 

섀난도 골짜기의 농장에서 살던 이들은 다시 뉴욕주로 이주하게 된다. 이들은 이글 브리지 (Eagle Bridge) 근처에 농장을 장만하여 니보산 (Mr. Nebo)이라고 이름짓고 정착한다이곳에서 씨씨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농부인 남편을 거들면서, 집안 살림을 하면서 부지런하게 살아간다. 어느해에 도배를 하다가 도배지가 다 떨어지자 씨씨는 페인트로 난로 가림판에 풍경화를 그린 적이 있었는데, 가족들이 이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가 최초로 그린 커다란 그림이었다고 모세 할머니는 술회한적이 있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하여 집을 떠나고 난후, 1927 1, 모세 할머니가 67세 되던해에 남편 토마스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게 된다. 자녀들도, 남편도 떠나고 홀로 남겨진 모세 할머니는 시름을 덜 겸, 털실로 헌 그림을 고치곤 했는데, 시력이 약해지고 류머티즘으로 바느질을 하기 어려워지자 그림붓을 들게 된다. 그렇게 십여년간 모세 할머니는 심심파적으로 싸구려 페인트와 붓을 이용하여 추억속의 풍경들을 그리게 된다. 그의 그림 속에는 링컨 대통령이 저격당하여 조기를 내 걸고 있는 마을이 들어있기도 하고, 새로운 자동차를 타고 소풍가는 가족의 풍경이 그려져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뉴잉글랜드 지방 농촌 사람들의 삶의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뉴잉글란드 지방이 북부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이 길어서인지 특히나 눈 쌓인 겨울 풍경이 많이 보인다. 흰눈,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조각보를 만드는 장면도 보이고, 다 함께 단풍시럽을 만드는 장면도 보인다. 이는 모세 할머니가 평생 살아오면서 직접 경험한 삶을 풍경들이었고, 그이의 추억속에 생생하게 흐르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모세 할머니의 그림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1938, 모세 할머니가 78세 되던 해에, 모세 할머니는 자신의 그림을 동네 상점 (Hoosick Falls drugstore)에 진열해 놓았다. 몇푼에라도 팔리면 용돈벌이를 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오랫동안 예정되어온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마침 이 상점을 지나던 뉴욕의 미술품 수집가 루이스 칼더 (Louis Caldor)가 시골 상점에 진열된 모세 할머니의 그림들을 발견하고, 이 그림에서 어떤 가능성을 읽어낸 것이다. 그는 당장 상점에 진열된 작품들을 모두 사들여가지고 뉴욕으로 향한다. 처음에 뉴욕 화랑가의 반응은 냉담했다. 알수도 없는 무명, 노인 화가의 그림에 투자해봤자 별 볼일 없을거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무명 미국화가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모세 할머니의 그림 세점을 전시하게 된다. 이어서 1940 (모세 할머니 81) Galerie St. Etienne 에서 모세 할머니의 개인 전시회를 개최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보러왔고, 이들은 모세 할머니의 풍경화속에 담긴 추억을 읽으며 감동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1961년 모세 할머니가 사망할때까지 20여년간, 1,5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려내면서, 모세 할머니는 그야말로, ‘국민 할머니로 통하게 된다. 트루만, 아이젠하워, 케네디 대통령이 모세 할머니에게 해마다 신년 카드를 보냈으며, 할머니의 작품들이 크리스마스 카드나 달력으로 판매되고 혹은 벽지나 직물에 박혀 대량으로 판매되어 나간다. 그녀의 일대기가 드라마가 되어 소개되기도 하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소개가 되기도 한다. 그녀가 사망하기 전에 어느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는데, 모세 할머니가 살던 시골에서는 그 방송이 잡히지 않아 정작 모세 할머니는 자신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후에 방송 기자가 다큐멘터리 테이프를 가져다가 틀어서 보여줬다고 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신을 본 할머니는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무엇이 모세 할머니의 기적을 만들어 냈는가?

 

미국 미술사가들은 모세 할머니의 그림이 갖는 예술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다. 모세 할머니의 그림을 예술적인 회화로서 취급하기 보다는 풍속화 (folk art, primitive art)’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오히려 모세 할머니의 풍속화들이 왜 그 시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지, 그 배경을 주로 논의 하는 편이다. Framing America: A Social History of American Art 의 저자 Frances K. Pohl 이나 American Visions: The Epic History of Art in America 의 저자 Robert Hughes 는 모세 할머니가 발견 된 시점의 사회적 분위기에 주목한다.

 

모세 할머니가 뉴욕화단의 수집가에게 발견될 즈음,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인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공공미술정책의 영향으로,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중서부 출신의 화가 그랜트 우드 (Grant Wood)가 한편에서 미국인의 미국적인 것을 외치며, ‘미국의 풍경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거니와, 뉴딜정책의 공공미술프로젝트에서 요구된 것이 미국의 풍경이기도 했고, 여태까지 유럽문화에 의지하던 미국인들은 우리들만의 것에 서서히 눈을 돌리게 된다.  미국이 자랑하는 미국화가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가 너무나도 미국적인 풍경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이 1930년대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경제 대공황이었던 1930년대에 미술가들도 역시 경제적 암흑기를 거치게 되었는데, 에드워드 호퍼는 이때부터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30년대에 서서히 우리 미국인들의 풍경에 눈을 뜨게 되는 미국의 대중들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1945년 전승국이 되어 경제적 호황을 누리게 되면서, 자신이 소속한 국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유럽으로 눈길을 돌리던 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것, 우리 할머니들의 것, 우리가 향유하던 것을 향하게 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것이 모세 할머니의 기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모세 할머니 외에도 1948년 크리스티나의 세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 청년 앤드루 와이어드가 있었고, 그리고 일관되게 미국의 얼굴, 미국의 풍경들을 밝은 색조로 그려낸 노만 로크웰 (Norman Rockwell)도 있었다.  미술 수업을 받지도 못 한 채로 혼자 그림을 그리다가 역시 말년에 미술계에 데뷔한 호레이스 피핀 (Horace Pippin)역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발굴해 낸 미국의 작가라고 할 만하다.

 

미술사가들은, 모세 할머니가 특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계기를 당시 눈을 뜨게 되는 텔레비전과 대량생산문화에서 찾기도 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하고 어린아이들이 노래를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텔레비전은 대중문화 매체의 상징이고,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모세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이가 그려내는 작품의 예술성을 떠나서 그대로 소박한 인간의 승리를 전하는 드라마이기도 했을 것이다. 카드회사에서 찍어내는 그이의 그림을 담은 크리스마스 카드나 달력, 직물회사에서 찍어내는 그의 그림이 박힌 벽지나 테이블보는 모세 할머니를 더욱 대중에게 다가가게 해 주었다. 그이가 그린 그림들이 예술성이 어떠한지 이미 그것은 대중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모세 할머니는 예술성을 넘어서서, 비평가들의 회의적 시선을 넘어서서 이미 국민 할머니가 되었고, 대통령들이 앞다퉈 악수를 하고 싶어하는 미국 문화의 상징, 그리운 추억의 아이콘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제목: Christmas (1961)

                                                 Oil and Tempera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 풍속화 갤러리 2009년 9월 6일 촬영

 

모세할머니는 나이 80에 미술계에 정식 데뷔했지만 그 후로 20년이 넘도록 국민 할머니로 영예를 누리며 살아갔다. 그가 남긴 그림이 1,500점이 넘는다고 하는데, 꽤 많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워싱턴의 국립 미술관이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그이의 그림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미술관 웹사이트를 뒤져보면 소장품 명단에 몇 편이 올라있지만, 전시장에 내 걸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내 눈으로 확인한 모세 할머니의 작품은 워싱턴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의 소장품 한 점,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한 점, 이렇게 딱 두 점이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의 소장품은 풍속화 (folk art)’ 갤러리에 걸려있다.  필립스 콜렉션에서도 한번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데, 요즘은 전시되고 있는 작품이 없다. 

 

                                           2009년 7월 3일 촬영

 

 

 

전시장에서 그림을 볼 수 없다 해도 실망 할 필요는 없다. 해마다 달력업자들은 모세 할머니의 그림 열두 장을 담은 달력을 찍어내고, 우리는 일년 내내 그이가 그린, 행복한 그림을 보며 지낼 수 있으니까. 모세 할머니는 그이가 기억하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하지만 한국인인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우리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우리 이웃집 어르신들, 내 친척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을 찾아낼 수 있다. 미술 비평가들은 모세 할머니의 그림이 갖는 회화사적 작품성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이다.  하지만, 모세 할머니는 비평가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고 명랑하게 그림들을 그려나갔고, 그의 그림들은 지금도 나에게 노래, 행복한 어린 시절의 노래를 선사한다. 이 행복한 보편성에 대해서 비평가들은 어떤 설명을 해 줄 것인가?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예술은 비평을 초월하는 곳에 있다고.

 

http://www.benningtonmuseum.com/index.aspx  이곳은 모세 할머니를 기념하는 미술관. 뉴잉글랜드 지역 버몬트주에 위치하고 있다. 2009년 8월에 매사추세츠를 방문하면서 이곳을 들러보려고 신경쓰고 있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가 볼 수 없었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에는 모세 할머니가 젊은시절 20여년간 살았다는 셰난도 골짜기의 농가집이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다.  소풍삼아 그 언덕에라도 가게 되면 그때 관련 페이지들을 업데이트 하겠다.

 

 

 

관련 페이지들: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randma%20Moses

 

 http://americanart.textcube.com/182  또다른 일러스트레이터, 여성 화가 Tasha Tudor 이야기.

 

 

참고자료:

 1. Grandma Moses, written and illustrated by Alexandra Wallner

 2. American Visions: The Epic History of Art in America by Robert Hughes

 3. Framing America: A Social History of American Art (2nd Ed.) by Frances K. Pohl, Thames & Hudson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9. 28. 18:45

그동안 틈틈이 미국사와 미국미술의 발전사를 살폈는데, 이제 어떤 전체적인 '지도'가 필요한 시기인 듯 하다.  중구난방으로 기분 내키는대로 쓰고 있긴 하지만, 이제 골격은 잡아놓고 부분부분 그려나가는 식으로 정리를 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이 문제로 고민을 좀 하고 있었는데, 뉴왁 미술관 미국미술 관련 페이지에서 대략의 뼈대를 잡을수 있었다.

 

뉴왁 미술관에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이 미술관은 분명히 시대적으로 어떤 개성을 정해놓고 전시품들을 진열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립미술관도,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도 시대적인 개념을 정하여 소장품들을 전시하긴 했는데, 뉴왁이 이를 분명히 밝혀서 '안내'를 잘 하고 있다.  내가 읽고 있는 미국미술 안내서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긴 했는데 막상 차례를 살펴봐도 그렇고 '장황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확실한 '지도'를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미술의 흐름이란것이 자대고 줄긋듯 명확히 떨어져주는 개념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내 머릿속에도 장황한 개념만 열거될 뿐, 시대별로 똑 떨어지게 정리가 안된다.

 

아래의 연표를 바탕으로, 이를 응용하며 커다란 전지에 시대별 지도를 그려놓고, 해당 시기에 나를 '매혹'하는 작가들을 포스트잇으로 붙여나가는 식으로, 나만의 미국미술사를 완성시키면 좋을 듯 하다. (누군지 정리 한번 잘 해 놓았다.)  왜 미술전문가들은 이런 시도를 안하거나 못하는걸까? 너무 아는게 많아서?  그런데 아는게 많아도 주워담지 못하면 그게 또 마냥 허무한거라... 왜 방대한 지식을 담은 책들이 이런 간단한 표 하나를 제시하지도 못하는가?  나는, 일단 누군가가 잘 정리해 놓은 표에 입각해서, 내식으로 응용하여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지고, 그 틀안에 작가와 작품을 집어 넣는 식으로 모자이크 하여 미국미술사를 완성시키겠다.

 

 

http://www.newarkmuseum.org/PicturingAmerica.html

1730 to 1900

The American Colonies, 1730 -1776
The Young Republic, 1790 -1860
Romantic Portraits for Eastern Cities, 1790-1860
Country Portraits, 1790 -1860
The Rise of Landscape Painting, 1825-1880
The Civil War and Its Aftermath, 1860-1900
The Lure of Europe, 1850-1900
The Gilded Age, 1875-1900


1900 to Present

Into the Modern Era, 1900-40
Far From the Modern World, 1900-25
A Modern Art For a Modern World, 1910-30
Faith, Fear and Failure in The Machine Age, 1920-40
In the Wake of the War, 1945-65
Surrealism and Abstract Expressionism, 1930-65
Challenging Conformity, 1955-65
Art Since 1965

 

이 표를 바탕으로 내 표를 만들어내면 된다.  이제 정리가 되었으니까, 두서없는 분류 시스템도 개편을 하고. 정진.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9. 28. 07:39

(그림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 작품은, 미국의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 (Social Realist) 로 알려진 벤 샨 (Ben Shahn)의 '해방 (Liberation)' 이라는 구아시 화 이다.  뉴욕 맨하탄의 '현대 미술과 (Museum of Modern Art)' 소장품으로 마침 운좋게 관람이 가능했다.  미술관에 제공한, 작품 옆의 작은 '이름표'에 나온 정보에 의하면, 이 '해방'이라는 작품은 1945년에 그려진 것이다. 그러면, 이 작품을 읽는/보는 우리는 1945년이라는 해와, '해방'이라는 제목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1945년은 어떤 해인가?  한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광복의 해'가 된다. 1945년이 단지 한국인들에게만 광복의 해는 아니었다. 2차 대전이 1945년에 끝났을때, 지구상의 여기저기에서 식민지로 신음하던 약소국가들이 '조선'처럼 광복을 맞이하기도 했고,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는 상황 자체가 전쟁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계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일단 해방을 맞이 한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자. 전쟁의 폐허를 여실히 드러내는 폭격당한 건물이 있고, 그리고 광장에 '뺑뺑이' 기둥이 하나 서있다. 그 뺑뺑이에 아이들 셋이 매달려 있다. 아이들이 뺑뺑이를 타고 있는 배경은 황량하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쌓여있고, 바람이 쌩쌩 불고 있는 듯한 붓의 터치가 느껴진다. 아이들은 창백해 보인다. 명랑하게 웃고 있는 표정도 아니다.

 

이 그림은 우울한가?

절망적인가?

희망적인가?

어떠한가?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건, 해석은 보는 사람의 자유이다.  우리도 작가의 의도로부터 '해방'될 권리는 있으니까.

 

요즘도 뺑뺑이가 있을까?  내가 어릴때, 당시에는 동네에 놀이터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네나 미끄럼과 같은 '놀이시설'은 오직 학교 운동장에나 가야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파트마다, 골목마다 놀이터 시설이 설치되어 있지만, 내가 어릴때는 시골에서는 아무데서나 놀면 되었고, 도시에서는 골목에서 놀았다. 학교에 가면 알량하게 서 있는 미끄럼, 그네에는 늘 아이들이 매달려 있어서 그네를 한번 타보기도 쉽지 않았다. 때로, 그네는 수리를 구실로 그냥 묶어 놓기도 했었다. 그리고 뺑뺑이가 있었다.  기둥에 최고리 줄이 몇가닥 매달려 있고, 그 쇠고리 줄을 잡고서 한 방향으로 내쳐 달리다가 발을 공중에 띄우면 원심력에 의해서 몸이 바깥으로, 허공으로 쌩 떳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아! 신나는 뺑뺑이였다!  지금도 학교 운동장에 그 뺑뺑이가 있을까?

 

화집에서 이 그림을 처음 발견 했을때, 나는 '뺑뺑이'를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우리들은 전국민이 모두 가난했고, 그래서 가난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무수한 가난뱅이 아이들중의 하나였을 뿐.  우리들은 가난한 놀이 시설에도 기죽지 않았다. 우리는 뺑뺑이를 타면서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을 맛봤다. 

 

그림속의 아이들이 절망적인가?

우울한가?

 

아, 나는 이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리고 이런 풍경에서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대개 우등생 표시가 붙었지만, 건강상황에는 항상 '영양실조, 빈혈' 이라는 표시가 따라다녔고, '영양실조로 보이니 건강을 신경써주십사' 하는 선생님의 친절한 통신문이 덧붙기도 했었다.  나는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뜨고, 아파보이는 빈민가의 아이였으나, 나는 무럭무럭 자랐고, 새나라의 아이답게 꿈을 꾸며 살지 않았던가?

 

나는 이 그림을 보면 행복하다. 폐허가 된,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 보이는 알록달록한 무늬는, 아마도 드러나는 벽지이리라. 각기 다른 벽지를 붙이고, 각기 다른 꿈을 갖고 살던 사람들이 이곳을 지키다 사라졌고,  그러나 다시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타날 것이다.  알록달록한 벽은, 어찌보면, 내가 처음 본 서울의 골목골목의 풍경 같기도 하다. 볕이 놓은 날이면, 무허가 골목의 담벼락이나 빨래줄에 내 걸리던 알록달록한 나이롱 이불들.  그 나이롱 이불들은 햇살 아래서 뽀송뽀송 말라갔고, 그날밤 그 집 식구들은 신선한 햇살 냄새가 나는 나이롱 이불을 깔고 덮고 잠이 들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가난은 우리를 파괴하지 못했다. 전쟁도 인간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폭력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수는 있으나 인간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redfox.

 

 

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9. 28. 02:34

Moma Highlights

 

 

뉴욕 현대미술관 방문기념으로 약 20달러 주고 산 핸드북. 책 내용은 좋다. 문제는 '아마존'검색해보니까 15달러면 되는건데 (물론 배송료 5달러 포함하면 마찬가지가 되지만, 25달러 이상 구매시 무료 배달해주니까, 여러권 묶어서 살때 사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현장에서 사면 조금 비싸도, 그래도 현장에서 사는 '손맛'이란것이 있어서, 몇달러 더 주고 그냥 사게된다. 견물생심이라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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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27. 23:56

미술관 소개 페이지를 만들려다가, 그것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스케치만.

 

 

 

 

뉴욕가기

 

버지니아 우리집 근처 알링턴에 Vamoose 라는 버스회사 정거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뉴욕 맨해턴 중심의 펜스테이션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선다. 지난해에는 편도 20달러, 왕복 40달러였는데, 올해는 편도 30달러, 왕복 60 달러로 인상되었다.  온가족 네다섯명이 뉴욕 소풍을 간다면 승용차로 가도 무관하겠으나, 한두사람이 뉴욕에 갈때는 승용차로 가나 직행버스로 가나 차비가 차이가 안난다.

 

개인의 예로 들어보면, 승용차로 뉴욕에 다녀올 경우

 1. 왕복 꼬박 9-10 시간 운전을 해야 하고

 2. 개솔린 값이 못 잡아도 50달러는 들고

 3. 톨게이트 비용 왕복 50달러 정도 든다 (지난 겨울에 톨비 계산해봤다.)

 4. 맨해턴에서 어딘가에 차를 주차할 경우 주차비는 계산도 안나온다. 주차 시킬곳 찾기도 어렵고 대략 30달러 잡자

 

이러면 차 끌고 다녀오는 실비만 130달러 잡아야 한다.

 

버스로 다녀올 경우, 직행 버스 왕복 60달러, 시내에서 이동하는 것 써브웨이도 있지만 택시로 이동한대도 끽해야 30달러.  차비 100달러로 홀가분하게 다녀올수 있다. 단, 집에서 버스 정거장까지 가고, 집으로 오는 문제는 가족중에 누군가가 수고를 해줘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경우 그냥 택시로 이동해도 그만이다.  교통비가 비슷하게 든다고 해도, 왕복 9시간 운전을 내가 안하고 버스기사님이 해주시므로 버스에서 그냥 잠이나 자도 되므로 피로가 덜하다. 그래서 나는 뉴욕 갈때 버스 타는 쪽을 선호한다.

 

아침에 사고:

 

아침에 밥 좀 챙기고, 아침 여섯시 반에 예매된 버스 안놓치려고 서두르다가, 카메라 가방이 열린채 가방을 집어 들어가지고, 카메라가 쏟아져 내렸다. 결국 카메라 뚜껑속의 필터가 충격으로 깨졌다. 암담했지만, 그냥 깨진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었다. 뭐 카메라는 멀쩡하길래.

 

뉴욕 도착:

 

아침 여섯시반에 알링턴에서 출발한 버스는 열한시 반에 맨해턴 중심 펜스테이션에 도착했다. 그냥 택시 잡아타고 현대미술관으로 갔는데 대략 7달러쯤 나오길래 10달러 주고 거스름돈 팁으로 줬다.  현대미술관 앞에 도착한후에, 미술관 앞 도시 공원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일회용 도시락에 밥 담고, 치즈 두장 얹은 것. 빵사먹기 싫고, 그냥 밥이 편해서 이렇게 밥 간단히 먹고 물 마시면 속이 편하다.

 

미술관 구경:

 

대략 열두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한가롭게 미술관을 돌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하도 방대해서 하루종일 헐레벌떡 뛰어 돌아다녀도 목이 타지만, 현대미술관은 이보다 작으므로 조금 한가해진다. 게다가 나는 미국미술을 중점적으로 보기로 했으므로, 포인트가 분명했지. (하지만 결국 유럽미술이 발목을 끌긴 했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한가로운 관람이었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도 만나서 횡재한 기분. 특히 Ben Shahn 의 Liberation 이라는 작품이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친한 친구 만난듯 반가웠었다.  곧 벤 샨 페이지 열어야지.

 

미술관 기념품:

 

미술관 화집 19달러짜리 한권 사고, 못생긴 괴물 인형을 하나 샀다.

 

 

브로드웨이 토요 벼룩시장:

 

오후 네시반에 브로드웨이의 토요 벼룩시장 열린곳에서 친구를 만났다. 시장구경은 항상 유쾌하다. 아무것도 안 샀지만.

 

이스트 빌리지에서 저녁:

 

뉴욕대가 있는 이스티 빌리지는 대학가 답게 식당이 많고 음식값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이곳의 유명하다는 일식집에서 우동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근처에 터줏대감들만 알아서 찾아간다는 케이크 전문점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브레히트와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하여. 뉴욕의 예술인들에 대하여 친구와 잠시 즐거운 대화. 아 뉴욕에서 3년만 살아보고 싶다.

 

귀가

 

오후 일곱시, 펜스테이션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귀가. 오후 열한시 반 알링턴 도착. 집에 오니 자정.  집에 오자마자 웹 검색하여 내 카메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보를 찾아냈다. 필터만 새로 사서 끼우면 되는 문제인것 같았다. 불행중 다행. 확김에 80달러짜리 고급 필터 주문해 놓고, 앞으로 카메라를 조심해서 다루겠다고 반성.

 

 

노란 바지 입은 사나이와 나.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25. 09:01

 

워싱턴 디씨 내셔널 몰 지역에 모여있는 스미소니안 박물관들 중에서 이차대전 이후, 동시대 미술품 중심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박물관은 허시혼 미술관이다.  우라늄 광산 재벌이었던 Joseph H. Hirshhorn (조지프 허시혼)은 로댕을 비롯하여 유럽의 거장들과 미국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와 스미소니안 재단이 현재의 위치에 현대미술관을 기획할 당시 허시혼이 그의 소장품들을 기증하고, 미술관 건축비의 일부도 지원했고 연방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허시혼 박물관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이 미술관은 1974년에 문을 열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아래의 지도에서 중앙의 동그란 타이어 모양의 건물이 허시혼 미술관이다.

홈페이지: http://hirshhorn.si.edu/visit/index.asp?key=132

1년중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하루만 휴관하고 매일 개방한다.

미술관 입장시간: 오전 10시 - 오후 5:30분

광장 개방시간: 오전 7시 30분 - 오후 5:30분

조각공원 개방시간: 오전 7시 30분 - 해질때까지

입장료 : 무료

건물 입장시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

 

 

내가 가늠 하기에 한국인이 특별한 목적 없이 구경삼아 워싱턴 디씨를 '수학여행'하는 기분으로 하루나 이틀 시간을 내어 방문 할 경우, 대개 가보게 되는 곳이

 (1)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Smithsonian Museum of Natural History

 (2) 스미소니안 항공우주 박물관 Smithsonian Air and Space Museum

 (3)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이 정도가 될 듯 하다.  그 밖에 국회의사당, 백악관, 링컨 기념관, 좀더 기운이 난다면 알링턴 국립묘지를 대충 둘러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5년전에 워싱턴 구경을 처음 왔을때 그렇게 둘러봤었는데, 다른 분들도 대동소이하다.

 

어학 연수하러 온 학생들한테 "지난 주말에 어디 놀러 갔었어?  여기서는 놀러 다니고 구경하는 것도 다 공부야, 부지런히 돌아다녀" 하고 가르쳐주면 대개 주말에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다녀왔다고 자랑을 한다. 스미소니안 박물관이 한두개가 아닌데 어디 갔었어? 하고 물으면  이때부터 이 학생들이 난감한 표정이다.  이름을 정확히 기억을 못한다.  그러면 나는 "뭘 봤는데?" 하고 다시 물어야 한다.  공룡의 뼈를 봤다고 하면 자연사 박물관이고,  로케트를 봤다고 하면 항공 우주 박물관이고,  인상파 화가 그림을 봤다고 하면 국립 미술관에 다녀 온 것이지. 사실 국립미술관은 스미소니안 계열이 아니다.  그러면 나는 대략 내셔널몰의 지도를 그려주면서 "사실 말이지 스미소니안이 한두개가 아니셔, 그러니까 앞으로는 박물관 다닐때 건물 앞의 '이름표'도 확인좀 하고 그러셔.  박물관들 이름만 정확히 알아도 꽤 많이 아는거니까. 어딜 가건 거기 지명이 뭔지, 어느 장소에 가면 그 장소 이름이 뭔지 그런것 좀 신경써서 읽으셔.  영어 공부 하러 왔으면 '지명'부터 정확히 읽고, 알고 그래야지" 대략 이런 잔소리를 하게 된다.

 

스미소니안 계열 박물관들 중에서 '허시혼 현대미술관'은 보통 사람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다. 이곳은 언제 가봐도 늘 한가롭다. 바로 옆의 항공우주박물관에 여름 방학철에 미전국에서, 그리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아주 많이 모여서 '바글바글'하다는 인상을 줄 때도, 허시혼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나는 가끔 한국의 친지가 와서 함께 이곳에 나가야 할때, 아이들이 있는 일가족을 '항공우주박물관'으로 안내해주고는 나는 거기 사람 많으니까 피곤해서 안들어가고, 그 대신 허시혼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곳은, 말하자면, 소문내기도 싫은 나만의 휴식처라고 할 만하다.  소문나면 사람 많이 오니까, 소문도 내기 싫은.

 

위에 잠깐 소개한대로, 이곳은 개성이 뚜렷하다.  국립미술관에 전세계의, 전 시대를 망라하는 작품들이 총 망라 해있고, 미국미술 박물관에 미국미술이 총망라 되어 있다고 한다면, 허시혼 미술관에는 이차대전 이후의 현대/동시대의 작품들이 모여 있다.  이차대전 이후, 유럽의 미술가들이 여러가지 사유로 망명하거나 이민을 하여 뉴욕으로 몰려들고, 이들이 갖고 온 유럽 미술 화풍과 미국의 풍요가 만나면서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을 필두로  이제 세계 미술의 중심은 미술이 선도하게 되었다고 미국은 자랑한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이 미술관에는 미국이 자랑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고, 일반인 누구라도 아무때나 이 명품들을 맘껏 볼 수 있다.

 

미술관 건물은 '타이어' 처럼 둥근 건물로, 관객이 복도를 따라 전시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한바퀴 돌아 원점에 서게 된다. 1층은 입구와 뮤지엄 샵. 지하층은 특별 전시장으로 이용된다. 2층과 3층에 상설 전시장이 있는데, 층간에는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게 된다. 뉴욕 맨해튼의 구겐하임 뮤지엄 역시 둥글게 설계가 되었는데, 그곳은 달팽이처럼 나선형으로 계속 둥글게 올라가는 형식이고,  허시혼 건물은 층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형태이다.

 

중앙 복도쪽 전시장에는 주로 조형물, 조각작품들이 전시되고, 외곽의 전시장에는 회화를 중심으로 전시가 된다. 3층에 올라가면 커다란 유리벽이 있는 홀이 나타나는데, 위의 사진에서 창문처럼 보이는 부분이 바로 그 유리벽이다.  이곳에는 푹신한 소파가 반달형으로 놓여있어서, 이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내셔널 몰의 아름다운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소파에 몸을 묻고 한시간쯤 하늘의 구름이나 보면서 졸다가 일어나도 극락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건물 밖 정면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조각 공원이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비롯한 명작들이 여기저기 서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세세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정리하기로 하고, 이 페이지에서는 대략 여기까지만 정리하겠다.

 

미술관:

 

다리가 있는 고리모양의 건물:  1층에 간단한 입구와 뮤지엄샵만 있고 전시장이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건축 디자인 때문이다. 다리부분이 1층이므로 전시공간이 없는 것이다.  전시장은 지하층, 2층,3층까지.  4층은 전시공간이 아닌듯, 개방되어 있지 않다.

 

 

 

지하 전시 공간: 현재 Strange Body 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전시 관련 이야기는 별도의 페이지에서~

 

 

 

 

 

2층 조형물 전시장. 복도를 따라 이동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오른편 외곽쪽에 회화 중심의 전시장이 역시 고리모양으로 이어져있다.

 

 

3층 현대회화 전시장, Robert Motherwell 의 작품이 보인다.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탄생시킨 주역, William de Kooning 의 작품들만 모아놓은 전시실.  Kooning 의 작품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 있기가 힘든데...

 

 

 

3층 조각품 전시실 풍경.  관객을 위한 빈의자가 한가롭게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3층 홀.  거대한 유리벽 밖으로 워싱턴 디씨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들과 풍경들이 보인다.  이것이야 말로 그대로 '작품'일 것이다.  (중간쯤에 보이는 건물이 국립 미술관)

 

 

 

 

 

 

 

 

여기쯤서 자연사 박물관의 거북이 등딱지같은 초록색 지붕이 가장 잘 보인다.  자연사 박물관의 지붕을 보면 내 가슴은 뛴다.  내가 내셔널 몰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 자연사 박물관이다. (미술관이 아니므로...여기서는 생략.)

 

 

 

 

 

 

 

 

 

 

조각공원: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나는 이 작품을 각기 다른 세가지 장소에서 보았다.

(1) 필라델피아 로댕 뮤지엄 중앙홀에 이 작품이 있다. 첫 만남이었다.

(2) 뉴욕 맨해턴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보았다. 두번째 만남이었다.

(3) 허시혼 뮤지엄 조각공원 -- 바로 이곳에서 보았다. 세번째 만남이었다.

 

똑같은 작품이지만 평을 하자면, 필라델피아 로댕 뮤지엄의 칼레의 시민은 홀이 협소한 느낌이 들어서, 좀 안타깝고,  메트로폴리탄의 칼레의 시민은 천장이 높은 홀에 있지만, 어쩐지 복도에 서있는 사람들 같은 느낌을 주고,  가장 맘에 드는 구도는 허시혼 조각공원에 서있는 칼레의 시민들이다.  아무래도 야외 조각공원에 서 있어서 정말 광장에 서 있는 죄수같은 느낌도 나고, 조각의 맛이 제대로 산다.  아무래도 이 '광장'의 칼레의 용자들을 보기 위해 나는 이곳을 자주 지나치게 될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는 허시혼을 꽤 자주 드나들었지만, 조각공원을 유심히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칼레의 시민이 서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조각품에 무심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의 그림 구경 취미는 꽤나 '평면적'이라고 할만하다. 로댕에 대한 나의 사랑은 좀 예외적이고 특별한 경우이고, 그 외에 나는 조각작품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때로는 도시에 서있는 조각품중에는 '흉물'스러우니 치워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 할 정도로 내가 싫어하는 것도 있다.  조각작품에 대해서 나는 꽤 야박스러운 편이다.  그래서 오늘 문득 칼레의 시민을 발견해내고 내가 생각한 것이, 내가 참 심심하고 평면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조각공원에서 벗어나 스미소니안 메트로 역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면 보이는 풍경. 길 왼편에 현재 공사중인 '산업미술'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중앙에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 산업미술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벌써 몇년째 내부 공사중이라는 안내만 하고 있다. 내부 공사가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2009년 9월 24일 방문. redfox

 

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9. 25. 08:58

Visual Thinking

 

허시혼 뮤지엄 샵 ( http://americanart.textcube.com/72 )에서 방문기념으로 한권 샀다. 첫 페이지부터 재미가 있길래.  읽다가 재미 있는 부분은 정리를 하겠다.

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9. 24. 12:51

Philadelphia Museum of Art Handbook of Collections [Second Reprint, 1999]

 

 

일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63   에 갔던날, 뮤지엄샵에서 이 책을 한권 사려다가 말았었다. '아마존 닷 컴'에서 사면 할인가격에 좀 더 저렴하게 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집에와서 웹 검색을 해보니 아마존에서 취급을 안하는 책이었다. 그렇다고 구형 판형의 '헌책'을 사고 싶은 생각도 안들었다. 그래서 운송료 8달러를 부가적으로 물고 언라인 뮤지엄샵에서 새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아, 나의 실수).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워싱턴 디씨지역의 뮤지엄샵에서 판매가 되던 미술관련 책들은 아마존 검색해보면 미술관 판매가격보다 아마존 할인율이 높아서 미술관에서 타이틀 적어놨다가 언라인으로 구입하곤 했었다.  그런데, 때로는 미술관에서만 취급을 하는 책들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뮤지엄 다닐때 일일이 컴퓨터 갖고 다니면서 이 책이 미술관이 더 싼가, 언라인 책방이 더 싼가 확인하기도 귀챦은 일이고.  (요즘은 각종 통신기기가 발달해 있으니까, 넷북이나 휴대전화 열고 현장에서 가격비교도 쉽게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휴대 인터넷검색족은 아니다. 그것도 귀챦아서.)

 

그래서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 집 근처 뮤지엄샵 책들은 나중에 또 가도 되니까, 그리고 대개 언라인 책방에서 할인이 되니까 언라인 구입하고, 먼곳에 있는 뮤지엄샵의 책들은 혹시 모르니까 현장에서 맘에 드는 책 발견하면, 그냥 사고 만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그날 미술관을 샅샅이 둘러보고 다리도 쉴겸 뮤지엄샵에서 책 구경하다가 이것을 열어 봤는데,  내가 맘에 들어하던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많이 나와줬다.  그러니까, 그 무수한 작품들 중에서 한정된 숫자만을 선정하여 소개한 이 핸드북을 만든 편집자들과 나의 코드가 맞아 떨어진다는 셈이었다.  (이는 내가 매우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이나 기호를 갖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내가 아주 평범한 관객이라는 뜻이리라.)  아무튼 내가 눈여겨 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었으므로 흥미가 생길수밖에.

 

역시, 배달된 책을 들여다보니 내가 미처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사실들이 속속 나와준다. 가령 예를 들어서, 로댕의 '지옥의 문  http://americanart.textcube.com/59  '의 경우, 37년간 이 한편의 완성을 위해 씨름했던 로댕이 사망했을때, 지옥의 문은 아직도 미완성이었고, 실제로 작품이 만들어진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주형 틀은 있었지만 작품은 아직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 당시 미국의 한 재벌이 완성품 두개 (주형 틀로 두개를 찍어내는것)를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지옥의 문 첫 두 작품중에 하나는 그가 프랑스에 선물하고, 하나는 미국으로 운반해와서 그의 조국 미국에 선사했다. 바로 그가 그의 조국 미국에 선사한 '지옥의 문'이 필라델피아 로댕 뮤지엄에 있는 그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지옥의 문이, 이 세상에 첫 선을 뵌 미완성 지옥의 문 첫 두작품중의 하나였던 것이고,  이 첫작품들이 탄생할수 있도록 후원한 사람은, 미국인 실업가였던 셈이다. 결국, 작품은 프랑스인 로댕이 만들었는데, 정작 로댕 사후에 그것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후원한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돈 많으니까, 팍팍 썼구만...)  덕분에 나같은 사람도 그런 명작을 공짜로 구경 할 수 있으니, 고마울 뿐.

 

지옥의 문이 '미완성'이라는 것도 꽤 상징적이다. :-)  (음, 아무래도 지옥의 문 특집 페이지 몇장 만들어야 하려나...갈등.)

 

내게는 큼직한 미술관의 화집이 몇권 있는데, 일단 미국의 책값을 기준으로 보면 큰 미술관의 화집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리는 편이라 가격 부담이 덜해서 몇번 망설이다가 살수 있고 (너무 비싸면 못산다),  그리고 그렇게 집어온 책은 집에서 심심할때마다 자주 열어놓고 보게 되는데, 보면 재미있다. 재미있고 흥미생기면, 시간 날때 또 미술관에 가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러면 더 재미있어지고...

 

 

결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 마음에 들 경우 현장에서 사세요. 언라인 책방에서 구하기 힘들어요. 배송료 비싸니까 현장에서 사는 것이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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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21. 02:10

 

공식 홈페이지: http://americanart.si.edu/

내가 작성한 또다른 안내 페이지: http://freefeel.org/wiki/VisitTheSmithsonian

 

 

                                               위의 지도에서 중앙의 맨 윗쪽에 있는 박물관

 

 

워싱턴 디씨에 있는 '스미소니안' 계열 국립박물관들 중의 한가지로 (1) 미국미술 박물관 (2) 국립 초상화 갤러리가 함께 있다. (이곳에 가면 두가지 박물관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곳 외에도 스미소니안 계열 미술 박물관에 가면 '미국 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으므로 '미국미술' 관련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는 동안 나는 꽤 자주 내셔널 몰 지역의 미술관들을 산책하게 될 것이다. 물론 스미소니안 계열 박물관 뿐 아니라, 이미 소개가 된 필립스 콜렉션이나 코코란 미술관, 국회 도서관, 기타 건물들에 미국 주요미술품들이 전시가 되고 있으므로 볼거리는 풍부하다 할 수 있겠다.

 

 

이 많은 미술관들중에서 '미국미술'과 관련된 '왕중왕'은 아무래도 국립미국미술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이곳에 가면 미국 건국초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주요 미술품들이 골고루 소개가 되고 있다.  초상화 갤러리에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실이 있고, 관련 멀티미디어 자료도 볼 수 있다. 미술 박물관 쪽에서는 상설전시, 특별전시, 특강등을 통해 대중들이 예술을 가까이서 즐길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워싱턴지역의 스미소니안 계열 국립 박물관은 모두 '무료입장'이다. 버지니아에 있는 항공우주 박물관의 경우 '주차비'를 따로 받지만 그곳 역시 입장료는 무료이다.

 

스미소니안 계열 국립박물관이 전관 무료개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나름대로 세가지를 추측하게 되는데  (1) 그 첫번째는 미국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행정수도의 국립박물관을 무료 개방함으로써, 미국이 문화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 아닌가? (2) Smithson 이라는 영국의 재벌이 사심없이 한번도 가보지도 않은 나라, 신생국 미국에 그의 유산을 쾌척하여 그 기금을 씨앗으로 세워진 박물관들이므로 '스미손'씨의 조건없는 '기여'의 정신에 부응하여 역시 돈 없는 '걸인'이라도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문을 열어 놓은 것이 아닌가?  (3)  미국의 수도, 그 중앙 국립광장이라 할수 있는 National Mall 에 일년 내내 미국 전역에서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자녀를 거느린 미국인들은 자녀들의 역사교육을 위하여,  미국의 수도를 보기 위하여, 외국인들 역시 미국의 수도를 보기 위하여 방문하게 되는데, 미국인들에게는 '수도에 가면 국립 박물관이 모두 무료다, 우리 미국인들은 이렇게 근사한 나라의 국민이다. 우리는 대접받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고, 외국인 방문자들에게는 '미국은 역시 근사한 나라야'하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데, 이는 입장료 수익을 상회하는 큰  이익을 가져 올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특히 수십개의 주로 이루어진 미국은 전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만한 정신적인 '아이콘'이 필요한데, 내셔널몰이 일부 그러한 '아이콘' 역할을 하고, 무료 입장 가능한 국립 미술관들 역시 이런 분위기에 일조한다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워싱턴디씨를  수년간 드나들며 관찰한 나의 시각이다.

 

 

 

 

 

워싱턴 지역을 통과하는 메트로 (전철) Red Line의 Gallery Place/ China Town 메트로역에서 나오면 바로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빨간선, 한국의 3호선이 Orange Line 인것처럼 이곳에서 색깔로 노선 구분을 한다. 한국에서 나는 3호선 Orange Line 구역에 살았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Orange Line 을 통해 주로 이동한다) 이곳이 갤러리 플레이스, 차이나타운 역인 이유는 이곳에 갤러리들이 있고 또한 박물관 뒷편으로 중국인들의 거리인 차이나타운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도심이면서도 늘 한적한 느낌이 들어서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1930년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미술 기금이 마련되었을때, 미국 전역의 화가들이 기금의 도움으로 그림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당시 작품들을 재 전시 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 뿐 아니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우리들이 겪고 있는 경제 불황이 1930년대의 경제 암흑기를 연상시킨다.

 

 

 

기형적으로 커다란 꽃, 동물의 뼈, 단순한 선과 면의 주로 그린 조지아 오키프의 대형 그림이 보인다.

 

 

 

3층 링컨 갤러리의 중심에 설치된 백남준씨의 Electronic Super Highway 라는 작품을 볼 때마다 엉뚱하게도 내 머릿속에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가 흐른다.  여기 한국산 미술가가 설치 해 놓은 미국 최고의 작품을 보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 숨겨진 다른 백남준씨의 작품들은 후에 별도의 페이지를 열고 정리하겠다.

 

 

 

미국미술박물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3층 링컨 갤러리. 사진 왼편 벽, 형광불빛이 나오는 벽면에 백남준씨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동시대의 조각품, 회화,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때로 나는 이곳에 설치된 작품들에 대해서 '설명'을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리는데, '말'로는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나의 설명력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몸으로 체험하기 전에는 도무지 짐작이 안되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는 친구가 '어디 봐야해?'하고 물을때 나는 서슴치 않고 '미국미술 박물관'에 가보라고 권하게 되는데, 미국미술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이곳에 와서 꼭 봐야할 보물들이 있기 때문에... 가슴이 컥 막히고 눈물이 쏟아지는 '한국'이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립 미술관의 '심장부'에는 '한국'이 들어있다.  한 예술가가 그것을 이뤘다.  그, 그것을 꼭 꼭 봐야만 한다...

 

 

초상화 갤러리의 대통령 초상화들 속에 있는 Ben Shahn ( http://en.wikipedia.org/wiki/Ben_Shahn )의 작품. 뉴딜 정책의 주인공, 미국의 대공황을 딛고 일어선 대통령, 간단하게 FDR 로 통하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초상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에 4선했던 사람이다. 네번이나 당선이 되었다는 뜻이다. 세번째 임기까지 무사히 채우고 네번째 임기중 사망했다. 당시 '사회성'강한 그림을 그리던 벤 샨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호감을 보이고 사회성 짙은 작품 활동으로 대통령을 도운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 샨 역시 내가 좋아하는 화가이므로 장차 그에 대한 페이지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뮤지엄은 '미음자' 구조로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통로를 따라 이동하게 되면 동서남북 미음자로 한바퀴 돌게 된다. 그리고 그 미음자 구조의 중앙은 코트야드 (Court yard, 중앙홀)이다. 지붕을 수백장의 유리판으로 얹어서 이곳 테이블에 앉아 하늘의 구름도 보고, 저녁에는 달님 별님도 볼 수 있다.  비오는날 이곳에서 비 떨어지는 것을 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는데 아직 비 쏟아지는 날 이곳에 가 본 적은 없다.

 

 

 

꼭 필요해서 뮤지엄샵에서 산 것들. 미국미술사 정리된 것 (할인해서 8달러에 살수 있었다. 아마도 싼맛에 좋아서 샀을 것이다. 갖고 있는 미국미술사 관련 책만 다섯권이다. 하하하.).  그리고 '미술 용어 카드.'  미술 관련 블로그를 열어 놓고 글을 쓰다보니, 내가 미술 용어중 구체적으로 정확히 내용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남에게 쉬운말로 전달할수 없다면, 나는 정확히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다. 뭐든지 아주 쉬운 말로, 가령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신 '내 엄마'가 내 말을 알아듣고 수긍할 수 있을 정로로 내가 설명할 수 있어야 내가 정말로 아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그러므로 뭐든 설명하기 위해서는 깊게, 상세히 이해해야 하고 이를 가장 쉬운 말로 간단하게 정리 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수업할때, 학생들이 발표 자료를 준비해 가지고 와서 발표를 할 때,  가르치는 입장에서 내가 가장 '재미없어'하는 것은, 파워 포인트 자료에 잔뜩 교재 요약해 가지고 와서 그것을 '낭독하듯' 발표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발표를 하는 학생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개념이나 어휘를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가령 Meta-linguistic, Meta-physical, Meta-cognitive 라는 말이 막 뒤섞여 나오는데, 그 메타가 뭐냐? 묻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우물거리다가 beyond...above ...이정도의 대답을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묻는다.    "Beyond..above..what? (그게 무슨 말인데?). 그러면, 이미 다른 과정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온 학생조차 우물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I know it, but I cannot explain it..because it's a very abstract concept (알긴 하지만 설명을 하기는 힘들다, 왜나햐면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그러면 나는 대꾸해준다, "If you are not able to explain that concept in plain language, you do not know about it. Don't tell me that you do know it... (만약에 그 개념을 평이한 언어로 설명 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 없다.  안다는 말은 하지 말라.)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안다고 말하면 안된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하여 그냥 베껴다가 읽으면서 자신이 그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내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아닌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모르면, 책을 뒤지고 인터넷에 널린 친절한 자료를 뒤져서라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Meta-linguistics knowledge' 란 '언어에 대한 지식'을 가리킨다.  메타 피직스란 물리 세계에 대한 지식, 그러므로 철학을 메타 피지컬 학문이라고 하는데, 물리 세계 너머에서 물리세계에 대한 사색을 하는것, 그것이 철학의 시작인 것이다. Meta-cognitive awareness 는 앎에 대한 지식. 내가 무엇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대한 자기성찰 그것을 말한다.  '나는 아는가 모르는가?' 자기 성찰은 '메타'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나서 문법적으로 그것이 잘 못 되었음을 파악하는 능력, 그것이 메타-언어 능력이다.   내가 평이한 말로 설명 할 수 없다면,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배움과 소통에 대한 나의 신념인데, 그 신념대로 나를 채찍질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내가 왜 내 전공도 아닌 미국미술을 가지고 씨름을 시작했단 말인가?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도 나간다. 왜냐하면... 미국미술이 좋아서 :-]  )

 

그러니 공부를 해야...

 

(엄마가 읽고 수긍 할 수 있는 블로그... 그렇게 만들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다.)

 

 

    전철역 입구의 각종 무료 주간 안내지 상자들. 그 알록달록한 통들이 서있는 것이 발랄해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메트로 역

 

                                                                  워싱턴 디씨 메트로

 

                                                        

 

메트로 스테이션 역에서 Orange Line 으로 갈아타야 한다.  벽화가 보이길래 사진기에 담아 보았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거리의 풍경을 이루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문화가 되고, 미술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므로.

 

2009년 9월 19일 금요일 오후 방문. redfox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20. 22:14

 

 

공식 홈페이지:http://www.philamuseum.org/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서 있는 언덕은 원래는 '저수지'였다. 그런데 기존의 펜실베이나 박물관이 노후해 짐에 따라 새로운 박물관 부지를 물색하던 사람들이 이 저수지 자리를 눈여겨 봤고, 1917년 이 터전위에 세워질 박물관 설계가 완성되었다.  11연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28년 현재의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완공을 보게 된다. 올해가 2009년이니까 81년 된 셈이다.  1917년이면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한일합방을 당하고 1919년에 삼일운동이 일어났으니까, 그 즈음에 이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의 주요 건물들이 대개 '코린트 양식 (Corinthian)'을 택하고 있는데 이 건물 역시 동일한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미국 건국 초기의 건축양식에 나타나는 미국의 이상주의에 대한 페이지를 따로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코린트 양식을 '별로 아는바가 없는 내 식으로' 단순무식하게 설명하자면, 기둥위를 살피면 '뭐라뭐라' 장식을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히히히. 이부분은 Art Dictionary 카테고리에 추가 설명 페이지 엮어야 할 것 같다. 공부를 해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시간은 (오전 10시 - 오후 5시).

입장요금은 성인 16달러

자세한 사항은 http://www.philamuseum.org/

안내데스크에는 한국어/일어 안내지도 준비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가보다.

 

1층에는 미국미술과, 유럽미술이 주로 전시가 되면 윗층으로 올라가면 세계 여러나라의 문화 예술품 전시관들이 있다. 이곳에 한국관도 있는데 이웃한 일본관에 비하면 어쩐지 쓸쓸하지만, 아무튼 한국관도 있긴 하다.  2008년에 방문했을때 돌아보았는데, 올해 (2009)에는 내가 '미국 미술' 자료를 찾아보러 간 것이라서, 전관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다. 오로지 미국미술관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냥 일반적으로 둘러보기에는 하루를 다 잡아도 다 보기 힘들정도로 전시품의 양이 방대하고, 그냥 지나치기 안타까운 명작, 명품들이 수두룩해서 오히려 갈증이 심하게 날지도 모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귀한 것들인데 다 볼 수 없어서 안타까운, 그런 갈증.

 

 

 

본관 외에도 길건너 조금 걸으면 Perelman Building (펄만 빌딩)이라고 불리우는 별관도 있는데, 이곳에는 주로 현대 미술, 설치작품들이 전시가 된다.  참고로 이 건물의 카페테리아 디자인이 현대적이고 예쁘다.

 

 

 

미국미술에 관심을 가진 나의 입장에서 평가해보자면, 이곳의 미국 미술관은  가구나 다른 장식품 속에 당시의 회화작품을 전시하는 식으로 입체적인 전시를 시도 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은 미국미술의 분야중에서도 '회화'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가구나 장식품에는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는것을 보면).  펜실베니아 태생의 Thomas Eakens 토마스 이킨스, Hicks (힉스)등 지역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어서 배부르게 볼 수 있고, 제법 '미국미술'품이 숫자가 많아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에도 미국미술 전시관이 따로 있는데,  내 인상으로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쪽이 미국 미술에 좀더 성의를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미국미술의 '왕'은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박물관이라고 할수 있겠다.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 미술관까지는 자동차로 편도 세시간이면 넉넉하다. 그래서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자중에 이곳을 일정에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미국에서 왕복 여섯시간 거리는 그냥, 대충 참을만한 하루 여행거리).  필라델피아 시내에 있어서 일단 미술관에 가면 걸어서 시내를 둘러보는 일도 가능하고, 주말에는 주변에 무료로 주차도 가능하다. (내가 주말에만 가 봤으므로 주중에 주차사정이 어떠할지는 가늠이 안된다.)

 

참고로 Philadelphia 필라델피아는 City of Brotherly Love (형제애의 도시)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탐 행크스가 주연했던 Philadelphia 라는 영화에서 닐 영 (Neil Young) 이 부르는 노래 '필라델피아'가 흐르는데 'City of brotherly love~'라는 가사가 슬프고 달콤하게 흐르기도 한다.  이 별칭은 초기 미국 정착역사와 관련이 있다. 매사추세츠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주요 세력은 '퓨리탄'이라고 일컬어지는 개신교 세력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종파에 대하여 배타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델라웨어나 기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기도 하였다. 펜실베니아 지역에는 퀘이커교도들이 정착하게 된다. 퀘이커 교도들은 퓨리턴들과 달리 이념이나 종교적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용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도 마음편히 살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도 전해지는 해리엣 스토우의 '엉클 톰스 캐빈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야기에도 퀘이커 교도들이 도망가는 흑인 노예들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늘 '퀘이커 교도' 하면 어릴때 읽었던 그 장면이 떠오르고 마는데, 필라델피아가 그들의 땅이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역사적인 곳인데,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페이지를 여는것이 좋겠다. 오늘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방문한 사진을 좀 올리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를.

 

 

유튜브에 연결된 닐 영의 필라델피아 노래

 

 

 

가사:

Sometimes I think that I know  
What love's all about  
And when I see the light
I know I'll be all right.

I've got my friends in the world,
I had my friends
When we were boys and girls
And the secrets came unfurled.

City of brotherly love
Place I call home
Don't turn your back on me
I don't want to be alone
Love lasts forever.

Someone is talking to me,
Calling my name
Tell me I'm not to blame
I won't be ashamed of love.

Philadelphia,
City of brotherly love.
Brotherly love.

Sometimes I think that I know
What love's all about
And when I see the light
I know I'll be all right.
Philadelphia.

 

 

미술관 및 필라델피아 시내 사진들

 

 

 

 

 

 

미술관 앞 광장 계단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내가 시간을 많이 보낸 미국 미술 전시장의 한 갤러리. 토마스 이킨스의 그 유명한, 수술하는 그림이 오른쪽에 보인다.

 

 

현대미술 갤러리의 한 전시장.  오른쪽에 앤디 와홀의 재클린 케네디 작품이 보이고, 왼쪽에는 역시 앤디와홀의 '전기의자 (사형할때 쓰는 전기의자)' 작품들이 걸려있다. 중앙의 홀 천장 저쪽에 가위표 (x표)가 보이는데 이쪽편 벽에는 동그라미표가 있다.

 

 

 

미술관 구경의 즐거움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뮤지엄샵 구경.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뭘 사지는 않는다. 그냥 사진 찍어 오는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하고, 물건 사 늘어놔봤자, 어쩐지 인생에 짐만 들어나는 것 같기도 해서.

 

 

 

뮤지엄샵에서 발견한 한국미술품 도록.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하는 한국미술품 책이다. 반가와서 들었다가 내려놨다.  :)

 

 

 

미술관 계단에서 내려다본 필라델피아 시내 전경. 중앙에 보이는 도로가 '프랭클린 도로'인데 (벤자민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의 터줏대감님이었다) 이 도로를 따라서 한가롭게 걷다보면 시내 주요 박물관들, 건물들이 차례차례 나온다.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뭐 배경 좋은 공원에서 신부사진을 많이 찍는데, 이 미술관앞 광장에 신부사진을 찍으러 온 팀들이 여럿이었다.  사진속에만도 두팀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신랑, 신부만 단촐하게 웨딩사진을 찍는 편인데, 미국에서 살면서 보면 신랑신부가 친구들에게 드레스와 턱시도를 사 입혀가지고 (그러니까 돈이 엄청 들지...) 아예 단체가 이동을 하며 여러가지 장면을 연출한다. 사진에서 보면, 가까운데 있는 팀은 '가족'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옷을 맞춰 입고 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단촐한 경우이고, 저만치 있는 팀은 신부의 친구들이 단체로 드레스 입고, 신랑 친구들도 단체로 턱시도 입고 줄서서 사진찍고 그랬다.  공부할때 중국계나 돈없는 유학생들 결혼식하는 것도 보았는데, 가장 단촐한 케이스는 지역 등기소에 가서 결혼신고 하고, 등기소 한구석에 마련된 '기념사진 촬영용' 세트 앞에서 그냥 신랑색시가 기념사진. 이때 신랑색시의 복장은 그냥 수수한... 친구들도 각자 가진 옷중에 가장 좋은 옷으로 골라입고 와서 축하.

 

 

계단 아래 입구 구석에, 그 유명한 Rocky 로키 동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줄서서 차례 기다리는 사람들.  무명의 실버스타 스탤론을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만들어준 영화 Rocky 1편의 장면중에 로키가 운동삼아서 이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을 뛰어오르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성공으로 덕분에 이 장소도 명소가 되고 말았다.  (어릴때 영화 로키 1의 이야기를 선생님한테서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수업중에 영화 얘기를 해준 선생님이라니...하하하.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집에 비디오가 생긴 후에야 그 유명하다는 '옛날' 영화를 보고 좋아했었지.)

 

 

 

프랭클린 도로변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에 로댕 박물관이 나타난다. 입장료는 무료. 기부를 하고 싶다면 각자 알아서 원하는 만큼만 내거나 말거나. 중앙에 보이는 것이 지옥의 문. 왼편으로 건물안에 들어가는 문이 있다. 그 안에 로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칼레의 시민이 중앙홀에 있다.

 

 

계속 걷다보면 왼편에 프랭클린 도서관이 나오고, 길 건너편에 과학센터, 자연사 박물관등이 나오고, 중앙에 로간 써클 (Logan Circle)이라는 중앙 분수공원이 나온다. 이 분수공원을 가로질러 가보면 자연사박물관 뒷편으로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자연사 박물관

 

 

고층건물의 숲. 

그러니까, 박물관에서 내려다보던 저 멀리 있던 그 고층건문들 그 숲속까지 슬슬 걸었었다는 기록이 되겠다.  걷기에 편안한 9월의 햇살이었다.

 

 

 

박물관 입구 돌계단에서, 사진사들이 신부들을 꼭 이자리에 앉혀 놓고 사진들 찍길래, 저 자리가 어떤 자리길래 모두들 저 각도로 저기서 사진을 찍나 궁금해서 찍어봤는데,  햇살이 뒷편에서 부터 오면서 역광에 가까운 측광이라 머리 뒷부분이 반짝이고, 얼굴은 그늘지고,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 각도가 신부사진 찍어대던 전문 사진사들이 선호하던 각도였다.  하하. 난 야외에서 신부사진 그런거 찍어본적 없어서 야외 웨딩촬영하는 풍경을 보면 조금, 음, 번거롭겠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옛날에 우리 엄마는 '구식 결혼'을 해서, 연지곤지에 한복 새색시 복장으로, 아빠는 사모관대 뭐 그런 복장으로 결혼식을 해서, 그런 흑백사진이 우리집에 걸려있는데 엄마는 하얀 웨딩드레스입은 사람들 사진을 무척 부러워하셨다. 두고두고 부러워하셨다.  어느해에 우리 엄마가 집에 돌아다니면서 사진장사를 하던 사람의 설득에 혹하여서 '사진 합성'을 주문했다.  뭐냐하면 아빠, 엄마 얼굴 잘 나온 사진을 가져다가 웨딩드레스 입고 양복입은 신랑신부 사진에 '합성'을 하는 것이다. 사진장사가 그렇게 합성을 하여 액자에 담아가지고 와서 돈을 받아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주 아주 옛날 이야기이다.  그날 저녁에 학교에서 퇴근하신 우리 아빠가 엄마를 '어린애' 야단치듯(?) 엄마한테 화를 내셨다. 왜 남의 몸뚱아리에 내 얼굴을 갖다 붙이느냐 이거였다. 이런 거짓사진이 그렇게 좋냐 이거였다.  나는 웨딩드레스의 환상이 좌절된 우리 엄마가 안타까웠다.  그때부터였을거다. 내가 웨딩드레스를 증오하게 된 것이.  나는 그따위 환상같은것 개나 물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인데, 엄마의 환상이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에 그만 그 반대로, 강한 거부를 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봐도 별 감흥이 없고, 사람들이 왜 저것을 입고 사진을 찍을까? 이런 의문이 일없이 떠오르다 말 뿐이다.  사는게 그런거지. 뭐.

 

 

Posted by Lee Eunmee
Pop Art2009. 9. 19. 18:42

 

http://americanart.textcube.com/48 로이 리히텐시타인의 '집'에 이어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and Portrait Gallery) 입구에 설치된 로이 리히텐스타인(1923-1997)의 작품, Modern Head (근대적 머리). 1974년에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이 작품은 1989-1990 년에 제작된 것이다.

 

리히텐스타인은 1960년대 말 부터 이 모던헤드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산업화가 가속되는 현대 문명 속에서 기계처럼 변화하는 인간을 묘사했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 데코 (Art Deco) 건축 디자인과도 맥이 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원래 1996년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World Trade Center)에서 한블럭 떨어진 곳에 세워졌었다.  그런데 2001년에 911 참사가 터졌고, 무역센터 빌딩들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한복판에 있었던 이 작품은 약간의 표면 상처만 입었을 뿐 멀쩡하게 그 재난을 버티고 서 있었던 것.  모던 헤드.  이는, 인간의 두뇌가 그 모든 재앙 속에서도 꿋꿋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서, 911참사 발생 직후, FBI 요원들이 이 지역을 조사하던 시절, 이 작품은 FBI 요원들의 '메모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작품 벽에 메모지들을 붙여놓고 정보 정리도 하고 연락도 취하고...  911참사 발생 2개월 후 2001년 11월 9일 모던헤드는 뉴욕에서 벗어나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으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박물관 울타리 안쪽에 세워져 있으므로 다가가서 메모지를 붙여 놓을 수는 없지만, 멀리서도 이 파란 얼굴을 보면 반갑기도 하다. 재앙을 딛고 일어선채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것 같아서.

 

september 18, 2009 rf.

 

 

그런데, 지금 사진을 들여다보니 울타리에 붙어있는 장애인 표시의 파랑색과 모던헤드의 파랑색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는듯 하다.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9. 19. 03:18

 

                        http://www.nga.gov/press/special/tower/guston09/index.shtm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http://americanart.textcube.com/41   ) 에서 2009년 1월부터 1년간 필립 거스톤 (Philip Guston (1913-1980)의 특별전을 열고 있다.  위치는 동관 (East Building)의 Tower Gallery. 

 

필립 거스톤은 Jackson Pollock, Willem De Kooning 과 더불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화풍의 기수였으며 후기에는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으로 선화하기도 하였다.  추상표현주의나 신표현주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뤄보기로 하겠다.

 

 

1913년 캐나다 몬트리올 태생의 필립 거스톤은 가족을 따라 어린 시절 캘리포니아의 로스 엔젤레스로 이주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1세이던 1924년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어린 필립은 아버지의 자살 현장을 목격한다. 그가 14세 되던 1927년 Los Angeles Manual Arts High School 에 입학하여 Jackson Pollock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가 미술보다 스포츠를 더 많이 지원한다고 항의했다가 퇴학조치를 당하고 만다. 폴락은 그 후에 학교로 복귀했지만, 거스톤은 고등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후에 Otis Art Institute in L.A. 에서 1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하게 된다. 그가 1년만에 오티스 미술 학교를 집어 치운 이유는 학교에서 석고상을 그리는 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도록 지도하는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그는  왜 석고상만 그려야 하는가  반발하여 어느날 밤새도록 실기실에서 석고상을 스케치하여 실기실 바닥을 그의 습작으로 뒤덮어 버린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받은 미술 교육의 전부였다. 그후로 그는 스스로 그의 미술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비록 정규 미술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정규 미술 교육 과정의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University of Iowa (1941-1945)에서 교수를 했고, 미주리 주에 위치한 Washington University at St. Louis, New York University, Pratt Institute 에서도 후진을 양성했다.

 

본래 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유태인이었고 유태인 탄압을 피해 북미 캐나다로, 그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피해 북미로 왔지만, 북미가 유태인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소년시절 거스톤은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는 Ku Klux Klan (일명 KKK단, 혹은 Klan)의 폭력에 노출되어  심리적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미국태생의 학생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흔히 KKK단의 주요 공격대상이 '남부 흑인'인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KKK 관련 내용을 좀더 뒤져보거나 미국사 책을 뒤져보면 KKK단이 인종청소를 감행하려 했던 '나찌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백인이 아닌 거의 '모든' 인종들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주요 공격대상이 흑인들이었지만, 그 외에도 아시아계, 유태계, 히스패닉계 역시 이들의 공격 내지는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의 부모가 유태계였으며, 미국에서 KKK의 위협에 시달렸던 흔적이 그의 미술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여기저기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KKK단 복장을 한 인간의 모습이 여기저기 나타나는가 하면 나찌의 유태인 학살장면을 연상케 하는 무수한 '신발들'이 포개진 그림들. 

 

국립 미술관에 모아진 필립 거스톤의 유화 대작들과, 리토그래프 작품들을 이리저리 감상하면서 얼핏 스치는 생각은, 어딘가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것이다. 알수 없는 불안함. 편하지 않음.  그러나 한편 낙관적임.  뭐랄까 불안을 극복한 사람이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미소라고 할까?  원래 그림 감상은 감상자의 투사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정작 불안한 것은 그림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와 필립 거스톤과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후에 공부를 하면서 그의 미술 세계에 대한 리뷰를 적어나가겠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전시회에 진열된 '전 작품' 그리고 전시실 구석에 마련된 필립 거스톤 관련 6분짜리 영상자료를 내가 사진으로 찍어본 것 들이다.  (아직 사진기술이 서툴러서 그림이 삐뚤어지고 그랬지만, 내 눈으로 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

 

 

 

 

 

 

 

 

 

 

 

 

 

 

 

 

 

 

 

 

 

 

 

 

 

 

 

 

동영상 화면 사진

 

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9. 18. 04:46
Made in America

Made in America: An Informal Histoy of the English Langauge in the United States

이 책에는 미국사의 여러가지 장면들에 대한 잘못된 상식, 혹은 유래 등이 유머러스하게 설명되어 있다.  유쾌하게 읽히는 책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라면, 빌 브라이슨이 하도 해박하여 별별것을 다 알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상식있는 미국인들이 알만한 내용에 대해서 그 허실을 구구절절이 설명을 해 주는데, 그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상식은 '미국인이 아닌 사람이 보기에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것들도 있다.  미국인들만 알 수 있는 에피소드 같은 것 들.  그러니까, 미국사의 어떤 부분은 사실은 잘 못 알려진 것이거나 과장된 것이라고 그가 아주 웃기게 설명할때, 그 미국사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난감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은,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 쉽게 씌어진 간단한 미국사책과 병행해서 읽을때, 더 이 책의 맛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가령 벤자민 프랭클린이 여자 밝힘증 늙은이였다던가, 독립 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제퍼슨은 사실은 버지니아 헌법에서 많은 부분을 베껴왔다던가, 미국이 독립선언을 1776년에 했지만, 그 때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것도 아니고, 전원이 서명을 한 것도 아니었고.....

상식의 허를 찌르는 내용을 담은 책은, 상식적인 내용을 담은 책을 읽고 나서, 혹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을 알고 있을때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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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9. 18. 03:50

 

 

http://www.yes24.com/24/goods/18360

청솔역사교육연구회 | 청솔출판사

 

우리집 창고에서 발견한, 커버도 찢어지고 없는 '이야기 미국사'.  이틀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어느 시대에 어떤 그림이 집중적으로 소개가 되는지, 왜 그 시기에 그런 미술이 각광을 받게 되는지, 왜 어느지역에서 발표된 그림이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런 문제들을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가령 미국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시대상황에 대한 스케치가 휙휙 지나가는데, 또 그것을 내가 구체적으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사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다보면 미국사책을 뒤지거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거나 해야 한다. 두가지를 병행하는 일이 어느때는 꽤 성가시다. 특히 나처럼 성격이 급하고, 한가지를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 저것 차분하게 챙기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다.  결국, 그래서 내가 이 책이 눈에 띄었을때, 냉큼 읽기 시작한 것이리라.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대략 간단하게' 스케치 한 미국사라고 할수 있다. 활자가 커서 시력에 부담도 안주고, 그리고 내용이 쉬운 말로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큰 그림을 파악하기에 편리하다.  물론 구체적이고 세밀한 역사는 소개가 안된다. 그런데, 그 구체적이고 세밀한 역사 부분은 오히려 내가 더 잘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를 잡식성으로 읽거나 배웠으니까.  그 여러가지 내가 세밀하게 아는 내용들을 이 간단하게 정리된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 삽입시키면 되는것이다. 그러면 나는 큰그림과 세밀화 모두를 머리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성인이 교양수준에서 미국 역사를 대충 살피기 위해서 읽기에, 이 책은 안성맞춤이다.  나는 이 책을 다른 미국미술사 책 옆에 놓아두고 필요할때마다 페이지를 열어 내 기억을 환기시킬 생각이다.

 

물론 미국사를 이해하기 위해 이것 한권 가지고는 곤란하다. 그러나 '시작점'으로서 아주 좋은 책이다.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아갈때, 내가 취하는 방법은, 아주 읽기 쉽게 정리된 간단한 책에서 출발하여, 그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좀더 상세한 것을 찾아 보고, 그리고 머릿속에 구체적인 '지도'가 그려지면, 제법 권위있는 안내서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필요한 부분을 찾아 보는 것이다. 미국사 출발 안내서로 이 책을 추천 할 만하다. (주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서술을 하는 식으로 미국사의 흐름을 서술하고 있다).

 

september 17, 2009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9. 17. 08:23









미국 미술의 이해를 위해서는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요즘 미국사책을 읽고 있는데, 책 읽다 말고 문득,  브레히트의 시가 떠올랐다. 음, 30년대 빈민들의 참상을 그린 그림들을 스케치할때,  브레히트의 이 시를 인용하면 의미있을 것 같다.

 
임시 야간 숙소


        베르톨트 브레히트


 

듣건대, 뉴욕
26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교차로 한 귀퉁이에
겨울철이면 저녁마다 한 남자가 서서
모여드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인들로부터 동냥을 받아 임시야간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야간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 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야간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1931년 作)
Posted by Lee Eunmee
Pop Art2009. 9. 14. 08:36

 

 

미국 미술가들을 차례차례 정리하다보면 훗날 Roy Lichtenstein (로이 리히텐시타인)에 대한 챕터도 정리가 되겠지만, 오늘은 National Galler of Art (워싱턴 국립 미술관)의 조각공원 (Sculptor Garden)에 설치된 그의 작품 한가지를 소개한다.

 

사실, 이 작품은 워싱턴에 2년 넘게 드나들면서 자주 보던 것인데, 며칠 전에야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했던 것을 고백한다.

 

(사진감상)

 

 

 

'집'이라는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입체감을 달리한다. 귀여운 집이다. 어떻게 보면 공중에 떠있는것 같기도 하고.  언덕위의 집을 이각도 저 각도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평지이다. 평지인데 어떻게 언덕위의 집처럼 보이는가?

 

그 비밀은..

 

..

 

..

 

..

 

..

 

 

우리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작품이다.  :)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13. 20:46

 

 

                    공식 홈 페이지: http://www.brandywinemuseum.org/

                   앤드루 와이어드 관련글: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Andrew%20Wyeth

 

소개

 

미국의 21세기 사실주의 화풍의 대표가 할 만한 앤드루 와이어드(Andrew Wyeth) (July 12, 1917 – January 16, 2009)는 크리스티나의 세상 (Christina’s World)라는 작품으로 한국인들에게 기억 될 것이다. 메인주(Maine)의 이웃집 여인 Christina Olsen 을 그린 그림이다.  앤드루 와이어드가 미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의 아버지 N.C.Wyeth (Newell Convers Wyeth: October 22, 1882 – October 19, 1945)는 책의 삽화가로 역시 자기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아들 제이미 와이어드 (Jamie Wyeth) 역시 화가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근현대 미국 미술사를 보면 Wyeth 집안에서, 삽화가로 살아간 N.C.Wyeth 에서 앤드루 와이어드를 거쳐 제이미 와이어드에 이르는 3대에 걸친 미술가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 삼대에 걸친 화가집안을 기념하는 미술관이 브랜디와인 리버 미술관 (Brandywine River Museum)인데, 펜실베니아의 채즈 포드(Chadds Ford)지역에 있다.

 

워싱턴 디씨나 북버지니아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120마일 안팎의 거리인데, 델라웨어(Delaware)의 주도인 윌밍턴 (Wilmington)시에서도 인접해 있고, 필라델피아 (Philadelphia)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날은, 2009 9 12. 날이 잔뜩 흐려서 하늘에 회색 구름이 가득하고, 간간히 비가 내리기도 하는 날이었다. 하이웨이를 달리던 도중에 실수로 국도로 접어 들게 되었는데, 마침 델라웨어의 윌밍턴의 변두리를 통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이곳에서부터 브랜디와인 리버 (Brandywine River)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표지판에 붙어 있었다. 이 일대를 흐르는 자그마한 강이 브랜디와인 강인듯 했다.  강이 브랜디와인처럼 흐른다니, 얼마나 향기로울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강의 이름에서부터 느낄수 있었다.

 

하이웨이에서 빠져나와 U.S. Route 1, (미국 1번 국도)를 따라 나즈막한 평야와 숲, 그리고 마을들을 통과하다보면 나타나는 표지판. Brandywine River Museum. 이 박물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1년이라고 하는데, 현재 규모의 박물관이 개관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최근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 아닐까 상상 할 뿐이다. 이 박물관 주변에는 앤드루 와이어드가 태어나 성장하고, 미술 공부를 하던 그의 아버지의 집, 그리고 아버지의 스튜디오가 있고, 또한 앤드루 와이어드가 좋아하던 이웃 크뤼너 (Kruener) 농장도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방문 당시 10달러, 생가와 스튜디오를 묶은 투어와 크뤼너 농장 투어가 각각 5달러씩 이었다. 일정상 나는 박물관과 생가, 스튜디오를 둘러보았는데, 나중에라도 다시 방문하여 크뤼너 농장도 살펴보고 싶다.  그런데 사실 이 주변을 살펴 보고 이웃집들, 농가주택들, 풍경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앤드루 와이어드가 사랑하던 풍경에 공감할 만 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전시장

 

박물관 1층에는 기념품 매점, 카페테리아, 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미국 미술품들을 특별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미국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미국의 풍경화들이 전시 되어 있었는데, 미국미술 명문가답게 Winslow Homer를 위시한 대가들의 그림도 많이 보였다.  2, 미국의 초상전에서도 역시 Mary Cassatt 의 인물화 습작품을 위시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호레이스 피핀 (Horace Pippin)의 작품은 기도하기’ (Saying Prayers) 외에 두 점의 정물화가 있었고, 마침 삽화가이며 미술가였던 로크웰 켄트 (Rockwell Kent) 기획전도 하고 있어서, 켄트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볼 기회를 가졌다. 3층은 와이어드 집안을 위한 공간이다.  아버지 N.C.Wyeth 갤러리에 이어, 아들 앤드루 갤러리, 그리고 가장 구석에 손자 제미이 와이어드.  물론 나의 관심은 앤드루 와이어드에 있었으므로 앤드루 갤러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의 그림들을 감상했다.  화집에서 보던 그림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을 때, 보고 싶던 그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라니.

 

 

 

 

미술관 건물의 특징

 

브랜디와인 리버 뮤지엄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박물관 입구로 들어설 때,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의 농가주택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거나, 혹은 한옥집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마치 자기의 집을 혹은 할머니댁에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을지도 모른다. 박물관 건물의 구조가 전통적인 한옥의 건축양식을 닮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고향집을 예로 들어보겠다.  우리집은 경기도의 일반적인 농가 주택이었는데, 바깥에 커다란 마당이 있어서 이를 바깥 마당이라고 했고, 사랑채에 대문이 이어져 있었다. 사랑채의 대문을 거쳐서 안마당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박물관도 그런 식이었다. 대문 통과하면 앞마당 있고, 그리고 미술관 본채가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미국식 건축양식이 아니다. 나는 이 미술관의 대문을 통과하여 앞마당을 지나칠 때, 내 고향집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인테리어 역시 일반적인 미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차이가 났다.  예를 들어서 필립스 콜렉션(Phillips Collection)의 경우, 미국의 부호가 사용하던 개인 주택을 갤러리로 개조했으므로 미국식 부잣집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브랜디와인 리버 뮤지엄의 내부는 한옥을 연상시켰다. 투박하고 굵직한 원목 기둥이 그대로 드러나있고, 전시장 내부 바닥을 마루로 깔았으며, 매끄럽지 않은 울퉁불퉁한 흰 회벽처리를 해 놓았다. 분명 현대적으로 설계된 건물이지만 갤러리들을 돌아 다닐 때의 느낌은 내 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브랜디와인 리버 강, 혹은 집 옆을 흐르는 개울

 

 

 

뮤지엄 건물의 한쪽 벽은 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유리벽은 잔잔히 흐르는 브랜디와인 강을 내려다보도록 설계가 되었다. 미술관에서 갤러리를 이동할 때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리벽 바깥의 강과 강 주변 풍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브랜디와인 강은 강이라고 부르기엔 작아보이는, 개울 보다는 좀 커보이는, 딱 청계천 정도의 규모였는데, 자그마한 강 혹은 개울이 집앞에 흐르는 형상이라, 소박하고 정다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한강이나 포토맥강처럼 규모가 큰 강을 앞에 두고 있을때와, 헤엄쳐 건널정도의 자그마한 하천, 개울을 보고 있을때의 느낌은 다르다. 큰 강이 압도적이라면 작은 하천은 소박한 평화를 선물한다.  브랜디와인 강은 고향의 앞개울같이 정답게 흐르고 있었다.

 

 

 

앨범

 

갤러리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서, 열망하던 작품들을 사진에 담아 올수 없어 아쉬웠다.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Lovers 그림이 있는 갤러리 풍경을 '한 장' 찍었다. (경비의 눈을 피해서). '사냥꾼'이 사냥을 한듯, 혹은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은 듯 잠시 유쾌.  헬가의 누드 Lovers.

 

 

 

 

 

 

 

와이어드의 생가, 와이어드 집안의 스튜디오 (다음 페이지에)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