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ums2010. 1. 24. 12:06

 

공식 홈페이지: http://artbma.org/

메릴랜드주의 항구도시 볼티모어에 있는 미술관

입장료 : 무료

 

워싱턴에서 대략 60마일 거리.  차로 한시간 반 안쪽에 도착할수 있는, 항구도시 볼티모어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미술관 입니다.  볼티모어 미술관이 특히 자랑할만한 것으로는, 북미에서 앙리 마티스의 주요 작품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화와 조각품이 오백점이 넘고, 그 밖의 마티스 작업 습작까지 합치면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정도라고 합니다.  소장품들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소개 페이지들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 페이지에서 소개한적이 있는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작품은 미국에 10점이 있는데, 볼티모어 미술관에 그중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본 것은 (1) 필라델피아 미술관 (2) 디트로이트 미술관 (3) 볼티모어 미술관 이렇게 세곳의 작품입니다. (나머지도 언젠가 다 보고싶습니다.)

 

 

Locations of Original Monumental Size Bronze Casts

http://en.wikipedia.org/wiki/The_Thinker

United States

University of Louisville, Louisville, KY
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MO
Stanford University, Palo Alto, CA
Philadelphia Rodin Museum, Philadelphia, PA
California Palace of the Legion of Honor, San Francisco, CA
Columbia University, NYC, NY
Baltimore Museum of Art, Baltimore, MD
Detroit Institute of Arts, Detroit MI
Cleveland Museum of Art, Cleveland OH (damaged)
Norton Simon Museum – Pasadena CA

 

 

 

 

 

 

 

 

생각하는 남자하고 악수 했어요.  저사람 왼손에 내 왼손을 넣고 잡는거죠.  아하, 생각하는 남자하고 나하고는 왼손잡이구나!  제가 나중에 따로 페이지 열고 보여드리겠지만, 이 작품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찍었는데, 아 정말 근사한(?)  남자였습니다...

 

 

그 유명한 The Kiss.  이것 며칠전에 '국립미술관'에 있던 작품 제가 보여드렸죠 (http://americanart.textcube.com/319) .  오늘 작품은 일단 덩치가 훨씬 크고요 세밀한 부분을 보면 약간 차이가 있어요.  역시 페이지 따로 열고, 이야기를 해 드리지요... (으흐흐. 너무 좋아서 으흐흐. 벌써 눈이 풀렸어요. 눈동자가 맛이 갔쟎아요 벌써. 하하하.)

 

 

뮤지엄 카페테리아가 넓고, 분위기 좋고, 그리고 가격도 정상적이에요. 뮤지엄 식당이라고 폭리를 남기는 것 같지 않아요. 뮤지엄 카페테리아라고 반드시 직물 테이블보를 덮어주는데요, 표면위에 흰종이를 한장 덮어줍니다.  식사 마치면 그것 치우고 새 종이를 덮는거죠. (걸레질하는 대신에. 테이블보를 새로 갈 필요도 없고요). 느낌이 청결하고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테이블마다 작은 용기에 크레용을 몇개 담아놓습니다.  아이들이 심심하면 크레용으로 테이블에 낙서하면서 놀으라는거죠.  저 역시 낙서를 좋아하고.

 

식당은 야외 조각공원을 면하고 있는데, 제가 실내 전시물에 정신을 파느라 조각공원에 나가보지도 못했습니다.  겨울이라 일단 나가기가 싫지요.  이곳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서 제가 다섯번쯤 놀러왔습니다. 계절마다 분위기가 다르지요.  올때마다, 작품에 대한 느낌도 다르고요.  조각공원도 아름다운데, 나중에 날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가보지요 뭐.

 

 

 

 

 

 

제가 요즘, 잭슨 폴락 한테 꽂혀있는 중이라, 폴락을 발견하면 '무조건 당신이 좋아요' 모우드로 변하고 맙니다. 뭘 제대로 알고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요... (위로받아요...  설명하기 힘들지만, 폴락 작품 보면, 가슴속에 바윗덩어리같이 누르고 있는 어떤...슬픔이 잠시 잊혀져요.  죽을때까지 갖고 가야할 슬픔을 잠시 잊을수 있어요. 그게 아마 미술작품의 치유력인지도 몰라요. )

 

 

오늘 제가 찍어온 작품 사진이 삽백장도 넘어요...  아아...부자가 된거죠... 아, 오늘 하루, 천국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고맙게 생각하고, 제 책임과 의무와 그리고 사명과...그런것들에 충실한 일주일을 맞이해야죠. 힘을 얻어갖고 온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0. 1. 22. 12:03

Isms: Understanding Art

 

아마존 링크 (2004년판)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책이지만, 내가 구입한 책의 실제 커버는 위의 아마존 링크 커버와는 차이가 난다. 내 책 커버가 더 따뜻해보이고 예쁘다. 내것은 2007년판

 

 

국립미술관 (NGA)에서 제값 다 주고 샀는데, 아마존에서 할인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내것은 최근 판이라구... ).  나같이 미술사/미술비평을  전공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헛갈려하는 각종 미술계의 '--이즘/주의' 에 대하여 간략한 소개를 잘 해놓았다.  서양미술 사조, 서양미술 흐름을 주제별로 살펴보기에도 좋다.  

 

이런책은, 운전자라면 차에 놓고, 어디서 차 세워놓고 사람 기다리고 그럴때, 그때 읽으면 기다리는 지루함도 날려버릴수 있고 좋다. 혹은, 화장실에 놓고 오가며 보거나... 최근에 담배 끊은 사람이 담배 생각나서 미치겠을때 펴봐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헤헤 담배를 안 끊어봐서 그 고통을 잘 모른다...)  잠깐 잠깐 보기에 좋게 설계되어있다. 아무데나 펼쳐서 봐도 좋고.  만족.

 

redfox.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1. 21. 09:51

National Gallery of Art 국립 미술관

 

말하자면, 오늘은 Museum Day (박물관 소풍날)이라고 할 만 합니다.  아침에 스미소니안 캐슬의 사무실에  인터뷰가 있었거든요.  인터뷰 끝내고, 놀았지요.

 

우선 지난 토요일에 갔었던 National Gallery of Art 에 갔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싶던 것들을 제대로 다 못봤으니까. 전 보고 싶은 것을 못보면 꿈에도 아른거리고,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서...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는 내가 보고싶으나 볼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이 세상에는 내가 보고싶으나 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가슴에 한이 맺힌 채로 죽을 것이다...  나는 결국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스러운 인생 살고 있으니까,  볼 수 있는것들은 가서 보기로 하자.  가서 보기로 하자. 가슴에 자꾸만 한을 쌓지 말자.]  그러니까, 어차피 나간김에 또 간거죠.

 

흠, 국립 미술관이 '홀랑' 뒤집어진 분위기 입니다. 익숙하던 것들이 엉뚱한 곳에 배치되어 있어 영 어색한데다가,  전에 내가 가서 보았던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그림 전시장이 싹 없어지고, 지금 공사중. 아이고 아이고. 보고싶은 내 그림들. 아이고. 곧 새단장을 하고 나타나길 바라는 수 밖에요.

 

National Gallery of Art, 2010년 1월 20일 촬영

휘슬러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갤러리에서 도슨트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뭐 세계 명화들, 로댕의 작품들, 골고루 실컷 보고, 서관과 동관 사이의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점심도 사 먹고요. 음, 책도 샀어요.  무슨 무슨 'ism (이즘)'들에 관한 정보를 총망라해 놓은 책이군요. 하하. 미술 사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인데요. 한가지 실수. 책의 편집자가 영국인이고 영국에서 교육받고 활동하는 사람이라서,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의 영국 미술 중심으로 하는겁니다.  예컨대 제가 미국의 social realism 에 관해서 요즘 쓰고 있쟎아요.  혹시나 싶어서 social realism 쪽을 찾아보니, 영국 미술사 쪽에서 설명을 해 놓은겁니다. 아차 싶었죠.  책 구입 영수증 갖고 있으니까, 카페테리아 옆의 책방에서 반납하고 다른 책 고를수도 있었지만,  기왕에 내 손에 들어온거, 제 안목을 넓히는 뜻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난 너무 미국 미술에 몰두해 있는 나머지, 세계 미술사의 흐름에 무감각해질수도 있어. 그러면 미국미술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안돼. 미국미술은 세계 미술의 일부이니까 말이지.) 

 

 

새로 장만한 책

 

 

점심으로 먹은 스트로베리 나폴레온과 커피. 국립미술관 서관과 동관을 잇는 지하 통로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삼각뿔 모양의 유리 천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빛과 폭포. (왼편 구석쪽에 책방의 끝자락이 조금 보입니다.)

 

 

 

국립 미술관 동관 (East Building)은 현대미술관입니다.  제가 호레이스 피핀 페이지를 완결하려고 하는데요, 이 장면을 꼭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쟁쟁한 세계의 20세기 초 현대식 미술품으로 가득찬 동관 전시실에 당당하게 걸려있는, 딱 한점이지만 위풍당당한, 딱 한점이라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현저히 작아서 더욱 기품있어보이는 피핀의 작품입니다. 보세요. 국립미술관이 자랑하는 마티스 갤러리 입구쪽에, 그리고 잭슨 폴락, 로스코, 뉴만등이 기다리는 갤러리 초입에 걸려있는 그림입니다.  피핀이 동관 현대미술이 심장부 같은 지점에 오두마니 걸려있는겁니다.

 

관객들은 이 그림이 무엇인지, 왜 이것이 여기 걸려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요. 오직 '피핀'을 아는 사람만 그 의미를 아는거죠.  심지어 매일 이자리를 지키는 미술관 경비 아저씨 (흑인 경비아저씨)도 이걸 잘 몰라요.  오늘 제가 서서 그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흑인 경비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더라구요. 그래서 피핀에 대해서 그에게 설명해줬죠.  "이 사람 마흔이 넘도록 자신이 화가인줄도 몰랐고, 아무도 신경도 안썼다. 이 사람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을때, 쟁쟁하던 당대의 화가들이 - 나도 저렇게 그릴수 있다면! 하면서 한탄을 할 정도였다. 이 작품이 괜히 여기 있는게 아니다..." 

 

 

일층의 프랑스 소품 갤러리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보석같은 작품들을 실컷 구경했습니다. (사진 편집하다가 에러가 자꾸 발생해서, 오늘은 포기.  다음에, 몇가지 보여드리지요. 오늘 왜 자꾸만 에러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동관 입구로 나와서 슬슬 자연사 박물관 방향으로 가는길이죠.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이 국립미술관 서관 (현대 이전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는 곳) 건물입니다.  워싱턴 마뉴먼트 오른편으로 둥근 지붕 보이는 곳이 자연사 박물관이지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국립 미술관 조각공원

 

그런데 국립미술관 서관과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는 '국립 미술관 조각공원'이 있어요.  오늘 사실 그 조각공원에 일부러 들렀는데요. 개념 미술의 창시자로 알려진 So Lewitt 의 조각작품이 거기 있거든요. 사진 찍었죠.  나중에 Sol Lewitt 소개할때, 그때 보여드릴게요.

 

조각공원에 2009년 하반기에 새로운 조각물이 들어왔나봐요. 근래에 새로 발견한 조각이거든요. 이 나무요. 스테인레스 나무에요.  지난 토요일에는 이 나무에 새 한마리가 앉아있는것도 봤거든요. 저새는 조각인가 아닌가? 궁금해서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까 휙 날아가더라구요. 오늘은 새가 앉아있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제목하고 작가, 나중에 적어 넣을게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 자연사 박물관 입니다.  박물관 입구 오른쪽에는 화석이 된, 바위같은 나무덩어리가 있구요, 왼편에는 줄무늬 철 바위가 있지요. 내 상상력으로는 다다르기 힘든 아주 오랜 세월의 역사를 보여주는 두가지, 천연 조형물들이라고 할만한데요 ...  그런데, 내 속에도 그렇게 아주 아주 아주 오래된 '유전자'가 있겠지요. 그 세월보다 더 오래된 유전자가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거쟎아요...

 

여기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스미소니안 캐슬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에서 정면으로 건너다보는 스미소니안 캐슬 (인포메이션 센터) 입니다.  아침에 저곳 2층에서 스미소니안 직원을 만나 인터뷰를 했었지요....

 

 

 

 

Freer Gallery 프리어 갤러리

 

아시아권 예술품을 전시하는 스미소니안 프리어 갤러리에도 들렀습니다. 제가 일전에 이곳에 전시된 듀잉의 작품들을 소개한 적이 있지요.  이곳은 휘슬러의 작품 전시장입니다.  국립 미술관에서도 휘슬러 작품들을 사진기에 담았고, 이곳에서도 휘슬러의 작품들을 빠짐없이 사진기에 담았지요.  조만간 휘슬러 이야기를 쓰게 되겠지요?

 

 

 

스미소니안 메트로 역

 

그리고, 스미소니안 메트로 스테이션에서 메트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저기 보이는 초록색 둥근 지붕의 건물. 저기가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입니다. 음...제가 좋아하는 곳이지요...

 

 

오늘, 미술관에서, 경비 아저씨들이 한가하고 심심하니까,  (하하) 저한테 말걸고, 얘기해주고 그래서  그들만이 알고 있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듣고 그랬는데요... 가령, 잭슨 폴락의 No 1 (1번) 에 '바퀴벌레' '딱정벌레'가 화석처럼 물감을 뒤집어 쓰고 굳어버린채로 있는것을  경비 아저씨님이 몸소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보여주셨지요. 하하. 원래 담배꽁초도 붙어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안보인다며 "찾으러 들면 이상하게 안보이다가, 아무 생각 없을땐 잘보이더라" 하면서 혼자 한탄.  잭슨 폴락 작품에 바퀴벌레 붙은 화석, 사진 찍어왔거든요.  헤헤. 나중에 정리해서 보여드릴게요.  오늘, 이상하게 자꾸 에러가 나서 사진 정리를 잘 못하겠어요.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1. 17. 22:50

 

국립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308)에 갔다가, 기념품을 샀는데

 

뭐 샀냐하면

 1. 모네의 The Artist's Garden of Vetheuil (1880) 판액자: 전시장에서 봤는데, 하도 따뜻해보여서

 2. 커셋 (아이들), 르동 (나비), 새 (오드번)의 그림 카드 : 엄마한테 카드 보내드리려고

 

그런데, 모네 그림 뒷판에서 발견한 것

 

 


 

이런 액자나 사진 사면, 반드시 작품 정보가 어딘가에 적혀 있게 마련인데, 이 작품에 대한 정보.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제목 머라머라~  이탈리아 말~

 

이거이 모네 입니다요~  (헤헤)

그래서, 이것을, 그대로 영수증과 함께 갖고 있다가, 다음에 국립미술관 갔을때, 가서 환불받을까 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림 정보 멋대로 아무렇게나 붙여놓으면 안되는거지요. 그것두 국립미술관에서.

 

(아무튼, 제목 편집증환자라서, 이런거 보면 잠이 안와요 잠이. 헤헤헤 하하. // 요놈아 편집증이면 살때부터 확인했어야지, 왜 나중에 발견해가지고 시비를 허느냐~   )

 

아, 모네의 저 그림, 전시장에서 보면, 세상이 다 나른해지고 좋더라구요.  눈부신 세상이 느껴져요.  우리 엄니한테 보여드리고 싶은 그림이에요.  (아, 우리 엄니가 여길 한번 오시면 참 좋겠다...)

 

 

아아, 미술관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명화들을 보고 오면,  '아, 나는 왜 미국미술 블로그를 열어가지고 ... 저런 아름다운 다른 나라 명화들 얘기를 안하고 마는가' 이런 한탄이 나올때가 있거든요.  근질근질 한거죠, 황홀한 작품들 사진을 올려놓고 '자랑질'을 하고 싶어서.  하지만, 꾹 참고, 미국미술만... 안그러면 그 넓은 미술의 대양에서 이리저리 떠돌다 빠져죽을게 뻔하므로.  뭔가 한가지 주제로만 가야 한다는 결론이긴 한데

 

아 그렇지만 가끔 미치게 좋은 세계의 작품들 사진을 슬슬 올리면서 '자랑질'을 해야만 할것도 같아요. 하하하.  약올리는 차원에서 하하.  (난 너무 산만한게 문제야. 산만해. 정신을 차려야만 해...)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1. 17. 22:05

 

Delaware Art Museum 에서 활동하는 미술 안내인

 

 

박물관이나 미술관등, 공공 전시장을 다니다보면, 자원봉사로 전시 안내를 해주시는 분들을 만날수 있다.  이런분들을 미국에서는 Docent (도슨트)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이런 분들은 대개 미술관이나 해당 전시관에 자원 봉사자로 등록을 하고, 관련 교육을 받은후 활동을 하는 것이다.  어떤 전시장을 찾을때, 전시장 전반에 관한, 혹은 특정 전시 행사에 대한 안내를 받고 싶다면, 사전에 홈페이지를 검색하여 어떤 안내 프로그램이 있는지, 무료인지 유료인지, 미리 예약해야 하는지, 시간 맞춰가면 누구나 안내 받을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고 일정에 포함시킬것인지 결정하면 된다.

 

만약에 해외 여행중에 어떤 전시장을 찾을때, 이런 '전문 안내인'의 안내를 받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리고 해당 언어를 익히 알고 있거나 즐겁게 배우는 입장이라면, 꼭 이런분들의 안내를 받을 것을 권한다. 가령, 영어공부 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이런 도슨트의 안내를 받을 기회가 생기면, 기꺼이 따라 다니며 구경하고 들으시면 좋을것이다. (영어 듣기 공부 해결되면서 교양도 ~  ^^).  이런분들은 '자원봉사'로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므로 사명감에 불타서 굉장히 성실하고 정성껏 활동을 하실 뿐 만 아니라 '팁'을 바라거나 받지도 않으므로 그냥 열심히 들어드리고 고개 주억거리고, 눈맞추고 흥미를 보이는 것으로 그분들께 '보람'을 선사할수 있다.

 

내가 워싱턴 바닥에서 '백수질' 을 하던 시절, 오갈데가 없어서 심심하던 시절, 허구헌날 포토맥강에 가서 피지도 못하는 담배만 작살내다간 '백수'에서 '폐인'으로 스킬 상승하는건 시간문제다 싶어, 겁이 덜컥나서 차비만 있으면 문제 해결되는  스미소니안 국립 박물관들을 하나하나 섭렵하는 것으로 미치겠는 실업자 시절의 강을 용케 건넜는데,  뭐 할일도 없고 한가하니 이런 '전문안내인'들의 안내도 착실히 받으면서 '국립박물관'들이 주는 온갖 '무료' 서비스의 혜택을 두루 섭렵을 한바 있다.

 

그러다보니 별별 도슨트님을 다 겪어 본 것이지...  (백수질도 이렇게 하면 신선노름이었을것이다...) 이리저리 겪은 결과 내가 파악하게 된 '전문 도슨트'가 갖춰야 할 덕목 몇가지를 스스로 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다.)

 

 1. 도슨트의 덕목중의 '왕중왕'급,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이다.  한시간짜리 프로그램이면 죽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시간인거다.  50분에 끝내면 용서가 되지만, 61분에 끝내면 용서가 안된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규정된 시간안에 모든'설법'을 끝장을 내 줘야 한다는거다. (너무 아는것이 많아서 할 말이 많으면 따로 시간내고 사람 모집해서 특강을 하던가,  할말 많은것도 시간안에 정리해서 끝내줘야 하는거다.)

 

 2. '수다를 늘어놓지 않는다.' : 별것도 아닌 자기 삿적인 일화를 들이대며 귀한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  자신이 안내해야 하는 것의 요점을 정확히 숙지하고 이를 수행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바, 1번 안 지키는 사람이 2번도 안지킨다. 최악이다).

 

 

 

 3. 제대로 공부해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도슨트가 무료 자원봉사이건 아니건간에 기왕에 다른 사람들을 안내를 하겠다고 왔을때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정보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  사실 내가 도슨트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슨 석박사급 전문 지식은 아니다. 그냥 평이한 안내만 해줘도 고맙다. 내가 잘 모르는 평이한 내용을 그가 전해주면 내게는 아주 도움이 된다.  그런데, 가끔 나는 도슨트가 '허당을 짚는' 것을 발견한다.  제목이 없는 작품을 가리키면서 '재료'부분 명시된 것을 '제목'이라고 설명한다던가,  그림에 앨범이 그려져있는데 그것을 책이라고 설명한다던가.   이런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때,  미리 들여다보고 사진기에 담아서 자료 확보하고, 그러느라 안내지까지 상세히 읽었던 나같이 세밀한 사람에게는 그런 실수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실수를 공개리에 반박하지는 않는다.  사소한 실수는 지나가도 무방하다고 판단하므로.  (죽을일은 아니니까...).  그냥, 좀, 사실 확인도 정확히 안해보고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이 안타깝다는 생각은 한다. (좀 미리 기본 안내문이라도 읽고 와서 설명을 하시지...)

 

 

 

이 세가지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번,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2번,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 3번이다.  사실 3번항목, 도슨트가 사소한 정보를 잘 못 전달하고, 잘 못 알고 그러는 문제는 1번 2번이 잘 지켜질경우 용서가 된다.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떻게 다 아는가? 틀릴수도 있는것이지. 뭐 그낭 컨디션이 안좋으면 생각이 안날수도 있고.  그러나 1번 2번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중대한 사항이다.  1번 2번에서 망가지면 제아무리 똑똑해서 하늘을 날아도 이미 그는 차라리 없는게 나은 존재가 되고 만다.

 

내가 만났던 도슨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

 

코코란 미술관에 처음 가던날, 나혼자 미술관 문여는 시간에 맞춰서 일찌감치 가서 전시물들을 세밀하게 살피고 그리고 시간이 되어 안내를 받으러 갔는데, 아시아계의 멋쟁이 중년 여성이 나와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코코란 미술학교 졸업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한시간 안에 이 좋은 것들을 다 어떻게 안내를 하나..." 하면서 '너무 좋은게 많은데 시간은 너무 짧음'을 안타까워 하였다. 중국계 여성이었는데,  중국계의 영어 액센트였지만 아주 발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우리들을 안내했다. 그의 손에는 몇장의 카드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미리 준비된 동선에 따라서, 우리들을 편안하게 의자에 앉도록 배려를 해 가면서 그림 안내를 해 주었다. 그는 손목시계와 준비된 카드들을 번갈아보면서 시간을 체크하고 전달해야 할 내용을 체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물이 흐르듯 유연했다.

 

이 사람은 미술 석사 학위까지 갖고 있는 전문가였고, 그리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정해진 시간안에 많은 새로운 정보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내가 또 한편 기뻤던 요소는,  비록 한국인은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아시아계, 머리 다 커서 미국에 입국하여 공부하고 그리고 미국 본바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아주 좋은 롤모델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함께 안내를 받았던 사람들은 미국 백인들, 미국 각지에서 온 고등학교 미술선생님들이었었다.).

 

 

나는 대부분 도슨트들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고, 안내가 끝났을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드시 한다. 가르쳐줘서 고마우니까.  가끔,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바람 새듯 그냥 그자리를 빠져나가는 편이다.  (그래도 된다.).  그러니까, 이게 아니다 싶으면 안내 받다 도망가버리는거고, 맘에 들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입장이니까, 끝까지 자리를 지켰을땐 만족했다는 뜻이고, 그러니 감사 인사도 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위의 세가지 덕목을 왜 블로그에 적는가하면, 혹시라도, 미술관 안내를 하려는 분이 있다면 참고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그러면 관객이 고마워할거라는 것이다.

 

언젠가, 미술관에서 혼자 노는데, 누군가가 "한국분이시죠?"하고 반색을 한다. "네..."  그는 반가워하면서 자신이 이제 곧 여기서 한국어로 안내를 하게 되어있다며 안내 받으러 왔냐고 물었다. '아닌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를 무조건 반가워하니까 나도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네..." 이러고는 그 한국인의 한국어 안내를 받게 되었다.  이거 내 계획에 없던건데... 하지만 저렇게 반색을 하니 빠져나가기가 애매하네... (항복. 아 난 얼마나 마음이 약한가).

 

그분은 아름다운 모국어로 (아, 영어에만 둘러싸여 있다가 한국어로 설명 들으니 귀가 다 행복하구나~ 달콤하여라~)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시작하셨다... 내가 모르던 내용도 많이 알려주셨다. 친절하고 박학하고, 열정이 넘치고, 여러가지로 장점이 많은 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 프레젠테이션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그분의 안내를 평가하게 된다면 그분은, 좋은 점수를 기대할수 없을 것이다. 

 

 

 1. 시간을 지켰는가?  한시간짜리 프로그램을 1시간 45분만에 끝냈다.  오 마이 갓  (다리 아프실텐데...)

 2. 가족 얘기를 많이 하셨다.  (난 그분의 가족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

 3. 내가 나름 존경하는 한국의 원로 석학에 대하여 '미국책 베껴서 발표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함부로 이야기를 했다. 그 학자는 미술하고 상관도 없는데 갑자기 왜 상관도 없는 주변지식을 논하는가?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망각한걸까?  미술관 안내인이면 미술관 안내에 촛점을 맞춰주셔야 하는데...촛점 상실. 내가 만약에 그 남의책 베껴먹기 했다는 학자의 조카나 동생이었으면 어쩌려구?  그것이 얼마나 실례인지 모르는가... ).

 4. 기본 정보 착각 내지는 망실 (이것은 앞의 사항이 지켜질경우 내가 별로 신경 안쓰는 부분이다...내 수업에서는 얄짤없이 점수 깎지만,  뭐 여기는 미술관이니까.)

 

나는 그래서 그분의 안내자세와,  거기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자리를 떠나지도 못하고 지키고 있어야 했던 나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곰곰 해보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에 내가 일정이 촉박한 대통령부인인데, 혹은 대통령인데, 내가 시간을 내어 미술관에 갔다고 쳐보자.  그리고 그분이 한국 대통령인 나를 안내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분이 한국 대통령인 나를 안내할때도 오늘과 같은 안내를 하셨을까?   아닐걸.  아닐걸.  그분은 시간 정확히,  동선 정확히 그려가면서 아주 체계있는 안내를 해 내셨을거다."

 

그러면, 답은 나오네.  미술관 안내인은, 그것이 직업이건 자원봉사이건 뭐건 간에, 유능한 안내인으로 존경을 받으려면, 그가 안내하는 평범한 관객들을 마치 국가정상이나 다른나라에서 온 국가정상을 안내하듯, 존경하는 마음으로, 치밀하게 계획세워서 정확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안내를 받는 사람을 '최고의 관객'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안내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안내 받는 사람들을 앞에 세워놓고 무슨 '훈장질'하려는듯 세월아 네월아 멋대로 흘러라 이러면서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나의 결론:

 

(1) 내가 혹시 나중에 누군가를 안내할 일이 있을때

(2)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할때

 

나는

 

(1) 나의 청중을 '국가원수'를 대하듯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국가원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듯 빈틈없이 준비를 하며  (상대가 누구이건 차별없이)

(2) 청중이 나로부터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들도록

행동해야 한다. 이래야만 내가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살아남을수가 있다.

 

 

 

또한가지, 그러면 그 한국어로 안내 하신분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그분은 한번 돌아봐야 한다, 혹시 그분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영어로 안내를 하실때도 시간 초과하고 안내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 놓으시는지. 나는 그분이 미국인/국제적인 관객들 상대로 영어로 안내할때는 시간도 잘 지키고 잡담도 별로 안하실거라는 상상을 한다.  아마도 '모국어'로 '한국인/한국계' 사람들을 안내하다보니 정서적으로 좀더 친밀감을 느끼면서 좀더 속의 말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함정'이다.  그것이 그분의 '문제'일수 있다.  자제하셔야 한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어권 관객을 상대로 푹~ 퍼지시면 실격이다.  푹 퍼지지 말고 미국인이건 국제인이건 동등한, 동질의 관객으로 한국인을 대해야한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미술관에서 안내를 하는 것이다. 그 안내에 촛점을 맞추셔야 한다. 나머지 하고 싶은 말은 안내 끝나도, 아쉬워서 자리 못떠나는 정 넘치는 관객들이 있다면 그분들과 따로 시간을 내서 하시면 된다.  안내인은 안내인의 본분에만 충실해주면 된다.  시간 정확히 엄수하고, 잡담의 욕망도 자제하고, 미리 짜여진 계획에 따라 정확히 안내를 하고, "안내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다 되었사오니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각자 관람을 즐겨주시고, 혹시 제게 따로 질문이 있으신 분?  "  이렇게 마무리 해주셔야 한다. (나 안내인 교육 받은적 없지만...상식적으로 생각할때 이러하다는 것이다. 그냥 상식선에서만 정리가 되어도 나는 감사해 할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1. 17. 09:12

 

흐리고 포근한 겨울, 토요일 아침.

국립 미술관으로 소풍을 갑니다.

 

 

 

 

 

 

워싱턴 마뉴먼트 앞에 차를 세워놓고, 씩씩하게 걸어서 갑니다.

가는 길에 조각공원 연못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나도 작년엔 여기서 스케이트를 탔었지...)

멀리, 중앙에 보이는 허시혼 현대 미술관, 그리고 그 앞에 리히텐쉬타인의 '리본같이 생긴' 노란 조각작품도 보입니다.

 

 

 

 

 

 

 

 

 

걷다가 지쳐서,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카페테리아에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유부초밥과 뜨거운 차한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오늘의 목표 지점은 '현대미술'이 모여있는 국립 미술관 동쪽 빌딩.  서쪽 빌딩 입구로 들어간후 지하 통로를 통해 동관으로 가는데요. 이곳은 빛의 길 입니다. 지하 통로입니다.  SF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요.

 

 

 

 

 

 

 

몇가지 현대미술 특별 기획전이 있어서 보러 왔는데,  아쉽게도, 특별전 작품들은 모두 '사진 촬영 금지'라서 눈으로만 구경을 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칼더의 대형 모빌이 반깁니다.  멀리 벽에 보이는 색종이같이 조각조각 붙어있는 것은 Kelly 의 작품입니다.

 

 

 

 

 

몇달만에 가본 것인데, 연말 사이에 미술관 전체 전시장이 대대적으로 새로 조직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서관에 있던 것들이 동관으로 이동했고, 변화가 심하군요. 심지어 이곳에 몇해동안 들락거린 도슨트 조차 이렇게 확 바뀐줄 몰랐다며 정신없어 합니다. (몇해동안 조용하더니 어떤 변화를 모색하는듯 하군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실인데요 (서관에 있던것들이 동관으로 대거 이동). 중앙에 보이는 큰 그림이 모네의 그림이지요. 

 

 

 

 

 

인상파 그림 이어집니다.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모네이고요.  저 안쪽에 보이는 작품들은 세잔느.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표현주의 작가 작품인데요.  왜 이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가하면,

   열정이 끓어 넘쳐서, 액자 안에 얌전히 있을수 없어서, 액자 전체를 그림판으로 활용한, 그 파격이 매력적이라 그렇습니다.  이글이글 끓는 난로속의 조개탄 같기도 하고,  수박 같기도 한, 전체적으로 열정적인 분위기가 힘차고 좋습니다.

 

 

 

 

 

벽면 전체, 통유리창. 그 유리창 밖의 워싱턴 디씨 풍경,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이겠지요.

 

 

 

 

 

 

 

 

 

Sol Levit 이라는 개념미술의 창시자가 있거든요. 그 작가의 벽화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가를 소개하고 싶어서 근질근질 한데요. 때가 되면 짠짜잔~  하고 소개해드리지요.

 

 

 

 

 

 

자, 앤디 와홀과, 리히텐스타인과 로젠퀴스트가 있군요.

 

 

 

 

 

 

아, 드디어 국립미술관 소장의 Horace Pippin 을 만났습니다!~  제가 호레이스 피핀의 페이지를 진작 만들어 놓고도 마무리를 못한 이유가, 이 작품을 제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거든요.  이걸 꼭 본후에 마무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작품을 마티스 전시실 옆에서 발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지요...선구적인 20세기 현대미술 속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호레이스 피핀! 오, 저는 이 전시장을 기획한 큐레이터님을 무조건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왼쪽부터 클라인, 스틸, 잭슨폴락 두점이 보입니다.

 

 

 

 

 

 

마티스 색종이 오려서 만든 작품 전시실 입구입니다. 마티스의 싸인도 근사해보이지요? 마티스의 명랑한 색감을 좋아합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요.  오늘,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워싱턴 디씨,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동관 (East Building) 에서

 

2010년 1월 16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 11. 23:18

하워드 파일 전시실, 델러웨어 미술관, 2010년 1월 9일 사진 촬영

 

 

 

 

미국의 19세기 삽화가 (illustrator) 하워드 파일 (Howard Pyle 1853-1911)은 미국 델러웨어주의 주도(수도)인 윌밍턴 태생입니다.  델라웨어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288) 과 인근의 Brandywine River Museum (http://americanart.textcube.com/43 ) 에 하워드 파일의 전시관들이 있습니다.  브랜디와인 뮤지엄에서는 전시물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 자료 소개를 할수가 없고, 델라웨어 미술관에서는 영구 소장품에대한 사진 촬영이 허용이 되어 이곳에서 하워드 파일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들을 사진에 담아올수 있었습니다.

 

 하워드 파일은 아직 사진이 보편화되지 않던 당시, 청소년을 위한 각종 이야기책의 일러스트레이션및 정기간행 인쇄매체를 위한 삽화가로 활동하던 화가입니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드를 소개할때, 그의 아버지가 미국 삽화계의 거물이었다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요, 그 N C Wyeth (1882-1945) 보다 더 큰 거물이 Howard Pyle 이었다고 할만합니다. 하워드 파일이 N C Wyeth 의 스승이었지요.  하워드 파일은 직접 미술학교를 열어 운영을 한 적도 있고요, 후에 N C Wyeth 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후진 양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하워드 파일과 N C 와이어드및 그 후학들을 일컬어 브랜디와인 리버 그룹 (Brandywine River School)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사진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영문자료 읽기 원하시면 두번클릭하여 큰화면으로 읽으시면 편안하실겁니다.

2010년 1월 9일 델러웨어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 (전시장 입구, 안내문)

 

 

 

하워드 파일은 '로빈후드'와 같은 이야기의 삽화뿐 아니라, 그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짓고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워드 파일이 작업을 할때나 후진양성을 할때, 그가 역설한 '삽화의 원칙'은 -- "글에 씌어진 내용을 삽화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책에 씌어진것은 이미 독자도 알고 있으므로 그림으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행간의 장면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말로 '행간을 읽으라'는 표현이 있고, 영어로 "Read between the lines"라고도 하는데요, 글에 명시되지 않은, 그러나 그 속에 간직된 것을 파악하고 포착하여 재현해 내라는 것이지요.  글에 씌어진 내용을 재현하기도 어려운데, 행간의 내용을 상상하여 그리기 위해서, 삽화가는 글을 철저히 이해하고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워드 파일에게 있어서 삽화는 단순히 글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뛰어넘어 한단계 높여 놓는 완성작업이었겠지요.  삽화가에게 이정도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야 이야기의 삽화가 진정으로 살아서 독자에게 다가갈수 있을 것입니다.

 

 

 

 

 

인어공주

 

 

The Mermaid (인어공주)

 

하워드 파일은 1911년 이탈리아의 피렌체 (플로렌스)로 벽화 공부를 하러 갔다가, 그곳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던중 신장병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플로렌스 작업실에 세워져 있었던 미완성 작품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델라웨어 미술관이 파일 전시장 입구에 이 그림과, 이 그림이 세워져있던 그의 작업실 그림이 이젤에 세워져 있습니다

 

한스 안델센의 '인어공주'이야기를 대개 알고 있지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이 인어공주 이야기를 '망쳐 놓아버려서, 어쩌면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엉뚱한' 인어공주 이야기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제가 어릴때 읽은 안델센의 인어공주 이야기는 가슴이 아파서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어릴때,  양장판, 일러스트레이션이 환상적인 동화책 (필시 일본책 번역한것)속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한 번 읽은후에, 그 이야기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일부러 그 부분을 얼른 지나치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 부분은 책을 절대 안 열어보는거죠. 왜냐하면, 가슴이 아프니까 피해가는거죠.  그렇게 가슴아파서 피해갔던 이야기가 인어공주 이야기하고,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

 

돌아보면, 어릴땐 두가지를 무서워했어요.

 1. 영국 동화책에 나온 아일랜드의 '반시'라는 무서운 요정 -- 무섭게 생겼으니까

 2. 인어공주의 마지막 장면과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

저는 이 두가지 '공포'와 '슬픔'을 피해다니면서 책장을 넘겨야 했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무섭습니다... 저에게는 삶이 아직도 어두운 숲처럼 무섭고, 이세상에 슬픈일이 일어나는것이 슬픕니다.

 

그림속의 장면은 인어공주가 인간세상을 구경하러 왔다가, 배가 난파되어 물에 빠진 왕자를 구해내는 장면인것 같죠. 왕자는 의식이 없고, 공주는 자신이 구해낸 그 인간의 왕자에게 반하고 말지요... 인어공주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절대 한마디 말도 해서는 안되고, 사랑하는 왕자를 찔러 죽일수도 없고, 결국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택할수밖에 없는데. 그 인어공주의 침묵을 생각하면, 어릴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슴이 무너집니다. 이 세상에 여러가지 형벌이 있는데, 그중에 한가지가 침묵의 형벌일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그림 앞에 하염없이 서서,

내가 어릴때나, 성인이 된 지금이나, 인생은 여전히 무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거구나, 그리고 아름답기도 한거구나 이런 생각을 두서없이 했겠지요.  이 그림앞에 서면 파도소리가 들리고요, 그리고, 한숨이 나옵니다. 한숨이...  말할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침묵해야 만 하는 것에 대하여.

 

 

 

카리브해의 해적

 

자, 독자 여러분

혹은,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이 그림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The Buccaneer was a Picturesque Fellow (그 해적은 특이한 친구였다) 1905

1905년 12월 월간지 Harpers Monthly Magazine 에 하워드 파일이 실은 '보물 마을의 운명' 삽화

Oil on Canvas

 

 

 

델라웨어 미술관에 '어린이' 관객들이 단체로 올때면 전문 안내인이 어린이들을 이끌고 이 해적 그림 전시실로 안내를 한다고 합니다. "뭐가 보이나요?"하고 물으면 꼬마들이 "조니 뎁!" 이라고 외친대요.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에 Jack Sparrow 연기를 한 Johnny Depp 을 아이들이 떠올리는 것이지요.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을 제작할때, 제작진은 당시의 해적의 복장이나 장면의 자료와 고증을 위하여 델러웨어 미술관을 찾아와 협조를 구했다고 합니다. 하워드 파일의 해적 그림들의 많은 부분이 영화에 등장하는 해적들의 복장이나 장면에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Delaware Art Museum 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Which Shall be Captain? (누가 캡틴이 될것인가?) 1911

Oil on Canvas

 

이 그림은 1911년 1월 Harper's Monthly Magazine 에 실린 작품으로 'The Baccuneers (해적)'라는 시의 삽화로 그려진 것입니다. (*참고로, Baccuneer는 해적중에서도 17세기 서인도 쪽에서 활약하던 해적들을 일컫습니다.)  그림 아랫쪽에 보시면 삽이 있고, 보물상자로 보이는 상자가 드러나있지요. 그리고 두명의 해적이 서로 맞장을 뜨고 있습니다. 결국 해적들중에서 가장 힘이 센 이 두명중에 이기는 사람이 캡틴이 되고 저 보물상자에서 나오는것중에서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되겠지요.

 

당시 해적들은 마치 군대조직과 같이 '나름대로 법과 질서가 분명'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다투기는 하되 한사람이 죽을때까지 싸우는것은 아니고, 둘중에 하나가 항복하면 그것으로 게임 오버라고 합니다. 일단 캡틴이 정해지면 질서가 잡히는것이고요.  그 당시 해적선을 탔던 사람들은 일단 크게 한건 하면 그것을 서로 약속한대로 분배한 다음에 각자 자신의 고향으로 가서 집사고 땅사서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다시 해적질을 하러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요).  해적이 되기 위해서 배에 오를때, 이들은 계약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작업(?)' 도중에 팔을 하나 잃으면 얼마, 다리 한짝 잃으면 얼마, 눈을 하나 잃으면 얼마, 목숨을 잃으면 얼마 이런식으로 '보험' 들어두듯 보상금 계약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입'이 생겼을때 그런 보상 계약이 철저히 지켜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적을 연구한 사람들은, 해적의 시스템이 꽤나 계약적인, 그리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혁신적인 시스템이었다는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해적들이 해적질을 하긴 했지만, 그 조직이나 수익 분배구조는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투명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아 이그림은 1911년에 그려진 것이쟎아요. 하워드 파일이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1911년에 사망하쟎아요.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해적 그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The Flying Dutchman (날으는 네덜란드인) 1900

Oil on Canvas

 

제 블로그 이웃친구인 나로 (http://wowchan.textcube.com/) 님이 설명을 덧붙여주셨습니다.
***

검색해보니


[음악에서 'Flying Dutchman'은 '방황하는 네덜란드 인(Der fliegende Holländer)'를 뜻합니다. 바그너가 작곡한 곡입니다.

폭풍우를 만나 난항 중에 있던 네덜란드인 선장이 구출된 뒤,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맹세를 저버리고 다시 바다로 나가 배를 타고 항해합니다. 신은 이렇게 맹세를 지키지 않은 벌로써, 그는 유령선을 타고 영원히 7대양을 헤매도록 합니다. 그러다가 만 7년째가 되자 단 한 번 상륙이 허용되지요. 그러다가 한 여성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고, 북유럽에 떠돌고 있던 전설에 기초한 것입니다. 즉 한 네덜란드 선장이 신에게 저주를 받아 영원히 희망봉 근처를 맴돈다고 하는 것이지요.

Flying Dutchman은 이 전설 속의 유령선이나 그 유령선의 선장을 일컫는 말입니다.]

라고 돼 있네요! 이종격투기선수중에 플라잉 젠틀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레미본야스키 라는 네델란드 흑인이 있지요... 흠.

 

예 위의 그림은 1900년 12월 8일 Collier's Weekly 에 실린 전설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위에 나로님이 옮겨주신대로, 동인도해를 항해하던 네덜란드 배의 선장이 희망봉 근처에서 풍랑을 만났다고 합니다. 이때 그 네덜란드인 선장이, 내가 설령 인류 최후의 날 (Judgement Day 죽을때까지)까지 항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곳을 통과하겠노라고 장담을 했답니다.  사탄이 이것을 듣고 그 선장과 선원들에게 저주를 내렸지요.  그래서 이들은 끝없이 영원히 항해를 하는 저주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직 7년에 한번 뭍에 오를수 있는데, 이때 순정한 여인을 만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받으면 저주가 풀릴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 그림은 해적선이라기보다는 '유령선'이야기라고 할만하죠.  그런데 해적선과 유령선 이야기는 늘 함께 손잡고 다니죠. 유럽의, 항해를 많이 해야했던 해양국가들 문화에 이런 유령선이나 해적선 이야기가 많겠지요.

 

그런데, 저 선장님, 참 근사해보이지요. 아무리 풍랑이 쳐도 절대 무릎꿇지 않겠다는 자세이쟎아요. 허만 멜빌의 해양소설 'Moby Dick (백경)'에서 선장 Ahab (에이합)이 바로 그런 인물이지요. 절대 굴하지 않는.  그 캡틴 에이합의 이미지가 헤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데요.  악마의 저주를 받을망정 절대 굴복하지 않는 그 자세에 우리는 매료되지요. (음,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굴종하고, 타협하고... 아마 그런 인간의 유약함때문에 이런 전설적인 인물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Marooned (유배된 해적) 1909

OIl on Canvas

 

 

제목 그래도 유배된 해적입니다.  위에 적은바와같이 해적 사회가 조직과 질서가 잡혀 있었고, 나름대로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유지가 되었는데, 해적들 내부의 규칙을 어길경우, 이렇게 외딴곳에 버리거나 유배시키는 식으로 처벌을 했다고 합니다. 이 해적은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외딴섬에 버려졌는데요, 그림을 확대시켜서 자세히 보시면 물통 하나가 보입니다. 물 한통. 옷가지. 그리고 사방에서 넘실대는 파도와 물새들.  최소한 저 물새라도 잡아먹으면 며칠 연명할수 있겠네요.

 

이러고 있다가 해적선이 다시 돌아와 배에 실어주기도 하고, 혹은 운 좋으면 다른 지나가는 배를 얻어타고 뭍으로 갈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식의 처벌은 '잘못했으나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무법천지식 해법이 아니라 고립시켜서 고립감을 맛보게 하거나, 버리되 연명할 최소한의 물은 주고 가는 식으로 인정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해적의 세계가 도적놈들이 사회였을망정 무법천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아, 버려진 해적처럼 쓸쓸하구나~"  외로울땐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그림속의 파도소리를 떠올려도 좋겠네요.

 

 

 

 

 

 

세일럼의 늑대

 

 

A Wolf Had Not Been Seen in Salem for Thirty Years (세일럼에서는 30년간 늑대가 나타난적이 없었다) 1909

1909년 12월 하워드 파일 자신이 Harpers Monthly Magazine 에 실은 이야기,

The Salem Wolf (세일럼의 늑대)와 그 삽화

Oil on Canvas

 

 

이 늑대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세일럼은 뉴잉글랜드 지방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보스톤 인근의 항구도시 입니다.  이곳에서 실제로 마녀사냥의 아픈 역사가 있었고, Arthur Miller 의 The Crucible 이라는 희곡도 그 마녀사냥의 일화를 그린 것인데요.  저는 2009년 8월에 그 세일럼이라는 도시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세일럼에 도착하자 도시 전체에 안개가 낮게 깔리고 으스스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 아 하, 이런 자연환경이기때문에 세일럼에 마녀이야기가 많고, 사람들이 어떤 안개 자욱한 상상을 했겠구나.

 

 

이것은 그때 세일럼 시내에서 찍은 공동묘지 사진입니다. 마녀 박물관이라던가 해적 박물관도 있고요, 시내 전체가 마녀의 도시처럼 보이지요.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서 관광도시로 먹고 사는것 같았습니다. 물론 항구도시이기도 하지만요.

 

 

자 이런 안개낀 으스스한 항구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교회 집사의 딸이었던 미리암은 마을 청년과 혼인을 하기로 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녀 할멈의 마법에 걸려서 그만 늑대로 변하고 맙니다.

늑대로 변한 미리암은 자신의 가족들을 공격하게 됩니다.

미리암의 약혼자였던 청년이 그 늑대에게 상처를 입혀 몰아냅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인간으로 되돌아온 미리암에게 상처가 있는것이 발견됩니다.

청년은 자신이 늑대에게 입힌 상처와 미리암의 몸의 상처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결국 미리암은 그 상처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하고, 미리암의 가족들은 저주에서 풀려납니다.

 

 

슬픈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것 같지 않은가요? 

 

제가 어릴때요, 아주 아주 어릴때요, 영화관에서 '나자리노'라는 영화를 했거든요. 그 나자리노라는 영화의 주제곡이 참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꽤 인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가수가 그 곡을 번안해서 불렀습니다. 제가 그 노래 가사를 기억해요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그대 음성 들릴듯한데

왠일인지 보이지 않은 그대모습 사랑합니다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

 

그 나자리노 영화를 제가 안봐서 모르지만, 대략 이야기는, 뭐 마을의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데, 늑대가 될 운명이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청년으로 성장한 후에 늑대가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뭐 변신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니 비극적이었겠지요.  이 늑대 이야기를 만나니 그 나자리노라는 영화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우'가 변신을 하는데 북미나 남미에서는 '늑대'가 인간으로 변신을 하거나 인간이 늑대로 변신을 하거나 그런것 같지요?  약혼한 청년한테 맞아 죽을 운명의 아가씨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만든 청년이나, 참 딱하군요.

 

 

달의 요정

 

 

달의 요정 삽화 1895

Oil on Board

 

 

 

 

그의 삽화가 담긴 책

 

 

 

하워드 파일의 주요 일러스트레이션 작품들을 몇 가지 들여다 보는 것으로 미국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에 남은  큰 별의 자취를 살펴봤습니다.  미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 대가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많은데요, 그때마다 어릴적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제가 성장할 당시에는 '전국민'이 모두 가난했으므로, 제가 가난하게 성장했다고해도 그게 특별히 고생스럽지는 않았는데요, 어린시절 딱 한자기 아쉬운것은 읽을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어쩌다 손에 들어오는 칼라 명작 동화집의 삽화들은 얼마나 근사하던지!  아, 온종일 그런 책들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었지요.  글씨와 그림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그 환상의 세계에 아주 빠져서 현실로 돌아오기가 싫었지요.  그러나 읽을 책은 한정되어 있었고, 집에 있는 책이나 달달 외우는 수밖에...  아, 그 어린시절, 내가 이런 삽화의 원화들을 볼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그 어린시절 내게 이런 삽화가 가득한 세계명작동화책이 많았다면 나는 얼마나 좋았을까, 뭐 그런 아쉬움이 든다는 것이지요.  책을 많이 안사주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보다는, 어릴때 책이 보고 싶은데, 차마 부모님한테 책 사달라는 소리도 할수 없었던,  아무도 감히 부모님께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본적이 없었던 그 어린시절의 풍경이,  정성들여 그려진 삽화위에 겹쳐지더란 것이지요.  가능하면, 시간을 조작할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들과 이런 대가가 정성껏 그린 삽화들을 -- 어린시절의 나에게 가져다 주고 싶어요.  그러면 어린 나는 얼마나 행복해할것인지...

 

아, 어린 내가 아닌,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와 책을 선사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동화의 삽화가들이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요.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우리들에게 꿈을 주쟎아요. 고맙습니다 삽화가님.

 

2010년 1월 10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0. 1. 11. 06:59

 

The Pre-Raphaelites: Romance and Realism (Abrams Discoveries)

 

The Pre-Raphaelites: Romance and Realism  by Lawrence Des Cars

 

 

델라웨어 미술관은 (http://americanart.textcube.com/288) 미술관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에서 프리라파엘 미술품을 가장 방대하게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리라파엘예술은 영국에서 18세기 중엽과 말기에 일어난,  르네상스 이전의 예술로 복귀하고자하는 운동이었는데요, 종교, 미술, 문학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런 '복고적'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왜 이런 운동이 일어났는가하면, 우리는 세계사시간에 르네상스를 고대로의 복귀, 인간성의 회복으로 배우고 지나갔지만, 어떤 사람들은 르네상스 이후에 인간세상이 타락했다고 본것이죠. 특히 영국에서 산업혁명과 도시화로 사람들의 삶이 더욱 곤궁해지고 피폐해진 면이 있고, 시골 처녀들이 도시로 가서 하녀나 창녀로 전락을 하기도 했고, 이런 현상에 대해서 희의하면서 중세의 '가치'나 아름다움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지요.

 

그래서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를 비롯한 일련의 화가 작가들이 활동을 펼쳤는데, 프리라파엘 (라파엘로이전의 예술) 운동은 단기간의 어떤 현상에 그치고 말았지요.

 

그런데 영국에서 한때, 소수가 활발하게 펼쳤던 이 프리라파엘예술 작품들을  어떻게 미국의 델러웨어 미술관에서 다수 소장하게 되었는가하면, 미국인 Bancroft 라는 사업가가 친구의 조언으로 프리라파엘 예술 작품만 수집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는 그의 수집품을 델라웨어 미술관에 기증을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프리라파엘 작품들을 미국의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감상할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미술사책을 훑거나, 가끔 미술관에서 신비하고 환상적인 이런 그림들을 스치면서도 이것의 정체를 정확히 알수 없었는데요,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프리라파엘 예술의 정체를 확실히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안내인의 설명도 들었고, 미술관에 상세히 정리해 놓은 안내문도 읽었고, 작품들도 거의 모두 사진기에 담았고, 그리고 간단한 안내서도 한권 샀습니다. 이 책입니다. 그냥 작은 안내서인데요, 그것으로도 제가 알고자 하는 내용은 충분한것 같습니다.

 

미국미술은 아니지만, 나중에 혹시 시간이 되면 프리라파엘 예술에 대하여, 작품 설명과 함께 족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프리라파엘 운동을 이해하면, 이것이 미국의 어떤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도 가늠이 됩니다. 제가 미국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중에도 이런 분위기의 작품들이 다수 있었으니까요.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 10. 22:07

 

델라웨어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288) 의 전문 안내인 (docent) 에게서 들은 이야기 입니다. 미국이 영국이나 유럽 열강의 식민지에서 출발하여 1776년 독립선언을 하고 신생국으로 성장해 나가쟎아요.  그러니까 그 당시 미국의 문화는 척박했지요.  그야말로 근본은 유럽땅이고, 이들은 식민지의 주민들이니까요.  이 식민지에서 살던 부유층은 자녀들을 유럽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했고,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미국땅에서 어떻게든 자력으로 살아나가야 했는데요, 유럽에서 교육받지도 못하고, 미국 내에서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도 못한, 스스로 기술을 연마한 '미술가'들도 있었겠지요. 

 

제가 소개한적이 있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활동했던 조슈아 존슨 (Joshua Johnson http://americanart.textcube.com/34 )역시 독학으로 그림을 익힌 초상화가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속의 아이들이 어쩐지 '어른의 이목구비'를 하고 있는 '대갈장군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서툴게 혼자 익힌 그림이므로 아이들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비례는 어떠해야 하는지 잘 알수 없었던 것이지요.  초기의 초상화가가 조슈아 존슨 뿐만은 아니었고요, 화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채 그냥 집안의 가보로 전해내려오던 초상화들도 많았지요.  그래서 미술관을 산책하다보면 미국 건국 초기의 민간 초상화중에서 '작자미상' 작품이 종종 보입니다.  서툴고, 어설픈.

 

델라웨어 미술관 전문 안내인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당시 (식민지시절과 건국 초기 당시)에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초상화 주문을 받았대요.  그래서 이들을 Tinker (땜쟁이)에 비유를 하더군요. 옛날에 제가 어릴때는 정말 솥단지 깨진고 그런것 땜질해주는 '땜쟁이'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냄비나 솥단지를 수리해줬거든요. 미국에서도 그러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초상화쟁이(?)들이 이집저집 다니며 초상화를 주문받을때, 이들이 주문받아 그린것은 오직 '얼굴과 머리통'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뭐 오늘날의 포토샵과 비슷하다고 할만한데요, 미리 화판에 몸과 배경을 다 그려가지고 다니는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신사가 초상화를 주문하면 '신사몸통'을 미리 그려놓은 화판을 꺼내어 거기다가 그 주문한 신사의 얼굴만 그려 넣는 겁니다. 결혼한 여자가 주문을 하면 결혼한 여자의 몸이 그려진 화판에다가 역시 주문자의 얼굴만 그려 넣고요, 아이의 초상화를 주문받으면, 아이의 몸통이 그려진 화판에다가 주문한 아이의 얼굴만 더 그리는겁니다.  그러니까 머리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이미 기성품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지요.  사람 몸이야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 의상만 다를뿐 비슷비슷 하니까 그냥 대충 몸과 배경을 완성해놓고, 거기다가 사람 얼굴만 비슷하게 맞춰서 그리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어릴적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구식' 결혼식을 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 친정집 마당에서 전통식으로 혼례를 치른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 결혼 기념 사진은 우리가 폐백드릴때 맞춰 입는 그 전통복장의 흑백 사진입니다.  어머니는 또래 친구들중에서 '흰 웨딩드레스'을 입고 결혼 사진을 찍은 것을 무척 부러워하셨습니다. 엄마 소원이 그 흰 서양식 드레스를 입어보는 것이었지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였나, 아직도 우리집이 셋방살이를 할때였는데,  어느날 우리집에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를 뒤집어 쓴 우리 엄니와, 양복을 입은 우리 아버지의 웨딩사진 액자'가 하나 생겼습니다.  어린 저는 잘 몰랐지만, 그당시에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아무거나 맘에드는 사진을 주면 그 사진을 서양식 웨딩 사진에 합성을 하여 액자를 만들어다 주는 서비스를 하는 사진쟁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엄마는 그렇게해서라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갖고 싶었었겠지요.  뭐, 얼굴은 우리 엄마, 우리 아빠이니까, 철없는 우리들은 그 사진을 보면서 신기해했습니다. 분명 우리 엄마, 우리 아빠이니까요.   하지만, 그날 저녁에 우리 엄니는 완고한 우리 아버지한테 무섭게 '야단'을 맞았죠 뭐. 하하하.  "결혼식을 번듯하게 잘 해놓고, 뭐가 답답해서 이따위 남의 몸뚱이에 얼굴을 붙여놓고 좋아하는건가. 이게 도대체 뭔가?  (뭐 애들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기타등등)" 하하하. 

 

엄마는 단지...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이 한장 갖고 싶었을 뿐인데...

 

아무튼 그 사진은 그 이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민간 초상화쟁이들이 그런식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러 가가호호 돌아다녔다고 하는군요. 물론 이런식의 초상화일망정...가난뱅이는 아예 엄두도 못냈을것이고, 먹고살만한 부유층에서나 가질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따로따로 초상화를 주문할경우, 여자는 왼쪽을 보고있을것이고, 남자는 오른편을 보고 있겠지요. 몸뚱아리는 이미 기성품으로 만들어져있고, 거기에 얼굴만 새로 그렸겠지요.

 

 

 

 

덧붙여서. 미국의 국부로 알려진 조지 워싱턴. 이 사람 초상화도 여기저기 많이 있거든요.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작가로는 길버트 스튜어트가 가장 유명한데요, 그런데 길버트 스튜어트의 조지워싱턴 초상화 원본은 세가지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그 세가지를 '카피'한 것이라고 합니다. 

 

 

Anna Walraven (애나 워레븐)  c. 1850

작자 미상, Oil on Board

2010년 1월 9일 델러웨어 미술관에서 촬영

 

이 소녀의 초상화 배경으로 테이블에 책이 널려있쟎아요. 저것은 그 소녀의 집안 배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뭐 일단 글을 읽고 쓸줄 아는 집안이라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책도 귀했으니까, 집에 책이 저렇게 널려있다는 것은 먹고살만하고 교육도 잘 받았다는 뜻이겠지요. :)

 

이 델라웨어의 소녀 애나가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초기 '은판 사진' (daguerreotype - '다기어리어'는 프랑스의 사진술 발명가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입니다. 이 사진은 미국에서 1845년과 1855년 사이에 유행을 했고, 지금 남아있는 은판 사진들이 대개 그당시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진이 작자미상이고 연대를 알수 없지만, 소녀가 들고 있는 은판사진을 보면, 그림의 제작년대가 대략 어느정도라고 짐작할만 한것이지요. 이 사진이 초기 은판사진임을 알수 있는 단서는, 당시 은판사진이 대개 이러한 프레임에 담겨 있었다고 하는 것이지요.

 

 

'도상학'이라는 학문이 있고, '서양화 읽는법' 이라는 책도 한국에 소개된것이 있고, 미국의 미술책 코너에 가 봐도 여러권 발견할수 있는데요. 그림속에 그려진 대상들을 조합해서 그림을 해석해 나가는 것인데요.  가령 비너스가 보고있는 '거울'은 헛된 허상을 의미한다던가, 해골은 '메멘토 모리' 포도는 '풍요와 다산' '개'는 충성 뭐 이런식으로 풀어가는 것인데요.  이런 '상징적 의미'외에도 그림에 나타나는 어떤 역사적 단서를 통해 그림의 배경을 이해하는 방법도 있지요.  그래서, 심심할때 그림을 들여다보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것처럼 재미있기도 해요.  아마 그래서 제가 그림 들여다보는 것을 싫증을 안내고 계속하는 것이겠지요.

 

 

 

 

 

 

2010년 1월 9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Ashcan School2010. 1. 7. 02:52

 

The White Ballet (흰 발레) 1904

Oil on Canvas

Everett Shinn (1876-1953)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들 (The Eight 혹은 Ashcan School)중 한 사람인 Everett Shinn (이브릿 신: 1876-1953) 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제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갈때마다 지나치면서 눈길을 제대로 줘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 얼핏 보니까 '드가' 그림 같더라구요.  '드가 그림인가?' 생각하고 가서 들여다보면 엉뚱한 이름이 걸려 있는 겁니다.  그러면 '드가 흉내낸 그림이군...' 이러고 그냥 지나치고 마는거죠.  뭐 발레 그림을 드가만 그렸을까마는,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발레 그림은 죄다 프랑스의 화가 드가 (Degas) 작품 같은거죠.  발레를 다른 사람이 그리면 드가를 모방한것 같다는 소리나 듣는거죠.  이래서, 뭔가 먼저 잡아서 시작한 사람이 이기는겁니다. 헤헤. (그런것 같죠?)  뭔가 소재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한가지를 파들어가면,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이 되는거죠.  우리가 드가와 발레를 떼어놀수 없게 되는거죠.

 

아무튼 이 그림은 드가의 그림이 아니고 Everett Shinn 의 그림입니다.

 

만약에 제가 '미국미술을 공부하겠다'고 작정하고 차근차근 미국의 화가들을 찾아보는  취미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그림은 영원히 저의 무시를 당하고 지나갔을겁니다. (가짜 드가그림이라는 딱지를 안고).

 

 

 

 

Everett Shinn (1876-1953) 은 The Eight 화가들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고 하지요. 그리고 뭐 젊은나이에 잦은 이혼으로 '유명'해진 면도 있는것 같습니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당시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고요.  제 안목으로는 '드가'의 소재를 빌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신문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한 경력도 있습니다. (당시의 사실주의 화가들 대부분이 신문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생계를 해결하였으므로 짐작 할 만한 일입니다.)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 복도 전시장에 걸린 그림을 순서대로 보면

1. 왼쪽벽 - Henri,  맞은편 (오른쪽벽) - Everett Shinn

2. 왼쪽벽 - Rockwell Kent,  맞은편 (오른쪽) - Glackens

3. 왼쪽벽 - George Luks ....

 

이런 순서로 걸려 있는데요.  이곳에 The Eight 을 위시한 당시의 사실주의 화가들 작품이 차례대로 전시되었다고 할만하지요.   미술관에 전시물을 설치할때, 전시 기획자는 나름대로 어떤 '논리'를 가지고 그림을 설치했을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모아놓은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Everett Shinn 의 작품을 제가 자주 보지 못해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Everett Shinn 에 대하여 기억할 만한 사항은

 1. The Eight 의 최연소 멤버였다는 점

 2. 따라서 다른 The Eight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뉴욕, 도시의 대중의 삶, 역동적인 장면을 잡아내어 그렸다는 것

 3. 유럽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이정도가 될것 같습니다.

 

다음에 그의 다른 작품을 '사냥'하면 페이지를 업데이트 하기로 하겠습니다.

 

2010년 1월 6일 RedFox

 

 

 

Backstage Scean (무대 뒤) 1900

Watercolor and Charcoal on Paper mounted on the Board (종이위에 수채와 목탄화)

2010년 1월 9일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촬영

 

 

1900년 작품이니까 Everett Shinn (1876-1953)이 스물네살 청년시절에 그린 그림입니다.  위에 소개한  발레 그림은 1904년 작품이고요.  두 작품 모두 그가 20대때 그린 것이군요.  두가지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극장' 풍경이라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이브릿 신이 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극장 인테리어 작업도 했고,  나중에는 영화 감독도 했다고 합니다. 극장예술을 비롯, 예술의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였군요.

 

2010년 1월 18일 업데이트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0. 1. 4. 11:36

 

 

Smithsonian Q & A: American Art and Artists: The Ultimate Question & Answer Book

 

지난 2009년 12월 29일에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책방에서 이 책을 샀다는 글을 적은적이 있습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250 )  심심할때 짬짬이 들여다보고 있지요.

 

오늘은 토마스 콜에 대한 페이지를 정리하면서 이 책을 참고삼아 보았는데요, 이 책에 실린 토마스 콜의 그림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토마스 콜의 그림을 소개할때 이야기를 조롱조롱 들려드렸지요. 해골바가지가.... 메멘토 모리가...종알종알....

 

위의 책 (38 페이지)에 소개된 그림은 제목도, 제작년대도 아래의 작품과  일치하는 동일한 그림입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267 참고) 위의 작품과 아래의 작품은 동일해 보입니다.

 

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지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책의 그림과, 제가 액자까지 찍어온 그림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예, 아마 찾으셨을겁니다.  해골바가지의 위치를 보시면 그 차이를 알수 있지요.  위의 책속의 사진에는 해골바가지가 그림의 맨 바닥에 있고, 제가 찍은 원화에는 해골바가지가 조금 윗쪽에 있습니다.  아마도 책속의 그림 사진은 사진 편집 과정에서 아랫부분 일부를 잘라낸것처럼 보입니다.  그림의 아랫부분이 잘려나갔다는 뜻인데요.   물론 이 그림에서 아래부분 약간 잘라낸다고 뭐 주제가 바뀌고 그런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토마스 콜은 해골바가지를 그림의 바닥에 그려넣지 않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잘라낸 그림은 이미 원화를 훼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원화를 사진기로 찍고 다듬으면서 원화의 저역시 원화의 색감을 멋대로 훼손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제가 아무리 육안으로 본 것의 기억을 고집하려 해도 재생에는 한계가 있지요). 재생의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원화의 구도마저 훼손시킨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스미소니안이 자체 이름까지 걸고 만들어낸 책에서 스미소니안 소장 작품에 멋대로 칼질을 하여 원화를 편집을 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거 정말 프로페셔널 정신을 가지고 만들고 감수한것인지.... 앞서의 페이지에서 (http://americanart.textcube.com/269 ) 미술책의 오류 가능성과,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제가 미술관 산책하면서 '액자'까지 통째로 작품 사진을 찍는다거나, 혹은 미술관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작품 사진 앞에 사람들이 서있는 광경을 집어 넣는 이유는,  그림의 실제 모습, 그 그림의 실제 크기, 혹은 그 그림이 전시된 전시장의 생생한 풍경을 통해 제 미술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께 한발짝이라도 다가가는 생생한 미술을 선물하기 위해서인데요.

 

미술책 편집하시는 분들, 이런 세밀한 것에도 신경을 쓰셔야 할텐데요. ...

 

책--믿으면 편하죠. 하지만 믿으면 안되죠.

 

책은 (전에도 이야기한바 있지만) '지도'같은 것입니다. 지도속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지도를 가지고 가늠하고, 찾아가는 것이지요. :)

 

 

2010년 1월 3일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0. 1. 4. 11:02

2009년 9월에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65)에 갔을때, 이 책을 한권 샀습니다. Essential History of American Art (by Suzanne Bailey).

 

 

 

 

 

이 책의 198-199페이지 입니다.

 

 

오른쪽의 파란색 작품의 작가는 Ellsworth Kelly 이고, 제목은 Blue on White (1961) 흰색위의 파랑 이지요.  그리고 그 아래에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 DC 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2008년 5월에 제가 이 그림 앞에서 서 있는 모습입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3층, 링컨 갤러리에 있는 작품 앞에서, 2008년 5월

 

 

제가 이 그림을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림 앞에서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거 말풍선 같아. 이 파란색에 뭐라 뭐라 적으면 그대로 말풍선이다" 뭐 이런 농담을 했었거든요.

 

자 이제 저 맨위의 사진을 다시 살펴보시길....  (발견하셨습니까?)

 

^^* 그냥 한번 웃자고, 유머 차원에서 올려봤습니다. 뭐 책 편집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는것이지요. 특히나 방향이 애매한 추상미술은, 누구라도 실수하기 십상이죠. 제가 미술관 순례하면서도 추상미술 작품 사진을 찍을땐 작품의 방향까지 정확히 기억하려 애 씁니다.  세워 놓을것을 눕혀 놓는다던지, 거꾸로 놓아서는 안되니까요.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들 지도할때도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곤 합니다. 특히 학생이 뭔가 주제 연구 발표를 할때, "발표 내용을 어디서 구한 것인가? 어떤 책에서 찾은 것인가?  누가 말 한것인가?  혹시 저자가 잘 못 알고 있는것은 아닌가? 어떻게 확신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사항들을 묻고, 학생들이 대충 얼버무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것인지 확인합니다.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사항:

 1. 책에 씌어있다고 무조건 믿지 말라. 만약에 책 내용에 수긍할수 없거나 의심이 간다면 다른 자료를 찾아보거나 그 진위를 조사해보라.

 2. 가르치는 선생인 나를 믿지 말라. 내가 모든것을 다 알수 없으며, 나도 모르고, 착각하고, 그리고 얼버무린다. 그러니 선생인 나를 믿지 말라.

 3. 오로지 공부하는 자신의 판단력에 의거하여 사색하고 공부하고 그리고 확인하라.

 

책을 무조건 믿으면 - 편하죠.

선생을 무조건 믿으면 -편하죠.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편하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이고, 오류의 가능성은 늘 열려있으며, 내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나와 내 주변은 늘 오류를 일으킵니다.  스스로 회의하고, 사고하고, 그리고 공부를 해야만 단단한 기반위로 나아갈수 있지요. 죽을때까지 우리는 실수, 잘못, 오류에서 벗어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해야 하지만, 동시에 오류의 가능성을 최소화 하기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요.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링컨 갤러리 (중앙에 Blue on White)

2009년 12월 29일 촬영

 

 

 

2010년 1월 3일 꽁꽁언날. 발 시려운날. redfox.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1. 4. 09:18

 

 

 

http://americanart.si.edu/luce/ : 공식 홈페이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루스센터 (Luce Foundation Center)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홀에 들어가면 1층, 2층, 3층의 공간이 있는데, 1층에는 교육실 회의실, 그리고 관객을 위한 테이블들이 놓여있고요, 계단을 따라서 2층 3층을 올라가면 그곳에 '미술품 창고'가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회화'쪽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이 소장하는  미술의 전분야에 해당되는 작품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곳은 말하자면, 전시장과 창고 두가지 기능을 하는 곳입니다. 창고처럼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명품들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해가 바뀌면 이곳에 있던 작품들이 본래 전시장의 넓은 공간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전시장에 있던 작품이 이쪽에 와서 쉬기도 하지요. 저는 실제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주 전시장에서 루스센터 전시실로 옮겨온 것을 목격한적도 있지요. 그러니까, 이곳에 있다고 '별볼일 없는' 작품도 아니랍니다.  가령 조슈아 존슨의 페이지  http://americanart.textcube.com/34 에 소개된 소녀의 초상화도 이 루스센터 진열장 안에 있지요.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을 어쩌다 관광하는 차원에서 짧게 지나치는 분들이라면, 여기까지 기웃거릴 시간이 없겠지만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을 볼 여유가 있거나, 이곳을 자주 찾을수 있는 거리에 계시는 분들은 루스 센터도 잊지 말고 찾아보시길.  이곳의 좁다란 통로를 돌면서 숨어있는 작품들을 구경하다보면 '보물찾기'를 하는듯한 긴장감도 느껴지고요, 혼자 있어도 재미가 쏠쏠하여 시간가는줄 모릅니다.  나만의 숨겨진 놀이터에 들어선 기분이 들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그리고 이곳에 걸작들이 숨어있으니까).

 

 

 

 

 

 

 

 

 

 

 

 

 

 

아, (위) 가운데의 사나이 얼굴 그림, 그것이 벤샨의 작품이고요

 

 

 

왼편의 두부부의 초상화가 George Bellows 의 그림이랍니다.  조지 벨로우즈 페이지에 추가로 내용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지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198

 

2010년 1월 3일 몹시 추운날  redfox.

 

Posted by Lee Eunmee

19세기 미국미술: 토마스 콜 과 허드슨강 미술가들

 

http://americanart.textcube.com/263  이전 페이지에서 토마스 콜의 '인생' 시리즈를 살펴 봤습니다.

 

 

19세기 미국 미술가인 Thomas Cole (1801-1848. 토마스 콜)은 미국의 풍경화가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그의 이름 옆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허드슨강 미술가들 (Hudson River School)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1918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합니다. 오하이오에 정착했던 그는 후에 펜실베니아 미술 학교를 거쳐서 1825년에는 뉴욕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당시에 미국의 지식인들이나 꿈을 가진 화가들이 거쳤던 노선이기도 하지요. 펜실베니아를 거쳐 뉴욕으로 가는 노선.

 

당시 뉴욕주의 허드슨 밸리 (Hudson Valley)라는 지역이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이름이 있었고 그래서 토마스 콜을 위시한 '미술학도'들이 이곳에서 풍경화를 그리거나 익혔습니다.  미국 건국 초기의 미술이라야 '초상화' 아니면 '풍경화'였다고 할만하지요.  후에 그는 이탈리아에 가서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허드슨 밸리의 Catskill 에서 결혼하여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토마스 콜을 위시하여 허드슨강 기슭에서 풍경화 작업을 하거나, 토마스 콜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미국 풍경화가들을 일컬어 허드슨강 미술가들 (Hudson River School)이라 칭하게 됩니다.

 

허드슨강 미술가들은, 대개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미국의 풍경들을 그렸고 (말하자면 진경산수라고 할만하죠),  때로는 이상화된 풍경들도 그렸습니다. 이 허드슨 미술가들에 의해 '거대한 미국의 풍경'들이 유럽사회에 알려지게 되기도 했고요.

 

허드슨강 미술가들중에 널리 알려진, 제가 장차 페이지를 열어 소개를 하고자 하는 화가들은

 1. Albert Bierstadt (알버트 비어슈타트) : http://americanart.textcube.com/361

 2. Frederic Edwin Church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 http://americanart.textcube.com/363

 3. Thomas Moran (토마스 모란) http://americanart.textcube.com/364

등인데요.

 

이 주요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장차 허드슨강 미술가들 특징을 좀더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토마스 콜의 풍경화, 그 속에 담긴 우화들

 

 

토마스 콜은 풍경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풍경화속에 성서적 우화들을 담기를 즐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작품의 제목은 The Subsiding of the Waters of the Deluge 인데요.  '노아의 홍수 뒤에 차분해진 물결'로 해석이 됩니다.  Deluge 는 홍수, 범람을 의미하는 어휘인데, 성서에서 the Deluge 라고 하면 노아의 홍수를 가리킵니다.  "After me, the deluge!"  나 이후에 홍수가 오건 말건 상관없다는 뜻이지요. 나 살아생전에만 무사하면 된다 이거죠. 좀 무책임한 발상이죠. (내가 알게 뭐람).

 

그림의 제목만 보면 토마스 콜은 성서에 담긴 노아의 홍수, 그 이후의 평화를 그린것으로 풀이됩니다만, 또다른 해석도 가능해집니다. 미술관의 그림 안내지에 담긴 내용을 옮기자면, 토마스 콜은 이 그림을 통해 신생국가 미국을 찬양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민자였던 토마스 콜 자신의 삶의 관점을 보여준것은 아니었을까요?)

 

노아의 홍수가 뜻하는 것은 묵은것의 청산, 죄악과 오류의 청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지요. 신생국 아메리카가 유럽의 영향권에서 독립을 하는것 역시 새로운 시작일수 있고, 유럽에서 이민 온 토마스 콜에게도 미국에서의 삶은 새로운 시작일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깊고 어두운 동굴을 통과하여 저 멀리 노오랗게 햇살이 비치는 평화의 바다로, 신세계로 나아간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사진 사이즈를 줄여놔서 잘 안보이시겠지만, (사진 두번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사진 하단의 중앙의 바위 옆에 보시면 희끄무레한 조그만 것이 보이실겁니다. 해골바가지 입니다.  해골바가지.  이 해골바가지는 왜 그려넣은 것일까요?

 

 

노아의 홍수 이후, 새로운 에덴을 향하여

The Subsiding of the Waters of the Deluge 1829

Oil on Canvas

2009년 12월 1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서양 그림을 감상하실때, 서양 그림에 '해골바가지'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감지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나라를 막론하고 유럽 화가들은 '해골'을 그려넣기를 즐겼습니다. 이를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우리가 모두 죽어야 할 생명들이라는 것을 기억함) 이라는 용어로 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Memento (Remember, 기억하라), Mori (mortal,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리따운 여인이 한손을 해골에 얹고 있는 그림은 어떤 식의 해석이 가능할까요?  인간은 유한하고, 처녀의 아름다움도 유한하다는 메시지이지요.  책상위에 모래시계와 해골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있다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지지요. 시간은 흘러가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는 죽을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그림에 담긴 해골은 어떤 상징을 담고 있을까요?  우리 모두 죽을거다?  뭐 그보다는.... 어떤 것의 종말을 상징할수도 있지요.  구시대는 끝났다. 이 해골을 넘어서서 저 평화로운 신천지로 나아간다는 뜻일수 있지요. 신세계 미국은 New Eden 새로운 에덴동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토마스 콜에게.

 

2003년 겨울에 (아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일이구나, 어제 같은데...) 뉴올리안즈에 간적이 있습니다. 태풍 카트리나가 강타하기 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던 곳이었지요. 뉴올리언즈 시가지에 타로 점쟁이 할머니가 앉아있길래, 난생처음으로 길거리에서 타로점을 쳐봤습니다.  아, 제 일기에 그당시 사진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그때 제가 고른 패중에 '해골'이 그려진 패가 있었거든요. 크리스마스 휴가로 간 여행이라 '신년운세'를 본것인데, 뭐 해골 패가 나왔던겁니다.  그런데 점쟁이 할머니가 제 패를 들여다보더니 설명을 해주더라구요. 이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넌 새해에 큰 행운을 맞이할것인데, 그것을 얻기 위해 고통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잘 해내길 바란다. (히히, 점쟁이가 아닌 나 라도 그런 설명은 하겠다) 아 뭐 점쾌가 하도 안좋아서 나를 위로하려고 이러시나 했지요.

 

 

 

2003년 12월 뉴올리언즈의 타로 점쟁이 할머니와 나.

 

그런데, 그 이듬해에 저로서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왔지요. 아주 힘든 시험도 쳤고, 새로운 관문으로 들어섰지요.  죽음은 곧 탄생이다. 새로운 탄생이다.  점쟁이 할머니의 아름다운 설명이 고마웠죠. 결국 인생 이리저리 해석하기 나름인데...

 

아, 예, 그래서 토마스 콜의 그림에 담긴 저 해골은, 죽음, 그러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구시대, 구습의 죽음, 신생국가의 새로운 에덴동산을 희구하는.

 

 

 

아래의 두편의 그림들은 십자가의 순례라는 타이틀의, 기독교 우화 연작의 일부로 보입니다. 그가 1848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 작품들이 1847년 1848년에 그려진 것이고보면 이것들이 토마스 콜의 최후의 작품들이었던것 같은데요. 그 자신이 생의 마지막에 다다랗다고 느꼈던 것일까요? 

 

시작은 끝과 통하고, 끝은 새로운 시작과 닿아있고...

 

한해를 시작하는 요즈음, 묵은것들을 털어 내시고, 또 새로운 종말을 향해 여행을 떠나야할 때이지요.  올해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수 없으나, 길을 떠나보는거죠.

 

 

 

The Pilgrim of the Cross at the End of His Journey

십자가의 순례, 그 여행의 끝 (십자가와 세상이라는 연작 시리즈를 위한 준비화)

(Study for the series; The Cross and the World) 1846-1848 Oil on Canvas

2009년 12월 1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The Pilgrim of the Cross at the End of His Journey (about 1847)

십자가의 순례,그 여행의 끝.

Oil on Canvas

2009년 12월 1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날,  아름다운 한 해였노라...라고 술회 할수 있기를.

 

2010년 1월 3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National Gallery of Art (워싱턴, 국립 미술관)의 미국미술전시장.

2009년 9월 11일 촬영

(사진들을 두번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수 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기가 되면 삶에 대해서 이것저것 사색을 할 기회가 많지요.  우리는 인생을 봄-여름-가을-겨울에 비유 하기도 하는데요.  나는 지금 인생의 어디쯤에 있는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하지요. 옛날 어르신들 말씀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것에는 차례가 있어도, 돌아갈땐 차례가 없대요.  먼저 태어났다고 먼저 죽고, 나중 태어났다고 나중 죽고 그러는게 아니라는거죠. 이 세상에 던져진 이상, 각자 언제 죽을지 우리는 예측할수 없고, 어쩌면 운명 지어진대로 살아나가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미국화가 Thomas Cole (1801-1848)의 걸작중에 워싱턴 디씨의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미국미술 구역에 전시된 The Voyage of Life (인생의 항해길)이라는 연작품이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들어 노년을 맞이하여 돌아갈때까지를 네편의 그림에 담아 놓은 것인데요.

 

각기

 1. The Voyage of Life: Childhood (어린시절)

 2. The Voyage of Life: Youth (청년시절)

 3. The Voyage of Life: Manhood (성년시절)

 4. The Voyage of Life: Old Age (노년기)

 

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네편의 작품을 차례차례 '전체크기'와 '부분화'를  함께 올려보겠습니다.  차례차례 그림을 보시면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림에 사람하나하고 또 다른 존재가 반드시 나옵니다)과 주변 풍경을 살펴보세요.  그러면 저절로 한가지 이야기가 나오게 되겠지요.  어린 꼬마들도 그림을 보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겁니다. 저처럼 중년의 나이가 되거나 저보다 인생을 더 오래 사신 분들이 이 연작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지요.

 

사실 이 연작을 처음 본것은 2005년에 워싱턴을 처음 방문했을때였는데요.  아 벌써 그후로 5년이 더 흐른것이군요.  국립미술관에 갈때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늘 비슷한, 그러나 양상이 조금 다른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아 5년전에 처음 이 작품을 발견하고는 - 국악인 김영임씨의 '회심곡'을 틀어놓으면 잘 어울리겠다 생각을 했었지요.  회심곡....  (서양판 회심곡이지요뭐...)

 

토마스 콜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요.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차차 하기로 하고요. 지금은 그냥, 그림들을 즐기시지요.... 할얘기가 아주 많은것도 같고, 뭐 따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것도 같고요.

 

 

 

 

어린시절

 

 

 

왼편, 동굴과 같은 어두운 곳으로부터 금빛 찬란한 배 한척이 나오고, 어린 아기가 타고 있지요. 아기의 뒷편에 천사같은 존재가 서서 배를 인도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강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고요.  먼 하늘은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은 이렇게 느릿하고 명랑하게 흐르는 시간과, 신비감으로 가득차 있었지요.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흘러갔어요. 제가 기억하는 인생 최초의 '먼 모험 여행'은 다섯살때, 이웃집의 나보다 한살 더 많았던 사내아이와 어른 걸음으로 20분쯤 가면 닿게 되는, 동네 초등학교까지의 길이었습니다.  그 학교에 나보다 대여섯살 많았던 고모들이 다니고 있었는데,  아침메 밥먹고나서 할일이 없고 심심했던 저는 이웃집 유순이와 함께 모의를 한거죠.

 

우리도 학교에 가보자. 유순아 너 학교가는길 알어?

응 알어. (유순이는 나보다 한살이나 더 많았고, 세상에 대해서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요)

학교에 가서 고모를 만나자.

그러자.

 

유순이의 부모님은 유순이가 어딜 돌아다니건 걱정을 하지 않았고 (유순이는 씩씩하고 똑똑하니까),  나의 부모님은 멀리 서울에 있었던거죠. 아무도 내가 어딜 돌아다니건 신경쓰지 않았던거고, 나는 나름대로 거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오전의 태양아래, 우리 동네 경계를 넘어서 한없이, 한없이 먼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우리집 마당에서서 돌아보면 보이는 마을의 집과, 산과, 개울과, 개울건너 앞마을의 집들뿐이었는데, 그 경계를 넘어서서, 내가 모르는 세상을 향해 유순이는 나를 이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계절이 가을이었던걸까요?  내가 마을을 벗어나서, 모르는 길을 걸으며 겁이 나서 칭칭대니까, 겨우 나보다 한살 더 많았던 유순이가 길가 밭에서 '무'를 하나 뽑아다가 이빨로 그 무 껍질을 벗겨서 우선 제가 몇입 먹고 나에게 주었지요. 이거 먹어라. 달다. 울지마. 내가 학교가는길 알어.

 

나는 정말, 온종일, 온종일, 영원처럼 오래오래 걸어서 초등학교에 도착했던것 같습니다.  학교 마당 구석에서 기가 죽어서 얌전히 있으려니, 마침 쉬는시간이었던지, 아니면 체육시간이었던지 양갈래로 길게 머리를 땋은, 까만 바지차림의 우리 막내고모가 학교 마당에 나왔다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달려왔지요.  "야! 니가 여기를 어떻게 왔니! 하하하. 여기를 왔구나!"  우리 막내고모는 환하게 웃으면서 좋아했지요. (그래봤자, 우리 고모도 뭐 초등학교 고학년이었겠군요).

 

그날의 햇살이 생각납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던 햇살. 그 먼 여행. 그 멀고도 긴 하루.

 

우리의 시간은 느릿하게 반짝이며 흘러갔고, 세상은 신기함으로 가득차 있었지요.

 

 

 

 

제 학부시절 전공이 영어영문학이다보니, 운좋게도 대학시절에 영문학의 '기초 과정'들을 착실히 이수할수 있었는데요.  2학년이 되어 전공과목으로 처음 이수한 것이 '영시'였습니다. 중세 베오울프 맛보기를 거쳐 주로 낭만주의 영시를 강독했지요.  워즈워드의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 (어린시절의 기억을 통해 영생불멸을 깨닫고 부르는 노래)라는 시가 있는데요, 워즈워드는 어린 아이를 '보는자 Seer' '자연의 철학자 Philosopher'에 비유하여 인간이 태어날때부터 갖는 예지력, 천재성을 노래하지요.  인간이 천국에서 지상에 올때 천국의 광휘와 지혜를 갖고 오는데, 이승에서 살면서 그런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 빛이 돌려지지 않는다해도 서러워 말지니, 차라리 그 속깊이 간직된 빛을...' 이런 구절도 이 시의 일부이고요.

 

사실 이 '인생의 항로' 그림은 워즈워드의 '영생불사'시와 잘 어울리지요. (참고: http://www.bartleby.com/145/ww331.html )

 

전체 11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시인데 첫 두연만 읽으면서 음미해볼까요

 

 

                           http://www.bartleby.com/145/ww331.html )  

 

                    I

          THERE was a time when meadow, grove, and stream,
          The earth, and every common sight,
                    To me did seem
                  Apparelled in celestial light,
          The glory and the freshness of a dream.
          It is not now as it hath been of yore;--
                  Turn wheresoe'er I may,
                    By night or day,
          The things which I have seen I now can see no more.

 

풀밭, 언덕, 그리고 개울이

대지가, 그리고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천상의 빛에 둘러싸여 있는것처럼 보이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지.

그 시절의

빛나던 꿈과 그 꿈의 신선함은

이제 보이지 않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밤낮으로 보던 것들을

이제는 더이상 볼수 없어라

 


                                   II

                  The Rainbow comes and goes,
                  And lovely is the Rose,
                  The Moon doth with delight
            Look round her when the heavens are bare,
                  Waters on a starry night
                  Are beautiful and fair;
              The sunshine is a glorious birth;
              But yet I know, where'er I go,
          That there hath past away a glory from the earth.

 

무지개는 왔다가 사라지고

장미는 아름답구나

하늘이 개이면

달은 기쁨에차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별이 빛나는 밤

개울들은 아름답고도 고와라

햇살은 영광스런 탄생이라네

하지만 이제는 안다네

내가 어디엘 가도

그 광휘는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다네

 

(번역; RedFox)

 

 

시인 워즈워드가 1803년에서 1806년사이에 쓴 시입니다.  나이가 들어 어린시절을 회고해보니 어린시절에는 모든것이 신기함, 빛으로 가득했었는데, 이제는 사물은 그대로 있어도 그 빛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지요... 워즈워드는 시를 풀어가면서 어린시절, 어린아이, 자연에 대한 '천국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그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냅니다.  그리고나서 그러면, 이제 그런것을 잃은 우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뭐 그런 이야기도 마지막에 나오는데요.  결론은 '기억'이죠.  우리에겐 회상할수 있는 능력이 아직 남아있고, 회상의 능력을 토대로 삶을 깊게 들여다볼수 있다는 위로를 하지요.

 

이 그림은 토마스콜 (1801-1849) 이 39세인 1840년에 그린것입니다. 그 8년후에 화가는 이른나이에 천국으로 가버렸는데요, 토마스콜의 성년기 작품입니다. 청년이 이런 그림들을 그리기는 어려울것 같고요. 당시에 나이 마흔이면 스스로도 자신의 '성년'으로 인지하였을 것입니다.

 

어린시절, 비가오면 폭우처럼, 눈이 오면 폭설처럼 여겨지던 시절,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차있었지요.


 

 

 

청년시절

 

 

 

자, 이제 청년시절에 이르렀습니다.  멀린 (그림 왼편 상단) 하늘에 희게 빛나는 성이 있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 ).  청년은 여태까지 호위해주던 수호천사 따위 안중에 없다는 듯 그 하늘의 성을 향합니다. 수호천사는 배에서 내려 강 기슭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고 있군요.

 

우리에게 저 하늘의 성은 무엇이었을까요?

 

희망과 기대에 찬 미래였을까요?

고시를 통과하여 출세를 해보겠다는 야망이었을까요?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진정한 민주화를 실현시키겠다는 이상 이었을까요?

남북통일이었나요?

아름다운 농장을 일구고 싶었나요?

착한 애인을 만나서 공중정원같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싶었나요?

먼나라로 유학을 하여 나도 알수없는 어떤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는 것이었을까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던 시절 저의 꿈은 아마도 그것이었던것 같습니다. 멀리 떠나고 싶었고, 유학을 가고 싶었고, 현실은 멀리 떠나는것도 유학을 가는것도 불가능하다며 빙글거리며 발목을 잡았던것 같아요.) 아무튼 우리는 떠나고 싶어하죠. 부모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죠.

 

그런데 그 공중의 성으로 향한 물가에는 험준한 산이 기다리고 있고요, 그 물길을 계속따라가면, (수호천사 뒤로 보이는 협곡을 보십시오) 알수없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지요.

 

 

 

 

 

 

 

 

 

성년시절

 

 

저는 지금 '성년시절'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제가 판단을 해야하고, 저의 판단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내 삶보다는 내주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야하고, 고비고비마다 이것이 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도 판단을 해야 합니다. 시간은 격류처럼 흐릅니다.

 

지난 연말에 오랫만에 지인을 만났는데, 그분이 "바쁘시죠?"하고 늘 인사로 묻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아이고, 한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신이 없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그냥 한해가 갔는데, 뭐 아무것도 한것이 없어요..."하고 대꾸를 했지요.  그분 말씀이, "나이만큼 세월의 속도가 빨라져요. 30대는 시속 30마일, 40대는 40마일이에요... 속도 초월하지 마시고 천천히 가세요."  그러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후딱후딱 지나간대요. 그 말씀이 맞는듯하여, 이것이 나만 느끼는 속도가 아니구나, 모두들 비슷하게 느끼는구나 했습니다. (그러면 또 위안이 되지요. 모두들 나와 비슷한거구나,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자, 아까 청춘시절의 강물을 따라 흘렀을때 맞닥뜨리게 되는 협곡의 정체가 여기서 드러나죠. 물살을 미친듯이 빠르게 흐르고, 배는 급물살과 바위사이를 통과해야만 하지요. 미친것은 물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죠. 미치겠는거죠.

 

 

 

 

 

그런데, 저 어두운 하늘구석에 희게 빛나는 존재가 있습니다. 아까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내버렸던 나의 수호천사인걸까요?  괴로움속을 서성일때, 단테를 돌봤던 베아트리체인걸까요?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가 있었는데, 지금 나에겐 무엇이, 누가 있을까?

 

 

 

 

미친 세월을, 급 물살을 견디며 바위틈을 통과해야 할때, 우리는 신앙을 가진사람이건 아니건,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토마스 콜은 기독교 바이블의 이야기를 많이 그린 화가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의지처가 필요하죠.  대상이 누구이건간에 간절히 간절히 어떤 염원을 품게 되겠지요. 그러한 염원이 없이는 이런 물살을 타고 넘기가 힘이 들지요. 혹은 이 물살을 맞기 싫으니 차라리 죽겠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 바위의 협곡을 지나면 무엇이 나올까요? 저 너머에 대양이 보입니다. 그렇죠?

 

 

 

 

 

노년시절

 

 

자 이제 협곡을 통과하여 물결 잔잔한 바다에 다다랗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몸도 늙고 지쳤습니다. 성년시절까지는 뱃머리 장식이 붙어있더니, 이제 뱃머리 장식도 사라지고 없군요. 사람도, 배도 늙고 지치고 망가졌습니다. 망가진 뱃머리 장식대신에, 노인을 이끄는 빛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멀리에서 그를 맞이하는 또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어서 오라고 손짓 하고 있지요?

 

이렇게 우리의 삶은 '하루'와 같고, 하루는 '일생'과 같기도 합니다.  매일 매일, 하루 하루, 마치 평생을 다시 시작하듯 그렇게 하루를 맞이하고, 마치 평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잠이 든다면 좋을것도 같습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살면서 힘이 들고 괴로울때, 그 물살너머에 평화로운 바다가 기다리고 있음을 상상하면 그런대로 다시 힘을 얻을수 있을것도 같고요.

 

저도 아직 노년을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노년이 평화롭기를,  지상의 노인들이 평화로우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아, 토마스콜은 47세로 마감을 했는데요, 그는 노년이 오기전 지상에서 사라진것처럼 보이네요. (아니, 노년이 나이와 상관이 있는것은 아니지요. 혹자는 평생 청춘으로 혹자는 일찌감치 노년으로 살아갈지도 모르지요.)

 

 

 

 

 

 

 

 

 

세상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겪는 일들속에서 어떤 섭리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면,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럭저럭 세상을 견뎌나갈수 있을것도 같군요.  사랑할때가 있고, 죽을때가 있으며, 얻건 잃건 그 사이에 우리 삶의 강물은 흘러 흘러 가는 것이지요.

 

          The Clouds that gather round the setting sun
          Do take a sober colouring from an eye
          That hath kept watch o'er man's mortality;
          Another race hath been, and other palms are won.
          Thanks to the human heart by which we live,
          Thanks to its tenderness, its joys, and fears,
          To me the meanest flower that blows can give
          Thoughts that do often lie too deep for tears.
                                                        

지는 해의 주위로 모여드는 구름은

인간의 유한성을 지켜본 시선으로부터

근엄한 빛을 앗아간다

또하나의 경주는 끝났다. 월계관들이 주어졌다.

우리가 의지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심성이 있어

그 심성의 부드러움과, 유쾌함과 두려움이 있어

아무리 보잘것없이 피어나는 꽃이라 할지라도

눈물조차 흘릴수 없도록 깊은 상념을 내게 선사할수 있게 되는 것이라.

 

(영생불사, 마지막 부분)

 

 

 

 

 

 

강물을 보러 나가고 싶은데, 날이 꽁꽁 얼어서 나갈수가 없어, 마음속의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늘 평안하시길. (협곡을 흐를때조차).

 

2010년 1월 3일 (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http://americanart.textcube.com/237  토마스 윌머 듀잉의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백악관 피아노' 장식작품과 다른 그림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사진 상태가 안좋아서 안타까웠죠. 옛날에 똑딱이 카메라로 대충 찍었던거라서.

 

그래서 일전에 (2009년 12월 29일) 미술관에 갔을때, 이 피아노실에 있는 '모든' 듀잉의 작품을 새로 사진기에 담아왔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제 독자들께, 아름다운 피아노와 선녀같이 평화로워 보이는 듀잉의 여신들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건, 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시길.  건강하시길. 

 

 

 

 

 

 

 

 

 

 

 

 

 

 

 

 

 

 

 

 

 

 

 

제목을 차차 달아 놓을게요.  우리가 듀잉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을 회상하시면서 감상하시면 좋을것 같죠. :)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들과 세계 정상급 국빈들을 위해 연주하던 피아노를 우리도 우리 삶에 들여놓고,  비록 가난하고 힘들어도, 마음은 재벌처럼 우아하게, 한번 폼잡고 살다 가는거죠. 뭐 삼시세끼 먹기는 재벌이나 나나 마찬가지고... 나도 내 한몸 잘 침대가 있고, 끼니 걱정이 없으니, 복되도다 복되도다.

 

 

2010년 1월 1일. 재벌같은 하루의 시작.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2010. 1. 1. 13:26

자화상 (1928)

목탄, 콘테, 연필, 종이

49.1 x 64.3 cm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2009년 12월 29일 촬영

 

 

 

미국 1930년대 지역주의 (Regionalism)의 대표적인 세명의 화가중의 하나인 존 스튜어트 커리 (John Steuart Curry 1897-1946)는 미 중서부 캔자스 주의 부유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부모님들이 대학교육을 마치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정도였으니까, 고학력의 부유한 집안이었음을 짐작해 볼수 있겠습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미술 개인 교습을 받을수 있었고, 시카고 미술학교를 거쳐서, 펜실베니아의 제네바 컬리지에서도 미술 공부를 했습니다. 한때 그는 Boy's Life 를 위시한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한 화가들이 참 많아요. 사실주의 화가들은 대개 일러스트레이션을 생업의 수단으로 거쳐갔을 것으로 짐작 됩니다.)

 

당시의 화가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1926년에 파리로 건너가 일년간 유럽의 미술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는 특히 꾸르베와 도미에, 티티안과 루벤스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루벤스의 경우, 어릴때 그의 집에 루벤스의 그림 복제품이 장식되어 있어 그것을 보고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뉴욕과 커넥티컷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는데, 1932년에는 아내 클라라가 사망합니다.  그 자신 역시 위스컨신 주립대에서 미술 교수로 재직하던 중 48세인 1946년에 심장마비로 요절을 하게 되는데요, 일찌기 부인을 잃고, 요절을 한 화가라서 그런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들이 많지 않군요. (웹에서 그의 작품들을 검색해보면 '아 참 좋다!'라고 감탄할 만한 그림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제가 가능하면 제 눈으로 본 작품만을 이야기하기로 정했기 때문에,...아쉽지만...음...)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미드웨스트의 농촌과 풍습, 그리고 가축들이 소재가 되었거나, 사회성 강한 주제, 반전 의식도 발견 됩니다. 중부에서 벌어진 흑인 학대나 린치에 대한 고발성 강한 작품들도 있고, 당시 중서부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를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의 고향 캔자스나 다른 중서부 지방 사람들은 존 커리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 중서부의 삶의 모습이 어쩐지 자신들을 우스개로 만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지요. 가령, 캔자스에서 흑인 린치하는 것을 그려내면, 뉴욕의 관객들은 그 작품을 보면서 감탄을 하겠지만, 캔자스 사람들은 '우리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타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고 괘씸하게 생각을 하겠지요.  그래서 존 커리는 최후까지도 고향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향 캔자스가 아닌 위스콘신주에서 사망했어요.)

 

아이아스의 이중성

 

 

 

Ajax (1936-37) 아이아스

Oil on Canvas

122.5 x 92 cm

 

Ajax 라는 이 그림은 일견 평화로운 초원의 황소 한마리 그림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자주 지나치곤 했지만, 이 평화로운 그림이 왜 여기 걸려있는지, 왜 이 그림이 박물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제게는 그냥 너무나 평화로워서 개성없고 지루한 그림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늘 '무심코' 지나치다가 하필 이 그림의 작가가 John Stuart Curry 라서 (마침 그의 작품세계를 공부하던 중이라서)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게 되었지요.  (모르면 봐도 모릅니다. 관심이 생겨서 들여다보면 뭔가 보이기 시작하는거죠).

 

그런데 그림 옆에 붙어있는 작품 설명을 보니, 이 그림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지루한 그런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그림에 달린 '제목'과  그림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제목 Ajaz (아이아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입니다. 트로이와 전쟁을 벌이던 그리스 장군중에 아이아스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스가 사망하자 그의 유품을 사이에 두고 오딧세우스와 아이아스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결국 아킬레스의 유품은 오딧세우스에게 넘어가고, 아이아스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미쳐버려서 들판의 양떼를 오딧세우스와 그 부하들이라고 생각하고 몰살을 시켜버립니다.  그리고는 정신이 돌아온후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자살을 하고 말지요. 

 

그러면 '아이아스' 이야기와 이 한가로운 초원의 황소 한마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이 소가 아이아스란 말인가요?  그래서 뭐?  궁금증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요, 미술관 복도에 있는 이 그림 바로 옆에 아래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Dust Bowl (흙먼지 폭풍)입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경제적인 난국을 겪고 있었는데, 미국의 중부에서는 엎친데 겹친 격으로 평원지대를 뒤엎는 흙먼지 바람과 한파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날이 건조해지니 흙먼지가 폭풍처럼 평원을 뒤덮고, 날은 더욱 가물어지고. 푸르던 평야가 하루 아침에 흙먼지로 뒤덮이며 사막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1930년대에 이런 현상이 여러차례 중서부를 강타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Dust Bowl 1933

Oil on Canvas

Alexandere Hogue

 

 

바로 이렇게 피폐해진 중서부 평야지대의 삶의 모습을 이 한장의 그림이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경제도 안좋고, 흙먼지 바람으로 농작물은 말라죽고, 죽어라죽어라 하는거죠. 미국인들에게 1930년대는 도시나 농촌이나 참혹했던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저위의 '아이아스' 그림의 의미를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아이아스는 (1936-7)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중서부 평원지대가 '사막'처럼 변화하는 것을 지켜본 화가는 신화속의 미친영웅 '아이아스'를 떠올렸나봅니다. 아이아스는 영웅이기도 했고, 미쳐 날뛰며 자기편 영웅들을 죽이려다가 가축들을 몰살시킨 인물입니다.  화가에게 미드웨스트의 평원은 평화롭고 순한 한마리 황소처럼 사람들에게 곡물과 풍요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그 소가 미쳐날뛰면 주위 모든이들을 해치게 됩니다. 흙먼지로 뒤덮여 사막처럼 변해버린 평원은 미쳐 날뛰는 아이아스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러면 아이아스가 미쳐날뛰지 않게 사전에 달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작가는 아이아스의 비유를 들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여기서 저는 또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똑같은 그림이 1930년대가 아닌 2000년대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는...저 순한 소를 화나게 하면 안되지요. 소가 평화롭게 살수 있도록 하는것이 우리 자신을 돕는 길일 것입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고요, 각자 자신의 해답을 찾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런데 토마스 하트 벤튼의 페이지에서 (http://americanart.textcube.com/252/trackback/ ) 아킬로스와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벤튼의 벽화를 소개한 바 있지요.  중부에 30년대에 강타한 흙먼지와 한발 사태를 보면 미조리강의 개발의 역사적 의미를 짐작할수 있게 됩니다. 반복적인 흙먼지와 가뭄으로 황폐해져가는 평원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1937년에 그려진 커리의 Ajax에 등장했던 소가, 십년후 벤튼의 그림에서 '강의신'으로 새롭게 그려진것 같기도 하지요?  :)  음, 이 그림들이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군요... 

 

 

 

 

존 브라운은 광인인가 의인인가?

 

 

아래 그림은 원화가 아니고요, 제가 하퍼스 페리에 갔을때 존 브라운 기념관 입구에 설치된 실제 벽화 크기의 카피본을 사진 촬영한 것입니다. 제목은 The Tragic Prelude (비극적 서곡).  이 그림의 원본은 캔자스 Statehouse의 벽화라고 합니다. 벽화와 똑같은 크기의 카피본이 존 브라운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고요.

 

 

존 브라운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노예해방을 부르짖으며 정부군과 전쟁을 벌였던 사나이 입니다. 백인 입니다. 그는 종교적 신념에 불타서 흑인 노예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것인데요, 결국 하퍼스 페리에서 붙잡혀 사형에 처해지고 맙니다. 당시의 지식인들, 가령 콩코드 출신의 Emerson 이나 Thoreau 와 같은 초절주의 철학자들은 존 브라운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는데요, 미국 역사에서 그에대한 평가는 '광인'과 '의인'사이에서 갈팡질팡 합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노예해방을 위해 노력한 것은 가상하나, 그 방법이 적법하지 않았으므로 마냥 영웅으로 치켜주기가 위험한 것이지요.  이건 뭐 무장봉기, 폭동과도 같았으므로 이를 '영웅시'할 경우 국가의 법체계가 위협을 받게 되겠지요.  존 브라운에 대해서 제가 상세히 공부하지 않았으므로 더이상 논할경우 제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존 브라운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접겠습니다.

 

존 브라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떠하건, 존 스튜어트 커리에게 존 브라운은 영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손에 성경을, 한손에 장총을 들고 서서 호령하는 존 브라운의 모습은 마치 제가 어릴때 본 영화 '십계'속의 '모세' 할아버지를 연상케 합니다. :)  존 브라운이 혁명적으로 노예해방을 진두지휘하며 돌아다닌 구역이 캔자스, 미소리, 버지니아주였던 고로 캔자스주에서 그를 기념하는 벽화 작업을 했던 모양입니다.

 

 

 

The Tragic Prelude (1938-1940)

Kansas Statehouse 벽화

실제 벽화는 아니고,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하퍼스 페리에 있는 존 브라운 기념관 벽에 있던 복제 사진을 촬영 (2009년 11월 15일)

참고: http://americanart.textcube.com/176

 

 

 

 

 

 

 

 

반전인가 전쟁 옹호인가?

 

 

 

Our Good Earth (1942) 우리들의 위대한 대지

Water Color on Illustration Board

27.9 x 34 cm

2009년 12월 2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2차 대전 당시 '전쟁기금 모금'을 위한 홍보용 그림을 주문 받았을때 우리들의 커리가 그린 전쟁 홍보를 위한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한 농부가 밀밭 가운데에 우뚝 서있고, 한손에는 밀대를 한웅큼 쥐고 있고, 그의 곁에 소녀와 소년이 있습니다. 그의 왼손이 소년의 오른손을 꼭 쥐고 있군요.  농사를 짓는 일도 전쟁을 돕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메시지라고 하는데요.  제가 스미소니안에서 발견한 이 작은 그림은 "Our Good Earth - Keep it Ours (우리들의 위대한 대지 - 우리의 땅을 지키자!)" 이런 선전문구를 새긴 포스터의 밑그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그림이 전쟁 지지를 위한 그림이었는지,  우리가 정말 해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라 '농사짓는일'이라는 메시지인지 헛갈리는 구석도 있습니다. 왜 제가 헛갈려하는가하면 여러 화집에서 발견한 또다른 그림 때문인데요.

 

Parade to War (1938)

 

미술사책을 들여다보면 존 스튜어트 커리와 관련된 장에서 주로 소개 되는 작품이 이 그림 입니다. 출전 행진 (Parade to War). 저는 실재 그림을 본 바 없고, 화집에서 본 것이 전부인데요. 전쟁터로 나가기 위한 군사들의 행진 장면입니다. 구경하는 아이들은 신이나서 달음질치는데, 흰 테이프들의휘날리는 가운데 줄을 서서 행진하는 군인들은 모두 유령같아 보입니다. 해골들이 옷을 입고 행진하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림 왼편의 어느 여인이 기도하듯 입을 가린채 걸어가는데, 마치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절망하는 어머니 같습니다.  이 그림은 유령의 도시 풍경 같기도 합니다. 1938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데, 이 당시에 한국에서도 식민지땅의 조선인들이 조선의 청년들과 장년 남성들이 학도병으로, 징용으로 이렇게 끌려가 죽음을 맞이 했을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여성들도 정신대로 끌려갔지요.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반전' 그림입니다. 1938년에 이런 반전 메시지가 분명한 그림을 그린 존 커리가, 1942년에 전쟁 홍보용 그림을 위탁 받았을때, 그려 낸 그림이 '우리들의 위대한 대지' 그림입니다. 존 커리가 정말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전쟁 홍보였을까요?  ...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존 스튜어트 커리는

1. 미드웨스트 농촌 농민, 서민의 풍경을 그렸으며

2.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렸고

3. 공공벽화작업도 활발히 하였으며

4. 신화와 역사의 만남을 시도했고

5. 일러스트레이션, 벽화, 일반 회화등 다양한 장르의 활동을 했음을 짐작할만하며

6. 반전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존 스튜어트 커리, 이 화가는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인 작품들을 많이 갖고 있는데요, 제가 직접 눈으로 본 작품이 많지 않아 대략 이쯤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상으로 미국의 지역주의 3대 화가로 알려진 Grant Wood, Thomas Hart Benton 그리고 John Steuart Curry 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음엔 어디로 가나...과거로 갈까요 아니면 미래로 갈까요... 랄랄~

 

 

 

2009년 12월 31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2010. 1. 1. 02:14

미국의 1930년대 지역주의 (Regionalism) 3대 화가중 한명으로 알려진 토마스 하트 벤튼 (Thomas Hart Benton 1889-1971)은  Grant Wood 와 John Curry 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미드웨스트 (미조리 주)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하원의원, 숙부가 상원의원이었다니 유복한 정치인 집안의 귀공자였던 것 같습니다.  1907년 시카고 미술학교 (Chicago Institute of Art)에서 미술 수업을 한 후에 1909년 프랑스로 건너가 줄리엥 아카데미에서 미술 수업을 계속합니다.  미술 수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소속으로 근무를 하고 1920년에 뉴욕으로 돌아가 미술 활동을 펼치면서, 당시에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현대 추상미술을 등진채 사실주의 미술을 펼쳐 나갑니다.  설에 의하면 초기에 그는 추상미술 작업을 했지만, 도통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후에 그는 고향인 미조리주로 돌아가 신화와 사실주의가 만나는 미술 작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자화상 (1927)

 

이 자화상은 벤튼이 아내와 자신을 직접 그린것입니다. 매사추세츠주의 South Beach 에 있는 작은 섬이었는데 이 한적한 곳에서 미술작업을 하면서 그가 잠시 관심을 보였던 현대 추상예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사실주의적 작업으로 완전히 옮겨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이 단순하면서 그만큼 '힘'이 느껴지지요. (남자가 좀,뭐랄까, 마초적인 인상을 주지만...뭐...내 남자도 아닌데, 멋대로 살게 내버려두지요..귀여운 마초랄까...) 그가 뉴욕을 기반으로 20여년간 활동하는 동안 그는 매년 여름마다 이 Matha's Vineyard 라는 휴양지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화상 (아내 리타와 함께) 1922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은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 박물관과 함께 있습니다.

동일한 장소의 일부를 국립미술관으로 일부를 초상화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Chillmark and Matha's Vineyard (마사의포도원섬과 칠마크 마을)

 

 

1920년부터 1975년 그가 사망할때까지, 벤튼과 그의 아내는 여름이면 매사추세츠 남쪽의 Matha's Vineyard (마사의 포도원)이라는 이름의 섬에 있는 Chillmark (칠마크) 마을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아래의 그림 두장은 바로 그곳의 사람들과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People of Chilmark (Figure Composition) 칠마크 사람들 (인물구성) 192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Matha's Vineyard (마사의 포도원) c.1925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디씨의 코코란 갤러리에서 촬영

 

 

File:Martha's Vineyard map.png

http://en.wikipedia.org/wiki/File:Martha%27s_Vineyard_map.png

 

 

 

농장 길

 

 

그는 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 와 Kansas City Art Institute 등지에서 미술 교육을 하였습니다. 그가 키운 제자중에 훗날 스승을 능가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흩뿌리기'의 대가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입니다.  잭슨 폴락의 초기 작품중에 토마스 밴튼의 그림과 분위기가 비슷한 것이 발견됩니다.  토마스 벤튼이 유럽에서 현대 추상미술 사조의 영향을 입고 와서 추상화 작업을 하다가 집어치고 사실주의 작품들로 그의 그림을 완성시켰다면,  잭슨 폴락은 그러한 '스승'의 영향아래 사실주의적 미술로 시작을 하여 '어마어마하고 혼미하기까지 한' 자신만의 세상을 완성시킨후 지구를 떠났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을 돌고 도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늘아래 새로운것은 없지만, 또한, 하늘아래 반복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늘 기존의 무엇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죽고, 그 바탕위에 또 새로운것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Plantation Road  (농장 길) 1944-45

Oil and Tempera on Canvas mounted on Plywood

2009년 11월 6일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잭슨 폴락의 그림

 

 

밀밭: 황금의 이상사회

 

 

 

Wheat (밀) 1967

53.3 x 50.8 cm (가로세로)

Oil on Wood

 

 

이 '밀밭'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장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아래의 사진에서) 폴락의 대형 벽화가 걸려있는 전시장, 그 벽화 왼편 으로 구석에 아주 자그마한 그림 하나가 걸려있지요. 그러니까 벽화와 창문 사이에 걸려있는 껌딱지 같이 작은 그림이요. 그것이 바로 이 '밀밭' 그림입니다. 그가 1971년에 사망했으니까, 그가 78세에 그린, 거의 말기의 작품이라고 할만한데요.  한세상 전투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취하여 공공미술적 벽화 작업도 하고, 뚜렷한 자기 주관을 펼치면서 살았던, 지역주의 화가의 기수로 알려진 이 화가가 '노년'이 되어, 78세의 나이에 그린 그림임을 감안하고 보시면 그림에서 뭔가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림 하단에 보시면, (시골에서 농사지은분들 이 그림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특히, 벼 베고 그러신 분들), 낫으로 베어낸 밀의 밑둥이 고르게 남아있습니다. 기계로 베었는지 높이가 일정합니다. 사람이 낫으로 베면 밑둥 높이가 들쭉날쭉 하지요. 그리고 그 밑둥 사이로 밀싹이 새로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한 세대가 가면 또 한세대가 솟아 나오지요.

 

밀대를 보겠습니다. 밀은 한웅큼씩 무리를 지어 고르게 자라났습니다. 간혹 부러져 기울어진 밀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조금씩 무리를 지어서 비슷한 크기로 자라고 비슷하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밀대 너머로 끝없이 반복되는 밀의 고랑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매우 사실적으로,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면서도, 사실 너머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항웅큼씩 모여서, 서로 의자하여 서 있는 밀들은 그 자체로 인간 사회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크거나 작거나간에 서로 무리를 지어서 살아갑니다. 우리 가족 이웃에 이웃의 가족이 있고, 우리 마을 이웃에 이웃마을이 있으며, 우리학교 이웃에 이웃학교가 있고, 우리 나라 이웃에 이웃나라가 있습니다.  무리무리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서 있지요. 키도 비슷하고 생육조건도 비슷하고. 이것이 벤튼이 이상화했던 사회주의의 풍경이었을것 같습니다. 서로 평등하게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인간사회. 한세대가 사라지면 새로운 세대가 다시 희망처럼 자라나는 사회.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인간의 역사. 혹은 생명의 역사. 노년의 벤튼이 꿈꾼 인간 사회가 이런 황금 밀밭의 풍경은 아니었을지...

 

이 그림을 보자니, 엘리노어 파전의 '보리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납니다. 우리 나라에는 '보리와 임금님'으로 번역 소개가 되었지만, 사실 원작에서는 밀밭 이었지요... (http://www.gulnara.net/main.php?pcd=6.7.&_vpg=view&uid=95) 제가 참 좋아하던 동화였는데, 지금도 이 동화를 찾아서 읽으면 공연히 눈물이 납니다.  어릴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사람을 잘 안변합니다. 왜 눈물이 나냐하면, 너무 아름다워서. 밀밭은, 여우가 어린왕자와 함께 있을때도 나오지요. 앞으로 황금물결치는 밀밭을 보면 네 머리카락이 생각날거라고 여우가 종알거지요.  가수 문정선이 노래한 옛날 노래가 있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이야기가 걷잡을수 없이 딴길로 새고 있습니다...)

 

한세상 씩씩하고 전투적으로 살아낸 노 화가가 그린 말기의 작품이 너무나도 절제되어있고 사색적이라서, 이것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다가오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황금 밀밭같이 풍요롭고 평등한, 인간의 세상. 저도 꿈꿔봅니다. 밀알은 각자 개성껏, 그러나 서로 의자하여, 미래의 싹을 간직한채, 영원히 살아남을겁니다. 하나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면, 썩으면... 아아 성서적 은유인지도 모르겠군요.

 

이상으로 벤튼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존 커리를 기대해주시길.

 

2009년 12월 31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2010. 1. 1. 00:50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 2층 전시실. Thomas Hart Benton (1889-1971)의 벽화가 걸려 있는 곳입니다 (오른쪽 벽).  2009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2010년을 시작하는 이 시간을 헤라클레스와 아킬로스의 신화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도 좋을 것 같아서 선정해 봤습니다.  길이가 7미터 가까이 되고 그림의 높이는 대략 160 센티 (여성들 보통 키 정도 되겠군요) 되는 그림입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건강하고 힘찬 벽화인데요.

 

이 그림의 제목은 '헤라클레스'와 '애킬로스'입니다. 캔자스 시티의 한 백화점을 장식한 벽화였다고 합니다.

 

 

 

Archelous and Hercules  (1947)

671x159.6 cm (길이 6.7 미터x 높이 1.6 미터)

Tempera and Oil on Canvas mounted on Plywood.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그림의 중심이 되는 것은 커다란 황소의 뿔을 쥐려고 대적하는 사나이. 황소는 정확히 적을 노려보고 있는데 사나이는 등을 보이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으나, 그의 팔과 등의 근육이 이 남자의 표정을 읽게 해 줍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천하 장사로 알려져 있지요. 아킬로스는 '강'의 신이라고 합니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강의신 아에킬로스가 헤라클레스와 싸우던 장면을 이야기 해 주는데요, 헤라클레스와 씨름하다가 뱀으로 변하기도 하고, 황소로 변하기도 했는데 도무지 헤라클레스를 이기지 못했다고 술회 합니다. 헤라클레스가 '강의 신'과 대적하여 이겼다는 신화는 '자연'과 인간이 대적하여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해주지요 (참고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영웅입니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황소로 변한 강의 신 아킬로스의 한쪽 뿔을 뽑아서 상대를 제압했다고 합니다. 그 뿔은 서양 문화에서 '풍요'의 상징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있지만, 쇠뿔 자체는 큰 상징적 의미가 없지요. 그리스 신화에서 소로 둔갑한 강의 신의 뿔을 뽑아냈다는 말은 강이 제공해주는 풍요를 얻어 냈다는 상징을 갖게 됩니다.)

 

   *  참고로, 영문 표현중에 Take the bull by the horns 가 있지요. 쇠 뿔을  단단히 잡아라. 소와 씨름하려면 소와 정면으로 서서 소의 두 뿔을 단단히 잡아야 하죠. 결국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서양에서도 '소'가 그리스 신화때부터 존재하던 짐승이었으므로 소와 관련된 우화나 속담이 많군요. (영어선생 제버릇 개 못줍니다. 꼭 티를 내죠 ^^)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강의신 아킬로스는 황소이고, 이 황소와 대적하는 사람들 (여러사람이 그 황소를 잡기 위해 그림속에 등장하지요)이 헤라클레스가 되겠는데요, 벤튼은 이 그림으로 무엇을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미조리주에서 공공건설의 일환으로 미주리강 개발 사업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평원지대에 가뭄이 들어 흙먼지가 날리면 농작물들이 말라죽고 땅이 불모지가 되는가하면 반대로 홍수의 피해를 겪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군부대가 동원되어 댐도 만들고 수로도 만들고 둑도 쌓는 등의 강 개발이 사회주의사상을 가졌었고, 공공미술 벽화작업이 활발했던 벤튼에게 영감을 주었던것 같습니다.  신화속에서처럼 인간이 강을  길들여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했겠지요. 

 

 

 

 

 

저 옆에 여성 두명과 소년 하나가 앉아있거나 서 있는 흰 구조물이 보이시지요?  뿔이죠. 쇠뿔.  그 쇠뿔에서 과일과 곡식이 흘러 넘치고 있지요. 강을 잘 운영할때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풍요이지요.  그러고보면 여성이 들고 있는 빨간마후라도 뿔 모양이고요, 소년이 들고 있는 나발도 뿔 모양입니다.  (또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해보니, 여성신체의 여성기관중에 '나팔관'이라는 기관도 있지요. 그 나팔관도 뿔 모양이지요...여성의 돌출된 두개의 유방도 두개의 돌출된 뿔처럼 보입니다. 이쯤되면 세상 만물이 뿔처럼 보인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지요...하하하....)

 

 

 

 

 

소와 씨름하는 사나이들이 있는가하면,  한쪽에서는 수확을 하는 농민, 멀리 농장에서 '영농기계화'의 상징같은 농기계도 보입니다. 강을 잘 다스렸을때 우리에게 다가올 풍요를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러고보면, 사나이가 황소와 씨름하는 것을 중심으로, 그림의 왼편은 '황소와의 씨름'에, 그림의 오른편은 '다가올 풍요'가 그려진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저와 함께 시선을 이동시키는 겁니다.) 여기 그려진 사과를 보십시오. 사과며 다른 과일의 형태가 어떤가요?  사과가 오목볼록거울에 비쳐진듯 꾸불구불 하지요? 구불구불~~ 처음부터 사나이들의 등근육이며 모든것이 구불텅구불텅 구불구불 휘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심지어 사과마저 어디론가 빨려들어갈듯 휘어져 있습니다.  왜 이 그림속의 대상들은 빨려들어갈듯 휘어져 있는것처럼 보일까요?  왜 벤튼은 대상을 이런식으로 휘어지게 그렸을까요?

 

 

 

 

왜 모든것이 휘어져보이나?

 

벤튼은 살아있는 것들이 에너지가 넘쳐서 움직인다고 믿었던 걸까요? 사나이들의 등근육이나 소의 근육처럼 가시적인 '삶의 근육'뿐 아니라, '생의 에너지'가 갖는 움직임을 정체를 파악했던 것일까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근육'을 부여한 것일까요?  아, 마치 숨은그림 찾기 하듯, 뿔처럼 보이는 당근 무더기가 보이는군요.

 

 

 

소의 눈이 보이십니까? Bull's eye 이지요. Bull's eys 라고 하면, '과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소의눈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소 곁에 또 있군요. 나무 둥치의 둥근 나이테도 소의눈을 연상시키고, 남자가 벗어놓은 모자역시 뿔을 닮은 소의 눈처럼 보입니다.

 

그림 전체에 흐르는 휘어짐, 구부러짐은 삶에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대로 휘어저 굽이쳐 흐르는 생명의 상징인 강물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씨름이 있습니다.

 

지난 2009년은 제게는 죽음의 강을 건너듯 아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기쁨도 컸고, 슬픔도 컸으며, 과장된 절망감이나 우울감사이로도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주었습니다. 다가오는 한해동안 제가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줄을 서있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해결하다보면 한 해가 또 지나갈 것 같습니다.  소와 씨름하듯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소와 씨름할 더 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생의 에너지가 남아있는 그 날까지 씨름은 계속 될것입니다. 

 

쇠뿔을 거머쥐고 '돌아온 헤라클레스'처럼 환하게 웃는 그런 날이 올테니까요.

 

복된 2010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p.s. 헤라클레스는 소의 뿔을 하나만 뽑았습니다. 두개 다 뽑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얻고 하나는 양보하는 것이지요. 서로 화합하는 방법입니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에서 뿔을 뽑힌 강의신 아에킬로스는 헤라클레스를 원망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힘센 영웅인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은 서로 반목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참고: http://classiclit.about.com/library/bl-etexts/tbulfinch/bl-tbulfinch-age-23-achelous.htm  불핀치의 신화중 아켈로스와 헤라클레스

 

 

2009년 12월 31일 RedFox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 촬영

 

 

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12. 30. 08:19

 

Smithsonian Q & A: American Art and Artists: The Ultimate Question & Answer Book

 

 

 

오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서점에서 발견한 책. 

 

살펴보니 미국미술을 '시기'별로 중요사항을 요약 정리를 해놓아서, 내가 자료를 정비하거나 내용을 정리할때 참고하기에 좋아 보였다. (때로는 아주 간략하게 씌어진 안내서가 지도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내가 여태까지 정리 해 온 내용과 비교해보기도 했는데, 내가 꽤 심도있게 내용 정리를 해 놓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소 주제별로 정리가 되어있어서, 자동차에 놓고 오가면서 어딘가에서 멀거니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야 할때, 혹은 변소에 놓아두었다가 그냥 멀거니 앉아있는 시간에, 애매한 자투리 시간에 읽기에 알맞다.

 

아마존에서 할인해서 파는데, 미술관 매장에서 정가 다 주고 샀지만, 전혀 억울하지 않다. 착한 책이다.

 

2009년 12월 29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