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에서 나고 자란 화가 Grant Wood (1891-1942)는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토마스 벤튼, 존 커리와 더불어 지역주의의 중심적인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22세부터 25세까지 (1913-1916)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미술 학교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야간 미술 수업을 받았는데, 그 이전까지는 목각, 금속, 보석 공예등 각종 공예시술을 연마하였습니다. 미술 수업을 마친후 1920년대에 그는 파리, 이탈리아, 독일등 유럽을 네차례 여행하였습니다. 그는 특히나 뮌헨에서 당시 유행하던 신 사실주의적 경향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또한 고대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들을 당대의 세팅으로 재 해석하는 풍속화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터전인 아이오와로 돌아온 후에 그는 그의 그림속에 이를 펼치게 됩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당시에 미국의 주류 화가들이 뉴욕에 모여들어 활동을 하거나 혹은 유럽으로 미술 수업을 하러 떠났다가 유럽에 정착을 하거나, 혹은 유럽에서 돌아와 뉴욕으로 활동지를 옮겼던데 비해서, 그랜트 우드는 그의 터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한 유럽에서 서서히 활발해져가던 추상미술 사조를 거부하고 사실주의적 기법을 고집했다는 것입니다.
The Midnight Ride of Paul Revere (폴 레버의 한밤의 질주) 1931
76.2 x 101.6 cm
Oil on Masonite
2008년 7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촬영 (똑딱이 시절의 사진 -.-)
우드가 미술가로서 처음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었던 계기가 된 것은 1930년에 그의 American Gothic 이 시카고 미술학교 주최 경쟁에서 메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학교의 소장품으로 팔려가는 영예까지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1931년에 "The Ride of Paul Revere (폴 레버의 한밤의 질주)"를 완성시킵니다. 폴 레버는 미국 독립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인데요, 1775년 영국군이 공격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밤새 말을 달렸다고 합니다.
둥글게 휘어지고 달빛이 비치는듯 (비현실적으로) 환한 길위를, 교회 앞을, 말을 탄 사람이 가고 있지요. 말을 탄 사람의 자세를 보면 그는 오른쪽에서 달려와 왼쪽을 향해 가고 있는듯 합니다. 화면에는 그가 여태까지 달려왔던 그 먼길이 구불구불 보이지요. 그리고 화면 왼쪽으로도 역시 구불구불한, 그가 가야할 먼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역시나 (앞서의 페이지에서 풍경화를 이야기 할때 언급했던대로) 언덕이나 나무는 둥글둥글하고, 사람이 지은 예배당이나 집들은 각이 지고 딱딱해 보입니다. 우리는 마치 레고로 마을 하나를 만들어서 바닥에 놓고 위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으로 이 풍경화를 보게 됩니다. 역시나 우리는 마치 전능한 관찰자처럼 공중 어딘가에서 이 풍경을 보는 입장이 되지요.
그런데요, 여태까지 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을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자니, 그랜트 우드가 즐겨 그렸던 들판 풍경과 패턴이 일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랜트 우드의 들판을 보면 아주 작게 보이는 사람이 끝도 안보이는 평원을 느릿느릿 갈아엎는 장면이나 이와 유사한 장면이 종종 등장 합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과, 그리고 앞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시간. 여태까지 흘린 땀과, 앞으로 흘려야 할 땀. "저걸 언제나 다 매나?" 이런 한숨이 나올법도 한데, 그랜트 우드의 그림에서는 이런 '한숨'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우리는 말을 타고 달리는 사나이의 얼굴도 분간할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가 밤새 잘 달려낼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그의 앞에 펼쳐져있는 저 구불구불한 길을 보십시오. 저 둥글게 이어지는 길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위험'이나 '죽음'따위를 근심할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그의 앞에 '죽음'이 기다린다 하여도 기수는 태평하게, 나직하게, 느릿느릿 노래를 부르며 그 죽음을 맞이 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무엇에서 그런 느낌을 받나요? 구불구불한 저 길에서요. 구불구불 흐르는 개울과 구불구불한 저 언덕이 그런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길을 환하게 비쳐주는 것은 하늘의 달일지도 모르고요, 혹은 그의 안녕을 바라는, 그를 응원하는 우리들의 시선일지도 모르고요, 그랜트 우드 자신이 그의 영웅 폴 레버에게 보내는 빛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이 그림은 사실주의적이면서도 꽤나 몽환적이죠. 사실주의와 '신화적 신비'가 만나면 이런 그림이 탄생하겠지요.
아래 작품은 그랜트 우드가 작업한 Sinclair Lewis 의 Main Street 라는 작품의 일러스트레이션 입니다. 마을 공동 우물인 펌프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그 펌프로 물을 뜨러 오간 사람들의 발자욱이 만든 길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가만보면 눈위에 난 발자국도 있는데요. 어린아이의 발자욱일까요 아니면 강아지의 발자욱일까요? 이 장면을 보면 옛날에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때, 네가구가 살던 무허가 판잣집의 가장 작은 방에서 우리집 여섯식구가 살았는데, 저녁이 되면 그 집에 살던 네가구의 주부들이 그 손바닥만한 마당의 가운데에 있던 수돗가에 나와서 서로 코를 맞대고 쌀을 씻고, 채소를 씻고 그랬어요. 겨울에는 그 수돗가가 수챗물로 꽝꽝 얼었는데, 그 꽝꽝언 얼음판 위를 지나 '변소'에 가야 했지요. 어린 마음에 변소도 무섭고, 변소에 가는 길도 무섭고, 변소에서 나와서 미끄러 떨어질까봐 그것도 무서웠고, 여러모로 심난했었지요.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하필 그 시절이 떠오르고 마는군요.
Village Slums 1937
Charcoal, Pencil and Chalk on Paperboard (종이판에 목탄, 연필, 분필)
2009년9월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설에 의하면 그랜트 우드는 이 매이슨 교회에 다녔다고도 하고, 동성애자였다고 소개하는 미술사책도 있군요. 이 메이슨은 미국에서는 꽤나 애국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지요. 벤자민 프랭클린도 소속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뭐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이 조직과 관계가 있다는 '설'도 돌고 그러지요. 저는 이 메이슨 단체의 정체성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전에 살던 곳 가까이에도 온통 하얗게 칠해진 메이슨 단체 건물이 있었는데, 도무지 뭘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메이슨 관련, 소설같은 황당한 이야기들도 돌아다니곤 하지요. (프리메이슨은, 제가 전에도 자료를 찾아보곤 했는데, 도대체 정체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좀더 공부를 해서 내용을 보충하기로 하지요. 누가 잘 아시면 가르쳐주세요. ^^). 아래의 그림은 그 메이슨 교회에 모여서 사중창을 부르는 남자들 이군요.
Shrine Quartet 1939
Lithograph
2009년 9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아, 그랜트 우드가 왜 농부나 들판을 그릴때, 조망하는 듯한, 내려다보는 듯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그림을 그렸을까...지금 생각해보니, 농업에 대한 그의 경험이 '피상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랜트 우드는 분명 농부의 아들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열살에 농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이오와의 Cedar Rapids 라는 곳으로 이주를 하는데 그때부터 그랜트 우드는 농업하고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대요. 그러니까 어린시절 열살까지 시골에서 성장한 것이 전부이고, 그가 실제로 농사를 지은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 졸업할때까지 밭에서 일하고,뭐 허드레 농사일을 해봐서 아는데요. 정말 농사일을 한 사람이 농사장면을 그릴때는 그것이 꽤 현실적이지요. (아, 우리 엄마의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보고 싶군요.) 정말 농사를 생활화한 사람이 농사 그림을 그릴때는 주변 환경을 훨씬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풀잎, 흙, 풍경. 호미들고 김을 매다 올려다보는 하늘, 마을. 이런 시각으로 화면이 채워지지요. 그런데, 농사를 직접 짓지 않고, 남이 농사짓는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은 그렇게 '구경꾼'의 입장에서 농사 풍경을 그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랜트 우드의 풍경은 그래서 대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농사를 짓지 않는 그의 입장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을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미술 비평에서 이런 논의까지는 아직 안 나왔겠죠? 제가 짧게라도 써서 발표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요? 헤헤헤.)
평생 그의 미술 활동의 본거지인 아이오와를 지켰던 그랜트 우드는 그의 집에서 간암으로 51세의 젊은 나이에 이승을 떠납니다. 영원속으로 간 것이지요. 그리고 그의 '우화'와도 같은 '신화'와도 같은 그림들이 우리곁에 남아있습니다.
이상으로 미국의 지역주의의 대표라 할만한 그랜트 우드 페이지를 마치겠습니다.
redfox 2009 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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