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지난 금요일부터 내일까지 4일간의 연휴. 멀리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근처 공원을 찾는다. 나도 작년에는 메릴랜드 오션시티와 버지니아비치에 갔었다. 버지니아 비치에서 독립기념절 불꽃놀이를 보았다. 불꽃놀이 직후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빗속을 깔깔대고 달렸었다.
가족단위로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타거나. 모두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표정. 아침에 비가 좀 뿌렸고 날이 흐려서 야외에서 놀기에 아주 좋은 날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Black-eyed Susan (검은 눈동자의 수잔). 메릴랜드주의 꽃이 이 꽃이다. 미국에서는 들꽃으로 아무데서나 무리지어 피어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시차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제 몸을 고되게 놀렸건만, 새벽 네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깨었다. 시차 문제가 아니라, 그냥 평소의 나의 잠의 양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할머니처럼 새벽 네시 혹은 그 전에 잠에서 깰때가 많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 한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찍 잠에서 깬다는 것. )
뭘할까? 아주 잠시 생각해보다가, 뭔가 꾸물대다가, 문밖 고양이 타워에서 나를 반기는 고양이와 인사를 나누고 집 뒤 숲으로 갔다. 새벽 네시 반. 하늘엔 내 눈썹같이 가느다란 그믐달이 걸려있고, 사방은 어두웠다. 밤에 숲길을 걸을때는, '길'이 희게 빛난다. 밤길 걷는 사람만 알것이다.
공원 입구에서 숲으로 걸어들어갈때, 내 심장은 무서운 '귀신영화'를 볼 때처럼 두렵다고 외치며 쿵쾅댔다. 사방에 불빛도 인기척도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숲길을 혼자 걸어 들어가는 일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어둠에 대한 그냥 원초적인 두려움, 아마 그런것일게다. 내가 자주 다녀서 눈감고도 다닐수 있다고 믿었던 아주 아주 익숙한 길. 그 익숙한 길이 어둠속에선 낯설다. 아니 길 자체가 잘 안보인다. 반딧불이 전등처럼 반짝일뿐이다. 반딧불이 내 발길을 인도하듯 앞서 날며 깜빡댔고, 새들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고요하였으며, 나뭇가지만 이따금 수런거리를 소리를 냈다. 발끝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혼자 걸을 때 -- 나 혼자여서 무서웠을때 내가 이유없는 이 공포를 극복한 방법은, 참 너무나도 간단하다. 나의 기도문을 소리내어 외는 것이다. 어둠과 정적속에 나 혼자 걸을때, 속삭이는 내 기도문은 소리질러 외쳐대는 함성처럼 그렇게 크게 들렸다.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이 잘 안보이고,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잘 모르겠을때,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면, 깜깜한 밤길을 혼자서 걸으며 기도를 하면 된다. 그러면 그가 나와 함께 계시다는걸 발견하기가 용이해진다. 깜깜한 어둠속에 오직 그와 나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하하. 사람은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숲으로 가야 할거다 아마.
위의 달 사진은 다섯시에 찍은 것이다. 주위가 밝아지고, 더이상 어둠의 공포가 나를 괴롭히지 않을 무렵. 어둠의 공포가 사라지는 만큼 내 손을 잡아주시던 하느님의 온기도 희미해진다.
위의 달은 다섯시 반.
여섯시 자귀화.
일곱시 산딸기. 목마르고 배고픈 내 눈에 가들 들어온 산딸기의 축복. 이것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해 보고 싶으나 여태 해보지 못한 것들중에 한가지는 밤새워서 숲길을 걷는 것이다. 나는 숲속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그 달이 지고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을 지켜보며 내쳐 걸어보고 싶다는 환상을 품고 있으나 여태 한번도 실천을 한 적은 없다. 왜 못했나? 혼자 그러는게 어쩐지 겁이나서. 그걸 같이 할 사람을 아직 못찾아서. 올 여름에 찬홍이를 꼬셔서 그걸 딱 한번 해보면 어떨까?
장담을 못하겠지만, 나는 또다시 새벽 네시도 되기 전에 잠에서 깬다면 -- 새벽 어두운 숲길을 걸으러 나갈것이다. 어둠속에선 하느님을 더 생생하게 만날수 있다. 그러니까, 어둠이나 고통, 고난을 너무 겁내면 안된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에 나온 얘긴데,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바 없으나 인상적이라서, 아니 그걸 왜 이 페이지에 적는지. 아마도 새 페이지 열기가 귀챦아서, 그러고 싶지 않아서. 단지 기억하기 위해.
이 호박벌은 몸집에 비해서 날개가 아주 작다고 한다. 몸과 날개가 비례가 대충 맞아야 날 수 있는건데, 날개 크기를 보면 도무지 이게 정말 날개인지 악세사리인지 알수 없게 작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그 몸집에 그 날개면 '날기가 어렵다'고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견상 -- "이봐 호박벌, 너는 날수가 없는 존재야. 넌 그날개를 갖고 도저히 날수가 없어요"라고 충고를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호박벌한테 '넌 그 날개 갖고 도저히 못날아. 인생 포기해라' 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호박벌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의 딱한 현실을 모르기때문에, 잘도 날아다니고 있다.
오전 일곱시, 산책을 시작할때 이슬비가 뿌리더니, 숲에서 나온 오전 여덟시 반에는 구름이 걷히고 햇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복된 9월.
행 패
오늘은 새벽 예배 마치고 곧바로 호수로 차를 달려 산책을 했지만, 저녁 나절에 산책 나가야 하는데 몸도 무겁고 날이 어두워져서 혼자 나가기 싫을 때, 이럴때는 찬홍이를 꼬셔서 함께 데리고 나간다. 찬홍이는 나하고 워킹 나가는 것을 '효도' 혹은 '자식으로서 마지못해 하는 의무'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찬홍이에게 워킹을 함께 나가자고 조르는데는 몇가지 난이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1단계: 찬홍이도 뭔가 운동을 하고 싶은데 내가 나가자고 하면 군말 않고 선뜻 따라 나선다.
2단계: 찬홍이는 가기 싫은데, 내가 나가자고 조를때 내가 하는 협박 -- "너 청소 할래, 산책 갈래? 양자택일 해."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찬삐.
3단계: 역시 내가 행패 부릴때 -- "너 나하고 예배당 갈래, 산책 갈래?" 예배당 가는것을 '자식으로서 마지못해 하는 의무'라고 생각하는 찬삐를 구슬리는 방법 (-_-) 억지부리는것 다 알지만 찬삐가 그냥 따라 나서 준다.
4단계: 청소도 다 되어있고, 아침에 예배당도 다녀왔고, 뭐 내가 행패부려봤자 도무지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는 --> 왕눈이를 판다. "아이고 아이고 왕눈아. 우리 왕눈이가 죽으니 엄마가 산책 나갈때 따라 나서는 자식 새끼도 하나 없구나. 아이고, 내가 더 살아서 뭣하겠는가. 우리 왕눈이 따라서 천국 가야지. 왕눈아, 왕눈아, 아이고 아이고. 내가 더 살아서 뭐해" 내가 이러고 곡을 하면 찬삐가 '내가 못살아' 하면서 따라 나선다.
5단계: 이러한 모든 것이 통하지 않을때, 이럴때는 한국의 박선생께 전화를 때린다. "아이고, 자식 새끼 다 소용없네. 이 껌껌한 밤에 내가 산책을 나간다는데 따라 나서는 자식새끼 하나 없네. 내가 못살아 못살아" ---> 이러면 박선생이 "찬홍이 바꿔봐" 해가지고 뭐라뭐라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착하고 귀염둥이 찬삐가 한숨을 푹 내 쉬면서 내 산책에 동행을 한다. 카카카.
아침에 나갈때는 나 혼자 나가고, 오후에는 찬홍이한테 나가자고 행패를 부릴때가 종종 있다.
20분쯤 쉬다가 다시 집을 향해 출발. 9:50에 출발하여 오후 12시 정각에 내 차가 기다리는 공원 입구에 도착. (가는데 2시간, 오는데 2시간 10분 걸렸다.)
새벽기도 다녀와서 조금 쉬다가, 찬밥 남은것 한공기하고 풋고추 된장에 찍어서 먹고. 사과 반쪽, 포도 조금, 커피우유 한팩, 물 한병 싸가지고 집을 나섰다. 사과, 커피우유는 목적지 도착하여 휴식할 때 먹었고, 포도는 남았다. 어쩐지 지치거나 배 고프다는 느낌이 안들었다.
차가 서 있는 공원 근처 숲속에서 발견한 사슴.
여름 사이에 내 체력이 많아 좋아졌음을 확인 했다. 걷는 운동보다 더 좋은 운동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찬삐가 열정의 여름학기를 무사히 잘 마치고 일주일간 방학. 다음주부터 나도 찬홍이도 가을하기 시작. 찬삐의 '고난의 행군'같은 여름학기가 끝났으므로 이제 전투적으로 도시락 쌀 일이 없게 되었다.
방학기간에 엄마하고 새벽예배에 다니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오늘 새벽 '억지로' 따라 나선 찬홍. (기특). 그 대신 억지로 숲길 산책하는 것은 면제 해 주었다.
집에 와서 남들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시각에 마당에서 가열차게 베드민턴 한판 때려주시고, 찬삐는 쉰다고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버크 호수로 향했다. (어제부터 찬삐하고 나는 베드민턴을 시작했다. 전에 치던 가락이 있어서 핑핑 잘 친다.)
스멀스멀~~ 스티븐 킹 원작 단편 '미스트 (안개)'를 영화로 만든 영화 장면같은 흰 안개가 꾸역꾸역 도로를 덮은 가운데 살살 차를 몰아 호수에 도착. '달'같은 '아침 해'를 보았다. 신비에 싸인 호수.
한바퀴 돌고 숲을 나오니 쨍하고 아침 해가 밝았다. 아침 안개는 맑은 날씨를 예고한다. 쨍쨍한 날씨. 부지런한 새벽에만 보여주는 호수의 신비.
* 일용할 양식 * 도시락 특별전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합니다. :-)
* 버크 호숫가를 오랫만에 걸어보니 -- 발이 무척 편하다는 것을 발견. 말랑말랑한것이 카페트 위를 걷는 듯한 편안함. 그러니까, 내가 매일 나가 걸었던 아코팅크 길이 노면이 아주 거칠었다는 뜻이다. 가끔 아스팔트가 덮여 있는 곳도 있지만, 나머지는 뾰족뾰족한 자갈로 덮여 있어 발바닥이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고 신발도 자극을 많이 받고. 그래서 자꾸 발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좋은 것을 향유할때는 좋은 것을 모르는데, 차이가 나는 것을 겪어 봐야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된다. 버크 호숫가 길은 카페트같이 편안한 길이다. 오랫만에 가니 길도 보드랍고, 전망도 좋고, 발을 저절로 굴러가듯 나아가고, 참 좋구나.
숲속길 산책은 그 자체가 꿀같이 기쁜 시간이지만, 특히 달콤한 일들은 주인과 산책 나온 개들이 다가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다소곳한 표정을 지을때. 혹은 저만치서 나를 발견하고 겅중겅중 뛰어와서 막 부비부비 할 때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데 가끔 아주 특별한 개들이 있는데 덩치가 송아지만한 큰 개들 -- 그런 개들이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방법. 막 와서 부비부비 하면서 참을수 없다는 듯이 큰 입을 벌려서 내 손부터 팔뚝까지 앙-앙-앙-앙 질근질근 무는 시늉을 하는것. 개 주인은 기겁을 하는데 정작 개의 입에 내 손과 팔을 맡긴 나는 개와 더불어 희희낙락.
오늘은 커다란 세파드가 내 가슴에 코를 쓱쓱 문지르더니 나를 향해 점프를 하려고 했다. 여기서 점프란, 펄쩍 뛰어오르며 내 가슴을 확 밀듯 하는 것 (개들의 반가움의 표시). 개 주인이 점프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그걸 못하게 하자, 내 손이며 손목이며 팔을 질근 질근 물었다 놨다. 하하. 그런데 개가 순하게 그렇게 질근질근 물어주면 꼭 개가 팔을 주물러 준다는 느낌이 든다. 아주 시원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장차 개를 훈련시켜서 개 이빨로 물어서 해주는 맛사지 이런 영역 개척해보면 어떨까? 난 정말 시원했으니까...
개 주인은 내게 놀라지 않았느냐고 걱정을 하고 -- 나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난 개들이 이렇게 격하게 애정 표시 하는게 좋아."
고양이도 그렇고 개도 그렇고, 짐승들은 아주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듯이 막 물었다 놨다는 반복할 때가 있다. 그냥 이끝으로만 물면서 애정표시를 하는것처럼 보인다. 어미개나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을 다룰때도 이런식으로 물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사랑과 우정의 표시. 그러니까 그 커다란 셰퍼드는 정이 많은 개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서 환하게 열린 공원이 나오는데, 문득 오른편을 돌아보니 거기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저만치 공원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은 테니스에 열중하고 있었고, 나 혼자 길에 우두커니 서서 무지개를 바라봤다. 무지개는 서서히 희미해졌고, 숲 맞은편에서 어느 부부가 다가올 무렵 무지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부부가 가까이 오면 나는 손가락으로 무지개를 가리키며 "무지개를 보세요!" 하고 기쁘게 소리를 치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그들이 다가올 무렵 무지개는 사라진 것이다.
찬홍이에게 전화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노아의 배에 탄 생물들에게 무지개는 희망이고 약속이었다.
그리고나서 우리들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주 좋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 무지개는 희망이고 약속이다, 나와 찬홍이에게도.
여름동안 기도하면서 고민하고 결정한 나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게 주어진 사명은 찬홍이가 저 무지개의 약속을 실현해 내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 뭔가 제안을 하니 찬홍이가 마치 목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성큼 그 제안을 환영한다. 혼자서 고민이 많았구나. 암중 모색중이었구나. 나는 이번 가을에 찬홍이의 좋은 조력자가 되고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엄마는 몰라도 하느님은 다 아시지. 우리 대장님이 오늘 내게 힌트를 주신것이다. 아이고 깜찍하기도 하셔.
몸이 무거운 날. 어느날은 바람에 날듯 발걸음이 가벼운데 오늘은 몸이 천근만근. '나가지 말고 쉴까...' 요런 유혹을 뿌리치고 오늘도 7마일 워킹. (이제 5마일은 성에 안차서 -- 나가면 7마일이다.) 처음에 버지니아로 되 돌아와서 산책하러 나갈때, 버크 레이크 한바퀴 도는 것도 힘들고, 집 뒤 트레일 3마일 걷기도 지루하더니, 매일 집중적으로 걸어주자 몸이 다시 건강을 찾는 것도 같다. 매일 걷는것이 한달 쯤 되었나... 일주일에 네번, 다섯번 이렇게 정하고 걷는것 보다는 '매일 걷는다'가 내 생활에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여름사이에 위염으로 한달 가까이 고생했는데, 이제 씻은듯이 나았다. 몸이 안 좋아서 집중적으로 워킹을 한 것인데, 결과가 좋다. 방학기간이라 수업준비 슬슬 하면서 유유자적 한 것도 있고, 매일 새벽예배 다니고 매일 걸으러 나가니까 영혼에서부터 신체에 이르기까지 평안해 지는 중.
버지니아로 이사 온 후부터는 메릴랜드에 살 때 발발했던 '아토피'가 사라졌다. 습기가 많고 그늘지고 시원한 숲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니 피부가 '가시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같다. 올 봄까지만 해도 햇살 알러지 때문에 긴팔이나 팔토시를 하고 운전을 하고, 목에도 반드시 스카프를 둘러서 햇살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그래야 했다. 안그러면 따갑고 쓰리고. 나는 이런 현상이 내가 슬슬 갱년기로 진입하는 현상이 아닐까 했다. 이렇게 몸이 막 망가지다가 폐경이 오고 그렇게 늙는건가보다, 막연히 이런 짐작을 했다. 그런데, 아토피가 사라지고, 햇살 알러지로 고통을 받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이 모두 그냥 사라졌다. ('문제'는 해결되는게 아니라 그냥 사라지는거다.)
아파트 1층 땅집에 살고 매일 숲그늘에서 흙을 밟고, 매일 예배하고.
반환점에 이르렀을때 하늘이 컴컴해지고 후두둑 후두둑 비. 아치같은 나무들이 비를 가려주므로 시원한 빗속을 가볍게 걸었다. 숲속에 비가 쏟아지면 갑자기 주위 공기가 '파인애플 쥬스'를 엎지른 것 같은 쥬스 냄새로 가득하고, 오이냄새, 수박 냄새, 사과 냄새, 그런 상쾌한 향기가 빗물속에 가득하다. 숲이 비를 맞을 때 퍼지는 숲의 향기.
나는 참 복이 많다.
***
나의 다람쥐들은 요즘도 나와 잘 지내고 있다. 아침에 창가에 와서 빈 먹이통을 들여다보는 다람쥐들. 얼른 견과류 한 줌 들고 나가니 한 놈은 마당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 하듯 서 있고, 한 놈은 나무 위에서 생각에 잠겨 있고.
내가 '다람아! 다람아!' 부르니 마당에서 '어디로 갈까' 하던 놈은 어느 거리까지 겅중겅중 다가와 나를 쳐다본다. 아몬드 한개를 녀석의 발 앞에 던져주니 냉큼 집어서 아주 겸손한 자세로 먹는다. 나무위에 다람쥐도 '다람아, 다람아' 쳐다보며 불러주면 몇걸음 내려와, 지상으로 내려울 자세를 취한다.
밥그릇에 먹이를 주고 "밥먹어!" 외쳐주고 나는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녀석들이 냉큼 와서 '잔치'를 시작한다.
가끔 아침에 찬밥 남은것을 놓아주면, 새들이 와서 잔치를 하고, 빵부스러기 남은것을 놓아주면 야생 고양이도 와서 한입 먹고 간다. 그래서 요즘에는 부엌에서 음식 찌꺼기 정리 할 때,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에 잘 씻어서 모이통에 놓아 준다. 그러면 한나절 사이에 작은 짐승들이 와서 다 먹고 간다. 어제는 호박을 찌면서 속의 호박씨를 긁어 내어 내다 주니, 누가 먹었는지 모르게 다 없어져 있다. 땅집에 사니 작은 짐승들과 교제 할 수 있어 좋다.
두시간 걷고 나니 목이 말라. 근처 한국장에 가서 장을 보는 길에 '노란 수박' 표시가 보이길래 한통 샀다. 노란 수박 빨간 수박. 수박을 두통 사들고 오니 내가 재벌이 된 듯한 풍요로움. 목마른 길에 노란 수박 반을 뚝 잘라서 숟가락으로 퍽!퍽! 마구마구 먹어주다. 이것이 나의 저녁식사. (-_-) 니가 인간이니? 너는 소다. 소.
과일과 작물이 익기에 좋은 계절이다. 나는 이렇게 햇살이 뜨겁고 쾌청한 8월의 하늘이 참 좋다.
여기저기에 매미들이 떨어져있다. 제 수명을 다하고 나무에서 떨어진 아이들. 내가 한국에서 본 매미들은 대개 회색이나 갈색, 짙푸른색 몸이었는데 집 근처에서 발견되는 매미들은 초록색 몸이다. 그것도 신기하다. 참 예뻐요.
아래 지도에 나의 행로를 표기 해 보았다. 지도에서 핫핑크 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내가 한바퀴 도는 곳이다. 지도 상단에 '피켓'과 '50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출발하여 아코팅크 파크 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방식이다. 그것이 왕복 15마일이다. 평소에 왕복 7마일을 걸을 때는 가운데 236 국도가 만나는 지점 직전 까지 갔다가 되돌아 온다.
아코팅크 파크에 다녀오는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아래 지도에 표시된 웨이크 필드 파크. 이곳은 대략 1.5 - 2마일 거리인데, 사슴이나 사람 한명 통과할 숲속의 오솔길이 꼬불꼬불 이어져 있고, 개울이 졸졸 흐른다. 원시림이다. 숲의 정령들이 사는 곳 같다. 이 길은 너무 짧아서 아쉽다. 오솔길 흙은 말랑말랑, 여기저기 폭우에 쓰러진 나무들이 천연 나무 다리를 만들어 준다.
요즘 디씨 시내 여러 미술관에서 다채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나는 도통 미술관 갈 생각을 안 하고 지내고 있다. 미술관 돌고 돌다 보니까, 사람이 만든 미술작품보다 신께서 만든 자연이 더 흥미진진하고 지루하지 않다. 사람이 만든것은 한계가 있다. 자연에는 한계가 없다. 나는 신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자꾸만 자꾸만 숲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