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al Gallery of Art (워싱턴, 국립 미술관)의 미국미술전시장.

2009년 9월 11일 촬영

(사진들을 두번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수 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기가 되면 삶에 대해서 이것저것 사색을 할 기회가 많지요.  우리는 인생을 봄-여름-가을-겨울에 비유 하기도 하는데요.  나는 지금 인생의 어디쯤에 있는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하지요. 옛날 어르신들 말씀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것에는 차례가 있어도, 돌아갈땐 차례가 없대요.  먼저 태어났다고 먼저 죽고, 나중 태어났다고 나중 죽고 그러는게 아니라는거죠. 이 세상에 던져진 이상, 각자 언제 죽을지 우리는 예측할수 없고, 어쩌면 운명 지어진대로 살아나가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미국화가 Thomas Cole (1801-1848)의 걸작중에 워싱턴 디씨의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미국미술 구역에 전시된 The Voyage of Life (인생의 항해길)이라는 연작품이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들어 노년을 맞이하여 돌아갈때까지를 네편의 그림에 담아 놓은 것인데요.

 

각기

 1. The Voyage of Life: Childhood (어린시절)

 2. The Voyage of Life: Youth (청년시절)

 3. The Voyage of Life: Manhood (성년시절)

 4. The Voyage of Life: Old Age (노년기)

 

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네편의 작품을 차례차례 '전체크기'와 '부분화'를  함께 올려보겠습니다.  차례차례 그림을 보시면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림에 사람하나하고 또 다른 존재가 반드시 나옵니다)과 주변 풍경을 살펴보세요.  그러면 저절로 한가지 이야기가 나오게 되겠지요.  어린 꼬마들도 그림을 보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겁니다. 저처럼 중년의 나이가 되거나 저보다 인생을 더 오래 사신 분들이 이 연작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지요.

 

사실 이 연작을 처음 본것은 2005년에 워싱턴을 처음 방문했을때였는데요.  아 벌써 그후로 5년이 더 흐른것이군요.  국립미술관에 갈때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늘 비슷한, 그러나 양상이 조금 다른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아 5년전에 처음 이 작품을 발견하고는 - 국악인 김영임씨의 '회심곡'을 틀어놓으면 잘 어울리겠다 생각을 했었지요.  회심곡....  (서양판 회심곡이지요뭐...)

 

토마스 콜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요.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차차 하기로 하고요. 지금은 그냥, 그림들을 즐기시지요.... 할얘기가 아주 많은것도 같고, 뭐 따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것도 같고요.

 

 

 

 

어린시절

 

 

 

왼편, 동굴과 같은 어두운 곳으로부터 금빛 찬란한 배 한척이 나오고, 어린 아기가 타고 있지요. 아기의 뒷편에 천사같은 존재가 서서 배를 인도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강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고요.  먼 하늘은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은 이렇게 느릿하고 명랑하게 흐르는 시간과, 신비감으로 가득차 있었지요.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흘러갔어요. 제가 기억하는 인생 최초의 '먼 모험 여행'은 다섯살때, 이웃집의 나보다 한살 더 많았던 사내아이와 어른 걸음으로 20분쯤 가면 닿게 되는, 동네 초등학교까지의 길이었습니다.  그 학교에 나보다 대여섯살 많았던 고모들이 다니고 있었는데,  아침메 밥먹고나서 할일이 없고 심심했던 저는 이웃집 유순이와 함께 모의를 한거죠.

 

우리도 학교에 가보자. 유순아 너 학교가는길 알어?

응 알어. (유순이는 나보다 한살이나 더 많았고, 세상에 대해서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요)

학교에 가서 고모를 만나자.

그러자.

 

유순이의 부모님은 유순이가 어딜 돌아다니건 걱정을 하지 않았고 (유순이는 씩씩하고 똑똑하니까),  나의 부모님은 멀리 서울에 있었던거죠. 아무도 내가 어딜 돌아다니건 신경쓰지 않았던거고, 나는 나름대로 거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오전의 태양아래, 우리 동네 경계를 넘어서 한없이, 한없이 먼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우리집 마당에서서 돌아보면 보이는 마을의 집과, 산과, 개울과, 개울건너 앞마을의 집들뿐이었는데, 그 경계를 넘어서서, 내가 모르는 세상을 향해 유순이는 나를 이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계절이 가을이었던걸까요?  내가 마을을 벗어나서, 모르는 길을 걸으며 겁이 나서 칭칭대니까, 겨우 나보다 한살 더 많았던 유순이가 길가 밭에서 '무'를 하나 뽑아다가 이빨로 그 무 껍질을 벗겨서 우선 제가 몇입 먹고 나에게 주었지요. 이거 먹어라. 달다. 울지마. 내가 학교가는길 알어.

 

나는 정말, 온종일, 온종일, 영원처럼 오래오래 걸어서 초등학교에 도착했던것 같습니다.  학교 마당 구석에서 기가 죽어서 얌전히 있으려니, 마침 쉬는시간이었던지, 아니면 체육시간이었던지 양갈래로 길게 머리를 땋은, 까만 바지차림의 우리 막내고모가 학교 마당에 나왔다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달려왔지요.  "야! 니가 여기를 어떻게 왔니! 하하하. 여기를 왔구나!"  우리 막내고모는 환하게 웃으면서 좋아했지요. (그래봤자, 우리 고모도 뭐 초등학교 고학년이었겠군요).

 

그날의 햇살이 생각납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던 햇살. 그 먼 여행. 그 멀고도 긴 하루.

 

우리의 시간은 느릿하게 반짝이며 흘러갔고, 세상은 신기함으로 가득차 있었지요.

 

 

 

 

제 학부시절 전공이 영어영문학이다보니, 운좋게도 대학시절에 영문학의 '기초 과정'들을 착실히 이수할수 있었는데요.  2학년이 되어 전공과목으로 처음 이수한 것이 '영시'였습니다. 중세 베오울프 맛보기를 거쳐 주로 낭만주의 영시를 강독했지요.  워즈워드의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 (어린시절의 기억을 통해 영생불멸을 깨닫고 부르는 노래)라는 시가 있는데요, 워즈워드는 어린 아이를 '보는자 Seer' '자연의 철학자 Philosopher'에 비유하여 인간이 태어날때부터 갖는 예지력, 천재성을 노래하지요.  인간이 천국에서 지상에 올때 천국의 광휘와 지혜를 갖고 오는데, 이승에서 살면서 그런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 빛이 돌려지지 않는다해도 서러워 말지니, 차라리 그 속깊이 간직된 빛을...' 이런 구절도 이 시의 일부이고요.

 

사실 이 '인생의 항로' 그림은 워즈워드의 '영생불사'시와 잘 어울리지요. (참고: http://www.bartleby.com/145/ww331.html )

 

전체 11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시인데 첫 두연만 읽으면서 음미해볼까요

 

 

                           http://www.bartleby.com/145/ww331.html )  

 

                    I

          THERE was a time when meadow, grove, and stream,
          The earth, and every common sight,
                    To me did seem
                  Apparelled in celestial light,
          The glory and the freshness of a dream.
          It is not now as it hath been of yore;--
                  Turn wheresoe'er I may,
                    By night or day,
          The things which I have seen I now can see no more.

 

풀밭, 언덕, 그리고 개울이

대지가, 그리고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천상의 빛에 둘러싸여 있는것처럼 보이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지.

그 시절의

빛나던 꿈과 그 꿈의 신선함은

이제 보이지 않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밤낮으로 보던 것들을

이제는 더이상 볼수 없어라

 


                                   II

                  The Rainbow comes and goes,
                  And lovely is the Rose,
                  The Moon doth with delight
            Look round her when the heavens are bare,
                  Waters on a starry night
                  Are beautiful and fair;
              The sunshine is a glorious birth;
              But yet I know, where'er I go,
          That there hath past away a glory from the earth.

 

무지개는 왔다가 사라지고

장미는 아름답구나

하늘이 개이면

달은 기쁨에차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별이 빛나는 밤

개울들은 아름답고도 고와라

햇살은 영광스런 탄생이라네

하지만 이제는 안다네

내가 어디엘 가도

그 광휘는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다네

 

(번역; RedFox)

 

 

시인 워즈워드가 1803년에서 1806년사이에 쓴 시입니다.  나이가 들어 어린시절을 회고해보니 어린시절에는 모든것이 신기함, 빛으로 가득했었는데, 이제는 사물은 그대로 있어도 그 빛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지요... 워즈워드는 시를 풀어가면서 어린시절, 어린아이, 자연에 대한 '천국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그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냅니다.  그리고나서 그러면, 이제 그런것을 잃은 우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뭐 그런 이야기도 마지막에 나오는데요.  결론은 '기억'이죠.  우리에겐 회상할수 있는 능력이 아직 남아있고, 회상의 능력을 토대로 삶을 깊게 들여다볼수 있다는 위로를 하지요.

 

이 그림은 토마스콜 (1801-1849) 이 39세인 1840년에 그린것입니다. 그 8년후에 화가는 이른나이에 천국으로 가버렸는데요, 토마스콜의 성년기 작품입니다. 청년이 이런 그림들을 그리기는 어려울것 같고요. 당시에 나이 마흔이면 스스로도 자신의 '성년'으로 인지하였을 것입니다.

 

어린시절, 비가오면 폭우처럼, 눈이 오면 폭설처럼 여겨지던 시절,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차있었지요.


 

 

 

청년시절

 

 

 

자, 이제 청년시절에 이르렀습니다.  멀린 (그림 왼편 상단) 하늘에 희게 빛나는 성이 있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 ).  청년은 여태까지 호위해주던 수호천사 따위 안중에 없다는 듯 그 하늘의 성을 향합니다. 수호천사는 배에서 내려 강 기슭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고 있군요.

 

우리에게 저 하늘의 성은 무엇이었을까요?

 

희망과 기대에 찬 미래였을까요?

고시를 통과하여 출세를 해보겠다는 야망이었을까요?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진정한 민주화를 실현시키겠다는 이상 이었을까요?

남북통일이었나요?

아름다운 농장을 일구고 싶었나요?

착한 애인을 만나서 공중정원같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싶었나요?

먼나라로 유학을 하여 나도 알수없는 어떤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는 것이었을까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던 시절 저의 꿈은 아마도 그것이었던것 같습니다. 멀리 떠나고 싶었고, 유학을 가고 싶었고, 현실은 멀리 떠나는것도 유학을 가는것도 불가능하다며 빙글거리며 발목을 잡았던것 같아요.) 아무튼 우리는 떠나고 싶어하죠. 부모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죠.

 

그런데 그 공중의 성으로 향한 물가에는 험준한 산이 기다리고 있고요, 그 물길을 계속따라가면, (수호천사 뒤로 보이는 협곡을 보십시오) 알수없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지요.

 

 

 

 

 

 

 

 

 

성년시절

 

 

저는 지금 '성년시절'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제가 판단을 해야하고, 저의 판단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내 삶보다는 내주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야하고, 고비고비마다 이것이 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도 판단을 해야 합니다. 시간은 격류처럼 흐릅니다.

 

지난 연말에 오랫만에 지인을 만났는데, 그분이 "바쁘시죠?"하고 늘 인사로 묻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아이고, 한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신이 없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그냥 한해가 갔는데, 뭐 아무것도 한것이 없어요..."하고 대꾸를 했지요.  그분 말씀이, "나이만큼 세월의 속도가 빨라져요. 30대는 시속 30마일, 40대는 40마일이에요... 속도 초월하지 마시고 천천히 가세요."  그러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후딱후딱 지나간대요. 그 말씀이 맞는듯하여, 이것이 나만 느끼는 속도가 아니구나, 모두들 비슷하게 느끼는구나 했습니다. (그러면 또 위안이 되지요. 모두들 나와 비슷한거구나,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자, 아까 청춘시절의 강물을 따라 흘렀을때 맞닥뜨리게 되는 협곡의 정체가 여기서 드러나죠. 물살을 미친듯이 빠르게 흐르고, 배는 급물살과 바위사이를 통과해야만 하지요. 미친것은 물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죠. 미치겠는거죠.

 

 

 

 

 

그런데, 저 어두운 하늘구석에 희게 빛나는 존재가 있습니다. 아까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내버렸던 나의 수호천사인걸까요?  괴로움속을 서성일때, 단테를 돌봤던 베아트리체인걸까요?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가 있었는데, 지금 나에겐 무엇이, 누가 있을까?

 

 

 

 

미친 세월을, 급 물살을 견디며 바위틈을 통과해야 할때, 우리는 신앙을 가진사람이건 아니건,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토마스 콜은 기독교 바이블의 이야기를 많이 그린 화가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의지처가 필요하죠.  대상이 누구이건간에 간절히 간절히 어떤 염원을 품게 되겠지요. 그러한 염원이 없이는 이런 물살을 타고 넘기가 힘이 들지요. 혹은 이 물살을 맞기 싫으니 차라리 죽겠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 바위의 협곡을 지나면 무엇이 나올까요? 저 너머에 대양이 보입니다. 그렇죠?

 

 

 

 

 

노년시절

 

 

자 이제 협곡을 통과하여 물결 잔잔한 바다에 다다랗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몸도 늙고 지쳤습니다. 성년시절까지는 뱃머리 장식이 붙어있더니, 이제 뱃머리 장식도 사라지고 없군요. 사람도, 배도 늙고 지치고 망가졌습니다. 망가진 뱃머리 장식대신에, 노인을 이끄는 빛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멀리에서 그를 맞이하는 또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어서 오라고 손짓 하고 있지요?

 

이렇게 우리의 삶은 '하루'와 같고, 하루는 '일생'과 같기도 합니다.  매일 매일, 하루 하루, 마치 평생을 다시 시작하듯 그렇게 하루를 맞이하고, 마치 평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잠이 든다면 좋을것도 같습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살면서 힘이 들고 괴로울때, 그 물살너머에 평화로운 바다가 기다리고 있음을 상상하면 그런대로 다시 힘을 얻을수 있을것도 같고요.

 

저도 아직 노년을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노년이 평화롭기를,  지상의 노인들이 평화로우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아, 토마스콜은 47세로 마감을 했는데요, 그는 노년이 오기전 지상에서 사라진것처럼 보이네요. (아니, 노년이 나이와 상관이 있는것은 아니지요. 혹자는 평생 청춘으로 혹자는 일찌감치 노년으로 살아갈지도 모르지요.)

 

 

 

 

 

 

 

 

 

세상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겪는 일들속에서 어떤 섭리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면,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럭저럭 세상을 견뎌나갈수 있을것도 같군요.  사랑할때가 있고, 죽을때가 있으며, 얻건 잃건 그 사이에 우리 삶의 강물은 흘러 흘러 가는 것이지요.

 

          The Clouds that gather round the setting sun
          Do take a sober colouring from an eye
          That hath kept watch o'er man's mortality;
          Another race hath been, and other palms are won.
          Thanks to the human heart by which we live,
          Thanks to its tenderness, its joys, and fears,
          To me the meanest flower that blows can give
          Thoughts that do often lie too deep for tears.
                                                        

지는 해의 주위로 모여드는 구름은

인간의 유한성을 지켜본 시선으로부터

근엄한 빛을 앗아간다

또하나의 경주는 끝났다. 월계관들이 주어졌다.

우리가 의지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심성이 있어

그 심성의 부드러움과, 유쾌함과 두려움이 있어

아무리 보잘것없이 피어나는 꽃이라 할지라도

눈물조차 흘릴수 없도록 깊은 상념을 내게 선사할수 있게 되는 것이라.

 

(영생불사, 마지막 부분)

 

 

 

 

 

 

강물을 보러 나가고 싶은데, 날이 꽁꽁 얼어서 나갈수가 없어, 마음속의 강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늘 평안하시길. (협곡을 흐를때조차).

 

2010년 1월 3일 (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http://americanart.textcube.com/237  토마스 윌머 듀잉의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백악관 피아노' 장식작품과 다른 그림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사진 상태가 안좋아서 안타까웠죠. 옛날에 똑딱이 카메라로 대충 찍었던거라서.

 

그래서 일전에 (2009년 12월 29일) 미술관에 갔을때, 이 피아노실에 있는 '모든' 듀잉의 작품을 새로 사진기에 담아왔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제 독자들께, 아름다운 피아노와 선녀같이 평화로워 보이는 듀잉의 여신들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건, 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시길.  건강하시길. 

 

 

 

 

 

 

 

 

 

 

 

 

 

 

 

 

 

 

 

 

 

 

 

제목을 차차 달아 놓을게요.  우리가 듀잉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을 회상하시면서 감상하시면 좋을것 같죠. :)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들과 세계 정상급 국빈들을 위해 연주하던 피아노를 우리도 우리 삶에 들여놓고,  비록 가난하고 힘들어도, 마음은 재벌처럼 우아하게, 한번 폼잡고 살다 가는거죠. 뭐 삼시세끼 먹기는 재벌이나 나나 마찬가지고... 나도 내 한몸 잘 침대가 있고, 끼니 걱정이 없으니, 복되도다 복되도다.

 

 

2010년 1월 1일. 재벌같은 하루의 시작.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2010. 1. 1. 13:26

자화상 (1928)

목탄, 콘테, 연필, 종이

49.1 x 64.3 cm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2009년 12월 29일 촬영

 

 

 

미국 1930년대 지역주의 (Regionalism)의 대표적인 세명의 화가중의 하나인 존 스튜어트 커리 (John Steuart Curry 1897-1946)는 미 중서부 캔자스 주의 부유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부모님들이 대학교육을 마치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정도였으니까, 고학력의 부유한 집안이었음을 짐작해 볼수 있겠습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미술 개인 교습을 받을수 있었고, 시카고 미술학교를 거쳐서, 펜실베니아의 제네바 컬리지에서도 미술 공부를 했습니다. 한때 그는 Boy's Life 를 위시한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한 화가들이 참 많아요. 사실주의 화가들은 대개 일러스트레이션을 생업의 수단으로 거쳐갔을 것으로 짐작 됩니다.)

 

당시의 화가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1926년에 파리로 건너가 일년간 유럽의 미술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는 특히 꾸르베와 도미에, 티티안과 루벤스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루벤스의 경우, 어릴때 그의 집에 루벤스의 그림 복제품이 장식되어 있어 그것을 보고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뉴욕과 커넥티컷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는데, 1932년에는 아내 클라라가 사망합니다.  그 자신 역시 위스컨신 주립대에서 미술 교수로 재직하던 중 48세인 1946년에 심장마비로 요절을 하게 되는데요, 일찌기 부인을 잃고, 요절을 한 화가라서 그런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들이 많지 않군요. (웹에서 그의 작품들을 검색해보면 '아 참 좋다!'라고 감탄할 만한 그림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제가 가능하면 제 눈으로 본 작품만을 이야기하기로 정했기 때문에,...아쉽지만...음...)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미드웨스트의 농촌과 풍습, 그리고 가축들이 소재가 되었거나, 사회성 강한 주제, 반전 의식도 발견 됩니다. 중부에서 벌어진 흑인 학대나 린치에 대한 고발성 강한 작품들도 있고, 당시 중서부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를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의 고향 캔자스나 다른 중서부 지방 사람들은 존 커리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 중서부의 삶의 모습이 어쩐지 자신들을 우스개로 만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지요. 가령, 캔자스에서 흑인 린치하는 것을 그려내면, 뉴욕의 관객들은 그 작품을 보면서 감탄을 하겠지만, 캔자스 사람들은 '우리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타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고 괘씸하게 생각을 하겠지요.  그래서 존 커리는 최후까지도 고향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향 캔자스가 아닌 위스콘신주에서 사망했어요.)

 

아이아스의 이중성

 

 

 

Ajax (1936-37) 아이아스

Oil on Canvas

122.5 x 92 cm

 

Ajax 라는 이 그림은 일견 평화로운 초원의 황소 한마리 그림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자주 지나치곤 했지만, 이 평화로운 그림이 왜 여기 걸려있는지, 왜 이 그림이 박물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제게는 그냥 너무나 평화로워서 개성없고 지루한 그림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늘 '무심코' 지나치다가 하필 이 그림의 작가가 John Stuart Curry 라서 (마침 그의 작품세계를 공부하던 중이라서)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게 되었지요.  (모르면 봐도 모릅니다. 관심이 생겨서 들여다보면 뭔가 보이기 시작하는거죠).

 

그런데 그림 옆에 붙어있는 작품 설명을 보니, 이 그림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지루한 그런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그림에 달린 '제목'과  그림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제목 Ajaz (아이아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입니다. 트로이와 전쟁을 벌이던 그리스 장군중에 아이아스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스가 사망하자 그의 유품을 사이에 두고 오딧세우스와 아이아스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결국 아킬레스의 유품은 오딧세우스에게 넘어가고, 아이아스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미쳐버려서 들판의 양떼를 오딧세우스와 그 부하들이라고 생각하고 몰살을 시켜버립니다.  그리고는 정신이 돌아온후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자살을 하고 말지요. 

 

그러면 '아이아스' 이야기와 이 한가로운 초원의 황소 한마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이 소가 아이아스란 말인가요?  그래서 뭐?  궁금증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요, 미술관 복도에 있는 이 그림 바로 옆에 아래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Dust Bowl (흙먼지 폭풍)입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경제적인 난국을 겪고 있었는데, 미국의 중부에서는 엎친데 겹친 격으로 평원지대를 뒤엎는 흙먼지 바람과 한파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날이 건조해지니 흙먼지가 폭풍처럼 평원을 뒤덮고, 날은 더욱 가물어지고. 푸르던 평야가 하루 아침에 흙먼지로 뒤덮이며 사막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1930년대에 이런 현상이 여러차례 중서부를 강타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Dust Bowl 1933

Oil on Canvas

Alexandere Hogue

 

 

바로 이렇게 피폐해진 중서부 평야지대의 삶의 모습을 이 한장의 그림이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경제도 안좋고, 흙먼지 바람으로 농작물은 말라죽고, 죽어라죽어라 하는거죠. 미국인들에게 1930년대는 도시나 농촌이나 참혹했던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저위의 '아이아스' 그림의 의미를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아이아스는 (1936-7)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중서부 평원지대가 '사막'처럼 변화하는 것을 지켜본 화가는 신화속의 미친영웅 '아이아스'를 떠올렸나봅니다. 아이아스는 영웅이기도 했고, 미쳐 날뛰며 자기편 영웅들을 죽이려다가 가축들을 몰살시킨 인물입니다.  화가에게 미드웨스트의 평원은 평화롭고 순한 한마리 황소처럼 사람들에게 곡물과 풍요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그 소가 미쳐날뛰면 주위 모든이들을 해치게 됩니다. 흙먼지로 뒤덮여 사막처럼 변해버린 평원은 미쳐 날뛰는 아이아스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러면 아이아스가 미쳐날뛰지 않게 사전에 달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작가는 아이아스의 비유를 들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여기서 저는 또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똑같은 그림이 1930년대가 아닌 2000년대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는...저 순한 소를 화나게 하면 안되지요. 소가 평화롭게 살수 있도록 하는것이 우리 자신을 돕는 길일 것입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고요, 각자 자신의 해답을 찾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런데 토마스 하트 벤튼의 페이지에서 (http://americanart.textcube.com/252/trackback/ ) 아킬로스와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벤튼의 벽화를 소개한 바 있지요.  중부에 30년대에 강타한 흙먼지와 한발 사태를 보면 미조리강의 개발의 역사적 의미를 짐작할수 있게 됩니다. 반복적인 흙먼지와 가뭄으로 황폐해져가는 평원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보면 1937년에 그려진 커리의 Ajax에 등장했던 소가, 십년후 벤튼의 그림에서 '강의신'으로 새롭게 그려진것 같기도 하지요?  :)  음, 이 그림들이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군요... 

 

 

 

 

존 브라운은 광인인가 의인인가?

 

 

아래 그림은 원화가 아니고요, 제가 하퍼스 페리에 갔을때 존 브라운 기념관 입구에 설치된 실제 벽화 크기의 카피본을 사진 촬영한 것입니다. 제목은 The Tragic Prelude (비극적 서곡).  이 그림의 원본은 캔자스 Statehouse의 벽화라고 합니다. 벽화와 똑같은 크기의 카피본이 존 브라운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고요.

 

 

존 브라운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노예해방을 부르짖으며 정부군과 전쟁을 벌였던 사나이 입니다. 백인 입니다. 그는 종교적 신념에 불타서 흑인 노예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것인데요, 결국 하퍼스 페리에서 붙잡혀 사형에 처해지고 맙니다. 당시의 지식인들, 가령 콩코드 출신의 Emerson 이나 Thoreau 와 같은 초절주의 철학자들은 존 브라운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는데요, 미국 역사에서 그에대한 평가는 '광인'과 '의인'사이에서 갈팡질팡 합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노예해방을 위해 노력한 것은 가상하나, 그 방법이 적법하지 않았으므로 마냥 영웅으로 치켜주기가 위험한 것이지요.  이건 뭐 무장봉기, 폭동과도 같았으므로 이를 '영웅시'할 경우 국가의 법체계가 위협을 받게 되겠지요.  존 브라운에 대해서 제가 상세히 공부하지 않았으므로 더이상 논할경우 제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존 브라운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접겠습니다.

 

존 브라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떠하건, 존 스튜어트 커리에게 존 브라운은 영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손에 성경을, 한손에 장총을 들고 서서 호령하는 존 브라운의 모습은 마치 제가 어릴때 본 영화 '십계'속의 '모세' 할아버지를 연상케 합니다. :)  존 브라운이 혁명적으로 노예해방을 진두지휘하며 돌아다닌 구역이 캔자스, 미소리, 버지니아주였던 고로 캔자스주에서 그를 기념하는 벽화 작업을 했던 모양입니다.

 

 

 

The Tragic Prelude (1938-1940)

Kansas Statehouse 벽화

실제 벽화는 아니고,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하퍼스 페리에 있는 존 브라운 기념관 벽에 있던 복제 사진을 촬영 (2009년 11월 15일)

참고: http://americanart.textcube.com/176

 

 

 

 

 

 

 

 

반전인가 전쟁 옹호인가?

 

 

 

Our Good Earth (1942) 우리들의 위대한 대지

Water Color on Illustration Board

27.9 x 34 cm

2009년 12월 2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2차 대전 당시 '전쟁기금 모금'을 위한 홍보용 그림을 주문 받았을때 우리들의 커리가 그린 전쟁 홍보를 위한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한 농부가 밀밭 가운데에 우뚝 서있고, 한손에는 밀대를 한웅큼 쥐고 있고, 그의 곁에 소녀와 소년이 있습니다. 그의 왼손이 소년의 오른손을 꼭 쥐고 있군요.  농사를 짓는 일도 전쟁을 돕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메시지라고 하는데요.  제가 스미소니안에서 발견한 이 작은 그림은 "Our Good Earth - Keep it Ours (우리들의 위대한 대지 - 우리의 땅을 지키자!)" 이런 선전문구를 새긴 포스터의 밑그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그림이 전쟁 지지를 위한 그림이었는지,  우리가 정말 해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라 '농사짓는일'이라는 메시지인지 헛갈리는 구석도 있습니다. 왜 제가 헛갈려하는가하면 여러 화집에서 발견한 또다른 그림 때문인데요.

 

Parade to War (1938)

 

미술사책을 들여다보면 존 스튜어트 커리와 관련된 장에서 주로 소개 되는 작품이 이 그림 입니다. 출전 행진 (Parade to War). 저는 실재 그림을 본 바 없고, 화집에서 본 것이 전부인데요. 전쟁터로 나가기 위한 군사들의 행진 장면입니다. 구경하는 아이들은 신이나서 달음질치는데, 흰 테이프들의휘날리는 가운데 줄을 서서 행진하는 군인들은 모두 유령같아 보입니다. 해골들이 옷을 입고 행진하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림 왼편의 어느 여인이 기도하듯 입을 가린채 걸어가는데, 마치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절망하는 어머니 같습니다.  이 그림은 유령의 도시 풍경 같기도 합니다. 1938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데, 이 당시에 한국에서도 식민지땅의 조선인들이 조선의 청년들과 장년 남성들이 학도병으로, 징용으로 이렇게 끌려가 죽음을 맞이 했을 것입니다.  조선에서는 여성들도 정신대로 끌려갔지요.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반전' 그림입니다. 1938년에 이런 반전 메시지가 분명한 그림을 그린 존 커리가, 1942년에 전쟁 홍보용 그림을 위탁 받았을때, 그려 낸 그림이 '우리들의 위대한 대지' 그림입니다. 존 커리가 정말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전쟁 홍보였을까요?  ...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존 스튜어트 커리는

1. 미드웨스트 농촌 농민, 서민의 풍경을 그렸으며

2.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렸고

3. 공공벽화작업도 활발히 하였으며

4. 신화와 역사의 만남을 시도했고

5. 일러스트레이션, 벽화, 일반 회화등 다양한 장르의 활동을 했음을 짐작할만하며

6. 반전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존 스튜어트 커리, 이 화가는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인 작품들을 많이 갖고 있는데요, 제가 직접 눈으로 본 작품이 많지 않아 대략 이쯤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상으로 미국의 지역주의 3대 화가로 알려진 Grant Wood, Thomas Hart Benton 그리고 John Steuart Curry 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음엔 어디로 가나...과거로 갈까요 아니면 미래로 갈까요... 랄랄~

 

 

 

2009년 12월 31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2010. 1. 1. 02:14

미국의 1930년대 지역주의 (Regionalism) 3대 화가중 한명으로 알려진 토마스 하트 벤튼 (Thomas Hart Benton 1889-1971)은  Grant Wood 와 John Curry 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미드웨스트 (미조리 주)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하원의원, 숙부가 상원의원이었다니 유복한 정치인 집안의 귀공자였던 것 같습니다.  1907년 시카고 미술학교 (Chicago Institute of Art)에서 미술 수업을 한 후에 1909년 프랑스로 건너가 줄리엥 아카데미에서 미술 수업을 계속합니다.  미술 수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소속으로 근무를 하고 1920년에 뉴욕으로 돌아가 미술 활동을 펼치면서, 당시에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현대 추상미술을 등진채 사실주의 미술을 펼쳐 나갑니다.  설에 의하면 초기에 그는 추상미술 작업을 했지만, 도통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후에 그는 고향인 미조리주로 돌아가 신화와 사실주의가 만나는 미술 작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자화상 (1927)

 

이 자화상은 벤튼이 아내와 자신을 직접 그린것입니다. 매사추세츠주의 South Beach 에 있는 작은 섬이었는데 이 한적한 곳에서 미술작업을 하면서 그가 잠시 관심을 보였던 현대 추상예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사실주의적 작업으로 완전히 옮겨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이 단순하면서 그만큼 '힘'이 느껴지지요. (남자가 좀,뭐랄까, 마초적인 인상을 주지만...뭐...내 남자도 아닌데, 멋대로 살게 내버려두지요..귀여운 마초랄까...) 그가 뉴욕을 기반으로 20여년간 활동하는 동안 그는 매년 여름마다 이 Matha's Vineyard 라는 휴양지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화상 (아내 리타와 함께) 1922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은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 박물관과 함께 있습니다.

동일한 장소의 일부를 국립미술관으로 일부를 초상화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Chillmark and Matha's Vineyard (마사의포도원섬과 칠마크 마을)

 

 

1920년부터 1975년 그가 사망할때까지, 벤튼과 그의 아내는 여름이면 매사추세츠 남쪽의 Matha's Vineyard (마사의 포도원)이라는 이름의 섬에 있는 Chillmark (칠마크) 마을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아래의 그림 두장은 바로 그곳의 사람들과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People of Chilmark (Figure Composition) 칠마크 사람들 (인물구성) 192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Matha's Vineyard (마사의 포도원) c.1925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디씨의 코코란 갤러리에서 촬영

 

 

File:Martha's Vineyard map.png

http://en.wikipedia.org/wiki/File:Martha%27s_Vineyard_map.png

 

 

 

농장 길

 

 

그는 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 와 Kansas City Art Institute 등지에서 미술 교육을 하였습니다. 그가 키운 제자중에 훗날 스승을 능가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흩뿌리기'의 대가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입니다.  잭슨 폴락의 초기 작품중에 토마스 밴튼의 그림과 분위기가 비슷한 것이 발견됩니다.  토마스 벤튼이 유럽에서 현대 추상미술 사조의 영향을 입고 와서 추상화 작업을 하다가 집어치고 사실주의 작품들로 그의 그림을 완성시켰다면,  잭슨 폴락은 그러한 '스승'의 영향아래 사실주의적 미술로 시작을 하여 '어마어마하고 혼미하기까지 한' 자신만의 세상을 완성시킨후 지구를 떠났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을 돌고 도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늘아래 새로운것은 없지만, 또한, 하늘아래 반복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늘 기존의 무엇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죽고, 그 바탕위에 또 새로운것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Plantation Road  (농장 길) 1944-45

Oil and Tempera on Canvas mounted on Plywood

2009년 11월 6일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잭슨 폴락의 그림

 

 

밀밭: 황금의 이상사회

 

 

 

Wheat (밀) 1967

53.3 x 50.8 cm (가로세로)

Oil on Wood

 

 

이 '밀밭'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장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아래의 사진에서) 폴락의 대형 벽화가 걸려있는 전시장, 그 벽화 왼편 으로 구석에 아주 자그마한 그림 하나가 걸려있지요. 그러니까 벽화와 창문 사이에 걸려있는 껌딱지 같이 작은 그림이요. 그것이 바로 이 '밀밭' 그림입니다. 그가 1971년에 사망했으니까, 그가 78세에 그린, 거의 말기의 작품이라고 할만한데요.  한세상 전투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취하여 공공미술적 벽화 작업도 하고, 뚜렷한 자기 주관을 펼치면서 살았던, 지역주의 화가의 기수로 알려진 이 화가가 '노년'이 되어, 78세의 나이에 그린 그림임을 감안하고 보시면 그림에서 뭔가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림 하단에 보시면, (시골에서 농사지은분들 이 그림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특히, 벼 베고 그러신 분들), 낫으로 베어낸 밀의 밑둥이 고르게 남아있습니다. 기계로 베었는지 높이가 일정합니다. 사람이 낫으로 베면 밑둥 높이가 들쭉날쭉 하지요. 그리고 그 밑둥 사이로 밀싹이 새로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한 세대가 가면 또 한세대가 솟아 나오지요.

 

밀대를 보겠습니다. 밀은 한웅큼씩 무리를 지어 고르게 자라났습니다. 간혹 부러져 기울어진 밀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조금씩 무리를 지어서 비슷한 크기로 자라고 비슷하게 열매를 맺었습니다. 밀대 너머로 끝없이 반복되는 밀의 고랑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매우 사실적으로,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면서도, 사실 너머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항웅큼씩 모여서, 서로 의자하여 서 있는 밀들은 그 자체로 인간 사회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크거나 작거나간에 서로 무리를 지어서 살아갑니다. 우리 가족 이웃에 이웃의 가족이 있고, 우리 마을 이웃에 이웃마을이 있으며, 우리학교 이웃에 이웃학교가 있고, 우리 나라 이웃에 이웃나라가 있습니다.  무리무리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서 있지요. 키도 비슷하고 생육조건도 비슷하고. 이것이 벤튼이 이상화했던 사회주의의 풍경이었을것 같습니다. 서로 평등하게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인간사회. 한세대가 사라지면 새로운 세대가 다시 희망처럼 자라나는 사회.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인간의 역사. 혹은 생명의 역사. 노년의 벤튼이 꿈꾼 인간 사회가 이런 황금 밀밭의 풍경은 아니었을지...

 

이 그림을 보자니, 엘리노어 파전의 '보리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생각납니다. 우리 나라에는 '보리와 임금님'으로 번역 소개가 되었지만, 사실 원작에서는 밀밭 이었지요... (http://www.gulnara.net/main.php?pcd=6.7.&_vpg=view&uid=95) 제가 참 좋아하던 동화였는데, 지금도 이 동화를 찾아서 읽으면 공연히 눈물이 납니다.  어릴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사람을 잘 안변합니다. 왜 눈물이 나냐하면, 너무 아름다워서. 밀밭은, 여우가 어린왕자와 함께 있을때도 나오지요. 앞으로 황금물결치는 밀밭을 보면 네 머리카락이 생각날거라고 여우가 종알거지요.  가수 문정선이 노래한 옛날 노래가 있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이야기가 걷잡을수 없이 딴길로 새고 있습니다...)

 

한세상 씩씩하고 전투적으로 살아낸 노 화가가 그린 말기의 작품이 너무나도 절제되어있고 사색적이라서, 이것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다가오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황금 밀밭같이 풍요롭고 평등한, 인간의 세상. 저도 꿈꿔봅니다. 밀알은 각자 개성껏, 그러나 서로 의자하여, 미래의 싹을 간직한채, 영원히 살아남을겁니다. 하나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면, 썩으면... 아아 성서적 은유인지도 모르겠군요.

 

이상으로 벤튼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존 커리를 기대해주시길.

 

2009년 12월 31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2010. 1. 1. 00:50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 2층 전시실. Thomas Hart Benton (1889-1971)의 벽화가 걸려 있는 곳입니다 (오른쪽 벽).  2009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2010년을 시작하는 이 시간을 헤라클레스와 아킬로스의 신화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도 좋을 것 같아서 선정해 봤습니다.  길이가 7미터 가까이 되고 그림의 높이는 대략 160 센티 (여성들 보통 키 정도 되겠군요) 되는 그림입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건강하고 힘찬 벽화인데요.

 

이 그림의 제목은 '헤라클레스'와 '애킬로스'입니다. 캔자스 시티의 한 백화점을 장식한 벽화였다고 합니다.

 

 

 

Archelous and Hercules  (1947)

671x159.6 cm (길이 6.7 미터x 높이 1.6 미터)

Tempera and Oil on Canvas mounted on Plywood.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그림의 중심이 되는 것은 커다란 황소의 뿔을 쥐려고 대적하는 사나이. 황소는 정확히 적을 노려보고 있는데 사나이는 등을 보이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으나, 그의 팔과 등의 근육이 이 남자의 표정을 읽게 해 줍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천하 장사로 알려져 있지요. 아킬로스는 '강'의 신이라고 합니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강의신 아에킬로스가 헤라클레스와 싸우던 장면을 이야기 해 주는데요, 헤라클레스와 씨름하다가 뱀으로 변하기도 하고, 황소로 변하기도 했는데 도무지 헤라클레스를 이기지 못했다고 술회 합니다. 헤라클레스가 '강의 신'과 대적하여 이겼다는 신화는 '자연'과 인간이 대적하여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해주지요 (참고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영웅입니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황소로 변한 강의 신 아킬로스의 한쪽 뿔을 뽑아서 상대를 제압했다고 합니다. 그 뿔은 서양 문화에서 '풍요'의 상징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있지만, 쇠뿔 자체는 큰 상징적 의미가 없지요. 그리스 신화에서 소로 둔갑한 강의 신의 뿔을 뽑아냈다는 말은 강이 제공해주는 풍요를 얻어 냈다는 상징을 갖게 됩니다.)

 

   *  참고로, 영문 표현중에 Take the bull by the horns 가 있지요. 쇠 뿔을  단단히 잡아라. 소와 씨름하려면 소와 정면으로 서서 소의 두 뿔을 단단히 잡아야 하죠. 결국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서양에서도 '소'가 그리스 신화때부터 존재하던 짐승이었으므로 소와 관련된 우화나 속담이 많군요. (영어선생 제버릇 개 못줍니다. 꼭 티를 내죠 ^^)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강의신 아킬로스는 황소이고, 이 황소와 대적하는 사람들 (여러사람이 그 황소를 잡기 위해 그림속에 등장하지요)이 헤라클레스가 되겠는데요, 벤튼은 이 그림으로 무엇을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미조리주에서 공공건설의 일환으로 미주리강 개발 사업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평원지대에 가뭄이 들어 흙먼지가 날리면 농작물들이 말라죽고 땅이 불모지가 되는가하면 반대로 홍수의 피해를 겪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군부대가 동원되어 댐도 만들고 수로도 만들고 둑도 쌓는 등의 강 개발이 사회주의사상을 가졌었고, 공공미술 벽화작업이 활발했던 벤튼에게 영감을 주었던것 같습니다.  신화속에서처럼 인간이 강을  길들여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했겠지요. 

 

 

 

 

 

저 옆에 여성 두명과 소년 하나가 앉아있거나 서 있는 흰 구조물이 보이시지요?  뿔이죠. 쇠뿔.  그 쇠뿔에서 과일과 곡식이 흘러 넘치고 있지요. 강을 잘 운영할때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풍요이지요.  그러고보면 여성이 들고 있는 빨간마후라도 뿔 모양이고요, 소년이 들고 있는 나발도 뿔 모양입니다.  (또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해보니, 여성신체의 여성기관중에 '나팔관'이라는 기관도 있지요. 그 나팔관도 뿔 모양이지요...여성의 돌출된 두개의 유방도 두개의 돌출된 뿔처럼 보입니다. 이쯤되면 세상 만물이 뿔처럼 보인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지요...하하하....)

 

 

 

 

 

소와 씨름하는 사나이들이 있는가하면,  한쪽에서는 수확을 하는 농민, 멀리 농장에서 '영농기계화'의 상징같은 농기계도 보입니다. 강을 잘 다스렸을때 우리에게 다가올 풍요를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러고보면, 사나이가 황소와 씨름하는 것을 중심으로, 그림의 왼편은 '황소와의 씨름'에, 그림의 오른편은 '다가올 풍요'가 그려진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저와 함께 시선을 이동시키는 겁니다.) 여기 그려진 사과를 보십시오. 사과며 다른 과일의 형태가 어떤가요?  사과가 오목볼록거울에 비쳐진듯 꾸불구불 하지요? 구불구불~~ 처음부터 사나이들의 등근육이며 모든것이 구불텅구불텅 구불구불 휘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심지어 사과마저 어디론가 빨려들어갈듯 휘어져 있습니다.  왜 이 그림속의 대상들은 빨려들어갈듯 휘어져 있는것처럼 보일까요?  왜 벤튼은 대상을 이런식으로 휘어지게 그렸을까요?

 

 

 

 

왜 모든것이 휘어져보이나?

 

벤튼은 살아있는 것들이 에너지가 넘쳐서 움직인다고 믿었던 걸까요? 사나이들의 등근육이나 소의 근육처럼 가시적인 '삶의 근육'뿐 아니라, '생의 에너지'가 갖는 움직임을 정체를 파악했던 것일까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근육'을 부여한 것일까요?  아, 마치 숨은그림 찾기 하듯, 뿔처럼 보이는 당근 무더기가 보이는군요.

 

 

 

소의 눈이 보이십니까? Bull's eye 이지요. Bull's eys 라고 하면, '과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소의눈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소 곁에 또 있군요. 나무 둥치의 둥근 나이테도 소의눈을 연상시키고, 남자가 벗어놓은 모자역시 뿔을 닮은 소의 눈처럼 보입니다.

 

그림 전체에 흐르는 휘어짐, 구부러짐은 삶에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대로 휘어저 굽이쳐 흐르는 생명의 상징인 강물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씨름이 있습니다.

 

지난 2009년은 제게는 죽음의 강을 건너듯 아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기쁨도 컸고, 슬픔도 컸으며, 과장된 절망감이나 우울감사이로도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주었습니다. 다가오는 한해동안 제가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줄을 서있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해결하다보면 한 해가 또 지나갈 것 같습니다.  소와 씨름하듯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소와 씨름할 더 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생의 에너지가 남아있는 그 날까지 씨름은 계속 될것입니다. 

 

쇠뿔을 거머쥐고 '돌아온 헤라클레스'처럼 환하게 웃는 그런 날이 올테니까요.

 

복된 2010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p.s. 헤라클레스는 소의 뿔을 하나만 뽑았습니다. 두개 다 뽑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얻고 하나는 양보하는 것이지요. 서로 화합하는 방법입니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에서 뿔을 뽑힌 강의신 아에킬로스는 헤라클레스를 원망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힘센 영웅인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은 서로 반목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참고: http://classiclit.about.com/library/bl-etexts/tbulfinch/bl-tbulfinch-age-23-achelous.htm  불핀치의 신화중 아켈로스와 헤라클레스

 

 

2009년 12월 31일 RedFox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 촬영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