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0. 5. 31. 09:01

5월 28일에는 한국으로 보내지는 짐을 챙기기 위해서 운송업체 직원들이 우리집에 와서 짐을 챙겼다.  문을 열고 작업하는 도중에 왕눈이가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왕눈이는 문만 열리면 달려 나가서 이웃의 조지아댁으로 뛰어 가므로, 안보이면 그 댁으로 가보면 되는것인데,  문제는 왕눈이가 조지아댁에 없었다는 것이다...

 

 

왕눈이와 평소에 동네 산책을 나가는 코스가 있는데, 그 곳을 모두 뒤지고, 동네를 다시 뒤져도 왕눈이가 보이지 않았다.  짐 싸러 온 사람들도 모두 자리를 뜨고, 왕눈이가 없어진지 세시간쯤 되는데 왕눈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열린 문틈으로 몰래 나가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금세 돌아오곤 했는데, 세시간씩 행방불명이 된 적이 없었다.)

 

 

기실 나는 요즘 이사를 하면서 왕눈이가 성가시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단 돌려받지도 못하는 '개 보증금'을  아파트 계약할때 수백달러를 낸것도 억울했고, 한달에 50달러씩 개 때문에 아파트 렌트비를 더 내는 것도 돈이 아까웠고, '아 누가 달라고 하면 주고 싶구나' 이런 생각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일 이사 나가려고 오늘 이삿짐 일부를 내보니는데 개가 없어지다니... 개가 제발로 나가준건가? ... 왕눈이를 찾아서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왕눈이가 우리곁을 떠날때가 되어서 스스로 나간것인가,

이제 다시는 왕눈이를 못보는건가. 

왕눈이는 지금 어디 개장에 갖혀 있는건가?

아침에 왕눈이를 쓰다듬어준 것이 마지막이었나?

왜 암말도 안하고 나가버린건가.

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암말도 없이 사라져버리는가?

왜 모든 사랑하는 것들은 종적을 감춰버리는 것으로 끝장을 내는가?

...

 

뭐 온갖 '삶'의 비애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엇다.

 

그날은 남편도 근무를 안하고 이삿짐 챙기는 것을 돌보고 있었도, 큰 아이도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고 있었는데,  모두들 왕눈이를 찾아 헤메다가 '얼빠진' 얼굴로 돌아왔다.  어-디-에-도 왕눈이가 없는것이다.

 

나는 그냥 기운이 빠져서 일하다 말고 침대에 죽은듯이 쓰러져 있고

남편은 기운을 차리겠다며 부엌에서 점심밥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통신장비 반납할것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오늘 반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남편이 '점심 먹고 나가라'고 부엌에서 외쳤을때

나는 울화를 터뜨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왕눈이가 집을 나갔는데 밥이 넘어가???"

나는 울면서 집을 나섰다. 그냥 한심해서. 눈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개 한마리가 없어진게 한심해서.

 

한시간쯤 후에 집에 와보니, 큰 아이도 아픈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있고

남편이 집안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걸까? 왜 모두 사라지는가?

불안증이 생겨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딨어?"

"왕눈이 찾으러 나왔지..."

"어딘데?"

"기다려봐, 여기가 어디냐하면..."

전화를 툭 끊은 남편이 1분쯤 후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

 

"왕눈이 찾았어!"

 

 

남편은 내가 울면서 나간후에 왕눈이를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일주일전에 왕눈이가 갔었던 동네 동물병원에 가봤다고 한다. 혹시 동물병원에 가면 잃어버린 개들이 어디로 보내지는지 알수 있을것 같아서.  그래서 왕눈이가 다니는 동물병원에 가서 "세시간전에 라사 압사 흰 개 한마리를 잃어버렸는데...어디가서 찾으면..." 하고 우물거리고 말을 꺼내니, 접수대의 직원이 "세시간전에 라사 압사 개 한마리를 누가 데리고 왔는데..." 하면서 개장에서 왕눈이를 데리고 나오더란다.

 

누군가 길에 돌아다니는 왕눈이를 데려다가 '잃어버린개'라고 동물병원에 맡기고 갔다는 것이다.  마침 그 병원이 왕눈이가 다니는 병원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왕눈이 관련 기록도 있고,  '아빠'를 보자마자 미친듯이 반기는 개가 모든것을 증명하므로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왕눈이를 받아 올수 있었다고 한다.

 

왕눈이가 생환할때

우리들은 모두 마당에 나가서 왕눈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평소에는 왕눈이가 귀가하는 가족들을 '열광적'으로 반기는 세리모니를 해주었지만

이번만은 온가족이 마당가에서서 환영식을 해주는 것으로 왕눈이를 반겼다.

 

우리들은 모두 왕눈이가 세시간동안 사라졌던 그 시간동안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말도 못하고, 늙은 개가 이제 어디론가에 가서, 어쩐지 죽음을 당할거라고 상상하니 살맛이 나지 않았노라고 모두들 얼빠진 표정으로 술회했다. 

 

심지어는 동네에서 개를 끌고 한가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게 느껴졌으며

나의 경우에는 어떤 '분노'같은것도 희미하게나마 경험을 했었다.

어떤거냐하면

내가 왕눈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을때, 조지아댁의 두마리 털복숭이 개가 산책을 나왔는데

내가 '왕눈이를 잃어버렸다'고 하니까 조지아댁이 '오늘 우리집에 안왔는데....내가 보면 알려줄게...'하고 아주 태평하게 말했었다. 나는 개 잃어버린것이 너무나 서러웠다. 그리고 두마리 개를 끌고 가는 조지아댁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엽기 블랙 코메디'를 쓰고 있었다.  왕눈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면, 가만 안있겠어... 온동네 개들을 모두...잡아다 가둬버리겠어....  이유없는 복수심.... (물론 이런 생각은 왕눈이를 찾은 후에,  우리가 느꼈던 슬픔을 회상하며 깔깔대며 만들어낸 복수혈전 같은 것이다.)

 

물론 내가 왕눈이를 영영 잃어버렸다고 해도, 동네 개들에게 보복을 할 리는 없다. 하지만 상상은 가능하다. 사랑하는 개를 잃어버린 어떤 '정신이상한 여자'가  그 보복으로 매일 한마리씩 개를 잡아다 처치해버리고, 매일 매일 동네 개 한마리가 실종되는데,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으스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슬픔이나 분노는 그대로 적개심으로 이어지면서 싸이코패스 짓을 저지르게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왕눈이를 다시 찾았다. 그래서 왕눈이를 찾아온 '왕눈아빠'는 온가족의 영웅이 되었다.  우리는 왕눈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자각하게 되었다. 왕눈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수 없을정도로 어둡고, 슬프고, 기운빠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왕눈이는 우리의 가족이었던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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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우.. 다행이다.. 해피엔딩이라서..제가 끝까지 다 읽고 지금 한숨을 다 쉬고 갑니다..

    2010.06.02 05:42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는 개를 2-3년 키워서 '잡아먹는' 농경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가슴이 아픈건 아픈거고, 개는 죽을것이고... 이런데 '익숙해졌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막상 내 개가 사라지니까, 그 익숙함이 사라지더라구요. 어른들이 자기들 맘대로 개를 잡아 먹는거야 나로서는 속수무책이므로 '하는수없다'고 정리하고 만 것이지만; 내 개를 내가 잃어버린것은 나에게 책임이 있는거라.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삶아 먹는것이 나을거 같다는 느낌마저. (그래서 사랑하면 죽이는걸지도...매우 이기적인 발상이지만.)

      2010.06.02 21:00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