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12. 24. 09:17


(위 그림은 2009년 12월 19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에서 촬영했다)


메리 커셋 (Mary Cassatt 1844-1926)은 미국의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독일과 프랑스에서 보냈으며, 16세때는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s in Philadelphia)에 입교, 미술 수업을 받았다. 이후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미술 수업을 받고, 평생 프랑스 파리와  인근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화가이다. (그이은 결국 82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운명했다)

메리 커셋은 당시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상파화가 (Impressionists)들중 유일한 미국출신, 여성 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나 Edgar Degas 와의 교류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드가가 메리 커셋의 예술성을 발견하고 커셋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고도 하지만, 커셋 역시 자기 주장이 확실했던 화가였다고 한다.

커셋의 작품들은 대개 '여성'들의 일상적 삶의 풍경에서 그 소재를 취하였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활동의 폭이 제한적이었음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시각에서 커셋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남성중심의 시스템에 갖혀있는 극히 제한적인 여성의 삶의 묘사에서 그 한계를 느끼게 되지만, 그것은 21세기 여성의 시각에서 그러한 것이고, 커셋이 살아가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는 메리 커셋이라는 화가가 화단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그 실력을 인정받을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 해방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쯤에서 조선의 '신사임당'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신사임당이 유명해진 이유 속에는 조선의 석학 이이 선생의 모친이었다는 것이 한몫 하긴 하지만, 신사임당이 그려낸 화조도는 그 상세한 묘사나 애정어린 시각, 사물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뛰어넘는 탁월성이 있다. 그이의 주요 소재가 꽃이나 과일, 작은 짐승들과 같이 울타리 안에 갖혀사는 여인네가 관찰할수 있는 한정된 대상이었다고 해서 현재의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이를 비판하거나 그 가치를 과소 평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사임당이라는 한 여성의 탁월성은 그대로 여성들의 모델이 될만도 하다.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아기, 집안의 여성들의 한정된 일상적 삶의 풍경의 그 제한성이나 진부함으로해서 메리 커셋의 예술성을 폄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커셋은 여성들에게 입교가 허용되지 않는 미술학교에 들어가고 그림 수업을 받는 담대함을 가지고 그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개척한 투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음은 2010년 1월 16일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촬영한 커셋의 작품들.





상기한 바 대로 프랑스 화가 Edgar Degas 가 커셋의 예술성을 발견한 이래 미술적 멘토, 친구로 평생 지내게되는데, 커셋의 그림의 구도를 함께 의논한다거나 혹은 소품을 어떻게 늘어 놓을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드가는 세심하게 조언 내지는 '참견'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셋은 드가의 조언이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감정을 드러내고 격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기묘한 관계다.) 드가는 커셋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 때문인지, 큼직한 미술관에 이들의 그림이 걸릴 경우 드가 작품 옆에는 대개 커셋의 작품을 걸어 놓는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작품이 커셋의 The Loge 이고, 그 왼편에 Degas 선생의 작품이 걸려있다.  글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이 두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면 그만 픽 웃게 된다.  전시를 기획한 디렉터의 의중을 대충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짝꿍으로 전시되는 작품들은 커셋과 드가 외에도 오스트리아의 클림트 선생과 에곤 쉴레. 클림트가 쉴레의 후원자였고 이들은 격렬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래서 미술관이 두 사람의 작품을 소장할 경우 기를 쓰고 두 사람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는 편이다. (하하하),

































Posted by Lee Eunmee
Conceptual Art2010. 12. 21. 20:14


Conceptual Art 카테고리에 허시혼 뮤지엄의 솔 레윗의 작품을 2009년에 소개한 바 있다.

허시혼 뮤지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3층 솔레윗 홀 (내가 이름 붙인것이다.)  현재는 솔레윗의 작품 앞쪽에 테이블이 있어서 작품의 하단을 가린다 (임시적인 특별 프로그램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를 바란다.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가리는 짓을 한다는 것은 범죄 행위 아닌가?)

소파에서 한 숨 늘어지게, 잠에 빠진 박선생. 이 소파에 기대 앉으면 누구나 잠의 유혹을 느낀다. 등뒤에는 빛이 가득한 솔레윗의 작품이 있고, 눈앞의 유리벽으로는 워싱턴 디씨의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으므로. 둥실 둥실 구름에 떠가는 기분이 들면서 잠이 솔솔 내리는 것이다.


솔 레윗의 빛의 피라미드 앞에 서면, 저절로 온몸이 따뜻해지고, 마음도 유쾌해진다. 행복한 색깔들의 노래.





2010년 12월 20일.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0. 11. 22. 06:44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나는 세장의 손뜨개 담요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장 한장 뜨다가, 막판에 재미가 붙어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내고 그랬었다.  크기는 1인용 트윈 침대 이불만한것.

 

지금 보이는 것이 1호 작품인데, 당시에 큰놈이 고등학생이었던터라, "우리 지팔이 대학에 들어가면 기숙사로 갈테니 기숙사 보따리에 엄마가 손뜨개질한 이불을 넣어주마" 했었다.  그 후에 재미가 붙어서 2호 작품 (아래)을 짰고,  솜씨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우리 엄니를 위한 특별판을 하나 만들었었다.  네모칸 안에 사람, 자동차, 새, 뭐 그런걸 짜넣어가지고 이야기가 가득 들어간 이불을 만들어서, 우리 엄니 갖다 드렸다.

 

1호 작품을 지홍이는 집에서 사용했고 기숙사에는 가지고 가지 않았다. 1호 작품은 내가 워싱턴에서 지내는 동안 겨울에 정말 잘 사용하고 있다. 얇은 담요 위에 이거 덮으면 정말 따뜻하다. 며칠전에 청소하다가 지팔이 침대위에 덮어놨던 1호를 소파위에 걸치니 의외로 집안 분위기가 아주 좋아지는거라.  (요새, Anthroplogies 나 뭐 멋쟁이들 패션몰에 가보면 이런 손뜨개질한 것으로 인테리어 장식을 하는 곳이 많다.)  그런데, 내가 작품을 살펴보니 파스텔톤으로 일치시킨 2호 작품보다, 야수파 그림을 연상시키는 1호 작품이 더 근사해보인다.  1번은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짠거고 2번은 일부러 실의 색깔을 잘 골라서 짠것인데, 우연성에서 빚어진 서툰듯한 작품이 오히려 예술성이 높아 보인다.

 

 

소파등에 걸쳐진 것이 1호

파스텔 계열의, 왕눈이가 덮고 있는것이 2호.

 

 

집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저 털실 뭉치가 한바구니 가득있다. 이불 하나 더 짜도 될 분량이다... 요새 털실들이 자꾸만 나를 유혹을 하는데... 아직 손은 못 대고 있다.

 

내가 이 Granny Square 라고 미국 사람들이 부르는 모티브 짜기를 시작한 것은, 다분히 Nanny McPhee 영화의 영향때문이었을것이다.  지난 여름에 Nanny McPhee Returns 라는 후속작도 극장가서 찾아 보았지만, 몇해전의 그 내니 맥피의 '색상의 감동'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내니 맥피에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나오는데, 그 아이들의 침대가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었다. 모두, 손뜨개한 이불들이었다. 그때, 그것이 너무너무 예뻤던거라...  (나는 지금도 내니 맥피 1편 2편 디비디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색깔이 너무 예뻐서.)

 

나는 모티브 짜기 해서 조끼도 만들어 입고 싶고

모티브 짜기 해서 목도리도 만들고

모티브 짜기 해서 모자도 만들고

모티브 짜기 해서 방석도 만들고

온통 네모 네모 네모를 짜서 이리저리 연결시키면서 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시작을 못한다. (그거 시작하면 폐인 될까봐.)

 

이제 결전의 나날들이다.

Thanks Giving 휴가기간동안 찬홍이 어플리케이션 준비 작업을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입학신청 절차를 모두 마치고 크리스마스때 놀겠다는 야심찬 계획.  오늘도, 학교 카운슬러에게 보낼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데, 찬홍이는 온종일 작업하고 있고, 나는 골치가 아파서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다. 나도 어서 작성해서, 오늘 계획한 것을 모두 마쳐야만 한다...

 

대학원생들은 기말 프로젝트때문에 난리가 났을것이고, 나는 나대로 할일이 태산이다.  살면 살수록 더 큰 파도가 몰려오는것 같아.  그래도 학생때는 손뜨개 이불도 만들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여유도 없으니, 사는게 왜 갈수록 힘들어지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이레놀이나 먹고, 마저 일을.

 

아, 12월 3일에는 스미소니안에서 인터뷰가 있다. 그것도 잊으면 안된다.

 

 

조각이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이렇게 야금야금 다채롭게 만들어내는 삶이, 좋더라...

 

 

'Diary >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땡이의 변신  (2) 2011.04.20
지팔이 한국 가던날 새벽  (4) 2011.01.09
Life is Good  (0) 2010.10.25
왕땡이를 위하여  (2) 2010.08.06
친구  (2) 2010.08.04
Posted by Lee Eunmee
Pop Art2010. 11. 19. 04:45

2010년 10월 20일 워싱턴 디씨, 스미소니안 초상화 박물관에서 촬영

 

퀴즈 1)  작품속의 이 사람은 누구 일까요?

 

     문: 아니 뭐냐, 왜 이렇게 쉬운 문제를 내는거냐? 함정인가?

     답: 아니 함정 없는데요. 그냥 맞추시라고...

   

 

퀴즈 2) 이것은 누구의 작품 일까요?

 

퀴즈 내고, 나중에 이야기 하는 방법도 재미있겠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과 작가를 연결지어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이 속에 미국 Pop Art 의 속성이 다 들어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니까, 작품의 주인공과 작가를 짐작한다면, 이를 토대로 스스로 한번 '팝 아트'가 이런것인가? 하고 논리화 할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사과씨 2010/11/16 12:41 답글수정삭제

레이건 전 대통령 같아요..^^
(지금 저자신을 시험 중..ㅋ)


내 친구 사과씨님이 나의 '문답식' 이야기에 답을 주셨으므로, 이야기를 하듯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정리를 해보겠다.

이 작품속의 주인공은 지금은 작고한  Ronal Reagan (1911-2004) 전 미국 대통령이다. 이 작품은 1985년, 그러니까 앤디 워홀이 사망하기 2년전, 레이건 대통령 재임중에 제작된 것으로 워홀은 1953년 영화배우 시절 레이건이 등장했던 남성복 Van Heusen 의 광고를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옮겨다 놓았다. 다시 말해서, The new revolutionary collar on Van Heusen centry shirts won't wrinkle... ever! (이 벤 휴센의 신세기 셔츠의 새로운 혁명적 칼라는 절대 주름이 생기지 않습니다!) 도 모두 그대로 광고에 있던 것이다.

상단의 필름 스트립같은 네모칸 속의 문안도 살펴보자:
You can twist it 비틀어도
You can twirl it  돌려도
You can bend it 접어도
You can curl it  구부려도

 

그러니까 아무리 잡고 비틀어도 절대 주름이 생기지 않는 혁명적인 셔츠라는 광고이다. 요즘 식으로 따지면 wrinkle free shirt 쯤 되겠다.

 

이 작품 한장에서 나는 '팝 아트'의 진수를 모두 찾아볼수 있다고 가늠한다.

 

팝 아트는 Populist Art 를 줄인 말이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Populism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매우 부정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뭐 대략 '저급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저급 문화'쯤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나로서는 이 Populism 을 중립적으로, Elite 주의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나는 내 성향적으로 사회의 엘리트가 되어서 살아가기보다는 대중속의 평균인이 되어 살기를 희망하는 편이고, 그래서 평균인들의 집단인 대중, 그  populist 들과 연대하기를 꿈꾼다. 그것이 나의 포퓰리즘이다.  미국의 팝 아트는 엘리트 아트에 대한 반발이다. 엘리트 아트란 무엇인가?  소수의 상류층이 향유하던 고급 예술을 가리킨다.  흔히 미국의 팝 아트의 원조를 앤디 워홀로 대충 파악하고 있으나, 미술사적으로 추적해 올라가면, 팝 아트의 원조는 영국이었다. 유럽이 2차대전의 폐허에서 날아든 것은 미국의 헐리우드와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 생산 제품들과 대중 문화.  디즈니 만화가 마릴린 몬로가, 공장 생산 배급품이 폐허를 점령해갔고 사람들은 물자의 빈곤에 시달렸다. 1953년에서 1956년 사이 (한국이 2차 대전의 종언과 함께 광복을 맞이하여 (1945) 건국을 하고 (1948) 그리고 다시 한국전을 거치고 난 그 시절, 영국에서는 헐리우드산 광고판이나 대중문화를 이용한 미술 사조가 잠깐 일어났었다.  이것이 미국 팝아트의 시발점이 된다고 미술사가들은 해석한다.

 

미국의 팝아트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

 

Jasper Johns (1930 - )  : 성조기, 과녁

Robert Rauschenberg (1925 - 2008) : 낡은 이불, 넝마, 꼴라쥬

Andy Warhol (1928-1987) : 공장 생산 깡통, 대중 적인 스타들, 이상한 영화들, 닥치는대로 무한 재생

Roy Lichtenstein (1923 - 1997) : 디즈니 만화를 크게 재생, 뭐든 크게

Robert Smithson (1938-1973) : 사막을 캔버스로 작업

 

위에 대충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들과 그들의 주요 작업을 내 식대로 정리해 놓았다 (나는 그들을 이런 식으로 기억한다는 뜻이다.) 팝 아티스트의 주요 작업에 들어가는 요소들을 다시 나열하여 보자.

 

  1.  삶속에서 발견되는, 그러나 그동안 정통 화단에서 외면되어 왔던 다양한 소재, 성조기, 과녁, 만화, 깡통, 상자, 대중적인 여배우, 평범한 일상, 간판, 땅, 대지, 넝마 쪼가리, 코골고 자는 남자
  2. 대량 생산 체제 (mass production): 깡통, 포장 상자, 만화책 쪼가리

 

이상의 요소들이 팝 아트를 구성하는 성격이라고 한다면, 위의 레이건의 초상에서 어떤 식으로 반영이 되었는지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일단,  이 초상화는 워홀이 레이건 대통령 재임시에 제작한 것인데, 원래 그가 빌려온 소재는 195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영화배우를 하던 시절의 광고였다.  그러면 이 작품만 들여다보면 뭐가 보이나?

  1.  대중의 스타, 배우가 보인다
  2. 그는 현재 진짜 스타 - 대통령이다.
  3. 이것은 광고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광고이다)
  4. 워홀은 남이 만든것을 빌려다 재활용 했다.
  5. 낡은 광고를 커다란 작품으로 확대 재생 시켰다. (--> 리히텐시타인을 연상케하지 않는가?)
  6. 이것은 공장에서 찍어낸 나이롱 샤쓰를 광고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깡통과 다를것이 없다)
  7. 기존의 드레스셔츠의 개념은, 다림질을 빳빳이 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high art), 이 나이롱 셔츠는 주름이 가지 않아 다릴필요가 없다 (low art = pop art) --> 지금도 진짜 멋쟁이 남자들은 이런 드레스셔츠를 거부하고 풀먹이고 다림질해야 하는 정통 셔츠를 고집하는데 그것이 정말 고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 주름이 가지 않는 나이롱은 그자체가 싸구려 미덕이라고 할만하다. 아주 대중적이라는 뜻이다.
  9.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초강대국의 황제와 같은 위치이지만, 그는 전직 대중배우이다.  대통령이라는 현재 직업도 수퍼스타급이지만, 그의 과거 경력 역시 대중문화의 수퍼스타였던 것이다.
  10. 광고 문구를 보라, new, revolutionary, century, won't wrinkle!   이 문구에서 셔츠라는 말만 빼면 그대로 대통령을 위한 홍보물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비틀고 돌리고 접고 내동댕이를 치고 발로 밟아도 전혀 흠집하나 만들어 낼수 없는, 이 위대한 '나이롱' 샤쓰. 이것은 얼마나 위대한 아이러니인가?

 

 

 

 

 

애초에 1950년대에 만들어진 셔츠회사 광고는 셔츠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레이건의 정체성과는 크게 연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30여년 후 1985년에 앤디 워홀이 기존의 광고를 집어다가 자신의 작품으로 재 탄생 시켰을때, 워홀의 작품 속에서 이 광고 초상화의 주인공은 샤쓰가 아닌 레이건이 되고, 광고 문안은 샤쓰를 위한것이 아닌 레이건을 정의하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광고를 빌려다 쓰는건 워홀이 아니라도, 누구든 할수 있다. 하지만, 워홀의 시각 속에서 광고는 초상화가 된다.  워홀이 애초에 이 광고를 기획한 것도 이 광고에 참여한것도 아니었다. 워홀은 기존에 이미 남이 창조해 놓은 것을 가져다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내 놓았다.  그리고, 이것이 '팝 아트'이다 -- 손끝에 널려있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 혹은 공장에서 아무 개성없이 대량 생산한 것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 구성하는것.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예 작품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머리로만 개념을 만들어서 작품을 탄생시키는 사람들이 Conceptual art 작가들이다.).

 

 

* http://www.tvparty.com/movreagan3.html  <-- 오리지날 광고 이미지를 볼수 있는 곳.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0. 11. 19. 00:46
BMA 제공 팜플렛 사진 일부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15709
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요즘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 미술관(The Baltimore Museum of Art)에서는 Warhol The Last Decade(워홀 마지막 10년)라는 주제의 앤디 워홀(1928~1987)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10월 17일에 전시가 시작되었으며 내년 1월 9일까지 이어질 것이다.

워싱턴 지역에서 사는 것의 장점으로, 나로서는 아무 때나 무료로 드나들 수 있는 각종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들 그리고 아름다운 포토맥 강변의 트래킹 코스를 망설임 없이 꼽는다. 볼티모어 역시 워싱턴 지역에서 한 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의 역사적인 항구 도시이고, 이곳에도 꼭 가 볼만한 미술관이 몇 군데 있다. 볼티모어 미술관의 특징은 유럽 미술의 거장 ‘앙리 마티스’ 컬렉션이 미국 내 최대 규모로 있다는 것이고, 유럽과 미국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요소요소에 숨어있어 숨바꼭질하듯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앤디 워홀 기획전을 한다기에 아들 녀석과 함께 미술관 산책을 다녀왔다.

워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앤디 워홀’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다. 알록달록한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 실물과 일치하게 그려낸 캠벨 수프 깡통 그림. ‘전기의자’라고 불리는 사형대 사진. ‘도대체 이것이 그림이야 장난이야? 이것이 예술이야?’ 우리는 의문에 빠질 수도 있겠다.

워홀은 미국 미술사에서 ‘팝 아트(Pop Art)’ 예술가로 분류되는데, 이는 대중생활 속에서 모티브를 얻고 대중과 호흡하는 미술 조류를 일컫는 것이다. 미국의 팝아티스트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이들은 앤디 워홀 외에도 미국 성조기를 다양하게 표현해낸 제스퍼 존스(Jasper Johns)나 낡은 이부자리에 물감을 흩뿌리고 폐품을 수집하여 콜라주를 시도한 라우셴버그(Rauschenberg) 등이 있다.

워홀은 사실 ‘워홀은 이것이다’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작업을 펼친 작가인데, 피츠버그의 카네기 대학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한 그는 뉴욕 맨해튼으로 가서 광고미술가로 활약을 하였다. 너무나도 재능이 넘쳤던 그는 상업미술에만 안주하지 못하고 다양한 디자인과 새로운 영역의 미술 분야로 넘나들었다. 그는 폭발하듯 다양한 작업을 거치면서, 그동안 예술의 소재가 되지 못했던 우리 삶 속의 다양한 요소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깡통 음식 혹은 포장 상자의 무한 재생 작업, 의문의 죽음을 당한 여배우 사진의 무한 재생, 전혀 영화 같지 않은 일상의 지루한 영화들이다.

이번 특별전에 선보인 워홀의 작품은 무엄하게도 종교적 아이콘 예수의 무한 재생이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작품을 영사기로 되쏘는 식으로 본뜨기를 한 후에 스크린 작업을 하는가 하면, 역시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예수의 얼굴 이미지를 캠벨 깡통처럼 100회가 넘도록 반복 재생시켰다. 그리고는 길거리 낙서, 그라피티를 연상케 하는 작품 속에 문제의 예수 얼굴을 삽입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신성모독인가 신성의 대중화 인가?

혹자는 1987년 의문사한 워홀의 사망 원인과 그가 말기에 작업했던 예수 이미지의 신성모독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의 죽음은 그가 즐겨 작업했던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죽음만큼이나 의문을 남기고 있다.

볼티모어 미술관(http://www.artbma.org/)은 평소에도 다수의 워홀 작품을 전시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이 기획전 뿐 아니라 상설전시장에서도 워홀의 주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기획전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상설 전시장의 작품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참고로 전시 기간 중 오는 21일까지는 미술관에 음식 깡통 한 개를 가져가면 성인 입장료 15달러에서 2달러 할인을 해준다.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에 사회단체로 보낼 캔 음식을 모으는 행사인가 본데, 깡통 모티브를 갖고 놀았던 워홀을 기념하는 이 아이디어 역시 워홀만큼이나 발랄해 보인다. 물론 나도 깡통 한 개 갖다 내고 입장료를 할인받았다. 유쾌했다.


앤디 워홀이라는 '거인'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어서 밍기적거리다가 장장 1년을 보낸것 같다.  (어쩌면 앤디 워홀이라는 거인 때문에, 내 블로그의 미국미술 정리가 자꾸만 미뤄진것 같기도 하고.) 이제 슬슬 어떻게든 이 큰 산을 넘어서서 내가 본래 계획했던 일들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절박한 느낌도 든다.  말 꺼냈으니 정리하면 되겠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