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 12. 22:4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40947




지난해 11월, 애리조나 주립대 학생인 브라이언 밸린저 (Balenger)는 믿어지지 않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전 기차역에 놓은 채 자리를 떠나서 잃어버렸던 가방의 주인을 찾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가방 안에는 그가 자동차를 장만하기 위해 마련한 현금 3300달러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그 가방을 발견하여 신고한 이가 노숙자, 영어로는 ‘홈리스(homeless)’로 생활하는 사나이였던 것이니, 그의 이름은 데이브 탤리(Dave Talley). 데이브는 4년 가까이 집 없이 떠돌고 있었다. 현금이 들어 있는 가방을 발견했을 때, 그는 분명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가방이 주인에게 돌아가길 원했다.

이 소식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감동한 시민들이 성금을 보내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그가 돌려준 3300달러를 상회하는 성금이 답지했고, 그는 직장까지 얻게 되어 ‘홈리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갈 집이 있고, 그를 기다리는 직장이 있는 그런 삶.



요즘은 ‘천부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소개되어 유튜브의 스타가 된 사나이가 화제다.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는 14년이 넘도록 자질구레한 사고를 치고 유치장을 드나들며 노숙자로 살아왔다. 마약과 술이 그의 타락의 원인이었던 듯 하다. 오하이오의 컬럼버스시에서 그는 ‘신이 선물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설명서를 목에 건채 구걸을 하며 지낸 지도 2년이 넘었다. 어느 날 지역 기자가 그에게 제안한다. “목소리가 정말 좋다면 1달러를 주겠소.” 그리고 이때 보여준 테드 윌리엄스의 너무나도 매력적인 코멘트가 유튜브에 올려지면서 그는 홈리스 역사상 전례 없는 스타가 되고 만다. 어느 텔레비전 쇼에서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술과 마약으로 방탕한 생활을 해서 내 삶을 망가뜨렸지만, 이제 마약에서 벗어난 지 4년이나 돼요!” 그는 분명 우연히, 기적적으로 걸인에서 ‘스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마약의 늪에서 빠져 나와 4년간 버틴 일 역시 내게는 기적처럼 보인다. 이는 그 스스로 노력하여 일궈낸 기적일 것이다.


지난 연말, 한국에서는 ‘맥도널드 할머니’라는 분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십 여 년 동안 트렌치코트를 단정하게 입고, 고운 은발을 멋스럽게 빗어 올리고 꼿꼿한 몸가짐으로 커피 전문점과 맥도널드 매장, 교회를 시계바늘처럼 규칙적으로 오가며 하루를 보내는 집 없는 여성. 그이가 불문학을 전공했고, 외무부에서 공무원으로 20여 년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것과, 오늘도 여전히 국내 신문과 영자신문을 읽고 영어로 일기를 쓴다는 것도 화제가 되었다.

그는 집 없이 떠돌되, 그가 상정한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포기 하지 않고 지루하고 고단한 시간을 버텼으리라. 그이에 대한 소식은 모 방송국에서 그를 밀착 취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이는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독립적인 삶을 희망했다. 이분의 근황이 궁금해 웹을 찾아봐도 딱히 시원한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 추운 겨울에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어느 매장 구석에 앉아 추위를 피하고 있을 듯 하다. 맥도널드 할머니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은 것일까?

나는 집 밖에서 잠을 자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심지어 텐트에서 야영을 한 적도 없다. 저녁이 되면 서둘러 집으로 가야 안심이 되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 내게 집 없이 거리에서 지낸다는 일은 ‘다른 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거리에 나가보면 분명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위에 소개된 분들의 일화에서 이분들이 나하고 한 치도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고통 받고, 그리고 자신과 싸우며 인간으로서 하루하루 견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가진 것 모두 잃었을 때, 내가 그들만큼 용기 있게 삶을 지탱 할 수 있을까? 새삼 묻게 되는 것이다. 겨울바람이 차다. 문밖은 더욱 추울 것이다.

이은미 2011, 1, 12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 9. 04:06




지팔이 녀석은 떠나기 전 날 밤까지 친구 만나야 한다고 돌아다니고, 그리고는 밤새워서 부엌과 거실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도대체 훤한 불빛과 달그락대는 소리 때문에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공항에 네시반에는 도착을 해야 해서 나도 자는둥마는둥하다가 세시반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나갈 채비를 했는데,  이놈은 밤새 무슨 멕시칸 음식을 만들어 놓았다.  (찬홍이 먹으라고.)

새벽에 떠나기 전에 왕눈이 끌고 나가서 산책시키고, 집 떠나기 전에 한장.

나: 야, 지팔아 너 한국 가면 이년 반쯤 후에나 미국에 돌아 올텐데, 그때 왕눈 할아범이 살아 있을까?
지팔: 오늘 보는게 마지막이 아닐까요?
나: 염려 말아라, 왕눈이는 완전 '건강남'이니까 잘 살아있을거다. 그 전에 내가 한국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지팔: (왕눈이에게) 왕눈아, 왕눈아, 이 놈아, 너는 내가 간다는데 잘 가란 말도 안하냐?

왕눈이와 지팔이는 우리가 함께 살아온 6년이 넘는 세월동안 '앙숙'으로 지냈다.  왕선생이 일방적으로 지팔이를 무시했다. 으르렁대거나 물으려고도 했다. 언젠가 지팔이한테 으르렁대다가 뺨에 한번 이빨자국을 낸 적이 있다. 지홍이 뺨이 긁힌듯 핏자국이 약간 생겼다.  왕눈이는 그날 나한테 죽도록 맞아 터졌다.  그 후에는 함부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데, 그래도 지팔이와는 늘 으르렁댄다.  아웅다웅하면서 정이 들어버려서 줄창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지팔이의 소원이, "나도 나중에 돈벌면 강아지 한마리 사가지고, 내가 오냐 오냐 키울거다. 왕눈이 너떠위는 쳐다보지도 않겠다" 이런거다.  다른 개를 더 사랑하는 식으로 왕눈이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이다. 그 발상이 참 애처로워서 내가 웃고 만다.  그렇게 지팔이는 왕눈이를 위한다. 일방적 짝사랑이라도 왕눈이를 잊을수는 없다는거다.

내가 잠 안와서 뒤척거리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다보니 지팔이와 왕눈이가 두런거리는 소리도 난다. 이런 식이다.

지팔이: 왕눈아 왕눈아, 너 내가 가면 어떻게 살지?
왕눈이:  갔다가 빨리 와 이놈아
지팔이: 너 내가 어디가는줄 알아?
왕눈이: 너 이녀석아 기숙사에 가는거쟎아. 까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지팔이: 왕눈아, 나 한국가는거야.
왕눈이: 한국은 또 뭐냐? 맛있는거냐?

지팔이와 왕눈이가 대화를 한다고?  그렇다. 우리 식구들은 이런 식으로 왕눈이와 대화를 한다. 왕눈이를 데리고 앉아서 혼자 일인 이역으로 종알대는 것이다. 지팔이와 말상대를 할때 왕눈이는 늘 이놈아 저놈아 이런식으로 지팔이를 부른다. 건방을 있는대로 떤다.  아마 우리 식구들은 이런식으로 약간 정신나간 일인이역 쇼를 하면서 이 미칠것같은 세상을 견뎠을 것이다. 왕눈이는 말하자면, 우리들의 카운슬러였던 셈이다.

식구들이 두명이 한국으로 가버리고, 왕눈이는 시무룩하게 누워있다. 어제 나는 온종일 침대에서 자거나 깨거나 또다시 잠드느라 꼼짝도 안했는데, 그렇게 24시간을 보내고 나와보니 왕눈이가 식당 구석에 상태가 안좋은 똥을 싸 놓았다. 지금은 멀쩡하다. 왕눈이가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우리 말을 대개는 다 알아듣고 있을 것이다. 왕눈이는 그리워도 그립다는 말을 못하니 참 답답하겠다.





지팔이놈이 어질러 놓고 간 부엌이며 거실을 두시간 걸려서 말끔히 치웠다. 각자 열심히 살아야 하는거다.

'Diary >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둥 번개가 무서운 왕눈이  (0) 2011.04.25
왕땡이의 변신  (2) 2011.04.20
My Granny Squares 조각 뜨개 이불  (4) 2010.11.22
Life is Good  (0) 2010.10.25
왕땡이를 위하여  (2) 2010.08.06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1. 6. 12:53
















WednesdayColumn 카테고리는 지난해 8월부터 모 일간지에 수요일마다 실리는 2,000자 칼럼을 모으는 곳이다. (편집자가 딱 2000자로 적어 달라고 해서, 매주 2000자를 정확히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다. 대개 3000자쯤 적은 후에 1000자쯤 날려버리는 식이다. 글을 간결하게 쓰는 연습을 하게 된다.)  가끔 보면 내 글이 LA 지역의 일간지에도 소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글에 상이한 타이틀이 달리기도 하는데 나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타이틀까지 달아서 보내면, 워싱턴의 편집자가  타이틀을 바꾸거나 혹은 내가 보낸것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해서 신문에 싣는다.  나는 편집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에 타이틀의 변화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때로는 편집자가 달아 놓은 타이틀이 훨씬 내 맘에 들기도 하고 그렇다.  LA에서 내 글을 가져다 쓸때에는 글의 일부가 잘라지기도 하는데, 내 본래 의도가 크게 훼손된 경우를 아직 못 보았으므로 그냥 지켜 보고만 있다.

집에서는 신문 스크랩을 해 놓았는데, 그래도 야금야금 쓴 것이 꽤 모였다. 불특정 주제의 잡문이라서 신경을 안 쓰고 지냈는데, 그래도 칼럼 카테고리에 정리 해 놓으면 나중에 자료화 할 때 편리할 것 같아서, 그리고 한국 식구들이 애써서 찾아보지 않아도 되도록, 내가 블로그에 모아 보기로 했다.

나는 정치 사회적으로 시사성이 강한  글을 안쓰려고 작정했는데, 관심이나 생각이 없어서는 아니고,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바람소리나 꽃이 피는 소리, 청개구리가 폴짝 뛰는 소리, 물고기가 즐거워서 물위로 점프하는 소리, 그런 미세한 소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좀 재미있는 현상은, 내가 제법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되는 글을 쓰면 그 글은 페이지의 머리 부분에 편집이 되고, 그 외의 글을 적으면 페이지의 하단에 편집이 된다는 것이다.  신문 면 편집자들은 정치 사회적 글은 머릿 기사가 될 만하고, 삶과 관련된 글은 대충 아무데나 편집해 실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신문 편집을 한 어두운 과거가 있으므로 편집자의 머릿속 그림을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런 모든 일들이 부질없어 보인다는 것이지.  그래서, 지금은 볕 좋은날 물속의 송사리떼를 들여다 보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http://search.koreadaily.com/search_result.asp?sch_col=all&query=%C0%CC%C0%BA%B9%CC+%B1%B3%BC%F6&revjamo

위 링크에 내 글이 차곡차곡 실려있는 편이다. 매주 즐거운 일 만 적을수 있기를 희망한다. 읽는 사람이 행복할수 있도록.

내 제자는 칼럼에 실리는 내 사진이 불만인 모양이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쁜데, 왜 이 사진을 싣느냐고 한다. (이렇게 말한다고해서 내가 점수를 더 잘 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더 예쁜 사진도 많은데 왜 하필 이렇게 평범한 사진이냐고 불평을 한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에게 대답해줬다, "사람이 인물이 너무 좋아도 못 쓴다. 그냥 평범하게 생기고, 눈에 안 띌 정도로 보기에 좋으면 된다. 내가 이 실력에, 이 인격에, 미모까지 대단한 줄 알려져봐라, 내 인생 얼마나 피곤해지겠는가? 은인자중해야 하는거지."  사실 그렇다. 가인박명이다. 나 때문에 나라가 뒤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경국지색). 나의 애국심을 누가 따르랴.

내 칼럼을 가장 열독하시는 분은, 워싱턴지역의 호랑이 사범님, 용인 태권도 관장님이시다. 관장님께서는 내 칼럼을 통해서 나의 근황을 세밀히 체크하신다. 그리고 응원을 보내주신다. 하하하. 우리 지홍이 찬홍이의 영원한 사범님 이시다. :)  관장님께서는 지홍이가 군대에 가서 고생할까봐 노심초사 하시는 중이시다. 아이들이 관장님의 사랑속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매주 열심히 내 글을 찾아 보셨을것이다. 내가 쓴 글은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여기 틀렸다'고 잔소리를 하셨었으니까.  어릴때는 칭찬은 안하고 야단만 치는 아버지가 불만이었는데,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애정이었는지를 나는 몰랐던거다. 나는 바보였던거다.

글을 잘 써보겠다.  지면 낭비가 안되도록. 기쁨으로 가득찬 글을.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1. 1. 5. 09:11

뉴스위크 10월 10일-17일자 (오늘 배달된 다음주 뉴스위크) 표지기사는 우리의 '뇌'기능을 어떻게하면 활성화 시키거나 발달 시킬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기사의 전반부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상상하는 '기억력증진' 관련 오해들을 언급하고, 담배의 니코틴의 긍정적 기능도 소개가 된다.  재미있는 내용들이 소개가 되는데, 간략하게, 기억력이나 문제해결 능력등 전반적인 뇌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세가지 방법. (너무 상식적이라서 그만 실망스러워지기까지 하지만, 원래 진리는 평범한데 있는거니까.)

첫째: 하루 45분, 일주일에 3회 이상의 걷기와 같은 단순한 유산소 운동이 기억이나 수행능력을 증진시켜준다고 한다.

둘째: 명상이 집중력이나 감각기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걸으면서 명상하면 일석이조겠다. 각종 종교의 기도의식도 이에 해당되겠다)

셋째: 비디오게임이 정신적인 신속성이나 유연성, 문제 대처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참고로 크로스워드 퍼즐과 같은 게임은 '전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거 백날 해 봐야 크로스워드 퍼즐을 잘 푸는 능력외에 다른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해결' 관련 게임은 전이성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게임을 하다보면 관련 기능이 일반적인 영역에까지 확장된다는 말이다. 

외국어 공부나, 전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 이런 것들이 우리의 뇌를 활발하게 유지시켜준다는 상식은 '정설'에 가까운 것으로 논의가 된다.  다음주 기사라서 현재 웹으로는 볼수가 없을것이다. 나중에 웹에 뜨면 연결하겠다.

lem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Springkles Cupcake, Goergetown  (0) 2011.03.13
포토맥강, 조지타운의 봄 (2011)  (0) 2011.03.12
Potomac: A November Morning  (0) 2010.11.15
[산책기록] 2010년 4월--> 10월 현재  (10) 2010.11.14
Brain Fruit: "Osage-Orange"  (2) 2010.11.09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0. 12. 31. 11:52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35012
어제 나는 울었다. 내가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어제는 정말 엉망이었어. 그래서 아마도 하느님이 매일 새 날들을 만드나 보다. 오늘도 배는 고프지만…’

흑인 십대 소녀 클래리스는 미혼모의 가정에서 학대 받으며 자라났고, 근친에게 강간당하여 애를 낳고, 또다시 임신을 했고, 에이즈에 감염된 채로 살고 있다. 뚱뚱하고 못생겨서 주위 또래들의 조롱을 받고, 사방을 둘러봐도 친구가 없다. 그날 아침에도 클래리스는 끼니도 굶은 채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나날들을 반추하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하느님은 인생이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을 선물하는 것 같다고.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을 뒤흔든 영화 ‘Precious’에서 주인공 프레시어스 클래리스가 주린 배를 안고 내뱉는 독백이다.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나면 이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침은 밝아온다. 그러면 우리는 어둠을 잊고 다시 기운을 내어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태양의 아이들이니까.

시간이란 개념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흐르는 시간의 단위를 계산해내고, 하루, 한달, 일년이란 이름을 붙이기까지는 긴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인간은 하루하루 흘러가는 날들과 지구의 자전, 공전 주기를 엮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일년으로 나이를 셈하게 되었다. 지구는 공전을 반복하지만, 우리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eitos)의 말처럼, 시간을 되풀이 하여 살 수는 없다. 해는 매일 떠오르지만 우리의 매일은 새롭다.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흑인 소녀 클래리스는 생각한다, 매일 새로 열리는 아침은 절대자가 만들어낸 선물이 아닐까 하고.

2010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의 한 해를 돌아보니, 기쁜 일도, 힘겨운 일도 많았다. 한 해를 전쟁 치르듯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공들인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불운도 겪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온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우리 남매들이 모두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시절, 아버지는 어느 겨울밤에 우리들을 모아놓고 종이를 한 장씩 주셨다. “이 종이에 일년간 잘했던 일, 잘 못 한 일을 적고, 그리고 내년의 희망을 적어보아라.” 우리들은 무릎을 조아리고 앉아서 열심히 그 흰 종이에 여러 가지를 적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일등을 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던가, 매일 일찍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어머니 심부름도 열심히 하겠다던가, 그런 어린 아이들의 ‘착한’ 꿈들. 아버지는 나중에 그 글쓰기의 의미를 설명 했다. 꿈이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가다 보면 설령 계획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해도 아무런 계획 없이 사는 것보다는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몇 해 동안 아버지는 연말이면 그것을 적어서 내라고 했고, 우리들의 신년계획은 아버지의 책상 서랍 속에 자물쇠로 채워진 채 보관되었다. 그 행사도 우리들이 각자 머리가 커지면서 사라졌고, 우리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갔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밀봉된 아버지의 서랍 속의 서류 뭉치에서 우리들은 어릴 적 우리가 적어 냈던 새해 계획들의 흔적을 읽어 볼 수 있었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던, 철부지 아이들의 신년 계획을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의 서랍 속에 보관하고 계셨다는 것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었다.

이제 며칠 후면 2011년이 밝는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이지만, 우리는 어느 하루를 1월 1일로 정하고 새로운 포부와 희망을 갖고 새로운 날들을 향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가 된다. 그 새로운 한 해가 특별히 빛나고, 기쁨으로 가득 차길 소망해 본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매일 새로운 태양과 매년 새로운 첫날을 선물해 주셨으니, 우리는 기쁘게 그 나날들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다. 오늘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신년 설계를 해 봐야겠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