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0. 5. 4. 10:30

 

 

2010년 5월 3일 월요일.

간밤에 폭우, 아침에도 집중적인 소나기.

새벽에 일어나 책상머리에서 온라인 수업 자료를 챙겨서 보내놓고,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연구실로 나가는 대신에, 비온 후의 상쾌함을 맛보기 위해서 포토맥강변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강변에 나가기 전에 왕눈이를 한번 안아주고.

 

비가 그쳤지만,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어서, 비가 다시 쏟아질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런 흐린 날씨가 산책하기에는 가장 알맞다.

가볍게 조지타운까지 걷다 오려고 작정하고 나간 것인데 (비 온후에 터키런 같은 숲길은 위험하다. 길이 질척거리고 그리고 바위나 나무가 미끄러워서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Fletcher's Cove 앞을 지나다가 배와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가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자전거를 타보면 어떨까?

즉흥적으로 자전거에 눈길이 꽂혀서, 그걸 타고 한바퀴 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내판에 나와있다시피, 자전거는 한시간에 7달러, 하루 28달러 대여료를 받는다.  시간당으로 계산이 되다가 28달러 이상 넘어가면 하루 대여료로 내면 그만이다. (네시간을 타건 다섯시간을 타건 마찬가지라는 말씀).

 

자전거 (혹은 카약이나 보트)를 빌리기 위해서는 신분증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카드나 현금으로 계산을 하면 된다. 신분증은 나중에 자전거나 배를 반납할때 돌려받는다. (신분증 없으면 대여할수 없다.)  사진속의 점원 아저씨가, 성품좋게 생긴 미남이고, 그리고 친절하다. 간단한 음료와 스넥도 판다.

 

 

 

 

 

 

나는 일단 한시간 대여료를 냈고, 나중에 돌려줄때 시간초과를 할경우 정산을 하기로 했다. (그쪽에서 한시간 비용만 받고 나중에 정산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장면을...나는 무척 좋아한다.

길 왼편으로는 바다같이 넓고 느긋한 포토맥강이 유유하게 흐르고

길 오른편으로는 운하가 흐른다.

나는 물위에 난 길을 통과하는 것 같아.

이런 길이 Great Falls 로 향하는 11마일 내내 이어진다.

한편에 강, 또 한편에 운하.

 

 

 

 

흰 건물은 Lock House 라고 한다.  포토맥 강변의 운하 (이 운하 길이 200마일 이어진다, 워싱턴 디씨에서 시작하여 멀리 오하이오에서 끝난다. 그래서 Chesapeake Ohio Canal 이라고 부른다) 이 운하의 수문이 1-2마일마다 있는데 (물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배를 움직이게 해준다)  그 수문 관리인 가족이 살던 집을 Lock House 라고 부른다.

 

현재 이 200마일 (100 마일은 160 킬로미터) 의 운하는 운하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이 200 마일에 이르는 운하길을 국립 공원으로 지정하여 자연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다닐수 있도록 길을 유지보수하거나 나무며 자연환경을 관리를 하지만, 그 외에 인공적인 구조물은 없다. 가게도 없다. (물 사먹을 간이점도 없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언젠가는 이 집에 가족이 살았고

아이들은 부모를 도와 수문을 여닫는 일을 했을 것이다.

 

 

 

 

 

오래된 마일 스톤 (Mile Stone : 이정표 : 몇마일인지 표시하는 돌)이 보인다.

9 miles to W.C 라고 적혀있다. 

워싱턴 디씨까지 9마일 남았다는 뜻이다.

내가 강변에 가면 대개 3.5마일 지점에서 조지타운까지 가므로 왕복 6마일로 환산을 하는데

이곳은 내가 평소에 산책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조지타운 반대방향으로 (상류쪽으로) 5.5 마일을 올라온 곳이다.

 

옛날에는 Washington D.C. 를 W.C 라고 표기했나보다. (혹은 D자가 마모되어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릴랜드 방향의 Great Falls Park 진입로. 이쯤에서 반환

 

이곳을 지나치니, 2008년 12월이던가, 몇몇 지인들과 이곳을 산책한 일이 생각난다.

그중에는 '친구'라 부를만한 이도 있었고, 그냥 아는 분이라고 할 만한 분도 있었고.

겨울이었는데 날이 포근했다.

산책을 마치고, 일행중에 내가 '정경부인'이라고 일컬었던 '마님'이 집에서 국수나 먹고 가라고 제안을 하셨다.  그래서 산책 마치고 그댁에 들러서 멸치국물에 소면 말은것을 잘 먹었다.  그 부인이 내가 고기국물 안 먹는걸 아시고, 내게 뭘 먹일때면 신경을 많이 쓰셨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  이사한 후에 일부러 우리집에 '간장 한통'을 주려고 먼 걸음을 하셨다.  친정 어머니께서 손수 빚으신 아주 귀한 조선간장인데, 그걸 타향살이하면서 아끼고 아끼다가 귀국을 하시면서, 내게 주려고 일부러 빗속에 다녀가셨다.

 

그 조선간장 (우리 집안에서는 이걸 조선간장이라고 부른다.  '왜간장'에 대별되는 '자존심'있는 간장, 그것이 바로 조선간장이다) 을 나는 미역국 끓일때마다 넣어 먹었는데, 이제 잼병으로 두병이 남았다. 저거 다 먹으면 그다음에는 사먹어야 할 판인데, 조선간장은 집에서 담아야 제맛인것을 나는 안다.

 

 

 

 

 

 

Great Falls 에서 반환하여 돌아오는길.

 

 

 

 

오후 한시쯤에 Fletcher's Cove 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출발했는데, Great Falls 까지 가는 11마일 동안, 중간에 멈춰서 자연관찰도 하고, 새 관찰도 하고, 학교에서 긴급회의 한다고 전화를 해대서 전화받고, 그러느라 지체되었다.  길은, 흙길에 자갈이 깔려있어서, 아스팔트에 비해서는 길이 매끄럽지 않아 힘들었다.  자전거 반환하러 가서 시계를 보니 네시간이 지나있었다. (오후 다섯시). 아아아.

 

출발할때는 두시간이면 왕복할줄 알고, 가볍게 생각하고 물 한병 가지고 갔는데, 네시간 돌아다니며 그 물 한병을 아껴먹어야 했다.

 

오늘 내가 자전거로 왕복한 거리는

2008년 11월에 온가족이 걸어서 왕복한 적이 있다.

그날 오전 열한시쯤 출발하여 다섯시쯤에 돌아왔는데, 중간에 비도 오고 아주 물에 젖은 생쥐꼴로 걸었었다.

오늘은

그 길을 나혼자 한가롭게 자전거로 돌았다.

그 길의 부분부분을 친구나 지인과 돌기도 했었으므로 내게는 익숙한 길이었다.

그런데 자전거에 앉아서 보는 세상은 걸을때와는 또 달라서

늘 새롭고, 아름답고 그렇다.

날씨도 비 온 후라 촉촉하고, 공기에서 수박냄새가 나고, 향긋하고, 뜨겁지 않아 좋았다.

 

아마도 오늘 내가 자전거로 타고 돈 거리가, 내 생애에서 자전거로 달린 가장 긴 거리일것이다.

어릴때 자전거타고 태릉에 간다던가, 강변에 간다던가 한 적은 있었지만, 오늘같이 진빠지게 달린 적은 없었다.  어릴때도 내가 포장된 길만 달렸지, 오늘같은 자갈길은 ... 아아아... 만만하게 봤다가 고생좀 했다. 하하하. 하지만 즐거웠다.  또 가야지....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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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Henry Ossawa Tanner (1858-1937)
Christ and His Disciples on the Sea of Galilee (ca. 1910)
Oil on artist's canvas board
2010년 5월 1일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버지니아 미술관)에서 촬영
크기는 대략 가로 20센티 세로 15 센티 정도로 추측됨 (작은 그림이었음)



버지니아 미술관이 대대적인 증축공사를 마치고 재 개관식을 하던날 (2010년 5월 1일) 미술관 방문을 하였다가 발견한 헨리 오사와 태너의 소형 작품. 갈릴리 바다의 예수와 그의 제자들. 성서적인 지식이 일천하므로 간단히 상식선에서 배경 설명을 하자면,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중, 스승께서 잠시 낮잠을 즐기고 계시는 와중에 풍랑이 몰아치는지라... 어리석은 제자들이 풍랑에 겁이나서 "스승님, 배가 뒤집힐 판국에 잠이 오십니까? (내식으로 대략)" 성화를 하니까,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나서 짐짓 짜증스러운 태도로 말씀하시다: "어리석은 제자들아, 내가 그동안 보여준 이적들을 보지 못했느냐?  내가 자는데 왜들 법석을 떠느냐.  풍랑이 그렇게 무섭다는 말이냐?"  예수께서 약간 성가신 표정으로 풍랑을 향하여, "시끄럽구나. 어리석은 내 제자들이 무섭댄다. 좀 조용히 해라" 하고 타이르시니 풍랑이 잠잠해지도다~

대략 이러한 일화가 전해지는 바, 그것을 태너가 화폭에 옮겼으리라 짐작된다.

헨리 오사와 태너는 유색인종이 인정을 못받는 미국의 풍토에서 흑인 화가로 성장한 사람인데, 종국에는 미국의 인종 차별에 진절머니가 난다며 유럽으로 건너가 버렸다 (1891년). 이 작품은 파리의 살롱전에서도 전시가 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던 빼어난 작품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헨리 오사와 태너의 '수태고지'  대형작품이 걸려있는데... 오사와 태너의 미술세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할때 함께 소개하겠다.

이 작품은 딱히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 일화를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고해와 같은 삶을 헤쳐나갈때, 풍랑이 몰아치고 배가 위험에 빠질때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세, 그런 성품을 키우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풍랑을 잠재우고 대양을 건너겠다는 자세로 하루 하루를 살아 나가고 싶은 것이다.








텍스트큐브가 '사실상' 서비스를 중단하겠다는 공지를 해서,
어떻게 할것인가 잠시 고민을 했다.
텍스트큐브를 블로그로 선택한 이유는,
조용하고, 눈에 안띄고, 그냥 조용히 혼자 놀기에 좋아보여서
그리고 구글이 관리한다니 데이타 잃어버릴 걱정을 안해도 될것 같아서.
지난해 5월에 만들어 놓고 있다가 8월부터 사용했으니까, 계정은 1년간 유지한 셈이다.

나는 이 블로그를 갖고 놀면서, 내 인생에서 힘든 오후의 한때를 무사히 건널수 있었다.
많이 아팠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시간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긴 하지만,
텍큐에서 블로그질하면서 스스로 정신상담을 주거니 받거니 한 것도 도움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미국미술 프로젝트를 아직 마치지 못했는데, 텍큐 쓰기가 애매해지고 말았다.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때까지는 계속 작업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계정을 하나 만들어놓긴 했는데
이삿짐을 옮길지 말지는 좀더 두고 볼 것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으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다지 미련을 느끼지 못한다. 아쉬움도 별로 없고.
완전 '유목민' 생활에 익숙해진 것도 같다.  :-)
어차피 나그네 아니던가.
아무튼, 시작한 일은 매듭을 지어놓고...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5. 2. 12:51

공식홈페이지: http://www.vmfa.state.va.us/default.aspx

 

버지니아주의 행정수도 (주도)는 Richmond 리치몬드시이다. 이곳에 버지니아 미술관이 있었는데, 지난해초부터 증축 공사를 한다고 일부 폐쇄하다가, 전부폐쇄하고 본격적으로 공사를 한것으로 알고 있다.  소장품의 일부는 지역의 다른 미술관들을 돌며 순회 전시가 되기도 하고 그랬다.

 

그 버지니아미술관 (Virginia Museum of Fine Arts)이 오늘 (2010년 5월 1일) 증축을 마치고 개장식을 하면서 다양한 개장 행사를 온종일 진행했다. 나는 열한시쯤 도착하여 오후 네시까지 있다가 나왔지만, 오늘 자정까지 미술관이 열린다고 한다.

 

 

나는 증축 이전에 이 미술관에 가 본적이 없으므로 얼마나 새로 수리된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직접 가서 보니 제법 큰 규모였다.  미국의 국공립 미술관들중에서 10대 미술관 안에 손꼽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견주면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미술관에 견주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러면 정말 미국의 십대 미술관중의 하나가 될수도 있겠다)

 

나는 큰 기대 안하고, 내가 평소에 보고싶어했던, 미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리치몬드까지 120마일 길을 달려갔는데, 막상 가보니 내 예상보다 규모가 커서 '감동' 받았다 (이럴땐, 이 미술관의 모든 소장품이 내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개념미술의 창시자인 Sol Lewitt 의 작품이 '정다운 음악'처럼 서있다. (아이좋아, 아이좋아, 좋아서 깡충깡충 뛰게 된다. 예상치 못한 명랑하고 생동하는 작품을 만나서)

 

 

 

 

 

 

 

 

일단 전체 소장품중에 미국미술품들이 걸작들이 많이 있어서 '너무 너무' 행복했고

미국 미술품 외에도 유럽이나 아시아 작품들도 골고루 구비되어 있었다.

워싱턴의 NGA 국립 미술관보다는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있지만, 국립 미술관에서 찾아보기 힘든 알토란 같은 작품들도 많이 있다.

 

작품사진은 300장 가까이 세밀하게 찍어왔으므로 차근차근 풀어 놓기로 하고,

오늘 나를 감동시킨 또다른 요소는, 미술관 재 개장식을 하면서 미술관측이 관람객들에게 보인 남부의 친절함 (Southern Hospitality) 이라고 할 만하다.

 

Southern Hospitality 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내가 살고 있는 북 버지니아는 미국의 '북부'쪽에 가깝지만, 버지니아의 수도인 리치몬드는 한때 남북전쟁 당시에 '남군'의 수도 였던 적도 있다. 남부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다.  같은 버지니아 이지만, 내가 북버지니아에서 차를 몰고 120마일을 남쪽으로 달려 내려갔을때, 리치몬드에 펼쳐진 풍경은 워싱턴 인근 지역과는 사뭇 달랐다.  '플로리다'를 연상케하는 따뜻함, 느릿함, 여유로움, 순한 표정, 느릿한 발걸음, 그리고, 아아, 특유의 남부 액센트와,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 흑인들.  워싱턴 인근 지역에서 흑인들을 많이 못봤는데, 리치몬드에 오니까 정겹고 순박한 흑인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여기 남부 맞구나... 고향에 돌아온듯한 따뜻함.)

 

내가 Southern Hospitality 라는 표현을 떠올린 이유는,  이 미술관이 오늘 방문한 '모든' 관람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먹고 마실수 있도록 음료와 간식을 '무한'으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술관에는 카페테리아와 레스토랑, 스넥바 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미술관 내부에 있는 카페테리아및 레스토랑, 스넥바, 그리고 코트야드에서 마치 호텔의 연회장같은 설비를 해놓고, 관객들에게 정중하고도 친절하게 음료와 가벼운 요깃거리를 온종일 제공을 한 것이다.

 

이들이 제공한 것은

  1.  각종 탄산음료수와 레모네이드를 얼음과 함께 유리잔에 담아주고, 빈 잔들을 즉시 치워서 항상 청결한, 준비된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는데...기다리는 줄도 없을정도로 기민했다)
  2. 카페테리아에서는 미국인들이 점심 대용으로 먹는 핫도그 (빵 사이에 소세지 낀것) 를 은박지로 포장해서 따뜻하게 해 두었다가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제공했다.
  3. 여러가지 쿠키도 쌓아놓고 누구든지 집어가도록 했다.
  4. 감자칩 스넥도 원하는 만큼 봉지를 집어갈수 있었다.

아침 열시부터 자정까지, 쉼없이 제공되는 음료와 간단한 먹을거리들. 

 

나는 처음에는 '음료수 정도는 기념으로 무료로 주나보다' 생각하고, 점심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서 카페에 들어갔는데, 가만보니, 아무도 돈내는 사람이 없는거다. 돈을 받는 사람도 없었다. 

  "이것이 뭔 일이다냐? "

나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2009년 1월이었나? 스미소니안 미국 역사 박물관이 보수를 마치고 재 개장을 했는데, 공식 개장전에 일부 인사들에게 미리 공개를 한 적이 있다.  그날 나도 구경을 갔었는데, 거기서도 음료와 가벼운 먹을거리를 제공했었다.  그때는 그냥, 음료와 스넥을 조금 나눠주나보다 생각했었다. 감동은 없었다.  오늘은, 음료와 식사를 제공하는 행사 담당 직원들, 혹은 일꾼들의 태도나 표정이 참 여유롭고 평화롭고, 느릿한 미소를 담고 있어서  미술관에 왔다는 느낌을 넘어서 '내가 참 복이 많구나. 이런 호사를 다 누리는구나' 뭐 이런 황송한 느낌까지.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을 접대할때는 이런 여유와 느긋함을 갖어야 하는거구나.  세밀하나 신경질적이지 않은, 남부 스타일의 친절함. 

 

오늘 개장일이라 끊임없이 미술관 여기저기서 각종 공연과 행사가 이어졌는데, 나는 미술체험 학습 코너 여러군데 중에서 스탬프 만들어 찍기를 해봤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종이에 연필로 스탬프 밑그림을 그린다

스티로폼 판 위에 밑그림을 올려놓고

연필심으로 선을 그려준다

스티로폼에 밑그림과 동일한 골이 패인다

 

 

스티로폼에 스탬프 잉크를 고르게 묻혀서

종이에 올리고

롤러로 꼭 눌러준다 (롤러가 없으면 두꺼운 책같은거 올려놓고 도장찍듯 압력을 가하면 된다)

 

 

완성.

 

 

 

 

오늘의 진정한 하일라이트는

  날으는 황금 퇴깽이

그리고

그리고

 

   내

 

호호호~

 

 

 

홈페이지를 보면 공식 그랜드오프닝 행사가 5월 1일과 2일로 잡혀 있으므로, 예측컨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성대한 오프닝 행사가 펼쳐질것이다.  일생에 한번 볼수 있을까 말까한 '미술관 개관 행사'이다. 

 

 

 

Posted by Lee Eunmee

 

명색이 '미국 미술 블로그'인데, 그동안 미술 얘기가 뜸 했었지요. (-.-)

 

벚꽃놀이 구경 간 김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에 설치된 George Segal (1924-2000)의 경제공황기 3부작 조형물을 사진기에 담아 왔습니다.  워싱턴 디씨를 관광할때, 아마도 디씨의 상징물처럼 화보에 소개가 되는 장소들로서는

 * 워싱턴 기념탑

 * 링컨 기념관

 * 호숫가의 흰 건물, 제퍼슨 기념관

 * 백악관

 * 국회의사당

뭐 이런 '하얀' 건물들일겁니다.

그런데,

호숫가의 제퍼슨 기념관, 그 눈에 띄는 하얀 기념관 건물에 가려진, 우중충한 색조의 '공원시설' 같은 장소가 있는데, 그곳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해서 제가 상세히 아는 것은 아니고, 그에 대해 얼핏 떠오르는 사항들은

 * 미국역사상 유일한 3선 대통령

 * 경제 대공황을 구제하기 위한 뉴딜정책

 * 미국인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자'라고 알려진 대통령

이런 사항들입니다.

 

그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제퍼슨 대통령 기념관 인근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미국 미술사'책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시대적' 작품이 있습니다. 회화작업도 하고 현대적 개념의 조각 작업도 했던 George Segal 의 3부작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1) The Rural Couple : 시골 부부 : 경제공황때 고통받던 농민들

(2) The Breadline: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경제공황때 고통받던 도시 빈민들

(3) The Fireside Chats: 노변정담 (난롯가의 대화) : 1933-4 년 사이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30여차례에 걸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라디오 연설을 했던 일화를 이 작품에 실은듯 합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한 사나이를 주인공으로 했습니다.

 

 

...작가인 George Segal 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FDR (루즈벨트 대통령 머릿글자만 부르는 약칭) 기념관에 서있는 이 세가지 작품들을 감상해주세요 (미니 카메라로 대충 찍은 사진이라, 사진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요...)

 

 

(1) 시골부부

 

 

 

 

 

(2)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 작품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유쾌하고 발랄하게 작품 사이사이에 줄을 서며 깔깔대는 학생들 (고등학생들로 보였습니다.)

 

 

 

 

(3) 난롯가의 대화 :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한 사람.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3. 19. 21:55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키브리지 왕복  (7마일)

오후 여덟시포토맥강 그리고 초승달

이사진 내가 봐도 참 좋다 :)

 

 

 

 

오후 일곱시 10분 Fletcher's Cove. 황혼

 

 

 

 

 

 

 

오후 여덟시 키브리지와 알링턴 시가지.

 

 

 

 

대략 왕복 7마일 거리  강변길 A 지점에서 출발 -- 키 브리지앞에서 반환

 

& 3월 15 : 2마일

& 3월 17:  2마일

 

 

한창 걷기 할때는, 매일 몇마일을 걸었는지 정리했었다. 올해는 이것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일이 분주하다...)  걸을때마다 정리는 해 놓겠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