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Art2011. 10. 24. 06:32

Cakes (1963) oil on canvas
Wayne Thibaud (1920- presently working)
사진. National Gallery of Art 동관 1층 2010년 1월 16일 이은미 촬영



집으로 날아온 Smithsonian Magazine 2011년 2월 호에 Wayne Thibaud 특집 기사가 실렸다.
http://www.smithsonianmag.com/arts-culture/Wayne-Thiebaud-is-Not-a-Pop-Artist.html
기사를 재미있게 읽고, 내가 갖고 있는 사진파일을 뒤져서 들여다본다.


Wayne Thiebaud (1920 - )   --'웨인 티보' 라고 발음한다-- 는 현재 91세의 현역 화가이다. 2차 대전후의 미국의 현대 미술을 주도했던, 앤디 워홀, 프란츠 클라인, 윌렌 드 쿠닝, 리히텐 스타인등 굵직 굵직한 인물들이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다.  오늘에서야 그의 이름 Thibaud 를 '티보'라고 읽을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이유는 아마도 그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몰라서였을것이다.  정확한 발음을 모를경우 기억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아마 잊지 않을것도 같다.)

미국의 현대 회화를 지나치다보면 '반드시' 큼직하게 그려진 파이 그림을 만나게 된다. 동글동글한 파이가 모여있거나, 하나가 있거나, 아이스크림을 아주 크게 그려놓거나, 캔디볼이 있거나 이런 그림들이 보인다. 큼직한 미술관에서 이런 그림을 한점 봤다면 '웨인 티보'라고 아는척을 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것이다.

이 다양한, 그러나 반복적인 케익 그림은 앤디 워홀의 '갭벨 수프 깡통' 그림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상품'을 그림에 담아 놓은 스타일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대중적인 상품들이 가지는 '미적 가치'를 워홀만큼 신나게 대변한 이가 또 있을까. 티보의 케익 그림 역시 이런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나는 일단 티보의 케이크 그림을 '팝 아트'에 끼워 넣기로 한다. 

그러나, 티보를 팝 아티스트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가 팝 아트만 한 사람이 아니므로, 그가 팝아트적 작품들로 유명해졌고,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진행중인 그의 예술세계는 팝아트를 넘어서 다채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소니안 기사에서는 (혹은 wayne thiebaud paintings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그의 매우 매력적인 풍경화들이 소개가 된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Richard Diebenkorn (1992-1993)의 풍경화 기법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는 티보의 풍경화는 간략하면서도 세밀하고 깊다.

스미소니안 기사를 읽어보면, 티보는 '만화가,' '광고미술가' 등의 이력을 거쳐 뒤늦게 본격 회화의 길에 입문하였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 미술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그 자신, 헐리우드에서 광고나 영화 광고 쪽에서 활동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앤디 워홀 역시 상업 미술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성장을 했다. 아무래도, 동부에서 앤디 워홀이 상업미술로 돈방석에 오르고 있을 즈음, 서부에서 웨인 티보가 비슷한 이력을 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만화,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광고제작등의 이력을 거쳐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열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의 그림의 소재들이 가게 진열대의 달콤한 케익, 사탕 항아리, 아이스크림, 오락기등인 것을 보면 광고쟁이로서의 그의 전력이 여전히 그의 회화의 밑거름이 되고 있지 않은가. 광고쟁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제품'들을 회화로 구현해 낼 생각을 했을까 말이다.

티보의 그림들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그림 소재가 된 것들의 일관성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생각해본다. ...음...문방구에 가서 문방구에 쌓인 것들을 사진기에 담아서 연작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문방구 풍경, 문방구 안의 아이들, 문방구 앞의 전자 오락기 앞에 앉아서 노는 아이들, 그 앞에 쌓인 장난감 뽑기 껍데기, 그 알록달록한 껍데기 뭐 그런것만 시리즈로. 

티보는 UC Davis 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70에 은퇴를 했는데, 그 후에도 지금까지 명예교수로 미술 특강을 하는데 여전히 학생들이 몰려 온다고 한다. 나이 90에 현역을 달리는 화가. 참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아래의 풍경화. 제목 Brown River, 2002. 그림이 빛에 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 책상 밑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는데도 아래 부분이 반사가 되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지도'와 같다. 헬리콥터나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장면 같은 풍경.  그런데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림자의 방향이 일관성이 없고, 그리고 색상이 참 다채롭고 깊다.  그림자의 방향이 왜 일관성이 없을까?  예컨대 왼쪽 상단 구석의 푸른 나무 그림자를 보면 태양이 그 뒷쪽에서 비치는 것 같은데, 강 오늘쪽 굽이진 강둑의 나무 그림자는 오른쪽 위에서 태양이 빛나는 것 처럼 보인다.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빛과 그림자의 이치만 안다면 금세 알아차릴 이런 방향의 불일치를 화가가 몰랐을까?  알았다고 봐야한다. 그러면 그는 왜 이런 장난을 했을까? 이 자도안에 모든 '시간성'을 다 집어 넣고 싶었던걸까? 

 

이렇게 아름다운 '지도' 그림을 보면, 나는 가슴이 쿵쿵 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 얼마나 매혹적인가.






아래의 그림은 Man in Tree (나무의 남자).  티보가 1978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아직도 작업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30년이 넘게 그의 품에서 색을 입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채색이 꽤나 깊다.  그래서인지 화면에서 보석같은 색감이 불빛처럼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찾았다!

http://americanart.si.edu/images/2004/2004.30.4_1b.jpg
티보의 풍경화가 어딘가 눈에 익어서 뒤져보니, 내가 그의 풍경화를 본 적이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1층.  에드워드 호퍼와 조지아 오키프 그림이 있는 전시장 왼쪽에 이 커다란 풍경화가 걸려있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이유도 모른채 서성이곤 했었다.  이 '지도'같은 그림 앞에서면, 뭔가 그리워진다. 자동차를 몰고 이 풍경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위) 2011년 1월 25일 작성


(아래) 2011년 2월 12일 (토) 방문,  작성 (사진 촬영: 박찬홍)
본 페이지 맨 위에 소개된 작품. National Gallery of Art 1층에 전시된 작품. (카메라가 바뀌어서 색감도 조금 차이가 난다). 대략 사람과 비교하여 이정도 규모의 작품.




같은날,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이작품을 보려면 에드워트 호퍼의 Cape Code Morning 이 전시된 뒷편으로 가면 된다.

위의 이미지를 보면 강물이 연분홍처럼 보이는데, 전시장에가서 원화를 보니 내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가 좀더 원화의 색감에 가까웠다. 강물이 노리끼리한 분홍빛에 가까웠다 (얼핏 노란 탁류를 연상시키는 색감이었다).







(아래) 2011년 10월에 이 전시장에 방문 했을때, 위의 LeVee Farms 가 걸려 있던 자리에 새로운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티보를 보러 가볼까...'하고 갔는데 새로운 작품이 걸려 있어서 예기치 않았던 선물을 받은듯 그렇게 반갑고 기뻤다.
이러한 풍경화는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활동을 한 리차드 디벤콘 (Richard Diebenkon http://americanart.tistory.com/1400  )의 풍경화와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두사람의 풍경화를 비교해서 보는 일도 재미있다.






(아래) 2011년 4월 12일, 대학원생들과 함께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필드트립을 갔던 날, 3층 링컨 갤러리에서 찍은 사진.  이 작품의 제작 년대가 1962년으로 표시 되어 있다. 미국에 앤디 워홀을 위시한 팝아트 운동이 불길처럼 퍼져갈때의 팝아트 작품으로 분류 될 만하다.  팝 아트 페이지에서 간단하게 적은 바 있듯이, 이미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 나온 대상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그냥 열심히 그렸다. 앤디 와홀은 스프 깡통이나 포장 상자를 그대로 베끼듯이 그려 댔고, 웨인 티보는 알록달록한 컵케이크들을 그려댔고. 그 와중에 이런 잭폿 기계도 그렸을 것이다.

2011년 4월 12일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링컨 갤러리.
Posted by Lee Eunmee



Photo by Lee, Eunmee, National Gallery of Art, September 5, 2010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9. 20:5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65796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1932~2006) 기획전이 국립 미술관의 동관에서 오는 13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다.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은 서관(West Building)과 동관(East Building)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관에는 세계 고전 미술이 망라되어 있고, 동관에는 현대미술이 주로 전시되고 있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2009년부터 In the Tower(탑에서)라는 타이틀로 타워 전시장에서 장기 기획전을 시작했다. 첫해인 2009년에는 미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인 필립 거스톤 (Philip Guston)을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기획전이 있었다. 이들에 이어 올 봄에 세 번째 기획전으로 백남준씨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6개월 이상 관객들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전에 소개된 필립 거스톤이나 마크 로스코는 특유의 자신만의 화법으로 미국 미술을 세계 미술계에서 한 단계 도약시킨 유태계 거장들이고, 한국계 백남준은 시청각 예술과 테크놀로지와 세계의 신화를 융합시킨, 미국이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거스톤과 로스코가 전시되는 중에도 나는 이 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었는데, 그 자리에서 백남준씨의 기획전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2월 국립미술관에 갔던 나는 백남준씨의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는 안내 포스터 앞에서 한국에 두고 온 친정 오라비를 만난 듯한 각별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는 달력의 3월 13일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개관하는 날 가서 그의 작품들을 보려고. 그리고 학생들과 필드트립을 갈 계획도 세워두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백남준의 입체적 비디오 아트 작품들 이외에 그의 회화나 스케치 작품도 별도로 공개가 될 것이고, 그의 삶과 예술과 관련된 영화도 한편 틀어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설령, 백남준에 대하여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고 해도 관객이 현장에서 그를 만나고 그를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1월 5일자 칼럼에서 국립미술관에 있는 그의 ‘엄마’라는 작품과, 2월 2일자에서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소장품인 Megatron/Matrix라는 작품을 소개한바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 국립미술관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거나 임대해온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는 백남준을 위시한 현대 비디오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한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 미술관(Virginia Museum of Fine Arts)에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부처(Buddha, Watching TV)’를 만나 볼 수 있고, 버지니아 남부 해안도시 노폭(Norfolk)에 있는 크라이슬러 미술관(Chrysler Museum of Art)에서는 햄릿 로보트 (Hamlet Robot)도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라는 기획전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도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비디오 아티스트’ 정도로 알았지만, 그 당시 전시장에서 만난 그의 회화 작품들이 내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1970년대 초반에 그가 스케치하듯 그려낸 작품들 속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스마트 폰’의 화면 같은 장면들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 때 백남준씨가 내 뒤통수를 한대 가격한 듯 한 충격을 받았다. 백씨는 오십 년 혹은 백년 후의 세계를 앞서 간 예술가처럼 보였던 것이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공부를 멈춘 적이 없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번개 같은 아이디어를 말로 천천히 표현하지 못해서 말이 종횡무진 건너뛰었다는 백남준. 그가 3월 13일, 우리 곁에 온다. 미국이 자랑하는 국립 미술관의 타워에 부처처럼, 선지자처럼, 그의 작품들이 온다. 전시회는 10월 2일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의 예술은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국립미술관의 백남준 특별전 관련 공식 페이지: http://www.nga.gov/press/exh/3376/index.shtm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3. 2. 20:38
워싱턴 디씨 내셔널 몰에 위치한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2월 27일부터 6월 5일까지 ‘신화의 창조자, 고갱(Gauguin: Maker of Myth)’이라는 주제로 고갱 특별전을 열고 있다. 지난 개관 일에 고교생 아들 녀석과 함께 이 행사에 참석하였다. 전시회의 개장과 관련하여 큐레이터의 특강도 있었는데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터이며 에딘버러 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벨린다 톰슨 (Belinda Thomson)이 본래 고갱 전시회를 기획한 의도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Why are you angry?

이 전시회는 고갱이 전 생애를 거쳐서 회화, 조각, 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궈낸 예술세계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고갱은 스스로를 ‘이야기꾼(teller of tale)’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작품들 속에는 신화적인 모티브가 풍성하다. 이 기획전은 고갱 개인의 신화, 프랑스 브리타니 지방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신화적 작품들, 남태평양 타히티 섬 지역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신화적 풍경들, 그리고 남태평양의 원시 신앙적 모티브 이렇게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고갱은 십자가의 예수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을 집어넣음으로써 가난 속에서 고통 받으며 예술작업을 하는 자기 자신을 순교자처럼 묘사를 한다거나, 구약에 등장하는, 야곱이 밤새도록 대천사와 씨름하는 상징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원시림 속에서 살아가는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낙원의 이브처럼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원시종교적인 소재와 기독교적인 요소들을 회화나 조각에서 접목시키기도 하였다.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은, 고갱이 자화상을 꽤 많이 그렸고, 혹은 그림 속의 등장인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많이 끼워 넣은 것으로 보아 꽤나 자기 현시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다는 평을 하기도 했고, 고갱의 그림에는 여자들이 주로 그려져 있고, 어쩌다 남자가 나오면 그것은 고갱 얼굴 같다는 독특한 평을 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의 작품들의 제목을 읽어보는 일도 유쾌한 놀이가 될 듯 하다. 가령 시무룩한 표정의 처자 곁에 마을 여인들이 다가오는 그림에 ‘너 왜 골났니?(Why are you angry?)’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가 하면, 두 처녀가 앉아있는 그림의 제목은 ‘너 언제 시집 갈거니?(When will you marry?)’다.

원시림 속에서 태평하게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풍경을 보면서, 그들의 말소리가 들릴 것 같은 제목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천국과 같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고갱은 먼 남태평양 원시림 속의 주민들을 그렸지만, 내게는 그이들이 앞개울에서 빨래를 하며 깔깔대던 처녀시절의 내 고모들 같기도 하고, 내 이웃 아주머니 같기도 하다. 고갱이 타히티의 삶을 그릴 때, 이미 그곳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고, 고갱은 그리운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주민들을 그렸다. 나 역시 이제는 ‘신도시’가 되어 아파트 단지로 뒤덮인 내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채 잊혀진 전설 같은 고향을 그리워할 뿐이다.

먼 남태평양의 주민들의 풍경을 보면서, 내가 고향을 떠올리거나 그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작품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정서에 있다. 단순화된 선, 면, 구도로 이루어진 고갱의 작품들 속에는 그 단순성을 뛰어넘는,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그리움이 있다. 그것을 이 전시회의 기획자는 ‘신화’라는 표현으로 풀어낸 듯 하다.

우리는 가끔 여행지의 미술관에서 띄엄띄엄 고갱을 만난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 덕분에 워싱턴에서 고갱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다. 미술책을 통해서 한 작가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살필 수는 있지만, 실제로 전시장에서 한 작가의 전 생애를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아무쪼록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어느 봄날 소풍 삼아 국립 미술관에 들러서 잃어버린 전설 같은, 혹은 깊은 우물 속의 신화 같은, 옛 동무들의 말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고갱의 그림들을 만나보시길. 입장료는 무료이나 우리가 얻는 감동은 값을 헤아리기 어렵다.

**

관련페이지: 스미소니안 잡지 3월 호에 고갱 특집이 실렸다.  해당 웹페이지에서 전시회 작품의 일부를 감상할수 있다.
http://www.smithsonianmag.com/arts-culture/Gauguins-Bid-for-Glory.html



 
Posted by Lee Eunmee
Scrap Book2011. 3. 1. 14:09




Gauguin: Maker of Myth (고갱: 신화를 만든 화가) 2011년 2월 27일 - 6월 5일

오늘 (2011년 2월 27일) 국립 미술관에서 고갱 기획전이 열렸다. 오는 6월 5일까지 동관 (East Building)에서 진행된다. 실내 사진 촬영은 금지. 전시회에는 내가 모마나 메트로 폴리탄, 그리고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도 와 있었다. 특히나 크라이슬러 소장품은 어찌나 반갑던지.


http://americanart.tistory.com/192
바로 이 그림이 크라이슬러에서 출장 나온 작품.


아래 작품은 2009년 9월 27일 뉴욕 현대미술관 (MOMA) 에서 찍은 작품 사진. 역시 이번 전시회에 이 세마리의 강아지가 출장을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내가 이 작품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모마에서 이 그림을 보면서 집에 있는 우리 왕눈이 생각을 하고, 강아지를 유심히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이 강아지 그림의 디테일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폴 고갱의 따뜻한 심성이 느껴진다. 영국 큐레이터 벨린다 톰슨은 이 작품에 대하여, 고갱이 왜 이 그림속의 강아지나 다른 사물들을 세개씩 매치를 시켰는지가 미스테리라고 말했다.




모마 사진들을 들여다보던중 발견한 것, 우연히 이 강아지 그림을 모마에서 보던 그날도 그리고 워싱턴에서 이 강아지들과 다시 상견례를 하던 이날도  나는 이 올리브색 면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강아지들은 아마도 내가 입은 셔츠를 보고 나를 기억해 냈을지도 모른다. 이 셔츠는 순면이고, 그리고 아주 크고 부드러워서 외출 할때도 많이 입고, 여차하면 3박4일 씻지도 않고 집에서 뒹굴때도 잠옷, 실내복,, 내복 으로도 잘 입는다. 만능 셔츠인 것이지.




개관 하는 날이고, 일요일이라 전시장에 관객이 많이 붐볐다. 평일 오전에 다시 와서 봐야지. 한가하게 찬찬히 볼수 있도록.  전시회를 둘러보고 기념 특강전에 시간이 좀 있어서, 미술관 책방에서 판매하는 고갱관련 책을 한권 샀다. 고갱 책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제일 싼 (세일중인) 이 책을 약 6달러 주고 샀다.  간단하고 내용은 알차서 좋았다. 딱 스페셜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 값이 아닌가. 특강을 기다리는 '줄'이 있어서 나도 제법 앞줄 바닥에 앉아서 강당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막간을 이용한 독서.








나는 거의 맨 앞에서 들어가서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서 잡았는데, 나중에 둘러보니 수백명 자리가 꽉 차고, 임시 의자까지 동원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특강에 왔다. 영국의 Tate Museum의 수석 큐레이터이며 에딘버러 대학 교수인 연사가 직접 나와서 영국에서 이 기획전을 열었을때의 상황과 워싱턴 기획전을 비교해가면서 이 전시회의 의도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단순한 작품 해석보다는 기획전의 숨은 의도, 그리고 미술사학자나 큐레이터의 시각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내 수요 칼럼은 이 전시회 소개를 써야겠다.... 잘 써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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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1. 21. 09:51

National Gallery of Art 국립 미술관

 

말하자면, 오늘은 Museum Day (박물관 소풍날)이라고 할 만 합니다.  아침에 스미소니안 캐슬의 사무실에  인터뷰가 있었거든요.  인터뷰 끝내고, 놀았지요.

 

우선 지난 토요일에 갔었던 National Gallery of Art 에 갔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싶던 것들을 제대로 다 못봤으니까. 전 보고 싶은 것을 못보면 꿈에도 아른거리고,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서...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는 내가 보고싶으나 볼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이 세상에는 내가 보고싶으나 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가슴에 한이 맺힌 채로 죽을 것이다...  나는 결국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스러운 인생 살고 있으니까,  볼 수 있는것들은 가서 보기로 하자.  가서 보기로 하자. 가슴에 자꾸만 한을 쌓지 말자.]  그러니까, 어차피 나간김에 또 간거죠.

 

흠, 국립 미술관이 '홀랑' 뒤집어진 분위기 입니다. 익숙하던 것들이 엉뚱한 곳에 배치되어 있어 영 어색한데다가,  전에 내가 가서 보았던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그림 전시장이 싹 없어지고, 지금 공사중. 아이고 아이고. 보고싶은 내 그림들. 아이고. 곧 새단장을 하고 나타나길 바라는 수 밖에요.

 

National Gallery of Art, 2010년 1월 20일 촬영

휘슬러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갤러리에서 도슨트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뭐 세계 명화들, 로댕의 작품들, 골고루 실컷 보고, 서관과 동관 사이의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점심도 사 먹고요. 음, 책도 샀어요.  무슨 무슨 'ism (이즘)'들에 관한 정보를 총망라해 놓은 책이군요. 하하. 미술 사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인데요. 한가지 실수. 책의 편집자가 영국인이고 영국에서 교육받고 활동하는 사람이라서,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의 영국 미술 중심으로 하는겁니다.  예컨대 제가 미국의 social realism 에 관해서 요즘 쓰고 있쟎아요.  혹시나 싶어서 social realism 쪽을 찾아보니, 영국 미술사 쪽에서 설명을 해 놓은겁니다. 아차 싶었죠.  책 구입 영수증 갖고 있으니까, 카페테리아 옆의 책방에서 반납하고 다른 책 고를수도 있었지만,  기왕에 내 손에 들어온거, 제 안목을 넓히는 뜻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난 너무 미국 미술에 몰두해 있는 나머지, 세계 미술사의 흐름에 무감각해질수도 있어. 그러면 미국미술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안돼. 미국미술은 세계 미술의 일부이니까 말이지.) 

 

 

새로 장만한 책

 

 

점심으로 먹은 스트로베리 나폴레온과 커피. 국립미술관 서관과 동관을 잇는 지하 통로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삼각뿔 모양의 유리 천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빛과 폭포. (왼편 구석쪽에 책방의 끝자락이 조금 보입니다.)

 

 

 

국립 미술관 동관 (East Building)은 현대미술관입니다.  제가 호레이스 피핀 페이지를 완결하려고 하는데요, 이 장면을 꼭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쟁쟁한 세계의 20세기 초 현대식 미술품으로 가득찬 동관 전시실에 당당하게 걸려있는, 딱 한점이지만 위풍당당한, 딱 한점이라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현저히 작아서 더욱 기품있어보이는 피핀의 작품입니다. 보세요. 국립미술관이 자랑하는 마티스 갤러리 입구쪽에, 그리고 잭슨 폴락, 로스코, 뉴만등이 기다리는 갤러리 초입에 걸려있는 그림입니다.  피핀이 동관 현대미술이 심장부 같은 지점에 오두마니 걸려있는겁니다.

 

관객들은 이 그림이 무엇인지, 왜 이것이 여기 걸려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요. 오직 '피핀'을 아는 사람만 그 의미를 아는거죠.  심지어 매일 이자리를 지키는 미술관 경비 아저씨 (흑인 경비아저씨)도 이걸 잘 몰라요.  오늘 제가 서서 그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흑인 경비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더라구요. 그래서 피핀에 대해서 그에게 설명해줬죠.  "이 사람 마흔이 넘도록 자신이 화가인줄도 몰랐고, 아무도 신경도 안썼다. 이 사람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을때, 쟁쟁하던 당대의 화가들이 - 나도 저렇게 그릴수 있다면! 하면서 한탄을 할 정도였다. 이 작품이 괜히 여기 있는게 아니다..." 

 

 

일층의 프랑스 소품 갤러리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보석같은 작품들을 실컷 구경했습니다. (사진 편집하다가 에러가 자꾸 발생해서, 오늘은 포기.  다음에, 몇가지 보여드리지요. 오늘 왜 자꾸만 에러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동관 입구로 나와서 슬슬 자연사 박물관 방향으로 가는길이죠.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이 국립미술관 서관 (현대 이전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는 곳) 건물입니다.  워싱턴 마뉴먼트 오른편으로 둥근 지붕 보이는 곳이 자연사 박물관이지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국립 미술관 조각공원

 

그런데 국립미술관 서관과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는 '국립 미술관 조각공원'이 있어요.  오늘 사실 그 조각공원에 일부러 들렀는데요. 개념 미술의 창시자로 알려진 So Lewitt 의 조각작품이 거기 있거든요. 사진 찍었죠.  나중에 Sol Lewitt 소개할때, 그때 보여드릴게요.

 

조각공원에 2009년 하반기에 새로운 조각물이 들어왔나봐요. 근래에 새로 발견한 조각이거든요. 이 나무요. 스테인레스 나무에요.  지난 토요일에는 이 나무에 새 한마리가 앉아있는것도 봤거든요. 저새는 조각인가 아닌가? 궁금해서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까 휙 날아가더라구요. 오늘은 새가 앉아있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제목하고 작가, 나중에 적어 넣을게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 자연사 박물관 입니다.  박물관 입구 오른쪽에는 화석이 된, 바위같은 나무덩어리가 있구요, 왼편에는 줄무늬 철 바위가 있지요. 내 상상력으로는 다다르기 힘든 아주 오랜 세월의 역사를 보여주는 두가지, 천연 조형물들이라고 할만한데요 ...  그런데, 내 속에도 그렇게 아주 아주 아주 오래된 '유전자'가 있겠지요. 그 세월보다 더 오래된 유전자가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거쟎아요...

 

여기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스미소니안 캐슬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에서 정면으로 건너다보는 스미소니안 캐슬 (인포메이션 센터) 입니다.  아침에 저곳 2층에서 스미소니안 직원을 만나 인터뷰를 했었지요....

 

 

 

 

Freer Gallery 프리어 갤러리

 

아시아권 예술품을 전시하는 스미소니안 프리어 갤러리에도 들렀습니다. 제가 일전에 이곳에 전시된 듀잉의 작품들을 소개한 적이 있지요.  이곳은 휘슬러의 작품 전시장입니다.  국립 미술관에서도 휘슬러 작품들을 사진기에 담았고, 이곳에서도 휘슬러의 작품들을 빠짐없이 사진기에 담았지요.  조만간 휘슬러 이야기를 쓰게 되겠지요?

 

 

 

스미소니안 메트로 역

 

그리고, 스미소니안 메트로 스테이션에서 메트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저기 보이는 초록색 둥근 지붕의 건물. 저기가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입니다. 음...제가 좋아하는 곳이지요...

 

 

오늘, 미술관에서, 경비 아저씨들이 한가하고 심심하니까,  (하하) 저한테 말걸고, 얘기해주고 그래서  그들만이 알고 있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듣고 그랬는데요... 가령, 잭슨 폴락의 No 1 (1번) 에 '바퀴벌레' '딱정벌레'가 화석처럼 물감을 뒤집어 쓰고 굳어버린채로 있는것을  경비 아저씨님이 몸소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보여주셨지요. 하하. 원래 담배꽁초도 붙어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안보인다며 "찾으러 들면 이상하게 안보이다가, 아무 생각 없을땐 잘보이더라" 하면서 혼자 한탄.  잭슨 폴락 작품에 바퀴벌레 붙은 화석, 사진 찍어왔거든요.  헤헤. 나중에 정리해서 보여드릴게요.  오늘, 이상하게 자꾸 에러가 나서 사진 정리를 잘 못하겠어요.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10. 1. 17. 09:12

 

흐리고 포근한 겨울, 토요일 아침.

국립 미술관으로 소풍을 갑니다.

 

 

 

 

 

 

워싱턴 마뉴먼트 앞에 차를 세워놓고, 씩씩하게 걸어서 갑니다.

가는 길에 조각공원 연못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나도 작년엔 여기서 스케이트를 탔었지...)

멀리, 중앙에 보이는 허시혼 현대 미술관, 그리고 그 앞에 리히텐쉬타인의 '리본같이 생긴' 노란 조각작품도 보입니다.

 

 

 

 

 

 

 

 

 

걷다가 지쳐서,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카페테리아에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유부초밥과 뜨거운 차한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오늘의 목표 지점은 '현대미술'이 모여있는 국립 미술관 동쪽 빌딩.  서쪽 빌딩 입구로 들어간후 지하 통로를 통해 동관으로 가는데요. 이곳은 빛의 길 입니다. 지하 통로입니다.  SF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요.

 

 

 

 

 

 

 

몇가지 현대미술 특별 기획전이 있어서 보러 왔는데,  아쉽게도, 특별전 작품들은 모두 '사진 촬영 금지'라서 눈으로만 구경을 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칼더의 대형 모빌이 반깁니다.  멀리 벽에 보이는 색종이같이 조각조각 붙어있는 것은 Kelly 의 작품입니다.

 

 

 

 

 

몇달만에 가본 것인데, 연말 사이에 미술관 전체 전시장이 대대적으로 새로 조직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서관에 있던 것들이 동관으로 이동했고, 변화가 심하군요. 심지어 이곳에 몇해동안 들락거린 도슨트 조차 이렇게 확 바뀐줄 몰랐다며 정신없어 합니다. (몇해동안 조용하더니 어떤 변화를 모색하는듯 하군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실인데요 (서관에 있던것들이 동관으로 대거 이동). 중앙에 보이는 큰 그림이 모네의 그림이지요. 

 

 

 

 

 

인상파 그림 이어집니다.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모네이고요.  저 안쪽에 보이는 작품들은 세잔느.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표현주의 작가 작품인데요.  왜 이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가하면,

   열정이 끓어 넘쳐서, 액자 안에 얌전히 있을수 없어서, 액자 전체를 그림판으로 활용한, 그 파격이 매력적이라 그렇습니다.  이글이글 끓는 난로속의 조개탄 같기도 하고,  수박 같기도 한, 전체적으로 열정적인 분위기가 힘차고 좋습니다.

 

 

 

 

 

벽면 전체, 통유리창. 그 유리창 밖의 워싱턴 디씨 풍경,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이겠지요.

 

 

 

 

 

 

 

 

 

Sol Levit 이라는 개념미술의 창시자가 있거든요. 그 작가의 벽화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가를 소개하고 싶어서 근질근질 한데요. 때가 되면 짠짜잔~  하고 소개해드리지요.

 

 

 

 

 

 

자, 앤디 와홀과, 리히텐스타인과 로젠퀴스트가 있군요.

 

 

 

 

 

 

아, 드디어 국립미술관 소장의 Horace Pippin 을 만났습니다!~  제가 호레이스 피핀의 페이지를 진작 만들어 놓고도 마무리를 못한 이유가, 이 작품을 제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거든요.  이걸 꼭 본후에 마무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작품을 마티스 전시실 옆에서 발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지요...선구적인 20세기 현대미술 속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호레이스 피핀! 오, 저는 이 전시장을 기획한 큐레이터님을 무조건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왼쪽부터 클라인, 스틸, 잭슨폴락 두점이 보입니다.

 

 

 

 

 

 

마티스 색종이 오려서 만든 작품 전시실 입구입니다. 마티스의 싸인도 근사해보이지요? 마티스의 명랑한 색감을 좋아합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요.  오늘,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워싱턴 디씨,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동관 (East Building) 에서

 

2010년 1월 16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Realism/Ashcan School2009. 12. 6. 02:41

New York (1911)

George Bellows

Oil on Canvas

2009년 9월 11일 워싱턴 국립미술관 (NGA)에서 촬영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확장시켜 보실수 있습니다.

 

뉴욕풍경

 

 

Goerge Bellows (1882-1925) 의  New York (1911)은 대략 100여년전의 뉴욕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마차가 뒤섞여 있고, 고층 건물들과 그제나 이제나 여전한 인파가 보입니다.  사실 이 뉴욕의 풍경은 사진과 같은 실제 광경은 아니라고 합니다. 뉴욕의 여러 장면을 뒤섞어서 뉴욕의 분위기를 전달했다고 봐야겠지요. 얼핏 보면 타임 스퀘어 같기도 하고 얼핀 보면 펜스테이션 앞 같기도 하고, 어찌됐거나 우리가 한번쯤 가봤거나 혹은 영화나 그림을 통해서 지겹게도 많이 본 뉴욕 번화가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일백여년전의 풍경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의 복장이나 마차 장면을 제외하면 어느 화가가 며칠전에 그린 것이라고 해도 그럴싸해 보입니다.

 

조지 벨로우즈 (1882-1925)는 앞서 소개드린 The Eight (팔인회)나 Ashcan (애시캔) 그룹의 정식 회원으로 활동을 한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The Eight, Ashcan school 의 리더였던 로버트 헨라이 (Robert Henri 1865-1929)와 친분이 두터웠고, 헨라이의 미술관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의 작품들이 팔인회, 애시캔 회원들의 화풍과 통했기 때문에 조지 벨로우즈를 '애시캔'의 일원으로 평가하는 비평가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의 작품들이 미국의 도시, 서민들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으므로 조지 벨로우즈를 애시캔 그룹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정리를 해보는 것입니다.

 

조지 벨로우즈는 오하이오(Ohio) 의 주도(행정수도)인 콜럼버스 (Columbus) 태생입니다. 이곳에 오하이오 주립대 (Ohio State University)가 있지요.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주로 야구선수와 교지 삽화가, 그리고 잡지의 삽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에 한번 가본적이 있지요. 제 친구들이 그곳 수학과에서 공부를 했는데, 한 친구는 공부 마치고 수학자로 살고 있고, 또 한 친구는 아직도 거기서 공부중입니다. (글 쓰다가 친구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Robert Henri 역시 오하이오 출신인데 그는 신시내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조지 벨로우즈와 로버트 헨리가 고향이 가까웠다는 이유로 더욱 친근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벨로우즈는 스포츠맨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오하이오 주립대를 졸업한 후에 프로야구 선수가 될것인가 잡지 삽화가로 살것인가 고민하다가, 미술 수업을 받겠다고 작정하고 뉴욕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뉴욕 미술학교 선생으로 재직하는 로버트 헨라이를 만나게 되고 그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조지 벨로우즈는 특히나 그의 권투경기 장면이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 합니다.  그의 도시 풍경이나 다른 그림들도 그 나름의 힘과 역동성이 느껴지지만, 단답형 상식 퀴즈 대회에서 '권투하는 그림' 내 놓고 '이거 그린 사람?'하는 퀴즈가 나온다면 자동으로 '조지 벨로우즈!'을 외칠만 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의 그림 세계를 단순무식하게 정리해본다면 대략 세가지 정도로 분류가 됩니다:

 

 (1) 그를 대표하는, 권투선수 시리즈

 (2) 도시 주변의 풍경과 서민의 삶

 (3) 일반 서민의 초상화

 

제가 미술관들을 돌면서 '사냥'한 그의 작품 사진들을 주제별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권투선수

 

Both Members of This Club (1909)

두 선수

Oil on canvas, 45 1/4 x 63 1/8 in. (115 x 160.5 cm)

2009년 9월 11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흰색의 하일라이트가 들어간 왼쪽 선수, 얼굴에 피가 낭자합니다.  오른쪽 선수, 치고 들어가는 대각선 구도가 역동적이지요. 반대방향의 대각석 구도의 관객 풍경이 그림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피가 낭자한 가운데, 아래 중앙의 관객은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권투선수가 피를 흘리거나 말거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링에서 피가 튀고 살점이 튀고 누군가 되게 쓰러지고 그래야 신이 나는 법입니다.

 

웹에서 조지 벨로우스 이미지를 찾아보시면 이와 유사한 다른 권투경기 장면 그림들을 많이 발견하실수 있습니다. 그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지 벨로우즈의 권투경기 그림을 찾아 천지를 유랑하며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어릴때, 할아버지가 권투중계의 팬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권투중계의 일정을 일일이 표시해놓고, 그의 일기장에 적어놓고 절대 빼놓지 않고 들여다봤습니다. 아마도 돌아가실때까지 그러셨을겁니다. 단지 중계방송만 보신것이 아니고, 서울 우리집에 오시면, 어린 우리들을 이끌고 월곡천 건너, 시장통에 있는 '체육관'에 구경을 가곤 했습니다. '체육관'이 뭐하는데냐 하면 당시 무명 아마추어 선수들이, 혹은 권투선수 지망생들이 모여서 연습하는 '도장'이다 이거죠.  우리들은 거기서 밤이 이슥하도록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서로 치고받고, 혼자 줄넘기하거나 혼자 샌드백 치면서 훈련하는것을 구경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체육관에 따로 '탈의 시설'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가끔 우리는 잘생긴 '오빠'들의 (그때 나는 꼬맹이였으므로) 실한 엉덩이 구경도 할수 있었는데,  선수들이 체육관의 구석진곳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거든요. 그 구석진 곳이 하필 우리가 염탐하던 창가였으므로 그들이 창가쪽 구석에서 후다닥 바지를 내리고 체육복으로 갈아있거나, 체육복에서 평상복으로 탈바꿈하는 광경을 볼 수 밖에 없었지요. (일부러 그런게 아니고요 -.-;; )   아니...엉덩이밖에 안 봤습니다... 헤헤헤.

 

어릴때는 할아버지가 권투중계 보시는 것이 못마땅했는데요, (왜냐하면 내가 어린이 프로를 볼 수가 없으니까) 지금도 그런 스포츠 중계에 재미를 못느끼므로 여전히 볼 일이 없는데요, 하지만 이 그림은 제 맘에 듭니다.  조지 벨로우즈가 무슨 맘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권투 장면을 그의 그림 소재로 잡았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신선한' 시도였고, 결국 그의 트레이드마크 (Signiture) 작품이 되고 말았지만, 그것 말고도,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인생 이렇게 치고 받고 맞다가 뻗는거지...하는 비감한 생각도 들고,  누구나 그런거지, 나만 유독 두드려 맞는것도 아니지, 이런 위안감이 든다니깐요, 글쎄.

 

 

 

2009년 12월 13일,  국립 미술관에 가서 조지 벨로우즈의 Both Members of This Club (1909)라는 작품을 다시 감상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미술관 도슨트(Docent 전문 안내원)가 사람들을 이쪽으로 안내해와서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더군요. 그래서 곁에서 귀동냥을 했지요. 새로 알게된 사실은,  1900년 초반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복싱 경기를 하는것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공개적인 복싱매치가 아니고, 남성들의 '음성적인' 클럽에서 진행된 경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Both Members of This Club (이 클럽의 두 회원)이라는 식으로 달린 것이라고 하네요.  두 '선수'라고 하면 안되고, 그냥 클럽의 회원간의 친선경기같은.    그러면 이 클럽에서는 복싱만 했겠는가?  다소 '음성적인' 클럽이었으므로 그 안에서는 복싱 말고도 다른, 다양한, 그러나 저로서는 전혀 알수 없는, 남자들만의 '음성적'인 오락이 진행되었겠지요~

 

 

 

 

 

뉴욕 빈민가의 아이들

 

 

이 작품은 위의 권투선수 그림보다 2년 앞서서 그려진 것입니다.  뉴욕의 East River 강변에는 그 당시 가난뱅이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허술한 한강변 산동네를 연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목이 Forty Two Kids (42명의 아이들) 인데요 제목의 'kid'가 단순한 '아이들' 이 아닙니다. 아이들이라는 영어 단어로는 Children 이 따로 있지요.  요즘 Kids라는 단어를 '아이들'이라는 의미로 흔히 사용하기는 하지만 백여년전 이 kid 라는 말은 '슬랭'으로 대개 이민자 아이들처럼 가난뱅이 아이들을 일컫는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말하자면...'애새끼들'이라는 뉘앙스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

 

이 kids 라는 어휘를 저도 아주 조심해서 사용하는 편인데, 제가 교육을 전공했고, 학교에서 교사로도 일을했고, 그래서 대학원 수업을 들을때도, 온통 '아이들,' '학생들' 관련 이야기였지요. 그러니까 주로 사용하는 어휘가 students, children, ESL children, ESL students 뭐 이런 언저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무심코 지도교수와 논문 이야기를 하다가, "These ESL kids..." 뭐 이러고 말을 하니까 지도교수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학생을 존중해야 하는 교육자이다. students 나 children, learners 말은 우리가 사용하기에 적합하지만 kids 라는 말은 부적합해보인다."  그러니까 그 kids 라는 어휘가 아직도 품위있는  어휘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 kid의 원뜻은 염소새끼 입니다.)

 

자 우리들의 조지 벨로우즈 선수(?)가 그 가난뱅이 뉴욕 빈민가의 이민자의 '애새끼'들을 화폭에 담았다는 것인데요. 정말 42명인지 한번 헤아려 볼까요?

 

 

Forty Two Kids (1907)

42명의 아이들

2009년 10월 3일 워싱턴,  Corcoran 미술관에서 촬영

 

 

이 작품이 1908년 어느 전시회에 소개가 되었을때 평단의 반응은 싸늘하고 조롱기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뭐 이따위 그림을 그림이라고 그렸냐 이거죠.  가난뱅이 애새끼들이 허술한 강변에서 노는 것이 무슨 그림의 소재가 되는가 씹었을겁니다.  하지만 평단의 싸늘한 반응과는 달리, 이 작품은 곧 개인 콜렉터에게 팔려나갔는데, 이것이 조지 벨로우즈가 최초로 개인 콜렉터에게 판매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워싱턴의 코코란 미술관에 있지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Bill Bryson 의 The Life and Times of the Thunderkid 의 일화중에서 전쟁이후 베이비붐 세대로 성장했던 작가 빌 브라이슨의 회고가 소개됩니다.  그가 과장되게 술회하기를, 전후 베이비붐 세대였던 자신들은, 어딜가나 애가 넘쳐나서,  그가 살던 아이오와 시 변두리의 강변에 가면 수천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멱감기를 했다고 하는데요.  물론 조지 벨로우즈 그림속의 아이들은 1907년 8월의 아이들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보다 50년전에 '이민자 붐' 세대의 아이들이지요.

 

이 그림이 제게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비록 지구 정반대쪽 대륙에서 성장했지만, 저 역시 60년대 70년대 베이비붐 시대의 일원으로 변두리 가난뱅이 아이로 성장했다는 공통 분모 때문일것입니다.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의 회고로는 '네 오라비나 네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어느 집에서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어느집 여자나 배가 불러 다녔다. 애가 참 많이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 많은 애들이 뭘하고 놀았을까요.  사실 도심에서 성장했지만 저는 어린시절 골목에서 뭘 하고 놀은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고,  즐겁게 논 기억은 모두 시골집에서였습니다.  여름 한철 시골 개울가에 가면 약속도 필요없이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들은 수영복도 없이 그냥 입은 옷을 벗어던지고 물에 들어가 놀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저는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옷을 벗고  개울에서 물놀이를 했습니다.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아직 몰랐다는 것이지요) 여자아이나 남자아이나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드는 것으로 각자 부끄러운데를 가렸다고 생각하고 그냥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빤쓰라도 입고 물장구를 쳤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싸구려 나이롱 수영복을 입고 노는 '문명인' 반열에 들 수 있었지요.

 

제가 가끔 이런 저의 '야만적'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서울이나 대도시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또래 친구들은 저를 '원시인' 쳐다보듯 바라보며 무슨 외계인이나 거짓말장이를 대하듯 휑한 표정으로 대합니다.  자기네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풍경속에 내가 있었다 이거죠.  하하하.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환경을 '평균적' 환경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신의 경험 영역 바깥의 일은 외계의 일처럼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나'역시 피할수 없는 한계죠. 나 역시 그런 눈으로 남을 판단할 것이므로.  조지 벨로우즈가 '애정'을 갖고 변두리 아이들이 벌거벗고 노는 풍경을 그렸을때, 어떤이들은 '이것도 그림이냐'로 반응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럴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지구상에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거죠...

 

 

첨언:  그런데 위의 42명의 아이들 그림이...어쩐지 Thomas Eakins The Swimming Hole(1885) 라는 그림을 연상시킵니다.  토마스 이킨스 (1844-1916)는 미국 사실주의 미술가들의 '대부'쯤되는, 후에 활동하는 사실주의 화가들 (The Eight, Ashcan)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던 미국화가라 할 만 합니다.  조지 벨로우즈가 선배 대가인 이킨스의 그림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닌지는 알수 없으나, 참 닮았단 말이지요...  ;-)

 

 

 

 

 

변두리의 푸른아침

 

멀리로 고층 건물들이 밀집한 것으로 보아 역시 뉴욕의 강변 풍경으로 보입니다. 역시 강변 부두에 뿌연 안개가 피어오르고 누군가 불을 피웠는지 흰 연기도 솟아 오릅니다.  대략 어느 추운 겨울 아침 강변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으니까요. 추우면 웅크리쟎아요. 이들의 하루는 오늘도 고단하게 흐를것입니다.  이들의 곤고한 풍경과는 달리 푸른 색조가 아름답지요? 

 

 

Blue Morning (1909)

푸른 아침

Oil on Canvas

86.3 x 111.7 cm

2009년 9월 11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다리밑 외딴 숙소

 

그림 오른쪽 구조물이나 그 위를 지나는 판으로 보아 이것은 다리(교각)의 일부 같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뉴욕시의 어느 커다란 다리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림의 중앙에 6층짜리 건물이 똠방, 대똑하게 서있습니다.  이곳이 그림의 제목이 되는 '외딴 숙소'인것 같습니다.  'tenement' 라는 어휘를 언라인으로 검색해보면 이런 의미가 소개가 됩니다. (http://www.thefreedictionary.com/tenement)

 

1. A building for human habitation, especially one that is rented to tenants.
2. A rundown, low-rental apartment building whose facilities and maintenance barely meet minimum standards.

해석: (1)  세입자 임대용의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
        (2) 극히 기초적인 수준도 안되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싸구려 아파트 빌딩

 

 

The Lone Tenement (1909)

외딴 숙소

Oil on Canvas

2009년 9월 11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그림 왼편에 사람들이 모여서 불을 쬐고 있는것 같지요?  멀리 강에 은은한 햇살이 비치는데, 다리밑의 사람들은 불가에 모여 서 있습니다. 웅덩이에 보이는 물은 살얼음이 얼었을것 같습니다.  이런 뉴욕의 풍경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해던 Georgia Totto O'Keeffe (November 15, 1887 – March 6, 1986) 가 그렸던 뉴욕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Georgia O'Keeffe
Cityscape with Roses
1932
oil
84 3/8 x 48 1/2 in.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of the Georgia O'Keeffe Foundation

 

 

1932년이면 미국의 경제 암흑기 입니다. 그 당시 조지아 오키프가 묘사한 뉴욕은 장미빛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작가의 작업 취향이야 각자 자유이고 조지아 오키프가 매력적인 화가임에는 틀림없으나,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에 '사회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돈많은 사진가 스티글리츠의 사랑속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모르고 예술에만 전념했겠지요.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만을 들여다볼때는 그의 작품에 감탄을 하다가도, 그 당시에 혹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하던 작가들과 비교해보면, 어딘가 조지아 오키프의 미술세계가 '공허'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람'한테 관심이 없었던 사람 같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러한 저의 비판적인 시각은, 사람이나 '세상'에 관심을 가진 저 자신의 취향에서 출발하는 것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문득, 조지 벨로우즈의 뉴욕 풍경 그림을 보다가, 그 속의 가난뱅이 애새끼들이라던가, 빈민들의 풍경이 그려진 그림을 보다가 문득,  조지아오키프의 뉴욕 풍경이 떠오르면서...아하...이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거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National Gallery of Art 에 조지 벨로우즈의 그림이 걸려있는 풍경입니다. 왼쪽부터 '권투선수' '푸른 아침' 그리고 '뉴욕' 그리고 '쓸쓸한 숙소'가 차례차례 보입니다.

 

 

 

초상화들

 

 

다음은 크라이슬러에서 '사냥'한 그의 '피아노 앞의 엠마' 입니다. 엠마는 그의 부인입니다. 뉴욕의 미술학교에서 만났는데 엠마는 그림을 그만두고 피아노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위의 Blue Morning 에 보였던 그 푸른 빛이 이 그림에서 좀더 뚜렷하게 표현됩니다. 아, 조지 벨로우즈는 이런 색감의 푸른빛을 좋아했구나 추측하게 됩니다.

 

 

Emma at the Piano (1914)

피아노 앞의 엠마

Oil on Canvas

94x73 (가로세로)

2009년 11월 29일 버지니아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조지 벨로우즈의 두 딸중 큰딸인 앤 입니다. 커튼과 허리 부분의 청색과 흰 드레스가 대조를 이루는데요. 역시 Blue Morning 이나 Emma at the Piano 에서 선보인 청색과 흰색의 대조가 이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Anne in White (1920)

흰 드레스의 앤

147x108.9 cm

Oil on Canvas

2009년 11월 7일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조지 벨로우즈는 엠마와 결혼한 이후로 두 딸의 아빠가 되었는데, 아내와 딸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그의 그림의 소재가 도시의 풍경에서 가정적인 것으로 변모합니다. 그래서 43년의 짧은 생에서 그의 후기에는 초상화 작품들이 그려집니다. 물론 그의 초상화 작품은 그의 아내 혹은 그가 살던 마을의 마을 사람들, 이런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서 삽화 작업도 계속했고,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는 '맹장'이 터져서 그만 요절을 하고 맙니다.

 

 

2009년 12월 5일 redfox

 

 

그의 마지막 작품들

 

 

Ringside Seat (1924)

맨 앞줄 관람석

2009년 9월 24일 워싱턴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The Picnic (소풍) c. 1924

Oil on Canvas

2010년 1월 23일 볼티모어 미술관 미국화 갤러리에서 촬영

 

 

조지 벨로우즈 (1882-1925)는 43세의 나이에 (우리나라식으로 따지면 44세가 되던 해에) 맹장이 터져서 요절한 화가인데요, 위의 두 작품들은 1924년, 그가 죽기 전 1년전쯤에 그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경기장 장면이 좀 뿌옇지요?  제가 사진을 잘 못 찍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흐릿한 등불 아래의 장면을 묘사하듯 노리끼리하게 아슴프레 합니다.  제가 허시혼에 여러차례 들렀는데, 볼때마다 저 작품은 좀 어딘가 노란 안개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아래의 '소풍'역시 그가 죽기1년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요, 그림 분위기가 매우 독특합니다.  (그림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미술관에 갈때마다 본 편인데요. 그러니까 제가 조지 벨로우즈에 대해서 알기 전에도 이 작품을 알고 있었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채로 분위기가 특이한 작품으로 기억을 한 거죠. 

 

제목이 '소풍'인데요, 전체적인 풍경이나 분위기는 암울하고, 음침하고, 곧 어디서 천둥 번개가 칠것같은 불안감을 줍니다. 갑자가 돌풍이 불것같기도 하고요. 물빛도 하늘빛도 심상치가 않아요. 구름조차도 예사롭지가 않고요.

 

가운데에는 소녀가 줄넘기를 들고 서 있고요, 그 아래에서 누군가가 마치 절벽에서 올라오는듯 손을 뻗치고 있죠. 낚싯대를 드리운 남자와, 피크닉 보자기를 펼친 여자가 왼편에 있는데, 오른편에는 한 남자가 사지를 벌리고 하늘을 향해 누워있습니다.

 

이 그림 앞에서서 이태전에 아이들과 대화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이 세기말 적이야. 뭐랄까...암담해... 저 줄넘기를 들고 있는 소녀 말야, 저 줄넘기 이미지는 살바도르 달리도 그린적이 있고... 영원의 상징이라고도 해. 영원은 죽음과도 통한다는 거 알아? 죽음은 영원하쟎아.  줄넘기가 그리는 원, 그 원의 끝없는 회전, 인연의 굴레를 벗어날수 없음을 상징할수도 있고.  하필 줄넘기를 들고 언덕 가장자리에 서있는건 또 뭐니. 불안해보이쟎아.  전체적으로 참 불안해보여."

 

이 그림을 보면 벨로우즈가 즐겨 그렸던 청색 색조와 흰색의 하일라이트도 여전히 보이는데요, 신비로우면서도 스산하죠?  어쩌면 이것이 그가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와 가졌던 인생 최후의 소풍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는 화면 오른쪽에 자신의 주검까지 그렸던 것인지도 몰라요. 그 자신은 그걸 의식하지 못했겠죠.

 

우리는 가끔 그런 얘기 하쟎아요. 어떤 사람이 죽었을때, 그가 죽기전에 나눴던 이야기나 일화들을 떠올리면서, "죽을걸 알고 그랬나?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 뭐 이런 얘기 하죠.  뭐 마치 죽을 사람처럼 유언처럼 몇마디 한 것이 마지막 말이 되기도 하고요.  생명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안대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뿐 안다는거죠.  그래서 죽음을 예견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런 설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냥 그런 관점에서 그는 이미 그의 죽음을 예견한 그림을 남긴것이 아니었을까.... 볼티모어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다시 만났을때, 그리고 문득 그의 생몰연대와 그림의 제작 년대를 비교해보다가, 문득,  번개치듯 문득,  이런 쓸데없는 상상도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 상상을 하자, 이 그림이 품고 있던 신비로운 세기말적 느낌에 대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 드는겁니다.  그는...다가올...죽음을...그렸나봐...

 

 

2010년 1월 29일 내용 보충 RedFox

 

 

 

 

 

 

 

Posted by Lee Eunmee
Museums2009. 9. 1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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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일찌감치 퇴근하는 길에 메트로를 타고 내셔널몰로 갔다.  National Gallery of Art 에 가서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작가들의 작품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뮤지엄 설명은 생략하고, 오늘 찍은 사진만 올리겠다. 다음에는 뮤지엄에 대한 소개글을 써야겠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