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0. 8. 9. 00:11

찬홍이네 학교까지 갔다가 트랙 몇바퀴 돌고 돌아오는 코스

 

 

아파트 울타리를 나서면 나오는 길. 이 길을 따라서 일직선으로 마을길을 가다보면 찬홍이네 학교가 나온다.

 

 

일요일 아침이라서, 집집마다 주차된 차들이 여러대씩 보인다. 아무도 출근을 안했을테고, 교회에 가기에도 이른 시각이므로.

 

 

 

어느 집 앞에 세워진 작은 캠핑카 (Recreational Vehicle)에 붙여놓은 스티커가 재미있다:

"I am homesick for places I have never been."

"내가 가보지 못한 모든 곳들이 그립다"

   그러니, 떠도는 수 밖에... 아 나도 여행가고 싶어진다...

 

 

 

 

어느집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무궁화를 볼때마다

나는 여전히 '동해물과 백두산이~ '를 부르게 된다.

나는 국수주의자인가?  아니다 내가 '국수'는 엄청 좋아하지만, 편협한 국수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내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나의 조국, 나의 언어는 다른 가치들과 맞바꿀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과, 애국가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버지니아와 워싱턴 일대에는 무궁화 나무들이 참 많다.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본 무궁화보다, 버지니아와 워싱턴 일대에서 보는 무궁화가 더 흔하고 풍성해보인다.

집 울타리를 무궁화 나무로 심어놓은 집도 여럿 보았다.

 

 

 

 

자, 이렇게 마을을 지나면 찬홍이네 학교가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몇몇 단체에서 전국의 고등학교를 등급을 매겨서 발표를 한다. 조사 단체마다 기준들이 조금씩 다르므로 순위가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뉴스위크에서 발표한 순위와 다른 매체에서 발표한 순위가 다를수 있다. 대개 100위까지 소개를 하는데, 전국 100위 안에 들은 학교들은 이런식으로 현수막을 붙이고 학생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이 근방에 이보다 순위가 더 높은 학교가 두군데 더 있다. 일명, 버지니아 '교육구.'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은 플로리다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을 무척 그리워한다. 이곳은 어쩐지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살벌하고 뭐 그렇다고. 그때는 100위를 오르내리는 학교에 다녔는데, 분위기가 순박하고 좋았다. 학원이 없으니 사교육 자체가 없었고... 대략 태평하게 사는 분위기였다.

 

 

HEALTH NOTICE: NO PETS ON SCHOOL GROUND

학교에 개를 끌고 들어오지 마시오~

 

 

 

트랙 입구 울타리에 왕땡이를 묶어놓고, 나는 트랙을 돌러 간다.

왕눈이 개끈에 매달린 검정색 물체는, '개똥 봉지 두장'이다. 하하하.

개똥 봉지를 두개를 묶어 가지고 다니다가 왕땡이가 볼일을 보시면 내가 똥을 치워야 한다 (-.-)

일단 나오면 한번은 반드시 일을 보시고, 어느때는 또한번 일을 보실수도 있으므로

늘 두장을 묶어가지고 다닌다.

 

왕눈이가 이 문앞에 있는동안

왕눈이는 천국의 문을 지키고 있다가 "넌 천국, 넌 지옥" 뭐 이러고 안내를 한다는 베드로성인처럼 보인다.

그래서 왕땡이가 이곳에 있을때는 '왕드로'라고 불러준다.

 

 

가운데에 정식 규격의 풋볼장이 있고 (저기 노란 네모같은 것이 풋볼 골대)

그 주위로 트랙이 있다.

미국의 경우 도심을 제외한 일반 지역의 하이스쿨에는 대개 이만한 규격의 풋볼장과 트랙, 그리고 테니스장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은 체육시설로 일반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아침 저녁으로 동네 주민들이 운동을 하러 온다.

 

학교의 운동 시설이 개방되었다고 해서, 학교 자체가 개방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학교의 건물은 보안이 세심한 편이다. 일단, 학교 건물에 진입할때 통제가 되는 편이고

진입이 간단치 않다.

그러니까, 건물 외곽의 체육시설은 주민에게 개방하되

학교 건물에는 아무나 못들어오는 이원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어린이가 대낮에 교실 복도에서 낯선 사람에게 끌려 나가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을때, '학교를 주민에게 개방해서 이런 일이 터졌다'는 식으로 판단을 하고 학교를 폐쇄하자는 여론이 일었었는데, 운동장을 오전과 저녁에 주민의 건강을 위해 개방하되 학교 건물의 보안을 철통같이 한다면,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길가의 달맞이꽃이 방긋

 

 

집으로 돌아오는길

 

 

 

하얀 메꽃도 방긋

 

 

 

마치 이 풀섶 너머로 호박밭, 수박밭, 참외밭이 있을 것만 같은 우거진 수풀의 오솔길.

하지만 옆에 흐르는 것은 아스팔트 도로와 질주하는 차들이다.

저 꼬부랑 오솔길 너머에서 할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오실것만 같은데

그러나 이곳은 내게 여전히 낯선 남의 나라 땅.

저 오솔길 너머에 나의 아파트가 있다.

 

어디를 가건, 풍경속에서 고향의 빛과 향기를 찾아내고 싶어 안달하는

나는 유년의 어디쯤에서 성장이 중단된 아이.

그래서 내 삶은 더욱 빛난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8. 7. 23:00

2010년 8월 7일 토요일 아침. 포토맥, 조지타운, 워싱턴 하버

 

아침 여섯시, 운하의 수면 위로 안개가 피어 오른다. 아직 해가 퍼지기 전.

 

 

운하에서는 이따금 물고기들이 점프를 하기도 하고,

자라가 유유히 헤엄을 치거나

물오리들이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이는데

오늘 아침에는 비버가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내 소형디지탈카메라로 대충 찍은것이라 비버의 그 미끈하고 고요한 유영을 담아낼수는 없었지만...

 

나는 몇번이나 마음 속으로 "비버야 고마워! 내 앞에 나타나줘서 고마워!" 하고 외쳤다.

비버가 유영하는 것을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희열을 느끼게 된다.

얼마나 미끈하고 꿈결같은지...

 

 

 

 

조지타운 입구쪽의 운하.

여름이 되면 수온이 올라가면서 물 흐름이 미약한 운하에 수초들이 자라나는데

심할경우 수초들이 물 전체를 뒤덮기도 한다.

서울로 가신 K선배는 여름에 산책하다가 운하에 뒤덮인 수초를 보면 아주 질색을 하셨다.

그런데 오늘 보니 이 수초 제거 작업이 있었던 듯.

길가에 수초더미가 쌓여있었다. (아래 사진, 오른쪽의 초록색 더미들이 운하에서 긁어올린 수초더미이다.)

 

 

 

 

지난주에도 지나쳤던 조지타운의 화상 쇼윈도우.  (윗쪽 가운데 동그라미가 카메라).

주황색 네모난 것을 손으로 누르면 '사사삭!' 상쾌한 소리가 나면서 새로운 페이지가 열린다.

터치패드 쇼윈도우 (내가 붙인 이름...)

 

그런데, 저기 아랫쪽에 꽃과 분홍색 가방 그려진 것. 그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내가 움직이면 저것들도 따라서 이동한다.

그러니까 내가 오른쪽으로 가면 저 것들도 따라 온다. 늘 내 앞에 있다.

아주 진드기처럼 따라 붙겠다 이런 태도다.

원래 마케팅은 이렇게 교묘하고도 집요해야 하는거겠지...눈길도 끌어야하고.

인생 자체가 마케팅이다. 이런것도 배워둘 필요가 있을거다 아마.

 

 

조지타운 거리는 언제봐도 참 예쁘고 정겹다.

오늘은 네모난 건물들 사이의 파란 집이 예뻐서...

 

 

 

아침 일곱시 워싱턴 하버.

파란 8월의 포토맥 강.

 

 

 

길섶에 파란 달개비가 많이 피어있다.

달개비는 우리나라에서도 도시나 농촌이나 풀이 우거진 곳에서는 잘 자라는 식물이다.

어릴때는 이 달개비가 예쁜줄 잘 몰랐다.

지금은 달개비의 푸른색이 '꿈'처럼  신비하게 다가온다.

가슴에 푸른 멍이라도 든것인지.

참 푸르고 여리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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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8. 7. 10:54

"Everywhere is walking distance if you have the time." ~~ Steven Wright  :)

 

 시간 여유만 있다면, 어디건 '걸어서 갈만한 거리'이다.

 

 

===> 걷기중독자 (Walkaholic) 모임 회원들을 위한 명언. :D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0. 8. 6. 06:12

 

 

전에 대궐같은 (?) 주택에 살때, 우리집 뒷마당은 왕눈이의 '영지'였다고 할 수 있었다.

아침에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면 냉큼 달려 나가서

사자가 자신의 영지를 감독하듯 뒷마당을 쏘다니며 놀다가 아침 이슬을 흠뻑 맞고 들어오곤 했다.

 

그랬는데, 여전히 나로서는 과분한 집이지만, 3층에 올라 앉은 옹색한 아파트로 이사오니

왕땡이가 무척 답답해 한다.

거실 밖 베란다는 말하자면 과거의 '뒷마당으로 이어지던 데크'와 같은 구실을 하는데

전에는 데크의 목책 사이로 사뿐히 뛰어서 정원으로 갔지만,

지금 베란다 목책 사이로 사뿐히 뛰면(?) 3층 낭떠러지에서 추락사 하는 것이지...

 

왕눈이는 전에 살던 집의 습관대로, 베란다 울타리로 뛰어 내릴듯 머리를 내밀었다가

그냥 하릴없이 돌아서곤 한다.

나는 왕땡이가 생각없이 뛰어 나갈까봐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 짐승들에게는 예민한 공간 지각력이 있는듯,

왕땡이는 뛰어 내리는 대신에 비실대며 돌아서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을 할 수는 없다.

분명 그 사이로 왕눈이 몸이 빠질수가 있으니까....

 

왕눈이는 가끔 내가 베란다에 있을때, 저도 따라나와서 그 목책사이로 코를 내밀고

바람을 쐬면서 우수에 잠기곤 한다. 왕땡이의 '우수'가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  홈 디포에 들러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아하! 정원 가꾸기용 울타리가 값 싼것이 보이는거다!

난 해법도 없이 그냥 홈디포를 뒤지면서 방법을 찾아보자 하고 간건데

헤멜것도 없이, 습관대로 꽃구경 하다가 보니 정원 자재쪽에 울타리가 보이는거다!

그 철제 펜스를 발견한 순간, 내 머릿속에 따르릉~  신호가 오면서 방법이 보이더란 것이지.

 

그래서 철제 펜스 오달러짜리 (3 미터) 두개를 사가지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설치를 했다.

 

철제 펜스를 꽃꽂이 할때 사용하는 가느다란 초록색 철사를 이용하여 난간 목책에 단단히 묶는 식으로 고정시켰다.  한개가 3미터라서 우리 베란다에 딱 맞았다. 그래서 2층으로 포개어서 설치를 하였다.

지금 비가 쏟아져서 대충 엮고 들어왔는데, 비 그치면 또 나가서 아주 단단히 고정을 시킬것이다.

 

10달러로 안전한 베란다 난간이 완성되었다.

우리 왕눈이도 심리적으로 좀더 안심하고 베란다에서 놀 수 있을것이다.

베란다에서 바깥의 푸른 정원을 내려다보며 코에 바람이라도 쐬면 위로가 될 것이다.

 

 

 

 

 

 

오늘, 칼럼 쓰는 것을 수락하고, 일주일에 한편씩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나혼자 개인 블로그에 쓰는 글이 아니고 대중을 의식해서 써야 하는 글이므로

신중해야 하고,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유익한 글을 써야 할텐데.

진지하게 사색을 해보고, 내 나름대로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글을 써 나가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옛날에,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당시에는 대우가 꽤 좋았던 외국계 회사에 취직이 되어

잡지 편집을 집어 치우고 (사실 잡지 편집일을 즐기고 있었는데, 근무여건이 편하고 월급이 놓은 외국계 회사를 선택하고 말았다... ) 도망을 간다고 하자, 함께 일하던 편집장님이 "야, 너 그냥 도망가면 어떻게 해? 좋아 가는건 가는건데, 그럼 2주에 한번씩 칼럼 써서 내. 원고료 두둑히 줄테니까 칼럼 쓰라구!"  그래서 칼럼 쓰면서 착실히 원고료 챙겼었는데, 아이구야. 그 잡지가 오래가지 않아서 문을 닫고 말았다.  (원래 좀 간당간당 해 보여서 나도 일찌감치 안정된 직장으로 옮긴 터였다.).

 

그래서 칼럼 쓰다가 접은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영어학습 잡지였는데, People 같은 대중 잡지 기사 중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대충 번역하고,  영어 설명도 해주고 그렇게 해서 보내주면 재밌다고 (편집장님이) 좋아했었다. 그때 헐리우드 가십기사 꽤나 읽었었다  (-.-) 미국에 가보지도 못한 주제에, 헐리우드를 손바닥에 갖고 있다는 듯 초를 쳐댔었다...  그때는 20대 초반의 젊은시절의 객기로 넘쳐서 그러고 놀았는데...

 

지금은, 딱 그나이의 두배가 되었고, 이제는 대중을 상대로 인쇄매체에 글을 쓰는 일이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사람들에게 정보와, 위안과,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게 뭔지 생각좀 해보고.)

나를 특별히 금지옥엽으로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이, "내가 너한테 줬던 글재주를 발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전해주도록 해줄래?"하고 제안해주셨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원래 글쓰는 일이 즐겁다. 신중하게 잘 써서 내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겠다. (나의 하느님은 내 재주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아주 잘 아신다. 얼마나 똑똑하신가... )  칼럼니스트, 내 이력서에 이 다섯글자를 새겨넣을수 있도록 잘 쓰고 싶다. (그런데, 내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홈디포에 백일홍이 곱길래 사왔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서 내 사는 집을 구경오신듯한 그런 상상에 빠지고 만다.

한국의 가족이 그립다. 그래서 백일홍을 사다 놓고 가족 얼굴 보듯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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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0. 8. 4. 06:44

아침에 찬홍이네 학교에까지 가서 트랙을 세바퀴 돌고 오는데,

내가 트랙을 도는 동안, 왕눈이는 트랙 입구 울타리에 묶여 있다.

미국은 규정상 '애완동물'을 학교에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왕눈이는 학교 울타리 바깥쪽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왕눈이를 울타리에 묶어 놓고 트랙을 돌면,

왕눈이는 내가 세바퀴 도는 동안 거의 내내 짖어댄다. (지난 이틀간 그러하였다.)

왕눈이는 평소에도 산책하다가 주유소 가게에라도 들르기 위해 입구에 묶어 놓고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동안, 내내 목청껏 짖어대는 편이다.

그 짖는 소리가 평소보다 하이톤인데, 어서 빨리 오라고 생떼를 쓰는 듯한 표정이다.

 

내가 한바퀴쯤 돌아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지점에서 왕눈이는 나를 발견하고

멀리서 꼬리를 흔든다. 나는 '왕눈아!'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흔들어 준 후에

내쳐서 두바퀴를 향해 달려간다.

두바퀴 도는 내내 멀리서 왕눈이가 짖어대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빨리 오라고)

역시 왕눈이와 가까워질때 왕눈아! 하고 부르고 나는 또 한바퀴를 돌기 위해

멀어진다.

 

그렇게 목표한 세바퀴를 마치고 원점의 왕눈이에게 돌아가면

왕눈이는 마치 저승에 갔다 돌아온 친구를 반기듯 나를 반기는 것이다.

 

왕눈이는 늘, 내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때도

미칠듯이 방방뛰며 환영을 해 준다.

그래서 학교에 출근을 하거나, 다른 볼일을 보기위해 종일 집을 비웠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 머릿속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왕눈이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왕눈이가 하루종일 빈 집에서 잘 지냈을지.

--아까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졌는데, 왕눈이가 혼자서 벌벌 떨었겠다

--왕눈이가 식당 구석 카페트에 오줌을 싸 놓지는 않았겠지?

 

왕눈이는 내가 아파트 마당에 차를 세우고 차를 잠글때 나는 소리 "뚜!"

소리를 감지한다.  그리고 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미 3층의

내 아파트 안에서 왕눈이가 문을 벅벅 긁으며 역시 하이톤으로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왕눈이가 하루종일 짖어 댄 것은 아니고

집에 혼자 있다가, 차 문 잠기는 소리가 나면

그때부터 귀를 쫑긋거리다가 1층의 건물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식구들의 소리를

알아채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어서 빨리 오라고 짖어대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왕눈이를 관찰해보니, 지홍이나 찬홍이가 밖에 나갔다 돌아올때도

이런 식으로 귀를 쫑긋거리고, 그리고 아이들을 반겼다.)

 

오늘 아침, 트랙을 돌면서, 멀리서 짖어대는 왕눈이를 보면서

왕눈이가 저렇게 울어대고 있으니 빨리 속도를 내어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문득 왕눈이의 묵직한 존재감을 느꼈다.

 

왕눈이가 멀리서 짖어댄다. 하얀 점처럼 작게 보이는 왕눈이가 내게 어서 오라고 짖어댄다.

그래서 나는 기운을 내어서 달리기에 속력을 낸다.

왕눈이가 불러대니까 나는 빨리 가야만 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 왕눈이가 저기서 저렇게 울어대지 않으면, 나의 달리기가 재미 있을까?

내가 서툰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헥헥대며 하는 이유는, 한바퀴 돌때마다 왕눈이를 볼수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이렇게 달려가는 이유는 왕눈이가 저기서 기다리기 때문이 아닌가?

왕눈이가 없다면, 이 산책이 얼마나 멋대가리 없고 심심할 것인가.

쳐다봐 주는 왕눈이가 없다면 이 트랙 뺑뺑이 도는 달리기가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것인가.

 

집에서 한없이 간절하게 기다려주는 왕눈이가 없다면

이 타국의 아파트가 내 집 처럼 여겨지기나 할까?

왕눈이가 애타게 기다려주기에 이곳이 내 집인 것이지.

나의 왕눈이가 내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려 주기에, 그래서 여기가 내 집이 되는 것이지.

 

아이들이 나가 놀다가도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안심할수 있듯

나에게도 '집'으로 돌아올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내 집을 집으로 만드는 존재가 바로 왕눈이 같다는 것이다.

집이 집일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서 어떤 생명이 간절히 간절히 나의 안녕과 귀가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왕눈이가 있어줘서,

나는 매일 길을 잃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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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8. 1. 05:39

아침에 지팔이가 메릴랜드로 캠프를 가는데, 모임 장소까지 바래다주고

거기서 멀지 않은 Lake Burke 로 산책을 다녀왔다. (http://www.fairfaxcounty.gov/parks/burkelake/)

7월의 마지막 날, 토요일.

토요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주차장에 차들이 그득했다.

낚시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후텁지근한 날씨라서 기운이 빠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왕눈이와 쉬지 않고 걸었다.

호수 한바퀴 도는 트레일은 공식적으로 4.5 마일 거리.

 

 

 

호수 물에 비친 하늘, 구름

 

 

 

내 산책의 동반자 왕눈 할아범.

늙은 개 이지만, 불평 않고 헉헉거리면서 나와 동행한다.

참 착한 개 이다.

아침 나절에 다녀오더니 지쳤는지 내방 화장실, 서늘한 타일 바닥에 배깔고 종일 잔다.

 

 

 

호숫가, 나무가 울창해서 오마일 가까이 걷는 내내, 햇볕에 노출될 일이 별로 없다.

호수가 가까이, 멀리 다가왔다 멀어졌다...물은 고요하고 물속에 물고기들이 한가롭다.

 

 

 

 

호숫가에서 물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참 좋다.

물고기들이 보이는데

고요하고, 나른하게 이리저리 헤엄쳐 지나간다.

부드러운 물 표면을 봐도, 좋고.

 

참, 세상은 이렇게도 고요하고 아름답다.

감사한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7. 27. 22:03

 

 

지홍이가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 두시 넘어서 귀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잠을 제대로 못잤고, 지홍이 귀가 후에는 그냥 뜬눈으로 날밤을 새웠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가, 다섯시 반쯤 창밖이 부염하게 밝길래 왕눈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마당에서 보이는 내 방 창문.

내 방은 밑에서 올려다봐도 꼭 tree house 같다. (나무에 지은 집.)

 

 

아침 다섯시 반의 보름달.

어제 저녁달이 보름달이었다.

밤새 내 창가를 기웃거린 저 달.

 

아침 여섯시.

수로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언제나 가서 쉬는,

키브리지 앞 낭떠러지.

아침 일곱시의 햇살

 

 

 

 

아침 여덟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차피 지나치는, 전에 살던 집.

혹시 우편물이 온게 있나 확인하려고 들렀다.

마당에 목백일홍이 눈이 부시게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살땐, 붉은 벽돌에 초록색 덧문이었는데

집 주인이 집을 팔기 위해 대대적인 수리를 한 모양이다.

흰 벽돌, 흰 프레임들.

앞마당에 반달모양의 드라이브웨이도 새로 만들었다. (진작에 만들었어야지....)

입구 램프에 매달아 놓은 나비 한마리와 종.

플로리다에서 살때, 선물 받았던 것인데, 그냥 놓고 왔다. 아직도 매달려 있다.

 

내가 매일 내다보던 1층방 창문.

하루종일 해가 뜨고 지고,

밤이면 달이 뜨고 지던 2층 방 창문.

 

 

집주인이 팔기 위해 내 놓아서,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들러도 되니까 좋다...

 

 

 

체사피케 베이글 가게에서 아침에 구운 신선한 베이글 1더즌을 샀다. 베이커즈 더즌은 덤까지 해서 13개. 크림치즈 두통.  아이들하고 아침 점심으로 한 이틀 먹을수 있겠다.

 

창밖에 빨간 카디널이 와서 기웃거린다....

내 방은 tree house 같아...

 

 

씻고 아침먹고 학교 가야지.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7. 25. 02:54

토요일 아침.

날씨가 더워서인지, 아니면 여름마다 찾아오는 무기력감 때문인지 모르지만

좀 피곤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라서

어제도 종일 빈둥거리기만 하다가

아침에 일어나,  오늘도 그렇게 허망하게 하루를 보내게 되는게 아닐까 걱정이 된 나머지

곤히 자는 찬홍이를 깨워가지고

Turkey Run Park 에 갔다. 왕눈이도 데리고. (지팔이놈은 안일어나서 냅 뒀다.)

 

계곡에서, 양말 벗고, 신발 벗고, 계곡 물에 들어가서 세수도 하고 물장구도 치고 놀다가

(찬홍이는 절대 물에 안들어온다. 우리집 남자들은 모두 똑같다. 왕눈이까지 포함해서,  물가에서도 물을 그림구경하듯 하는 인종들이다.)

 

나는 잠시라도 '장난'을 치지 않으면 심심해 죽는 혈액혁을 타고 나서,

게다가 '물'가에서 놀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는 '물고기자리'인지라

물을 만나면, 놀아야만 한다.

 

하여,

왕땡이를 번쩍 안아다가 일단 내가 안은 상태로 물에 띄워서 준비운동을 시켜준 후에

(내 품에 안겨서 열심히 자맥질을 하는 왕눈선수)

왕땡이를 물에 풀어 놔 주었다.

왕땡이는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개 헤엄'을 쳐서 이 난관을 빠져 나가더라 하하하.

왕땡이가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너무 미끈하고 자연스러워 보여서

또다시 물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녀석이 물 밖으로 나온후에 저만치 바위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으므로

오늘 '물개 놀이'는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아래) 미끈하게 헤엄치며 도망가는 왕땡군.

 

 

 

 

 

컴퓨터 화면 보호기, 수족관을 깔았다. 이 보호기가 인터넷에 많이 널렸길래, 다운받아서 깔았는데, 물소리도 나고, 물고기도 돌아다니고, 책상위에 수족관이 있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0. 7. 23. 13:32

 

 

 

집안을 싹 정리하고 나니까, 빨래 바구니용 플라스틱 바구니가 여분이 생기길래,

방석을 깔고 왕눈이를 넣어보았다.

왕눈이가 그 자리가 맘에 드는지 가만 있다.

 

왕눈이는 내가 책상에 붙어 있으면

내 의자 발치에 누워있다가 가끔 내 발에 차이거나 밟히기도 하는데

이 바구니를 내 책상 앞에 놓아두면

왕눈이가 나한테 밟히는 일은 없을것이다.

 

나의 왕눈이.

오늘 내 차에 타고 버지니아텍까지 다녀왔다.  우리 왕눈이, 세상구경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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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5. 4. 10:30

 

 

2010년 5월 3일 월요일.

간밤에 폭우, 아침에도 집중적인 소나기.

새벽에 일어나 책상머리에서 온라인 수업 자료를 챙겨서 보내놓고,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연구실로 나가는 대신에, 비온 후의 상쾌함을 맛보기 위해서 포토맥강변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강변에 나가기 전에 왕눈이를 한번 안아주고.

 

비가 그쳤지만,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어서, 비가 다시 쏟아질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런 흐린 날씨가 산책하기에는 가장 알맞다.

가볍게 조지타운까지 걷다 오려고 작정하고 나간 것인데 (비 온후에 터키런 같은 숲길은 위험하다. 길이 질척거리고 그리고 바위나 나무가 미끄러워서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Fletcher's Cove 앞을 지나다가 배와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가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자전거를 타보면 어떨까?

즉흥적으로 자전거에 눈길이 꽂혀서, 그걸 타고 한바퀴 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내판에 나와있다시피, 자전거는 한시간에 7달러, 하루 28달러 대여료를 받는다.  시간당으로 계산이 되다가 28달러 이상 넘어가면 하루 대여료로 내면 그만이다. (네시간을 타건 다섯시간을 타건 마찬가지라는 말씀).

 

자전거 (혹은 카약이나 보트)를 빌리기 위해서는 신분증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카드나 현금으로 계산을 하면 된다. 신분증은 나중에 자전거나 배를 반납할때 돌려받는다. (신분증 없으면 대여할수 없다.)  사진속의 점원 아저씨가, 성품좋게 생긴 미남이고, 그리고 친절하다. 간단한 음료와 스넥도 판다.

 

 

 

 

 

 

나는 일단 한시간 대여료를 냈고, 나중에 돌려줄때 시간초과를 할경우 정산을 하기로 했다. (그쪽에서 한시간 비용만 받고 나중에 정산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장면을...나는 무척 좋아한다.

길 왼편으로는 바다같이 넓고 느긋한 포토맥강이 유유하게 흐르고

길 오른편으로는 운하가 흐른다.

나는 물위에 난 길을 통과하는 것 같아.

이런 길이 Great Falls 로 향하는 11마일 내내 이어진다.

한편에 강, 또 한편에 운하.

 

 

 

 

흰 건물은 Lock House 라고 한다.  포토맥 강변의 운하 (이 운하 길이 200마일 이어진다, 워싱턴 디씨에서 시작하여 멀리 오하이오에서 끝난다. 그래서 Chesapeake Ohio Canal 이라고 부른다) 이 운하의 수문이 1-2마일마다 있는데 (물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배를 움직이게 해준다)  그 수문 관리인 가족이 살던 집을 Lock House 라고 부른다.

 

현재 이 200마일 (100 마일은 160 킬로미터) 의 운하는 운하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이 200 마일에 이르는 운하길을 국립 공원으로 지정하여 자연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다닐수 있도록 길을 유지보수하거나 나무며 자연환경을 관리를 하지만, 그 외에 인공적인 구조물은 없다. 가게도 없다. (물 사먹을 간이점도 없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언젠가는 이 집에 가족이 살았고

아이들은 부모를 도와 수문을 여닫는 일을 했을 것이다.

 

 

 

 

 

오래된 마일 스톤 (Mile Stone : 이정표 : 몇마일인지 표시하는 돌)이 보인다.

9 miles to W.C 라고 적혀있다. 

워싱턴 디씨까지 9마일 남았다는 뜻이다.

내가 강변에 가면 대개 3.5마일 지점에서 조지타운까지 가므로 왕복 6마일로 환산을 하는데

이곳은 내가 평소에 산책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조지타운 반대방향으로 (상류쪽으로) 5.5 마일을 올라온 곳이다.

 

옛날에는 Washington D.C. 를 W.C 라고 표기했나보다. (혹은 D자가 마모되어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릴랜드 방향의 Great Falls Park 진입로. 이쯤에서 반환

 

이곳을 지나치니, 2008년 12월이던가, 몇몇 지인들과 이곳을 산책한 일이 생각난다.

그중에는 '친구'라 부를만한 이도 있었고, 그냥 아는 분이라고 할 만한 분도 있었고.

겨울이었는데 날이 포근했다.

산책을 마치고, 일행중에 내가 '정경부인'이라고 일컬었던 '마님'이 집에서 국수나 먹고 가라고 제안을 하셨다.  그래서 산책 마치고 그댁에 들러서 멸치국물에 소면 말은것을 잘 먹었다.  그 부인이 내가 고기국물 안 먹는걸 아시고, 내게 뭘 먹일때면 신경을 많이 쓰셨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  이사한 후에 일부러 우리집에 '간장 한통'을 주려고 먼 걸음을 하셨다.  친정 어머니께서 손수 빚으신 아주 귀한 조선간장인데, 그걸 타향살이하면서 아끼고 아끼다가 귀국을 하시면서, 내게 주려고 일부러 빗속에 다녀가셨다.

 

그 조선간장 (우리 집안에서는 이걸 조선간장이라고 부른다.  '왜간장'에 대별되는 '자존심'있는 간장, 그것이 바로 조선간장이다) 을 나는 미역국 끓일때마다 넣어 먹었는데, 이제 잼병으로 두병이 남았다. 저거 다 먹으면 그다음에는 사먹어야 할 판인데, 조선간장은 집에서 담아야 제맛인것을 나는 안다.

 

 

 

 

 

 

Great Falls 에서 반환하여 돌아오는길.

 

 

 

 

오후 한시쯤에 Fletcher's Cove 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출발했는데, Great Falls 까지 가는 11마일 동안, 중간에 멈춰서 자연관찰도 하고, 새 관찰도 하고, 학교에서 긴급회의 한다고 전화를 해대서 전화받고, 그러느라 지체되었다.  길은, 흙길에 자갈이 깔려있어서, 아스팔트에 비해서는 길이 매끄럽지 않아 힘들었다.  자전거 반환하러 가서 시계를 보니 네시간이 지나있었다. (오후 다섯시). 아아아.

 

출발할때는 두시간이면 왕복할줄 알고, 가볍게 생각하고 물 한병 가지고 갔는데, 네시간 돌아다니며 그 물 한병을 아껴먹어야 했다.

 

오늘 내가 자전거로 왕복한 거리는

2008년 11월에 온가족이 걸어서 왕복한 적이 있다.

그날 오전 열한시쯤 출발하여 다섯시쯤에 돌아왔는데, 중간에 비도 오고 아주 물에 젖은 생쥐꼴로 걸었었다.

오늘은

그 길을 나혼자 한가롭게 자전거로 돌았다.

그 길의 부분부분을 친구나 지인과 돌기도 했었으므로 내게는 익숙한 길이었다.

그런데 자전거에 앉아서 보는 세상은 걸을때와는 또 달라서

늘 새롭고, 아름답고 그렇다.

날씨도 비 온 후라 촉촉하고, 공기에서 수박냄새가 나고, 향긋하고, 뜨겁지 않아 좋았다.

 

아마도 오늘 내가 자전거로 타고 돈 거리가, 내 생애에서 자전거로 달린 가장 긴 거리일것이다.

어릴때 자전거타고 태릉에 간다던가, 강변에 간다던가 한 적은 있었지만, 오늘같이 진빠지게 달린 적은 없었다.  어릴때도 내가 포장된 길만 달렸지, 오늘같은 자갈길은 ... 아아아... 만만하게 봤다가 고생좀 했다. 하하하. 하지만 즐거웠다.  또 가야지....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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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0. 3. 19. 21:55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키브리지 왕복  (7마일)

오후 여덟시포토맥강 그리고 초승달

이사진 내가 봐도 참 좋다 :)

 

 

 

 

오후 일곱시 10분 Fletcher's Cove. 황혼

 

 

 

 

 

 

 

오후 여덟시 키브리지와 알링턴 시가지.

 

 

 

 

대략 왕복 7마일 거리  강변길 A 지점에서 출발 -- 키 브리지앞에서 반환

 

& 3월 15 : 2마일

& 3월 17:  2마일

 

 

한창 걷기 할때는, 매일 몇마일을 걸었는지 정리했었다. 올해는 이것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일이 분주하다...)  걸을때마다 정리는 해 놓겠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2010. 2. 9. 13:01

워싱턴 일대는 눈폭탄에 함락되었다. 

 

아이들은 눈을 치우지 않은 뒷마당에 요새를 구축했다.

왕눈이는 북극곰이 되었다.

 

눈은 또 쏟아질것이고

우리들은 '삽질'외에는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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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09. 12. 21. 21:52

 

2009년 12월 19일 (일) 자정부터 자정까지 온종일 내린 눈의 총량

 

 

 

 

 

 

 

 

 

 

 

 

 

2009년 12월 20일

 

아침에 깨어났을때, 창밖은 파란 하늘과, 파랗게 반사되는 쌓인 눈으로 눈이 부셨다.  뒷마당에 쌓인 눈은 식탁의자의 허리 부분을 이미 지나 있었고, 성인 남자의 무릎 높이보다 높았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쌓인 눈을 평생 몇번이나 보았는가?' 물었는데,  내 희미한 기억으로, 어릴때,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시골집 마당에 이렇게 눈이 쌓인적이 있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눈에 갖힌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 후에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인 것을 본 적이 없는듯 했다.

 

우리집 왕눈이는 눈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눈이 가볍게 쌓였을때는 나가서 겅중거리고 뛰어 놀줄도 아는 개 이지만, 눈이 제 키를 넘게 쌓이자 눈을 무서워했다. 

 

옛날에 시골에서 살때, 눈이 많이 쌓이면, 할아버지는 우리집과 이웃집 사이에 이렇게 길을 내 놓으셨었다. 날이 개이면 눈길은 사라지고 말지만,  이렇게 실핏줄같은 눈길이 마을의 집과 집을 이어주곤 했었다.

 

워싱턴의 모든 관공서는 월요일 (21일) 임시 휴무일로 정했고, 금주 수요일에 방학을 시작하려던 공립학교들은 일제히 방학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방학이 일찍 시작되었다고 환호하고...쌓인 눈은 하도 높이 쌓여 하루이틀에 녹을것 같지는 않고...

 

눈길을 걸어 동네 스타벅스에 나가서

뜨거운 라테랑, 아주 달아 미치겠는 케이크 한조각 주문해가지고 난롯가에 앉아 그것을 먹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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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09. 11. 12. 03:33

 

The Lost Art of Walking: The History, Science, and Literature of Pedestrianism

 

 

The Lost Art of Walking by Geoff Nicholson

 

 

이 책은, 하드커버일때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비싸다'이러고 돌아섰던 것인데, 근래에 페이퍼백이 나와줬다.  하드커버로 시작해서,  페이퍼백이 나왔단 얘기는 책이 잘 팔려나갔다는 것도 의미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는... (며칠전에 누군가가 묻길래 조금 생각해보고 대답했는데)...'걷기'이다. '걷기'라면 자신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달리기는 잘 못한다.  걷기는 잘 한다. 걷기 잘하는데 달리기를 못한다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난 정말 잘 걷는다.  우리 언니는 내 말을 이해한다.  우리 언니는 정 반대이다. 우리 언니는 달리기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한줄 모르겠는데, 걷기는 오래 못하겠다는 것이다. 걸으면 지루하고 어지럽고 달리면 머리가 가볍다고 한다.  우리언니는 나와 정반대인데, 그래서 나를 이해한다고 한다.  난 달릴때 힘들고 어지럽고 걸을때 몸이 가볍고 좋은 생각이 많이 난다. (한때 미친듯이 걸었으나 지금은 통 걷지를 않는다...하지만 내가 이 깊은 삶의 수렁을 벗어나면...언젠가...다시 옛날처럼 웃으면서 활기차게 걷게 될지도 모른다.)

 

걷기 이외에 '수영'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한다. 특히 평온한 바다에서 하는 수영을 좋아한다. 바다에서 송장처럼 둥둥 떠 돌아다니는 일을 좋아한다. (플로리다에서 공부할때, 돈 안들이고 할수 있는 오락이 바다에 가서 둥둥 떠다니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잘 못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스포츠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라톤' 선수들의 몸매가 가장 아름답고 섹시한 몸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소한의 오직 필요한 근육만 붙어있는, 강인한.  (군더더기 장식적 근육에 대해서는 경멸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편이다.)  나는 이봉주 선수를 좋아한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냥 그 사람이 믿음직하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왜 축구를 좋아하느냐 하면...축구니까 그렇다... 박지성 때문도 아니고 그냥, 공원에서 사람들이 축구하는 것을 멀리서 멀거니 쳐다볼때가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외의 스포츠에 대해서 나는 별반 관심이 없다. 나는 국가대표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국제 행사에서 죽어라고 한국을 응원하는 일에도 별 관심이 없다.  스포츠가 스포츠지 뭐 별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누군가 묻길래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걷기.'

 

언젠가...전처럼.. 하루에 몇시간씩 걷는 그런 나날이 오기를... 걷기를 하면 우울증이 사라진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도 속이 편할때, 배불러서 우울할때의 얘기이다.  만약에 걷기를 통해 우울증을 해결할수 있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산책나갔다가 바위에서 점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정말 우울할땐, 걷기도 별 소용이 없다. 내가 요즘 걸으러 나가지 않는 이유는, 나 역시 걸으러 나갔다가 키브리지에서 그냥 점프하고 싶어질까봐...  내가 산 걷기전용 신발 두켤레는 먼지만 뒤집어쓴채 내 방구석에 버려져 있다.  점프하면...간단하지...  하지만 생을 그렇게 끝낼순 없는 일 아닌가...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09. 10. 31. 06:22

 

 

어제 새벽에 출발하여 12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오하이오주를 거쳐 미시간주의 주도인 이스트 랜싱에 무사히 도착.  미시간 주립대에서 개최된 slrf 오프닝 참석.  오늘은 오전에 주제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다른 발표를 둘러보고 숙소로 일찌감치 돌아왔다.  어제는 천국의 가을 날씨. 오늘은 비. 따뜻한 비. 북부라서 단풍 색이 선명하고 짙다.

 

(잠을 못자서 조금 피곤한것 외에는 ...대체적으로 평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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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09. 10. 25. 06:55

 

Shanandoah National Park, Skyline Drive 홈페이지

http://www.nps.gov/shen/planyourvisit/driving-skyline-drive.htm

 

한반도의 척추가 태백산맥이라면, 북미 미국의 척추는 애팔라치아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애팔라치아 산맥의 정점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있다. Skyline Drive 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마일 정도 달리면 Front Royal 이라는 소읍이 나오고 이곳에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의 입구 (셰난도 국립공원 입구)가 있다.  이 산맥의 등줄기에 올라 서쪽을 보면 굽이 굽이 이어진 산들이 보이는데 그렇게 한없이 가면 서부가 나온다. 이 산맥의 등줄기에서 동쪽을 보면 푸른 산자락 너머 너머에 대서양이 펼쳐진 형상이다. 수도 워싱턴에서 한시간 거리이므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골치가 아프면 이 산맥의 등줄기에 올라 넓게 펼쳐진 국토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고 한다.

 

버지니아로 온지도 2년이 넘었지만, 나는 가을 단풍 구경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었다.  오늘 하필 절정이라는 가을단풍 구경을 나섰는데,  날이 변화무쌍하여 흐리고, 비가 쏟아지다가, 개다가 다시 비가왔다.  난 비오거나 흐린 날도 분위기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므로...특히 요즘은 심적으로 우울한 관계로 맑은 날은 더 괴롭더라. 맑은날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는것 같고, 나만 혼자 왕따된 기분이 들기도 하므로...  왜 나갔냐하면, 집에 있으면 우울해서 잠이나 잘까봐.  :-]  (난 나름대로 우울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 비오고 안개끼고 온갖 날씨의 쇼를 하는 가운데 단풍구경을 했는데,  하하하, 안개가 자욱하니까 단풍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일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왜 사람들이 '단풍구경'을 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 여태 살면서 단풍구경을 해 본적이 없었다...)  단지 자연이 선사한 알록달록한 풍광속에 내가 흐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색깔치료' 와 같은 위안을 받았다.  미국 미술사에서 21세기에 '추상표현'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Rothko 를 위시한 작가들이 '어마어마한' 캔바스에 색칠을 해 놓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워싱턴의 미술관에 가면 21세기 추상표현주의 관련 작품들이 전시된 곳은 홀이 넓고 그리고 벽을 '압도'하는 대형 작품들이 걸려있다.  나는 이 전시장들을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그 어마어마한 작품 앞의, 어마어마한 색상 앞에서 앉아 쉬거나 서있을때, 색이 내게 스며드는 듯한 유쾌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색이 되고 색이 내가 되는듯한 느낌.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그런데, 단풍 구경을 갔을때, 알록달록하게 물든 자연이, 혹은 뿌연 안개가,  흐려서 수묵화처럼 보이는 무채색의 풍경이 내 몸에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자연과 동화가 된다는 느낌이 들면서,  '괜챦아, 괜챦아' 라는 기분이 들었다. 뭐가 괜챦은가하면...그냥... 견디기 힘든 시간이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이 시간을 용서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막막하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사람들은 색깔을 몸에 담기위해 단풍구경을 가나봐...했다.

 

 

 

 

이곳이 바로 애팔래치아 산맥 등줄기에서 내려다본 셰난도 골짜기. Grandma Moses 모세 할머니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던 곳. 모세 할머니가 즐겨그리는 풍경화의 구도와도 흡사하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randma%20Moses

 

 

 

 

 

 

 

 

 

 

 

 

 

 

 

 

 

 

 

 

 

 

 

 

 

 

 

어느 모르는 인도계 가족 일동이 하필 내 차 밖에 모여서서 사진을 찍길래 나도 차 안에서 이들을 찍어봤다.  비와 빨간우산과 가무잡잡한 피부와 그리고 선량한 가족이 그려낸 예쁜 그림.  이들이 행복해보여서 나도 좋았다.  모두 행복하시길.

 

 

 

 

 

돌아오는길 Apple House 라는 식당에서.  이들이 만들어 판다는 잼과 소스병을 찍어보았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동안.  이 식당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3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Front Royal 에서는 명소인것으로 보인다.  하이웨이와 지방도로가 만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나같은 소풍객들이나 이지역 주민들 모두가 편안하게 드나들수 있는 곳.  다양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었는데, 음식이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갔다.  난 3달러짜리 계란 샌드위치 (버터로 구운 식빵 사이에 얇은 계란부침 끼운것)를 먹었는데,  내가 내 식성에 맞춰서 집에서 만든것보다 더 바삭하고 기름기없는 맛이었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이 식당에서 계란샌드위치를 먹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곳으로 달려갈지도 모르겠다.

 

 

 

 

 

 

Applie House 의 위치는 워싱턴에서 갈경우 하이웨이 66 서쪽방향으로 50마일쯤 달리다가 Exit 13 에서 나간다. 나가면서 셰난도 국립공원 안내판을 따라서 달리다보면 국도 55번상에서 주유소가 나타나고 주유소 옆에 빨간 건물이 나타날것이다.  이곳이다. Exit 13으로 정확히 나가면 쉽게 찾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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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18. 12:23

How Starbucks Saved My Life: A Son of Privilege Learns to Live Like Everyone Else

 

 

사람이 사는데 별로 의욕이 없고, 공부도 하기 싫을때, 전공책도 보기 싫을때, 그럴때가 있는데, 사람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제각각일 것이다.  전에 나는 답답하면 몇시간씩 산책을 다녔다. 현재 나는 상태가 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산책을 나가는 대신에 주로 잠을 자거나, 평소에 안읽던 '진부해 보이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인다.'  요즘 나는 시간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고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견디기 위해서 그냥 뭔가 하는데, 몸을 움직이기 싫으니까 '눈운동'만 열심히 하는 상황. 책보다 잠이 오면 자고, 잠이 깨면 다시 책을 보고. 

 

찬홍이가 책을 사다달라길래 서점에 가서 The Crucible 이라는, 아서 밀러의 드라마를, 내가 대학교때 읽었던 책을 찾아 들고 그냥 책방에 온김에 어정거리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서 집어 들었다.  이거 스타벅스에 가면 매장에 보이던 책인데. 그래서 스타벅스 홍보용 책인가보다고 늘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내가 왜 이 책을 집어든 것일까?  쉽게 읽힐것 같아서, 머리 식히기 좋아보여서, 혹은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이 뭔가 궁금해서...

 

막상 읽어보니 내 예상과 다른 엉뚱한 책이었는데...

 

온종일 읽는 내내, 내 삶과 연결지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수 있었다. 우선, '바닥'으로 수직하강한 한 사나이가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그리고 곁두리로, 스타벅스의 지침도 내게는 의미있었다.  내가 요즘 내 우울감때문에 학교에서 좀 침울하게 행동했고, 내 학생들에게 충분한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령 '내 학생이 나로부터 -  학생으로서 받아야 할 애정이나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부족했던 것 같고.  내가 좀 신경을 쓰고 내가 능동적으로 나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개인적인 실패는 개인의 문제이고, 그것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내가 나 자신을 컨트롤을 잘 해야 하는 것이지.

 

스타벅스의 장점들이 많이 열거되어, 결국 스타벅스 홍보에도 한 몫 했겠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이 책에 그려진 스타벅스 매장의 아름다운 면을 나는 내 직장에 도입해야 하고, 내 가정에 도입하면 좋을 것이다. 내 삶은...이 책의 저자처럼, 나의 상실감이나 실패감 같은 것 역시 내가 치유하는 수 밖에.

 

이제, 나도 '앞으로' 나아가야 (move on) 하는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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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18. 11:50

Letters to Sam: A Grandfather's Lessons on Love, Loss, and the Gifts of Life

 

집의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심심풀이로 집어들었다가, 설득력이 있어서 끝까지 본 책.  목소리는 잔잔하나 울림은 깊다.  이 책이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저자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어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소스를 주므로 힘이 있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고통에도 페이소스란 것이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은 위로를 받았다.  그가 제안한대로, 때로 사람은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며 흘러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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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14. 01:49

 

느지막하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책가방을  차에 싣고, 차를 출발하려다 생각하니 문간까지 나를 따라와 '잘 다녀와라'하고 말해줄 왕눈이가 안보이는거다.  아침에 시무룩하게 내 침대 발치에 있던 것 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후로 왕눈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 옷장까지 뒤져봤으나 왕눈이는 없었다.

 

뒷문을 통해서 나간 모양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하나 하나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서 멀어져 사라져간다. 세상의 모든 별들이 급속한 속도로 하나하나 꺼져가는 듯한 환각.

 

왕눈이는 동네 어떤 집 마당에 묶여 있었다.  한시간도 넘게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길래, 차에 치일까봐 묶어 놨다고.

 

왕눈이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내 방으로 뛰어온후에 기쁜 표정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사실 세달 가까이 나는 왕눈이를 산책도 시키지 않고,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다. 산책도, 목욕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왕눈이를 돌보는 것은 다른 식구들 차지가 되어 버렸고,  그래도 왕눈이는 내 발치에 와서 내게 붙어서 잠이 들곤 했었다.

 

감기가 다 낳으면, 제일 먼저 할일은, 왕눈이를 동네 지정병원에 가서 종합적으로 체크업을 해주고, 밀린 예방접종도 다 맞춰주고, 그리고, 털을 예쁘게 깍아주는 일이다. 그것부터 해주자.  나는 왕눈이에게 너무 무책임했다.  무책임하면 안된다. 개 한마리라도, 무책임하면 안된다.

 

왕눈이가 돌아와서 다행이다.

왕눈이가 다칠까봐 묶어놓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 착한 이웃이 있어서 다행이다.  (친절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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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09. 10. 12. 03:36

 

 

 

 

해마다 가을이면 버지니아에서는 인근 과수원으로 소풍을 간다. 사과밭을 찾아가 실컷 사과를 따가지고 값을 치르고 오면 되는 것이다.  과수원도 제각각이라 '기업형'으로 크게 과수원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있고, 그냥 시골 과수원에서 광고도 없이, 동네 사람이 오면 사과를 파는 곳도 있고 그렇다.  전에 플로리다에서 살때는, 초가을에 포도를 따러 다녔고, 가을이 오면 시월이 되면 단감을 따러 가서 배가 터지도록 단감을 따 먹고 들통 가득 사가지고 오곤 했었다.  돈없는 유학생들에게도 그 단감이 가격이 매우 싸서, 주말에 감밭에 가면 인근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그자리에서 단합대회를 할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플로리다에 가면 학생들이 단감을 따며 깔깔 댈 것이다. 그 감밭이 그립지만, 버지니아에서는 감밭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남겨두고...우리는 흘러간다.

 

지난 두해 가을동안 나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큼직한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따 왔었다. 사과알이 크고 탐스러웠고, 하루 소풍장소로 좋을 만큼 다른 오락시설을 갖춘 곳이기도 했다.  올해에는 학교에서 학생이 새로운 장소를 알려준다. 시골 할아버지네 과수원인데, 약도 안치고 비료도 안주고 그냥 자연상태에서 사과가 열리는 곳이라 알이 작지만 단단하고 그리고 아주 달다고 가르쳐준다.  사과 값도 한참 싸다고,  학생이 맛보라고 갖다준 사과가 하도 싱싱하고 달길래, 주소를 받아놨다가 오늘 가 보았다.  집에서 65마일 거리. 천천히 운전해도 한시간 반이면 되겠다.

 

 

주소지를 찾아가보니 별유천지 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이었다. 한마디로, 사람이 없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주인은 예배당에 갔는지 농장이 텅 비어있는채로 안채의 문이 잠겨있고, 창고문은 그대로 열려있다. 창고문에 사과따는 도구가 나란히 세워져있고, 볕이 가득한 창고 안에는 사과상자도 놓여있고.  내학생이 내게 이르기를 사과는 배가 터지게 먹어도 되고, 사과를 상자에 담아가면 되는데, 많건 적건 한상자에 14달러라고 했었다. 기웃거리며 주인을 기다리다가 도통 인적이 없길래, 차를 마당에 세운채로 작대기와 들통을 들고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땄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대답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흐르는 물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임자는 어디가고 창고 문만 환하게 열려있는 사과농장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내집처럼 창고에서 들통 하나를 꺼내 들고, 사과 작대기 세워 놓은 것 하나 들고, 사과를 따러가세 사과를 따러 가세, 태초의 아담처럼 사과를 따러가세, 태초의 이브처럼 사과를 따러가세

 

 

 

 

사과나무들이 줄지어 선 언덕

 

 

뜰앞에는 코스모스도 피어있고요~

 

 

 

무농약, 무공해, 버지니아 사과를 팔아요, 사과를 팔아요~

An apple a day keeps a doctor away~

하루에 사과 한알을 먹으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버지니아 사과를 사세요~

 

 

 

 

시월의 햇살아래 익다 지친 사과는 툭~ 툭~  떨어져 쌓이고

 

사과밭 할아버지는 언제쯤 돌아오시려는지

 

 

정원에 굴러다니는 바구니를 문간에 갖다 놓고, 거기에 10달러 지폐를 하나 눌러놓고 사과밭을 떠나다.  한상자 다 안채웠으니까, 10달러만 놓고 갈래요~

 

 

 

 

피천득 선생의 시에 '꽃씨와 도둑'이 있다.

 

꽃씨와 도둑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 가야지

 

아무도 없는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 먹고, 사과를 따 모으고 놀다가 역시 빈 사과밭을 떠나며 피천득 선생의 시를 혼자 중얼거렸다. 가을에 와서 사과나 가져가야지...

 

집에 도착하여 메모지에 적힌 사과밭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할머니가 받으신다.  "내가 사과밭에 갔더니 아무도 없길래 잘 놀고, 사과 따가지고 오면서 10달러를 놓고 왔는데 보셨나요?"  전화가 너머에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나고, 뭐라뭐라 묻는다.  버지니아 농민들의 사투리가 들린다. 아, 이분들 평생 이곳에서 사셨구나.  할아버지가 "Ten dollar?"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 "Yes! I found it!" 그가 저만치서 외치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는 내 예상대로 아침에 예배당에 갔다가 조금 전에 왔다고 집이 빈 사정을 설명하고, 나는 덕분에 잘 놀았다고 인사를 한다.  시월 어느 일요일, 버지니아 셰난도 골짜기의 그 사과밭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열어놓은 에덴동산이었다.

 

p.s. 셰난도 골짜기는 모세 할머니가 18년간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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