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ums2009. 9. 20. 22:14

 

 

공식 홈페이지:http://www.philamuseum.org/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서 있는 언덕은 원래는 '저수지'였다. 그런데 기존의 펜실베이나 박물관이 노후해 짐에 따라 새로운 박물관 부지를 물색하던 사람들이 이 저수지 자리를 눈여겨 봤고, 1917년 이 터전위에 세워질 박물관 설계가 완성되었다.  11연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28년 현재의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완공을 보게 된다. 올해가 2009년이니까 81년 된 셈이다.  1917년이면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한일합방을 당하고 1919년에 삼일운동이 일어났으니까, 그 즈음에 이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의 주요 건물들이 대개 '코린트 양식 (Corinthian)'을 택하고 있는데 이 건물 역시 동일한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미국 건국 초기의 건축양식에 나타나는 미국의 이상주의에 대한 페이지를 따로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코린트 양식을 '별로 아는바가 없는 내 식으로' 단순무식하게 설명하자면, 기둥위를 살피면 '뭐라뭐라' 장식을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히히히. 이부분은 Art Dictionary 카테고리에 추가 설명 페이지 엮어야 할 것 같다. 공부를 해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시간은 (오전 10시 - 오후 5시).

입장요금은 성인 16달러

자세한 사항은 http://www.philamuseum.org/

안내데스크에는 한국어/일어 안내지도 준비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가보다.

 

1층에는 미국미술과, 유럽미술이 주로 전시가 되면 윗층으로 올라가면 세계 여러나라의 문화 예술품 전시관들이 있다. 이곳에 한국관도 있는데 이웃한 일본관에 비하면 어쩐지 쓸쓸하지만, 아무튼 한국관도 있긴 하다.  2008년에 방문했을때 돌아보았는데, 올해 (2009)에는 내가 '미국 미술' 자료를 찾아보러 간 것이라서, 전관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다. 오로지 미국미술관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냥 일반적으로 둘러보기에는 하루를 다 잡아도 다 보기 힘들정도로 전시품의 양이 방대하고, 그냥 지나치기 안타까운 명작, 명품들이 수두룩해서 오히려 갈증이 심하게 날지도 모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귀한 것들인데 다 볼 수 없어서 안타까운, 그런 갈증.

 

 

 

본관 외에도 길건너 조금 걸으면 Perelman Building (펄만 빌딩)이라고 불리우는 별관도 있는데, 이곳에는 주로 현대 미술, 설치작품들이 전시가 된다.  참고로 이 건물의 카페테리아 디자인이 현대적이고 예쁘다.

 

 

 

미국미술에 관심을 가진 나의 입장에서 평가해보자면, 이곳의 미국 미술관은  가구나 다른 장식품 속에 당시의 회화작품을 전시하는 식으로 입체적인 전시를 시도 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은 미국미술의 분야중에서도 '회화'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가구나 장식품에는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는것을 보면).  펜실베니아 태생의 Thomas Eakens 토마스 이킨스, Hicks (힉스)등 지역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어서 배부르게 볼 수 있고, 제법 '미국미술'품이 숫자가 많아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에도 미국미술 전시관이 따로 있는데,  내 인상으로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쪽이 미국 미술에 좀더 성의를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미국미술의 '왕'은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박물관이라고 할수 있겠다.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 미술관까지는 자동차로 편도 세시간이면 넉넉하다. 그래서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자중에 이곳을 일정에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미국에서 왕복 여섯시간 거리는 그냥, 대충 참을만한 하루 여행거리).  필라델피아 시내에 있어서 일단 미술관에 가면 걸어서 시내를 둘러보는 일도 가능하고, 주말에는 주변에 무료로 주차도 가능하다. (내가 주말에만 가 봤으므로 주중에 주차사정이 어떠할지는 가늠이 안된다.)

 

참고로 Philadelphia 필라델피아는 City of Brotherly Love (형제애의 도시)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탐 행크스가 주연했던 Philadelphia 라는 영화에서 닐 영 (Neil Young) 이 부르는 노래 '필라델피아'가 흐르는데 'City of brotherly love~'라는 가사가 슬프고 달콤하게 흐르기도 한다.  이 별칭은 초기 미국 정착역사와 관련이 있다. 매사추세츠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주요 세력은 '퓨리탄'이라고 일컬어지는 개신교 세력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종파에 대하여 배타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델라웨어나 기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기도 하였다. 펜실베니아 지역에는 퀘이커교도들이 정착하게 된다. 퀘이커 교도들은 퓨리턴들과 달리 이념이나 종교적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용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도 마음편히 살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도 전해지는 해리엣 스토우의 '엉클 톰스 캐빈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야기에도 퀘이커 교도들이 도망가는 흑인 노예들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늘 '퀘이커 교도' 하면 어릴때 읽었던 그 장면이 떠오르고 마는데, 필라델피아가 그들의 땅이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역사적인 곳인데,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페이지를 여는것이 좋겠다. 오늘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방문한 사진을 좀 올리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를.

 

 

유튜브에 연결된 닐 영의 필라델피아 노래

 

 

 

가사:

Sometimes I think that I know  
What love's all about  
And when I see the light
I know I'll be all right.

I've got my friends in the world,
I had my friends
When we were boys and girls
And the secrets came unfurled.

City of brotherly love
Place I call home
Don't turn your back on me
I don't want to be alone
Love lasts forever.

Someone is talking to me,
Calling my name
Tell me I'm not to blame
I won't be ashamed of love.

Philadelphia,
City of brotherly love.
Brotherly love.

Sometimes I think that I know
What love's all about
And when I see the light
I know I'll be all right.
Philadelphia.

 

 

미술관 및 필라델피아 시내 사진들

 

 

 

 

 

 

미술관 앞 광장 계단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내가 시간을 많이 보낸 미국 미술 전시장의 한 갤러리. 토마스 이킨스의 그 유명한, 수술하는 그림이 오른쪽에 보인다.

 

 

현대미술 갤러리의 한 전시장.  오른쪽에 앤디 와홀의 재클린 케네디 작품이 보이고, 왼쪽에는 역시 앤디와홀의 '전기의자 (사형할때 쓰는 전기의자)' 작품들이 걸려있다. 중앙의 홀 천장 저쪽에 가위표 (x표)가 보이는데 이쪽편 벽에는 동그라미표가 있다.

 

 

 

미술관 구경의 즐거움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뮤지엄샵 구경.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뭘 사지는 않는다. 그냥 사진 찍어 오는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하고, 물건 사 늘어놔봤자, 어쩐지 인생에 짐만 들어나는 것 같기도 해서.

 

 

 

뮤지엄샵에서 발견한 한국미술품 도록.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하는 한국미술품 책이다. 반가와서 들었다가 내려놨다.  :)

 

 

 

미술관 계단에서 내려다본 필라델피아 시내 전경. 중앙에 보이는 도로가 '프랭클린 도로'인데 (벤자민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의 터줏대감님이었다) 이 도로를 따라서 한가롭게 걷다보면 시내 주요 박물관들, 건물들이 차례차례 나온다.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뭐 배경 좋은 공원에서 신부사진을 많이 찍는데, 이 미술관앞 광장에 신부사진을 찍으러 온 팀들이 여럿이었다.  사진속에만도 두팀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신랑, 신부만 단촐하게 웨딩사진을 찍는 편인데, 미국에서 살면서 보면 신랑신부가 친구들에게 드레스와 턱시도를 사 입혀가지고 (그러니까 돈이 엄청 들지...) 아예 단체가 이동을 하며 여러가지 장면을 연출한다. 사진에서 보면, 가까운데 있는 팀은 '가족'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옷을 맞춰 입고 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단촐한 경우이고, 저만치 있는 팀은 신부의 친구들이 단체로 드레스 입고, 신랑 친구들도 단체로 턱시도 입고 줄서서 사진찍고 그랬다.  공부할때 중국계나 돈없는 유학생들 결혼식하는 것도 보았는데, 가장 단촐한 케이스는 지역 등기소에 가서 결혼신고 하고, 등기소 한구석에 마련된 '기념사진 촬영용' 세트 앞에서 그냥 신랑색시가 기념사진. 이때 신랑색시의 복장은 그냥 수수한... 친구들도 각자 가진 옷중에 가장 좋은 옷으로 골라입고 와서 축하.

 

 

계단 아래 입구 구석에, 그 유명한 Rocky 로키 동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줄서서 차례 기다리는 사람들.  무명의 실버스타 스탤론을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만들어준 영화 Rocky 1편의 장면중에 로키가 운동삼아서 이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을 뛰어오르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성공으로 덕분에 이 장소도 명소가 되고 말았다.  (어릴때 영화 로키 1의 이야기를 선생님한테서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수업중에 영화 얘기를 해준 선생님이라니...하하하.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집에 비디오가 생긴 후에야 그 유명하다는 '옛날' 영화를 보고 좋아했었지.)

 

 

 

프랭클린 도로변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에 로댕 박물관이 나타난다. 입장료는 무료. 기부를 하고 싶다면 각자 알아서 원하는 만큼만 내거나 말거나. 중앙에 보이는 것이 지옥의 문. 왼편으로 건물안에 들어가는 문이 있다. 그 안에 로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칼레의 시민이 중앙홀에 있다.

 

 

계속 걷다보면 왼편에 프랭클린 도서관이 나오고, 길 건너편에 과학센터, 자연사 박물관등이 나오고, 중앙에 로간 써클 (Logan Circle)이라는 중앙 분수공원이 나온다. 이 분수공원을 가로질러 가보면 자연사박물관 뒷편으로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자연사 박물관

 

 

고층건물의 숲. 

그러니까, 박물관에서 내려다보던 저 멀리 있던 그 고층건문들 그 숲속까지 슬슬 걸었었다는 기록이 되겠다.  걷기에 편안한 9월의 햇살이었다.

 

 

 

박물관 입구 돌계단에서, 사진사들이 신부들을 꼭 이자리에 앉혀 놓고 사진들 찍길래, 저 자리가 어떤 자리길래 모두들 저 각도로 저기서 사진을 찍나 궁금해서 찍어봤는데,  햇살이 뒷편에서 부터 오면서 역광에 가까운 측광이라 머리 뒷부분이 반짝이고, 얼굴은 그늘지고,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 각도가 신부사진 찍어대던 전문 사진사들이 선호하던 각도였다.  하하. 난 야외에서 신부사진 그런거 찍어본적 없어서 야외 웨딩촬영하는 풍경을 보면 조금, 음, 번거롭겠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옛날에 우리 엄마는 '구식 결혼'을 해서, 연지곤지에 한복 새색시 복장으로, 아빠는 사모관대 뭐 그런 복장으로 결혼식을 해서, 그런 흑백사진이 우리집에 걸려있는데 엄마는 하얀 웨딩드레스입은 사람들 사진을 무척 부러워하셨다. 두고두고 부러워하셨다.  어느해에 우리 엄마가 집에 돌아다니면서 사진장사를 하던 사람의 설득에 혹하여서 '사진 합성'을 주문했다.  뭐냐하면 아빠, 엄마 얼굴 잘 나온 사진을 가져다가 웨딩드레스 입고 양복입은 신랑신부 사진에 '합성'을 하는 것이다. 사진장사가 그렇게 합성을 하여 액자에 담아가지고 와서 돈을 받아가지고 갔을 것이다. 아주 아주 옛날 이야기이다.  그날 저녁에 학교에서 퇴근하신 우리 아빠가 엄마를 '어린애' 야단치듯(?) 엄마한테 화를 내셨다. 왜 남의 몸뚱아리에 내 얼굴을 갖다 붙이느냐 이거였다. 이런 거짓사진이 그렇게 좋냐 이거였다.  나는 웨딩드레스의 환상이 좌절된 우리 엄마가 안타까웠다.  그때부터였을거다. 내가 웨딩드레스를 증오하게 된 것이.  나는 그따위 환상같은것 개나 물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인데, 엄마의 환상이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에 그만 그 반대로, 강한 거부를 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봐도 별 감흥이 없고, 사람들이 왜 저것을 입고 사진을 찍을까? 이런 의문이 일없이 떠오르다 말 뿐이다.  사는게 그런거지. 뭐.

 

 

Posted by Lee Eunmee
Pop Art2009. 9. 19. 18:42

 

http://americanart.textcube.com/48 로이 리히텐시타인의 '집'에 이어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and Portrait Gallery) 입구에 설치된 로이 리히텐스타인(1923-1997)의 작품, Modern Head (근대적 머리). 1974년에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이 작품은 1989-1990 년에 제작된 것이다.

 

리히텐스타인은 1960년대 말 부터 이 모던헤드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산업화가 가속되는 현대 문명 속에서 기계처럼 변화하는 인간을 묘사했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 데코 (Art Deco) 건축 디자인과도 맥이 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원래 1996년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World Trade Center)에서 한블럭 떨어진 곳에 세워졌었다.  그런데 2001년에 911 참사가 터졌고, 무역센터 빌딩들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한복판에 있었던 이 작품은 약간의 표면 상처만 입었을 뿐 멀쩡하게 그 재난을 버티고 서 있었던 것.  모던 헤드.  이는, 인간의 두뇌가 그 모든 재앙 속에서도 꿋꿋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서, 911참사 발생 직후, FBI 요원들이 이 지역을 조사하던 시절, 이 작품은 FBI 요원들의 '메모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작품 벽에 메모지들을 붙여놓고 정보 정리도 하고 연락도 취하고...  911참사 발생 2개월 후 2001년 11월 9일 모던헤드는 뉴욕에서 벗어나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으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박물관 울타리 안쪽에 세워져 있으므로 다가가서 메모지를 붙여 놓을 수는 없지만, 멀리서도 이 파란 얼굴을 보면 반갑기도 하다. 재앙을 딛고 일어선채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것 같아서.

 

september 18, 2009 rf.

 

 

그런데, 지금 사진을 들여다보니 울타리에 붙어있는 장애인 표시의 파랑색과 모던헤드의 파랑색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는듯 하다.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9. 19. 03:18

 

                        http://www.nga.gov/press/special/tower/guston09/index.shtm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http://americanart.textcube.com/41   ) 에서 2009년 1월부터 1년간 필립 거스톤 (Philip Guston (1913-1980)의 특별전을 열고 있다.  위치는 동관 (East Building)의 Tower Gallery. 

 

필립 거스톤은 Jackson Pollock, Willem De Kooning 과 더불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화풍의 기수였으며 후기에는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으로 선화하기도 하였다.  추상표현주의나 신표현주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뤄보기로 하겠다.

 

 

1913년 캐나다 몬트리올 태생의 필립 거스톤은 가족을 따라 어린 시절 캘리포니아의 로스 엔젤레스로 이주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1세이던 1924년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어린 필립은 아버지의 자살 현장을 목격한다. 그가 14세 되던 1927년 Los Angeles Manual Arts High School 에 입학하여 Jackson Pollock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가 미술보다 스포츠를 더 많이 지원한다고 항의했다가 퇴학조치를 당하고 만다. 폴락은 그 후에 학교로 복귀했지만, 거스톤은 고등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후에 Otis Art Institute in L.A. 에서 1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하게 된다. 그가 1년만에 오티스 미술 학교를 집어 치운 이유는 학교에서 석고상을 그리는 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도록 지도하는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그는  왜 석고상만 그려야 하는가  반발하여 어느날 밤새도록 실기실에서 석고상을 스케치하여 실기실 바닥을 그의 습작으로 뒤덮어 버린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받은 미술 교육의 전부였다. 그후로 그는 스스로 그의 미술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비록 정규 미술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정규 미술 교육 과정의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University of Iowa (1941-1945)에서 교수를 했고, 미주리 주에 위치한 Washington University at St. Louis, New York University, Pratt Institute 에서도 후진을 양성했다.

 

본래 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유태인이었고 유태인 탄압을 피해 북미 캐나다로, 그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피해 북미로 왔지만, 북미가 유태인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소년시절 거스톤은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는 Ku Klux Klan (일명 KKK단, 혹은 Klan)의 폭력에 노출되어  심리적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미국태생의 학생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흔히 KKK단의 주요 공격대상이 '남부 흑인'인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KKK 관련 내용을 좀더 뒤져보거나 미국사 책을 뒤져보면 KKK단이 인종청소를 감행하려 했던 '나찌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백인이 아닌 거의 '모든' 인종들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주요 공격대상이 흑인들이었지만, 그 외에도 아시아계, 유태계, 히스패닉계 역시 이들의 공격 내지는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의 부모가 유태계였으며, 미국에서 KKK의 위협에 시달렸던 흔적이 그의 미술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여기저기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KKK단 복장을 한 인간의 모습이 여기저기 나타나는가 하면 나찌의 유태인 학살장면을 연상케 하는 무수한 '신발들'이 포개진 그림들. 

 

국립 미술관에 모아진 필립 거스톤의 유화 대작들과, 리토그래프 작품들을 이리저리 감상하면서 얼핏 스치는 생각은, 어딘가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것이다. 알수 없는 불안함. 편하지 않음.  그러나 한편 낙관적임.  뭐랄까 불안을 극복한 사람이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미소라고 할까?  원래 그림 감상은 감상자의 투사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정작 불안한 것은 그림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와 필립 거스톤과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후에 공부를 하면서 그의 미술 세계에 대한 리뷰를 적어나가겠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전시회에 진열된 '전 작품' 그리고 전시실 구석에 마련된 필립 거스톤 관련 6분짜리 영상자료를 내가 사진으로 찍어본 것 들이다.  (아직 사진기술이 서툴러서 그림이 삐뚤어지고 그랬지만, 내 눈으로 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

 

 

 

 

 

 

 

 

 

 

 

 

 

 

 

 

 

 

 

 

 

 

 

 

 

 

 

 

동영상 화면 사진

 

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9. 18. 04:46
Made in America

Made in America: An Informal Histoy of the English Langauge in the United States

이 책에는 미국사의 여러가지 장면들에 대한 잘못된 상식, 혹은 유래 등이 유머러스하게 설명되어 있다.  유쾌하게 읽히는 책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라면, 빌 브라이슨이 하도 해박하여 별별것을 다 알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상식있는 미국인들이 알만한 내용에 대해서 그 허실을 구구절절이 설명을 해 주는데, 그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상식은 '미국인이 아닌 사람이 보기에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것들도 있다.  미국인들만 알 수 있는 에피소드 같은 것 들.  그러니까, 미국사의 어떤 부분은 사실은 잘 못 알려진 것이거나 과장된 것이라고 그가 아주 웃기게 설명할때, 그 미국사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난감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은,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 쉽게 씌어진 간단한 미국사책과 병행해서 읽을때, 더 이 책의 맛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가령 벤자민 프랭클린이 여자 밝힘증 늙은이였다던가, 독립 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제퍼슨은 사실은 버지니아 헌법에서 많은 부분을 베껴왔다던가, 미국이 독립선언을 1776년에 했지만, 그 때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것도 아니고, 전원이 서명을 한 것도 아니었고.....

상식의 허를 찌르는 내용을 담은 책은, 상식적인 내용을 담은 책을 읽고 나서, 혹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을 알고 있을때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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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Books2009. 9. 18. 03:50

 

 

http://www.yes24.com/24/goods/18360

청솔역사교육연구회 | 청솔출판사

 

우리집 창고에서 발견한, 커버도 찢어지고 없는 '이야기 미국사'.  이틀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어느 시대에 어떤 그림이 집중적으로 소개가 되는지, 왜 그 시기에 그런 미술이 각광을 받게 되는지, 왜 어느지역에서 발표된 그림이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런 문제들을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가령 미국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시대상황에 대한 스케치가 휙휙 지나가는데, 또 그것을 내가 구체적으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사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다보면 미국사책을 뒤지거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거나 해야 한다. 두가지를 병행하는 일이 어느때는 꽤 성가시다. 특히 나처럼 성격이 급하고, 한가지를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 저것 차분하게 챙기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다.  결국, 그래서 내가 이 책이 눈에 띄었을때, 냉큼 읽기 시작한 것이리라.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대략 간단하게' 스케치 한 미국사라고 할수 있다. 활자가 커서 시력에 부담도 안주고, 그리고 내용이 쉬운 말로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큰 그림을 파악하기에 편리하다.  물론 구체적이고 세밀한 역사는 소개가 안된다. 그런데, 그 구체적이고 세밀한 역사 부분은 오히려 내가 더 잘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를 잡식성으로 읽거나 배웠으니까.  그 여러가지 내가 세밀하게 아는 내용들을 이 간단하게 정리된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 삽입시키면 되는것이다. 그러면 나는 큰그림과 세밀화 모두를 머리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성인이 교양수준에서 미국 역사를 대충 살피기 위해서 읽기에, 이 책은 안성맞춤이다.  나는 이 책을 다른 미국미술사 책 옆에 놓아두고 필요할때마다 페이지를 열어 내 기억을 환기시킬 생각이다.

 

물론 미국사를 이해하기 위해 이것 한권 가지고는 곤란하다. 그러나 '시작점'으로서 아주 좋은 책이다.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아갈때, 내가 취하는 방법은, 아주 읽기 쉽게 정리된 간단한 책에서 출발하여, 그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좀더 상세한 것을 찾아 보고, 그리고 머릿속에 구체적인 '지도'가 그려지면, 제법 권위있는 안내서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필요한 부분을 찾아 보는 것이다. 미국사 출발 안내서로 이 책을 추천 할 만하다. (주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서술을 하는 식으로 미국사의 흐름을 서술하고 있다).

 

september 17, 2009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