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5. 15. 10:13

지난주 모 고교 특강중에 일어난 일화.

중간에 10분 휴식을 갖고 두시간을 진행하는 특강 첫날 첫 시간 - 학급 전체 학생중 약 1/4이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엎드려 자고 있거나 하는 상황이었다.  내 특강을 보조하기 위해 배치되신 듯한 선생님께서 학생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며 조용조용히 주의를 주신다.  특강하는데 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깨어나라는 뜻이리라. 중간 쉬는 시간에 담당선생님께 빙긋 웃으며 말했다, "Please do me a favor. Please do not wake them up. Let them take a nap if they are tired or just bored of my class. I am fine with it." 선생님께서도 잔잔한 미소로 동의하셨다.

 

 

2교시 수업 시작할때 내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Feel free to take a nap in my class if you like to. It will be okay as long as you do not disturb other students during my class activities. If  you are tired, you need to taka a rest in my class."  그렇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는 것을 제시해도 교실 구석에서 누군가는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그들중 누군가는 내가 이야기를 하면서 그 곁으로 다가가면 - 나를 의식한듯 부스스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는 그의 잔등을 토닥이며 '자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수업 듣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깨운다고 그 사람이 수업을 제대로 듣겠는가?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나도 재미없는 수업중엔 낙서를 하고 딴짓을 했다. 이들이라고 나하고 다를리가 없지 않은가?

 

 

둘째 날은 수업 시작할때부터 학생들 앞에서 수업보조를 하러 오신 새로운 담당교사께 공개적으로 부탁을 드렸다. 내 수업중에 자는 학생이 보여도 흔들어 깨우지 말고 푹 자게 내버려 두시라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역시  일부 학생들은 노골적으로 엎드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생존 반응'을 보이는 - 눈을 빛내며 내 질문에 답을 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강의를 이어나갔다. 

 

 

내가 한국의 전형적인 '이력서' 양식과 미국의 전형적 '이력서' 양식 샘플 이미지 두가지를 보여주며 - 차이를 설명해보라는 지시를 했을때였다. 한국이력서는 사진을 포함한 각종 개인적 정보가 들어있다.  미국 이력서에는 사진도 없고 개인적인 정보가 별로 없다. 

 

"왜 미국 이력서에서는 사진이 안보일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고, 사진을 요구할경우 문제가 되지. 왜 그럴까?" 

 

뭐 이런 요지의 질문을 했을때, 한시간 내내 자고 있었던 남학생 한명이 졸린 눈을 부비며 엎드린채 나를 보고 대꾸했다, "Racism?"

 

그렇다. 그 학생은 그냥 딱 한마디만 했다 "Racism?"  하지만 그 한마디로 나는 그 학생이 뭘 설명하고 싶은지 알수있었고, 그래서 Bingo! 를 외쳐주었다. 용모나 성별이나 인종적인 정보를 드러내는 사진은 '인종차별' 뿐 아니라 각종 '차별'의 수단이 될수 있다. 그래서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면 안된다. 내내 엎드려있으면서 '생존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던 그 학생은 - 사실 살아있었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엎드린채로 가끔 스크린도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적시에, 모두가 침묵할때 내가 기다리던 답을 던져 줄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죽은듯이 엎드려 있을때조차도 우리는 노래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가만히 엎드려서 나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일때라도 우리는 그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고, 그를 향해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 식물이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그러나 왕성하게 생존의 노력을 기울이듯 누군가 가만히 엎드려있을때에도 그는 듣고, 생각하고, 자란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12. 04:46

Joel 2:28

“And afterward,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내가 심심파적으로 키운 화초로 만들어진 작은 정원이 학생들 사이에서 '포토존'이 되어가고 있다. 이따금 연구실 밖이 시끌벅적해지는데, 학생들이 와서 사진을 찍으며 놀기 때문이다. (아, 관광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마냥 편치만은 않겠구나.)   나는 나의 화초들을 사랑해주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학생들이 좋으니까 흐뭇한 표정으로 지나치고 있는 편이다. 

 

 

그 정원을 보다가 내 학생이 '모르는 학생들'과 함께 내 연구실에 들렀다. 사회성 좋은 내 학생이 '그냥 제 친구들이에요 교수님' 하면서 내가 모르는 학생들까지 이끌고 쳐들어온 것이다. 알건 모르건 결국은 모두 학생들이고 - 내가 저들을 몰라도 저들은 평소에 나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므로 나는 무조건 환대하는 편이다. 그것이 '선생'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잠시 나눈 적이 있다.  그날 우연히 나와 이야기를 나눈 학생들 중에는 '환경 관련 서클' 활동을 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내 정원에 대해서, 환경서클활동에 대해서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 "환경서클이 뭔가 실내 공기 정화 프로젝트'라도 만들면 어떨까?"하고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별것도 아닌것이 - 사람들이 나의 작은 정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구역에 오면 확실히 공기의 '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공기가 신선하고 정말로 '향기'가 난다.  과학적인 실험을 한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화초들이 내뿜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아마존 밀림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러니, 내 정원에 와서 사진만 찍을것이 아니라, 학교의 구석구석을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나 혼자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내 작은 정원의 화초가 말라죽지 않게 최소한의 관리를 하는것만도 일주일에 최소 두시간은 투자를 해야 한다. 여력이 없어서 다른 곳은 내 손길이 미칠수가 없다.)  "공간이 없으면 벽을 정원으로 만드는거지. Green Wall project 그런게 요새 유행이쟎아"  뭐 이런 이야기를 두달 쯤 전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제는 복도에서 예전의 그 학생과 마주쳤다. 그는 눈길로 나를 세웠다. (지나치는데 뭐랄까 - 내가 너에게 할말이 있어 - 하는 눈길을 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는 마치 '식물'이 말을 걸면 이렇게 말을 거는게 아닐까 싶은 나지막하고 조용하면서도 촉촉한 떨림이 있는 음성과 화초가 보내는 듯한 조용한 시선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전에, 그 green wall 이야기를 해주셨쟎아요. 그래서 저희가..." 

 

 

그러니까, 이 노인이 꿈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그가 귀담아 듣고 사색을 하고 그리고 뭔가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어떤 '제안서'를 만들어서 프레젠테이션을 할것이고 그것이 통과되면 정말로 학교의 어느 구역에 '초록 식물의 벽'이 곧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그 일을 위하여 나의 조언과 정보가 필요하다고 나를 그의 눈길로 불러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도에 선채로 거의 한시간 가까이 이 프로젝트를 정말로 어떻게 성공시킬지 그 방향과 전략을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었다.  그의 눈은 점점 더 빛났다. 그의 눈빛 속에서 푸른 정원이 자라나는것처럼 보였다. 

 

 

그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연구실로 돌아오면서 - 나의 정원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의 꿈을 내가 반드시 이뤄야 하는것은 아니구나. 나의 열망을 누군가가 이뤄줄수도 있는거구나. 나의 꿈을 저 청년이 이루어주는구나.  그리고 그 의미를 잘 알수 없었던 성경구절의 의미에 다가갈수 있었다. 노인은 꿈을 꾸고 청년은 환상을 볼것이요... (요엘 2:28)  오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 제 소망 한톨 한톨도 잊지 않으시고 다 이뤄주시는 하나님.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11. 18:06

지난 월요일 화요일 이틀간 어느 먼 곳에 떨어져있는 고등학교에 가서 특강을 하였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만난 학생들은 같은 학년, 다른 학생들이었다. 이틀간 동일한 주제의 강의를 다른 학생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내가 외부특강시 영어강의를 할때에는 학생들에게 당부를 한다. "나는 영어로 강의하고, 당신들도 영어 강의를 대개 다 알아듣는다. 그런데 내 질문에 답을 할때 당신중에 어떤 사람은 답은 알지만 영어로 말하기가 안될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한국어로 답을 하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영어로 떠들것이고, 당신들이 내게 말을 할때는 영어나 한국어나 편한것으로 한다는 원칙이다. 

 

 

내가 이런 '자유'를 명시해도, 지난 수년간 내가 외부 특강을 할때, 학생들은 대체로 영어로 응답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다들 그정도는 하는가보다 하고 나는 상상을 했던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갔던 학교에서 학생들은 대체로 '한국어'로 내 질문에 답을 했다.  나는 물론 학생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답을 해주길 바랬다. 나는 이미지들을 보여주면서 이미지들 사이의 '언어, 문화, 사회적' 차잇점을 발견하고 해석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게 아니라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학생들은 영특했으므로 내 질문의 의도를 잘 알아채고 한국어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중에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처음에는 매우 수줍어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나는 폭풍같은 칭찬을 날려주었다.  5분 쯤 후에 내가 던진 질문에 그 여학생이 역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영어'로 답을 하려고 애썼다.  영어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여학생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내가 더 명쾌한 영어로 그 학생의 답을 반 전체에 소개했다. 이 여학생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자 다른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할때, 이 여학생은 짝꿍과 함께 내 곁에 와서 종알종알 말을 걸었다. 사랑스러운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두번째 시간에 이 여학생은 줄곧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2시간 수업을 마치면서 내가 '평가 설문지'를 돌렸는데 설문지에는 영어로 질문 몇가지가 적혀있고 한국어 번역도 적혀있다. 설문에 대한 답은 영어나 한국어나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내가 받은 32장의 학생 설문 응답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답을 적은 유일한 학생이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이 여학생이 2시간 사이에 보여준 미세한 변화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영어 강의를 듣는다 ---> 한국어로 답을 한다 --> 영어로 답을 한다 --> 영어로 설문지에 답글도 적는다.

 

 

 

이런 변화 과정에 대하여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영어수업이 제공된다면 좋겠다. 중간적인 단계의 영어수업. 영어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한국어나 영어로 편안한 언어로 답을 하고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차차 영어가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이런 흐름을 만들수 있는 수업. 그런 수업 모형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4. 28. 06:20

"너 하고싶은것 다 해봐.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는 가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게 윙크를 보내고 계셨다는 것을 문득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나는 이따금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아이디어들을 구현해내곤 한다.  그것을 내가 진정 원해서 했던 것인지, 의무라서 해야만 했던 것인지 분간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낸 것인데 결과적으로 꽤 유쾌한, 내가 평소에 저질러 보고 싶었던 이벤트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게 취미생활은 아니고 내가 해야 할 일인데 - 꽤 재미있는.  

 

 

 

그러니까, 이 일을 나는 해야만 했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에도 내가 성공적으로 해 내야 하는 '시민 평생교육 프로젝트'의 '물주' 그러니까 '스폰서' -- 교육 프로젝트 경비를 모두 제공하는 '스폰서'기관에서 요청한 몇가지 사항이 있었는데 정규 학사 프로그램과 별도로 등록이나 수료 같은 것 신경쓰지 않고 시민 '아무나' '아무때나' 참가할만한 지역시민을 위한 이벤트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다. 음대를 갖고 있는 모대학은 대학 오케스트라의 협조를 얻어서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한다거나, 명사초청 특강 이벤트를 연다거나 이런식이다. 물론 나도 구색 갖추기 위한 공개이벤트를 이것저것 기획하여 수행중인데 그 중에 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영어카페' 프로젝트이다.

 

 

이십여년전에 '소크라테스 카페'라는 책이 소개되면서 알려졌던 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카페를 저녁시간에 몇시간 빌려서 번개모임 갖듯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운동이 진행된 적이 있다. 마침 내가 살던 버지니아의 지역 도서관에도 그 '소크라테스 카페' 운동원이 와서 모임을 한차례 개최한 적이 있어서 - 책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적도 있었는데 - 뭐 그냥 아무것도 아닌, 잊혀져도 그만인 경험이었는데 나는 그 모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여성과 교제를 이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 모임은 그냥 그저그랬다. 심각한 철학 얘기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다반사를 조금 사색적으로 바라보는 정도의 일회성 이야기모임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내또래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 그이와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몇차례 더 만나게 되었다. 그 여성은 돈많은 중동계 이민자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워싱턴디씨 인근의 부호들이 산다는 대저택 구역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던 그 여성은 중동계 사모님이었고, 이민자이지만 영어도 소통에 불편함없이 하고 있었고 교육도 잘 받았는데 손발이 묶인것처럼 스스로 느끼기에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그 여자와 몇차례 만나면서 주로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길래 나는 너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이러저러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얘기도 하고 - 그러면 너는 어떻게 자유를 찾을수 있을까?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제안했던 것은 -- 그래 이렇게 도서관에서 여는 이런저런 모임에도 자주 나와서 사람들과 만나라. 아이들 학교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지역민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에도 나가봐라. 그래서 자꾸만 현지의 이웃을 알아나가고 - 친구를 만들고 ...   그러다가, 아마도 그 여자가 영특해서 점점 더 자신의 숨쉴만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와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을것이다. 말하자면 작은 새장에 갖혀있던 새가 스스로 새장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소크라테스 카페' 모델을 내식으로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영어카페'를 열어서 시민대 학생들 뿐아니라 지역민들에게도 홍보를 하였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고정멤버도 있고,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만큼, 지난주에 봤던 얼굴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런다. 정말 동네 카페 같은 상황이다. 장사가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럭저럭인 날도 있고. 

 

 

카페지기인 나는 수업준비 하듯이 그날의 몇가지 소통 주제를 정하여 준비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영어를 떠듬떠듬 대충 혹은 잘 할줄 아는 사람들이 와서 그걸 활용하여 대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그러니 미국에서 살다 온 교포출신 시민들도 있는가하면 진짜 영어 왕초보 시민도 있고 그렇다. 초급부터 선수까지 뒤섞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다. 

 

 

 

며칠전에는 내가 재미있는 게임을 한가지 갖고 갔는데 작은 팀을 이뤄서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는거였다. 그러니까 팀원들이 열심히 단어 설명을 하면 그중 한명이 맞추는 게임이었는데 - 한 팀의 경우 살펴보니 두사람이 번갈아 단어 설명을 했어야했는데 유독 한명이 앞서서 단어 설명을 하고 옆에 있던 이는 정말 '어-버-버-' 뭔가 말을 하려다 못하고, 하려다 못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하려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내 짝이 앞서서 그걸 모두 설명해버리는 식이었다. 나도 조금만 시간을 주면 말할수 있는데 말이다. 그 딱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나는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나의 실책이다. 번갈아 설명하라고 먼저 지시를 했어야했는데....).

 

 

게임이 끝나고, 다른 주제 토론을 하는 시간이 되었을때 나는 아까 '어버버' 하면서 가슴만 치고 있던 그 분에게 '토론 주제가 되는 이야기'를 마이크를 잡고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분은 기꺼이 마이크 앞에서 또박또박 영문을 읽어나갔고, 주제 토론이 이어졌다. 

 

 

카페 문을 닫을 시간 -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고, 마지막으로 그분이 남아있었다. 오늘 활동이 재미있었다고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까 단어게임 하실때 힘드셨죠? 잘 하려는데 입에서 그놈의 영어가 잘 안나오죠?  그래도 잘 하셨어요. 친구나 집의 아이들이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하고 평소에도 그런 게임을 해보세요. 영어가 쉬워질거에요." 그러자 이분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제가 집에서 아이들과 영어 연습을 하려고 하면 애들이 엄마는 영어 못하니까 하지 말래요..." 젊은 엄마였다. 아이들이 고작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일 것이다. 쪼끄만 놈들이 엄마의 영어를 놀린다. 그 아이들은 유아원부터 아마도 영어 사교육을 받아서 영어 발음이 제 엄마보다 좋을지도 모른다. "아이고, 아이들힌테 기죽지 마셔요. 걔네들 영어, 그거 다 엄마가 돈대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만들어 놓은건데 기죽을거 하나 없어요. 오늘 하신것처럼 그냥 자꾸 자꾸 하시면 엄마가 영어를 더 잘하시게 될겁니다." 

 

 

그 젊은 엄마가 나가면서 말했다, "아까, 저에게 읽기 시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너무 속상했거든요."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의 '눈'을 잠시 빌려주셔서 - 누가 속상한지 알게하시고 - 어떻게 위로할지 알게해주셨다. 그 젊은 엄마가 위로받은것보다, 내가 더 많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4. 22. 02:02

나의 한쪽 발은 부스러지는 낭떠러지 끝을 간신히 딛고 있다. 나의 나머지 한쪽 발 끝에서는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영글고, 나무 줄기들이 뻗어나가고 있다.  나의 절반은 근심과 두려움에 떨고, 나의 절반은 재크와 콩나무 이야기의 콩나무처럼 쑥쑥 영광을 향해 나아간다. 

 

 

성경에 나오는 욥(Job)의 서사는 풍요에서 - 나락과 암흑과 고통으로 - 다시 풍요로 항하는 일직선의 시간을 보여준다.  나의 일상은 풍요와 고통이 뒤범벅이 되어 회오리바람처럼 나의 주위를 맴돈다. 나는 한편 빛나는 승리자이고 한편으로는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다. 

 

 

내 삶을 관조하며 문득 생각했다 - 참 신비한 시간이다.  욥의 이야기에서 일직선으로 흐르던 시간이 - 나의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입체적으로 흐른다. 하나님의 회오리바람 같은 시간속에 내가 갇혀있는것 같다. 내가 하나님의 시간에 갖혀 있다면 - 그것은 - 지금은 도무지 앞이 안보이는 혼돈의 상태처럼 지각되겠지만 - 내가 하나님의 시간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의 안전한 품속에 있다는 것이리라. 

 

하나님, 제가 이 시간을 잘 견디게 지켜주소서.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