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4. 28. 06:20

"너 하고싶은것 다 해봐.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는 가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게 윙크를 보내고 계셨다는 것을 문득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나는 이따금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아이디어들을 구현해내곤 한다.  그것을 내가 진정 원해서 했던 것인지, 의무라서 해야만 했던 것인지 분간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낸 것인데 결과적으로 꽤 유쾌한, 내가 평소에 저질러 보고 싶었던 이벤트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게 취미생활은 아니고 내가 해야 할 일인데 - 꽤 재미있는.  

 

 

 

그러니까, 이 일을 나는 해야만 했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에도 내가 성공적으로 해 내야 하는 '시민 평생교육 프로젝트'의 '물주' 그러니까 '스폰서' -- 교육 프로젝트 경비를 모두 제공하는 '스폰서'기관에서 요청한 몇가지 사항이 있었는데 정규 학사 프로그램과 별도로 등록이나 수료 같은 것 신경쓰지 않고 시민 '아무나' '아무때나' 참가할만한 지역시민을 위한 이벤트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다. 음대를 갖고 있는 모대학은 대학 오케스트라의 협조를 얻어서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한다거나, 명사초청 특강 이벤트를 연다거나 이런식이다. 물론 나도 구색 갖추기 위한 공개이벤트를 이것저것 기획하여 수행중인데 그 중에 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영어카페' 프로젝트이다.

 

 

이십여년전에 '소크라테스 카페'라는 책이 소개되면서 알려졌던 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카페를 저녁시간에 몇시간 빌려서 번개모임 갖듯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운동이 진행된 적이 있다. 마침 내가 살던 버지니아의 지역 도서관에도 그 '소크라테스 카페' 운동원이 와서 모임을 한차례 개최한 적이 있어서 - 책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적도 있었는데 - 뭐 그냥 아무것도 아닌, 잊혀져도 그만인 경험이었는데 나는 그 모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여성과 교제를 이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날 모임은 그냥 그저그랬다. 심각한 철학 얘기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다반사를 조금 사색적으로 바라보는 정도의 일회성 이야기모임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내또래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 그이와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몇차례 더 만나게 되었다. 그 여성은 돈많은 중동계 이민자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워싱턴디씨 인근의 부호들이 산다는 대저택 구역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던 그 여성은 중동계 사모님이었고, 이민자이지만 영어도 소통에 불편함없이 하고 있었고 교육도 잘 받았는데 손발이 묶인것처럼 스스로 느끼기에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그 여자와 몇차례 만나면서 주로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길래 나는 너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이러저러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얘기도 하고 - 그러면 너는 어떻게 자유를 찾을수 있을까?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제안했던 것은 -- 그래 이렇게 도서관에서 여는 이런저런 모임에도 자주 나와서 사람들과 만나라. 아이들 학교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지역민을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에도 나가봐라. 그래서 자꾸만 현지의 이웃을 알아나가고 - 친구를 만들고 ...   그러다가, 아마도 그 여자가 영특해서 점점 더 자신의 숨쉴만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와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을것이다. 말하자면 작은 새장에 갖혀있던 새가 스스로 새장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소크라테스 카페' 모델을 내식으로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영어카페'를 열어서 시민대 학생들 뿐아니라 지역민들에게도 홍보를 하였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고정멤버도 있고,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만큼, 지난주에 봤던 얼굴이 사라지기도 하고 그런다. 정말 동네 카페 같은 상황이다. 장사가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럭저럭인 날도 있고. 

 

 

카페지기인 나는 수업준비 하듯이 그날의 몇가지 소통 주제를 정하여 준비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영어를 떠듬떠듬 대충 혹은 잘 할줄 아는 사람들이 와서 그걸 활용하여 대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그러니 미국에서 살다 온 교포출신 시민들도 있는가하면 진짜 영어 왕초보 시민도 있고 그렇다. 초급부터 선수까지 뒤섞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다. 

 

 

 

며칠전에는 내가 재미있는 게임을 한가지 갖고 갔는데 작은 팀을 이뤄서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는거였다. 그러니까 팀원들이 열심히 단어 설명을 하면 그중 한명이 맞추는 게임이었는데 - 한 팀의 경우 살펴보니 두사람이 번갈아 단어 설명을 했어야했는데 유독 한명이 앞서서 단어 설명을 하고 옆에 있던 이는 정말 '어-버-버-' 뭔가 말을 하려다 못하고, 하려다 못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하려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내 짝이 앞서서 그걸 모두 설명해버리는 식이었다. 나도 조금만 시간을 주면 말할수 있는데 말이다. 그 딱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나는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나의 실책이다. 번갈아 설명하라고 먼저 지시를 했어야했는데....).

 

 

게임이 끝나고, 다른 주제 토론을 하는 시간이 되었을때 나는 아까 '어버버' 하면서 가슴만 치고 있던 그 분에게 '토론 주제가 되는 이야기'를 마이크를 잡고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분은 기꺼이 마이크 앞에서 또박또박 영문을 읽어나갔고, 주제 토론이 이어졌다. 

 

 

카페 문을 닫을 시간 -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고, 마지막으로 그분이 남아있었다. 오늘 활동이 재미있었다고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까 단어게임 하실때 힘드셨죠? 잘 하려는데 입에서 그놈의 영어가 잘 안나오죠?  그래도 잘 하셨어요. 친구나 집의 아이들이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하고 평소에도 그런 게임을 해보세요. 영어가 쉬워질거에요." 그러자 이분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제가 집에서 아이들과 영어 연습을 하려고 하면 애들이 엄마는 영어 못하니까 하지 말래요..." 젊은 엄마였다. 아이들이 고작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일 것이다. 쪼끄만 놈들이 엄마의 영어를 놀린다. 그 아이들은 유아원부터 아마도 영어 사교육을 받아서 영어 발음이 제 엄마보다 좋을지도 모른다. "아이고, 아이들힌테 기죽지 마셔요. 걔네들 영어, 그거 다 엄마가 돈대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만들어 놓은건데 기죽을거 하나 없어요. 오늘 하신것처럼 그냥 자꾸 자꾸 하시면 엄마가 영어를 더 잘하시게 될겁니다." 

 

 

그 젊은 엄마가 나가면서 말했다, "아까, 저에게 읽기 시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너무 속상했거든요."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의 '눈'을 잠시 빌려주셔서 - 누가 속상한지 알게하시고 - 어떻게 위로할지 알게해주셨다. 그 젊은 엄마가 위로받은것보다, 내가 더 많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