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7. 6. 17:33

이제 성인이 되었고, 법원에 가서 결혼신고를 하고 법원 마당에서 결혼 기념 사진을 찍었고, 집을 샀고, 모든 것을 그가 찾아낸 배필과 함께 의논하며 일궈가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나의  아들 '귀냄이'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 (나는 아들이 백일쟁이 아기였을때, 아이가 하도 순하고 벙긋벙긋 잘 웃어서, 이름대신에 '우리 귀냄이, 우리 귀냄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렇게 순하고 벙글거리기만 하더니, 비슷한 배필을 만나 둘이 매일 벙글거리며 잘 살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며느리는 내가 갖고 온 백팩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 그것이 한국인이나 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탤리산 '희귀 아이템'이라는 사실에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희귀 아이템이라고 해서 모두 다 비싼것은 아니고 단지 꽤나 예쁘장하고 고급지며 사람들이 보통 수백만원 짜리 어떤 브랜드라고 종종 착각을 하곤 하는, 기껏해야 삼십만원도 안되는 '착하고 예쁜'가방). 그래서 "엄마는 한국 집에 이것과 같은 브랜드의 백팩이 하나 더 있으니 맘에 들면 이것은 네가 가지렴"하고 넘겨주었다.  며느리는 이 가방을 매고 거울을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아이가 - 선물받은 가방을 등에 지고 좋아하듯, 며느리는 이 가방을 참 좋아한다.  .  옷 장안에 소위 '명품'가방들을 상자째 보관하면서 너무 아까워서 가끔 열고 들여다보기만 하는 그 순진함에 - 이제 나이들은 내가 말한다, "옷장 안에 처박아 두지 말고 그냥 매일 들고 다녀. 인생은 아주 짧아. 아끼지 말고 매일 사용을 해. 인생은 정말 훅 지나간다구..."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행장에도 이 가방을 챙겼다.

 

 

아들 부부가 여름 휴가를 내어 캘리포니아로 가는 이유는 친구가 캘리포니아에서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랑 신부가 모두 준 재벌급 배경의 사람들이라서 '영화'에서 봄직한 크레이지 아시안 결혼식이 진행될것인데, 아들과 며느리가 들러리를 선다나 뭐라나.  "너희들은 법원에 가서 결혼신고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퉁쳤는데, 그런데 가면 마음이 상하지 않니? 괜챦니?"  아들의 결혼식을 '공짜'로 넘긴 내가 미안해서 조심스럽게 물으니 아들은 쿨하게 답했다.  "우린 결혼식 경비 쓰는대신에 집을 산걸요.  엄마도 옛날에 평일 점심시간에, 직장 근처 허름한데서 대충 날림으로 결혼식 하셨다면서요. 우리도 엄마를 닮아서, 그런데 돈쓰고 싶지 않아요. 우린 괜챦아요."  (덕분에 나는 아들 결혼식에 돈 십원도 쓸 필요가 없었던 행운의 엄마다.  이런걸 '행운'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한심한 사람이다. 하하하.  나는 결혼식 사진따위 결혼식이 지난후에 뭐 액자에 꽂아 둔적도 없고, 별도로 들여다본적도 없다. 어딘가에 있겠지.  나는 그저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을뿐 결혼식 같은 것은 하고 싶지가 않았었다.) 아들은 그렇다 치고, 며느리는 어떨까? 알수 없다. 그래도 며느리와 나는 서로 '전문인'으로서 존중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잘 지내고 있다. 

 

 

 

이제 나는 새벽이 오면 아들과 며느리를 공항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 잠이 안오므로 오랫만에 블로그에 끄적이고 있다. 

 

 

어제 오후에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만약에 다시 태어나서 이 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다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싶으세요?"  나는 그의 질문에 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꿈이 뭐였지? 내가 열망했으나 이루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지? 다시 태어나면 꼭 하고 싶은게 뭐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엄마: "음, 첼로를 배워서, 첼로 연주로 밥먹고 살면 좋은것 같구나"

아들: 요요마같은 세계적인 첼리스트요? 아니면 그냥 시립교향악단 단원 정도요?

엄마: 글쎄, 세계적인 그런거 말고, 첼로 연주로 밥을 굶지 않는 정도면 되겠지.  

 

첼로가 아니라면..음..글쎄...뭐 별로 하고 싶은게 없다. 그렇다고 내가 뭐 첼로를 열망하는 것도 아니고 - 그냥 첼로 소리가 바람소리처럼 좋아서, 그걸 벗삼아 한생을 살면 어떨까 하는거지. 뭐 열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보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것 같아. 

 

그렇다. 나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고, 뭐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금이 가장 좋다. 별로 후회 되는 일도 없고, 뭐, 게으름을 피우긴 했으나 나름대로는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바둥거리며 살았던 것도 같은데 - 고단한 삶이었으나, 그래도 행운이 이어졌고,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구를 생각하면 내가 누리는 것은 정말 과분할 정도로 복된 것이며... 뭘, 더, 바란다는 말인가. 다시 태어나면 이보다 더 좋은 여건에서 태어난다는 보장이 있나?  식량부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나가고 있는 지구상에서 - 체중이 느는 것을 걱정할 정도로 먹을것이 넘쳐흐르는 여건에서 살고 있는데. 

 

다시 태어난다면 - 글쎄, 내가 죽어가지고 어딘가에서 '너 다시 세상에 태어날래 말래?'하고 물으면 - 나는 그냥 다시 태어나는것 말고, 다음 스테이지가 무엇인지 물을것 같다. 이런거 말고 다른 차원의 세계가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내 육신은 하루하루 낡아가고 있고 여기저기 녹이 슬고 있으며 -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낡아가는 육신에 갖히고 있다는 기분이 종종 든다. 육신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다시는 육신에 가두어지는 이 세상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  뭔가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6. 8. 16:38
카테고리 없음2023. 6. 7. 13:35

 

 

 

 

6월 6일 현충일.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6:30분에 전등사 입구에 도착. 

이른 아침, 텅빈 절 집 마당. 생각에 잠긴 신도들이 한 두분 지나칠 뿐. 고요한 절 마당에서 나를 반겨준이는 '고양이'들.  내가 '나비야 나비야' 하자 저를 쓰다듬으라고 와서 제 몸을 맡기는 '고양이 보살'들. 

그래서, 한적한 절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나갔던 길에서 '고양이 보살'들의 환대 속에 편안하고 나른한 휴식을 하고 옴. 절 마당이며 절 카페며 절 근처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정오에 출발하여 집에와 낮잠도 푹 자고. 평화.

 

10시쯤에 절에서 종을 치며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진행하는데 - 절에서 타종 하는 가운데 묵념을 하니, 가신이들에 대한 감사함이 새삼 더 해지는 듯 했다.

 

전등사 - 참 좋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21. 17:59

 

 

 

 

 

 

보문사 오백나한상 - 현대미술 작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감을 주는 작품들이다.

 

 

 

오백나한과 ----- 501호 (하하하) 

 

 

 

 

보문사 와불상 모셔진 암자 문에 걸린 내용.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5. 15. 10:32

 

아카시아의 계절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근처에 아카시아는 피어난다. 아카시아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 일대에도 많이 피어난다.  내가 평생 만났던 아카시아는 흰색이었는데, 얼마전 나는 포도송이 같이 탐스럽게 매달린 아카시아 나무들을 발견했다.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발견한 아카시아 무리가 너무나 인상적이라서 남편에게도 이세상 어딘가에 포도송이 같은 '자주색' 혹은 '보라색' 아카시아가 피어난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에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운하 뚝방길 도로변에 그 나무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산책삼아 보라색 아카시아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사실 내 머릿속 지도속의 그 아카시아 나무는 송도 4교 (바이오대교) 건너편 남동공단쪽 뚝방길에 무리지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30분이면 갈만한 곳이었으므로 우리는 가볍게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송도4교를 건너 뚝방길에 도착했을때, 보라색 아카시아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조금 더 가다가 약 1.5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송도1교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무성한 아카시아 숲속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다리 앞 뚝방길에 무리서 있던 보라색 아카시아를 보았는데... 지난번에 내가 운전해 지나갈때도 보았고, 어제 학생들과 관광버스로 필드트립을 다녀올때 창밖으로도 역시 보았는데, 분명히 두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를 보았는데 - 내가 막상 걸어와 보니 왜 하나도 보이지 않는걸까?

 

고민고민하다가 내가 생각해 낸 것은 - 내 차의 유리창 틴트나 관광버스 유리창의 틴트가 흰아카시아를 보라색으로 보이게 한걸까? 자동차 유리에 뭔가 색상이 덧입혀져 있었는데 그것때문에 흰 아카시아가 순간적으로 보라색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것이 아닐까?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이상 '나의 눈'을 믿을수 없게 되었다. 내가 '보라색' 꽃이라고 믿었던 그 꽃무리들이 - 내가 직접 걸어가 봤을때는 흰색이었다. 보라색 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동행한 남편도 황당해 했다. 나의 '눈'에 혹은 '인지 구조'에 어떤 '노화 현상'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나는 내가 보는 것을 사실로 믿어선 안된다. 나는 슬슬 나 자신이 의심스러워졌다.

 

어제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예배를 마치고 -- "우리 그럼 이번에는 자동차로 거기를 지나가보자. 보라색 꽃이 보이나 안보이나 확인해보자" 하고 그 방향으로 운전해 갔다.  다리를 건너서 뚝방길을 따라 가다보니 길가에 '신기루'처럼 '보라색 아카시아'가 무리지어 피어있는것이 보였다. 남편도 그것이 '보라색'이라고 동의했다. "창문을 열어봐! 창을 열면 흰색으로 변하는가 한번 보자!" 창을 열어도 닫아도 그 꽃들은 보라색이었다. 보라색 아카시아들이 포도처럼 탐스럽게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뭐지! 어제 왔을때는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내가 영문을 알수 없어 하자 남편이 말해줬다.  "어제 당신은 나를 4교 왼편으로 데리고 갔는데, 오늘 아카시아 핀곳은 1교의 왼편이었어.  4교 왼편엔 보라색 아카시아가 없어. 보라색 아카시아는 1교 왼편에 피어있는거야." 

 

그렇다. 나의 문제점은 내가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칠때 그 아카시아 나무들이 있던 위치를 잘 못 기억해뒀던거였다. 나는 엉뚱한 곳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나의 시력은 아직 멀쩡하지만, 내가 어떤 위치에 대하여 착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얼마나 오류의 가능성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온전히 신뢰하면 안된다. 스스로 의심을 해 봐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