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5. 15. 10:32

 

아카시아의 계절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근처에 아카시아는 피어난다. 아카시아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 일대에도 많이 피어난다.  내가 평생 만났던 아카시아는 흰색이었는데, 얼마전 나는 포도송이 같이 탐스럽게 매달린 아카시아 나무들을 발견했다.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발견한 아카시아 무리가 너무나 인상적이라서 남편에게도 이세상 어딘가에 포도송이 같은 '자주색' 혹은 '보라색' 아카시아가 피어난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에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운하 뚝방길 도로변에 그 나무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산책삼아 보라색 아카시아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사실 내 머릿속 지도속의 그 아카시아 나무는 송도 4교 (바이오대교) 건너편 남동공단쪽 뚝방길에 무리지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30분이면 갈만한 곳이었으므로 우리는 가볍게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송도4교를 건너 뚝방길에 도착했을때, 보라색 아카시아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조금 더 가다가 약 1.5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송도1교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무성한 아카시아 숲속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다리 앞 뚝방길에 무리서 있던 보라색 아카시아를 보았는데... 지난번에 내가 운전해 지나갈때도 보았고, 어제 학생들과 관광버스로 필드트립을 다녀올때 창밖으로도 역시 보았는데, 분명히 두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를 보았는데 - 내가 막상 걸어와 보니 왜 하나도 보이지 않는걸까?

 

고민고민하다가 내가 생각해 낸 것은 - 내 차의 유리창 틴트나 관광버스 유리창의 틴트가 흰아카시아를 보라색으로 보이게 한걸까? 자동차 유리에 뭔가 색상이 덧입혀져 있었는데 그것때문에 흰 아카시아가 순간적으로 보라색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것이 아닐까?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이상 '나의 눈'을 믿을수 없게 되었다. 내가 '보라색' 꽃이라고 믿었던 그 꽃무리들이 - 내가 직접 걸어가 봤을때는 흰색이었다. 보라색 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동행한 남편도 황당해 했다. 나의 '눈'에 혹은 '인지 구조'에 어떤 '노화 현상'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나는 내가 보는 것을 사실로 믿어선 안된다. 나는 슬슬 나 자신이 의심스러워졌다.

 

어제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예배를 마치고 -- "우리 그럼 이번에는 자동차로 거기를 지나가보자. 보라색 꽃이 보이나 안보이나 확인해보자" 하고 그 방향으로 운전해 갔다.  다리를 건너서 뚝방길을 따라 가다보니 길가에 '신기루'처럼 '보라색 아카시아'가 무리지어 피어있는것이 보였다. 남편도 그것이 '보라색'이라고 동의했다. "창문을 열어봐! 창을 열면 흰색으로 변하는가 한번 보자!" 창을 열어도 닫아도 그 꽃들은 보라색이었다. 보라색 아카시아들이 포도처럼 탐스럽게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뭐지! 어제 왔을때는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내가 영문을 알수 없어 하자 남편이 말해줬다.  "어제 당신은 나를 4교 왼편으로 데리고 갔는데, 오늘 아카시아 핀곳은 1교의 왼편이었어.  4교 왼편엔 보라색 아카시아가 없어. 보라색 아카시아는 1교 왼편에 피어있는거야." 

 

그렇다. 나의 문제점은 내가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칠때 그 아카시아 나무들이 있던 위치를 잘 못 기억해뒀던거였다. 나는 엉뚱한 곳에서 보라색 아카시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나의 시력은 아직 멀쩡하지만, 내가 어떤 위치에 대하여 착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얼마나 오류의 가능성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온전히 신뢰하면 안된다. 스스로 의심을 해 봐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