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8. 3. 22:48

Great Falls 파크는 포토맥강의 일부로, 강의 이쪽은 버지니아, 강의 저쪽은 메릴랜드주이다.  미국 국립 공원 시스템에서 1번이 이 Great Falls 공원이다 (다른 어마어마한 국립공원이 수두룩 하지만, 그냥 번호 매길때 수도 워싱턴에 인접해 있어서 그냥 1번 준것 아닐까 추측한다).  메릴랜드쪽에서 진입할때는 입장료가 없는데, 버지니아 쪽에서는 공원을 조성해 놓고 입장료를 받는다. 승용차로 진입하면 차 한대당 20달러.  어쩌다 들르는 관광객이라면 입장료를 감수하지만, 지역 사람들이라면 입장료 절약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폭포 상류에 위치한 Riverbend Park 로 진입하는 방법이다.  폭포에서 약 1마일 (1.6킬로미터) 상류에 위치한 Riverbend Park는 공원이 아담하게 잘 조성되어 있지만 입장료가 따로 없다.  그리고 Riverbend 에서 Great Falls 로 향하는 강변의 숲속길이 정원과 같이 걷기에 편안하며,  '절경'이다.  폭포까지 왕복 2마일 (3킬로미터 안팎)을 평탄한 강변의 숲속길을 산택하는 코스이다. 

 

 

 

https://www.fairfaxcounty.gov/parks/riverbend https://www.nps.gov/grfa/index.htm

 

 

Great Falls Park (U.S. National Park Service)

Homepage

www.nps.gov

 

예전에 매클레인에 살때는 이곳을 내집 안마당처럼 드나들며 산책을 했었는데, 참 오랫만에 들렀다. 메릴랜드로 이사를 했다가, 페어팩스로 이사하고, 한국으로 가고, 그러는 사이에 10년이 훌쩍 지났고, 그동안 이곳을 찾지 못했었다.  옛 친구를 찾은듯, 혹은 고향집에 돌아온 듯 반갑고 편안하였다.

 

 

숲이 어찌나 깊고, 그윽한지, 숲길을 산책하는 동안 내 몸이 초록으로 물들것 같은 - 신비로운 초록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폭포 상류의 포토맥 강물은 호수처럼 잔잔하였다. 

 

 

 

 

폭포를 보고 다시 리버밴드로 거슬러 오며 나는 숲속의 나무를 만지며 말했다, "잘 있어. 크리스마스에 다시 보자."

버지니아는 8월 들어서면서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선선하여, 한국의 9월 중순의 선선함을 선사하고 있다. 버지니아와 한국의 날씨를 비교하면, 버지니아에서 가을과 봄이 한국보다 빨리온다. 버지니아에서 선선한 가을을 맞고 돌아가면 한국은 아직도 더운 여름이고, 쇼핑센터에서 봄 옷을 전시하는 것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모피 옷을 팔고 있는 식이다. 그 외에는, 날씨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8월 1일에 원고 작업을 모두 마쳐서 편집자에게 보냈다. 오랫동안 기한을 넘겨 정체되었던 숙제를 마쳐서 보내고 나니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것이 사라진것 같았고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그래서, 오랫만에 그곳에 간 것이리라. 홀가분해서.  만약에, 내게 그 책쓰는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나는 큰 부담없이 그럭저럭 놀며 지냈을까?  책을 쓰는 일이 내게는 매우 고통스럽고 무겁고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는데, 그것을 마쳐서 이메일로 전송하는 그 순간 -- '해방'의 안도감 혹은 -- 상상컨대 환각제를 대량으로 최대한 효과를 볼 만큼을 투여한 상태에서 나오는 그런 '환희감' 같은것 그런 것을 느꼈다. 그 환희감은 아직도 여전히 내 가슴에 잔잔히 남아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고통' 뒤에는 '고통의 양과 질'만큼 그에 상응하는 '쾌락'이 오는것 같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쾌락이라고 해도 좋고.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이 사는 사람은 고통도 없지만 쾌락도 없을것 같다...  쾌락은 고통만큼만 주어지는 '위로'가 아닐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고 말씀하셨을때, 그것이 우리가 늘 기쁘고 순탄한 상황을 살아서가 아닐것이다. 이 세상 사는 일이 온통 고통으로 가득차있어서 -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할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옛날에 (아마도 2005년. 그러니까 18년 전이구나) 버팔로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간적이 있다. 그 때 폭포의 상류에서 잠시 수영을 하였다. 물 흐름이 고요했기 매문이다.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물흐름이 빨라지긴 하지만 그 윗쪽으로 올라가면 '호수'같이 고요한 부분이 있다.  거기서는 설마 지척에 '천길 낭떠러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고요하다.  그 고요 후에 폭발적인 어마어마한,모든 것을 집어삼킬듯한 폭포의 풍경이 펼쳐진다.  태풍 직전의 고요, 혹은 태풍의 눈 속의 고요와 흡사하다.  우리가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 '폭발적인 힘'을 예비하기 위해서이다.  어차피 온 우주는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고요의 에너지를 폭포의 에너지로, 태풍의 에너지로, 혹은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것. 그것이 기도자가 하는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31. 01:13

 

 

This is my father's land.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상은.

 

오랫동안 지체되어 왔던 책 원고 작업을 어제 대충 마쳤다. 아직 출판사에 보내기전에 세부적인 것을 통독하면서 확인하고 다듬어야 하지만, 하루 이틀이면 끝날 것이고, 내일 모레 쯤 전송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 이미 출간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작년에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느라 모든 것이 정지되었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책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 간신히 숨을 돌리고 - 버지니아 집에서 대충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침에 제법 선선한 아침 바람 속에서 작업을 하였다.

 

며느리가 나와서 나무 그림 작업을 도왔다. 나무에 '아무 열매나 마음껏 그려 넣으라'는 지시에 커다란 파인애플과, 빨갛게 익은 고추까지 그려 넣은 나의 친구 - 나의 며느리.  나는 며느리를 '딸' 같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며느리는 내게 'Mom!' 이라고 살갑게 부르고, 나는 그를 '친구' 대하듯 한다.  우리는 제법 사이가 좋다. 생각이 통하고 뜻이 통하고, 나는 그를 간섭하지 않고, 그는 나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방문자로 잠시 머무르는 동안, 남에게 (형제자매나 부모나 자식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 나의 신경질적인 성격에도 아들 며느리의 집은 편안하고 유쾌하였다.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책도 읽고, 나무와 대화하며 그 품에 매달려 놀고, 그리고 그늘에 배를 드러낸채 벌렁 누워 낮잠을 자거나 빈둥대는 것 --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즐거운 여름날의 풍경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불러오는 두마리의 물고기가 '호쿠사이'의 '파도' 속을 유유자적 놀고, 고양이, 여우가 함께 놀고, 새들이 날아다니다.  나무에는 여러가지 과일들이 주렁주렁.

 

이것이면 족하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해주신 세상.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17. 04:48

간밤 폭우로 그림이 깨끗이 지워졌다.   어차피 초크 그림은 비가 오거나 물을 뿌리면 지워지는 그림이라서 - 잠 자고 일어났을때 깨끗이 사라진 그림 - 그 빈터를 발견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지워졌다고 아쉽거나 슬프지 않다. 이미 사라질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깨끗이 사라진것에 대한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죽을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초크 그림처럼, 어차피 모두 죽을것을 알고 있으므로 누군가 죽었을때, 또 내게 죽음이 임박했을때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아름다운 그림 한편이 깨끗이 지워진다는 그 후련한 느낌이면 어떨까?

 

교회에 다녀오니 햇볕이 쨍쨍나서 - 너무 덥고 뜨거워서 마당에 오래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스팔트의 검정색 바탕을 이용한 간단한 실루엣화롤 주님께 올리기로 했다.  요한복음 1장 36절. 

 

 

지난 밤에 꾼 꿈이, 예배 도중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중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꿈 1)  나는 언덕위에서 비가 갠 후의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혼 무렵 어둑어둑해지려는 하늘의 중심이 네모 형태로 뻥 뚫렸다. 뭔가 빛으로 가득한 뭔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나는 이것을 보면서 '하늘의 문이 열렸다!'하고 외쳤다.  그런데 하늘의 문은 잠시 거기 있는듯 하다가 사라졌다. 뭔가 내 눈앞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가가 수초후에 사라진 것이다.  내가 주위를 돌아보며 "하늘의 문이 열렸다가 사라졌어! 너도 봤니?" 했더니 모두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꿈 2) 나는 혹시 하늘의 문이 다시 열리려나 기대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분명히 하늘 가운데에 정방형으로 빛에 가득싸인 무언가가 뻥하고 뚫린것 같은 현상이 벌어졌고 그 상태는 수초간 (하나-둘-셋 정도 셀만큼 ....약 3초 간) 이어지더니 다시 스르륵하고 문이 닫히듯 사라졌다.  이번에는 주위에 있던 명명의 사람들도 그 현상을 보고 나와 함께 놀라워하였다.

 

꿈 3) 우리들은 하늘의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하며 언덕에 서 있었다.  그러자 멀리에서 대리석 기둥같은 - 코린트 양식의 대리석 기둥같은 모양의 산호색과 여러가지 파스텔 색으로 휩싸인 기둥같은 것이 먼 하늘에서 찬란하게 나타났는데 이것을 쳐다보며 나는 깨달았다. 핵 폭탄이 터졌다! 핵폭탄이 터졌다.  앞서서 하늘의 문이 열린 것은 저 핵폭탄이 터지기 전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나보다! 

 

그리고 내 꿈은 거기서 끝났다. 이상한 꿈이었다.  예배 도중 그 꿈이 떠올랐다. 이것은 어떤 꿈인걸까? 하도 꿈이 기묘하여 여기에 기록해둔다. 

 

언라인에서 관련 이미지를 뒤져보니 이런 이미지가 나오는데 - 내 꿈에 보였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하다. 계단 같은 부분은 잘라냈다.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지에는 구름이 문처럼 형성되어있는데 - 내 꿈에서는 구름보다는 알수없는 신비한 광채 (마치 종이에 불이 붙어서 가운데에서부터 타들어가는 듯하게 구멍이 뚫린것 같은)로 뚫려있었다.  (그래도 위의 이미지가 가장 흡사하다.) -- 왜 그....돋보기로 햇살을 모아서 검은 색종이의 중심에 지속적으로 비추고 있으면 검은 색종이의 중심에 불이 붙어서 주변으로 점점 타들어가면서 가운데가 뻥 뚫리지 않는가? 바로 그런식으로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불이 난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식으로 신비하게).  그런데 이렇게 열렸던 하늘의 문이 몇초만에 싹~~~!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처럼 돌아왔다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15. 21:37

 

크레용이나 아크릴 혹은 유화로 꼭 그려보고 싶었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닭을 안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 입니다. 구글에서 뒤져보면 누군가 그린 '명작'이 하나 나옵니다.  그 '모티브'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 머릿속의 모티브를 정말로 한번 구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보니 결국 다시 '예수님'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닭을 안고 있는 아이'의 이미지에서 '불사조 피닉스'를 안고 있는 존재. 불멸의 존재. 하나님에게로 결국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소나기가 예본 된 오늘. 이 그림은 흔적도 없이 곧 사라지겠지요. 소나기가 그치고 나면 쨍하고 햇살이 빛나고 다시 텅빈 마당이 남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영원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영원의 일부입니다. 

 

 

 

 

 

 

 

 

집앞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이 제 그림의 관객입니다. 제 그림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일인지요.  '공공예술'의 기쁩입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7. 9. 01:21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