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0. 15. 08:45

Jackson Pollock (Artists of the 20th Century)

 

잭슨 폴락 디비디가 도서관에 보이길래 빌려다 보았다.  내가 미술관을 다니면서 본 폴락의 작품은 그의 후기 (완성기)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초기의 그의 습작부터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전 과정을 살필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대작들은 '완성기'에 해당하는 것들인데, 그 이전에 그가 시도했던 과정중의 작품들은, 사실 내 취향이 아니다 (내 취향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그러하다).  잭슨 폴락은 피카소의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미국땅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그의 그림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미술관들을 소풍삼아 돌아다니다 보니, 근래에 미술작품에 대한 내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는 (1) 사실주의화 (2) 색깔위주의 극단적 추상화 앞에서 안도하고  오랜 시간을 머물지만, 큐비즘 계열의 그림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모델' 같은 작품을 비롯한, 피카소나 브라크의 입체파 작품들은 내게는 '피곤하다.'  예각으로 면을 분할하여 조각조각 내 놓은듯한 화면을 보면 나는 골치가 아파지고, 그리고 '분노' 같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혹은 창녀들)의 그림에 나타나는 아프리카 가면같은 괴이쩍은 얼굴 모양도 내 맘에 안든다. 그림속에 샤머니즘적 무시무시하거나 괴상한 가면같은 얼굴이 등장하거나 흩어져 있으면 나는 외면하고 얼른 지나치는 편이다.  왜 그것이 싫은가 묻는다면 따로 설명 할 길이 없다.  이는 고기를 잘 못먹는 내게 '왜 고기를 못 먹는가?' 하고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너 왜 소세지를 못먹지?" 하고 물으면 난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냥 안먹는거다.  "너 왜 그 대단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그림이 싫은가?" 물으면 난 할말이 없다. 그것이 미술사적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사건인가는 논리적으로 알고 있고, 설명도 잘 해낼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림이 싫다.  프랑스계 미국 미술가인 브르주아의 작품들도, 설명할 길이 없어 난감하지만 기분나쁘고 싫다.  미술적 가치를 설명하라면 마지 못해 설명을 할 수는 있지만, "너 가질래?" 그러면 나는 "나 주면 내다 팔을래" 하고 대꾸할것이다.

 

그래서 잭스 폴락의 그림 세계를 시기별로 살피면서, 내 맘에 들었던 작품들은 초기의 사실주의적 화풍을 유지하던 작품들, 그리고 말기의 추상화들이다.  나는 폴락이 피카소를 흉내내던 시절에 요절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여러가지 실험을 거쳐서 자기 세계를  찾는데 성공 했으니까.  하지만, 또 한가지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말기의 작품들 속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의 '각종 실험적' 요소들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큐비즘적인 요소, 혹은 원시 샤머니즘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 없이 폴락이 정상에 오를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점을 나는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내가 내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나 역시 실험적인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데, 때로는 설령 그것이 고통이거나, 일탈이거나, 혼돈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지...  터널의 끝에, 빛의 세계가 있을 것이므로.

 

 

'American Art History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사실주의 화가들  (0) 2009.10.23
Man Ray : dvd  (0) 2009.10.16
미국 사실주의 계보 정리  (0) 2009.10.14
미국미술사: 시대별 주제 정리  (0) 2009.09.28
Ben Shahn, Liberation (1945) 벤 샨의 '해방'  (0) 2009.09.28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0. 14. 02:53

 

 

Andrew Wyeth와 Edward Hopper 페이지들을 대략 마무리 짓고 나니,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들의 계보가 대략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신생국가 미국의 미술은 유럽의 미술사와는 약간 시기적으로, 성격적으로 차이가 나게 진행되었다.  예컨대 유럽에서 19세기 중반, 후반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적 색체가 강한, 혹은 사회 비판적인 사실주의 화풍이 휩쓸고나서 '인상파' 화가들이 새로운 작법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인상파 작법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속에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사실주의적 작법이 공존하게 된다.  사회비판적인 사회 사실주의적 화풍은 오히려 미국의 인상파 화풍이 물러나면서 1930년대에 꽃피게 된다.

 

19세기말, 20세기초부터 진행되던 미국의 사실주의는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대공황으로 인한 빈민층 증가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으로 사회성 메시지가 강한 미술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 사회성이 강한 미술의 일부는 '사회주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적 토양위에서 자생한 미술사조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도시빈민의 문제, 혹은 노동의 문제등 사회 문제를 그림으로 옮긴 화가들의 모임중 '애시캔 (Ashcan)' 학파, 이들과 정체성에 차이가 없는 '8인회 (The Eight)'이 유명하다.   이들을 Social Realist (사회 사실주의자)라고 통칭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역시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영향권 안에서 '미국의 풍경'을 통해 미국의 '정체성'을 살리자는 취지의 회화운동이 미국의 중서부 화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을 지역주의자 (Regionalist)라고 부른다. 위의 사회사실주의적 화가들이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었다면,  '미국의 풍경'에 역점을 둔 '지역주의 화가'들은 다소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 Grand Wood, Benton 등이 있다.

 

Edward Hopper 는 사회사실주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Henri (헨라이-로 발음한다)의 제자였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혹자는 Edward Hopper 를 애쉬캔 (Ashcan) 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에드워드 호퍼 자신이 이런식의 분류를 싫어했다. 호퍼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상적 그룹에도 속하지 않으며 미술가로서 이런 사상적 색채를 띈다는 것 자체가 유치한 짓이라는 입장을 평생 관철했다.

 

Edward Hopper 보다 한세대 이후에 탄생한 Andrew Wyeth 를 '지역주의자' 무리에 포함시키는 미술사가도 가끔 보인다. 그런데 이또한 무리스러운 노릇이, Wyeth 역시 예술지상주의자인지라 어떤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그림을 연결짓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때문에, 나는 미국의 사실주의 미술가 계보에서 Edward Hopper 와 Andrew Wyeth 를 '외톨이'들로 분류하는 편이다. 나는 외톨이들을 좋아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내가 미국미술사를 정리하면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부분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선 할 일은, 사회 사실주의자들 중에서 내 맘에 다가오는 (혹은 잘생긴) 화가들을 정리하고, 그리고 지역주의자들을 정리하는 일 일 것이다. (물론 이러다 기분 내키면 식민시절의 풍속화가를 갑자기 소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결: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09. 10. 14. 01:49

 

느지막하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책가방을  차에 싣고, 차를 출발하려다 생각하니 문간까지 나를 따라와 '잘 다녀와라'하고 말해줄 왕눈이가 안보이는거다.  아침에 시무룩하게 내 침대 발치에 있던 것 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후로 왕눈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 옷장까지 뒤져봤으나 왕눈이는 없었다.

 

뒷문을 통해서 나간 모양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하나 하나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서 멀어져 사라져간다. 세상의 모든 별들이 급속한 속도로 하나하나 꺼져가는 듯한 환각.

 

왕눈이는 동네 어떤 집 마당에 묶여 있었다.  한시간도 넘게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길래, 차에 치일까봐 묶어 놨다고.

 

왕눈이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내 방으로 뛰어온후에 기쁜 표정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사실 세달 가까이 나는 왕눈이를 산책도 시키지 않고,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다. 산책도, 목욕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왕눈이를 돌보는 것은 다른 식구들 차지가 되어 버렸고,  그래도 왕눈이는 내 발치에 와서 내게 붙어서 잠이 들곤 했었다.

 

감기가 다 낳으면, 제일 먼저 할일은, 왕눈이를 동네 지정병원에 가서 종합적으로 체크업을 해주고, 밀린 예방접종도 다 맞춰주고, 그리고, 털을 예쁘게 깍아주는 일이다. 그것부터 해주자.  나는 왕눈이에게 너무 무책임했다.  무책임하면 안된다. 개 한마리라도, 무책임하면 안된다.

 

왕눈이가 돌아와서 다행이다.

왕눈이가 다칠까봐 묶어놓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 착한 이웃이 있어서 다행이다.  (친절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Diary >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Slrf 2009, Michigan State University 가을  (2) 2009.10.31
Shanandoah National Park, Skyline Drive 단풍구경  (0) 2009.10.25
[Book] How Starbucks Saved My Life  (1) 2009.10.18
[Book] Letters to Sam  (0) 2009.10.18
사과도둑  (2) 2009.10.12
Posted by Lee Eunmee
Realism/EdwardHopper2009. 10. 12. 12:05

Morning Sun
1952
Oil on canvas
28 1/8 x 40 1/8 inches
Columbus Museum of Art, Ohio

 

 

 

Edward Hopper 의 그림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은?

 

(1) 호퍼의 그림에는 아이가 안보인다. 성인 남자, 여자들이 존재하지만 아동이 보이지 않는다. 단란한 가족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 과도 상통한다. 

 

(2) 호퍼의 그림에는 대화가 없다.  인물들이 여럿이 나와도 이들이 소통하는 것 같지가 않다. 각기 떠도는 별 들처럼 두사람이 서로 감정이 교류되거나 일치된 듯한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호퍼가 그린 인물들에 눈동자가 생략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관객들조차 호퍼 그림속의 인물들과 '소통'이 불가능하다.

 

호퍼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정리 될 수 있는데 (1)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세상과 같이 속도감 있게 보는 방식 (2)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장면처럼 클로즈 업 하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조망하는 식으로 보는 방식이다. 이 자동차 유리를 통해 보거나 극장의 스크린에 비쳐지는 혹은 영상 카메라에 비쳐지는 것을 보거나, 에드워드 호퍼이 세상보는 방식은 '거리를 유지하는 관찰자' 방식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의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에서는 '연구방법론'을 듣게 된다. 그 연구방법론 시간에 여러가지 방법이 논의 되는데, 크게는 통계처리 중심의 양적 방법론, 그리고 장시간 관찰이나 면담등을 통한 질적 방법론이 논의된다. 실험실의 관찰이 아닌 사회현상, 교육 현장을 관찰할때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다. (1) 관찰자가 관찰 대상과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고, 마치 벽에 붙은 파리 (Fly on the Wall)처럼 관찰하는 것이다.  범죄 영화 보면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심문할때 심문실에 커다란 거울이 있고, 그 거울너머에서 수사관들이 관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아예 자신을 감추고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만을 관찰하는 방법이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2) 그런하하면 관찰자가 관찰대상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관찰 방법도 있다. 사회학 연구자가 어떤 현장에서 직접 봉사활동을 하거나,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서로 협력하면서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 하는 수도 있다. 교육현장에서 교사가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떤 변화를 관찰하는 식으로 연구를 할때, 관찰자는 참여자가 되기도 한다. 이를 참여적 관찰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을 그릴때, 그는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며, 벽에 붙은 파리 같은 입장에서 사물을 관찰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세상을 '관찰자'로서 살폈다.  그는 소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이런 소통단절은 그의 그림속의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그보다 30여년 후에 태어난, 한세대 이후의 역히 외톨이 사실주의 화가라 할 수 있는 앤드루 와이어드 (Andrew Wyeth)는 호퍼와는 정반대의 관찰자였다. 그는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렸다. 그는 활발하게 소통하고, 친구가 된 후에야 대상을 그림에 옮겼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그가 잘 알고 지내는 마을 사람들, 혹은 십수년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림에 옮긴 사람들이다. 소통을 통해 그림의 대상에게 다가갔고, 그래서 앤드루 와이어드의 풍경이나 사람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속삭인다. 반면에 호퍼의 그림은 '접근'을 불허하고, '상상'을 정지시킨다.  앤드루 와이어드는 소통을 통해, 호퍼는 소통정지를 통해 '영원'으로 가려고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자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

 

이 그림은 1940년작 '주유소'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1940년이면 지금부터 대략 70년전의 그림이다. 1940년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식민지 시절을 견디고 있었고, 윤동주 시인이 아직 연희전문 (현재 연세대) 학생이던 시간이다. 나는 중학교때, 시간을 거꾸로 되짚어 올라가서 윤동주 시인이 살던 시절로 돌아가서 그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연세대 문과대 왼편 언덕길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다. (지금 왜 갑자기 윤동주 얘기냐구, 이 천치야...) 지금도 거기 그것이 있을까?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이것이 70년전의 풍경 같지가 않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에서 보통 여행자가  집을 떠나 하이웨이를 타게 되면 누구나, 어디서나 이 그림속의 풍경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주유소의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차이는 있겠으나, 미국의 어느 주에 가도 우리가 만나게 되는 곳. 주유소. 그리고 주유소에 달려있는 가게. 그 가게에서 커피를 사고, 빵이나 과자를 사고, 생필품이 있나 기웃거리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그리고 휙 떠나면 잊혀지는 곳.  어딜 가는 비슷한 하이웨이. 지역에 따라서 가로수의 품종이 달라지긴 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멋대라기 없이 키만 큰 소나무들.  그리하여. 지금도 미국의 하이웨이 풍경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길이 있고, 멋대가리 없는 가로수가 있고, 주유소가 있고, 주유소에 딸린 '공중변소'가 있고, 끝없이 이어진 길과 하늘이 있을 뿐이다.

 

 

 

 

Gas (1940)

66.7x`102.2 cm

Museum of Modern Art

 

 

호퍼의 풍경화를 보면 세밀한 묘사가 생략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전 페이지에서 Andrew Wyeth 의 그림들을 살핀적이 있는데,  앤드루 와이어드가 사과 나무를 그릴때 직접 나무의 사과를 세어보고 그릴 정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면,  호퍼의 풍경화속의 나무나 숲, 길은 달리는 차창 밖으로 비쳐지는 것처럼 쓸려 지나가는 것 처럼 보인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의 일부같은 숲, 도로.  그 속에 '영원'처럼 혹은 '박제'처럼 서있는, 표정없는 인물들.  소통두절.

 

 

영화관 스크린에 비친듯 한 풍경

 

 

Nighthawks (1942)

84.1 x 152.4 cm (33 1/8 x 60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Museum

 

 

내가 에드워드 호퍼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이 바로 이 Nighthawks 였다. 대학교 1학년, 교양과목으로 '예술의 이해'라는 과목을 수강할때,  교재에 실려있던 이 그림을 신기하게 들여다봤었다.  내 눈에는 이것이 '그림'으로 보인 것이 아니고 미국영화의 한 장면, 혹은 길거리 극장 영화간판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런 그림도 '예술책'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 신기했었다.  (아직 철없던 내게 '명화'란 르노아르나 고흐 뭐 그런 스타일의 유럽 그림들이었다.)  그림 설명으로 '도시인의 고독' '어쩌구' 뭐 이런 식이었는데,  내 눈에는 고독이고 뭐고 딱 영화 간판이구만... (그 후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한국미술의 이해, 동양 미술의 이해, 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의 이해등 미술 관련 교양과목들을 하나 하나 이수해 갔는데, 그 과목들을 이수한 주요 이유는, 미술대 교수들이 학점을 잘 줘서... 흐헤헤... 예술대 학생들이 주로 수강하던 과목들이었는데, 예술대 학생들은 너무나 예술 지상주의자들이라서 학점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는 학점에 신경을 바짝 쓰는 인문대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예술지상주의자들 속에서 '학점'에 신경을 쓴 소수가 점수를 잘 받지 않았겠는가.  (^^)

 

내가 이 작품의 '맛'을 제대로 알아본것은 극히 최근 2년 사이의 일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미국에서 약 5년간 사는 동안에도 미국은 낯 선 땅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버지니아로 왔을때, 그래서 미국미술 박물관들을 쏘다니면서 미국미술 작품들을 두루 섭렵한 후에나 나는 왜 '미국이 낯 선 땅'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미국은 나에게만 낯 선 땅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낯 선 땅이다.  미국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미국인에게도.

 

미국의 하이웨이를 달려보면, 차창밖에 휙휙 지나치는 풍경들은 모두 똑같아 보이면서도 동시에 모두 낯설어 보인다. 왜 모두 낯설어보일까?  그것은 도로의 폭이 넓고, 하이웨이의 폭이 넓고,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크고, 그리고 뭐든 크고 넓고 멀다. 쇼핑몰은 휑하니 크고, 진열품은 한산하다. 쇼핑몰의 주차장도 휑하다.  뭐든 크고 휑하다. 풍경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풍경이 휑하다. 작은 카메라 각도 안에 인물과 풍경이 적절히 조화롭게 들어가지를 못한다.  미국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자꾸만 zoom-in (줌-인)을 한다거나, 인물 표정 위주로 찍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풍경이 너무 한산하고 큼직해서 조화롭게 화면 안에 다 담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턴'에 가면 사람 많고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뉴욕이나 시카고, LA 등 극 소수의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들이 휑하고, 썰렁하고, 도시를 제외한 지역은 사람도 많지 않고 한적하다. 맨해턴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 웬만한 도시에서 한밤에 술한잔 걸치기도 쉽지 않다. 상점들은 저녁이면 문을 닫는다.  맥도널드가 24시간 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심야 업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어딜가나 휑하고, 썰렁하고,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그리고 대개 한산하다.

 

이것은 나만 느끼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실내 인테리어 전문 케이블도 보이는데, 한때 심심풀이로 집 고치는 프로를 줄 창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실내 인테리어나 혹은 정원 설계 같은, 집 관련 디자이너들이 평을 할때, 가장 자주 던지는 영어가 'detail (세심한 부분처리)'이 살아있다는 말이었다.  디테일.  내가 내린 결론 - 미국 사람들 '디테일'이라고 하면 아주 넘어가는구나. 

 

미국문화가 유럽식에 비해 신생국가이고 건물들이며 생활속의 디자인이 단순하고 소박한 편이다.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트레일러 하우스들도 많고. 대체적으로 상자모양의 멋대가리 없는 건축물들. 휑한 공간.  이런 식이다보니까, 실내나 외벽에 뭔가 오밀조밀한 장식 한가지만 붙여도 '디테일'이 산다고 노래를 부른다.

 

Nighthawks의 그림을 살펴보자.  심야의 식당이나 바처럼 보인다. 창백한 형광등 불 빛 아래, 바텐더의 흰 옷이 춥고 스산해보인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기구는 커피 내리는 기구 같아보인다. 식당용 스툴 (둥근 높은 의자)이 일곱개가 전면에 배치되어 있고, 그중 하나를 양복입은 신사가 차지하고 앉아있다.  저만치 남자, 여자 한쌍이 앉아있다. 거리는 텅 비어있고, 그야말로 쥐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식당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유리창 너머의 보도가 희게 빛난다.  PHILLIES 라는 단어가 보이고 그 옆에 시가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필리스 시가 광고같기도 하고, 식당 이름 간판같기도 하고.  이 가게의 벽에 흔한 그림한장, 메뉴 설명서 한장 붙어 있지 않다. 꽤나 썰렁하다.

 

썰렁함.  내가 체감하는 미국은 바로 그 '썰렁함'이다. 나는 이 썰렁함을 '낯설음'으로 받아들였었다.  스산함. 새로 열었다는 커다란 식당에 기대에 차서 들어갔는데, 손님도 없고 종업원도 시들하고,  그럴때가 있다.  그럴때 우리는 직감적으로 '아차, 잘 못 들어왔다. 다른데로 갈것을' 이런 느낌이 들때가  가끔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특히나 이리저리 떠돌며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는 이런 스산함, 휑함, 썰렁함과 익숙해지게 된다.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음악이 떠오르는가? 나에게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쿨 재즈 트럽펫 연주의 낮고 음산한 음악이 떠오른다.  주인공들은 각자 상념에 잠겨 있고,  저 편에 앉아있는 남녀는 연인사이로 보이지 않는다.  좀 전에 바에서 만난 낯 선 타인들 같아보인다. 이들이 갈 곳은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이 아니고, 인근의 모텔이 될 것 같아 보인다. 이 그림속에는 '드라마' 가 있는 것 같다.  하필 이 그림이 현재 시카고 미술대 미술관에 걸려있는 관계로, 혼자 앉아 있는 양복쟁이 남자는 '시카고 갱단'의 중간 보쓰쯤이 아닐까 상상해보게 된다.  (이 그림의 본래 배경은 맨하탄이었다고 한다). 

 

평생 영화를 즐겨 본 호퍼는 그의 그림에서 영화속에서나 잡힐만한 구도의 그림들을 많이 선보였고, 또한, 영화계에서는 호퍼의 그림을 영화 속에서 다시 연출하는 일도 있었고, 호퍼와 영화는 이렇게 상호 교류하며 발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의 장면은 영화 Sting 에서 차용했다고도 하고, http://americanart.textcube.com/39  페이지에 소개된 대로 House by Railroad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역시 히치코크 감독의 작품에서 응용되었다.

 

 

몰래카메라에 잡힌 사람들

 

밤의 사무실 풍경은 특히나 '성적인' 어떤 '드라마'를 암시하는 작품으로 논의가 되는 작품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은 '가슴'과 '엉덩이'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림속의 여성은  몸을 비틀어서 가슴과 엉덩이를 적절히 '관객'에게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는 마치 파리의 눈과 같이 작은 몰래카메라가 이쪽 천장이나 벽의 윗쪽에 달라붙어 실내를 내려다보는 형식이다. 아니면 건물의 이쪽 벽에 창문이 있고,  이 창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맞은편 창에서 내려다 보는 형국일지도 모른다.

 

 

 

 

 

Office at Night
1940
Oil on canvas
22 1/8 x 25 inches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Minnesota

 

 

 

 

현대미술관 소장의 '밤의 창문들'에는 '훔쳐보기' 혹은 '몰래카메라'식으로 들여다보기 기법이 좀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열려진 창으로 커튼이 나부끼는데, 옷을 갈아입으려는지 여성이 짧은 드레스 혹은 속은 차림으로 구부정하게 서있다. 여자의 머리는 보이지도 않아 통통한 뒷태가 더욱 두드러진다.

 

Night Windows

1928.

Museum of Modern Art

Oil on canvas, 29 x 34" (73.7 x 86.4 cm). Gift of John Hay Whitney

 

 

에드워드 호퍼는 이런 식으로 낯선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물론 Jo와 결혼 한 이후 40년이 넘도록 그가 그림 작업을 하는 동안, 그의 그림에 그려진 '모든' 여성의 모델은 그의 아내 Jo 였다.  젊은 여성이거나 늙은 여성이거나, 뒷태가 예쁜 여성이거나, 창녀이거나, 시들은 여성이거나 '모두'가 그의 아내가 모델이었으므로 호퍼가 정말로 누군가를 '훔쳐봐 가면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속에는 이렇게 '훔쳐보기' 식으로 잡은 전라의 혹은 반라의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여성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남성도, 남자와 여자도 등장한다.

 

나는 이것을 '훔쳐보기'라고 말하지만,  호퍼가 정말로 대상을 '훔쳐봤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대상'을 관찰 했을 것이다. 창문이 보이면 창문을 관찰 했을것이고, 창밖에 풍경이 보이면 풍경을 관찰 했을 것이다.  열려진 창문으로 보이는 옷벗은 여자의 뒷태를 그는 그저 관찰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 그것이 거기에 있고, 내 눈에 보이니까.  이는 마치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의 어린 내가 혼자 유원지 숲속에서 놀다가, 나무 그늘 어둠침침한 곳에서 젊은 남녀가 아랫도리만을 내리고 뭔가 자신들만의 장난을 하는 장면을 그저 심심해서 무심코 관찰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나는 훔쳐본것이 아니고 그냥 본 것이다. 하지만,  관찰되는 대상에게는 이것이 '훔쳐보기'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사실 호퍼의 그림에서 '훔쳐보기'적 요소를 찾아내는 것은 관객들의 몫일 것이다. 실은 우리들이 '훔쳐보기' 놀이를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호퍼의 그림을 통해서.  호퍼는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그림을 던져주고, 우리는 열심히 그림을 훔쳐본다. 훔쳐보는 우리는 영원히 그림속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그것이 훔쳐보는 이들의 운명이다.

 

 

사물에 대한 그의 애정 표현의 방식

 

호퍼는 어릴때부터 수줍음을 많이 탔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그의 이러한 성품은 늙어 죽을때까지도 변치 않았다. 40년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그의 아내 Jo가 아마도 가장 가까운 친구였을 것이고, 그나마 호퍼가 가장 편안하게 대화 할 수 있는 존재 였을 것이다. 이들은 해로 했지만, 이들 결혼생활의 절반 이상은 싸움과 으르렁거리기 였다고도 한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상처주면서도 헤어지지는 않았던.  내가 생각하기에 호퍼가 아내 조와 허구헌날 으르렁대면서도 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그의 일관된 성품 때문일 것이다.  그가 죽을때까지 40년이 넘도록 서민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살았던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아내와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호퍼를 만나서 별도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지만,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한번 정하면 그냥 끝까지 가는거다.  뭐 자질구레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좋건 싫건 끝까지 가는거다. 

 

호퍼에게는 자신만의 애정 표현 방식이 있었다.  호퍼가 아내에게는 어떤 식으로 애정 표현을 했을지 잘 모르겠으나, 그가 세상에 애정표현을 하는 방식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드러내지 않고 애정 표현을 한다. 가령 이런식이다.

 

이 그림은 '일요일 이른 아침 (Early Sunday Morning)'이라는 1930년 작품이다. 뉴욕 휘트니 미국 미술관 소장품이다. 2008년 여름에 이 작품을 보고 참 반가웠었다.  이 그림은 호퍼의 다른 작품들에서 자주 보이는  '휑하고' '썰렁한' '고립된'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제목이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 나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포토맥강을 건너 산책하다 보면 조지타운 거리가 나온다. 조지타운대학 인근의 거리인데 초기 미국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라서 나지막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에 토요일이나 일요일 이른아침에 산책을 나가면 길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안보인다. 적막감만이 감돈다. 그래도 그 거리를 산책하면서 쓸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게의 쇼윈도우마다 각기 다른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어 조용하고 한가로운 거리를 나 혼자 편안하게 걷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곧 이 적막한 거리가 주말 인파로 넘쳐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림속의 거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살던 뉴욕 맨해턴의 어디쯤,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어느 골목 일 것이다. 붉은 벽돌의 이층 건물. 1층에는 상점들이 있고, 2층은 주거지 일 것이다.  일층 상점들 중에서 두군데의 햇볓 가리개가 노란 색이다. 2층에는 열개의 창문이 보이는데, 그중 여섯개의 햇볕가리개가 노란색이다. 햇볕 가리개들의 높이가 제각기 다르다. 검정색 가리개도 있다. 커튼이 쳐진 곳도 있고, 창이 일부 열린 곳도 있다. 열개의 창문은 동일한 창문이면서도 커튼이나 볕가리개가 이 창문들에 각기 다른 개성을 부여한다.  이 창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볕가리개를 올리거나 내리거나, 커튼을 치거나, 창을 열거나 했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디테일'을 대충 무시하고 선 굵게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무작정 '디테일'을 뭉개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디테일'을  선사할 줄 알았다. 그는 각기 다른 창문의 풍경만으로도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 개성, 삶의 이야기를 표현 할 줄 알았다.

 

 

Early Sunday Morning
1930
Oil on canvas
35 x 60 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는 작품으로 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이야기를 마치기로 한다.  내가 이 작품을 마침표로 소개하는 이유는, 이 작품속에 그의 '개성'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시선에 무심히 스쳐 지나갈 '어느 거리'의 풍경이 될 것이다.  이 그림에는 사람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는 각기 다른 창문들 속에 사람들이 여러가지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 '우리 읍내 (Our Town)'가 될 수도 있고, 우리는 그 속의 마을 사람 갑, 을, 병이 되어 갑자기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대사를 날리게 될 지도 모른다.  이 풍경은 연극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영화의 세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은 상상속에서 무대위의 배우가 된다.  우리는 텅빈 거리를 걸으며 가게의 유리를 기웃거리거나 2층 창문 속에 어떤 이들이 있을까 상상하며 목을 빼고 열려진 커튼 너머를 유심히 살피기도 한다.  우리는 거리를 걷는다. 그러나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관객인 나 만 그 풍경을 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어쩌면 이 햇살 가득한 텅빈 거리의 아무데나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다리 쉼을 할지도 모르겠다. 

 

풍경속에 아무도 없다.  이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최초의 어떤 사람

혹은 관객.

 

호퍼의 그림에는 '어린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생장' '변화'의 상징일 것이다.  영원처럼 적막한 호퍼의 풍경은 '어린이'의 무궁한 변화와 성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호퍼 그림속의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영원과 대화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시간성을 뛰어 넘은 영원의 세계에서 이들은 숨을 쉰다.  그러므로 설령 호퍼의 그림을 보다가 내가 박제가 된다해도 슬퍼할 일은 아닐 것이다.

 

 

 

눈치 채셨는가?  이 페이지의 맨 위의 Morning Sun  창밖으로 벽돌 건물의 꼭대기가 보인다.  Nighthawks 의 이웃 건물이 낯익지 않은가?  혹은 Night Windows 의 차양이 노란색인 것이 눈에 띄지 않는가?  에드워드 호퍼가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말없이, 그러나 늘 화폭 한켠에 담아 두는 것.  영원처럼.   그래서, 호퍼 그림 속의 주인공들  혹은 풍경은 과거의 어떤 시점에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대로 존재하며, 미래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공감을 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을 그렸으므로. 그는 미국에서  미국을 그렸지만, 그의 그림은 미국에만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 섰으므로.  사물의 본질에 국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09. 10. 12. 03:36

 

 

 

 

해마다 가을이면 버지니아에서는 인근 과수원으로 소풍을 간다. 사과밭을 찾아가 실컷 사과를 따가지고 값을 치르고 오면 되는 것이다.  과수원도 제각각이라 '기업형'으로 크게 과수원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있고, 그냥 시골 과수원에서 광고도 없이, 동네 사람이 오면 사과를 파는 곳도 있고 그렇다.  전에 플로리다에서 살때는, 초가을에 포도를 따러 다녔고, 가을이 오면 시월이 되면 단감을 따러 가서 배가 터지도록 단감을 따 먹고 들통 가득 사가지고 오곤 했었다.  돈없는 유학생들에게도 그 단감이 가격이 매우 싸서, 주말에 감밭에 가면 인근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그자리에서 단합대회를 할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플로리다에 가면 학생들이 단감을 따며 깔깔 댈 것이다. 그 감밭이 그립지만, 버지니아에서는 감밭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남겨두고...우리는 흘러간다.

 

지난 두해 가을동안 나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큼직한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따 왔었다. 사과알이 크고 탐스러웠고, 하루 소풍장소로 좋을 만큼 다른 오락시설을 갖춘 곳이기도 했다.  올해에는 학교에서 학생이 새로운 장소를 알려준다. 시골 할아버지네 과수원인데, 약도 안치고 비료도 안주고 그냥 자연상태에서 사과가 열리는 곳이라 알이 작지만 단단하고 그리고 아주 달다고 가르쳐준다.  사과 값도 한참 싸다고,  학생이 맛보라고 갖다준 사과가 하도 싱싱하고 달길래, 주소를 받아놨다가 오늘 가 보았다.  집에서 65마일 거리. 천천히 운전해도 한시간 반이면 되겠다.

 

 

주소지를 찾아가보니 별유천지 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이었다. 한마디로, 사람이 없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주인은 예배당에 갔는지 농장이 텅 비어있는채로 안채의 문이 잠겨있고, 창고문은 그대로 열려있다. 창고문에 사과따는 도구가 나란히 세워져있고, 볕이 가득한 창고 안에는 사과상자도 놓여있고.  내학생이 내게 이르기를 사과는 배가 터지게 먹어도 되고, 사과를 상자에 담아가면 되는데, 많건 적건 한상자에 14달러라고 했었다. 기웃거리며 주인을 기다리다가 도통 인적이 없길래, 차를 마당에 세운채로 작대기와 들통을 들고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땄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대답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흐르는 물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임자는 어디가고 창고 문만 환하게 열려있는 사과농장

 

 

(사진들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내집처럼 창고에서 들통 하나를 꺼내 들고, 사과 작대기 세워 놓은 것 하나 들고, 사과를 따러가세 사과를 따러 가세, 태초의 아담처럼 사과를 따러가세, 태초의 이브처럼 사과를 따러가세

 

 

 

 

사과나무들이 줄지어 선 언덕

 

 

뜰앞에는 코스모스도 피어있고요~

 

 

 

무농약, 무공해, 버지니아 사과를 팔아요, 사과를 팔아요~

An apple a day keeps a doctor away~

하루에 사과 한알을 먹으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버지니아 사과를 사세요~

 

 

 

 

시월의 햇살아래 익다 지친 사과는 툭~ 툭~  떨어져 쌓이고

 

사과밭 할아버지는 언제쯤 돌아오시려는지

 

 

정원에 굴러다니는 바구니를 문간에 갖다 놓고, 거기에 10달러 지폐를 하나 눌러놓고 사과밭을 떠나다.  한상자 다 안채웠으니까, 10달러만 놓고 갈래요~

 

 

 

 

피천득 선생의 시에 '꽃씨와 도둑'이 있다.

 

꽃씨와 도둑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 가야지

 

아무도 없는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 먹고, 사과를 따 모으고 놀다가 역시 빈 사과밭을 떠나며 피천득 선생의 시를 혼자 중얼거렸다. 가을에 와서 사과나 가져가야지...

 

집에 도착하여 메모지에 적힌 사과밭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할머니가 받으신다.  "내가 사과밭에 갔더니 아무도 없길래 잘 놀고, 사과 따가지고 오면서 10달러를 놓고 왔는데 보셨나요?"  전화가 너머에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나고, 뭐라뭐라 묻는다.  버지니아 농민들의 사투리가 들린다. 아, 이분들 평생 이곳에서 사셨구나.  할아버지가 "Ten dollar?"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 "Yes! I found it!" 그가 저만치서 외치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는 내 예상대로 아침에 예배당에 갔다가 조금 전에 왔다고 집이 빈 사정을 설명하고, 나는 덕분에 잘 놀았다고 인사를 한다.  시월 어느 일요일, 버지니아 셰난도 골짜기의 그 사과밭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열어놓은 에덴동산이었다.

 

p.s. 셰난도 골짜기는 모세 할머니가 18년간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던 곳이기도 하다.

 

 

'Diary >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Slrf 2009, Michigan State University 가을  (2) 2009.10.31
Shanandoah National Park, Skyline Drive 단풍구경  (0) 2009.10.25
[Book] How Starbucks Saved My Life  (1) 2009.10.18
[Book] Letters to Sam  (0) 2009.10.18
왕눈이  (0) 2009.10.14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