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3. 4. 2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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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428 (구구단 사이는 팔 -- 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50킬로 걸었다는 인증 표딱지. 이거 하나 얻으려고, 회비내고 온종일 사서 고생.  인생이 그래. 다 쓸모 없는 것을 얻으려고 평생 살다가, 황혼에 대장님이 '와라' 하고 부르시면, '녜 갑니더' 하고 손 털고 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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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 화이츠 페리 (수로 35마일 표시 점) 주차장에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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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한 구석에서 대장 마이클이 사람들 모아 놓고 주의사항 전달하는데, 나는 두번 해봤다고 '담임선생님' 말씀 안듣고, 그냥 따로 이쪽에서 구경.  (나처럼 말 안듣고 빈둥거리는 일동.)


올해 50킬로미터 걷기 참가자는 225명.  조지타운에서 출발하는 100 킬로미터 참가자는 125명 (합계 3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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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밀리면 나중에 한없이 뒤처져서 쓸쓸할까봐, 이번엔 작정하고 초기에 선두에서 걸었다. (첫 12 마일 기록이 세시간이니까  처음엔 시속 4마일 속도를 유지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중엔 기운 떨어지고 몸이 뻑뻑해지니까 뒤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번엔 100등안에 들었을걸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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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사진은 여기 올리는 것이 전부이다. 사진을 별로 안 찍었다. 그냥, 혹시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그냥 이 형광빛도는 초록의 향연을 눈과 마음에 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늘 이거 걸을땐, 내년에 또 올 수 있을까, 마지막이 아닐까 그런 알 수 없다는 느낌.  내 몸이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에는 해마다 오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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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명이 참가를 했대도, 이 길이 아주 아주 길고 한적한 길이니까, 걷다보면 백미터 전방 후방에 아무도 없고 그냥 나 혼자 걷는 시간이 더 많다.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걸으니까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  어쩌다 누군가가 추월할 때 그 때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리고는 그 사람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냥 내 페이스대로 걷는 것이다. 




첫 해에는 찬삐랑 함께 걸었지만 그 이후 두번을 나 혼자 참가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다. 두명, 혹은 서너명이 함께 걷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 걷는 사람들이다 (100 킬로 선수들이야 더욱 그럴 것이고). 열시간을 동무도 없이, 귀에 음악을 꽂지도 않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면서 걷다보면 -- 혼자서 여러가지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된다. 대장님과 두런두런 대화도 나누고.  '대장님, 참 대단허시네. 이런걸 싹 마련해 놓고 내가 오기를 그렇게 오랜시간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기다리셨네.. 내가 안 왔으면 얼마나 섭섭허셨겠수.... 쏠랑쏠랑.' 혼자 걸어도 심심할 틈은 없다. 


(우리 대장님과 나의 진지한 가상 대화)


대장: (내 눈치를 살피며) 사랑하는 나의 피조물 인간아.   어때? 맘에드니?

나: (딴전을 피우며)...뭐...그럭저럭...

대장: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그..뭐..난, 너를 위해서 오늘 완벽한 날씨까지 준비 했는데 말이지...

나: (입을 비죽거리며) 뭐, 그럭저럭...

대장: (실망한 표정) 내가 너를 위해서 수만년 전에 강을 파고, 물을 흐르게 하고, 저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나비를 만들고, 딱따구리를 저쪽으로 날게하고, 너를 보여주려고 말이다. 저기 커다란 황금나비, 저것도 때맞춰서 날게 하고, 바람을 불게하고, 이 모든걸 너를 위해서 내가 준비하느라 애를 썼는데, 넌 어째 반응이 그러냐...섭섭헐려구 그런다...

나: (사악하게 웃으며) 대장님도, 뭐 그런일로 섭섭허고 그러셔요. 내 맘 다 알면서...그러니깐, 내가 보러 여기 왔쟎아요. 

대장: 얘야, 넌 좀 사악해. 진작에 말허지. 난 섭섭해서 거의 울뻔했구나. 못된것.

나: 날 이렇게 만들어 놓으시고 뭘 그러셔~  그나저나, 나 목말라...

대장: 조금 후에 스테이션 나온다. 거기서 오렌지하고 물하고 먹어라.

나: 녜, 대장 최고셔.  근데, 다리가 아파요. 누구 나를 업어 줄 사람 없으까요?

대장: 조금 후에 내가 천사 보내주마. 넌 그냥 이 모든 것을 기뻐하며  즐기기만 하면 돼. (윙크) 

나: 대장 증말 최고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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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스테이션. (여기서 1시 5분에 다시 출발)  첫번째 스테이션에서는 그냥 게토레이드 한 잔 마시고 바로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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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스테이션 (여기서 샌드위치 만들어 주셔서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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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스테이션 (마지막 스테이션) -- 여기서부터 마지막 7.5 마일이 기다리고 있는거라 '아이고 아이고' 했다. 마지막 1.5 마일의 '지옥 코스'를 생각하면 지레 한숨이 나오는 판이니까.  걷기 행사중 가장 아름다운 강물이 펼쳐지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6시 5분에 출발 -- 진행요원이 기록하면서 가르쳐준다.)

스테이션에서 빨간 셔츠 입은 사람들은 의료 자원봉사자, 흰 셔츠는 식음료 자원봉사자.  이런 자원봉사자들이 안계시면 이런 행사가 제대로 유지가 안 될 것이다. 





스테이션 세워진 것을 들여다보면 5마일 (스테이션 1) ---> 6마일 (스테이션 2) ---> 6마일 (스테이션 4) ---> 7마일 (스테이션 4) ----> 7마일 집결지. 대략 이러한 거리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걸을때, 집결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스테이션까지 몇마일 남았나를 생각하며 걷는다.  그러면 덜 지루하고 힘이 덜 든다.  '3마일 걸었다. 이만큼만 더 걸으면 음료수와 과일을 먹을수 있다...' 이렇게 자신을 달래며, 1마일마다 나타나는 마일포스트를 친구 삼아서 그냥 터벅터벅 걸어나가는 것이다. 멀리 보면 못 간다. 그냥 다음 스테이션에서 오렌지 한 조각 얻어 먹을 요량으로 한걸음 한걸음.  (그대신 가슴에 먼 지도가 담겨있어서, 꾀부리지 않고, 먼길 가는 마음가짐으로 줄창 가는거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요상해서, 내가 혼자 20마일 작정하고 걸을 때면, 15마일에서 기운이 빠지고, 20마일 즈음에는 휘청휘청하는데 -- 30마일 작정하고 걸을 때는 15마일에서 '이제 반 왔네' -- 20마일에서, 이제 10마일 남았네 하면서 아직 쌩쌩하게 걷고 있는거다. 마음을 멀리 두면, 몸도 이에 따른다.  목표를 높게 잡으면 몸도 높아진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목표를 좀 높게 잡고, 자신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더 멀리, 더 높이 도약해야 하는거다.  사람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그래도 100마일은 내게 무리겠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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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일곱시 반에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셰이디 그로브 메트로 역으로 출발했는데, 출발 전 우리 만복이 복순이 바우와 기념사진. 


돌아오는 길에는 열이레 달을 봤다.  우리 왕눈이 대가리처럼 둥글고 큰 달이 우리 왕눈이 산소쪽 하늘에서 벙글벙글 웃으며 반기고 있었다.  아주 아주 크고 탐스러운, 약간 일그러진 예쁜 달.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