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3. 4. 2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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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녁 7:30 쯤에 왕눈이 산소를 향해서 집을 나섰다.  종일 집에서 책 보다가, 안나가려다가 그냥 나갔다. 달이 밝았다. 열 사흘 달 쯤 되려나. 아직 꽉 차지 않은, 그래서 안심이 되는. 


왜 안나가려다가 갑자기 나갔냐하면,  날도 춥고, 샤워나 하고 책보다 자야지 하면서 샤워를 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샤워 커튼을 젖히고 내다 본거다.  전에 왕눈이가 살아 있을 때, 왕눈이는 집안 구석구석 나를 따라 다녔는데, 꼭 내시처럼 내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감시를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샤워커튼을 치고 샤워를 할 때라도 반드시 나하고 눈을 맞춰야 했다. 눈을 맞춰주면 안심하고 다른데로 설렁설렁.  그러니까, 샤워하다가, 내가 왕눈이 기척을 느끼고 평소처럼 '왕눈아 엄마 여깄다' 하면서 내다 본 것인데, 왕눈이는 거기 없었고.  거기 없는 왕눈이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래서 샤워를 하고는 곧바로 집을 나섰지.




개울가에서 희고 빛나는 돌멩이 하나를 찾아  주머니에 넣고. 


가는 내내, 달을 보며 갔다. 왕눈이가 마중 나와 기웃거리는 듯. 


어스름한 수풀 저너머, 왕눈이 무덤에 쌓인 돌무더기만이 희게 빛났다. 어둠속에서도 너희들은 흰 배꽃처럼 빛나겠지.  달밤에 왕눈이 산소에 오기는 처음 이구나.


돌아오는 길, 늪의 개구리들이 소프라노로 울어댔다 (하도 하이톤이라 새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가까이에서 들리기 때문일까?) 그리고, 내 오른쪽 어깨 너머로 달이 자꾸만 따라왔다.  숲이 깊어지면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보였고, 탁 트인 길에서는 맑은 하늘에 둥실한 달이 내 오른쪽 어깨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한걸음 가서 돌아보고

또 한걸음 가서 돌아보고


우리 왕눈이가 내 오른쪽 한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아,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왕눈아, 설령, 엄마가 지구 반대쪽으로 이사를 간대도, 영영 너를 보러 못 온대도, 저 달을 보면, 저 달을 함께 보고 있을 너를 상상하면 되겠구나. 왕눈아, 우리는 죽어도 헤어지지 않아.  그런 생각을 했다.  웃다가 울다가 웃으면서 집으로 왔다. 달이 어찌나 환하고 예쁘던지. 


(사진은, 지난 주에 갔을 때 찍은 것.)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