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1. 5. 2. 07:33

 

세번째 스테이션을 벗어나면서부터 찬홍이는 피곤하다며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자기는 자기 패이스대로 갈테니까 나는 맘놓고 그냥 먼저 가라는 것이다.  나는 앞장서서 가면서 가끔 뒤를 돌아봤는데 찬홍이가 멀리서 손짓을 하곤 했다. 나는 일부러 길 밖의 다른 곳도 둘러보면서 천천히 갔건만 찬홍이는 곧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내가 한참 가다가 뒤를 자꾸 돌아보니까, 내 뒤에서 걸어오다가 나를 질러 가던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남자: "너, 네 남자친구 기다리고 있는거니?"
나  : 남자친구?
남자: 머리에 헤드폰 쓴 그 남자친구 기다리는거 아니니?
나  : 응...머리에 헤드폰 쓴 애 기다리는거 맞는데, 그애는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 내 아들이거등...
남자: 엇..그러니?  그 애는 음악 듣느라고 자꾸만 뒤처지더라. 근데 네 아들이라구?
나: 응.
남자: 그럼, 네 아들이면, 너 지금 무척 걱정되겠다
나 : 아니, 나중에 오겠지 뭐...

이러고 또 각자 길을 갔는데, 이 남자가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자원봉사자한테 길에 서서 "저기 오는 저 여자가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자원봉사자가 오더니 "너 아들 잃어버렸다며?" 하고 묻는다.  그러더니 그 사람들이 더욱 걱정스런 표정으로 "네 아들 번호가 뭐지?  우리가 찾아 볼까? 어디서 잃어버렸지?" 뭐 이러고 계속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니 걱정하지마, 있다가 나타날거야. 걔가 원래 좀 느려 He's kind of slow..and I am fast. That's the trouble." 뭐 이러고 태평하게 말했는데, 그 자원봉사자들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니 엄마인 내가 걱정도 안하는데 저이들이 왜 걱정이지?  내가 너무 태평한건가? 하지만, 찬홍이는 over 18 이라서 이미 주니어급에도 못낀다구. 걱정을 할걸 하셔야지.

자원 봉사자들은 그래도 내 곁을 안 떠났다. "넌 괜챦니? 너 물 필요해? "

이사람들 이러다가 "자식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먼저 가버린 악질 엄마"로 나를 관계기관에 신고하는거 아닌가 몰러...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여자가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 내 용모를 보고는 --> 내 아들이 한 열살쯤 되는 애라고 상상을 했는가보다. 찬홍이는 열아홉살이라구...하하하.


내가 마지막 스테이션에 도착하여 이제나 저제나 이놈을 기다리는데 정확히 40분 후에 이놈이 저기서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40분이면 내가 최소한 2마일을 걷고도 남을 시간인데 저놈이 이제야 꾸물거리고 나타나는거다.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나의 도착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부터 찬홍이와 나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 사진 이후에는 더이상 풍경 사진이 없다. 내가 찬홍이를 '모시고' 어둠속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끝없어 보이는 '고행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퍼스 페리에 도착한 후에 볼리바 커뮤니티 센터까지 가기 위해서는 약 1마일의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평지도 아니고 언덕길 1마일. 찬홍이가 하퍼스 페리에 도착하여 다 왔다고 좋아하다가, 모임 장소까지 가려면 언덕길 1마일을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투덜대며 성질을 냈다. 그 와중에도 "이런 길을 예수님은 십자가도 짊어지고 채찍을 맞으면서 올라가셨겠구나...기가막혀..." 하고 신세한탄을 했다.  근데 솔직히 나는 찬홍이가 그런 신세한탄을 할때, 나야말로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님의 심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도 피곤해 죽겠는데, 이 180 파운드짜리 웬수덩이 자식을 부축을 하면서, 그 신세한탄과 불평을 들어주고 달래주면서 언덕을 올라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구야.  애자식이 어찌나 아프다고 '지랄'을 하는지 내가 나 발아픈것은 내색도 못했네...에잇. 하하하. 아이고.  아무리 힘든들 온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 걸머지고 피흘리며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만 하랴마는.


그래서 한밤에 깽깽대며 언덕위의 그 장소에 이르자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치며 환영해주었다.  사진속에 입장하여 박수를 받으며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왼편에 그들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네 식구를 픽업하기 위해 직접 이곳으로 온 사람들일 것이다. 가족들이 픽업하러 온 사람들은 자기에 차를 타고 떠나고, 나같이 아무도 없는 사람은 셔틀을 이용해서 메트로 스테이션으로 가고 그랬다.

 



나도 180 파운드 덩어리 짊어지고 오느라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워킹 마치고 기진맥진한 노인분들에게 음식도 날라다 드리고 그랬다. 그래서 "너는 내년에 100 킬로 걸어도 되겠다. 아직도 생생하고 활기가 넘친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나로서는 180 파운드 덩어리를 내려 놓은 것만으로도 몸이 날아갈듯 가벼웠다.  :-)   그래도 내 자식이 가장 귀한 나의 십자가임을 내가 아노라.  아, 함께 걸었던 이름도 모르는 이 사람들이 다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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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