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4. 17. 09:44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서 지난 1월부터 4월에 걸쳐서 한국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벌어지는 코로나 상황을 관망하면서 나는 내가 일하고 있는 영어 교육 분야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된다.

 

 

 

1월에 코로나 문제가 시끄러워질때, 내가 미국집에서 한국으로 떠나려하자 아들이 깊은 시름에 잠겼다. 중국과 가까운 한국이 위험해보이는데 이 안전한 '미국'에 그냥 있지 왜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근심이었다.  내 입장은 - 나는 여태 고맙게 한 인생 잘 살아왔고, 설령 오래지 않아 죽어도 하느님께 감사한 편이다. 아무 유감없다. 물론 한국에 대한 믿음이 그 바탕에 있기도 했다.  '설령 아파도 그걸로 죽게 내버려두겠어? 한국에서 병원이 얼마나 가까운데. 미국보다 낫지.'  그런 믿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2월말에 개학을 했는데, 마침 대구에서 상황이 발생하고, 미국에서 왔던 교수 한두명이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자기는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이곳이 위험해서 안되겠다고. 그런데 그리고 2-3주만에 교수회의에서 우리들은 킬킬댔다--"야 그 아무개 지금 후회 막급이겠다..."   남아있던 동료교수도 말했다, "뉴욕에 계신 아버지가 나보고 꼼짝말고 한국에 있으라고 당부를 하시더라"  그랬다, 한국의 상황 장악력이 미국보다 현실적으로 보였다.  지금 동료 미국인 교수들은 학기가 끝나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서 일 할 궁리들을 하고 있다.  한국의 안전망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말 안듣고 마스크도 안쓰고 돌아다니더니, 지금은 꼬박꼬박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고, 서로 마스크를 쓴채 안부를 묻는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총명하게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매일 아침 (미국의 저녁) 프레스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걸핏하면 '우리가 한국보다 더 잘한다'고 말을 하는데, 이는 열등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불안하다는 증거지. 그를 보면서 '한국 정말 잘 하고 있구나' 확인한다.  한국은 이제 열등감을 흐르는 강물에 흘려버리고 소신껏 잘 해 내면 될것도 같다.  우리 이제 더이상 가난뱅이, '한국전'의 아이들로만 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잘 살아내고 있다. 

 

 

 

최근에 교사들을 위한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컨설팅 제의가 들어왔다.  여름에 교원교육 목적의 프로그램을 진행해줄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전제'가 있었다.  강사진은 모두 '원어민'으로 해 달라고. 그래서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는데, 실무담당자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이 제일 잘 가르치실텐데 그 사람들이 원어민만 강의해야 한대요."  나는 픽 웃었다. 늘 당해오던 일 아니었나.  20년전에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영어'를 원어민만 잘 가르칠수 있다고 믿고 있다. 교사를 교육하는 상급 교육기관에서도 똑같은 시선이다.   사실 이러한 한국 내부에 스며있는 '비원어민' 혹은 '한국인 영어교육자'에 대한 싸늘한 시선에 넌더리가 나서 몇해전 이곳으로 자리를 옮길때도 나는 고민을 했었다.  미국에서는 내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데, 내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드러나게 차별하는 일은 없는데 -- 한국 가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나를 '원어민'이 아니라며 무시하러 들겠지.  그걸 참아내야 하겠지.  그래도 가야 하는걸까?   뭐 그런 고민을 좀 했었다.  그래도 내 나라니까 내가 온 거지. 뭐 특별한 애국심 그런것도 아니다. 떠날때가 되면 휙 갈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도 바쁘니까 내가 강의를 할 수 있을지 말지 모르니까 나는 상관없는데 한가지 생각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내 제안은 이런 것이다.

 

 

 

한국의 영어교사들에게는 집단 트라우마 같은 - 가슴에 가시 같은 것이 박힌 것 같은 아픔이 있다. 그들이 토플 만점을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아픔. 그것은 그들이 절대 절대 절대 원어민이 될 수 없으며 -- 원어민이 아닌이상 절대 좋은 영어선생이 될수 없다는 확신 - 그 확신의 내면화 - 그 확신이 가슴에 가시처럼 콱 박혀있다는 것이다. 

 

 

 

왜 그러면 그들에게 그런 확신의 가시가 박혔을까?  아마도 그들이 대학을 다닐때, 사범대 교육을 받을때, 미국에서 박사하고 왔다는 교수님들이 영어로 강의도 못하고, 안하고, 자신없어하고 뭐,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들 머릿속에 '한국인 교수는 할수 없어'라는 인상의 박혔을 것이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스승들의 자신없음을 제자들이 그대로 본받아 '우리는 안돼'가 내면화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큰 그림의 일부이다. 다른 문화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말을 안하겠다).  그래서 자신이 우수한 영어교사이면서도 선생님들 스스로 '나는 자신이 없어. 나는 안돼'라는 가시를 박은채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이분들이 방학기간중에 수십시간의 인텐시브 영어 프로그램에서 '원어민'강사에게서 영어 수업을 들으면 가슴의 가시가 빠질까? 천만에, 그들은 '원어민'에게서 영어를 배웠고, 여전히 '원어민'만이 최강의 영어선생이라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 허경영같은 사기꾼의 사기놀음에 왜 사람들이 넘어가는가? -- 허경영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가 확신을 가지고 눈을 빛내며 떠들면 순진한 사람들은 그의 확신에 감염된다.  교육자도 마찬가지이다. 사기를 치라는 것이 아니다. 교육자가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눈을 빛내며 학생들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들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자 스스로 자기확신이 없고 '원어민이 아니라서 나는 안돼. 나는 가짜야'라는 신념을 가지고 서 있는데 학생이 뭘 배우겠는가.  '나는 가짜야'를 배우는거지. 

 

 

그런 분들이 현장으로 돌아가 영어를 가르칠때 -- 눈치빠르고 영리하고, 영혼이 투명한 학생들은 교사의 가슴에 박힌 가시의 정체를 읽는다. 그리고 역시 동일한 내면화 작업에 들어간다 --"원어민도 아니니, 저 선생님한테 배워봤자..." 

 

 

선생님이 자신이 없으면 학생은 그것을 영특하게 읽는다. 우리 뇌의 '미러셀 - 거울 세포'가 기가막히게 읽어낸다.  학생이 악해서가 아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학생에게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만약에 발음이 좀 엉성해도 선생님이 자부심을 가지고 태평하게 영어를 가르치면 -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자부심과 태평함을 그의 영어수업에서 배울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영어수업에 긍정적으로 다가설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님 스스로가 '내 영어가 이만하면 쓸만해. 나는 잘 가르칠수 있어. 원어민이 별건가, 영어만 잘 하면 되지' 그런 자부심이 있으므로 학생들이 그 자부심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선생님들이 정말로 만나야 할 사람은 '원어민'이 아니고 '나'다.  원어민이 아니면서 원어민과 문제없이 함께 일을 하고, 원어민보다 더 이론에 밝으며, 원어민들을 진두지휘하는 '나'같은 교육자에게서 교육을 받야야, 그 선생님들께서 '아, 영어는 그냥 하나의 도구인것이고, 내 발음이 원어민이 아니어도, 내가 영어를 잘 가르치는데는 문제가 안되는거구나'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런 믿음으로 교단에 서야 학생들이 선생님의 그 자부심을 흡수하게 될 것이 아닌가?

 

 

왜 한국인 교수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단하게 강의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코로나를 장악하듯, 내가 영어교육을 장악한 현장을 그들이 본다면, 그들의 시각이 바뀌지 않을까?  뭐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면서 --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하품).  아, 그래서, 나도 강의를 하기로 했다, 이 늙수그레한 반백의 할머니/아주머니 교수도 수려한 영어로 강의를 하는데 젊고 지혜로운 한국의 교사들이 왜 영어를 못하겠느냐구. 할수 있어. 할 수 있다구.  과연 여름방학 즈음에 캠퍼스가 개방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음, 코로나가 이제 좀 지는 꽃잎과 함께 떠나주었으면.  코로나야 벚꽃이 지듯 너도 이제 꽃잎처럼 가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17. 09:17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 그것을 원컨 원치 않건간에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하면 여러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장점도 있다.  내가 예상치 않던 장점을 기록하겠다 (나중에 연구 보고서를 써야 할지도 모르므로).

 

 

일단 학교나 학생들에게 기술적 제약이 크게 없다는 전제에서 (모두들 데스크탑이나 랩탑등 적합한 도구를 갖고 있고, 인터넷에 문제가 없는 상황) ZOOM 이나 Collaborative Class, Webinar 등 화상회의 식으로 진행하는 수업의 장점은 상호작용 (interactive collaboration)이 어떤 면에서 교실 수업보다 효과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1. 수업중에 토론이나 질문을 던질때, 어떤 학생은 목소리가 크고 어떤 학생은 잘 안들리는 개미소리로 어물거릴때가 있다. 앞자리 학생이 하는 말을 교수는 알아 듣지만, 뒷자리에 앉은 학생에게는 들리지도 않는다.  친절한 교수는 앞자리에서 옹알거린 학생의 발표 내용을 뒷자리 학생에게 다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뒷자리에서는 듣지도 못한 채로 진행되기가 일쑤다.  그런데, 화상회의식 수업에서는 모두의 목소리가 일정하다. 어떤 학생이 말하는 것을 교수가 잘 못들으면 다른 학생들도 잘 못들고, 교수가 정확히 들은 내용은 다른 학생들도 정확히 들을수 있다 (모두다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므로). 그런 면에서 '음성의 평등성'이 주어진다 (이 음성의 평등성을 뭐라고 만들어낼까 연구중이다. Equality in voice 라는 표현을 쓸까 생각중이다. 온라인 교육 전문 학회에서 이미 이런 내용을 발표 했을지도 모른다.) 

 

 

2. 수업자료를 공유하며, "이 문장이 compound sentence 인지 complex sentence 인지 분석해보라"고 하면, 해당 학생은 공유되는 문장에 선을 긋고 표시를 하면서 분석을 해 낸다. 그의 분석이 맞건 틀리건 간에, 현장에서 동시에 동등하게 내용을 공유하고 서로 코멘트가 가능하다.  교실에서 진행한다면 누군가 칠판앞에 걸어나와 칠판에 표시를 하겠지만, 온라인에서는 오고갈 필요없이 그자리에서 쓱싹 이루어진다. 이것도 꽤 편리하다 (물론 이렇게 활발하게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교수가 꼼꼼하고 세세하게 미리미리 수업자료를 챙겨야 한다. 대충 준비는 대충 수업이 되고 만다.)

 

 

 

위의 두가지를 묶어서 말한다면, 온라인 화상회의식 실시간 수업에서, 교수가 독재를 하지 않고 시스템을 온전히 공유한다면, 그리고 학생들이 일정 교양과 품위를 유지한채 수업 활동만 한다면 - 온라인 수업도 아주 효과적인 교육방식이다.  (여기서 교수와 학생의 태도에 대한 전제를 붙인 것은, 교수가 학생들 마이크나 비디오 다 닫아버리고 혼자 떠들고 있다거나, 혹은 교수가 학생들에게도 동일한 권한을 줬는데 학생이 장난으로 이상한 것을 올리고 못된 짓을 하거나 이런 잘못된 행동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가 일방적인 강의만 하고 끝내는 거라면 사실 실시간 화상회의식 수업은 별로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일방적 강의는 차라리 녹화해서 올려 놓는것이 시간효율성이 좋다. 학생이 꼭 정해진 시간이 아닌 자유로운 시간에 녹화된 강의를 듣고 공부하면 그만이니까.  실시간 수업은 토론이나 상호작용이 활발한 수업에서 효과적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15. 16:51

이른 아침, 나는 손님을 태우고 해안을 달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다행히 내 차에는 나도 모르던 신묘한 스마트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전화기를 가방에서 꺼낼 필요도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이 내 차에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운전중에 전화기를 아예 가방에 넣어서 뒷자리에 던져 놓기 때문에 평소에도 전화 따위 받지도 않는데 이런 일이 있다니).  모르는 번호에서 온 전화를 내가 왜 받았을까?  (아는 번호도 안 받기 일쑤인데.)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영어로 다급하게 나를 찾고 있었다. 상대는 다급하게 나를 찾는데 - 거의 비명에 가까운데 - 바로 그것이 비명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고, 나를 찾는 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I guess I am NOT the right person to you. I guess you've got the wrong number..."하고 얼버무리고 있는 내게, "It's you! I am calling you!  I am Anabelle (가명)!  I am Anabelle!" 상대는 나를 안다고 우겨댔고,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누군가 한국인 남자가 전화를 바꾸더니 모 종합병원인데 빨리 내가 와 줘야 한다는 것이다.  왜 내가 갑자기 호출되는 것일까?  영문을 알수 없는 가운데,  뒷자리에서 가만히 전화 '방송'을 듣고 있던 동료가 말했다, "아무개 교수 부인 이름이 아나벨인데... 그 아나벨인것 같은데..." 

 

 

결국 뒷자리에 앉아있던 내 동료가 그 '아무개 교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상황이 그제서야 정리되었다.  아무개교수의 부인인 '아나벨'이 최근에 외국 모처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오자마자 곧바로 국가의 시책대로 격리되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뭔가 의심 증상이 있어서 두번이나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 판정이 나왔건만 -- 아나벨은 열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러니 병원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코로나 음성 판정 외국인과 뭔가 소통하려다 결국 내가 호출 된 것이다.  내가 와서 소통을 도와 달라는 것 같았다.  거기가 어딘데?  한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모 종합병원.  그런데 거기가 격리실이라며?  그런데 내가 거길 어떻게 들어가?  내가 반문하자, 그건 자기네도 모르겠고 아무튼 영어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내가 와 달라는 거다.  내가 가도 들어갈 수도 없다니깐... 게다가 지금 나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어디론가 가는 길인데, 지금 이 손님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한다면 이 손님은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이리저리 연락을 하여 양쪽간의 의견 전달하여 주고 상황은 이럭저럭 전화로 정리가 되었다.  코비드와 상관없이 아나벨은 뭔가 증상이 있었고, 아나벨은 어느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지역성 질환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 질환은 한국에서는 아주 낯선 것이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감기처럼 흔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간다고 상황에 어떤 변화도 없을것이므로 병원은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나는 아나벨에게 안심하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라고 말 해주었다.  좀더 알아보니 동료교수가 격리되어 있는 아내의 상황에 뭔가 문제가 발생하고, 격리실에서 아내와 소통할 수 있는 영어 가능자가 없다고 판단되자 내 번호를 주고 내게서 도움을 구하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인과 말을 잘 할 수있는 사람.

 

 

상황이 대충 정리되고, 나도 내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 아침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니 문득 위급한 상황에서 나를 떠올린 내 동료교수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비명을 지르듯 내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한 아나벨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감사하냐하면 - 적어도 그들은 나를 위급한 상황에서 도와줄 만한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내 전화번호를 간직하고 있었고, 정말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을 생각하니 -- '나 ...아주...나쁜...인간은 아니었다보다' 이런 가슴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힘들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구가 '나'였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나, 아주 나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에 대해서 좀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악행, 거짓말, 비열한 행동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저지른 악행이야 나도 모르니 모른다고 쳐도, 내가 기억하는 악행도 산더머지처럼 쌓였으므로 나는 나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오늘 같은 날) - 나 좋은 면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 라는 생각이 살짝 들 때, 그 때 내 가슴이 조금 따뜻해지고, 체온이 조금 상승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인근 상가 빵집에 가서 내가 평소에 아주 좋아하는 질좋은 빵과 음료수등을 사서 가방에 담아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경내의 멀리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아이가 셋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므로 아이들이 넉넉히 먹을 만큼의 빵과 음료수.  (다른 먹을거리를 사기위해서는 차를 끌고 멀리 가야 했는데, 그러기엔 나도 피곤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안전하며 코비드가 아니므로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 좀더 있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하며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료교수에게서 병명이 확정되었으며 치료가 필요해서 어쩌면 병원을 옮길지도 모르는데, 마침 소속교회 목사님이 와서 병원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 나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 어떤 풍토병에 걸린 모양인데, 우리나라 의술이 좋으니 곧 치료가 될 것이고, 코비드가 아니니 다행이지 싶다.  코로나가 아니면 다행인거다. 

 

오늘부터 나는 내 동료교수와 '형제'가 된다.  그가 힘들때 내 이름을 불러 주었는데, 내가 그보다 더 위로를 받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이런식으로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 나는 감지한다.  하느님이 부르시면 나는 달려갈 것이다.  나의 하느님에게로.  그가 나의 쉴 곳이므로.  하느님이 내게 뭘 하라고 하시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13. 15:47

어제 (부활절/일요일).

 

 

 

새벽부터 창밖에서 엔진소리가 나고 뭔가 뒤숭숭하여 내다보니 맞은편 건물 입구에 방역차를 비롯한 여러종류의 차들이 와 서있고 곧이어 관리실에서 '공지사항'이 흘러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경내에서 발생하였으니 경내 거주자들은 모두 문밖으로 나오지 말고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출입분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딱히 외출 할 생각도 없었으나, 외출이 불가능해지자 그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것이구나. 내 의사에 의해서 일주일 내내 방콕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나라도, 누군가가 문밖에 나가지 말라고 지시하자 그 상황이 무척 고통스러워진다. 갇혀 지낸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 

 

학교에서도 공문이 날아온다. 상황에 대한 브리핑과 함께 출입 통제를 알리는 메시지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공문의 속도는 현장보다 느리다.)

 

 

두시간여가 지나자 건너편 건물 앞에 모여있던 여섯대의 차들이 (방역차, 구청차, 또 무슨 비상차. 등 등) 차례차례 경내에서 빠져나가고 다시 실내 방송이 들린다. 상황이 완료 되었으니 출입을 해도 좋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시름시름 했다.  몸보다는 심리적으로 아픈것 같았다. 웹 검색을 해보니 오늘 상황에 대한 신문기사가 보였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데 기자는 취재를 하여 이미 기사화 하였다.  이웃 대학의 학생이 미국 본교에 다녀왔는데 동반했던 보호자와 함께 귀국하자마자 경내의  맞은편 건물의 자가격리실로 직행했고, 그 보호자가 확진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랬었군. 이 와중에 미국에 다녀와할 할 중대한 일이 있었나보다.  쾌차하시길. 

 

 

오늘 (부활절 다음날/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니 밤사이에 학교에서 공문이 와 있었다.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통보가 갈 때까지 학교 건물에 들어갈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또 뭐지?  누군가가 확진 판결을 받았는데, 그와 접촉했던 어떤 사람이 지난 토요일에 학교 건물에 다녀갔기 때문에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어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출입이 통제가 되더니, 오늘은 내 연구실에 갈 수가 없구나.  학생이 집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 나는 학교에서 내 할일을 하고 나름 '정상정'이라는 것을 유지하려 했는데, 이제 그것도 허락이 안되는건가?  또다시 몸에서 모든 '생기'가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물론 랩탑으로 평소처럼 언라인 수업을 하면 그만이지만, 연구실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거, 정말 '전쟁' 같은거구나.  코비드라는 보이지 않는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그 폭격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갑자기 모든것이 정지되기도 하고 그런것이구나. 소리나지 않는 세계대전 같은거구나. 

 

 

집에서 학생들 과제 채점을 하고 있는데 오전 열시 쯤 다시 학교 이메일이 왔다. 다행히 그 접촉자가 음성판정이 났으므로 학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교수들은 희망하면 연구실에 가도 좋고, 직원들은 이미 '출근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나갔으므로 그냥 오늘 하루 재택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내 동료 교수 생각이 난다. 미국인인데 500미터도 안되는 숙소와 교수 연구실 사이를 오가며 여행가방을 끌고 다닌다.  그건 왜 매일 끌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수업에 사용하는 책이랑 자료들인데, 갑자기 연구실에 못 가는 일이 생길까봐, 갑자기 숙소가 닫히는 일이 생길까봐 그 자료들과 랩탑을 끌고 다닌다고 한다.  참 걱정도 팔자다 했는데 --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 그러면, 나도 그래야 하는건가보다. 외장 하드에 내가 요즘 만들어내는 수업자료들을 늘 새로 업데이트 하여서 그 외장하드를 늘 갖고 다녀야겠다. 클라우드도 있지만 나는 내가 직접 챙기는 편을 선호한다. 클라우드는 예비용이다.  내 랩탑과 연구실 컴퓨터 양쪽에 동일한 파일들을 저장해 놓아야 한다 (매일 업데이트 해야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 심지어 내가 자가격리를 당하게 되더라도, 골방에서 나는 계속 언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사람의 일을 알 수가 있나. 자가격리 대상이 될지, 입원을 하게 될지,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리 예비하면  내가 살아있는 한 내 학생들에게 수업은 계속 제공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 인터넷은 세계 최강이라 인터넷 끊길 걱정은 별로 안된다. 그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그립다.  얼굴도 잘 모르겠는 내 학생들이 보고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4. 7. 20:47

 

저녁 뉴스를 보니 대학생들이 '언라인 수업'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빼앗겼다며 시위를 하는 광경이 보인다.  답답한 대학생들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 할 만하지만 - 마치 교수들이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하는 원흉인 것 처럼 그려지는 뉴스에 화딱지가 난다.  뉴스에는 몇가지 문제 행동을 일으킨 교수들이 간단히 스케치 되기도 하고. 

 

 

내가 교수 입장에서 왜 화딱지가 나는지 간단히 술회 하겠다. 

 

나는 다른 보직도 있는 이른바 '보직교수'다.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서 수업도 약간 적다. 6학점 한과목 가르친다. 물론 다른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어쨌거나 6학점짜리 아주 중요한 과목을 가르치는데 3학점짜리 두과목과 비슷한 비중이다.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면, 이럭저럭 숨 좀 쉬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내 연구일로 지정해서 연구하고 글 쓰면서 보낼수 있었을 것이다.  봄학기 내내 나는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 자료를 만들고,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고, 끝없이 채점을 하고 피드백 주는 일을 한다. 공장에서 뭔가 계속 생산해 내듯이 끊이 없이 피드백을 주고 있다. 내 모습이 거미같이 보이기도 한다. 온종일 뭔가 실을 뽑아내고 있는 거미.  그렇게 열심히 해도 -- 그것이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것 만큼 생생활수 없다는 한계가 보여서 나로서도 무척 갑갑하다.  그러니까 칠판 앞에서 몇글자 끄적거리며 예를 보여주면 해결될 일을 위해서 수업자료를 만들고, 확인하기 위해 숙제를 내고, 개별적으로 검사를 하고,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끊임없는 일거리로 연결된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 함께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의료진이 아니니까, 내가 도울 방법은 그냥 가르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그 방법 외에는 없으니까. 

 

내가 자다가도 내 학생의 카톡이 울리면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일상을 살면서도 - 나는 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교수도 못만나고 동기생들도 못만나는 그 현실이 딱해서 미안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언라인 교육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미안하다. 늘 미안하다. 그래서 좀더 잘 가르치려고 궁리하고 궁리한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내 학생들중에도 '이따위 교육을 받으러 내가 비싼 대학 등록금 내고 이러고 있는건가?'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 내 학생이 직접 불만을 표한적은 없지만, 누군가 불평을 한대도 나로서도 어쩔수 없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는거지 어쩐단 말인가. 

 

학생들이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 피해자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교수들도 갑자기 언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교수들도 평상시보다 몇배의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수당을 올려 달라거나 그런식으로 시위를 할 생각도 없다. 모두가 어려운 강을 건너는 중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도리이기도 하고.  교수들도 힘들다.  교수들이 일부러 학생들을 온라인 교육의 물에 빠뜨린 것도 아니다, 교수들도 그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학교 당국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나는 보직이 있으므로 학교가 텅텅비어도 늘 내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학교의 행정을 담당한 분들도 평소보다 일하기가 더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캠퍼스에 학생이 안보이면 일이 없을것 같아도 각자 평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면서 학교를 지키고 있다.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욱 노력해도 -- 그것이 학생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함부로 떠들지는 말기를 바란다.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앞뒤 분간 제대로 하고 개선이 되는 방향으로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학생만 피해자라고 -- 나머지는 다 가해자인것처럼 몰아붙이면, 어쩌면 '가해자'로 찍힌 사람들도 김이 빠질수가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 교육은 상호 협동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의 장에서 '상생'을 배우고 연습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서 그 귀한 가치를 배우고 익힐 것인가? 초중고등학생들도 떼를 쓰지 않고 있다. 어린애들도 떼를 쓰지 않고 불평을 안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을 봐서라도 나도 그냥 여태까지처럼 하는 수밖에.  내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이 - 바로 그 상생과 협동이 아닌가...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수 밖에. 그래도 비를 원망하지는 말기로 하자.  

 

 

***

 

사람마다 인생의 영웅이 있다고 가정하기로 하자.  내 인생의 영웅은 (1) 우리 할머니, 그리고 (2) 윤봉길 의사이다.  우리 할머니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그냥 개인적인 일이므로 나중에 한가할때 심심풀이로 적어보자.  윤봉길의사가 내 인생의 영웅인 이유는 내가 그의 '친필 교과서'에 - '함정'에 털썩 빠지듯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윤봉길의사의 손녀딸이 tv에 나올때마다 있는대로 욕을 퍼붓고 있는데,  내 영웅을 그가 망쳐놓기 때문이다.)

 

충남, 덕산이라는 마을에 가면 거기 유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에 가면 윤봉길의사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나는 거기서 보았다. 윤봉길의사는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직접 당신손으로, 손글씨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 손글씨 교과서를 발견했을 때 내 심장은 '쿵' 했으며 -- 수천년간 수백번을 죽고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서 찾아헤메던, 그리워하나 기억하지도 못하던, 그래서 정체를 알수 없는 내  '연인'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그 손글씨로 쓴 교과서 때문에 나는 무작정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폭거는 홍구공원에서 비루한 일본인들 죽인것 -- 버러지만도 못한것들 죽인것 거기서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의 혁명은 그 교과서에서 완결된 것이고 나머지는 가벼운 변주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극히 개인적인 소회다. 

 

내 가슴속에 윤봉길 의사를 품고 - 나는 내 비루한 교육자료를 매일 만들고 다듬고, 교육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명이라고 믿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 난리통에 교육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만으로도 혁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수업형태가 조금 달라지고 힘들어지고 재미없어졌다고 피켓들고 시위하려는가?  시위하기엔 너무 가볍고 먼지같지 않은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