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6. 15. 23:46

100년 전까지도 학교로 사용되었던 old school house.  오른쪽의 하얀 창고모양이 아마도 화장실 이었을 것이다.

 

카페 이름이 한국인에게는 유별나게 보일 수 있다.

 

1970년대 한국의 이발소를 회상하게 만드는 아주 오래된 이발소. 

요한 복음 3장 16절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 아들을 주셨으니, 주 예수를 믿는자는 누구든지 죽지 아니하며 영원한 삶을 누리리다.

집 주인이 신앙심이 강한 사람인듯. 

 

옛날 소방서 입구에 붙어있는 표시.

 

이 도시의 법원 건물. 티파니라는 스테인드 글래스 작품으로 유명한 루이스 티파니가 직접 디자인하여 제작했다는 스테인드 클래스가 이 건물의 자랑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omfort_Tiffany )

나도 미국 미술관에 다닐때, 주요 미술관에 반드시 소장하고 있던 티파니의 스테인드 글래스 작품들을 감상했었지만, 실제 어떤 건물의 창에 그대로 남아있는 그의 작품을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제대로 감상하기위해서는 실내로 가서 봐야하는데, 일요일 오후에 갔기 때문에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다음에 평일에 가서 다시 봐야지. 

 

 

아래: 내가 갖고 싶은 집.  나즈막하고 아담하고 소박한 이층집과 정원. 그것이 내가 갖고 싶은 집이다.  돌아다니다가 내가 갖고 싶은 집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 모아보려고 한다.  떠돌이로 사는것도 재미없어서 정착해 볼까 하고. 

 

 

코로나로 텅텅 빈 메인스트리트 오후

 

늑대 언덕 (Wolf Hill)이라는 이곳 이름을 기리기 위한 늑대 조형물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다. 

이 도시의 연방건물 길 모퉁이를 장식한 그림. 

 

 

 

다시 책상 앞.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6. 11. 00:34

 

미국집에 내 운동화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샌들을 신고 왔는데, 와 보니 없었다. 아, 아들이 짐정리 하면서 다 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근처 월마트에서 18달러짜리 운동화를 한켤레 사 신고 (9달러 짜리도 있었는데 믿음이 안가서 18달러짜리로 산 것인데) 10킬로미터를 걷고 오니 발목이 시큰거린다.  망했어...  이제 나도 젊은 청춘이 아니라서 이태전부터 발 쪽에 시큰시큰 '나이가 보내는 시그널'을 느끼던 중이라 걸을때조차 신중했어야 했는데,  곰이 돌아다닌다는 트레일에 넋이 나가서 신나게 걷다가 이 꼴이 되고 말았다. (나이 먹으면 내 육신이 내 욕망을 따르지 못하게 된다.) 하루 50킬로미터를 걸어도 발이 멀쩡했던 나의 청춘은 어디로 간 것인가?  

 

그래서 내가 내 일생에 처음으로 발목에 파스를 붙이고 이틀째 절름거리고 집안을 오르내리고 있다.  아, 파스를 이래서 붙이는구나. 아들은 왜 이런 파스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일까?  허리 아픈것을 운동으로 달랜다더니 파스가 많이 필요했던것이구나.  나는 건강한 몸을 타고나서 내 아들의 고통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던 듯 싶다.  

 

월마트에서 산 20달러 운동화는 실내화로나 신어야 하려나. 나는 검소하게 살던 습관이나 생각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20달러짜리 운동화나 100달러 짜리 운동화나 별 차이가 없을거라는 상상을 했었다.  "그게 다 브랜드 광고 값이지 운동화가 이만하면 되는거겠지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으려고..." 뭐 이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고 20달러쯤 하는 운동화에 몸을 맡겼던 것인데 결과는 혹독하다. (나는 지금 절름거리고 있다구!)

 

어쨌거나 아들이 이 꼴을 보고 15마일쯤 운전하여 나가서 운동화를 한켤레 사 주었다.  나이키를 고르다가 매장 점원에게 "Hey, I am an elderly woman. I have ankle problems and some other issues with my feet. What would you recommend for me?" 하고 물었다. 그는 나의 'I am an elderly woman'이라는 말에 마스크를 쓴채 벙글벙글 사람좋은 미소를 날렸다. 그러더니 그가 가리킨 것이 이 신발이었다. Brooks. 점원은 간호사 여성들이 이 신발을 많이 사 신고, 자기 엄마도 이 운동화를 신는다고 했다.  그래 맞어. 미국여자들이 이 신발 신고 뛰는거 많이 봤어. 하지만 나는 주로 나이키를 신었지.

 

벙글벙글 웃는 점원이 맘에 들어서 그가 권하는 운동화를 신어보았는데, 신발에 아픈 발을 넣는 순간 답이 나왔다.  "Yes! This is it! I don't feel any pain in my ankel and foot."   정말 그랬다. 샌들을 신고 나간 발이 그냥 있어도 얼얼했는데, 이 신발에 발을 넣는 순간 발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오호!!! 신발이 아픈 내 발을 단단히 안아주고 위로해준다는 느낌.  신발의 차이가 이런 것인가! 

 

그래서 110달러쯤에 이 신발을 한켤레 샀다. 아들이 사줬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님.)  이젠 발 편한게 최고야... 

 

아침에 일어나 작은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들아! 엄마 신발 사줘!

 

 

재택근무를 하고 있을 작은 아들에게서 즉시 답이 날아왔다. "예이! 엄마!"

 

아, 착한 아들들.  스폰서 아들을 둘이나 가진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가.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해. 클로그는 연구실에 놓고 학교에서 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닐때 신어야지. 편안할거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6. 10. 05:27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 (시민의 입장에서):

 

한국에서는 대체로 대부분의 비즈니스를 열어 놓은 상태에서 시민들에게 개인적인 방어조치를 취하도록 강력하게 유도하는 편이다.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기를 하고 있으며 - 길에서 마스크 안 쓴 사람을 보면 연쇄살인범을 만난듯 증오하며 피하는 분위기 이다. 사회적 압박이 무서워서라도 마스크를 착용할수 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유도하되 대부분의 사업장이 열려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 음주-가무 시설 제외). 그대신 출입국 장치가 삼엄하다.  아,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지없이 2주간 방구석에서 수도 생활을 해야 한다. 

 

미국은 대체로 대부분의 비즈니스를 닫아 걸고  유령도시를 만들어 놓았다. 스타벅스 열린곳을 찾기가 힘들다.  뭔가 사러 나가기 위해서는 그 상점이 현재 영업을 하는지 몇시까지 문을 여는지 전화로 확인하고 나가는 것이 안전하다.  매장마다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표시를 붙여 놓았고,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상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체로 마스크 따위를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짙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대도시와 인구 밀도가 떨어지는 시골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워싱턴 디씨를 비롯한 인근 도심에서는 사람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대체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분위기 이지만,  시골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나는 현재 버지니아의 시골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곳은 마치 '웰컴투 동막골'과 흡사하다. 도무지 코로나라는 난리가 쳐들어오지 않은 동화속의 마을 같다.  점원들은 마스크를 하지만 매장의 손님들은 마스크를 안하고 돌아다니므로 이따금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점원'으로 오인하고 와서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만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에 마스크 안쓴 사람이 널리고 깔려 있다. 출입국 장치도 널럴하다. 미국에 입국하는 내게 주어진 것은 미국방역관리 CDC 안내지 한장이었는데, 알아서 잘 조치하라는 내용이었다. (개인위생 철저, 마스크, 사회적거리두기, 2주간 처박혀있기등.) 개인의 자유를 더욱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긍정적으로 해석을 할 여지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대처방법은 정 반대이다.  

 

미국은 비즈니스를 닫아놓은 상태에서 개인이 알아서 마스크를 하던지 말던지 내버려 두는 편이고

 

한국은 비즈니스를 대체로 열어 놓은 상태에서 개인들이 철저하게 지켜야할 지침들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 미국에 와서는 - 돌아가는 상태를 보고 '이것이 정녕 미국이란 말인가? 너무나 미숙하고 미개한 대처방법이 아닌가?  놀라워했는데 (지금도 약간 이들을 얕잡아 보고 있기는 한데) -- 한편으로는, 뭐랄까, 이들의 '여유'가 어떤 면에서 맘에 든다고나 할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자가격리'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물론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그리고 마땅히 따라야 하는 사항이긴 하지만 -- 한국사람인 내가 한국에서 미국에 왔을 때 아무도 나를 이리가라 저리가라 제지하지 않고 '조심하라'는 종이 메시지 하나 받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그 한국인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핸드폰에 자가격리앱을 설치하고 2주간 격리되어 지내야 한다.  딱 이것만 보면 미국의 공기가 얼마나 자유로운지....이 순진무구한 (헛점 투성이이지만 그러나 매력적인)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어쨌거나 나는 한국 귀국후 자가격리 2주간 성경통독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두개의 다른 나라, 두개의 다른 국가 시스템을 오가면서 그동안 크게 차이를 못 느껴왔는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양국을 오가며 나는 이제서야 미국의 개인주의의 실체를 극명하게 체험한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미국땅에 어울려보인다.  땅덩어리가 하도 커서 국가가 개인을 일일이 통제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은 작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구조이므로  한국적인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5. 22. 16:31

 

우리 학교 건물 앞에는 학교 이름의 주인공인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의 동상이 있다. 본교에 서 있는 동상과 동일한 틀로 제작한 동상이라고 한다.  그 동상을 멀리서 보면 생뚱맞게도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가 생각나곤 한다. 아무래도 동상의 주인공이 서양사람이고 미국 식민지 시절의 신사복을 입고 있으니까 서양의 왕자가 연상이 되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그 동상앞을 지나며, 저 동상에 제비가 날아와 앉으면 좋겠다는 동화적 상상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도시에서 제비를 보기가 쉽지 않아 상상에 그치고 만다. 

 

 

학교에 행사가 있었는지 어제부터 그 동상의 손목에 풍선이 한무더기 매어 있었다. 그러니까 서른개쯤 되는 풍선이 그 동상의 손에 묶인채 그의 머리위에서 둥실둥실 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즐거운 행사가 있었나보다.  아침에 일부러 캠퍼스를 이리저리 돌아 '흰 눈처럼 피어난 이팝꽃'들을 감상하면서 느릿느릿 학교로 향했는데, 동상에 기어오르는 조그만 소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세살쯤 되었을까? 아주 작은 소년이 동상의 팔에 매달려 풍선을 따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광경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코비드 난리통에 아무데도 못가고 학교에서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외국인 교수의 아이들.  꼬마들 몇명이 매일 아침 엄마와 함께 동상 근처에서 노는 것이 보이곤 하는데, 이 꼬마가 풍선을 따려는 것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그 엄마가 어딘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겠지. 

 

 

나: Do you want to pick a balloon?

그: Yes, I need two of them. One for me and one for my baby sister!

나: (빙글빙글 웃으며) I can help you pick them. 

그: Yes! My daddy can pick them, too!

나: Yes, your daddy can pick them all!

그: Please pick them for me...

 

 

뭐 이렇게 노닥거리며 풍선 두개를 따 주었는데 하나를 놓쳤다. 풍선 하나가 둥실둥실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풍선 하나 남은 것을 그의 소매에 묶어 주고, 또 하나를 따서 그의 나머지 손에 묶어 주었다.  소년이 양손목에 풍선을 묶자 저만치서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의 손목의 풍선이 둥실둥실 천사의 날개처럼 그를 따랐다. 

 

그가 엄마에게 외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Mom! Look at this!  She picked these for me!

 

 

나는 학교 건물로 걸어들어가고,  엄마와 함께 선채로 꼬마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주 아주 꿀같이 달콤한 순간이었다.  아, 세살짜리 어린 아이가 뿜어내는 생명 에너지는 향기롭고 달콤하고 따뜻하기도 하여라. 그의 행복한 눈빛을 위해서라면 그의 부모들은 목숨이라도 바치려 할 것이다.  잠시 그 눈부신 생명에너지의 빛 앞에 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오늘 그 소년처럼 행복하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 구석에서는 많은 천사같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학대당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5. 19. 16:49

 

내 연구실 창가에도 이 자그마한 소녀상이 있다.  이젠 치우고 싶다. 내가 속았다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내가 이럴 때, 할머니들은 기분이 어떠실까?)

 

윤##씨는 수고도 많이 했을 것이다. 여러가지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열심히 일해 왔을 것이다.  그 공적을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 몇가지 실수가 발견되고,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의 불만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면 이제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맞다.  지긋지긋하다. 저 소녀를 앞세워서 대체 뭘 한건가?  그 노인들을 앞세워서 당신들 도대체 무슨짓을 한건가?  

 

이자들이 평생 '진보'쪽에 표를 던지던 나를 오갈데 없는 난민으로 만들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