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3. 1. 22:07

(왼쪽부터) 방한용 헝겊 마스크, 정전기청소포 (2000원), 키친타월
정전기 청소포를 마스크 크기에 맞춰 착착 접은후 키친타월로 착착 접어 감싼다. 

 

키친타월로 접어서 청소포를 감싼 상태.
얇은 솜이 안쪽에 들어있는 방한용 면마스크의 안쪽 한 편을 가위로 가른후 위에 접어 놓은 '필터'를 집어 넣는다. (끝)

 

뉴스를 보니까 지자체에서 헝겊 마스크에 정전기 부직포(?) 를 넣어서 임시변통으로 만들어낸 방역마스크가 인증 받은 마스크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나도 머리를 써서 만들어보았다. '정전기 부직포(?)'를 따로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가 알고 있는 정전기를 이용한 청소용 티슈 생각이 나서 -- 정전기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이소에서 정전기 청소포 사다가 만들어 보았다. 

 

우리나라 군 장병들이 사용할 마스크까지 민간에 풀어야 한다는 뉴스를 보고 내가 약간 화가 났다.  '군인'들이 우리나라 지키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마스크를 빼앗아다 쓰면 어쩐다는 말인가? 그것은 안 될 말이라고 본다.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마스크를 안 사는 것이 마스크가 급히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 될것이다.  우리 식구 것은 내가 이렇게 매일 갈아쓰면 되니까 (매일 저녁에 필터는 빼서 버리고 마스크는 깨끗이 빨아서 말리면 된다) 아무튼 다른 분들에게 먼지 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군 장병에게 지급될 마스크를 빼앗으면 안된다. 군장병은 나라를 지키고, 나는 군에 있는 우리 아들/딸들을 지켜주고 싶다.  마스크는 노약자, 대구 경북 시민, 군장병들에게 먼저 가고 -- 후방의 대체로 평범한 나같은 소시민들은 마스크 사겠다고 줄 서지 말고 각자 만들어 쓰는거다.  이 난리통에 마스크 매점매석 해 놓고 실익을 챙기는 분들에게 '빅 엿'을 선물하고 싶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필터'를 차곡차곡 접어 만들어서 비닐봉지에 갖고 다니다가 하루에도 여러번 갈아 써도 되겠다. 뭐 청소포와 키친타월은 비싸지도 않으니까.  청소포는 다이소에서 사옴. 

 

 

만약에 갖고 있는 헝겊 마스크가 홑겹이라면?   내가 그 문제도 생각을 해 봤다. 뭐 남편이 입던 헌 내의 (난닝구) 그거 잘라서 마스크 크기만큼 두세겹으로 접는다. 삼면을 바느질하여 헝겊 마스크 뒷면에 붙인다 (코/입에 닿는 부분). 꿰메지 않고 남겨 놓은 쪽으로 필터를 넣고 뺀다. 판매하는 헝겊 마스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헝겊 사서 마스크 본떠서 바느질하고 끈 달기 귀챦아서...헝겊 마스크는 구하기도 수월하고 한번 사면 매일 빨아서 쓸수 있으니 편하게 가자는거다. 편하게. (쉽죠?  ㅎㅎㅎ ) 내가 수실이 있으면 마스크 겉면에 수도 놓아 쓰고 다니련만...음, 이러다 마스크 패션 만들어서 수출할라... 

 

찬조출연: 내 손 -- 하도 자주 따뜻한 물에 비누칠해서 문질러대니 요즘 내 손이 거의 투명해진듯하다.  평소에도 이렇게 자주 닦고 살았어야 했는데. 소독제--비누로 씻기--핸드크림--소독제--소독제--비누--핸드크림  이런식의 무한반복이 하루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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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A형 독감 '확진' 받았던 날 생각이 난다 --나는 열나고 사지가 쑤시고 골치 지끈거리고 아주 죽을 맛이었는데 동네 내과에 가니 간호사가 열 재보고 "열 없네요" 이런다.  난 열이 나는데 열이 없단다. 의사선생님도 똑같은 말 하고. 열이 없으니 크게 문제가 안된단다. 그래서 내가 "아프니까 집에 있는 타이레놀 이런거 먹었으니까 열이 내린거 아닐까요?"  그랬더니 그제서야 "그래요? 그럴수도 있지요." 이러더니 뭐 독감 검사를 해 보잔다. 뭐 코로 길다란 대롱을 넣어서 콧물을 채취를 하는데 약간 무서웠지만 검사 결과는 바로 나오더라. "에이형 독감이군요. 기록보니 얼마전에 여기서 독감 예방접종 하셨네. 그래도 독감 걸릴 수 있어요."  뭐, 그러더니 감기증상 처방해주면서 타미플루 한판 (5일치 한판) 무조건 끝까지 먹으라고 하더라. 증상완화를 위해서는 감기몸살 처방약을 처방해주는데 '타미플루'는 증상완화보다는 '전염성을 방지하는' 목적의 약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증상이 없어져도 타미플루는 무조건 끝까지 먹으라고 (남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래서 남이 내게서 전염 되는 것을 막기위해 그 독한 약을 다 먹었다. 

 

내가 염려하는 부분은 자기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앓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고 지나가는 '건강한 앓는 사람들'과 내가 접촉 했을경우 나만 바가지 쓰는거지 뭐.  난 감기, 독감 센서가 아주 발달해서 감기에 취약한 편이고.  방어 방법은 손씻고 마스크 착용하고. 그것밖에 없다. 직장 생활을 안 할 수도 없고. 내 직업이 사람을 대면하는 일인데. 

 

그러니 제발 좀 건강한 사람들도 남을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했으면 좋겠다. 건강한 사람이야 코로나 걸려도 약먹고 금세 떨치고 일어나면 그만이지만, 약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일수 있다. 나도 뭐 '걸리면 별 수 있나 아프고 지나가는거지' 하는 편이지만 남을 위해서도 최대한 방어를 해야 하는거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2. 28. 13:55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294369&code=61121111&cp=nv

 

“내가 간 곳이 신천지 교육장인지도 몰랐다” 신천지 포교 대상자 증언

A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포교 수법이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나자 불안해졌다. 자신이 지금까지 받

news.kmib.co.kr

'신천지 교육장인지도 몰랐다' 는 기사를 보면서 깔깔 웃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웃으면 안되는데)  깔깔대다가 내린 결론 -그래, 외로우면 낚이는거다. 

 

 

이 기사를 보면 신천지 사이비 집단이 멀쩡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는지 상세히 묘사가 되어 있는데, 주로 심리검사로 유인을 하여 고민도 들어주고, 연락을 자주 취하고,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뭐 친절을 베풀다가 그냥 저도 모르게 끌어가는 구조인것 같다. 

 

 

그러면, 이들이 나에게 접근하지 못 한 이유:

 

(1) 일단 나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아예 눈도 안마주치고 그냥 지나치는 편이다. 

 

(2) 가까운 사람에게도 고민을 토로하거나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내 문제는 내가 안고 간다. (예수쟁이가 된 후에는 기도하면서 다 풀어 놓는데, 그거야 하느님과 나 사이의 문제이고, 다른 사람은 내 속을 알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 내 삶의 문제 틈바구니에 간교하게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3) 전화 받기를 싫어한다. 심지어 가족 전화도 잘 안받으므로 낯선자가 내게 전화 해 봤자 나하고 소통이 안된다. 친하다고 전화를 자주하면 아주 교제를 끊어버린다. 누군가 내 삶에 들어오는걸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싫어한다. 

 

(4) 무슨 모임에 나가는걸 극도로 귀챦아 한다. 나는 내 일외에는 나 혼자 노는게 제일 재미있다. 그러므로 나를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5) 나는 무슨 집단을 잘 신뢰를 안한다. 대개 '사기꾼 놈들'이라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정당 가입도 안하고 살고 있다. 정당놈들도 내 눈에는 다 사기꾼 놈들이다. 

 

(6) 나는 남의 말을 잘 안듣는다. 내가 예수쟁이 이지만, 성경끼고 앉아 홀로 공부하고 사색하고, 책보고 스스로 배워나가는 편이지 무슨 유명하다는 목사나 그런 사람들 설교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와 하느님사이의 소통에 끼어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우리 교회 목사님 말도 그냥 대충 흘려 듣는다.  그냥 반은 사기꾼이겠거니 하는 편이 속 편하다. 나도 사기꾼 너도 사기꾼이라는 입장이다. 내가 잘 난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다. 너나 나나 사기꾼이니까 서로 가르칠 생각은 말자는거다.  하느님만 나를 가르칠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지금 대단하다는 사람들 말도 콧등으로 흘려 듣는 판에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 아무개가 친한척 다가와서 낚싯밥을 던지면 물겠는가?  그런데, 성격상 Field Independent 혼자서 잘하고 혼자서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여럿이 모이길 좋아하는 사람 (Field Dependent) 도 분명 있다. 그분들 잘못이 아니다. 성격상 그런 분들이 낚이기 쉬운 구조이다.

 

이 참에 잘못된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을 다 잡아들이고, 고통받고 있는 사이비 교단의 선량한 시민들이 해방되길 빌어본다.  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미혹에 빠진 소시민들일 뿐이니. 거짓말 일삼고 소시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저 수괴들을 발본색원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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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한국 교회 이참에 매 좀 맞아도 싸다.  코로나 와중에 2월 초에 입국한 나는 입국 이후에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내가 하루 한시간 아침 예배와 기도를 실천하는 열혈 예수쟁이인데, 그래도 일요 예배에 벌써 몇주째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감기에 잘 걸리니까, 교회 예배에 갔다가 감기에 옮아가지고 오면 내가 조금이라도 교회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평생 예수쟁이로 살다가 천국으로 갈 목숨인데, 뭐 교회 한두달 빠진다고 하느님이 나보고 뭐라고 하시겠는가?  하느님은 암말 안하신다. 매일 한시간씩 데이트 중인데 뭐.  뭐 이렇게 생각하고 예배에 빠져도 마음이 무겁지도 않다. 그리고 매일매일 가볍게 지내고 있다. 

 

나는 교회 소모임 (속회)이런것도 안다닌다. 예배 드리고, 기도회 하면 가고, 새벽기도회도 나가고 뭐 그러긴 하는데 소모임으로 모여서 뭐 하는거는 안한다. 하고 싶으면 하지만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 나도 바쁘다.  그래도 우리 교회 목사님들은 나를 잘 아시고, 나도 성실한 성도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날 카톡이 시끄러워서 봤더니 나도 모르게 내가 교회 소모임에 등록이 되어 카톡 단체방에서 뭐라고 뭐라고 대화가 오간다. 그냥 지워버리려다가  (나는 카톡도 그냥 지워버린다) 뭔가 봤더니, 소모임 회원들이 모임 장소 얘기를 하다가, 요즘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니 당분간 소모임을 자제하자는 의견을 누가 냈고 대체로 수긍하는 내용이었다.  참 상식적인 분들이네, 안심하고 그냥 지워버렸다. 소모임 안하겠다 이거다.  그렇다, 내가 비록 참석하여 활동하지는 않지만, 교회에서 나를 집어 넣은 그 소모임 신도들은 상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위험하니 소모임을 당분간 하지 말자는거다. 얼마나 상식적인가.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아무런 공지가 안뜨는거지? 이쯤 되면 교회에서도 "신도 여러분....그러하오니...일요 예배에 오시는 대신에 각자 가정에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예배를 하실것을 권해드립니다..." 뭐 이런 메시지가 와야 하느것 아닌가? 왜 일체 소식이 없지? 나는 언라인으로 십일조도 꼬박꼬받 내는데 왜 언라인으로 일자 소식이 없지? 이런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한국 교회 정신 차리라. 신도들에게서 헌금 받는것에만 할레루야 외치지 말고 좀 상식적으로 신도들을 이끄는 방식을 실천해 주기 바란다.  나는 나 혼자 생각하고, 중얼거리다가, 나의 길을 가면 된다. 어차피 인간에게 크게 기대 안한다. 종교지도자들에게도 크게 기대를 가지면 안된다. 각자가 하느님 앞에서 올바로 서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타당하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2. 26. 15:51

"Listen to your heart" 라는 표현이 있다. 네 마음이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경구를 스스로에게 혹은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종종 "Do NOT listen to your heart" 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의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인생에서 정답일 때가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말하자면 -- 나는 아주 사악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숲속의 여우처럼 늘 사방을 돌아보며 숨고, 눈치보고, 도망갈 준비를 하며, 썩은 고기건 뭐건 닥치는대로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그것이 내 본성이다. 나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없이 거짓말을 할 줄도 안다. 아마 거짓말 탐지기도 내 거짓말을 감지하기는 어려우리라. 나는 한마디로 교활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나는 내가 그런 인간임을 알기에, 내가 내 뜻대로 하면 정말 큰 일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 그것이 순전한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사회가 연결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내 판단에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때 나는 알고 있다. 내 마음이 쏠리는 '반대' 방향으로 선택을 하면 그것이 정답이다. 

 

목사님들이 어디에 가 놓고서 안갔다고 발뺌을 하거나, 예배에서 수천명을 만났으면서 안만났다고 거짓말을 하는 동기가 무엇일까?  교회를 위해서? 신도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가? 집단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배를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금 받는 날이라 돈 받기 위해서?  그들이 뭐라고 설명을 해도 내가 보기에는 거짓말이나 예배 강행의 이유가 '타인'이나 '사회'를 위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인것으로 보인다.  하느님을 팔아서 장사하려고 하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이 안된다. 어떤 핑계를 대도 내 눈에는 그들이 '돈'에 눈이 멀어 성전에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로만 보인다.  내가 목회자라도 나는 돈에 눈이 멀을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유혹의 소리가 내 가슴에서 울릴때, 나는 내 말을 들으면 안된다. 내가 사악하게 속삭이는 말에 귀를 닫고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말을 들으면 안된다. 그럴때, 나는 하느님이 내게 미소 지으신다는 것을 감지한다.  나의 판단으로 내가 잠시 문제에 빠질수는 있으나 그것이 구원임을 나는 감지하는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2. 25. 18:54

국내 대학들은 삼월 중순 혹은 사월 초까지 개강이 연기되고 있지만, 우리 대학은 이미 금주에 개강했다. 물론 입학식도 생략되고 많은 것들이 생략된 가운데, 언라인으로 임시 진행하는 방식으로 개강을 했다. 교수와 학생들은 서로 접촉할 수 없고 오직 언라인으로만 소통한다. 나는 매일 내 수업내용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올리고 있다. 오늘도 내일 수업 내용 비디오를 제작해야 한다. 내가 총감독이고, 출연자고, 다 한다. 내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신입생들도 착실히 언라인으로 과제를 제출하고 있다. 역시 인터넷 세대 주인들이라서 응답이 빠르다. 걱정은 기우였다. 

 

 

학교도 유령타운 처럼 적적하다. 달팽이들처럼 각자 연구실에 숨어서 일을 할 뿐이다. 

 

저녁에 한 학생이 내 연구실앞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기웃거린다. 중국인 학생이다.  들어오지는 않고 밖에 서 있다.  나 보러 온건가?  내가 운영하는 센터를 찾아 왔다. 물론 센터 서비스도 열지 않았다. 비상 상황이니까. 센터에는 아무도 없지만, "내가 센터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지?"  언라인으로 모든 수업이 진행이 되니까 문제 상황이 많을거다. 그 학생은 프로그래밍 과제가 있는데 튜터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 왔다고 한다. 

 

 

 

 

 

 

 

 

내 연구실에 들어와 소파에 앉게 하고 차를 한 잔 주었다. '잘 지내니?'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쓸쓸하다고 한다. 아직 교과서 주문한 것은 도착도 안했는데, 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난감한데 아무하고도 얘기를 하면 안된다고, 그래서 다른 학생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할수도 없다고.  참 딱하다. 

 

 

지금은 비상상황이고, 다른 방도가 없어 언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교수들 역시 이 상황이 학생들에게 매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설령 네가 기한안에 과제를 다 수행하지 못해도, 네가 이러한 상황을 교수께 이메일로 전하면 교수께서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주실거다 -- 이렇게 설명을 해 주었다. 안심되는 눈치이다. 

 

학생이 몇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간 후에 나는 손 소독제로 손을 문지르고 학생이 만졌던 펜과 이러저러한 것들을 소독했다. 그리고나서 동료교수에게 이메일을 쓴다 아무개가 이러저러한 문제로 상담을 하러 왔으니 그에게 적합한 방도를 구해 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나는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한채로 마스크를 하고, 유령타운 같이 고요한 학교의 복도를 가로질러 내 연구실까지 학생이 찾아오면 그를 소파에 앉게 하고 차를 내어준다. "야! 마스크 쓰고 들어와!"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가 귀에 마스크를 걸고 있으면.  하지만 마스크도 없이 오는 학생에게는 아무 말도 안한다. 대신 내가 마스크를 단단히 쓴다.  하여간 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차를 주고 그들의 당면한 문제를 들어주고 해법을 찾아 준다. 그러면서도 학생이 나가자마자 히스테리컬하게 손 소독제로 여기저기 문지르며 법석을 떤다.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연구실 걸어 잠그고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그것이 안전해 보이니까.  하지만 사회인인 나는 문을 열고 학생을 맞이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찾아가 의논할 상대가 나밖에 없어서 내게 온것이니까.

 

(아, 나의 사회적 자아는 내가 생각하는 나하고는 조금 다르구나 --- 손소독제를 히스테리컬하게 문지르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어서 이 어두운 시간이 지나가고 모두가 휴식을 취할수 있기를.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0. 2. 23. 20:19

영화 '작은아씨들 (2019)'에서 조가 원고를 늘어 놓는 장면

 

영화 '작은 아씨들(2019)'을 극장에 가서 조조할인으로 보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황제 관람 모우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위에 올려 놓은, 조가 동생 베쓰를 잃은 후에 '작은아씨들'을 집필하면서 원고를 펼쳐 놓는 장면. 

 

 

다른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계몽사 세계명작동화에서 '작은아씨들'을 발견하여 처음 읽은 후,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다 외울 정도로 이 책을 좋아했다. 금성사 판에는 이야기의 전반이 실려 있었고, 계몽사판에는 전반 후반이 모두 실려 있었다. 금성사 판에서는 아버지가 아픈 베쓰를 보러 귀가하는데까지, 계몽사판에서는 베스의 죽음과 에이미, 조우의 결혼까지 모두 실려있었다. 

 

 

피닉스에 있을 때, 엄마의 취향 저격에 명수인 작은 아들이, "엄마 작은 아씨들 영화 해요. 보러 가실래요?" 제안 했을때 나는 '괜챦아. 별로 관심 없어'라고 대꾸했다.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고 하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며칠전까지도 나는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이 이야기의 2019년판 영화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앞서서 제작되었던 두편의 영화는 이미 여러차례 본 바있다. 나는 수잔 서랜던이 나왔던 1995년 판을 좋아하는데 그것 역시 지금은 별 관심이 없다 (내가 그런 것에 판타지를 갖기에는 너무 오래 살은 걸까?). 

 

 

그런데 내가 갑자기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데는 이유가 있다. 언라인 칼럼에서 누군가 남자분이 쓴 글 때문이었다. 찾으면 나오겠지만 찾아서 링크를 걸고 싶지는 않다. 그분은 글에서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그는 '작은 아씨들'을 즐겨 읽었고, 베쓰의 죽음에서는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이었는데 이야기 속의 베쓰와 자신을 동일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베쓰의 죽음이 너무나 슬펐다고. 그가 '조'의 불만이나 여성들의 불만을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이 '남성'이라서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잘 이해할수 없었던 것 같다는 자성의 메시지도 있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세상에 베쓰와 자신을 동일시 한 소년이 있었다니! 놀랍다!'는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영화를 한 번 봐야겠다는 흥미가 동했다. 

 

 

대체로 이 이야기를 읽던 소녀들은 '주인공 격'인 '조우'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언니는 '작은 아씨들의 조우가 꼭 너 같다'고 말을 하기도 했었다. 글쓰기를 즐겨하고, 선머슴같이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언니의 눈에 '조'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조'라면 우리 언니는 착한 큰 언니 '메그'와 비슷했다.  우리들은 그렇게 이 이야기에 동화되었었다.

 

 

나는 정말 이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에 영어소설 읽기가 어렵지 않게 되었을 때 원서도 구해서 읽었다. 그리고 메사추세츠주 '콩코드'라는 도시에 있는 '작은아씨들의 집'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저자 올코트가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바로 그 집이 이 소설의 세팅이 되었다. 영화에도 그 집의 모양이 비슷하게 그려져있다. 사실 올코트의 삶을 들여다보면, '작은아씨들'에 그려졌던 인물들이 그 당시의 실존 인물들의 반영 같기도 하다.  올코트의 아버지는 실제로 조 마치의 아버지와 비슷한 성품이었고... 소설속의 조는 결혼하지만, 루이자 메이 올코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소설 속의 '조'의 남편이었던 '베어'교수의 모델이 '월든'의 저자 Henry David Thoreau 라는 설도 있다. 미국 동부를 여행한다면 사실 Concord 는 숨은 보석같은 작은 마을인데, 그곳 공동묘지에 미국 역사의 거장들이 모두 묻혀있다.  나는 보스톤보다 콩코드를 더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이 이야기를 너무나 사랑하고, 깊이 깊이 내면화 한 나머지, 이것을 '영화화 한 것'에 어떤 불안감이나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같다. 원작만큼 충실한 영화는 없다. 내 가슴속의 영화가 훨씬 절절한 것이다. 

 

 

그래도, '조'가 원고를 쓰면서 원고지를 다락방 방바닥에 줄세우는 장면에서, 그리고  책 출판계약 담판을 짓는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원고를 쓰면 그것을 프린트해서 줄을 세우는 것이 내 버릇인데, 조가 영화속에서 그러고 있었다. 조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기껏해야 가정교사, 그림 그리기, 수 놓기, 집에서 피아노치기, 글 쓰기로 한정되어 있던 시절. 그 시절을 살았던 여성들의 한없는 '답답함'이 제법 묘사가 되기도 했다.  '72년생 김지영' 영화에서도 '김지영'이 글을 쓰는 것으로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스스로의 실존을 확립해 나가는 장면에서 사실 나는 좀 울컥했다. 2019년에도 여전히 여자는 '글쓰기'외에는 다른 탈출구가 없는걸까? 그거야 말로 암담한 결말이 아닐까? 나 혼자 답답했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돈이 되건 안되건 나는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나의 해방구이다. 돈이 된다면 더욱 좋고.  하지만, 글쓰기 외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면, 글쓰기 재주나 글쓰기 취미가 없는 여성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가장 근사했다고 생각된다. (고모). 

 

 

 

Posted by Lee Eunmee